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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1.07

Abstract

특집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올 여름 전 세계 미술인들이 베니스를 향하고 있다. 바로 베니스비엔날레(6. 4~11. 27)가 54번째 문을 연 것이다. 올해는 스위스 출신의 미술사가이자 큐레이터 비체 쿠리거가 총감독을 맡아 '일루미네이션(ILLUMI nations)'이라는 타이틀로 본전시를 기획했다. 전보다 더욱 방대해진 규모를 자랑하는 가운데, 올해의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크리스토프 슐링엔지프의 생전 마지막 퍼포먼스 무대를 재현한 독일관에, 그리고 아르세날레 본전시 참여 작가에게 주는 황금사자상은 미국 작가 크리스찬 마클레이에게 돌아갔다. 1895년에 시작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쌓아 가는 동안, 베니스비엔날레는 무수한 이슈와 담론을 생산하는 '현대미술의 발전소'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과연 올해에는 최대의 국제 미술행사로서 미술의 어떠한 새 지형도를 그려 내고 있을까? art가 현지 취재한 생생한 비엔날레 현장을 지금부터 소개한다.

Contents

01     표지 한 후거브뤼헤 <콰트로소퍼스> 비디오 애니메이션 3분 48초 2011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덴마크관 출품작 Courtesy of the Artist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베니스의 빛, ILLUMInation  김복기

38    특별기고  김창실 대표를 추모하며  서성록

42    프리즘
    한국 미술관의 디렉터십, 이대로는 안된다  하계훈
    상업주의에 갈 곳 잃은 서울의 미술 공간들  강홍구

52    포켓 속〉〉〉디카 속〉〉〉이미지 채집  권지현

64    포커스
    이것이 미국미술이다展  양은희
    김영원展  김이순
    정서영展|피아 란징게르展  정현
    안두진展|함진展  이선영

80    특집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1]Pictorial_일루미네이션  
    [2]Review_‘빛’의 탐구, 담론에서 다시 아우라로
    [3]Pictorial_국가 파빌리온
    [4]Guide_국가 파빌리온 24
    [5]Comments_베니스의 미술인, 비엔날레를 말하다

124    아웃 오브 코리아  강경구
    변증법적 긴장으로  심광현

130    이미지 링크  나카히라 타쿠마

136    아트마켓  
    [1]바젤아트페어_바젤은 뙤약볕처럼 뜨거웠다  변홍철
    [2]홍콩아트페어_홍콩은 터보엔진을 달았다  김새미

148    아티스트 스펙트럼  김도균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건축의 피부’  김종길

156    이슈 앤 크리틱 
    지식인을 위한 변명, 빼어난 바보를 위하여  김백균

162    오후의 아틀리에
    신비를 배우는 마음  정종해

164    잇 아티스트
    최안나|심아빈|윤가림|윤향로

168    전시 리뷰
    한국의 그림_사진을 그리다 사진을 읽다|조규성|니키리
    김학제|허진|이정은|김동규|김동기|지구상상|김영은

178    전시 프리뷰
    애니멀리어|박정숙, 베르너 랑베르시|박호용|하이!블록!

182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바젤은 뙤악볕처럼 뜨거웠다

제임스 터렐 <Joecar Blue> 1968

바젤은 뙤악볕처럼 뜨거웠다

글|변홍철 · 아트컨설턴트

아트바젤은 국제 미술시장에서 그 역사와 규모, 성격 면에서 ‘아트마켓의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트바젤이 열리는 매년 초여름이면 컬렉터와 딜러, 큐레이터와 작가 등 전세계 미술계 인사들이 마치 순례자처럼 스위스의 작은 도시 바젤로 향한다. 올해 아트바젤에는 35개국 300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여해, 2천 5백여 작가들의 최대 1조 8천억 원에 달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주최 측이 집계한 총 관람객은 6만 5천명 정도로, 예년 평균 수치인 6만을 훨씬 웃돌았다. 올해는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려 축제의 분위기를 더했다. 300여 대의 프라이빗 제트기가 VIP프리뷰를 위해 바젤 공항에 착륙했다. 미술 관계자들은 이번 아트바젤이 2008년 가을 이후 급속히 냉각된 국제 미술시장에 다시 회생의 불씨가 지펴지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했다고 입을 모았고, 세계 곳곳에서 몰려 든 언론들은 아트바젤의 열기를 전하느라 바빴다.

클로스터펠데갤러리 부스 전경

베니스에서 보고, 바젤에서 산다

아트바젤은 세계적인 갤러리스트로 구성된 아트바젤 위원회의 까다로운 갤러리 선별로 악명(?) 높다. 참여를 원하는 갤러리의 원성이 높지만, 소위 깐깐한 ‘수질 관리’를 통해 페어의 수준을 최정상으로 유지하려는 아트바젤의 안간힘에 가깝다. 올해 역시 20세기 거장에서 이제 막 국제 미술계에 명함을 내민 신진 작가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페어의 전체 모습을 세심하게 구성하면서 아트바젤을 찾는 많은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파리의 컨셉트와 GB에이전시, 제네바의 블론도, 뉴욕의 보르톨라미, 베를린의 이자벨라 보르톨로치와 조안나 캄, 런던의 캐비넷과 홀랜드-히버트, 모스크바의 레지나, 베이루트의 스페이어 새믈러, 오슬로의 스탠다드, 부다페스트의 빈티지 등의 새로운 갤러리가 <아트갤러리(Art Galleries)> 섹터에 참여해 아트바젤에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제42회 아트바젤은 많은 갤러리가 주제전이나 개인전 형식으로 부스를 꾸렸고, 거대한 설치작품과 조각품을 선보여 스펙터클한 전시 광경을 연출했다. 참여 갤러리의 부스를 채워 놓는 작품은 갤러리 간의 자존심 대결과도 같아서, 소속 작가의 가장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 모습이었다. 제1전시장에서는 미술관과 미술 재단, 혹은 대형 저택을 소유한 컬렉터들을 위한 대형 프로젝트인 <아트언리미티드(Art Unlimited)>가 열렸다. 대부분 메인 페어에 부스를 가진 화랑들로 62개의 대형 조각과 설치, 프로젝션 작업 등을 선보였다. 파리 그랑팔레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있는 아니쉬 카푸어의 붉은 왁스와 철제틀을 이용한 <Push-Pull>과 사라 모리스의 신작 비디오 작품 <Points on a Line>이 관람객의 시선을 끌었다. 같은 전시장 한쪽에서 열린 <아트스테이트먼트(Art Statem ent)> 섹션에서는 14개국의 300여 지원자 중 아트바젤이 선발한 신진 작가의 개인전 프로젝트 27개가 함께 선보였다. <아트스테이트먼트>는 젊고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고 발굴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으로 전쟁터와 다름 없는 페어장 내에 ‘숨구멍’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2전시장에는 300여 갤러리가 참여한 메인 페어 <아트갤러리>와 <아트에디션(Art Edition)>, 200여 개의 지원 프로젝트 중 선별된 20개 갤러리의 큐레이팅 프로젝트 <아트피처(Art Feature)>가 함께 열렸다. <아트피처> 섹션에서는 지미 던햄, 리지아 클락, 지오르지오 모란디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아트피처>를 통해 처음으로 바젤에 참여한 방콕의 100톤슨갤러리의 디렉터는 “태국 갤러리로는 처음으로 아트바젤에 참여하게 됐다”며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소속 작가인 리크리트 티라바니자는 행사 기간 동안 갤러리 부스 벽면에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벽화를 제작했고, 태국식 카레와 밥, 맥주를 나눠 주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페어에서 만난 싱가포르 STPI(Singa pore Tyler Print Institute)의 디렉터 에이미 유는 “사고 싶은 작가들의 작품이 너무 많아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정말 갖고 싶은 작품들은 이미 모두 팔렸다며 안타까워 했다.
아트바젤은 메인 행사장뿐 아니라 야외에서도 계속됐다. <아트팔커스(Art Parcours)>는 전시장을 벗어나 열리는 행사로 뮌스터조각프로젝트를 연상시키는 장소특정적 프로젝트이다. 올해는 아이 웨이웨이, 잉카 쇼니베르, 자네트 카디프, 앤 추, 페데리코 에레로 등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작가 10인의 작품이 세인트 알반-탈 거리를 중심으로 설치됐다. 아트바젤을 찾은 관객은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을 따라 작품을 감상하며, 복잡한 행사장에서 벗어나 잠시 재충전할 수 있는 휴식과 비움의 시공간을 경험했다. 큐레이터 평론가 작가가 참여한 <아트컨버세이션(Art Conversation)>과 <살롱(Salon)>에서는 ‘대안적인 것’은 무엇인지, 미술관의 컬렉션, 예술가 후원과 정치의 관계 등 다양한 주제로 열띤 토론이 이루어져 페어에 학구적인 성격을 부여했다. 로렌스 뷔너와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를 상영한 <아트필름(Art Film)>은 작가와의 대화를 마련해 젊은 관객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아트바젤 못지않은 볼거리와 미술관 전시도 눈길을 끌었다. 바이엘러재단의 브랑쿠시와 리차드 세라의 2인전, 샤울라거미술관이 바젤의 역사적인 저택인 파비올라에서 기획한 프란시스 알리아스의 개인전과 같은 굵직한 전시는 페어 기간 중 바젤을 방문한 사람들을 더욱 바쁘게 했다.
이번 페어에서 작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는 페어를 안내하는 유용한 도구로 스마트폰 앱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페어 입구에서 무선 인터넷으로 앱을 다운로드 받아 설치하면, 미로처럼 구성된 페어에서 관람 동선을 계획할 수 있고, 각 갤러리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 관객의 편의를 도왔다. 나이가 지긋한 컬렉터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앱을 사용할지는 의문이었지만, 엄청난 양이 인쇄되고 버려지는 페어 가이드와 전단을 어느 정도 친환경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보였다. 아이패드를 사용해 소속 작가를 소개하는 갤러리스트들의 모습은 이제 국제 아트마켓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작가들의 두꺼운 포트폴리오가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지는 시대가 올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제이슨 로즈 <무제> 2004

