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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1.08

Abstract

특집 art+tour 지루한 일상을 훌쩍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여행은 언제나 우리에게 설렘과 기쁨을 선사한다. 이 여행에 art를 곁들인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7, 8월의 휴가철, art는 잠시 엄숙한 비평의 긴장을 늦추고 자유로운 미술 여행기를 모아 특집을 꾸몄다. 미술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기자 11인이 세계 각지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들의 여행은 저마다 목적지도, 성격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흥미롭다. 아직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면 '책 속의 책'으로 아트투어를 대리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세계미술의 중심지로 꼽히는 파리와 뉴욕의 이슈는 물론이거니와, 최근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 받는 북유럽의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의 최신 동향을 접할 수 있다. 같은 '섬'이지만 베니스와 오키나와의 전혀 다른 아트씬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또한 비첸자와 클레베 같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던 소도시의 분위기도 이번 기회에 파악해 보자. 모험심이 강한 독자라면 히말라야와 터키로의 여행도 아주 흥미로울 것이다. 자, 이제부터 여행 시작!!!

Contents

01     표지  팀 아이텔 <오프닝> 린넨에 유채 274.3×219.7cm 2006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김복기

38    핫피플  기타카와 후람_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 종합 디렉터  김복기

42    오후의 아틀리에  
    원탁이 있는 장소  홍현숙

60    포커스
    신나는 미술관: 라이트아트의 신비로운 세계展  김만석
    심문섭展  김수현
    딜리아 브라운展|내가 본 ‘것’展  정연심
    김태은展|장지아展  이선영

76    아티스트 스펙트럼  
    [1]팀 아이텔_양분된 세계 질서를 통합하는 회화  이진숙
    [2]김신일_해 그늘의 빛 무늬  김종길

93    특집  art+tour
    [1]HELSINKI 백야의 도시 헬싱키 예술복지의 낙원  고원석
    [2]OKINAWA ‘평화의 섬’에 ‘파견된’ 한국미술  윤범모
    [3]VICENZA 팔라디오 건축의 성지 비첸자를 가다  양정무
    [4]THE NETHERLANDS 하멜이 맺어 준 인연, 미술로 이어가다 호경윤
    [5]NEW YORK 뉴욕에서 만나는 죽음의 풍경들  김남인
    [6]PARIS ‘붉은 우주’아니쉬 카푸어를 만나다  김복기
    [7]HIMALAYAS ‘신왕오천축국전’ 미디어아트 in 히말라야  신보슬
    [8]TURKEY 살아 있는 박물관 동서의 교차로 터키에서  윤진섭
    [9]KLEVE 클레베에서 쓰는 ‘미의 순례기’ 한 장  김애령
    [10]COPENHAGEN 나의 ‘소울시티’ 코펜하겐의 레지던스  홍보라
    [11]VENICE 베니스의 ‘수퍼 컬렉션’ 피노와 프라다  장승연

155    architectures for Contemplation  이타미 준
    [1]작가의 글_내 영혼의 드로잉  이타미 준
    [2]추모 특집_ 돌과 바람의 건축가, 그 삶을 기리며  진교남

168    전시 리뷰
    전국광|조환|김지은|김성환|이철수
    한국미술의 해외진출|양희아|아름다운 책

176    전시 프리뷰
    양평환경미술제|유현경|박연오

180    동방의 요괴들
    [1]갤러리 매칭 전시_동방의 요괴들@GYMproject  권주희
    [2]PT-day_요괴들의 이야기 마당 Talk! Talk!  김유미 이수연 호경윤

186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동방의 요괴들@ GYMproject

동방의 요괴들@ GYMproject

글|권주희 ·〈동방의 요괴들〉큐레이터

〈동방의 요괴들〉을 초대한 GYMproject는 개성적인 공간이 돋보이는 실험적 성격의 갤러리다. GYM project가 <동방의 요괴들>과 함께한 것은 젊은 작가 소개에 주력하는 젊은 갤러리로서, 같은 취지의 공모전인 ‘동방의 요괴들’과 뜻을 모으기 위해서다. GYM project의 김유미 대표는 이번 전시를 위해 〈2011 동방의 요괴들〉 지원자 372명의 작업 중 ‘회화 작업’을 중심으로 참여작가를 선별했다. 미술이라는 영역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행위, ‘그리기’의 의미를 젊은 작가들을 통해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작가는 강민정 구민정 김선희 김영수 김지선 박상아 서완호 신지현 양은혜 오영은 오희원 유주영 이지인 총 13명이다. 작가 당 1~3점의 작품을 출품했고, 특히 천정이 높은 GYM project 공간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작가들이 걸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작품을 거는 이색적인 설치 방식을 시도했다. 이러한 방식은 단색 드로잉부터 유화 아크릴화 동양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와 형식이 어우러진 요괴들의 개성을 하나의 전시로 표출하기에 적합했다.
참여 작가들 대부분은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젊은 작가’로 살아가는 그들의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화면 안에 현실의 공간, 혹은 비현실의 공간을 형성하여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해소하고 소통한다. 유아기부터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 사회 부조리 등을 저마다의 시각적 언어로 드러내고 있다. 김지선 유주영의 단색 드로잉은 펜의 특성을 살려 오밀조밀하게 표현한 모티프들이 단조로운 색채를 보완한다. 강민정 서완호 신지현은 모두 인물을 그렸지만 저마다 다른 재료적 특성을 활용했다. 즉 질감에 따른 인물의 표현 방식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양은혜 이지인의 작업은 일러스트의 선적인 요소를 끌어들여 심플한 느낌을 주면서도, 색이 전달하는 강렬함이 인상적이다. 구민정 김선희는 그래픽 작업인가 의심이 들 만큼 건축적인 요소와 정교함이 묻어 나는 작업을 통해 마치 ‘숨은그림찾기’ 를 하듯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에 반해 오희원의 텅 빈 공간은 우리가 쉽게 접하는 공간에 대한 역발상이자, 공간의 내재적 의미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김영수의 작품은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들을 시각적인 언어로 재구성했는데 빈 캔버스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 이미지와 어울려 쓸쓸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박상아는 실크스크린과 아크릴을 이용한 작업으로 생물의 구조적인 측면을 재구성하여 유기체적인 이미지를 가시화했다.
한편 7월 7일에는 장승연 본지 기자가 참여, ‘작가와의 대화’를 개최했다. 작품만으로는 교감할 수 없었던 젊은 작가들의 속마음과 소소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단, 자유롭고 능동적인 대화를 위해 형식적인 요소들은 배제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했다. 강민정 김영수 김지선 박상아 서완호 오희원 이지인 총 7명이 참가하여 각자의 작업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1부는 작가 개인별로 작품 소개와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2부는 서로의 작업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여러 이야기와 코멘트를 통해 각자의 작업 방식을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었다. 또한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도 회화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요즘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이슈는 무엇인지 최근 관람한 전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었다. 또한 이 자리에 참석한 갤러리2 정재호 대표는 젊은 작가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공모전의 역할은 무엇인가,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유로운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중간 중간 흐름이 끊기거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분위기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발표하는 능력과 자신감이 부족했다는 것도 지적할 만하다. 하지만 신진작가 입장에서는 평소 잘 만나지 못했던 동료작가 갤러리스트 기자 등 현장 전문가들과 소통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보람된 시간이 아닐까. 최근 신진 작가들과 함께 성장하려는 젊은 갤러리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신진 작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많지만, 정작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그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한 측면에서  ‘젊음’이라는 공통점을 계기로 갤러리와 작가가 파트너십을 이루는 것은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동방의 요괴들〉을 초청하는 공간이나 협업을 요청하는 기업, 기관이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동방의 요괴들〉이 새롭게 개척하고 견고하게 쌓아야 할 요소들도 늘어난다. 아직 서툴기도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내재한 ‘요괴들’. 이들이 남은 한 해 동안 어떠한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언제 어디서 새롭게 출현할지 기대해 보자.

참여작가 김대환의 프리젠테이션 장면

요괴들의 이야기 마당 Talk! Talk!

<동방의 요괴들>의 연중 프로그램 ‘PT-day’가 7월 25일 홍대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개최됐다. 2011년 요괴들 중에서 지원 신청을 받아, 총 6명을 선정했다. 참여작가들은 각각 준비해 온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바탕으로 동료 작가와 미술 전문가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설명했다. 김유미 GYMproject 대표,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호경윤 본지 수석기자가 패널로 나서, 작가 프리젠테이션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태도와 요령을 설명했다. 또한 각 패널이 개별적으로 작품 코멘트한 내용을 지면에 소개한다.

