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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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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2013년 7월호 특집에서는 현대미술 제전,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6.1~11.24)를 다각적으로 조망한다.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기획한『백과사전식 궁전』은 인간이 축적한 지식과 이미지의 방대한 인류학적 보고다. 우선 비엔날레가 문화정치적인 담론을 실천하는 장이라는 점에 주목해, 그 정체성을 다시 묻는 깊이 있는 논고를 실었다. 예술 작품을 비롯해 익명의 인류학적 오브제를 한자리에 모은 비엔날레는 우리가 시각예술을 습득하는 지식과 통로에 관한 파격을 제안하며, 이미지의 의미와 무의미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두 번째로 편집부가 베니스비엔날레의 '이미지의 인류학'적 양상을 살피는 5가지 키워드를 뽑아 화보로 구성했다. 미술품을 포함해 역사적 유물, 발견된 오브제 등 전시장을 빽빽하게 채운 전시 출품작의 성격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세 번째로 Art는 현지에서 주목 받는 국가관 13곳의 큐레이터(커미셔너) 혹은 참여작가의 현장 육성을 통해 비엔날레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했다.

Contents

COVER

          피터 짐머만(Peter Zimmermann) 캔버스에 에폭시 레진 200×300cm 2010


SPECIAL FEATURE

081    Venice Biennale 2013
088    Review
         비엔날레, 그 개념의 정치학 / 이용우
097    Pictorial
         백과사전식 궁전을 여는 5개의 열쇠 / 편집부
         몸, 욕망의 장소
         조형의 세계
         본다는 것의 의미
         비가시성의 재현
         분더캄머-호기심의 진열장
113    Interview
         National Pavilion Best 13 / 김수영


ARTIST

128    피터 짐머만
         ‘회화’ 개념의 해체 / 안드레아 마데스타
136    코헤이 나와
         감각의 경계면 / 김정복


CRITIC

146    왜, 다시 야나기 무네요시인가? / 이인범


FOCUS

058    정주영, 허수영展: 우리 시대의 회화적 질문 / 고동연
         액츠 오브 보이싱展: 목소리, 행동하는 힘 / 정연심
         드림 소사이어티, 마기 마랭展: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 양지윤
         한국미술, 대항해 시대를 열다展: 
         ‘세계화’라는 돛 / 전영백
         김수영, 이경展: 형태와 색을 찾아서 / 안소연
         길종상가展: ‘저 편한 세상’으로의 눈짓 / 윤원화


SERIES

156    On Contemporary Art
         한국미술에서 ‘방법’이란 무엇인가? / 조앤 기


ETC.

055    EDITORIAL / 김복기
163    ART FIELD
178    P.S.
179    SUBSCRIPTION
180    CREDIT

Articles

유토피아적 관점으로 축조한 대안적 미래

웨이워드 플랜트 <Urban Physic Garden> 2011

유토피아적 관점으로 축조한 대안적 미래

The Spirit of Utopia展 2013. 7. 4~9. 5 런던 화이트채플갤러리

<The Spirit of Utopia>전은 ‘…라면 어떻게 될까?(What If?)’라는 질문을 화두로 대안적인 미래를 꿈꾸는 총 10팀의 작가를 초대해 폭넓은 장르의 작품과 다채로운 참여적 미술 활동의 장을 만든다. 참여 작가는 이토 바라다(Yto Barrada), 티어스터 게이츠(Theaster Gates), 하자부주(Ha Za Vu Zu), 피터 리버시지(Peter Liversidge), 오스텐그룹(Ostengruppe), 클레어 펜테코스트(Claire Pentecost), 페드로 레이(Pedro Reyes), 수퍼플렉스(Superflex), 타임/뱅크(Time/Bank)와 웨이워드 플랜트(Wayward Plants). 동시대 작가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와 건축가 등 여러 분야의 사회 활동가가 포함됐다. 화이트채플갤러리에서 커미션을 받아 새로 제작된 다수의 작품을 포함해, 설치, 조각, 비디오, 참여적 작품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작품을 소개한다. 출품작은 사회적인 도구로서 동시대 미술이 상상할 수 있는 미래에 관한 대안을 탐구한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작가가 작업실에서 완성한 작품을 전시하는 것보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을 만든다. 멕시코 작가 페드로 레이의 <Sanatorium>(2013)은 흡사 병원, 실험실 같은 공간을 설치하고 작가가 직접 구성한 자아 발견 프로그램이다. 티어스터 게이츠의 설치 작품 <Soul Manufacturing Corporation>(2011~13)은 도예 작업실로 탈바꿈한 전시장에서 도예가가 물레를 이용해 그릇을 제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환경 문제에 관한 대안을 소개하는 작업도 있다. 미국작가 클레어 펜테코스트는 청정 지역의 흙을 가져다가 도시 농장에 옮겨 심는 작업을 선보이며, 또한 런던에서 활동하는 환경 운동가 그룹 웨이워드 플랜트는 전시장 안에 실험적인 온실을 구성한다. 씨앗을 재배할 수 있는 정원부터 만들어진 씨앗을 우주로 보내는 것까지 식품 생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의 서문에는 독일 유토피아 철학자인 에른스트 블로흐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간결하지만, 꽤 심오한 이 질문은 관객이 사회적, 경제적인 난제에 다시 눈을 돌리게끔 한다. 미술이 가질 수 있는 사회 변혁의 힘을 다시 한 번 전면에 내걸어 녹록치 않은 현실을 건드리는 작가의 유토피아적 관점을 들여다 볼 수 있다. / 전효경 해외특파원