불황의 끝인가, 최고의 세일즈 성과

무엇보다 아트바젤은 ‘마켓’으로서 역시 최고였다. 제2전시장 1층에서 피카소와 모란디의 작품을 보자 내가 바젤에 와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판매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말보로파인아트갤러리는 총액이 1천억 원에 달하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 6점을 전시해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취리히의 브루노비쇼프버거갤러리는 판매가 8천만 달러(약 900억 원)인 앤디 워홀의 1980년작 <150개의 검정 하양 회색의 마릴린>을 선보여 페어 기간 내내 관객과 미디어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참여 갤러리들이 좋은 작품을 가지고 나온 이유도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세일즈 리포트에서 미술시장이 정점에 오른 2007년의 열기까지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술시장의 가격 거품과 시스템의 혼란이 채 정비되기도 전에 시장이 너무 빨리 다시 달아오르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대 이상의 세일즈로 들뜬 많은 딜러는 올해 아트바젤에서 미국 컬렉터들의 수가 줄어 든 현상을 큰 변화로 지적했다. 한국 작가 김성환을 소개한 영국의 딜러윌킨슨갤러리의 관계자는 “페어에 많은 미국인이 왔지만, 작품을 사는 대부분의 컬렉터는 유럽인”이라고 말했다. 한 미국 딜러는 “과거 미국과 유럽 바이어의 비율은 8:2였지만, 올해는 유럽의 큰손들 역할이 바젤의 분위기를 주도했다”고 분석하면서, 유럽 컬렉터들의 작품 사재기 현상을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또한 중동과 남미, 터키 컬렉터들의 존재감도 이전보다 커진 분위기였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역시 아트바젤에는 중국 작가들의 정치적 팝아트 경향의 작품이나 이를 풍자한 작품이 많이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바젤을 방문한 중국인의 수가 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을 눈에 띄게 확인할 수 있었고, 단체 관광을 온 중국인도 많았다. 앞으로 그 변화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국제 미술시장에서 커지는 중국 컬렉터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었다. 중국 컬렉터의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미국 유럽 홍콩 등에서 7개의 갤러리를 운영하는 세계 최대의 갤러리 가고시안은 14일 VIP프리뷰에서 오픈 15분 만에 마우리치오 카틀란의 2002년도 조각품 <프랭크와 제이미>(약 30여억 원)를 포함, 총 4천5백만 달러(약 500억 원)에 달하는 작품을 판매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뉴욕 어퍼이스트의 L&M아츠는 마크 로스코의 1969년 작품을 500만 달러(54여억 원)에, 런던의 리슨갤러리는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 작품을 550만 파운드(약 30억 원)에, 홀랜드-히버트갤러리는 1979년 브리짓 라일리의 <Streak 2>를 185만 유로(약 30억 원)에 판매했다. 하우저앤워스는 폴 맥카시의 <White Snow Dwarf 7> 시리즈를 각각 280만 달러(약 30억 원)에, 뉴욕의 체임앤리드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Eye>를 200만 달러(약 21억 원)에 유럽 컬렉터에게 판매했다.
고전 작품뿐 아니라 더욱 도전적인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컬렉터들의 관심도 두드러졌다. 이본랑베르갤러리는 더글라스 고든의 5개 에디션이 있는 영상작업 <Video Spiral>을 7만 5천 달러(약 8천2백만 원)에 판매했다. 브뤼셀의 자비에르위프켄갤러리는 토마스 휴세고의 브론즈 <Yet to be titled(Large Head #1)>의 에디션 3개를 22 ~25만 달러에 모두 판매했고, 지난 5월에 열린 필립드퓨리경매에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격으로 미술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한 26세의 뉴욕 출신 작가 제이콥 캐세이의 미니멀한 은색 페인팅 시리즈를 <아트언리미티드> 섹션에 선보였다. 엘라스틱갤러리는 루노 라고마르시노의 신문더미를 배에 묶은 설치 작품 <Trans Atlantic>을 4만 유로(약 5천6백만 원)에 영국 컬렉터에 팔았다. 해리스리버만갤러리는 알렉산더 싱그의 설치작업 <The Dialogu es of the Objects I-V>의 3개 에디션을 각각 3만 5천 달러에 미국 컬렉터들에게 판매했다.
올해는 아트바젤과 함께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려 여러모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베니스와 바젤 양쪽에서 작품을 소개하는 작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마케팅 창구가 되었다. 마이클버너갤러리는 엔리코 데이빗이 올해 제작한 대형 조각 작업 <Study for a Body as a Dog’s Train ing Camp>를, 베니스에서 그의 작품을 본 이탈리아 컬렉터에게 10만 달러에 판매했다. 글래드스톤갤러리는 베니스비엔날레의 미국관 작가인 제니퍼 알로라와 기예르모 칼사디야의 <Lifesaver Manho le> 조각을 11만 달러에 호주 컬렉터에게 판매했다.
이번 아트바젤에 국내 갤러리로는 국제갤러리가 유일하게 참여해, 이우환 이기봉 양혜규 등의 한국 작가를 선보였다. 이기봉의 회화는 15일 7점 모두 솔드아웃 됐으며, 영국 모던아트옥스포드에서 열린 개인전으로 컬렉터들의 관심을 끈 양혜규의 작품은 뉴욕의 그린나프탈리갤러리에서 선보인 광원 조각 시리즈를 모두 팔렸다. 이 외에 국제갤러리가 출품한 빌 비올라의 5개 에디션 영상작품과, 가다 아메르의 금속 소재 조각품 5개의 에디션 또한 거의 팔렸으며, 아니쉬 카푸어는 파리 전시에 힘입어 VIP프리뷰에서 바로 판매가 되는 성공적인 세일즈를 보여 주었다.

왼쪽 · 이본랑베르갤러리 부스 전경 | 오른쪽 · 페트릿 할리라이 <Kostёrrc(CH)> 혼합재료  230×600×400cm 2011

국제 아트페어의 춘추전국시대

올해 아트바젤의 화려한 성공은 침체된 미술시장뿐 아니라 국제 아트페어의 치열한 경쟁이란 측면에서 살펴 봤을 때 그 의미가 두드러진다. 아트바젤은 1970년 몇몇 지역 갤러리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후 40여 년의 역사를 통해 이제는 그 이름 자체가 최고의 브랜드로 발전했다. 벌써 10년을 바라보는 아트바젤마이애미는 이미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아트바젤도 이제 더 이상 오랜 명성에 안주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국제 페어들 간의 경쟁 구도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메이저 컨템포러리 아트페어인 런던의 프리즈아트페어가 뉴욕의 아모리쇼를 위협하며 내년 5월초 뉴욕 진출을 선언, 이에 아모리쇼의 위성 페어 중 하나였던 펄스는 프리즈뉴욕(Freize NY)과 시기를 맞추기로 발표했다. 오는 10월 열릴 런던의 프리즈아트페어는 〈아모리모던(Armory Mode rn)〉과 성격이 유사한 고전부터 20세기 모던 작품을 위한 〈프리즈마스터스(Freize Masters)〉라는 섹션을 추가했다. 다른 메이저 페어인 뉴욕의 아모리쇼와 위성 페어 볼타를 기획하는 MMPI사는 올가을 LA에서 ‘아트플랫폼LA(Art Platform LA)’이라는 새로운 페어를 런칭한다. 이에 뒤질세라 아트바젤도 아시아의 신생 아트페어인 홍콩아트페어를 인수했다. 바젤 런던 뉴욕을 기반으로 메이저 페어를 운영하는 3대 회사가 거의 동시에 새로운 진출과 인수 합병을 발표한 셈이다. 덩달아 갤러리와 컬렉터들도 내년도 아트페어 스케줄을 어떻게 짤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올해 아트바젤은 꽤 많은 수의 새로운 갤러리들을 페어에 참여시켜 페어 전체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애쓴 모습이다.
아트바젤과 같은 거대한 아트페어는 특정 작가의 지역별 독점권을 가진 몇 개의 갤러리가 모두 한 페어에 참여해 지역별 전속 개념의 의미를 희석할 수 있으며, 지나친 과열 경쟁과 노출 빈도에 자칫 컬렉터들의 무관심을 불러올 수도 있다. 지난 5월 홍콩아트페어에 참가했던 50개 이상의 갤러리가 다시 바젤을 찾았고, 몇몇 갤러리는 올봄 뉴욕 아모리쇼에 출품했던 작품을 다시 들고 나와 새로운 작품을 보기 위해 페어를 찾는 재미를 반감시켰다. 심지어‘저 작품은 안 팔리나 보다’라는 인상까지 심어 주었다. 예를 들면 빅토리아미로갤러리가 가지고 나온 야오이 쿠사마의 대형 꽃조각은 올봄 아모리쇼에 이어 이번 아트바젤에서도 부스를 지키고 있었다.
똑같은 메이저 화랑들이 매달 모든 페어에 참여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지겨운 일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아트월드의 순례자들은 당연히 발길을 돌릴 것이다. 아무리 ‘바젤’이라지만 국제 아트마켓의 ‘춘추전국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할 상황이다. 아트바젤의 홍콩아트페어 인수는 포화 상태의 국제 아트마켓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아시아 미술시장의 영향력을 선점하려는 속이 훤히 보이는 전략에 가깝다. 어쨌든 새로운 게임이 다시 시작됐다. 내년 홍콩(아시아), 마이애미(미국), 바젤(유럽)의 세 꼭짓점으로 바젤이 그릴 다각적인 전략의 큰 그림이 국제 미술시장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해 본다.