현대판 기록화와 작가의 상상력

매머드와 들소, 사슴의 사냥 장면이 생생히 그려진 구석기 시대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회화는 당대의 사건을 기록하는 기록화로서 기능해 왔다. 기록화로서 회화는 작가의 주관적 생각과 느낌으로부터 거리를 둔 객관성을 조건으로 한다. 그러나 기록적 회화의 객관적 성격은 사진과 비디오의 등장으로 힘을 잃고 현대의 회화는 작가가 제거된 근본적인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최현석은 동시대에 사회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대상으로 작가가 보고 느낀 감성을 회화를 통해 표현하는 작가이다. 화면 속에서 작가가 기록한 사건은 작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통해 필터링되고, 작가가 화면에 기록한 내용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하나의 파편이 된다. 특히 작가는 조선시대 기록화의 양식을 차용하여 자신의 사유를 기술한다. 조선시대 회화에서 기록화는 여러 명의 솜씨 좋은 화원이 상세한 세부 묘사를 통해 왕가의 중요한 행사를 조명하는 목적으로 기능해 왔다. 기록화는 양식화되었지만 읽기 쉬운 구도와 전달력이라는 힘을 가지고 있다. 18세기에 그려진 정조 대왕의 <능행반차도>의 양식을 딴 <무자년 광화문 행렬도>는 대통령의 행렬과 그 주변의 상황들을 그린 작업이다. 왕을 모시는 어가 대신 검은색 승용차가 들어선 행렬은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엄숙한 권력의 모습을 제시한다. 행렬을 환영하는 인파 속에 디테일하게 그려진 소매치기와 음식을 시켜 먹는 사람들의 모습은 작가의 작업이 일상적 대중의 현실에 단단히 기반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한다.
숨겨진 작가의 의도는 거꾸로 가는 차선과 얼굴이 없는 대통령을 통해 희미하게 읽혀지지만, 작가가 선택한 논란적인 주제만큼 명시적이지는 않다. 일련의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은 신문 기사들을 통해 기록되듯이 명확하지만, 그것이 작가 개인의 삶과 구체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작가의 개인적 상상과 감성적 아이디어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실의 한 파편으로 읽혀지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록화의 양식뿐만 아니라 어느 장르보다 명쾌하게 드러나는 기록화의 의도와 그 내용 또한 함께 필요할 것이다.|이수연

왼쪽 · 김춘재 <Construct> 캔버스에 유채 2010 | 오른쪽 · 김춘재 <붕괴> 캔버스에 유채 2010

서완호_잠수모를 쓴 현대인의 군상

일상에서 마주치는 대상들도 일단 캔버스 안으로 들어오면, 제법 낯설고 의미 있게 보인다. 서완호의 작업은 보통의 여자, 남자를 화폭의 주인공으로 끌어들이는데,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로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직업이나 연령대를 드러내는 복장이나 포즈를 취하고 전면에 등장한다. 자세는 설정된 것처럼 조금 부자연스럽고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표정이나 신체를 가렸지만, 그들의 신분은 자세나 배경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난다. 작품 속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버거워 보이는 잠수모를 쓰고 있다. 잠수모의 무게는 인물이 감당하기에 벅차 보이지만, 주인공들은 그 무게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하다. 이들은 현대인의 일상적이고 무의식적인 행동을 보여 준다. 커피숍 창가에서 턱을 괴고 다리를 꼰 채 무심코 스마트폰을 만지는 행동이나 스키니 진에 스니커즈를 매치한 패션, 뒤로 보이는 현란한 네온사인의 풍경 등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닮았다. 주인공들은 얼굴 없는 현대인일 것이고, 그들은 코드화된 현대적 삶을 너무나 당연하다며 영위하고 있다.
가령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참고서 필기구 MP3 고대기 손거울 등으로 자신의 일상에서부터 취미, 관심사까지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모든 여학생들의 본질은 사라지고, 존재를 증명하는 소품들만이 그들의 성격을 규정하게 된다. <EMPTY>라는 작품 제목처럼, 화폭엔 등장인물의 본질은 빠지고 피상적인 아이템들만이 가득하다. 젊은 작가가 동시대의, 비슷한 연령대 대상들의 무의지적인 삶을 소재로 삼았기에 더욱 공감대가 깊게 형성돼 보인다. 대상들이 소통을 원한다면, 그들은 잠수모를 벗고 실체를 드러내야 한다. 하지만 소통의 의지도, 나태한 상황에 대한 저항의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것이 비난할 수 없는 현대인의 특징이며, 작가가 살아가는 동시대의 풍경화일 것이다.|김유미

김대환_세상의 틀을 바꾸는 모양자

김대환의 작업에서는 아이디어가 넘쳐 난다. 특히 ‘모양자’를 연상시키는 <룰러> 시리즈는 패션 명품이나 현대미술 용어 등 사회 곳곳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다양한 고정관념을 비튼다. 그 중 <신체자>는 바람직한 몸, 이상적인 몸, 아름다운 몸 등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몸의 기준이 오히려 현대인을 구속하는 현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가의 주관적 시각은 거대 담론을 허물고, 작은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회의 경직성에 흥미로운 유연함을 부여한다. 특히 플라스틱 소재로 제작된 자는 투명한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대상을 규격화하는 기준으로 기능한다. 이는 인류가 실용적 목적을 위해 상호 간에 약속된 ‘단위’라는 규칙에서 시작되었다. 김대환의 모양자 역시 기존 사고의 틀을 해체시켜 또 다른 맥락의 틀이 되는 역설적 구조를 띠고 있다. 이에 작가는 “단순히 체제의 무비판적 부정이 아닌 체제를 비교하며 살펴보는 접근 방식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부연한다.
김대환의 작업들은 ‘틀을 들여다 보기’라는 테제 아래서 작동된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자본주의와 글로벌리즘 등으로 획일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일탈을 꿈꾸지만 자신을 구속하는 틀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모양자 작업에서 등장하는 애완견 신체 명품 등의 모티프들은 작가의 비유에 따르면 마치 ‘체스 판에 각기 다른 말’처럼 서로 움직이면서 전체적 상황을 만들어 내고, 단계적으로 주제의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또 다른 시리즈 <국가공인예술가자격증> 역시 문서를 위조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사회의 틀을 구성하는 시스템의 허를 찌르는 접근 방식은 <룰러> 시리즈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김대환은 다름 아닌 ‘예술가’를 인증하는 장치를 제작함으로써 작가 자신이 살아가는 ‘미술계’를 비꼰다. 이 자격증은 초콜릿포장지 지우개 먹지 라이트박스 등을 재료로 하는 허술한 위조의 과정을 거쳐 제작되고, 작가는 그 과정을 공개하면서 예술 뒤에 숨겨진 허구성을 드러내고자 한다.|호경윤

최현석 <무자년 광화문행렬도> 마원단에 수간채색 2010

김춘재_소멸하는 도시, 스러지는 문명

모든 것은 스러지고 소멸한다. 가장 귀히 여겨지고, 공들여 지은 집에서 전문가들의 보살핌을 받는 미술작품 조차도 영원을 담보할 수 없다. 김춘재의 작업은 이러한 오래된 ‘공’ 개념에서 출발하여 이를 현대의 일상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특히 사회 시스템 속에서의 ‘안정적인 삶’에 대한 허구적 신화는 작가가 살고 있는 도시를 타자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The Other’s City> 시리즈에서 아파트와 도로, 빌딩 등 도시 한복판의 풍경은 형태가 갖추어져 화면 속에 이미지로 드러나지만 이러한 풍경은 흔들리고, 심지어는 여백으로 남겨져 있다.  
도시 안의 일상에서 떨어져서 멀리서 거리의 풍경을 바라본 <Inner Turbulence>는 서울시내 한복판을 짐작케 하지만, 건물들은 확고한 윤곽선을 잃은 채 흐늘거리고 도로를 다니는 자동차들은 아스팔트에 녹아 들어가 있다. <Disaster> 시리즈 또한 안정과 풍요의 허구적인 기반 위에 자리잡은 불안정한 현실을 무심히 그려 낸 작업이다. <Weath er Report>는 이상 기후로 인한 추위와 더위의 공존을 눈 쌓인 산등성이와 선명한 꽃의 대비로 보여 준다. 전통적 산수화의 구도에 따라 근경 중경 원경으로 안정된 구도를 구사하고 있지만, 그 뒤에 자리하는 것은 기후 변화가 경고하는 위험성이다.
작가가 보여 주는 스러지는 문명과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상상 속의 기만적 일상은 대중의 신경을 긁어 댄다. 그러나 밤새 내린 큰 비에 일순간 거대 메트로폴리탄이 마비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 다른 어느 때보다 시의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아직 문제제기에 불과한 젊은 작가의 중요한 질문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발을 넘어설 수 있는지는 화면 속의 빈 공간으로 남아 이후의 냉정한 관찰을 요구할 것이다.|이수연

오영은_억압된 감정을 표출하는 괴물들

오영은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서 작업을 시작하는 동시에 우리 모두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억압된 자아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영은의 작업에서 다루는 억압된 감정의 성격은 그 제목에서 그대로 노출되는데, 자책 분노 갈등 외로움 인내 증오 욕망 초조함 등의 주제는 그의 드로잉에서 자기 자신을 가정한 가상의 인물로 등장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몸집이 큰 괴물들은 마치 누군가에게 맞아 부풀어 오른 상처처럼 왜곡되어 있다. 괴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덧없이 힘없고 나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몸에 맞지 않은 과장된 사이즈의 코스튬을 입은 것처럼 상체가 부풀어 올랐다. 그들의 얇은 다리와는 비대칭적인 모습이다. 괴물들은 그 커다란 상체만으로는 부족한지, 다양한 무기를 지니고 있다. 드릴이나 꼬챙이부터 도끼, 칼까지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들은 나약한 자아에게 힘을 부여한다. 하지만 무기를 드는 것만으로, 괴물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했을 잔인성을 최대한 발휘해, 상대를 찌르고 밟고 쑤시는 등의 행동을 곁들인다. 그러한 잔인한 행동을 벌이는 주체는 표정이 없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끼는 것은 희열인지, 또 다른 성격의 분노인지 알 수 없다.
오영은의 작업에 등장하는 자아들은 갈등하고 자책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무기를 지닌 괴물들은, 실상 누구에게도 현실적인 폭력을 휘두를 수 없는 소극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결국 자학으로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고, 다시 한 번 상처를 입는다. 감정이란, ‘초조’나 ‘화냄’ 등으로 명명하기 어려운 성격의 것이다. 따라서 제목에서 지나치게 직설적인 주제를 부각시키지 않는다면 오영은의 드로잉은 관객의 복잡미묘한 감정까지 함께 동요시키는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김유미

