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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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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2013년 3월호 특집에서는 Art가 주최하는 신진작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2013 동방의 요괴들」을 소개한다! 지난 5년 간「동방의 요괴들」은 전시, 워크숍, 아트페어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 한국미술 현장에 젊은 작가를 안착시키는 든든한 플랫폼의 역할을 해왔다. 올해는 공모 방식을 대폭 개편해 한국의 공모전 제도에 새 바람을 예고한다. 이번 특집에서는 각 튜터가 선정한 작가 39인의 작품으로 '지면 전시'를 구성해봄으로써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의 '내일'을 예측하는 동시에 1, 2월호에 연계 진행한 '컨템포러리 아트' 특집의 명맥을 이어간다. 아울러「동방의 요괴들」특집을 기해,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창작 환경을 진단하는 에세이를 싣는다. 88만원 세대, 신 빈곤층으로 떠오른 젊은 예술가들이 처한 현실을 밝히고, 그럼에도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한 그들의 피나는 노력을 전한다. 젊은 작가는 결국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의 미래다! 그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애정을 보내야 하는 이유다.

Contents

COVER
          미키 토미오 <장미로 장식된 귀> 나무, 점토, 천, 석고 콜라주 90.5×58×18.5cm 1962 Osaka City Museum of Modern Art, 자료 제공: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2012. 11. 18~2013. 2. 25 MoMA)전 출품작


SPECIAL FEATURE
          東防妖怪, 신진작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102    PICTORIAL
          창작은 또 하나의 유희 / 정현
          냉담한 현실에 비친 자화상 / 고원석
          ‘불만’은 나의 힘! / 현시원
          정체성의 차이를 인정하다 / 김인선 
          소소한 일상의 재맥락화 / 김윤경
122    REPORT
          동방의 요괴들, 컨템포러리 아트의 내일 / 편집부 
126    ESSAY 
          한국의 젊은 작가가 ‘사는’ 법 / 호경윤


THEME SPECIAL
          Japanese Postwar Avant-garde Art

076    REPORT
          일본의 전후 아방가르드 뉴욕을 공습하다! / 전영백 
084    CHRONOLOGY
          일본 현대미술 연표
086    INTERVIEW
         정도련 “비서구 미술의 전통과 전위
          왜, 주목해야 하는가?”/ 장승연


CRITIC

062    FOCUS
          회전무대展, 신중국미술展:
          지금, 중국미술의 최전선은? / 이선영
          장-미셸 바스키아展, 성낙희 성낙영展:
          청춘의 양식, 차이와 경계 / 양효실
          잊혀진 꿈의 동굴:
          거울을 비추는 거울 / 윤원화
          이재삼展, 강이연展:
          사물과 풍경의 에로티시즘 / 김종길


ARTIST

134    SERIES
          백남준×박이소 / 김재석
148    로메오 카스텔루치 
          악몽에서 구원으로 / 김해주


INTERVIEW

058    FACE TO FACE
          김구림 “세상이 변하니 작품도 변해야지… ”/ 김재석
156    ART LAB
          김영일 “귀한 사람, 귀한 기록” / 장승연


ETC.

055    EDITORIAL / 김복기
160    ART FIELD
174    P.S. 
175    SUBSCRIPTION
176    CREDIT

Articles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

시리니바사 파라사드 <Tailor Mama> 2010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

2. 12. 2012~3. 13. 2013
포트 코치, 마탄체리, 에르나쿨람타운, 무지리스 유적지, 케랄라, 인도

글|김수영_art in ASIA 기자

인도 최초의 현대미술 비엔날레인 코치-무지리스비엔날레가 인도 남부 케랄라의 포트 코치 일대 14개 장소에서 열렸다. 뭄바이를 중심을 활동해 온 두 작가 보세 크리쉬나마차리와 리야스 코무가 2010년 비엔날레 재단을 설립하고 총감독을 맡았으며, 전 세계 94명(자국 5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수다르샨 셰티, 산차얀 고쉬, 수보드 굽타, 탈루LN, 비비안 순다람, 아툴 도디아(인도)를 비롯해 가브리엘 오로즈코(멕시코), 피오나 탄(인도네시아), 왕게치 무투(케냐), 아이 웨이웨이(중국), UBIK(두바이), M.I.A(영국) 등이 초대됐다.
케랄라는 근대 국제 무역도시의 문화적 유산을 갖춘 독특한 지역이다. 코치는 식민지 시기 이전부터 시작된 국제도시의 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무지리스는 케랄라 인근에 위치했지만 14세기에 홍수로 없어진 것으로 알려진 고대 항구도시다. 두 총감독은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는 문화 다원주의의 전통이 살아있는 현대 도시인 코치를 신화적 메타포를 지닌 무지리스와 연결시키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로 인도의 지역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대미술이 새롭게 재고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 전시장인 아스핀월하우스는 무역을 위한 창고 등으로 기능했던 건물로, 무역과 이주의 역사를 드러내는 작품이 다수 전시됐다. 비반 순다람은 무지리스의 패타남 유적지에서 가져 온 도기 조각을 바닥에 설치한 작품 <Black Gold>를 선보였다. 수보드 굽타는 생활 집기를 빼곡히 실은 커다란 나무 보트 <Untitled>를 설치했다. 쉴라 고우다와 크리스토프 스토즈의 <Stopover>는 후추를 가는 육중한 돌을 건물 내외부에 걸쳐 설치한 작품이다. 아마르 칸와는 200가지 종류의 벼 종자, 영상, 책으로 이루어진 설치 <The Sovereign Forest>를 선보였다.
부대행사로 열린 심포지엄 ‘Site Imaginaries’에서는 이번 비엔날레와 과거 뉴델리에서 개최됐던 트리엔날레-인디아와의 연관성을 돌아봤다. 1968년 시작된 트리엔날레-인디아는 새롭고 실험적인 현대미술에 대한 공적 지원이 줄어들면서 2006년 폐지된 바 있다. 미술에 대한 지원이 주로 민간과 갤러리 차원에서 이루어질 뿐 국가나 기관의 제도적 예술지원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은 두 행사의 공통된 쟁점이다. ‘작가 주도’로 인도 첫 비엔날레를 일구어 낸 두 기획자는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미술시장의 제약에서 벗어나 동시대미술, 개념미술을 만들고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것’으로 꼽는다.

