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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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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한국 미술작품의 기증 역사에 새 장을 쓴 동강(東江) 하정웅. 재일한국인 2세인 그는 50년 동안 수집한 9,800여 점의 미술 작품 및 자료를 1993년부터 고국의 공공미술관에 기증해 왔다. 올해, 그가 기증한 주옥같은 작품들이 국토대장정에 나섰다. 광주시립미술관을 비롯한 5개 미술관 소장 하정웅 컬렉션이 2015년까지 8개 시도립미술관에서 순회전을 열게 된 것. 『격동기의 혁신예술: 재일작가를 중심으로』전(4. 30~5. 26 서울시립미술관)을 시작으로, 하정웅 컬렉션은 서울-광주-부산-전북-포항-제주-대전-대구를 차례로 거치며 그의 뜨거운 기증 정신을 혈육의 땅 곳곳에 전할 예정이다. Art는 1999년 11월, 광주시립미술관 2차 기증 특별전에 맞춰 하정웅 컬렉션을 대대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이번에는 전국시도립미술관의 유례없는 '개인 컬렉션 순회전'을 기념하며 하정웅 컬렉션을 재조명한다. 먼저 광주시립미술관에 소장된 하정웅 컬렉션의 주요 작품을 엄선, 화보로 구성하여 하정웅이 추구해 온 컬렉션의 방향과 여기에 흐르는 고유한 철학을 소개한다. 이어서, 1989년부터 시작된 취재를 바탕으로 하정웅 컬렉션의 미술사적, 역사적 가치와 위상을 되짚는 글을 싣는다. 미술을 향한 개인의 열정을 넘어 역사의 질곡과 애환을 보듬는 상징으로 자리하기까지, 하정웅이 그려온 미술의 길을 함께 걸어 본다.

Contents

COVER

          리암 길릭(Liam Gillick) 알루미늄 190×120×10cm 2013


SPECIAL FEATURE
          하정웅 컬렉션

103    한 컬렉터가 걸어 온 미술의 길 
122    왜, 우리는 ‘하정웅 컬렉션’을 주목해야 하는가? / 김복기
128    동강(東江) 하정웅의 삶과 미술


THEME SPECIAL
          The Art-Architecture Complex

142    미술과 건축의 원격 조응 / 임근준 AKA 이정우


ARTIST

086    리암 길릭
          담론의 플랫폼 / 김성원
094    소피 칼
          예술이 된 ‘삶’ / 정현
138     ART LAB
          게르하르트 슈타이들: 책이 예술로 태어나다 / 김재석  


CRITIC

062     FOCUS
          스털링 루비展, 더 완벽한 날展:
          ‘리사이클’의 전략 / 정연심 
          이명미展: 영혼을 울리는 삶의 찬가 / 박소영
          금은보화展: 전통 미술의 ‘전시 가치’는? / 장동광
          젊은모색展, 프랑스 젊은 작가展:
          ‘오래된 것’, 두 개의 코드 / 이선영
          대만현대미술展: 
          동아시아 미술의 재발견 / 윤진섭
          권여현展: 판옵티콘의 욕망 / 양효실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 비념:
          예술, 죽은 자를 위령하다 / 함영준


SERIES

132    On Contemporary Art
          누가 예술가를 이웃으로 만드는가? / 임경용


ETC.

058    EDITORIAL / 호경윤
163    ART FIELD 
178    P.S.
179    SUBSCRIPTION
180    CREDIT

Articles

베이징의 새로운 ‘아트 파크’ 팡차오디

왕루엔 <6자회담 손목시계 D07-02> 캔버스에 아크릴릭 300×400cm 2007

베이징의 새로운 ‘아트 파크’ 팡차오디

전시관 개관, 왕루엔 개인전 ‘Diagramming/Allegory’

