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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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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왜 지금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인가?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에 대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아랍 국가들은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대규모 예술 프로젝트를 연달아 진행하며 세계 미술계에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가고 있다. 그러나 '아랍'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고도 신비로운 이국적 세계에 가깝다. 많은 미술인들이 현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구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아랍 출신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과 모스크 사원의 아찔한 곡선의 나라에서는 지금 어떠한 아트씬이 펼쳐지고 있을까? 과연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는 무엇인가? 지금,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를 향한 이 뜨거운 열기가 세계 미술 현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본다.

Contents

COVER
           제파르 카할디 캔버스에 유채 230×260cm 2007 ⓒ Jeffar Khaldi Image courtesy of the Saatchi Gallery, London


SPECIAL FEATURES
          Arab Contemporary Art

078    16 Contemporary Artists From Arab
100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 어떻게 볼까?
           / 카린 아드리안 폰 로케스 
106    문화의 오아시스, 아랍 미술의 인프라
           / 구정원
112    아랍 ‘미술의 봄’, 열기의 현장을 가다
           / 김복기, 최정윤, 이정연


CRITIC

058     FOCUS
           이완展, 연금술展, DNA展: 
           레디메이드의 성과 속 / 조수진
           ( )를 위한 무대展, 김홍석展: 
           미술관을 ‘공론의 장’으로 / 정연심
           이득영展: 한강, 공원, 그리고 ‘자연 필터’ / 전현우
           Re:Quest: 1970년대 이후의 일본현대미술展: 
           일본2.0의 ‘나쁜’ 징후들 / 김정복 
           김성룡展: 초현실계의 리얼리티 / 김종길
           끈질긴 후렴展, 강서경展: ‘반복’의 두 가지 전략 / 안소연


THEME SPECIAL
          몸-짓

130    윌리엄 포사이스: 우리는 왜 움직이는가? / 서현석 
138     다니엘 콕: 당신은 어떤 공연을 원하는가? / 최정윤
144    몸의 아이디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김남수


ARTIST

118    INTERVIEW
          강요배: 마음의 풍경 / 장승연
166    ART LAB
          국립현대미술관 디자인팀: 전시디자인의 모든 것 / 장승연


SERIES

153     On Contemporary Art
           컨템포러리 아트는 ‘패스트 패션’일 뿐! / 홍가이
           과연 나는 컨템포러리 아티스트인가? / 김호득
           아날로그 아트의 끝! 99%를 위한 디지털 아트! / 류병학
           한국미술의 피곤함을 넘어, 아나키스트의 길로 / 김용익


ETC.

055    EDITORIAL / 호경윤
173    ART FIELD 
186    P.S.
187    SUBSCRIPTION
188    CREDIT

Articles

로이 리히텐슈타인:회고전

로이 리히텐슈타인 <Oh, Jeff…I Love You, Too…But…> 91.4×96.5cm 캔버스에 유채 1964

로이 리히텐슈타인:회고전

2. 21~5. 27 런던 테이트모던

미국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의 회고전이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열리고 있다. 영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회화와 조각을 아우르는 125점의 대표작을 망라한다.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와 테이트모던이 공동 주최한 이 전시는 앞서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와 워싱턴 내셔널갤러리에서 선보였고, 이번 테이트모던을 거쳐 향후 파리 퐁피두센터(7. 3~11. 4)로 순회할 예정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1960년대 초 인쇄 산업과 대량생산에서 사용되는 공정을 회화에 본격적으로 도입함으로써 팝아트의 새로운 양식을 개척했다. 인쇄물에서 볼 수 있는 망점을 일일이 손으로 그리는 방식으로 반복 생산과 오리지널리티, 순수미술과 대중문화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고전적인 연재만화와 광고 이미지를 차용한 주제 또한 혁신적이었다. 그는 전 세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캐논’을 깨트렸다는 평가를 받았고, 1962년 레오카스텔리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기점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 전시에는 그가 만화캐릭터를 카피한 초기 작품 <Look Mikey>(1961)를 비롯하여,  <Whaam!>(1963), <Drowning Girl>(1963) 같은 대표 작품이 한자리에 집결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로맨틱한 여주인공과 전쟁 장면이 담긴 회화와 함께, 타이어 등 일상 오브제를 단순한 구성의 흑백 이미지로 재현한 초기 팝아트 작품도 선보인다. 또한 풍경과 거울 회화를 비롯해, 작고 전 몇 년 동안 제작한 거대한 여성 누드와 중국 산수 시리즈도 전시된다. 다양한 재료로 변주한 작품으로 그의 작품세계에 총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플라스틱 재료인 로룩스와 철을 재료로 한 회화, 도자와 브라스로 만든 조각, 미공개 드로잉, 콜라주, 종이 작업까지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리히텐슈타인 작품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독일표현주의와의 연관성도 새롭게 조명한다.
한편 작년 새롭게 오픈한 테이트모던의 미디어 전시장 탱크에서는, 리히텐슈타인의 3채널 영상 설치작품 <Three Landscape>(1971)가 상영된다. 1960년대 중반 로룩스를 이용해 움직이는 물과 빛의 움직임을 제시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키네틱 풍경 콜라주를 영상 버전으로 감상할 수 있다. / 김수영 art in ASIA 기자

미술관을 ‘공론의 장’으로

김홍석 <수줍게 악수를 청하는 남자> 마네킹, 옷, 신발, 레진, 합판 85×53×186cm 2013_플라토 전경. 마네킹으로 실제 사람이 전시장 가벽을 뚫고 손을 내민 모습을 형상화했다. 김홍석의 개인전 <좋은 노동 나쁜 미술>에는 신작을 포함 총 29점의 작품이 선보였다.