휘트니미술관이 ‘만들어 온’ 미국미술

마리솔 에스코바 <여인과 강아지> 나무, 석고, 합성 폴리머 박제한 강아지 머리 182.9×215.9×121.9cm 1964

휘트니미술관이 ‘만들어 온’ 미국미술

글 | 양 은 희

덕수궁미술관이 이번에 선보이는 미술은 ‘미국미술’이다. 그동안 <김보현>전(2007), <아시아 리얼리즘>전(2010) 등 주목할 만한 전시를 열어 온 계보에 걸맞게, 이번에는 지난 1세기에 걸친 미국 현대미술을 오브제 작업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뉴욕에 위치한 휘트니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공동 기획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인 카터 포스터가 고른 휘트니 컬렉션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 박영란 큐레이터가 주제별로 구분한 것이라고 한다. 1부 ‘아메리칸 아이콘과 소비 문화’는 앤디 워홀을 위시한 미국 팝아트를 주로 소개하고 있고, 2부 ‘오브제와 정체성’은 마리솔 에스코바, 로버트 라우센버그, 재스퍼 존스 등의 작품으로 이민자, 게이 등 작가의 정체성을 주로 부각하고 있으며, 3부 ‘오브제와 인식’은 만 레이, 클래스 올덴버그 등의 작업을 통해 초현실주의적 감수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연대순으로 작품을 배열하는 관습에서 벗어나, 주제 중심으로 소제목을 정하여 주요 작업을 부각한 이 전시는 다다에서 네오다다까지, 팝아트에서 개념미술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으면서도 일상성과 소비 문화로 점철된 미국미술의 한 측면을 잘 부각시키고 있다.

왼쪽ㆍ웨인 티보 <파이 진열대> 캔버스에 유채 76.2×91.4cm 1963 | 오른쪽 · 만 레이 <행운> 캔버스에 유채 60.9×73.6cm 1938

미국적 팝아트, 경계를 넘나드는 혼성성

이 전시에서 도드라지는 미국미술은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스타인, 톰 웨슬만, 웨인 티보 등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미국 팝아트이다. 이중에서도 1960년대 이후 미국의 부와 풍요로운 라이프스타일에 기인한 음식 문화가 두드러진다. 워홀이 즐겨 먹었고 즐겨 그렸으며 즐겨 찍어 내었던 캠벨수프 캔부터 미국 수퍼마켓의 음료대를 채우기 시작한 대중 음료의 대명사 코카콜라까지. 과거 바로크 시대의 정물화를 만화 기법으로 단순화한 리히텐슈타인의 과일 접시, 사탕가게의 넘쳐 나는 달콤한 것들, 포토리얼리즘에 가까운 기법으로 그린 케이크 가게의 진열대까지, 대량 생산과 대량 유통의 혜택을 누린 미국 소비 문화가 반영된 작품들이 선별되었다. 어떻게 보면 소비의 유혹에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식욕을 자극하는 대상들을 묘사한 이 작품들의 그 가벼운 매력 자체가 바로 팝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1부 전시장은 브릴로 박스, 캠벨수프 등이 상품인지 예술 작품인지 구별되지 않을 정도이며 가벼운 소비 문화와 고상한 예술의 존재감 사이에서 불편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가벼움이 어느 정도 완화되는 곳은 바로 2부이다. 이민자의 나라이자 다원주의가 생성된 나라 미국에서 인종 정체성은 곧 문화 정체성이며, 미술은 그러한 문화 정체성을 어떤 식으로든 반영할 수밖에 없다. 전시실 입구에서 관객을 맞는 마리솔 에스코바의 <여인과 강아지>는 소비 문화의 주체인 여성들의 분열된 모습을 그려 낸 입체 작업으로, 팝아트의 느낌이 강하면서도 제작 기법은 거친 목공예 기법(미국 원주민의 민속공예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피카소의 인물상과 유사하게 과장과 생략, 변형과 단순화를 거치면서 풍요로움을 향유하면서도 공허한 미국 여성의 초상을 그려 내고 있다.
3부는 다소 새로운 주제이다. 다다이즘 작가 만 레이의 생경할 정도로 일상용품을 오브제화한 작업부터 클래스 올덴버그의 유명한 소프트 조각 중 하나인 <부드러운 믹서>의 낯선 느낌까지 주로 작가의 상상력을 가동시킨 작업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올덴버그의 대형 작업을 다수 볼 수 있었는데, 시간차를 무시하고 사물을 대하는 작가의 초현실주의적 감수성을 잘 보여 준다. 필자는 3부가 유럽 미술을 접목하여 응용한 미국미술의 혼성적 모습을 잘 드러낸다고 본다. 올덴버그는 스웨덴 출신의 이민 작가로, 그가 즐겨 제작한 소프트 조각이나 작은 물체를 크게 확대한 조각은 ‘초현실주의적 팝’이다. 만 레이는 미국 출신이면서도 뒤샹을 비롯한 유럽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메트로놈, 다리미 등 오브제와 사진을 통해 초현실주의 언어를 구사했던 작가이다. 이처럼 미국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들이야말로 미국현대미술의 현재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덕수궁미술관 전시 전경

휘트니미술관, 가장 미국적인 미술의 집합소

휘트니미술관 컬렉션에 의존하여 소개한 미국미술은 이렇게 미국만의 미술이 아니라 유럽과 면밀하게 연결된 지점을 드러낸다. 이 전시는 거투르드 반더빌트 휘트니(Gertrude Vanderbilt Whitney)여사(1875~1942)가 1930년 휘트니미술관을 건립하면서 꿈꾸었던 미술관의 모습을 어느 정도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다.
19세기 뉴욕의 신흥 부자였던 반더빌트 가문의 딸로 태어난 휘트니 여사는 결혼 후 1900년대 초 여느 뉴욕의 부자들처럼 당시 문화의 산실이었던 유럽을 방문하게 되었고, 파리에서 현대미술이 꽃피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예술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게 되었다. 당시 파리에는 인상주의 작가들부터 피카소, 마티스 등 미술사의 주요한 인물들이 모두 활동하고 있었으며,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오귀스트 로댕 역시 현대적인 인물 조각으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휘트니 여사는 이때 로댕에게서 조각을 배운 후 조각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뉴욕에 돌아온 이후 보헤미안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있던 그리니치빌리지에 ‘휘트니 스튜디오(Whitney Studio)’를 차린다. 그는 미국 공공 조각 공모에 응모해서 수상을 할 정도로 작업에 열중했지만 그리니치빌리지의 동료 예술가들을 알게 되면서 자신보다 열악한 처지에서 작업하는 그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겼고, 틈이 날 때마다 그들의 작품을 사들이면서 컬렉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휘트니 컬렉션에는 그리니치빌리지 미술가들의 작품 중에서도 ‘미국 인상주의’라고 불리는 ‘애쉬칸 스쿨(Ashcan School)’의 작업이 많았다. 여기에는 뉴욕의 일상적 풍경을 담은 작업이 많았는데 언스트 로슨, 존 슬론, 기 펜느 뒤 보아 등의 작업이 그것이다. 그 이후에는 에드워드 호퍼, 알렉산더 칼더 등의 작업을 사들이면서 미국 모더니즘 미술의 핵심을 담아 냈다. 이번 덕수궁미술관의 전시에서 ‘20세기 미국미술의 시작’이라는 특별전 형식으로 소개되고 있는 작품들이 바로 휘트니 여사가 가장 애정을 담아 수집했던 작품들 중 일부이다. 존 슬론의 <그리니치빌리지의 뒷골목>은 추운 겨울날 뛰어노는 아이들 위로 널린 빨래가 인상적인 작업이며, 조지아 오키프의 작은 소품과 마스든 하틀리의 작품은 추상을 소화하려던 20세기 초의 미술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도 호퍼의  <해질녁의 철로>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을씨년스러운 뉴욕 변두리의 철로에서 본 저녁 하늘의 극적인 색 변화는 공기가 좋은 이 지역의 가을, 겨울에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으로 미국의 자연주의적 작업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1929년 휘트니 여사는 자신의 컬렉션을 미국미술의 주요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기증하고자 했으나 아직 검증되지 않은 작품들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그의 소장품 중에서 미국미술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700여 점을 모아 스스로 미술관을 차렸다. 최초의 휘트니미술관은 그리니치빌리지의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만든 그의 작업실 ‘휘트니 스튜디오’ 자리에 세워졌는데, 이후 인근의 집 3채를 더 사들여 개조한 후 1931년 공식적으로 휘트니미술관을 열었다. 1960년대에는 새로이 건물을 지어 현재의 뉴욕 매디슨 에비뉴 건물로 이전했다. 그런데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거절 때문에 세워진 휘트니미술관이 최근 이 건물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넘기고 다운타운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80년의 역사가 만든 아이러니이다.
이번 한국 전시는 다소 드라마틱하게 <이것이 미국미술이다>라고 제목을 달고 있지만 더 정확한 의미는 ‘휘트니미술관이 만들어 온 미국미술’일 것이다. 그 ‘미국미술 만들기’에는 휘트니미술관이 2년마다 개최하는 휘트니비엔날레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비엔날레는 미국의 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재능 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해서 전시하는 중요한 행사이자 전시된 작가의 작품들 중 일부를 휘트니 컬렉션에 소장하는 기회로서 휘트니 여사가 강조했던 젊은 작가 발굴과 지원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 최근에는 갤러리와의 보이지 않는 연대로 미술의 상업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1932년 이후 지금까지 ‘새로운 재능 발굴’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1930년대 첫 전시에서 두각을 보였던 조지아 오키프부터 에드워드 호퍼,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장 미셀 바스키아, 신디 셔먼, 제니 홀처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가들이 이 비엔날레를 통해 등장했고, 이들은 현재 휘트니미술관의 컬렉션에서 가장 미국적인 작가로 자리잡고 있다.