왼쪽 · 서완호 <Empty> 캔버스에 유채 2010 | 오른쪽 · 서완호 <Empty> 캔버스에 유채 2010

김보남_뼈대를 통해 바라본 사물의 재구성

김보남은 ‘신진 작가’ 그리고 ‘여성 작가’라는 현실적 조건 가운데, ‘조각’이라는 매체를 두고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김보남의 조각은 대부분 구조적인 성격이 강하다. 직선의 마디마디들이 모여 형태를 만들어 내고, 전시장 조명에 의해 생겨난 그림자까지 작품의 주요 요소로 끌어 들이는 치밀함을 보인다. 김보남의 조각 작품을 전시장에서 직접 보면, 한 눈에 들어오는 크기를 넘어선 큰 사이즈 때문에 전체보다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게 된다. 이와 동시에 한켠에는 A4 사이즈의 종이에 가는 철사를 이용해, 마치 큰 조각의 축소판인양 좀 더 구체적인 구조물을 표현한 평면 작업을 함께 보여준다.
그제서야 김보남의 작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해 진다. 김보남은 바로 ‘사물의 실체’에 대해 탐구하려는 것이다. 김보남이 생각하는 사물의 본질은 기능에 부합해 만들어진 형태가 아닌, 표면을 벗겨 내어 그 속의 뼈를 보여 주려는 것이다. 가위 포크 스푼 자동차 열쇠 등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보잘것없는 사물들을 다시보기. 그것도 조각적으로.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김보남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는 컴퓨터를 통해 원래의 사물을 절단하고 평면으로 펼쳐 보고, 다시 계산하고 설계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형태들을 창작해 냈다. 즉 해체를 통해 새로운 형태를 만듦과 동시에 그 안에 숨겨진 구조적 본질을 파헤치는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 ‘해체’는 다양한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 되고, 관객으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기호화된 익숙한 사물을 열린 개념으로 확장시키게 한다.|호경윤

몸의 잔혹사, 고문에서 전쟁까지

장지아 개인전 전경

몸의 잔혹사, 고문에서 전쟁까지

글|이선영 · 미술평론가

사진 영상 설치 등으로 이루어진 김태은과 장지아의 전시는 다양한 픽션 장치를 동원하여 잔혹극 속의 주인공을 연출한다. 그들에게 미디어란 더 이상 근사한 비주얼을 낳기 위해 새로움과 신기함으로 치장된 낯선 장치가 아니라, 능숙한 화가의 손에 쥐어진 붓처럼 메시지 전달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다양한 장치로부터 그림으로서는 결코 불가능한 것들이 흘러나온다는 점에서 미디어는 필연성을 띤다. 그들의 작품은 매우 환상적이면서도 철저히 현실로부터 출발한다. ‘그런 것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은 작품의 메시지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단순한 소재주의를 넘어선다. 고문의 역사를 참조한 장지아와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김태은의 작품은 실제로 일어난 구체적 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조건, 특히 인간의 몸에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몸의 맥락 자체를 만들어 내는 권력의 실상은 전시장 바닥이 유리로 된 장지아의 전시와 크리스탈 룸에서 이루어진 김태은의 전시에서 적나라하게 투영된다.

장지아 <His Face was Twisted with Pain> 사진 120×120cm 2009

권력이 생산하는 도착적인 몸

장지아와 김태은의 작품에 깔려 있는 구조적 폭력의 실체는 ‘가부장제’나 ‘제국주의’ 등이다. 고문은 내밀한 공간에서, 전쟁은 육해공을 망라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것이지만, 작가들은 미시 또는 거대 권력의 힘이 관철되는 궁극적인 지점인 ‘몸’을 부각시킨다. 고문과 전쟁은 고통 받는 몸과 시체를 생산하지만, 그들의 작품에는 일면의 진실만 나와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을 발생시키고 종결시키는 에너지로서의 권력과 폭력은 쾌락도 낳는다. 사적 공적 공간을 지배하는 독재자는 파트너나 대중을 핍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밀한 협조를 받곤 한다. 그들의 작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개인의 몸과 영혼을 망가뜨리거나 대량 살상을 낳는 권력에는 가학, 피학적 충동이 있으며, 금기에 의해 가려져 있지만 실상은 삶에 진한 그림자를 남기는 죽음이 깔려 있다. 죽음은 생물학적이거나 심리적인 것 이상의 사회적 기원을 가진다. 그림자가 없는 것은 실체감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시뮬라크르를 생산하는 미디어에서 이러한 그림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장지아의 <I Confess>전에 나오는, 고통을 주는 각종 기구와 상황 설정은 진기함과 심미성을 동시에 갖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전선의 피복을 벗겨내고 구부려서 ‘I confess my sins’라는 문장을 만든 작품이다. 문장 끝에 매달린 작업복과 고깃덩어리가 서로의 무게를 가늠하면서 스파크에 그을린다. 작업이란 스파크가 생길만큼 짜릿한 것인가? 여기에서 희열과 죽음은 한 몸의 두 얼굴이다. 작업이란 자신 뿐 아니라 타자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행위임을, 작업이라는 것 자체가 죄임을 고백하는 현장이다. 장어가 담긴 어항 위에 앉은 소녀는 진나라 때 고문 방법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1980년대 한국에서도 미꾸라지를 이용한 성고문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아름다운 곡선을 가지는 여체의 구멍을 향하는 거대한 물고기들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에 멈춰버린 물신적 환상이 엿보인다. 묶인 채 대숲에 누워 있는 나체 소년의 모습은 대나무가 몸을 관통하여 죽음에 이르는 상황이 중첩된다. 사진 속의 남녀는 젊고 아름답기에 그들의 고통과 죽음은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아름다움 속에 내재된 가혹함, 잔인함 속에 내재된 쾌락이 있다.
남자의 엉덩이를 매질하는 여자는 소유와 계약에 기반한 쾌락인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보여 준다. 들뢰즈가 《냉정함과 잔인성》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사드와 마조흐의 스타일은 자연적인 것을 넘어서는 양적 되풀이와 질적 긴장감에 있다. 스팽킹(Spanking)은 성적 하위 문화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이자와 코타로는 《사진과 페티시즘》에서 스팽킹 사진은 처벌 행위를 에로틱한 환상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전략으로, 교육과 규율이라는 명목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육체의 존재를 떠오르게 만든다고 말한다. 동물학자 데이먼드 모리스는 궁둥이 때리기가 성행위를 연상시키며, 붉어진 피부는 흥분된 상태를, 맞는 이의 고통스런 몸짓은 오르가슴 동작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박물관에 안치된 유물처럼 꾸며 놓은 <Beautiful Instruments>에는 수수께끼 같은 기구들이 놓여 있다.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고양이’라 불리는 채찍이 내려쳐져 부드러운 피부에 차가운 금속이 박힐 때, 사물과 몸은 고통과 쾌락 속에서 하나가 된다.
16세기 독일의 고문 장면이 담긴 나무 몽둥이 뒤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권력의 성애학을 암시한다. 불에 달군 구리구두는 채찍이나 몽둥이 같은 물신적 도구이자,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혹은 전족부터 현대의 하이힐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을 위해 몸을 기형화하는 잔인한 풍습을 알려 준다. 남자들의 페니스 크기를 조사하여 기하학적 모형으로 만든 작품은 ‘더 이상 수축과 팽창이 될 수 없는 고정된 상태로 그들의 욕망을 거세’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언제 생겨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한 욕망을 의도된 형태로 고정시킨다. 엽기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성형이나 패션에 내재된 전략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영상 작품 <Mouth To Mouth>에서는 세계 인권 헌장에서 발췌한 인간의 가치를 담은 단어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남녀들이 키스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한다. 캐러멜을 입에 넣어 혀로 형태를 만들어서 전달된 최종 산물은 머리가 절단된 사람이다. 거창한 명분과 사랑이라는 내밀한 통로를 통과한 결과는 인간의 죽음 또는 괴물의 탄생이라는 역설이다. 고문에 가까운 사랑, 사랑에 내재된 가학 피학성은 상식적인 휴머니즘을 초과하는 ‘저주의 몫’(바타유)이다.
마지막으로 타자들이 죄의식을 고백할 때마다 눈에 빛이 비추어져 고통 받는 사람이 등장하는 작품은, 고백이 치유가 아닌 고통의 심화임을 알려준다. 억압이 제거되면 인간 해방이 가능하다고 믿는 지배적 가설과 달리,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쾌락과 권력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것은 서로를 생산한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도 권력은 이제 배제와 억압을 넘어 ‘생산’을 한다고 본다. 그것은 현실적인 것을 생산하고, 대상들의 영역과 진리의 의식 생산으로 이어진다. 장지아의 ‘고백’은 욕망과 지식으로 점철된 권력과 그것이 생산하는 도착적인 몸들을 매개한다.

