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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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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무라카미 다카시의 아시아 첫 회고전『무라카미 다카시의 수퍼플랫 원더랜드』(삼성미술관 플라토, 7. 4~12. 8)가 열렸다. '원더랜드'라는 전시 제목처럼 그의 작품세계에는 귀엽거나 폭력적이고, 에로틱하거나 무서운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그는 일본의 전통 미학과 패전 이후 형성된 아니메, 망가, 오타쿠 등 서브컬처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통합해 '수퍼플랫'이라는 새로운 미학을 제창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무라카미의 국제무대 진출은 일본 현대미술의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했고,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제 그는 '카이카이 키키'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기업가형 예술가로서 전방위 활동을 펼치고 있다. Art는 우리 시대의 '수퍼스타'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모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특집을 꾸몄다.

 

Contents

COVER

          무라카미 다카시 <POM&ME> 카본, 아크릴릭, 인조대리석 133×107×90cm 2009~2010 ⓒ 2003~2004 무라카미 다카시 / 카이카이 키키 Co., Ltd All Rights Reserved

 

SPECIAL FEATURE
          MURAKAMI TAKASHI

072    왜 무라카미인가? / 김복기
074    ⓒ 무라카미 다카시
082    수퍼플랫 미학
          DOB, SKULL, JELLYFISH EYES
          MUSHROOM, FLOWER
          KAIKAI&KIKI, ARHAT
092    아트마켓의 스타
096    오타쿠에서 CEO로
          BOOK, STUDIO, SNS
         CURATION, PEOPLE

 

THEME SPECIAL
          分斷美術

107    정전 60주년 기념, 4개의 아트프로젝트
116    6.25전쟁의 상흔, 
       미술은 어떻게 역사를 호출해야 하는가?
/ 이인범

 

ARTISTORY

122    왕치 ‘창작→←비평’의 페르소나

 

CRITIC

046    FOCUS
          펑크: 혼돈에서 쿠튀르로展:
          펑크, 패션으로 미술관에 / 함영준
          조습, 기억의 시간, 시간의 기억展:
          ‘우울자’의 미학 / 김종길
          검은 성자와 하얀 악마, 검은 사각형展:
          검정의 연금술 / 이선영
          이사 멜스하이머, 박보나展:
          ‘반응’하는 작가 / 정현
          끝나지 않은 전쟁, 60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展:
          분단의 기억, 작가의 윤리 / 양효실
          김윤호展: 사진 없는 사진전 / 이경민

 

SERIES

129    On Contemporary Art
          근대성과 탈식민주의의 양면성 / 오쿠이 엔위저

 

ART MARKET

146    아트페어도쿄 2013 / 호경윤

 

ETC.

043    EDITORIAL / 호경윤
152    ART FIELD
166    P.S.
167    SUBSCRIPTION
168    CREDIT

Articles

[ART FIELD] 빛으로 그리는 숭고의 공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 설치된 제임스 터렐의 <Aten Reign> 2013

빛으로 그리는 숭고의 공간

/ 이은정 해외특파원

제임스 터렐展 2013. 6. 21~9. 25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개인전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6년간의 준비기간을 가진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미술계의 뜨거운 관심과 기대 속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라이트 아트(light art)의 선구자’로 불리는 터렐은 그의 작품에서 사물을 배제시키고 무형의 빛만을 이용해 시각예술이 갖는 가시성, 사물성, 공간감을 창출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빛을 독자적인 미술 장르로 승화시킨 터렐의 초기 모노크롬 작품부터 최근 설치 작품까지 지난 50여 년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한다. <Aten Reign>은 터렐의 작품 세계와 구겐하임미술관의 독특한 나선형 건축 구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장소 특정적 작품이다. 미술관 원형 천장에 설치된 6개의 동심 타원형 구조물이 구겐하임의 상징적인 달팽이집 모양 전시 공간을 재현한다. 천장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을 활용한 조명은 한 시간의 사이클에 걸쳐 서서히 색이 변하면서 형형색색의 빛을 연출한다.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미세한 차이의 조명 색이 매순간 변화해 관객은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감상하며 고요한 자기성찰과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전시는 작가의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기 작업으로 이어진다. 빛 작품 구상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애쿼틴트 작품부터 미술관의 건축 구조를 활용한 빛 작품까지 다양한 모노크롬 작품을 선보인다. 미술관의 건축 구조와 조화를 이룬 빛 작품은 정적이면서도 감각적이다. 코너에 투사된 빛이 굴절된 사각형 모양을 형성한 <Afrum I (White)>(1967)은 보는 각도에 따라 접힌 평면사각형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입체적인 큐브로 보인다. 작가는 지난 50년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사람의 눈이 어떻게 빛을 인식하고 공간을 지각하는지 끊임없이 연구했다. 막힌 공간 내에 빛을 유입시켜 작품과 공간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빛과 음영을 이용해 사물의 색, 선, 면, 부피감 등의 착각을 유도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다. 터렐의 작품은 조용하고 정적이다. 하지만 ‘빛의 마술사’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가려진 작가의 섬세한 감성과 세련된 절제미가 돋보인다. 또한 부수적인 사물이나 조형 장치 하나 없이 큰 예술적 감동을 선사하는 터렐의 전시는 매번 신선하게 다가온다.
 

