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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1.09

Abstract

특집 이우환_Dialogue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의 대규모 회고전 『무한의 제시(Marking Infinity)』(6. 24~9. 28)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백남준에 이어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두 번째로 열린 한국작가 개인전으로 의미가 깊다. 그간 일본과 유럽을 무대로 활동해 온 이우환은 2008년 페이스갤러리 개인전에 이어 뉴욕 굴지의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함으로써 명실공히 현대미술의 메카에서 예술적 입지를 굳혔다. art는 이번 회고전에 즈음하여 이우환의 작품과 철학을 더욱 가까이 마주하고 이해하는 '대화(Dialogue)'의 장을 마련한다. 작가의 육성, 전시기획자 알렉산드라 먼로와의 인터뷰, 미술평론가 심은록과의 대담, 그리고 질케 폰 베르스보르트-발라베의 작품론 등 다각적인 앵글로 접근했다. 이우환이 제시하는 무한의 세계로.

Contents

01     표지  이우환 <대화> 캔버스에 유채, 무기안료 2011 (사진 : 김복기)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김복기

38    프리즘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바란다!  김홍희
    아이 웨이웨이의 구속과 석방, 그 이후  김재석

42    오후의 아틀리에  
    나뭇가지의 얼굴들  조숙진

64    포커스
    오늘의 프랑스 미술展  정현    
    그리움, 동아시아 현대미술展|타카시 쿠리바야시展  조선령    
    박병래展|한경우展  정용도

77    특집  이우환_Dialogue
    [1]Interview_무한의 제시  알렉산드라 먼로
    [2]Message_만남과 조응  이우환
    [3]Conversation_이우환과 현대철학  심은록
    [4]Essay_대화 질케 폰 베르스보르트-발라베

110    인터뷰  정병국 제45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문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김복기  

118    아티스트 스펙트럼  벤 퀼티
    일그러진 초상, 호주 ‘남성 히스토리’를 그리다  마이클 디스먼드

128    아트마켓  KIAF2011 프리뷰
    [1]10년의 성과, 10년의 과제  김재석
    [2]주빈국 호주, 미술교류의 물꼬 열다  김복기

162    리포트 인사이드  
    샘표 간장공장, ‘매머드 벽화’로 다시 태어나다!  호경윤

170    이슈 앤 크리틱 [7]  
    세상은 언제나 되돌아오는 떠남  김백균

176    포켓 속〉〉〉디카 속〉〉〉이미지 채집  
    직립식물  이해민선

178    전시리뷰
    스물 하나의 방|이완|데페이즈망: 벌어지는 도시
    이진주|What had happened|박연오
    애니멀리어|흩어지는 진술 HIT and RUN
    히라키 사와|박호용

188    전시 프리뷰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새로운 발흥지
    문신, 이응노|테레시타 페르난데즈
    한-아세안 현대 미디어아트|김유섭

194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간장공장, ‘매머드 벽화’로 다시 태어나다!

상공에서 본 샘표식품 이천공장 전경.1987년 준공된 이천공장은 단일 품목을 생산하는 설비 시설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23,150㎡)를 자랑한다.

간장공장, ‘매머드 벽화’로 다시 태어나다!

글 | 호경윤 수석기자

‘동방의 요괴들’이 출범한 지 3년째다. 미술저널의 사회교육적 사명 의식으로 신진작가의 발굴과 더불어 ‘육성’에 초점을 맞춘 ‘동방의 요괴들’, 이 프로그램의 공익성과 잠재력에 뜻을 모으는 기관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시장이나 레지던스 등의 공간 후원부터 아트페어나 국제전 특별전 초청까지, 그 종류와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작년 하이서울페스티벌의 부대행사로 개최됐던 <하이서울아트페어>는 ‘동방의 요괴들’과 서울문화재단 소속 서울시창작공간이 힘을 합쳐 진행한 ‘공동 주최’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였다.
이번에 샘표식품과 함께 완성한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미술과 기업 메세나의 ‘건강한 만남’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가 더해졌다. 최근 아트 메세나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부쩍 늘고 있지만, 대개 사옥에 조형물을 세우거나 혹은 창작 활동에 일정 부분의 예산을 지원해 주는 등 일차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예술과 기업이 긴밀한 파트너십을 이뤄, 보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크다.

샘표식품, 신진작가에 꾸준한 관심

샘표식품은 지난 65년 간 간장과 된장 등 장류를 중심으로 한국 전통식품을 꾸준히 생산해 오고 있다. 특히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가 진행된 이천 간장공장은 샘표의 원천이자 발상지 같은 곳이다. 또한 이천공장은 단일 품목을 생산하는 설비 시설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23,150㎡)를 자랑할 뿐 아니라, 임직원은 물론 월 1,000여 명의 주부와 아이들이 찾아오는 ‘견학장’이다. 이천공장은 1987년 준공된 이후 벽면의 결로와 부식을 막기 위해 3~4년마다 페인트를 칠한다. 여느 공장과 다름없이 관리하기 편한 회색으로 칠해 오던 중, 어느 날 문득 샘표식품 박진선 사장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공장 도색 작업을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특화시키는 큰 그림을 그린 것이다. 기왕이면 신진작가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샘표식품은 이번 프로젝트 이전에도 ‘젊은 미술’을 후원하는 데 관심이 높았다. 2004년 이천공장 내에 공장 직원들과 주민들을 위해 ‘샘표스페이스’를 개관, 지금까지 신진작가를 중심으로 전시를 열고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미술계에 ‘젊은 바람’을 일으켰던 1999년, 2000년의 <공장미술제>의 전시 장소 역시 샘표식품 창동공장이었다. <공장미술제>는 이영철, 유진상 등이 기획을 맡아 만 30세 미만의 신진작가를 200여 명을 소개하는 동시대미술의 ‘난장’이었다. 특히 화이트큐브가 아니라 투박한 공장에서 자유로운 형식으로 개최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뉴밀레니엄의 미술 흐름에 새로운 물꼬를 열었다.
박진선 사장이 품고 있던 도색 작업의 예술 프로젝트는 ‘동방의 요괴들’을 만나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2010년 6월, 샘표식품과 art in culture의 관계자가 만나 첫 기획회의를 했다. 그 이후 여러 번의 미팅을 거쳐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윤곽이 나왔다. 초대형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만큼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장기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 완성까지 소요 시간을 대략 1년으로 잡았다. 또한 단순히 작가를 지명해서 진행하는 방식보다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누적 인원 총 1,073명의 ‘젊은 작가 군단’으로 성장한 ‘동방의 요괴들’ 모두를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어 참여작가를 선정하기로 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공공성과 교육적 의미를 전면에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따라서 ‘결과’보다는 ‘과정’에 큰 의의를 두고자 했다. 벽화를 담당하는 작가뿐 아니라 프로젝트의 과정을 기록하는 사진, 영상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도 참여시키기로 했다.  
작년 10월 16일, 이천공장에서 개최한 작가 설명회를 시작으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약 70여 명의 작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의 기본 개념과 공모전 지원 방법에 대해 안내했다. 또한 국내외 공공미술과 벽화를 연구해 온 이태호 경희대 교수의 특별 강연도 마련됐다. 공모전은 크게 벽화, 사진, 영상 영역으로 선택 지원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11월부터 약 2달 간 나누어 진행됐다.
먼저 예심에서는 포트폴리오와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의 기본 컨셉트인 ‘전통의 현대화’를 주제로 작성한 지원서를 중심으로 심사했다. 권선 권순민 그리마 김남웅 김태윤 나광호 노경영 박미혜 신동근 이국현 이미희 이우리 임창욱 정영구 정지윤 정해민 조주연 최영 최유정 한석경 등 총 20명이 통과했다. 예심 통과자에게는 소정의 제작비를 지급,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를 위한 공모작을 새롭게 만들어 제출하도록 했다. 심사에는 샘표식품과 art in culture 관계자 외에 외부 심사위원으로 금천예술공장 김희영 총괄매니저를 초대했다. 또한 심사에 앞서 공모작을 이천공장에 전시, 직원들의 선호도를 반영했다.

생산동 및 연구소 건물을 맡은 이우리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프를 얻어 도안을 제작했다. 위층 측면과 굴뚝은 그리마 작품.

