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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9.01

Abstract

특집 나의 일, 오늘의 미술-아시아 미술의 리더 14인의 발언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오늘의 미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난 몇 년간 양적 풍요를 누려온 세계 미술계는 이제, 미술의 진정한 가치와 효용을 되새기고, 새로운 좌표를 찾아야 할 때다. art는 새해의 출발점에서 미술의 위기 극복과 생존의 해법을 모색하는 특집을 꾸몄다. 세계 미술의 새 바람으로 급부상한 아시아 미술에 논의의 초점을 맞췄다. 그동안 본지와 국제적 네트워크를 다져온 아시아 미술의 리더 14인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창작, 비엔날레, 미술관, 비영리공간, 아트페어, 미술경매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전문가들이 저마다의 활동상과 다양한 비전으로 '아시아 미술의 기상도'를 함께 그려낸다.

Contents

표지  김근중  <Natural Being 7-14>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30cm 2007


에디토리얼  art는 살아야 한다_김복기


핫피플  
주은지 양혜규_장승연


프리즘 
ㅅ대학과 ㅈ학교 졸업작품 전시회_고원
이제는, “세상이 예술을 바꿉니다.”_호경윤


아티스트 아틀리에 아카이브  
정종미_이선화


특집  나의 일, 오늘의 미술 
아시아 미술의 리더 14인의 발언
이용우|후미오 난조|아타김
멜리사 추|패트릭 디 플로레스
김순응|짜오쉬|짜오 리|구 웬다
에릭 창|첸 센 포|비엣 레
구로다 라이지|알바로 로드리게즈


아웃 오브 코리아  
김근중_장동광


특별기획  新정물화 
(1) 화보_편집부
(2) 시대의 자화상, 동시대 정물화_박영택


암흑물질  
디자인-일상의 경이, 새로운 정물


클릭! 공공미술  
제 멋대로 뽑은 공공미술 사건6_윤태건  


아티스트 인사이드  
(1) 허윤희_목탄으로 말을 걸다_이선화
(2) 김시연_아슬아슬한 섬세함_장승연


이미지 링크  헬가 하렌스탐


전시리뷰
비욘드 아트 페스티벌|P.E.A.R.L
심수구|이영석|AVPD|방명주
이우림|조이스 펜사토|서상익
정지현|김민애|손동현|불량배-타자의 이미지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위영일|남지|정진서|이은우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암흑물질-디자인, 일상의 경이

버블 랩 에어쿠션 Bubble Wrap Air Cushioning, 1960

마르크 A 샤반 / 앨프리드 W. 필딩
폴리에틸렌 합성수지
제조사:미국 실드 에어 코퍼레이션

1957년 마르크 샤반과 앨프리드 필딩은 뉴저지의 한 창고에서 새로운 종류의 플라스틱 벽지를 개발하는 일에 지루하게 매달려 있다가 일거에 상황을 역전시키는 뜻하지 않은 발명을 했다. 그것은 세상에 버블 랩이라고 알려진 단순하면서도 예술적으로 배열되고 터질 때 쾌감을 일으키는 쿠션이었다. 버블 랩은 폴리에틸렌 두 장을 겹치는 다섯 단계 공정을 거쳐 제조되며 폴리에틸렌 두 장 중 하나는 무수한 거품 모양 속에 공기를 담고 있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버블 랩은 매년 지구를 두 번 감을 만큼 팔리고 있으며, 전 세계 인구의 80퍼센트에게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순식간에 성장했다. 또한 이 상품은 원래의 용도를 넘어, 예를 들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심리치료 등 수많은 분야에서 응용되었다. 버블 랩 감사절이 매년 1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열릴 정도이다.

솔로 트래블러 커피 껍 뚜껑 Solo Traveler Coffe-Cup Lid, 1986

잭 클레먼츠
폴리스틸렌 플라스틱
제조사: 미국 솔로컵 컴퍼니

문제는 단단했다. 휴대용 컵에 담긴 뜨거운 커피가 새거나 빨리 식어버리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반면 해결책에는 독창적인 공학, 실용적인 꾸밈새, 박사 논문에 버금가는 디자인 비평이 집결되었다. 처음에 커피 컵 뚜껑은 평범한 마분지 조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플라스틱 원반에 뚜껑의 역할을 보강하기 위한 동심원이 찍힌 형태로 변화되었다. 1980년대에는 뚜껑 일부를 뜯어낸 자리에 생긴 작은 구멍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제품이 개발되어, 커피를 마실 때 뚜껑을 완전히 벗겨야 하는 불편을 덜어 주었다. 1986년에 등장한 솔로 트래블러의 디자이너 잭 클레먼츠는 컵 가장자리에 평평하게 맞닿아 있는 뚜껑 대신 돔 형태의 뚜껑을 만들었다. 이것은 사용자의 입술뿐 아니라 코까지 고려해서 더욱 편안하게 마실 수 있도록 고안한 제품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뚜껑은 마침 당시 크게 유행하던 카푸치노나 카페라테와 같이 거품이 있는 커피를 담기에도 적합했다.

