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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1.10

Abstract

10월 art는 설치미술의 갤러리 진입 현상에 주목합니다. 최근 국내 갤러리에 소개된 외국 작가 11명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하고, 설치미술의 예술적 본질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독일의 미술평론가 보리스 그로이스의 논고도 함께 소개합니다. 한국에 두 번째로 내한한 슈퍼스타 제프 쿤스를 인터뷰했습니다. 미술계의 악동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까지.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올해로 4회를 맞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디자인 과잉 시대'에 디자인의 본질을 되묻습니다. 올해 디자인비엔날레를 전격 해부하고, 광주비엔날레를 진두지휘하는 '비엔날레 전문가' 이용우 대표이사를 만나 동시대 비엔날레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8년 만에 개인전을 연 임옥상 작가. 그와 시인 김정환이 함께 만나 임옥상의 작품 세계부터 예술의 본질에 대해 거침없는 대담을 나눴습니다. art 10월호는 풍성한 소식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Contents

01  표지  제프 쿤스 <네덜란드 커플> 캔버스에 유채 213.4×274.3cm(부분)
 2007 ⓒJeff Koons, All rights reserved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김복기

38 핫피플  제프 쿤스

42 프리즘  
부실 대학 발표, 취업률로 멍드는 예술 교육  심광현
2011 KIAF, 주빈국 호주는 무엇을 얻었는가  존 맥도날드

46 오후의 아틀리에  방혜자
밝고 투명한 빛의 향기

66 포커스
제니 홀저展|Communication Disorder展  정연심
장-미셸 오토니엘展  정현
김수영展|이소정展  이선영
김정복 정점식展|메이드인대구展  김종길

82 특집  New Installation in Gallery
[1]왜, 설치미술이 갤러리로 진입하는가?
[2]코노이케 토모코|에론 영|위엔 펑유|도쿠진 요시오카
 탈루 L.N.|카를로스 아모랄레스|테레시타 페르난데즈
 아이코 미야나가|리차드 우즈|케이트 패터슨|알도 차파로
[3]설치미술의 지정학, 돈과 엘리트주의로 다시 보다  보리스 그로이스

121 인터뷰  임옥상  
그림과 글자, 농담 혹은 대화  김정환

130 이미지링크  이용훈
Nostalgia for Natural

137 테마 스페셜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
[1]Design, Beyond Design  양지윤
[2]“비엔날레는 시각예술의 영원한 실험장” 이용우

155 Who We Met  보드왕 르봉

156 아티스트 인사이드  김정향
향기로운 숲, 춤추는 태양  김복기  

162 전시 리뷰
나우 인 대구 2011: 대구육상선수권대회 기념
조혜정|몹쓸 낭만주의|박광수|이강소|정기훈
이광호|서현석|꿈_백야: 삼성미디어아트
이재이, 카렌 벤베니스티|한-아세안 멀티미디어 공모: 퓨처 이미지
Temporary Re-Visionists

174 전시 프리뷰
불사조의 심장|ARTIST WITH ARARIO
최종태|주재환|쇼 미 유어 헤어|햇빛 쏟아지는 날들

180 포켓 속〉〉〉디카 속〉〉〉이미지 채집  서동욱
Day for Night

182 동방의 요괴들 유럽 아트투어 리포트
파리-베니스-베를린, 아~뜨거워!  진민선 변상환 이은수

186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Design, Beyond Design

심성보, 유성준 <광주에서 걸려 온 전화> 혼합재료 95×95×230cm×3개소 2011_광주에서 살아 온 사람의 이야기가 녹음된 사운드 트랙을 전화기로 ‘감상’할 수 있다.

Design, Beyond Design

글|양지윤·독립 큐레이터

뉴밀레니엄 이후,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내건 화두 가운데 하나가 ‘디자인’이다. 최근 몇 년간 ‘세계디자인수도’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와 같은 디자인 관련 사업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열렸다. 접근과 이해가 쉽고 일상에서 사용 가능한 디자인과 건축은 난해한 현대미술을 대신해 그야말로 ‘대세’가 됐다. 이는 문화산업의 투자에 대한 가치평가로 이어졌다. 문화산업을 지원하는 정부는 디자인이 국가 브랜드 상승과 고용 창출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청년의 희망 직종 1위(33%)를 디자인이 포함된 문화 예술 계열이 차지했다. 한국처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국가는 디자인, 건축과 같은 문화산업을 다음 세대가 나아가야 할 중요한 발전 방향으로 제시한다.
문화산업에 대한 적극적 투자는 확실한 도시 홍보와 더불어 부가가치 창출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된다. 도시경제학자인 리차드 플로리다(Richard Flori da)가 말한 대로, 21세기는 창의적 인재들이 도시 성장의 주요 원동력으로 작용하며, 함께 사는 ‘창조 도시(Creative City)’의 시대이다. 한국처럼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창의적 인적 자원을 통해 어려움을 돌파하는 일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여겨진다. 디자인과 건축에 기반을 둔 문화산업을 육성하는 ‘창조 도시’에 대한 열망과 디지털 문화의 도래는 어느 것 하나 디자인되지 않은 것이 없는 ‘디자인 포화 상태의 한국’으로 만들고 있다.

애버런트 아키텍처 <훔쳐보기> 연질목, MDF, 합판 850×600cm_한국의 전형적인 아파트 구조를 재현해 공동체의 어두운 면을 탐구한다.

디자인의 확장된 영역

2005년 창설돼 4회를 맞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한국의 디자인 열기와 문화예술 정책의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올해 행사에서는 44개국 133명의 작가와 73개 기업이 참가하여 동시대 디자인의 최전방에 놓인 131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는 2500년 전 노자가 저술한 《도덕경》의 첫 구절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에서 출발했다. 그 뜻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도를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참 도가 아니며, 이름을 이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참 이름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원리나 법칙, 그리고 지식 체계나 현상들이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이 경구의 ‘도(道)’를 그림이나 디자인을 뜻하는 ‘도(圖)’로 바꾸어 전시 주제와 제목을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라 정했다. 중국의 전방위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와 공동감독을 맡은 한국의 건축가 승효상은 이를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디자인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으로 재해석했다. 올해 광주는 ‘디자인되지 않은 것이 없는 세상’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적극 반영한다. 디자인된 모든 것을 수집하고 분류해 전시하겠다는 포괄적인 대전제를 내세웠다. <도가도비상도>라는 제목은 의도적으로 디자인의 영역을 확장시켜, 세계의 모든 것을 분류하고 재조합하려는 기획자의 전략이다.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주제는 참여작품 리스트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클레이 모델이 여러 과정을 거쳐 하나의 완벽한 자동차로 변신하는 단계를 보여주는 기아 모터스의 자동차 디자인 <K5 d=D≠d>, 레이 카와쿠보가 1969년 설립한 꼼데가르송이란 브랜드의 영감의 원천과 예술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사진 설치물, 미국 도축장의 절반 이상이 모델로 사용하는 템플 그랜든의 <그랜든 가축관리회사>, 일본의 법집행기관의 만화 캐릭터를 모은 <일본 경찰 마스코트>, 무슬림 세계에서 여성들이 착용하는 의복을 전시한 <베일과 신체 가리개>, 네덜란드 디자이너 에버트 이프마와 펨케 헤레그라벤이 작업한 <한국과 유럽의 도시 로고> 등은 우리에게 익숙한 ‘디자인’의 영역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각종 냄새를 모은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 & 피에르 드 뫼롱의 <냄새에 관하여>, 지구 궤도를 도는 인공 물체 영상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TD아키텍츠의 <인공위성과 우주쓰레기>, 사랑하는 사람의 사후 처리를 맡아서 하는 서비스 회사의 홍보 자료를 모아 놓은 <사후 디자인>, 유비쿼터스 기술을 활용한 자료 수집과 해석의 방법을 보여주는 센서블 시티랩의 <뒷담화>, 현재 각국에서 시행하는 여섯 가지 형태의 처형 기술을 소개한 <처형 디자인> 등은 일반 관객의 디자인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렇게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수집하고 전시한다.

