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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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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인생의 '푸르른 봄날', 청춘은 아름답고도 잔혹하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있(었)다. 하지만 청춘은 붙잡을 수 없는 세월처럼 있다가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다. 덧없는 청춘의 환희와 고독을 기록하는 데 스냅사진만큼 손쉬운 장치도 없을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성장한 청년문화를 옆에서 지켜봐 온 스냅사진은 어제와 오늘의 청춘을 생생하게 포착해 왔다. 그 '날 것'의 미학을 조망하기 위해 국내외 주요 스냅사진 작품을 모았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각자의 청춘을 즐기는 아티스트 11인를 만나 그들의 열정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본다. 여기에 젊은 세대의 언어와 그들의 소통 방식을 분석하는 글을 덧붙인다. 최근 우리 미술계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세대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시대 '청춘의 사회학'을 다시 그려본다.

Contents

COVER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Coco’s Cliff> C-프린트 183×274cm(부분) 2008~09 Courtesy of the Artist and Team Gallery, New York


SPECIAL FEATURE
         청춘 靑春

082    ❶ 청춘의 순간들 / 함영준 
         ❷ 젊은 예술가의 초상 11 / 호경윤, 김재석
         오도함 빈지노 박민희 박모과 주호민 이동인 
         권철화 유혜미 노보 빠키 신덕호
         ❸ 21세기 청년문화, 한국의 말.말.말. / 노정태


FOCUS

060    아트스펙트럼 2014展 : 현대미술의 알리바이 찾기 / 임근준 AKA 이정우
064    박미경展, 배윤환展: 어둠으로부터의 탈주 / 김정복
068    박이소展: ‘박이소’를 읽는 6개의 열쇳말 / 김종길
072    KITCHEN-20세기 부엌과 디자인展
         : 미술관이 재현한 주방은? / 김상규
074    정수진展: 다차원 시각이론 / 신승철
076    토탈리콜展: 미술과 영화 사이 / 방혜진


PRISM

058    디지털 이미지 플랫폼, 미술시장의 미래다 / 김영진
059    아시아 미술, 지속적인 네트워크 절실하다 / 조은정


ARTIST

126    김화현: 남자도 순정은 있다? / 류병학


CAST

144    냉전극장
         ❶ 블랙박스; 냉전 이미지의 기억 / 박찬경 
         ❷ 밤섬해적단, 붉은 깃발을 들어라! / 정윤석        
         ❸ 간첩에서 샤머니즘까지 / 박해천


ART MARKET

134    아트바젤홍콩(Art Basel Hong Kong)
         : 미술시장, ‘아시아 시대’ 오는가? / 박혜경


REPORT

144    글로벌노마딕아트프로젝트(Global Nomadic Art Project)
         : ‘자연미술’로 하나된 예술가들 / 윤진섭


ART ON PAGE

132    Banana & Suite1 / 오민


ETC.

057    EDITORIAL / 호경윤
169    ART FIELD
184    P.S
185    SUBSCRIPTION
186    CREDIT

Articles

[ART MARKET] 아트바젤홍콩(Art Basel Hong Kong)

아트바젤홍콩(5. 15~18)이 두 번째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39개 국가에서 245개 갤러리가 참여하고 65,000여명이 관람했다. 2008년 홍콩아트페어로 시작해 지난해 아트바젤 브랜드로 재런칭하면서, 행사 규모는 물론 참여 화랑과 출품작 수준도 아시아 최고 수준의 행사로 발돋움했다. 참여 화랑의 반 이상이 아시아 갤러리로 지역성도 놓치지 않았다. 홍콩은 글로벌 아트마켓의 아시아 ‘교두보’로 우뚝 섰다. 이런 여세를 몰아 홍콩은 아트마켓의 지형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가?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은 무엇일까?


미술시장, ‘아시아 시대’ 오는가?

/ 박 혜 경


마이클 린(Michael Lin) <Point> 알루미늄, 나무, 스틸, LED 470×800cm 2014_아트바젤홍콩 설치 전경

가고시안을 비롯한 서구 메이저 갤러리들이 분점을 내며 진출했던 3년 전만 해도 홍콩은 단지 경매를 중심으로 편재된 마켓 플레이스에 불과했다. 40년 전 진출한 홍콩 소더비와 30년 된 홍콩 크리스티를 비롯해 서울옥션과 타이완, 싱가포르, 일본의 옥션하우스가 경쟁하는 구도였다. 홍콩 로컬 갤러리의 존재감은 없었다.

크리스티가 한국 작가를 집중 소개하기 시작한 2004년부터 필자는 뉴욕 출장을 접고 매년 두 번씩 홍콩을 방문해 현지 미술시장의 성장 과정을 목도했다. 한편 10여년 전부터 “Go to Asia”를 외쳐 온 서구 미술시장은 날로 부유해지는 아시아 컬렉터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근현대 서양미술의 명품을 조심스레 소개해 왔고 이번 아트바젤홍콩에서 그 정점을 보여 줬다.

