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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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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무엇이 컨템포러리한 미술잡지인가? 잡지의 어원은 네덜란드어 magazine으로, '창고'라는 뜻을 가진다. 컨템포러리는 라틴어 com(함께)과 tempus(시간)의 합성어로 '함께 보내는 일시적인 시간'으로 직역할 수 있다. 미술잡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찰나의 시간을 역사로 기록해 보관하는 일종의 '문화창고'라고 할 수 있다. 컨템포러리 미술잡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잡지를 읽는 것이 컨템포러리 아트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rt는 세계적인 주요 미술잡지의 편집장의 인터뷰와 세계 미술잡지들을 수록한 인덱스를 싣는다. 이번 특집은 '문화 창고'에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모으고 있는지 보다 넓은 스펙트럼으로 펼쳐진 해외 미술잡지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현 주소 또한 명확히 파악하고자 기획했다. 잡지는 분명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의 에디터들은 며칠 밤을 새면서 잡지마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컨템포러리 아트에 가장 적합한 형식을 찾고, 오늘의 아트저널리즘에 대해서 고민할 것이다.

Contents

COVER

        앞에서부터 · 아트인아메리카 1996년 10월호 / 미술수첩 2009년 1월호 / 파켓 2012년 91호 / 아트아시아퍼시픽 2013년 3, 4월 82호

 


SPECIAL FEATURE
          What is Contemporary Art Magazine?

086     인터뷰
          오늘의 글로벌 아트씬, 어떻게 다루는가?
          / 미술수첩, 아트아시아퍼시픽, 아트인아메리카, 아트링크
          현장과 이론 사이 잡지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 아트포럼, 익시비셔니스트, 프로그, 애프터올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 파켓, 아트프레스, 무스, 오픈 
116    인덱스
          세계 미술잡지 100


ARTIST

124     김진
          카오스의 풍경 / 이선영
130     이혜인
          완벽한 ‘회화’적 순간 / 정연심


CRITIC

058     FOCUS
          텔 미 허스토리展: 여자, 여자, 여자 / 이필
          푸시 라이엇: 러시아 ‘쌈닭’의 혁명 / 양효실
          백남준 온 스테이지, 더그 에이트킨展: 
          ‘비디오아트’의 쿨한 랑데뷰 / 함영준
          세계의 네 모서리展: 사각형에 대한 경의 / 김정복
          윤석남, 임동식展: 거울신화, 우물신화 / 김종길
          심수구展: 평면에서 매스로 / 윤진섭
          안규철, 홍정표展: 구축과 소멸, 두 수평선 / 안소연


SERIES

151     On Contemporary Art
          ‘미래의 과거’를 채집하는 현재 / 주앙 리바스


ABROAD

141     이스탄불비엔날레
          다시, ‘공공’을 묻는다 / 구정원
160    Singapore Report
          아시아의 새로운 아트 인더스트리 / 호경윤


ART LAB

136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지속가능한 공공예술 / 김재석


ETC.

055    EDITORIAL / 김복기
165    ART FIELD
179    SUBSCRIPTION
178    P.S
180    CREDIT

Articles

[ART FIELD] 뉴욕 아트북페어: 책으로 펼치는 또 다른 미술축제

책으로 펼치는 또 다른 미술축제

/ 이은정 해외특파원

뉴욕 아트북페어 9. 20~22 MoMA PS1


제8회 뉴욕 아트북페어 전경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한 뉴욕 아트북페어가 열렸다. 전세계 300곳이 넘는 출판사가 참여, 수많은 인파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프린티드매터(Printed Matter)는 1976년 작가에 의해, 작가를 위해 탄생한 비영리 출판사다. 당시 부족한 전시 공간과 자금난으로 고민하던 솔 르윗(Sol Lewitt)은 책이라는 매체를 자신의 작품 아이디어 작업노트 등을 전시할 수 있는 표현의 장으로 삼았다. 오늘날에도 프린티드매터는 작가들이 미술계에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직접 출판하는 아트북을 통해 물리적 전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 활동을 지속하며, 대중은 보다 저렴한 가격에 작가의 작업 세계를 접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15,000여 권의 아트북을 무료로 읽을 수 있는 공공 도서공간을 제공하는 등, 아트북의 홍보와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이번 아트북페어 역시 미술 출판사간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아트북과 미술 관련 출판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인지도를 높이려는 취지다. 아트북페어는 미술계의 틈새시장을 노렸다.


