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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4.05

Slide

Abstract

1985년 영국에서 일본 아방가르드 미술 전시를 처음 기획한 데이비드 엘리엇(David Elliott)은 이런 말을 남겼다. "(전시가) 1년만 빨랐어도 너무 일렀을 것이고, 1년 뒤에 열렸으면 너무 늦었을 것이다." 1980년대부터 국제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아시아 미술. 데이비드 엘리엇의 지적처럼, 우리는 아시아 미술을 말할 때 늘 '시간'의 문제와 마주한다. 문화 경제 정치 사회적 움직임의 서로 다른 시간차 속에서 전광석화처럼 변화한 아시아 미술을 한 자리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Art는 연간 테마인 '아시아 미술'에 다가서는 중요한 창구로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이하 FAAM)을 선택,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아시아 미술의 다양한 얼굴을 소개한다. 아시아 8개국의 동시대 미술 동향을 살핀 2월, 한국 미술인의 시각에서 아시아를 바라본 3월 특집에 이어, 아시아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한 기획이다. FAAM은 세계 유일의 아시아 근현대미술 전문관이다. 1999년 개관 이래 아시아의 근현대 작품을 적극적으로 전시, 연구, 소장해 왔다. 또한 개관과 동시에 트리엔날레를 개최하며 아시아 동시대 미술의 변화를 포착하고 서구와 다른 관점에서 아시아 미술 담론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FAAM이 소장한 23개국 3천여 점에 가까운 작품은 일반적인 '미술'의 틀에서 벗어나, 오늘의 아시아를 성찰하는 생생하고 풍성한 목소리를 제공한다. Art는 먼저 FAAM의 소장품 중에서 21개국 작가 94명의 작품을 선별해 화보를 구성했다. 격동의 시대를 거쳐 미술의 토양을 다진 20세기미술부터 뉴밀레미엄 이후 국제 미술계와 시차를 줄이며 꽃핀 동시대 미술까지 모았다. 미술관이 제작한 자료집을 기초로 해당 국가의 아트씬과 작품 해설을 실었다. 언제나 현재 진행형인 아시아 미술을 이해하는 가이드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둘째, 후쿠오카를 방문해 미술관의 아시아 작가 '교류' 프로그램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각국을 발로 누빈 FAAM의 학예실장 구로다 라이지를 만나, 오늘의 아시아 미술이 직면한 문제와 그 대안을 들어 본다.

Contents

COVER
         타위싹 씨텅티(Thaweesak Srithongdee) 〈Power〉 사롱천에 아크릴릭 100×80cm 2005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SPECIAL FEATURE

         다이내믹 아시아
         유혹하는 미술

074    ➊Pictorial 
         FAAM 컬렉션, 아시아의 힘과 정신    
         인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싱가포르, 스리랑카 
         태국,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부탄, 필리핀 
         브루나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미얀마, 타이완
         몽골, 라오스, 한국, 중국, 일본

130    ❷ Report 
         후쿠오카에서 아시아를 만나다 / 김재석

134    ❸ Interview 
         아시아 미술, ‘글로벌 스탠다드’는 없다 / 구로다 라이지(Kuroda Raiji)


FORUM

146    아시아 亞細亞 ASIA
         : 요코하마 아시아 회의 참관기 / 이용우


PRISM

056    돈만 나눠 주는 문화정책, 이제 그만! 
         : 예술인복지법과 <문화가 있는 수요일>의 시행에 대하여 / 정준모
057    동양화의 유연성, 식물처럼 증식하는…
         : 아트인컬처 4월호 특집 <컨템포러리 먹-회화>를 읽고 / 유근택


FOCUS

058    송동(Song Dong)展, 김성연展: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 이선영
         하늘의 상태展: ‘이미지 아틀라스’의 부활 / 정연심
         최동열展, 로라 랑케스터(Laura Lancaster)展: 보헤미안의 광시곡 / 박소영
         한경우展, 뮌展: 감각과 기억의 스크린 / 안소연


ARTIST

154    쉬린 네샤트(Shirin Neshat) 
         : ‘차도르’와 사라짐의 정치 / 양효실
162    다미안 오르테가(Damián Ortega) 
        : 미래를 예견하는 형상들(The Shape of Things to Come) / 후안 비요르(Juan Villoro)


ART ON PAGE

144    Flags by Herman / 홍은주&김형재


ETC.

055    EDITORIAL / 김복기
171    ART FIELD
184    P.S
185    SUBSCRIPTION
186    CREDIT

Articles

[ARTIST] 다미안 오르테가(Damián Ortega)

2000년 이후 아시아와 아랍, 아프리카 등 비서구권의 미술이 국제무대에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최근 라틴 지역의 미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 있지만 북미권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다. 포스트 식민주의의 담론을 위시한 남미의 열대주의는 오히려 우리의 미학적 컨텍스트와 꽤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국내 첫 개인전을 연 멕시코 출신의 작가 다미안 오르테가(4. 10~5. 11 국제갤러리 K1, K3)의 작품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동료 작가 가브리엘 오로스코, 아브라함 크루비예가스 등과 함께 주요 비엔날레에 참여하면서 대규모 장소특정적 작품으로 더욱 잘 알려진 그는 이번 전시 <Reading Landscape>에서 자연적 재료를 이용한 조각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지질학, 광물학, 고고학 등 시간성을 주축으로 한 오르테가의 예술적 사유는 ‘지층(地層)’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미래를 예견하는 형상들