김태은 <월미도에 대한 영화적 지형도> 피그먼트 프린트 84.1×118.9cm 2011

예술, 때론 새로운 권력

김태은의 <영웅들의 섬>은 월미도에서 벌어진 인천상륙작전을 다룬다. 북한과 남한에서 만든 전쟁 영화 사이에 현재의 한가로운 월미도 풍경을 끼워 넣은 <전쟁 3부작>은 불과 60년 전의 격전지의 흔적이 완전히 소멸되어 있는 상황을 대조한다. 구식이기는 하지만 패닉을 야기함으로써, 전쟁에 버금가는 체험을 낳는 놀이기구가 게임과 다를 바 없어진 현대 전쟁과 중첩된 지점도 가리킨다. 크리스탈룸 한가운데 설치된 작품은 유원지 같은 곳에 있는 천막과 총 쏘기 같은 게임 기구를 떠올린다. 천막 내부에는 장난감 총이 서로를 마주하고 총소리를 내며, 아래의 수조와 위의 스크린에서는 긴박감과 흥분을 야기하는 영상들이 흘러나온다. 남과 북에서 만든 영화의 서사와 이미지에는 전쟁을 이끌어가는 각각의 영웅들이 있지만, 서로 극점에서 대치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차이가 없다. 월미도가 이제 섬이 아닌 것처럼, 김태은의 ‘영웅들의 섬’ 속 영웅들의 실체 역시 모호하다. 영웅을 만들어 내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남이나 북이나 비슷하며, 냉전 이데올로기 속에서 죄 없이 죽어간 사람들도 공통적이다. 김태은은 남한의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과 북한의 조경순 감독의 <월미도> (1982)에서 대립과 충돌의 공통적인 방식을 부각시킨다.
비록 영화이지만 실제 못지않게 힘과 힘이 맞부딪히며 다양한 영상과 이미지로 생산되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영화의 서사는 그 비슷한 구조 때문에 용이하게 섞어 든다. 생사를 갈랐던 전투의 고지들은 아름다운 패턴으로 재탄생됐고, 죽고 죽이는 격렬한 사건의 궤적들은 춤추는 선으로 변화했다. 종교화처럼 3개로 나뉜 <월미도에 대한 영화적 지형도>는 프로그래밍을 통해 산출된 격전지의 등고선으로 만든 가상의 월미도이다. 이 낯선 풍경들은 그 금속성 표면 때문에 미지의 혹성 같이 보인다. 가운데의 붉은 색만이 그곳에서 스러져갔을 수많은 희생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전쟁은 권력에 동원된 몸을, 고통과 죽음은 몸을 더욱 의식화시킨다. 나무 선반 위에 8개의 모니터로 설치한 또 다른 지형도에는 전쟁에서 발산되는 에너지가 흘러나온다. 김태은의 작업은 육체를 극단적으로 대상화, 도구화시키는 전쟁, 불과 1세기도 흐르지 않은 역사적 사건이 완전히 삭제되어 있는 전쟁에 버금가는 현재의 폭력성, 서로 다른 듯하지만 동일한 구조를 이루는 짝패로서의 남과 북 등, 이 모두를 ‘미디어’라는 깔때기에 통과시켜 아름다운 무늬로 재생산한다. 자신이 만들어가는 작품의 재료로서의 세계라는 발상에서, 예술가 또한 독재자 못지않은 권력에의 의지를 품고 있다. 작가 또한 작업을 통해 가혹한 역사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김태은 <월미도 지도> DVD 8개, 웹캠 2011

양분된 세계 질서를 통합하는 회화

<GfZK 슈바르츠> 캔버스에 유채 180.3×240cm 2001

양분된 세계 질서를 통합하는 회화

글 | 이진숙 · 미술사, 《러시아 미술사》《미술의 빅뱅》 저자

팀 아이텔은 네오 라우흐와 마티어스 바이셔 등과 더불어 뉴 라이프치히 스쿨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뉴 라이프치히 스쿨은 21세기 초반기에 미술사에 새롭게 등장한, ‘회화의 힘’을 보여 주는 일군의 젊은 독일 작가들을 통칭한다. 이들은 20세기 말 독일의 통일과 함께 준비되어 21세기에 가장 주목할 만한 세력이 되었다. 현재 독일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갤러리이자 뉴 라이프치히 스쿨 작가 대부분이 소속된 아이겐아르트갤러리는 1985년 문을 열던 당시에는 동독의 작은 지방 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 통일과 함께 라이프치히아트아카데미 출신 작가들을 내세워 세계 무대에 진출했다. 1992년 뉴욕 아모리쇼를 시작으로 이들이 거둔 성공으로 뉴 라이프치히 스쿨은 ‘피딩 프렌지’(Fee ding Frenzy, 먹잇감에 달려드는 광란 상태)에 이르렀다는 표현을 듣게 된다. 한 때 전용기를 타고 온 미국 컬렉터들이 라이프치히에 와서 이곳 출신의 젊은 작가 작품이라면 닥치는 대로 구입해 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컬렉터들이 흥분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살 만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 라이프치히 스쿨의 작가들은 모두 라이프치히아트아카데미 출신인데, 이 학교는 유행과 상관없이 고전적인 초상화 풍경화 실물드로잉 에칭 등을 가르쳐 왔다. 통일이 된 후인 1990년 초반에도 이러한 전통은 계속되었다. 라이프치히는 오랫동안 현대미술의 발전과 단절되어 있었다. 그들은 요셉 보이스의 영향권 밖에 있었으며,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중심으로 한 신표현주의자들과도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뿌리를 베르나르트 하이시히, 볼프강 매트호이어, 베르너 튀프케 같은 동독의 거장들에서 찾는다. 이들의 다음 세대인 아르노 링크와 지그하르트 길레는 라이프치히 스쿨의 ‘킹 메이커’로 여겨진다. 이들의 제자가 바로 뉴 라이프치히 스쿨로 통칭되는 네오 라우흐, 팀 아이텔, 마티어스 바이셔, 틸로 바움개르텔, 다비트 슈넬, 크리스토프 뤽해벨레, 마르틴 코베, 요하네스 티펠만이다. 그 핵심에는 스타급 작가 네오 라우흐가 있다. 대부분 1970년대 생인 다른 작가들보다 10년 정도 연배가 높은 그는 옛 동독의 화가들과 통일 독일의 젊은 작가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며 젊은 세대들을 이끌었다. 이들의 성공에 대해서 평론가들이 처음부터 우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미술시장에서 거둔 성공은 사진 비디오 설치미술의 강세와 ‘회화의 죽음’ 선언에 대한 컬렉터들의 반대급부적인 행동의 결과일 뿐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피상적이다. 뉴 라이프치히 스쿨의 등장은 21세기 초반의 복잡한 미술 지도에 또 하나의 도시를 첨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왼쪽 · <무제-TF> 캔버스에 유채  25.7cm×25.7cm 2009 Courtesy Galerie EIGEN+ART Leipzig, Berlin, The Pace Gallery | 오른쪽 · <무제-벤치> 캔버스에 유채 27.9×25.4cm 2009 (Photo: Kerry Ryan McFate) Courtesy Galerie EIGEN+ART Leipzig, Berlin and The Pace Gallery

통일 독일에서 싹튼 ‘다음 세대’의 미술

뉴 라이프치히 스쿨은 독일의 통일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소련 동독 중국은 과거 혹은 현재의 사회주의적 실험과 그 결과물을 역사적 유산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이 유산을 해결해 나가는 데서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른 서구 지역에는 없는 역사적 체험이 이 나라들만의 독특한 컨텐츠의 미술을 만든다. 소련과 중국은 사회주의국가 시절부터의 자국 내 주도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동독은 서독에 의해 흡수 통합되었다는 점에서 약자의 입장에서 출발했다. 결코 예정된 프로그램이 아니었던 독일의 통일은 처음부터 많은 시행착오를 예고하고 있었다.
1990년 여름 독일을 뜨겁게 달구었던 소위 ‘크리스타 볼프 논쟁’은 통일 과정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보여 준다. 이 여류 작가의 소설 《남는 것(Was Bleibt)》 (1990)을 둘러싸고 시작된 논쟁은 ‘문학지식인과 권력, 붕괴된 동독 정권과 전체주의적 국가사회주의 살인국가와의 비교, 좌파의 유토피아 상실, 동독 문화를 대하는 서독 측의 태도, 도덕과 미학의 관계’ 등에 관한 논쟁으로 확대되어 갔다. 독일 지식인들이 모두 참여하며 ‘독일적 철저성’을 보여 준 뜨거운 논쟁의 배면에는 서독 위주의 변혁으로 인한 동독인들의 좌절감이 있었다. 동독인들이 스스로를 2등 계급의 시민으로 전락했다고 느끼는 한, 진정한 ‘내적인 통일’은 요원한 것처럼 보였다. 미술에서는 끝까지 동독에 남아 있었던 A.R.펭크가 통일 후에 독일을 아예 떠남으로써 동독 예술인의 실망감과 상실감을 보여 주었다. 문학과 영화에서는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하기 위한 ‘1인칭 내러티브’들이 무수히 양산되었다. 그러나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이전 세대와의 의도적인 단절이다. 나치시대, 세계대전, 분단, 사회주의 독재, 국가의 와해 등 50년 안팎의 짧은 시간에 일어난 역사적인 격동은 서로 다른 체험 영역을 경험한 세대들 사이에서 큰 정신적인 단절감을 만들어 냈다.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작가들이 중심이 된 뉴 라이프치히 스쿨의 등장은 이런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평론가 크리스티안 쉴레는 이들의 작업을 ‘테크닉적인 풍부함, 조절된 톤의 색채, 사회적인 개입의 포기를 특징으로 하는 일종의 체념의 미술’이라고 규정짓는다. 이어서 ‘영혼 느낌 목적성을 잃어버린 희극화된 사회의 비애’와 ‘거대한 잔치가 끝난 뒤의 공허함과 실망감’을 작품의 지배적인 감정으로 읽어 낸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완벽한 변검술을 해내고 있는 중국 미술에서도, 여전히 들끓는 격전장 같은 러시아 미술에서도 볼 수 없는 감정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서구 미술과는 다른 전통과 역사적 체험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 이 세 나라의 미술을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뉴 라이프치히 스쿨 작가들은 동독 구상회화의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각기 다른 양상으로 ‘통일 이후의 미술’이라는 과제를 묵묵히 수행해 내고 있다. 이들은 통일 이후의 삶을 독일 특유의 철학적 깊이와 은유로 가공하여 ‘배신당한 꿈’과 ‘형이상학적인 주거 상실감’이라는 서구 사회 전반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했다. 이것이 통일 이후 독일 미술이 세계 미술계에서 연착륙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의 교묘한 결합 속에서 네오 라우흐가 독일의 역사를 하나의 신화와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로 만들고 있다면, 그보다 젊은 세대인 팀 아이텔은 보다 담담한 어조로 이 과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왼쪽 · <물결> 캔버스에 유채 210.2×179.4cm 2003 (Photo: Ellen Labenski) Courtesy Galerie EIGEN+ART Leipzig, Berlin and The Pace Gallery | 오른쪽 · <내륙> 캔버스에 유채 25×20cm 2003