글|김복기 대표  

베이징에 대형 현대미술 전시관이 지난 3월 24일 문을 열었다. 팡차오디(芳草地) 전시관이 작년 9월에 완공한 복합공간 파크뷰 그린(Parkview Green) 10층에 들어섰다. 파크뷰 그린은 6성급 호텔 에클라트(Eclat), 고급 사무실, 명품 쇼핑몰과 함께 미술관 기능까지 갖춰 베이징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파크뷰 그린은 유리 피라미드 구조의 친환경 건물로 건축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 각종 건축상을 수상했다. 또한 건물 내외의 공간을 초대형 미술 작품으로 꾸며 미술관 이상의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 ‘아트 파크’로 각광을 받고 있다. 파크뷰 그린의 황 지엔화(黃建華) 회장은 사업가이자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컬렉터.
팡차오디 전시관의 개관전은 왕루엔(王魯炎)의 개인전(3. 24~6. 23)으로 꾸몄다. 그는 1979년의 <성성화(星星畵)>전, 1991년의 <신각도(新角度)> 그룹전 등에 가담했던 중국 아방가르드 제1세대 작가. 상하이, 부산 비엔날레와 금일미술관 도큐멘터 전 등 국제전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아라리오베이징, 부산 갤러리604, 서울 토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 한국 미술계에도 알려져 있는 작가다. 개관전 큐레이터는 미술사가 우홍(巫鴻). 주제는 ‘Diagramming/Allegory’. 현대미술에서 재현/추상, 표현/개념의 문제를 왕루엔의 작품에 대입해 학술적으로 재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3월 25일에  왕루엔의 작품 세계를 놓고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우홍의 사회로, 중국 미술평론가 페이 다이웨이, 전시기획자 황두, 한국 조각가 심문섭, 저널리스트 김복기, 프랑스 평론가 프랑수아 드바이유, 영국 테이트 모던의 큐레이터 등이 토론에 참가했다.
황회장은 어릴 때부터 우표, 레코드판, 잡지, 포스터 등을 수집했으며, 성인이 되어서 고대 불상, 도자기로 관심을 옮겼다. 1972년 영국 유학  이후 샤갈, 피카소, 달리, 워홀, 마그리트 등 서양 거장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이후 베이징에 798예술특구가 탄생하자 황회장은 현대미술 컬렉션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당시 무명이었던 류 사오동, 위홍을 시작으로 왕루엔, 장 샤오강, 장 후안, 왕광이, 펑쩡지에, 천원링 등의 작품이 주요 컬렉션.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들을 적극 소개하고, 한국이나 서구와의 교류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이 공간을 대중적으로 더 많이 알려 미술의 사회적 확산에 기여하고 싶다”고 새로운 미술 사업의 포부를 밝혔다. 

팡차오디 아트뷰 그린의 황 지엔화 회장.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의 큰 손으로 꼽힌다.

판옵티콘의 욕망

권여현 <아르테미스의 숲> 캔버스에 유채 152×243cm 2008

판옵티콘의 욕망

권여현展 3. 7~4. 28 OCI미술관

글|양효실  

서양미술사의 주요 도상을 회화적 맥락에서 뜯어내 전유하고, 한국미술사의 민화에 평상복을 입은 제자의 이미지를 중첩한다. 재현적 회화에 대한 권여현의 재방문(revisiting)은 자신의 유희적 쾌락을 위해 미술사 목록을 참조한다는 점에서 일관적이다. 도상과 이미지는 마치 소년의 스티커처럼 권여현의 손아귀에서 장난감으로 변한다. 금기를 위반하려는 욕망은 금기와 공모하고, 금기의 ‘힘’만큼만 의미화되며, 금기와 동연적(coextensive)이다. 미술사를 횡단하는 권여현의 유희는 거꾸로 미술사의 권력을 드러낸다. 그의 포스트모던 유희는 ‘포스트’ 담론의 기생성이 ‘모던’의 힘을 정당화하는 반동적이고 보수적인 움직임이라고 비판했던 하버마스를 떠올리게 한다.

