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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1.11

Abstract

현재 세계비엔날레재단(The Biennial Foundation)에 속한 비엔날레는 105개가 넘는다.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가 2~3년의 기간을 두고 열리는 행사임을 고려해도, 1년 내내 비엔날레를 보러 다녀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당대의 시각예술 중 가장 전위적이고 문제적인 작품을 한데 모아, 세상을 보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던 비엔날레의 위풍당당한 포부는 옛말이 됐다. 일각에서는 비엔날레 무용론도 주장한다. 오늘날 비엔날레가 처한 대표적 문제로는 첫째, 차별화되지 못한 상투적인 반복을 들 수 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열릴 뿐, 다수의 비엔날레가 비슷한 주제 감독 작가의 돌림노래를 지루하게 반복한다. 비행기로 전세계를 오가며 커리어를 쌓기에 바쁜 '제트플라잉 큐레이터'와, 비엔날레의 스펙터클과 동시대미술의 대표적 담론에 부합하는 작품으로 유수 비엔날레를 투어하는 '비엔날레형 작가'마저 등장했다. 둘째, 아트페어의 규모가 미술시장의 성장과 함께 확대되면서 볼거리 풍성한 '미술 이벤트'의 입지마저 약화됐다. 스펙터클한 전시 자체가 비엔날레의 핵심은 아니지만, 비엔날레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비엔날레적인 볼거리를 요구한다. 셋째, 비엔날레가 각 도시의 '지역 활성화'라는 사회 경제적 맥락에 부합하는 '쇼' 역할에 몰두했다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의 도시에서 발생한 '비엔날레 붐' 현상이 대표적 사례이다. 한편 제3세계의 비엔날레 확산은 세계 문화 예술계의 지형도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써 비엔날레가 적당했기 때문이다. art는 2011년 하반기, 전세계에서 열린 크고 작은 비엔날레 중 비엔날레의 대안을 새롭게 모색하는 리옹비엔날레, 요코하마트리엔날레,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이스탄불비엔날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등 다섯 비엔날레를 집중 조명한다. 비엔날레를 다녀온 다섯 명 필자의 리뷰와 각 비엔날레 총감독 및 큐레이터의 인터뷰를 함께 준비했다. 이로써 비엔날레의 껍질과 속살을 함께 들여다 볼 기회를 제공한다. 비엔날레의 '양적 팽창'과 '질적 저하'가 공존하는 위기의 상황이다. 이제 다시 비엔날레의 역할과 가치를 물을 때다.

Contents

01    표지  김영나 <자화상> 270×180cm 벽지에 프린트 2011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김복기

38    핫피플 유진상 2012미디어시티서울 총감독

42    프리즘
    새로운 게이트키퍼, 기업 미술상의 명암  호경윤
    내가 사회적 이슈에 동참하는 이유는?  박은선

46    오후의 아틀리에    
    산들의 높이와 바다의 넓이  정재규

62    포켓 속〉〉〉디카 속〉〉〉이미지 채집  로와정
    낯선 곳에서의 식사

68    포커스
    소통의 기술展|임민욱展  서현석
    방혜자展|신미경展  전영백
    이경展|박기진展  이선영
    박이소展  정헌이

88    특집  World of Biennale 5
    [1] 인터뷰  
    빅토리아 누트론 | 오사카 에리코 | 제인 파버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옌스 호프만 | 정준모
    [2] 비엔날레 리뷰
    리옹_치명적인 아름다움이 나타났다  김순남
    요코하마_시공간 넘어, ‘마법의 여행’을 떠나다  김복기
    인천_여성미술, ‘미지의 대지’에서 만나다  조선령
    이스탄불_‘무제’의 미학, 비엔날레 DNA를 비틀다  이용우
    청주_공예와 예술의 ‘유용지물’을 다시 묻는다  김주원

138    WHO WE MET  세라 손튼

140    아티스트 인사이드  
    김혜나_감정의 전도율을 새기다  김재석
    김영나_수집과 재구성의 규칙  장승연

149    해외작가  데니스 오펜하임
    권력을 해체하는 예술  최옥경

162    이미지 링크  Less
    Dirty Trip

168    전시 리뷰  
    해인아트프로젝트|시티-넷 아시아|장보윤
    공성훈|아르코 몽골 노마딕 레지던지
    테크놀로지, 전통을 만나다
    박소영|공간접기|손동현

178    전시 프리뷰  
    조선화원대전|유어인천
    레슬리 드 차베즈|김윤성, 세계유물
    텔미텔미|백순실|김상연

184    BRAND NEW  화이트블록갤러리

188    동방의 요괴들
    화살표의 충돌, 그 신선한 화학작용  윤규홍

194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화살표의 충돌, 그 신선한 화학작용

<동방의 요괴들 지역순회전_화살표〉전시 전경. 전시 오프닝 기념촬영. 참여작가와 아울러 대구MBC 박영석 사장, 김복기 본지 발행인 등이 참석했다.

화살표의 충돌, 그 신선한 화학작용

글 | 윤규홍·예술사회학

그런 게 있다. 적지 않은 예술기획이 처음에는 화제를 뿌리며 기세 좋게 출발한다. 그것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신선함이나 활기를 잃어가며 행사의 껍데기만 간신히 유지한다. 전통의 권위 속에 담긴 안정과 식상함이라는 ‘양날의 칼’은 어떤 기획을 자기 갱신하며 이끌어나가느냐, 아니면 흐지부지되느냐, 두 갈림길로 몰고 간다.                  
올해로 3년째를 맞은 <동방의 요괴들>은 아직 짧은 역사로 인해 통시적인 분석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 대신 지원자들의 숫자와 폭, 언론 노출 빈도, 관람객 숫자, 미술시장 거래의 가능성 등 계측 가능한 자료를 모아 보면 이 프로젝트는 우리 미술계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행사가 된다. 덜 객관적인 시각인지는 모르지만 <동방의 요괴들>의 전시를 둘러싼 ‘핫’한 분위기는 이번에도 변함이 없었다.
연이은 지역 순회전은 이 신진작가 발굴 사업이 살려 놓은 불씨를 꺼지게끔 내버려 두지 않는다. 물론 지역 분권 운동이라는 비판적 관점에서 보자면, 전국 순회 문화행사는 ‘서울보다 떨어지는 지방민들아, 특별히 신경 쓰는 거니까 감사히 여기고 봐’라는 시혜적 성격이 많든 적든 깔려 있다. 하지만 〈2011 동방의 요괴들 지역순회전_화살표〉는 그만큼 우려스럽지 않았다. 대구는 서울 다음으로 많은 미술대학과 컬렉터를 가진 대도시다. 자긍심에 근거한 집합 의식인지, 아니면 전반적인 미술 안목인지 선뜻 가늠은 안되지만, 이 전시에 출품된 각각의 작품들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관객들의 호불호나 높낮이는 어느 정도 일치했다.   
무엇보다 작품을 중심에 놓고 관찰할 때 적어도 한 가지는 탁월하다. 신인들의 전시에 항상 따라붙는 ‘풋풋함’ 따위의 뻔한 수사가 잘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에는 대학 졸업 후 〈동방의 요괴들〉이 된 작가들이 여러 멘토링과 자기 개발을 거치며 짧은 시간 내에 일정 수준에 올라섰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미술, 특히 현대미술은 항상 혁신적인 면을 지향하므로 젊은 신예가 미술 담론을 이끌 여지가 충분하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가진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가 16명도 그런 평가를 받기에 부족한 점이 없었다.