‘샘표 아트 팩토리’가 탄생하기까지

올해 1월, 드디어 최종 참여작가 6인이 결정됐다. 벽화 부문에 그리마(2009동방의 요괴들) 나광호(2 010) 이우리(2009) 정지윤(2010), 사진에 정영구(2010), 영상에 김태윤(2010)이 바로 그 주인공. 참여작가들은 선정 소식을 듣고 기뻐할 여유도 없이, 곧바로 1박 2일 워크숍에 들어갔다. 다시 한 번 이천공장을 방문해 좀 더 꼼꼼하게 현장을 답사했다. 그리고 근처 리조트로 장소를 옮겨 새벽까지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다.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주제를 정하려 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참여작가 6인 모두가 동의하고, 샘표식품 측에서 만족할 만한 주제를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참여작가들은 이천공장의 도면부터 샘표식품의 역사까지 면밀히 조사했으며, 다른 공공미술의 사례도 연구했다. 심지어 공장 직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수 십 번의 미팅과 회의가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되고 나서 ‘Dream Factory’라는 주제가 채택되었다. 작품 표현 방식에서는 공장 면적이 워낙 넓다 보니, 방문객의 견학 동선을 따라 건물 네 곳의 앞쪽 벽면을 중심으로 구상하기로 했다. 특히 공장 벽면에 규칙적으로 세로 방향의 요철이 나 있는 점에 착안, 전체를 하나의 병풍 형식으로 보고 <신 몽유도원도>를 제작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시안을 만들기 위해 각자 역할을 분담해 진행했다.
어느덧 3월, 샘표식품과 art in culture의 대표 및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작가들이 주제 및 시안을 프리젠테이션했다. 참여작가들은 3D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고, 리허설도 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했으나 현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요지는 애초에 샘표식품에서 제시한 기본 컨셉트인 ‘전통의 현대화’에서 아직 전통에만 머물고 있을 뿐,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존 시안에서 <몽유도원도>를 직접적으로 참조하는 데 갇혀 있었다면, 이번에는 ‘꿈’의 개념을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아우를 수 있도록 폭넓게 열어 두기로 했다. 과거 4명의 작가가 통합된 하나의 작업을 내는 방식과 달리 각각 한 건물씩 맡아 개별적으로 진행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이윽고 다음 달에 다시 열린 프리젠테이션에서 최종 시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게다가 각 건물마다 작가 본래의 작품과 연결 짓는 디자인이 나와서, 참여작가 입장에서도 전보다 잘 된 일이었다. 확정된 도안을 바탕으로 공장 건물에 좀더 세밀하게  3D 모델링을 입히는 작업과 페인트 컬러 넘버링 등 마무리 과정을 거쳐 5월부터는 공장 도색이 시작됐다. 기본 바탕색을 칠하는 업체와 그림만 그려 주는 전문 업체를 달리 선정, 보다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작가 김태윤과 정영구가 각각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단순한 다큐멘테이션이 아니라, 그 자체가 또 다른 예술 작품으로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영구는 현장 사진 촬영 외에 흥미로운 작업을 제안했다. 프로젝트 초기에 리서치 차원에서 들춰보게 된 샘표식품의 사보 등 과거 시각자료들을 모아 아트북을 출간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정영구 역시 프리젠테이션을 거쳐 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2 Time 2 Place》이라는 사진집이 출간됐다. 샘표식품의 65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면서도, 작가의 독특한 시선이 가미된 새로운 형태의 사진집이다.

작가 정지윤이 맡은 포장동 벽면 일부분. <십장생도>에서 모티프를 얻어 샘표식품 임직원의 부귀영화를 기원하고 있다.

간장공장이 곧 예술이다!

여름의 길목에 들어설 무렵, 마침내 벽화 도색 작업이 완성되었다. 그동안 박제처럼 온통 회색이었던 간장공장이 예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공장에 들어서면 가장 처음 관객을 맞이하는 포장동에는 큰 소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다. 건물을 맡은 작가 정지윤은 우리 전통 민화로 익숙한 <십장생도>에 착안, 나뭇가지 끝을 사슴 학 돌 물 등으로 연결시켰다. 이는 세밀화를 통해 전통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상징성을 그려왔던 작가의 개인 작품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샘표식품의 전통성과 역사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건강과 장수를 표현한 것이다. 동력동을 맡은 나광호는 샘표 직원과 견학 온 어린이들의 낙서를 이용해 사람들의 가장 ‘순수한 꿈’을 표현하고자 했다.
생산동 및 연구소를 맡은 이우리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하는 귀여운 동물을 통해 ‘환상적인 꿈’을 들려 준다. 샘표식품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으로 재미와 유머러스함을 간직한 기업이 되기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직원들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문에는 행운의 열쇠, 네잎클로버 등을 그려 넣음으로써 문을 통과할 때마다 행운이 올 것이라는 애정 어린 메시지도 담았다. 그리마는 곡물보관탱크부터 굴뚝과 문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표정의 아이콘과 생물체를 그려 넣어 상상력을 자극하고, 각각 독립된 공장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를 냈다.
참여작가 6인은 자신의 도안이 전문 도색 업체의 손을 빌려 실제로 공장에 그려진 모습을 보고 감동과 보람을 동시에 맛보았다. 작가 나광호는 완성된 벽화를 보면서 “젊은 예술가들의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꿈, 땀과 고민, 노력과 시간이 샘표 아트팩토리에 고스란히 기록되었다. 대중성과 예술성 간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공공미술의 예술적인 질을 높이는 과정이라면, 이번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좋은 사례가 되어 줄 것이다”는 소감을 남겼다. 또한 작가 김태윤은 “다같이 한발 한발 조심히 나아갔던 과정 자체가 더욱 훌륭한 작업이었던 것 같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만큼이나 닫혔던 마음을 조금씩 허물어 가며 이뤄 낸 꿈…. 공장 벽면만 밝아진 것이 아니라 진행하는 작가들의 마음도 밝아진 듯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의 진짜 주인공은 공장 벽화의 ‘실사용자’라고 할 수 있는 샘표 임직원들이다. 그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벽화가 완성되자마자 직원들이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전송하는가 하면, 휴일에 가족들을 데리고 나와서 구경시켜 주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견학 오는 방문객들 역시 버스를 내리자마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멀리서 보면 작품 속을 넘나드는 관객들도 작품의 일부이다. 공공미술이 진정으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작가 그리마가 맡은 곡물보관탱크. 사진의 반대편에 그려 넣은 재미있는 표정의 동그란 아이콘은 탱크 속에 보관된 콩을 상징화했다.

기업과 예술의 즐거운 만남

샘표식품은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완성을 기념하며, 지난 8월 19일 이천공장에서 샘표식품 임직원과 퇴직자는 물론, 작가들의 지인, 미술관계자와 언론인 등을 초대해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젊은 작가들이 주축으로 된 프로젝트인 만큼 젊은 감성으로 꾸몄다. 기획전 <D-Factory>를 마련, 참여작가 6인의 개인 작업들을 소개했다. 축제 분위기를 돋우는 밴드 우쿨렐레피크닉과 유자살롱의 공연, 특수 제작된 간장 솜사탕과 팔레트에 직접 덜어 먹는 ‘맛 퍼포먼스’가 제공되어 관객들의 귀와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또한 행사가 끝나고 돌아갈 때에는 참여작가 6인의 작품을 특별 패키지로 만든 선물세트를 증정했다.
프로젝트 진행 기간 동안 수없이 부딪혔던 갈등과 걸림돌들이 한 순간에 사그라들 만큼, 참여작가와 주최측 모두 흡족한 행사로 마무리했다. 농경지와 공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천이 젊은 활기로 가득 찼다. 행사에 참석한 조병돈 이천시장은 “이천에 700여 개 공장이 있는데 다른 공장에도 이런 프로젝트가 퍼져나가 이천이 미술로 유명한 도시가 되면 참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야말로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이천의 ‘랜드마크’가 되기에 충분했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의 눈부신 성과는 각종 일간지와 공중파 뉴스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동방의 요괴들’ 입장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사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자신의 작품을 선보인 경험이 적은 신진작가들이 기업과 일반 대중을 상대로 작업해 보는 경험은 흔치 않다. 또한 팀을 이뤄 다른 작가들과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작업을 진행하는 협업 방식은 더더욱 소중한 경험이다. 1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면서 참여작가뿐 아니라 샘표식품과 art in culture 임직원의 노고도 컸다. 두 회사 간의 긴밀한 협조와 협업으로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특히 샘표식품의 실무진이었던 이윤아 홍보과장은 과거 ‘쌈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프로젝트 진행 내내 젊은 작가의 입장에 서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덕분에 ‘여러 사공이 이끌던 배’는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사람들은 더 이상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보다 행복한 삶, 즐거운 삶을 추구한다. 이제 사회는 물질적 가치의 소비에서 정신적 가치를 향유하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기업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사회다. 따라서 최근 기업의 경영 철학에도 문화예술이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역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문화 CEO’ 박진선 사장은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가 완성되자마자 “공장 외벽은 완성되었으니, 이제 공장 내부를 할 차례”라며 또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동방의 요괴들’ 역시 문화적 마인드를 가진 기업과 또 다른 형태의 즐거운 ‘만남’을 기다린다. 기업과 예술의 만나, 함께 꿈을 펼치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건강한 문화 강대국으로 가는 길은 시작된다.

세계화의 시선으로 본 ‘오늘의 프랑스 미술’

셀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 <무제> 나무 바닥, 블루 라이너 펌프, 히터, 도자그릇, 물 가변설치 2009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11

세계화의 시선으로 본 ‘오늘의 프랑스 미술’

글|정 현 · 미술평론가

‘세계화’라는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한 약속은 21세기 문화지형도를 지배하는 화두다. 세계화의 힘은 지형학적 차이를 표준 시간으로 통일하여 시공간의 거리를 단축시킨다. 이 경우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정보의 힘이다. 물론 인터넷 환경이 상당부분 정보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는 있지만 실체를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문화의 세계화’는 우리를 유혹한다. 경계를 넘으라고, 그리고 전 세계에 흩뿌려져 있는 탈 중심주의 문화의 근원지들로 떠나라고 말이다. 문화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베니스 베를린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뉴욕 빌바오 이스탄불 상하이로 향한다. 과연 그들은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세계화의 딜레마는 다양성을 발판으로 한 문화의 표준화일 것이다. 국가라는 지역적 한계 속에서 서구의 세계화는 미술관이 수집품과 전시의 미학을 지배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미술관이 어떤 예술가의 걸작을 소장하고 있는가의 문제이지, 더 이상 시대적 지역적 차이는 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게 되었다. 결국 세계화의 유혹은 전문가적 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경우, 획일화된 관광주의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만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사람들이 외치는 세계화, 특히 문화의 세계화가 과연 전지구인이 동일한 문화를 향유하기를 기대한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문화에서의 세계화가 긍정적일 수 있는 것은 다양한 목소리에 의한 차이와 관용을 보여 주는 태도에 있다. 물론 다양성 혹은 다원화가 떠돌이 약장사의 만병통치약처럼 무분별하게 사용되지 않는 경우라면 말이다.