권여현 <비너스와 마르스> 사진에 유채 94×239cm 2012

모던 VS 포스트모던의 어떤 위치들

권여현의 개인전 <맥거핀 디자이어>는 회화, 사진, 설치, 퍼포먼스, 영상과 같은 멀티플렉스적 복합체로 이루어졌다. 매체의 차이는 위반과 전복의 ‘역사’와 엮이면서 견고해지지만, 그는 ‘역사’에 무심하다. 회화와 사진의 불화, 회화에 대한 퍼포먼스의 위반, 회화에 대한 영상의 위협은 그에게 중요치 않다. 대신에 그는 포스트모던 절충주의자들, 즉 차이의 경계에서 권태와 허무, 가치와 의미 생산의 피로를 모면하려고 쾌락에 ‘몸’을 맡긴 탈맥락적 인간의 유희에 헌신한다. 삶이 죽을 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허무한 인식과 역사의 무의미에 관한 자의식적 냉소는 탈역사적이고 탈맥락적인 과잉을 반복함으로써만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도록에 실린 권여현의 스테이트먼트는 그의 ‘명사(名詞)에의 강박’을 드러낸다. 명사는 근대적 욕망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삶을 명사로 실체화하고 고정하려는 근대적 욕망은 포스트모던한 사상가의 은유화, 혹은 환유화하는 욕망의 반격을 받았다. 그러나 권여현이 인용하는 포스트모던 사상가는 그의 ‘그물’에 걸리면서 그 유동성과 전복의 힘을 잃는다. 그의 사상가는 알려는 자, 속지 않으려는 자로서 정체화되고 있다. ‘불법체류자’를 위한 언어를 발굴하려는 필자의 데리다는, 권여현의 데리다와 다르다. 그의 인식에의 욕망은 근대를 넘어서면서 근대를 확장하는 모순적 운동을 지속한다. 그는 ‘아는 자’의 권태와 알려진 세계에 대한 냉소를, ‘그리는 자’로서 자신의 소명과 접합한다. 히치콕은 자신의 영화에서 관객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하려고 영화 전체의 서사를 위협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맥거핀을 사용했다. 히치콕은 자신의 영화에 관한 한 지배자, 즉 ‘아는 자’이고자 했다. 작품의 주인으로서의 작가란 기실 모더니즘의 전제이다. 작가의 통제 밖으로 탈주하는 작품의 잔여에 관한 포스트모던한 인식은 <맥거핀 디자이어>란 제목으로 차단된다. 사실 아는 자는 속일 수 있고, 모르는 자는 속을 수 있다. 아는 자를 자처하는 권여현은 그렇기에 아래가 아닌 위에서 내려다 보는 ‘주인’으로서 자신의 작품을 관리하려고 한다. 포스트모던 유희를 즐기면서 동시에 자신의 영토를 관리, 통제하려는 모던한 권여현의 모호한 포지셔닝은 그의 ‘앎에의 의지’를 입증한다.

권여현 <단오> 사진에 유채 122×148.5cm 2010

전시장 정면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구도자>(2012)이다. 노동자의 손 같은, 막 물감퍼포먼스를 마친 작가의 손을 찍고 그 위에 회화적 개입을 시도한 작품이다. 도록에는 <구도자>가 세 번 등장한다. 추상표현주의 계열의 ‘회화’, 퍼포먼스 사진, 그리고 사진과 유화가 중첩된 리얼리즘적인 그러나 추상표현주의적 제스처를 끝마친 작가의 손. 그는 <구도자>를 통해 리얼리즘적 관습을 인용하고, 막 표현주의적 작업을 마친 작가의 손을 찍음으로써 모더니즘을 건드린다. 다시, 회화와 사진을 중첩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을 자처한다. 권여현은 미술사 전체를 ‘관(觀)’하는 눈, 벤담이 그려 보인 판옵티콘적인 욕망에 붙들렸다.