건축의 ‘피부’, 그 숭고한 미학을 분석한다

<sf.Be-3> 플렉시글라스에 C-프린트 160×200cm 2010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건축의 피부’

글|김종길 · 미술평론가

작가 김도균의 눈과 카메라가 하나의 시선이 되었을 때, 그는 인간 생활에 편의를 제공하는 현대식 건축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미 고대에 존재했고 그래서 역사적 개념어로 완성되었으나 현대에 와서 완전히 탈바꿈된 개념을 보여 주는 극장 미술관 경기장 수영장 비즈니스 빌딩 등과 같은 ‘건축물’ 말이다. 영화나 연극 따위가 아닌 극장 건축에서, 조각이나 그림이 아닌 미술관 건축에서, 수영이나 다이빙이 아닌 수영장 건축에서, 삶의 다양한 양태들이 기생하는 비즈니스 빌딩에서…. 그는 예술과 스포츠와 삶을 애벌레 삼은 새로운 공공 건축의 ‘변태(Metamorphosis)’적 양상에서 탈모더니즘의 미학을 발견했고, 그것의 미학적 품새를 사진으로 직조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현대 건축의 ‘아름다운 피부’를 표현한다.
오늘날의 초현대식 건축물은 과거와 달리 그 내부의 기능이 규정하는 성격과는 사뭇 다른 외모를 생경하게 보여 준다. 중세 서양의 성당이나 동양의 사찰, 로마의 고대 원형 투기장인 콜로세움에서 얼마 전 용도 폐기된 동대문운동장까지, 예배와 투기와 운동을 위한 내부의 기본 골격과 그렇게 완성된 건축의 정체성 및 속성은 건축의 외관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그리스를 비롯한 많은 고대 국가의 신전들과 근대적 박물관, 오페라 극장 등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전통이라는 역사적 향취와 고전의 권위로 자연미인의 위풍을 당당하게 뽐냈을 뿐만 아니라 정교한 건축 미학의 절대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공공적 공간들의 21세기적 변용은 돌연변이나 종의 진화, 변태처럼 그 실험의 과정이 끝없어 보인다. 사진가 김도균이 불현듯 포착한 건축 사진에는 그런 변용의 미학이 낮게 깔려 있다. 그리고 그 미학은 모더니즘을 건너뛰어 옛 건축이 발산했던 숭고와 마주한다.

왼쪽 · <sf.Bar-1> 플렉시글라스에 C-프린트 160×200cm 2009 | 오른쪽 · <sf.Be-6> 플렉시글라스에 C-프린트 160×200cm 2010

허상과 허구의 실재

지난 6월 21일 종료된 베를린의 마이클슐츠갤러리에서의 전시 제목은 <Facility Skins>였다. 김도균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여 동안 촬영한 <sf 시리즈> 중 ‘편리한 건축의 피부’로 묶이는 작품들을 선별한 뒤 <new sf>로 묶어 전시했다. 그가 제시하고 있는 사진작품의 컨셉트인 ‘sf’는 ‘Space Faction’과 ‘Science Fiction’의 의미를 교차적으로 함의한다. ‘팩션(Faction)’이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합성어라는 사실을 주지할 때, 두 개념은 실재에 바탕을 둔 건축의 공간적 허상(‘허상’은 건축의 서사적 구조와 상관한다)과 과학적 허구로서의 ‘공상과학’을 뒤섞고 있다는 생각이다. ‘건축의 공간 허상’ ‘과학적 허구’라는 언어의 부조리와 비논리적 개념의 충돌과 혼합에서 그는 21세기 신건축이 타전하는 의미소를 사진에 박아 ‘개념화’하려는 것이다. 실재와 허상,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않으면서 하나로 인식하게 하는 그 무엇으로서의 건축적 진리!
‘건축의 피부’라는 주제로만 볼 때 허상과 허구의 실재를 하나의 진리로 보여 주는 사진은 <sf.Bar-1>이다. 그가 이 작품 한 점을 신건축 사진들 사이에 끼워 넣은 것은 관람객을 위한 전시 개념 해석의 중요한 단서일 가능성이 높다. 100년의 시차를 둔 옛 건축과 새 건축 사이에 과연 무엇이 있는 것일까? 허상과 허구는 무엇이며, 왜 그것이 하나의 진리가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의 꼬리를 붙잡아 당겨서 의문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할 때 <sf.Bar-1>는 많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sf.Bar-1>은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1883년부터 주임 건축가를 맡아 건축했던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파밀리아(Sagrada Familia)대성당의 한 부분이다. 가우디는 전임자 빌라르가 계획했던 건축적 개념과는 다른 아르누보적 디자인으로 설계를 변경한 뒤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4개의 탑을 세웠다. 김도균은 가우디 건축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대성당의 파사드와 4개의 탑을 주시했다. 그가 죽을 때까지 완성된 파사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탄생의 파사드’뿐인데, 별빛조차 없는 캄캄한 밤에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나는 파사드의 조각과 마티에르와 세밀한 ‘피부’들이 <sf.Bar-1>이다.
가우디의 네오고딕식 건축이 ‘고딕과 이슬람 건축 양식을 발전시켜, 자연의 유기성을 강조한 곡면과 곡선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독특한 형태, 도자기 타일을 이용한 모자이크 등 다채로운 특징을 지닌 독자적인 양식’의 창출로 평가받듯이, 김도균은 역사적 양식에 자연의 유기성을 더한 가우디 건축의 건축적 판타지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는 파사드의 판타지와 그 황홀경에서 허상과 허구의 실재, 즉 이미지의 진리를 경험했던 게 아닐까.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사실의 허상이지만, 빛의 이미지로서 진리를 드러내듯이 말이다. 파사드의 조각적 판타지와 빛의 황홀은 장엄했을 터.
장엄(莊嚴)은 장식엄정(裝飾嚴)의 준말이다. 불상이나 불전, 사원의 가람 전체, 건축 세부, 각종의 장엄구 등을 채색 및 문양으로 장식, 미화하는 것이 곧 장엄인 것이다. 가람의 단청이 장엄이요, 보살상의 보관 귀걸이 목걸이 조백(條帛) 팔찌 등이 장엄이다. 장엄은 건축에 영혼을 불어 넣는 것과 같다. 특히 종교 건축에서 장엄의 효과는 예배자의 감성에 더하여 공덕을 강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성당에서도 스테인드글라스와 천정 벽화가 내부의 장엄이라면, 성서를 바탕으로 새겨 넣은 수많은 조각들은 외부의 장엄이라 할 수 있다. 가우디의 사그라다파밀리아대성당은 성당 건축의 장엄이 보여 줄 수 있는 절대적 미학에 근접한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설계도에 따라 130년째 지속되고 있는 장엄의 조형적 미학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김도균의 <sf.Bar-1>은 사그라다파밀리아대성당의 세세한 장엄과 장엄의 극치에 주목하기보다는, 그러니까 가우디에 의해 탄생되었으되 가우디와 건축의 인과율이나 혹은 미학적 세계관의 역학관계보다는 그것의 황홀경으로서의 장엄, 즉 ‘영혼’을 포착하려 든다는 점이다. 고딕과 이슬람 양식에 자연의 유기성을 더해서 성스러운 영혼의 안식처로 빚은 대성당이 성당의 실재라면, 캄캄한 밤에 발밑조명을 받아 어렴풋이 드러나는 파사드의 온갖 조각들의 현현은 실재를 월경하는 초월적 풍경의 세목들이다. 눈앞의 성당과 가우디의 설계도가 실재와 과학이고, 빛에 의해 은밀하게 그러나 화려하게 드러나는 건축의 피부는 허상이요, 허구이다. 가우디는 이 둘의 극한에서 종교적 영성의 인간화를 꾀했는지 모른다. 가우디의 건축적 복심은 18세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기계론(Mechanism)’의 철학과 정면으로 맞선다. 모든 사상을 기계적 운동으로 환원해서 설명하려는 이 철학 개념은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했을 당시 지니고 있던 목적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사물이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생각을 철저히 배제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라메트리의 《인간기계론》에 따르면 인간은 영혼 없는 육체적 성장의 소산물에 불과하다. 인간의 정신이나 생명활동 따위는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건축이라니! 종교적 영성의 인간화라니! 건축에 내재하는 숨은 성질이나 능력 따위를 언급하다니!