왼쪽 ? 백현주 <그 여자의 여름은 아팠다> 캔버스에 아크릴릭 116.8×80.3cm 2011 | 곽상원 <The Record> 캔버스에 아크릴릭 53×45.5cm 2010

젊은 시각, 다양한 매체

이정형은 <노다지(Gold bar)>를 통해 금(金)이 가지는 부의 상징을 일체의 비유 없이 곧장 관객 눈앞에 제시한다. 그동안 금이나 은의 그와 같은 물성을 모더니즘 스타일로 한 단계 자제해서 보여 준 선배 작가는 더러 있었다. 하지만 금덩어리(그러나 가짜)를 땅에 파묻거나 액자 속에 넣어 걸어 두는 행위는 미술시장을 비꼬는 맥락도 가진다. 상품이 가지는 2가지 속성 중, 오직 전시적 가치에 집중하는 사용가치를 교환가치와 등가적 수준으로 맞추는 현 미술시장에 대한 비판은 역설적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도 크다.  
정재영이 만든 개 형상의 조각들은 ‘해피’라는 일반화된 이름으로 명명되는 개를 통해 이름을 붙이는 강자와 이름이 불리어지는 약자 간의 권력 관계를 드러 내고 있다. 약간은 감성적인 개인 취향으로 그칠 수 있는 휴머니즘은 까만 숯으로 형상을 뜬 시각 효과로 인하여 설익은 면을 떨쳐 내고 있다.
한국화가 이지은 또한 <탄생> 연작을 통하여 보살핌과 애정을 투여하는 대상인 어린아이들을 화면 중심에 놓고, 그 주변에 예컨대 홍경택의 작품 스타일을 연상하게 하는 패턴을 둘러친다. 그것은 사람 중 가장 자연에 근접한 상태인 아이들이 가지는 고귀함에 범접하지 못하게끔 막는 금줄과 같은 ‘제의적’ 의미와 같다. 이원기와 김춘재의 동양화는 최근의 장르적 경향인 근대적 경관의 혼합을 유려하게 담아 내고 있다. 이원기의 <가려진 풍경>은 수묵의 전통적인 기법을 흩트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현대인(이라기보다 현대 동양화가라는 신분)이 처한 경계적인 사유를 화폭에 옮겼다. 김춘재의 <타인의 도시>는 계급과 자본 축적에 따라서 도시 경관이 재구성되는 현실을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고 있다.    
팝아트는 우리의 기시감을 돋우는 경우가 많다. 본인들은 팝 아티스트로 불리기 원하는지 모르지만, 백현주와 남희승의 회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원더우먼처럼 보이는 인물을 내세운 백현주, 검객 조로의 마스크를 연상시키는 남희승의 단순하고 유쾌한 캐릭터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나 로버트 인디애나와는 또 다른 팝아트의 한국적인 변용이다.

M갤러리가 위치한 대구MBC 사옥 전경

세상과 자아의 충돌, 그리고 페이소스

어떤 대상이 가지는 존재론에 관한 고찰도 젊은 작가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읽은 책과 안 읽은 책은 눈으로 구별할 수 있다. 페이지가 넘어가며 읽힌 책은 그만큼의 부피의 틈이 생긴다. 권도연의 사진 작업은 책이라는 지식의 아이콘이 다만 물리적인 실체에 불과하지만 그 속의 텍스트를 우리가 확인하는 순간, 또 다른 차원의 현존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이행선은 실과 바늘을 가지고 와서 인식의 폭을 확장한다. 바늘과 실이 품은 여러 은유적 표현(예컨대 실마리를 풀다, 혓바늘 등과 같은)은 작가에게 가학과 피학의 변증법으로 제시된다. 이미 많은 기성 작가들이 바느질을 통해 예술 행위와 노동 행위의 상동성을 캐물어 왔지만, 작가는 글로 기술하는 철학을 캔버스 평면 위에 대신 풀어 놓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김효정의 회화는 출품작의 제목 <낯선 공간과 나를 연결하다>나 <쉬어가다>에 작업 주제를 다 밝혀놓을만큼 정직하다. 서구 근대 초기 풍속화의 아련함을 연상시키는 붓질은 그 자체가 우리에게 일종의 안락함을 선사한다. 작가는 힘든 일상의 장소인 ‘여기’와 낯설지만 평온한 ‘저기’를 나누어 촛불을 밝힌다. 그 촛불은 예컨대 <나니아 연대기>의 장롱이나 <닥터 후>의 경찰 전화박스 타디스처럼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다. 노소영에게는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가 연극 무대와 같다는 어빙 고프만의 연극 사회학이 유용할지 모르겠다. 그가 그린 10점의 작품은 모두 연극적 장치를 재현한 것이다. 그것은 내러티브를 보충하는 삽화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책에 삽입된 그림은 글을 통해 명확한 줄거리를 독자들에게 제공하지만 이 그림들은 그럴 수 없다. 결국 관객은 채워지지 않는 이야기를(비록 작가의 삶의 독백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로 대리보충한다. 오영은의 드로잉 작업 또한 작가의 자아를 외부 타자에 빗대어 세상에 맞선다. 세상은 왜 이처럼 부조리한가? 이 부조리 속에서도 나는 세계 인식의 중심에 굳이 서 있어야 하나? 예술가에게 작품은 부조리에 대항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한편 정진우와 홍찬일은 ‘매트릭스화’된 사회에 맞서 투쟁한다. 정진우는 알고리즘을 주제로 사방 연속형의 패턴을 창조한다. 다만, 물리학이나 공학적 알고리즘을 시각화하는 실재의 경우에는 논리의 발단과 전개가 포함되는데 작가의 미술은 그 논리가 빠져 있다. 홍찬일의 입체 작업도 재미있다. <현대인의 자화상>은 개인이 조직의 일부로 결합되어 제도를 이루고, 그 답답한 구조에 끼지 못하는 개인들(마르크스 식으로, 산업예비군)이 욕망하는 사회의 얼개로 이루어진다. 이미 서도호의 설치작업에서도 선보인 집합체 형상은 홍찬일에 와서 좀 더 무력하고 익명적인 특징을 띠고 있다.       
김범준은 <어른들의 동화> 연작을 통해 대중문화의 아이콘에게서 그것이 아이콘으로 올라서기 위해 가능했던 자격을 한 순간 빼앗아버렸다. 에너지원으로 건전지를 너무 많이 먹어 뚱뚱해진 아톰이나 기껏 비닐테이프 두루마리에 압살된 슈퍼맨, 우울한 개구리 케로로, 우주 대신 쏟아지는 콜라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실버 서퍼라니, 도대체 말이나 되나. 작가는 섬뜩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유머 속에 깃든 페이소스를 관객에게 전한다. 인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페이소스는 김범준과는 다른 내용이지만 곽상원의 인물 묘사에도 들어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까까머리가 작가인지 다른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확정되지 않고 직접 지시되지 않은 방식은 매혹을 발한다. 내 주관적인 취향이 발동한다면 이번 전시에서 내 선택은 곽상원의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기획자의 취지에 드러나는 것처럼, 중앙과 지방, 서로 다른 장르, 작가와 미술시장 등이 서로를 지향점 삼아 끌어당긴다는 화살표의 정신을 매끄럽게 가꾼 듯하다. 나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화살표를 따라 두 성질이 맞닿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래서 양극이 별다른 이득 없이 단발적인 보여 주기로만 끝나든, 잠정적 화해나 제휴 방식으로 서로를 돕든, 아니면 좀 더 긴밀히 결합되어 새로운 화학작용을 일으키든가, 그 중 하나다. 물론 우리의 바람은 마지막 경우다.