미술관을 ‘공론의 장’으로

(  )를 위한 무대展  2. 15~3. 16 인사미술공간
김홍석展 3. 7~5. 26 플라토

글|정연심·미술평론가

김홍석의 작품은 눈속임(trompe l'oeil) 기법으로 관객을 현혹해 말을 건다. <기울고 과장된 형태에 대한 연구-Love>는 값싼 포장지와 매트리스를 위장한 레진 조각이다.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에 등장하는 익숙한 ‘Love’라는 단어를 모더니스트 조각처럼 하얀 좌대 위에 아슬아슬하면서도 기품 있게 쌓았다. 이 작품이 실제 포장지와 매트리스를 사용했다면 우리는 더욱 편안하게 작품을 대했을지 모를 일이다. 눈속임이 유발하는 불편한 심리 효과는 스테인리스 스틸과 청동을 사용한 <사람 건설적-단결>과 <자소상>에도 작동한다. 그러나 김홍석 작품을 보면서 지적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작가가 예술작품의 제작과정과 노동, 그 뒤에 숨겨진 신화적인 비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들춰내기는 심리적, 미학적으로는 도전적이다. 그러나 그는 거칠면서도 섬세한 대화의 기술을 펼친다.

김홍석 <개같은 형태> 청동 235×88×162cm 2009

전시되지 않은 예술

플라토 안쪽 공간에 걸려 있는 4개의 커다란 캔버스 <걸레질-121225>(2012), <빗자루질-121225>(2012), <닦기-130111>(2013), <젖기-130111>(2013)는 우레탄 락커로 제작됐다. 특정 작가의 추상회화 작품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작가는 인력시장에 전화를 걸어 일용직 노동자 2명을 고용했다. 그는 이들과 함께 빗질과 걸레질, 닦고 젖기를 시도해 회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일용직 노동자는 5시간 일한 노동의 대가로 일당 10만 원을 지급받았다. 김홍석은 이런 식으로 작품 제작을 생산품으로 간주하며 노동 가치의 가격을 논한다. 작가라는 아우라가 사라진 예술작품의 제작 과정과 지급 방식은 무엇일까? 그는 값싸거나 비싼 재료, 전통 재료와 산업 재료, 가짜(copy)와 진짜(original)의 경계, 그리고 작품 제작의 노동과 자본을 둘러싼 윤리적인 문제를 이슈를 삼는다. 전시 타이틀 ‘Good Labor, Bad Art’는 ‘좋은 노동, 나쁜 미술’로 번역할 수 있다. 동시에 ‘bad art’는 기법이 형편없거나 좋지 않은 미술이라는 뜻을 함축한다. 미술 현장에 편재한 ‘나쁜 노동과 좋은 미술’의 상관관계를 역설적으로 밝혀 준다.
김홍석은 2011년 개인전 <평범한 이방인>에 선보인 작품 <사람 객관적>이 티노 세갈(Tino Sehgal)의 작품과 유사해 보인다는 평가에, ‘관객의 참여’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니콜라 부리요의 《관계미학》에서 많이 다뤄진 태국작가 리크리트 티라와니트(Rikrit Tiravanija)와 비교되지 않는다며 의아해 했다. 김홍석과 티노 세갈의 작품은 모두 작업에 동원된 어시스턴트(혹은 유형, 무형의 도우미 등)에 철저하게 돈을 지급한다. 예술제작 방식에서 시간당 혹은 하루당 노동의 대가를 문제 삼는 방식은 상당히 유사하다. 물론 두 작가의 작업적 결과물이나 해석적 태도와 형식 등은 완전히 상이하다. 김홍석은 오브제와 텍스트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존재하고 거래되며, 이해되고 해석, 전시되는 방식을 핵심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권력, 인종, 문화 등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 의식의 틈을 살살 건드리는 비평적 행위 자체를 전시 속에 녹여 낸다. 전시는 작품의 제작과정을 완성해 주는 종점도 아니다. 비평적 작업은 끝없이 지속된다.
신작 <좋은 비평 나쁜 비평 이상한 비평>(2013)은 작가가 자신을 조연으로 주변화하고 평론가를 주연으로 등장시켜, 생산과 소비, 주체와 객체의 역할 분담 등으로 이분법된 현실의 경계를 계속 뒤튼다. 그는 강석호, 서현석, 유진상과 협업해서 미술관을 평론의 장으로 만들고, 비평적 행위 자체를 의식의 주체적 생산 과정으로 전환한다. 3명의 평론가는 지적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고, 그의 작품에 관한 평문과 강연 등을 제공한다.(작가가 평론가에게 던진 질문은 도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들이 구성하는 대담과 강연 퍼포먼스는 전시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강의 차원이 아니다. 지적 노동을 둘러싼 평론과 이에 관한 금전적 지불, 그리고 퍼포먼스를 통한 의미 생산 구조를 수행적으로 관철한다. 또한 이런 합의적 거래는 작가와 평론가가 미술계의 평론 시스템으로 해석적 주체와 지적 권리를 주고받는 제도의 메커니즘을 보여 준다. 다만 그의 작품에서는 비평가의 해석 과정을 지켜보는 ‘제3의 해석자’로 관객이 등장한다. 관객은 평상시에는 눈에 띄지 않는 일종의 우발적 요소이며, 또 다른 중재자이고 번역가이자 행간을 읽어 내는 해석자이다.
차이의 정치성은 해석 혹은 번역(translation)이나 의미 전달을 논하는 김홍석의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이다. 그는 <카메라 특정적-공공의 공백>(2010)이나 <영문-공공의 고백>(2010)과 같은 작품에서 번역의 틈과 경계를 파헤치고 그 사이를 반추한다. 그는 같은 내용을 타자에게 전달할 때, 그리고 같은 내용이 여러 개의 언어로 번역될 때 발생하는 해석의 ‘차이’를 문제 삼는다. 실제로 번역은 원어가 전달하는 의미와 뉘앙스를 완벽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가장 근접한 부분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언어란 읽기와 해독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소통의 수단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부유하는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그의 작품이 공공성, 합의, 번역, 차이, 경계 등을 탈물질화한 오브제를 벗어나 전시장 자체를 비평의 담론장으로 출현한다면, 굳이 미술관 내에서만 다뤄질 필요성이 있을까? 전시 카탈로그 또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평론가에게 글을 의뢰하고 전시 준비 과정을 텍스트화했다면, 이러한 작업이 미술관을 고집할 필요성 또한 없다. 결국 변화하는 예술론에 미술관이 전시라는 형식으로 이해와 해석을 개입할 권리 또한 유효한 것일까? 미술관 전시, 즉 ‘디스플레이’라는 말은 시각적인 오브제가 지나치게 강하게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예술 현장에서 ‘정치적인 그릇됨(politically incorrect)’을 표현한다. 전시되지 않는 예술, 시각중심주의 예술에서 미끄러져버린 과정에 관한 비평적 질문, 그것이 김홍석의 작업이다.