‘도가도비상도’적 작품 분류법

<도가도비상도>는 131개의 작품을 어떻게 분류하여 전시 공간에서 구체화했을까?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도가도비상도’라는 주제 아래, ‘유명’ ‘무명’ ‘주제전’ ‘커뮤니티’라는 4개의 전시 섹션으로 나뉜다. 이름(名)이 문화산업과 대량생산 시장에서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지를 알아보는 ‘유명(Named)’과 ‘무명(Unnamed)’이 한 세트를 이룬다. ‘유명’ 섹션에서는 독창적인 대상이나 시스템, 환경을 만들어 내 유명해진 뛰어난 개인과 단체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무명’에서는 디자인의 경계를 넓히며 일상의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는 디자인의 영역을 담아 낸다. 공동감독인 아이 웨이웨이와 큐레이터 브렌던 맥게트릭을 주축으로 작업하는 큐레이터 건축가 미술가 디자이너들의 비공식적 모임 ‘무명 디자인팀’이 ‘무명’ 섹션을 맡았다. ‘커뮤니티’에서는 인간 사회의 ‘관계’를 조망하며, ‘주제전’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전체 주제를 아우른다. 이 밖에도 광주의 도시성에 착안해 제작한 11개의 도시 공공시설물이 ‘광주 폴리’라는 이름 아래 옛 광주 읍성의 자취를 따라 배치됐다.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개별 큐레이터가 선별한 작품을 섹션별로 독립된 공간에 설치하는 일반적인 전시 구성 방법 대신에 또 하나의 분류법을 제공한다. 전시 공간을 ‘일종의 도시’로 만든 것이다. ‘클러스터 시티’ ‘네트워크 시티’ ‘랜드스크립트 시티’ ‘그리드 시티’라는 4개의 전시 공간은 ‘유명’ ‘무명’ ‘주제전’ ‘커뮤니티’ 전시 섹션에 선별된 작품을 따로 또 같이 각 공간에 모아 놓았다. 전시 공간을 디자인한 프란시스코 산인은 전시 공간을 ‘비엔날레 시티’라 명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분열과 유형, 익숙한 분류 체계를 피하고, 지역적인 조건, 복잡성의 문제, 동시성, 소통과 교환 같은 문제에 작용하는 일련의 조건들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즉 주제별 블록이라는 고정된 틀을 넘어 영역들을 포개고 뒤섞고 대화하는 것이 개념적으로나 형식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각 전시 큐레이터가 선정한 작품들은 정치 홈 바디 문화 스포츠 과학 그린 도시 현장 음식 등의 기준으로 분류하여 전시장에 재배치한다.
<도가도비상도>는 디자인이 특별한 범주 없이 과잉되는 시대적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다양한 층위의 카테고리화를 시도해, 주제별로 구분된 공간이라는 기존의 비엔날레 전시 틀을 과감하게 벗어난다. 또한 전시장을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며 서로의 다양한 입장을 주고받고 교섭하는 공간으로 재창조하고자 한다.
폴 랜드가 《디자인의 정치학》에서 지적한 것처럼 디자인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이며, 단어 사진 제품이나 이벤트를 분명하게 하며, 병합하고, 드라마틱하게 하는 도구를 제공하는 행위이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초대한 131개의 ‘디자인 산물(프로젝트)’들은 우리가 디자인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충분히 공감케 한다. 기획자들은 이를 전시 디자인으로 재카테고리화하여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주제를 부각시키려 한다. 그러나 <도가도비상도>에서 제안하는 너무 많은 분류법과 체계화는 오히려 관객이 혼란스러움을 느끼거나, 그 구분 자체가 모호한 상황들이 종종 발생한다.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많은 작품은 이미 이러한 분류화를 넘어서서 존재한다. 우리는 더욱더 새로운 체계화의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유명’으로 선별되고 ‘정치’로 구분되어 ‘클러스터 시티’에 전시된 유버모르겐닷컴의 <닷오일닷컴>을 살펴보자. 오일 산업에 내재한 후기식민지적인 상황을 행동주의자적 입장에서 풀어 내는 이 작품은 오일이라는 에너지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환경’이라는 맥락에 들어맞는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이라는 각기 다른 몸(Body)으로 주제를 재현하므로 ‘바디’라는 범위에도 포함 가능하다.  
‘네트워크 시티’에 전시된 소셜 크리에티브 플랫폼 <와와 프로젝트>는 동일본 지진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과 단체를 연결한다. 예술의 사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시도해 온 일본의 유명작가 나카무라 마사토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기 때문에 ‘유명’에 선정됐지만, 예술과 사회의 연결점을 찾는다는 의미에서는 ‘커뮤니티’에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파르티잔 퍼블릭과 아르네 헨드릭스 <작업 아카데미> 혼합재료 700×880×400cm 노동자들의 효율적인 업무 처리 훈련을 연구하기 위한 설치물이다.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는 <디자인이라는 단어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디자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영어로 ‘디자인(Design)’은 명사로서는 의도 계획 의지 목적 책략 구성 모티프를 의미하며, 이 모든 의미는 ‘교활한(Cun ning)’과 ‘속임(Deception)’을 내포한다. 동사로서 ‘디자인하다’는 지어내다, ~인 체 하다, 초안을 작성하다, 손으로 만들다 등을 의미하며, 여기에서도 속임과 사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디자인이란 진실을 포장하는 방식이며, 사실을 현혹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유명한 관 디자이너 에릭 아드제테이아낭의 <가나 관 워크숍>은 디자인의 이러한 속성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일주일 간 회화, 산업 디자인, 퍼포먼스 등이 결합한 다양한 워크숍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한국 문화를 모티프로 새로운 종류의 관을 만든다. 이렇게 화려하게 디자인된 새로운 형태의 관은 인간이 다른 포유류처럼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잘 디자인된 관이라는 인공물은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포장해, 죽음을 멋지게 혹은 별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도록 한다.
디자이너는 콘텐츠의 생산자가 아닌, 기존의 콘텐츠를 재조립하여 가공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가공의 과정을 통해, 디자인은 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 행위로 기능할 수 있다. 사회적 토론장으로 ‘네트워크 시티’에 설치된 <현장 허브>는 강연의 장을 위한 구조물이다. 마르커스 미센, 랄프 플루그펠더, 마그너스 닐슨 등의 건축가가 활동하는 엔오피스가 제작한 이 설치 공간은 담론을 생산하고 포장하는 틀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흥미롭다. <현장 허브>는 의회, 예배당, 극장의 레이아웃을 활용해 생산적이고 사회적인 토론의 장으로 만들었다. 누구나 앉고 감상하고 일하고 쉬고 토론하고 발표할 수 있으며, 의도적으로 그렇지 않은 내부 공간도 만들었다. 이곳은 DJ 스푸키, 안드레스 자크, 메타헤이븐 등의 ‘유명’과 ‘무명’에 속한 참여작가를 포함한 국제적인 디자이너들의 강연을 만나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플랫폼 자체가 전시장에서 하나의 작품이다.

디자인의 새로운 주체와 객체

소수 특권층만 즐기던 고급문화의 왕좌에 있던 ‘디자인’은 19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대량생산되고 유통되면서 누구나 돈을 지급하면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표준화된 공산품을 소비하는 대중은 20세기 미학을 결정짓는 중요한 구심점으로 작용했다. 대중의 선택을 받은 디자이너는 그 브랜드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권력이 되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하 권력 구조를 ‘비즈니스’라는 문화산업의 이데올로기로 설명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시스템이 하자 없는 규격품을 만들 듯이 인간을 재생산하려들며, 소비자로서의 대중이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불가능하도록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변화한 디지털 환경에서 디자인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하 구조는 무너지고 있다. 디자인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포토샵을 사용하고, 손수 블로그를 만드는 것부터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한 소통 방식까지 디자인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개념이 뒤바뀌고 있다. 누구나 디자인할 수 있는 ‘디자인’ 때문에,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불분명해졌다. 다중의 보편성보다는 다양한 소수의 표현이 우선시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도가도비상도>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작품이 다수 전시되었는데, 특히 디륵 플라이쉬만의 <나의 컨셉트 가게>와 유프 반 리스하우트의 <슬레이브 시티> 프로젝트는 단일한 의미의 디자인에 머물지 않는다. 두 작품은 자본주의 시스템과 개발 논리, 20세기형 표준화된 상품 문화를 비평하며, 그동안 간과되었던 ‘개인’의 이름을 새롭게 표현한다. 두 프로젝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디자이너라는 전통적 권위를 대체하는 대안적 방법을 흥미롭게 제시한다.
디륵 플라이쉬만은 1998년 이래, 비즈니스 형태로 진행된 여러 형태의 기업을 만들어 왔다. 그는 북한에서 제작한 셔츠를 남한에서 판매했으며, 유기농 양계장을 운영하며 무공해 계란을 판매했다. 그의 작품은 시장 제도를 의도적으로 왜곡시켜, 자본주의의 단단한 구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플라이쉬만은 <나의 컨셉트 가게>에서 자신이 이제껏 제작한 모든 상품을 모아 비엔날레 전시장에 상점을 만들어 판매한다. 이 프로젝트는 판매를 위한 디자인 페어와 전시를 위한 예술작품 사이에 놓여 있다. 문화산업의 이데올로기는 비즈니스(장사)라는 아도르노의 비평을 작가는 가볍게 뒤틀어, 표준화된 대량생산품의 시장이 아닌 개인이 만든 소량의 디자인 상품들을 판매하며, 여기에서 생긴 수익금은 작가의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재투자된다.  
유프 반 리스하우트가 제안하는 <슬레이브 시티>는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노예 도시’이다. 모형과 드로잉으로 제안된 인구 20만 명이 사는 이 도시에서 모든 에너지는 일절 낭비하지 않으며, ‘매년 70억 유로의 순이익을 올린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슬레이브 시티>는 기존의 가치 윤리 미학 도덕 식량 에너지 경제 조직 관리 시장을 뒤집고 뒤섞고 재조직해 새로 디자인한 냉소적인 디스토피아 개발 프로젝트이다. 도시학, 자본주의, 건축과 설치 예술이 함께 하는 이 프로젝트는 개발 논리에 의해 표준화된 20세기형 인간상에 대한 비평을 유머러스하게 풀어 낸다.

허니 앤 버니 <테이블 매너> 사진_허니 앤 버니는 가장 일상적인 음식 디자인과 식습관에 관한 문화적 배경을 10년 넘게 연구하고 있다.

디자인의 미로를 나오며

과거 건축이나 디자인 전시는 대부분 백화점의 쇼윈도나 상품거치대와 전시장 사이의 정치성을 이해하지 못해 실패했다.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디자인 제품을 미술 전시장의 화이트큐브 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 실재 공간에서 체험해야 하는 건축물을 작은 모형으로 옮겨오는 방식, 작품을 보기보다는 읽게 하는 텍스트 중심의 연출 등은 ‘화이트 큐브’라는 전시장이 갖는 미학적 문맥을 내버린 듯했다.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이전의 건축전이나 디자인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모종의 성과를 거두었다. <도가도비상도>는 디자인과 건축, 예술의 경계가 새로운 문제의식의 패러다임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시점을 비교적 명확히 반영했다. 이는 앞으로 한국에서 시도될 많은 전시의 변화를 예고한다. 그러나 양적으로 승부하는 비엔날레라는 메가쇼를 넘어서, ‘디자인’이라는 영역으로 모인 다양한 개별 작품을 더 새로운 분류 방식을 적용해 최적화된 환경에서 전시할 수 있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풍부한 동시대 담론의 생산 및 발신지로서 더욱 다양한 문화예술 전문가들과 논의를 공유해야 한다. 또한 장기간에 걸친 연구와 협업, 제안은 물론 세미나와 출판물 제작 등의 담론화 과정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Europe Art Tour Report

<Inside Out: JR Cabinet Photographque>전 전경

Europe Art Tour Report

파리-베니스-베를린, 아~뜨거워!