토블레로네 Toblerone, 1908

테오도어 토블러 / 에밀 바우만
초콜릿, 꿀, 아몬드
제조사: 스위스 베른-토블러 초콜릿 공장, 현재는 미국 크래프트 식품

1899년 스위스 베른에서 조그만 제과점을 운영하던 요한 야코프 토블러는 세 아들과 함께 초콜릿 공장을 세웠다. 1908년 그중 한 아들인 테오도어 토블러는 사촌이자 생산 관리 책임자인 에밀 바우만과 함께 밀크 초콜릿, 꿀, 아몬드가 적절히 배합된 토블레로네 바 제조법을 완성했다. 1909년 토블레로네는 아몬드와 꿀이 들어간 최초의 밀크 초콜릿으로 첫 번째 특허를 받았다. 토블레로네의 특이한 모양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스위스 알프스 산맥에서 가장 유명한 봉우리 중 하나인 마테호른을 본뜬 모양이라는 것이다. 한편 토블러가 파리에 가면 꼭 들르던 뮤직홀 폴리베르제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쇼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무용수들의 인간 피라미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 모양의 기원이 무엇이든 토블레로네의 작은 삼각형은 쉽게 쪼개 먹을 수 있는 편리함과 재미를 동시에 제공하며 그것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본문의 글과 사진은 (주)도서출판 다빈치 《디자인, 일상의 경이》중에서 발췌하여 사용하였습니다.
All Photographs by Francesco Mosto & James Kuo

허윤희, 목탄으로 말을 걸다

작가 허윤희. 사루비아다방 개인전에서

목탄으로 말을 걸다

글|이선화 기자

석유난로가 놓인 작업실에 석양빛이 은은하게 비추인다. 노을 지는 한겨울의 그 시간, 그 곳에서 허윤희를 만났다. 작업실에는 생각지 못한 대형 유화 작업이 눈에 익은 목탄 작업과 더불어 놓여 있었고, 책상에는 그가 산책 중에 거둬들인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천장에는 낙엽 모빌이 가볍게 흔들리면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굳이 서둘러 살피지는 않았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읽고 시를 쓰는 그곳은 작업만큼이나 사색적이고 평온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화실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던 언니를 만나는 것도 같았다. 그의 내면에 겹겹이 쌓인, 지난 기억의 순간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강해졌다.

<말> 종이에 목탄 72×102cm 2005

수많은 날들의 흔적

허윤희를 처음 만난 때는 지난 2007년 웨이방갤러리의 개인전에서였다. 한 벽면을 가득 채웠던 대형 목탄화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너른 울림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약 1년이 흘렀다. 그는 〈날들의 흔적〉(2008. 11. 19~12. 19)이라는 타이틀로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벽화 작업을 선보였고, 이번 전시에 대한 평은 작가의 고되었던 작업 과정을 치유하듯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허윤희는 한 달을 꼬박 채우며 음습한 지하 공간의 거친 시멘트 벽 위에서 지우고 그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정면을 바라보는 고독한 인물 형상이 초반의 계획과 달리 측면으로 변화하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벽의 제반 조건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메마른 벽에 풍부한 목탄의 선이 거쳐지고, 목탄가루는 고스란히 바닥에 남았다. ‘날들의 흔적’이란 이렇게 명명된 것이다.
허윤희가 목탄을 작업의 주 재료로 삼은 시기는 유학을 떠난 후부터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지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거나 갱지에 먹을 사용하면서 드로잉적 작업 경향을 선보이기는 했지만 목탄을 직접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었다. “독일로 떠나면서 목탄을 많이 사가지고 갔어요. 목탄으로 내 생각을 정리하고 그 후 걸러진 것을 회화로 옮겨야지 생각했었죠. 그런데 목탄으로 표현을 하다 보니까 내가 그리고 싶은 느낌이 완전히 충족되는 거예요. 당시 삶이 너무 외롭고 힘들었어요. 작품을 하면서 빨리 내 감정을 쏟아내고 싶었는데, 목탄은 단기간 집중해서 그리면 완성이 되잖아요. 그래서 나랑 더 잘 맞았던 거 같아요.”
그림의 형식적인 미보다 철학적인 면을 더욱 중요시하리라 생각해 찾은 독일, 그곳에서 작가는 20대 후반과 3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언어적 제약은 말할 것도 없고 심리적인 어려움도 상당했을 터. 그러나 허윤희는 10년간의 독일 생활에서 ‘나 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찾게 되었다고 말했다. “서울예고와 이화여대를 다녔는데, 재미가 없었어요. 그런데 독일 학교는 너무 즐거웠어요. 사실 힘든 점도 많았죠. 유학 초반에는 수업 시간에 무슨 말을 하는 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으니까요. 이불 뒤집어쓰고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나도 무슨 말인지 알고 싶은데 너무 답답했죠. 그러면서 서서히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라도 알 수 있게 된 것이 기쁨이었죠. 완벽하게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알고 싶은 욕구는 더욱 강해졌어요.” 이렇게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독일어의 수는 점차 늘어갔고, 그를 향한 주변의 물음 또한 많아졌다. “넌 어디에서 왔니?” 작가에게 수없이 떨어지는 이 질문을 받으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커져갔는데, 그것은 단지 어디로부터 떠나왔느냐는 지리적인 근거를 넘어 낭만적인 시적 표현법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허윤희의 또 다른 재주를 발견할 수 있다.