마티유 메르시에 <벽 위의 접시 동심원> 벽 위에 아크릴릭, 접시 1993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11

조금은 진화한 국제교류전

세계화의 달콤한 향기가 더 진해질수록 나와 같은 평론가나 저널리스트 문화행정가 기획자 학자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해진다. 특히 국제전이나 특정 국가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자리에서는 이들의 중추적 역할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특히 민족주의와 문화사대주의가 기이하게 혼재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국가 간의 교류전시 또는 국제전시가 이국적인 환상을 부추기거나 교과서에 등장하는 미술작품을 확인하는 기회만으로 축소되는 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상적으로 얘기하자면 하나의 전시는 그것의 규모나 정치 경제적 관계와 무관하게 개인으로서의 작가가 제시하는 현재의 질문을 함께 나누는 자리여야 한다. 더불어 점점 상품화되는 문화예술의 덫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의지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세르주 길보는 “많은 미술관이 국제적으로 확대된 오락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서구의 상당수의 미술관들이 권위를 통해 대중을 유혹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상주의 미술, 피카소의 작품은 유명 연예인의 프로필로 채워진 카탈로그와 다를 바가 없다. 바야흐로 예술의 상품화를 넘어 미술관의 부티크화가 시작된 것이다. 길보는 ‘부티크용 예술(L’art de Boutique)’이라 지칭하면서 이런 예술 작품은 특정 계층을 위한 예술이라 주장한다. 물론 길보의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일정 부분 미술시장의 현실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에서 해외의 동시대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적은 편이다. 물론 국제 비엔날레가 마치 전염병처럼 진행되고 있지만, 세계화의 전령과 같은 비엔날레는 어쩔 수 없이 예의 ‘정치적 올바름’으로 견고하게 포장되기 쉽기에 실제 현대문화가 펼쳐지는 현상을 포착하기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전시 미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최근 들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과거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던 국제교류에서 조금은 진화한 형태의 전시를 주최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한국미술 행정의 중심이 주로 동아시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면 최근 들어서 유럽과 북미는 물론 중남미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예를 들어 <이것이 미국미술이다>전(2011), <언어의 그늘-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소장품>전(2010), <인도현대미술>전(2009) 그리고 <국립 조르주 퐁피두 센터 특별전>(2008)까지 주로 국가별 동시대미술을 소개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동시대미술의 풍경을 살펴보면, 비엔날레 이외에 세계화의 틀이라 제시할 수 있는 긍정적 형식의 전시나 담론이 다소 빈약하다는 인상을 지우긴 어렵다. 어쩌면 프랑스 미술정책이 세계화의 원근법 속에서 독립성과 동시대성을 유지하기 위한 약간의 단서를 제공할지도 모르겠다.

왼쪽 · 미셀 블라지 <거품샘> 거품액 외 혼합재료 2007
오른쪽·필립 라메트 <그림자> 혼합재료 2007

세계화에 대처하는 프랑스 미술

세계화의 그늘이 지나치게 문화 자본의 의미를 부풀리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프랑스는 유독 자국의 문화 보호를 위해 외부 문화를 선별적으로 수용하여 문화적 시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일부에서 프랑스미술은 노화했다거나 동시대성이 약하다는 성급한 지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견은 세계화의 동시간성을 오독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다원예술의 무분별한 구조적 차용이나 과도한 타자 이론의 대중화, 그리고 ‘비판을 위한 비판’ 등 후기식민주의 문화이론의 유행이 동시대미술에서 이른바 ‘코드화’되면서 실질적으론 예술 생태계가 와해되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자국 문화를 잘 지켜오던 프랑스도 이제 프랑스 미술 자체를 브랜드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바로 2000년에 제정된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가 등장하면서부터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모든 국적의 작가들에게 수여되는 이 상은 젊고 신선한 작가 발굴과 창작 활성화를 위한 포석이다. 주목할 점은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의 주최인 ADIAF(프랑스미술국제보급조합)는 순수한 아마추어 컬렉터들로 구성된 모임이란 사실이다. 즉 미술 전문가들과 행정가들의 의견과 권위로 수여되는 상이 아니라는 점, 즉 예술애호가들의 관심과 애정이야말로 이 상의 의미 있는 가치란 점이다. 1차 작가는 조합원들이 선정하고 2차는 전문가들에 의해 최종 후보자와 선정자가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미술관련 상들이 미술계의 고질적인 폐쇄적 구조에 의해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선정되는 것에 반해, 실제 미술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순수한 수집가들에 의해 수여되는 상이란 점은 자본과 예술 간의 긍정적 상생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추측된다. 영국의 터너 프라이즈가 지나치게 상업화 미디어화되면서 국제적인 화젯거리처럼 비춰지는 것에 반해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는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보여 왔다. 하지만 2007년부터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 역시 브랜드화를 꾀한 것으로 보이는데, 파리의 국제아트페어 ‘피악(fiac)’에 이어 작년에는 상하이 엑스포에 참여했고, 올해는 일본과 한국에 젊은 프랑스 미술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게 한국으로 온 <오늘의 프랑스 미술>전은 올해까지 선정된 후보자와 수상자 가운데 16명의 작가를 소개한다.

‘프렌치 터치’의 요소들

그렇다면 프랑스미술의 오늘은 어떠한가?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전통적으로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방가드르의 정신과 질료의 조형적 가치를 섬세하게 다루는 교육적 환경은 동시대 미술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프렌치 터치’의 요소들이다. 특히 과학 화학 음악이 조형적 구조 안에 융합된 작업들이 눈에 띈다. 참여 작가 중 2010년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 수상자 시프리앙 가이야르는 세계 미술계에 두각을 나타낼 기대를 품게 만드는 작가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가이야르는 문화인류학적 시선을 담아 대지미술의 장소특정적 속성을 확장한다. <Desniansky Raion>(2007)은 3개의 개별적인 기록을 몽타주해 완성한 20세기 모더니즘에 보내는 묵시록이다. 1970~80년대 구소련 상트페테르부르크 근방의 아파트 단지에서 재개발권을 놓고 주민과 개발업자간의 난투 장면이 기록된 ‘우연히 발견된 필름(Found Footage)’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비디오 작업은 이념과 도시의 관계를 조망하고 있으며 역사와 기억의 밀접한 관계가 무시되고 파괴되는 비정한 현실을 건조하게 포착한다.  
모나코 출신의 미셀 블라지는 화학자이자 예술가다. 그는 미생물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화학적 구성물을 일상적 용기 안에 담아 전시 기간 내내 실시간으로 융합 현상을 실현한다. 그는 과학과 미술의 융합과 같은 일차원적 조합이 아닌 현대사회의 화학제품 남용을 시적으로 풍자한다. 2008년 수상자 로랑 그라소는 미디어의 광학적 요소인 빛, 자기장, 전기와 같은 비가시적 에너지를 시각화해 초현실적인 낯선 풍경을 선사한다. 그의 대표작 <프로젝션>은 파리의 좁은 거리에 내려앉은 구름 뭉치가 빠르게 관객을 향해 달려오는 만화적 상상력의 비디오 작업이다.
프랑스 미술에서는 뒤샹적인 위트가 묻어난다. 이 전시에 소개된 작가들의 작품은 관객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함께 유희를 즐기자고 얘기하는 것 같다. 그들의 놀이가 고급상점이 되어버린 미술관을 장식하게 될지, 아니면 진보적인 새로운 예술 공간을 요구하게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미술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실험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그릇도 이제 고민할 시기다.

일그러진 초상, 호주 ‘남성 히스토리’를 그리다

왼쪽 · <The Evo Project #15-Luke> 리넨에 유채 190×140cm 2011
오른쪽 · <The Evo Project #14-Guido> 리넨에 유채 190×140cm 2011

일그러진 초상, 호주 ‘남성 히스토리’를 그리다

글|마이클 디스먼드 · 미술평론가

2007년 벤 퀼티는 시드니 근교 레드펀의 그랜트피리갤러리(Grantpirrie Gallery)에서 개인전을 열어 그의 신작들을 선보였다. 작가는 6개월 된 아들 조(Joe)의 얼굴을 비롯해 청,장년기의 남자들과 노인들의 초상화로 전시장을 채웠다. 옆으로 눕혀 기울어진 수많은 초상화를 보며, 나는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직후인 1990년대 초 모스크바에서 목격했던 시체처럼 널브러진 동상의 두상들을 떠올렸다. 벤 퀼티의 초상화와 모스크바의 넘어진 동상들은 위기에 처한 신념, 사라진 확신, 사회 혁명 등 유사한 정서를 떠올리게 했다.