타임/뱅크의 <Time/Bank Currency> 2011

형태와 색을 찾아서

김수영 <Drawing 9 for Invention No.2> 보드에 목탄, 에나멜 페인트, 은반사 필름 36×36×45cm 2013

형태와 색을 찾아서

김수영展 5. 28~6. 16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이경展 6. 7~30 복합문화공간 에무

형(形)과 색(色)은 회화의 기본 요소다. 그토록 많은 미술가가 형과 색의 비범한 능력에 이끌렸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알려진 대로 세잔은 형태와 색채를 가지고 고집스럽게 사투를 벌인 화가였다. 소설가 D. H. 로렌스는 세잔의 회화에 보이는 대상의 지각 방식을 ‘사과성(appleyness)’으로 정의했다. 자연을 원통과 구, 원뿔의 형태로 지각하고, 빛과 공기에 둘러싸인 자연의 색채를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광기 어린 집착은 ‘클리셰’를 배제한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보는 방식’에 도달했다. 그런 의미에서, 세잔이 그린 사과는 상투적인 정물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꿰뚫어 감지해 낸 근본적인 실재의 표상이 된다. 자코메티 역시 같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찬장 위의 사과>(1937)에서 노란색 구 모양의 작은 사과 하나를 그려내기 위해 자코메티는 수많은 윤곽선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정물인 사과를 앞에 두고 세잔과 자코메티는 형과 색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고통스럽게 그려 냈다.
이미 한 세기 전 세잔은 죽음으로 그 고민을 멈출 수 있었고, 50여 년 전 자코메티도 생을 마감하며 끈질긴 고뇌에서 해방됐다. 그 차오르던 고뇌와 집착은 고스란히 현대작가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사과성’으로 일컬어지는 형태와 색에 관한 본유적인 고민과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상하고자 했던 계속된 도전도 쉽게 답을 얻지는 못했다. 어쩌면 과거로부터 실패했던 색과 형태의 윤곽을 찾느라 애꿎은 붓질을 반복하는 건 아닐까. 김수영과 이경, 이 두 작가의 애써 침착한 붓질이 고통스럽게 요동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이경 <형용사로서의 색채> 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릭 각 53×45.4cm 2012~13

이상적인 형태와 현실적인 공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은 ‘형태’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한 작가의 ‘실험실’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회화를 전공한 김수영의 개인전 <인벤션(Invention)>은 그 실험적 공간에서 기록한 3주간의 보고서와 같다. 독일 유학 후, 2000년대 중반부터 충실한 회화 작업을 보여 왔던 김수영은 2차원 형태, 즉 회화적 형태가 발생시키는 ‘균제’에 주목했다. 그는 20세기 초 근대건축과 도시계획을 통해 기계 미학을 제시한 르 코르뷔지에의 조형원리를 교본 삼아 회화의 구조를 살폈다. 자신이 직접 촬영한 건물의 파사드 사진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데, 시각적으로 균형 있게 설계된 건물 면에 초점을 맞춰 클로즈업한 풍경이다. 애초에 김수영은 건물의 한쪽 파사드만 다룬 ‘단면’ 구도와 건물의 모서리 면을 대칭축으로 삼은 ‘양면’ 구도로 각각의 시각적 ‘균형’을 세심하게 탐구해 왔다.
견고한 수직 수평의 균형을 겸비한 건축물을 발견해 사진으로 기록한 후 회화의 평면에 옮기는 과정을 겪으면서, 작가는 그 규칙적인 질서를 위협하는 불편한 상황에 직면했다. 사진 화면에 꽉 붙들어 둔 규격화된 대칭 관계는 그림으로 전환되면서 특유의 회화적 붓질이나 명도 등에 의한 형태의 차이로 번번이 붕괴됐다. 그래서 작가는 파괴된 균형을 재구성하기 위해 더 집요하게 비율을 적용하고, 완벽한 대칭을 보여 줄 방법을 강구했다. 3차원 건물을 2차원 회화 공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왜곡과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더 철저하게 ‘완벽한 형태’를 추적해 갔던 모양이다. 하지만 <인벤션>전은 질서정연한 형태에 관한 작가의 집착에 불손한 의심이 개입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김수영은 목탄과 은반사 필름지로 전시장 벽 전체를 마감하면서, “그동안 건물 외관을 지각하던 방식을 3차원의 공간으로 확장”해 보고 싶은 충동을 제시했다. 게다가 회화적 형태를 3차원의 실제 공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할 치명적인 ‘차이’마저 내심 기대했다. 전시 제목 <인벤션>이 그러한 작가의 속내를 말해 준다. 하나의 주제에 관한 다양한 ‘변주’의 뜻을 함의하는 음악 용어를 선택함으로써, 이 실제 공간은 ‘완벽한 형태’에 관한 변주의 공간으로 작동한다.
설치 방법은 대략 이렇다. 전시장 벽면에 젯소를 바르듯 밑 작업을 한 후, 정확한 비율에 맞춰 은반사 필름과 목탄으로 재단한 사각형을 붙이거나 그려 넣는다. 작가가 적용한 정확한 비율은 르 코르뷔지에가 근대건축에 적용했던 황금비율, 피보나치(Fibonacci) 수열에 근거한다. 김수영은 전시에 앞서, 이 실험적인 공간을 탐색했다. 하지만 천장의 높이를 제외하고 벽의 폭, 모서리의 각도 등에서 전혀 일치하는 규칙을 찾지 못했다. 유일하게 일치한 바닥면에서 천장까지의 길이를 크게 5등분해서 사각형 세로면의 길이를 구했다. 그 세로면에 황금비율 1.618을 적용해서 가로변의 길이도 얻어 냈다. 이로써 작가는 완벽한 사각형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완벽한 사각형은 세잔과 자코메티의 회화에 명백하게 남아 있는 숱한 윤곽선들처럼 확고하지 못하다. 실제 벽에 상처처럼 남아 있는 자국들, 모서리의 거친 이음새, 관객의 신체적인 개입 등 설치모형에서는 전혀 가늠할 수 없었던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 전시 공간의 모서리를 중심축으로 삼아 완벽한 형태의 사각형들이 서로 반사되고 교차하면서 불투명한 가상의 공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한다. 바로 그 모서리는 형태(form)와 비정형(formless)이 교차하는 지점이며, 2차원과 3차원 공간이 조응하는 카오스다. 여기서 작가는 완전하고 이상적인 ‘형태’들(正)이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한 현실의 ‘공간’(反)에서 스스로 변주하고 균형을 이루어 내는(合) ‘변증법적 균제’를 목격한다.