강민숙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인사미술공간 집기 및 혼합재료, 가변연출, 2013_<( )를 위한 무대> 전경. 작가는 인사미술공간 2층을 스텝과 관객이 만나는 무대로 연출했다. 사무실의 집기와 가구를 새롭게 배치해 실제 업무를 하는 스텝이 무대 위의 배우(퍼포머)처럼 보이게 했다.

뒤집어진 무대와 미술 현장

‘전시되지 않는 예술’을 전시 공간으로 끌어들인 점은 인사미술공간의 <(  )를 위한 무대>에서도 엿보인다. 국내 신진 큐레이터를 발굴 및 육성하기 위한 아르코미술관의 프로그램 ‘아르코 신진기획자 워크숍’의 결과로 마련된 이 전시는, 오브제의 물질성에 천착하지 않고 전시장에서 우연히 만들어지는 상황을 큐레이팅의 요소로 적극 활용한다. 보통 전시는 뚜렷한 주제의식이나 기획의도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맡은 기획자 김사랑과 김태현은 이러한 관례적 전시 방식을 포기하고 큐레이팅과 창작의 영역을 애매하게 오버랩시키며, 서로의 경계를 얄팍하게 만든다. 그들이 설정한 우연적 상황에는 작가와 기획자, 관객이 인터랙티브한 관계성으로 연결되어 유동적인 의미를 재생산한다. 이러한 불확정적인 상황에서 기획자와 작가 그리고 참여자는 심리적으로 서로 ‘개입(intervene)’한다. 이 프로젝트는 시작과 결말이 정확하지 않은 한 편의 퍼포먼스처럼 느껴진다. 전시는 큐레이터가 실제로 사용하는 사무실과 전시를 위한 별도의 공간인 전시장을 뒤섞었다. 전시 제목의 괄호가 말해 주듯, 작가와 큐레이터는 ‘개인’의 제스처로 공간의 경계를 없애면서 사무실 공간을 미장센(mise-en-scene)처럼 연극적인 연출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이러한 뒤집어진 무대에 작가 이완과 강민숙, 유희숙의 작품이 등장한다. 강민숙은 전시장 2층에 스텝이 평소 사용하던 사무실의 집기와 가구를 배치해 그들이 실제 업무를 볼 수 있게 했다. 이 공간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스텝은 전시 과정의 중요한 주체이자 연극 무대의 퍼포머로 등장한다. 그들은 2층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유하는 사람으로, 공간에 일상적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는 포지션을 계속 바꿔가는 퍼포머의 공간 사용과 연출로 주체와 객체의 틈을 오가는 전략을 성취한다.   
유화수는 3층에 <그리하여, 곧고 준수하게>라는 작품 ‘환경’을 연출했다. 그는 오랫동안 무대 업종에서 일해 온 각 분야의 전문가(업자)를 고용해 작품 제작에 동참하며 발생하는 노동과 분업, 창작 대리의 문제 등을 고민하는 과정을 제시한다. 3층 공간은 인사미술공간의 사무실로만 사용됐기 때문에 설치와 마찬가지로 철거 또한 업자가 와서 했는데, 이 과정도 영상물에 담았다. 지하에 설치한 이완의 <절대적 기준에 대한 내면의 불가항력적 엔트로피>는 사무실과 전시에서 사용한 기자재와 물건을 재배열한 기둥이다. 컴퓨터와 공식 문서, 보조기기는 아슬아슬하게 서로 연결된 채 바닥과 천장을 연결한다.
인사미술공간의 전시는 전시와 사무용도로 사람이 실제로 사용하는 기자재와 공간을 그대로 노출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창작 과정과 실행을 둘러싼 노동과 권한, 관계적 상황은 ‘뒤집어진 무대’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편집되지 않은 미술 현장을 노출한다. <(  )를 위한 무대>의 참여 작가와 김홍석은 편집되지 않은 예술제작 과정을 둘러싼 시나리오를 편집의 기술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거칠게(raw) 드러낸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예술가의 현실적, 정치적 발언이다.

이완 <절대적 기준에 대한 내면의 불가항력적 엔트로피_기준에 맞춰 기둥 쌓기>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3

다니엘 콕: 당신은 어떤 공연을 원하는가?

 

다니엘 콕: 당신은 어떤 공연을 원하는가?

글|최정윤 기자

텅 빈 무대 위에 쇼핑 카트를 끌고 일상복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한 한 남자가 한 차례 춤을 춘다. 그리고 퇴장. 다시 무대에 불이 켜지면 그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카트에 있는 정장 재킷을 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그는 각종 그래프로 가득한 화면을 뒤로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빠른 속도로 쉴 새 없이 설문조사 결과를 읊는 그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뒤이어 그는 관객에게 다수결로 손을 들어 즉석에서 의상, 춤의 구성, 음악 등 몇 가지 요소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결과적으로 살짝 변형된, 그러나 거의 유사한 춤을 다시 보여 주는 것으로 공연이 끝난다. 2013페스티벌봄에 선보인 다니엘 콕(Daniel Kok)의 <Q&A>는 수동적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공연이 끝나면 박수를 치며 공연장을 나서는 전통적인 ‘공연감상법’이 해당하지 않는다. 이 공연의 어떤 측면을 ‘컨템포러리 아트’라 부를 수 있을까? 좁지 않은 공연장을 혼자서 가득 메우느라 땀으로 범벅이 된 그를 분장실에서 만났다.