저항을 통해 남성성을 표현했던 초기 작업

벤 퀼티는 2005~06년 아치볼드상(호주에서 미술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이 나라의 미술상 중 역사가 가장 길고 최고의 영예로 꼽힌다_역주) 전시회에서도 이미 초상화를 여럿 선보인 바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퀼티의 작품이 시드니 서부 지역의 남성 문화에서 비롯된 마초의 시각을 형상화했다면, 2007년 그랜트피리갤러리의 신작들은 주제 면에서 극적인 전환을 보여 준다. 빠르고 조악한 기계들과 중금속 제품들에 탐닉하며 수컷임을 으스댔던 퀼티의 초기작에 비춰볼 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들을 그린 최근작은 어쩐지 그답지 않은 주제 선택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퀼티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남성다움을 과시하는 각진 디자인으로 호주 청소년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자동차 홀든 토래너(Holden Torana)를 그려 주목을 받았다. 홀든 토래너 그림에 이어 퀼티는 여러 가지 자동차를 의인화한 그림 연작을 발표했다.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해골을 그려 넣은 퀼티의 자동차를 좋아했다. 그림 속의 찡그린 사나운 해골은 남자들의 분노를 외부로 표출한 것이고, 또한 척박한 도시 환경에 대한 분노를 구체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동차 그림은 강한 남성성에 대한 은유에서 형성된 것이다. “대다수의 내 작품은 새롭게 삶을 시작하고자 모색하는 청년을 다루고 있다”는 작가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퀼티의 아기 그림은 이전의 자동차 그림과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들을 그린 그림은 퀼티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음을 알려 준다. 퀼티의 초기작은 패스트푸드와 자동차들, 음주와 약물, 그래피티 같이 이른바 반달리즘으로 비치는 1980년대 호주 청년들의 통과의례를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아들을 그린 그림은 아버지가 되면서 새로 갖추게 된 또 다른 남자다움, 즉 부모가 된 기쁨이나 자긍심과 책임감을 피력한다. 새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그린 신작들은 남성의 성적 능력을 드러내는 자동차와 해골, 사춘기의 자기파괴 충동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
퀼티가 아들 그림을 호주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사실과 닮음(Truth and Likeness)>전에 선보였을 때, 그와 함께 전시에 참여했던 한 여성 화가는 “이 아기 그림은 필시 남자 작가의 작품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나 역시 장담컨대 여성 화가가 아기를 그린다면 감상에 빠졌다고 비판 받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 화가가 자기 아이를 그린다면 그가 다정한 사람임을 드러내며, 진정한 남성성을 강조한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물론 20여 년 전에도 예술의 주제를 젠더, 곧 사회적 성차의 문제로 풀이하곤 했지만 그때는 남녀의 입장이 지금과는 반대였다. 과거에는 남성 미술가가 여성을 성애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여성 누드를 그릴 수 없을 것이라고 보면서, 여성 미술가가 여성 누드를 그리는 것은 여성적 가치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Nelson Street-serpent> 캔버스에 유채, 에어로졸 240×800cm 2006

몸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강렬한 붓터치

그렇다고 퀼티가 자기 아이를 살결이 보들보들하고 천사 같은, 다시 말해 관례적으로 ‘여성스러운’ 느낌으로 그렸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아들의 얼굴은 활력이 넘치는 붓 자국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듯하다. 만약 퀼티의 아기 그림을 조각으로 바꾸어 본다면, 흡사 전기톱으로 아무렇게나 깎아 낸 듯 울퉁불퉁하게 보일 것이다. 그랜트피리갤러리의 전시에서 선보였던 여러 초상화들과 마찬가지로, 아들의 이미지는 관람객의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혼란을 야기한다. 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그림이 주는 시각적 중압감에서 기인한다. 물감과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는 데서 비롯되는 효과이기도 하다.
퀼티의 그림에서 물감은 대상을 그리는 것 이상을 아우른다. 그는 널따란 붓으로 동세가 큰 붓질을 보여 준다. 마치 널찍한 덩어리를 스케치하듯 과장된 붓 자국이 드러난다. 이런 두툼한 붓 자국은 몸의 활력과 움직임을 나타내면서, 색채와 형태를 결정하는 심미적 선택의 궤적을 표시한다. 동시에 실물과 닮게 이미지를 구축하는 요소로도 작용하고 있다. 퀼티는 절제된 색채만을 사용하면서 윤곽선과 색조 변화만으로 주인공의 용모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만을 캐치해서 그려 낸다. 두텁게 바른 물감이 주는 물질성은 회화를 대상 그 자체로, 혹은 구축된 이미지로 인식하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퀼티의 그림은 단순한 시각 이미지로부터 독특한 지형학적 인식으로 보는 이의 관심의 초점을 옮기게끔 유도한다. 그는 물감이라는 재료가 가진 저항적이면서도 관능적인 물질성과 대상을 알아볼 수 있는 관습적인 이미지의 표현 방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벌이는 것이다.

유년, 청년, 노년 3세대의 남성의 초상화를 그리다

퀼티는 과거 호주 청년들을 다룬 자신의 작품에 내포된 유산과 상징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특유의 뻔뻔함과 유머러스함이 그림에 내재한 폭력성을 필연적으로 상쇄시킬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퀼티는 1770년 호주를 탐험하여 영웅이 된 제임스 쿡 선장을 마치 도심 뒷골목의 그래피티처럼 스프레이로 대강 그린 적이 있다. 그의 그림은 존 웨버(John Webber 1751~1793, 제임스 쿡의 항해를 그림으로 기록했던 화가_역주)가 그린 쿡 선장의 초상화에서 느껴지는 고귀함과 고급예술의 진지함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퀼티의 이런 방식을 뻔뻔함과 유머러스함 말고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그는 호주의 최장수 총리로 기록된 존 하워드(1939~ )의 얼굴도 쿡 선장과 마찬가지로 스프레이로 그렸다. 하워드의 얼굴로부터 뻗어 나온 스프레이는 마치 검정색 후광처럼 보인다. 전시장에서는 하워드의 초상화를 옆으로 돌려 놓았다. 2005년 이라크에서 인질로 억류되었던 호주인 더글러스 우드(1941~ )의 얼굴을 그린 <무제(더글러스)>도 옆으로 뉘었다. 개인의 정체성과 국가에 대한 충성은 중요한 문제지만, 노년 세대를 대표하는 하워드와 우드의 그림은 늙고 지친 듯 보인다. 이 전시에는 두 노인의 초상화 외에 퀼티의 자화상 두 점과 친구 로이드의 초상화, 그리고 2005년 시드니 근교 크로뉼라에서 벌어진 폭동에 참가한 익명의 젊은이의 얼굴을 그린 청년 세대의 초상화와 퀼티의 아들처럼 막 태어난 신생아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결과적으로 3세대의 남자들을 아우른 작품들로 전시를 구성한 셈이다. 여기서 제임스 쿡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호주와 뉴질랜드 남자들의 조상을 대표하고 있다.
퀼티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전시가 호주 남성의 역사를 탐색하는 첫걸음이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2007년 1월 22일 퀼티와 교환한 편지 중에서) 작가는 호주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쿡 선장과 하워드 총리, 인질 우드를 그리기 이전에도 퀼티는 아서 스트리튼(Arthur Streeton), 프레더릭 맥커빈(Frederick McCubbin), 앨버트 나마티라(Albert Namatjira) 등의 호주 미술사를 이끌어온 대가들을 그리면서, 호주의 미술사와 미학 전통 안에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마련했다. 하지만 이렇게 쿡 선장부터 아들까지 이어지는 부계 전통을 삶과 죽음, 대재앙까지 아우르는 역사로 여긴다는 것이 조금은 가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퀼티는 자기가 다루는 회화라는 매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특히 정치와 관련해서 미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다. 퀼티는 작품을 통해 정치적 선언을 하거나 군사력 동원을 촉구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정치적 현안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인간 고유의 감정 상태를 제시한다. 그는 대중이자 개인으로서 겪는 경험 사이의 교차점을 밝혀내고자 역사를 탐구한다.
유년, 청년, 노년 3세대를 그린 작품 하나하나마다 퀼티는 각기 다른 색채를 상징적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면 노인들에게는 회색과 검정을, 갓 태어난 남자아이에게는 장밋빛 색조를 써서 세대를 분명히 구별했다. 주인공이 있는 시간이나 장소에 대한 설명 없이, 그림 고유의 구조만을 강조함으로써 공간 속에는 얼굴만 어렴풋하게 떠다닌다. 한편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 위에 능숙한 붓질로 그린 퀼티의 솜씨를 보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데, 이 붓 자국에는 그림 그릴 당시 작가가 느꼈던 긴장감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캔버스를 스치고 문지르며, 때로는 일격을 가하는 듯 다양하게 드러나는 붓질의 흔적은 회화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필수적 요소다. 19세기 호주화가 휴 램지(Hugh Ramsay)의 작품에 필적하는, 예민하면서도 감각적이며 매혹적인 퀼티의 붓터치는 윤곽선 안쪽에 마치 건축물을 짓듯 색채 간의 관계를 구축한다.

<The Lot no.2 and The Lot no.3> 리넨에 유채, 에어로졸 150×160cm(각) 2006

팝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퀼티는 사진을 먼저 선택해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는 사진을 그대로 재현하는 포토리얼리즘 화가처럼 사진을 최종 결과물로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팝아트 미술가들처럼 아이러니한 현실을 냉담하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진은 그의 감정과 조화를 이루면서 상처 공포 기쁨 같은 감정을 강력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신속하게 그림의 구조를 만들어 곧바로 그리는 행위, 즉 바탕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붓질을 능숙하게 하는 방식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감정의 변화를 포착하게 한다.<무제(멍청이)>와 <무제(죽은)>이라는 제목이 붙은 퀼티의 자화상 두 점에서는 주인공인 작가 자신을 미화하려는 의도를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붓과 팔레트를 손에 들고 사색에 잠겨 있거나 혹은 관객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식의 상투적인 화가의 자화상과도 거리가 멀다. 대신 퀼티는 지저분하고 피곤에 찌든, 작가 스스로 고백했듯이 술에 취한 후 엉망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런 퀼티의 자화상과 비슷하게 그림 속의 친구 로이디의 얼굴도 밤새 술을 퍼마시셨는지 푸석해 보인다. 눈이 붓고 낯빛이 창백한 두 남자는 ‘자처한’ 과음으로 인해 스스로 망가진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호주의 유년 청년 노년 세대를 그린 퀼티의 작품은 한때 탐욕 권력 열정을 불살랐지만 차갑게 식어버린 청춘, 증명할 수는 없지만 장밋빛 미래의 초상을 상징한다. 퀼티는 남성의 역사를 그릴 때면 쿡 선장의 일기를 들춰 보곤 한다. 퀼티는 그 중 일부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나는 그들(호주 원주민)이 우리를 해안으로 부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실수였다. 보트에 오르자마자 그들은 우리에게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나는 원주민 두 명 사이로 총을 쏘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들 중 하나가 돌을 들어 우리에게 던졌다.”(제임스 쿡, H. M. S. 인데버 호 일지, 1768~1771 필사본, 790쪽) 퀼티는 유럽인과 호주인의 첫 만남이 남성의 폭력, 즉 우리의 원죄로 얼룩졌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상처 입은 남자들. 바로 퀼티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들은 요즘 세상에서 ‘남자답다’고 여기는 것과 현실의 간극에서 만족스러워하지 못하는 남자들이다. 망망대해 같은 인생 앞에서 목표를 잃고 어쩔 줄 모르는 청년들은 스스로를 ‘모두 더러운 세상에 몸을 담그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불합리한 세계의 폭력에 무기력하게 순응하면서도 영화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처럼 여전히 염세주의와 허무주의를 통해 남자다움을 정의하려 한다. 1999년에 개봉한 <파이트 클럽>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공허해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 주는 주인공 에드워드 노튼과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타일러 더든이 벌이는 내적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는 남자들이 존엄을 잃어버리고 타락하며 방황하는 순간을 설명한다. 타일러 더든의 어느 대사가 압권이다. “우리는 신의 차남(次男), 곧 맏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지도 않으며, 특별히 주목받지도 못한다.”(척 팔라닉, 《파이트 클럽》 중에서)

