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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Culture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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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한국화 혹은 동양화로 혼용해 부르는 미술 현상을 컨템포러리 아트의 문맥에서 재조명하는 대형 특집을 꾸몄다. 이 장르에 대한 비평 작업에는 용어의 혼란에서부터 시작해 전통의 현대적 계승, 나아가 한국적 정체성 담론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논쟁지대가 가로놓여 있다. 특히 정체성 논의는 오랫동안 관념적으로 공회전해 오다가, 결국 스스로 이 장르의 '위기'와 '죽음'을 자초한 것도 사실이다. Art는 동시대미술 작품을 구체적인 단서로 21세기 한국화의 지형을 다시 그린다. 우리는 그것을 '먹-회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부른다. 지필묵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새로운 산수나 화조에서부터 먹의 정신을 사진, 입체, 영상, 설치 등 컨템포러리 아트의 다양한 조형 방법론으로 혼성(hybrid)한 작품까지를 총망라했다. 시공간의 층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감각과 인식의 지평을 활짝 넓혀 한국미술의 동시대성을 확보하려는 작가와 작품에 주목했다. 또한 중국 컨템포러리 잉크 아트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는 심도 있는 논고를 게재해, 그 동시대적 고민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고자 했다.

Contents

COVER

         조환 〈무제〉 철, 폴리우레탄 117×71×7cm 2013 ⓒ학고재갤러리

 

SPECIAL FEATURE
         컨템포러리 ‘먹-회화’

         SPECIAL ❶
084    ‘한국화’는 없다 / 김백균
088    Pictorial 먹, ‘지금 여기’의 미학
098    전통을 뛰어넘는 길 / 박영택
102    Pictorial 먹, 해체와 하이브리드
112    현대판 비주얼 스캔들 / 류병학

         SPECIAL ❷
116    중국 컨템포러리 잉크 아트 / 우 훙(Wu Hung)

 

PRISM

056    국보급 고미술품이 대중과 만났을 때 / 이광표
057    영상과 영화,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 김재석

 

FOCUS

058    Dynamic Structure & Fluid展, 건축적인 조각展:
         ‘과학-철학-예술’의 3중주 / 홍지석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展: 
         사유하는 사진 / 이영준
         검열-제7회 무브온아시아展, 노바디展: 
         디아스포라에서 검열까지 / 양효실
         이자 겐즈켄展(Isa Genzken), 파웰 알타머(Pawel Althamer)展: 
         ‘오스탤지어’의 징후들 / 고동연
         김웅용展, 6-8展: 그림자, 어둠의 연금술 / 방혜진
         한큐展: ‘지랄발광’의 미학 / 류철하
         정은영展: ‘페미니즘 SF’를 부르다 / 김남수

 

ARTIST

130    SAY ARITST 
         곽남신: 세상을 향해 날리는 유쾌한 펀치! / 호경윤
150    ART LAB
         정연두: 천국과 지옥 사이 / 채연

 

ART ON PAGE

154    창백한 세계인권선언 제8조 / 이부록

 

ART MARKET

136    아트페어도쿄(Art Fair Tokyo)
         일본미술의 명암 / 김복기
142    아트두바이(Art Dubai)
         아랍 미술시장의 꽃 / 구정원

 

ABROAD REPORT

156    Sharjah Art Foundation
         문화의 오아시스, 샤르자를 가다 / 김재석

 

ETC.

055    EDITORIAL / 호경윤
167    ART FIELD 
184    P.S 
185    SUBSCRIPTION
186    CREDIT

Articles

[ART FIELD] 제2회 CAFAM비엔날레

제2회 CAFAM비엔날레
2014. 2. 28~4. 20 베이징 중앙미술학원미술관

/ 주미정 베이징 특파원 


제2회 CAFAM비엔날레 중 안젤라 제랄디가 기획한 〈게임 이론〉전 전경

비엔날레가 전 세계를 휩쓴 지도 오래다. 각 나라마다 여러 도시를 앞세워 비엔날레 추진에 열을 올렸을 때, 2011년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는 미술대학이 이끄는 이른바 중앙미술학원미술관(CAFAM)비엔날레를 시작했다. 올해는 중국의 다른 미술대학 외에도 영국 왕립예술학교, 프랑스 에꼴드마가장(Ecole du Magasin), 네덜란드 드아펠아트센터(de Appel Arts Centre), 미국 CCA(California College of the Arts) 등과 함께했다. 학교가 주축이 되는 비엔날레라니, 과연 어떤 모습일까? 1759년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을 주장했다. 그로부터 250여 년이 흐른 뒤, 지구 반대편의 중국 미술계에서 전시 주제로 ‘그 손’을 꺼내 들었다. 그동안 비엔날레가 작가들의 놀이터였다면, 이번 CAFAM비엔날레는 각 대학이 내세우는 대표 큐레이터가 각각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 나가며 아카데미즘 속 시장의 향방을 논했다.