동서양이 만나는 현대미술의 각축장


리차드 필립스(Richard Phillips) <Ingrid II> 2014_ 가고시안갤러리 출품작

참여 부스 중 아시아 화랑의 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 미국과 유럽의 주요 갤러리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정치적 개성과 실험성을 갖춘 작가보다는 서구의 대표적인 구상 미술작품을 골라 전시장을 채웠다. 올해 처음 참가한 이탈리아의 마촐레니(Mazzoleni)갤러리는 개념주의 미술을 도입해 현대미술사에 확실한 족적을 남긴 피에르 만초니부터 시작해, 20세기 소비주의 미술에 반발해 아르테포베라 운동을 이끈 마리오 메츠, 최근 가격이 상승 중인 ‘공간의 개념’ 창시자 루치오 폰타나, 당대 최고의 개념미술 작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현대미술의 역사를 관통하는 멋진 전시장을 꾸몄다. 화려한 컬렉션으로 주요 매체들의 인터뷰 요청이 끊이지 않았던 뉴욕의 해머(Hammer)갤러리는 피카소의 여인상 중 가장 가치가 높은 도라 마르의 초상부터 르누아르의 소녀 그림 5점, 샤갈의 전성기 유화, 마티스의 흔치 않은 인물화 등 인상주의 작품을 선보였다. 거실에 걸기 좋은 크기에 미화 10만 달러~100만 달러 사이의 작품이 주를 이뤘다. 화랑주 하워드 쇼(Howard show)는 이중 10만 달러 전후의 작품들이 여럿 판매됐다고 전했다.


장 샤오강 <The Boy with Two Hands Open(TBD)> 브론즈 36×65×30cm 2014

한편, 프랑스의 아플리카-프라장(Applicat-Prazan)갤러리는 일찌감치 중국작가들을 알아봤던 화랑의 감식안을 자랑하려는 듯, 19세기 말 유럽으로 유학한 중국의 1세대 서양화가 자우키를 비롯해, 피카소와도 교우했던 장대천의 초기 산수화 등을 들고 나와 후안 미로와 피카소 작품 옆에 나란히 놓았다.

3년 전 중국작가 쩡판즈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그곳엔 이탈리아 현대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정물화가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쩡판즈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모란디를 꼽으며 그 작품을 스위스의 아트바젤에서 구입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아트페어에서도 형이상학적이고 몽환적인 묘사로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끼친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와 모란디를 출품한 멋진 부스를 만날 수 있었다.


수큐(Xu Qu) 〈Conquer〉 캔버스, C-프린트, 구리, 철 가변크기 2014

그 밖에도 많은 서구의 화랑들은 아시아 컬렉터에게 자신의 미술세계를 소개하는 데 있어서 긴 호흡으로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줬다. 고전 대가의 작품 하나하나가 돋보이기 어려운 아트페어의 전시장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개성 있는 형태의 가벽에 대가의 작품을 한 면당 한 점씩만 걸었던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런 풍경은 지금까지는 아트바젤이나 FIAC 등 유럽 출장길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유럽 화랑들은 세기의 거장이 된 서양 미술사의 대가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중국 출신 중견 작가의 작품을 한두 점씩 소개하는 경향을 대체로 띠었다. 스위스의 카스텐그레브(Karsten Greve)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조각과 드로잉, 평면 작업, 루치오 폰타나와 사이 톰블리의 회화, 알렉산더 칼더의 40만 달러 상당의 모빌 작업을 선보인 가운데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중국 추상미술의 리더 딩리(Ding Li)를 소개했다. 영국의 뛰어난 조각가 토마스 하우스고와 문자와 사진을 결합한 작업으로 유명한 미국의 개념미술 작가 존 발데사리 등을 출품한 미국의 마리언굿맨(Marian Goodman)갤러리도 중국 중산층의 불안한 미래상을 흑백영상으로 표현하는 양푸동의 작품을 같이 걸었다. 물론 양푸동은 이미 카셀도쿠멘타와 베니스비엔날레 참여로 익히 명성이 자자한 작가지만, 예술적 영향을 주고받은 동서양의 작가를 함께 고르는 화랑 고유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었다.

홍콩 맞춤형 전략적 프로모션


카스텐 니콜라이 〈α(Alpha) Pulse〉 조명 및 음향 퍼포먼스 2014

아트바젤홍콩은 올해 몇 가지 특색 있고 새로운 기획을 추가했다. 먼저 홍콩아트센터와 합작해 선보인 <필름> 섹션이다. 이는 스위스 아트바젤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인기 프로그램을 홍콩에도 적용한 것이다. 이번 행사는 큐레이터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리젠화(Li Zhenhua)의 기획으로 3일간 진행됐다. 아트바젤홍콩만의 독특한 프로젝트로는 관람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을 고안해서 484m를 자랑하는 홍콩 최고층 빌딩 국제상업센터(ICC) 건물 외벽에 새로운 야경을 프로젝션한 미디어아트 쇼를 페어 기간 중 매일 밤 45분간 선보였다. 베를린 출신의 미디어아티스트자 전자 음악가인 카스텐 니콜라이(Carsten Nicolai)의 작품 <α (Alpha) Pulse>다.