김효정 <낯선 공간과 나를 연결하다> 캔버스에 유채 72.7×90.9cm 2011

친구여, 친구란 없다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릭 175×180cm 1986

“친구여, 친구란 없다”

글|정 헌 이

<개념의 여정: 박이소>전은 2006년 로댕갤러리(현재 플라토)에서 열렸던 <박이소 회고전> 이후 5년 만에 그의 회화적인 드로잉 및 작품, 설치, 컨셉트 드로잉을 중심으로 그의 교육 자료와 작가 일기를 포함한 거의 모든 개인 자료들이 공개된 자리였다. 이번 전시 도록에 큐레이터 김선정이 적고 있듯이 아트선재센터는 그 탄생부터 발전 과정에 이르기까지 고 박이소가 프로그램과 비전을 제시하고, 큐레이터와 작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협력하였던 장소인 만큼, 이번 전시의 의미는 매우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5년 전에 열린 <박이소 회고전>을 둘러싸고 “진정한 박이소”를 기획자의 영웅주의로 과대 포장했다는 비판이 특히 아트선재센터 및 미술원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던 점을 기억해 보면, 이번 전시가 “진정한 박이소”를 보여 주는 데 얼마나 각별히 고심하였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공동 큐레이터인 김장언이 이 전시를 “20여 년 간 보여 주었던 작가의 개념적 태도에 대한 조용한 여행”으로 규정한 것 역시, 5년 전의 “영웅적인” 박이소에 대적하는 “진정한 박이소”를 제시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드러내 보여 준다.
전시는 2층에서 박이소의 보다 회화적인, 개별 작품으로서의 드로잉과, 설치 컨셉트 드로잉 중에 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들을 ‘정체성 정치학’ ‘다문화주의’ ‘소통’ ‘만남’ 등의 핵심 개념으로 보여 주고 있고, 3층에서는 보다 개인적인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관련 자료들이 더욱 다양하게 전시되었다. 말하자면 한편으로는 박이소의 ‘개념의 여정’을 보여 주되,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전시의 영문 제목이기도 한 박이소의 “탈주선(Lines of flight)”의 궤적을, “감금된 삶을 해방시키기 위한 글쓰기의 과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들뢰즈의 문장을 인용한 김장언이 여기서 말하는 “글쓰기”란 ‘쓰기로서의 그리기’ 즉 드로잉을 의미할 것이다. 즉 기획자는 박이소의 드로잉 세계를 “탈주”를 시도하는, 다분히 “비선형적인” “중첩되고, 연결된 듯 어긋나며, 팽창되고 수축되는” 그런 진동으로서의 울림의 세계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의 드로잉뿐만 아니라 교육 자료, 강의 계획서 및 강의 노트, 그리고 21권에 이르는 작업 일기까지 그의 “탈주선”의 진동을 공감시킬 수 있는 자료들도 함께 전시되었다. 그의 다분히 사적인 자료들까지 모두 공개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야말로 ‘진정한 박이소’를 가장 직접적으로 관람할 수 있었던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는 점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팔방미인>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210cm 2002 개인 소장

“오! 나의 친구들이여, 친구란 없다.”

자크 데리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의 문장을 인용하고 분석하면서 그의 저서 《우정의 정치학(The Politics of Friendship)》을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친구란 ‘또 다른 자아’였다. 진정한 친구는 마치 자기가 자기를 위하듯이, 친구의 안녕을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친구의 입장에서 기원하는 자이다. 하지만 친구는 나의 나에 대한 관계가 아니라 여전히 둘이라는 분리된 단위, 분리된 주체의 인정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데리다는 동질성에 바탕을 둔 우정에 관한 전통적인 이상화된 개념이 자아에 대한 믿음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친구여, 친구란 없다”라는 말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우리는 타인을 신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무모하게도 우리 자신을 믿고 싶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우정은 그 유약함에도 불구하고, 타자로서의 ‘근본적인 분리’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그가 ‘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관계이다. 분리된 두 항 사이의 우정은 그것이 동질성에 근거하는 한 사실은 깨지기 쉽고, 극도로 불안정한 것이다. 동일성과 차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정직성 포용력 관대함 민감함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작동이 유지되어 성취하는 관계가 우정일 것이다. 데리다는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죽을 가능성을 갖지 않은 우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한 친구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우정이 성립된다고까지 말한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를 유지하는 것, 그를 더 이상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을 알 때조차도 그를 알고자 하고, 듣고자 하고, 읽고자 하고,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데리다적 의미에서의 ‘우정의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진정한 박이소”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친구였던 친구들만큼의 박이소가 있을 것이며, 또한 그와 친구가 되고 싶은 잠재적 친구들의 해석만큼의 박이소가 계속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통해 이미 박이소가 제기한 “무한한 대화” 속에 각자의 목소리로 참여하는 일, 그것이 바로 박이소를 추억하는 “진정한” 자신의 방식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그의 사적인 일기를 공적 자리에서 보는 일이 제아무리 내게 아픔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이 ‘조용한 여행’이 박이소를 만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이자 어쩌면 이런 식으로는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한편 슬픈 마음이더라도 기쁘게 전시 관람을 적극 추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박이소의 작품 세계는 타인과의 급진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들을 제공한다. 드로잉 위주의 전시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삶의 허망함에 대한 ‘바니타스’적인 그의 철학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러나 삶의 허망함에 대한 그의 유머러스한 지적들은 궁극적으로는 “함께-있음”의 의미를 사유하게 만들어 준다. 그것이 그가 블랑쇼적 의미에서의 “바깥의 경험”을 긍정적 계기로 전환시키는 힘으로 작동한다. 그의 블랙홀은 ‘모든 것의 사라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모든 것의 출발’이기도 하며, 비록 세계와의 관계의 불가능성을 마주하는 시련 속에서도 빛나는 별빛-예술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의 장인 것이다. 앞으로 계속, 이런 이야기들이 그와의 대화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누구와의 대화가 진정한가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의 대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이번 전시를 통해 새삼 다시 깨닫는다.