제8회 뉴욕 아트북페어 전경

북페어에서는 아트북 이외에도 다양한 미술 관련 소품을 판매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값비싼 작품을 눈으로만 즐겨야 하는 아트페어에 반해 아트북페어에서는 원한다면 충분히 구매가 가능한 가격대의 책과 상품을 판매한다는 장점이 있다. 아트북페어 참가로 누구보다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출판사다. 소규모의 독립 및 신생 출판사들이 자신의 책을 홍보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미술출판사와 소수의 타깃 고객층 사이에 다리를 놓는 중요한 행사다. 이번 아트북페어에서는 《아트인아메리카》 《프리즈》 같은 대형 미술 잡지사와 가고시안갤러리, 파폴라쿠퍼 같은 유명 갤러리의 부스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형 잡지사와 갤러리의 참여를 통해 다양성을 추구한 점, 많은 참여부스와 방문객을 모은 점은 긍정적이다. 많은 대중에게 아트북을 홍보하고자 한 취지 또한 바람직하다. 그러나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각 부스를 제대로 구경하기 힘든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앞으로 뉴욕 아트북페어의 뚜렷한 정체성 및 전문성의 확립을 위해서는 한정판 아트북 및 독특한 미술 아이템을 판매한다는 본연의 의미를 잃지 않고, 질적 측면의 개선 또한 필요할 것이다.

[ABROAD] 이스탄불비엔날레: 다시, ‘공공’을 묻는다

제13회 이스탄불비엔날레

제13회 이스탄불비엔날레(9. 14~10. 20)의 큐레이터 훌리야 에르뎀지(Fulya Erdemci)는 올해 초 “엄마 나는 바바리안 인가요?(Mum Am I Babarian?)”라는 질문을 던지며 야심찬 포부를 밝힌바 있다. 그러나 개막하기 3개월 전 비엔날레의 계획을 전면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터키 전역에서 일어난 시위에 수 백만 명의 시민이 참여하고 사상자가 발생해 예술이 가져야할 동시대적 역할과 현대적 ‘공공(Public)’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수면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60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거주하고 비엔날레와 디자인비엔날레가 개최되는 곳이지만 이스탄불은 여전히 표현의 자유에 목말라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도시의 모든 공공기관을 제외한 사립공간을 전시공간 삼아 터키가 맞닥뜨린 사회상을 현대미술로 풀어 낸다. 예술이 대중이라는 집단 내에서 가질 수 있는 프로파간다와 사회와의 관계, 미술축제인 비엔날레가 가져야 할 지시성 등. 전방위의 질문이 교차한 현장을 현지를 직접 방문한 필자를 통해 집중 조명한다.


다시, ‘공공’을 묻는다

/ 구 정 원


에비네르 〈Co-action Device: A study〉 퍼포먼스 가변설치 2013

비엔날레가 지니고 있는 지적인 실험성과 생산성은 이미 그 의미가 쇠퇴한지 오래다. 비엔날레협회에서 집계한 전 세계 135개의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와 매해 개최되는 아트페스티벌까지 더하면 그 수가 200여 개에 육박한다. 사실 대부분 비슷한 주제와 중복되는 작가들, 비슷한 프레임 안에서 구성된 최근의 대형 아트 이벤트는 보도자료 만으로도 어떤 전시일지 예측할 수 있을 정도다. 그동안 미술사에서 열외로 취급됐던 비서구권 지역의 현대미술 현장에서는 ‘후기식민주의’ 이론을 내세우거나 ‘글로컬리즘(glocalism)’라는 기치 아래, 각기 지역적 특색과 뿌리 찾기에 나섰고, 이에 따른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정치적 선전 문구 같은 거대 담론을 구체화할 만한 학술적인 리서치와 대안적인 메시지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엄마 나는 바바리안인가요?