드아펠아트센터의 큐레이터 안젤라 제랄디가 기획한 관객 참여형 전시인 <게임 이론>은 이름 그대로 여러 갈래의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선뜻 나서서 참여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어떻게 보면 관망하는 사람 또한 이미 게임의 영역 속에 포함된 것이었다. 전시를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비단 경제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의 원시적인 종교와 신화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중앙미술학원의 후단지에가 기획한 <‘황금가지’의 비밀- 주술, 영혼, 가면의 경제학>은 고대부터 인류를 에워싸고 발전해 온 신비한 힘에서 예술경제의 근원을 찾는다. 전시 오프닝에는 민속 사자춤을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자오야오의 퍼포머들은 재난 현장을 담은 사진으로 만들어진 거죽을 덮은 채, 곳곳을 기어 돌아다니거나 서로를 탐하듯 부둥켜 울부짖었고, 그도 아니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쉬전은 머리 없는 중국 고대 불상 위에 그리스 조각을 거꾸로 얹어 장엄하고도 기괴한 아우라를 더했다. 전시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미술관의 입구에는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져 내릴 듯한 하얀 벽의 형상이 우리를 압도한다. 그 뒤에는 노란 전시 포스터에 새겨진 검은 손이 흐릿하지만 분명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아카데미즘과 시장이 결합한 동시대 미술의 현주소를 의미한다.

[ABROAD REPORT] 샤르자아트파운데이션

샤르자아트파운데이션


매년 3월이 되면 국제 미술계의 시선이 샤르자로 모인다. 샤르자비엔날레와 ‘마치 미팅(March Meeting, 이하 MM)’ 때문이다. MM은 2008년부터 매년 작가, 큐레이터, 역사학자, 저널리스트 등 100여 명이 넘는 미술계 인사가 한 자리에 모이는 국제 심포지엄이다. 동시대 미술의 문제적 지점을 논의하는 담론의 플랫폼이자, 글로벌 아트씬의 네트워트를 확장하는 ‘만남’의 장소다. Art는 3월 13일부터 16일까지 열린 MM의 공식 초청을 받아 현지를 방문했다. 샤르자가 어떻게 동시대 미술의 또 다른 오아시스로 떠올랐는지, 그 이유를 확인한 현장을 소개한다. 



문화의 오아시스, 샤르자를 가다

/ 김재석 수석기자


샤르자아트 파운데이션에서 운영하는 SAF 아트스페이스 전경

샤르자(Sharjah).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떠올리는 이름 아닌가? 아랍에미리트(이하 UAE)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샤르자는 두바이와 아부다비가 최근 경제 성장을 이룩하기 오래 전부터 중요한 도시였다. 아랍 전통어인 알 샤르카(Al Sharqa)에서 따온 이름처럼 걸프 지역의 동쪽 구석 페르시아 만에 있는 샤르자는 아랍 지역의 전통적인 범선인 다우(Dhow)가 인도와 동아프리카 사이를 바삐 오가는 항구 도시다. 3월 12일, 샤르자에서 열리는 MM에 참석하기 위해 현지 시각으로 새벽 5시에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모든 것이 크고 번쩍이는 ‘블링블링’의 도시 두바이에서 샤르자로 향하는 길목의 풍경은 샤르자 특유의 도시 빛깔을 이웃 도시와 비교 이해하는 단초 구실을 했다. 두바이 공항에서 샤르자까지는 교통 체증만 피하면 차로 15분만에 왕래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아침 햇살을 받은 도시의 빛깔이 점차 갈색으로 변하는 동안 어느새, 2014년 샤르자의 ‘이슬람 문화 수도’ 선정을 기념한 깃발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드디어 샤르자에 도착한 것이다. 샤르자는 1998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아랍 세계의 문화 수도’다. 무엇이 이 도시를 동시대 아랍 문화의 요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 <The Wider the Vision, the Narrower the Statement> 네온 2009_2009년 비엔날레 커미션 작품이자 소장품이다.

오늘날 샤르자가 아랍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의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통치자의 확고한 신념과 아낌없는 지원 정책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주변 도시인 아부다비가 구겐하임과 루브르를 들여오고, 두바이가 옥션과 페어를 유치하며 아트마켓에 공을 들인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막강한 부와 권력의 산물인 셈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샤르자는 어떤 컨텐츠로 채울 것인지부터 몰두했다. 1972년부터 샤르자를 통치한 수장 H.H. 셰이크 술탄 빈 마하마드 알 카시미(Sheikh Sultan bin Mohammed Al Qasimi)는 극작가로 많은 책을 저술했으며 역사와 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박식한 인물이다. 왜 샤르자가 경제적인 성장은 물론 문화예술이 크게 융성할 수 있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지역적인 동시에 글로벌한 프로젝트


마흐무드 카부르(Mahmoud Kaabour)의 <Teta, Alf Marra>를 소개한 스크리닝 프로그램 모습.