나누어진 하늘 아래

팀 아이텔은 1971년 동독과 서독이라는 두 개의 ‘나누어진 하늘’ 아래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가 청년기에 접어들 무렵인 1990년 하늘(조국)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A.R. 펭크, 안젤름 키퍼 같은 이전 세대와는 달리 팀 아이텔의 세대는 이 2개의 나누어진 세상에 대해서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팀 아이텔의 냉정하고 관찰자적인 태도는 이 세대의 역사적 체험을 반영한다. 이 세대들에게 나누어진 조국은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했던 것이었고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뀌었다. 여전히 독일의 정신적인, 내적인 통일의 과제는 남아 있고, 2개의 나누어진 하늘(세계)을 하나의 통일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형상화하는 것은 팀 아이텔의 과제가 되고 있다.
팀 아이텔 세대가 태어났을 때 이미 2개로 나누어진 조국의 하늘처럼, 회화사도 구상화와 추상화라는 2개의 하늘로 나누어져 있었다. 팝아트와 극사실주의 옵아트 미니멀리즘의 동시적 등장은 구상화와 추상화의 자기 발전이 다다른 막다른 골목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회화의 죽음’이 선포된 순간에 오히려 다른 자유가 열렸다.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그네타기를 하면서 독특한 자기만의 지점을 발견해 내는 것이 21세기 작가들의 특권이자 과제가 되었다. 칸딘스키와 피카소만큼이나 차이가 나던 추상화와 구상화의 간극은 작가들의 실천 속에서 완전히 소멸된다. 팀 아이텔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적으로 구상회화적 속성을 갖는 뉴 라이프치히 스쿨의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그의 작품에서는 추상과 구상이라는 2개의 하늘이 마주하고 있다.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작업하는 리히터는 추상화에 대한 매우 유물론적인 해석을 보여 준다. 유화라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중층성을 물리적으로 풀어낸 것이 리히터의 추상화이다. 우연성과 작가의 신체성이 개입되며 덧쌓여 가는 물감은 추상화가 이루어지는 과정 자체를 작품화한다. 엘스워스 켈리에게서는 완결된 세계인 단색 회화는 리히터에 와서는 여러 색면의 나열로 변형되면서, 마찬가지로 ‘추상화되기 과정’ 자체를 작품화하며 비 반영의 자기충족적인 회화를 완성한다. 리히터가 추상화의 유물론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면, 팀 아이텔은 추상화의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팀 아이텔은 보다 냉정한 추상화가들인 몬드리안,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을 언급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질서를 추구하며 세상의 무질서와는 다른 질서를 화면에서 구축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랜 구상화의 전통 속에 있는 탁월한 묘사가이기도 한 팀 아이텔은 구상화적인 요소를 포기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힘> <세계관> 같은 초창기 전시의 제목은 세상의 보이지 않는 질서에 대한 부단한 탐구라는 추상화의 충동과 구상화의 충동이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2개로 나누어진 세계의 내적인 통일을 이루려는 욕망은 <GfZK 슈바르츠> (2001), <무대>(2001)와 같은 작품처럼 추상적인 기하학적 요소, 도형, 인물을 직접적으로 대비시키는 것으로 표현된다. <무대>처럼 장소가 분명히 명기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원>(2002) 같은 작품에서는 공간의 일부를 파편화시켜서 그것을 기하학적인 도형의 일부로 인식하게 만든다. 어떤 장소인지 알 수는 없어 배경의 구체성이 생략되지만 배경 자체가 생략되지는 않는다. 배경이 익명적이고 중성적이듯이 인물들 역시도 개별적인 성격 탐구에는 관심이 없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구상화라면 배경의 맥락에서라도 반드시 틈입해 들어오는 사회역사적인 요소는 완벽하게 탈각된다. 거리에서 무작위로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에 기초해서 그린 사람들의 동작은 모호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서술적인 내러티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갤러리라는 비일상적인 공간의 구획은 추상적인 배경을 만드는 좋은 근거가 된다. 바우하우스의 기하학에 대한 사랑이 독일 미술의 DNA처럼 작동하고 있지만, 팀 아이텔이 우선 명시적으로 근거하는 것은 몬드리안이다. <GfZK 슈바르츠>와 <노랑&파랑>(2001) 같은 작품에서 그는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실제적인 공간으로 해석해 낸다. <노랑&파랑>에서는 몬드리안 풍의 그림 앞에서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남자의 옆모습이 등장한다. 전면에는 몬드리안의 그림이 보이고 남자는 검은 선으로 표현된 난간에 손을 올려 기대고 있다. 몬드리안 그림 속의 검은 선과 정확하게 유비되는 이 선은 남자가 서 있는 그림 밖 현실적인 공간의 선이다. 관객은 몬드리안이 찾아낸 내적인 질서와 이것을 현실에 적용 연장해 낸 팀 아이텔의 세계를 동시에 보게 된다. 이 작품에서 구사한 원근법적 공간은 몬드리안의 추상적인 평면성과 충돌하고 단절된다. 원근법, 평면성… 여기에는 회화에 대한 어떤 새로운 담론도 없다. 이미 충분히 논의되고 실험되어서 더 이상 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그 순간에 팀 아이텔은 새로운 시각적 결과물을 내 놓은 것이다. 담론은 끝난 것처럼 보여도 작품은 끝나지 않는다. 남자의 팔은 구상회화 작가 팀 아이텔이 가진 완벽한 해부학적 이해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도 놓치면 안 된다. 그의 세상에서는 추상적 요소와 구상적 요소가 병치되고 균등한 세력 관계를 유지하며 다양한 미학적인 효과를 낳고 있다.

<매트리스> 캔버스에 유채 220×210cm 2008 Courtesy Galerie EIGEN+ART Leipzig, Berlin and The Pace Gallery

‘세계의 질서’를 담담히 바라보며

2009년에 있었던 전시 <드웰러>는 2개의 나누어진 세계에 대한 인식, 표면적으로 보이는 세계 속에 있는 또 다른 질서를 탐구하는 그의 시선이 보다 구체화되었음을 보여 준다. 새롭게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한 것은 거리의 노숙자와 버려진 쓰레기 더미, 복도 위에 던져진 천 더미, 시트가 헝클어진 간이 침대, 까마귀나 비둘기 같은 우울한 도시의 새들이다. 이것들은 팀 아이텔의 가장 흥미로운 회화적 창안물의 하나이다. 팀 아이텔의 노숙자와 쓰레기는 정확하게 앤디 워홀 류의 팝 아트의 대척점에 서 있다. 1960년대의 미국 팝 아트는 넘쳐나는 상품의 어마어마한 물량과 현란하게 반짝이는 포장에 유혹되었다. 소비자를 유혹하는 디자인은 관능적이며 뻔뻔스럽기까지 했으며, 이런 새로운 상품은 당당히 회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소비 사회의 밝은 면이 회화적으로 모두 소진된 자리에 등장한 것이 바로 쓰레기이다. 새벽의 습기를 머금은 듯한 검은 비닐 쓰레기봉투는 거꾸로 그 특유의 볼륨감과 질감을 자랑하며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용물에 대한 어두운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품 속 버려진 카드보드 조각이 공간과 이루는 관계는 그가 여전히 추상화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세상은 몬드리안적인 밝은 질서가 지배할 수 없는 세상이다. 이 버려진 것들은 대부분 검은색과 회색의 모노톤으로 그렸다. <소유>(2006)에서는 검은 바탕의 배경속에서 형태는 아주 오랫동안 보아야만 조용히 떠오른다. 인식하려는 의지만이 시각을 열어 준다. 추상적인 배경이 사라진 이 경우에 추상의 충동은 단색조의 색채 속에 있다. 본연의 색의 상실은 구체성을 다시 한 번 탈각시키고, 색채의 자기 전개라는 추상화의 충동을 함축한다. 팀 아이텔이 보여 주는 검은색과 회색은 깊고 뉘앙스가 풍부하며 아름답다.
<무제-숨>(2009)에서는 무방비 상태인 노숙자가 악취에 가까울 것 같은 입냄새를 풍기면서 생존을 위한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찌꺼기들의 총합이다. 팀 아이텔은 이 작품들을 그릴 무렵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잠시 체류한 적이 있었다. 베벌리힐스와 헐리웃으로 대변되는 화려한 도시에서 그는 평생 잊지 못할 만큼 많은 수의 노숙자들을 보게 된다. 이전의 작품에서 추구했던 ‘보이지 않는 힘’이 세계에 내재한 기하학적 질서였다면, 자본주의의 종주국 미국에서 발견한 ‘보이지 않는 힘’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것들은 존재하였지만 사람들이 바라보지 않았던 것이며, 더군다나 예술의 대상으로 삼으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등장하는 것이 <무제-지시>(2009) 처럼 경찰, 군인, 사설 경비원, 각종 안전 요원들을 그린 그림들이다. 노숙자들의 무방비 상태와는 다른, 긴장에 찬 그들은 세상을 온갖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역설적으로 이들의 존재는 세상이 안전한 것이 아니며 많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대척되는 듯하지만 결국은 위험에 처한 ‘하나인 세계’가 둘로 나누어진 모습이다.
팀 아이텔은 값싼 화해를 요청하지도 않고 다른 한쪽의 우월권을 주장하지도 않으며 담담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최근 작품 <반사>(2010)에서 사물과 그림자의 주종 관계를 설정하는 그림자가 사라지고 동일한 가치의 반사상이 등장한 이유이다. 추상과 구상이건, 노숙자와 가드이건 2개의 세계는 여전히 병립하고 있으며 팀 아이텔은 하나의 회화적인 통일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부단한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왼쪽 · <무제-섬> 캔버스에 유채 27.9×25.7cm 2008 (Photo: Kerry Ryan McFate) Courtesy Galerie EIGEN+ART Leipzig, Berlin and The Pace Gallery | 오른쪽 · <거니는 사람> 린넨에 유채 27.9×27.9cm 2006 (Photo: Kerry Ryan McFate) Courtesy Galerie EIGEN+ART Leipzig, Berlin and The Pace Gallery