/ 후안 비요르(Juan Villoro)


<지구 중심으로의 여행 - 관통할 수 있는> 가죽, 부석, 도금된 돌, 구운 세라믹, 유리, 화산석 300×300×400cm 2014_국제갤러리 전시 전경

멕시코시티 남부에 위치한 틀랄판 지역은 여전히 소도시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도시에 들어서면 수녀원, 기숙학교, 요양원, 병원 같은 건물이 가장 눈에 띈다. 다시 말해, 평화롭고 정적인 삶을 위해 갇혀 지내는 장소가 대부분인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요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란스럽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에 최적의 배경이기도 하다.

1980년대 틀랄판에서는 ‘금요 워크숍(Taller de los Viernes)’이라는 예술가 모임이 탄생했다. 가브리엘 오로스코, 가브리엘 쿠리,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 헤로니모 로페즈 라미레즈와 다미안 오르테가가 참여했던 이 금요 워크숍은 약 5년간 지속되며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비록 다른 작가보다 연배가 높고, 카리스마가 넘치며, 다방면에서 왕성히 활동해 온 오로스코가 모임의 주최자였지만, 그렇다고 그가 실제적인 그룹의 리더나 다른 이들의 정신적 스승은 아니었다. 워크숍은 지도자나 구성원간 서열 없이 자유롭게 진행됐다. 당시 멕시코에서는 대부분의 예술작품 생산이 스튜디오나 갤러리 혹은 미술관에 귀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금요 워크숍은 이 지배적 관습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스스로 각 장르별(드로잉, 프린트, 회화, 사진, 조각) 예술로 세분화하는 동시에 ‘멕시코 정체성’이란 하나의 주제를 탐구했다.


<모든 단층들> 목재에 채색, 린시드유 30×500×31cm 2014

하지만 1980년대 이들의 정체성 탐구는 어느덧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앞서 진행되었던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사케이로스의 민족주의 벽화운동, 멕시코의 특성에 대해 고찰했던 옥타비오 파스의 에세이 모음집 《고독의 미로(멕시코의 세 얼굴)》가 출간된 이래, 정체성 탐구는 정치적 프로파간다 형태로 변질됐다. 벽화가 호세 클레멘테의 아들 오로스코와 (1968년 알퐁소 아라우와 함께 멕시코의 유명 만화 《맨발의 독수리》를 만들기도 한) 좌경 배우 헥터 고메즈의 아들인 오르테가는 기존의 신조를 거부하고 예술계에서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고자 했다.

고요했던 혹은 불안했던 나날들


<자기장> 종이, 페인트, 풀 50×32cm 2014

오르테가는 16세에 이미 만화가로 성공했다. 좌파적 일간지 《라 호르나다》에 작품 연재를 하기도 했지만 거기서 머물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테크닉과 매체를 탐구해 나갔다. 평면작업은 너무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느껴졌고, 전통적 조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각에 있어서 그는 무엇인가를 쌓아올리기보다 해체하기를 원했다. 십자드라이버와 가위가 그의 연필과 지우개가 됐고, 토르티아, 못, 장난감과 기타 가정용 기기가 그의 재료가 됐다. 또한 그는 작품을 전시할 새로운 장소를 발굴해 냈는데, 이를테면 시장의 과일과 채소 더미 사이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식이었다. 틀랄판에서는 1980년대에 두 개의 상이한 예술세계가 공존했다. 종소리가 신자들을 교회로 인도할 때, 금요 워크숍의 시계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시간을 가리켰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멕시코는 돌발적인 설치예술의 나라다. 예술가가 미처 손을 대기 전에 풍경은 사회적 정황에 따라 인위적으로 바뀌곤 했다. 자본과 자원이 부족할 때, 사람들은 그 무엇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모든 쓰레기는 장식품으로 재사용된다. 이를테면, 음료수 캔은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수공 작업을 거쳐 판매 가능한 공예품으로 변신한다. 주민들은 온갖 이상한 기념품으로 거대한 미로 같은 멕시코시티를 인간미 풍기는 거리로 바꾼다. 전화선에는 신발 한 짝이 걸렸고, TV 안테나에는 빈 병 하나가 덜렁거리는데, 신호등 위에는 곰 인형이 자리 잡고 앉았으며, 대형 크리스탈 병 속에는 인형의 머리 한 다발이 들어있는 식이다. 이런 배경에서 금요 워크숍이 제안했던 ‘현실의 개조’는 처음에는 이미 혼잡한 도시의 풍경에 혼란을 가중하는 시도로 오해받기도 했다.