<다이어리 드로잉> 책에 아크릴릭, 연필 21×15cm 1996

시, 물, 그리고 치유

허윤희는 학창시절에 항시 문예부에서 활동하면서 막연하게나마 시인을 동경하고 꿈꿨다. 특별한 감정을 시각 이미지로 구현하는 화가의 길을 걷게 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언어 구사 능력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느낌을 시로 표현한다. 어린 시절의 꿈을 놓고 싶지 않았다고 수줍게 말하긴 했지만 그의 시는 작가가 쉽게 꺼내지 못할 기억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솔직한 고백에 다름 아니다. “사막 같은 날들 나는 목이 마르네/ 물기 빠진 껍데기/ 한참을 걸어 멀리서 반짝이는 큰 물을 보았네/ 온 몸으로 그 물을 마시고 싶어/ 그리고 지친 그대를 불러 이 물 깊은 곳에 가라앉고 싶네/ 그러나 검은 물결 나는 가지고 오지도 못하네/ 그저 물소리로 타는 목을 달래네”
독일 정착 후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다. 작가는 ‘목마름(Thirst)’이라는 위의 시를 완성했고 동일한 제목으로 여러 점의 목탄화를 그려내었다. 한국에 남겨놓은 것들에 대한 향수가 밀려오고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마다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는 그. 인생이 어두웠기에 찬란한 빛이, 마음이 스산했기에 따뜻한 햇살이 떠올랐을 법도 한데, 허윤희에게는 그 치유 대상이 다름 아닌 물이었다. 때문에 〈목마름〉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다이버〉 〈조국〉 등 그가 유학 초기에 제작한 작품의 대다수는 풍요로운 물의 이미지를 가득 담고 있다.
“목마름이라는 시는 온전히 내 경험에서 나온 거예요. 그 당시 내가 물기 빠진 껍데기 같았거든요. 작업을 하다 갑자기 뛰쳐나갔어요.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아무데나 갔는데 눈앞으로 큰 호수가 나타났어요. 지도를 보고 찾아간 것도 아닌데,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가 확 펼쳐져 있기에 깜짝 놀랐죠. 그래서 그 풍경을 시로 쓰고, 학교에 가서 2주 동안 〈목마름〉 시리즈를 그렸어요.”
어머니의 양수 속에 웅크리고 있던 편안함과 풍요의 상징, 작가에게 물이란 이러한 의미였다. 한국을 떠나 먼 타향으로 건너오는 데에도 그의 시적 상상력에는 물이 등장했고,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삶의 유동성에도 물의 흐름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물 위로 씨를 뿌리거나 손의 형상으로 물결을 만들거나 물속에 흥건히 잠기는 드로잉을 그리면서 자신의 결핍된 상태를 충족시키고자 했다. 당연히 작가의 손에는 언제나 목탄이 들려 있었고 셀 수 없이 긋고 지우는 과정은 삶을 향한 의지에의 표지(標識)로 연결된다.
기실 우리는 손이라는 신체 일부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신용과 믿음으로서 악수를 청하고 두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고 약속의 징표로서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고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기도 하기 때문일 터다. 그의 말을 빌어 ‘시적인 도구’라 할 목탄을 손에 부여잡고 허윤희도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지금 이 순간이라는 찰나적 개념과 사라짐에 대한 관심도 드러낸다. “독일에 있으면서 불교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색즉시공 공즉시색(모든 것이 사실은 사라지는 거라는 의미)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생각해요. 물론 현재에는 과거와 미래가 포함되어 있을 테지만요. 이 개념을 그림에 더욱 표현하고 싶었어요. 공간으로 봤을 때 그림이 여기에도 걸리고 저기에도 걸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이 장소로서의 의미를 강조하는 거죠. 그림 또한 이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는 것이고요. 비록 없어지지만 기억 속에는 더 선명하게 남을 수 있는 것, 그것에 주목하기 위해 벽화로 확대해서 작업을 진행한 거예요.”
삶 자체를 물이라 여기며 생명의 씨를 뿌리겠다는 작가는 요즈음 자연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말한다. 때문에 그의 최근작에는 꽃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러한 변화는 산을 매일 찾으며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 작가의 일상과도 연관이 깊다. 그는 산책길에서 나뭇잎을 주워 그림으로 옮기고 하루의 단상을 기록하는 다이어리 드로잉을 이어오고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시간의 순간순간을 애정으로 보듬는 허윤희, 그의 작업에서 연약한 듯 강인한 삶에의 의지를 읽는다.

