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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Culture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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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rt의 2014년 연간 기획 특집 주제는 '아시아'다. 3월호 특집은 시선을 '안'으로 돌려 한국 미술인 14인이 바라 본 아시아에 주목했다. 과연 우리가 경험한 혹은 아직 보지 못한 아시아는 무엇일까? 여기서 '아시아'는 한국 미술인의 실질적인 활동 근거지로서 무한대의 가능성을 간직한 기회의 땅이자, 인물, 사건, 이야기가 뒤섞여 있는 구체적인 실체이며,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 개념이다. 아시아 미술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한국의 작가, 기획자, 학자 14인의 체험적 에세이로 그 다양한 씨줄과 날줄을 정리해 본다. Art의 기획 특집 '아시아'는 '아시아는 하나'라는 패러다임을 주창하는 지역패권주의의 발로가 아니다. 또한 서구 미술계에서 다문화주의의 영향으로 트렌드처럼 일고 있는 아시아 열풍을 무작정 뒤좇는 것도 아니다. 이 기획은 아시아 미술에 관심을 촉구하고, 걸음마 단계에 있는 아시아 미술 연구에 물꼬를 트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아시아 각국은 서구식 근대화에 발맞춰 서로를 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며 내달렸다. 오늘날의 괄목할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는 여전히 문화식민주의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다. 한국도 이러한 상황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아시아와 아시아 미술을 종과 횡으로 꼼꼼히 조망하는 시작과 끝, 그곳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한국미술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와 '나'의 얼굴이 투영된 거울 같은….

Contents

SPECIAL FEATURE
         나의 아트, 나의 아시아 
         미술인 14인이 경험한 아시아, 
         그리고 아시아 미술

100    현실에의 번민, 그 리얼한 풍경 / 고원석
102    너무 다른 아시아
         아주 유사한 아시아 / 김인혜
104    중심없는 세상
        노마드라는 아시아의 힘 / 김주영
107    길 위의 기록, 
         실크로드를 넘어서 / 정재철
110    아시아인도 모르는 아시아 미술 / 윤범모
112    아시아는 하나가 아니다
         제국의 판타지를 깨자 / 김용철
114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 김현숙
116    움직이는 거울-아시아
         이것이 담론의 테제다 / 김영순
118    새로운 미술 허브 동남아시아를 주목하라 / 서준호
120    큐레이터의 대화
         한중일 아트씬의 지형 변화 / 서진석
122    오키나와, 제주도, 타이완
         섬에서 역사의 고리를 읽다 / 홍성담
124    오키나와, 동아시아 평화의 성지 / 최태만
126    우리시대의 ‘정신성’을 찾아서 / 조숙진
128    컨템포러리아트씬에서 
         아시아의 위상을 세우자 / 홍가이

 

PRISM

056    ‘몸의 온기’가 묻어나는 건축 / 유이화
         아시아 미술 공동체를 설계하자 / 최열

 

FOCUS

058    그래픽 노블展, 마유카 야마모토(Mayuka Yamamoto)展: 
         만화적 이미지, 서사적 구조 / 김정복
         본업: 생활하는 예술가展, 미쓰-플레이展: 젊은 작가들의 현실과 발언 / 현시원
         구현모展, 미래가 끝났을 때展: 
         미래 없는 현재 안에서 / 이선영
         스토브가 있는 아틀리에展: 
         ‘모던 테이스트’와의 랑데부 / 안소연
         조종성展: 풍경, 숨겨진 시점들 / 이미정
         사진과 사회: 소셜아트展: 
         ‘소셜아트’는 어디로 가는가? / 백기영

 

ARTIST

080    아핏차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e)
         생명처럼 꿈틀대는 ‘정글 미학’ / 정성일 
088    쿠도 테츠미(Tetsumi Kudo)
         디스토피아로의 유쾌한 여정 / 정도련

 

ART LAB

146    이타미 준
         공간을 ‘그리는’ 건축 / 최정윤 

 

CRITIC

135    아시아를 넘어서는 아시아 미술 
         / 위완링(C. J. Wee Wan-ling)

 

MEMORIAL

150    Po Kim
       뉴욕의 한인화가, 97세로 잠들다 / 장석원
 
 

ETC. 

