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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4.02

Slide

Abstract

Art는 2014년 'Re-mapping Asia'를 키워드로 아시아 미술을 연재 특집으로 다룰 예정이다. 왜, 우리는 아시아에 주목하는가? 국가 간의 경계나 동서양의 지리적 구분이 희미해진 작금, 새삼 '아시아'를 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역주의는 세계주의의 또 다른 발현이다. 따라서 미래의 예술을 가늠하는 가장 적확한 접근 방법은 우리의 주변부터 세심하게 살피는 일이다. 그 첫 시작으로, Art는 오늘의 아시아 미술 지형도를 새롭게 그리고자 한다. Art는 그동안의 단수(singular) 개념이 아니라 복수(plural) 개념으로, 수직적 개념이 아니라 수평적 개념으로 아시아 미술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타이완 태국 홍콩 등 아시아 8개국의 국가별 '커미셔너'를 한 명씩 초대해, 각국의 복잡다단한 미술의 컨텍스트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은 미술평론가, 문화이론가, 큐레이터, 작가 등 해당 국가 아트씬의 구축에 직접적으로 가담해 온 핵심인물이다. 각 커미셔너는 지역의 아트씬을 기반으로 '아시아성(asianness)'에 대한 오늘의 이슈를 제시하고, 그에 부합하는 작가 5명을 추천했다. 이를 토대로 아시아 미술의 다양한 얼굴을 압축한 '지면 전시'를 꾸몄다.

Contents

COVER

          얀 파브르(Jan Fabre) <Zonder Titel> 종이에 Bic 볼펜 150×200cm 1989 ⓒ Photo by Lieven Herreman

 

SPECIAL FEATURE
          Re-mapping Asia Glocal Artists 40

076     INDONESIA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된 혼성의 미학 
          / 알리아 스와스티카(Alia Swastika) 
082     CHINA
          정치적 미술에서 아트마켓으로 
          / 황 두(Huang Du)
088     THAILAND
          시암의 전통을 넘어서
          / 데이비드 테(David Teh)
094     SINGAPORE
          ‘작가-큐레이터’의 멀티태스킹
          / 히만 청(Heman Chong)
100     JAPAN
          아시아, 재해, 미술
          / 사와라기 노이(Sawaragi Noi)
106     VIETNAM
          물질과 재료로 표출된 지역성 
          / 리차드 스트라이트매터-트랑(Richard Streitmatter-Tran)
112     TAIWAN
          동서양의 조우, 융합의 미술 
          / 차이 샤오이(Chao-Yi Tsai)
112     HONG KONG
          로컬과 글로벌, 그 사이에서
          / 영 마(Yung Ma) 

 

PRISM

044     미술교육, 교과서부터 바꾸자! / 윤동천
          문화융성시대, 큐레이터는 ‘파리 목숨’? / 장동광

 

FOCUS

046     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 제여란展: 
          재료의 연금술, 삶의 궤적 / 박소영
          차기율, 안젤름 라일리(Anselm Reyle)展: 
          자연과 문명의 순환 / 윤진섭
          Performa13: 퍼포먼스의 부활 / 김해주
          얀 파브르(Jan Fabre)展: 블루의 시간 / 조 쿠게(Jo Coucke)
          비디오 빈티지展: 비디오의 역사적 징표들 / 임산
          윤정미展: 문학적 진실, 허구적 사진 / 최연하
          노 마운틴 하이 이너프, 적합한 종류展: 
          대안공간 이후의 ‘장소들’ / 윤원화

 

ABROAD

132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제3의 시간들 / 김성원

 

CRITIC 

146     인간 그리고 실존展
          실존의 예술, 예술의 실존 / 김동규
156     ANIMISM展
          살아 있던 것들의 귀환 / 이용우

 

INTERVIEW

124    이영철: 아시아 문화예술의 허브를 꿈꾸다 / 호경윤 

 

ETC.

043    EDITORIAL / 호경윤
171    ART FIELD 
184    P.S 
185    SUBSCRIPTION
186    CREDIT

Articles

[THEME SPECIAL] ANIMISM: 살아 있던 것들의 귀환

ANIMISM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Animism>(2013. 12. 6~3. 2)은 ‘애니미즘’의 동시대적 의미를 고찰한다. 시대를 초월한 시각 자료를 활용한 전시는 서구 근대사에서 외면당했던 ‘애니미즘’적 상상력을 향한 열기로 가득하다. 필자는 일종의 ‘경이로운 방’처럼 꾸려진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왜 지금 ‘애니미즘’을 마주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Art는 전시 출품작과 함께 보다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애니미즘’의 또 다른 이미지를 소환했다. ‘타자’로서 호명된 동양의 애니미즘 서사가 만들 앗상블라주의 정치학을 기대하며….


살아 있던 것들의 귀환

/ 이용우


마르셀 브로에타스 <캐리커처-그랑빌> 80장의 슬라이드 가변크기 1968_J.J 그랑빌의 책 《다른 세계》(1844)의 이미지와 68혁명 사진을  교차했다.