청춘의 양식, 차이와 경계

장-미셸 바스키아 <Desmond> 캔버스에 아크릴릭 218.4×172.7cm(부분) 1984 국제갤러리 출품작

 

청춘의 양식, 차이와 경계

장-미셸 바스키아展 2. 14~3. 31 국제갤러리
성낙희/성낙영展 2. 8~3. 9 갤러리팩토리

글|양효실_미술평론가 

차이와 경계를 녹여버리는 멜팅 팟(melting pot) 뉴욕. 그곳은 다양성의 공존이라는 민주주의적 이상과 차이를 위한 싸움이라는 민주주의적 실천이 공존한다.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와 성낙희 성낙영의 2인전은 뉴욕에서의 삶, 뉴욕의 경험을 토대로 한 감각과 정치의 접합 차이를 드러낸다.

흑인의 게토, 브루클린에서 태어나고 죽은 바스키아는 길거리 그래피티 프로젝트와 회화에 ‘SAMO(Same Old Shit)’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힙합 뮤지션이기도 했던 바스키아의 활동 시기는 레이건 행정부 집권 시기(1981~89)와 거의 일치한다. 세계가 더 좋아지고 있다 한들 항상 ‘똑같이 낡고 엿 같은!’ 세계가 바스키아가 거주한 세계였다. 영화배우가 대통령이 되는 ‘꿈의 나라’ 미국에서 (백인)영웅이었던 레이건 치하의 미국은 복지정책 축소와 대대적인 기업 세금 감면으로 차별화 정책을 지속해갔다.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크리올(creole)인 바스키아는 마약과 폭력이 일상인 브루클린에서 체화된 ‘흑인성(Négritude)’으로 작가의 정체성을 시각화했다.

바스키아는 성공한 유명 인사를 욕망했다. 야구 선수 행크 에런,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와 같은 그만의 영웅은 모두 흑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은 인종적 차이가 제거된 (흰)해골이라는 해부학적 사실로 평등하게 형상화하거나, 검은색을 입혀 철저히 비(非)백인화했다. 보편적 인간의 지위에 올라 있는 백인이 ‘아닌’ 검은 인간이 영웅의 포즈로 관람객을 맞이할 때 기이한 감각이 등장한다.

 

바스키아, 자본주의 문화의 아이콘

국제갤러리 전시에 출품된 길이 2m가 넘는 <Desmond>의 주인공 데스몬드는 주로 백인 화가의 작업에 모델로 ‘사용된’ 인물이다. 바스키아는 백인은 접근할 수 없는 1980년대 흑인 하위문화인 힙합을 경유해 흑인은 들어갈 수 없는 회화사 안으로 들어갔다. 요절한 ‘천재’ 바스키아는 사실 1980년대의 문화적 지형도 안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구성물’이다. 도시를 뒤덮은 익명의 길거리 흑인의 문화적 테러는 미국의 문화생산자, 혹은 기업가형 화상에게 새로운 탈출구였다. 예술계는 바스키아에게 ‘검은 피카소’라는 후광을 입혔다. 그의 성공은 쇄도하는 위반적 문화에 관한 주류의 발 빠른 반응과 합병이었다. 어쨌든 1980년대는 미국의 문화적 급진주의를 상징하는 힙합과 문화적 보수주의를 상징하는 신표현주의가 저급한 대중문화와 고급 엘리트문화로 병행했으니까.
조각난 판자를 붙여서 만든 것이건 관습적인 캔버스이건, 바스키아의 화면에는 부모의 ‘모국어’인 불어와 스페인어가 영어와 함께 해독 불가능한 일종의 시각적 기호이자 이미지처럼 떠다닌다. 또한 만화와 해부학책으로 인물 그리기를 접한 작가의 ‘유치하고, 원시적이며, 거친’ 형상이 탈중심화된 배치 방식으로 병렬된다.
화면을 구성하는 서사는 바스키아의 개인사와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이주당한 흑인의 집단적 역사다. 읽을 수 없는 글자와 공감할 수 없는 인물들, 말하자면 길거리에서 먹고 자길 스스로 선택했던 반항적인 청춘의 눈과 감각을 사로잡은 이미지와 소리와 형상은, 이해와 소통이 아닌 일종의 도전과 전복의 방식으로 관객을 포획하거나 소외시킨다. 관객은 길거리 삶과 낙서를 미적 형식으로 통합하며, ‘회화’라는 백인의 역사적 문화 형식으로 백인의 지배와 폭력의 역사를 환기하는 그의 작품 앞에서 심미적 관조를 욕망한다. 영화와 패션, ‘천재’를 둘러싼 자본주의 문화의 아이콘인 바스키아의 작품은 관객을 압도한다. SAMO!
바스키아의 자유분방한 화면은 사이 톰블리와 재즈, 랩과 같은 다양한 문화적 계보가 접합된 데서 유래했다. 정규 교육을 거부하고 마약과 총, 폭력이 일상인 길거리를 집으로 선택한 그의 ‘감각’은 과연 얼마만큼의 절정을 위험하게 욕망하는 ‘욕동(drive)’으로 초주검 상태였을까. 전시장에서 마주한 그의 작품은 화면의 안정감과 배치, 논리적 구성을 중시하며 전체를 장악하고 지배하는 주체의 계산된 의도나 절제보다는, 파편적으로 교란하는 감각들, 어디서 끝날지 무엇이 등장할지 알 수 없는 즉흥성, 통제를 모르는 자발성이 화면을 압도한다. 글자는 의미화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고, 바스키아를 실어 나르던 앰뷸란스 옆에서 앵앵앵(AAA)거리거나 지워지고 뭉개져 있다. 사람이 들어있지 않은 자동차는 어른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유치하고 조악하다. 해골이나 유령 같은 형상은 인간적 자긍심이나 정체성을 증명하기에는 너무 유약하고 아슬아슬하다. 관념적이고 이성적인 구축과 독해를 위한 모델이 사라진 화면은 ‘이해’를 거부한다. 우리는 화면 속 인간의 제스처가 무엇을 간구하는지, 어떤 ‘근거’를 가진 것인지 알 수 없다. 보고 있지만 본 것을 언어화, 의미화할 수 없는 무능이 관객을 압도한다.
만약 당신이 바스키아의 작품에 사로잡힌다면, 그의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에 관한 표명이 가득한 원시주의적이고 신표현주의적인 화면을 즐기는 중일 터. 다만 산발적으로 끊어지며 터지는 단발마의 비명, 내용보다는 리듬과 박동으로 전달되는, ‘공허와 죽음’으로 가득한 제스처를 긍정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성낙희, 성낙영 <In Your Face> 갤러리팩토리 전경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폭동’

