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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1.02

Abstract

특집 2011 동방의 요괴들 한국미술을 아시아와 세계의 중심으로 이끌어 나갈 '요사스런 귀신(작가)'을 뽑는 '동방(東邦)의 요괴(妖怪)들' 프로젝트가 올해로 3회를 맞았다. 미술저널의 사회교육적 사명 의식으로, 신진작가 '발굴'과 더불어 '육성'의 대안적 프로모션을 실천하는 '동방의 요괴들'은 출범과 함께 한국 미술계에 요란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009년 241명, 2010년 461명의 '요괴들'에 이어, 올해는 371명의 새 식구를 찾았다. 이 요괴들 중에서 art in culture 편집부의 예심과 외부 심사위원의 본심을 거쳐 BEST21 작가를 선정해 특집을 꾸몄다. 요괴들이 톡톡 튀는 개성을 마음껏 펼쳐보이는 셀카, 작업 노트, 앙케트를 싣고, 예술적 잠재력을 들춰 보는 싱싱한 작품을 화보로 꾸몄다. 또한 2010동방의 요괴들의 전 작품을 수록해 젊은 작가들의 '작품 지형'을 조망한다. 이제 1,073명으로 늘어난 신진작가 군단 동방의 요괴들의 '힘찬 행진'을 기대하시라!

Contents

01    표지  앤디 덴즐러 〈The Human Nature Project ll(1908)〉 캔버스에 유채 140×120cm 2010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김복기

38    핫피플  
       최효준_ 소통과 공감의 미술관  장승연
       디터 람스_산업 디자인계의 전설  김재석
       민현준_열린 미술관을 향하여  김수영

42    프리즘
       문화중심도시 광주의 문화 정책, 그 허와 실 장석원
       큐레이터 이원일의 죽음에 부쳐  장동광

46    포켓 속>>>디카 속>>>이미지 채집
       반복과 차이  김수영

58    포커스
       군도의 불빛들展 | 이선영
       크리스찬 마클레이展|하룬 파로키展  서현석
       SeMA2010 이미지의 틈展  정연심

70    특집  2011동방의 요괴들 
       [1] BEST21 ARTIST
       [2] 리포트, 공모전, 심사평, 2009~10 요괴들 체험기
       [3] ARTIST LIST 371