또한, 메인 전시라 할 수 있는 <갤러리스> 섹션 외에 47개의 아시아 갤러리 소속 작가를 개인전 형식으로 독립적인 부스로 전시하는 프로젝트 <인사이트>를 선보였다. 세계 각지의 신진 작가를 대상으로 심사하는 <디스커버리> 섹션에서는 아프리카 튀니지 출신의 젊은 여성 작가 나디아 카비-랑케(Nadia Kaabi-Linke)가 최종 수상했다. 그는 부상으로 미화 2만 5천 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평면에 오브제와 텍스트를 혼합해 구성한 그의 작품에 대해 “도시적인 맥락에서 작가의 기억과 지리적이고 정치적인 정체성을 드러낸, 개인적 심리와 사회성을 동시에 내포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하 생략]

[ARTIST] 김화현

김화현의 개인전 <Stolen Hearts>(4. 25~5. 4 갤러리구)가 열렸다. 순정만화에 등장할 법한 용모의 남성이 서양미술사 여성 누드의 대표적인 포즈인 오달리스크풍 자세로 관객을 향해 유혹의 눈빛을 건넨다. 우리의 마음을 훔친 남성들을 배경으로 동서양 명화 속의 알레고리를 재조합한 기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여성 누드의 오래된 전통에 전복적 상상력으로 맞불을 놓는 그의 작품 속 숨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필자는 김화현의 작품을 관객과 작가, 작가와 미술사, 미술사와 서브컬처의 ‘지적 게임’으로 해석한다.


남자도 순정은 있다!

/ 류 병 학


김화현 / 서울대 동양화과 졸업. 미술사 복수전공. 갤러리진선(2006), 아트포럼뉴게이트(2008), 갤러리구(2014) 등에서 개인전 개최. 2007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도미, 메릴랜드 인스티튜트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미술 석사학위. 2010년 귀국, 현재 한국에서 활동 중이다.

지난 5월 갤러리구에서 본 김화현의 최신작에 대한 필자의 첫 인상은 ‘빙고!’였다.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남성 누드화였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누드’ 하면 흔히 ‘여자’를 떠올린다. 그리하여 ‘미인도(美人圖)’는 ‘미녀도(美女圖)’와 등식을 이루는 것으로 착각하기에 이른다.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밀로의 비너스>를 든다. 그런데 사실 고대의 남성 조각상들, <쿠로스>나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 프락시텔레스의 <헤르메스와 아기 디오니소스>, <벨베데레의 아폴론>, <바르베리니의 파우누스> 등은 기원전 2세기 전에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밀로의 비너스>보다 오래되었다.

하지만 고대 이후 아름다움의 대상은 여자로 귀결된다.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여성 누드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미술사는 흔히 ‘남성을 위한 미술사’로 간주된다. 1970년 로빈 모건은 <자매는 강하다>에서 남성의 관점에서 기록되어 왔던 역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허스토리(Herstory)’라는 신조어를 사용했다. 당시 ‘허스토리’는 페미니스트에 동의하는 젊은이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머시라? 히스토리는 'His+Story'의 합성어가 아니라고요? 안다. 히스토리가 그리스어 ‘Historia’에서 유래했고, 그 뜻이 ‘탐구를 통해 배우는 행위’라는 것도 안다. 따라서 로빈 모건이 말한 ‘허스토리’는 재현주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남성에 대한 저항’을 뜻하기보다 오히려 인간의 역사를 남성 중심적으로 기록하고 해석한 오랜 관행에 대한 저항을 뜻하는 셈이다.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La Grande〉 장지에 채색 90×145cm 2014

1971년 린다 노클린은 서양미술사를 도배하고 있는 이미지가 다름 아닌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는 없는가?’라고 자문하면서 남성 중심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미술계의 제도를 폭로한다. 이를테면 ‘위대한 예술가’라는 개념은 남성의 관점에서 판단되기 때문에 위대한 ‘남성’ 예술가를 뜻하게 된다고 말이다. 따라서 ‘남성을 위한 미술사’에 등장하는 여성은 남성의 욕망을 위한 대상(마돈나와 요부 그리고 뮤즈)으로만 간주될 뿐이다.

그렇다고 여성을 위한 미술 수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토마스 에이킨스는 남성 누드화로 잘 알려진 화가이다. 그의 <수영>(1884~85)은 제목 그대로 수영을 즐기는 남성들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다. 그는 그의 모교 필라델피아 아카테미에서 교수로 재직할 당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미술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 미술가도 남성 누드를 그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1886년 교수직을 박탈당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남/녀를 구분하여 지도했던 인체 누드화 수업(더욱이 남성 누드화 수업)에 남녀 구분 없이 학생들을 함께 참여시켰기 때문이다.