PARIS 진민선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학과

Paris! 말로만 듣던 파리의 풍경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다. 긴 시간 비행에 지친 탓인지, 너무 설레서 오히려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인지 도시도 내 마음도 고요했다. 내가 지금 파리의 밤거리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튿날 맞은 파리의 첫 아침 공기는 8월 중순임에도 제법 찼다. 맑은 가을 날씨와 갓 구운 따뜻한 크로와상, 에스프레소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아침. 우리는 오르세미술관 관람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아트투어를 시작했다.
센강변을 걸어 도착한 오르세미술관은 인상파 회화를 비롯한 19세기 대표적 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원래 기차역이었기에 전시장임에도 건축물에서 플랫폼 형태를 느낄 수 있었다. 반 고흐, 르누아르, 세잔, 고갱 등 책에서만 보던 명작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책의 설명을 배제한 채 내 눈으로 직접 작품을 바라보고 대가들의 붓 터치를 느꼈던 순간…. 모든 작품을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동한 퐁피두센터는 건물의 외관부터가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었다. 미술관이 전시 기능뿐 아니라 워크숍 도서관 디자인숍, 음악 음향 연구소 등을 지닌 복합 문화공간으로 진화하는 모범적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 6층의 인도미술 특별전 <파리-델리-봄베이>와 4~5층의 상설 전시관의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그야말로 넋을 놓고 구경했다. 그리고 퐁피두센터 외관에 설치된 투명 에스컬레이터 안에서 파리를 바라볼 때는 내가 파리에 와 있음을 가장 크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때 바라 본 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건물 앞 광장에 누워 쉬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 시원한 조각 분수…. 전시를 보는 것 못지않게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그 분위기에 나도 흠뻑 취하고 온 것 같다.
다음으로 루브르박물관에 도착해 느낀 것은 ‘어마어마한 곳’이라는 것. 궁전도 작품들도 다 어마어마하다. 보면 볼수록 말도 안 되는 거대함(?)에 감탄하는 것마저 지치게 되었다. 무섭기까지한 화려함을 뽐내고 있는 나폴레옹 3세의 아파트는 ‘이런 곳에 살면 정신병 날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의 욕망을 자극했다. 루브르박물관은 퐁피두센터와는 다른 느낌으로, 하루가 주어진다면 한 작품도 빠짐없이 다 보며 정복해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드는 곳이었다.
지하철도 이제 좀 익숙해졌는데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짧은 일정의 투어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꿈같이 지나갈 줄이야. 아직 투어의 3분의 1지점이지만 나는 투어가 끝날 때까지 파리를 그리워할 것 같았다. 야외 테라스에서 마셨던 쌉싸름하고 진한 맛의 에스프레소가 그리워진다.

알로라&카사디야 <트랙과 필드> 2011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퍼포먼스 전경

VENICE 변상환 2011 동방의 요괴들 선정 작가

야간열차를 달려 베니스 산타루치아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더위와 습도를 생각하면 딱이라는 베니스의 여름 날씨는 체류하는 3일 동안 마치 축복처럼 너무나 좋았다. 말로만 듣던 베니스의 뜨거운 태양 아래 수로에서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여기저기 빛을 발하는 선명한 색깔들, 에메랄드빛 물과 파란색 곤돌라, 건물의 흰색 외벽과 주황색 지붕 그리고 도시 곳곳에 흩어져 열리고 있는 전시들. 그냥 걷기만 해도 행복에 겨워지는 곳, 미로처럼 작은 골목이 뒤엉켜 있지만 반나절만 헤매다 보면 친절한 이정표를 따라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렇게 2박 3일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만난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한 수많은 아트씬 중에서 유독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피노컬렉션의 푼타델라도가나에서 열린 <In Praise of Doubt>전의 두 여성 작가다.
타티아나 투르베의 설치 작업이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작업으로 던지는 농담 같은 오브제들이 최근 내가 작업을 통해 발굴하고 있는 녀석들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왜 어떤 작업을 보면‘이 사람 나랑 정말 닮은 사람이다. 작업 얘기하면 기가 막히게 잘 통할 텐데’하는 난데없는 확신이 드는 경우랄까? 가령 종이 박스를 아무렇게나 접은 것을 청동으로 캐스팅한다거나 폭신폭신한 베개를 시멘트로 바꿔 버린다던가, 바윗덩이에 화석을 새기듯 코인을 집어 넣는 행위. 아주 가끔이지만 이렇게 주파수가 잘 통하는 작가의 작업을 마주하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또 다른 작가는 푼타델라도가나의 메인홀을 차지한 줄리 머레투이다. 안도 타다오가 리모델링했다는 노출 콘크리트벽에 튼튼한 두 기둥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두 그림이 마주하고 걸려 있었다. 다른 공간과 확연히 분리되는 구조 속에서 이 작품들을 감상하려면 관객은 필히 두 작품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껴 있어야 한다. 넋을 놓고 눈앞의 그림에 빠져 있다가도 잊고 있었다는 듯, 불현듯 등을 돌려 뒤의 그림도 확인한다. 수십 겹의 건축 도면이 겹쳐져 구축된 휘몰아치고 빨려 들어가는 거대한 공간. 압도된다는 표현이 아깝지가 않다. 나는 안도 타다오 특유의 건축 스타일과 줄리 머레투의 박력 있는 드로잉선이 어우러진 대단한 에너지 속에서 꽤 오랜 시간을 멍하니 있었다.
거장들의 작업을 직접 두 눈으로 보는 즐거움과 현대미술의 다양한 모습들을 피부로 느낀 것은 이제 막 작업을 통해 나란 존재를 세상에 내보이려는 현 시점에서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특별히 함께 여행한 기자를 비롯하여 6명의 동료들과의 만남은 장작개비 여럿이 모여 큰 불을 피우듯 서로에게 뜨거운 자극이 되었으리라. 창작자로서 미술을 하는 나의 시각과 미술이론을 공부 중인 다른 동료들의 시각을 공유하는 대화도 유쾌한 경험이었다. 매 끼니 파니니, 핫도그, 샌드위치를 먹으면서도 쌀밥이 그립지 않은 게 신기했고 저렴한 와인 가격에 놀라고 그 와인에 부드럽게 취해 드는 잠도 달콤했다. 어쨌든 머나먼 이국땅을 밟는다는 것 자체가 가슴 설레는 모험이니깐. 끝으로 이말 한마디를 남기며 이 잡스러운 글쓰기도 정리를 해야겠다. ‘우리, 귀국 뒤풀이는 안 하나요?’

디터 로스 <가든 스컬처> 1968 함부르크반호프미술관 <소장품>전 전경 2011

BERLIN 이은수 한예종 미술이론과 전문사 과정

“적어도 앞으로 10년간, 베를린은 세계에서 가장 예술적으로 활발한 도시 중 하나가 될 것 같아요.” “베를린이 요즘 뜨고 있다던데 그게 느껴지세요?”라는 나의 세련되지 못한 질문에 대한 김아영 작가의 친절한 답변이다. 다른 곳이 아닌 베를린의 베타니엔레지던시에서 활동하는 김아영 작가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베를린은 예술적 가능성을 가득 품은 새롭고 자유로운 도시였다. 거기에다 사람들은 친절하며 어디서나 영어가 통하고 물가는 낮으니 예술가들의 천국이라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예술가들의 국제 도시 베를린에 아트인컬처와 함께 방문한 나는 자유여행으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마주했다.
저가 항공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베를린의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 기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베니스에서 기대 이상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접했고, 공항에서 먹은 저녁 식사도 신선하고 맛있었으며, 첨단 자동차 기술을 보유한 나라여서 그런지 몰라도 택시의 승차감이 너무 좋아 우리 모두가 놀랐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베타니엔레지던시로 향했다. 입주 작가의 작업실에 둘러앉아 레지던시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부터 들었다. 베타니엔의 분위기는 차분했고 프로그램과 시설 면에서 작가들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하고 있는 듯했다. 질의 응답 후 김아영 작가는 컴퓨터로 자신의 작품을 직접 보여 주며 작업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는데, 진부한 표현일지 몰라도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열의를 가지면서도 그렇게 조리 있게 작품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한국을 흥미로운 주제로 다루면서 좋은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가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까지 느껴졌다. 레지던시에서 작업하는 여러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소개 받았는데 여기에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저마다 신선하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늦은 점심 식사로 김아영 작가와 함께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아 독일 전통 음식을 맛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헤어질 시간이 되자 좀 더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날은 함부르크반호프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함부르크반호프는 베를린 최고의 현대미술 작품들을 보유한 미술관으로, 미술관 자체의 위용에 기가 눌릴 정도로 작품의 양과 질 면에서 압도적이었다. 키스 해링과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센버그, 사이 톰블리의 작품들은 내가 지금까지 그들을 오해하고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작품이 놓인 방식까지 세심하게 고려된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미술관에서 나와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미테 지역으로 걸어서 이동했는데, 길에서 벽화나 건물에 부착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미테 지역에서는 me갤러리의 <All  Cannibals>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주제와 작품 자체도 강렬하였지만, 영리하게 구성된 공간을 바탕으로 이미지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엮어 내면서 관객들과 지적 유희를 시도하는 이 전시는 큐레이팅의 막대한 힘을 느끼게 했다.
이 두 전시를 관람하고 베타니엔레지던시를 방문한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베를린까지 날아 온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아트인컬처의 도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번 아트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 나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일이었다. 유럽아트투어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미술계의 여러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

다스인스시튜트와 케르슈틴 브리치 <Blocked Radiants> 2011 베니스비엔날레 자르디니 본전시장 전경

황홀한 상처와 치유의 연금술

<장-미셸 오토니엘>전 전경

황홀한 상처와 치유의 연금술

글|정 현

플라토 전시장 입구. 유황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입구에는 발광물질을 칠한 벽이 세워져 있다. 한 남자가 성냥 한 개비를 건네며 벽에 그은 뒤 소원을 빌라는 말을 전한다.(<소원의 벽> 1995) 바닥에는 타고 난 성냥개비가 즐비하다. 막힌 벽 앞에서 아마도 사람들은 벽 반대편을 향해 들리지 않고 전해질 수 없는 바람을 담은 기도를 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은 인간의 욕망이 세운 높은 벽 앞에 서서 이렇게 염원의 기도를 올리고 있지 않은가. 지금 내 눈 앞에 놓인 이 벽은 묵묵히 불을 붙인 흔적을 품고 있다. 가냘픈 이 흔적은 수많은 짧은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벽 앞에서 소원의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전시가 끝날 즈음이면 아마도 이 드로잉은 익명의 무리들이 완성한 공동의 드로잉으로 펼쳐질 것이다.
벽 뒤에는 장-미셸 오토니엘이 차린 관능과 욕망 그리고 희생의 성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성찬을 맛보기 전, 첫 번째 의식은 일종의 전야제이다. 카니발을 연상케 한다. 그에게 창작은 기술이나 개념 이전에 어떤 ‘의식’이다. 굳이 종교적인 차원의 의식 행위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릴 적 경험했던 흙장난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손으로 흙을 주무르고 어떤 바람을 담은 부정확한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 중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질료와 대화를 나누고 형상의 의미를 좇아가니 말이다. 이렇듯 오토니엘의 예술 세계는 놀이와 창작 사이에서 희생과 숭고, 애도와 탄식, 소멸과 상처를 한데 버무린다.
언어, 시공간의 경험들
<My Way>는 장-미셸 오토니엘의 중간 회고전으로 기획되었지만, 그보다는 자전적 성격이 더 강하게 묻어난 전시다. 자전적 요소를 일부러 유도한 것 같지는 않으나 예술가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자연스레 포착되는 것은 오토니엘의 작업이 자신의 삶과 분리될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엽서 크기의 사진 <사제복을 입은 자화상>(1986)이 걸려 있다. 작가 스스로가 인정하는 최초의 진정한 작업이다. 사진의 배경은 이렇다. 동성애자인 오토니엘은 사제였던 한 남자를 사랑했고, 종교적 교리에 어긋나는 이 사랑을 극복하지 못한 연인은 그만 자살을 한다. 이 사건은 오토니엘에게 트라우마이자 창작의 근원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는 사제복을 입고 떠난 연인을 애도한다. 이 작업은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획득하는 일종의 시적 통과의례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초기작은 유독 신화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난다.