<박이소>전 아트선재센터 전시 장면

수집과 재구성의 규칙

수집과 재구성의 규칙

글|장승연 기자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그가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는 계간지 《그래픽》을 통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일상 속의 아카이브를 활용해 자서전을 만들어 보는 그래픽 디자인 워크숍 개최 등 단발적인 소식이나, 디자인 관련 전시는 물론 심지어 몇몇 미술 전시에서도 그의 이름을 종종 마주치곤 했다. 이제 ‘디자이너’와 ‘작가’의 예술적 경계를 논하는 것 자체가 다소 무의미해진 시대라고는 해도,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이곳저곳 장르를 넘나드는 듯 보이는 그의 활동은 꽤 흥미롭기만 하다.

<우물우물(umool umool) vol.9> 스텐실 프린트 250 editions 21×14.8cm 2010

발견된 사물, 발견된 구성

김영나의 활동을 외부의 의뢰에 따라 진행되는 ‘일’과 자신의 흥미와 생각의 고리들을 펼쳐 나가는 ‘작업’으로 구분한다면, 지금부터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은 그의 ‘작업’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는 바로 ‘스케치’다. 디자이너의 스케치란 어떤 것일까. 우선 김영나의 스케치 재료는 스티커 포장지 포스트잇 봉투 등 문구점에서 구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발견된(Found)’ 일상 용품들이다. “어떤 용도를 위해 이미 고안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대량생산된 물건을, 제가 정하거나 혹은 발견한 규칙에 따라 붙이고 조합을 해서 예상 밖의 새 형태를 만듭니다. 문구점을 구경하거나 재료들을 사모으는 것을 좋아해서 우연히 시작하게 된 작업인데,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해 오고 있어요. 예를 들면 포장지 같은 줄무늬 패턴 종이들을 모아서 각각의 간격이나 각도를 맞춰가며 재조합하기도 하구요. 혹은 대량생산된 스티커가 접착 면을 어떤 방식으로 붙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점을 이용해 보기도 해요. 같은 스티커들의 크기와 컬러에서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때 대량생산 시스템의 오류 같은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거나, 같은 기능의 문구도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색상이나 사이즈 등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어요. 새롭게 무언가를 창조하기 보단, 이미 존재하는 상황을 가지고 제 나름의 레이어를 구축해서 새로운 구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이 참 매력적입니다.”
‘발견된(Found)’ 재료의 기존 형태적 특징을 통해 새롭게 ‘구성(Composi tion)’한 것, 이것이 바로 김영나의 <Found Composition>이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스케치에서 나오는 다양한 형태들을 토대로 타이포그래피를 만들거나, 그 재료의 기본 그래픽을 더 큰 크기로 확대한 포스터로 제작하여 그 고유의 기능 이상의 새로운 경험을 유도하는 <Blow Up>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다.
김영나에게 ‘발견된’ 것이란 재료와 그것으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새로운 구성뿐만이 아니다. 그는 이번 개인전 제목을 <Found Abstract>로 정했다. ‘Abs tract’를 굳이 한글로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중적 의미를 살려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김영나가 말하는 ‘Abstract’란 첫 번째로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형태 요소로서 ‘기하학적 추상’을 뜻한다. 그리고 그는 이 ‘형태’ 자체를 작업의 질료로 삼는다. “제가 기하학적 형태에 관심이 많아요. 스티커 같은 재료도 표면상의 단순한 형태에 매료된 거죠. 기하학적 형태는 어떤 직접적인 설명 없이도, 오히려 더 많은 여지와 가능성을 안고 있는 형태라고 생각해요. 설명적이지 않아서 불친절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강렬한 메시지를 생성할 수 있거든요.” 두 번째로 ‘Abstract’란 형태적 관점을 떠나 현재와 일상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재구성하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어떤 과정’으로서의 추상이란, 김영나가 갤러리의 1층 공간 초입을 ‘Abstract Space’로 명명하고, 전시장과 그의 작업이 상응하여 만들어 내는 새로운 공간을 구성한 것과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들이 전시에 앞서 공간을 ‘설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제 생각에 디자이너는 공간을 무언가로 ‘구성’해 낼 수 있는 어떤 하나의 배경으로 생각하고 접근할 수도 있겠죠. 전시 설치라는 것도 이미 완성된 작품을 하얀 전시장에 어울리게 그저 ‘배치’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요즘은 공간에 따라 그 설치 작업 자체가 변형되어 버리는 장소 특정적인 작업도 많잖아요. 그럴 경우 과정 자체가 작업이 되죠. 저는 그런 작업이 매우 인상적이에요. 이번 전시에서도 <Blow Up> 시리즈와 테이프라는 재료를 통해서 공간이 작업들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지 하나의 ‘상황’을 만들어 보고자 했어요.” 그렇게 김영나는 스스로 늘 공간에 대해서 어떤 욕심 혹은 로망 같은 것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전시라는 방식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평소 다루는 매체가 갖는 공간 너머의 ‘새로운 공간’을 향한 도전이 아닐까.

<우물우물>, 16페이지의 공간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김영나는 인쇄물이라는 장르에 매력을 느끼고 그래픽 디자인으로 전향했다. 그 중에서도 ‘책’이라는 매체를 평면 작업이 아닌 ‘공간’의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디자인적 입장에서 책이란 하나의 ‘공간’과 ‘시간’적 특성을 담고 있다. 이는 종이가 쌓여서 만드는 높이, 책등, 앞과 뒷면 등 철저히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공간과, 책이 묶이는 과정과 넘기는 사이에서 생겨나는 시간성을 말한다. 하지만 김영나는 책의 규격화된 물리적 공간의 차원을 넘어서, 책 자체를 ‘화이트 큐브’ 즉 하나의 전시 개념이 담긴 공간으로 만드는 이색적인 ‘셀프 퍼블리싱’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우물우물>은 김영나가 대학원에 다니던 2004년, 같은 연구실의 동료 디자이너들과 의기투합하여 처음 만든 책이다. 당시에 작업 과정에서 생산된 자투리 이미지를 모아 소량 인쇄한 책을 만들어 보자는 소박한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 중간 과정에서는 김영나가 전체 기획을 하고 섭외한 참여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형태로 진화해 총 9권의 결과물을 낳았다. 제작 규칙이 있다면 하나의 기본 주제를 정하는 것, 그리고 디자이너 당 16페이지 안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담아 내도록 한 것이다. 소규모 출판인만큼 인쇄 비용을 합리적으로 절감하기 위해 페이지를 제한했지만, 이는 실험적인 디자이너를 위한 ‘16페이지짜리 전시 공간’이 되었다.