055    EDITORIAL / 김복기 
157    ART FIELD 
172    P.S 
173    SUBSCRIPTION
174    CREDIT

Articles

[ART FIELD] CAA 연례 학회

CAA 연례 학회
2014. 2. 12~15 시카고 힐튼 호텔

/ 이수진 시카고 해외특파원


CAA 연례 학회 <Free and Open> 세션 전경

미국 예술협회(College Art Association)의 연례 학회가 열렸다. 1911년 설립된 CAA에는 현재 1만여 명의 미술사가, 평론가, 큐레이터, 작가, 학생들이 가입돼 있다. 매년 2월 개최되는CAA 학회 기간 동안에는 수백 개의 연구, 작업 발표 뿐 아니라 각종 학계 미팅과 면접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딱딱한 분위기이다. 주요 행사는 연구 발표와 토론인데, 프로그램에 나열된 세션의 제목을 훑어 보는 것만으로도 현재 시각문화 관련 학문적 담론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올해는 미술과 패션의 관계를 주제로 하는 세션이 이례적으로 두 개나 있었던 점이 눈에 띈다. 몇 년 전부터 패션 관련 전시와 미술가-패션 브랜드의콜라보레이션이 인기를 끌더니 이에 학계가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뉴미디어아트에 관한 발제는 계속해서늘어나는 추세다.

아시아 현대미술 관련 세션은 두 개였다. <아시아의 현대미술과 급진적 민주주의(Contemporary Art and Radical Democracy in Asia)>에서는 메사츄세츠주립대의 문영민 교수를 포함한 4명의 발제자가 각각 최근 한국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에서 나타난 정치적 미술 작업과 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싱가포르비엔날레나 코치-무지리스비엔날레 같은 최근 아시아에서 열린 국제적 전시들을 살펴 본 <다른 아시아(Other Asias)>라는 세션은 흥미로운 제목에 비해 다소 지루한, 보고서 형식의 발제로 이루어졌다. 이번 학회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끈 세션은 작가 티에스터 게이츠(Theaster Gates)가 발제자로 참가한 <사회참여적 미술의 전시(Exhibiting Socially Engaged Art)>로, 약 2백 명의 관객이 몰렸다. 미술계와 CAA 학회 같은 행사가 ‘그들만의 리그’라는 의견도 있고, 이는 여러 모로 사실이다. 요즘 같은 ‘미술사의 위기’의 시점에 미술계와 학계가 자기평가를 통해 더욱 발전하는 전환점이 되었으면 한다.

[ARTIST] 쿠도 테츠미

쿠도 테츠미(Tetsumi Kudo)


쿠도 테츠미(工藤哲巳) / 1935년 오사카 출생. 1958년 도쿄예술대 졸업. 1962년 <요미우리 앙데팡당>전 대상 수상 후 도불. 1970년 쿤스트페어뒤셀도르프 회고전, 외젠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 극본의 영화 <꽃병(진흙)> 아트디렉터. 1972년 스테델릭미술관, 1981년 소게츠미술관 개인전. 1986년 퐁피두센터 <일본의 아방가르드, 1910~1970>전 참여. 1987년 일본 귀국 및 도쿄예술대 교수 임명. 1990년 도쿄에서 타계. 1994년 오사카국립국제미술관, 2008년 워커아트센터, 2013년 오사카국립국제미술관 회고전.

일본 전후 아방가르드미술의 거장 쿠도 테츠미의 회고전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고 있다. 오사카국립국제미술관(2013. 11. 2~2014. 1. 19)을 거쳐 도쿄국립근대미술관(2. 1~3. 30), 아오모리현립미술관(4. 12~6. 8)으로 순회 중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접목 화원>은 물론, 1960년대 파리에서 제작한 초기작부터 일본에 돌아와서 남긴 말년의 작업까지 총 200여 점이 출품돼 그의 작품 세계를 포괄적으로 보여 준다. 사후 24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한 국제 미술계의 관심이 식을 줄 모른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잇따른 회고전 개최와 함께 학술적인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아트마켓에서도 그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사람들은 왜 괴물처럼 섬뜩한 쿠도 테츠미의 작품에 매료되는 것일까? 얼굴 손 뇌 심장 성기 등 인체 각 부위를 묘사한 오브제는 새장이나 어항, 나무상자 안에 강박적으로 배치됐다. 인간과 사물의 그로테스크한 이종교배는 원폭 이후의 일본을 상징하는 동시에 과학, 기술, 소비주의로 새롭게 탄생한 하이브리드를 은유하며 또 다른 세계를 암시한다. 그것은 쿠도 테츠미 자신이자, 우리들의 뒤틀린 자화상이다. 그의 예술은 전후 일본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해 팝아트, 플럭서스, 누보레알리즘 등 당대 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진화를 거듭했다. 2007년 워커아트센터의 회고전을 기획했던 필자는 쿠도 테츠미의 ‘귀환, 재생, 탈피’로 이어지는 여정을 조망한다.