오르테가의 새로운 시도는 그가 살던 집에서 시작되었다. 〈자동건축. 다리와 댐(Auto-construction. Bridges and Dams)〉(1997)에서 그는 모든 의자와 가구를 지그재그로 엮어서 이상한 구조물을 만들어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해체해서 재조립하고 그 일부에 채소를 끼워 넣은 〈트랜스포머스(Transformers)〉(2001)를 제작했다. 그는 이렇게 장난스럽게 해체되고 재조립된 오브제를 통해 “질서는 부조리한 관습일 뿐”이란 도발적인 메세지를 전달한다. [이하 생략]

[ARTIST] 쉬린 네샤트(Shirin Neshat)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첫 번째 기획전(4월 1일~7월 13일)의 주인공은 이란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쉬린 네샤트다. 사진, 비디오, 영화를 두루 사용하는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모호성’이다. 명료함을 결핍한 부정적 모호성이 아닌, 명료함을 거부하는 적극적 모호성. 미국 유학 중에 터진 조국 이란 혁명 때문에 그는 한동안 이란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노마드로서 이슬람 문화권 안과 밖의 경계에 머물며 벼려낸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차도르의 모호성을 내세워 이슬람 여성에 대한 안팎의 상투적 이미지를 모두 해체시킨다. 네샤트는 이슬람 문화의 여성 억압을 가차 없이 비판하는 동시에, 차도르를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전유하는 서구의 상투적인 이해도 해체하며 차도르의 은폐성과 비가시성이 품고 있는 역설적인 해방의 정치를 피력한다.

‘차도르’와 사라짐의 정치

/ 양 효 실


〈알라의 여인들> 연작 중 <무언의 애도〉 흑백 RC 프린트에 잉크 116.84×83.82cm 1996_쉬린 네샤트 최초의 흑백 사진 연작. 이란의 율법 보수화로 변화된 여성의 지위를 얼굴에 그린 글자로 표현했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비디오 작품 〈격동〉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2009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장편영화 〈남자 없는 여자들〉로 감독상(은사자상)을 수상한 이란 작가 쉬린 네샤트(Shirin Neshat)의 전시가 한국에서 열렸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 2007년 인천국제여성비엔날레, 2010년 몽인아트센터의 개인전 등을 통해 한국에서도 비교적 많이 알려진 네샤트의 주요 작품 대부분을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에서 볼 수 있다. 회화를 전공한 네샤트는 캔버스를 포기한 시각예술가이다. 사진, 비디오, 영화와 같은 동시대 매체를 이용하는 네샤트는 주로 ‘이란 여성의 목소리, 복합적인 이슬람의 가치와 사상’을 재현하고 있다. 지역적인 문제에 헌신하는 정치적 행동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네샤트의 작업은 정치적 예술의 새로운 버전을 제시한다.

이란의 현대사 속 네샤트


〈왕서> 연작 중 〈악당> LE 실버 젤라틴프린트에 아크릴릭 159.48×124.46cm 2012

1996년 이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이란으로의 입국이 금지된 네샤트는 뉴욕에 거주하면서 이란과 가장 비슷한 모로코, 이스탄불, 멕시코 등에서 영상 작품을 제작해 왔다. 그는 스스로를 망명가나 추방당한 자보다는 ‘노마드(nomad)’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정치적 이념이나 물리적 생존 때문에 서구로 떠나온 사람들과 연대하면서도 거기와 여기(과거와 현재, 중동과 서구) 사이를 소속과 정착의 환상 없이 탈주하는 네샤트. 그는 ‘포스트 식민주의(post-colonial)’ 작가로 분류된다. 호미 바바(Homi K. Bhabha)는 포스트 식민주의 작가를 ‘비서구권에서 이주해온 후예들’, 혹은 ‘비백인 예술가’라고 정의하고 있다.

네샤트는 서구의 근대성과 페미니즘 이론, 이슬람 전제주의와 가부장제 모두를 경계하고, 이란의 호전적이고 급진적인 여성 문인들을 끊임없이 참조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모호성’ — 정치와 예술 사이, 현실과 가상 사이, 서구와 중동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 상투형과 그것의 해체 사이 — 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명료함을 결핍한 모호성이 아니라 명료함을 거부하는 모호성은 지성에 대한 상상력의, 상징에 대한 알레고리의, 현실에 대한 환상의 우위를 표명한다. 네샤트의 사진이나 영상은 낯설고 모호하고 매혹적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전유(appropriation)나 해석이 불가능한 이미지들 앞에서 눈/지성을 잃고는 쾌락(jouissance)에 빠진다. 예술이 매혹이라면, 예술이 자아의 일관성을 일시적으로 상실하는 사건이라면, 이슬람-타자성을 경유해 무시간적이고 초역사적인 예술의 ‘지위’를 재천명하는 네샤트에게서 우리는 ‘예술’이 어떤 대단한 가치를 갖는다고 고백할 기회를 얻는다.


〈자린〉 싱글채널 비디오 20분 2005

양가성이나 역설과 같은 그의 미적 전략은 흔히 파괴(destruction)로 오인되어 왔던 해체(deconstruction)의 전략이 그러하듯이, 결코 명료할 수도 결코 사라질 수도 없는 이 ‘한 줌의’ 삶을 끝내 살아 내려는 안간힘, 아니 끝까지 살아 있으라는 전언을 붙들려고 한다. 그것이 그의 유목이고 탈주이고 희망이다. 추방당한 자로서 모국의 늙은 어머니도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겠다는 염원이 담긴 〈남자 없는 여자들〉에서 볼 수 있듯, 디아스포라적 고통 —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에 지금도 극도의 고통을 느낀다” — 은 네샤트 작업의 에너지이다.