제임스 터렐 <Aten reign > 자연광, LED조명 가변크기 2013
 

제임스 터렐 <Aten reign > 자연광, LED조명 가변크기 2013

[FOCUS] 분단의 기억, 작가의 윤리

김혜련 <붉은 산> 캔버스에 유채 100×200cm 2012

 

분단의 기억, 작가의 윤리
끝나지 않은 전쟁, 60년展 6. 21~8. 14 일주&선화갤러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展 7. 5~28 OCI미술관
 

/ 양효실

 


백승우 <ML-#0142> 디지털 프린트 100×130cm 2010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의 해이다. 6.25의 발발로부터는 63년, 1953년의 정전협정으로부터는 60년이 ‘지났다’는 식의 산술적 계산은 지금껏 남과 북의 적대가 국제정세나 내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가를 놓고 본다면 아무런 현실적 의미가 없다. 북한은 남한의 정당정치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축으로 남한의 정치 논리에 깊숙이 개입해 있고, 핵을 보유한 북한의 ‘계산된’ 경거망동은 전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진원지이며, 종북과 빨갱이라는 시대착오적이면서 불멸하는 낙인/수사는 당면한 현실에서 비롯된 분노와 좌절감을 내부의 타자에게 투사할 수 있는 손쉬운 기제로 동원된다. 정전 상태의 불안은 남과 북의 체제를 버티는 배경으로서 지난 ‘60년’ 동안 유효하게 사용됐다. 역사의 소멸과 주체의 죽음과 연관된 인식은 민족전, 종교전이 만연한 전 지구적 형세와는 무관한 몇몇 선진국의 글로벌한 진단으로서, 혹은 구조의 총체성을 사유할 수 없는 탈역사적 주체의 등장과 연동하면서 ‘지금 여기’를 압도한다. 역사가 더 이상 의미 있지도, 해방을 향한 기획으로도 서사화되지 못하는 포스트역사적 권태나 피로는 역사를 갖고 놀 수 있는 ‘자유’를 용인한다. 그럼에도 탈냉전시대에 외신을 장식하는 온갖 전쟁 관련 소식이나, 과거에 대한 ‘다른’ 기억이 증언의 형식으로 끊임없이 발굴/복원되고 있음에 근거한다면, 우리는 탈정치화되면서 재정치화되어야 하는 역사적 과도기를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탈정치화는 어느 정도 논의가 끝났다. 하지만 재정치화는 시급하면서도 어렵고 논쟁적인 쟁점이다. 그것은 정의 불가능한 정치, 열린 윤리에 대한 것이다. 무력한 기억의 기표들 정전협정 60주년을 기념한 두 개의 전시, OCI미술관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과 일주&선화갤러리의 <끝나지 않은 전쟁, 60년>전은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이러저러한 생각을 전시에 관한 비판적인 분석 중에 열어 놓는다. OCI미술관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망각의 틈’ ‘다시 시작하는 노래’라는 3개의 섹션에 작가 15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김기창?김기만, 정종여?정혜지), 철책 앞에 멈춰선 노인들(손장섭), 만나고 헤어지는 납북이산가족의 짧은 순간에 관한 영상(김해민), 죽은 자들의 넋을 표현한 회화(권순철)가 있고, 화해의 장면을 재현한 민중미술 계보의 회화(서용선), 이 시대의 관심사에서는 거의 잊힌 역사적 장소를 찍은 흑백사진(정인숙), 작가가 직접 분장 연출을 해 개입한 사진(조습),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장면과 JSA의 장소를 데칼코마니적으로 병치시킨 영상(김태은), 한국의 산을 그리고 그 뒤에 캔버스 일부를 찢고 꿰맨 회화(김혜련), 북한 영화촬영소의 세트들이 재현한 해방 이후 서울의 모습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세트들 및 군대 모의시가전 훈련 세트 등을 기록한 슬라이드 영상(박찬경), 작가 개인의 경험을 현실에 대한 발언과 모호하게 뒤섞은 사진(백승우)과 추상화(김춘수) 등의 작품이 그것. 