<sf.sel-8> 플렉시글라스에 C-프린트 140×170cm 2006

기계미학의 극치와 느낌의 총체

그러나 칸트와 데카르트, 라메트리에 의해 발전된 기계론의 등장은 유물론과 근대 과학의 인간관을 형성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인간을 사물과 다르지 않게 보려는 인식의 근저에는 신의 지배로부터의 독립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신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기계론은 우주의 현상을 자연적 인과 관계와 역학적 법칙으로만 해석한다. 생명의 현상에 대해서는 무생물계에서 나타나는 물리적 화학적 작용에 의해 기계가 작동하는 원리와 같다고 주장한다. “자연은 시계와 같다”는 비유가 가장 유명하다. 천변만화하는 천지만물의 자연일지라도 그것은 시계의 정확함처럼 인과관계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계론은 근대적 도시국가를 형성하는 최고의 덕목이 되었다. 특히 돌과 흙의 건축이 저물고 ‘철의 건축’이 도래하면서 기계론은 철학 이상의 구조주의적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기계론과 과학, 이성 그리고 철의 건축은 마치 빅뱅이 일어나듯 결합해 인류 역사상 가장 특기할 만한 20세기 건축의 특질을 터트렸다. 그것은 모더니즘 건축의 완성이었다. 기계론의 도시 바벨탑은 20세기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성채다. 그리고 지금 탈모더니즘의 건축은 바벨탑의 구조가 되었던 철골과 철근콘크리트, 철골철근콘크리트 등의 구조법과 철 자체의 진화로 인해 내부 골격뿐만 아니라 외벽까지 확장하기에 이른다. 더불어 건축에 대한 유례없는 인식의 전복과 건축 개념의 무한 확장, 건축재의 파격적 활용은 그야말로 상상의 건축을 현실화하는 데 어떠한 문제도 없어 보인다. 예컨대 미래 건축의 과제를 제시하며 21세기 건축의 위대한 사례로 연구 되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 속 건축물이 바로 지금 여기의 눈앞에 현현되고 있지 않은가. 기계미학의 극치라고 해야 할 미래 건축의 현실적 도래가 흥미롭게도 <sf.Bar-1>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회귀하고 있는 것.
20세기 모더니즘 건축과 달리 탈모더니즘 건축으로 읽히는 21세기 신건축의 피부는 모더니즘의 이면에 가려진 페르소나처럼 보인다. 심플한 곡선과 기하학적 도형, 기능성을 가미한 아르누보와 아르데코의 20세기적 가치들이 벗겨지고 있는 것인데, 과거의 전통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면서 그것으로부터 개혁과 혁신을 추구했던 모더니즘 건축의 변신이자 변태적 과정이리라. <sf.Bar-1>과 평행축을 이루는 김도균의 다른 사진들은 그런 변태적 과정을 끝낸 신건축의 ‘새로운 피부’이다. 미래 건축의 도래와 그 증거에서 그는 근대적 기계미학의 극치보다는 건축의 어떤 놀라운 심리적 영성이랄까 혹은 감성이랄까 하는 색다른 장엄의 현상을 발굴했던 것인데, 바로 그것이 모더니즘 건축이 의도적으로 상실한 ‘빛의 피부’이다. 가우디의 성당에서 볼 수 있는 거친 질감의 종교적 아우라 따위는 이것들에서 찾아 보기 힘들다. 폴 앙드레가 디자인한 베이징의 국립극장에서 영감을 얻은 <sf.Be-5>와 같이 그것은 과학적 기계론이 실현할 수 있는 최상의 그 무엇이다.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단순함과 기하학적 도상, 기능성을 함축하되 기능성이 건축의 외양을 전제하지 않는 그 무엇, 어둠에 둘러싸인 뒤 안팎의 빛에 의해 최소한으로 출현한 타원형의 그 무엇, 그 무엇은 초현실적 풍경의 ‘팩션’이면서 동시에 리얼한 현실이고, 그 느낌의 총체는 숭고함이라 할 것이다.

<sf.Be-5> 플렉시글라스에 C-프린트 180×220cm 2010

빛 그림자, 빛의 숭고

<sf.Be-3>는 건축가 PTW가 디자인한 베이징의 국립수영센터이다. 이번 전시의 작품 전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품 또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건축의 피부에 집중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건축의 피부’라는 동일한 개념의 파생은 가우디의 사그라다파밀리아대성당이 보여 주었던 건축의 영성에 대한 개념적 전이라 할 수 있다. 건축 밖의 다른 구체적 지시물이나 혹은 이미지로부터 독립되어 그 자신의 ‘빛의 피부’를 놀랍도록 생경하게 드러내는 이러한 신건축은 김도균에게 모더니즘을 극복한 탈모더니즘으로 읽히기에 충분했을 터.
<sf.Be-3>만을 보았을 때, 우리는 이것이 건축적 풍경인가를 질문한다. 어두운 배경으로 파고든 삼각의 뿔과 그 뿔의 바탕을 이루는 다각형의 푸른 이미지들 그리고 각각의 비늘에서 번져 나온 은은한 빛의 입체감이, 넓적한 평면으로 완고하게 제시된 먹빛 하늘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밖의 흰 빛으로부터 간섭을 받아 마치 스크래치 당한 듯 거칠게 흩뿌려진 비늘의 빛조차 낯설다. 이러한 작가적 시선에 따른 피사체의 분위기는 <sf.Sel-10>에 이르러 해석불가능의 영역에 도달한다. 서울의 어느 도시 건축에서 발견한 이 장면은 어떠한 건축적 이미지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둥근 띠 모양의 핑크빛 원형들로 가득한 화면 속 공간성은, 직사각형의 사진틀 내부와 내부 전체의 먹빛 어둠 속에서 마름모꼴로 멀어지는 단 하나의 지표에 있다. 사진 하단에 핑크빛 원형고리들이 마름모꼴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그 공간성이 실내의 한 부분인지 아니면 건축의 외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완전히 추상화된 이 장면에서 우리는 기계미학이나 구조주의 철학과도 상관하지 않는 어떤 순수한 빛의 피부를 만난다.  
한편 <sf.Sel-12>와 <sf.Tko-6>은 위의 작품들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극단적일 만큼 빛의 피부가 타전하는 초현실적 감각에 민감했던 시선이 사뭇 근대적인 공간성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노톤에 가까운 전체 이미지는 빛과 그림자에 의해 강렬한 직선과 곡선을 표출한다. <sf.Sel-12>이 날카롭고 선연한 직선의 빛을 그려 내고 있다면, <sf.Tko-6>은 그런 직선의 면을 투과하는 둥근 망점이자 빛이다. <sf.Sel-12>의 강렬함에서 미묘한 중세적 감성과 조우한다면, <sf.Tko-6>에선 경쾌한 모더니티의 싱그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공간들이 어떤 속성을 내재하고 있는지 간파할 수 없다. 학교인지 병원인지 카페인지 노래방인지 모텔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어떤 주체들이 이곳을 오가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이 건축이 포용하는 개념의 애벌레들에 대해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현대 건축의 특장이면서 동시에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선과 곡선의 빛 그림자에서 어떤 숭고의 감성을 느끼는 것은 또 무엇인가!
<sf 시리즈>의 출발이 되었던 사진 중 <sf.C-1>을 보자. 건축의 전체를 보여 주는 유일한 작품이다. 또한 빛과 빛 그림자가 동시에 엿보이는 작품 중 가장 정직한 작품이기도 하다. 빛 그림자로서 빛 그늘이 한데 어울려 ‘동시화’ 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의 미학적 개념은 이것이다. ‘빛 그늘의 동시화’ 그리고 그 동시화의 21세기적 영성. 그러므로 허상과 허구의 진리는 이 동시화의 영성이라고 해야만 한다. 슬픔이나 기쁨 따위, 종교적 신심이나 울림 따위를 배제하고 차가운 이성의 과학적 근대를 꿈꿨던 건축가의 꿈이 그에게서, 그의 사진에서는 역설적인 빛 그늘에 의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Facility Skins>는 편리한 건축물의 ‘피부’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그 피부의 빛 그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는 먹빛 어둠이라는 바탕에서 각각의 건축과 그 피부가 이야기하려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빛 그늘과 피부는 21세기 건축의 파사드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더니즘이 상실했던 숱한 서사적 구조의 이미지들이 그 먹빛 안에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화랑계의 대모’ 김창실 선화랑 대표를 추모하며

김창실 대표의 추도식이 지난 6월 22일 화랑협회장으로 열렸다. 화랑협회장은 1982년 명동화랑 김문호 대표 이후 두 번째다.

‘한국 화랑계의 대모’ 김창실 선화랑 대표를 추모하며

글|서성록 ·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나는 인사동을 가면 꼭 들르는 화랑이 있다. 바로 34년이란 세월을 무색하게 시종 한자리를 지켜 온 선화랑이다. 단층 건물이었던 1980~90년대에도 그랬지만 2003년 5층으로 새로 태어난 ‘선아트센터’가 완공한 뒤에도 나의 방문은 이어졌다. 전시를 보려면 김창실 대표와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김 대표는 전시가 열릴 때면 으레 1층 전시장까지 나와 손님을 맞았다. 황해도 사투리로 “어서 오시라우요! 그림 정말 좋지 않아요?” 하면서 따듯이 맞아 주곤 했다. 그런 김창실 대표가 숙환으로 별세했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그분의 밝은 모습을 뵙지 못하게 되었다.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분이었다. 이렇게 빨리 다가온 이별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화랑계의 대모’라고 불렸던 만큼 벌써 그분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왼쪽 · 1978년 김형근 작품 앞에 선 김창실 대표 | 오른쪽 ·《미술춘추》 1980년 여름호에 실린 김창실 대표와 장리석 화백의 대담 사진