이경 <형용사로서의 색채: 어두운-설레는> 전경

순수한 색채와 뒤섞인 감정

김수영 작가가 형태와 균제에 관해 가졌던 오랜 집착만큼이나 이경 작가의 색에 관해 편집증적 태도 역시 꽤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경의 개인전 <형용사로서의 색채: 어두운-설레는>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 에무에 들어서면 눈 앞에 펼쳐진 색의 스펙트럼보다 매캐한 물감 냄새가 후각을 먼저 자극한다. 결코, 중립적이지 못한 이 공간에서 작가는 시각적 교감에 집중해 줄 것을 당부한다. 전시장 한쪽 벽에 4줄로 가지런히 붙여둔 48장의 흰 도화지에는 각기 다른 색의 붓 자국 313개가 있다. 고작 평붓으로 서너 번 칠한 듯한 이 드로잉을 완성하는데 꼬박 1년 6개월이 걸렸다는 작가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모호한’ ‘어슴푸레한’ ‘지친’ 등 연필로 적어 놓은 형용사 단어와 ‘12:1/2’ ‘15:1/4’ 등 당시의 시간을 1/4 단위로 기록한 숫자, ‘1412’처럼 작품번호와 제작연도를 알리는 숫자 등이 붓 자국 주변에 암호처럼 적혀 있다. 이것은 작가의 일기다.
일상의 어느 순간, 특별한 감정이 무언의 색채로 떠오른다. 그것을 놓칠세라 작가는 물감을 푼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 실체 없는 색에 다가가기 위해 물도 섞지 않고 조색(調色)과 붓질을 반복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색채는 미묘하게 변화해 가다가 어떤 순간적인 확신으로 비로소 ‘완벽한’ 이름을 얻는다. 마치 시약이 묻은 리트머스 종이처럼 이상적으로 반응한 색채 하나를 추출해 작가가 직접 명명한다. 이렇게 선택된 색은 별도의 캔버스에 옮겨져 ‘형용사로서의 색채’라는 지위까지 얻게 된다.
작가는 이 작업에 몇 가지 중요한 장치를 개입시켰다. 말레비치의 ‘영도(zero degree)’ 회화를 연상시킬 만큼 빈틈없는 단색 회화는 순수하다 못해 색 자체에 지극히 충실해 보인다. 색에 압도돼 가까이 다가갈수록 화면을 뚫고 나올 듯 봉인된 단어들이 안정된 시각을 무너뜨린다.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어느 날의 감정과 완벽하게 닮아 있는 물감을 캔버스에 칠하는 과정에서, 레이저 커팅 된 문자를 화면 아래에 삽입한 것이다. 작가는 ‘기쁜’, ‘모호한’ 등 추상적 주관적 감정의 형용사를 주관적인 색과 객관적인 고딕 문자로 이중 표기했다. 관객의 시선은 색과 언어로 정의된 기표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왕복한다.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어두운-설레는>(2013) 연작은 순간적인 확신으로 얻어낸 색채 사이의 결합을 시도한다. ‘어두운’과 ‘설레는’의 감정이 교차하는 하이픈의 지점, 무명의 색채들이 부유하는 충돌의 장소를 작가는 모호한 물감층으로 메웠다. 이러한 물감층을 표현하기 위해 이경은 오래전부터 덕테이프를 이용해 왔다. 연속하는 물감층을 만들어 내려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한 번에 하나의 물감층만 칠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인접한 면에는 덕테이프를 붙여 완벽하게 가린 후, 계획한 면에 물감을 채우고 말리기를 반복해야 한다. 물감층이 다 완성되면 작가의 직관적 선택에 의한 색들이 하나의 스펙트럼을 이룬다. 하지만 테이프를 떼어낸 그 경계에는 색을 칠할 때 테이프 모서리로 밀려들어 간 물감 자국들이 거친 요철을 남긴다. 우연히 발생한 이 외상적인 파열의 반복이야말로 라캉이 말한 “실재와의 어긋난 만남”인 듯하다.
이경은 애초에 색을 섞으면서 그것이 절대적인 확신을 줄 수 없음을 안다. 행여나 잊을까 이름을 적고, 라벨을 붙이고, 번호를 매기고, 시간을 남기고, 공들여 틀에 넣어도 불확실한 ‘형용사’로서의 색채만 화면을 맴돌 뿐이다. 상실에 관한 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담은 <My Love, my Seni>처럼, 선명했던 감정의 기록물로서의 색채가 완벽한 붓질로 고정되려는 찰나, 결코 지속될 수 없는 파열을 일으킨다는 것 또한 패러독스다. / 안소연