왼쪽·<시빌의 구멍> 분홍색 왁스 35×35×9cm 1992~93 Courtesy of the artist ⓒJean-Michel Othoniel
오른쪽·<사제복을 입은 자화상> 흑백사진 4.6×6.7cm 1986 Courtesy of the artist ⓒJean-Michel Othoniel

묘비를 연상시키는 <실패의 사진작>(1987)은 실존과 죽음 사이의 갈등을 은유하는 듯하다. 이 사진 작업은 1893년도에 출판된 초기 사진기술 실험을 다룬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기술로 외부 세계를 재현해 내려는 욕망의 실패에서 작가는 의외의 물질인 유황을 만나게 된다. 초기의 황과 왁스에서 이후 유리로 확장되는 질료의 존재는 그의 작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 질료들은 모두 융해 과정을 거쳐 변이되거나 변형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변이의 과정을 자연에서 발견한다. 특히 나비는 그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 존재로 작용한다.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변태하는 나비는 초기 사진 작업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는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이것은 우리가 견디기 어려운 세상으로부터 도망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는 떠나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나비가 영혼의 첫 번째 상징인 이유”라 설명한다. 그렇다고 이 말이 오로지 나비의 생태만을 비유하는 것은 아니다. 오토니엘 작업에서 꼭 짚어야 할 부분은 바로 언어이다.
그의 언어는 개념미술이 추구하는 언어와 실재와의 간극을 실험하는 분석적 접근과는 근본적으로 궤가 다르다. 그에게 언어는 어떤 시공간의 경험을 품고 있는 흔적에 가까운 듯하다. 언어 속에는 이성과 신비, 과학과 자연, 현실과 신화가 비선형적으로 교차하기 때문에 논리만으로는 해독할 수 없는 흔적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유황을 선택하게 된 에피소드는 언어와 작업의 관계를 조망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오토니엘은 단어의 이중성이나 모호함에 많은 관심을 갖는데, 예를 들어 불어에서 ‘유황(soufre)’과 ‘고통(‘고통 받는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의 1인칭 단수형 souffre)’의 동일한 발음 때문에 두 의미가 서로 충돌하면서 유황은 감정을 가진 질료로 확장된다. 문명사에서 유황의 쓰임새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언어의 이중성과, 문명적으로 유황이란 복합체의 이중성 또한 흥미롭다. 영역본 성경에서는 불타는 유황을 지옥살이로 표현, 유황은 오욕의 원소로 기억된다. 이후 의학품으로 사용되기도 한 유황을 한의학에서는 살충 효능 약재로 소개한다. 이처럼 유황은 ‘정화와 파괴’라는 모순되는 양가성을 띤 질료이다. 언어와 질료의 이중창은 그의 작업에 시적 바탕을 이룬다.

욕망의 이중성과 그 모호함

이중성의 미학은 그의 성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학창 시절부터 루이스 부르주아, 소피 칼, 아네트 메사제와 같은 프랑스 미술을 대표하는 여성작가들의 영향을 받아 오토니엘의 작업에는 페미니즘적 요소가 쉽사리 발견된다. <쾌락의 구멍>(1998)은 원제 ‘Glory Hole’을 직역하면 ‘영광의 구멍’이다. 주로 남성 동성애 포르노그래피에 등장하는 하위 성행위 중 하나로서, 이는 화장실과 같은 공공장소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 일어나는 관음적 쾌락을 의미한다. ‘글로리 홀’은 저급한 성행위에 종교적 어휘를 대입한 서구 동성애 문화의 언어 유희를 보여 준다. 오토니엘은 글로리 홀의 하위 문화적 저급함을 흰색 실크라는 우아하고 고급스런 질료로 대체하고 그 안에 구멍을 뚫고 구멍의 가장자리는 박음질을 한다. 비위생적이고 저급한 성행위를 위생적이고 여성적인 조형으로 전복한 이 작업은 불결함과 청결함이 공존한다.
이른바 이러한 그의 성 정치학적 태도는 1980년대 미국 여행을 통해 얻은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지만 대개 선언적인 태도를 보여 준 당시의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정치적 예술에 비해 그의 작업은 “좀 더 관능적이고 덜 분명하며, 좀 더 에로틱한 대신 덜 비판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오토니엘은 동성애자인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와도 인연이 있다. 1980~ 90년대 에이즈의 공포와 이에 따른 애도의 시기를 겪을 당시, 곤잘레스-토레스는 자신의 운명과 삶을 작업에 녹여 냈다. 니콜라 부리요는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이 성적 소수자 공동체만을 위한 작업에 그치지 않고 사랑이란 보편적 감정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기에 1990년대 관계성의 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고 해석한다. 오토니엘의 작업 역시, 동성애라는 사회적 그늘을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욕망의 이중성과 모호함을 부각시킨다.
<상처-목걸이>(1997)는 이런 그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는 프로젝트이다. 정신적 멘토인 곤잘레즈-토레스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기획된 이 작업은 1997년 게이 프라이드 행렬에 참여한 군중에게 1000개의 목걸이를 나눠 주는 것으로 전개된다. 게이 프라이드는 단순히 성적 권리를 주장하는 소수자 공동체만의 행사가 아닌 직접 대중과 함께 교감하는 축제의 성격에 더 가깝다. 1000개의 붉은 목걸이에는 ‘동성애’라는 사회적 낙인과 ‘선물’이라는 예찬이란 두 개의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이다.

<나의 침대> 무라노 유리 철, 알루미늄, 직물, 펠트 290×240×190cm 2002 Collection Franㅤㄸㅞㅋis Odermatt, Courtesy of Galerie Perrotin, Paris

상처를 어루만지는 연금술

유리 목걸이 작업은 이후 작업 스케일을 확대하면서 공공미술 영역으로 확장된다. <나무-목걸이>(2000)는 뉴올리언즈의 대표 축제인 ‘마르디 그라’의 관례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이 축제에서는 사람들끼리 목걸이를 서로 나눠 준다. 축제가 끝난 뒤, 사람들은 다시 이 목걸이를 나무에 걸어 놓는데 오토니엘은 이 의식을 작업으로 연장한다. 서구 문화권에서 퍼레이드의 형식은 대개 종교적 행사의 세속적 번역에 가깝다. 그가 무라노 유리구슬로 엮어 만든 목걸이는 이후 체인의 형태로 발전하고,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야행자들의 키오스크>(2000)로 이어진다. 이 공공미술 작업은 파리 콜레트 광장에 위치한 팔레 루아얄-루브르 역의 입구를 꾸며 주고 있다. 오토니엘은 이 작업을 통해 나눔과 교감을 보다 지속적으로 제시한다. 장식과 기능이 공존하는 이 작업은 우연한 만남을 꿈꾸는 로맨스의 장소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는 도피를 꿈꾼다. 현실을 부정하는 도피가 아닌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듯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자유를 향한 도피를.
그가 상상하는 ‘수정궁’은 가상 공간이자 일종의 지형도이다. 2003년 파리 카르티에재단 개인전 <크리스탈 궁전>에서 선보인 <나의 침대>(2003)는 유토피아의 일부이자 전체를 암시하는 꿈의 공간의 시작이다. 47세라는 나이가 회고전을 치르기엔 다소 이르다고 자문했지만, 전시를 보고 나니 삶은 물리적 거리가 아닌 경험의 겹으로 더 풍부해진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이제 이야기를 마칠 시간이다. 다소 진부한 해석같이 보일 수 있지만 그래서 더 감미롭다. 결론. 오토니엘의 <My Way>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출발했지만 그는 이제 상처를 치유하는 연금술사가 되어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눈물들> 유리, 물, 테이블 140×500×70cm 2002
Louis Vuitton Foundation for Creation ⓒGuillaume Ziccarelli

그림과 글자, 농담 혹은 대화

<흙살> 흙 180×180×50cm(각) 2011

그림과 글자, 농담 혹은 대화

대담 | 김정환 · 시인

김정환 <임옥상의 토탈아트전 Masterpieces: 물 불 철 살 흙>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어 갑니다. 8년만에 열린 개인전인 만큼 감회가 남다르겠어요. 내가 전시 서문에서 쓴 내용으로 이번 전시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설명해 봅시다. “이 화가의 지금 혹은 당대, 예술적 응집의 진정한 핵심은 원소들의, 살[肉] 속으로의 일상화다. 이 전시회에서 우리는 임옥상의 ‘토탈아트’가 오히려 요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재앙을 얘기할 때조차 느낌표가 없는 것에 대해 자못 놀라고, 동양적 무위자연과 차원이 전혀 다른 어떤 동서양 이후 현대적인 운명의, 서늘하고 거대한 광경을 누리게까지 된다. 그 서늘함은 역사적이면서도 역사 너머에 있는 서늘함이고 그 거대함은 공간적이면서도 공간 너머에 있는 거대함이다.”
임옥상 ‘토탈아트’나 ‘마스터피스’ 그런 건 내가 지은 게 아니에요. 난 ‘물 불 철 살 흙’만 강조했지. 이제 ‘미술’하면 마치 첨단 테크닉이나 첨단 소재를 써야 되는 거 같은 하나의 트렌드가 있잖아요. 그것도 물론 중요한 거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삶과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거지. 물 불 철 살 흙 전부 다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까이 있는 것들이잖아요.
김정환 그래서 작품 <흙살>이야말로 이번 전시의 종합이죠. 옥상이 형이 전에 ‘흙’에 대해 한 말이 생각나네요.
임옥상 흙은 본질적인 자기성찰과 인간의 삶과 죽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매체인 동시에 주제라고 생각한다고 했었죠. 게다가 흙은 새길 수 있고 조각할 수 있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아무튼 이 전시를 통해서 비로소 나의 오랜 염원이었던 흙 작업에 천착할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 같습니다.