작가 성낙희, 성낙영의 작품도 바스키아의 작품처럼 뉴욕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자매’ 작가로 구성된 아트 콜렉티브 ‘레이지 라이엇(Lazy Riot)’의 전시 <In Your Face>가 열리는 갤러리팩토리에 들어서면 성낙영의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들린다. 일렉트로니카는 바스키아의 1980년대 힙합을 뒤로하고, 1990년대 등장 이후 지금까지 대세를 떨치는 하위음악 장르다. 신시사이저의 전자음이 무한히 반복될 뿐인 일렉트로니카는 ‘트랜스’ 즉 열중, 무아지경, 실신, 혼수, 최면 상태를 동경한다. 일렉트로니카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온갖 근대적 토대들, 즉 인종, 국가, 젠더, 세대, 언어와 같은 모든 차이의 장벽을 넘어서 평등한 지대를 개방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클라이맥스나 감동도 없이 같은 음이 반복되는 열반 상태에서 트랜스는 비밥 재즈, 사이키델릭 록 등의 역사적 계보를 이어 가면서 음악이 만들어낼 수 있는 민주주의, 평등한 음악 공동체를 생산한다.
성낙희는 회화로서건 벽화로서건 화면에 처음과 끝, 중심과 주변이 존재하지 않는, 감각적 드로잉의 표면적 수축과 팽창이 전부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드로잉은 닮음이나 개념의 차원에서건 화면 밖 어떤 지시체(referent)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벽면이나 화면에 붙어/떠 있다. 따라서 읽을 수도 의미화할 수도 없는 작가의 추상적 형상은 감각적인 접근만을 허락한다. 정체성을 잃었거나 거부하며 떠도는 것이 전부인, 말하자면 탈주체화된 포스트인간적인, 일종의 ‘기계’화된 감각을 체험하는 것. 작가의 작업은 트랜스를 욕망하는 음악처럼 정체성도 차이도 경계도 언어도 접근할 수 없는 ‘nihil(無)’을 그리는데 몰입한다. 3일 만에 전시장이자 작가의 화면으로서 갤러리팩토리의 벽을 ‘채운’ 드로잉은 생각, 의도, 계획, 목적도 없이 그저 연속적 릴레이 상태로 흘러다니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그의 작품은 바스키아의 화면과 같다.
성낙희가 자신의 드로잉에서 빼버린 지시체가 성낙영의 작품에는 인체와 인물의 형상으로 존재한다. 성낙영의 벽화는 회화나 종이에 그려져 부착된 탈젠더화한 인간들, 인간의 ‘탈(mask)’이 거의 지워진 동물이나 해골 같은 형상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의 인체들은 분해되고, 해체되어 역시 수평적 반복에 종속되어 있다. 파편화되어 뒹구는 인체 부분을 이어 붙인다 해도 ‘인간’이 될 것 같지 않다. 프랑켄슈타인의 불운도 여기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유기적 인간의 몸(organism)이란 사실 상상된 근대적 인체 이미지일 뿐이다. 성낙영의 인체는 말하자면 중심화된 인간, 논리적으로 구성된 인간의 관념을 전복시키려는 ‘동기’를 가진다. 인간의 인간다움의 시각성을 전복하고 대체할 ‘다른’ 감각은, 이성의 식민주의로 환원되지 않는 신체의 비유기적 자발성에 관한 상상력이다.
감각은 흐르고 정지나 소유를 모르고 그저 박자와 비트처럼 공기 중으로 휘발된다. 두 작가가 ‘집단’으로 기획한 ‘게으른’ 폭동은 정치적이기에는 너무 무력하고 유약하며 정적이다. 파토스도 서사도 없이 그저 시간과 벽을 타고 음악과 이미지가 무료한 듯 흐르는 이 ‘폭동’은 억압에 관한 분노였던 힙합과 같은 예술의 정치에 대해서도 거리를 둔다. 메시지, 역사, 주체도 사라진 폭동. 견고한 벽면으로 무장한 갤러리 내부를 일시적으로 트랜스화하는 이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폭동’은 감각의 일어남, 감각에의 집중을 통해서 촉발된다. 지시체를 간직한 성낙영의 벽면 중 하나에는 ‘차별’이 난무하는 사회에 관한 그의 유보적인 ‘태도’가 종이에 그린 콜라주로 붙어 있다. 현실을 떠나서 부유하는 성낙희의 작품과 현실에 약간은 시선을 두고 있는 성낙영 작품의 차이는, 전시장에 울려 퍼진 성낙영의 일렉트로니카 음악에 묻힌다.