조 데 그루이터, 해럴드 티스 <So Be It>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3

대구역 근처 칠성동 일대엔 한때 마루보시(丸星) 사택이라 불리던 집단 주거공간이 있었다. 1936년 대구역 주변 번화가 일대가 일본인이 운영하던 마루보시1)라 불리는 통운회사로 넘어가면서 마굿간과 관리인의 사택이 속속 건설됐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서울서 피난 온 월남 이주민이 모여들어 이 일대에 빽빽하게 집을 이루면서 차츰 서민의 삶터로 변모했다. 이후 근대화와 산업화의 급물살을 거치며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와 중산층으로의 도약을 꿈꾸던 이들을 위한 중대형 아파트 단지가 하나둘 들어섰고, 고도의 경제발전과 맞물려 이 일대의 집과 공동우물과 골목은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지금 이 근현대사의 압축된 은유로서의 토포스(topos)는 공동 주거단지 개발을 위해 모두 헐리고, 근 80년 만에 처음으로 야생의 민낯을 세상에 드러냈다. 바로 그 자리에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인 개망초2)가 빠른 속도로 증식하며 도시 속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해방 이후 집단 서민 주거시설로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개망초의 씨앗은 이제 또 다른 개발을 위한 짧은 유예의 시간 동안 하나둘 포자해, 근대의 균열을 조장하는 외상의 기억으로 오랫동안 뿌리박고 있던 은폐된 원시성에 대한 아포리아를 소리 없이 발아하고 있다.

원시성과 애니미즘의 재귀적 질문들


지미 더햄 〈롯의 아내도 이해했으니, 과거를 회상하기만 하면 화석화와 퇴적작용이 일어날거야〉 혼합재료 가변크기 1998_의인화된 돌은 국가 내러티브, 정체성, 건축, 기념비 등을 은유한다.


피슐리 & 바이스 〈Rock on Top of Another Rock〉 높이 5.5m 2013

원시성의 귀환은 이처럼 기이한 비실재인 동시에 과거와 근대의 시간을 양분화하는 분기점의 증표로서 우리가 딛고 있던 시공 안에 이미 깊이 내재되어 있었다. 애니미즘적 상상력은 가족, 국민, 인종의 설화들 속에서 늘 범주적 다의성, 인간이 구분지어 놓은 자연과 인간의 경계, 근원적 죄의식과 순수성의 기원으로 작동해 왔다. 혼합과 통일성이라는 근대적 장치들 속에 홀려 있던 근대적 자아는 ‘살아’ 있던 것들의 귀환’이 불러 낸 기이한 증후 너머에서 비틀거린다.

식민후기의 삶은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차 있다. 피식민자는 식민 경험을 통해 체득한 식민지배자의 지식과 경험을 의식적으로 밀어 내려 한다. 하지만 과거의 식민통치자가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편입됨에 따라, 그 그림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비결정의 시기를 살아간다. 그람시의 말처럼 옛것은 죽어 가고 새것이 채 태어나지 못한 이 시기, 유령처럼 죽어 있던 것들이 살아 있는 것들의 삶 속으로 은밀히 스며든다.3) 상상으로만 꿈꾸던 지식의 전 지구적 유통구조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통약불가능한 식민주의 유산이 남겨 놓은 자의식과 성찰의 부재라는 부채를 짊어지고, 유폐된 제국주의 주술경 안을 배회하고 있다. “동양이 서구에 의해 침략당하지 않았더라면 스스로를 인식할 수 없었다”는 타케우치 요시미의 전제를 빌리자면, 인정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비서구 혹은 아시아의 근대는 언제나 서구의 타자였다. 인류학의 외피를 쓴 문화적 다양성, 산업화에 중첩된 무의식의 파편들, 근대화가 낳은 기이한 징후들, 자유주권이 통용되는 공과 사의 삶의 정립이라는 황홀한 가상 지형학(imaginary cartography)의 소용돌이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중의 근대성을 겪으며 이미 죽어버렸다 생각했던 원시와 애니미즘을 재귀시키고 있는 것일까?

문자 체계 이전의 역사는 애니미즘의 서사이자 토테미즘(totemism)4)의 언어였다. 온 세상의 존재가 말할 수 있고 영혼이 있는 주체적 존재라 인식했다. 인류역사상 가장 보편적 세계관인 애니미즘은 인류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오리냑(Aurignac)5) 문화에서도 발현된다. 미지의 장소들, 불분명한 것들, 육신/생명/자연이 생물학이 만들어 놓은 담론 안에 포섭되기 이전, ‘개망초’로 대변되는 원시성은 늘 우리 주변에 있어 왔다. 도시의 교통과 혼잡한 소음 안에서 그것들은 여전히 독특한 소리를 내며 웅성거리고 있다. 길가, 대로변, 풀밭에서 무던히 꽃을 피우고 싹을 틔우는 잡풀들, 유속 느린 한강변의 한여름 밤 마치 히치콕의 영화를 연상시키듯 남한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서울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출몰하는 벌레 떼의 귀환이 상징하는 무언술(無言述)은 우리에게 무엇에 대한 징후인지 결정하게 만든다. 화려한 쇼윈도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아침이면 수북한 사체로 쌓여 가는 동양하루살이6)가 직조해 낸 도시설화적 상상력들, ‘괴물 쥐’ 뉴트리아가 던져 주는 배제와 포섭의 논리, 생태학적 문제들은 한때 온 세상에 충만했던 애니미즘적 마술이 잊힌 무의식의 침묵에서 벗어나 원시의 물화로서, 부유하는 애니미즘의 기표로 회귀해 자본주의의 판타스마고리아로 근대성의 가면을 벗겨 내려는 징표로 읽힌다.