디스토피아로의 유쾌한 여정

/ 정도련


<젊은 세대를 위한 찬가-누에고치는 열린다> 혼합재료 120×100×150cm 1968

쿠도 테츠미(工藤哲巳)는 1990년 55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 20대 후반에 프랑스로 건너가 20여 년 동안 체류한 그가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시기였다. 이후 24년이 흘렀다. 그의 사망 이후 4번의 회고전이 열렸다. 최초는 1994년 오사카국립국제미술관에서 열린 <이의와 창조(Contestation/Creation)>전이다. 10여 년이 지나고 파리의 라메종루즈1)에서 <우리가 찾는 산은 온실에 있다(The Mountain We’re Looking For Is in the Greenhouse)>(2007)전이 열렸고, 내가 기획한 미니애폴리스 워커아트센터의 <쿠도 테츠미: 메타모르포시스의 정원(Garden of Metamorphosis)>(2008)전2), 그리고 이번에 다시 오사카국립국제미술관의 <당신의 초상(Your Portrait)>(2013)전이 개최됐다.

과학과 인간, 메타모르포시스


<남자와 트랜지스터 사이의 동거> 혼합재료 28×40×23cm 1980~81

전시를 연대순으로 구성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회고전에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초상>전은 <메타모르포시스의 정원>전과 마찬가지로 쿠도의 작품을 시대별로 분류한 뒤, 작품 세계의 진화 과정을 뚜렷이 파악할 수 있도록 설치했다. 작가가 고향으로 돌아와 제작한 말년의 작업을 전시 도입부의 초기 작업과 이어지도록 설치해 물리적, 정신적인 고리를 만들었다. 전시 큐레이터인 시마 아츠히코(島敦彦)는 쿠도 작업의 진화 과정을 순환하는 형태로 선보였다. 또한 작업의 직선형 내러티브를 공간 안에 명확하게 구현했다. 관객은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의 마지막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쿠도의 작품을 체험하게 된다. 마지막 전시실은 1950년대의 작품을 선보인 전시장의 끝부분에서 시작한다.


<자연에 의한 양식과 그것을 보는 사람들> 혼합재료 19×23×23cm 1970

두껍게 덧칠해 여러 겹으로 소용돌이치는 쿠도의 초기 회화 작품은 잭슨 폴록을 떠오르게 한다. 그의 작품은 1950년대 전후 일본미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유럽의 앵포르멜, 그리고 아마도 일본 간사이 지역에서 발족한 구타이 미술협회의 영향이 드러난다. 그러나 쿠도는 ‘융합 반응’이나 ‘증식성 연쇄 반응’ 등과 같은 원자 물리학 용어를 작품 제목으로 붙여, 원자폭탄과 원자력 등 20세기에 등장한 과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동시대의 회화 양식을 받아들여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후 곧바로 ‘급진적’이라 불리기에 걸맞은 일을 척척 해냈다. 그는 초기 대표작인 <임포 분포도와 그 포화 부분의 보호 지붕 발생(Distribution Map of Impotence and the Appearance of Protective Domes at the Points of Saturation)>(1961~62)을 제작했다. 방 크기의 설치 작품으로, 일반적으로 <임포 철학>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의심할 여지없이 전후 일본 미술사의 가장 상징적 작품 중 하나다. 당시 새로운 예술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도쿄의 아트씬이 시답잖다고 도발한 것이 충분치 않았던 듯, 그는 같은 해에 파리로 이주해 극적인 탈출을 감행했다. 이번 전시에서 이 작품은 거의 하나의 방과 같이 3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된 공간에 설치돼, 일본에서의 초기 작품과 유럽에서 발전시킨 중반기 작품을 효과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하 생략]

[ARTIST]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e)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 1970년 방콕 출생. 콘켄대에서 건축학,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서 영화 전공. 1999년 영화사 ‘킥 더 머신’ 설립해 태국에서 활동 중이다. 이스탄불(2001), 부산(2004), 타이베이(2004), 리버풀(2006), 미디어시티서울(2010), 카셀도쿠멘타(2012), 샤르자(2013) 등의 비엔날레와 기획전 참여.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2002), 심사위원상(2004), 황금종려상(2010), 아시아미술상(2010), 샤르자비엔날레상(2013), 후쿠오카상 등 수상.

태국의 영화감독이자 미술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메콩 호텔>이 지난달 개봉했다. 2010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엉클 분미> 이후 두 번째로 한국에 공식 배급된 이 영화는 전국 21개 극장에서 상영되면서 국내에서도 아핏차퐁의 인기가 급증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영화제뿐 아니라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뮌헨 하우스데어쿤스트, 파리시립현대미술관, 뉴욕 뉴뮤지엄, 베이징 UCCA 등에서 ‘작가’로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한국 미술계에도 낯설지 않은 존재다. 부산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아시아아트워어드(A3), 페스티벌봄 등에 그의 작품이 소개됐다. 2000년대 초반 국제 영화계에 태국의 ‘신성’으로 등장한 그는 검열이 당연시되는 태국 상업 영화의 시스템 밖에서 영화와 시각예술 작업을 병행하면서 ‘21세기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아핏차퐁이 구축한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일반적인 영화의 드라마투르기를 벗어난 비선형적인 그의 작품을 본 관객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영화가 이래도 되는 건가?’ 태국의 신화와 전설, 지극히 사적인 기억과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 전생과 환생의 불교적 세계관이 뒤섞인 기묘한 이야기는 한두 문장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영화를 본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핏차퐁은 길을 잃은 우리를 마술처럼 정글로 데려간다. 그곳은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 현실과 환상, 욕망과 치유의 상징이자 인간과 유령, 그리고 짐승이 함께 사는 태초의 땅이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영화를 본다는 익숙한 시각적 경험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모든 감각이 총동원된 정글의 풍경은 지금 당신이 작품을 보는 극장이나 미술관과 다를 바 없다고….