감각의 경계면

코헤이 나와 <Manifold> 알루미늄, 파이프, 페인트 1600cm×1200cm×1300cm 2010~13

감각의 경계면

서로를 끌어당기며 융합되고 부풀어 오르다가 마치 폭발할 듯 보이는 거대한 흰색 원형체. 천안 신세계백화점 조각광장에 새롭게 설치된 코헤이 나와(名和晃平)의 대형조각 <매니폴드>다. 이 작품의 설치에 맞춰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는 <1000일의 여정, 코헤이 나와 매니폴드 다큐멘터리>전(6. 5~7. 7)을 개최했다. 이 거대하고 흥미로운 흰색 몬스터가 등장하기까지, 나와의 작업은 고대와 현대, 종교와 우주, 디지털 가상 세계의 단면을 총체적으로 버무리며 텅 빈 스펙터클의 시대를 사유해 왔다. / 김 정 복

비를 몰고 다니는 남자’라는 별명을 지닌 코헤이 나와(名和晃平)는 1975년 오사카에서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세 살 때부터 매일 할아버지에게 장기를 배우고 꽃꽂이 선생이었던 할머니의 책장에서 세계미술전집을 즐겨 봤다. 어머니로부터 고향 우와지마 지방 민담에 등장하는 요괴 이야기를 듣고 그 강렬한 이미지에 매료된 소년 나와의 기억은 청년기에 성스러운 신상에 대한 관심으로 재생된다. 고교시절에는 천문학 동아리 회장을 지내며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이후 교토시립예술대로 진학하여 생명의 기원, 우주, 태양, DNA, 달의 운행 등을 작품 테마로 다루는 노무라 히토시(野村仁)를 만난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매일 밤마다 달을 찍어 온 <달의 악보>의 작가 노무라 히토시의 우주적 세계관에 경도된 나와는 조각을 전공하기로 결심한다. 9년 동안 우주적 감성과 문명에 대한 사유를 지속적으로 교감한 스승 노무라 히토시와의 지적 긴장 관계는 그가 한 작가로서 성장하는 데 뛰어넘어야 할 벽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코헤이 나와 <Throne> 혼합재료 300×90.5×145.3cm 2011