주은지 양혜규-2009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와 작가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주은지(왼쪽) 커미셔너와 양혜규 작가

주은지 양혜규

“대화야말로 한국관 전시 준비의 밑거름이죠”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주은지, 작가 양혜규

2009년 홀수 해가 시작됐다. 격년제로 열리는 세계의 수많은 비엔날레들 때문에 ‘짝수 해’ ‘홀수 해’라는 구분이 생겨버린 미술동네식 방식을 따르자면, 올해에는 비엔날레 중에서도 단연 권위를 자랑하는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10월 뉴욕 뉴뮤지엄 큐레이터 주은지를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로 선정한 데 이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재독작가 양혜규를 참여작가로 결정했음을 발표했다. 이 둘의 결합이 소개되기가 무섭게, 곳곳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들린다. 해외 큐레이터가 커미셔너로 선정된 것도 그렇거니와, 작가와 커미셔너 모두 여성들로만 구성된 것도 1995년 한국관 설립 이후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먼파워’를 운운하며 이전 한국관 전시들과의 비교를 시도하는 여타 시선들에 대하여 주은지 커미셔너는 이렇게 단호히 말한다. “이전 전시들도 시대와 각 상황에 따라 다른 아이디어를 가진 커미셔너와 작가들이 계속 참여해 왔듯이, 이번 역시 전혀 다른 여건에서 진행되는 만큼 하나의 독립적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 충실해서 중요한 작가를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대화’라는 방법론을 통한 전시 준비

2006년에 열린 양혜규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 <사동 30번지>를 그와의 작업적 교감이 만들어진 결정적인 계기라며 운을 띄운 주은지 커미셔너는 작가 선정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커미셔너로 발표된 후 전시를 만드는 기간이 결코 길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이해와 대화를 나눈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기로 결정했어요. 양혜규 작가와 나눈 그동안의 대화들,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다양한 개념들을 이번 베니스비엔날레를 통해 한 단계 더 집중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양혜규 작가는 그간 국내외에서의 충분한 활동을 통해 지금 어느 때보다도 작가로서 무르익은 단계에 이르렀고, 이제 베니스비엔날레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할 시기라고 판단됩니다.” <사동 30번지>외에 <2007플랫폼-투모로우>(아트선재센터 외), <플래시 큐브:국제현대사진전>(삼성미술관 리움)까지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음에도, 사실 해외에서의 활발한 활동에 비하면 국내에서는 양혜규 작가의 작품을 쉽게 접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비디오, 사진,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업을 해온 그는 최근 전구, 블라인드와 같은 일상 사물과 빛 향기 열기 공기 음향 같은 감각 요소들을 조합시킨 설치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미묘한 삶의 세계와 복잡한 사유의 층위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받고 있는 작업들로, 최근 그는 독일 경제지 카피탈 선정 ‘세계 100대 미디어 설치작가’에 한국인으로는 이불(25위) 작가와 함께 92위에 오르기도 했다.
“어떤 기획자와 일을 하는가는 작가에게 중요한 문제죠. 베니스비엔날레가 말 그대로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무조건 참여하겠다고 응한 건 아니에요. 주은지 씨와는 끊임없이 열정적인 토론을 해왔고, 그 호기심을 이어가며 한국관 전시에 임하고 싶어요”(양혜규). 두 사람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서로간의 예술적 교류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2004년 부산비엔날레에서 두사람이 처음 만난 이후부터이다. 지난해 LA 레드캣갤러리에서 열린 양혜규의 개인전 <비대칭적 평등>도, 비록 후속 기획자에게 바통을 넘기긴 했으나 사실 뉴뮤지엄으로 옮기기 전까지 레드캣갤러리 큐레이터로 근무했던 주은지 커미셔너가 처음 기획을 맡았던 인연이 있다. “‘대화’라는 것은 최근 전시기획 분야의 새로운 전략, 혹은 방법론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함께 해보자’하고 의도적으로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개념을 키워가는 과정으로 작용하죠.” 이와 같은 주은지 커미셔너의 설명에 따르자면, 끊임없는 토론과 대화로 서로의 기획과 작업의 개념을 나누는 과정이란 단지 개인적인 친분의 수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 또한 그들에게는 “이미 4년 전부터 지속되어 온 과정 중”일 뿐이다.