호텔에 짐을 풀고 샤르자아트파운데이션(이하 SAF) 사무실로 향했다. 샤르자의 미술 인프라는 모두 샤르자 만 인근에 포진해 있다. ‘샤르자의 심장’이라 일컬어지는 이곳은 문화유산 구역으로, 인근에 10개가 넘는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이 포진해 있다. 샤르자미술관 건너편에 있는 재단 사무실은 샤르자의 모든 활동의 펼쳐지는 핵심부다. 비엔날레를 포함한 각종 국제 심포지엄, 프로덕션 프로그램, 레지던스 운영과 전시 개최, 워크숍을 비롯한 교육 프로그램부터 컬렉션까지, 다국적인 팀원 20여 명이 모여 재단의 프로그램 전반을 진행하고 있다. 진한 아이보리 빛깔의 전통적인 건물 외관과 달리 사무실 안은 통유리로 구획한 모던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전투적인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SAF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MM과 전시 기자간담회 준비 때문인지 사무실은 한산한 편이었다. 재단 사무실에서 기자를 먼저 맞은 사람은 SAF의 부디렉터이자 국제 프로그램 담당자인 주디스 그리어(Judith Greer)였다. 도쿄하라미술관의 국제 감독으로 활동한 그는 컬렉터이자 후원자로도 국제 미술계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우환과 최재은 작가를 잘 알아요.” 그는 재단 활동의 몇 가지 방향성을 짧게 요약해 설명해 줬다. “UAE의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게 먼저에요. 그리고 지역 작가를 충분히 지원해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는 거죠. 작가와 큐레이터, 미술 기관 사이의 가교 역할이랄까요. 어떻게 하면 지역적이면서 글로벌한 협력과 교환 프로그램을 운영할까 고민이에요.” [이하 생략]


INTERVIEW
“로컬이 글로벌이다”

셰이카 후어 알-카시미 / SAF 대표


셰이카 후어 알-카시미 / SAF 대표. 영국 슬레이드미대, 로얄아카데미오브아트, 로얄칼리지오브아트에서 미술과 큐레이터를 공부했다. 2003년부터 샤르자비엔날레를 총괄하고 있으며, 뉴역 MoMA PS1, 베이루트 아시칼 알완의 디렉터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UAE관 커미셔너에 임명됐다.

Art 처음 샤르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특별한 마스터플랜이 있었나?
셰이카 후어 알-카시미(이하 SHAQ) 사실 없었다. ‘어 이거 좋은 생각인데’ 싶으면 실행에 옮기는 방식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2009년 독립 기관으로 재단을 설립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현할 공간도 필요해서 SAF 아트스페이스를 만들었다. MM에서 나온 흥미로운 제안을 실천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도 변화하는 중이다.

Art 국제 미술계의 관심이 몰렸을 때 기분이 어땠나?
SHAQ 정말 이상했다. ‘아니 왜?’ 이런 기분이었다.(웃음) 우리의 활동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함께 일하는 SAF 팀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트위터에서 젊은 사람들이 내게 샤르자에 와 일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이런 반응이 가장 기쁘다.

Art ‘로컬이냐 글로벌이냐’는 고민도 많을 것 같다.
SHAQ 우위를 가릴 순 없지만, 지역의 변화가 좀 더 중요하다. 내게 ‘로컬이 곧 글로벌’이다. 어린 시절 문화 예술계에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비엔날레가 생겼고, 러시아 컨템포러리 발레나 셰익스피어 연극이 공연되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어리지만(웃음), 샤르자의 젊은이에게 이런 경험을 전달해 주고 싶다. 예술을 통한 지역 공동체의 변화, 이것이 내 임무다. [이하 생략]

[ART MARKET] 아트페어도쿄

아트페어도쿄(Art Fair Tokyo)

제9회 아트페어도쿄가 도쿄국제포럼(3. 7~9)에서 열렸다. 일본 각지 및 마드리드, 베를린, 텔아비브, 타이베이, 서울, 마닐라 등지에서 150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도쿄아트페어는 다른 국제 아트페어와 달리 고미술 공예 양화 일본화 조각 사진 판화 등 시대와 장르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미술시장의 경기 침체에다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바닥을 치고 있는 일본 미술시장은 과연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는가? 일본의 미술시장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일본미술의 명암, 아트페어도쿄

/ 김복기

3.11 이후 일본미술의 향방


아트페어도쿄2014가 열린 도쿄국제포럼 (Tokyo International Forum)


아트페어도쿄 디렉터 가네시마 다카히로 (Takahiro Kaneshima)