팀 아이텔_1971년 독일 레온베르크 출생. 통일 이후의 독일 미술을 대표하는 뉴 라이프치히 스쿨의 대표적 작가다. 할레미술대학 및 라이프치히아트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2010년 리버풀비엔날레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뉴욕 페이스갤러리(2009), 베를린 아이젠아르트갤러리(2010)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독일 함부르거반호프현대미술관, 프리더버다미술관, 스웨덴 아르켄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서울 학고재갤러리(9. 2~ 10. 23)에서 첫 한국 개인전을 연다.

기타가와 후람을 만나다

기타가와 후람을 만나다

글|김복기 · 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일본의 저명한 아트 디렉터 기타카와 후람(北川フラム)이 지난 7월 한국을 방문했다. 기타카와는 에치고츠마리(越後妻有) 트리엔날레와 세토우치(瀨戶) 국제예술제의 종합 디텍터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 그가 마을미술프로젝트추진위원회(위원장 김춘옥)가 주최한 〈생활공간 공공미술로 가꾸기〉 세미나(7. 14 동숭동 예술가의집)에 초청을 받아 ‘에치고츠마리의 사례’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기타카와는 지역 미술축제에 동시대미술의 흐름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기존의 비엔날레와는 다른 차원의 ‘21세기형 아트페스티벌’의 모델을 소개했다. 세미나를 마치고 예전부터 알고 있던 그를 따로 만났다.

쿠사마 야요이 <노란 호박>_나오시마 부두에 설치된 입체작품. 이 섬의 랜드마크로 널리 알려져 있다.

‘21세기 아트페스티벌’의 전범을 제시하다

에치고츠마리는 ‘대지(大地)의 예술제’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2000년에 출범했다. 이 행사는 니가타(新潟) 현의 남쪽 토카마치(十日町) 시와 인근 오지의 농촌 등 총 6개 권역에서 열린다. 지금까지 4회전을 치러 낸 에치고츠마리는 아티스트와 주민의 협력으로 ‘지역 밀착형’ 공공미술 작품을 제작해, 문화적 비전을 지속적으로 다지는 예술 축제다. 한편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카가와와 오카야마 양 현에 걸쳐 있는 세토우치 해안의 나오시마(直島) 등 7개 섬과 다카마츠 시에서 동시에 열리는 대규모 현대미술제다. 2010년에 출범해 18개국 75개의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 행사는 에치고츠마리의 ‘섬 버전’이라 해도 좋다. ‘예술의 섬’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나오시마의 효과’를 인근 해협 전체로 확장시켰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기타카와 후람의 기획은 1994년에 시행된 다치카와(立川) 아트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도쿄 근교의 다치카와 시가 ‘문화와 부드러움’을 시정(市政)으로 내걸고, 오피스텔 호텔 데파트 영화관 도서관 등 11개 인텔리전트 빌딩에 109점의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했다.(이곳은 원래 미군기지촌이었다.) 장 피에르 레이노, 조나단 보로프스키, 심문섭 등 36개국 92명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초빙했다. 당시 ‘미술품 장식 1%규정법’의 의무 방어 수준에 머물고 있던 한국 공공미술의 열악한 현실에서, 나는 이 프로젝트를 획기적이고 신선한 도시미술, 공공미술의 본보기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던 기타카와가 왜 시골 오지나 섬, 대지와 바다를 아트프로젝트의 사이트(Site)로 주목한 걸까?
“20세기는 ‘도시의 시대’였다. 그러나 21세기는 지구촌이 생태, 환경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도시는 병들어 가고, 아트는 이 병든 도시를 작품으로 고발하고 있다. 결국은 아트 자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21세기에 아트의 역할은 도대체 뭘까. 무엇보다 자연과의 소통이 회복돼야 한다. 농촌과 어촌에서도 아트를 받아들여야 하고, 아트도 이 지역으로 파고들어가야 한다. 내가 목격한 바로는 감정이 메마른 도시(문명)에서 활동하던 아티스트들이 자연으로 제작 환경을 바꾸더니, 작품이 풍부하고 부드럽게 변하더라.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미술로 바뀌는 것이다.” 기타카와가 왜 ‘인간은 자연에 내포된다’ (에치고츠마리), ‘바다의 복권’(세토우치) 같은 주제를 내세웠는지, 그 이유를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작품의 사이트가 농촌이나 어촌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타카와의 기획에 참여한 아티스트의 면면은 가히 ‘초특급 국제전’ 수준이다. 일리아 카바코프, 다니엘 뷔랭,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제임스 터렐, 이우환, 타다시 가와마타, 안도 타다오, 차이궈창 등등 동시대미술의 거장들이 수두룩하다. 한국에서는 김수자 서도호 이불 육근병 구정아 안규철 등 이른바 비엔날레 형 작가들이 기타카와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초대 작가는 물론이거니와 행사 규모도 엄청 거대하다. 에치고츠마리는 약 762km2의 대지를, 세토우치는 광활한 섬과 바다를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으로 간주하여 작품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면 기타카와의 아트프로젝트는 기존의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전과 무엇이 다른가.
“에치고츠마리는 ‘교류 인구의 증가’ ‘지역의 정보 발신’ ‘지역 활성화’, 그리고 세토우치는 ‘관광 진흥’ ‘지역 이미지 향상’을 주요 목적으로 한 프로젝트다. 어느 면에서는 국제전과 유사하다. 그러나 우리 행사는 3년만에 열리지만 일회적인 페스티벌로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함께 프로젝트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예술이 삶 그 자체로 승화되는 과정을 목표로 한다. 이 점이 다르다.”

세토우치국제예술제의 후쿠다케 하우스 전경 Photo: Kim Bog-gi_후쿠다케 하우스는 2006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에서부터 시작된 일종의 미니 아트마켓이다. 휴교 중인 초등학교와 옛 보육원을 전시장으로 삼아 국내외 13개 갤러리에서 초대한 작가들의 개인전을 열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는 미술

기타카와의 기획은 대성공이었다. 에치고츠마리는 제1회전에 32개국에서 148점의 작품을 제작했으며, 관객 수는 163,000명을 기록했다. 이후 매회 규모가 커져 2009년 제4회전에는 40개국에서 365점의 작품을 제작했으며 375,311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세토우치는 당초 40만 관객을 예상했지만, 100만 명이나 넘쳐대는 대성황이었다. 기타카와의 프로젝트는 국제 미술계에 널리 회자되었다. 특히 근자의 비엔날레 중에는 동시대미술의 미학적 문맥 못지않게 개최 지역의 문화적 경제적 활성화를 행사의 중요한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매력적인 전범으로 기타카와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는 것이다. 기타카와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먼저 행사 자금의 조달이 궁금했다.
“예산은 도 정부, 시 정부, 마을에서 각출한다. 문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도로, 주차장, 농로 건설 등의 농림부나 건설부 예산, 또는 관광부 예산을 예술 분야와 매칭시키기도 한다. 여기에다 민간 기업이나 단체, 개인 출자금까지 활용하고, 전통 축제를 부활해 토산품 등의 판매 수입도 보탠다.” 행사 자금이 워낙 전방위적으로 유입되는 데다 자원봉사 등의 지원도 다양해서, 총예산은 디렉터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한다. 다음은 작가와 작품, 지역 커뮤니티와의 관계, 디렉터의 역할 등을 조목조목 따졌다.
“첫째, 작가 선정은 국가나 지역, 작가적 개성을 뛰어넘어 어떻게 ‘교류의 장’을 만들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둔다. 특정한 미술 이념을 내세우지 않고 작품의 다양성을 중시한다. 둘째, 주민과 예술 작품의 컨센서스가 중요하다. 작가가 지역에 어떤 문화적 에너지를 불어넣을 것인가가 전제되어 있으면, 대화로 주민들의 마음을 열 수 있다. 처음에 반대하던 주민들도 나중에는 즐거운 일이라며 적극 참여하더라. 결국 에치고츠마리는 작가와 건축가, 지역 주민과 공무원, 자원봉사자들이 지역의 역사적 맥락, 자연을 함께 학습하고 대화하면서 양쪽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마당이다. 셋째, 디렉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트와 지역 간의 중재, 조율이다. 나는 에치고츠마리에서 매년 수백회의 주민설명회를 4, 5년 동안 열었다. 또 행사 중에 여러 가변적 돌발적 상황이 나오는데, 디렉터는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갈 능력을 갖춰야 한다.”
기타카와의 아트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당연히 개선점을 안고 있다. 나는 먼저 전시 사이트가 워낙 넓어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하는 ‘유람 관람’의 열악한 환경을 꼬집었다. 작년 세토우치에서는, 나 같은 미술인들을 위해 3일간의 관람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이 역시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다. 또 하나 10년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품의 유형화나 작가들의 겹치기 출연 같은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또 야외 작품의 지속적인 관리도 큰 과제다. 기타카와는 나의 도발적인 지적을 ‘전문가다운 문제제기’ ‘반성과 개선 노력’으로 유연하게 수용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알아 낸 사실이지만, 기타카와의 이름 ‘후람’은 노르웨이 말로 ‘전진’을 뜻한다고 한다. 그의 아트프로젝트는 어디로 전진하고 있는가. 그 전진의 요체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 전진에서 무엇을 얻어 낼 수 있는가. 기타카와 프로젝트는 아트와 사회의 소통을 주요한 쟁점으로 삼는 자리다. 요컨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는 문화를 생산하고, 그 소통의 과정과 결과를 체험하는 삶의 미술…. 바로 이러한 예술 이념을 기타카와 후람은 ‘희망의 미술, 협동의 꿈’(자신의 저서 제목)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윤호창, 아틀리에 FCJZ <논밭> 2003_방문객들과 농민들은 논가의 작품에 앉아 계절과 날씨,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논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기타카와 후람_1946년 니가타 출생. 도쿄예술대 미술학부 졸업. 청년시절에는 일본 학생운동에 앞장섰다. 1980년 현대기획실 대표를 맡아 미술 건축 사회과학 등 300여 종의 책을 출판했다. 음악, 기획전 프로듀서, 도시건축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현재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 치추미술관 감독 및 아트프론트갤러리 대표. 여자미술대학 교수,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감독을 역임했다. 메세나 대상, 재팬파운데이션 문화예술교류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희망의 미술·협동의 꿈》 등이 있다.