<Group Portrait> 시트지에 프린트 270×405cm 2011_그래픽 디자인 전시 의뢰를 받고 사진가와의 협업으로 진행한 작업. 인쇄물의 전시 방법과 이를 관객들이 읽는 방식에 변화를 주기 위해 지금까지 진행해 온 프로젝트 결과물을 재료로 삼아 공간에 배열하여 구성한 이미지. 보통 ‘단체사진’에서 볼 수 있는 부자연스러운 배열과 인위성을 의도적으로 반영했다.

디자이너를 위한 실험들

<우물우물> 프로젝트는 김영나가 지속적인 ‘작업’을 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플랫폼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러한 셀프 퍼블리싱 작업이 무엇보다도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로서의 역할과 권한에 있어 좀 더 자유로운 열정을 실현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최근 <우물우물>의 주제 중 하나가 ‘리젝트(거절)된 것’에 관한 것이었어요. 디자이너들에겐 클라이언트와 일을 진행하면서 거절되어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게 마련이죠. 공개될 수 없게 된 그것을 반대로 들춰내서 그대로 다시 퍼블리싱해서 새로운 질문을 던질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 연장된 작업을 제작하는 가운데 생각의 방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본 거예요.”
디자이너들이 완결된 이야기를 보여 주기까지 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과정이나 소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 차마 ‘일’에 담기지 못하는 이야기를 들췄을 때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무언가가 나올 수 있다는 점, 그런 모든 것들을 담아가고자 하는 것이 바로 <우물우물>이다.
장르적 경계의 구분을 받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작가’들이 나날이 등장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김영나는 대화 도중 자신은  분명 ‘디자이너’라고 명확히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김영나를 다음과 같은 디자이너라고 덧붙여 이야기하고 싶다. 김영나는 일상을 모아가는(Miscellany) 디자이너이다. 그가 지난 해 진행했던 그래픽 디자인 워크숍의 제목인 ‘일상 속의 수집을 통해 만드는 당신의 자서전(Your Autobiography with Everyday Miscellanies)’은 한편으론 자기 자신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그 모은 것들을 자르고 덧붙이고 요리조리 조합하며 새로운 레이어를 만들어 낸다. 기하학적 추상 형태의 재료건, 혹은 형태 없는 그의 내면의 이야기나 생각 전부를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완결된 프로젝트에 익숙한 여타 디자이너들과는 조금 달리, 그 과정들을 보여 주는 것을 십분 즐기고 있다. 다양한 ‘공간’을 통해서 말이다.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미디어아트를 재정의하겠다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미디어아트를 재정의하겠다”

글 | 김수영 기자

내년 9월에 열릴 2012미디어시티서울의 총감독으로 유진상이 선임됐다. 그는 올봄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추상하라!>전의 초청기획자를 맡았으며, 미디어아트와 미술 전반을 다루는 평론가로 왕성하게 활동해 왔다. 미술관과 갤러리, 비엔날레와 아트페어 등에서 전방위 활동을 펼쳐 온 그가 비로소 ‘매머드급’ 국제 행사의 총감독으로 데뷔했다. 미디어시티서울은 2000년 도시와 예술, 산업과 미술을 융화시킨다는 서울시의 야심을 담은 대규모 프로젝트로 출범했다. 그간의 주제는 ‘0과 1 사이’(1회, 송미숙), ‘달빛 흐름’(2회, 이원일), ‘게임/놀이 호모루덴스’(3회, 윤진섭), ‘두 개의 현실’(4회, 이원일),  ‘전환과 확장’(5회, 박일호), ‘신뢰’(6회, 김선정)였다. 미디어시티서울은 미디어아트의 미학적 방법적 측면을 강조했으며, 특히 제5회전은 미디어와 내러티브적 측면까지 범위를 확장하는 ‘변주’를 시도했다.

2000년 제1회 <미디어 시티_서울>전 전경. 개리 흄 <반사되는 방> 싱글채널 비디오, 레이저디스크플레이어, 거울 1996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미디어아트를 재정의하겠다”