‘라일락’에서 시작된 미술과의 열애

황해도 황주 출신인 김 대표는 그림 수집이 취미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미술을 곁에 두고 좋아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마음에 드는 그림을 보면 오려서 간직했으며 화집 등을 뒤적거리며 전시장을 빠짐없이 찾아다니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님의 권유로 이화여대 약대에 진학해 부산에서 약국까지 운영했지만, 미술에 때한 꿈은 쉬이 잊히지 않았다. 그가 화랑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계기는 장남이 다니던 유치원 교사의 권유로 우연히 한 점의 그림을 구입하면서부터다.  그 작품은 도상봉 화백의 소품 <라일락>이었다. 이후 김 대표는 돈이 되는 대로 작품을 사모았다. 돈이 모자라면 반지를 팔아서라도 구입할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그림에 심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여염집 안주인들은 자개장이나 귀금속을 구입하는 것이 예사였는데 김 대표의 ‘미술 사랑’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때마침 임대를 주고 있었던 ‘고옥당’이라는 고미술점이 문을 닫자 1977년 선화랑을 오픈하게 되었다. 선화랑은 1970~80년대 인사동에 화랑이 드문 시절 진화랑 미화랑과 함께 ‘진·선·미’ 화랑으로 불리며 미술계를 풍미했다. 미술애호가에서 화랑주로서 입장이 바뀌었지만, 그의 미술에 대한 철학은 한결같았다. 고인은 생전 어느 인터뷰에서 “저는 ‘예술은 인생의 오아시스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림을 대하면 지금도 마음이 흥분되거든요. 오랫동안 화랑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림 때문이에요”라며 당신의 미술에 대한 애정을 밝혔다. 그에게 미술은 ‘일’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 그 자체였다. 김 대표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대할 때면 마음이 즐거워지며 모든 근심 걱정은 사라지고, 다시금 생의 환희와 희망이 살아나곤 합니다”라고 즐겨 말했다.
선화랑은 그가 미술에 대한 열정을 아낌없이 쏟은 곳이자 예술경영 철학이 집약된 곳이다. 선화랑이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갖는지는 그곳을 거쳐 간 작가들의 면면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진 대표적인 작가로는 동양화 부문의 천경자 김기창 서세옥 장우성 민경갑 박노수 송수남 이종상 김춘옥 문봉선 등이 있다. 서양화에는 김형근 오지호 장리석 최영림 변종하 유영국 문학진 장욱진 이세득 유희영 이준 김창락 박서보 강정완 이종무 김흥수 김종학 곽훈 하인두 김구림 하종현 서승원 윤형근 홍종명 이석주 전명자 구자승 박철 노재순 등이 있으며, 조각 부문의 최종태 강태성 전뢰진 김찬식 김영원 고정수 최만린 최병상 등이 있다. 수십년간 참 많은 작가가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의 미술가치고 선화랑을 거쳐 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선화랑 홈페이지에는 갤러리에서 개최된 개인전을 총 330여 회라고 표시하고 있다. 몇 년전에 올린 자료니까 근래 전시까지 합치다면 400여 회는 족히 되리라 본다. 물론 그중에는 이탈리아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 부르델, 매그넘 회원 작가들, 마르크 샤갈 등 굵직굵직한 외국 거장의 작품전도 포함되어 있다.
화랑 경기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호황은 잠깐뿐, 불황으로 긴 세월을 버텨내야 하는 것이 우리 미술시장의 현주소이다. 특히 한국처럼 경기부침이 심한 나라에선 보통 사람이라면 그동안 문을 닫아도 여러 번 닫았을 것이다. 매달 한 차례 혹은 두 차례씩 개인전을 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미술시장 분석가인 도널드 톰슨(Donald Tompson)은 영국과 미국의 화랑 중 신흥 갤러리 5개중 4개가 5년 안에 문을 닫으며, 또한 5년 이상 된 갤러리 중에서도 매년 10%가 문을 닫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고위험이 따르는데다가 치열한 경쟁까지 해야 하는 화랑의 입장에서 선화랑처럼 30년 넘게 끊임없이 전시를 개최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왼쪽 · 1979년부터 1992년까지 13년간 계간으로 발행된 잡지 《선미술》| 오른쪽 · 1980년대의 선화랑. 2003년 현재의 건물을 신축했다.

선미술상 제정과 선미술 발간, 국가 훈장 수훈까지

김창실 대표는 미술 문화 진작의 일환으로 ‘선미술상’ 제정과  미술잡지 《선미술》 발간에 착수했다. 그는 선미술상을 운영하면서 35세에서 40세 사이의 뛰어난 작가를 발굴하고 후원하며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는 화랑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 1984년 제정된 선미술상은 오용길 손수광 고정수 황창배 이두식 김영원 서정태 이석주 신현중 김병종 황인기 홍성도 임효 황주리 원인종 문봉선 이호철 김세일 서도호 김범 박은선 이이남 등의 수상작가를 배출했다. 김 대표는 선미술상의 출발이 “남을 위하는 것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란 좌우명에서 나온 것이라며 언젠가 필자에게 귀뜀해 준 적이 있다.
내가 김창실 대표를 가까이에서 뵙게 된 것은 《선미술》의 주간으로 몇 년간 잡지 일을 맡으면서다. 《선미술》은 1979년 3월에 창간호를 낸 이래 1992년 봄호까지 통권 52호를 발간했다. 그는 《선미술》을 발간하면서 미술 문화가 많은 사람의 생활에 깊숙히 뿌리내리길 소망했다. 미술잡지의 발간은 자신을 ‘화상’이라기보다 ‘문화사업가’로 여긴 그의 경영 철학을 가장 잘 엿볼 수 있었던 사업이었다. 화랑에서 잡지를 발간하는 일은 특별한 소명의식 없이는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잡지는 경제 논리에 비추어 보면 도대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번 잡지가 나올 때마다 얼마나 많은 적자를 내는지 아무도 몰라요. 물가가 오를 때마다 경비는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듭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재를 털어 넣는 고된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잡지가 발간되면 지난호보다 더 좋은 잡지를 내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런 마음이 13년간 《선미술》을 발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그는 작가가 훌륭한 예술품을 만들 듯이 잡지도 예술품처럼 만들고 싶어 했다.
그가 미술계에 기여한 공로 중 하나로 국내 작가의 국제무대 진출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FIAC(파리) 시카고아트페어 LA아트페어 베이징아트페어 마이애미아트페어 NICAF(도쿄) KIAF(서울) 상하이아트페어 등 세계적으로 유수한 아트페어에 30여 회 넘게 참가하면서 한국미술의 국제무대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는 해외 출장을 다녀온 다음날에도 시차와 피곤을 잊은 듯 화랑으로 정시에 출근하곤 했다. 한때는 그가 ‘강철 체력’의 소유자라는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고인의 활동은 선화랑에만 머물지 않고 공적 활동으로 뻗어나갔다. 김 대표는 한국화랑협회장에 두 차례(1985~1987년, 1991~1993년)나 재임하면서 ‘부드러우면서 단호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재임 기간동안 협회 조직을 다지고 화랑 고유의 기능인 작가와 미술애호가를 위한 교량 역할을 굳건히 하는 데 부단히 애썼다. 특히 그는 한국화랑협회장 재임 중인 1986년에 여러 화랑주들과 의기투합해 <화랑미술제>를 출범시켜 미술대중화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국제 아트페어에 직접 참여하면서 우리나라에도 그런 아트페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 데서 나온 시의적절한 조치였다. 두 번째 재임 기간 중에는 화랑협회를 공익성을 띤 사단법인으로 발족해 협회의 지위를 격상시킨 공로자였고, 또한 1990년대 초 불어닥친 미술시장 전면 개방에 때맞추어 화랑구조의 개편과 해외 미술시장 진출에 누구보다 앞장 섰다.
그는 언제나 미술계의 든든한 일꾼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는 이런 공로로 2009년 현직 화랑주로는 처음으로 국가훈장을 받았다. 김창실 대표와 같은 분이 있었기에 한국 미술계가 이만치 자리를 잡고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 올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어느 글에서 “특별한 재주가 없어 비록 화가나 음악가는 못되었을망정, 나의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은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으리라”고 썼다. 김 대표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 약속을 지켰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우리 마음에 뿌리고 간 ‘예술을 사랑한 마음의 씨앗’은 두고두고 자라나 새로운 싹을 틔울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창실 1935년 황해도 황주 출생. 1957년 이화여대 약대 졸업. 1962∼1968년 부산에서 성안약국을 운영하다 1977년 서울 인사동에 선화랑을 개관, 34년간 400여 회의 전시를 개최했다. 1979년부터 1992년까지 미술전문 계간지 《선미술》 발행. 1984년 선미술상 제정. 제5대, 제8대 한국화랑협회장 역임. 수필집 《달도 따고 해도 따리라》(김영사 1996) 펴냄. 2009년 현직 화랑경영자로는 처음으로 국가훈장(옥관문화훈장) 수훈. 2011년 6월 18일 향년 76세로 영면했다.

‘빛’의 탐구, 담론에서 다시 아우라로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Last Supper)> 캔버스에 유채 366×570cm 1591~1594 자르디니 메인 전시장 설치 전경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Francesco Galli)

‘빛’의 탐구, 담론에서 다시 아우라로

글|이용우 · 미술평론가

중심과 주변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비평적 담론들은 그동안의 치열한 학습과 실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진화의 과정에 있다. 가령 진리의 쇠퇴와 담론의 융성, 중심의 해체와 주변의 등극을 열거해 온 후기모더니즘의 비평 이론들은 베니스비엔날레 같은 글로벌 블록버스터 전시 현장에서 매우 왜소해진 자아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즉 이론적 서술들이 실천 현장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 또는 도서관의 참고문헌이 제공하는 지식의 가치가 얼마나 현실감을 결여하고 있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비엔날레의 원조 격인 베니스비엔날레가 올해 내세운 주제의식을 비롯하여 초청된 작가들의 지정학적 범주, 그리고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적 접근 태도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조쉬 스미스(Josh Smith) <베니스 세트(Venice Set)> 종이에 프린트 카드보드에 페인트 152.4×121.92cm(각) 32점 2011 아르세날레 전시 전경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Franziska Bodmer e Bruno Mancia, FBM Studio)