Art: <Q&A>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사전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용이 구성된다. 이런 작품을 기획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다니엘 콕: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영국에 매우 유명한 컨템포러리 안무가가 있다. 춤도 멋지고, 안무 자체도 매우 아름답지만, 나는 그의 작품이 왠지 저급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큰 공연장에서 다른 수많은 관객과 함께 그의 작품을 관람했다. 관람 내내 무언가 불편하고 지루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니 모든 사람이 기립해 휘파람을 불며 환호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것은 예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관객은 없을까? 어쩐지 다수의 긍정적 표현에 소수의 정직한 생각이 무시되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모두가 다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는 식의 발상은 아주 위험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컨템포러리 공연에 관한 관객의 선호도를 수치화해 보자고 결심했다. 매우 주관적인 영역인 선호도를 경제학자, 사회학자 등의 도움을 얻어 설문지를 구성했다. 그렇게 <Q&A>가 만들어졌다. 관객은 공연 전 자신이 좋아하는 공연 방식을 질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그 결과를 합산해 데이터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의 세부 사항을 구성한다.
Art: 사전 설문의 내용과 방식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다니엘 콕: 서울 공연에서는 www.surveymonkey.com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설문을 진행했다. 총 83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설문은 나이, 성별, 직업, 현대무용 공연 관람횟수와 같은 기본정보부터 현대무용의 내러티브 스타일, 기대하는 주제, 관람 목적, 좋아하는 현대 무용의 움직임 방식, 음향 효과, 조명의 색채, 의상과 소품, 멀티미디어의 사용 등 총 17개의 질문으로 구성됐다. 설문의 참여자는 대부분 질문에 1위부터 5위까지 순위를 매기거나, 설문에 동의나 반대 여부를 체크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의상을 예로 들자면, 평상복, 전통 의상, 캐릭터 의상, 색상을 강조한 의상, 신체를 드러내는 의상 등 컨템포러리 공연에서 크게 나눌 수 있는 경향을 다섯 가지 항목으로 분류했다. 참여자는 이 항목 중에서 자신이 무대 위에서 보고 싶은 의상을 1위부터 5위까지 순위를 매긴다. 한국에서는 평상복이 3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Art: 설문조사 결과가 도시마다 다르다. 결국 같은 형식임에도 매번 새로운 공연을 하는 셈이다.
다니엘 콕: 맞다. 설문조사와 결과를 토대로 안무를 구성하기 때문에 공연 내용이 매번 바뀐다. 지금까지 싱가포르, 브리즈번, 베를린, 에딘버러, 홍콩, 비엔나, 방콕, 요코하마, 서울에서 총 9번의 공연을 했다. 방콕에서는 “감정 표현이 잘 드러나는 안무와 신체를 잘 드러내는 의상을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와 빨간 천 드레스를 입고, 표정 연기에 더욱 신경을 쓰면서 공연을 했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비엔나에서는 일렉트로닉이나 음악이 없는 공연을 선호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와 흥미로웠다. 모든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세트 디자인이나 멀티미디어의 사용을 최소화한 것을 선호한다고 대답했다. 상당수이 질문에서 지역마다 같은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몇 차례 순회를 거치자, 이제 어느 정도 설문결과가 예상되는 지점이 있다.

“현대 무용 공연을 관람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서울에서는 ‘정신과 영혼의 고양’이 관람 목적의 첫 순위로 꼽혔다. 인기도와 중요도 면에서도 가장 높았다. ‘각자 누군인지 이해하기 위해’ ‘오감을 더 자극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반면 ‘우리 문화의 이해를 위해’라는 목적은 가장 낮았다.

관습에 물든 관객에서 적극적인 관객으로

Art: 관객의 요구사항을 적극 수용해 제작된다는 점에서 <Q&A>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제작된다. ‘예술 작품도 민주적일 수 있다’는 주장을 전제로 하는가?
다니엘 콕: 나는 한 가지 주제의식을 관객에게 주입하고 싶지는 않다. 공연이 어떤 교육적 목적을 띠거나, 윤리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또한 작품에 한 가지 주제만을 다루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작업을 시작하지도 않는다. 대신 항상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고민한다.  예를 들어, 앤디 워홀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의 금전적 가치 때문에 작품이 지닌 다른 맥락과 의미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곤 한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뚜렷한 주제의식을 갖는 작품보다, 여러 가지 가치 체계와 시스템 사이에서 충돌하는 작품을 선호한다.
Art: 수치화한 데이터로 안무를 제작할 때 특별한 법칙이 있는가?
다니엘 콕: 정해진 공식 같은 것은 없다. 나는 조사 결과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따라 춤을 만든다. 그러나 알다시피 춤이라는 것은 수치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그것이 빠른 속도를 의미할 수도 있고 감정 표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결과를 해석하는 방식을 더욱 중요시한다. 그렇다고 다른 결과가 나왔는데도 매번 같은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관객을 조롱하고 가볍게 여기려는 마음은 없다. 수학 문제처럼 정형화된 ‘풀이 방식’이 있지 않기 때문에 관객도 내 춤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Art: 당신은 작품을 제작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수행한다. 무대에서는 춤을 추는 댄서로, 공연을 총괄하는 디렉터로, 공연 준비를 위한 리서처로 역할을 나눠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댄서인가, 디렉터인가, 리서처인가?
다니엘 콕: 이 질문을 해 줘서 정말 고맙다. 나는 나 스스로를 ‘안무가(choreographer)’라고 생각한다. 언급한 세 가지를 다 포함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안무가는 전통적으로 무대 위에서 몸의 움직임을 구상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안무가는 단순히 댄스, 춤이나 동작을 만들어 내는 것 말고도, 관객과 얼마나 소통하는지, 어떻게 사람들이 반응하는지, 댄서가 어떻게 공연을 하는지 등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서도 관심을 둔다.
나의 ‘안무’는 리서치와 인터뷰에서 시작되고, 공연 마지막의 ‘Q&A’섹션에서 마무리된다. 사람들이 손을 들고 반응하는 것처럼 어떤 의미를 만들어서 상대에게 전달하는 몸짓도 전부 안무의 일부분이다. 제일 처음에는 내가 구성한 간단한 춤을 선보이고, 그 다음에는 관객이 기대하는 컨템포러리 공연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프레젠테이션한다. 마지막에는 몇 가지 항목을 추가로 바꿀 수 있도록 다수결로 손을 들어 결정한다. 그 결과를 즉석에서 반영해 앞서 선보인 춤과 거의 유사한, 하지만 살짝 변형한 춤을 춘다. 이 모든 과정이 나의 안무이다. 프리젠테이션을  먼저하고 춤을 나중에 추는 등 순서만 바뀌어도 새로운 안무가 될 수 있다.