일상과 허구, 스토커에서 스트리퍼까지

<Ou et Quand?> 혼합재료 가변설치 2009_313아트프로젝트(2013) 전시 전경

일상과 허구, 스토커에서 스트리퍼까지

글| 김재석 기자 

소피 칼의 국내 첫 개인전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3. 13~5. 10)가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렸다.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 국가관에서 선보인 <잘 지내기를 바래요>와 2005년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장기 프로젝트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가 한자리에 모였다. 전시를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한 작가를 만났다.

Art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가?
SC 잘 알려졌듯이 소설가 폴 오스터는 《리바이어던》에서 실제 나와 가상 캐릭터를 섞은 마리아라는 인물을 등장시켰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실제 나를 주인공으로 한 편의 소설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쓴 소설에 맞춰 살면서 현실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폴은 너무 부담이 크다며 거절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나는 당황했고,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다 크리스텐이라는 예지인을 찾아갔다. 폴 오스터 대신 내 앞날에 대한 새로운 지침서(script)를 써 줄 사람으로 예지인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이 작업이 시작됐다. 소설에 맞춰 내 앞날을 바꿔보려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예지인의 점괘에 따라 정해진 규칙을 따르고, 거기에 내 몸을 맡겨보는 상황이 즐거웠다. 이 작품에는 복종과 자유가 함께 한다.

<잘 지내기를 바래요> 혼합재료 가변설치 2007_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2008) 전시 전경

Art  ‘복종과 자유’라는 표현처럼 당신은 작품의 감독인 동시에, 정해진 규칙에 따르는 수행자이기도 하다. 그 둘의 역할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SC 사실 그 둘은 분리할 수 없는 똑같은 아이디어다.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것도 따르는 것도 나다. 내가 컨트롤하는 것도 좋고, 그 규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놔두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잘 지내기를 바래요>의 규칙은 단 한 가지였다. 내가 받은 이별 통보 이메일을 다른 여자들이 ‘전문 직업인’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 해석의 방법이나 내용은 내가 컨트롤하지 않았다.  

Art  ‘게임의 규칙’은 어떻게 정하나? 중요한 원칙이 있는가?
SC 언제나 규칙을 정하고 수행하는 방식으로만 작업을 진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통 아이디어를 정하고 나면, 척추를 세우는 것처럼 정확하게 규칙을 정하는 편이다. 그것을 최대한 지키면서 중간중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삽입한다. 규칙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사항은 ‘전시장 벽(wall)’이다. 내 아이디어가 시적, 문학적, 예술적 가능성이 있는지 자세히 검토한다. 작품이 될 수 있는지 아닌지가 최우선이다. 만약 내가 어디로 간다면, 그것은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 아니라, 예술적인 개념의 유무에 따른 결정이다.  

Art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는 어떻게 조정하는가?  
SC 늘 텍스트와 이미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한 작품에서 그 둘이 함께 필요로 할 때만 사용한다.

<잘 지내기를 바래요> 혼합재료 가변설치 2007_313아트프로젝트(2013) 전시 전경

Art 작품이 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좋아하는 작가는?  
SC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을 좋아한다. 나보다 먼저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구나 싶어 질투를 느꼈다.  

Art 작품에 일상과 허구를 절묘하게 뒤섞는다. 관객은 당신의 작품에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허구인지 무척 궁금해한다.
SC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은 모두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은 아니다. 그것은 그냥 메소드(method)일 뿐이다. 내 인생을 요리하는 방법 말이다. 예를 들어 <지난밤 섹스는 없었다>(1996)에서 나는 전남편과 1년을 살았고, 작품을 위한 촬영은 60시간을 했다. 그리고 60분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것은 조작된(fabricated) 내 삶의 일부이지, 내 삶은 아니다. 내 인생의 한순간을 선택해서 작품을 만들 뿐, 내 사생활을 공개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나는 블로그도 하지 않고 페이스북도 없다. 다만 나는 항상 작품을 제작하려는 의도를 갖고 산다.