<땅Ⅳ> 캔버스에 유채 177×104cm 1980

풍경으로서의 글자

김정환 그나저나 전부터 내가 늘 하던 말이 있죠. “형은 본인 글씨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애”라고요. 왜 자필로 쓴 편지도 자주 보내고 말이에요. 그런데 이번 전시작에서도 형이 쓴 글자가 참 많이 등장하긴 하는데, 글자의 모양에 대한 것보다는 글자의 뜻과 조응하고 혹은 넘나드는 인상이에요. 어떻게 보면 읽으면 읽을수록 좋아지는 구절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자체가 하나의 조형물일 수도 있고요.
임옥상 그렇죠. 작업에 등장하는 글자나 구절들은 독서하다가 메모해 둔 것도 있고, 혹은 반대로 그림을 그리다가 여기에 어떤 글이 들어가는 게 좋을까 하고 책을 찾아서 인용도 하죠. 즉흥적으로 쓰기도 하고 또 일기장에서 나오는 것도 있고, 사실 출처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어요. 나를 위해서 선택된 텍스트에 가깝죠. 나 스스로 좀 더 각인하고 잊지 말아야겠다 싶었던 구절들이 많아요. 그래서 전시장에서 글이 반드시 읽혀져야 된다기보다는 그냥 나의 흔적이랄까. 언젠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글자도 풍경이다.’ 우리가 태국이나 아랍 같은 모르는 문화권에 가면 텍스트를 봐도 판독이 안 되잖아요. 분명히 글자는 글자인데 마치 풍경으로 보이듯이 말입니다. 이미 우리 한글도 어떻게 보면 늘 공기, 집이나 건물, 산이나 자연 그런 것처럼, 하나의 풍경으로 봐도 크게 다르지 않겠다고 생각한 거죠.
김정환 소리의 소음 같은 걸 따지다 보면 그렇게 생각할 만하죠. 표음문자와 상형문자를 생각해 보면, 표음문자가 더 쉬울 것 같잖아요. 아니에요. 상형문자가 훨씬 쉬워요. 그림 즉 형상에서 시작된 게 상형문자잖아요. 근데 소리라는 건 형상이 없잖아요. 그러니깐 소리와 형상과의 관계를 넘나드는 것은 굉장히 흥미롭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요. 시집이 어려운 게 그것 때문에 그래요. 내 시집 《거룩한 줄넘기》에서 다룬 주제가 결국 그거예요.
임옥상 예전에 그 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절대로 못 읽겠어도 심심할 때 아무데나 딱 피면 그냥 구절이 다가오더라고요. 작은 챕터들은 작은 챕터대로 전체성과 완결성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 책이 아주 신기한 책이야. 그래서 내가 <너도부처, 나도예술>에서 부처의 소용돌이에 새겨진 글귀를 《거룩한 줄넘기》에서 땄어요. 읽다보니깐 딱 맞는 얘기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즐겁게 따냈지.
김정환 아마 소리와 성스러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었죠? 이해가 돼요. 화가가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할지라도 끝까지 간다면 결국엔 보이는 것 이상의 것, 소리를 그리고 싶겠죠. 시각의 한계, 인식의 한계 너머를 말이에요. 과학이라는 것은 인식을 종합, 정리해서 이득을 두고자 하는 것이고, 예술이라는 것은 그런 이득과 관계없죠. 그 너머, 인간 존재의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하는 것이 예술이죠. 형이 글자로 형상을 만든 게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요.  
임옥상 글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말씀의 육신, 소리의 육신을 공간에 세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결국 말씀은 분명히 소리로 기호화되어 있는데, 그것이 기호화되다 보면 종이나 벽이나 기대야 되고 그게 하얀 종이에 복속되거나 부자유에 속박된다고 느껴진 거야. 말씀이 정말 입체로 서서 공간에 기둥이 됐으면, 뼈대가 됐으면 한 거죠. 그걸 시각적으로 표현한 거고.
김정환 실제로 역사상 최초의 표음문자가 생긴 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생겨요. 그 때 평민들이 어려운 이집트 문자를 모르니깐 처음에 숫자 계산용으로 만들었다가, 그 다음에 군대에서 사람 수 세는 걸로 만들었다가 최초가 되는 건데 그 과정이 2000년 이상 걸린 거예요. 이집트 상형문자에 반대해서 만든 거죠. 글자라는 건 단순하고 쉽게 써야 되는데 너무 어려우니깐. 중국 한자도 계급적으로 하층민은 거의 못썼죠. 거의 상류층만 썼어요.
임옥상 결국 문자란 것이 어느 순간에는 지배계급을 위한, 지배를 위한 수단이었던 거죠.
김정환 형은 의미를 담아두었던 형상에 꽂힌 거죠. 그냥 형상이 아니라, 흡사 무슨 문명 너머를 보여 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걸 거예요. 짐작컨대, 글자라는 것은 문명이고 문명이라는 게 인간을 한계 짓게 했잖아요. 특히 감각, 지각 능력 같은 것에 많은 한계를 두게 했죠.
임옥상 이번 전시작 중에 <발짓>이라는 작품 말이에요. 그게 나로서는 지금 얘기한 내용과 유사하다고 봐요. 말씀의 기둥을 공간에 열심히 세웠단 말이에요. 근데 그것이 어느 순간 숲이 되고 감옥이 되는 거야. 무성한 말씀이 스스로 자라서 직립해서 섰는데, 이게 결국엔 숲이 돼서 사유가 거기에 갇히고, 육신이 다 갇히는 거죠. 그걸 뚫고 나오려는 발이 표현되어 있는데, 처음엔 손도 같이 스케치했었어요. 물론 이렇게 얘기하는 게 한 쪽 방향으로 작품을 이해하게 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지만 그냥 얘기해 보자면, 우리나라처럼 이데올로기나 뭐 이런 게 심한 나라가 없잖아요? 남북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의 이데올로기가 너무 많아. 좌파, 우파, 뭐 진보와 보수. 이런 사회 속에 필연적으로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는,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마지막 신체적 저항 혹은 반항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엔 손, 발이 글자숲으로부터 같이 나왔었는데, 형태적으로 너무 복잡한 거예요. 그래서 손을 빼고 발만 표현했더니 훨씬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가 나온 거죠. 발짓이 더 저항이 세니깐. 그러면서 발을 들여다 보게 됐잖아요. 그런데 이 발이라는 게 다시 보니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것이더군요. 발이 발달하지 않았으면 직립보행이 불가능했고, 직립보행이 가능함으로써 인간이 머리도 커지고, 머리가 커지니까 문자도 만들고 그러는 것 아닐까요?

<광화문 연가> 캔버스에 유채 186×456cm 2011

‘소재’에 빠지지 않기

김정환 내가 30여 년간 형의 작품을 주욱 지켜보면서 느낀 게 있어요. 시사와 역사, 사유의식과 참여의식이라는 건 각기 달라요. 근데 시사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시사’하면 그 다음에 붙는 게 ‘연예’잖아요. 그러니까 시사는 연예과예요. 그것이 예술이 되려면 시사가 전면에 드러나더라도 그 안에 반드시 역사가 담겨 있어야 되는 거죠. 그것이 전체를 아우르는 미학적인 맥락을 일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너무 시사만 따지다 보면, 거기에 빠지는 수가 있어요. 내가 보기에 형이야말로 그런 위험에 제일 많이 처했던 사람 중 한 명 아닌가요? 형도 작업 활동을 하면서 아찔했던 순간들이 있었잖아요. 예전의 민중미술가 임옥상을 좋아했던 동료화가나 평론가들은 공공미술하면서 이 사람이 좀 달라졌다고 하는데, 나는 공공미술이 오히려 해결해줬다고 봐요. 공공미술은 일단 규모가 크기 때문에 시사라는 ‘소재’에 빠질 수가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규모가 큰데 어떻게 거기다가 신문 한 면을 만들어요. 그래서 나는 오히려 형이 공공미술을 하게 된 게 형의 예술을 시사에서, 시사 뒤에서 구해줬다고 생각해요. 시사와 역사는 다른 거거든요.
세상을 1년 단위로 보는 것과 10년 단위로 보는 것과, 100년 단위로 보는 것은 달라요. 그리고 희망을 가지려면 최소한 100년 단위로 가야지, 우리나라처럼 매일 하루 단위로 보면 당연히 절망할 수밖에 없어요. 100년 단위로 보면, 당연히 지금이 100년 전보다 낫잖아요. 그러니깐 세상이 나아지도록 노력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헛된 게 아니에요. 예술가는 시사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 안에 100년 단위 혹은 500년 단위로 보는 시각을 ‘주장’이 아니라 ‘미학적’으로 구성해야 된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형은 다른 작가들보다 유리했죠. 일명 ‘운동’하는 사람들이 그런 콤플렉스를 갖고 시작하거든요. 민속을 따지고, 고려 탱화 그리고 뭐 그런 거 반영하고. 그런데 형은 그런 게 없어요. 미학적으로 민속 혹은 민족주의에 치우치거나 그런 게 없어요.
임옥상 시사로 출발했는데, 시사에 물들지 않았다 그 얘기인가? 내 나름대로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시사를 말하자면 뭐 글로 한 줄 쓰면 되는 거지, 그걸 뭣 하러 화면에다가 오랫동안 붙잡고 늘어지겠어요. 예를 들어 <광화문 연가>를 봅시다. 광화문이라는 장소를 그리기 전에 광화문에 대해서, 우선 나부터 내가 한 번 깊이 있게 시간 여행도 하고 공간 여행도 하고 그러면서 ‘광화문을 하나의 새로운 담론 안의 그 무엇으로 던져 보자’하는 여러 가지 계산을 많이 했어요. 김시인이 쓴 글 내용 중에도 인상적인 대목이 있는데, ‘이순신을 아주 작게 그린’이라고 하지 않고, ‘정치의 아주 조금’만 남은 광화문(<광화문 연가>), 사각과 ‘역사의 아주 조금만 남은’ 자금성(<자금성 연사>), 그리고 지진 소용돌이와 ‘이전 자연의 아주 조금’만 남은 일본(<일본 연가>)이라고 설명하지 않았어요?
김정환 형만의 미술 언어가 있는 거죠. 진짜 완강하다고 할까. 자기 구조나 색을 미학적으로 장악하는 그런 완강한 무언가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깐 그림이 말과 달리, 그 안에 복합적인 게 있는 거죠. 여러 그림 속을 들여다봐도 그만큼 역동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형 같은 경우처럼 역동을 하고, 그렇게 역동을 하다 보면 그림이 소재화되기 쉬운데, 형은 소재화를 벗어난 몇 안 되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1980년대 민중미술을 외치던 그 많던 화가 중에 계속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1/3이 안 될 거예요. 결국엔 소재주의에 빠지다 보니깐 더 이상 진전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냥 심하게 말하면, 사고 터지기만을 바라는 거죠. 그래야 그림이 나오니깐 말입니다.
임옥상 나도 그런 지적을 좀 받았어요. 당시엔 본래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을 텐데 하고 싶은 일이 안보이고 마치 외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왜 그런 것만 그리냐” “세상이 편하면 그림으로 그릴 소재가 없어지게 되는 거냐”라고요. 내가 하도 웃음이 나와 가지고. 그게 말이 되는 거냐고요.
김정환 진짜 화가라면 제일 지겨운 게, 정말 그림 그리고 싶은데 세상 여기저기서 터진다 말이에요. 터진다는 게, 뭐 비리가 비리의 수준이 높아져서 터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똑같은 비리가 터지는 거죠. 그래서 그걸 소재로 혹은 주제로 삼는다는 것이 예술가로서는 정말 아주 지겨운 일이죠. 근데 그걸 제일 많이 하면서도 그 소재에 안 빠진 거죠. 물론 소재에 빠진 작품이 없다고 할 순 없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런 것들이 또 다 종합이 돼서 다른 방식으로…. 형을 30여 년간 가까이 옆에서 보니깐 오히려 더 그런 점이 존경스럽죠.
임옥상 참고로 <광화문 연가>에 고인 물의 색깔이 핑크색이에요. 그게 내 작업에서는 다소 낯선 색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2009년 가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지인 옛 기무사터에서 열린 전시 <신호탄>에서 핑크색으로 건물을 다 칠하고 핑크색 방패를 설치한 공동 작업을 선보였어요. 뒷통수를 친 거죠. 칼라로 장난을 치면, 나도 칼라로 장난을 치겠다 이거죠.