살아 있는 박물관, 동서의 교차로 터키에서

카파도키아 골짜기 상공을 나는 열기구 비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암굴이 있는 괴석의 집합장, 카파도키아 골짜기 전경

살아 있는 박물관, 동서의 교차로 터키에서

글 | 윤진섭 · 미술평론가, 호남대 교수

여행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색이다. 거기에는 전 감각을 동원한 몸의 기투(企投)가 필요하다. 생소한 음식을 맛보는 것에서부터 돌 하나,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열린 감각으로 대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여로에서 만난 사람들, 수많은 물상들, 다양한 풍광과 관습은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한반도의 3배에 달하는 광대한 터키 땅을 여행하며, 나는 동서 문명의 교차로에 해당하는 이곳의 지정학적 문화사적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비록 주마간산 격의 여행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내게 주는 의미는 매우 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위 ‘동양(東洋)’이라고 하는 관념의 실체를 거기서 확인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동양이란 과연 무엇인가? 터키를 둘러싼 나의 여행기는 이처럼 간단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어느 글에선가 나는 아시아의 서쪽 끝을 터키로 설정했다. 전 세계 인구 60억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아시아는 동으로는 일본, 북으로는 중국과 몽골, 남으로는 동남아시아로 부르는 아세안(ASEAN)이 있고, 서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이 존재한다. 그 끝, 유럽의 교차점에 터키가 있다. 터키는 서구와 아시아라는 두 거대 문명권의 중간에 위치하여 시쳇말로 ‘퓨전(Fusion)’의 원조 격이 된다.
아시아 문명권을 상징하는 밥과 서구 문명권을 상징하는 빵. 이 둘을 합친 것이 있다면? 나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번 여행 중에 신물이 나도록 먹었던 ‘케밥(Kebab)’을 들고 싶다. 원래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를 뜻하는 케밥은 중국, 프랑스 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요리에 속한다. 여행 중 식사를 하면서도 언어를 중시하는 나의 특이한 연상법은 즉각 케밥의 ‘bab’에 머물렀고, 그것이 우리말의 ‘밥’과 같은 것이라고 아전인수 격의 해석을 내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터키의 식사에는 꼭 빵이 나오는데, 8박 9일 동안 내가 먹었던 케밥에는 닭고기 쇠고기 양고기 등 다양한 고기 요리와 함께 밥이 곁들여졌기 때문이다.
밀 생산국인 터키의 빵은 매우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케밥은 빵에 밥과 고기, 그리고 야채샐러드를 싸서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마치 우리의 비빔밥처럼 다양한 식재료가 어우러지는 나름의 독특한 맛이 난다. 이른바 퓨전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도 다문화가 형성되면서 홍대 앞 등 젊은이들이 모이는 길거리에 숯불식 회전구이인 되네르 케밥이 자주 보이는데, 이는 길이 약 80cm 정도 되는 쇠꼬챙이에 양념한 양고기를 겹겹이 쌓아 낫으로 깎아내는 것이다. 긴 빵에 각종 야채와 깎은 양고기를 넣어 샌드위치처럼 만들어 주는데, 이는 유목 문화의 대표적인 산물이다.  
터키가 아마도 아시아의 냄새를 풍길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적어도 외관상 보기에 터키는 유럽에 가까웠다. 이 점은 여행하는 동안 누차에 걸쳐 확인된 사항이지만, 터키 사람들의 외모와 건축 양식, 삶의 방식, 음식 등에서 그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실제로 터키는 유럽국가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터키의 희망사항일 뿐, EU 가입이 언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독일 프랑스 그리스가 터키의 가입을 반대하는 이면에는 오스만투르크제국(1297~1922)의 오랜 유럽 지배와 관련된 모종의 심리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첫 여행지인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운데 두고 에게해와 흑해를 잇고 있다. 비잔틴제국 시절에는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렸던 고도(古都)이다. 거리 곳곳에는 로마제국시대에 쌓은 고성의 잔해들이 즐비하다. 고대와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스탄불 시가지는 가히 ‘동서 문명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하기야소피아대성당을 비롯하여 술탄 아흐멧의 사원 블루 모스크,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영화를 상징하는 톱카프궁전, 로마시대의 수로 등 도시 전체가 문화 유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터키 남자들은 짙은 눈썹에 검은 머리, 건장한 신체가 특징이다. 물론 외견상으로는 유럽인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유럽화된 사람들이 많다. 여자들 역시 금발에 흰 피부를 한 미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터키 남자들의 신체가 건장하다는 사실을 화장실에서 확인한 것은 의외였다. 내가 간 터키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높이는 한국의 것보다 반 뼘 정도는 높아서 소변을 보는 내내 나는 뒷꿈치를 드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터키 남자들은 왜 신체가 건장한가? 거리 곳곳에서 만난, 마치 역사(力士)를 방불케 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중앙아시아를 호령하던 기마 유목민의 용맹한 모습을 떠올렸다. 고구려를 비롯한 우리의 역사를 배우면서 만난 적이 있는 돌궐족(突厥族), 즉 투르크(Turk)가 바로 그들의 조상인 것이다. 투르크는 ‘용맹한 사람’을 뜻하는 ‘투룩치’에서 유래한다고 하니 용맹한 사람이 기골장대한 것은 당연한 일.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한때 유럽을 호령하던 오스만투르크의 영화를 연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세계적인 휴양지 파묵칼레의 석회 온천. 클레오파트라가 목욕하러 왔던 곳으로 유명하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혼합

그렇다면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터키를 동양, 즉 아시아의 서쪽 끝으로 간주했던 나의 설정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가. 아시아와 연관된 나의 담론과 전시 기획의 대체적인 구상은 언어학적으로는 우랄알타이족의 이동, 인류학적으로는 몽골리안루트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로부터 부챗살처럼 퍼져 나간 우랄알타이족의 다섯 개 이동 경로 중 하나가 바로 터키까지 이어진 것이다. 또한 언어적 측면에서 볼 때 터키어는 알타이어 계통에 속한다. 1920년대에 우랄알타이 산맥 지역을 탐험한 요헬슨에 의하면, 터키의 본고장은 몽고와 시베리아에 걸친 알타이 지방이었다. 우리말은 퉁구스어에 속하는데, 이는 원래 우랄과 알타이 산맥에 거주하던 몽골리안들이 다양한 루트로 퍼지면서 유사한 언어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터키의 전통음식 케밥에서 우리말의 ‘밥’을 떠올린 나의 연상은 그럴 듯하지 않은가?
문화사적으로 볼 때 터키의 고대문화는 해(日)를 섬기는 아시아 문화권에 속한다.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방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촌락 유적은 사탈 후육의 어떤 집안에서 무당들이 굿을 하는 장면을 보여 주는데, 분장한 무당의 모습은 ‘해의 신’으로 해석된다. 박시인 교수의 <알타이 인문 연구>에 의하면 이는 새와 관련해서 한국 중국 일본에서 광범위하게 보이는 난생설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또한 천지창조와 관련하여 성경과 알타이신화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다고 한다.
동서 문명의 교차점으로서 터키의 지정학적 위치는 내게 문화의 융합과 관련해서 하나의 암시를 주었다. 이른바 웹(Web)을 기반으로 한 전 세계의 통합과 장차 그 속에서 전개될 문화적 다양성의 혼재, 그러면서도 상호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것이다. 전 세계에 걸쳐 6억 명의 가입자 수를 보유하고 있는 ‘얼책(Facebook)’과 같은 사회적 관계망(SNS)은 인류가 점차 열린 소통의 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특히 아이폰을 비롯하여 스마트폰, 아이패드와 같은 유목적 성격의 통신기기들은 이동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문명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상징한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이스탄불 시내 전경.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운데 두고 에게해와 흑해를 잇고 있다. 비잔틴제국 시절에는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렸던 고도이다. 거리 곳곳에 로마제국 시대에 쌓은 고성의 잔해들이 즐비한 이스탄불 시가지는 가히 ‘동서 문명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유목의 시대에서 정주의 시대로