‘인위성’ 배제한 공간 만들 것

6월 7일부터 11월 22일까지 열리는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는 총감독 다니엘 번바움(프랑크푸르트 예술아카데미 대표)의 기획 하에 ‘Making Worlds’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국가관 면면을 살펴보면, 독일관 작가 리암 길릭, 일본관 작가 야나기 미와가 선정되는 등 올해도 어김없이 전시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개인전 형식의 전시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관 역시 양혜규 작가 1인 체제로 확정되면서, 지난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의 이형구 작가 전시(커미셔너 안소연)에 이어 두 번째로 개인전 형식의 전시가 마련된다. 이에 주은지 커미셔너는 “2006년 상파울로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후 지속되고 있는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과 같은 블라인드 설치작업들이 한국관에서 보게 될 작업과 관련 깊어요”라고 개괄적인 정보를 던진 상태다. 여기서 한가지 명확한 점은 전시관의 인위적인 공간 변형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주어진 공간과 환경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부터 전시 개념을 정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장에 가벽 세우는 게 제일 싫어요”라고 강조하는 양혜규 작가의 의견처럼, 그들은 한국관의 건축 특성상 정면 유리창으로 강렬하게 투과되는 햇빛 역시 억지로 배제하지 않는 선상에서, 기본적인 요소와 기재들을 활용한 장면을 어떤 방식으로 연출하는가의 과제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따라서 같은 개인전 형식일지라도, 철저하게 빛을 막아 작품에로의 몰입도를 높였던 지난 한국관 전시와는 자못 다른 분위기가 예상된다.
인터뷰 중 주은지 커미셔너는 비엔날레에 앞서 준비 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홍보를 잊지 않았다. 현대미술과 관련된 텍스트 및 주은지 커미셔너의 소장 도서, 그리고 예술가부터 비평가, 기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인들의 도서 기부를 통해 만들어지는 하나의 라이브러리 컬렉션 ‘An Offering:Public Resource’가 바로 그것으로, 이는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비평적 담론을 좀 더 활성화시키고자 마련한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주은지 커미셔너는 세계 곳곳의 미술인들에게 협조 이메일을 보냈고, 그렇게 모이게 될 자료들은 오는 3, 4월에 아트선재센터 로비에 설치된다. 또한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예술가, 큐레이터, 그리고 평론가들로 구성된 그룹 토론 등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시기상 아직 구체적인 전시 컨셉트가 정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기자의 예상을 건네자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단계가 진행됐다며 미소를 보인 양혜규 작가는 “베니스비엔날레라는 하나의 상황이 요구하는 제약을 스스로 일반화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는 방식으로 완성시키고 싶어요”라고 다짐을 전했다. 이처럼 작가 그리고 큐레이터로서 올 여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 분주한 연초를 보내고 있다. | 장승연 기자

양혜규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블라인드 룸> 2006 제27회 상파울로비엔날레 전시장면, 미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 소장

2009 January Special - 아시아미술의 리더 14인의 'My works, Today's Art'

후미오 난조, 2008싱가포르비엔날레 리로이 뉴 <기형종 II:세계대전>

Fumio Nanjo

후미오 난조 도쿄 모리미술관 디렉터
아시아 미술의 ‘특권 시대’

지난 몇 년간 나는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비엔날레를 만드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2006년, 2008년 두 차례 싱가포르비엔날레의 큐레이터를 맡았다. 같은 큐레이터에게 비엔날레를 연이어 맡긴다는 것은 주최측으로서는 큰 모험이다. 큐레이터 당사자도 엄청난 부담을 안는 일이다. 어쨌든 나는 동남아시아의 도시 국가 싱가포르에서 ‘비엔날레’라는 형태의 현대미술 전시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이, 이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포함해 새로운 관객층이 생기기를 바랐다. 나의 목표는 현대미술이 어렵거나 불가해한 것이라는 인상을 남기지 않는 것이었다. 또한 현대미술의 국제적 장에 새로운 작가들, 특히 아시아 작가들을 소개하려고 애썼다.
첫 전시의 주제는 ‘믿음(Belief)’이었다.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국가인 싱가포르의 아이덴티티를 파악하고 알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2008년의 전시는 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2006년의 아이디어를 반복하거나 비슷한 인상을 남기지 않으면서 여전히 같은 모험이 이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더욱 조심스러웠다. 2008년 전시에서는 나의 역할을 최소화했고, 따라서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큐레이터 매튜 엥구이, 큐레이터 조셀리나 크루즈의 역할이 보다 중요했다. 그들을 통해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작가들을 소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감상자와 작품 간의 피드백을 염두해 두고, 조용하고 소박한 전시를 꾸렸다. 나는 아시아의 이런 새로운 비엔날레가 미래에도 성공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싱가포르인들로부터 시작해 세계의 미술 애호가들에게까지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되길 바란다.
한편 내가 디렉터로 있는 모리미술관은 2008년 4개의 전시를 선보였다. 매번 우리는 보다 많은 설명, 음성안내, 카탈로그, 두 가지 언어로 진행되는 투어가이드 등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부 프로그램은 테이트모던이나 퐁피두센터와 같은 해외 미술관의 협력을 통해 완성되었다. 때로는 UBS와 같은 개인회사의 컬렉션을 전시하기도 했다. 2008년 11월 우리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로 〈샬로 인디아(Chalo India)〉라는 인도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했다. 나는 아시아 예술에 대하여 합당한 연구를 진행하고 국제적인 예술의 장에 “봐라, 여기 흥미로운 아시아 미술이 있다”라고 소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9년 여름, 중요한 아시아 미술 전시가 계획돼 있다. 아이 웨이웨이의 개인전이다. 이제 중국작가들의 그룹전 시대는 끝났고, 한 명 한 명의 작가를 깊이 있게 소개해야 할 때다.
우리는 예술과 인생에 대한 통찰을 지녀야 한다. 2009년 가을 인체와 예술에 대한 도전적인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인체가 바로 예술과 과학(의학)이 만나는 점이라는 컨셉트다. 런던의 웰컴트러스트(Wellcome Turst)의 소장품 중 의학과 약학 역사에 관련된 공예품들을 빌려와 현대미술 작품들과 나란히 전시함으로써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예술이란 보호 차원에서의 지속적인 관심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사회와 인생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큐레이터나 평론가 같은 전문가들은 이 사실을 늘 자각하고 대중적인 입장과 타협하지 않으며 전문적인 방법을 통해 사회와 인생의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한다. 이는 마치 외줄을 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특히 2008년에서 2009년으로 이어지는 경제 불황을 맞아, 우리는 진지하게 우리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제적인 시각으로 보면, 보다 다양한 색감을 지니고, 전통을 가진, 비평 정신이 담긴 아시아미술은 점점 더 국제적 예술의 장에서 부각될 것이다. 현대미술은 보다 더 지역이나 자국의 특색, 내용과 정신을 담게 되는 동시에 점점 국제적으로 변해갈 것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이제 예술가라면 아시아에 산다는 것이 곧 특권이라고 나는 믿는다.