<산수> 철 270×900cm 2011

민활과 집요

임옥상 김시인하고 내가 가까이 지내면서 느낀 점은 굉장히 분석적이고 전체를 잘 엮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그점이 나한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죠. 내가 제일 놀란 적은 2005년 책 테마파크 공공미술 프로젝트 진행할 때였어요. 처음에는 건축가 승효상과 조경가 김인수 그리고 나까지 일단 셋이 시작했는데, 김시인이 합류하면서 비로소 개념이 정립이 된 거예요. 물론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긴 했지만, 김시인이 ‘세상의 배꼽’이라는 말로 개념을 정리했죠. 사실 엄청난 말이거든요. 난 그 ‘세상의 배꼽’이라는 말이 던져졌을 때 전율 같은 게 느껴졌어요.
김정환 말하자면 ‘썰’ 담당인 거죠.(웃음) 오늘도 글자나 언어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나눈 김에 형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단연 ‘민활(敏活)한 작가’라고 할 수 있어요. 나는 셰익스피어 얘기를 할 때 보통 민활하다고 그래요. 기민하고 활발하고, 그리고 기를 갖추고. 기를 못 갖춘 사람은 민활하다고 못하죠. 단숨에 핵심을 파고 들어가는 것. 그게 민활한 작가에요.
임옥상 난 모르겠어요. 나는 내가 민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냥 뭔가 하겠다, 만들겠다, 그리겠다 하면 나도 모르게 속도가 확 나기 시작하나봐요.
김정환 덧붙이자면 형은 민활해야 깊이가 생기고, 역동해야 깊이가 생긴다는 것을 체질적으로 알고 구현하는 작가죠. 이를테면 《사서삼경》 같은 경전을 50년 동안 해설한 사람을 두고 심오하다 그러잖아요. 그건 심오한 게 아니에요. 미련하게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한 거죠. 그건 고여 썩는다고 해야 맞아요. 민활하고 역동적으로 핵심을 포착하는 게 필요해요. 공간적으로 얘기하면 흔들림 같은 게 있어야 깊이가 생긴다는 것을 훌륭한 작가라면 당연히 알죠.
임옥상 그걸 다른 말로 ‘핍진(逼眞)’이라고 쓸 수 있지 않나요?
김정환 핍진보다는 ‘집요(執拗)’같은데요. 민활과 집요.
임옥상 생각해 보면 집요하진 않은 것 같은데. 내가.(웃음)
김정환 핵심을 파고들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거지, 핍진이란 말은 진실에 육박한다는 것, 소위 말하면 핍진성 있다는 건 리얼리티가 있다는 얘기죠. ‘진실’할 때 ‘진(眞)’자에요. 그건 내용적인 것과 연결될 수 있겠죠.
임옥상 고마운 표현이에요. 그럼 칭찬으로 마무리하는 김에 이 얘기도 좀 합시다. 김시인이 책 《어떤 예술의 생애-화가 임옥상을 위하여》를 쓰고 난 다음에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랬던 것 있잖아요.
김 아. 책을 쓰면서 생애를 전체 정리해 보니깐 비로소 안 거죠. 옥상이 형이 이렇게 훌륭할 줄이야.(웃음)
임 그러니 우리가 참 어떤 사람을 안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게 결국은 아주 피상적인 거예요.(웃음)

왼쪽·<철의 꿈IV> 매향리 폭탄 잔해물 포크, 나이프, 스푼 315×210×120cm 2001
오른쪽·<역사와 구토-독도> 쇠, 스테인리스 스틸 식기 290×280×40cm 2001

“안녕하세요, 쿤스씨!”

<네덜란드 커플> 캔버스에 유채 213.4×274.3cm 2007 (사진: 권현정)

“안녕하세요, 쿤스씨!”

글 | 김재석 기자

슈퍼스타 제프 쿤스가 내한했다. 그는 세계적인 컬렉터 프랑수와 피노(PPL 회장)의 아시아 첫 소장품전 <프랑수아 피노 컬렉션: Agony and Ecstasy>(9. 2~11. 19 송은아트스페이스)에 초대를 받았다. 쿤스는 무라카미 다카시, 데미안 허스트, 신디 셔먼 등의 참여작가를 대표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한편 그의 공식 방한 일정을 하루 앞두고 2011KIAF에 선보일 제프 쿤스의 BMW 아트카가 공개돼 각종 매체를 장식했다. 지난 4월, 그는 서울 명동의 신세계백화점 옥상에 자신의 작품 <성심(Sacred Heart)>의 설치를 계기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바 있다.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쿤스는 짧은 일정을 소화하느라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전시공간을 빽빽하게 채운 취재진의 여러 요구에 장난기 섞인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미술계 ‘슈퍼스타’로서의 면모를 과감히 드러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고, 언론 노출에 조심스러운 프랑수와 피노보다 더욱 ‘사업가’처럼 보였다.

<성심(바이올렛/골드)> 고크롬 스테인리스스틸 투명 코팅 373.3×213.4×121.9cm 2006 신세계백화점 제공

미술계 악동에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가까지

잘 알려졌다시피 제프 쿤스가 처음부터 작가로 미술계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아니었다. 인테리어디자인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웨딩드레스를 판매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그는 어렸을 적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제작한 ‘작품’을 가게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대학에 진학한 그는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아직도 미술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겠어요. 저는 미술학교에 입학해서야 미술이 인간의 역사 도처에서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고, 모든 것에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멤버십 티켓을 판매하는 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3살에 영업직 주임을 맡을 정도로 판매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1970년대 후반, 의미가 알쏭달쏭한 작품을 발표하며 미술계에 데뷔했다. 거울 위에 토끼나 꽃모양의 풍선 인형을 올려 놓거나, 청소기 스피커 커피포트 소형냉장고 등 대량생산된 가정용품을 형광등과 결합했다. 이후 그는 나이키 광고를 차용하거나 증류수에 농구공을 넣은 <이퀄리브리엄> 연작, 고급 위스키 광고를 그대로 가져와 캔버스에 옮기고, 스테인리스로 소형 장식품을 모방한 <사치와 퇴폐> 연작 등을 선보였다. 그의 초기작은 초현실주의부터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워홀의 팝아트,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라이트아트까지 미술사의 여러 양식적 유산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도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면서도 저급한 작품을 의미하는 ‘키치(Kitsch)’와 줄곧 연관됐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이탈리아의 포르노스타이자 국회의원이었던 치치올리나와 함께한 <메이드 인 헤븐> 연작이었다.
남녀의 적나라한 성행위를 미술사적 도상에 맞춰 재구성한 이 작품들은 미술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미술계의 평가는 극단적이었고, 쿤스는 치치올리나와 이혼하면서 아들마저 빼앗겼다. 재정 상태는 악화돼 파산 위기에 놓였고, 작품을 모두 내다 팔아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그러나 그가 아들을 위해 제작했다는 거대한 강아지 형상의 꽃무더기 <강아지>를 통해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스테인리스를 최적의 상태로 가공한 <셀러브레이션> 연작으로 대중적 지지까지 확보했다. 풍선 강아지, 사탕, 하트, 다이아몬드, 부활절 계란 형상을 한 작품은 세계 주요 미술관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2007년 11월 열린 옥션에서 그의 작품 <매달린 하트>는 약 250억 원에 낙찰됐다. 생존 작가 중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이었다.
전세계 주요 컬렉터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쿤스의 사업적 수완은 익히 알려졌다. 프랑수와 피노 회장과도 마찬가지다. 그는 누군가의 컬렉션에 작품이 포함된다는 것 자체가 ‘소통’이며, 작품을 제작할 때 누군가와 소통할 것인지에 따라 자신이 구사하는 조형적 어법도 달라진다고 말한다. “컬렉터는 나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이에요. 동시대 작가로서 내가 살아있다는 의미를 작품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어요. 그걸 나눌 수 있는 컬렉터를 만나 더없이 기쁩니다. 컬렉터는 내 작품의 보호자입니다. 좋은 컬렉션에 들어가면 작품을 잘 보존할 수 있죠.(웃음)” 쿤스는 동시대미술을 감별하는 피노 회장의 안목이 누구보다 본능적으로 날카롭다며 치켜세웠다. “좋은 컬렉터는 예술로 자신이 경험한 바를 다른 사람과 나누려 합니다. 일종의 관대함 같은 것이죠. 작가 역시 마찬가지에요. 좋은 작가와 컬렉터는 늘 나눔의 정신을 실천합니다. 피노가 마련한 이번 전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술로 삶의 반경을 넓히는 교육적인 기반을 제공할 거에요.”