주제 의식의 탈담론화와 유럽중심주의

먼저 베니스비엔날레의 타이틀부터 살펴보자. 베니스는 ‘주제’ 대신 ‘타이틀’로 키워드를 전환하여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s)’을 주제어로 선택했다. ‘일루미네이션’은 문자 그대로 ‘빛(Light)’이다. 즉 빛이 발산하는 찬란하고도 예언적이며, 계몽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nations’을 소문자로 따로 분리, 강조함으로써 국가나 국민, 민족 개념을 부각시킨다. 여기서 설정한 국가 개념은 빛을 통하여 새로운 여명과 도약적 패러다임에 다다른다는 예시를 담고 있다. 이러한 감성 넘치는 계몽적 메시지는 다른 한편으로는 흡사 랭보나 쉴러의 서사시, 또는 발터 벤야민의 문학적 감수성을 설명하는 술어를 연상시킴으로써 다소 긴장감이 결여된다. 이 타이틀은 오늘날 현대미술이 담아 내는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문화비평적 담론의 차원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평화롭고 고전적이다. 비엔날레가 개막하면 우선 주제어를 전시에 적용한 것에 대한 열띤 토론이 회자되기 마련인데, 이번 비엔날레는 개막 이후 주제를 둘러싼 다양한 찬사나 비평은 회자되지 않은 채 아예 주제적 논외가 중단된 인상을 주었다. 그동안 미국과 영국의 일부 언론에 등장한 리뷰들은 오히려 주제 설정에 나타난 아마추어리즘을 언급하기도 했다. 과거 시각문화 현장에서 유가증권처럼 회자되고 지적 욕구를 자극했던, 그리고 베니스비엔날레가 주도하거나 플랫폼 역할을 하였던 문화 연구적 맥락이나 사회학적 담론의 문맥들이 사실상 사라지게 된 것이다.  
비체 쿠리거(Bice Curiger) 감독은 이미 개막전부터 타이틀에 대한 선정 경위를 각종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아트인포(Art Info)》와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세상에 대한 거창한 예술 이론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예술 그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 그러므로 작가 선정도 이론적이기보다는 예술성 그 자체에 맞춰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라는 타이틀은 비엔날레 주제로서는 지나치게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모호하면서도 느슨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미술사적 조명을 암시하는 전시회의 타이틀을 보는 것 같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참여 작가들이 빛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강렬한 빛’을 소재로 하거나 ‘빛의 광학적 효과’에 치우친 작품을 출품한 경우도 적지 않다. 빛이 미술사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활용되었으며, 근대성이나 과학적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논증하는 식의 작품들이 대거 출품된 것이다. 미술관 전시와 달리 비엔날레를 통하여 다양한 지적 스펙트럼을 체험하려는 다양한 전문 관객들에게는 이러한 접근과 전시 내용이 절망적 감정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왼쪽 · 2011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 비체 쿠리거(Bice Curiger, 왼쪽)와 베니스비엔날레 재단이사장 파올로 바라타(Paolo Baratta) | 오른쪽 · 올해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크리스토프 슐링엔지프(Christoph Schlingensief)의 개인전을 연 독일관이 수상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독일관 커미셔너 수자네 갠스하이머(Susanne Gaensheimer).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Giorgio Zucchiatti)

다시, 유럽 중심의 비엔날레로

베니스를 비롯하여 최근 주요 비엔날레들에서는 과거 ‘주제’라는 말이 주는 무거운 결정론적 시각을 벗어나기 위하여 ‘타이틀’이라는 용어를 빈번하게 사용하곤 하는데, 이는 비엔날레가 사고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 담론의 플랫폼에 머물려는 수사적 제스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미술관 벽면처럼 닫힌 공간에서 벗어나 현장으로, 독자 속으로, 현실 사회와 현실 정치 속으로 파고들어 가려는 차별화의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타이틀은 마치 주술적이거나 성스러운 교리 해설, 또는 언어의 교집합과 같은 과거의 주제 설정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하고 덜 공식적인 수식어들을 선호하는 것이다. 주제는 물론 아예 타이틀조차 내걸지 않는 비엔날레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베니스는 꽤나 화려한 주제 설정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03년 프란체스코 보나미 감독이 설정한 ‘관객 독재(Audience Dictatorship)’나,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사상 최초의 미국인 감독이던 로버트 스토(Robert Storr)가 설정한 ‘감성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껴라(Think with Senses, Feel with Mind)’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러한 주제들은 말하자면 매우 고상하거나 이론적이고 지당하신 한 마디를 선사함으로써 신비감을 한층 높인 경우에 해당한다. 베니스비엔날레 재단이사장 파올로 바라타(Paolo Barata)는 이를 두고 “그 동안 베니스비엔날레를 연출했던 모든 감독들은 각기 자신의 비엔날레에 전시나 주제에서 신화를 남겼다”고 기자회견에서 설명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는 모두 89개국이 참가했으며, 각 국가관을 제외하고 감독의 기획전에 초청된 작가는 83명이었다. 그리고 베니스 시내 일원에 37개의 위성 전시가 열렸다. 89개 참가국 수는 비엔날레 사상 최다이며, 베니스비엔날레재단은 매년 증가하는 참가국가 수에 고무되고 있다. 저널리즘이 즐겨 쓰는 것처럼 베니스는 점점 ‘미술올림픽’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감지한 주최 측은 심지어 개막 기간에 각국에서 모여든 4만 여 명의 전문 인사들에게 출입증 발급 자격심사까지 할 정도였다. 물론 재스민혁명의 여파에 휩싸인 일부 중동 국가들은 중간에 참가를 포기하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바레인이나 레바논 등이 이에 해당한다.  
83명의 초대된 작가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이번 비엔날레가 얼마나 유럽 중심적, 또는 서구 중심적인가를 여실히 드러난다. 초대 작가 가운데는 주최국인 이탈리아 10명, 비체 쿠리거 감독의 출신국인 스위스 10명, 영국 6명, 프랑스 6명, 독일 6명, 스웨덴 2명, 스페인 2명 등 유럽 지역에서만 50명이다. 이는 전체 참여 작가의 60%에 해당한다. 같은 유럽이라도 동유럽에서 초대된 작가는 고작 5명으로 전체 유럽작가의 10% 밖에 되지 않아 지정학적 배려는 사실상 빛을 바랬다. 이 유럽작가 50명에 미국의 14명을 합할 경우, 유럽과 미국의 참여 작가는 64명으로 전체의 770%에 이른다. 나머지 아시아나 남미, 아프리카에서 초청된 작가들 가운데도 베를린이나 파리 등 유럽에 거주하는 작가가 많아 실질적으로 이번 베니스비엔날레는 유럽, 미국 중심의 전시회로 집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엔날레는 유엔총회가 아니므로 각 국가별 참여 작가수를 들어 분포도를 산정하는 것은 예술을 지정학적 백분율로 평가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2명, 인도 1명이 고작인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 비엔날레의 방향이나 정치적 태도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므로 지정학적 중심의 소멸과 헤게모니의 해체를 논하는 것은 아직도 시기상조이거나 이상주의적 판단일 뿐이다. 그리고 정보사회의 확장에 따른 정보 공유의 평등성을 비롯하여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주의자들이 외친 과학기술 진보에 따른 정보 은하계와 지구촌의 등장은 지당하리만큼 현실이 되었지만, 그것이 과거 문화식민주의와 헤게모니를 이론적으로 극복하는 대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아 보인다. 특정 지역의 문화 권력들이 더욱 공고히 다져가는 지역적 배타성이나 시장을 중심에 둔 지배 구조, 문화식민적 접근 방식에서는 크게 개선된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러한 작가 선발을 두고 영국 《가디언》의 조나단 존스(Jonathan Jones)는 “어느 특정한 엘리트 아트페어의 참여 작가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평했다. 작가 선정 과정에서 시장의 영향을 지적한 것이다. 시장의 권력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일 것이며, 시장의 흐름을 무시하는 것 또한 옳은 태도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신선하고 고무적인 것은 전체 선정 작가의 3분의 1이 35세 미만의 젊은 층이라는 사실이다.

프란츠 웨스트(Franz West) <외향성(Extroversion)> 37 부분으로 구성된 파라파빌리온 설치 2000~2011 아르세날레 설치 전경

미술사적 방법론에 따라 구성한 전시

베니스비엔날레나 카셀도큐멘타와 같은 유럽 주요 국제미술 이벤트의 최근 특징은 그 전략적 방향을 점점 유럽 중심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 선정은 물론 전시기획자를 초빙하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과거 어느 예술감독은 유럽 중심의 작가 선정에 대하여 “각 대륙에 비엔날레가 수없이 많아졌으므로 각기 자기 작가들을 뽑아서 전시하면 그만 아닌가?”하고 반문한 적도 있는데, 이 이야기는 한동안 반복적으로 회자되었다. 비체 쿠리거 감독은 앞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신이 뉴욕의 미술관 큐레이터가 아닌 쿤스트하우스취리히(Kunsthaus Zurich)의 큐레이터라는 사실이 지구촌 시각예술의 지형도에서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화려한 베니스비엔날레의 감독이 되지 않았어도 지역 미술관인 쿤스트하우스취리히의 큐레이터로만으로도 매우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도 작가 선정 과정에서는 뉴욕이나 유럽의 주요 도시 등 이른바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현대미술의 전통적 중심지로서의 지정학적 중요도를 가장 심도 있게 고려한 결과를 내 놓았다.
특히 주제를 적용하는 담론 설정 방식이나 그것을 적용하는 전시 구성에서도 전통적 형식은 지속된다. 자르디니의 주전시장(과거 이탈리아 중앙관)의 대부분은 흰색의 사각형 공간으로 꾸며졌다. 그리고 맨 중앙에 위치한 전시장에는 금색의 고색창연한 액자로 장식된 틴토레토의 회화 작품 <최후의 만찬> 등 3점이 중심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미술사적 아우라와 함께 작품에 나타난 빛의 소재적 표현이 강조되도록 연출되었다. 또 이 작품을 베니스의 성 조르지오마조레성당에서 빌려 왔다는 사실과 성당 측의 관용, 그리고 비엔날레의 용기 있는 결정 등의 서사적 스토리를 가미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만들었다.
비엔날레가 아무리 현대미술 축제이고 실험미술의 향연이라 하더라도 한 여름 베니스를 찾아오는 관객들에게 베네치아화파의 대표작을 보여 주는 것은 상당한 눈요기와 관객 접대가 될 것이다.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 식 전시 개념의 확장을 통하여 전통과 현대가 현대미술의 시각적 맥락에서 공생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틴토레토의 회화 3점이 주제 전시관 중앙에서 발산하는 아우라와 접대는 그동안 비엔날레가 치열하게 쌓아 온 정신적 자산들에 대하여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전시 공간이란 단순히 특정 작품을 나열하는 이미지의 유통 장소가 아니라 비전의 영역이며, 작품의 표현에 상서로운 기운을 더해 주는 영적인 연출의 부담이 생성되는 장소’(이리트 로고프)라는 사실이 더욱 입증된 것이다.