김순응, K옥션 2008년 가을 메이저경매 장면

Soonung Kim

김순응 K옥션 대표이사
‘번영의 모드’에서 ‘생존의 모드’로

돌이켜 보니 은행원에서 미술인으로 전업한 지 어언 7년, 햇수로는 8년에 접어들고 있다. 7년의 세월을 서울옥션 대표 3년, 백수 1년, K옥션 대표 3년으로 보냈다. 은행원으로서의 23년을 더하면 30년 밥벌이를 해온 셈이니 갈수록 정년이 단축되고 있는 후배 은행원들의 부러움을 살 만도 하다. 금융인으로서의 23년보다 미술인으로서의 7년이 훨씬 더 길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굴곡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운이 좋아 내가 미술계에 몸 담아온 지난 7년 동안 국내외 미술계는 질량(質量) 면에서 비약적인 도약을 이뤘다. 내가 종사하고 있는 경매업계를 보면 2001년에는 서울옥션이 유일하던 경매회사가 이제는 K옥션을 포함하여 10개 가까이 늘었고, 시장 규모는 100억원 미만에서 1000억원 이상(2007년 1880억원, 2008년 1100억원)으로 10배 이상 컸다. 이런 고도성장의 시대를 함께 했다는 것은 개인으로는 큰 행운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시장이 좋을 때는 누구나 잘 하고 어떻게 해도 잘 된다. 어려운 시기를 잘 통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개의 인생이 짧은 행복과 긴 불행으로 엮여지듯이 대개의 경기 사이클이 짧은 호황과 긴 불경기로 이어진다. 미술시장을 돌아보면 2~3년의 짧은 호황과 10~20년의 불황이 반복되어 왔다. 미술시장에도 암운을 드리우고 있는 작금의 세계적인 금융, 실물 경제의 위기는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으로 그 깊이와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런 위기의 시대를 살아남는 방법은 기본에 충실히 하는 수밖에 없다. 열심히 벌고 최대한 적게 쓰는 것이다. K옥션은 그간 내실을 착실하게 다져왔다. 경매회사의 생명인 공신력 면에서 국내외 고객들에게 비교적 좋은 평판을 얻고 있고, 작년과 같은 호황이 지속될 거라는 허황된 가정 하에 몸집을 크게 불리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의 미술시장 불황이나 미래의 전망에 대해 그렇게 비관적이지 만은 않다. 그 동안 국내외 미술시장의 저변이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에 불경기라도 예전의 불경기와는 다르리라는 것이다. 국내시장을 보더라도 컬렉터 숫자가 어림잡아 10배 정도는 증가했고, 국내작가에 대한 해외에서의 인지도나 수요도 크게 늘었기 때문에 미술시장이 호황 이전의 수준으로까지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비정상적이었던 2007년 호황의 쾌락이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시장이 늘 2007년처럼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요즘이 위기라고는 하지만 그림 값이 적정한 수준으로 조정된다면 사겠다는 대기 수요가 크다. 미술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았다는 얘기다. 컬렉터들은 이런 위기가 좋은 작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이 원하는 작품들이 원하는 가격에 나오기 시작한다면 미술시장은 바닥을 찍고 반등할 것이다. 컬렉터들의 작품을 보는 눈은 불황을 통해서 한층 높아진다. 호황기에는 풍문과 이름으로 작품을 샀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작품의 질과 가격에 대해 전문가 이상의 안목으로 평가한다. 미술시장은 컬렉터의 안목만큼 선진화한다. 컬렉터가 까다로워지면 작가들도 발전한다. 호황에 부화뇌동하던 작가들의 생각이 다시 자신의 작품 세계로 회귀하면서 한결 성숙해진다.
시장 구조적으로 보면 2차 시장인 경매에 경도되었던 중심이 다시 1차 시장인 갤러리 쪽으로 이동하면서 균형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시장의 중심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건강한 발전이 어렵다. ‘돈’과 ‘예술’의 균형 속에서 미술은 발전한다. 이런 면에서 거품은 역기능 못지않은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거품이 붕괴되지 않고는 때가 벗겨지지 않으며 거품이 때를 벗겨 가면 미술시장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날 것이다.
살아서 새로운 시대를 누리기 위해서는 ‘번영의 모드’를 ‘생존의 모드’로 바꿔야 한다.