〈Magnolia〉 장지에 채색 162×70cm(부분) 2014

지난 3월 노팅험 미술관에서 ‘여자가 본 남자의 이미지’를 주제로 세미나와 토론회가 열렸다. 여자가 본 남자의 이미지? 그것은 1980년 영국 런던의 ICA에서 개최된 전시 타이틀이다. 주목할 것은 그 전시회에 출품된 여성 예술가들이 그린 남성들은 여성의 욕망을 위한 ‘성적’ 대상이라기보다 오히려 ‘수동적’ 대상으로 표현되어졌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수동적 대상’은 남성의 마초(라기보다 차라리 ‘마초증후군’)를 ‘거세’한 대상을 뜻한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는 ‘여자가 본 남자의 이미지’가 ‘여자의, 여자에 의한’ 남성 이미지에 그친다는 것을 알려 준다. 김화현의 작품이 갖는 특이성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 그의 작품은 서두에서 중얼거렸듯이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남성 누드화이다. ‘여자가 본 남자의 이미지’에서 첨가된 ‘여자를 위한 남성 누드화’는 여성 예술가가 여성의 욕망을 위해 성적 대상으로 표현한 이상적인 남성 누드화를 뜻한다. [이하 생략]

[SPECIAL FEATURE] 청춘 靑春

SPECIAL FEATURE ❶청춘의 순간들

왜 사진은 청춘에 열광하는가? 찰나를 포착한 스냅사진은 청춘이 지닌 ‘날 것’의 강렬함과 순간의 덧없음과 공명하며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했다. 사진 속에 등장했던 광기 어린 젊은이들의 모습은 이제 아름다운 기억 속으로 박제됐고,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청춘을 재현하는 정형화된 방법론으로 굳혀졌다. 필자는 청춘문화의 성장과 함께 예술적 가능성을 갱신한 스냅사진의 관계를 추적하며, 청춘과 사진의 한 계보를 살핀다. 그리고 오늘의 청춘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가 잃은 ‘청춘’은 무엇이며, 이제 청춘은 어떤 모습을 보여 줄 것인가?

/ 함 영 준


라이언 맥긴리 <Blood Falls> 115×76cm(부분) C-프린트 2009

오늘날 숱하게 회자되는 사회학적, 미학적 담론 속 ‘청춘’의 개념은 20세기 중반에 처음 등장했다. 두 차례의 전쟁이 끝나고 인류에게 희망찬 미래만이 존재할 것 같았던 시대부터 청춘은 세상으로 들어와 왕성하게 움직였다. 1960년대를 관통했던 청춘. 당대의 균열을 파고들어 제 세상을 펼치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영미권의 청춘. 꿈과 열정으로 무장해 현실에 대항하는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청춘의 수사와 뉘앙스는 이때에 정립된 셈이다.

다른 측면에서 현대의 청춘은 대량생산 시대, 즉, 모더니즘이 완성될 무렵을 배경으로 태어났다. 모더니즘 시대의 문을 닫은 것도 청춘이요, 새 세상을 열고자 했던 것도 청춘이었다. 이 와중에 태어난 현대적 문화는 청춘의 부산물이었다. 대중문화의 가장 큰 생산자이자 소비자는 바로 청춘들이었다. 현대의 대중문화는 청춘 없이는 그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 대중문화를 견인하기도 하고, 대중문화에 의해 스스로를 갱신하면서 청춘은 계속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무방비로 뿌려졌다. 청춘은 현대적 시민의 여가 생활 중 대부분을 발명해 냈다. 그것이 축적되며 ‘청춘적 취향’을 구성했다. 20세기 중반부터 인류가 여가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면, 그 공은 청춘에 돌려야 한다.


Wolfgang Tillmans <Moby, Lying> 컬러 커플러 프린트 30.5×40.6cm 1993_볼프강 틸만스는 주변 일상을 포착하며 사진계에 입성했다. 1990년대 런던의 젊은 클러버와 동성애자, 펑크족 등을 촬영한 작업으로 주목 받았다. 2000년 비영국인이자 사진 작가로는 처음으로 터너상을 받았다. 이후 추상화된 컬러 네거티브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시도했다.

청춘은 각종 문화의 무분별한 전위가 되었다. 모든 문화 영역이 그 에너지의 영향을 입었다. 1950년대에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는 찰리 파커의 보수적인 비밥에 대한 일종의 반발로 생겨난 급진적 약쟁이 연주자의 앨범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앨비스 프레슬리의 성공으로 팝 음악 애호가의 연령층이 어려졌다. 뒤이은 소위 ‘브리티시 인베이전’과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표상하는 청춘의 문화는 곧바로 문화의 헤게모니를 그러 쥐었다. 1967년의 전설적인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과 이후 촉발된 초대형 록페스티벌은 고작해야 4~5년 지속됐을 뿐이다. 하지만 십만 단위로 헤아려지는 청춘들을 불러 모으면서 이후 대중음악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꿨다.


Samuel Hodge 《BUTT》 2014 달력 중 일부_사무엘 호지는 동성애자 잡지 《BUTT》에서 본격적인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최근 게이연애사이트와 텀블러 등에서 모은 젊은 동성애자들의 이미지를 재촬영한 연작 〈평가할 수 없는 아카이브〉를 선보였다.