생명처럼 꿈틀대는 ‘정글 미학’

/ 정성일


〈엉클 분미〉 35mm 필름 113분 2010_신장 질환을 앓는 엉클 분미가 유령이 된 아내, 짐승으로 변신한 아들과 정글을 지나 신비로운 동굴로 떠나는 여정을 담았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21세기가 막 처음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2000년 로테르담영화제에서 낯선 영화를 만났다. <정오의 낯선 물체(Mysterious Object At Noon)>(2000). 태국영화는 세계 영화의 시간 바깥에 있었으며,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처음 들었을 때 외우기 쉬운 이름이 아니다. 16mm 흑백필름으로 찍은 다음 다시 35mm로 확대한 이 영화의 화질은 마치 몇 차례에 걸쳐 비디오 카피를 한 것처럼 보였다. 정오에 찍은 장면들은 노출을 잘못 측정한 것처럼 화면의 일부가 하얀색으로 보였다. 햇빛에 불타버린 필름. 이걸 영화 현장에서는 ‘데이터 정보를 잃었다’고 말한다. 처음 영화가 시작했을 때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였다. 촬영팀은 태국을 돌아다니면서 아무 데서나 사람을 만나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찍었다. 그때까지는 시네마 베리테(cinéma vérité: ‘진실 영화’를 의미. 미리 짜놓은 각본이나 소재를 거부하는 기록 영화) 영화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친 상인에게 (아마도 아핏차퐁이) 갑자기 물어보았다. “우리에게 더 해 줄 말은 없나요? 겪은 일이건 꾸며낸 이야기이건 상관없어요.” 그러자 상대방이 반문한다. “거짓말이라도 상관없다는 뜻인가요?” 치마에서 나온 신비한 물체에 관한 이야기. 그 신비한 물체가 별과 닮았다고 말하는 할머니. 호랑이에 잡아먹힌 선생님.


<메콩호텔> 디지털 56분 2012

영화는 이때부터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촬영팀은 이 이야기를 들은 다음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갈 사람을 찾아 나선다. 일종의 이어달리기? 말하자면 <정오의 이상한 물체>는 계속해서 중간에 영화가 끝난 다음, 다시 시작하는 영화다. 공동체의 이야기. 민담의 수집. 그러나 아핏차퐁은 인류학적 관심에서 멈추지 않는다. 갑자기 영화는 아이가 선생님을 (말 그대로!) 구겨서 옷장 속에 집어넣는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태연자약하게 다음 장면에 등장해서 지우개를 사러 다녀왔다고 말한다. 혼란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이는 카메라 앞에서 덧붙인다. “사실 그 여자는 진짜 선생님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이 영화의 예술적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모두 새로운 영화를 보기는 했는데,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난관에 부딪힌 느낌을 받았다.

영화, 우연을 노려보다


<우주선 만들기(Making of the Spaceship)> 비디오 28분 13초 2009_한 달 동안 나부아 사람들과 우주선 만드는 과정을 소리없이 담았다.


<내일을 위해 오늘밤을 위해> 비디오 2011

상황을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우연의 일치이기는 하지만, 20세기의 시간이 막 끝났을 때 스탠리 큐브릭과 로베르 브레송이 거의 동시에 유명을 달리했다. 무언가 거장의 시대가 끝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의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 것은 세계의 무의미성에 대한 탐색이 시작됐다는 신호탄이었다. 영화는 우연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종종 카메라는 어떤 장소를 집요할 정도로 지켜보았다. 하지만 관객은 거기서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었다. 구스 반 산트의 <게리>는 주인공 2명이 하염없이 어디론가 걸어가지만 그들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왜 그렇게 황무지를 가로질러 가는지, 그런 다음 어디로 향하는지 아무 대답도 찾을 수 없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혼자서, 정말 혼자서, 연출과 촬영, 편집, 녹음을 한 10개의 쇼트로 이루어진 <10>을 만들었다. 영화 내내 카메라는 차 안에 있고 한 여자가 테헤란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 차에 탄 사람들과의 대화가 영화의 전부이다. 여기서 키아로스타미는 영화가 실재와의 대면을 견딜 수 있는지 보고 싶어 한다. 산샤(三峽) 댐을 방문한 지아장커는 극영화 <스틸 라이프>와 다큐멘터리 <동>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두 영화 사이의 다리를 만들어 낸다. 영화는 우연과 상실 그 사이에서 다소 모호하게 견디는 중이다. 만일 (거의 우리 시대의 영화를 예언한 것만 같은 위대한 평론가) 앙드레 바쟁이었다면 훨씬 멋있게 말했을 것이다. 영화는 세상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출현시키는 예술이다. 문제는 세상이 출현했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핏차퐁은 그때 갑자기 나타났다. [이하 생략]