<강아지> 혼합재료 1234.4×1234.4×650.2cm 1992 아롤센 설치 전경

“내 작품은 모든 근심을 제거하기 위한 여행”

제프 쿤스는 이번 전시에 출품된 각기 다른 장르의 세 작품을 직접 설명하면서 ‘욕망’과 ‘소통’이란 단어를 키워드로 삼았다. “세 작품은 모두 어떤 소통을 갈망하고 있어요. 조각품 <부르주아 흉상-제프와 일로나>는 남녀가 서로를 갈망하면서도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죠. 마치 마사치오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처럼요. 그러나 제 작품에는 그런 감정조차도 있는 그대로 솔직히 받아들입니다. 회화 <네덜란드 연인>도 마찬가지에요. 일본 목판화에서 막 성교를 시작하려는 장면과 제 자화상이기도 한 원숭이 인형의 모습이 뒤섞여 있죠. 저는 이 작품에서 인간의 본성도 드러내고, 다윈의 진화에 대한 아이디어도 반영했어요.” 쿤스는 관객이 작품의 의미를 하나하나 정확하게 읽어 내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관객은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는 것. 거울처럼 대상이 비치는 평면 스테인리스 작품 <올리브 오일>에서 관객과의 소통은 보다 직접적이다. 그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모습이 사라지면 작품도 끝이라고 설명한다. “예술은 항상 세상을 대면해야 해요. 항상 다른 사람들과 소통의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쿤스는 자신의 작품 활동을 ‘모든 근심을 제거하기 위한 여행’이라고 설명한다. “모든 생각을 미술에 집중해야 해요. 요즘 젊은 작가들은 이것저것 하느라 작업할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죠. 저는 온종일 미술만 생각해요. 확실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 고민을 반복하죠. 아이디어가 확실하지 않으면 작업을 하지 않아요.” 그는 인터뷰 도중 ‘제스처’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이를 지적하며 제스처의 의미를 재차 물었다. 그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행동’이라고 답했다. “모든 미술작품은 제스처에요. 제스처는 내가 인생에서 정말 원하는 것을 하는 일을 말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며 동시대미술의 외연을 확장하는 그의 활동을 처음부터 살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사업가형 아티스트’인 쿤스는 현재 뉴욕 맨해튼 첼시에 120여명의 직원을 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와 함께 작품 제작상의 문제를 조정하지만, 모든 작품은 그의 철저한 통제 아래 제작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결코 대량생산된 작품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나의 페인팅이 제작되는 데 꼬박 6~8개월이 필요합니다. 보통 아이디어에서 최종 작품이 완성되는 데 2년 정도가 걸려요.”
쿤스에게 《아트인컬처》 2010년 10월호의 표지를 장식한 김홍석 작가의 <토끼>를 보여 줬다. 그는 작품을 알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한국의 제프 쿤스 열기에 그 자신도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한달동안 진행된 신세계백화점의 ‘쿤스 마케팅’은 대성공이었다. 일반 소비자들은 쿤스의 작품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으며 그의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신세계 측은 작년 대비 매출이 14%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라면 가까운 시기에 그의 여러 작품을 한자리에 만나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의 개인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적은 있지만 아직 계획은 없어요. 기회가 된다면 꼭 개인전을 열고 싶습니다.” 슈퍼스타 제프 쿤스가 한국에서 펼칠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가슴에 얹은 손> 캔버스에 오일, 잉크 실크스크린 243.3×365.8cm 1990

설치미술의 지정학 돈과 엘리트주의로 다시 보다

브루스 나우만 <사각형의 침몰> 2007 뮌스터조각프로젝트 전시 전경

설치미술의 지정학
돈과 엘리트주의로 다시 보다

글 | 보리스 그로이스 · 미술평론가

설치미술의 ‘엘리트주의’를 둘러싼 질문들

오늘날 우리는 엘리트에 대한 논의를 펼칠 때 그 대상으로 당연히 경제적 엘리트를 상정한다. 따라서 누군가 미술이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말한다면, 이 주장은 미술이 부유한 특권 계층의 관객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암시하는 듯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앞서 보여 주려한 바와 같이 설치미술의 맥락은 이것과 정반대에 있다. 부유한 특권층의 미술품 컬렉터는 국제적 미술시장에서 유통되는 값비싼 미술품을 구매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중을 위한 미술 전시의 일부로서 기능하며 쉽게 판매될 수도 없는 설치미술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또한 미술 전문가들은 대체로 고차원적인 설치미술이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말한 다음, 부유한 컬렉터들을 초대해 공적인 공간에서 컬렉션을 보여 주려고 한다.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에 포함된 ‘엘리트’가 누구여야 하는지를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엘리트에 대한 이해는 완전히 혼란스러워진다.
이제 ‘엘리트주의’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확실히 하기 위해, 이른바 예술에 대한 가장 엘리트주의적인 태도를 고수했던 예로 잘 알려진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에세이 <아방가르드와 키치>(1939)를 살펴보도록 하자. 오늘날 그린버그는 대체로 평면성의 개념을 만들어 낸 모더니즘 미술 이론가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아방가르드와 키치>는 이와는 다른 이슈를 다룬다. ‘현대 자본주의의 조건 아래서, 고차원적 미술을 경제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린버그에 따르면, 훌륭한 아방가르드 미술은 대가들이 작업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기술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점에 있어 아방가르드 미술가는 개별적 작업의 주제보다는 주제를 다루는 데 사용한 수단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잘 훈련된 감정사와 유사하게 비춰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아방가르드는 ‘제거’의 방법, 즉 주로 미술 작품의 ‘어떻게’를 드러내기 위해 ‘무엇에’ 해당하는 부분을 없애는 방법으로 작동한다. 그린버그는 관람자가 미술품에서 순수하게 형식적 기술적 물질적인 측면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해 주는 감식 기술은 지배계급의 구성원, 다시 말해 ‘항상 어떤 종류의 교양과 긴밀히 연관되는 여가와 편안함을 가질 수 있는’1)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듯 보인다. 그에게 있어 아방가르드 미술이 재정적 사회적 후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역사적으로 예술을 후원해 온 ‘부유하고 교양 있는’ 후원자들에게서 뿐이다. 따라서 아방가르드 미술은 ‘황금의 탯줄에 의해’2) 부르주아지에게 연결된 채 남아 있게 된다. 이러한 공식은 상당수의 그린버그의 독자들의 뇌리에 박혔고, 그가 쓴 텍스트의 수용과 해석을 결정지었다.

아니쉬 카푸어 <무제> 레진 450×450×475.2cm 2007

하지만 그린버그의 에세이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흥미롭고 의미 있도록 만드는 것은 그린버그가 오로지 ‘부자와 교육 받은 이들’, 다시 말해 전통적 의미에서의 엘리트만이 아방가르드 미술을 후원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의사가 있다는 믿음을 진술한 뒤, 즉각적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왜 그것이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30년대의 역사적 현실은 그린버그가 ‘부르주아지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후원을 통해 아방가르드 미술을 위한 사회적 기초를 제공해 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이끌었다. 현대 대중 사회에서 실질적 정치적 경제적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엘리트 지배층이 ‘엘리트적인 취향’을 가지거나 ‘엘리트적 예술’을 후원한다는 생각, 심지어는 그러한 의심마저도 거부해야만 한다. 사실 현대의 엘리트가 원치 않는 것은 ‘엘리트주의자’가 되는 것, 즉 대중으로부터 눈에 띄게 구분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어떠한 취향의 구별도 없애야 하며, 대중과의 미학적 연대라는 착각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이런 허구적인 미학적 연대는 현실의 권력 구조와 경제적 불평등을 은폐한다. 그린버그는 이러한 전략의 예로서 스탈린 치하 소비에트 연방, 나치 독일, 파시즘 시기 이탈리아의 문화 정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부르주아지 또한 대중이 스스로의 계급적인 적을 겉으로 드러나게 식별하지 못하도록 앞서 든 예들과 동일한 미학적 연대의 전략을 따르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린버그의 분석을 현재의 문화적 상황에 적용함에 있어서, 동시대의 엘리트는 바로 대중을 현혹하기에 충분할 만큼 극적이라고 생각되는 미술품을 수집한다고 말할 수 있다. 큰 규모의 개인 컬렉션이 ‘비(非) 엘리트주의적’이고, 언제 전시되든지에 관계없이 세계적인 관광 자원이 되기 충분할 만큼 잘 조정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엘리트적 취향과 대중적 취향이 일치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엄청난 부는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동시대의 엘리트가 갑자기 ‘엘리트주의자’들이 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사업 활동에서도 대중의 기대에서 뒤떨어질 것이며, 부를 잃게 될 것이다. 따라서 또 다른 질문이 제기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엘리트주의적인 미술’과 같은 것이 가능한가?’
그린버그는 <아방가르드와 키치>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안한다. 아방가르드가 전통적 예술을 생산의 측면에서 분석한 것에 다름 아니라면, ‘엘리트주의적’인 미술은 ‘미술가를 위한 미술’, 즉 미술의 소비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생산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과 같다는 것이다. 고차원적 미술은 미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 주기를 원한다. 미술의 생산적 측면, 시학(詩學), 미술을 만들어 내는 장치와 실천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그린버그는 아방가르드 미술이 대중적이든 엘리트주의적이든 간에 취향에 의한 평가를 넘어서게 하는 정의를 내린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아방가르드 미술의 이상적 관람자는 미학적 쾌락보다는 미술 생산에 관한 정보 장치 매체 기술에 관한 지식의 원천으로서 미술에 관심을 가진다. 미술은 이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과 숙달의 문제가 된다. 이런 점에서 현대적 기법으로서의 아방가르드 미술은 대체로 자율적이라고, 즉 어떠한 개인적 취향으로부터도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미술 작품은 자동차, 기차, 혹은 비행기와 같은 사물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기준에 의해 분석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미술과 디자인, 미술 작품과 단순한 기술적 제품 사이에는 더 이상 명확한 구분이 없게 된다. 이러한 구성주의적이고 생산주의적인 관점은 여가와 ‘교양 있는 미적 숙고’라는 맥락에서가 아니라 생산의 의미에서 미술을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 즉 유한계급의 생활양식보다 과학자와 노동자의 활동을 더욱 참조하는 측면에서 미술을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2007 베니스비엔날레 덴마크와 노르딕 국가관에 엘름그린과 드락셋이 기획한 전시 <컬렉터> 전경