비-인간과 애니미스트적 주체성들


쿠도 테츠미 <Love> 혼합재료 99×119×53cm 1964


마일리 사일러스가 2013년 아메리칸뮤직어워드에서 펼친 <레킹 볼> 퍼포먼스 모습. 자신과 동일시한 가상의 고양이를 백스크린에 투사했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미래의 데자부 속에 의도적으로 배제된 공백이자 부정성으로서의 애니미즘을 비계(飛階) 삼아, 나는 ‘살아 있던 것들의 귀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현재형의 과거들 안에서, 이 이상하리만치 상호모순적인 전제에서 출발해 죽음과 생명의 문제 안에서 급박하게 전개되는 지식권력의 흐름을 상상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더는 서구와 타자의 구분이 지리와 인종학, 종족문화와 민족-국민성과 같은 피상적인 근대적 분류법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자각해버렸기 때문이다. 즉, 이런 구분짓기틀이 서구가 타자와의 관계망으로 의미를 내재화하고 자연화시키는 종족영락(ethnic abjection)7)의 서사이자 탈역사화된 욕망을 주조하는 문화자본의 주형틀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식민 경험을 통해 내재화하고 있다. 
들뢰즈는 과거는 현재를 근거 짓는 선험적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즉, 현재와 과거가 동일한 시간 안에 존재할 때라야 현재의 시간이 흐를 수 있는 것이다. 실존하는 것은 현재에 있고, 과거는 늘 잠재적인 것으로서 존속한다. 하지만 모든 과거가 현재 속에 잠재하지 않는다. 거기엔 단 한 번도 현재였던 적이 없는 과거, 즉 들뢰즈가 말하는 순수과거(passé pur)가 존재하기 때문이다.8) 그렇다면 이미 우리 안에서 죽었다고 생각된 애니미즘의 시간, 순수 과거로서의 원시성을 탈근대의 영역에선 어떤 범주로 묶을 수 있을까? 만일 날 것들의 재림을 일상의 제도화와 지정학적 욕망이 충돌하는 번역의 토포스 이전의 존재론적 문제로 상정할 수 있다면, 이런 증후와 감정의 연결고리는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독해해 낼 수 있을까? [이하 생략]

[ABROAD] 피에르 위그 + 필립 파레노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피에르 위그 〈무제〉 2012_ 퐁피두센터 전시장을 배회하는 동물 두상을 쓴 인물은 그의 초기 작품인 <La Toison d’Or>에서 등장했으며, 사진으로도 전시됐다. 

“이름이 뭐에요?” 전시장 초입에 서 있는 한 사내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는 전시장에 큰 소리로 그 관객의 이름을 외친다.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피에르 위그의 회고전(2013. 9. 26~1. 6)은 이렇게 관객을 전시의 일원으로 동참시킨다. 관객은 전시장에 놓인 사물과 인간과 생명체 사이를 오가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 속을 여행한다. 피에르 위그가 20여 년간 발표한 50여 점의 빛나는 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다.

피에르 위그 / 1962년 프랑스 파리 출생으로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를 졸업했다. 파리시립미술관(1998), 반아베미술관(2001), 구겐하임미술관(2003), 테이트미술관(2006), 멕시코시티미술관(2012), 퐁피두센터(2013)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리옹비엔날레, 마니페스타2, 이스탄불비엔날레, 카셀도쿠멘타 등의 국제전에 참여했으며,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더글라스 고든, 필립 파레노 〈지단: 21세기의 초상〉 영화 92분 2006_축구선수 지단의 경기 모습을 17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실시간 촬영했다. 

팔레드도쿄에서 열린 필립 파레노의 개인전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2013. 10. 23~1. 12)는 관객을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세상의 밖 어딘가’로 초대한다. 이번 전시는 한 작가로는 처음으로 전관을 사용했다. 전시장 입구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드라마틱하게 배치된 사물과 영상, 소음과 음악, 빛과 어둠의 이중주는 우리에게 마술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필립 파레노 / 1964년 알제리 오랑 출생으로 프랑스 에콜데보자르를 졸업했다. 함부르크 쿤스트페어라인(1995), 파리시립미술관(1998, 2002), 스톡홀름현대미술관(2001), 뮌헨 쿤스트페어라인(2004), 퐁피두센터(2009), 팔레드도쿄(2013)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베니스비엔날레, 리옹비엔날레, 이스탄불비엔날레 등의 국제전에 참여했으며, 현재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제3의 시간들

/ 김성원


필립 파레노 <Anywhere Out of the World〉 2013_팔레드도쿄 지하 극장에 등장한 ‘안리’의 실제 인물 모습. 티노 세갈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퍼포먼스 작업으로, 영상 상영이 끝날 무렵 한 소녀가 등장해 “나는 당신과 함께 4차원 세계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속삭인다.