미국 영화는 거대 서사를 뿌리치며 소위 ‘뉴 아메리칸 시네마’로 흘러갔다. 뒤이어 프랑스에서는 문예 영화 대신 소수의 앙팡테리블이 미국의 대중영화를 자양분 삼으며 ‘새로운 물결’을 만들었다. 컬러 TV의 발명으로 효과적인 현대적 광고가 등장했다. 새로운 미술가들은 바로 전 세대였던 윌렘 드 쿠닝과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가 제시했던 길과는 아예 다른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전후 미술’에서 수많은 미술가가 언어나 각종 대중문화의 이미지 등을 논리적 맥락을 통해 새로운 재료로 가공하며 시각적 유희를 실천했다. 어린 작가들은 저마다의 ‘그룹’을 만들어, 마치 록밴드처럼, 공항에서 계단차를 밟고 내려오던 영국 밴드들의 의기양양함을 자신들의 태도로 삼았다. 그것은 당대 분위기를 감안하면 꽤 성공률 높은 도박이자, 당연한 귀결이었다.

#청춘문화와 사진의 랑데뷰
사진은 1960년대 청춘문화의 폭발적 성장과 그 현장의 열기를 포착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방법론 이상의 의미를 얻는다.


Ryan McGinley <Untitled(Bathtub)> 2005_라이언 맥긴리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취, 문신, 누드 등 청년들의 ‘즐거움의 흔적’을 을 카메라에 담았다. 최근에는 자동차 여행, 스튜디오 작업 등을 선보였다. 마크 제이콥스, 유니클로 등 세계적 의류 광고와 협업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진은 좀 더 특별한 위치에 놓였다. 그 자체로서 미학적 의미를 도모하는 예술작품이자, 대량생산의 시대를 상징하는 상업적 성격을 띠게 됐다. 사진이 당대의 분위기를 포착해 후세에 남기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자 사진 역시 새로운 가치를 찾기 시작했다. 사진술의 발달이 모더니즘과 궤적을 같이 한다면, 사진은 소형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해 비로소 시선의 재현 이외의 것을 찾았다. 예술가들의 개인적 미의 실현을 다루는 현대 사진이 출발한 셈이다. 발명된 순간부터 시각 예술의 한 형태로 인정받지 못했던 사진이 현대미술의 한 형태로 포섭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청춘의 시대에 걸맞은 사진은 안셀 애덤스 류의 환상적이고 절제된 미국의 풍경 사진이 아니었다. 매그넘과 《라이프》지와 FSA(농업안정국) 사진가들이 진행했던 다큐멘터리 사진의 계몽적 태도도 아니었다. 그리고 사진이라는 물료(物料)를 사용해서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과는 달랐다. 즉, ‘파인-아트 포토그래피’의 시대가 열렸다. [이하 생략]


SPECIAL FEATURE ❷ 젊은 예술가의 초상 11

오늘 이 땅에 사는 청춘의 얼굴을 지면에 담고자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아티스트 11인을 만났다. 록커 오도함과 힙합 뮤지션 빈지노, 전통가곡을 부르는 박민희, 한식당을 운영하는 박모과, 웹툰 만화가 주호민, 패션 디자이너 이동인, 아트디렉터 권철화, 목수 유혜미, 타투이스트 노보, VJ 빠키, 그래픽 디자이너 신덕호. 순수미술을 고수하기보다는 시각문화의 경계에서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갖고 뛰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물론 이들 모두가 각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일인자’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당장 내일엔 다른 무엇을 찾아 떠날 수도 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 좌충우돌하는 현재, 그것이 바로 청춘의 ‘민낯’이 아닐까. 평소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한 일상을 스냅사진으로 기록하는 사진작가 Less와 함께 콜라보레이션해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과 ‘자유’를 포착했다.

/ 사진 Less 김태균
/ 인터뷰 호경윤, 김재석

오도함

이땅에 사는 청춘남녀를 향해 온몸으로 부르짖는 록커



색골, 그리고 마광수 닮(고 싶)은 남자. 오도함은 트위터와 에스크에프엠 등 SNS에서 종일 사람들과 함께 섹드립(성적인 언행과 농담)의 향연을 펼친다. 즐겨 하는 컴퓨터 게임은 LOL, 거기서 아이디는 ‘미더덕 국물 발사’. 음기 강한 동네에 있는 서울예고와 국민대를 다녔던 오도함은 양기를 한껏 발산하는 건강한 대한민국 남성 역할을 자처한다. 인디밴드 파블로프에서 활동하는 오도함은 무대에서 마치 잠재적 애인(여성 관객)에게 구애를 하듯 상의를 벗어 던지거나 기고 구르고 매달리며 남성성을 드러내곤 한다.