동시대의 ‘생산자를 위한 미술’

그린버그는 이후에 쓴 에세이 <문화의 곤경(The Plight of Culture)> (1953)에서 문화에 대한 생산주의적인 관점에 대해 한층 더 급진적인 주장을 한다. 그는 마르크스를 인용하며 현대의 공업주의가 여가를 평가 절하했다고 진술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심지어 부자들조차도 일을 해야만 하고, 여가 시간을 즐기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더욱 자랑스러워한다. 이 점은 1948년에 출간된 T. S. 엘리엇의 현대 문화에 대한 분석인 <문화의 정의에 대한 논고>에 대해 그린버그가 찬성과 동시에 반대하는 이유가 된다. 그린버그는 공업화가 모든 이들을 일하도록 만들었을 때 여가와 취미에 바탕을 둔 전통적 문화가 쇠퇴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엘리엇과 의견이 일치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린버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러한 조건 아래서 내가 문화를 위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화의 무게 중심을 여가로부터 움직여 바로 일의 한 가운데에 두는 것이다.”3) 사실 여가를 통한 교양 증진이라는 전통적인 이상을 단념하는 것은 그가 이러한 이상을 아방가르드의 개념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하면서 생겨난 수많은 역설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탈출구를 찾았다고 해도, 그린버그는 이를 따르는데 있어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그는 앞서 제안된 해결책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이 결과를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제안하고 있다.”4) 그는 더 나아가 다시 아래와 같이 말한다.
“그러한 명백히 도식적이고 추상적인 고찰을 넘어서서, 나는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다. … 하지만 적어도 산업주의 문화를 위한 궁극적 결과에 절망할 필요가 없다면, 이것이 도움은 된다. 또한 우리가 스펭글러, 토인비, 엘리엇이 고민했던 지점(문명 혹은 문화의 발달과 그 구분에 대한 논의_역주)에서 생각을 멈추어야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도움이 된다.”5)
아방가르드 미술이 ‘엘리트주의적’이라고 지칭할 때, ‘엘리트’라는 단어를 통해 의미하는 바는 지배계급이나 부유층이 아니라 미술 생산자, 즉 미술가 스스로를 가리킨다는 점은 명확해졌다. 이는 ‘엘리트주의적인’ 미술이 소비자의 감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술가들 자신의 감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념으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엘리트의 취향이든지 대중의 취향이든지에 관계없이 더는 특정한 취향을 다루지 않고, 미술가를 위한 미술, 취향을 뛰어넘는 미술의 실천을 다룬다. 하지만 그렇게 취향을 뛰어넘는 미술이 정말로 ‘엘리트주의적인’ 미술이 될 수 있는가? 달리 표현해 보자면, 미술가는 정말로 엘리트인가? 명백히 그들은 엘리트가 아니다. 부유하지도 않고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가를 위한 미술과 관련해 ‘엘리트주의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미술가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미술가가 소수에 속한다는 의미를 전달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엘리트주의적’ 미술은 실제로는 ‘소수자’ 미술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동시대 사회에서 미술가는 정말로 그러한 ‘소수자’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자 한다.
그린버그의 시대에는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20세기의 마지막과 21세기의 시작 사이에, 미술은 새로운 시대에, 다시 말해 미술의 ‘대량 소비’에 이어 ‘대량 생산’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이미지 배포 수단뿐만 아니라 비디오와 핸드폰 카메라와 같은 동시대의 이미지 생산 수단은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들의 사진, 비디오, 글 등을 개념미술 이후의 미술 작품과 구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동시대의 디자인 또한 전 세계인들이 스스로의 몸, 아파트, 혹은 직장을 예술적 오브제와 설치물로서 형성하고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것은 확실히 동시대미술이 대중문화적 실천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이것은 무엇보다 오늘날의 미술가는 예술 소비자들이 아닌 예술 생산자들 가운데서 살아가며 작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은, 그린버그의 표현을 빌자면 미술가는 마침내 생산의 맥락 안에 가감 없이 놓인다. 이것은 전문적인 현대미술을 취향의 문제의 바깥에, 심지어는 미적(美的) 태도 그 자체의 바깥에 배치한다. [중략]

김수자 <연꽃: 영의 지대> 2003 프랑스 릴 파레라모 설치전경

설치 미술, 교환가치를 넘어선 물질성

오늘날의 세계는 무엇보다도 인공적으로 생산된 세계이다. 다시 말해 이 세계는 무엇보다 인간의 노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심지어 오늘날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미술 작품을 생산해 낸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지가 생산되고 분배되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들의 생산에 사용되는 수단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논증하지는 않는다. 반면 전문적인 미술은 정확히 그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은 동시대의 대량 이미지 생산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실행하고 제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 점이 바로 비판적 분석적 미술이 지원을 받아야 할 첫 번째 이유이다.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이것은 감춰지고 버려질 뿐만 아니라, 내가 이미 제안한 바처럼 만들어지지 조차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원은 취향과 미학적 고려에 대한 어떤 견해도 넘어서서 논의되고 제공되어야 한다.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은 예술의 미학적인 측면이 아니라 기술적인 측면, 혹은 이런 식으로 표현하길 원한다면, 그것은 시(時)적인 측면인 것이다.
이와 같은 탐구의 좋은 대상이 되는 예는 오늘날의 대량생산에 있어 지배적인 매체인 인터넷의 미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은 평균적 관람객, 그리고 심지어는 심각한 이론가들 중 일부가 비물질적 생산, 비물질적 노동 등에 대해 논하도록 부추긴다. 아파트, 사무실, 혹은 스튜디오에 앉아 개인 컴퓨터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에게 있어 이것은 사실 그 자체로서 하나의 통로이며, 순수하게 떠다니는 기표로 이루어진 가상적이고 비물질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창이다. 화면 앞에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찾아 오는 육체적 피로의 발현과는 별개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의 신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컴퓨터 사용자로서, 우리는 매체와 나누는 혼자만의 의사소통에 몰두하며, 책을 읽는 경험과 유사한 몰아지경에 빠져든다. 하지만 우리는 컴퓨터 자체의 물리적 신체, 컴퓨터에 부착된 연결선, 이것 소비하는 전기와 같은 것에도 역시 빠져든다.
하지만 만일 똑같은 컴퓨터가 설치 작품 안에 놓이거나, 좀 더 일반적으로는 전시 공간에 놓였을 경우에 상황은 크게 변한다. 미술 전시는 관람객의 주의와 집중을 확장시킨다. 우리는 더 이상 고립된 화면에 집중하지 않고, 화면과 화면 사이,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를 돌아다닌다. 전시 공간 안에서 방문객의 이동 경로는 인터넷 사용자의 전형적인 고립을 약화시킨다. 동시에, 웹을 비롯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는 전시는 이런 매체들의 물질적 측면을 눈에 보이도록 나타내 준다. 매체에 쓰이는 기계적 장비들과 매체가 만들어지게 된 재료를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방문객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기기들은 디지털의 영역이 화면상의 공간 안에만 갇혀 있다는 환상을 파괴한다.
일반적인 전시는 개별 관람객을 홀로 남겨두고, 전시된 미술품들을 각자 대면하고 관조할 수 있도록 한다.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관람자는 불가피하게도 전시 공간 안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포함해 공간의 전체성을 간과한다. 반면 설치미술은 설치된 작품에 의해 생산된 공간이 가진 전체론적이고 통합적인 성격으로 인해 관람객의 집합체를 만들어 낸다. 설치미술의 진정한 관람자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관람자들의 집합이다. 그러한 미술 공간은 다수의 방문객, 혹은 ‘다중(Multitude)’라 부를 수도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다중은 관람객 각자에게 전시의 일부가 되며, 혹은 방문객 각자가 이 다중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자신의 몸이 타인의 응시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른 이들 역시 이 집합을 인식하게 된다.
디지털 장비를 사용하고 이를 주제로 삼는 전시는 물질적이면서 물질적이지 않은 행사를 연출한다. 설치미술은 설치에 사용된 매체가 실질적으로 무엇인지가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특정한 예술 양식으로서는 거부되었다. 전통적인 미술 매체는 캔버스, 돌, 필름과 같이 모두 특정한 재료에 의해 정의되었다. 비록 설치미술이 어떤 식으로든 ‘비물질적’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치미술에 있어 작업의 매체는 ‘공간’ 그 자체이다. 반면에 설치미술은 공간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아주 탁월할 정도로 ‘물질적’이다. 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에 대한 가장 일반적 정의이기 때문이다. 설치미술 작품은 텅 비어 있고 중립적인 공공 공간을 개별적 미술 작품으로 바꿔 놓는다. 또한 이것은 관람객이 이 공간을 한 작품의 전체론적이고 통합적인 공간으로서 경험하도록 만든다. 그러한 공간 안에 포함된 것은 무엇이든지 그 안에 놓여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설치미술의 실천이 세계의 사물들이 가진 물질성과 그 사물들의 구성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논의의 시작으로 돌아가 말해 보자면, 이곳에 바로 진정으로 동시대적인 미술의 결정적이고 명백한 특징이 놓여 있다. 우리의 문명에 의해 생산된 상품들은 금전적 가치와 상징적 가치에 따라(기껏해야 개인적인 소비를 통해 순수한 물질성을 드러내며) 세계 시장에서 유통되는 반면, 이 세계의 사물들이 지닌 물질성을 교환 가치의 범위를 넘어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동시대미술 밖에 없을 것이다. | 번역·박재용

2009 홍콩아트페어 입구에 설치된 중국 작가 무 보양의 <Nude No.2>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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