‘모노’를 연다, ‘소재’를 연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성하는 방법론으로 현대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해 온 코헤이 나와는 사실 대학 시절에는 현대미술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현대미술 전시보다는 교토나 나라의 불상, 신상(神像) 등 종교미술을 보러 다니며, 신성(神性)으로 숭배 받는 대상물이란 어떠한 것인지 그 의문과 함께 신령스러운 존재의 성성(聖性)에 매료되었다. 일본의 전통미술과 단절된 현대 일본조각의 주류적 경향에 거리감을 느끼고 조형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끼던 그는 영국왕립미술원 조각 코스에 교환학생으로 체류하며 새로운 조각적 환경을 접한다. 유럽의 종교미술을 돌아보며 고대-중세-근대-현대미술로 이어져 오는 연속성을 이해한 뒤 자신이 원하는 현대조각의 풍부한 가능성을 재인식한다.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 등의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물질과 질감만으로 어떤 메시지를 담아 내는 표현 방식에서 공통 감각을 경험한다.
교토예대에서 박사과정까지 긴 학창 시절을 보내는 동안 노무라 히토시, 고시미즈 스스무(小水漸), 나카하라 코다이(中原浩大), 야노베 켄지(ヤノベゲンジ) 등 쟁쟁한 작가들의 카리스마에 짓눌려 가끔 수업에 빠지기도 했다지만, 코헤이 나와의 예술가적 열망은 남달랐다. 대학 1학년 때부터 6년 간 자원봉사로 참가한 하쿠슈(白州) 아트 캠프에서 전위무용가 다나카 민(田中泯)의 무대 설치를 거들면서 신체, 피부, 토르소에 관한 감각을 배웠다. 또한 다카야마 노보루(高山登), 하라구치 노리유키(原口典之), 에노쿠라 코지(倉康二) 등 모노파의 주요 작가들과 교류하며 소재에 감각을 싣는 것이 중성적인 표현 상태를 잘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70년대 생 일본의 현대조각가들은 모노하 세대들의 작품 경향과 단절되어 있는 편이다. 이에 비해, 코헤이 나와는 모노하의 ‘모노를 연다’는 인식론을 ‘소재를 연다’는 개념으로 자기화한다. 여기서 나아가 ‘정보화된 이미지와 아날로그적인 소재의 합성’이라는 방법론을 개발한다. 사물의 물성을 중요하게 다루는 모노하와 나와의 작업에서 큰 차이점은 나와의 경우, 정보로서의 소재를 다루며 감각의 표층성, 감각의 합성, 감각의 경계면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동세대 일본 조각가로서 자주 비교되는 오다니 모토히코(大谷元彦)의 작업은 뚜렷하게 형상이 드러나는 조각, 내러티브를 얹어 관람자의 감정이입을 연출하는 극장형에 가깝다. 반면 나와는 소재 그대로를 드러내 보이며 관람자의 감각에 호소하여 그들의 상상력에 침투한다. 평론가 아사다 아키라(田彰)는 나와의 현대성이 작가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물질 그 자체를 드러내는 데 있다며, 오브제의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직접성에 대한 회의 그 자체를 작품화한 고도로 의식적인 물질주의자(materialist)로 평가한다.    
코헤이 나와의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표피, 감각의 경계면이다. 표피에 관한 관심은 영국 유학시절 접했던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물질과 정신의 관계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인간의 감성이나 감각의 원리가 몸의 표면에서 시작된다는 인식을 창작 모티프로 연동시킨다. 그리고 점차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로 관심이 이동했고 그것을 탐색하는 방법으로서 드로잉을 시작한다. 드로잉으로 생성된 아메바 같은 모티프가 미분화 상태로 떠오르며 세포(Cell)가 외부로 계속 퍼져가는 형태는, 이후 픽셀(PixCell=Pixcel+Cell, 영상세포), 복셀(Voxel=Volume+Pixcel) 개념으로 확장되어 공간을 생명화하는 작품들의 공통 모티프로 자리 잡는다.

코헤이 나와 <Bump-Kids> 혼합재료 220×126.4×60.8cm 2012

관람자의 감각에 접속되는 조각

코헤이 나와가 영국에서 돌아온 직후인 1999년부터 일본에서는 인터넷 환경이 일상화되었다. 새로운 소재의 가능성을 찾던 나와는 인터넷 검색 시스템에 몇 개의 키워드를 넣어 자동검색된 이미지를 물리적 소재로 재가공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의미와 스토리가 파괴되는 점에 매료된다. 소재가 지닌 물질성이나 감각에 호소하는 질감을 눈 앞에 드러내 보이고, 보는 순간 접속되어 로그인된 듯한 상태, 거기서 조각이 시작되어 관람자의 상상 속에서 완성되는 조각을 구상해 온 나와는 자신이 원하던 현대조각을 디지털 환경에서 다운로드된 정보와 아날로그적인 소재의 합성으로 구체화해 간다.   
유년기에 자신을 매료시킨 신령스러운 존재와 가장 닮은 사물인 박제를 수정구슬로 뒤덮은 <비즈(BEADS)> 시리즈는 표피 효과를 극대화한 동시에, 안은 텅 비어 있는 존재의 은유로서 시각적 숭고함을 지닌다. 표피만 리얼하고 안은 텅 빈 존재인 박제에 투명 유리구슬을 렌즈처럼 덧붙이며 더블 효과를 낸 것이다. 정보와 신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에는 코헤이 나와의 근본적인 세계관이 깔려 있다. 종교 시대든 현대든 신과 나, 무의식과 의식, 사회적 사고와 개인적 생각 등 이중화 현상을 보이는 것이 인간 정신의 존재 방식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모든 물체는 실체와 정보 이미지로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표면을 볼 수 있을 뿐이고 본질적인 실체에 다가갈 수 없다. 때문에 인간은 물체로서의 존재, 정보로서의 존재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이 세계의 정보를 자기방식으로 포맷하여 고정하려는 속성이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정밀한 다면체인 하이 폴리건과 간소하게 덧붙인 로우 폴리건을 중첩시켜 신성한 영기(靈氣, aura) 효과를 낸 <폴리건(POLYGON)> 시리즈, 실제 인물을 3D 모델링으로 성형화해서 모호한 존재로 변형하여 실재와 가상을 교란시키는 <트랜스(TRANS)> 시리즈에도 공통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텅 빈 존재란 텅 빈 스펙터클로 지칭되는 후기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감각의 마비와 공허함을 함의한다. <롯폰기 크로싱 2007: 미래로의 맥동>전에 출품된 천장에 매달린 기괴하게 변형된 형태의 인체 작품은 발포 우레탄을 사용하여 표면이 부글부글 팽창하는 듯한 감각을 자극하는 이미지다. 이 작품은 전시 기간 이후에도 엄청난 정보 시스템 속에서 무감각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공허함을 드러낸 것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발포 우레탄 운무를 뿜어 낸 <융모(VILLUS)>, 비누 거품에서 모티프를 얻은 <거품(SCUM)> 시리즈, 발광(發光)시킨 실리콘 오일로 기포를 발생시키는 <액체(LIQUID)> 등 자연발생적으로 분열하는 거품들은, 화려하게 장식된 상업 공간이 공허하게 보이고 거리가 뭔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거품으로 뒤덮힌 상태로 느껴졌다던 작가의 감각을 반영한다. 특히 이 일련의 시리즈는 구체 모양의 이미지가 반복되며, 작품 소재의 발견과 생성 과정에서 상호 영향 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나와의 작품들은 서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순환하는 루프 구조를 이루고 있다.