더 아웅다웅스(오도함, 박준철) 기획의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전의 퍼포먼스 장면 2012

“오늘 밤은 나와 함께 전쟁 같은 사랑/ 지금 나는 너무도 위험한 사람 불안한 나의 눈빛에 여자 여자 여자…” 최근 발표한 첫 정규앨범 <26>의 타이틀곡 <한껏 조여진>의 가사 중 일부다. 작사는 물론 오도함. 작곡은 파블로프의 모든 멤버가 함께 했다. 오도함(보컬) 외에 류준(기타), 박준철(베이스), 드럼(조동원)으로 구성된 파블로프는 만장일치로 택한 곡만 쓴다. ‘강북 사운드’를 모토로 내세운 파블로프는 서울예고 동기들로 학교에서 밴드 활동을 하면서 결성됐다. 어쨌든 10년 차 뮤지션인 셈이다. 2008년 EP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이후 6년 만에 정규 앨범을 내기까지 크고 작은 공연들로 잔뼈가 굵었다. 상상마당, 롤링홀, 빵, 무대륙, 두리반 등 홍대앞 인디씬에서도 많이 공연했지만, 오도함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로 지금은 없어진 이태원의 ‘꽃땅’을 꼽는다. 작가 최정화가 만든 살롱인 ‘꿀’의 반지하 공간에 미술그룹 ‘파트타임스위트’의 이병재가 운영한 술집이 ‘꽃땅’이었다. 그 옆에 최정화의 창고로 쓰였던 장소는 공연장으로 바꿨다. 꽃땅은 2013년 4월 폐관할 때까지 힙스터의 아지트였다. “현대미술이 졸음을 불러온다면, 록음악은 비를 부른다”면서, 오도함은 장마철이면 지하실의 물을 퍼내면서 공연하던 기억을 회상했다. 어쩌면 지하의 곰팡이 냄새야말로 2000년대 청년문화의 중심축이 되는 감각이라고.


지난 5월 20일 발매된 록밴드 파블로프(오도함, 류준, 박준철, 조동원)의 첫 정규앨범 <26>. 멤버들의 나이 26살에서 따온 제목. 오는 6월 14일 상상마당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다.

공연이 있을 때건 없을 때건, 해가 지면 꽃땅에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춤을 췄다. 그들은 문화예술 언저리에 있지만 특별히 하는 것은 없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오도함도 마찬가지였다. 미대 졸업 후 할 게 없어서 그냥 놀고 있다가, 작가 이수성과 윤지원 등의 소개로 꽃땅에 처음 가게 됐다. 거기서 최정화와 만나면서 공연 기획을 한번 해보라는 권유로 파블로프의 멤버인 박준철과 함께 ‘더 아웅다웅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2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주최한 전시 기획전 공모 프로그램 ‘오픈콜’의 첫 당선자로 뽑혀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전을 열었다.  ‘평양에서 펑크록 음악을 연주하는 클럽이 있었다면, 정기적으로 그곳에서 공연을 했던 뮤지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농담 섞인 질문에서 출발해, 야마가타 트윅스터, 쾅프로그램, 악어들, 무키무키만만수 등 10팀의 젊은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을 소개했다.

오도함은 학창 시절엔 심오한 미술가를 꿈꿨지만, 이제는 유명한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 미술만 하는 사람보다 음악하는 사람이 비교적 밝게 늙는 것 같아서 좋다고. “록은 죽었는데 ‘죽었다’라는 말도 죽었거든요. 무슨 장르든지 할 수 있어요. 아무거나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2010년대인 것 같아요. 이게 막다른 골목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즐겁게 살려고요. 하하하!” [이하 생략]

[FOCUS] 아트스펙트럼 2014展

현대미술의 알리바이 찾기

/ 임근준 AKA 이정우

아트스펙트럼 2014展 5. 1~6. 29 삼성미술관 리움


천영미 〈구름기둥 불기둥〉 건축재료 150×150×1,000cm 2014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아트스펙트럼 2014>는 오랜만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풍경을 연출해 냈다. 삼성미술관이 2001년 호암갤러리에서 <아트스펙트럼>을 시작했고, 또 출품작 일부를 미술관이 구매해 소장했으므로, 청년 작가들에겐 꼭 초대되고 싶은 자리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긴장감이 감돌았던 제2회(2003)와 달리, 역대 최대 규모였던 제3회(2006)는 방만한 전시가 되고 말았다. 작가 선정의 질이 고르지 못했던 점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미술계의 판도 변화도 긴장감 하락의 한 요인이었다. 유망 청년 작가들의 커리어 전개에서 등용문 전시보다는 40~45세 이하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요 미술상이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 그러한 점은 무려 6년 만에 재개된 제4회(2012)에서 더 명확히 드러났다.