대칭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로르샤흐 그림’

최근 퀼티는 초상화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로르샤흐 그림(Rorschach Pain tings)>이라고 부르는 시리즈를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이 연작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이미지를 보여 준다. 하지만 이 로르샤흐 연작은 2005년 작품 <반 로르샤흐(Van Rorschach)>처럼 한 화면을 두 개의 패널로 나누고 거울을 비춘 듯 똑같은 사물을 보여 주는 작업과는 다르다. 최근의 로르샤흐 연작은 덜 마른 그림에 빈 캔버스를 엎어 생기는 대칭을 이용해 양쪽이 거의 동일한 추상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이 중 한 작품은 쿡 선장 그림부터 시작되며, 다른 작품은 쿡의 인데버 호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끈끈한 질감과 색채가 뭉그러지면서 원본 그림을 거의 알아볼 수 없지만 말이다. ‘로르샤흐 검사’는 대칭을 이룬 잉크 얼룩을 보고 연상되는 것을 피검사자에게 질문하여 자아에 대한 탐구를 쉽게 만드는 방식이다. 로르샤흐 검사에 쓰인 얼룩자국을 통해 피검사자는 상상력을 동원해 또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인지 능력을 알아 볼 수 있다. 퀼티의 <로르샤흐(쿡)>과 <로르샤흐(인데버 호)>는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원래의 이미지, 곧 과거의 메아리를 어렴풋이 알아보게 한다.
퀼티는 이상을 추구하고 정신을 고양하는 미술, 영혼 깊숙한 곳에 감동을 주거나 고차원의 개념을 다루는 미술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냉소적 태도를 거두지 않으면서, 회화의 물질성이 표출되도록 무미건조하게 작업하는 편을 선호한다. 퀼티는 물감을 마구잡이로 바르고 자전적 내용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면서 ‘영웅적 미술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그림은 평범한 삶 또한 어느 정도 영웅적이라고 말하는 호주인들이 꿈꾸는 드라마틱한 사건을 함축하고 있다. 삶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상처투성이다. 퀼티의 비판 정신이 나약한 남자들을 구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고통 받고 있으며 자아가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게끔 한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꿈 속에서 책임이 시작된다”고 했다. 또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상할 능력이 없다면, 책임이란 생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벤 퀼티는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신념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그는 공동체의 꿈과 책임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발언이야말로 미술이 맡아야 할 사회적 역할이라고 믿는 것이다.

정병국 제45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병국 1958년 경기도 양평 출생. 성균관대 사회학과 및 연세대 행정학 석사 졸업. 2004년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 1993~1998년 청와대 비서관을 역임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17대,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선거홍보기획본부의 본부장으로 활동했다. 2011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사진: 권현정)

“문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병국 제45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터뷰 | 김복기·본지 발행인

01‘통합’의 문화예술 정책                
>>>> 정치 갈등 해소하는 ‘소통과 화합’

art 바쁘신 중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장관께서는 취임 때 소통과 화합의 문화예술정책, 문화예술의 ‘사회 통합적 기능 실천’을 강조했다. 유독 ‘통합’을 강조한 것은 문화예술계에 갈등 요인이 잠복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갈등을 해소하는 ‘소통과 화합’의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병국(이하 정) 취임 이전에도 문광위에서 활동하면서 문화계 현장에서 많은 사람과 대화를 했다. 이 과정에서 느낀 점이 많다. 문화와 예술이 지닌 큰 힘이 있는데, 그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생각해 봤다. 예술의 힘은 국가 종교 이념 언어 등이 달라도 예술작품으로 승화된다면 사람들의 감동은 이심전심 하나로 귀결되는 데 있다. 서로 이질적인 요소를 하나로 만들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예술이요, 그것이 사회 통합의 힘이다. 그런데 이런 예술의 힘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정치적 정파 간의 갈등 요인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동안 문화예술 분야에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 경우가 부단히 있었던 사실을 반추해 보면 이해될 것이다. 그런 요인이 있다면, 문화예술의 힘을 진정으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art 장관께서는 지금까지 ‘소통과 화합’의 문제를 어떻게 행정적으로 실천했는가?
왜 갈등이 생겼는가. 우선 정부가 많지 않은 예산을 자기 입맛에 맞게끔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열악한 문화예술계가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결국 누가 정권을 잡느냐가 중요했다. 문화예술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정작 정권에 편향적인 사람이 맡았다. 결국 정부 지원정책의 편중 때문에 갈등이 증폭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면서 불편부당한 운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술 창작에 이념이 배제될 수는 없지만, 평가는 ‘고객’인 국민의 몫이다. 시청자와 소비자가 하는 것이다. 정책과 예산 편성, 집행 등을 불편부당하게 하는 환경 조성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2011년 6월 서울 종로구 소격동 옛 국군기무사령부 부지에서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 기공식. 서울관은 2013년 개관 예정이다.

02문화정책 ‘2.0 시대’의 포부            
>>>> 시대에 걸맞는 패러다임으로

art 지난 6월 28일 〈문화재정 확충을 위한 대토론회-상상과 창조의 시대, 문화정책 2.0〉을 개최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장관께서는 현재 정부 예산 총액 1%의 문화예산을 2013년까지 2.2%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이른바 ‘문화정책 2.0 시대’로 만들겠다고 했다. OECD 회원국의 문화 관련 예산이 평균 2.2%다. 이렇게 문화예산을 두 배로 확보하려면 정부 내에서도 조율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이거, 사실 어려운 일이다. 문화 재정을 2배로 올리기로 목표를 잡았지만 실질 예산 편성에서 재정 당국과 연이어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재정 당국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오늘도 대통령 주재로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도 말씀드렸다. 우리의 재정 계획이나 제도적 틀이 과거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 시대의 것이다. 이것을 ‘문화의 세기’까지 운영하고 있다. 내가 ‘문화정책 2.0 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단순하게 재정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기본적으로 정부 관료를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과거 어려웠던 시기, 문화 인식이 낮았던 시기의 틀을 깨는 일이 중요하다. 그걸 알면서도 그 틀을 해체하려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예를 들어 어떤 예산을 요구할 때도 당장 눈앞의 것만 요구하지, 멀리 내다보며 큰 틀을 바꾸어 보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부분들이 너무 안타깝다.
art 어떤 논리로 문화 예산을 더 따내야 하는가? 기우이지만, 장관이 바뀌거나 정권이 바뀌더라도 ‘문화정책 2.0 시대’가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논리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 내에 압축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 냈다. 다른 나라가 4~500년 만에 이룬 산업화를 우리는 10분의 1로 단축했다.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느냐면, 부모 세대의 교육열, 양질의 값싼 노동력, 그리고 무자원 상태에서 노동력을 철강, 선박, IT 등에 집중한 전략적 투자였다. 그 당시 전체 예산 대비 2~7%를 기간산업에 10년 이상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이다. 이 산업들이 오늘날 국가 산업의 기반이 돼서 세계 5위권에서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제조업 시대가 아니라 문화의 시대다. 이런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나는 최소한 문화 재정이 전체 예산의 2%는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OECD 국가들은 2~2.5% 정도 운영하는데, 우리나라는 문화 체육 관광 다 포함해서 아직 1%에 불과하다.