지난 2월에 서울에서 일본의 한 갤러리스트를 만났다. 그가 일본 소식을 기분 좋게 화제에 올렸다. 이야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작년에 후지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일본 요리 와쇼쿠(和食)가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사실. 그는 이 사건이 일본의 자연과 전통 문화를 국가 마케팅의 자산으로 활용하는 데 큰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 하나는 도쿄가 2020년에 제32회 올림픽 경기대회와 제16회 패럴림픽 (Paralympic) 경기대회의 개최지로 선정된 일이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딛고 국가 부흥의 전환점을 마련했으며, 이후 고도성장 일로를 걸으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이 여정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 그렇다면 또 다시 올림픽과 함께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풍경은 ‘거품 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20년’, 그리고 3.11 동일본대지진으로 치명타를 입은 국격(國格),  바닥으로 떨어진 국기(國氣)을 올림픽으로 일거에 만회해 버리는…. 그는 문화청이 올림픽 문화 예산을 2천억엔이나 배정했다고 자랑처럼 알려줬다. 올림픽 특수에 기대어 미술 경기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눈치였다.


히로다 다카시(Takashi Hiroda)의 도예설치 작품. 이무라(Imura)아트갤러리 부스

따지고 보니, 근년에 세계무대에서 전후 일본 현대미술에 대한 열기가 아주 뜨거웠다. 2012년 뉴욕현대미술관의 <도쿄 1955-1070: 새로운 아방가르드〉,  2013년 구겐하임미술관의 <구타이: 화려한 놀이터〉 같은 대규모 전시가 세계미술의 심장부에서 열렸다. 또 모노하(物派)의 미술사적 위상을 재조명하는 전시도 이어졌다. 2011년 구겐하임미술관의 이우환 개인전, 2012년 블룸&포(BLUM & POE) 에서의 <태양을 위한 레퀴엠(Requiem): 모노하의 미술〉,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는 피노파운데이션에서 <모노하와 아르테포베라〉가 열렸다. 이런 전후의 사정 때문에, 나는 몇 차례 아트페어도쿄 실견(實見)의 실망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은근한 기대를 걸게 되었던 것이다.

전통과 현대, 순수와 응용을 아우르는


와타나베 미츠루(Mitsuru Watanabe) <비밀의 숲> 캔버스에 유채 130.3×162.1cm 2011_갤러리교쿠에이 출품작

아트페어도쿄는 전시장이 크게 두 개의 홀로 나뉘어 있다. 공예 고미술 섹션과 현대미술 섹션. 예전에는 고미술과 현대미술 부스가 뒤죽박죽 섞여 있어, 관람이 상당히 불편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이번에는 일단 이 문제가 해결되어 전시 동선이 훨씬 매끄러워졌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갤러리의 부스 크기가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보다도 훨씬 작고, 그마저도 일률적인 크기다. 대형 작품이 드문 데다, 작품 감상 거리도 너무 짧았다. 아트페어도쿄는 우선 행사 규모에서 ‘국제’를 표방하기에는 너무 왜소했다. [이하 생략]

[SPECIAL FEATURE] 컨템포러리 ‘먹-회화’

컨템포러리 ‘먹-회화’

한국화 혹은 동양화로 혼용해 부르는 미술 현상을 컨템포러리 아트의 문맥에서 재조명하는 대형 특집을 꾸몄다. 이 장르에 대한 비평 작업에는 용어의 혼란에서부터 시작해 전통의 현대적 계승, 나아가 한국적 정체성 담론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논쟁지대가 가로놓여 있다. 특히 정체성 논의는 오랫동안 관념적으로 공회전해 오다가, 결국 스스로 이 장르의 ‘위기’와 ‘죽음’을 자초한 것도 사실이다. Art는 동시대미술 작품을 구체적인 단서로 21세기 한국화의 지형을 다시 그린다. 우리는 그것을 ‘먹-회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부른다. 지필묵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새로운 산수나 화조에서부터 먹의 정신을 사진, 입체, 영상, 설치 등 컨템포러리 아트의 다양한 조형 방법론으로 혼성(hybrid)한 작품까지를 총망라했다. 시공간의 층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감각과 인식의 지평을 활짝 넓혀 한국미술의 동시대성을 확보하려는 작가와 작품에 주목했다. 또한 중국 컨템포러리 잉크 아트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는 심도 있는 논고를 게재해, 그 동시대적 고민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고자 했다.


SPECIAL  Critic

‘한국화’는 없다

/ 김백균


김호득 〈겹_사이〉 양면 한지 가리개 4개 가변설치 2013

근 10여 년 동안, 한국화에 관해 수없이 많은 발언을 해 왔음에도, 한국화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받는 일은 여전히 곤혹스럽다. 전통의 계승, 동시대적 생명력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의식 속에 이미 질의의 반대편 즉 ‘한국화의 한국적 정체성이 혼란스럽다’거나, ‘한국화는 전통을 계승해야 하는 당위성을 지닌다’와 같은 답을 미리 상정하고 있거나 혹은 ‘한국화는 동시대 시대정신의 구현과 같은 생명력을 담기에는 이미 낡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난감함은 한국화에 관한 논의의 대부분이 구체적인 실체 없이 관념적 상상으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에 기인한다.