앤트레포 No.3의 전시전경

그러던 중, 올해 초 제13회 이스탄불비엔날레의 큐레이터로 선정된 훌리야 에르뎀지(Fulya Erdemci)가 발표한 다소 도발적인 타이틀은 국제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Mum, Am I Babarian?” 누가 엄마고 누가 바바리안이란 말인가? 이 전시 제목은 터키의 저명한 시인 랄레 뮐듀(Lale Muldur)의 1998년 저서에서 차용한 것이다. 여기서 바바리안은 고대 그리스어 ‘바바로스(barbaros)’를 어원으로 그리스 시민이 아닌 타자를 문명화되지 않은 사람으로 비하해 일컫는 의미에서 파생된 단어다. 다시 말해 바바리안은 한 특정 집단의 패러다임에 상응하지 않는 다른 집단을 비하하고 배척하는 집단 우월주의와 편협한 이기심이 뿌리깊이 박혀 있는 단어로 주체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여기서 랄레 뮐듀는 시문학이라는 절제된 표현 방식으로 언어가 가지는 공공의 패러다임에 대한 이슈를 제기한다. 이에 에르뎀지는 비엔날레를 통해 절제되고 제한된 자율성을 지닌 현대미술이라는 매개체로 터키를 비롯한 현대 도시가 직면한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고 고찰하고자 했다. 즉, 그는 동시대적인 현상에서 바바리안의 정의를 제도권의 영역에 들지 않는 약자, 즉 비서구인 이교도인 소수자 은둔자 무정부주의자 등의 단어로 정의하고 여기에 더하여 인습과 제도에 변화를 시도하는 사회 활동가, 아티스트와 대중으로 확장시킨다.


디에고 비앙키 〈Market or Die〉 퍼포먼스 가변설치 2013

훌리야 에르뎀지는 암스테르담의 공공미술 전문 기관인 SKOR(Foundation for Art and Public Domain)의 디렉터를 지냈고, 지난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터키 국가관을 맡았다. 또한 지난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이스탄불비엔날레의 디렉터를 역임하다 올해는 직접 큐레이터로서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이스탄불 전역을 비엔날레의 현장으로 탈바꿈시켜 현대미술을 통해 “정치적 토론의 장으로서 공공의 영역에 대한 관념을 재인식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기존의 화이트큐브식 전시에서 벗어나 이스탄불 시내 곳곳에 산재된 공공 장소에서 ‘도시주의(Urbanism)’ 맥락이 강한 프로젝트를 선보임으로써 예술이 가지는 동시대적 역할에 대해 터놓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매우 바람직한 이야기지만, 이제는 특별히 색다르지도 참신하지도 않은 개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터키 정부의 일방적 도시개발 정책에 의한 국민 간의 대립과 갈등이 최고조에 오른 현재 터키의 사회상을 감안한다면, 에르뎀지의 전시는 실로 대담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하 생략]


갈라타 그리스 초등학교 전시 전경

※ 본 기사는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의 지원으로 아트인컬처(아트인아시아)와 시각예술 플랫폼 더아트로(theArtro)가 함께 기획·게재하는 글입니다.

[ARTIST] 김진: 카오스의 풍경

카오스의 풍경

김진의 개인전 <N_either>(10. 5~11. 3 자하미술관)이 열렸다. 그는 창을 ‘안’과 ‘밖’을 구분하는 이중적 장치로 활용한다. 여기도 거기도 아닌 ‘N_either’의 세계…, 그 안에서 인간과 공간의 관계는 모호해진다. 사물의 외곽을 규정짓던 색색의 선들은 거칠게 휘몰아치며 공간을 잠식한다. 회화 표면 밖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색띠는 작가가 세상과 통하는 또 다른 창이다. / 이 선 영


<N_either 1203> 리넨에 유채 200×160cm 2012

자하미술관의 메인 공간에 걸린 가로 5m가 넘는 큰 작품 <N_either 13Z23>은 마치 운동회나 선거라도 끝난 양 휘황찬란한 색띠들이 펄럭인다. 숨은 그림 찾듯 들떠 있는 색띠들 저편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들을 살피면 이젤, 화분, 의자, 사다리, 그림과 캔버스, 주전자, 팔레트 등이 보인다. 화면 전체를 전면적으로(all over) 뒤덮은 탈중심화 된 색띠들과 달리, 원근법이나 중력의 작용에 순응한 채 밑바닥에 놓여 있는 그것들은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이런저런 도구들이다. 그 썰렁함은 작업실 바닥에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형광등 빛에도 완연하다. 그곳은 다수의 주목을 받는 게임의 열기에 가득 찬 현장이 아니라, 고립된 작가의 작업실이다. 그곳은 작가 홀로 겪은 극적 사건의 현장이다. 그림은 대부분 홀로 생산되지만, 작가는 그 결과가 다수에게 공유되기를 바란다. 어울리지 않는 이 환희에 찬 장면은 안과 바깥 사이의 온도 차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 와중에도 작업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강조된다. 그 빛은 흩날리는 색띠들이 아니라면 칙칙한 실내에 불과했을 여기와 다른 곳을 암시한다. 그것들은 마치 기다렸던 메시지라도 도착한 인터페이스 마냥 배치되어 있다.