네샤트는 1957년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카즈빈에서 태어났고 의사였던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17살이 되던 해인 1975년 LA로 유학을 떠난다. 도미니카 칼리지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순수미술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한 네샤트는 1979년 이란에서 일어난 혁명 때문에 이란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1983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 그는 전남편인 박경과 10여 년 간 비영리 문화 예술 공간인 스토어프론트(The Storefront for Art and Architecture)를 운영한다.


〈마독트〉 3채널 비디오 13분 30초 2004

미국으로 오기 전 네샤트가 살았던 이란은 영국과 미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서구적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샤 왕조(1926~1979)의 마지막 왕 팔레비가 통치하고 있었다. 세계 2위 산유국인 이란의 정치적 문제에 개입한 영국과 미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던 팔레비 왕조의 부정부패와 외세의 석유채굴권 독점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1978년 말 3천 명의 ‘순교자’를 낳은 ‘검은 일요일의 학살’에서 폭발한다. 1979년 2월 아야톨라(시아파 최고 성직자를 뜻하는 말) 호메이니는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내고 프랑스에서 귀국, 이슬람 원리에 입각한 신정체제를 구축하며 외부 세력과의 관계를 끊는다. 이슬람 혁명을 통해 이란은 석유주권을 되찾고 소수의 특권층에 집중되었던 부는 전 국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었다.

네샤트는 이란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1990년에야 이란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리고 16년의 세월이 흐르고 찾은 이란의 변화를 직접 목격한 뒤 예술가로서 자신의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발견하게 된다. 네샤트는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그의 회고에 의하면 미대에서 받은 교육은 그에게 아무런 영감을 주지 못했다. 뉴욕으로 이주한 뒤 10년간 대안공간을 운영하면서 네샤트는 다른 작가들의 전시를 조직하고 문화비평가, 철학자, 과학자, 건축가 등을 경청하며 동시대 예술과 예술 담론을 습득했다. 말하자면 회화와 모국의 ‘바깥’에서 네샤트는 1980년대 대부분을 영어의 몸으로 살아낸 것이다. 그리고 동시대의 ‘개념’으로 무장한 그가 방문한 낯선 이란, 반미(反美)와 반-이스라엘의 구호로 무장한 이란에서 그는 자신을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작가로 만들어 줄 ‘차도르’를 만난다. [이하 생략]

[SPECIAL FEATURE] 다이내믹 아시아, 유혹하는 미술

Special Feature ❶Pictorial

인도네시아



Heri Dono <Badman> 혼합재료 58×64×8cm 1991_해리 도노는 족자카르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인도네시아의 전통 문화와 와양 쿨릿이라 불리는 전통 그림자 인형극을 공부했다. 이 작품은 전자 회로를 내장한 인형을 일렬로 천장에 매달았다. 고층 빌딩에서 떨어져도 절대 죽지 않는 만화나 컴퓨터 게임에 등장하는 영웅 캐릭터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인도네시아 미술은 근대도시와 고도(古都) 등 여러 ‘중심’에서 성장했다. 건국 이래 인도네시아는 ‘다양성 속의 통일’을 국시로 삼았다. 인도네시아 정치 경제의 중심 기능은 자바섬에 집중돼 있고, 미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술학교 반둥 공과대학 ITB가 있는 고원도시 반둥, 자바 전통 문화의 중심 족자카르타, 자바 동쪽에 인접해 특이한 문화를 자랑하는 발리섬 등 여러 ‘중심’을 지닌 것이 아트씬의 특징이다. 현대도시 반둥은 예전부터 서양 문화를 수용하는 창구 역할을 맡았으며, 족자카르타는 자바 마지막 왕조가 궁정문화의 꽃을 피운 곳이다. 이 두 지역은 모더니즘과 전통을 둘러싸고 일종의 라이벌 관계에 놓여 있다.


Dadang Christanto <Golf Ball> 캔버스와 합판에 유채 300×1250cm 1991_다당 크리스탄토는 인도네시아의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그는 와양 쿨릿의 단조로운 이미지를 입체 작품으로 전환시켰다. 거대 자본으로 건설된 골프장을 소재로 유머와 풍자가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는 골프를 특권 계급의 단순한 오락으로 농민 생활을 위협하는 하나의 폭력으로 간주한다.

독립 후  근대미술을 견인하는 모더니스트를 배출해 온 반둥은 1990년대 들어 점차 정체 상태에 빠져 있다. 반면 족자카르타는 작가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1990년대에 국제적으로 부상한 작가는 해리 도노(Heri Dono)와 다당 크리스탄토(Dadang Christanto). 인간의 어리석음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해리 도노는 즉흥적인 퍼포먼스의 천재다. 그 바탕에는 가믈란(Gamelan) 음악이나 와양 쿨릿(Wayang Kulit) 등 자바의 전통 문화가 깔려 있다. 직접적으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던지는 다당 크리스탄토도 마찬가지다. 족자카르타 아트씬의 거점은 세메티(Cemeti)갤러리였다. 젊은 작가의 작품 발표 장소 역할을 해 왔다. 이와 달리 자바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은 환상적인 구상 회화는 인도네시아 예술대학 출신의 전통이다. 이반 사지타(Ivan Sagito), 루시아 하르티니(Lucia Hartini) 등이 있다.