117    작가 연구  김인겸
         사유의 공간을 조각하다  최태만

133    작가 인터뷰  최재은
         우리는 같은 강물에 몸을 두 번 적실 수 없다  장승연

140    크리티컬 포인트
         토마스 슈트루트의 실패_왜 산업적 스펙터클은 사진찍기 어려운가  이영준

147    테마 스페셜  팔방미인: 한국의 개념미술가 8인을 말한다
         이건용|곽덕준| 김구림|박현기|이강소|홍명섭|성능경|김용익

166    오후의 아틀리에
         매실나무 옆 벤치  민정기

168    2011전시 하이라이트  김수영 김재석
    

176    전시 리뷰

         행복|정봉채|권정호|이지은|태이|김동기
         관계적-인|이수영, 천영미 귀국보고

184    전시 일정
  
186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사유의 공간’을 조각하다

〈프로젝트-사고의 벽〉 철판,  스테인리스스틸, 거울판, 양초 650×700×270cm 700×300×270cm 1992

‘사유의 공간’을 조각하다

글 | 최태만 · 미술평론가, 국민대 교수

‘건축적 조각’의 의미

1992년 6월 김인겸은 문예진흥원미술회관에서 〈프로젝트-사고의 벽(The Walls of Thought)〉을 발표했다. 전시장 내부에 건축 구조물을 설치한 이 프로젝트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조각이되 조각 같지 않는 것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었고1), ‘단순 공간에서 체험 공간으로, 부분에서 전체로, 단순에서 명료한 존재로, 박제된 공간에서 살아 있는 시간으로, 단층 구성에서 복층 구조로, 닫힌 틈에서 열린 공간으로, 불확정적 상황에서 확정적 상황으로, 단순 시(視)감각에서 오감으로, 결국 공간 시간 인간으로…자유로’2) 향한 출발이었다.
이 설치 작업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그 구조에 대해 먼저 밝혀 둘 필요가 있다. 전체 12개의 방과 구조물 사이로 난 복도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철판으로 만들어진 ‘콤플렉스’이다. 붉게 녹슨 철판이 환기하는 육중하고 비인격적인 물성이 압도하는 구조물 사이로 들어가면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거울이 비스듬히 놓여 있다. 거울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며 독립적으로 존립하는 각 구조물을 매개하는 장치이자 관객들로 하여금 내부로 들어오도록 유인하는 미끼다. 또한 거울은 구조물과 구조물, 공간과 공간, 주변 환경과 사람을 투영하면서 빨아들이는 거대한 구멍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드로잉에서 알 수 있듯이, 거울은 무엇보다 ‘시간’을 인식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를 알리는 낱장의 리플렛에서 작가는 이것이 한사코 ‘조각 전시’임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확장된 영역으로서의 조각이자 또한 건축이라 할 수 있다.
바닥에 깔아 놓은 철판의 길을 따라 가면 도달하는 그 구조물은 문과 창을 지니고 있으나 좁은 복도 혹은 골목과 철판이 장벽처럼 진입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다이달로스가 설계한 미궁에 가깝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이 미궁을 구성하는 몇 개의 방의 벽면에 작은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속에 촛불을 밝혔다. 그렇다면 그가 설계한 이 설치 공간은 성스러운 의식을 집전하는 신전인가, 아니면 수행자의 은거지인가? 육중한 철판이 가로막고 있는 막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때의 당혹감은 작가가 뭔가 요구하는 소리가 마치 환청처럼 귓전에 맴도는 것과 같은 느낌에 묻혀버린다. ‘침묵하라!’ 그리고 돌아서다 문득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에 놀라 고개를 돌리면 낯익은 모습이 아주 낯설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것은 스테인리스스틸 거울에 비친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김인겸의 건축적 조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철판이라는 물질이 지닌 중성적인 성격을 거울이 부분적으로 해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촛불은 두 금속의 비인격성을 넘어서서 이 공간을 갑자기 인식적인 것, 아니 더 나아가 그것조차 초월하는 장소로 만들고 있다. 이 시점에서 그가 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사고의 벽〉이란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촛불이 켜진 이 벽 앞에서 존재의 의미에 대해 명상하라는 것일까.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프로젝트 작업은 사유하는 주체(Cogito)조차 해체되는 공간이다. 사고의 벽이란 곧 무념무상(無念無想)을 위해 차단하고 밀폐해 놓은 장치인 것이다.
이 건축적 조각은 그의 작업의 추이를 해명함에 있어서 2가지의 흥미로운 암시를 제공하고 있다. 첫째, 그의 작업 과정에서 볼 때 느닷없이 나타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급진적이고 비약적인 이 프로젝트 작업 이전에 그가 발표했던 〈묵시 공간〉이 건축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파리 퐁피두센터가 운영하는 아틀리에에서 보낸 시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가 〈빈 공간(Emptiness)〉을 거쳐 발표하고 있는 〈스페이스리스(Space-less)〉의 ‘무한 공간’ 또는 ‘공간 없음’의 상태가 바로 이 작업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조각과 건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계기로 그는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다. 1995년은 베니스비엔날레가 창설 100주년을 맞이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관이 밀집해 있던 자르디니 카스텔로(Giardini di Castello)에 있던 작은 건물을 개조한 한국관이 개관한 해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전시 공간이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내부 구조가 복잡하게 설계된 한국관에 그는 〈프로젝트-사고의 벽〉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건축적 조각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21-내추럴 네트(Natural Net)〉을 설치했다.3)
두 전시 공간을 연결하는 원형의 코어 공간에 병풍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은 검은색의 반투명 아크릴 수지로 지름 8m의 나선형의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그 구조와 형태에 있어서 바벨탑이나 타틀린(Vladimir Tatlin)의 〈제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탑〉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반투명 플라스틱 패널을 이어 붙인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나선형의 계단을 둘러싼 5개의 수조로 이루어진 벽이 나타나고, 그 속에서 공기 방울이 요동친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중심부에 위치한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가면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감시카메라(CCTV)로 촬영된 영상들이 비춰진다.
〈사고의 벽〉이 명상적이고 묵시적이며 정적인 것이라면 〈내추럴 네트〉는 참여와 소통을 더욱 고려한 장소특정적인 작업이자 역동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창설 100주년을 맞이한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가 ‘정체성과 이질성-동서양의 만남’이었던 만큼 그의 이 프로젝트는 주제에 부응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다가올 21세기에 대한 작가의 비전, 즉 물로 대표되는 ‘환경’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 자연과 문명, 전통과 현대, 나아가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담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관이 지닌 건축적, 공간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 불리한 조건조차 작품의 구조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장소 특정적’이자 ‘관객 참여형’ 작업으로 봐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두 프로젝트 작업이 건축적 구조를 지닌 조각인 만큼 정밀한 구조 설계와 공간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가 이러한 작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격이 그만큼 치밀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서 그가 왜 시종 ‘조각가’임을 고집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앞의 두 프로젝트를 포함하여 그의 조각 또한 구성적이면서 구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으나 그의 관심은 공간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구획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조각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Space-less〉 스테인리스스틸에 우레탄 아크릴릭 코팅 2009 전시 전경