03문화산업의 투자가치               
>>>> 국가 브랜드 상승, 고용 창출 효과

art 문화의 투자가치가 크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문화 체육 관광은 (1)사회 통합적 가치 (2)외교적 가치 (3)교육적 가치 (4)문화 복지적 가치 (5)경제적 가치 등을 창출한다. 자,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 실업을 생각해 보자. 청년 실업은 일자리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일손이 부족해 외국 근로자를 40만 명을 고용하고 있지 않은가. 청년 실업은 우리나라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다.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의 희망 직종 1위(33%)를 문화 계열이 차지했다. 이런 면들만 봐도 문화산업을 얼마나 중요시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같이 무자원의 나라에서는 인적 자원을 통해 어려움을 돌파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바꿔 말하면, 제조업 분야는 R&D(연구개발) 분야에 투자하면 할수록 자동시스템으로 바뀌면서 고용이 줄어든다. ‘고용 없는 성장’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고, 딜레마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데 반해 엄청난 수입이 사회에 순환되질 않고 있다. 그것을 순환시킬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문화산업이다. 문화산업이란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고용지수가 높다. 무엇보다 한국은 탤런트가 있다. 한국의 ‘무형 자산’, 즉 보이지 않는 국가 브랜드와 이미지를 높이면 그 효과가 엄청나다. 그래서 재정 확보가 필요하다.
art 문화 산업 고용지수의 높낮이. 그런 문제에 대해선 사실 문화계 사람들도 잘 모른다.
제조업 분야에 10억을 투자하면 6~7명의 고용창출을 얻게 된다. 그러나 관광산업이나 문화산업 쪽에 같은 투자하면 12~18명까지, 두 배 이상이 창출된다. 문화산업은 브랜드 가치가 높고, 고용 창출, 부가가치가 높다는 세 가지 측면이 중요하다.
art 장관께서는 국회의원으로서 2009년 예술인복지지원법을 발의해 예술인들이 최소한 4대 보험의 혜택을 누리게 하겠다고 했다. 이 문제는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는가?
벌써 2~3년 전 일이다. 그때는 문화예술계의 몇몇 분 이외에는 복지지원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최고은 작가 사건 이후로 예술인 복지가 사회 문제화되면서 여야 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 결과 내가 냈던 예술인복지지원법 개정 문제가 문광위까지 통과됐다. 그러나 법만 개정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 부처 간의 조율이 되어야 한다. 예산과 다른 법과의 충돌, 다른 직군 간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조율 과정에서 벽에 부딪혔다. 재정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도 타결 의지가 있다. 다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안은 정부와 여당이 함께 TF팀을 구성해서 극복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올해 안으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예술인 복지는 여타 다른 취약 계층과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일방적인 사회적 지원보다는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일이다.

세계 82대 미술관의 국가별 미술관 수

04취임 이후의 정책 성과들               
>>>> 해외문화원 확충, 법령과 제도 개선

art 문화의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 절실하다. 바로 이 점에서 ‘문화 외교의 전진기지’인 해외문화원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008년 12개에 불과하던 재외문화원이 올 연말까지 24개로, 내년까지는 총 31개로 늘어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문화예술원의 숫자 팽창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운영을 좀 더 내실 있게 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원에서의 발표 기회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개발도 중요하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동안 우리나라 문화원 개설은 선진국 중심이었다. 문화원의 역할이 미미했었다. 우리 문화원에 오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우리보다 나은 문화를 가지고 있을 때 그 문화원을 방문한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제3세계 국가 중심으로 문화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가 카자흐스탄에 세계 최초로 문화원을 개설했는데, 그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다른 나라들도 뒤따라 문화원을 설립했다. 수도 아스타나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문물을 접하려면 한국문화원을 가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거기서부터 K-POP이 전수되고, 한글교육과 한국 문화가 확산하는 것이다. 문화원을 전진기지라 부르는 데에 이런 이유가 있다. 그래서 지금은 문화원의 양적 팽창이 중요한 시기다. 한정된 인력을 쪼개다 보니, 지금 정부에서는 문화원 한 곳에 한 명을 파견하고 있다. 나머지 인력은 현지 채용이다. 이런 사정으로 문화원 운영이 시스템화되지 못했다. 현지 교육과 체계가 잡히면 운영이 안정될 것이다. 한글교육을 체계화하기 위해 ‘세종학당’이라는 이름으로 규범화시키고 있다. 교재, 강의실, 교사 등의 틀을 확실하게 갖추어야 ‘세종학당’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 세종학당을 나오면 수준을 몇 급으로 정해 주는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문화원은 천편일률적으로 틀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각 국에 걸맞는 틀을 구성해야 한다. 현재 체계를 확립하고 있다.
art 국회의원으로서 2005년에 문화예술위원회 전환에 큰 역할을 했다. 장관으로서 그동안 문화예술위원회 활동의 성적을 매긴다면? 행정과 운영 등 실질적인 면에서 현재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동안 위원장 선임을 둘러싼 잡음도 있었다.
아쉬운 점이야 많다. 문화예술진흥위원회에서 문화예술위원회로 바꾸게 된 동기는, 문화예술진흥위원회가 정부 예산 지원을 문화예술단체에 하면서 정부에 많은 부분을 의존했다. 이것을 문화예술인들 스스로 꼭 필요한 부분을 자율적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활용하면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위원회가 구성된다고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학연 지연 파벌 등을 중심으로 편향되게 운영되는 등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과도기적 단계에서 여러 문제가 야기됐지만, 그래도 정부가 운영하는 것보다는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인 측면이 많다. 현재는 자리 잡아가는 과정이라 본다. 기관장 평가 및 기관경영실적 평가에서 1등급 상승했다.
art 관 개입에서 탈피, 큰 틀에서는 민간 자율로 바뀌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이제는 문화예술인들도 생각을 좀 바꿀 필요가 있다. 자율적으로 꼭 ‘내’가 아니라 ‘우리’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는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되지만, 공적 예산을 운영하는 일은 ‘우리’로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미술 분야에 대해 지원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이다. 누가 선정돼도 ‘우리’로 접근해야 한다. 공과 사는 구분이 돼야 한다.
art 장관 취임 이후 효과적인 정책 실현을 위해, 규제제도 개선 TF팀을 운영해 153건의 개혁 과제를 발굴, 35건을 개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자료를 보면 과제 종결 처리 6건, 장기 추진 과제 2건 등 8건을 제외하고, 규제 개혁을 위한 법령 정비가 124건, 제도 개선이 21건 등 총 145건을 과제로 삼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해 달라.
제도 개선을 위해 발굴한 총 145건 중에서 취임 이후 8월 현재 57건을 완료했다. 1/3을 개선했다고 할 수 있다. 미술 분야에서는 기업에서 예술품을 구입할 때 300만 원 이하에 적용하던 손비 인정 범위를 상향 조정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법인세법 시행령을 개정할 예정이다. 또 미술작품의 기부 세제 혜택 부여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규제 완화는 관광 분야가 많다. 동남아 관광객에 대한 비자 발급 절차 간소화, 관광단지 내 의료시설 설치 법제화를 통해 의료관광객 유치 등을 들 수 있다. 또 도시 내 복합건물에 호텔이 못 들어오는 법규를 완화했다.

05국립현대미술관 운영               
>>>> 서울관의 차별화, 법인화 추진

art 순수예술, 시각예술 분야로 좁혀서 질문하겠다. 첫 번째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지난 6월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기공식이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 심장부에 건립되면 ‘도심미술관’ 시대를 맞게 된다. 장관께서는 서울관이 어떤 특징을 지닌 미술관이길 바라는가?
국립현대미술관 공간이 과천, 덕수궁, 서울관 세 군데가 된다. 이것을 지금처럼 운영하면 차별화할 수 없다. 그래서 세 개 관의 역할을 특징지을 필요가 있다. 과천은 연구 교육기관의 역할을 강화해 종합적으로 그림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덕수궁은 근대미술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그동안 과천관이 위치 때문에 제 기능을 못했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나는 위치보다 그 미술관의 특색과 컨셉트를 어떻게 잡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있는 똑같은 작품이라면, 그 미술관에 찾아올 사람은 없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나라의 컬렉션이 다른 나라에 비해 뛰어난 것도 없다. 그만큼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았다. 평범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을 보러 과천까지 갈 이유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관은 색다른 색조를 나타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미술 사조나 비디오 아트 혹은 설치미술을 보기 위해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가야 한다든지 어떤 뚜렷한 흐름을 갖고 구체적인 접근을 해서 이것을 선도하는 미술관이 되어야 한다. 미술관이 백화점식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고, 많은 콘텐츠를 축적해 온 다른 나라의 미술관과도 경쟁할 수 없다. 서울관이 새로운 것을 치고 나가면서 끌고 가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art 예를 들어 일본처럼 도쿄에 국립으로 근대미술관이 있고, 현대미술관, 신 미술관이 있듯이 성격이 서로 다른 미술관으로 정착돼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가서는 공부하는 학생이나 일반 관람객이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와 닿지 않는다. 이젠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흐름이 이렇고, 근대미술의 작가는 누구인지 정도는 알고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art 국립현대미술관과 관련해서 법인화 문제가 쟁점이다. 현재 이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장관께서는 법인화의 당위성을 어떻게 보는가? 미술계에서는 법인화의 실패 사례로 일본의 경우를 들고 있지만…. 오히려 야당 쪽에서 반대하고 있다.
우선 법인화 문제에 상당히 큰 오해가 깔려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는 사립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부에서 직접 관장하는 데서 오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 잘 되고 있으면 왜 굳이 바꾸려고 하겠는가. 이런 오해는 심각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1년에 컬렉션 예산으로 50억 정도를 쓴다. 많은 사람은 그 돈으로 그림 한 점 제대로 된 걸 살 수 있느냐며 의문을 가진다. 그러나 컬렉션 예산이 잡힌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 대다수는 전적으로 기금이나 후원을 통해 컬렉션이 이루어진다. 정부 예산으로 컬렉션을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제도를 바꿔주자는 것이다. 누구든지 기부, 후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자는 것이 법인화로 가는 방법이다. 그것 역시 정부가 관할해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미술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해 보자는 측면이 강하다. 기관의 자율성, 경영 효율성, 전문성 확보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정부가 인건비, 사업비, 시설비 등을 예산 범위에서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수익금이나 기부금 모집 등 다각적인 재원조달의 길을 열어 주자는 것이다. 예산은 지원하되, 법적으로 독립된 기구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art 한 국가의 미술문화의 척도는 미술관의 수준에 달려 있다. 한국은 GDP 순위 15위의 경제 강국임에도, 세계 82대 미술관에 단 한 개도 들지 못하고 있다. 이어령 초대문화부장관 시절, ‘1000개 미술관’의 꿈을 꾸었다. 우리나라는 경제 수준에 비해 미술관 문화에 대한 투자가 낙후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문화예술 중에서도 순수미술에 대한 지원이 낮다. 미술관 정책에 관한 장관의 생각은?
우리 미술시장의 창작 활성화 및 유통 선진화를 위해 미술관 육성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특히, 미술계에서는 문화예술 강국의 위상을 갖기 위해서는 미술관 육성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 문제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국가 재정 운용 측면에서의 전략과 정부 차원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그간 우리나라 미술관 수는 매년 15% 내외 지속적으로 증가해 현재 약 170개의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 평가할 때 풍부한 콘텐츠 요소 및 운영비를 확보하지 못해 부실 운영되는 사례가 많다. 문화부는 미술관 운영의 질적 측면을 제고하기 위해 미술관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미술관 발전을 위한 제도 개선에도 노력하고 있다. 현재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미술관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세제 혜택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으나 미술관에 대한 기부 및 기증과 관련해서는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 과세 당국과 협의해, 기부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왼쪽 · 2011년 6월 개관한 스페인 마드리드 한국문화원 전경
오른쪽 · 호주 시드니 한국문화원에서 개관을 기념해 열린 <Korean Art Today(ON NOW)> 전경.