Dewa Putu Mokoh <Ritual for a Three-Month-Old> 캔버스에 아크릴릭 65.5×93.9cm 1992_이 데와 푸투 모코는 발리 회화의 일반적인 소재인 신화나 제의보다 성이나 출산 등 일상생활을 어린아이 같은 신선한 눈길로 포착한다. 이 작품은 사진 프레임을 연상시키는 구도 안에 수유하는 모습을 담았다. 발리인의 삶 속에서 ‘3개월 의식’은 조상의 혼이 아이에게 완전히 정착하고, 아이가 한 개인으로 인지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반둥의 ITB 출신 중에도 재능이 돋보이는 작가들이 있다. 사회적  테마를 회화나 인스톨레이션으로 표현하는 아구스 스와게(Agus Suwage), 이슬람 사회의 여성 문제를 표현하는 아라 마이아니(Arah Maiani), 명상적인 퍼포먼스의 마리탄 시르헤르(Marintan Sirait),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크리스나 무르티(Krishna Murti) 등이다. 기타 지역에서는 개념미술로 정치 사회비판적인 주제를 담는 자카르타 F. X. 하르소노(Harsono), 파리 회화의 새 가능성을 연 이 대와 푸투 모코(I Dewa Putu Mokoh) 등이 눈에 띄는 존재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순수미술의 영역 외에 ‘오랑 아슬리(Orang Asli)’라 불리는 원주민의 ‘부족예술’부터 텍스타일 등 공예, 가믈란 음악이나 무용, 그림자 인형극 등까지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지니고 있다.


몽골


Shagdarjavin Chimeddorj <The Woman of Khuree> 캔버스에 유채 80×110cm 1999_샤그달자빈 치메도르츠의 이 작품은 후레 (Khuree)의 풍경을 담고 있다. 후레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옛 명칭. 20세기 초까지 쓰인 이 단어는 ‘담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아이를 거느린 여성을 중심으로 당시의 거리 풍속을 낡은 그림 지도처럼 다양한 시점에서 담아냈다.

고원과 사막의 웅대한 자연에 에워싸인 몽골. ‘미술의 초원’은 어디에? 수도 울란바토르 중심부의 수흐바타라 광장 주위에는 국립근대미술관이나 국립미술학교, 박물관, 예술가조합 집합 스튜디오 등 미술 관련 시설이 밀집되어 있다. 국립근대미술관에서는 몽골 근대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대부분 1950년 이후에 제작된 유화 작품이다. 그 외에 몽골예술가조합의 스튜디오나 미술학교의 작품, 공공시설에 걸린 회화, 거리 곳곳의 아트숍에서 팔리는 그림까지 대부분 풍경화이며 몽골의 초원이나 사막의 광대한 아름다움을 찬미한 작품이 많다. 그 작품은 체그미드(Tsegmed)의 작업에서 보이듯이, 몽골인의 범신론적인 매력을 품고 있다. 1989년 소련연방 붕괴로 몽골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경제가 혼란스러워졌고 많은 거리를 헤매는 ‘떠돌이 아이들’이 생겼다. 이와 같은 현실을 그림으로 담은 화가로 차가인다린 바르샤르한(Tsagaandariin Enkhjargal), 또한 오랫동안 터부였던 징키스칸이나 공산혁명 당시 불교도 숙청을 그린 초이동긴 후렐바타르(Choidongiyn Hurelbaatar)도 있다.  ‘녹색 말(馬)협회’라는 그룹은 미술학교, 갤러리, 카페 등이 딸린 예술센터를 만들어 인스톨레이션이나 대지미술 등에 도전하는 새로운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Tsagaandariin Enkhjargal <Red Table or Mirage> 캔버스에 유채 120.2×120.5cm 1992_차가안다린 바르샤르한은 몽골 현대사회의 모순과 역사 성찰을 작품으로 표현해 왔다. 그는 빈곤 문제를 비판하는 동시에 빈자의 존재가 지닌 힘을 환상적으로 표현한다. 작품 속에서 멀리 신기루처럼 보이는 장려한 건축은 1930년대 공산주의 혁명에 의해 종교가 금지되며 몽골의 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된 역사적 사실을 상징한다.


Tserendashin Davaakhuu <The New City> 직물에 수채 85.2×44.3cm 1988_츠에렌다신 다와후는 몽골 초원의 유목 생활을 소재로 작업하다 1980년대부터 근대 도시로 변모한  울란바토르의 거리 풍경을 담아냈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거리를 배경으로 건설 중인 건물과 몽골인 노동자, 옛 소련인 기술자, 제복을 입은 아이 등이 등장한다. 작품 속의 구름은 전통 불교 회화에 나타나는 수법이다.