전시에서 확연히 드러난 특색은 역사적 사건과 직결된 이름과 장소의 ‘구체성’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6.25의 전형성은 남북으로 헤어진 가족의 이름이나 이산가족의 상봉 장면에서 반복, 강화된다. 가령 조습, 손장섭, 박찬경, 정인숙, 김태은 같은 작가의 작품은 장르와 매체와 상관없이 모두 시각적 이미지에 관한 상징적이고 집단적인 이해를 중심으로 수렴하거나 확산된다. 참여 작가와 출품작의 선정이 공적이고 집단적인 이해에 맞춰졌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물론 작가는 객관적 사실의 기록자, 또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역사학자는 아니다. 작가는 사실보다는 진실의 편에 서서 왜곡과 날조와 삭제로서의 역사를 횡단하거나, 심지어 진실의 허위성을 의심하면서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역사를 해체하고, 집단적 비극의 파토스를 희화화하거나, 과잉의 스펙터클 속에서 내파된 인간적 감정의 불모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출품작들은 한국전쟁을 ‘알고’ 있는 사람들, 모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에게는 어느 정도는 해독 가능한 메시지나 형식 혹은 태도를 중시한다. 한국전쟁은 현실정치의 모순에도 통일된 ‘우리’를 주조하는 집단적 파토스로서 현재의 권력에 기여하거나, 역사의 무의미함에 관한 공포로 우리를 탈역사화하고, 손쉬운 휴머니즘의 책략 속에서 우리에게 폭력의 면죄부를 부여한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 제목 ‘다시 시작하는 노래’나 거기에 첨가된 부연 설명의 ‘전쟁의 종식과 현실의 극복을 고대’한다는 부분은 이번 전시가 현실에 관한 절망적 인식이나 기억하기의 무능과는 무관한 휴머니즘적 낙관에 기대려 한다는 인상을 드러낸다. 전시제목을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차용했다면, 이번 전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냉전 및 휴전지대에 대한 역사적 인식의 ‘미학적’ 변주나 변용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14년간의 거대한 프로젝트에서 시도한 것은 의식적 기억에서는 빠진 것들, 사소하고 무의미한 오브제들, 인상들, 소음들의 기록될 ‘권리’였다. 그는 기억의 의식적 작용 중에 탈락/ 누락되어야 했던 ‘그것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기다렸고 그것들의 말 없는 말을 듣기 위해 코르크로 자신의 문을 막는 기이한 단절의 의식을 거행했다. 어둡고 깊게 박힌 부스러기들, 근대적 서사에서는 존중받지 못한 하찮은 존재들을 위해 프루스트는 ‘소설’을 썼다. 또는 오늘날 역사학이 객관적 사실을 중립적으로 기술하는 대신에 미시사, 생활사, 구술사로 전회하는 일도 이런 하찮은 것들의 재현권을 위해 ‘사실’을 포기하는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려는 것 아닐까. 허구적 글쓰기와 객관적 글쓰기가 합류하는 어딘가에 있는 ‘기억’의 윤리.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일어난 전쟁과 일어날 전쟁 사이 어딘가 일 비폭력적 시간의 자리에서 폭력을 ‘재’사유해야하는 임무에 대해서는 무력한 것 같다. 전시는 모두 ‘중요한’ 기표들, 이름들, 사건들로 구성되었다.
 