‘N_either,’ 긍정도 부정도 아닌 세계

<N_either 13Z21> 리넨에 유채 227.3×181.8cm 2013

김진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았던 구조물인 창은 ‘바라볼 수는 있지만 넘어가기 힘든 공간을 상징’한다. 지금 작업의 근간을 형성한 영국 유학시절부터 쭉 사용해 온 전시 부제이자 작품제목인 <N_either>는 이 양면적 관계를 드러낸다. 물리적으로 창 너머는 바깥이고, 실내는 안에 해당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그 반대이다. 작가들이 홀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이 음지쪽이 바깥이고, 사회적인 연결망–안전망이 있는 그 양지쪽이 바로 안이다. 작가는 예술, 또는 작업실이라는 바깥에 있지만, 바깥의 한가운데에 있어야 한다.


<N_either 1009> 리넨에 유채 227.3×363.6cm 2010

즉, 그는 작업 내부에 있어야 한다. 단순히 시선이 통과할 수 있는 거리에 놓인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맘껏 펼치는 장으로 고양된 김진의 작업 스케일 및 스타일은 작업과 작품의 한 가운데에 있으려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 준다. 작가는 바깥에 있지만 바깥의 한가운데서 자신을 불사르면서 바깥에 있음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 이러한 역설적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은 물론 사회와 만난다. 타자가 된 김에 더 확실하게 타자가 되는 것도 소외를 극복하는 방식이다. 작가가 충분히 이질적이지 않다면 사회는 그에게 매혹되지 않는다. 예술에 매혹이 없다면 소통도 없다. 작가가 사회에 편입하는 과정은 일반 사회인과는 차이가 있다. 근대적 분업화를 통해 예술의 자율성이 성취된 이래, 작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깥으로 유배된 자가 되었다. 그들은 상품을 생산하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분업이 일어났지만, 양자의 교환은 원활치 않다. 대부분 작가는 예술작업이 아닌 다른 일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며, 이러한 분리가 그들에게 괴리감을 준다. 현대미술의 상당 부분이 이 괴리감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N_either 1011> 리넨에 유채 130.3×97cm 2010

자신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쏟아 부어야 하는 예술은 다른 파편화된 노동과 달리 소외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예술이야말로 이중의 소외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예술은 근대적 의미의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력과 행운이 겹쳐지지 않으면 지속 불가능한 까다로운 직종 중의 하나이다. 사회와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낭만주의자는 상상력을, 리얼리스트는 총체성을, 아방가르드는 진보를 외치곤 했지만, 근대에 시작된 예술과 사회 간의 균열과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사회가 아니라 예술 내부의 형식적 자율성에 칩거하려는 모더니즘적 해결책이나 예술 대신에 문화적 우세 종이 된 대중문화와의 밀월 관계도 이를 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수년째 계속되는 김진의 <N_either> 시리즈는 현대사회에서 작가의 실존을 암시하는 공간 안팎의 관계를 긍정 부정이 동시에 내포된 합성어로 표현한다. 이전과 달리 공간 안에는 인물이 부재하다. 자화상으로 나타나곤 하던 인물은 공간에 녹아버렸다. 그곳은 작가가 부재한 빈 공간이 아니라, 작가의 현존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작가의 현존은 작업실 물건들로 대변되는 사적 소유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환희, 또는 절망을 반전시키려는 행위의 흔적들이 증거한다. [이하 생략]

[SPECIAL FEATURE] What is Contemporary Art Magazine?

What is Contemporary Art Magazine?