2013년 가을, 파리는 오래간만에 보기 드문 전시 풍년을 맞았다. 10월에 열린 FIAC(파리아트페어)을 전후로 굵직한 대형 전시가 연이어 오픈한 가운데, 전 세계 아트피플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전시는 바로 퐁피두센터의 피에르 위그 전시와 팔레드도쿄의 필립 파레노 전시였다. 이 전시가 유럽 이웃 나라 미술계의 부러움을 샀던 이유는 아마도 요사이 보기 드문 거물급 작가 2명이 모두 프랑스 출신에다가 프랑스의 메가톤급 전시공간에서 극도로 급진적인 전시의 진수를 보여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를 국적으로 구분하며 국력과 결부시키는 일은 물론 시대착오적이다. 이 작가들도 이러한 시선은 물론 원치 않겠지만, 이들이 있음으로써 프랑스 아트씬이 다른 이웃 나라보다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피에르 위그 〈무제(Liegender Frauenakt)〉 2012_몸을 뒤로 기댄 여성 조각의 머리를 실제 벌떼가 가리고 있는 작업으로 <카셀도쿠멘타13>에서 처음 공개됐다.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피에르 위그 회고전 전경. 다리 한 쪽을 핑크로 염색한 흰 개가 전시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어쨌든 매력적인 이 두 작가의 ‘동시개봉’ 전시는 장안의 화제였다. 연이어 2014년에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의 파리시립미술관 개인전이 예고되면서 전 세계 아트피플은 이 세 작가의 행보를 더욱더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는 1998년 파리시립미술관에서 3인 공동개인전이라는 이색적 전시를 기점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파리시립미술관(2002년 파레노의 <Alien Seasons>, 2006년 위그의 <Celebration Park>, 2007년 곤잘레스-포에스터의 <Expodrome>), 퐁피두센터(2000년 위그의 <The Third Memory>, 2002년 곤잘레스-포에스터의 <Exotourisme>, 2009년 파레노의 <Philippe Parreno>)에 초청받았다. 그 외에도 이들은 사실 프랑스보다 국제 미술계의 주요 미술관에서 서로 앞 다투어 러브콜을 받으며 전시 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왔다. 아쉽게도 아시아에서는 그룹전 혹은 비엔날레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 번도 이 작가들의 작업세계를 조망하는 전시가 열린 적은 없다.

전시, 또 하나의 작품이 되다


필립 파레노 〈TV Channel〉 2013_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대형 LED에 <Flowers> <No More Reality> <Anna> <Alien Seasons> <The Writer>가 상영됐다.

필립 파레노, 피에르 위그,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는 이제 명실공히 프랑스 대표 작가이면서 199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국제 미술계의 주역이다. 이 작가들 작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들이 예술을 바라보는 입장,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이들은 우리가 아는 예술의 굴레에서 예술을 바라보지 않는다. 이들은 영화적 혹은 텔레비전 포맷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세대다. 그래서 이 작가들은 예술의 전통 안에서 진화하기보다 그 굴레를 깨고 영화, 건축, 음악 혹은 대중매체의 틀을 차용하거나 각색한다.

또 다른 특징은 ‘우정(friendship)’을 근간으로 친목적 공생을 향한 상호교류라는 매우 이색적인 협업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특히 필립 파레노는 이번 팔레드도쿄 전시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열린 모든 개인전이 사실 그룹전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의 전시는 많은 동료 작가, 과학자, 문인, 음악가 등과의 협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세 작가가 1990년대 초부터 한결 같이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는 부분은 바로 ‘작품의 시간’에 관한 문제다. 1998년 파리시립미술관의 3인 공동개인전(?)의 공통분모 역시 ‘시간’이었다. 피에르 위그는 1990년대 중반 동료작가와 함께 결성한 ‘자유시간협회(Freed Time Association)’를 중심으로 전시를 전개했다. 이 ‘자유시간협회’는 예술의 시간이 생산, 즉 노동의 시간과 어떻게 다르며, 노동의 시간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시간과 예술의 시간이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지속해서 전개해 왔다. 여기서 피에르 위그와 필립 파레노의 여행, 탐험, 축제, 방과 후, 시위, 대안학교 등의 활동을 근간으로 하는 작업이 탄생했다. 생산을 전제로 하지 않는 시간,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러한 비생산적 시간이 예술 프로젝트로 전환되며 예술생산의 새로운 국면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필립 파레노 〈마릴린〉 2007_파레노의 전시에는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 축구선수 지단, 가상의 캐릭터 안리 등 3명의 인물이 중심축으로 등장한다. 

이 전시를 기점으로 이 세 작가는 ‘따로 또 같이’ 시간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과 특이한 방식을 제안하며 2000년대 국제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했다. 필립 파레노는 ‘협업’의 대가답게 공동작업의 새로운 국면과 가능성을 풍요롭게 제안해 왔고, 피에르 위그는 이 세상을 시각적 언어로 이야기하는 ‘비주얼 스토리텔러’로 ‘재현’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형태 생산에 집중했다.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는 우리가 매 순간, 어떤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feeling)’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인물, 도시, 사건의 초상화를 제작하는 필름메이커가 됐다. 이 모든 특수한 작업 방식과 병행해서, 세 작가는 모두 ‘전시를 창작 행위로 생각한다’는 점이 공통분모다. 이들에게 있어서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보여 주는 시공간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전시가 곧 작품이다. 전시가 곧 콘셉트이자 주제가 된다. 그래서 이들의 전시는 ‘작품’으로서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의 전복적인 상황을 즐겨야 한다.


필립 파레노 〈Danny La Rue〉 2013_암흑의 전시장에 설치된 크기와 모양이 다른 16개의 마키가 동시다발적으로 켜지고 꺼지면서 묘한 리듬감을 형성한다. 

피에르 위그의 퐁피두센터 전시와 필립 파레노의 팔레드도쿄 전시는 한 달 간격으로 연이어 오픈했다. 두 작가의 전시가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막 50세를 넘어선 이 두 중견작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급진적인 방식으로 이색적 협업을 시도해 왔다.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생각을 함께 진전시키며 공동으로 예술 활동을 지속해 왔다. 20년이 넘도록 예술의 모든 것을 공유(?)해 온 이 두 작가의 각기 다른 회고전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이들의 작업세계는 무엇이 유사하며 무엇이 다른가? 아마도 이 두 회고전의 묘미는 비슷하다고만 생각했던 이 두 작가들의 전혀 다른 귀결에 있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회고전이라는 구태의연한 전시방식을 시간, 기억, 유령(ghost), 흔적 그리고 상황과 프로그램에 연결하며 회고전의 새로운 형태를 제안하는 점 또한 흥미로운 요소다. [이하 생략]