06미술시장 활성화와 선진화              
>>>> 세액 공제 도입, 양도세 유보

art 미술은 순수 예술 중 가장 투자 효과가 크고 파급 효과가 큰 산업이다. 이 미술산업 유통 구조의 최종 종착지는 미술관이다. 미술관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이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개인과 기업이 미술관에 작품을 기부할 경우 대폭적인 세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기업 메세나의 활성화도 결국 이 문제가 깔려 있다. 장관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문화예술과 미술산업의 부가가치에 대해서는 더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문화재정 확보와 세제 개선은 아직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재정 및 과세 당국과의 협의 등이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올해 국회에서 메세나 및 예술 기부에 대한 세제 지원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이 발의되어 문화예술 및 창조산업 분야에 세액 공제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기부를 직접 세액공제와 연계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향후 세제 혜택 확대를 위해 국회와 정부가 함께 전폭적인 지원 및 노력을 기울이겠다.
art 현재 미술시장이 불황이다. 미술시장과 관련해서는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 문제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법안은 1990년부터 20년 동안 소모적인 논란이 지속되다가 2013년부터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다. 장관께서는 이 법안에 관한 한 ‘폐기’에 앞장섰던 분이다. 현재의 입장을 정리해 주셨으면 좋겠다.
2007년, 2008년 미술시장은 극심한 침체에 빠졌다가 2009년 가까스로 회복세에 접어들어 그 규모가 공공분야를 통틀어 이제 약 4천억 원에 이르고 있다. 양도세 부과를 유예하도록 입법한 것은, 양도세 부과 자체를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까스로 회복세를 보이는 미술시장이 과세로 인해 얼어붙지 않도록 안정성을 가질 때까지 유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원칙적으로 소득에 관한 과세는 타당하지만, 양도세 부과가 유예된 기간에 미술 작품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과 미술계의 자구적 노력이 필요하다.
art 경기도 양평에 아트밸리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양평은 환경이 수려한 데다 작가들의 작업실도 많아, 예술특구로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화랑을 입주시키고 아트숍 레스토랑 카페 등이 들어서면 중국 798예술구 못지않은 국제적인 명소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양평 남한강 연수원 부지를 활용하여 자연환경과 예술인 밀집 지역의 특성을 살린 ‘미술 특구’를 2013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창작 스튜디오, 화랑, 아트페어 전시관, 아트텔 등 미술 관련 복합시설을 단계적으로 건립하고, 전시 아트페어 레지던스 등 각종 창작 향유 프로그램을 운영해 창작과 유통이 유기적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특구로 조성할 계획이다. 지적하신 대로 중국 798예술구는 중국이 세계 미술시장 4위의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 외 일본 나오시마 프로젝트 사례 등에서도 보듯이 예술특구 조성은 자국의 미술시장 활성화와 관련 산업의 동반 성장을 이끄는 전략적인 사업이다. 남한강 예술특구가 조성되면 이처럼 한국의 미술시장 활성화와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대표 거점으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2010년 이재효 작가의 작업실에서.

07미술과의 만남               
>>>> 신진작가 작품 구입하는 애호가

art 명동예술극장에서 <무녀도>를 본 것이 인생을 바꿨고,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사연을 여러 보도를 통해 밝혔다. 미술과의 만남은 무엇이 있는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사생대회에서 상도 받고, 그림 잘 그린다는 평도 받았다. 그러나 입시 때문에 그림을 계속 그리진 않았다. 그 뒤에 그림은 나와는 별개의 세계, 특정 분야의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분야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통일민주당 시절이었다. 김영삼 총재 비서 생활을 할 때, 민정당 통일민주당 자민당 삼당이 합당을 해 민자당이 됐다. 그래서 총재실을 이사하면서 사무실의 도자기나 그림을 분양받듯이 비서들이 하나씩 갖게 되었다. 그때 나는 황영성 작가의 8호 정도 되는 그림을 갖게 되었다. 색감이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었다. 처음엔 이 그림 가격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그때 인터넷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고 쉽게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전시회에 황영성 작가의 그림이 나왔나 가서 둘러보고, 그러다가 황영성 작가의 개인전도 찾아가서 그림이 얼마가 되나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림을 보는 일이 취미가 되었다. 그 이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비서관, 부속실장으로 근무할 때 미술계가 불황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 당시 한국화랑협회의 권상능 회장께 내 경험을 말하면서 지금은 그림에 관심을 갖기에는 벽이 너무 높으니 그 벽을 허물라고 했다. 그때 내가 ‘한 집 한 그림 걸기’를 제안했다. 모든 화랑이 100만 원 이하의 소품을 일정 기간을 정해서 일시에 전시했다. 3, 4년 지속했다.
art 작품 소장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 이후로 그림을 사기 시작했다. 그때 100만 원 미만이니깐 조금만 돈을 아끼면 그림을 살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나왔다고 하면 경쟁이 많이 붙었다. 그러면 친구들 이름까지 넣어서 추첨하는데도 잘 안 됐다.(웃음) 그러면서 하나하나 산 것이 5년 동안 30~40점 되더라. 청와대 임기가 끝나고 외국에 갔다가 돌아와서 국회의원 하는 사이 작품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시골집 창고에 그림이 있다고 했더니, 평가해 주겠다며  갖고 오라고 했다. 근데 내 작품을 보더니 돈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거다. 다시 되팔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다행히 한 30여 점 중에서 한두 점이 돈이 됐다. 그 한두 점이 남은 작품 값 전체를 커버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작품을 친구 집들이나 다른 분들에게 선물로 주면 참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갖고 있다가 친구들에게 선물 주는데 그게 큰 기쁨이다. 큰 그림은 못 사더라도 아시아프 같은 곳에 찾아가 젊은 작가 그림을 산다. 올해에도 두 점을 샀다. 이렇게 1, 2백만 원 안팎의 신진작가의 작품을 간혹 구입한다. 그게 재밌다.
art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가?
많이 사는 건 아니지만, 사면 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작가들의 그림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내가 가진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재산 등록한 것이 김종학 작가의 작품이다. 인사청문회 때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게 내 재산등록 1호다. 〈박꽃〉이다. 달밤에 박꽃이 피어 있는 그림이라 침실에 걸어 놓고 자면 시골집에서 자는 기분이 들어 좋다.
art 문화 행정가로서 멘토로 삼을 인물이 있다면?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10년 모셨다. 정치하는 원칙과 방향에서 그분에게 많은 부분을 배웠다. 어떤 사안을 의논 드리기 위해 찾아가면 언제나 단순명쾌한 해결안을 제시해 주셨다. 그분은 모든 것은 단순화시키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하신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말도 그렇게 나온 것이다. 원칙을 갖고 가면 그게 답이다.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 영향을 받았다.
art 오랜 시간 감사드린다.

무한의 제시

이우환 <대화> 철, 돌 200×400×1.5cm(철판, 각) 70cm(돌, 각) (Photo: David Heald)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Courtesy of Kukje Gallery, Seoul 구겐하임미술관 설치 장면 2011

무한의 제시

알렉산드라 먼로 인터뷰

이우환의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 <무한의 제시>는 1960년대부터 근작에 이르는 총 90여 점의 작품을 연대별 테마별로 전시하고 있다. 1968년 모노파 시절의 작품 <관계항-현상과 지각 B>를 비롯한 6점의 대표작을 시작으로, 1964~78년에 제작한 회화 연작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모노파(物派) 시절의 조각 및 설치 작품, 뒤이어 1980년부터 2009년 사이 제작된 <바람으로부터> <바람과 함께> <조응> 및 <관계항> 연작, 마지막으로 최근 작업 중인 <대화> 연작을 미술관 전관에 걸쳐 소개한다. 특히 이우환은 이번 전시를 위해 1960~70년대에 선보였던 <관계항> 작업들을 전시장에 재제작했다. 그 중 고도의 집중된 행위로서 유리판 위에 돌을 살짝 떨어 뜨려 유리를 깨뜨린 후 그 결과물을 전시한 <관계항-현상과 지각 B)>(1968)를 위하여 작가는 직접 당시의 행위를 재연했다. 또한 쿠션 위에 놓인 돌들을 설치한 <관계항-Formerly Language>(1971)는 공간과 돌과 빛의 관계, 나아가 이 공간을 통과하는 관람객이 만들어 내는 모든 관계를 일깨우는 장면을 연출한다. 한편, 6월 24일에는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 ‘이우환과의 대화’가 열려,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적 내용을 비롯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들어 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프로그램에는 전시 기획자이자 구겐하임미술관 삼성 아시아미술 수석큐레이터인 알렉산드라 먼로, 프랑스 생테티엔느미술관 관장 로랑 헤기가 참여했다.
구겐하임미술관은 2006년 서구 근현대미술관으로서는 최초로 학예연구실 내에 아시아 근현대미술 부서를 창설하여 연구 및 전시를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다. <무한의 제시>전 또한 아시아의 현대미술 거장을 북미 지역에 본격 소개한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이 부서의 수석큐레이터이자 본 전시기획자인 먼로는 1982년 도쿄 소피아대를 졸업한 후 뉴욕대에서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재팬소사이어티갤러리 디렉터를 역임했다. art는 먼로와의 대화를 통해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와 준비 과정, 그리고 현재 미국 현지 반응을 듣는다. 또한 구겐하임미술관 아시아 근현대미술 프로그램의 앞으로의 계획도 소개한다.
art <무한의 제시>전의 일정이 반 정도 지났다. 그 동안 이 전시를 찾은 각계각층 관람객의 반응이 궁금하다.