Special Feature ❸Interview

아시아 미술, ‘글로벌 스탠다드’는 없다


/ 김재석 수석기자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이하 FAAM)의 학예과장 구로다 라이지는 미술관 개관부터 지금까지 큐레이터로 활약해 왔다. 또한 후쿠오카아시아트리엔날레(이하 FT)의 역대 전시를 이끌었다. 그는 ‘한국통’으로 잘 알려졌다. 2013년 김복진상의 첫 해외 수상자이기도 하다. ‘왜 아시아인가?’ Art가 연초에 화두로 삼은 질문은 서울과 후쿠오카에서 그를 만나 ‘어떤 아시아인가?’라는 물음으로 방향을 바꿨다. 아시아 각국을 직접 발로 누빈 그는 급속도로 변화한 아시아 미술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목격한 증인이다. 구로다를 만나 미술관의 역사와 운영 방침, 미술관과 트리엔날레의 관계, 그리고 아시아 미술을 연구하면서 피할 수 없는 ‘아시아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구로다 라이지 / 큐레이터이자 미술사학자. 필명은 KuroDalaiJee. 후쿠오카시미술관(1985~1999),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1999~)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현재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의 학예과장과 사업관리부장을 역임 중이다. 규슈파(1988), 네오다다(1993), 라시드 아라인(1993), 이불(2001), 리오넬 웬트(2003) 등의 그룹전과 개인전, 후쿠오카아시아트리엔날레를 1회부터 기획했다. 저서로 1960년대 일본 아방가르드 그룹의 활동을 분석한 《몸의 아나키》가 있다. 일본문화청 미술장려상(2011), 김복진상(2013) 등을 수상했다. 

Art 1999년 설립한 FAAM은 후쿠오카시미술관과 그곳에서 열렸던 <아시아 미술전>에서 출발했다. 그 배경에 관한 설명을 부탁한다.
— FAAM의 첫 번째 설립 목적은 과거 후쿠오카시미술관에서 수집한 아시아 현대미술 작품을 상설 공개하는 데 있었다. 사실 후쿠오카시미술관의 아시아 근현대미술 관련 전시는 정치적인 이유로 결정됐다. 1979년 최초의 지방자치 미술관으로 문을 연 이 미술관의 개관전은 애초에 <미국현대미술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근대 아시아 미술–인도 중국 일본>전으로 변경됐다. 그 과정은 설명하기 복잡하고 당사자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상황이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다. 이후 후쿠오카시미술관에서 1980, 1984, 1989, 1994년까지 4차례 열린 <아시아 미술전>을 더 발전시키자는 의견이 있었다. 즉 아시아 미술을 선보이는 새로운 미술관을 만들고, 시설, 예산, 인원을 확대함으로써 5년 주기를 3년으로 단축해 트리엔날레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FT를 포함한 FAAM의 운영 방침은 야스나가 코오이치(FAAM 초대 관장, 현 고문), 우시로쇼지 마사히로(FAAM의 초대 학예과장, 현 규슈대 교수)가 결정했다. <아시아 미술전>은 처음엔 전국적으로 전혀 주목 받지 못하다가, 1994년 ‘시대를 바라보는 눈’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4회부터 널리 알려지게 됐다. 

Art 화제를 모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 몇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첫째, 1980년대 후반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아트씬이 크게 변화하면서 새로운 미술이 등장했다. 정치성이 강한 작품, 거친 소재감을 살린 회화나 설치, 퍼포먼스 등이 두드러졌다. 둘째, 일본국제교류기금 문화센터나 당시 일본에 있던 차이궈창과 같은 중국 작가의 활동으로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작가가 일본에 자주 소개됐다. 일본 평론가와 큐레이터, 언론인이 아시아 미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셋째, 후쿠오카에서 개혁적으로 추진한 미술 관련 기획이 결실을 맺었다. 제4회 <아시아 미술전>이 그렇다. 당시 아시아 작가를 초청해 설치와 퍼포먼스를 포함한 새로운 미술 경향을 처음 소개했다. 그 전시가 도쿄(세타가야미술관)로 순회한 일도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런 배경 덕분에 후쿠오카가 앞장서 일본 전역에, 아니 세계에 아시아 미술을 소개해 왔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그런 평가가 아시아 미술로 특화된 미술관을 만드는 계획에 큰 힘을 보탰다. 

Art FAAM은 후쿠오카시에서 운영하는 시 정부 산하 미술관이다.
— 맞다. 미술관 설립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후쿠오카시가 펼친 아시아 정책을 꼽을 수 있다. 후쿠오카시는 아시아의 교류 거점 도시라는 정체성을 세계에 부각하기 위해 1989년 <아시아-태평양 박람회>를 열고 이듬해부터 아시아문화상, 아시아태평양페스티벌, 후쿠오카국제영화제(아시아 포커스) 등의 사업을 통합 정리해 <후쿠오카 아시아 먼스(Fukuoka Asia Month)>라는 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시 당국은 이러한 정책의 틀 안에서 FAAM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다. [이하 생략]

[FOCUS] 송동展, 김성연展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 이 선 영

송동展 3. 22~4. 18 송원아트센터
김성연展 2. 28~4. 20 성곡미술관


송동 〈최후의 수장고 (Doomsday Vault)〉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3~2014_송원아트센터에서 열린 〈Doomsday Vault〉전은 1부 송동과 2부 김길후(4. 24~ 5. 21)로 구성된 릴레이식 2인전이다. 최후의 순간을 가정하고, 미래의 생존자에게 현재의 세계를 보여 주기 위해 오늘날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작가의 시선에서 살펴본다. 송동은 육십갑자를 상징하는 60개의 침대, 죽은 사람의 초상, 공간을 배회하는 관객, 삶과 죽음을 매개하는 새 등을 설치해 우리가 보존 혹은 반성해야 할 가치를 되새긴다. 