코헤이 나와 <Stroke-Rio> 혼합재료 98.6×30.9×24.5cm 2012 Photo by Nobutada Omote (SANDWICH GRAPHIC)(왼쪽), <Stroke-Yana> 혼합재료 195.8×66.2×72.6cm 2012(오른쪽)

코헤이 나와 / 1975년 오사카 출생. 교토시립예술대 및 동대학원 조각 전공. 도쿄메종에르메스갤러리, 도쿄도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 개최. 스카이갤러리, 모리미술관,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 사치갤러리, 재팬소사이어티 등의 그룹전 및 부산비엔날레 참여. 현재 교토대 조형예대 조교수, 아트 디자인 건축 제작소 ‘샌드위치’ 플랫폼 디렉터.

크리에이터 플랫폼, ‘샌드위치’

2011년 코헤이 나와는 젊은 작가로서는 최초로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서 <합성(Synthesis)>이라는 회고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2000년 교토에서 열린 첫 개인전 <아니마즈모(ANIMAZUMO)>를 치른 이후, 그 동안의 작업을 총정리하는 자리였다. 그런가 하면, 2010년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와 인연이 닿아 운명의 역작 <매니폴드(Manifold)>를 의뢰받는다. 300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은 그는, 텅 빈 스펙터클로 가득 찬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환경오염의 심각성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시각적으로 경고하는 작품을 구상한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보지 않으려고 하는 위험을 시각화한 <매니폴드>는 융기한 구체의 배치,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마감처리를 기본 요소로 설정했다. 공교롭게도 나와가 천안 프리젠테이션을 마치고 오사카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3.11 동일본 대지진 소식이 전해졌다. 한신 아와지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의 정신적 마비 상태를 다룬 볼펜 드로잉 <정신적 마비(Phychic Numbing)>를 발표했던 나와는 작품이 상징하는 거대한 위협이 실제로 일어난 당시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고 한동안 작품 제작을 중단하기도 했다.
1000일에 걸쳐서 완성한 높이 13m, 너비 16m의 이 작품은 수많은 파이프를 한데 엮은 구조물로 200개 이상의 다면체, 다기관로 이루어져 있다. 한 눈에 시각적으로 그 이미지를 정형화할 수 없는 복잡한 형태를 구축하기 위해 3D 데이터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거쳐서 중국의 공장에서 기본 부속들을 만들고, 일본의 공장에서 그 표면을 다듬어서 시험 조립해 본 뒤 천안으로 들여와 102일 간 설치에 돌입했다. 5개의 기둥 위에 떠 있는 거대한 흰 구름들의 이음매가 드러나지 않도록 표면을 매끄럽게 공정하는 작업에만 1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속은 텅 비어 있고 겉은 팽창하는 구조의 거대조각 <매니폴드>는 나와의 지금까지의 작업 방식의 총체적 결실이다. 정보, 에너지, 물질을 테마로 팽창했다 축소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명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우주적 시점과 문명적 사유를 조형화한 이 작품이 300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면, 그야말로 그 시대의 성스러운 대상물이 될 것이다.  
<매니폴드>라는 거대조각은 코헤이 나와의 작품이자 ‘샌드위치’라는 작업 공동체의 협업물이다. 점차 늘어나는 프로젝트를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진 나와는 작품의 핵심적 요소인 작업 구상, 실험, 리서치 과정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기 위해 프로젝트로서 팀을 꾸리게 되었다. 해외 여러 스튜디오를 탐방하고 난 뒤 2010년 교토 우지가와에 옛날 샌드위치 공장을 리노베이션해서 크리에이터의 플랫폼을 만든 것이다. 이곳에선 아트, 프로덕션, 건축, 그래픽 등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이 모여서 상호 협업하며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매일 활발한 의사소통이 진행된다. 샌드위치는 단순한 공동작업 스튜디오가 아니고 아티스트, 건축가, 뮤지션, 큐레이터, 디자이너, 컬렉터, 미대 학생, 일반 작가들의 플랫폼이다. 사람, 작품, 정보 등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작업을 만드는 창작 인큐베이터이기도 하다. 이런 플랫폼의 발상은 18세부터 6년 동안 매년 여름 참석한 하쿠슈 아트 캠핑에서 만난 전위무용가 다나카 민의 활동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코헤이 나와의 작업 세계를 탐험하는 것은 고대적 세계와 현대의 일상, 디지털 가상 세계를 타임 슬립하는 시지각적 쾌감을 준다. 생명공학적 사고와 최첨단 공학 시스템을 활용하여 소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고 그 시각적 가능성을 열어 가는 나와의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유한한 시간을 무한성과 접속하는 그 상상력이다. 이를 토대로 코헤이 나와는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시간을 현대적인 공법으로 변형하여 고대적 상상과 재접속시키는 현대적 신화를 발명해 내고 있다.