김구림“세상이 변하니 작품도 변해야지…”

 

김구림“세상이 변하니 작품도 변해야지…”

글|김재석_본지 기자 

김구림하면 ‘최초’라는 수식이 훈장처럼 따라 붙는다. 스스로를 배반하며 평생 창작의 열정을 불태워 일군 역사다. ‘영원한 현역’으로서 지금도 작업실에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 모른다. 올해 희수연을 맞은 선생은 행운의 숫자 7이 쌍으로 있다며 밝은 웃음을 보였다. 일상적인 이야기가 편히 오가다도, 작품을 설명할 때면 눈빛부터 달라졌다. 늘 역사에 남을 좋은 작품만을 꿈꾼다는 그의 아방가르드 정신은 언제나 살아 있다.

Art: 작년 한 해 다사다난했다.

김구림: 건강이 좋지 않았다. 대상포진에 걸린데다 관절까지 다쳤고, 실명 위기도 겪었다. 뉴스에 보도된 대로, 10억 원 상당의 작품도 도난당했다. 스튜디오에 CCTV를 설치했는데, 카메라 사각지대로 들어와 작품을 훔쳐 갔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작품 구매 철회 사건도 있었다. 인터뷰할 때마다 작가는 한 해에 100점 이상의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해 왔는데, 여러 이유로 작품 창작에 매진하지 못해 아쉬운 한 해였다.

Art: 그런 와중에 데이트모던에서 열린 <A Bigger Splash>(2012. 12. 14~2013. 4. 1)전에 초대됐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해외에서 선생의 작품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김구림: 1950년 이후의 회화와 퍼포먼스를 조망한 테이트모던의 전시에 1961년 작 <바디 페인팅>을 출품했다. 전시를 기획한 캐서린 우드(Catherine Wood)는 인체에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시도한 작가는 서구에도 많지만, 오브제까지 붙인 작가는 보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미술관 도서관에 있는 내 도록을 보고 작품을 알았다고 한다.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 현대미술관(MMOA)에서 열린 개인전 도록이었다. 연락처를 모르니까 국립현대미술관에 연락을 취했다더라. 내 작품이 서양 현대미술의 흐름과 발맞춘, 아시아 지역에서 찾기 어려운 컨템포러리한 작품이라 놀랐다고 한다. 특히 내가 1970년에 한강변 살곳이다리둑에서 펼친 퍼포먼스 작품 <현상에서 흔적까지>에 감탄했다. 당시 대지미술 작품 중에 불을 다룬 작가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올해 1월에는 베를린 DNA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Res(v)olution. Temporary Screening>에 작품 <1과 24초의 의미>를 선보였다. 전시를 본 싱가폴 현대미술관 관장 탄 분 후이(Tan Boon Hui)가 다음 전시에 내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구림 <보디 페인팅> 1969

Art: 해외에서의 잇따른 초청에 감회가 남다르겠다.

김구림: 특별한 느낌은 없다. 나는 학벌이나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성실히 좋은 작품만 만들겠다 다짐하며 활동해 왔다. 미술계에선 늘 ‘아웃사이더’이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한국 현대미술사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전위적인 작품을 발표했지만, 당시엔 나를 작가로 쳐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미친놈 취급만 당했다. 1973년부터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면서 《미술수첩》 같은 잡지에 소개되자, 그제서야 차츰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파리에도 가 봤지만, 나하고 잘 맞지 않았다. 1984년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유명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다. 그러나 2000년 귀국해 보니 나를 알아 주는 곳은 없었다. 문예진흥원 미술관에서 전시를 연 이후에도 말 못할 어려움을 겪었다. 그만큼 텃세가 심했다. 캐서린 우드는 한국 미술계가 나를 해외에 알리려 조금이라도 노력을 했다면, 이미 10년 전에 세계적인 작가가 됐을 것이라며 아쉬워 했다. 일본만 해도 자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오랜 시간 백방으로 노력했다. 지금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구타이>전과 모마(MoMA)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대규모 일본 현대미술전을 봐라. 그런 노력이 아쉬울 뿐이다.

Art: 최근에는 한국 젊은 작가의 해외 진출이 잦다.

김구림: 해외에 작품을 소개하고 이름을 알리는 것은 중요하며,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해외에 선보이는 많은 한국 현대미술품은 예술 작품으로서 지녀야 할 절실한 무엇이 부족해 보일 때가 많다. 과연 그러한 작품이 세계 미술사의 맥락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작품의 논리성도 부족하고, 소재나 주제 측면에서 지나치게 호기심 위주의 접근에 치우쳐 있다. 해외 옥션에서 비싸게 팔린다고 좋은 작품은 아니다. 물론 그러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기록할 테지만.

Art: 김구림하면 ‘최초’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런 실험적인 작품은 어떻게 시작했는가?

김구림: 나는 어떻게 해서든 작가가 되고 싶었다. 1958년에 전시장을 빌려 전시를 열었다. 포스터도 그려서 대구 미술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다방에 직접 붙이기도 했다. 알겠지만, 당시엔 제대로 된 물감 하나 구하기가 어려웠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경험한 우리 세대가 그랬다. 나는 물감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작품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궁하면 길이열린다고, 그 때문인지 재료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 와중에 절대 다른 작가를 모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길을 모색하는 일, 그것만이 살길이었다.

Art: 지금도 현역으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작품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가? 평소 음악을 많이 듣는 걸로 알고 있다. 작년 7월 Art 특집 ‘내 생애 최고의 기념품’에 오디오 매니아로도 소개됐는데.