중국작가 송동의 개인전 <Doomsday Vault>와 한국작가 김성연의 개인전 <섬 Painted World>에는 우연하게도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물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그리고 물에서 파생될 수 있는 자기 반영이 있다. 두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물과 미디어는 거울처럼 무엇인가를 비추긴 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그것은 흐려진 거울이다. 모든 것이 물이 되는 송동의 이미지, 아웃포커싱된 김성연의 이미지에는 제멋대로의 상상으로 조각난 현실을 끼워 맞추거나 지배적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실재계의 침범이 있다. 이러한 범람으로 현실과 상상, 상징의 경계는 와해된다.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이 실재계는 송동에게 죽음으로, 김성연에게 대양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무한으로 현시되는 실재계는 삶을 끝없이 위협하면서도, 한계지어진 삶을 더 강렬하게 살아가도록 자극한다.

송동의 개인전에서 물은 재난의 이미지와 관련 있다. 테러나 쓰나미 같은 거대한 재난과 죽은 영웅들의 이미지가 물결처럼 일렁인다. 전시장 두 층을 연결하는 침대들의 탑은 생(生)과 사(死)가 압축된 무대다. 한 층 전체를 에워싸며 울렁거리는 플라스틱 거울은 재난과 죽음의 이미지와 관객을 연결한다. 죽음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김성연의 전시에는 파도치는 바다와 그 한가운데 섬이 편재한다. 부산을 기반으로 꾸준히 활동해 온 작가의 이력을 반영하는 섬 이미지는 송동 전시의 죽음이나 재난,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허무감보다는, 그것을 이겨 내려는 강고한 의지가 느껴진다. 눈비 내리고 파도치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우뚝 솟은 섬은 결코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자신을 스쳐 간 안팎의 사건을 나이테처럼 묵묵히 기록한다. 송동과 김성연의 작품에서 물은 더욱 변화무쌍한 현실이며, 그 위에 인간과 흔적들이 떠 있다. 실재계 위에 떠 있는 시스템이라 할 만하다.

생과 사가 압축된 무대

송동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이미 알려진 것으로서 세계인이 공유하는 정보다. 인재(人災)는 물론 천재(天災) 역시 그 자체의 진실보다는 사회적 의미가 중요하다. 재난이란 인간이 만든 시스템의 붕괴를 말하며, 영웅을 영웅이게 하는 것 역시 시스템의 결과다. 김성연의 작품에서 섬은 세계에 맞서는, 또는 상호작용하는 주체의 상징이다. 주체는 현대의 언어학이나 정신분석학이 주장하듯이 체계, 즉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의 산물이다. 이 두 작가에게 거대한 실재계 위에 떠 있는 시스템(사회, 주체)은 끝없는 위기와 도전을 일깨운다.

송동의 전시에서 나무 침대를 가득 쌓아서 만든 미로를 헤쳐나가면 보이는 벽면의 모든 모니터에는 물결치며 사라져 가는 이미지들이 현전한다. 바닷물이 기화하여 만들어진 거대한 순환계 속의 물은 생명의 기원이기도 하지만 소멸의 상징이기도 하다. 동서고금의 신화와 종교 속에는 물과 관련된 생멸의 서사가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송동의 작품 속 물의 이미지를 주도하는 것은 죽음과 해체, 공포와 허무이다. 얼마 전 우리에게도 일어났던 해상 사고는 모든 것을 다시금 그 원초의 혼돈과 무질서의 상태로 되돌리는 파괴적 흐름을 일깨워 준다. 생명을 주는 것도 물이지만 갑작스럽게 그것을 거두는 것도 물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물질에 대한 철학적 상상력을 펼친 저서 《물과 꿈》에서, “물은 항상 흐르며 떨어지며 그리고 수평적인 죽음으로 끝난다”고 본다. 모든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물의 한쪽 끝에는 죽음이 있다. 송동은 전시장 벽면에 써 있는 ‘예술가의 자술’에서, 인간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말한다.

전시된 작품은 ‘최후의 수장고’를 표현한다. 부재를 환기하는 빈 나무 침대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압축한다. 송동은 인간에게 닥칠 여러 죽음 중 준비되지 못한 채 맞는 갑작스런 죽음에 주목한다. 지하 전시장 벽에 일렬로 설치된 무성 단채널 영상 <비정상적인 죽음> 연작에서 물결과 함께 사라지는 초상들이 그런 죽음을 맞았다. 체 게바라나 마릴린 먼로같은 스타들은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전설이 됐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죽음은 그들의 단편적인 초상 사진을 더욱 깊이 각인시킨다. 그 초상이 작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영웅이라면, 작품 <재난과 공생하다>에 등장하는 사진은 말 그대로 각종 재난의 현장, 문화대혁명, 탕산 대지진, 테네리페 참사, 9.11 테러, 이라크전쟁, 일본 쓰나미 등이다. 그 가운데 설치된 수많은 침상은 시간적으로 쌓였지만, 재난의 참상을 알려 주는 동시적 죽음을 가리킨다. 푹신한 침구가 없는 딱딱한 나무 골격은 피와 살이 이미 해체된 해골을 떠올린다. 작가가 수집한 1960, 70년대의 나무 침대 60개는 ‘육십갑자’, 즉 끝없이 되돌아오는 주기를 상징하며, 현대사회에서 재난의 편재성과 불가피함을 말한다. 침대가 “생과 사가 교차하는 환승역”(송동)이라면, 물에 잠긴 재난의 이미지 또한 그렇다. 1층에 조성된 거울의 방은 관객을 죽음의 연속선에 놓는다. 노란 네온의 한자어 ‘비흔교집(悲欣交集)’은 ‘슬픔과 기쁨의 교집’을 의미한다. 삶과 죽음처럼 기쁨과 슬픔도 한 몸의 두 면이다. 침대 탑 위의 박제된 한 쌍의 두루미는 이승을 떠난 사람이 타고 간다는 새다. 원본과 복제의 구별을 무화하는 무한 반사의 공간에서 두루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미디어, 제2의 자연