[SPECIAL FEATURE] 나의 아트, 나의 아시아

나의 아트, 나의 아시아
미술인 14인이 말하는 아시아, 그리고 아시아 미술


구오 시 〈아직 달콤한〉 혼합재료 가변크기(부분) 2011

Art의 2014년 연간 기획 특집 주제는 ‘아시아’다. ‘왜 아시아인가?’ 이 준엄한 물음에는 ‘우리는 아시안이다’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아시아, 그리고 아시아 미술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자문해 보면, 금방 얼굴이 붉어진다. 그 출발점으로 마련한 2월호 특집은 아시아의 동시대 미술에 관한 원초적인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에 1차 목적이 있었다. 한국 ‘밖’의 일본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 홍콩 타이완 태국 인도네시아 등 8개국의 큐레이터와 이론가를 커미셔너로 초청해 ‘아시아성’을 이슈로 던지고, 이에 부합하는 5명의 작가를 추천 받았다. 작가 40명의 작품으로 지면 전시를 꾸려, 식민 체험, 경제 성장과 위기, 다문화주의, 영토 분쟁, 민족주의, 종교, 자연 재해 등 각국의 지역적 정체성과 아시아가 직면한 이 시대의 쟁점을 조망한 자리였다.

3월호 특집 ‘나의 아트, 나의 아시아’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 한국 미술인 14인이 바라 본 아시아에 주목했다. 과연 우리가 경험한 혹은 아직 보지 못한 아시아는 무엇일까? 여기서 ‘아시아’는 한국 미술인의 실질적인 활동 근거지로서 무한대의 가능성을 간직한 기회의 땅이자, 인물, 사건, 이야기가 뒤섞여 있는 구체적인 실체이며,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 개념이다. 하나이거나 동시에 수만 개인 아시아…. 아시아 미술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한국의 작가, 기획자, 학자 14인의 체험적 에세이, 그 다양한 씨줄과 날줄을 정리해 본다.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입구에 게시된 아시아 지도

첫째, 아시아 미술 네트워크의 주역인 전시 기획자들이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김인혜는 아시아 미술의 현장에서 모종의 ‘연대감’을 확인한다. 그가 만난 아시아 미술인과 지식인의 면면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미지의 세계다. 서준호는 올해 KIAF의 주빈국이자 국제 아트마켓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오른 동남아시아 아트씬의 활기를 소개한다. 독재와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도 문화적 자긍심을 유지해 온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과 한국은 새로운 예술적 교류를 펼칠 수 있을까? 서진석은 한중일 큐레이터와 나눈 오랜 대화를 통해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아시아를 은유한다. 중화권 미술시장의 성장으로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는 아시아 미술의 지형 속에서 한국미술이 차지하는 위상은 과연 어떠한가?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고원석은 서구식 근대화로 이룩한 아시아 경제 성장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미술의 실상을 들추어낸다.

둘째, 작가들은 국제 미술계의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미학적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차이’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다. 김주영은 길떠남의 퍼포먼스 <노마드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 역사의 비극을 위로하듯 제의를 지냈다. 정재철은 동서 문화 교류의 원류인 실크로드의 역사를 재탐색했다. 한국의 폐현수막을 들고 떠난 여정의 기록에서 각 지역의 풍경을 새롭게 그려낸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조숙진은 돌이나 바람에도 생명을 불어 넣는 아시아의 ‘정신성’을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다시 불러낸다. 작가 홍성담과 기획자 최태만은 오키나와를 비롯해 참혹한 근현대사를 공유하고 있는 제주도와 타이완에서 평화와 공존의 화두로 던진다.  

셋째, 미술사학자들은 섣부른 ‘아시아성’의 주장이나, 스트레오타입화된 ‘동양론’에 문제를 제기한다. 김용철과 김영순은 미술 담론에서 상투적으로 거론되는 ‘아시아론’의 함정과 한계를 파고든다. 아시아를 판타지처럼 하나로 묶기보다는 각 국가나 지역 단위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홍가이는 서구 미술 담론의 편향적 허구성을 비판하고, 그것을 추종하는 아시아 미술에도 일침을 가한다. ‘왜 우리는 아직도 서구 입맛의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한편 아시아 미술을 연구하는 토대를 구축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윤범모는 아시아미술관 건립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아시아학(學)’의 활성화와 함께 동시대 아시아 미술 문화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실천이 절실하다. 김현숙은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을 그 대안이자 아시아 미술 연구의 뛰어난 성과 사례로 꼽는다.

