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니엘 콕: 당신은 어떤 공연을 원하는가?
글|최정윤 기자
텅 빈 무대 위에 쇼핑 카트를 끌고 일상복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한 한 남자가 한 차례 춤을 춘다. 그리고 퇴장. 다시 무대에 불이 켜지면 그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카트에 있는 정장 재킷을 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그는 각종 그래프로 가득한 화면을 뒤로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빠른 속도로 쉴 새 없이 설문조사 결과를 읊는 그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뒤이어 그는 관객에게 다수결로 손을 들어 즉석에서 의상, 춤의 구성, 음악 등 몇 가지 요소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결과적으로 살짝 변형된, 그러나 거의 유사한 춤을 다시 보여 주는 것으로 공연이 끝난다. 2013페스티벌봄에 선보인 다니엘 콕(Daniel Kok)의 <Q&A>는 수동적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공연이 끝나면 박수를 치며 공연장을 나서는 전통적인 ‘공연감상법’이 해당하지 않는다. 이 공연의 어떤 측면을 ‘컨템포러리 아트’라 부를 수 있을까? 좁지 않은 공연장을 혼자서 가득 메우느라 땀으로 범벅이 된 그를 분장실에서 만났다.

Art: <Q&A>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사전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용이 구성된다. 이런 작품을 기획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다니엘 콕: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영국에 매우 유명한 컨템포러리 안무가가 있다. 춤도 멋지고, 안무 자체도 매우 아름답지만, 나는 그의 작품이 왠지 저급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큰 공연장에서 다른 수많은 관객과 함께 그의 작품을 관람했다. 관람 내내 무언가 불편하고 지루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니 모든 사람이 기립해 휘파람을 불며 환호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것은 예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관객은 없을까? 어쩐지 다수의 긍정적 표현에 소수의 정직한 생각이 무시되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모두가 다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는 식의 발상은 아주 위험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컨템포러리 공연에 관한 관객의 선호도를 수치화해 보자고 결심했다. 매우 주관적인 영역인 선호도를 경제학자, 사회학자 등의 도움을 얻어 설문지를 구성했다. 그렇게 <Q&A>가 만들어졌다. 관객은 공연 전 자신이 좋아하는 공연 방식을 질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그 결과를 합산해 데이터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의 세부 사항을 구성한다.
Art: 사전 설문의 내용과 방식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다니엘 콕: 서울 공연에서는 www.surveymonkey.com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설문을 진행했다. 총 83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설문은 나이, 성별, 직업, 현대무용 공연 관람횟수와 같은 기본정보부터 현대무용의 내러티브 스타일, 기대하는 주제, 관람 목적, 좋아하는 현대 무용의 움직임 방식, 음향 효과, 조명의 색채, 의상과 소품, 멀티미디어의 사용 등 총 17개의 질문으로 구성됐다. 설문의 참여자는 대부분 질문에 1위부터 5위까지 순위를 매기거나, 설문에 동의나 반대 여부를 체크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의상을 예로 들자면, 평상복, 전통 의상, 캐릭터 의상, 색상을 강조한 의상, 신체를 드러내는 의상 등 컨템포러리 공연에서 크게 나눌 수 있는 경향을 다섯 가지 항목으로 분류했다. 참여자는 이 항목 중에서 자신이 무대 위에서 보고 싶은 의상을 1위부터 5위까지 순위를 매긴다. 한국에서는 평상복이 3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Art: 설문조사 결과가 도시마다 다르다. 결국 같은 형식임에도 매번 새로운 공연을 하는 셈이다.
다니엘 콕: 맞다. 설문조사와 결과를 토대로 안무를 구성하기 때문에 공연 내용이 매번 바뀐다. 지금까지 싱가포르, 브리즈번, 베를린, 에딘버러, 홍콩, 비엔나, 방콕, 요코하마, 서울에서 총 9번의 공연을 했다. 방콕에서는 “감정 표현이 잘 드러나는 안무와 신체를 잘 드러내는 의상을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와 빨간 천 드레스를 입고, 표정 연기에 더욱 신경을 쓰면서 공연을 했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비엔나에서는 일렉트로닉이나 음악이 없는 공연을 선호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와 흥미로웠다. 모든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세트 디자인이나 멀티미디어의 사용을 최소화한 것을 선호한다고 대답했다. 상당수이 질문에서 지역마다 같은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몇 차례 순회를 거치자, 이제 어느 정도 설문결과가 예상되는 지점이 있다.

“현대 무용 공연을 관람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서울에서는 ‘정신과 영혼의 고양’이 관람 목적의 첫 순위로 꼽혔다. 인기도와 중요도 면에서도 가장 높았다. ‘각자 누군인지 이해하기 위해’ ‘오감을 더 자극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반면 ‘우리 문화의 이해를 위해’라는 목적은 가장 낮았다.