유진상 감독은 이번 미디어시티서울의 청사진을 밝히기에 앞서 먼저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강조했다. 현대미술 비엔날레가 정치 문화적 컨텍스트, 아시아적 가치나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미술을 모색한다면, 미디어시티서울은 테크놀로지 기반의 미술에 분명한 역할을 떠맡고 있다. 그래서 그는 현재의 변화하는 뉴미디어의 기술적 환경에 관련된 해킹, 가상현실, 인터렉티브 등을 다루는 미술에 주안점을 두겠다고 했다. “뉴미디어의 기술적 환경이 실제 우리 삶에 실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어요. 가령 리비아의 경우처럼 SNS을 통해 혁명도 일어나고, 선거에서 어떤 경로로 사전 여론조사를 하는가에 따라 결과도 달라지지요.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이 기술적 환경 변화에 어떻게 제어될 수 있는지 큰 문제지요. 이런 문제에 예술가들이 어떤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지, 또 큐레이터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움직일지 고민해야 합니다.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기술적인 환경 변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지난 10년 동안 제대로 탐색된 적이 없습니다.”
그간 한국에서 열렸던 미디어아트 전시는 뉴미디어의 기술적인 경이로움에 지나치게 치중해, 관객의 눈을 유혹하는 외화내빈의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 비평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유진상 감독은 이런 전시와는 분명한 거리를 두고, 미디어아트가 현대미술에 제기할 수 있는 이슈를 찾고 있다. “미디어 환경의 진보에 상응하는 ‘기술 중심’의 미디어아트,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현대미술이 현재는 따로 분리되어 있어요. 그러나 과거 미술사에서 중요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킨 뒤샹이나 백남준 같은 작가들을 보세요. 이들에겐 미디어와 예술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였지요 . 그러니까 양쪽을 포괄적 시선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유진상 감독은 작금의 현대미술과 미디어아트는 ‘이슈 고갈’ 상태, 말하자면 일종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마르셀 뒤샹의 첫 번째 레디메이드 작품 <자전거 바퀴>가 나왔던 1913년에 미술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됐고, 그후 반세기가 지난 1963년에 백남준의 전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은 미술사의 또 다른 ‘대사건’으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유진상 감독은 뒤샹으로부터 정확하게 100년이 경과한 2013년을 앞두고 열릴 제7회 미디어시티서울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앞의 두 작가가 이룩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교훈으로 삼아 미래를 여는 ‘또 다른 미술’을 모색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 감독은 제7회 미디어시티서울의 키워드로 ‘개인’을 꼽았다. 개인이란 본질적으로 미디어아트의 정의와 그 실천적 속성에 연관되는 개념이다. 또한 개인이라는 키워드는 현대미술과 미디어의 접점을 중시하는 그의 비평적 관점에서 나온 주제어이기도 하다. “뒤샹이 레디메이드를 만들었을 때는 미술에서 전통적인 매체나 노하우 등이 지배하던 시기였죠. 그는 기존의 매체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전체를 재료로 삼아 작업했어요. ‘개인과 전통적인 예술 형식’, 혹은 ‘예술 형식과 세계’와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과 세계’와의 관계에서 작품이 나온 겁니다. 그래서 뒤샹은 개인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다룰 수 있는 재료는 무엇이든 작품에 끌어들인 거죠. 미디어는 어떤 ‘코드’가 아니라 예술가 개인과 세계 사이에 놓여 있는 재료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아트와 현대미술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왜 백남준이 그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비디오 피아노 위성방송 등의 문제를 다루었을까요? 역시 ‘개인’이라는 화두지요.”
같은 맥락에서, 유진상 감독은 미디어를 기술적인 맥락 안에서만 일어나는 변화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현대미술가에게 미디어는 ‘처음 보는 세계의 환경’이라는 것. 바로 이 문제가 미디어시티서울 예비 심포지움(12. 8~9)에서 세계의 석학들과 머리를 맞대 집중 논의할 내용이다. 이 심포지움에서 제기할 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시대 미술 컨텍스트 안에서 기술 미디어 과학이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환경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둘째, 뒤샹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새로운 동시대 미술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상한다면, 그것은 어떤 조건을 포함할 것인가. 셋째, 뉴미디어아트가 개척하고 있는 작업은 큐레이팅과 창작 환경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뉴미디어에 치중해 있는 것 같지만, 기실 오늘날 현대미술의 문맥 안에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추상하라!>전 오프닝 전경, 2010 덕수궁미술관

한국 미술계의 ‘전방위 수비수’

유진상은 이미 오래 전에 <Crosstalk>전(2002, 동숭동미술회관), <Real Interface>전(2002, 스페이스 imA) 등의 기획을 맡아 미디어아트의 방법론을 전시에 새롭게 도입한 바 있다. 그는 <Crosstalk>전에서 관객들이 현대미술 전시를 보러오지 않기 때문에, ‘직접 관객을 찾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파격적인 ‘생방송, 미술방송국’을 도입한 전시를 선보였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관객의 반응을 받아 전시장에서 즉석 대담을 진행했다. 미디어와 관련된 환경 변화에 큐레이터가 직접 반응하고 개입해야 할 당위성을 10년 전부터 체감했던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유진상의 미술계 행보는 다채로왔다. 상아탑의 교수이자 현장 평론가로, 큐레이터로, 갤러리의 사외 이사이자 아트페어 기획자 등으로 활약해 왔다. 한마디로 이론 분야에서 손에 꼽히는 멀티플레이어였다. 그동안 유진상이 전시와 평론에서 다루어 온 주제도 매체와 시대를 가로지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그는 제1회 아시아프(2008년 옛 서울역사)의 총감독을 맡아 ‘젊은작가 아트페어’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술계에서 ‘비평적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이 크기에, 미술시장과 관련된 그의 활동을 이례적 행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비판적 시선도 없지 않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장난스레 웃으며 ‘한국적인 상황’이라는 짧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의 전방위적 활동이 적극적인‘선택’이라기보다는 타율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었으리라. 그는 한국 미술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축구 경기에서 어디가 뚫리면 바로 그리 달려가야 하는 수비수’의 상황에 비유했다.
유진상 감독이 꿈꾸는 이상적인 전시는 과연 어떤 것일까. 이 질문에 그는 “미스터리가 있는 전시’라고 즉답을 내놓았다. 단번에는 읽어낼 수 없고, 해석의 여지가 많은 전시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가 <추상하라!>전에서 작품 캡션을 모두 없앤 것도 그러한 시도 중의 하나다. 유진상 감독이 미디어아트와 현대미술에 품었던 날카로운 안목을 미디어시티 서울에서 유감없이 펼쳐 주길 기대한다. 우리를 둘러싼 미술 환경을 확인하고 도전적 논제를 던지는 장으로.

백남준 <Three Elements> 1997~2000 <Now Jump Festival>전(백남준아트센터, 2008) 설치장면

유진상 1965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화과,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 파리 국립1대학 조형예술과 D.E.A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기획전: 추상하라!>전(덕수궁미술관, 2011) <Crosstalk>(동숭동미술회관, 2002) <Real Interface>전(스페이스 imA, 2002) <제2회 공장미술제: 눈 먼 사랑>(창동 샘표간장공장, 2000) 등 기획. 제1회 아사이프(구 서울역사, 2008) 총감독. 현 계원디자인예술대 프로젝트아트 책임교수.

당신의 비엔날레는 안녕하십니까?

디에고 비앙키 <The Ultimate Realities> 혼합재료 2011

당신의 비엔날레는 안녕하십니까?