Art의 기획 특집 ‘아시아’는 ‘아시아는 하나’라는 패러다임을 주창하는 지역패권주의의 발로가 아니다. 또한 서구 미술계에서 다문화주의의 영향으로 트렌드처럼 일고 있는 아시아 열풍을 무작정 뒤좇는 것도 아니다. 이 기획은 아시아 미술에 관심을 촉구하고, 걸음마 단계에 있는 아시아 미술 연구에 물꼬를 트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아시아 각국은 서구식 근대화에 발맞춰 서로를 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며 내달렸다. 오늘날의 괄목할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는 여전히 문화식민주의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다. 한국도 이러한 상황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아시아와 아시아 미술을 종과 횡으로 꼼꼼히 조망하는 시작과 끝, 그곳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한국미술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와 ‘나’의 얼굴이 투영된 거울 같은….


현실에의 번민, 그 리얼한 풍경

고원석 / 베이징 아트미아재단 예술감독


루오 셩부어 <Memories fade away No.5> 캔버스에 유채 200×135cm

국가주의와 배금주의. 젊은 중국인들의 저항에 발포와 탄압으로 맞섰던 중국 정부가 상처 입은 인민을 달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이식해 온 가장 강력한 무기다. 과거 사회주의에서 공유된 평등과 연대의 가치는 사라지고, 세계의 중심으로 군림했던 과거로의 복귀를 외친지 오래다. 오늘날 넘쳐나는 자본은 이념을 욕망으로 대체한다. 여전히 건재한 정치 권력은 그 자본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제어한다. 14억 인구에 던져 놓은 배금주의의 피라미드에서 최상부를 차지하는 자본은 본질적으로 정치 권력과 다르지 않다. 돈만이 최고의 가치이자 미덕이며, 어떻게든 줄을 대 자본을 손에 쥐어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정글, 그 속에서 살아남아 승리를 쟁취하는 것만이 지상의 목표가 된 모습…. 바로 오늘날 중국사회의 풍경이 아닐까?

1980년대 후반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 속에서 천안문 앞의 봉기를 적극적으로 주도했던 젊은 작가들은 이후 철저한 패배와 파괴로 인한 트라우마를 품고 냉소와 풍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저항의 아이콘들은 익히 목도한대로 미술시장을 강타하며 자본의 물결에 포획됐고, 이후 세대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슬픔을 감추기 위한 냉소가 뜨거운 성공의 쟁취를 위한 형식주의적 냉소로 변모하는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저항의 제스처가 그 진의를 의심받는 이 역설의 시대에 젊은 중국작가들이 보여 주는 정서는 독특하다. 여기서 한국의 관객이 아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두 젊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그러한 정서의 일면을 엿보고자 한다.

동시대 아시아 작가의 고민

중국을 대표하는 미술대학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항저우의 중국미술학원을 갓 졸업한 1988년생 작가 구오 시(Guo Xi)는 <아직 달콤한(Still Sweet)>이라는 설치작품으로 권력과 결탁한 자본의 달콤함을 풍자한다. 중국 인민폐 중 가장 고액권인 100위안 지폐가 갖는 권위의 근거는 종이에 인쇄된 ‘이미지’일 것이다. 그 근거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표면에 인쇄된 이미지를 갈아 내어 추출한 붉은 가루는 투명한 설탕병에 담겨 흔한 형식의 상업 포스터 이미지와 함께 배치했다. 작가는 오늘날 모든 사람이 추구해마지 않는 것이 자본이나, 그것이 세상을 어떻게 지배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안중에도 없는 현실이 기괴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도대체 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구오의 작품은 비교적 진보적인 분위기에서 개념적 성향을 중시하는 학풍의 수혜를 입은 젊은 작가가 가진 문제의식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이하 생략]

[FOCUS] 본업: 생활하는 예술가展, 미쓰-플레이展: 젊은 작가들의 현실과 발언

젊은 작가들의 현실과 발언

본업: 생활하는 예술가展 1. 15~2. 22 두산갤러리 서울
미쓰-플레이展 1. 24~2. 28  인사미술공간

/ 현 시 원


권용주 <만능벽> 혼합재료 122×122×251cm 비디오 5분 2014(앞) / 이우성 <붉은 벽돌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 면직물, 과슈, 페인트 340×1,200㎝ 2014(뒤)_<본업: 생활하는 예술가> 전경

<본업: 생활하는 예술가>(이하 본업)와 <미쓰-플레이>의 전시장에는 가림막이 존재한다. <본업>전의 전시장 정면으로 보이는 가림막은 이우성의 회화 <붉은 벽돌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이중 장치로 기능한다. 관객이 그 뒤로 걸어가면 액자 50점으로 구성된 이수성의 <노동예술 2012~13>을 만날 수 있다. <미쓰-플레이>의 가림막은 장현준의 퍼포먼스 <나는 협소한 창문으로 출입하라>이다. 이곳은 무대이자 관객은 열어 봐선 안 되는 형태로 제시됐다. 때로 이곳은 작가와 관객 1인이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행동의 장소다. 애초에 보였던 것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잠시 가리는 건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작업이 위치하는 최소한의 영토를 점거하기 위해, 달리 말하면 나의 질문과 활동을 드러내 놓고 전시하지 않겠다는 거부 의사를 우회적으로 내뱉기 위해, 두 전시장에서 가림막은 각각 다른 빗장을 세운다.