관습에 물든 관객에서 적극적인 관객으로
Art: 관객의 요구사항을 적극 수용해 제작된다는 점에서 <Q&A>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제작된다. ‘예술 작품도 민주적일 수 있다’는 주장을 전제로 하는가?
다니엘 콕: 나는 한 가지 주제의식을 관객에게 주입하고 싶지는 않다. 공연이 어떤 교육적 목적을 띠거나, 윤리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또한 작품에 한 가지 주제만을 다루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작업을 시작하지도 않는다. 대신 항상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고민한다. 예를 들어, 앤디 워홀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의 금전적 가치 때문에 작품이 지닌 다른 맥락과 의미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곤 한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뚜렷한 주제의식을 갖는 작품보다, 여러 가지 가치 체계와 시스템 사이에서 충돌하는 작품을 선호한다.
Art: 수치화한 데이터로 안무를 제작할 때 특별한 법칙이 있는가?
다니엘 콕: 정해진 공식 같은 것은 없다. 나는 조사 결과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따라 춤을 만든다. 그러나 알다시피 춤이라는 것은 수치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그것이 빠른 속도를 의미할 수도 있고 감정 표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결과를 해석하는 방식을 더욱 중요시한다. 그렇다고 다른 결과가 나왔는데도 매번 같은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관객을 조롱하고 가볍게 여기려는 마음은 없다. 수학 문제처럼 정형화된 ‘풀이 방식’이 있지 않기 때문에 관객도 내 춤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Art: 당신은 작품을 제작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수행한다. 무대에서는 춤을 추는 댄서로, 공연을 총괄하는 디렉터로, 공연 준비를 위한 리서처로 역할을 나눠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댄서인가, 디렉터인가, 리서처인가?
다니엘 콕: 이 질문을 해 줘서 정말 고맙다. 나는 나 스스로를 ‘안무가(choreographer)’라고 생각한다. 언급한 세 가지를 다 포함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안무가는 전통적으로 무대 위에서 몸의 움직임을 구상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안무가는 단순히 댄스, 춤이나 동작을 만들어 내는 것 말고도, 관객과 얼마나 소통하는지, 어떻게 사람들이 반응하는지, 댄서가 어떻게 공연을 하는지 등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서도 관심을 둔다.
나의 ‘안무’는 리서치와 인터뷰에서 시작되고, 공연 마지막의 ‘Q&A’섹션에서 마무리된다. 사람들이 손을 들고 반응하는 것처럼 어떤 의미를 만들어서 상대에게 전달하는 몸짓도 전부 안무의 일부분이다. 제일 처음에는 내가 구성한 간단한 춤을 선보이고, 그 다음에는 관객이 기대하는 컨템포러리 공연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프레젠테이션한다. 마지막에는 몇 가지 항목을 추가로 바꿀 수 있도록 다수결로 손을 들어 결정한다. 그 결과를 즉석에서 반영해 앞서 선보인 춤과 거의 유사한, 하지만 살짝 변형한 춤을 춘다. 이 모든 과정이 나의 안무이다. 프리젠테이션을 먼저하고 춤을 나중에 추는 등 순서만 바뀌어도 새로운 안무가 될 수 있다.

“다음은 현대 무용 공연에서 가능한 조명의 색채 배합이다. 이 중 선호하는 항목 4개를 고른 뒤, 그 옆에 연상되는 단어 3개를 적으시오” 서울에서의 답변은 우열을 가리지 힘들 정도로 다양하게 나왔다.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조명 없음’이 가장 높았으며, ‘어두운’ 조명이 그 뒤를 이었다. 다니엘 콕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무대에 다양한 조명을 사용했다.
Art: 즉석에서 관객의 다수결에 따라 공연이 완성된다. 사전설문 이외에 현장에서 진행하는 관객 참여는 ‘소통’의 메시지를 강화하는 이중의 장치인가?
다니엘 콕: 관객과 나 사이에 깊은 의미에서의 ‘관계’가 형성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고르고, 그 결과가 반영된 작품을 본다. 공연 도중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설문에 작품을 대하는 관객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 순간이 중요하다. 당연히 객관식 답변보다는 주관식 답변이 그들의 진짜 요구를 반영하는 데 효과적이겠지만, 이 작품을 계획할 당시 나는 ‘수치화(quantitative)’를 통한 의견 수렴의 방식에 더 관심이 있었다. 한편 나는 <게이 로미오(Gay Romeo)>(2011~)라는 다른 작품에서 수치화해서 잴 수 없는 종류의 관계를 다루고자 했다. 문자 그대로 ‘관객과의 관계’를 무대에서 보여 주고 싶었다. 내가 무대에서 공연할 때 그 곳의 관객 한 명 한 명을 내가 다 먼저 만나보고 아는 상태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다. 온라인 포털 사이트 www.gayromeo.com을 통해 나는 60일 동안 40명과 데이트를 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의 관계에 관한 보답으로 선물을 요구했고, 그 답례로 나의 공연에 초대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 안무를 하나의 선물로 전달했다.