Art 2010년 팔레드도쿄에서 열린 개인전 <레이첼, 모니크(Rachel, Monique)>에서는 어머니의 죽음을 소재로 삼았다.
SC 처음부터 작품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내가 있을 때나 없을 때, 아픈 엄마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나는 엄마 곁에 카메라를 설치했고, 늘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카메라는 엄마의 친구였다. 내 삶을 아이디어 삼고 작품을 제작하면 일종의 긍정적인 치료 효과가 있다. 특히 안 좋은 일일 때가 그렇다. 무언가 한결 가벼워진다. 물론 그러한 효과를 의도한 것은 아니다.

<자서전> 중 일부 <전망 좋은 방> 혼합재료 가변설치  2003_도쿄 고야나기갤러리(2003) 설치 전경

Art 작품에 낯선 사람을 개입시킨다. 특별한 계기나 원칙이 있는가?
SC 특별한 계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잘 지내기를 바래요>를 예로 들면, 처음엔 남자친구에게 이메일을 받고 도통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먼저 친한 여자친구한테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물었고 점점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됐다. 나는 107명의 여자에게 이메일 해석을 부탁했다. 낯선 사람을 끌어들일 때는, 너무 잔인한가 아닌가가 기준이다. <주소록(Address Book)>(1983)이라는 작품은 그 기준을 넘어서 실패한 케이스다. 하지만 대부분 죄책감보다는 작품을 제작하는 즐거움이 더 크다.

Art 작품에 참여한 사람과 이후 연락을 취한 적 있나?
SC 없다. 30년 전에 친했던 친구라고 해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Art 마지막으로 소피칼에게 ‘사랑’이란?
SC 재앙. 나는 ‘사랑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사랑이 ‘핑크빛’이 아니라는 것만은 안다. <지난밤 섹스는 없었다>, <찬란한 고통(Exquisite Pain)>(2004), <잘 지내기를 바래요>가 내 슬픈 사랑의 3부작이다.  

소피 칼 / 195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26세에 사진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프랑스 파리 근교의 말라코프(Malakoff)에서 살며 활동하고 있다. 니스 근현대미술관(2010),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2009), 런던 화이트채플갤러리(2009)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살아 있는 작가로는 최초로 2004년 퐁피두센터에서 회고전을 가졌으며, 2007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 대표 작가로 선정됐다.

슈타이들 책이 예술로 태어나다

슈타이들: 책이 예술로 태어나다

글|김재석 기자  

오늘날 종이 책의 가치와 매력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에게 게르하르트 슈타이들(Gerhard Steidl)을 소개하면 어떨까? 책을 향한 열정과 고집으로 똘똘 뭉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세계적인 출판사 ‘슈타이들’을 운영하고 있다. 독일 괴팅엔에 있는 ‘슈타이들 빌레(Steidl Ville)’라 불리는 그의 출판사는 아이디어 회의부터 편집, 디자인, 인쇄, 마케팅 등 책 출판의 모든 공정이 ‘한 지붕’ 아래에서 이뤄진다. 출판의 전 과정을 ‘지휘자’처럼 진두지휘하는 그는 매년 400권이 넘는 책을 꾸준히 출판하며 세계적인 출판인으로 왕성히 활동 중이다. 그는 자신을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 소개한다.
슈타이들은 1968년 쾰른에서 열린 앤디 워홀 전시를 본 후 감명을 받고, 인쇄 기술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책을 향한 그의 완벽에 가까운 장인정신은 수많은 예술가와의 협업으로 드러났다. 그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와의 작업을 시작으로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문학, 사진, 예술서적으로 영역을 넓혀 갔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유르겐 텔러(Juergen Teller), 짐 다인(Jim Dine), 로니 혼(Roni Horn),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할도르 락스네스(Halldór Laxness)와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를 포함한 문학가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그와 함께 작업했고, 오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나의 스승과 다름없다. 나는 아티스트와 작업하면서 늘 무엇인가를 배운다.” 예술 서적 이외에도 샤넬, 펜디, 엘리자베스 아덴 등의 상업브랜드와 구겐하임, 휘트니,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인쇄물도 제작하고 있다.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 슈타이들>전(4. 11~10. 6)은 책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완성되기까지 슈타이들과 아티스트가 어떻게 협업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입체적으로 소개한다. 전시를 위해 내한한 그는 책이 ‘죽은’ 매체가 아니라고 몇 차례 강조했다. 출판업이 사장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는 디지털 매체를 생산하는 업체의 경쟁적 선전 문구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오늘날 정보전달 과정에는 반드시 두 가지 채널이 공존해야 한다. 하나는 디지털스트림이다. 스마트폰으로 일상적인 정보를 리서치하고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은 디지털 기술이 가장 이상적이다. 두 번째는 신문을 읽거나, 책을 읽는 ‘슬로우 프로세스’다. 최신 기술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아날로그가 구식이라 말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책이라는 매체는 다시 한 번 르네상스를 맞이할 것이다.”