8박 9일에 걸친 이번 터키 여행은 이스탄불에서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를 거쳐 카파도키아, 지중해의 관문인 안틸랴, 로마시대의 고대 유적지로 유명한 에페수스, 일리아드 속의 트로이전쟁으로 유명한 트로이를 거쳐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약 2,000km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성경에 ‘에베소 서(書)’로 표기된 에페수스의 고대 로마 유적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금부터는 주마간산 격으로 간략히 인상만을 기술하고자 한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건국 대통령인 아타튀르크 묘지를 스치듯이 지나치자마자 곧바로 카파도키아로 가는 실크로드로 접어들었다. 길은 곧게 잘 포장돼 있었다. 광활한 대지와 평원의 연속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누런 밀밭이 인상적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한 시간 이상을 일자로 쭉 뻗은 길을 달려야 한다니 버스 기사의 고충을 알만 했다. 누런 평원에는 이따금 송전탑만 나타날 뿐 마을이나 도시도 찾아 보기 힘들었다. 가끔씩 양떼를 몰고 가는 유목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 투르크족의 조상은 유목민들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정주민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이 사는 집은 유럽풍의 붉은 기와를 얹은 이층집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그것은 멀리서 볼 때의 모습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시골집들은 대부분 낡고 허름했다. 무너진 집들은 가장 현대적인 대도시인 이스탄불 시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터키를 속단해서는 안 되리라. 터키는 경제적으로 급속히 발전하는 중이며 시민들의 표정은 편안하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일이 잘 돼도 “인슈알라!”, 못 돼도 “인슈알라!”하고 외치는데, 우리말로는 “알라 신의 뜻대로!”라는 뜻이라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터키는 이슬람교 신자가 전체 국민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이슬람 문화가 강한 나라다. 도시와 마을 곳곳에는 이슬람 사원의 첨탑과 돔이 눈에 띄고, 시간이 되면 코란을 읽는 아잠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온다.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사원으로 모여 든다. 그들은 사원 입구에 마련된 세면대에서 발을 정성껏 씻고 다시 양말을 신은 다음, 사원 안으로 들어가 메카 방향을 향해 절을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암굴이 있는 괴석의 집합장인 카파도키아로 가는 중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소금 바다를 만났다. 터키에서 사용하는 소금 70%를 생산하는 염호는 길이가 80km에 달한다. 수평선 중간에 자주색 띠가 보이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는데 해변의 소금은 둥글고 굵었다.
쥘 베른의 소설을 영화화한 <80일 간의 세계일주>에 나오는 것과 똑같이 생긴 열기구를 카파도키아에서 탔던 일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풍선은 매우 거대했다. 직육면체 모양의 바구니에는 20명이 탑승할 만큼 크고 넓었다. 가스 열에 의해 움직이는 그것은 서서히 이륙을 하여 한 시간 동안 카파도키아 상공에 머물렀다. 50개는 족히 돼 보이는 각양각색의 열기구들이 떠다니는 모습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눈 아래로 전날 봤던 기암괴석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괴레메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산과 괴석에는 석굴 교회와 기도실이 있었다.
멀리서 보니 그것들은 마치 총탄을 맞아 구멍이 뚫린 암벽 같아 보였다. 너무 많이 뚫린 곳은 흉측해 보였다. 비록 이슬람교도의 박해를 피해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만행이었다. 이 일대는 용암의 분출로 형성된 원지형에, 오랜 시간에 걸친 침식 작용과 풍화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다양한 형상의 기암괴석이 즐비한 곳이다. 이유야 어떻든 명백한 자연파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열기구는 버섯 모양을 한 3개의 큰 바위로 유명한 파샤바 계곡 위를 지나고 있었다. 동쪽을 바라보니 어느 새 동이 텄는지 하늘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데린구유는 8세기 경 이슬람교도의 박해를 피해 기독교인들이 이룩한 지하도시다. 지하 120m까지 파 들어간 그곳에는 방만 1,200개에 달한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사방으로 뻗은 길은 미로였다. 겨우 기어갈 정도로 좁은 미로를 지나가면서 나는 묘한 상상에 빠졌다. 이야말로 중세판 사이버 월드가 아닌가. 죽 뻗은 대로가 아닌(Linear) 뿌리를 닮은 리좀적(Rhizomatic) 구조의 표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페이스북처럼 6억 개의 독립된 방들(Cells)로 이루어진, 사이버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로가 만들어 낸 네트워크.
중세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적의 침입을 알렸을까? 직경이 넓은 통로의 군데군데에 우리네의 연자 맷돌을 연상시키는 큰 돌이 설치돼 있는 것으로 봐서 다양한 응전 방법을 구사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데린구유는 비록 깊은 지하도시지만 공동체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시설을 구비하고 있었다. 광장과 감옥도 있었고 공동 우물과 주방, 시체안치소도 있었다. 환기구와 기상을 관찰하기 위한 시설도 있었다. 내가 보기에 데린구유는 인간의 창의력이 아주 잘 발휘된 곳이었다.

카파도키아로 가는 실크로드 중간에서 만난 소금 호수. 터키에서 사용하는 소금 70%를 생산하는 염호는 길이가 80km에 달한다.

파묵칼레와 에페수스를 가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타우루스산맥을 넘어, 성서 상 이코니온이며 메블라나 종파의 총 본산인 콘야를 거쳐 지중해의 휴양도시 안탈랴로 향했다. 타우루스산맥을 넘어 가는 길은 절경이었다. 버스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을 마치 곡예를 하듯 잘도 갔다. 길은 관광 대국답게 잘 포장돼 있었다. 아마도 바깥은 후끈하게 달궈진 냄비 속 같을 것이다. 창을 바라보니 눈에 익은 나무들이 보인다. 소나무였다. 풀이 죽은 것이 우리네 것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순간, “소나무는 역시 우리 것이 최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타우루스산맥을 이루는 산들은 바위 덩어리였다. 꼭 시루떡을 비스듬히 기울여 놓은 것처럼 생겼다. 타우루스산맥에 도달하기 전, 마치 떡 덩어리처럼 몽글몽글 응어리진 관목 숲이 이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풍경이 바뀌어 잘 생긴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 찬 계곡들이 나타났다. 한 그루에 1억이 넘는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역시!’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고 보니 보는 눈은 세계 공통인 것 같다.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회 온천 휴양지 파묵칼레로 가는 길은 멀었다. 안탈랴에서 4시간 반이나 걸리는 먼 곳이다. 일찍이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에서 배를 타고 안탈랴에 도착, 육로로 찾았다는 곳이다. 그 길을 가기 위해 그녀는 얼마나 많은 노예들을 동원했을까? 신하들은 수행을 하느라 또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혹시 수십만의 노예를 동원, 그들을 엎드리게 하고 그 위에 터키산(産) 카펫을 깔아 가마를 타고 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터무니없는 상상력이 미치는 사이, 버스 창문으로 흰 언덕이 멀리 보였다. 말로만 듣던 파묵칼레였다. 멀리서 보면 눈이 덮인 것처럼 하얗게 보이는 그곳은 석회암이 녹아 형성된 천연 욕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적당한 온도의 물이 흘러나와 목욕할 수 있는 천혜의 입지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주변에는 야외음악당과 각종 시설물을 갖춘 로마 시대의 전형적인 고대 도시의 형식을 보여 주는 유적지가 널려 있었고, 당시의 미술품을 전시했던 미술관도 남아 있었다.
에페수스는 속국에 건설된 로마 시대의 도시 구조를 잘 보여 주는 곳이다. 아직 복원 중이었으나 현재 발굴, 보수된 유적만으로 미루어 봐도 당시의 영화와 도시의 번창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인구가 20만 명에 달했다는, 당시의 실정으로는 충분히 거대 도시였던 에페수스는 야외음악당을 비롯하여 공회당 도서관 공중목욕탕 상가를 갖춘 잘 짜인 계획도시였다. 그 중에서 특히 상가의 바닥은 형형색색의 모자이크로 이루어져 호화스러운 당시의 시장 사정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특히 셀수스도서관의 건축미는 장엄했다. 이 건물은 기원후 135년 경, 로마의 소아시아 총독을 역임한 가이우스 율리우스 폴레마에누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칼리우스 율리우스 아퀼리아가 건립한 것이다. 실제로 안으로 들어가면 실내가 그리 크지는 않다. 건물 기둥은 코린트 양식과 이오니아 양식의 절충을 보여 주고 있다. 두 개의 기둥 사이에 지혜(Sophia), 미덕(Arte), 통찰(Enoia), 지식(Episteme)을 상징하는 여신상이 서 있다. 이 여신상들은 복제품으로 진품은 1910년 발굴 때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로 반출되었다.   
반면에 마지막으로 들른 트로이 유적은 영화 <트로이>에서 받은 인상이 너무 커서인지 볼 만한 것이 별로 없어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가이드가 ‘허무 관광’이라고 부른 것과는 달리, 신화 속의 도시에 불과했던 트로이를 발굴하여 햇볕으로 끌어 낸 독일 출신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의 노력을 생각하며, 아직 지하에 잠들어 있을 고대 유적을 현지에서 상상하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각별한 경험이었다.

페수스 유적지에 있는 셀수스도서관 전경

하기야소피아 성당 내부 벽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왼쪽에 돈주머니를 든 요하네스 2세가, 오른쪽에 황후의 모습이 보인다. 비잔틴 시대 벽화들은 오스만투르크의 점령 이후 회칠되었다가 1847년 성당을 수리하던 스위스의 건축가 프사티에 의해 발견,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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