짜맞춘 형태와 구조, 공간을 묵시하다

1945년 수원에서 태어난 김인겸은 1973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그는 졸업 후 작가가 돼 당장 작업하는 것보다 취업을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국전에 처음으로 출품하여 입선된 그는 교사로 근무하면서 1974년과 1975년까지 계속 국전에 출품했다. 그러나 3년 동안 계속 입선만 하자 그것마저 시들해져 국전 출품을 포기하고 대신 한국현대조각회에 가입하여 회원전에 출품했다.
고등학교에서의 교직을 그만두고 1980년 서울로 이주한 그는 성산동에 작은 규모의 작업실을 구해 작업에 전념했다. 1970년대 생명에 대한 관심으로 주로 나무를 재료로 기하학적인 구조 속에 유기적인 형태를 지닌 〈생성〉 연작을 발표했던 그는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환기〉 연작을 발표했다. 그 중에서 그가 1980년에 제작한 〈환기-80〉은 단일한 형태 내부에서 일어나는 동일한 형태의 반복을 통해 에너지의 흡입과 방출, 긴장과 이완, 정지와 운동이라는 대립적 효과를 함축한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기본적인 형태는 입방체이며 나무를 재료로 하였으나 톱니의 형태는 기계의 구조를 암시하게 만든다. 기하학적인 엄격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나무의 표면을 매끈하고 깔끔하게 마감한 것은 이 작품을 우아한 것으로 고양시키고 있다.4) 특히 〈환기〉 연작이 기하학적 구조 속에 내부를 뚫어 마치 창과 같이 작품의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을 소통시키고자 한 것은 그의 관심이 여전히 건축적인 것으로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고 작품이 건축을 모방하다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비록 건축적 구조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더라도 그의 작품은 자기완결성이 높은 조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인겸이 조각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1988년 가나화랑에서 가진 첫 개인전부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첫 개인전이 비록 비슷한 연배의 다른 작가들과 비교할 때 늦은 것이긴 했으나 이 전시를 통해 그의 〈묵시 공간〉 연작은 주목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이 때 발표한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으로 한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들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한국의 산하에서 볼 수 있는 석탑, 비석 등은 물론 한옥의 문이나 창 등을 모티프로 한 대칭적 형태가 나타난 것도 이때부터였다. 사각형을 기본 형태로 한옥의 건축 구조처럼 조립한 형태를 석고로 주조하여 채색을 하거나 철로 주조한 작품은 전통에 대한 그의 애정을 담은 것이기도 했다.
첫 개인전의 성공에 힘입은 그는 2년 후 다시 〈묵시 공간Ⅱ〉라는 이름을 걸고 2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이 전시에서 한국의 전통으로부터 소재를 구한 형태는 더욱 풍부해졌다. 예컨대 팔각형, 또는 옛날의 엽전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나타나고 있는 바, 사각형이나 혹은 팔각형으로 이루어진 그의 기본 형태는 음양 사상에서 비롯된 방위 혹은 팔괘(八卦)에 대해 연상하게 만든다. 또 어떤 작품의 경우 빗장이 채워진 문이나 혹은 봉투의 형태를 띠는가 하면 마을 어귀에 있던 우물의 형태를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품의 설치에 있어서도 벽에 세우거나 바닥에 펼쳐 놓는가 하면 작품이 놓일 공간을 미리 고려한 장소특정적인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설치 조각으로 발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뒤이어 나타날 〈프로젝트 -사고의 벽〉의 출현을 예고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거친 표면의 외양에서 엿볼 수 있는 고졸한 단순성에 비해 매우 계획적으로 반복된 이 형태들은 전시 공간 전체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지니고 있음과 아울러 이 공간을 신비로운 계시, 즉 주술적인 신전이나 사당(祠堂)으로 전치시켜 놓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작업은 의외로 버려진 것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버려진 합판을 모아 봉투 문(門) 비석과 같은 형태를 만든 이 작업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최근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햇볕에 그을리고 비바람에 할퀴어져 버려진 합판들을 수집해 깊이 멍든 곳은 도려내고 치유될만한 곳은 태워 다듬으면서 내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쓰레기장으로나 갈 수 밖에 없는 버려진 것들로부터 새 생명이 심어지는, 고통 속에 다시 생생하고 당당한 하나의 작품으로 탈바꿈되는 모습을 보며 마치 구원을 받은 한 인생을 대한 듯 기쁜 감동을 느낀다.”5)
형태와 방법의 변화가 분명해졌으나 폐기된 사물에 새로운 생명 즉,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태도는 1970년대부터 추구해온 〈생성〉이나 〈환기〉 연작과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차갑고 기하학적인 구조로부터 작가의 손의 흔적은 물론 역사의 무게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한 표면의 풍부한 질감과 고고학적 민속학적 관심으로부터 비롯된 형태는 김인겸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게 만들었다. 이 전시는 그가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시도, 실험한 결과이기도 했다. 합판 흙 석고는 물론 스테인리스스틸을 이용한 조립식 구조가 단독적으로 제시되는가 하면, 동일 형태가 마치 세포 분열하듯 반복되기도 한다. 이 작품들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으로 ‘정면성’을 들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평론가 이일이 지적했던 것처럼 ‘기하학적인 만큼 평면적이고, 볼륨으로서보다는 면(面)으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진다.6)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나 간결하면서도 묵시적인 그의 작품은 한국적인 미의식을 현대성과 결합한 성공적 사례로 평가할 만한 것이기도 했다.