슈타이들 출판사에는 감독 총괄을 맡은 슈타이들 밑에, 전 세계에서 ‘책’을 향한 열정으로 모여든 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왜 그토록 많은 아티스트가 그와 작업을 하고 싶어 할까? 슈타이들의 답변은 아주 간단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들은 일도 많고 너무 바쁘다. 비전문가와 일할 수 있는 시간적 여력이 없다. 슈타이들 출판사는 모든 생산 과정을 한 지붕 아래에서 끝낼 수 있도록, 아웃소싱 없는 프로세스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의 말대로 슈타이들 출판사는 종이 선택부터 인쇄까지 모든 과정을 한 장소에서 끝낸다. 단, 종이 생산과 제본은 제외된다. “예술작품이 있어야 출판사도 존재한다. 우리와 함께 작업하는 화가, 소설가, 사진가 등 여러 아티스트의 창작욕과 욕심 없이는 출판사도 존재할 수 없다. 아티스트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사진가 코토 볼로포(Koto Bolofo)는 슈타이들 출판사를 찾아가 책이 제작되는 전 과정을 위트 있는 사진으로 담아 냈다. 슈타이들을 비롯해 에디터, 디자이너, 아트디렉터, IT 매니저, 요리사 등 각자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출판사 직원의 모습부터, 인쇄기, 스캐너, 사무실 집기, 수북히 쌓인 종이 등 가히 슈타이들의 모든 것이라 할 만하다. 이 사진들은 2010년 《나의 작은 눈으로 몰래 들여다 보기》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대림미술관의 각 전시장에는 코토 볼로포, 귄터 그라스 & 그림형제(Grimm Brothers), 다이아니타 싱(Dayanita Singh), 로버트 프랭크, 칼 라거펠트 & 샤넬, 에드 루샤(Ed Ruscha), 짐 다인 등 총 8명의 아티스트의 원작뿐만 아니라 슈타이들과 함께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 에피소드, 기술적인 작업 과정 등을 섹션 별로 나눠 소개한다. 슈타이들과 함께 1989년부터 작업해 온 독일의 유명 작가 귄터 그라스는 《그림형제의 단어》의 표지와 일러스트를 직접 제작했다. 이 섹션에서는 그가 작업한 삽화, 표지 디자인, 서체, 핸드 드로잉, 컬러 테스트, 프린팅 기법 등을 살펴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교육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출판에 관심을 둔 한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이번 전시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인쇄 판본(print plate)도 전시된다. 바로 출간 50주년을 기념해 슈타이들의 손길로 재탄생한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The Americans)》. 슈타이들은 “내가 살아 있는 한 프랭크가 최종 컨펌한 인쇄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정판’을 제작하지 않는다는 슈타이들의 경영 원칙에 위배되는 고가의 책도 있다. 잭 캐루악의 동명소설을 에드 루샤가 손수 작업한 《길 위에서(On the Road)》는 300권만 특별 제작됐으며, 권당 1,000만 원을 호가한다. 책에 들어가는 사진 전부를 C-프린트로 제작했으며, 조판 배열은 물론, 한 권의 사진 제판에만 1개월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슈타이들의 설명대로 하나의 ‘아트 오브제’인 셈이다.