구 웬다, <천상의 초롱-용:루프대교 방면의 상하이 고속도로> 구상을 위한 디지털 드로잉

Gu Wenda

구 웬다 작가
‘천상의 초롱’으로 세계를 밝히다

미국과 중국에서 생활하고 작업하며 뉴욕, 상하이 그리고 베이징에 작업실을 둔 작가로서 나는 인간의 존재, 그리고 이와 연관된 인류의 발전과 진보로서의 문화적 예술적 실행이라는 두 가지의 주요한 도전적 과제에 천착하고 있다. 이중 하나는 소위 생물학적 밀레니엄, 인체의 과학적 재발명(유전공학과 생물연구)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1990년대 초반부터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다 준 국제주의이다.
이러한 이념들은 지난 20년간 나의 문화적 예술적 창조 전반에 있어 가장 주된 관심사였다.
이러한 관심은 인간의 신체와 관련된 프로젝트인 〈피의 수수께끼〉 〈탄생의 수수께끼〉의 원동력이 되었고, 1993년부터 시작된 〈통합된 국가(United Nations)〉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400만명 이상의 머리카락과 인류의 화합을 축적시킨 결과물로, 5개 대륙에서 20개 이상의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이중 일부는 2009년 베이징 금일미술관과 필라델피아의 드렉셀대학에서 각각 개인전을 통해 선보일 것이다.
다양한 국가들의 문화를 교차시키는 내 작업의 다른 연작은 국제주의, 문화적 정체성 위기와 일상문화, 산채문화(山寨文化), 대중예술과 문화에 초점을 맞춘 현재 진행형의 프로젝트 〈천상의 초롱(Heavenly Lantern)〉이다. 행복, 행운, 번영, 축복을 상징하고, 무엇보다 강렬한 붉은 색을 자랑하는 중국의 전통 초롱을 이용하여 세계 각지의 문화, 역사적 랜드마크 건축물을 덮어씌우는 이 작업을 통해 중국 문화의 상징성이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화들과 어우러지기를, 이 초롱이 문명과 민족을 화합하는 전도사가 되기를 바란다.
2003년부터 구상된 이 프로젝트의 대상은 한 국가와 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중적 역사적 또는 상징적 중요성을 지닌 곳으로 선별했다. 프로젝트의 시행 시기 또한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때, 또는 역사적으로 기념이 되는 지정일에 맞추고자 한다. 현재까지는 상하이의 진마오 타워, 상하이의 푸동(浦東)과 푸쉬(浦西)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항저우의 서쪽 호수, 스위스 다보스의 벨베데레 호텔, 홍콩 쿠롱의 파이낸스 센터, 싱가포르의 마리나 센터를 대상으로 진행 중에 있다.
2008년에는 이 프로젝트를 최초로 네덜란드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천상의 초롱-마티니 탑(Heavenly Lantern-Martini Tower)〉은 네덜란드의 유명한 랜드마크인 마티니 성당을 대상으로 유로피안 파운데이션, 네덜란드 흐로닝언미술관, 필립일렉트로닉스, 네덜란드의 건축공학팀 및 몇몇 건설회사의 협력과 지원으로 4년간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네덜란드 소방법에 적합한 수 만개의 중국 초롱들이 완성되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일에 작품을 공개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는 일반 네덜란드 가정의 대화 주제가 될 정도로 그 지역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계획은 흐로닝언 시에 의해 개막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취소되었다. 이유는 티벳 사건 이후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국가 유적이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시의 결정에 맞섰고, 흐로닝언 시는 법정에 이 문제를 의뢰하여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흐로닝언 시의 압력 하에 흐로닝언미술관이 청문회를 철회함에 따라 공개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의 작품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 만큼, 2009년 또는 2010년에 네덜란드 내 다른 장소에서 프로젝트가 실현될 수 있도록 장소를 물색하고 있으며, 현재 로테르담을 대상지로 검토 중에 있다.
중국, 홍콩, 스위스 등에서의 프로젝트 또한 빠른 시일 내에 실현될 수 있도록 바쁜 2009년을 보낼 계획이다. 앞서 언급한 2개의 개인전 외에도, 현재까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약 5개의 단체전 계획이 잡혀 있다.
아시아 현대미술의 뜨거운 열기와 중국의 현대미술이 주도하던 2008년의 미술시장은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로 인해 결국 주춤해졌다. 지금은 아시아 현대미술과 그 시장, 특히 중국의 현대미술과 시장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재평가를 내릴 절호의 기회다. 2009년을 계기로 보다 성숙된 아시아 현대미술 담론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알바로 로드리게즈 포미나야, 가오 형제 <20분 포옹의 유토피아> 컬러프린트 2000