김구림: 지금도 새벽 4~5시에 장흥의 스튜디오에 가서 온종일 작업에 매달린다. 쉴 때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는다. 클래식, 재즈, 샹송 등 여러 음악을 가리지 않고 많이 듣는다. 특히 말러의 교향곡을 좋아한다. 즐겨 읽는 책은 시사주간지부터 미술잡지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작품의 영감은 주로 뉴스를 보면서 얻는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요즘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늘 궁금하다. 예술 작품은 시대성을 띠어야 한다. 상상 속에서만 자신의 느낌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감각적으로 작품을 해서는 죽도 밥도 안된다. 작가는 오늘날의 현실을 직시하고 제대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화성인 바이러스> 같은 TV프로그램을 보면, 어떻게 인간이 저런 삶의 태도와 상상을 발휘하며 살고 있는지 혀를 내두르게 된다. 최근에 제작한 <음과양> 연작에 등장하는 괴물 같은 형상들은 그런 세태를 반영한 모습이다. 자연스러운 것이라곤 없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세계,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김구림 <음양12-S> 혼합재료 20.5×13×8.5cm 2012

 

Art: 최근 미술잡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김구림: 국내 미술잡지뿐 아니라, 《아트인아메리카》, 《아트포럼》 같은 외국 것도 본다. 세계 미술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떤 작가의 무슨 작품이 조명을 받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와 비슷한 작품을 제작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나만의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다른 작가는 어떤 작품 활동을 펼치는지 체크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엔 볼 게 너무 없다. 젊은 시절, 미국 공보관을 통해 보던 《라이프》지나 《타임》지에 소개된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희열 같은 것이 없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 말이다. 미술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내게, 그런 잡지에 등장하는 작품은 충격이었다. ‘아, 예술은 테크닉이 아니라 정신세계구나!’하는 걸 깨달았다. 한동안 작품을 제작하지 못할 정도로 앓아 누웠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요즘 잡지엔 광고만 많을 뿐, 도대체가 새로운 것이 없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미술은 언제나 숨어 있었다. 화랑이나 미술관에서 픽업해서 스타가 되는 식으로 뒤늦게 빛을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데미안 허스트도 찰스 사치가 컬렉션하면서 이름을 알리지 않았나? 이런 상황을 봤을 때, 과연 진실이라는 것이 눈 앞에 보이는 것인가 싶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Art: 선생께선 데미안 허스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김구림: 많은 미술사가나 큐레이터가 그의 작품을 ‘죽음’에 관한 메타포로 분석한다. 나는 다른 해석을 하고 싶다. 데미안 허스트는 ‘창조’라는 예술 작품의 신화를 완벽하게 깨뜨린 작가다. 그가 직접 창조한 작품은 하나도 없다. 그는 있는 그대로를 제시한다. 상어, 알약, 나비, 물감 등이 그냥 있을 뿐. 마치 여러 사람의 작품처럼 보인다. 한평생 같은 작품만 내 놓는 작가는 ‘매너리즘 작가’다. 그들의 작품이 위대한 예술로 칭송받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냉정하게 판단할 문제다. 그런 맥락에서 데미안 허스트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없는 작가 중 하나다. 그점에서 탁월하다. 사실 내가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의 상어 작품보다 먼저 물고기를 약품에 담는 작품을 시도해 봤다. 여러 방법을 강구해 봤지만, 도통 물고기가 썩는 걸 해결할 수 없었다. 만약 영국인이나 미국인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Art: 오는 7월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린다고 들었다. 어떤 전시를 보여 줄 것인가?

김구림: 김홍희 관장이 경기도미술관 관장으로 있을 때 열었던 <1970~80년대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 : 팔방미인>전(2011)이 계기가 됐다. 전시를 제안 받고, 아예 2000년 이후의 작품을 중심으로 미발표작을 포함한 전시를 열자고 제안했다. 미술관 측에서는 요즘 젊은 작가가 김구림에 관해 너무 모른다며, 한국에 1960년대부터 이런 획기적인 작품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보여 주자며 나를 설득했다. 요즘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첨단을 걷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아마 조각이나 회화보다는 설치 및 퍼포먼스 작품을 중심으로 1층 전관을 채우는 전시가 될 것 같다. 마음 같아선 미술관 전관을 활용하고 싶다. 있는 작품만 내놔도 1/10 정도일까. 전시에는 주요 작품과 관련 아카이브도 함께 소개된다. 참, 작년에 제작한 미공개 미디어 작품 <음과양 2012>도 선보인다.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으로 등장한 반가사유상의 얼굴에 자연과 현대 인류 문명의 숨 가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한 인간이 세상에 나와 겪는 모든 고난과 오늘날 세계가 처한 위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김구림 <선> 1970

 

Art: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이후 선생의 작품에 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김구림: 그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정확한 기록이 문제다. 가령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로 기록된 <1과 24초의 의미>를 공동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 또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철저히 공들여 연구하는 태도와 작가에 관한 배려, 작품을 해석하는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큐레이터 이영철은 <당신은 나의 태양>(2004)이나 백남준아트센터 기념전인 <나우 점프>(2008)를 기획하면서 내 스튜디오에 있는 조그마한 향수병까지 챙겨 갔다. 그러한 부분도 내 작품의 일부라는 사실을 파악했다는 말이다. 윤난지 교수가 나를 ‘해체주의’의 관점에서 해석한 논고도 흥미로웠다. 일찍이 내가 추구한 작품 세계를 제대로 간파한 글이었다.

Art: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작품의 변화를 강조했다.

김구림: 맞다. 세상이 변하면 작품도 변해야 한다. 그래서 나도 내가 어떤 작품을 만들지 모르겠다. 다만, 제작비와 여러 여건으로 내가 구상한 수많은 작품이 실현되지 못해 아쉽다. 나는 지금까지 크건 작건 어디에서고 나를 찾으면, 주저 없이 전시에 참여했다. 혹여 앞으로 누가 불러 주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지금처럼 열심히 작품을 제작할 것이다. 돈보다는 작가로서의 명예가 중요하다. 젊은 작가들도 명심해야 한다. 좋은 작품만 해야지, 오직 그 생각뿐이다. 나는 역사에 남을 작품만을 꿈꾼다.