Special - July 2013

마리노 아우리티 <The Encyclopedic Palace of the World> 혼합재료
335.3×213.4×213.4cm 1950년대

백과사전식 궁전을 여는 5개의 열쇠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자신이 기획한 본전시 <백과사전식 궁전>이 지식에 관한 전시라고 설명한다. 보고 싶고, 알고 싶은 인간의 앎을 향한 욕망이 강박적이고 편집증적으로 만들어 놓은 다양한 형식의 이미지가 한자리에 모였다. Art는 베니스비엔날레의 ‘이미지의 인류학’적 양상을 살피는 5가지의 키워드를 뽑았다. 미술품을 포함해 역사적 유물, 발견된 오브제 등 전시장을 빽빽하게 채운 전시 출품작의 성격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다종다양한 인간 형상의 양상을 살핀 ‘몸, 욕망의 장소’, 암석이나 운석처럼 거대하고 미니멀리즘처럼 기하학적인 ‘조형의 세계’, 시각성의 본질에 바탕을 둔 ‘본다는 것의 의미’, 고전적인 재현의 의미부터 추상회화와 주술적인 종교화까지 ‘추상에서 재현으로’, 이미지가 저장되는 장소로서 아카이브적 성격을 지닌 ‘분더캄머-호기심의 진열장’ 등. 자칫 논쟁적 담론에 가려 동시대 미술이 잃어버린 힘의 기원을 추적하고 동시대에 이미지가 지닌 의미를 사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 편 집 부

잭 휘튼 <9-11-01> 캔버스에 아크릴릭, 혼합재료 305×610cm 2006(뒤), 올리버 크로이 &올리버 엘리세르 <The 387 Houses of Peter Fritz (1916?1992), Insurance Clerk from Vienna> 혼합재료 1993~2008(뒤)

분더캄머-호기심의 진열장

‘경이로운 방’을 의미하는 분더캄머(Wunderkammern)는 16~17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장식장을 의미한다. 광물이나 이국적인 도자기, 희귀동식물의 화석, 성자의 유골, 화려한 그림이나 조각품 등 일상생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온갖 진기한 사물을 진열해 놓은 공간이다. ‘놀라움(Wunder)’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곳은 세상에서 수집한 온갖 이미지들이 거처하는 화려한 집, 즉 ‘궁전’이며 미술관이다. 베니스비엔날레의 본전시 주제에 영감을 준 마리노 아우리티의 ‘백과사전식 궁전’은 인간의 사고를 뛰어 넘은 유토피아적인 상상의 박물관이다. 반면 로버트 고버의 인형 집은 일상의 이미지가 낯설게 투영된 조형물이다. 스탄 반 데르 빅의 영상 작품은 디지털 시대 이전의 이미지가 선사할 수 있는 몽환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신로 오타케의 강박에 가까운 이미지 수집은 책이라는 형식으로 저장된다.

에릭 반 리시아웃 <Healing> 2013

National Pavillion Best 13

전 세계 수많은 비엔날레 중에서 유일하게 ‘국가관’ 제도를 운영하는 베니스비엔날레. 글로벌화된 컨템포러리 아트씬에서 국가 간의 경계나 국가적 정체성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접근이라는 비판이 일면서도, ‘미술올림픽’의 참가국가는 회를 거듭할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는 총 88개의 국가관 전시가 열려 베니스는 그야말로 미술 축제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Art는 주목 받는 국가관 13곳의 큐레이터(커미셔너) 혹은 참여작가를 현지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전세계에서 몰려 온 아트피플을 상대로 자국의 문화예술의 척도를 보다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어떤 전략을 짰는지 전시 주제, 작가 선정, 공간 구성 등을 구체적으로 들었다. 그들은 국가관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오히려 전시의 주된 재료로 삼아, 동시대의 문맥에서 가장 유의미한 전시 방법론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있었다.