이 문제는 최근 일어난 불고기 광고 사건과 비슷한 점이 있다.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가 3월 12일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광고는 ‘BULGOGI?’라는 제목 아래 추신수 선수가 웃으면서 불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독자에게 권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14일 미국의 NPR(국립공영라디오) 시니어 에디터 루이스 클레멘스(Luis Clemens)는 이 광고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고, 광고 전문지 《애드위크(ADWEEK)》는 “올해 가장 괴상한 광고”라고 혹평했다. 치킨마루라는 치킨회사가 왜 닭고기가 아닌 소고기를 광고하는지, 더구나 구체적인 상품명이 아닌 ‘불고기’ 자체를 홍보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를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미국 팝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영국 신문에 햄버거의 기막힌 맛을 선전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그것도 “버거킹이나 맥도날드, 웬디스도 아닌 그냥 햄버거”라며 광고의 의도가 불명확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러한 지적이 설득력을 지니는 이유는 이 광고의 불고기가 의미하는 지점이 불고기란 먹어 볼 만한 어떤 것, 즉 가치를 지향하고 있지만, 이 광고가 홍보하는 불고기는 어떤 특정한 불고기, 즉 우리가 그것을 먹어 볼 수 있는 실체를 지닌 불고기가 아니라 관념으로서의 일반화된 불고기이기 때문이다. 

한국화 정체성 규명은 불가능하다

한국화의 정체성이나 동시대성에 관한 언급이 힘든 이유는 가치 평가에 관한 것임에도 구체적 실체 없이 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홍도 그림의 특징이나 신윤복 그림의 정체성(다른 작가의 그림과 다른 신윤복 그림만의 특성)에 대해 말해 볼 수 있다. 또 김홍도와 신윤복, 정선, 최북, 심사정 아니면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의 안견이나 후대의 안중식, 조석진의 그림이 지닌 철학적 배경 혹은 이들 그림을 관통하는 정서에 대해서도 말해 볼 수 있고, 그러한 공통점을 민족적 정서의 일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귀납적 탐구의 역방향 그러니까 민족을 먼저 상정하고 그 정서가 각각의 작품에 스며들어 있다고 연역적으로 설명한다면, 과학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처럼 들릴 것이다. 물론 이러한 언설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우리의 인식을 확장해 주거나 미래의 가능성을 시사해 줄 수는 없다. 역사란 가정이 없으며 예술에 있어서 미래의 가능성을 여는 사유란 종종 지금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창의적 발상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하 생략]


SPECIAL ① Pictorial


정재호 <현대오락장> 한지에 채색 194×130cm 2007

정재호는 대도시의 풍경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한다. 스러져 가거나 오래된 건물에 깃든 삶의 자취를 화폭에 옮겼다. 낡은 아파트와 생활공간 밖으로 비어져 나온 세간, 복도, 공터 귀퉁이가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다. 건물을 여러 구획으로 나눠 그린 뒤 합치는 방식으로 재조합했다. 반복, 집적의 방식으로 아파트의 ‘골기(骨氣)’를 담고 있다. 그가 그린 건물의 파사드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 마치 ‘죽은 공간’처럼 보인다. 관객은 낯선 일상의 풍경을 마주하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1971년 출생. 서울대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현재 세종대 회화과 교수.

이소정 <Interpreter> 한지에 수묵채색 120×120cm 2011

이소정은 수묵을 이용해 자율적으로 전개되는 유기적 추상을 표현한다. 강한 농묵의 세필로 그은 선들은 특정한 형상 없이 확산과 수렴을 반복하며 화면을 가득 채운다. 즉흥적인 선이 결합한 다양한 레이어는 서로 중첩되며 원형의 이미지는 계속 증식한다. 자신의 그림에서 끝없이 새로운 그림을 도출해 낸다. 일견 괴기스럽게 보이는 생명체에 발묵의 우연한 효과를 더해 강렬한 화면을 제시한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가 반영됐다. *1979년 출생. 이화여대 한국화과 및 서울대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임택 <옮겨진 산수유람기 132> C-프린트 100×47cm 2013

임택의 <산수유람기> 연작은 동양화의 관념적 세계를 입체로 구현한 뒤 다시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우드락과 소금으로 산맥의 형상을, 솜으로 구름을 만들어 입체적인 가상의 공간을 제작하고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 위에 촬영한 다른 이미지를 합성해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새로운 산수화를 창조했다. 흰색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산수의 형태는 동양화 특유의 여백의 미가 잘 살아있다. *1972년 출생. 홍익대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현재 덕성여대 교수.