총감독 및 큐레이터 5인에게 듣는다

LYON 빅토리아 누트론_큐레이터
짐승처럼 살아 있는 전시

Q 전시 기획의 주안점은 무엇이었나?
A 리옹은 역사적으로 볼 때 아티스트들의 비엔날레이다. 나는 제11회 리용 비엔날레를 기획하기 위해 아티스트들이 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기획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장소를 옮길 때 그리고 작품들 사이에서 이동할 때, 더 밝아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어둠의 한 가운데에서 모색했다. 나의 암중모색은 내 편견 직관 및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또한 각 참여작가들이 나의 방법에 따라 내던진 방향과 도발에 따라 진행되었다. 나는 이번 전시가 한 번에 모두 이루어지도록 노력했다. 올해 리옹비엔날레는 살아 있는 전시라는 야망을 품고 있다. 전시를 동물이나 야수로 간주할 수 있다면, 그렇게 했다. 전시가 현재의 불가해성과 예술의 힘을 대변하기 위해 그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려고 시도했다.
Q ‘아름다움’을 주제로 선택한 이유는?
A 전시 주제인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나타났다’는 예이츠 시의 유명한 구절에서 따왔다. ‘치명적’인 것과 ‘아름다움’이란 두 개의 명백한 상반된 것들을 결합한다. 아름다움의 개념을 다시 한 번 더 고찰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미(美)는 실제로 지금까지 서구 사상의 가장 강력하고 임의적인 범위 중 하나였다. 그런 아름다움에 대해 자문했다. 아름다움은 릴케가 말한 바와 같이 항상 공포의 시작인가? 치명적이지 않은 아름다움이 존재하는가? 미의 출현이 현실의 가혹성을 부드럽게 완화해 주는가, 아니면 현실의 공포를 실제로 강조하거나 증가시키는가? 이러한 개념과 메커니즘에 반응하기 위해 참여작가가 현재에 반응하기 위해 사용한 긴장, 여백, 과잉을 설정했다. 이러한 미장센에서, 비엔날레는 철학 극장 문학으로부터 개념들을 차용했다. 또한 이번 비엔날레는 예술을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하는 시장 경제의 현실에서 예술의 혼돈 상태를 표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작품들이 개별적으로 서로 소통하여 우리의 세계에서 의미를 창출하고 자리를 잡는 담론의 그물망으로 생각될 전시를 구성하는 데 관심이 있다.
Q 올해 리옹비엔날레는 여타 비엔날레의 보도 형태와 다르다.
A 이번 비엔날레는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을 구분한다.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정확히 똑같은 톤과 어휘로 작성되는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비엔날레가 설명되는 현재의 소통 방식들을 거부한 것이다. 나는 조밀한 자료들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저항한다. 텍스트가 비엔날레나 그 카탈로그에 나타나면, 그것은 외적인 설명 자료가 아니라 스스로 예술작품이 된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글은 무엇보다도 이미지였고, 또 이미지가 글이었다. 글쓰기는 이미지 만들기였다. 글과 이미지는 모두 하나의 의미와 하나의 행동을 구현하였다. 이미지 만들기는 현실세계에서 연속적인 행동이 이루어지도록 문을 개방하는 의미를 함축한다. 우리가 탐색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수행적인 행동이다. 모든 이미지는 어떤 효과가 있다. 이번 전시를 이러한 효과들을 반성해 보도록 구성하였다.
Q 남미 출신의 참여작가가 두드러진다.
A 제11회 리용 비엔날레는 리용을 위해서 그리고 리용과 함께, 남미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부터 고안되었다. 작년에 참여작가들을 유럽과 아프리카의 연구 여행에 초대했으며, 그들은 나라나 지역의 대표가 아니라 개인으로 선정됐다. 작가들은 서로 반응하도록 고무되었다. 즉, 그들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거나 다른 참여 작가와 대화하도록 고무되었다. 이번 전시는 수많은 대화의 결과이며, 이러한 작업 방식은 어떤 주어진 프로젝트를 구현하기 위한 대화의 힘을 믿은 신념의 결과이다.
*이 답변은 빅토리아 누트론의 ‘큐레이터 선언문’의 일부를 발췌 및 정리한 것이다.

헨릭 하칸슨 <쓰러진 나무> 혼합재료 350×350cm 2011(사진: 김복기)

YOKOHAMA 오사카 에리코_총감독
지속 가능한 국제 비엔날레를 위하여

Q 트리엔날레는 어떻게 탄생했나?
A 요코하마트리엔날레의 탄생은 1859년 요코하마 개항 후, 새로운 문화와 정보, 인적 교류를 추진해 왔던 요코하마의 근대사와 이어진다. 여기에다 문화 진흥과 예술에 의한 도시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요코하마시의 창의적 도시 구상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실현을 가능케 했다.
Q 올해 제4회전의 특징은?
A 원래 요코하마트리엔날레는 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 on) 의 제안으로 국제교류기금과 요코하마 시가 메인 주최로 시작된 국가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제4회를 맞는 올해부터 국제교류기금이 주최에서 빠지고, 운영의 주축이 요코하마시로 옮겨 갔다. 운영상의 분기점을 맞아 처음으로 요코하마미술관이 메인 전시장의 하나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이성이나 과학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눈을 돌렸다. 불가사의하고 뭔가 마술 같은 힘이나 신화의 세계를 담은 작품을 선별해, 동시대미술부터 고미술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여기에는 행사가 열린 요코하마미술관의 소장품도 포함되었다.
Q 운영상의 어려움은 없었는가?
A 다양한 관람객에게 어필할 요소를 고려하여 민간 비영리단체와 대학 등 다른 조직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애썼다. 또한 지속 가능한 국제 비엔날레를 만들기 위해 메인 전시장의 규모를 이전보다 축소하고, 전시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총예산은 요코하마시 문화청의 보조금, 기업과 개인의 협찬금과 기부금, 입장료 수입 등 3년간 인건비, 사무실 운영비 등 유지 비용을 포함해서 모두 9억엔이 소요된다. 3월 11일 대지진 후에 절전 대책을 모색하는 등 사업비를 절감하기 위해 노력했다.
Q 비엔날레에서 앞으로 어떤 예술이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A 비엔날레는 현시대 도시의 정체성 구축과 활성화, 새로운 관광 자원의 개발 등 다양한 가능성이 풍부하다. 동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은 컴퓨터 시대의 인간에게 복잡한 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독하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토모코 시오야스 <소용돌이> 종이 272×400cm 2011(사진: Richard Goodbody)
Courtesy of SCAI THE BATHHOUSE

INCHEON 제인 파버_예술감독
여성비엔날레, Why Not?

Q 여성미술비엔날레만의 차별점은?
A 내가 아는 한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는 여성 미술가들만 참여하는 비엔날레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이런 비엔날레가 인천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예전 같았으면 여성 작가로만 구성된 전시 개념에 동의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내가 초대한 작가 중 단 한 명만이 전시에 남성 작가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가를 거절했다. 나는 그의 결정을 존중한다. 개인적으로는 여성 작가로만 이뤄진 전시를 만들고 공통적인 주제를 말하는 전 세계의 여성 작가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Q 전시 주제는 어떻게 선정했는가?
A 지난해 11월 북한이 인천 연평도를 포격한 사건에 가슴이 아팠다. 나는 이 사건을 접하고 ‘분리’와 ‘평행우주’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싶었다. 우리가 속한 우주와 동일하며, 우리의 대역들이 자기도 모르게 우리를 따라 하는 평행우주가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최근의 과학적 연구에 큰 관심을 뒀다. 그래서 나는 ‘미지의 대지’, 즉 모든 종류의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 대해 생각하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
Q 한국 작가의 참여 비율이 높다.
A 나는 이러한 큰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여성작가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었다. 각 국가를 대표하는 작가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한국 작가가 높은 비율로 포함되기를, 또한 다른 세대와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 흥미롭게 섞이기를 원했다.
Q 전시 예산은 적당했는가?
A 주제전의 예산은 2억 8600만 원이었다. 예산은 이번 비엔날레 전시가 어떤 식으로 발전되었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먼저, 예산상의 제약 때문에 커미션을 통한 신작을 다수 제작할 수 없었다. 또한 <미지의 대지>에 포함하고 싶었던 특정 작품을 운송할 수도 없었다. 예산의 제약은 참여 작가 모두를 인천으로 초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하지만 참여 작가 중 다수가 전시장을 찾았다. 주어진 예산으로 흥미로운 전시를 만들 수 있었다.