 

김구림/ 1936년 대구 출생. 1958년 대구 공보관화랑에서 첫 개인전 개최 이후 다수의 국내외 개인전과 단체전 참여. 1950년대 앵포르멜 추상 작품을 제작했으며, 1960년대 중반부터 오브제 작품과 전위적인 퍼포먼스 작품을 발표했다. 1969년 예술창작그룹 ‘제4집단’ 결성 및 ‘AG’그룹에 가담했다. 미술뿐 아니라 연극, 무용 등 공연예술 분야에서도 활동도 펼쳤다. 1990년대부터 음양사상에 기초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제7회 이인성 미술상(2006), 대한민국 무용제 무대미술상(2006) 등을 수상했다.

 

김영일 귀한 사람, 귀한 기록

김영일은 1961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평창의 산: 우리의 진경>전(2012 공근혜갤러리), <김영일: 초상사진>전(1992 예술의 전당)을 열었고 <임응식>전(2011 국립현대미술관)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전통음악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음반/영상 전문회사 ‘악당이반(주)’을 설립했고, 2011년 그래미어워드의 2개 부문에 우리 음악 ‘가곡’으로 후보에 올랐다.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락(樂)’ 부문 큐레이터, 2013년 서울시청 시민청갤러리 개관전 디렉터를 지냈다.

김영일: 귀한 사람, 귀한 기록

글|장승연_본지기자 

아뜰리에에르메스에서 개인전 <귀한 사람들>(1. 11~3. 19)을 열고 있는 사진가 김영일. 한국의 사람과 풍경을 담아 온 이 사진가는 알고 보면 매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국내 유일의 국악 음반사 ‘악당이반’ 대표이자 전통음악 프로듀서로, 2011년 발매한 음반이 그래미어워드 예선까지 진출한 바 있다. 뿐만 아니다. 여러 유명 잡지들의 포토디렉터를 거쳐 사진전문 출판사 ‘일’과 영상전문 회사 ‘그루비주얼’을 이끌었고, 2009년 제3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의식주향락> 중 ‘락’ 섹션 큐레이터 및 올해 서울시청 시민청 갤러리 오픈 디렉터를 맡았다. 정말이지 ‘다양하다’라는 설명으로도 부족할 만큼 에너지 넘치는 궤적을 걸어 온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스스로를 “시간과 기록을 ‘담는’ 외길을 걸어 온 사람”이라고 담담히 표현한다.

“왜 사진가가 됐을까 생각해 보니, 이미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저는 카메라를 들고 다녔어요. 제가 좋고 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기록해 오는 습성이 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진하는 사람이 됐고, 이후에는 국악이라는 전통 음악, 들리는 것의 가치가 중요하게 다가오자 저는 그것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들리는 것을 기록하는 방식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진이든 녹음이든 ‘담는다’는 것은 결국 마찬가지니까요.”

<귀한 사람들>전은 일견 한국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어느 사진가의 단정한 전시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거기까지가 감상의 전부인 관람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영일은 전시가 단순한 작품 감상을 넘어 진정한 ‘공유’가 이루어지는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전통’이라는 테마와는 다소 상반되게 느껴지는 SNS 등의 새로운 방식들도 적극 활용한다. 그의 깊은 의도를 안다면, 이 전시가 기록 즉 ‘담기’라는 하나의 축을 토대로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시도를 펼쳐 온 김영일처럼 수많은 레이어로 둘러싸여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전시를 통하여 이렇게 말한다. 가치 있는 것을 이어나가는 사람, 그리고 그 가치를 깨닫고 중요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 또한 모두 ‘귀한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한복을 갖춰 입은 고운 자태의 여성 사진들이 전시된 <귀한 사람들>전은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Part I: 20년 간의 인연들’은 80대 명창 박송희와 조순애, 그리고 아리랑 민요를 평생 불러 온 할머니들까지 작가가 지난 20여 년 간 만나 온 국악인들의 사진을 소개한다. ‘Part II: SNS를 통한 새로운 인연들’은 작가가 페이스북 ‘친구 맺기’를 통해 알게 된 젊은 국악 연주자들의 초상 사진을 전시한다. 또한 그들이 전시장에서 직접 펼치는 공연을SNS를 통해 공유, 확산하는 ‘Part IV: 아뜰리에에르메스-SNS 프로젝트’로 연결된다. ‘Part III’에서는 총 전시의 밑그림을 이루는 영상 작업을 소개한다.  “사실 제 사진은 똑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완전히 ‘사진관 사진’이죠. 그저 인물의 그대로가 드러내기만을 주목적으로 하는 사진입니다. 20년 전 문화계 인사들을 촬영한 사진과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김영일이 한결같이 담아 온 ‘전통 음악’이라는 소재, 그리고 ‘사진’이라는 형식과 더불어, 이번 전시에는 ‘여성’과 ‘한복’이라는 또다른 테마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전통을 자랑하는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여성을 그린 작품이 단 3 점에 불과하며, 그 이후로도 이 땅의 여성을 기록하고 보여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작가는 ‘전통 음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특히 ‘여성들’과 우리의 옷 ‘한복’에 포커스를 맞춘 것. 한복을 입고 공연하며 전통 문화의 명맥을 이어 가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나가는 국악인들을 모델로 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한복과 국악 모두 참 우리에게 귀하지 않게 여겨지는 것들 아닙니까. 하지만 이것을 지키고 이어 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의 가치를 알고 중요하게 여길 수 있는 관객이 있다면 그들 모두 ‘귀한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섹션 ‘Part III: 우리 옷, 우리 음악의 원형-과정-결과’에 소개되는 영상 작업 <한복의 오늘: 허상 또는 실상>은 1년에 걸쳐 종로3가와 광장시장 뒷골목에 자리한 한복 공방 장인들과 그들의 작업을 촬영, 편집한 기록 영상이다. 우리의 것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도 한복이 그 본래의 명맥을 아직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우리 옷과 장신구가 태어나기까지 염색, 바느질, 동정 달기, 비녀, 뒤꽂이, 노리개 등을 만드는 알려지지 않은 진짜 장인들의 인고의 세월이 빚어 낸 시간과 정성이 있었기 때문임을 말해 준다.