〈묵시 공간-공〉 철 각 300×190×100cm 1999

비어 있으나 찬, 절대 공간

단 두 번의 개인전을 통해 ‘공간을 사유하는 조각가’로서 자기 존재를 분명하게 각인시킨 김인겸은 이에 만족하거나 멈추지 않고 1992년 〈프로젝트-사고의 벽〉을 통해 다시 한 번 비상한 주목을 받았으며,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초대 작가로 선정될 수 있었음은 앞에서도 밝힌 바 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그의 삶에도 변화를 가져 왔다. 형태가 보다 단순해지고 반복적인 패턴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4번째 개인전인 〈묵시 공간-존재〉를 서울의 표화랑에서 가진 1996년, 그는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파리 퐁피두센터가 운영하는 아틀리에의 입주 작가로 초대받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1년 정도 파리에서 작업하며 견문도 넓히려는 계획이었으나, 그는 체류 기간을 계속 연장하여 2004년 귀국할 때까지 근 8년을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프랑스 피악이나 스위스의 바젤아트페어 등에 참가하는가 하면 프랑스의 여러 화랑의 초대를 받아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프랑스로 떠난 후 한국에서의 활동은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으나 1997년 가나아트상을 받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여전히 주목 받는 작가로 기억되고 있었다.
프랑스에 체류하는 동안, 특히 퐁피두센터 아틀리에에 입주해 있던 동안 그의 작업은 또 한 번의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본격적인 조각 작업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이 변화를 이끈 계기를 제공했다. 당시 그는 스펀지나 판화 도구의 하나인 스퀴즈와 같은 부드러운 고무판을 이용하여 먹으로 종이 위에 드로잉을 했다. 드로잉은 일반적으로 연필 펜 마커 붓 등을 이용해 형태를 그리거나 표현함으로써 면보다 선이 강조되지만 그는 넓은 평면의 고무판으로 마치 종이의 표면에 먹을 바르듯이 훑어감으로써 고무판에 가해진 손의 압력과 방향에 따라 검은 면이 화면 위에 형태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독특한 드로잉을 했던 것이다. 스펀지나 고무판의 넓은 면에 밀려 나간 먹은 일정한 넓이로 화면 위에 얇은 레이어를 형성하는데 방향을 틀어 다시 되돌아오면 먼저 칠해진 화면 위에 새로운 레이어가 겹치면서 평면 위에 아주 미세한 볼륨을 만들어 낸다. 때로 그는 먹 위에 금분이나 은분을 첨가하기도 했다. 손의 압력에 의해 가장자리로 밀려난 이 물질이 경계를 구획하는 선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배합의 정도에 따라 화면을 금빛의 반투명 막을 형성하기도 한다. 넓은 줄로 그린 드로잉은 얇은 스테인리스스틸을 접어 그 가장자리를 접합한 그의 조각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1997년의 퐁피두센터 스튜디오에서의 전시나 2001년 사이트오데옹5(Site Odeon5)에서 〈묵시 공간-빔(Emptiness)〉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작품을 보면 형태는 기하학적 단순성을 지니고 있고 재료도 주로 철을 사용한 것이었으며 귀국 직후인 2005년 대구 시공갤러리에서 가진 개인전에서는 형태의 엄격성이 두드러진 입방체로 공간을 구성했다. 철판을 자르고 붙인 형태는 인위적인 가공을 최소화하고 물질의 성격을 전면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이 미니멀아트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입방체 덩어리들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비어 있음’이라고 명명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체적과 질량을 지닌 덩어리가 아니라 그것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과 작품 사이에 가로놓인 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빈 공간이란 차 있는 공간과 대응하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에서 완전히 텅 빈 공간은 은유이자 암시이다. 즉 바닥에 놓이든 벽에 걸리든 특정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덩어리는 작품과 주변 공간 사이의 틈을 무한한 공간, 즉 절대 공간이 될 수도 있음을 묵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또는 기하학적 입방체가 지닌 닫힌 공간 속에 무한의 공간이 내재해 있음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비어 있음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개념적 혼란, 즉 그것을 텅 빔(Vacancy), 아무 것도 없는 무(Nothingness), 또는 제로 상태로 오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2009년 개인전에는 제목을 〈스페이스-리스(Space-less)〉로 바꿔 육중하지 않고 형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착시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마치 약간 두꺼운 종이를 오려 접으면 나타나는 형태를 납작하게 눌러 놓은 듯한 그의 작품은 스테인리스스틸의 중성적이며 차가운 투명성을 극대화하거나 혹은 원색으로 도장하여 공간에 매달거나 바닥에 놓는가 하면 벽에 걸어 놓아 보는 방향에 따라 평면으로 보이기도 하고 입체로도 지각되도록 했다. 이 착시에 따라 그의 작품은 공간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말 그대로 ‘공간 없음’(Spaceless)의 상태에 놓인 것임을 인지하게 된다.
평면이 육면체의 입체가 되거나 납작하게 압축된 타원이 원통으로 지각되도록 한 것은 회화에서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닌 눈속임(Tromp-l'oeil) 또는 왜곡(Anamorphose)의 기법에 대해 떠올리게 만든다. 작품이 특정한 형태를 연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그가 이름붙인 것처럼 ‘이미지 조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상 작용을 통해 상자를 떠올리는 것은 그가 걸어 놓은 최면 효과에 불과하다. 만약 그의 작품을 상자로만 인식한다면 이 작품이 지향하는 ‘공간 없음’은 증발해버릴 수 있다. 그것은 텅 빈 공간을 담은 상자이면서 동시에 무한 공간을 포획할 수 있는 그물이자 그릇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공간을 넘어선 사유의 공간으로 진입하는 문인 것이다. 그래서 작품의 비워진 공간은 비어 있으나 찬 것, 더 나아가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휴지(休止)의 공간’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묵시 공간 9001-9020〉 합판, 스테인리스스틸 각 70×35×6cm 1990