베스나 파블로비치 <Search for Landscapes> 35mm 슬라이드 스크린 스탠드 가변크기 2011 Courtesy the artist and G Fine Art Gallery, Washington DC, USA

ISTANBUL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옌스 호프만_큐레이터
비엔날레는 영원한 실험실

Q ‘이스탄불’이란 도시와 비엔날레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했는가?
A 우리는 지난 이스탄불비엔날레를 조심스럽게 살펴 보았고, 이스탄불의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비엔날레를 위한 다른 형식을 만들고, 비엔날레의 확립된 외양과 언어에 어떻게 도전할 수 있는지 자세히 조사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거리낌 없는 혁신적인 작품들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 예술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다채로운 주제들이 담겨 있다. 이주 폭력 정체성 정치 등의 주제들 중 다수는 이스탄불의 현실과도 연관이 있다.
Q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 세계가 전시 구성의 핵심이다.
A 예술 작품에 대한 미학적 고려는 작품의 정치적 입장만큼 중요하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작업의 강점은 매우 많은 다른 층위를 동시에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년간 매우 소수의 작가만이 이뤄낸 방식으로, 혁신적 형식과 급진적 정치사상을 함께 이끌어냈다. 그의 작품은 전세계적 차원과 이스탄불이라는 지역적 차원의 사회 정치적 조건에 대해 동등하게 말한다.
Q 개별 전시공간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했다.
A 우리는 장소특정성이 반드시 도시 전체에서 전시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 혹은 장소특정성이 이런 큐레이토리얼한 시도에서 주요한 고려사항이어야 한다는 관념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었다. 전시는 하나의 전체로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작업 간에 특정한 대화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고, 이는 매우 명확한 집중을 요구한다. 텅 비고 방치된 건물들 안에서 전시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그 대신 우리가 전시할 작품들에 직접적으로 대응해 만들어진 건축 구조물들을 개발했다.
Q 비엔날레 무용론이 대두한다. 우리 시대에 비엔날레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A 앞으로도 비엔날레는 많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시민사회와 정치적 문화적 재생을 위한 새로운 틀로서 상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와 복구 이후 2008년 만들어진 뉴올리언스비엔날레, 혹은 현재는 중단됐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중단 직후 시작해 1995년과 1997년에 성대하게 열린 요하네스버그비엔날레의 시작이 그 예이다. 심지어는 1955년 종전 이후 시작된 카셀도큐멘타 역시 전도유망한 새로운 행사로서 그러한 역할을 했다. 반면, 순전히 도시 마케팅에만 초점을 맞추는 비엔날레들이 있다. 이 경우에는 스페인의 발렌시아비엔날레가 가장 악명 높다.
하지만 다양한 목적에도 비엔날레의 핵심은 질문에 끝없이 열려 있는 것이다. 또한 비엔날레의 형식과 모델을 재발명하고, 현대미술과 비엔날레의 관계에 있어 작가와 비엔날레가 열리는 도시의 주민, 지역과 국제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깊고 풍부한 관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비엔날레를 조직하는 데에는 정해진 방법이나 정확한 하나의 형식이 없고, 가변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비엔날레는 좀더 경직된 미술관이나 여타 기관보다 실험적이고 선구적인 프로젝트를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
Q 그렇다면 비엔날레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가?
A 비엔날레는 개최되는 장소의 현실을 말하기 위해 특정한 맥락에 기반을 두고, 동시에 관객들에게는 전 세계의 미술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기회를 준다. 이제 비엔날레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더욱 명확히 할 수 있도록 장소특정성과 전세계 차원의 포괄적 개요에 대한 특정 관념들이 재평가되어야만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비엔날레는 복잡성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지만, 또한 기회로도 가득 차 있다. 비엔날레의 서로 다른 판(版)들을 각자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고, 동시대미술과 우리가 오늘날 살아가는 세계의 관계를 논하기 위한 더 큰 내러티브의 개별적 장(章)으로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전 <의자, 걷다> 전경

CHEONGJU 정준모_총감독
잠자는 공예를 깨우고 싶었다

Q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정체성은?
A 시각문화 중 일상 또는 삶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공예’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여타의 비엔날레와는 확실히 차별성을 가진다. 하지만 그 차별성 때문에 비엔날레의 행동 반경을 스스로 좁혀버린 느낌이다. 사실 한국의 많은 지역문화예술 행사가 1995년 광주비엔날레 이후 우후죽순 격으로 탄생했고, 이제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가 아닌가.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지역’ 축제와 ‘국제’ 행사가 접목된 한국형 비엔날레의 전형이다. 하지만 지역과 국제라는 상반된 가치를 좇느라 자신만의 정체성은 여전히 모호하다.
Q ‘유용지물’이라는 주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A 변화하는 공예이다. 여전히 한국에서 공예는 전통공예와 예술공예 그리고 실용공예 사이에 엄청난 차이와 거리가 있다. 공예가 일차적 가치인 ‘쓰임’과 ‘장식’ 보다는, 작가의 예술적 의지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잘못 인식되면서 본질이 실종됐다. 잠자는 공예를 흔들어 깨워보고 싶었다. 그리고 깨워서 새로운 세상, 변화한 세상을 보여 주고 싶었다. 공예도 시각예술의 한 장르이다. 만약 공예로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려거든 현대미술 분야에 들어와서 활동해야 한다. 오늘날 현대미술이란 어떤 것을 누가 어떻게 해도 미학적 예술적 성취와 성과만 있다면 가능한 세상 아닌가.
Q 기존의 공예 전시에서 볼 수 없는 스펙터클로 관객을 압도했다. 예산은 충분했는가.
A 예산은 국고 25억, 청주시 예산 35억, 비엔날레 자체수입 10억 등으로 총 70억 원이다. 전시에 사용된 예산이 20억 정도인데 큐레이팅 운송 보험 도록은 물론 시설 및 전시디자인, 전시를 위한 장치비와 장식비 등이 포함됐다. 올해는 예년의 전시장보다 약 2.5배가 커진 옛 연초제조창을 사용했음에도 디스플레이 등에서 예년보다 약 2억 정도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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