전시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국악인들의 우리 음악 연주 마당이 펼쳐진다. 김영일은 이 공연들을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몫으로만 남기지 않는다. 연 영상 및 정보를 페이스북 전시 페이지에 올려 직접 관리하며 그 파급력을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하고 있다. “전시란 작가와 관객의 ‘공유’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그 방식을 바꿔 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바로 ‘SNS’를 통한 공유입니다.”

신진작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동방의 요괴들, 신진작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신진작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동방의 요괴들>

Art가 주최하는 신진작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2013 동방의 요괴들>이 시작됐다! 지난 5년 간 <동방의 요괴들>은 전시, 워크숍, 아트페어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 한국미술 현장에 젊은 작가를 안착시키는 든든한 플랫폼의 역할을 해왔다. 올해는 공모 방식을 대폭 개편해 한국의 공모전 제도에 새 바람을 예고한다. 자유공모제 대신 추천공모제를, 심사위원제 대신 튜터(tutor)제를 도입한 것. 튜터는 개인적인 관심사에 부합하는 작가를 각 10명씩 선정하고, 추후 ‘인큐베이팅’ 과정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올해 초청한 튜터는 고원석, 김윤경, 김인선, 정현, 현시원, 이상 5인. 이들은 분명한 미학적 관점을 토대로 신진작가의 발굴과 육성에 꾸준한 관심을 보인 현장 전문가들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각 튜터가 선정한 작가 39인의 작품으로 ‘지면 전시’를 구성하고, 작가마다 튜터들의 코멘트를 덧붙인다. 이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비평의 프레임 안에서 바라보게 함으로써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의 ‘내일’을 예측하는 동시에 1, 2월호에 연계 진행한 ‘컨템포러리 아트’ 특집의 명맥을 이어가려는 취지다. 2013년 <동방의 요괴들>이 탄생하기까지 진행 과정을 담은 리포트와 함께, 튜터들이 중복 추천한 BEST 작가 10명의 Q&A를 소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아울러 <동방의 요괴들> 특집을 기해,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창작 환경을 진단하는 에세이를 싣는다. 88만원 세대, 신 빈곤층으로 떠오른 젊은 예술가들이 처한 현실을 밝히고, 그럼에도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한 그들의 피나는 노력을 전한다. 젊은 작가는 결국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의 미래다! 그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애정을 보내야 하는 이유다.

① Pictorial
창작은 또 하나의 유희 / 정현
냉담한 현실에 비친 자화상 / 고원석
‘불만’은 나의 힘! / 현시원
정체성의 차이를 인정하다 / 김인선
소소한 일상의 재맥락화 / 김윤경
② Report
동방의 요괴들, 컨템포러리 아트의 내일 / 편집부
③ Essay
한국의 젊은 작가가 ‘사는’ 법 / 호경윤

추천인
강수미 강승희 강애란 강정완 고경호 고원석 공성훈 구자영 권대훈 권여현 금중기 김대원 김동연 김석 김선두 김섭 김성희 김영호 김용식 김익모 김장언 김정한 김정희 김종구 김종학 김주환 김진 김진관 김태호 김택상 김희수 남인숙 류병학 문봉선 문주 박남철 박남희 박병춘 박성진 박소영 박소현 박영근 박인현 반이정 배은혜 백기영 서상호 석철주 설원기 신주호 신하순 심영철 안규철 안병석 안영나 오경환 오상택 오원배 오혜미 우종택 유근택 유진상 윤익 윤종구 이기봉 이민한 이상선 이석주 이선영 이원곤 이인범 이정아 이종구 이지영 임동락 임자혁 임혜진 장상건 전범주 전수경 정용국 정원철 정재호 정현 정현도 조덕현 조순호 조습 최성원 최진욱 하계훈 한계륜 현시원 홍경한 홍명섭 홍순주 홍승혜

튜터별 선정작가
고원석_ 강병주 강지원 공석민 김현우 박소연 박은정 배윤환 오다영 진철규 추효정
김윤경_ 권기예 김소철 김경규 김현배 신정균 문이삭 유정민 조혜진 이준원 프로젝트 OZ
김인선_고성광 곽이브 권용철 박영진 배윤환 서재현 이은새 정유정 조혜진 호상근
정현_ 권기예 권용철 김경규 김희욱 박광수 박소흔 박재훈 신지선 이세준 추효정
현시원_강정석 김소철 김영롱 신정균 신준민 이세준 이의록 조혜진 프로젝트 OZ 홍지연

 

창작은 또 하나의 유희

“나는 매일 물리적인 세계의 질서가 교란되는 상상을 즐긴다”



Tutor 정현

박광수 <표정 2> 종이에 잉크 42×29.7cm 2012
드로잉 작가로 박광수는 대학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학생 시절 드로잉이 초현실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만화적 세계를 보여 주었다면 지난 인사미술공간 개인전에서는 영화심리학적 관점을 드로잉 설치로 옮겨 새로운 영역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김경규 <D.I.Y> 혼합재료 109×66×53cm 2011
그의 입체 작업은 아직 어설프다. 재치와 유머는 흥미롭지만 그만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엔 부족했다. 그럼에도 아직은 논리적인 설명에 약한 풋풋함과 내적 갈등이 느껴졌다. 앞으로 그 가능성이 형태로 그려지길 기대한다.