무엇이 컨템포러리한 미술잡지인가? 잡지의 어원은 네덜란드어 magazien으로, ‘창고’라는 뜻을 가진다. 컨템포러리는 라틴어 com(함께)과 tempus(시간)의 합성어로 ‘함께 보내는 일시적인 시간’으로 직역할 수 있다. 미술잡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찰나의 시간을 역사로 기록해 보관하는 일종의 ‘문화 창고’라고 할 수 있다. 미술잡지는 작가나 작품을 통해 미시적으로 미술의 역사를 기록하고, 생생한 현장의 소식을 전달하며, 담론을 생성하는 비평의 장(場)으로 기능한다. 그 외에도 미술잡지의 기능은 셀 수 없이 많다.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과 출판, 이 두 가지는 매우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뉴욕 아트북페어를 설립한 AA 브론슨(AA Bronson)은 출판물의 예술적 가능성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 잡지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컨템포러리 미술잡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잡지를 읽는 것이 컨템포러리 아트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rt는 세계적인 주요 미술잡지의 편집장의 인터뷰와 세계 미술잡지들을 수록한 인덱스를 싣는다. 이번 특집은 ‘문화 창고’에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모으고 있는지 보다 넓은 스펙트럼으로 펼쳐진 해외 미술잡지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현 주소 또한 명확히 파악하고자 기획했다. Art가 선정한 잡지들은 각 국가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언론사의 종합지부터, 개인이나 기관이 발행한 최신 잡지까지 다양하다.

먼저 12명의 편집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각 국가의 문화적 배경과 출판 업계의 특수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온라인 환경 속에 인쇄매체의 하향화, 급변하는 예술 환경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국의 실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70~80년대에 미술잡지는 미술계의 최신 소식을 가장 발 빠르게 소개하는 일종의 ‘정보통’ 역할을 했다. 따라서 미술인의 잡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그러나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느 곳에서 어떤 전시가 열리는지, 누가 무슨 작품을 선보였는지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제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탈이다. 수많은 전시들 가운데서 놓치면 안 될 ‘진짜’를 판별해 내는 일이 관건인 셈이다. 미술잡지는 자욱한 먼지로 가득한 현장에서 대상을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보의 맥락화가 더욱 중요해졌다. 12명의 편집장들 역시 잡지를     만들 때 지역적 안배나 정보의 다양성보다 ‘선택’ 과 ‘집중’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어떻게 소개하는지의 문제가 남는다. 미술잡지의 독자는 일차적으로 텍스트를 읽는 ‘독자’일 뿐만 아니라, 전시를 관람하는 ‘관객’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잡지는 전시나 작품과의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서 ‘지면 전시’로 시각적인 만족감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또한 대부분이 영어를 기본 언어로 사용하고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몇몇의 경우에는 모국어를 기본언어로 사용하되, 영어로 된 소책자를 함께 발행한다든지, 모국어와 영어 두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등 ‘영어’ 사용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제 폭넓은 독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 요건이 된 것이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으로는 ‘기본’에 충실한 것으로 불황을 헤쳐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와 컨텐츠를 확실하게 분리하고 있었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광고용 기사임을 명기했다.



함께 일하는 작가, 큐레이터, 필자와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꾸준히 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각 잡지만의 정체성과 비전에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다. 비슷비슷한 미술종합지를 표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잡지는 문화, 철학, 사회 등 특정 테마에 관한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 새로운 담론을 생산해 내기도 했고, 어떤 잡지는 필진이 모두 큐레이터로, 큐레이팅에 관한 기사만을 내기도 했다. 작가가 기획, 편집, 표지 디자인 등 잡지 제작 전반에 참여하는 잡지가 있는가 하면, 모든 사진을 직접 촬영한 것만 사용하는 잡지도 있다. 매년 한해의 미술을 정리해서 연감을 발간하기도 했으며, 월간지와 계간지를 함께 발행해 시의성있는 정보와 깊이 있는 담론,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시도도 보였다. 또한 잡지의 역할과 기능은 훨씬 더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아트페어를 설립한 잡지사가 있는가 하면, 전시공간을 함께 운영하기도 한다. 신진작가, 신진평론가 공모전을 운영하는 매체도 있었다. 잡지기획물을 단행본으로 출간하거나, 심포지엄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잡지의 편집장이 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이나 미술관의 관장을 맡은 경우도 종종 찾아 볼 수 있었다.