Alvaro Rodriguez

알바로 로드리게즈 포미나야 홍콩 파라사이트아트스페이스 디렉터
비영리공간의 생존 전략

국제적 이슈들이 큐레이팅 분야의 지배적 주제이지만, 큐레이팅과 지역과의 관계, 그리고 지역사회에서의 아트센터의 역할이 나에게는 보다 흥미로운 주제다. 비영리 아트스페이스의 역할은 한 지역 사회의 일부로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쟁점은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한다. 내가 프리랜서 큐레이터가 아니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의 힘을 강하게 믿는 사람이다.
영속성의 측면에서 아트스페이스는 부유한 제트족들이 펼치는 순간적으로 화려한 비엔날레와는 다르지만, 상관없다.
우리는 단기간의 예술 ‘관광 여행’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을 구축하고자 이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런던과 카나리아 아일랜드에서 경력을 쌓고, 파라사이트를 경영하기 위해 홍콩으로 이사한 것은 내게는 예정에는 없었을지언정, 기꺼운 도전이었다. 조직을 꾸려나갈 때는 항상 어려운 시기가 있다. 자금의 불확실성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에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1996년 작가가 설립해 운영되다가 최근 몇 년 전부터 큐레이터가 참여하게 된 파라사이트아트스페이스는 오랫동안 홍콩의 독립예술공간 구실을 해 왔다. 또 이러한 정의와 무관하게 파라사이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사실 이곳이 중국에서는 극히 드문 비상업적인 예술공간이라는 점이다. 최근 한 평론가는 중국 현대미술의 장을 ‘광란의 서부’에 비유했다. 상업적이고 비상업적인 영역의 구분이 완전히 모호해졌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파라사이트는 비상업적인 쪽에 머무르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문맥 속에서 파라사이트아트스페이스의 2009년 프로그램이 계획되었다. 공공장소의 사용은 공간이 좁은 홍콩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의견이 분분한 측면이기에, 우리는 타쯔미 오리모토 (Tatsumi Orimoto)나 가오 형제(Gao Brothers)와 같은 작가들을 통해서 공공장소를 개선할 것이다. 타쯔미 오리모토의 〈퍼포먼스: 홍콩 도시를 걷는 브래드맨〉이나 포옹 퍼포먼스는 우리가 대도시에서 기인하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는 우리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예술을 필요로 한다. 예술은 경험을 통해 우리의 삶을 고양시킨다.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와 수라시 쿠솔롱(Surasi Kusolwong)은 우리 아트스페이스에서 발전되어 온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최근의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과 결정적 모멘텀을 반영할 것이다. 수라시 쿠솔롱은 1990년대 아시아 경제 위기 때 처음 시작되었던 길거리 1달러 마켓을 소생시켜, 관객들이 전시된 오브제를 집으로 가져 가게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다.
또 두 그룹 프로젝트가 준비돼 있다. HK사운드스테이션과 아시아애니메이션박물관은 사운드와 애니메이션의 특정 미디어에 대한 특정 지방 또는 지역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현대미술에서의 소리의 개념에 대한 연구이다.
앤슨 막(Anson Mak), 피비 휘(Phoebe Hui), 킹슬리(Kingsley), 스티브 휘(Steve Hui) 등의 아티스트들이 전시에 참여할 것이며, 최초로 중국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비토 아콘치와 쿠르트 슈비터스의 작품을 통해 20세기까지 그 영역을 확장할 것이다.
아시아 애니메이션박물관은 중국, 대만, 한국, 일본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실시한 각자 지역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 결과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파라사이트는 크게 두 개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홍콩 작가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홍콩 외부의 작품을 홍콩에서 전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방향성 시스템으로 파라사이트는 홍콩과 외부 세계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 2009년에는 서울의 대안공간루프, 베를린의 WL 독립아트스페이스, 베니스비엔날레, 카나리아아일랜드비엔날레 등과 공동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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