하정웅 컬렉션 한 컬렉터가 걸어온 미술의 길

송현숙    <8획> 캔버스에 유채 200×150cm 2001  
간호사로 독일에 건너간 뒤 미술을 공부했다. 기둥, 항아리, 고무신, 천 같은 향토적 소재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는다.

하정웅 컬렉션
한 컬렉터가 걸어온 미술의 길

한국 미술작품의 기증 역사에 새 장을 쓴 동강(東江) 하정웅. 재일한국인 2세인 그는 50년 동안 수집한 9,800여 점의 미술 작품 및 자료를 1993년부터 고국의 공공미술관에 기증해 왔다. 올해, 그가 기증한 주옥 같은 작품들이 국토대장정에 나섰다. 광주시립미술관을 비롯한 5개 미술관 소장 하정웅 컬렉션이 2015년까지 8개 시도립미술관에서 순회전을 열게 된 것. <격동기의 혁신예술: 재일작가를 중심으로>전(4. 30~5. 26 서울시립미술관)을 시작으로, 하정웅 컬렉션은 서울-광주-부산-전북-포항-제주-대전-대구를 차례로 거치며 그의 뜨거운 기증 정신을 혈육의 땅 곳곳에 전할 예정이다. Art는 1999년 11월, 광주시립미술관 2차 기증 특별전에 맞춰 하정웅 컬렉션을 대대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이번에는 전국시도립미술관의 유례없는 ‘개인 컬렉션 순회전’을 기념하며 하정웅 컬렉션을 재조명한다. 먼저 광주시립미술관에 소장된 하정웅 컬렉션의 주요 작품을 엄선, 화보로 구성하여 하정웅이 추구해 온 컬렉션의 방향과 여기에 흐르는 고유한 철학을 소개한다. 이어서, 1989년부터 시작된 취재를 바탕으로 하정웅 컬렉션의 미술사적, 역사적 가치와 위상을 되짚는 글을 싣는다. 미술을 향한 개인의 열정을 넘어 역사의 질곡과 애환을 보듬는 상징으로 자리하기까지, 하정웅이 그려온 미술의 길을 함께 걸어 본다.

이성자 <대극지로 가는 길> 캔버스에 아크릴릭 116×89cm 1985
재불화가 이성자는 말년까지 프랑스에 살았다. 우주가 상징하는 무한과 영원의 열망을 화폭에 담아 냈다.

디아스포라_ ‘핏줄의 땅’을 그리다

하정웅 컬렉션은 한국과 세계의 디아스포라(diaspora, 이산) 미술로 확장되었다. 디아스포라는 제3세계 국민들의 제2세계로의 자발적 혹은 강제적 이주, 소수자 국가 국민의 다수자 국가로의 이동을 뜻한다. 한국의 디아스포라는 이주 지역의 국가 체제와 이념에 따라 역사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여기에는 남북분단이라는 민족 최대의 디아스포라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 ‘또 하나의 한국’  미술사는 아직도 민족미술사의 공백으로 남아 있다. 디아스포라는 ‘핏줄의 땅’에 대한 운명적인 그리움을 안고 있다. 그리하여 미술작품은 때로는 구체적인 고향의 소재를 통해, 때로는 태생적인 DNA의 우회적 발로를 통해 애절한 망향을 그려 낸다. 이우환과 월북 무용가 최승희, 피카소와 샤갈이 하정웅 컬렉션의 ‘한 식구’가 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떠돌이’ 삶의 공통분모 때문이리라.

황유엽 <추석 전날> 캔버스에 유채 39.5×51.5cm 1984
평안남도 출신의 실향민. 일생 동안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박성환 <석양의 귀로> 캔버스에 유채 130.3×162.1cm 1985
농악이나 농촌의 아낙과 같은 소재를 즐겨 그렸다. 근현대사의 고단했던 시대 상황을 해학적으로 그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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