인덱스에서는 세계미술잡지 100종을 싣는다. 종합지부터, 온라인매체, 태블릿PC 어플리케이션까지 다양한 종류의 매체까지 포괄했다. 또한 중국, 필리핀, 중동 등 비서구권의 잡지 발행도 활발했다. 작가, 큐레이터, 기관에서 비정기 간행물과 온라인 저널은 2000년대 이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읽는 것은 싫어하면서 만드는 것은 좋아하는 것일까? 종이잡지의 위기론과는 달리 오히려 크고 작은 미술잡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북페어만 봐도 잡지에 대관 관심이 커졌음을 잘 알 수 있다. 출판사이자 서점인 프린티드매터(Printed Matter)가 주관하는 뉴욕과 LA 아트북페어를 비롯해 파리 오프프린트, 도쿄 아트북페어 등이 있다. 한국에도 유어마인드가 운영하는 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에디션’이 있다. MoMA에서는 2012년에 <Millenium Magazines>전을 열었다. 이 전시에는 2000년대 이후 창간한 실험적인 잡지(미술과 디자인 분야) 100종이 소개됐다. 컨템포러리 아트 작가와 디자이너들이 잡지를 자신의 작품과 텍스트를 선보이는 실험의 장소로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2007년 카셀도쿠멘타12 에서는 90종의 잡지사를 초청해 도쿠멘타12의 주제에 관해 토론을 열고, 그 과정에서 300여 개의 아티클, 에세이, 인터뷰, 코멘트, 일러스트 등이 결과물로 남았다. 잡지는 분명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의 에디터들은 며칠 밤을 새면서 잡지마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컨템포러리 아트에 가장 적합한 형식을 찾고, 오늘의 아트저널리즘에 대해서 고민할 것이다. 


오늘의 글로벌 아트씬, 어떻게 다루는가?
: 《아트아시아퍼시픽》, 아시아태평양의 ‘허브’를 꿈꾸다

 

 

일레인 응(Elaine W. Ng) / 

미국 미시건대에서 회화와 미술사를 공부했으며,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서 예술행정과 문화정책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뉴미디어 프로젝트 <비디오타지> 기획을 맡았다. 2003년부터 《아트아시아퍼시픽》의 에디터로 합류했으며, 2004년부터 편집장을 맡고 있다.

《아트아시아퍼시픽(이하 AAP)》이 처음 발행됐을 때, 아시아와 중동 미술계는 애매모호한 상황이었다. 관점에 따라서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지역이기도 했고, 끝없는 절망과 암울함으로 가득한 지역이기도 했다. 오늘날 국제 미술계 인사들은 두 지역이  ‘문화적 르네상스’를 맞았다고 주장하며, 가장 활발한 활동이 펼쳐지는 지역으로 손꼽는다. 아시아와 중동에서는 끝없이 새로운 미술관, 미술학교, 대안공간, 갤러리가 생겨나고 있다. 인프라가 확장되면서 표현의 자유와 창의력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작가와 큐레이터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더 많은 기회를 얻었다. 《AAP》는 아시아와 중동 미술계의 이런 변화를 창간부터 지금까지 포착해 왔다. 잡지명처럼 ‘아시아태평양’ 미술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 논의하는 장이다. 가장 최신의 소식을 심도 있게 전달하기 위해 《AAP》의 에디터들은 아시아, 태평양, 중동, 유럽 및 북미 지역에 산재해 있다. 그들은 미술계 안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명료한 영어로, 아시아의 미술을 기술한다.


《아트아시아퍼시픽》은 1993년 창간해 지난 20여 년간 아시아태평양 및 중동 지역의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주요 작가를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영어, 중국어, 아라비아어를 사용하며 격월간으로 발행된다. 216×287mm, 148쪽 / USD 15(각권), USD 85(연간) / artasiapacific.com

내가 편집장을 맡고 나서 2005년부터 매년 1월 이전 해의 주요 전시와 작가를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한 《연감(Almanac)》을 발간해 왔다. 초기에는 글로벌 아트씬과 로컬 아트씬을 분리했다. 북미와 유럽은 ‘글로벌’ 섹션, 67개의 아시아태평양 국가는 ‘국가들: A부터 Z까지’ 섹션으로 구분해 소개했다. 그러나 오늘날 작가와 큐레이터는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며, 미술계에서 국가 구분은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이러한 판단 아래 우리는 ‘글로벌’ 섹션을 폐지하고, 미술계 주요 인사를 초청해 한해의 중요한 문화 행사를 돌아보는 자리로 개편했다. 올해는 라스 니티브(홍콩 M+미술관 디렉터), 엘리자베스 앤 맥그레고(시드니현대미술관 디렉터), 아메드 매터(사우디아라비아 작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전시와 공간 등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연감》에는 ‘파이브 플러스 원(Five Plus One)’ 섹션도 있다. 올해의 주요 작가 5인과 다음해 활약이 기대되는 유망 작가 1인을 발표하는 코너로 각국 독자의 이목을 끌며 화제를 모은다. 한국작가로는 2007년 정연두, 2008년 이불, 2009년 김수자, 2010년 양혜규, 2011년 이우환이 선정됐다.