〈김성연: 섬 Painted World〉전 성곡미술관 2층 전경 2014_성곡미술관에서 열린 〈김성연: 섬 Painted World〉전은 한국 미술계의 ‘허리 세대’를 지원하는 ‘2014중견중진작가 집중조명전’으로 마련됐다. 김성연은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등을 교차하며 한 매체에서 다른 매체의 방법론을 실험한다. 캔버스나 박스에 가로세로 선을 중첩해 패턴화하거나 이를 촬영해 흐릿한 장면을 제시하고, ‘섬’을 소재로 한 영상과 사진 작업에서 회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성연의 전시를 보기 위해 성곡미술관 제1전시실에 들어간 관객은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당황한다. 그곳은 어두워야 더욱 명료해지는 미디어의 우주다. 단채널 영상 작품 <야간비행>에는 어둠과 악천후 속에서 바닷새들이 날아다닌다. 맹렬한 속도감은 이 비행체가 생물인지 아닌지도 헷갈리게 한다. 그것들은 어디에서 어디로 왜 날아가는지 알 수 없다. 자연이 그들의 몸에 입력해 놓은 어떤 방식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본능에 따른 움직임은 맹목적인 듯하지만, 자연법칙에는 필연성이 있다. 우리 인생은 이성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자율성을 간취하고 주체의 의지와 의도로 나아가는 듯하지만, 기왕에 태어났으니 잘 살아야 할 뿐, 삶의 의미란 생각만큼 명료하지 않다. 예술의 의미는 더하다. 예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자체가 신기할 때가 있다. 예술계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작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 맞서면서, 그러나 더 크게는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서 존재하는 섬이나 새가 있는 작품들에는 작업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냉정한 직시가 있다. 거기에는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모험에 찬 도정, 즉 야간비행같은 삶과 예술이 있다.

김성연은 개인 작업뿐 아니라 부산에서 오랫동안 대안적 미술 활동에 헌신하며 삶 자체를 예술과 최대한 중첩하기 위해 노력했다. <섬 Painted World>라는 전시 제목은 섬처럼 존재하는 예술, 또는 예술가에 대한 비유를 담고 있다. 제2전시실에는 단채널 영상부터 디지털프린트까지 섬의 다양한 변주가 자못 화려하다. 섬이라는 명백한 참조 대상에서 출발했을 색색의 변주는 그 실존적 무거움을 걷어 내고 뭉게구름처럼 띄워 놓는다.


〈김성연: 섬 Painted World〉전 성곡미술관 3층 전경 2014

바다라는 무한한 실재계에 떠 있는 섬은 명백히 주체의 상징이다. 개인 또는 인간의 역사는 거대한 자연의 좌표계에서 극도로 상대화된다. 그의 작업이 무한한 실재의 몫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우주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라는 허무주의에 머무르지 않는다. 김성연이라는 작은 섬에서는 다양한 사건이 벌어진다. 섬은 또한 인간 사회를 압축한다. 시스템으로서의 주체와 사회에도 실재의 몫은 있다. 예술은 자연 그 자체보다는 주체와 사회에 내재한 실재에 주목한다. 실재는 시스템과 상호작용한다. 실재계는 우리의 무의식과 몸에도 있으며, 예술은 이 실재와 연동된다. 폭죽 터지는 거대 도시의 배경음을 대신하는 폭격 소리는 성장 지상주의 사회에 내재한 공격과 파괴 본능을 들춰 낸다. 부산의 산복도로 풍경을 스펙터클하게 잡아내 몇몇 지점을 손본 디지털프린트 작품은 인간계를 새의 시점으로 바라본다. 대도시의 빽빽한 삶 또한 갈매기와 노니는 한적한 섬과 그 생태가 다르지 않다. 포장지를 활용한 평면과 오브제에는 아웃포커싱된 수직수평의 선들이 발견된다. 평면이라는 회화적 조건을 변주한 이 작업들은 그리기에 대한 메타적 언급이다. 회화와 미디어를 전공한 작가는 한 작품에 두 가지를 공존시킨다. 실재는 그 자체로 드러나지 않고 포장된 채 코드화된다. 인간 또한 그 거대한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중 삼중으로 덧씌워진 채 흐릿해진 실재는 평면도처럼 다 까발린 상태라도 모호하다. 제2의 자연이 된 미디어의 운무가 가득하다. 김성연의 작품에서 명백해질수록 모호해지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예술도 사회도 그러하다. 그러나 파도치는 대자연은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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