[SPECIAL FEATURE] Re-mapping Asia, Glocal Artists 40

Re-mapping Asia, Glocal Artists 40


콴승치 〈Hong Kong〉 종이에 프린트 29.7×42cm 2012

Art는 2014년 ‘Re-mapping Asia’를 키워드로, 아시아 미술을 연재 특집으로 다룰 예정이다. 왜, 우리는 아시아에 주목하는가? 국가 간의 경계나 동서양의 지리적 구분이 희미해진 작금, 새삼 ‘아시아’를 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역주의는 세계주의의 또 다른 발현이다. 따라서 미래의 예술을 가늠하는 가장 적확한 접근 방법은 우리의 주변부터 세심하게 살피는 일이다. 그 첫 시작으로, Art는 오늘의 아시아 미술 지형도를 새롭게 그리고자 한다.

아시아 미술을 논하려면 가장 먼저 ‘아시아’를 규정해야 한다. ‘아시아’라고 하면 흔히 중국이나 일본  같은 극동아시아 몇몇 국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아시아는 매우 방대한 지역을 지칭한다. 아시아는 우랄산맥과 카스피해 동쪽으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유라시아대륙의 중부와 동부 전 지역을 통칭한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서남아시아까지 포함하면 총 50여 개의 국가가 아시아에 포함된다. 지구상 전체 육지의 30%를 차지하며, 인구는 전체 인류의 60%다. 면적은 유럽의 4.4배, 인구는 5.3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과 미국이 주도했던 이른바 서양중심주의의 수레바퀴 속에서 아시아 미술은 늘상 ‘타자의 눈’으로 기술되어 왔다. 따라서 모더니티와 컨템포러리의 전개 과정에서 아시아 미술은 서구의 미술 양식이나 미학 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면이 너무나 많다.

Art는 그동안의 단수(singular) 개념이 아니라 복수(plural) 개념으로, 수직적 개념이 아니라 수평적 개념으로 아시아 미술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타이완 태국 홍콩 등 아시아 8개국의 국가별 ‘커미셔너’를 한 명씩 초대해, 각국의 복잡다단한 미술의 컨텍스트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은 미술평론가, 문화이론가, 큐레이터, 작가 등 해당 국가 아트씬의 구축에 직접적으로 가담해 온 핵심인물이다. 각 커미셔너는 지역의 아트씬을 기반으로 ‘아시아성(asianness)’에 대한 오늘의 이슈를 제시하고, 그 내용에 부합하는 작가 5명을 추천했다. 이를 토대로 아시아 미술의 다양한 얼굴을 압축하는 ‘지면 전시’를 꾸몄다.

총 40인의 작가들은 아시아 고유의 로컬리즘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글로벌리즘 양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전통과 현대의 혼성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다른 문화와의 적극적인 만남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공통점을 보여 주었다. 반면 지역의 자연환경, 미술계 인프라 구축의 과정과 시스템에 따라 작품의 주요 관심사는 물론 재료와 스케일까지 차이를 보였다. 또한 최근 아시아 몇몇 지역에서 발발한 자연 재해로 정서적 ‘일체’가 된 아시아성을 작품에 적용한 경우도 있었다. 


THAILAND

① 수도: 방콕 ② 언어: 타이어 ③ 종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④ 면적: 51만km2 ⑤ 인구: 3700만명 ⑥ 화폐: 밧(Baht) 
⑦ GDP: USD 10300 ⑧ 예술기금: USD 205610069 ⑨ 미술대학, 전체 학생 수: 16개, 2656명 
⑩ (컨템포러리아트를 다루는) 미술관, 상업화랑, 비영리공간, 예술재단: 11, 103, 35, 7곳
⑪ 비엔날레: 파타야비엔날레

1914 제1차 세계대전 중립 선포
1917 제1차 세계대전 연합국으로 참전
1932 무혈 쿠데타 후 헌법 공포 및 입헌군주국 발족
1932~1933 초대 총리 프라야 마노빠꼰 니띠타다 집권
1932~1992 60년간 군부독재정권 집권
1939 ‘시암’에서 ‘타이’로 국호 변경
1945 국호 ‘시암’으로 변경
1946 국제연합(UN) 가입
1946~현재 제9대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 집권
1949 국호 ‘타이’로 변경
1958 대한민국과 수교
1967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설립 멤버
2006 손티 분야랏끌린 육군 총사령관 쿠데타로 
탁신 친나왓 총리 실각
2011~현재 제37대 최초의 여성 총리 잉락 친나왓(탁신 친나왓의 막내 여동생) 집권

시암의 전통, 민족주의를 넘어서
/ 데이비드 테


데이비드 테는 1922년 호주에서 출생했다. 동남아시아 예술을 중심으로 큐레이터이자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태국과 호주, 싱가포르를 오가며 활동하며, 현재 싱가포르국립대에서 영문학과 교수이자 프로젝트 플랫폼 퓨처퍼펙트갤러리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아트아시아퍼시픽》, 《LEAP》, 《제3의텍스트》 등에 기고했다.