현장과 이론 사이 잡지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익시비셔니스트》: 큐레이터가 저자다!




옌스 호프만(Jens Hoffmann) /

작가이자 큐레이터. 현재 뉴욕 유대인미술관의 부감독. 상하이비엔날레(2012~2013), 이스탄불비엔날레(2011) 공동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2009년 《익시비셔니스트》를 창간해 현재까지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익시비셔니스트》는 컨템포러리 아트 현장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전시기획의 양상을 토론하는 플랫폼이다. 잡지의 롤모델은 영화 제작자를 위해 영화 제작자들이 만든 프랑스 영화저널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다. 《익시비셔니스트》는 큐레이터를 위해 큐레이터가 만드는 잡지로, ‘저자로서의 큐레이터’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큐레이터는 자신만의 전시론을 완결된 글의 형식으로 구체화해 볼 필요가 있다. 전시는 실제로 만들어 내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기에 잡지는 큐레이터가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발산할 수 있는 좋은 포맷이다.


《익시비셔니스트》는 2009년 큐레이터 여럿이 힘을 모아 창간한 큐레이터를 위한 잡지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가 쓴 글을 엮은 정기간행물로 연간 3회(2, 5, 9월) MIT출판부에서 발행되며, 전 세계에 배포된다. 현재까지 총 8권을 출간했다. 185×260mm, 71쪽 / USD 15 / the-exhibitionist.com 

《익시비셔니스트》의 편집부는 나처럼 모두 큐레이터다. 전통적인 미술 월간지의 편집부와는 구성원이나 운영 방식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무실은 있지만 주로 각자의 위치에서 랩탑으로 업무를 본다. 우리에게 편집부와 편집위원은 다른 개념이다. 편집부는 잡지의 실제 내용물에 책임이 있지만, 편집위원은 필자를 추천하거나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잡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조언한다. 《익시비셔니스트》에 참여하는 편집위원은 오쿠이 엔위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등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지명도 높은 큐레이터들이다. 《익시비셔니스트》는 정체성이 뚜렷한 코너로 구성된다. 코너명만 봐도 다른 미술잡지와 차별화된 특성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큐레이터의 페이보릿(Curator’s Favorite)’에서는 매호마다 3명의 큐레이터를 초청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과거나 현재의 전시 이야기를 듣는다. ‘유형학(Typologies)’에서는 전시기획부터 디스플레이까지를 말그대로 유형학적으로 분류하고 분석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갖는 코너는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를 직접 리뷰하는 ‘백미러(Rear Mirror)’다.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시를 만들기에 급급한 현실 속에서 날카로운 자기비판은 우리 스스로에게 중요한 일이다. [이하 생략]

 

[FOCUS] 푸시 라이엇: 러시아 ‘쌈닭’의 혁명

러시아 ‘쌈닭’의 혁명

/ 양효실

푸시 라이엇: 펑크 프레이어 11. 7 ~10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마이크 러너, 막심 포즈도롭킨 <푸시 라이엇: 펑크 프레이어> 다큐멘터리 88분 2013_2013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다큐멘터리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의 개막작으로 <푸시 라이엇: 펑크 프레이어(Pussy Riot: A Punk Prayer)>(2013)가 상영됐다. 러시아 페미니스트 펑크그룹 푸시 라이엇 멤버들의 공연과 재판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푸시 라이엇은 2012년 2월 모스크바 크렘린궁 근처 러시아 정교회 성당 제단에 불경한 복장으로 올라가, 대통령 푸틴을 조롱하는 노래를 불러 멤버 5명 중 3명이 체포됐다. ‘종교적 증오가 촉발한 난동’을 벌인 죄로 기소돼 6개월에 걸친 재판이 열렸다. 이후 1명은 기소유예로 풀려나고, 2명은 2년의 감옥형을 선고받는다.