알로라&칼사디야(Allora&Calzadilla) <트랙과 필드(Track and Field)> 2011 미국관 작가인 제니퍼 알로라&기예르모 칼사디야는 거대한 탱크를 뒤집은 후 그 위에 러닝머신을 설치하여 실제 운동선수들의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미국관 기자간담회 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댄 오브라이언(Dan O’Brien)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아르세날레, 여전히 비엔날레적이고 실험적인

비체 쿠리거의 타이틀에 대한 해석은 담론적이라기보다는 주제에 탐독하는 미술사적 방법론에 따른 전시 구성의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전시 구성도 빛이나 계몽사상에 나타난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깊이보다는 언어의 표상에 천착한 스케치 형식의 전시를 보여 줌으로써 오늘날의 비엔날레 문화가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성이나 문화 정치적 담론으로부터 많이 이탈해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시각문화의 그 넓은 지평이나 비평적 맥락들은 베니스에서 다소 정처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틴토레토의 3점의 회화가 가지는 빛에 대한 주제적 관심이나 홍보성 전시보다는 독학으로 예술가가 되어 과거의 빛에 대한 회화적 해석을 거부하고 치열하게 자신의 미학을 경주하였던 틴토레토의 작가적 정신에 오히려 일루미네이션의 의미가 더욱 빛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전시 구성에서 다소 외곽에 위치한 몇몇 작품들 가운데는 쿠리거 감독이 내세웠던 의미대로의 일루미네이션을 다양하게 구현하고 변화시킨 아름다운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오늘날 현대미술이 갖고 있는 유연한 발언을 포함하면서도 오늘날 블록버스터 전시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소재들, 이를테면 섹스나 전쟁, 인터넷이야기, 폭력, 동성애 등의 소재를 버리고 아름다운 변화를 시도한 경우이다. 스위스의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의 작업이나 이탈리아의 모니카 본비치니(Monica Bonvicini), 중국 상하이의 2인조 그룹인 버드헤드(Birdhead), 파비안 마르티(Fabian Marti) 등이 작업 말이다. 또 예술 감독이 파빌리온들의 의미를 새롭게 치환시킨 파라 파빌리온(Para Pavilion)에 출품된 오스카 투아존(Oscar Tuazon), 프란츠 웨스트(Franz West) 등의 작업들이 그러하다.
아르세날레는 지금까지 자르디니의 중앙관처럼 예술감독의 기획전시장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새로운 참가국이 늘어 나면서 정치적 배려의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때문에 아르세날레의 전반 도입부만 ‘일루미네이션‘의 기획 전시장이고 전시장 후반부는 이번에 새로 참가한 인도를 비롯하여 아랍에미레이트 등 중동 국가와 터키, 중국관 등 10여 개의 국가관 성격이 짙어 지고 있다.
참가국이 비엔날레 행사장 내에 공간을 제공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베니스비엔날레를 유엔총회나 미술올림픽적인 성격으로 변질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미술의 이름으로 전 세계가 한데 모여 축제를 벌이는 아름다운 회합의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 아직도 예술이 국가 단위의 참여를 통하여 재현되고 실현되는 베니스 식의 모델은 지구촌 유일의 비엔날레 모델이면서도 1백 년 이상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 단위의 참가를 낡은 패션으로 인식하거나 간주하는 풍조도 팽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니스는 이 모델을 절대로 바꿀 의향이 없다.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점들이 산적해 가도 베니스를 향해 몰려 드는 각 국가들의 열기와 욕구가 넘치는 한 베니스는 비엔날레 행사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 비엔날레 문화의 영원한 아이콘이 될 것이다. 비엔날레가 정치적으로 국가 차원의 문화 경영의 이윤과 모델이 되고 관광 서브라임의 근거와 자랑거리가 되는 한 이러한 행사는 지속될 것이다.
비록 아르세날레 전시가 공간 활용에서 주제전과 국과관의 혼용공간으로 바뀌고 있지만 자르디니보다는 훨씬 캐주얼하고 젊은 세대들의 전시가 많아 활력이 넘치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시장 가치를 따지는 개별 전시 이외에 특정한 작품 하나하나를 꼬집어 비평적으로 재단하지는 않는다. 즉 전체의 어울림 등 전시 구성의 혼성적 집단 양식을 하나의 공동 언어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해짐으로써 아르세날레가 가지는 명목상의 가치는 오히려 훨씬 비엔날레적이고 왕성한 실험정신이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용백 <Pieta: Self-hatred> FRP 165×370×290cm 2011(오른쪽) <Pieta: Self-death> FRP 400×340×320cm 2008(왼쪽) 한국관 전경

비엔날레와 관광 서브라임의 서먹한 랑데부

비엔날레가 개최국이나 개최도시의 문화, 경제적 전략이나 포석을 토대로 경영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엔날레들은 고도의 지적 전략으로서의 시각문화의 담론을 다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최도시의 관광, 홍보 전략과 언제나 우호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비엔날레는 대부분 개최도시의 이름을 따서 설립되며, 그 도시로부터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받게 된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비엔날레는 문화 전략을 표방한 관광 서브라임과 전략적으로 유대 관계를 가지게 되며, 그 ‘불편한 진실’은 비엔날레를 언제나 미학적 담론과 지역적 전략 사이에서 고통을 겪게 한다. 그러나 베니스 같은 최고의 관광 인프라를 갖춘 도시의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별도로 관광 전략을 펴지 않아도 관객 동원에 고통을 받지 않는다. 대신 비엔날레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 이벤트를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함으로써 글로벌 문화예술 중심지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굳히는 작전을 구사한다.
베니스비엔날레 재단이 6개의 서로 다른 예술 행사를 끈임없이 주최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예술의 중심지로서 주도권을 포기할 수 없는 애착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느 문화재단이 현대미술 건축 영화 음악 연극 무용 등 6개의 장르를 2년을 주기로 번갈아 주최할 엄두를 내겠는가? 베니스가 담아 내는 글로벌 예술 생산물들은 그 상표가 개최지인 베니스이고 제작자들만 서로 다를 뿐이다. 이러한 문화경영에 대한 범례들은 베니스비엔날레뿐만 아니라 경쟁 관계를 인식하는 주요 비엔날레 사이에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다. 세계비엔날레재단(Biennial Foundation)에 등록된 120여 개의 세계 비엔날레들은 한편으로는 경쟁 관계에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주요 비엔날레들이 펼치는 색다른 프로그램, 장르의 개척이나 정책을 경쟁적으로 수용하고 모방하고 있다. 상파울로비엔날레가 베니스의 모델을 변칙 응용하여 시행하다가 벽에 부딪치기도 했고, 이스탄불비엔날레가 현대미술 비엔날레 이외 디자인비엔날레를 올해 창설했으며, 음악과 무용 등을 새로운 행사 아이템으로 추가했다.
베니스는 국가 단위의 참가라는 매우 낡은, 그러나 참가국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정책을 통하여 차별화되고 있으며, 비엔날레 헤게모니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베니스에 기대어 비엔날레의 형식과 정책을 수혈하는 많은 마이너리거들은 결과적으로 베니스를 응원하면서 그 후손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중심과 지역에 대한 아름다운 토론과 문화적 쟁의는 한편으로는 ‘담론은 담론일 뿐’이라는 허전한 결과를 각인시키기도 한다. 20세기 후반 들어 이데올로기의 붕괴에 따른 정치적 헤게모니의 몰락과, 그 대체 수단으로 빈번하게 사용된 주변 이론 및 담론 중심의 사고는 이처럼 그 실천의 현장에서는 다양한 변이와 생물학적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담론의 즐거움으로, 그리고 담론의 피곤증이 교차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의 붕괴에 따른 대안이 아니라 모더니즘의 위기를 반영해 본 리트머스 시험지인 것처럼, 비엔날레를 포함한 오늘날 시각문화 현장의 각종 실험들은 현대미술의 흐름에 대한 다양한 안테나 역할을 하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가 그동안 엽기적으로 번창한 지구촌 비엔날레들의 조상 겸 선두주자임을 자임한다면 배타적 전시 구성이나 유럽중심주의적 패권주의를 지향하기보다는 아름다운 미학적 실천을 통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정보 기술의 확장에 따른 지식과 정보 공유의 평등성은 지구촌 어디에서도 손쉽게 보장된다. 이러한 평등성은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획기적인 가치이자 정보가 인류에게 기여하는 인문학적 철학적 지정학적 수평성(Horizontality)을 보장하고 공유하게 한다. 이러한 수평성은 표면적으로는 지구촌이 하나되고 의식의 연대를 통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이러한 지구촌적 문화 수용의 획일성보다 각 국가나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관계항들을 보호하고 축하하는 수직성도 확보되어야 한다. 이 수직성(Verticality)의 가치는 평등의 가치인 수평성과 아울러 인류의 자산인 문화의 가치를 견고하게 하는 깊이가 되는 것이다. 정보사회의 특징은 정보가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그 정보가 적절하게 소통되지 않는 핸디캡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보는 무엇보다 그것에 의하여 혜택을 보는 조직이나 국가가 정보 소비자와 동반 성장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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