“다음은 현대 무용 공연에서 가능한 조명의 색채 배합이다. 이 중 선호하는 항목 4개를 고른 뒤, 그 옆에 연상되는 단어 3개를 적으시오” 서울에서의 답변은 우열을 가리지 힘들 정도로 다양하게 나왔다.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조명 없음’이 가장 높았으며, ‘어두운’ 조명이 그 뒤를 이었다. 다니엘 콕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무대에 다양한 조명을 사용했다.

Art: 즉석에서 관객의 다수결에 따라 공연이 완성된다. 사전설문 이외에 현장에서 진행하는 관객 참여는 ‘소통’의 메시지를 강화하는 이중의 장치인가?
다니엘 콕: 관객과 나 사이에 깊은 의미에서의 ‘관계’가 형성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고르고, 그 결과가 반영된 작품을 본다. 공연 도중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설문에 작품을 대하는 관객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 순간이 중요하다. 당연히 객관식 답변보다는 주관식 답변이 그들의 진짜 요구를 반영하는 데 효과적이겠지만, 이 작품을 계획할 당시 나는 ‘수치화(quantitative)’를 통한 의견 수렴의 방식에 더 관심이 있었다. 한편 나는 <게이 로미오(Gay Romeo)>(2011~)라는 다른 작품에서  수치화해서 잴 수 없는 종류의 관계를 다루고자 했다. 문자 그대로 ‘관객과의 관계’를 무대에서 보여 주고 싶었다. 내가 무대에서 공연할 때 그 곳의 관객 한 명 한 명을 내가 다 먼저 만나보고 아는 상태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다. 온라인 포털 사이트 www.gayromeo.com을 통해 나는 60일 동안 40명과 데이트를 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의 관계에 관한 보답으로 선물을 요구했고, 그 답례로 나의 공연에 초대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 안무를 하나의 선물로 전달했다.
Art: ‘아티스트 토크’에서 확인됐듯이 화기애애하고 들뜬 분위기 속에서 다수결로 선택한 의상과 음악과 동작에 따른 마지막 연출 무대를 보면서 많은 관객이 미안함을 느꼈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니엘 콕: 그것도 <Q&A>를 바라보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다. 사람들은 웃기고 어리석은 행동을 보면서 동시에 슬프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경제 논리에서 자유로운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단순히 보고 싶은 공연에 돈을 지급하는 행위를 넘어선 것 말이다. 그것은 몸 자체에 관한 것이다. 몸은 점점 지쳐가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을 매우 비극적으로 느낀다는 사실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도덕적인 주장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Art: 이 작품에서는 돈을 지불한 공연에서 그에 합당한 무대를 보여 준다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논리가 개입되어 있다. 컨템포러리 공연과 경제적 가치는 어떤 상관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는가.
다니엘 콕: 나는 어떤 종류의 예술이든 경제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창조, 생산, 프리젠테이션, 순환 등 예술을 둘러싼 많은 부분에 제약이 생기는 것은 다 ‘돈’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가가 공연하기 위해 이동할 때 드는 항공료, 작품 제작비용, 관객이 공연을 보기 위해 지급해야 하는 티켓의 가격 등은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이다. 궁극적으로 디렉터는 이 작품이 관객의 호응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작품을 소개하기에 시기가 적절한지 등을 고려해 특정 작가의 초청 여부를 결정한다. 이 모든 과정은 여타 공산품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시장의 논리에 따라 진행된다. 그러나 인간 관계나 시장의 논리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작품 자체의 의미가 흐려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나는 경제적인 조건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다니엘 콕의 <Q&A>의 설문조사 결과를 도시별로 분석하면 흥미로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오늘날 관객은 영혼의 고양과 인간관계, 감정 표현이 주제이며, 무대 위 움직임은 공간을 가로지르고, 조명은 어둡고, 사운드는 일렉트로닉에, 의상은 일상복을 입고, 세트디자인은 간단하며, 멀티미디어는 최소화된 구성의 작품을 선호한다.