정인숙 <강원 주문진-통일전망대> 잉크젯 프린트 76×105cm 1995


역사와 기억을 말하는 태도


일주&선화갤러리의 2인전 <끝나지 않은 전쟁, 60년>은 OCI미술관에서도 전시 중인 김혜련 작가의 다른 작품을 포함한다. 두 곳의 전시작에서 김혜련은 자신의 풍경화가 완성되면 캔버스 일부분을 칼로 찢고 실로 꿰매는 동일한 방식을 구사했다. 서정적 감성을 강렬한 필치와 색채로 표현해 온 작가는 칼과 바늘의 작용으로 문명의 폭력과 인간의 상처를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고 치유와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러나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가 평면의 캔버스를 찢고 깊이의 일루전을 ‘해결’했을 때의 강렬함/폭력이나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도마의 치유(The Healing of St. Thomas)>(1989) 제목을 달고 갤러리 벽면에 구멍 난 예수의 옆구리를 각인함으로써 비인칭적 갤러리에 ‘살’을 입힌 ‘기적’이나,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가 헝겊을 실로 기워 상처뿐인 인간 형상을 제시했을 때의 슬픔과 비교한다면, 김혜련의 캔버스 찢기와 꿰매기는 시각적 강렬함도 인식의 비약도 슬픔으로의 하강도 건드리지 못한 채 형식적 ‘변화’로서만 조정되는 것 같다. 휴머니즘적 파토스의 폭력성이나 관념성을 경계하는 동시대 작가들은 봉합될 수 없는 구멍들, 심연들을 한껏 벌려둘 뿐 거기에 어떤 ‘가공’을 가하지 못한다. 치유의 환상보다는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견디는 것에서, 즉 환상이 가져다줄지 모르는 면죄부를 얻기보다는 역사적 비극의 편/자리에 서려는 굴욕을 자처하는 것에서 정치적, 윤리적 책임을 떠안으려 한다. 전준호의 영상작업은 다른 방식으로 역사적 개입에 침묵한다. 전쟁기념관의 조형물이 형상화한 거짓된 화해의 제스처를 희화화하면서 시간이 다할 때까지 ‘쌍쌍’ 댄스는 출 수 없을 형제가 무한복제된 무도장 장면을 연출한 영상이나, 북한 화폐 안에서 북한의 현재와 미래의 블랙코미디적 몰락의 상황을 가시화한 작품은 외부 관찰자에게나 주어지는 무한한 상상력, 흥미로운 것에 경도된 자의식의 유희를 드러낸다. 흥미로움은 역사를 불신한 채 역사에서 튕겨져 나가길 선택한 개인이 숭배하는 키워드이다. 그것은 비틀 수 있는 힘과 웃을 수 있는 재능 외에 어떤 관심이나 책임도 거부하는 권태와 연관되어 있다. 집단적 비극을 다루는 전형적인 작가의 기법과는 무관하게 OCI미술관 전시에 섞여든 ‘홀로코스트’란 한 출품작의 제목에서, 조르조 아감벤의 ‘무젤만’을 떠올린다. 근대적 기획 전체를 빨아들인 홀로코스트는 무수한 상징, 표상, 이름을 통해 기억의 윤리를 건드려왔다. 아감벤은 수용소를 집단화하길 거부하고 그 내부에서 제일 하단에 있던 비천한 자들인 무젤만을 통해 ‘증언’의 문제에 직면한다. 아감벤은 목소리 없는 자들, ‘살아있는 시체들’, 증언 불가능한 이들의 자리에서 근대적 폭력을 재정치화하려고 한다. 비판적 지식인의 초연한 자리에서 내려와 피해자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는 거의 죽은 자들 옆에 서려는 윤리.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남으로써 ‘지나갔지’만 지금도 돌아와 ‘다른’ 기억을 강요하는 역사의 집요함을 책임지려는 윤리 말이다.
 

박찬경 <SET> 영상 16분 42초 2000

[ARTISTORY] 王治 '창작⇨⇦비평'의 페르소나

왕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미적 오브제 (aesthetic objet)를 제작하는 ‘아티스트’다. 동시에 ‘평론가 윤진섭’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학생이라고 말한다. 그의 내면에는 언제나 창작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으며, 작가와 평론가 사이의 페르소나를 찾아가고 있다. 최근 왕치는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대중의 새발견-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전(2013. 6. 6~7. 14)에 작가로 참여했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가의 길’ 35년을 40컷의 사진으로 불러낸다.