이후 삼성미술관 내부에선 <아트스펙트럼>의 폐지까지 논의됐다고 알려졌지만,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는 조직답게 결국 제도를 크게 보완해 새출발을 꾀하게 된 셈이다.1) <아트스펙트럼 2014>는 출발점부터 예년과는 사뭇 달랐다. 작품 제작지원비도 기존의 500만 원에서 1천만 원으로 현실화됐기 때문에, 참여 작가들 입장에선 여러모로 도전 의식을 느낄 만한 자리였을 것이고, 또 몇몇은 플라토에서 개인전을 여는 모습을 상상했을 테다. 그렇다면, 작가들 사이의 긴장감 외에, 출품작들의 미적 긴장감은 어떨까. 역시 성공적일까? 답은 긍정과 부정이 엇갈린다. <아트스펙트럼>은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를 만나다”라는 홍보 문구처럼, 기본 기능은 미래가 촉망되는 청년 작가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비전을 살펴본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 전시가 미술계의 미래상을 제시하는가?’라고 자문해 보면, 딱히 아니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일단 <아트스펙트럼 2014>에서 두드러지는 부정적 양상은, 일군의 작가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수동적 공격성’의 방어적 경향 즉, 어떻게 해서든 알리바이를 찾아 제 행위에 미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강박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를 만나다?


김민애 〈세 작가〉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4

장현준 작가는 건축가인 아버지를 알리바이로 내세워 건축적 공간을 설치하고, 그를 활용해 예상 범주에서 벗어나는 육체적 반응을 귀결 짓는 저만의 ‘즉흥’을 꾀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제 부친을 적절한 카운터 파트너로 활용하지 못한 채 예상 가능한 안무를 선뵈고 말았다. 장소와 상황에 반응하는 몸짓으로 새로운 미술을 펼치겠노라는 전제는 흥미로웠지만, 제시된 작업 전개 과정의 각 단계 별 이음매가 헐거워서 설득력이 크게 떨어졌다. 자신의 아버지를 모더니스트 건축가(의뢰인의 유무에 상관없이 독자적인 방법론에 기반을 둔 채 조형적 이상을 추구하는)로 착각한 것부터가 패착이지 않았을까.

송호준 작가는 <오픈 소스 인공위성 프로젝트(OSSI)>를 시작한 지 5년 만인 2013년 4월 19일 정말로 인공위성을 로켓에 실어 우주로 쏘아 올렸다. 문제는 그 다음. 꿈을 제시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던 이전 단계와, 허망한 꿈이 이뤄진 이후의 단계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이뤄지지 않은/못한 꿈에 쉽게 매혹되지만, 실현된 작은 꿈에 매료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작가에겐 지난 5년의 과정을 결산하고 그것으로 뭔가 진짜 그럴듯한 미술을 만들어야 하는 무거운 과제가 남았다. 좋은 시절이 다 가버린 셈. 이 괴로운 포스트-프로젝트 프로덕션의 과정에서 그에게 힘을 불어넣을 원동력은 무엇인가? 프로젝트로 누적된 빚을 청산하기? 그의 작업 <인공위성 퀴즈쇼>는 결국 자신의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값비싼 기념품에 다름 아니다. 알리바이를 찾지 못한 그의 후반기 작업은 우울하고 공허하다. 어찌하면 좋을까? 미완의 프로젝트, 좌절된 꿈으로 연출해, 더 시간을 끌었어야 했던 게 아닐까?

박보나 작가는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말해 드립니다>라는 작업으로 담론적 제도 비평을 시도했다. 전시장 가이드의 실존을 퍼포먼스로 활용하는 전략은 어쩐지 1980년대스럽지만, “I”, “tell”, “what”, “you”, “believe”라는 단어가 적힌 탭댄스 슈즈를 신고 전시장을 배회하는 안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전시 공간의 느낌은 달라진다. 그러나 ‘오디션 제도를 통해 선발됐지만, 제대로 된 기회는 얻지 못한’ 무명 배우/가수/코미디언 3인을 보여 주는 영상 작업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말해드립니다 2>는 어떤 윤리적 선을 넘었고, 따라서 보는 내내 이건 옳지 않다고 느꼈다. 작가는 이들 영상이 <아트스펙트럼>에 선발된 저와 여타 작가들의 처지에 대한 유비가 된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작가는 미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감독의 입장에서 섰고, 촬영-출연에 동의한 3인의 무명 예술가들은 자신이 왜 이 영상에 출연하게 됐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입장에 선 채, 민망한 오디션 과정을 무한 반복하는 불우한 타자가 됐다. 제 발걸음을 조절해 가며 그때그때 상황을 달리 연출할 수 있는 전시장 안내인들의 입장과는 다르다. “‘거래’에 의해 만들어지는 개인과 사회 간의 관계가 갖는 리얼리티”와 “예술의 장에서 전형화되고 형식화된 시스템으로 드러나는 리얼리티”를 중첩시켜 비평적 풍경을 연출할 때, 양자 사이에 윤리적 균형이 깨지면, 메타-비판을 시도하는 주체는 비판 당해 마땅한 존재로 전락하는 수가 있다.