한계륜 <From Right to Left> 비디오 4분 18초 2009

한계륜은 오랫동안 작품의 주제로 다룬 ‘달’을 다뤘다. 이 작품은 배가 미끄러지듯 물 위를 지나가는 몽환적 화면을 담은 영상 작품이다. 사실 이 장면은 실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잉크가 번져나가는 모습이다. 황산 김유근의 <소림단학도>는 세간을 벗어나 그윽한 정취를 즐기는 강태공을 그린 작품으로, 한계륜의 작품에서도 이 같은 무위자연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1969년 출생. 서울대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판화 전공,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과 교수. [이하 생략]


SPECIAL ❷ Critic

중국 컨템포러리 잉크 아트

/우 훙


왕 동링 〈Being Open and Empty〉 종이에 먹 223.5×144.8cm 2005

20세기 초 이래, 중국의 미술학도는 미술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부터 전통화와 서양화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2가지 미술의 분류 체계는 가장 기본적으로는 회화에 사용되는 매체의 차이에 기인한다. 중국의 전통 회화는 대체로 먹과 장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종종 ‘수묵화’ 혹은 ‘먹화’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서양화는 원래 유화와 수채화를 지칭하지만, 서양에서 건너 온 모든 양식과 형태의 미술을 포괄하는 말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전통 양식과 서양의 근대 양식을 따르는 회화들 간의 간극은 각기 사용되는 매체의 차이보다 훨씬 더 깊다. 20세기 초, 서양의 미술이 처음으로 중국에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이후, 전통화와 서양화의 이분법은 미술 교육의 체계와 화가의 정체성 외에도 미술 비평의 준거와 전시 공간, 그리고 미술 관련 출판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결정짓게 되었다.

이 이분법은 크게 2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벌어지는 논쟁의 근간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그 두 가지 질문이란, “중국의 전통화가 어떻게 현대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반대로 “서양의 양식을 따른 회화가 어떻게 중국화될 수 있는가?”이다. 양쪽의 이론과 실기를 통해서 질문에 대한 다양한 해답이 모색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오랜 시간 그 이분법에 대한 도전은 거의 없었다. 유화를 그리는 화가가 전통화의 기술적 요소나 심미적인 원칙을 빌려 쓰거나, 반대로 전통화가가 수묵화의 원근법이나 명암법을 도입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들은 서양화와 전통화가라는 ‘직업적’ 경계를 고수했다. 그 외에 린 펑미안(林風眠, 1900~1991)과 쉬 베이홍(徐悲鴻, 1895~1953)을 위시한 일군의 화가들이 중국화와 서양화 사이의 경계를 지우는 데 앞장섰지만, 그들이 주창한 ‘융해’의 개념은 여전히 동서양의 이분법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양 지에창 〈Crying Landscape〉 종이에 수묵채색 300×500cm 2002

지난 30년간 중국 현대미술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맞서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이분법적 인식을 바꾸어 왔다. 첫째로, 한 수묵화단은 문제는 더는 전통화를 서구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대화 그리고 세계화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속한 화가들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수많은 실험과 진지한 토론을 벌여 왔고, 그 결과 자국 미술계 내에 고유의 계획과 역사를 지닌 하나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내기에 이르렀다. 변화의 두 번째 주요 요인은 어떤 특정 주체라기보다는 현대화단의 새로운 물결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모던’과 ‘컨템포러리’라는 이름으로 중국 미술계에 확산된 근현대 미술은 매체의 차이를 기반으로 한 전통화와 서양화의 분류 기준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태의 현대미술은 기존의 수묵화와 유화와는 달리, 어떤 특정 문화에서 파생되거나 그것에 귀속되지 않았다. 중국의 근현대 작가들이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처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그들의 목적은 전통화와 서양화에 대응하는 형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국 미술의 정해진 관례와 틀을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관례 중 하나가 전통화와 서구화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분법이었다. 중국 미술은 이러한 역사적 틀을 뛰어넘어 스스로를 여타 지역적 갈래들과 연결시켰다. 국제 미술계에서 이 새로운 예술의 형식들은 다채로운 국적을 가진 작가에게 특정 문화와 관련이 없는 ‘공용어’를 제공해 주었다. 이 국제적인 언어를 통해 작가들은 개별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과 세계의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 중국작가들은 이른바 그들의 ‘현대성’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전통 미술과 절충과 타협을 보는 수많은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하 생략]

[FOCUS] 김웅용展, 6-8展: 그림자, 어둠의 연금술

그림자, 어둠의 연금술

김웅용展 2. 7~8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
6-8展 2. 15~3. 29 아트선재센터

/ 방혜진


이원우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 아니면 그 반대 이거나> 그린하우스, 연무기, 스툴, 램프 195×190×250cm 2013 

현재를 파악하는 유용한 방법의 하나는 멀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보라! 동굴 벽에 모닥불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화이트큐브의 그림자