아시아의 예술가들은 오랫동안 ‘본질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작업해 왔다. 특정 문화를 정의하는 고정적 본질적 특성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초기 이국주의에서부터 시작된 이런 믿음은 식민주의에 의해 제도화됐고, 민족주의가 이를 고스란히 흡수해 타 문화권에 수출하기 위해 ‘포장’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본질주의는 세계화에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일방향적 미디어 이후에 등장한 네트워크 중심의 쌍방향적 미디어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문화적 교류가 이뤄지는 토대를 마련했고, 자연히 혼종적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태국의 문화란 ‘혼종성’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태국이라는 나라가 ‘민족적 정수’에 집착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태국의 민족주의는 식민화 이전의 시암(Siam)이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에 기초한다. 과거 몇몇 국가들처럼 문화적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민족 배경을 날조하려 하기도 했다. 그 결과, 태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더욱 고독하고 험준한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태국 미술계에서 ‘시암의 전통’이라는 이국적인 개념은 1980년대 경제호황기에 정점을 이뤘다. 태국 현대미술은 ‘시암의 미소(Siamese Smile)’와 같은 국가적 정형의 역설적 비평을 중심으로 1990년대에 급부상했다. 이는 태국 모더니티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였다. 태국의 사진사와 복식사는 무엇이든 흡수하려는 국가적 정체성이 낱낱이 드러난다. 그 예로 아시아 유럽의 군복과 귀족 의상을 입은 사진, 태국 내 소수민족의 민족의상을 모아 둔 카탈로그 등이 있다. 그 외에도 근대화를 위해 전 국민이 서양식 의복만 입도록 규제하기도 했다.

후기산업사회에서 ‘자연주의’를 논하는 것은 낭만적 노스탤지어에 빠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기타 지역에서는 아직도 육체적 노동이 집단 무의식과 경제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방콕 시내를 걸어 다니며 정치적 영향력을 직접 측정하고, 알량한 민족주체의식을 내려 놓을 때에만 ‘전세계적 척도’로서 태국의 컨템포러리 아트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Araya Rasjdamrearnsook


아라야 라스담레아릉숙 <Village and Elsewhere> 비디오 14분 27초 2011

아라야 라스담레아릉숙은 서양미술의 오리지널리티를 타파하고, 다른 문화권에서 현대미술 작품을 수용하는 방식이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한다. 19세기 서양 거장들의 현대미술 작품 복제본을 관람하는 지역주민과 작가의 시선을 교차시키며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재고한다. / 1957년 태국 트라드 출생. 방콕 실카폰대학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했다. 방콕국립미술관(2002), 스톡홀름 텐스타미술관(2003), 방콕 100톤슨갤러리(2007)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헬싱키 키아스마현대미술관(2007), 카를스루에 ZKM(2007) 등에서 열린 기획전에 참여했다.

Chulyarnnon Siriphol


츄라야르논 시리폴 <Planking> 싱글채널 SD 디지털 비디오 3분 2012

츄라야르논 시리폴은 영상 매체를 이용해 사물을 대하는 사색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Planking>은 오전 8시와 오후 6시에 국가가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이 자리에 멈춰 있는 모습을 담은 영상으로, 블랙유머를 사용해 비주류 영상 감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 1986년 출생. 랏끄라방몽꿋공과대학 영상학과 졸업. 제15회 태국단편영화페스티벌(2011), 제12회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2012) 등에 참여했으며 방콕예술문화센터(2011), 싱가포르현대미술관(2012), 태국 넘쏭갤러리(2013)에서 열린 기획전에 참여했다.

Thakol Kao Sa-ad


왼쪽부터 · 타콜 카오 사아드 <Mai Sork(Measuring Stick)> 제작과정 기록사진 2014 / <Mengkaproon(Jellyfish)>

타콜 카오 사아드는 현실과 환상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 담아 실재와 비실재가 동일한 차원에 존재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절단된 신체, 신체에 폭력을 가하는 무기 등을 초현실적 화풍으로 그려낸다. 최근에는 회화뿐만 아니라 나무를 이용한 조각도 제작하는데, <Mai Sork(Measuring Stick)>은 비록 눈금은 적혀 있지 않지만 인간의 신체가 함께 작동하면 나무막대기가 ‘자’와 같은 측정의 기능을 할 수 있다. / 1977년 출생. 갤러리VER(2008년)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Kornkrit Jianpinidnan


프랏챠야 핀통 <Year without a Summer>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3 

코른크리트 지앙피니드난은 사진작가로, 태국의 북부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익히 보아온 태국의 자연 풍경을 낭만적인 시선으로 포착한다. 북부에 위치한 프라야 프랍 산(Phraya Prab Mountain)에 사는 지역주민들에게서 전승신화나 설화를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든다. / 1975년 태국 치앙라이 출생. 치앙마이대학에서 사진과 판화를 전공했다. 현재 방콕에서 활동 중이다. 출라롱콘대학 아트센터(2006), 치앙마이 F갤러리 (2007), 방콕 VER갤러리(2009)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쿠알라룸푸르 발렌타인윌스파인아트(2011), 족자카르타 랑겡미술재단(2012) 등에서 열린 
기획전에 참여했다.

Pratchaya Phinthong


코른크리트 지앙피니드난 <Living in History>전 설치 전경 2010 

프랏챠야 핀통은 다양한 지리적 위치와 경제 시스템을 넘나드는 작품을 제작한다. <Year without a Summer>는 치앙마이 동물원에서 개최될 북극 전시에 출품 예정이었던 작품으로, 1815년부터 현재까지 ‘엑시트 빙하(Exit Glacier)’의 위치를 찍은 사진들이다. 엑시트 빙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그 위치가 계속 바뀌고 있다. / 1974년 출생.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파리 gb에이전시(2007), 베르가모현대미술관(2011), 벨기에 겐트키오스크(2013)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제6회 베를린비엔날레(2010), 제7회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2011), 모스크바비엔날레(2013) 등에 참가했다. 