Art: ‘아티스트 토크’에서 확인됐듯이 화기애애하고 들뜬 분위기 속에서 다수결로 선택한 의상과 음악과 동작에 따른 마지막 연출 무대를 보면서 많은 관객이 미안함을 느꼈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니엘 콕: 그것도 <Q&A>를 바라보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다. 사람들은 웃기고 어리석은 행동을 보면서 동시에 슬프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경제 논리에서 자유로운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단순히 보고 싶은 공연에 돈을 지급하는 행위를 넘어선 것 말이다. 그것은 몸 자체에 관한 것이다. 몸은 점점 지쳐가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을 매우 비극적으로 느낀다는 사실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도덕적인 주장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Art: 이 작품에서는 돈을 지불한 공연에서 그에 합당한 무대를 보여 준다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논리가 개입되어 있다. 컨템포러리 공연과 경제적 가치는 어떤 상관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는가.
다니엘 콕: 나는 어떤 종류의 예술이든 경제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창조, 생산, 프리젠테이션, 순환 등 예술을 둘러싼 많은 부분에 제약이 생기는 것은 다 ‘돈’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가가 공연하기 위해 이동할 때 드는 항공료, 작품 제작비용, 관객이 공연을 보기 위해 지급해야 하는 티켓의 가격 등은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이다. 궁극적으로 디렉터는 이 작품이 관객의 호응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작품을 소개하기에 시기가 적절한지 등을 고려해 특정 작가의 초청 여부를 결정한다. 이 모든 과정은 여타 공산품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시장의 논리에 따라 진행된다. 그러나 인간 관계나 시장의 논리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작품 자체의 의미가 흐려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나는 경제적인 조건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다니엘 콕의 <Q&A>의 설문조사 결과를 도시별로 분석하면 흥미로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오늘날 관객은 영혼의 고양과 인간관계, 감정 표현이 주제이며, 무대 위 움직임은 공간을 가로지르고, 조명은 어둡고, 사운드는 일렉트로닉에, 의상은 일상복을 입고, 세트디자인은 간단하며, 멀티미디어는 최소화된 구성의 작품을 선호한다.
생각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Art: 공연을 본 관객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봤다고 생각했을지 의문이다. 당신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측면이 충족되길 원하는가?
다니엘 콕: 사람들은 종종 그들이 ‘아는 것’을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컨템포러리 댄스는 감정 표현이 많이 드러나야 하고, 음악은 별로 없고 아주 미니멀한 동작을 보여 줘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욕망 말이다. 아는 것과 원하는 것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다른 의미에서 나는 <Q&A>라는 작품에서 대중을 ‘조종’할 수 있다. 나는 관객이 특정 대답을 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할 수 있고, 마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작가가 제공했다고 착각하도록 게임을 벌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작품을 통해 세 가지 사항이 충족되길 원한다. 첫째는 관객의 몰입(engaged audience), 둘째는 부족함도 넘침도 없는 최적의 생산(optimal production), 셋째는 호감 가는 예술가(desirable artist). 서울 관객이 선택한 결과에 따라 만들어진 작품 결과에 많은 관객이 흡족해한다면, 나는 내년 <페스티벌봄>에 다시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른다.(웃음)
Art: 공연 초반에 관객에게 이 공연에서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작가로서 당신은 무엇을 보고 싶은가?
다니엘 콕: 나 스스로 일상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세상과 사물을 새롭게 보고 싶다. 따라서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고, 이전에는 상상치 못했던 관점에서 대상을 재조명한다. 나는 무엇이든 완성된 상태의 결과물보다는 열린 결말의 무언가를 보고 싶다. 또한 나를 포함한 모든 관객이 이러한 경험을 통해 메타 비평적으로(meta-critically) 생각하게 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관객이 60여 분 동안 진행되는 내 공연에서 몇 차례 ‘모드 전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작품의 내용을 파악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재고할 수 있다. 내가 왜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 내 작품이 그 모든 것에 관해 사고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다니엘 콕 / 1976년 싱가폴 출생. 1999년 런던 라반센터(Laban Centre)에서 안무로 자격증을 취득했다. 런던 골드스미스대에서 순수미술과 이론을, 베를린 인터유니버시티무용센터와 베를린예술대에서 무용을 공부했다. 2008년에는 싱가폴 국립예술위원회에서 영아티스트어워드(무용 부분)를 수상했다. 싱가폴 프린지페스티벌(2006), 베를린 트랜짓페스티벌(2011), 홍콩 아츠페스티벌(2011), 페스티벌/도쿄(2012) 등에서 주요 퍼포먼스 작품 <Vermillion>(2007), <Hokkaido>(2010), <Q&A>(2009~2013) 등을 선보였다. www.diskodann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