생각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Art: 공연을 본 관객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봤다고 생각했을지 의문이다. 당신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측면이 충족되길 원하는가?
다니엘 콕: 사람들은 종종 그들이 ‘아는 것’을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컨템포러리 댄스는 감정 표현이 많이 드러나야 하고, 음악은 별로 없고 아주 미니멀한 동작을 보여 줘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욕망 말이다. 아는 것과 원하는 것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다른 의미에서 나는 <Q&A>라는 작품에서 대중을 ‘조종’할 수 있다. 나는 관객이 특정 대답을 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할 수 있고, 마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작가가 제공했다고 착각하도록 게임을 벌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작품을 통해 세 가지 사항이 충족되길 원한다. 첫째는 관객의 몰입(engaged audience), 둘째는 부족함도 넘침도 없는 최적의 생산(optimal production), 셋째는 호감 가는 예술가(desirable artist). 서울 관객이 선택한 결과에 따라 만들어진 작품 결과에 많은 관객이 흡족해한다면, 나는 내년 <페스티벌봄>에 다시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른다.(웃음)
Art: 공연 초반에 관객에게 이 공연에서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작가로서 당신은 무엇을 보고 싶은가?
다니엘 콕: 나 스스로 일상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세상과 사물을 새롭게 보고 싶다. 따라서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고, 이전에는 상상치 못했던 관점에서 대상을 재조명한다. 나는 무엇이든 완성된 상태의 결과물보다는 열린 결말의 무언가를 보고 싶다. 또한 나를 포함한 모든 관객이 이러한 경험을 통해 메타 비평적으로(meta-critically) 생각하게 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관객이 60여 분 동안 진행되는 내 공연에서 몇 차례 ‘모드 전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작품의 내용을 파악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재고할 수 있다. 내가 왜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 내 작품이 그 모든 것에 관해 사고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다니엘 콕 / 1976년 싱가폴 출생. 1999년 런던 라반센터(Laban Centre)에서 안무로 자격증을 취득했다. 런던 골드스미스대에서 순수미술과 이론을, 베를린 인터유니버시티무용센터와 베를린예술대에서 무용을 공부했다. 2008년에는 싱가폴 국립예술위원회에서 영아티스트어워드(무용 부분)를 수상했다. 싱가폴 프린지페스티벌(2006), 베를린 트랜짓페스티벌(2011), 홍콩 아츠페스티벌(2011), 페스티벌/도쿄(2012) 등에서 주요 퍼포먼스 작품 <Vermillion>(2007), <Hokkaido>(2010), <Q&A>(2009~2013) 등을 선보였다. www.diskodanny.com

Issue-April 2013

김용익 <망구제역일체축생고혼영가> 위패, 향로, 작은 상 2010_구제역으로 희생된 모든 짐승의 외로운 넋을 달래기 위해 작가가 제작한 제단

한국미술의 피곤함을 넘어, 아나키스트의 길로

글|김용익·작가

지난 2월, 나는 정년퇴직을 했다. 1968년 미술대학을 입학해 오늘까지 학생으로, 선생으로, 그리고 작가로 45년간 쉼 없이 미술을 해왔다. 저윽이 피곤하다. 정확히 말해 미술에 관해 생각하기가 피곤하다. 컨템포러리 아트건 모더니즘 미술이건 겐타이 비쥬츠건 생각하기가 싫다. 그러나 난 또 《아트인컬처》의 원고 청탁을 수락했다. 왜냐하면 나의 이 피곤감이 한국미술의 한 징후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걸 증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내가 피곤하다는 것은 미술 ‘안’에서 사고를 펼치기가 피곤하다는 얘기일 뿐이다. 지난해 나의 관심사는 미술 ‘안’에 있지 않았다. 현실 정치에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대선의 패배(이 말은 물론 어폐가 있다. 그럼에도 쓴다)에 결코 피곤하지 않은 관심이 있었다. 나는 지난 대선의 패배가 우리 근대 정신사의 큰 분수령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근대’라는 말을 썼다. 그 말의 의미는 인민이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누리고 지키며 사는 ‘순수하고 단순한 삶(life pure and simple)’을 향한 열망 어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프로젝트가 가동되는 시기를 뜻한다고 말해두고 싶다. 인민의 주권을 통치자에게 위임하고 평등과 자유를 보장받으려는 근대주의 프로젝트를 우리는 철석같이 믿었기에, 정치 제도적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값비싼 희생도 치렀던 것 아닌가! 그러나 이 근대주의 프로젝트가 허구였다는 사실을 실시간 체험하게 된 계기가 지난 대선의 패배다. 이것은 정신사적 사건이다. 우리는 ‘주권의 모순’을 주목하지 않았다. 대의민주주의라는 제도로 ‘순수하고 단순한 삶’이라는 근대 주권국가의 이상을 결코 실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제 공동체가 파괴돼 각각의 개인으로 파편화된 우리는 대중매체의 조작과 자본의 유혹과 겁주기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린다. 때문에 선거가 허울 좋은 제도로 전락했음을 알게 됐다. 결국 자유민주주의와 국가의 이름으로 인민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이 모순은 제도 안에서 해결 불가능하다. 

 

우리 시대의 예술가란 무엇인가?

돌이켜 보건대 한국 미술계에서 발생한 ‘모더니즘 VS 민중미술’의 대립도 결국 이 허구의 근대주의 프로젝트 안에서 각자 ‘자기 제한적 급진주의’를 추구했던 것 아닌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제도적 개혁에 따라 국가, 시민, 사회, 경제의 상호균형과 공존 모색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민사회와 국가의 대립을 강조하면서 시민 사회에 의한 국가의 침투 해체를 목표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즉 ‘자기 확대적 급진주의’로서의 아방가르드가 필요하다. 이 때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제도와 관습의 굴레에 매이기를 거부하는 생리를 갖은 예술가 말이다. 이 말이 무슨 급진적으로 체제를 뒤엎는 혁명을 시사하는 말로만 들려서는 안 된다. 노동과 자연의 착취에 관한 저항과 권위적 국가주의, 이기적 배금주의에 찌든 일상을 반성하는 조용한 영성 혁명을 포함하는 말이다.
여기까지 한 말이 너무 원론적이고 추상적으로 들릴 것이다. 이런 원론을 각론으로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요즘 이러한 원론을 아나키즘에 기대어 해석해 보고, 그 해석을 삶의 작은 국면에서 실천해 보려하고 있다. 모더니즘 예술가로서 자기 부정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이 사회에서 나의 예술가 됨을 긍정하고 자유와 자립과 자연을 추구하는 아나키스트의 길을 동료 예술가와 함께 모색하려 한다. 그것이 무슨 공동체가 될 수도 있으며 무슨 협동조합이 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근대주의 프로젝트와는 불화를 이루는 그 무엇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P.S. 원고 청탁 메일 받자마자 한두 시간 만에 써진 글이다. 어조가 사뭇 비장하다. 그러나 어쩌랴…. 때로 비장해질 때는 비장하도록 내버려 둬야지.