푸시 라이엇은 2011년 푸틴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즈음 결성됐다. 그들은 가부장제, 전체주의, 자본주의, 성차별을 주적(主敵)으로 미용실, 지하철, 공원, 광장, 푸틴을 지지하는 공공기관 등으로 들어가 즉흥적인 공연을 벌이고 도망치는 ‘힛앤런(Hit and Run)’ 전략을 구사하는 익명의 예술가 집단이다. 그들은 무지갯빛 복면을 쓰고 매서운 날씨에도 하늘하늘한 원피스와 색색 스타킹을 신고 거칠고 조잡한 펑크 리듬에 고함에 가까운 가사를 내지른다. 푸시 라이엇의 퍼포먼스는 199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페미니스트 펑크 문화운동 라이엇 걸(Riot Grrrl)의 영향권 안에 있다. 라이엇 걸 운동은 저항적인 아방가르드 음악으로서의 펑크가 남성문화로 지나치게 변질되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출발했다.1)

펑크의 러시아적 변용

어렸을 때부터 약자를 향한 부당한 폭력에 맞섰던 환경운동가 마샤(Masha), 공산당원인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개념미술가 집단 보이나(Voina) 소속으로 활동했던 나디아(Nadia), 역시 보이나의 멤버로 자본주의 사회를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을 개념미술에서 배운 하층계급 출신의 카티아(Katia). 복면이 벗겨진 채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 3명의 푸시 라이엇 멤버다. 푸틴의 당선에 기여한 러시아 정교회와 독재자 푸틴에 향한 저항을 <신이여, 푸틴을 몰아내주소서>라는 노래로 분출한 이들의 퍼포먼스는 서구의 개념미술, 펑크록, 라이엇 걸의 러시아적 변용(變容)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을 법의 한계를 드러내는 잣대로 사용해서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기도한 푸시 라이엇의 대범함은, 그들이 어떤 공권력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을 투쟁가임을 잘 보여 준다.

러시아는 제정일치라는 오래된 전통과 볼셰비키 혁명가라는 유구한 역사가 공존한다. 재판정에서 일말의 반성도 뉘우침도 보이지 않는 이들 세 여성은 법정을 자신들의 혁명적 마니페스토를 설파하는 광장으로 변형시켰다. 재판 기간 중 러시아의 공중파 방송은 그들을 마녀로 형상화했지만, 마돈나를 위시한 서구 예술가들과 페미니스트 집단은 푸시 라이엇을 지지하는 공연과 시위를 진행했다. 불법 행위의 증거물로 사용된 것은 30초짜리 공연 영상이다. ‘마녀들’의 급습에 소란스러운 신도들과 푸시 라이엇의 ‘어설픈’ 공연이 등장하는 30초의 증거물. 즉, 불법 행위의 증거와 퍼포먼스 현장 기록이 겹치는 지점에 놓인 ‘30초’는 미국이나 유럽의 위반적인 예술과는 다른 맥락에 놓인 예술의 일회성, 사건을 증언한다.  

선진사회에서라면 비행소녀 복장을 하고 신성한 성당에서 ‘페미니스트 마리아’에게 호소하는 패러디적 행위로 2년형을 선고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재판 과정에서 줄곧 자신들의 무죄와 아방가르드 예술가로서의 의도를 설파했다. 다큐멘터리에서 푸시 라이엇의 변호를 견딜 수 없었던 여성 판사가 ‘여기가 극장인 줄 아느냐’고 호통을 칠 때, 관객은 역설적이지만 이들이 법정도 ‘점령’했음을 알게 된다. 신성한 법정마저도 유쾌한 극장으로 재배치할 줄 아는 쌈닭들의 폭동은 이들이 인용하는 브레히트, 카프카, 기 드보르, 니체와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푸시 라이엇의 뒤를 이을 또 다른 무수한 예술가-혁명가를 접합시킨다. 다큐멘터리 내내 3명의 ‘푸시’는 웃고 있었다.

1) 대표적 밴드인 비키니 킬(Bikini Kill)이 보여 주듯이 가정폭력, 강간, 낙태와 같이 여성이 겪는 폭력을 주된 소재다. 또한 펑크의 에토스인 DIY(do it yourself) 정신을 통해 페미니스트라면 누구건 만들고 부를 수 있는 음악을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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