전시는 무엇인가 보여 주는, 보여 주려는 행위다. 그러나 ‘보여 준다’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허망한 행위에 동승하는 작가와 기획자, 큐레이터 워크숍 등의 미술 제도를 구성하는 주체가 각자 보여 줄 수 있는 부분과 그 부분을 구성해내는 방법론은 첨예하게 다르다. 모두가 다른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 전시를 이루는 일련의 행위에는 오해와 합의가 분리되지 않은 채 끝까지 지속된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여 주는 데 동의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여기서 ‘무엇’은 작가의 작품이면 충분한가? 아니면 기획자의 변별되는 아이디어인가? 또는 이제는 기대하기 힘든 물질적 기반인가?

전시를 둘러싼 오차와 오해

<본업>전의 예술가의 ‘본업과 부업’ 그리고 <미쓰-플레이>전의 오차의 작동법과 오독의 결과를 둘러싼 문제의식은 전시 기획자와 작가의 가까운 곳에서 튕겨 나와 어딘가를 향한다. 두 전시는 2013년에 진행된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과 아르코 신진기획자 인턴십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다. 기획자들은 최소한 자신들이 처한 위치를 적확하게 보려는 의지를 표명한다. 반쪽짜리 현실에서 이미 어느 정도의 실패를 예견해서일까. 이들은 이 의지를 굴려보는 과정 자체에 주목한다. 나와 가까운 여기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출발점에서 시작된 생각의 덩어리는 예술이 또는 전시 기획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의 지점을 마찰시키며 전시를 질문의 장소로 만들어 낸다. 

<미쓰-플레이>는 전시장을 벌어진 틈을 내버려 두는 장소로 이용한다. ‘오해’를 테마화하지 않음으로써 전시는 또 다른 오해의 상태를 경험하는 일종의 유희(play)로 설정됐다. 이러한 시도가 작동될 수 있던 것은 기획자들이 초대한 작가가 그래픽디자이너 강문식, 안무가 장현준, 시각예술 콜렉티브 KKHH(강지윤, 장근희)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본업>전에 참여하는 작가에 비해 예술가라는 수식어로부터 자유롭다. <미쓰-플레이>는 전시장 각 층을 1명(팀)의 작가가 사용함으로써 빡빡하지 않게 공간을 구성했는데, 모종의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각자의 ‘테스크-포스(task force)’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미정, 이설, 이수민, 주현서 4명의 기획자는 “갓 미술 현장에서 발을 내딛는 인턴들은 전시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수많은 오차와 마찰을 경험했다”고 리플릿에 적었다. 기획자들이 완벽한 합의에 수렴하기 위해 찾은 방법은 무엇일까. 이들은 현재 상황과 전시의 조건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오해와 오차의 지점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활용해 흥미로운 망점을 만들어 낸다. 그물코 모양의 작은 점(망점)처럼, 참여 작가의 작업은 차갑게 서로의 작업 외부를 둘러싼다. 


KKHH <여지가 있는 대화> 합판, 사무용품, 혼합재료, 여러 가지 사물로 균형 맞춰 설치 가변크기 2014_<미쓰-플레이> 전경

그래픽디자이너 강문식은 <○○○>에서 ‘종이에 인쇄’라는 평소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적 재료를 그대로 취한다. 한편 방법론적으로는 전시장의 정체성과 전시 주제를 충돌시킨다. 그는 인사미술공간의 외부 조명간판의 원형을 출발점으로 삼은 전시 초대 엽서를 미완성 샘플처럼 제작해, 전시장 안에 헐겁게 세워뒀으며, 관객이 마음껏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조명을 건물 보에 반사해 조각난 원의 형태를 만들었다. 시치미 떼는 장난기 있는 놀이처럼 보인다. 지하에 전시한 KKHH의 설치 작품 <여지가 있는 대화>는 두 작가가 전시장을 번갈아 오가며 완성했다. 마치 스코어 없는 탁구 경기를 보는 것 같다. 전시장 벽에 반사된 슬라이드쇼 <미끄러지는 말들>에는 이들이 설치 과정 중에 나눴던 ‘한정된’ ‘마주칠 수 없는’ ‘물러서고’ ‘제한된’ 등의 단어가 심판관처럼 버티고 있다. 장현준은 전시장 2층을 <나는 협소한 창문으로 출입하라>의 스크리닝 룸과 퍼포밍 룸으로 구성해, 매일 2시간(오후 2~4시) 동안 관객이 참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퍼포먼스가 일어나지 않는 시간 동안 관객은 서로서로 흉내 내며 오차를 생산하는 방법의 흔적(영상, 흰 의자, 가림막)을 보며, 작가의 녹음된 낮은 목소리를 듣는다. (기획자로 추정되는) 상대와의 대화에서 작가는 오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면서, ‘모르는 상태’로서의 수행성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의 비유는 <미쓰-플레이>전의 ‘오해’라는 전시 주제에 부합한다. 작가의 말처럼, “숲에 들어왔는데 숲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가?”