김호득 <사이_겹> 캔버스에 잉크 213.5X151.5cm 2011‘사이’는 비움과 채움, 무거움과 가벼움, 격렬함과 평온함 등 극과 극의 틈새 혹은 겹침을 나타낸다.

과연 나는 컨템포러리 아티스트인가?

글|김호득·작가

“나는 왜 컨템포러리 아티스트인가? 왜 지금 여기에서 작업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답을 찾다 보니, 방향을 돌려 “과연 나는 컨템포러리 아티스트인가?”라는 의문에서 다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나이 예순이 넘은 비교적 늙은(?) 작가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여기’에서 꾸준하게 그림을 그리며 작품 활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다. 그리고 항상 새 작업을 시작할 때는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또 다른 질문을 던지며, 원점에서 새 출발한다. 나는 항상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하다. 끊임없이 ‘흔들리다’ ‘문득’ ‘느끼고(비우고)’ ‘표현(행동)’한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 절실하게 살고 있는 ‘그냥’ ‘현재’의 한국 작가이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컨템포러리 아트’ 혹은 ‘컨템포러리 아티스트’라고 하면 첨단 유행을 추구하는 흐름 같은 걸 연상하게 됐다. 그 유행은 ‘유행’이라는 말처럼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너도나도 그에 따라가기 급급하다. 그것도 서구 중심의 흐름에 맞춰서. 나는 정확히 50대 중반인 2005년 한 해동안 뉴욕에서 생활했다. 한국에서의 지난 작가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쳐 있을 때였다. 나는 출국을 결심하고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1년 동안 절대 그림을 그리지 말 것, 2. 배우려 하지 말 것, 3. 가르치려 하지 말 것, 4. 무조건 많이 보고 느낄 것, 5. 철저히 작가적 자세를 견지하되 작품 발표의 유혹이나 미련을 갖지 말 것.
이렇게 자신과의 약속 아닌 약속을 하고 뉴욕행을 감행한 이유는 소위 전세계 컨템포러리 아트의 중심으로 꼽히는 뉴욕을 냉철하게 보고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곳’에의 환상이나 기대는 갖지 않기로 작정했다. 현명한 결정이었다. 평상심 유지를 위해!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확신의 지점들

나는 뉴욕에 있으면서 1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봤다. 관객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과거의 거장과 오늘의 작가가 제작한 작품을 순수한 마음으로 봤다. 작업에의 의무와 부담을 깨끗이 놓아 버리고, 내가 그 작가의 마음속에 들어간 듯 가슴으로 교감해 보려 노력했다. 그들의 피와 땀, 욕망과 탐욕, 계급과 차별, 절망과 좌절 등이 나의 뼛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무엇보다 작가의 태도(attitude)에 관한 자양분은 정말 흠뻑 받아 들였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부딪쳐 본 결과, 예전부터 인식하고 있던 사실이 더욱 명확해졌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너무나 깊고 넓은 갭(gap)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문화는 흐름이고 교류다. 상호간의 불평등이 너무 심하면 강한 쪽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약한 쪽이 어렵사리 동화되려 하면 할수록 더욱 무시당한다. 나만의 예술을 나의 자리에서 나답게 해야 한다는 확신은 그 이후 더욱 명확해졌다. 그곳에서 작업을 하거나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세계 첨단미술의 현장을 탐사하고 싶다. 나만의 확신을 다지기 위해.
나는 그림을 그리지만 그리지 않는다. 꽉 채우지만 비움을 추구한다. 반대로 비어 있지만 꽉 참을 추구한다. 허(虛)를 나타내지만 실(實)이 뒤에 있다. 공간 속에 시간을 그린다. 설치작품을 제작하지만, 결국 공간에 그린 회화였으면 싶다. 물성이 있지만 물질이 아니다. 나는 항상 ‘사이’에 존재하길 원한다. 나는 지금도 회의하고 의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기준에 따라, 그들의 의도로 우리가 조종당하고 있으며, 자기도 모르게 기쁘게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여기서 ‘그들’은 포괄적이다.)
첫 문장에서 던진 질문을 재차 확인해 본다. 과연 나는 지금 컨템포러리 아티스트인가? 나는 컨템포러리 아트에 관한 정의나 이 단어의 사용 의도를 아직은 명확히 알지 못한다. 오늘의 나는, 그 답을 일단 유보한다.

Arab Contemporary Art

SPECIAL FEATURE_Arab Contemporary Art

Arab Contemporary Art

왜 지금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인가?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에 대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아랍 국가들은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대규모 예술 프로젝트를 연달아 진행하며 세계 미술계에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가고 있다. 그러나 ‘아랍’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고도 신비로운 이국적 세계에 가깝다. 많은 미술인들이 현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구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아랍 출신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과 모스크 사원의 아찔한 곡선의 나라에서는 지금 어떠한 아트씬이 펼쳐지고 있을까? 과연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는 무엇인가? 지금,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를 향한 이 뜨거운 열기는 세계 미술 현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Art는 서구의 시각으로 설정된 지리적인 차원의 ‘중동’ 개념이 아니라, 문화 종교적 이념에 따른 인류학적인 구분인 ‘아랍’으로 이 지역을 조망했다. 따라서 본 특집에 등장하는 나라들은 ‘아랍연맹’을 기준으로 했다. 먼저 화보에 소개된 아랍의 주요 작가 16인은 최근 현지에서 부상하고 있는 이들부터 국제 미술무대에서 활약하는 디아스포라 작가들까지 다양하게 구성했다. 이어서 이슬람 미술부터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의 형성 과정과 특징, 격변하는 아랍의 미술 현장을 이끄는 기관, 인물, 제도 등 주요 인프라 스트럭처를 총정리한다. 또한 카타르 현지 리포트와 ‘아트위크’에 개최된 샤르자비엔날레와 아트두바이 소식, 그리고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아티스트토크를 짚어본다.