 

김희욱 <가려진 것들 1>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2
소리, 라이트, 오브제, 설치 등 다양한 질료를 사용해 위선의 시대, 상실의 시대를 비트는 작업을 한다. 드라마틱하면서도 세련된 설치가 눈길을 끈다. 지도교수에게 받은 영향이 다소 남아 있는 듯 하지만 질료를 풍부하게 사용하면서 관념적 물음을 담아내 잠재력을 보여 주었다.

신지선 <Project Apt-tour Leaflet Series> 25×72cm 2005~
일상을 특별한 이벤트로 전환, 공공적 요소로 자료화한다. 전형적인 공동체 기반 예술을 약간 비튼 작업처럼 보이는데 작업의 방법론에 비해 철학적 사유의 균형감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외부를 바라보는 입체적인 관점에 대한 ‘수다’가 필요하다.

 

추효정 <Still Site> 캔버스에 유채, 안료 194×112cm 2011
몇 해 전부터 난개발 또는 재개발의 흉측한 장면을 그리는 살풍경 회화가 유행하면서 이런 경향의 회화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추효정의 풍경은 현실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기하학적 조형성과 초현실주의적 요소가 결합되어 복합적 관점을 보여 준다.

 

권기예 <초점 맞추기>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2
일상의 사물들, 특히 부엌살림을 재료로 사용해 쓸모없는 기계를 만든다. 사실 완전히 쓸모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초점 맞추기>의 경우, 적어도 돋보기들을 이용해 불을 피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같은 ‘과장된 모자람’으로 꾸며진 쓸모없는 오브제들의 비유가 바타이유의‘낭비 이론’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이세준 <새벽의 틈> 캔버스에 유채 112.1×145.5cm 2012
드물게 회화와 설치를 시도하는 젊은 작가다. 그는 문학, 인류사, 종교학 등 세계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부터 윤리, 욕망, 선악과 같은 덕목들을 회화적 서사로 옮긴다. 회화적 서사란 단순한 이야기 그림이 아닌 시적 언어로서의 회화를 의미한다.

 

권용철 <CHAIN REACTION_ movement-Switch> 혼합재료 120×120×50cm 2012
그의 기계들은 심각해 보인다. 누가 보아도 기계적 구조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작동되기까지 한다. 나는 이 작업의 이미지에서 음악적 요소를 더욱 강하게 떠올렸다. 이처럼 ‘심각한’ 기계들의 집합을 통해 작가가 보여 주고픈 것은 웅장한 교향악일까, 아니면 불협화음일까?

 

박재훈 <평행한 기억> 혼합재료 50×200×170cm 2012
라이트 설치와 조각을 혼성하고 레디메이드를 특정한 상황에 연루시킨다. 그의 작업은 조각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레디메이드의 정체성, 즉 기능 상실에 의한 낯섦과 거리두기의 모순을 제시한다.

 

박소흔 <카피어랜드 문서세단기 T-818> 2012
그의 작업과 텍스트는 이율배반적이다. 이미지에 비해 과장된 해석처럼 읽히기도 했으나 어떤 논쟁적인 상황에서 결정하지 못하는 심리 상태를 비유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는 있었다. 연극적 상황이 어떻게 조형예술의 화법으로 전환 가능할지 함께 고민하고 싶다.

 

정치적 미술에서 유희적 미술로

일상의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어 가는 시대이다. 도시의 모습, 미디어 환경과 현대인의 가치관도 쉴 틈 없이 변화 중이다. 미술계의 변화를 가장 쉽게 목도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공모 심사에 참여하는 경우인데,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해 보면 형식이나 매체보다는 내용의 측면에서 상당한 변화가 목격되었다. 2012년의 경우, 천재지변이나 재난이란 주제를 다루면서 과거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풍경이 아닌 피폐하고 성이 잔뜩 난 풍경화 작업들이 유독 눈에 띠었다. 2008년 경부터 이른바 ‘살풍경화’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현대 회화 속에 등장한 우리의 자연은 자주 훼손된 채였다. 올해도 이러한 상처받은 풍경화의 경향은 여전히 남아 있으나 예전에 비해 조금 누그러진 편이다. 모든 예술이 현실의 반영이기는 하나 지나치게 한 방향에 쏠리는 현상에 대해 우리 모두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젊은 작가들이 대하는 신비주의적 태도의 풍경, 신화적 자연, 반문명주의자가 바라보는 땅과 생명이 어떠할지 궁금하지 않는가? 또 다른 변화는 메시지나 주제 의식보다는 색과 형태를 위주로 한 조형적 회화가 상당히 많아졌다는 점이다. 유희적 태도의 예술세계를 드러내는 경우인데 이런 현상은 어쩌면 젊은 세대들이 외부로부터 차단된 채 자신만의 세계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듯 한 인상을 준다. 이는 다른 각도로 볼 때 동시대적 현실을 역설적으로 반영한 ‘사회심리학적 스크린’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와 같은 비의미적 행위, 강박적 몰입과 유희 등 이중적 심리를 반영한 작업들을 미술 교육과 비평 및 기획이 다각적 관점으로 풀어 주거나 확장시켜 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끝으로 <동방의 요괴들>이 추천제로 바뀌면서 참가자의 작업에서 지도 교수의 영향이 많이 드러난 점이 발견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매우 다행스러운 현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사자들이 참가자의 작가적 가능성을 예측하기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 되었다. 작가란,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앞으로 작가 지망생들은 다소 어설프더라도 자신만의 세계를 담은 포트폴리오를 통해 작가로서의 잠재력을 풍부하게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정현은 프랑스 파리 1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 정체성과 현대미술을 연결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2광주비엔날레에 ‘인티머시와 공공성’에 관한 비평글을 기고하였다. 영국의 파이돈(Phaidon) 출판사에서 《21세기 컨템포러리 아방가르드》(공저)가 출간될 예정이다. 독립큐레이터로 <불량배-타자의 이미지>(2008), <예술마을 고한-사북>(2008), <안녕하세요, 쿠르베씨>(2010)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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