어스름이 내리면 미술관 안팎이 분주해진다. 그간 전시에 할애되지 않던 유휴 공간과 입장 불가 시간을 관객에게 제공하겠다는 <6-8>전의 기획 의도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에 따른 미술계의 지각변동에서도 특히 지대한 지리적 영향을 받았을 아트선재센터로서 적절한 선택이었다. 기존 미술관의 전시 및 관람 방식을 뒤집어 본다는 <6-8>전의 방향은 결국 화이트큐브라는 모더니즘의 신화적 공간을 재고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화이트큐브는 이를테면 예술 공간에 드리운 그림자에 대한 혐오와 배척의 결정체이다. 전시장을 속속들이 빛으로 고르게 분포시키는 화이트큐브의 전략은 곧 그림자를 몰아냄으로써 현실의 시공간 흔적을 지워내려는 것이었다. <6-8>전은 기꺼이 어둠에 노출되는 시간을 택하여 정제되지 않은 공간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다시 불러들인다.

<6-8>전의 그림자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그간 시야로부터 차단됐거나 외면됐던 공간 자체의 어둠을 드러내며, 동시에 작품 차원에서 바라볼 수 없음의 바라보기를 유도함으로써 그림자를 출몰시킨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시선을 위로 향해 보자. 이 전시에 어떤 궁극적 정점이나 지정된 동선은 없다고 하나, 실제로 관람하다 보면 이 전시가 옥상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전시 동선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관객의 감수성과 주의력에 따라 작품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는 안내문에도 불구하고, 한옥과 정원, 건물 외벽, 계단 등 각각의 공간은 옥상으로의 상승을 위한 어떤 준비처럼 느껴진다. 옥상에 오르기 위해선 문득 관객의 이동이 제한되고, 미리 예약해야 하며, 정해진 시간에 타인과 보폭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옥상 문턱의 기계실에서 진행 요원으로부터 윤수희의 <미확인 벌레>에 귀 기울이도록 일정 시간을 요구받을 때, 이 어긋난 의도는 사실 미술관 견학 프로그램이라는 숨겨진 의도의 뒤틀린 누설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진다.


리경 <더 많은 빛을_공(空)의 관조도> 레이저, 스모그, 사운드 가변크기 2014

마침내 옥상에 오르면 인왕산과 경복궁과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싼 탁 트인 어둠이 관객을 반긴다. 이제 관객에게는 손전등 하나씩이 부여된다. 권병준과 김근채의 <서울 비추기>. 손전등의 불빛은 미약하여 광활하게 뻗은 어둠을 밀어내지 못하지만, 관객이 불을 휘휘 둘러대는 시내 풍경 속 어떤 삶의 단면을 헤드셋을 통해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먼 거리의 듣기는 그 전망 좋은 환경 속에서 도리어 우리 시야의 한계를 드러낸다. 막힌 시야의 테마는 옥상 중앙을 차지하는 이원우의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에서 정점에 달한다. 온실 내부로 들어서면 희뿌연 안개가 관객의 감각기관을 질식시킨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 그렇다면 어둠 더하기 어둠은 밝음일까. 하얗게 빛나는 암흑, 이 밝고 환한 그림자야말로 전시 공간과 작품으로 겹쳐지는 <6-8>의 궁극적 대상이 된다.

사실 어떤 의미로 옥상의 작품들은 구조적 단계에서 이미 <6-8>전의 ‘하이라이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전시가 화이트큐브의 전복 문제를 매우 제한적으로 접근하는 까닭인데, 제목에서부터 표방하는 이 전시의 특수한 조건, 곧 6시에서 8시라는 관람 조건은 사실상 미술관 ‘외부’의 (자연적) 그림자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술관이 문을 닫고 화이트큐브 ‘내부’에 (제도적)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는 극적 변화에 대해서는 대체로 침묵한다는 얘기다. 이 전시 자체가 미술관 내부 수리에 맞춰 기획된 탓도 있지만, 2층 전시장의 활용만 보더라도 <6-8>전이 그림자라는 것을 얼마나 우회적인 방식으로, 즉, 미술관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일종의 장식적 효과처럼 허용하는지 알 수 있다. 그 태도는 비유컨대 전시 제목 <6-8>의 저 새초롬한 선처럼 다가온다. 6과 8 사이에 그어진 저 선이 ‘68’이라는 (과도하게) 익숙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숫자와의 소심한 간격이자 능청스런 변명처럼 느껴진다면, 이는 이 전시가 그림자를 대하는 어떤 뒷걸음질의 제스처 때문일 것이다.