〈묵시 공간-존재〉 1996

1)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2010년 11월 13일, 14일 이틀에 걸쳐 김인겸의 연구실을 방문하여 오랜 시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 글에서 인용한 작가의 발언은 이 인터뷰에서 녹취한 것임을 밝혀 둔다.
2) 이일훈, 〈공간체험 그리고 자유 -조각가 김인겸의 ‘Project’를 대하며〉, 《공간》, 1992.7, p.41.
3) 한국관의 건축적 제약 때문에 작가가 작품의 설계에서부터 설치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서는 작가 자신이 쓴 보고서 형식의 글(김인겸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비평〉, 《공간》, 1995. 9, pp.104~105.) 참고.
4) 최태만, 《한국 현대조각사 연구》, 아트북스, 2007, p.387.
5) 〈작가노트〉 중에서, 《김인겸 작품집》, 도서출판 가나아트, 1991.
6) 이일, 〈김인겸(金仁謙)의 근작 ‘묵시공간(默示空間)〉’에 대하여〉, 《김인겸 작품집》, 1991

김인겸 1945년 수원 출생. 홍익대 조소과 및 동 교육대학원 졸업. 1988년 가나화랑을 시작으로 시공화랑 표갤러리 파리 사이트오데옹5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1995년 최초로 한국관이 설립된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 대표 작가로 참가. 1996년 한국 작가 최초로 파리 퐁피두센터가 운영하는 아틀리에의 입주 작가로 초대된 뒤 파리에 거주하며 활동하다 2004년 귀국했다. 〈88서울올림픽 기념 현대미술전〉 (1988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미술대전〉(1994, 2003 서울시립미술관), 〈Steel of Steel〉(2004 포스코미술관) 등 다수의 단체전을 비롯하여 프랑스미술견본시(FIAC), 바젤아트페어, 아트시카고 등에 출품했다. 가나아트상 김세중조각상 수상. 마카오 타이파미술관에서 초대전(2010. 4. 26~5. 30)을 개최하는 등 최근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인겸은 지난해 말부터 그간의 작업 활동을 화집 출간으로 정리하는 작업에 매진 중이다. 아울러 올해는 스스로의 작업을 회고하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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