천영미 작가는 손으로 완벽한 원을 그리고 완벽한 구체를 제작하는 부질없는 도전을 통해 멜랑콜리한 비기념비적 기념비인 <완벽한 원들>을 제작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는 구작의 확대 재생산품이다. 그렇다면, 이는 제 근과거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된다. 알리바이를 내세웠던 작업을 반복-확장할 때면 또 다른 알리바이가 필요한 법. 반면, <구름기둥 불기둥>은 과거에 제작한 소품의 확장판임에도 미적으로 더 흥미로운 결과가 됐다. 작가는 흙, 공기, 물, 불 등을 다면체에 비유했던 플라톤을 근거로 삼아, 물을 상징하는 정이십면체와 불을 상징하는 정사면체를 더해 토테미즘적인 기둥을 세웠는데, 이 비기념비적 기념비는 렘 콜하스가 주어진 대지와 건축물의 정보를 수집하고 그 한 측면을 유형학적으로 과대평가해 도출해 낸 건축적 매스인 블랙박스와 팽팽한 대치를 이루며 비평적 풍경을 연출해 냈다. 김민애 작가는, 주어진 장소를 알리바이 삼아 해당 장소에 기생하며 장소의 성격을 변형하는 근년의 작업 방식을 지속했다. 주어진 장소에 1차적으로 반응하는 형식을 고수하는 단계를 거침으로써 제 작업의 기본 문법을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가겠다는 욕망은 이해가 가지만, 그의 근작은 참조적 지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 구식 장소 특정성을 추구하는 작업으로 후퇴하기도 한다.2) 그가 첫 개인전에서 전개했던 다의적 작업들을 다시 보고 싶은 이가, 비단 나뿐일까?

알리바이의 강박에 시달리는 청년 작가들


송호준 〈인공위성 퀴즈 쇼: 통신모듈 편〉 설치 2014

이러한 알리바이의 강박은 정희승의 사진 설치와 이완의 탈식민주의적 재료 탐구에서도 반복됐다. 정희승은 사진이 다시 현대미술일 수 있도록 담론적 장소특정성의 설치 문법에 부합하겠다는 알리바이를 제시했지만, 인쇄물을 쌓아 놓고 그 옆면을 보라는 식의 <회전문이 있는 방>에 수긍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한편, 이완은 비미술적 재료에 이유 없이 천착했던 제 과거 작업에서 탈피해, 한 끼의 아침 식사와 탈식민의 역사를 제 작업의 알리바이로 삼았다. <메이드 인> 연작 가운데 하나인 <메이드 인 타이완>에서 이완은 대만으로 날아가 설탕 한 줌을 얻기 위해 실재하는/실재했던 노동을 의태-반복하고 그 과정을 기록했다. 비미술적 재료에 대한 집착에서 출발해, 아시아의 역사와 포스트미디엄의 상황에 부합하는 미적 미디엄의 재창안까지 이뤘는데, 결국 손에 쥐는 것은 미술이 된 노동을 거쳐 생산해 낸 비미술적 재료다. 그가 제조한 설탕은 연금술적 의미 변환을 거친 물질처럼 특별해 뵈지만, 아무튼 결국 그저 설탕에 불과하다. 당위성을 확보한 탈식민주의 비평으로서의 미술 작업은 오랜만에 봤다.3)

심래정, 제니조, 이은실 작가는 외재적 알리바이에 집착하지는 않았지만, 제 작업의 대주제에서 알리바이를 찾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심래정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개인적 트라우마에 화답하는 비관적 드로잉과 애니메이션을, 제니 조는 회화적 원근법의 회화적 연구를, 이은실은 성적 페티시의 음험한 도원경 탐험을 지속했다. 결과적으로 세 작가는 전시에서 어떤 시대성 없는 시대감각을 공유하지 않는 이질적 존재가 됐다. 자, 누구의 알리바이가 더 그럴듯한가? 어느 알리바이가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일까? 가짜이면서도 미적 유효성을 획득한 경우가 있고, 진짜이면서도 미적 유효성을 획득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럼, 알리바이 없는 현대미술은 불가능한 것일까?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무시하는, 미적으로 유효한 방법은 없을까?


1) 여타 미술상 전시의 노화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개관이 제도 개편 결정에 간접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내부 큐레이터들의 추천과 회의를 통해 초청 작가를 선정하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내부 큐레이터 5인 외에 외부에서 추천위원 5인을 초빙하고, 2배수 작가 추천과 회의를 거쳐 참여 작가를 선택하는 것으로 방식을 바꿨다. 그러나 눈에 띄는 가장 큰 변화는 시상 제도의 도입이다. 전시 개막 후 별도의 심사를 거쳐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여하는데, 3천만 원의 상금보다 더 파격적인 것은 2년 뒤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수상작가 기념전을 열게 된다는 점이다.

2) 자신의 조형적 개입으로 해당 공간의 건축가, 이전에 전시한 사진가의 결정을 하나로 엮은 <세 작가>는 성공적이었던 데 반해, 지나치게 공을 들여 가짜 에스컬레이터를 실물 크기의 모크업으로 제작-설치해 놓은 <블랙박스 조각>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모습이었다.

3) 필자는 개막 당일 SNS상에 그의 작가상 수상을 예상한다고 밝혔는데, 아니나 다를까 3인의 심사위원(정도련, 김홍희, 홍나영)은 그를 수상자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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