[FOCUS] 비디오 빈티지展: 비디오의 역사적 징표들

비디오의 역사적 징표들

/ 임산

비디오 빈티지展 2013. 10. 2~12. 3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비디오 빈티지: 1963~1983> 전경_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소장한 비디오아트 컬렉션 중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52명의 작가와 작품 72점을 소개한 전시. 1960~70년대 비디오아트의 역사를 태동기에서부터 회고한다. 전시는 퍼포먼스와 셀프 촬영, 텔레비전의 발전과 관련된 경험들, 개념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들을 탐색한다. 비디오가 등장하던 시기와 같은 관람 환경이 빈티지 스타일로 연출한 공간에 재현됐다.

빈티지풍의 소파와 테이블, 지금은 전자제품 매장에서 볼 수 없는 브라운관 텔레비전, 그리고 이들 소품 사이에서 편안하게 앉아 있는 관객의 모습은 50여 년 전 서양의 어느 부르주아 가정 거실에서의 저녁 한 때를 연상시킨다. 이런 구성의 세트는 전시장 군데군데 마치 섬처럼 퍼져 있다. 서로 다른 카펫 위의 각 섬에는 번호가 매겨져 있어서 관객은 짧게는 1~2분, 길게는 1시간 동안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화면을 본 후 다음에 이어지는 번호의 섬으로 옮겨가 다시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비디오 빈티지: 1963~1983>전의 전시장 풍경을 간단히 스케치해 봤다. 덧붙이자면, 이 여러 섬을 둘러싼 원형 벽에는 전시회의 내용적 구조에 대한 이해를 돕는 텍스트와 사진 자료가 전시돼 있다. ‘빈티지 와인’이라는 표현이 질 좋은 고급 와인을 대신하듯이, ‘비디오 빈티지’는 반세기가 넘어가는 비디오아트의 역사에서 ‘선별된’ 비디오 작품임을 암시한다. 그 ‘선별’의 출처는 프랑스 퐁피두센터 뉴미디어컬렉션이다. 즉, 이번 전시에 소개된 52명 작가의 작품 72점은 모두 퐁피두센터가 소장한 작품이다. 퐁피두센터 뉴미디어부를 이끄는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틴 반 아쉬(Christine van Assche)가 기획한 이 전시는 2012년 2월 파리 퐁피두를 시작으로 독일 카를스루에의 ZKM과 레바논의 베이루트아트센터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으로 이동 전시한 이른바 ‘국제 순회 전시’이다. 전시장 자체의 규모와 형태 때문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퐁피두에서 제작한 매뉴얼을 따르는 전시장 공간연출은 각 나라가 거의 흡사한 빈티지 세팅을 보여 줬다.

비디오아트의 다층적 변천사

크리스틴 반 아쉬는 굵직한 비디오아트 전시회를 여러 차례 기획한 바 있는 베테랑 큐레이터이다. 캐서린 데이비드와 레이몽 벨루르와 공동 큐레이팅한 <이미지의 통로(Passages de l'image)>(1990), 시각예술과 전자음악 사이의 관계성을 조명해 당시 급부상한 사운드아트 장르의 역사와 현재적 실천 상황 등을 재고찰한 <소닉 프로세스(Sonic Process)>(2002) 등을 그의 대표 전시로 꼽을 만하다. 미술관 소속 큐레이터로서 그의 전시와 텍스트는 주로 비디오와 컴퓨터 작품을 다루면서도 기계적 미디엄의 형식성에 제한되지 않고 미디어아트의 초장르적 성격을 구성하는 여러 분야에 대한 총체적 해석을 시도해 왔다. 이번 <비디오 빈티지>전 역시 그러한 일관된 역사적 관심과 연구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처럼, 전시 제목에 구체적인 연도를 표기하는 방식은 역사화의 의도를 전경화하려는 기획자의 방향성을 포함한다. 필자는 크리스틴이 기획한 또 다른 전시에서 이러한 경향을 목격한 바 있다. 지난 2006년 가을, 미국 마이애미아트센트럴(MAC)에서 열린 전시 <비디오: 예술, 역사, 1965~2005>에서 크리스틴은 백남준의 1965년 작품 <달은 가장 오래된 TV이다>를 출품작 가운데 가장 초기의 역사적 작품으로 설정했다. 이후 당대에 이르는 비디오테이프와 비디오설치,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을 포괄하는 비디오의 역사를 정리했다. 이와 유사하게 <비디오 빈티지>전에서 큐레이터 크리스틴 반 아쉬가 제시한 역사화 방식은 비디오아트의 태동 이후 20년 동안 제작된 비디오작품들 가운데 빈티지 와인처럼 유명한 것을 골라 ‘퍼포먼스와 셀프 촬영’ ‘텔레비전: 연구, 실험, 비평’ ‘태도, 형식, 개념’의 3가지 섹션으로 느슨하게 구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전시가 소속 미술관의 컬렉션에 기반해 기획된 ‘국제 순회 전시’이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작가를 중심으로 꾸려졌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한다. 객관적인 비디오아트의 역사를 보여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기보다는 비디오아트의 다층적 변천사에 대한 하나의 관점이 작품들 사이에 밀도 있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1963~1983’이라는 시간대에 걸쳐 이루어진 비디오(테이프, 카메라, 레코드플레이어, 텔레비전 등)의 기술적인 조건과 심미적인 실천에 대한 기획자의 독창적인 역사화 관점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비평적인 전시 관람의 기초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전시에서 많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특징 중 하나는 디스플레이 형식이다. 그것은 갤러리가 아닌 가정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을 제공한다. 비디오아트 전시가 지난 30년 동안 관객을 작품 앞에 붙잡아 두기 위해 다채로운 디스플레이 전략을 시도했었고 오늘날에도 고민을 계속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빈티지 세팅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 같다. 몰입이나 편의의 차원, 혹은 지나간 과거와의 심리적 동질감 구축에 그치지 않는다. 1950년대 후반부터 형성된 텔레비전 문화와 비디오아트의 탄생을 직접 연관 지어 텔레비전 미디엄과 비디오아트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단순히 ‘비디오카메라’ 기계의 상품화에서부터 비디오아트의 역사를 추적해 온 관습을 향해 자연스럽게 문제 제기하는 학술적 효과 또한 이룰 수 있는 구성이다. 여기서 전시기획자의 초점은 예술형식으로서의 텔레비전을 이제 하나의 예술장르가 되어버린 비디오아트의 물적 토대로서 역사화하는 데 있지 않다. 그렇다고 전시장의 구식 텔레비전 대부분이 예술가의 실험적인 비디오카메라 초기 작업을 미술관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기계 장치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다. 자칫 기획자의 의도가 기존 비디오아트의 선형적 역사를 반복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나,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텔레비전 시청의 향수를 전한 것일 뿐이라는 비판에 직면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획자는 비디오아트 태동기에 비디오카메라를 미적 도구로서 대한 예술가의 복합적인 반응을 퍼포먼스 아트, 플럭서스 그룹,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페미니즘, 실험영화 등 예술사의 여러 세부 장르로부터 소환해 되돌아보는 데 텔레비전을 동원했다. 그래서 텔레비전은 관객이 비디오아트 초기의 다층적 역사를 상상하게 만드는 미디엄으로 기능했다.