스탄 반 데르 빅 <Movie Mural> 영상 설치 1968 | 신로 오타케 <Scrapbooks #1-66> 혼합재료 1977~2012

Russia
‘다나에’ 신화의 현대적 재해석

이번 전시는 미술사에서 자주 재현되어 온 테마인 ‘다나에’ 신화의 현대적 재현이다. 신화에서 다나에의 몸에 떨어지는 황금 빗물은 인간의 욕망과 탐욕, 돈에 의한 부패와 타락에 대한 알레고리를 가지고 있다. 전시에서 신화 속 이야기는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물질주의에 빗대어 작동되며, 유럽의 그리스 구제 정책과 같은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논평이기도 하다. 다나에 신화는 러시아 파빌리온 공간 구조 전체를 관통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구현되었다. 먼저 메인홀의 1, 2층 사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관객은 기본적으로 위층과 아래층 두 가지 시점에서 감상할 수 있다. 2층에서는 바닥의 구멍을 둘러싸고 있는 쿠션 레일에 무릎을 꿇고 파빌리온의 피라미드형 꼭대기에서부터 구멍 아래층으로 떨어지는 동전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수많은 동전이 쌓이고 있는 아래층은 동굴로 꾸며진 공간이다. 고요함, 지식,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동굴 자궁’이자 플라톤적인 장소이다. 1층은 여성 관객만이 입장할 수 있다. 성차별적인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신화 속의 해부학적 논리에 따른 것이다. 남성 관객은 오직 위에서 ‘황금 빗물’이 떨어져 내리는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동전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투명 우산을 입구에서 받은 여성 관객들이 동전을 주워 출구의 양동이에 넣으면, 이것이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천장에서 떨어진다. 다나에는 우산으로, 황금 빗물은 주식거래 정보로 치환해, 현대사회에서 퇴색되고 있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 묻고자 했다.

시몬 데니 <Analogue Broadcasting Hardware Compression> 설치 2013

GREAT BRITAIN
협업자와 함께 한 마술 같은 시간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은 영국문화원 시각예술 부서에서 주최하고 있다. 그래서 이 부서의 책임자를 커미셔너로 올리지만, 한국관처럼 커미셔너가 직접 작가를 선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로 8명의 패널을 초대해 각각의 패널이 작가를 추천하고 오랜 토론을 거치면서 그 중 한 명의 작가를 결정한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즈 전체를 대표하는 국가관인 만큼 각 지역을 대표하는 미술기관의 관계자들, 평론가들이 패널로 참여한다. 매번 이렇게 선정된 작가의 프로젝트에 따라 새로운 실무 조직이 구성된다.
이 전시에서 나의 역할은 큐레이터지만, 사실상 이 전시의 진짜 큐레이터는 작가 제레미 델러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다양한 이들과 협업하여 작품을 만들고 이를 하나의 전시로 엮어 내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도 작가는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사람들과 협업했다. 사운드트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상 작품 <Ooh-oo-hoo ah-ha ha yeah>에선 런던 오케스트라 뮤지션이 대거 참여하고 있고, 글래스고 폐차장의 기술자도 참여했다. 다른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작가도 함께 일했고, 전시장 한켠에 마련된 찻집에 놓인 식물조차 협업을 통해 나온 결과물이다. 또 제레미 델러는 작품 <You have the watches, we have the time>을 위해 영국 교도소의 수감자들과 몇 주 간 워크숍을 진행한 바 있다.
이제껏 제레미 델러의 작업은 국가 정체성, 혹은 영국인으로서 산다는 경험을 비틀어 보여 주곤 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번 전시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설령 의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영국관에서 전시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태생적으로 국가성을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 <잉글리시 매직>의 컨셉트는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어떠한지?’라는 질문에 가깝다. 일단 ‘속임수’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고, 또한 숨겨져 왔던 것이나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전시에는 일종의 마술 퍼포먼스가 포함되어 있는데, 파빌리온에서 일하는 스태프가 관객 앞에서 마치 마술쇼에서 하는 것처럼 어떤 것을 보여주려고 하다가 갑자기 치워버린다. 이것은 회계나 금융에서 벌어지는 사기 사건을 아이디어로 삼아 작업한 것이다. 돈을 잘 번다는 것, 이윤을 많이 남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전시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많이 다루고 있지만 밝은 요소도 많다. 제레미 델러는 정말 위트 있는 사람이다. 전시장에 있으면 여기저기에서 관객의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때로는 감성에 어필하는 부분도 있다. 몇몇 관객은 강렬한 사운드의 <Ooh-oo-hoo ah-ha ha yeah>를 볼 때나, <You have the watches, we have the time>에서 군인으로서 이라크에서 있었던 수감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종종 울기도 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리셉션에 온 200여 명의 협력자들이 진심으로 전시를 좋아했고, 또 감동을 받았다. 일반 관객의 반응 또한 좋다. 영상 상영이 끝날 때마다 매번 박수가 터져 나오고 있다.

호세 안토니오 수아레즈 론도노 <Franz Kafka, Diarios II 1914-1923> 2000

바딤 자칼로브(Vadim Zakharov)
러시아관 참여작가

엠마 지포드미드(Emma Gifford-Mead)
영국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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