예술과 생활 사이에서 살아남기

이성희, 장순강, 홍이지의 공동기획으로 열린 <본업>전은 ‘20~30대 젊은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다’는 기획 의도가 명확하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4명의 작업은 전시 공간은 물론, 예술과 생활을 교차하는 전시 주제의 일정 부분을 공유하는 형태로 배치됐다. 전시장은 ‘본업’과 ‘부업’ 사이에서 겪은 작가 각자의 경험담으로 채워진다. 그들이 자신이 해 왔던 작업과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어지는 현실의 연장선 위에서 전시에 들어온 셈이다. 권용주는 자신의 전시 디자인 업체 ‘부업’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비디오 영상과 <만능벽>이라는 작품명에 부합하는 빙빙 돌아가는 가벽을 샘플 형태로 제시한다. <만능벽>은 백화점도 홈쇼핑 화면도 아닌 20세기 초반 만국박람회에 놓였던, 시대착오적이지만 미래에서 온 사물을 연상시킨다. 작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쓸모 있는 사물이며 동시에 미술기관의 ‘기술 (인력) 부재’를 자기 풍자하는 모순적인 물체다.


강문식 <○○○> 조명, 미러볼 가변크기 2014_<미쓰-플레이> 전경

권용주와 이수성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전시 디자인 업체 ‘부업’에서 제목의 모티프를 얻은 이 전시는 본업과 부업을 나누는 경계에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의심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전시는 젊은 예술가의 삶이 처한 당대 현실의 불안정한 조건에서 출발한다. 이 조건은 젊은 예술가에게 본업과 부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약간의 가능성도 내포한다. <본업>전은 참여 작가의 본업과 부업이 섞이면서 흥미로운 지점이 발생한다. ‘데일리 코디(dailycodi.com)’라는 웹사이트에 날마다 자신이 입은 옷을 보여 주던 작가 안데스는 ‘취미의 심화과정’이라 말하는, 본인이 세운 끝없는 옷의 구렁텅이를 하나의 기념비로 제시한다. <패배를 위한 기념비>는 밖에서 보이는 건 쌓여 있는 옷 무덤이지만, 내부의 골조는 전시 디자인 일을 해온 작가 이수성이 제작한 공동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수성은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작업의 대상으로 삼고 객관화한다. 이우성의 거대한 그림 뒤로 숨은 이수성의 액자 50점에는 그가 작가로서 최대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며 ‘부업’으로 펼친 전시 디자인과 설치 작업 과정 중에 그린 드로잉이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지 않을 거로 생각한 ‘부업’ 관련 아이디어가 전시기간 동안 그의 ‘작품’이 된다. 이수성의 액자를 완벽하게 가린 이우성의 그림은 예술 또는 노동의 시간을 문제 삼는다. <붉은 벽돌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노동을 형상화한 것도 예술가의 생계 활동을 문제시한 것도 아니다. 작가는 몸을 움직여 그림을 그리는 긴 시간으로 전시 주제에 응답하겠다는 듯, 그림에 등장한 20여 명의 인물을 일일이 찾아 만나는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그의 작품은 뒤 벽면에 걸린 이수성의 액자를 가리는 막 역할을 해낸다. 345×1,200cm의 대작임에도 벽돌 담장에 올라간 모델의 얼굴은 그리지 않았다.

전시란 ‘보는 데’ 시간을 쓰겠다는 암묵적 합의를 전제로 한다. 두 전시는 20~30대 젊은 작가들의 현재를 불러내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두 전시 어딘가(리플릿과 작가의 말)에 위치한 ‘수행’이라는 단어가 매우 다르게 또 폭넓게 사용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본업>에서 기획자가 서문에 이 단어를 언급한다면, <미쓰-플레이>에서 작가 장현준은 전시를 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이 단어에 빗댄다. 여기에서의 ‘수행’은 흐려지고 사라지고 파악하기 힘든 ‘현실’을 제대로 보려는 의지 아닐까. 전시라는 과정을 최대한 경험하려는 다각도의 고민이 빚어 낸 오늘의 괴롭고도 흥미로운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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