이왕 화이트큐브에 드리운 그림자 얘기를 했으니 블랙박스의 그림자도 소환해 보자. 당연한 얘기지만 화이트큐브와 블랙박스는 빛의 분포와 배치에 따른 공간 범주이다. 따라서 본래 그림자가 압도적으로 존재하는 블랙박스에서의 그림자 활용은, 그림자가 말끔히 지워진 화이트큐브에서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작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말이 곧 블랙박스에서의 그림자 활용이란 수월하고 일상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블랙박스에서 퍼포먼스가 발생되는 무대 공간은 빛으로 충만하다. 블랙박스의 ‘블랙’은 그 무대를 제외한 여분의 공간을 삼키고 지워버리기 위해, 이를테면 무대 공간을 하나의 온전한 세계로 만들기 위해, 규제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뒤집기 방법은 수동적으로 묶인 객석에 빛을 던지는 것일 터다. 김웅용의 공연 <결정된 우연에 반응하는 에피소드들- 오호츠크해 고기압>은 이러한 명암 사용법을 비튼다.

블랙박스의 그림자


김웅용 <결정된 우연에 반응하는 에피소드들-오호츠크해 고기압> 2014_이 작품에 관한 짧은 설명은 다음과 같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과거를 가로지르는 사소한 것들이 영화를 본 누군가의 기억 속에 파편처럼 남는다. 그가 기억하는 영화 속에서 여름에 남하한 공기가 인물들 시선과 사물들에 스며들어 연상 작용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우선 이 공연은 이제는 소실되고 없는 어느 옛 영화로부터 출발한다. 이 영화의 사운드 일부가 우연히 발견돼 이를 기반으로 영상을 새로 재현했다는 설명과 함께 스크린에 영화가 영사되기 시작한다. 옛날 영화의 과장된 사운드와 그에 맞춰 립싱크로 연기하는 어색한 이미지의 절묘한 접합에 관객의 시선이 쏠려 있는 사이, 관객 앞에 엉성하게 세워진 세트장으로 퍼포머와 카메라맨이 등장한다.

상상해 보라. 빛을 독식하는 스크린의 존재 때문에 현재 무대는 (물리적 상징적으로) 객석과 동일한 평지로 내려선 상태다. 어슴푸레한 어둠에 잠긴 무대에서 퍼포머가 앞서와 동일한 사운드에 맞춰 연기를 시작하자, 카메라가 이를 라이브로 스크린에 옮겨 놓는데, 어설프기 짝이 없는 무대는 대단히 그럴싸한 영상으로 전환된다. 조잡한 인공 잔디와 화초가 동남아시아의 밀림으로 변모하는가 하면, 분무기로 뿌려 대는 물은 유리창을 두드리는 거센 비바람으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대비는 영상 기술에 대한 찬탄과 몰입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엉성하게 조립된 세트의 단층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채, 여느 공연이라면 빛의 충만함 속에서 어떤 원근법적 세계로 나아갔어야 할 드라마를 일련의 평평한 그림자로 끌어내린다.

영화 사운드/무대 퍼포먼스/라이브 영상의 3중창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묘한 노래로 변주된다. 동일한 사운드 내용 전후로 엉뚱한 맥락이 재조립되면서 원형의 이야기가 매번 새롭게 몸집을 부풀리는 것이다. 산기슭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의 열정에 관한 이야기는 무덤가의 살인 이야기로 변주되고, 외진 시골학교 선생의 실존적 독백은 환생한 신라 시대 여인의 숙명적 사랑 예찬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하나의 이야기(실재로부터 복잡한 다층의 이야기) 가상들이 번식하는 사이, 애초부터 목소리를 박탈당한 퍼포머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그저 흘러나오는 사운드에 맞춰, 새로이 갱신되는 운명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여느 포스트드라마적 공연이 언어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퍼포머의 목소리와 육체를 전면화한다면, 이 공연은 그 어떤 드라마적 공연보다도 더욱 배우를 주어진 발화 속에 감금시킨다. 그리고 끝내 숨겨진 반전. 뜻밖에도, 혹은 당신이 짐작했듯이, ‘실재’에 해당하는 이 영화-사운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던 가상의 것이다. 그러므로 내내 관객이 지켜본 것은 그림자에 대한 그림자의 그림자들. 혹은 그림자를 위한 그림자의 가면극이다.

블랙박스 속의 어둠이라는 미개척 영역을 파헤친 이 공연에 남는 아쉬움이라면, 어느 대목부턴가 작가가 스스로의 대담함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제목에서부터 거침없이 표출됐듯, 일련의 ‘결정’적 요인들과 ‘우연’적 요인들 간의 양극성 조합이 무대의 후속적 ‘반응’ 요인들과 충돌하며 일으키는 거센 파도는 끝내 ‘에피소드들’의 상태로 머무는데, 그러한 파편화의 나열이 본래 잠재력의 폭발적 분출을 필요 이상으로 자제시킨 것 아닌가 하는 관측. 물론, 이러한 우려는, 언젠가 이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그 조악한 세트장에 퍼붓던 기막힌 빗줄기처럼, 더 서늘한 먹구름과 장마를 몰고 돌아오리란 전망과 더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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