비디오아트의 역사화라는 과업


빌 비올라 <뒤집힌 텔레비전 관람자의 초상, 편집 테이프> 비디오 15분 1983~84_ <비디오 빈티지>전의 핵심은 관객. 빌 비올라는 이 작품에서 영상을 보는 익명의 관객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에 속한 비디오 작품은 주로 1970년대에 집중됐던 젠더 정치학과 저항적 사회 참여, 그리고 자기정체성 확인을 위한 심미적 시도 등의 목적으로 행해졌던 퍼포먼스를 비디오 촬영의 주요 원천으로 삼고 있다. 특히 당시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급속히 번창했던 부엌 용품 사업과 더불어 여성에게서 구매 욕구를 지속적으로 끌어내는 데 기여한 텔레비전 요리프로그램을 패러디하며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을 비판한 마사 로즐러의 <부엌의 기호학>(1975)은 페미니즘 비디오아트의 대표작으로서 이 섹션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또한 댄 그레이엄의 <행위자/관람자/거울>(1975)은 비디오의 중요성을 감시의 유형으로서 일깨워주고, 동시에 비디오 피드백의 나르시시즘적 측면을 확장하는 데 관여함으로써 지배적인 텔레비전 문화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맞선 초기 비디오아트의 대안적 위상을 대변한다.

두 번째 섹션에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역사적 맥락은 갤러리 콘텍스트를 벗어난 비디오아트가 공공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전시 방식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백남준의 1963년 전시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 이후 ‘실험 텔레비전’의 표현적 잠재성을 개발하고 비디오 영상처리 기술의 진화를 꾀하던 비디오아티스트는 공영방송국에서 제공하는 프로덕션과 포스트-프로덕션 장비의 도움을 받아 텔레비전 방송에 작품을 출품할 수 있게 되었다. 프레드 바지크가 감독한 <비디오: 더 뉴 웨이브>를 비롯해 백남준, 로베르 필리우, 피터 바이벨, 로버트 윌슨, 발리 엑스포트 등의 작품은 비디오아트의 역사가 공공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 생산 정책과 만난 결정적 증거들이다.

마지막 섹션은 비디오 미디엄을 신체 행위의 미적 속성으로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한 일군의 작가로 채워졌다. 이들은 비디오가 인간의 시각 조건들을 재창조하는 능력을 탐구함으로써 기존의 예술사에서 회화나 조각, 혹은 언어가 담당했던 표현 영역에 개입하는 비디오의 세계를 질문한다. 초기의 정치적 행동주의에 동원됐던 비디오카메라는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점차 사변적이고 개념적으로 변해갔다. 티에리 쿤젤의 짧은 화면이 말해 주듯, 이 섹션에서는 비디오 테크놀로지의 세련됨을 응용하기보다는 예술가 자신의 인식적 변화를 관객의 경험과 공유하는 데 더욱 집중하는 작품이 상영된다.

이렇게 <비디오 빈티지>전은 그 역사적 관점의 범위가 촘촘하게 엮어져 있지는 않지만 비디오아트의 역사화라는 과업을 주도하고 싶음을 숨기지 않는 전시이다. 비디오아트의 역사화는 움직이는 영상의 기록과 의미화, 그리고 제도화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 구성요소들의 입장과 기능에 대한 비평적 사유를 이론화하는 작업이다. 단지 비디오작품에 대한 쉬운 이해를 도모하거나 그들을 질서정연한 체계로 포장하려고 하는 역사화가 아니라면, 그것은 텔레비전이 파생한 이념적, 기술적 기운에 대한 시대적 반응들과 그와 연관된 탈중심적인 미적 실천을 아우를 수 있는 안목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비디오 빈티지>전이 제시하는 프레임 역시 현재 요구되는 역사화의 의지 가운데 하나로 평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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