1. 16 Contemporary Artists from Arab
2.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 어떻게 볼까?_카린 아드리안 폰 로케스
3. 문화의 오아시스, 아랍 미술의 인프라_구정원
4. 아랍 ‘미술의 봄’, 열기의 현장을 가다_김복기 최정윤 이정연

Akram Zaatari and Walid Raad <i.d. photos from Studio Anouchian, 1935~1970(Tripoli, Lebanon)> 혼합재료 가변크기 2003 / 중동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와 관련된 사진과 영상 자료를 수집해 이미지의 유통과 생산에 관해 이야기한다.

Akram Zaatari
b. 1966 레바논

아크람 자타리는 베이루트에서 활동하는 비디오 아티스트 겸 사진가이자, 수집, 연구, 출판을 지속해 온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1997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아랍 지역의 사진을 수집 및 보존하기 위해 출범한 ‘아랍 이미지 파운데이션’의 설립자 중 한 명으로서, 중동 지역에서 사진과 영상매체로 기록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탐구한다. 그는 카세트테이프, 가족사진, 유투브에 있는 비디오 등 다양한 범주의 자료들을 수집하고, 재맥락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며 전후 레바논의 문화적 정치적 상황을 살핀다. 베니스비엔날레(2007), <Told/Untold/Retold>(2009 도하 마타프아랍현대미술관), 이스탄불비엔날레(2011), 카셀도쿠멘타(2012), <아랍익스프레스> (2012 도쿄 모리미술관) 등에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광주비엔날레(2006), 미디어시티서울(2012)에서 소개됐고, 올해 뉴욕현대미술관 프로젝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Maitha Demithan <Sanawat> 스캐노그라피 180×140cm 2010 스캔 출력 방식으로 입체적인 인간의 형상은 평면적인 이미지로 변모한다.

Maitha Demithan
b. 1989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마이싸 드마이싼이 2009년부터 개척한‘스캐노그라피’라는 새로운 장르는 실제 사람을 스캐너에 넣고 투사하여 스캐너로 출력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스캐너의 불빛이 강하기 때문에 대상은 하나같이 눈을 감고 있다. 인간의 형태에 관심을 가진 작가는 실제로 인물을 볼 때와는 달리, 스캔을 거치면서 인물 특유의 깊이감이 사라지는 점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작업하는 대상은 대부분 여성으로, 작가는 자신이 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여자이기에 그들을 작업 대상으로 삼는다고 밝힌다. 두바이 타쉬낄에서 열린 <Documentation>(2009)전에서 처음으로 작가 자신을 스캔한 작품을 선보였고, 브리즈번비엔날레(2009), 상하이엑스포(2010)에 참여했다.

Lamya Gargash <Majilis Series(Red Carpet)> C-프린트 60×60cm 2009 / 도시의 급격한 변화가 개인에게 끼치는 직접적인 영향에 주목하며, 현재 아랍 사회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공간을 사진에 담는다.

Lamya Gargash
b. 1982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라므야 까르까쉬는 샤르자와 영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현재 두바이에 거주하며 작업한다. 그는 끊임없이 개발되고 증축되는 건축물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도시의 급격한 변화가 작가 자신이 속한 환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현 상황에 주목하며, 아랍 에미리트 사회에서 쉽게 잊혀지는 사적인 영역의 기억을 기록한다. 그가 출간한 아티스트북 《Presence》에는 재건축을 위해 폭파 예정인, 현재 비어있는 집과 그 내부 구조를 찍은 사진 시리즈를 담았다. 2004년에는 에미리트필름페스티벌에서 영상 작업 <Wet Tiles>으로 수상하면서 사진 뿐 아니라 영상 작업으로도 인정 받았다. 까르까쉬는 베니스비엔날레에 아랍에미리트관이 처음으로 개관한 2009년, 선정작가로 참여했다. <불사조의 심장>전(2011 경기도미술관)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Maha Mustafa <Black Fountain> 혼합재료 가변크기 2008~12 / 모리미술관 설치 전경.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비롯한 인접 국가의 정치 경제적 상황을 잘 드러내는 소재인 원유로 분수를 제작했다.

Maha Mustafa
b. 1961 이라크

현재 스웨덴과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마하 무스타파는 빛, 사운드, 연기나 물과 같은 재료로 환경 문제나 인간을 뛰어넘는 자연의 힘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조각 및 퍼포먼스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Black Fountain>(2008/12)은 분수에서 검은색 액체가 솟아오르는 작품이다. 1991년 걸프전이 발발과 함께 쿠웨이트의 유전이 폭파되면서 엄청난 양으로 솟구쳐 오른 ‘검은 비’는 주변 지역을 모두 오염시키고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지역 경제에 엄청난 부를 안겨다 줄 수 있는 원유가 동시에 환경파괴의 주범이 되는 아이러니한 국제적 상황을 포착한 것. 이 ‘검은 비’를 작업으로 재현함으로써, 작가는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비롯한 주변 인접 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드러낸다. 무스타파는 몬트리올 MAI갤러리(2012)을 비롯해 덴마크, 스웨덴의 수많은 미술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샤르자비엔날레(2007), <아랍익스프레스>(2012 도쿄 모리미술관)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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