알렉산드라 먼로 삼성 아시아미술 수석큐레이터와 이우환
2011년 뉴욕 햄턴에서 작업에 쓸 돌을 찾고 있는 모습 (Photo: Sandhini Poddar)

Munroe 이우환 회고전은 전 세계 관광객들을 포함해 일일 방문객이 평균 4000명에 달할 정도로 관객들의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작가들에게 인기가 많으며, ‘무한’이라는 이우환의 개념에 흥미가 있는 철학자들과 물리학자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art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이우환의 대규모 회고전을 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준비 기간이 얼마나 걸려서 이번 전시가 기획 완성되었는지, 이우환과의 협업 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Munroe 구겐하임미술관은 이 전시를 위해 2008년에 이우환과 처음 접촉했고, 2009년에 그의 개인전을 열기로 확정했다. 우리는 이우환과 뉴욕 및 일본 가마쿠라에서 서너 번 만나 전시를 연구하고 기획했다. 그 중에는 4000㎡에 이르는 미술관의 전시 공간에 90여 점의 작품을 배치하는 정밀한 계획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구겐하임미술관은 생존 작가 전시 기획으로 명성이 높다. 때문에 우리는 전시를 기획할 때 언제나 작가와의 협업을 중시한다. 학술적인 도록과 대중 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해, 우리는 전시 전반 내용을 결정하는데 있어 이우환과 긴밀히 협력해 일했다. 그가 협업을 거쳐 완성된 최종 결과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워해서 기쁘게 생각한다.
art 이우환은 아시아와 유럽에서의 명성과 활약에 비해, 미국에서는 작품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뉴욕 현지를 비롯한 미국 미술계의 이우환에 대한 관심과 평가는 어떻다고 보는가?
Munroe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 잡지인 《아트포럼》이 이 전시에 긍정적인 프리뷰를 실었고, 예외적으로 장문의 리뷰를 준비 중이다. 이러한 관심은 미국 미술계에 이 전시가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도움을 줄 것이고, 이는 미국에서 이우환의 비평적 위치 및 인식을 확실히 높여 줄 것이다.
art 이우환의 작품은 철학적인 내용과 이론적 깊이 때문에 그 본질을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몇몇 현지 리뷰를 살펴 본 견해로는 이우환의 작품에 내재된 깊은 철학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비평하기보다, 작품의 외형적인 맥락에 초점을 맞춘 비평이 다소 눈에 띄는 것 같아 아쉬움도 든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론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한 이우환의 깊이 있는 사유와 작품 세계를 어떻게 융합적으로 소개하고자 했는가.
Munroe 이우환은 작가로서의 명성만큼 17권의 저서를 낸 사상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벽면, 라벨, 오디오 가이드, 미술관 웹사이트에 그의 저서에서 발췌한 글귀들을 인용해, 전시에서도 철학자로서의 이우환의 면모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이번 전시 도록은 이우환의 비평적 산문 선집이기도 한데, 수록글 중에는 영어로 처음 번역된 글도 많다. 대부분의 미술 작품처럼 이우환의 작품 역시 관련된 배경 지식을 깊이 이해하고 감상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 자체로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 사실 전시를 본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이우환의 작품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가장 많이 반응하고 있다.
art 이우환의 작업은 특히 전시 공간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독특한 로툰다 건축 구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설치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가.
Munroe 처음에 이우환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나선형 램프에 작품을 설치하는 것을 걱정했다. 그는 자기 작품이 ‘공간 자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공간 안에 오브제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우환은 자신의 회화와 조각을 ‘화이트 큐브’에 설치하는데 익숙한데, 화이트 큐브의 압축된 공간감이 작가가 원하는 특수한 공간적 긴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압축되고 고요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우리는 상층 3개의 램프 일부를 부분적으로 가리는 반투명한 막을 고안했다. 그게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전시 막바지에 이르러 이우환은 구겐하임의 독특한 구조를 좋아하게 됐고, 자신의 작품과 건물이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구겐하임미술관의 건축과 이우환의 작품 모두 관람객들로 하여금 ‘공간 안에 있음’을 인지하게 해주고, 불안정하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존재 자체의 본성을 드러낸다.
art 기획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주력한 부분은 무엇인가.
Munroe 나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이우환을 전 세계의 가장 중요한 작가 및 사상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미니멀리즘과 포스트미니멀리즘에 대한 서구 미술계의 인식을 확장시켜 한국 일본 유럽에서 활동하는 아시아계 작가들의 시각과 작품을 수용할 수 있기를 바랬다. 이는 미국에서 미술사라는 학문 자체를 좀 더 포괄적이고 국가를 초월하는 하나의 모델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큰 목표의 일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기존 미술사의 주요 작가 및 사조를 동시대미술의 넓고 복합적인 이야기로 조명하고 통합시키려는 것이다.
art 미술사학자이자 미국의 아시아 현대미술 전문가로서 당신이 이우환의 작품을 처음 접하고 그 중요성을 깨우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Munroe 나는 1980년대 말 일본에서 이우환을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1945년 이후의 일본미술: 창공을 향한 외침>이라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시 그 전시는 일본에서나 미국에서 전후 일본 아방가르드 미술을 개괄하는 최초의 전시였다. 이우환은 근대성 식민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직결되는 모노파의 이론적 지도자였기 때문에, 나는 그 전시에서 이우환의 작품을 선보였고 도록에서도 그의 작품의 급진성에 대해 길게 논했다.
art 테드 루스(Ted Loos)가 쓴 《뉴욕타임즈》 기사에서 당신은 이우환의 ‘돌 채집’에 대해,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물을 본다. …그의 감각이 상승했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놀랍다. 나는 한 번도 이런 종류의 에너지가 그에게서 방출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라고 했는데, 참 인상적이다. 그와 함께 돌 채집에 나갔던 당시의 에피소드가 듣고 싶다. 또한 그러한 작가의 과정이 이번 전시에서 어떻게 작업으로 승화되었다고 생각하는가.
Munroe 이우환의 ‘돌 채집’은 그의 작품 제작의 핵심이다. 그는 전시가 열리는 지역의 채석장에서 돌을 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작품을 선보이는 장소와 연결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우환은 샤먼이 이승에서 영혼을 찾듯이 자신이 쓰고 싶은 돌을 찾는다. 그가 좋아하는 돌은 주로 매끈하고 둥글둥글한 화강암으로 ‘지나치게 개성이 강하지 않은’ 돌이다. ‘돌 채집’은 그의 순수하고 응집된 직관으로 이루어진다.
art 당신은 지난 2006년 구겐하임미술관이 창설한 아시아 근현대미술 부서의 선임 큐레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이 부서의 그간 연구 및 전시 업적, 향후 계획을 설명해 달라.
Munroe 아시아미술 프로그램은 아시아 근현대미술사를 전시 프로그램 및 작품 수집에 포함시키기 위해 출범했다. 통합적이고도 맥락이 풍부한 근현대미술사의 초국가적 모델을 발전시키기 위해 아시아미술의 연구 수집 전시 교육을 지원한다. 아시아미술 프로그램은 2006년 출범 이래, 구겐하임미술관의 국제적 시야를 넓히고 큰 상을 수상한 몇몇 전시들을 선보였다. 그 중 <차이 궈창: 나는 믿고 싶다)>전(2008)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후 스페인 빌바오구겐하임과 베이징의 중국미술관을 순회하며 세계적으로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제3의 정신: 아시아를 관조한 미국 미술가들 1860~1989>전(2009)은 학술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전시였으며, 이우환 회고전은 그 다음을 잇는 아시아미술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다. 베를린 도이체구겐하임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전시한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 설치 <기억(Memory)> 역시 아시아미술 프로그램의 큐레이터들이 기획한 것으로 비평계의 찬사를 받았다. 2012년 구겐하임미술관은 베를린 도이체구겐하임에서 열렸던 <혼자이자 다수 되기: 인도의 무빙 이미지>전(2010)을 보다 확장시켜 개최할 계획이며, 2013년에는 전후 일본 아방가르드 그룹 ‘구타이(具)’에 대한 전시를 북미 미술관 최초로 선보일 예정이다.       번역 | 문혜진

구겐하임미술관 전시 전경 2011(Photo: David Heald)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이우환 1936년 경남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미술대학을 중퇴하고 니혼대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대 일본에서 일어난 모노파 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세운 작가이자, 철학자 문학가 예술평론가이기도 하다. 1969년 논문 <사물에서 존재로>로 일본 미술출판사 예술평론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여백의 예술》 《시간의 여울》 등이 있다. 유네스코미술상, 세계문화상, 프랑스 레지옹 되뇌르 훈장을 받았다. 파리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등의 국제전에 출품했으며 루이지에나근대미술관, 파리 주드폼미술관, 가마쿠라 근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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