2009년 경기도 도자비엔날레의 특별전으로 열린 국제 퍼포먼스페스티벌<Ceramic Passion>에서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하는 장면. 이때부터 왕치(王治/Wangzie)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 왕치는 초등학교 시절에 들은 라디오 연속극‘십오야(十五夜)’의 등장인물 가운데 산적 두목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2011년 <부천 퍼포먼스 페스티벌>에서 발표한 <청소Ⅰ> 왕치에게 예술과 일상의 완벽한 결합은 중요한 예술적 지표다. 청소를 하는 일상 행위를 통해 사건에 개입하고 우연히 벌어지는 돌발적 사태를 즐긴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지듯이 옆길로 새는 것, 왕치는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한다.



<부러진 삽(BrokenShop)> 2010_왕치는 화단을 지나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삽을 들었다. 부러진 삽을 들고 문래예술공장으로 향했다. 이윽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놈에게 이름을 지어 주자. 왕치는 ‘broken’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그것은 ‘부러진’이라는 뜻이다. 연이어 떠오른 아이디어가 ‘shop’이다. 발음이 ‘삽’과 비슷했다.



2013년 문화역서울 284에서 개최된 <대중의 새발견>전에 출품한 왕치의 <예술가의 똥>. 실제 자신의 똥으로 드로잉을 했다. 현장에서 왕치는 ‘똥 선언문’을 배포했다. 사람의 똥을 먹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제주도의 똥돼지는 말한다. “너희의 살은 나의 결과물, 너희의 똥은 나의 삶의 근원. 똥을 생각하라! 똥과 친하게 지내라! 그래서 똥이 대접받는 세상이 되게 하라!”

[SPECIAL FEATURE] ⓒ무라카미 다카시


2011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프랑소아 피노 컬렉션 : 고통과 환희> 전에 참석한 무라카미 다카시와 프랑소와 피노_송은문화재단 제공 ⓒ송은문화재단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다카시는 누구인가? “나는큰 결함을 가진 인간이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비서구권 작가로서 누구보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의 발언은 다음으로 이어졌다. “결함이 있는 내가 아티스트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귀족과 같은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그의 탄생부터 학창 시절, 일본 미술계에 데뷔하며 벌인 초기 활동, ‘수퍼플랫 3부작’을 기획하며 국제 무대로 진출, 미술계의 ‘수퍼스타’로 성장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압축해 정리했다.



삼성미술관 플라토 전경_삼성미술관 플라토 제공

수퍼플랫 미학

무라카미 다카시가 창조한 ‘귀엽고, 아름답고, 기괴한 세계’는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그의 초기 작품부터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의 기원, 레퍼런스, 변화 과정 등을 분석해 무라카미가 세상을 향해 던진 ‘수퍼플랫의 미학’과 방법, 작품에 숨은 메시지를 살펴본다. DOB, 해골, 해파리 눈, 버섯, 꽃, 카이카이와 키키, 각종 캐릭터에서 나한까지…



무라카미 다카시 <순백색 복장의 도브(핑크&블루)> 300×300cm 2013_2013 All Works ⓒ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Ltd. All Rights Reserved.

오타쿠에서 CEO로

무라카미 다카시는 한 명이면서 동시에 여러 명인 어떤 사람과 같다. ‘카이카이 키키’의 CEO인 그는 보통 30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다. 그는 일본의 신진 작가를 프로모션하며 일본 미술계의 열악한 시스템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새 지도를 짜기 바쁘다. 또한 작품의 이론적 기반을 제시하기 위해 2권의 책과 ‘수퍼플랫 3부작’을 기획해 국제 미술계에서 자신의 입지뿐만 아니라 일본 현대미술이 새로운 평가를 받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장에서는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한 인물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한 지를 살펴본다.



무라카미 다카시 <Super nova> 보드에 고정된 캔버스에 아크릴릭, 패널 7개 299.7×1,049cm 1999_1999 All Works ⓒ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Ltd. All Rights Reserved.

PEOPLE

무라카미 다카시의 경력을 살펴보면, 그는 각계각층의 사람과 만나면서 그 인연을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요한 자원으로 삼아 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동료 작가, 갤러리스트, 미술관장, 컬렉터, 연예인, 디자이너, 미술관장, 후원가, 딜러 등 무라카미 다카시가 국제적 작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그를 조력한 전 세계 인사를 한 자리에 모았다. 물론 사이토 타마키, 오츠카 에이지처럼 일본 내에서 그의 활동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인물도 포함됐다. 무라카미의 인맥을 통해 미술계라는 상상의 공동체에서 오늘날 작가가 처한 위치와 역할은 무엇인지를 가늠해보자.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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