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아시아와 아랍, 아프리카 등 비서구권의 미술이 국제무대에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최근 라틴 지역의 미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 있지만 북미권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다. 포스트 식민주의의 담론을 위시한 남미의 열대주의는 오히려 우리의 미학적 컨텍스트와 꽤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국내 첫 개인전을 연 멕시코 출신의 작가 다미안 오르테가(4. 10~5. 11 국제갤러리 K1, K3)의 작품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동료 작가 가브리엘 오로스코, 아브라함 크루비예가스 등과 함께 주요 비엔날레에 참여하면서 대규모 장소특정적 작품으로 더욱 잘 알려진 그는 이번 전시 <Reading Landscape>에서 자연적 재료를 이용한 조각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지질학, 광물학, 고고학 등 시간성을 주축으로 한 오르테가의 예술적 사유는 ‘지층(地層)’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미래를 예견하는 형상들
/ 후안 비요르(Juan Villoro)
<지구 중심으로의 여행 - 관통할 수 있는> 가죽, 부석, 도금된 돌, 구운 세라믹, 유리, 화산석 300×300×400cm 2014_국제갤러리 전시 전경
멕시코시티 남부에 위치한 틀랄판 지역은 여전히 소도시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도시에 들어서면 수녀원, 기숙학교, 요양원, 병원 같은 건물이 가장 눈에 띈다. 다시 말해, 평화롭고 정적인 삶을 위해 갇혀 지내는 장소가 대부분인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요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란스럽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에 최적의 배경이기도 하다.
1980년대 틀랄판에서는 ‘금요 워크숍(Taller de los Viernes)’이라는 예술가 모임이 탄생했다. 가브리엘 오로스코, 가브리엘 쿠리,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 헤로니모 로페즈 라미레즈와 다미안 오르테가가 참여했던 이 금요 워크숍은 약 5년간 지속되며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비록 다른 작가보다 연배가 높고, 카리스마가 넘치며, 다방면에서 왕성히 활동해 온 오로스코가 모임의 주최자였지만, 그렇다고 그가 실제적인 그룹의 리더나 다른 이들의 정신적 스승은 아니었다. 워크숍은 지도자나 구성원간 서열 없이 자유롭게 진행됐다. 당시 멕시코에서는 대부분의 예술작품 생산이 스튜디오나 갤러리 혹은 미술관에 귀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금요 워크숍은 이 지배적 관습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스스로 각 장르별(드로잉, 프린트, 회화, 사진, 조각) 예술로 세분화하는 동시에 ‘멕시코 정체성’이란 하나의 주제를 탐구했다.
<모든 단층들> 목재에 채색, 린시드유 30×500×31cm 2014
하지만 1980년대 이들의 정체성 탐구는 어느덧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앞서 진행되었던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사케이로스의 민족주의 벽화운동, 멕시코의 특성에 대해 고찰했던 옥타비오 파스의 에세이 모음집 《고독의 미로(멕시코의 세 얼굴)》가 출간된 이래, 정체성 탐구는 정치적 프로파간다 형태로 변질됐다. 벽화가 호세 클레멘테의 아들 오로스코와 (1968년 알퐁소 아라우와 함께 멕시코의 유명 만화 《맨발의 독수리》를 만들기도 한) 좌경 배우 헥터 고메즈의 아들인 오르테가는 기존의 신조를 거부하고 예술계에서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고자 했다.
고요했던 혹은 불안했던 나날들
<자기장> 종이, 페인트, 풀 50×32cm 2014
오르테가는 16세에 이미 만화가로 성공했다. 좌파적 일간지 《라 호르나다》에 작품 연재를 하기도 했지만 거기서 머물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테크닉과 매체를 탐구해 나갔다. 평면작업은 너무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느껴졌고, 전통적 조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각에 있어서 그는 무엇인가를 쌓아올리기보다 해체하기를 원했다. 십자드라이버와 가위가 그의 연필과 지우개가 됐고, 토르티아, 못, 장난감과 기타 가정용 기기가 그의 재료가 됐다. 또한 그는 작품을 전시할 새로운 장소를 발굴해 냈는데, 이를테면 시장의 과일과 채소 더미 사이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식이었다. 틀랄판에서는 1980년대에 두 개의 상이한 예술세계가 공존했다. 종소리가 신자들을 교회로 인도할 때, 금요 워크숍의 시계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시간을 가리켰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멕시코는 돌발적인 설치예술의 나라다. 예술가가 미처 손을 대기 전에 풍경은 사회적 정황에 따라 인위적으로 바뀌곤 했다. 자본과 자원이 부족할 때, 사람들은 그 무엇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모든 쓰레기는 장식품으로 재사용된다. 이를테면, 음료수 캔은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수공 작업을 거쳐 판매 가능한 공예품으로 변신한다. 주민들은 온갖 이상한 기념품으로 거대한 미로 같은 멕시코시티를 인간미 풍기는 거리로 바꾼다. 전화선에는 신발 한 짝이 걸렸고, TV 안테나에는 빈 병 하나가 덜렁거리는데, 신호등 위에는 곰 인형이 자리 잡고 앉았으며, 대형 크리스탈 병 속에는 인형의 머리 한 다발이 들어있는 식이다. 이런 배경에서 금요 워크숍이 제안했던 ‘현실의 개조’는 처음에는 이미 혼잡한 도시의 풍경에 혼란을 가중하는 시도로 오해받기도 했다.
오르테가의 새로운 시도는 그가 살던 집에서 시작되었다. 〈자동건축. 다리와 댐(Auto-construction. Bridges and Dams)〉(1997)에서 그는 모든 의자와 가구를 지그재그로 엮어서 이상한 구조물을 만들어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해체해서 재조립하고 그 일부에 채소를 끼워 넣은 〈트랜스포머스(Transformers)〉(2001)를 제작했다. 그는 이렇게 장난스럽게 해체되고 재조립된 오브제를 통해 “질서는 부조리한 관습일 뿐”이란 도발적인 메세지를 전달한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