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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0.12

Abstract

특집_Best of 2010 + 한국 현대미술 심층 분석 비엔날레 열기가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2010년, 한국 미술계는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전시가 열렸다. art는 2010년 미술계를 장식했던 복잡다단한 전시의 난맥을 앞에 두고, 그 지형을 분석 평가하는 특집을 꾸몄다. 전시 기획자 10인에게 '2010년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 10개'의 추천과 코멘트를 의뢰했다. 추천자 10인은 저마다의 비평적 시각으로 올해의 전시를 뽑아 주었다. 또한 뉴밀레니엄 이후 딱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 한국미술의 현주소를 진단하기 위해 미술평론가 및 큐레이터 4인(강수미, 김성원, 심상용, 임근준)과 함께 라운드테이블을 마련했다. 지난 10년 동안 심대한 변화가 일어난 한국 미술계. 그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우리 모두 새롭게 도래할 미술과 그에 걸맞은 아젠다를 모색해 보자.

Contents

01 표지 장후완 <산으로 돌아온 자유 호랑이 No.50> 리넨에 재 250×400cm 2010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동방의 요괴’를 찾습니다 
      
38 프리즘
    G20정상회의가 우리 미술계에 남긴 것  김찬동
    백남준 알리기와 문화 경영의 미래  문인희

42 아티스트 인 코리아  디디에 오탱제  김재석

62 포커스
    xyZ City展|토마스 스트루스展  신수진 
    한국 드로잉 30년展|스페인 현대드로잉展  정연심    
    남녀의 미래展|워킹 맘마미아展  양은희
    윤명로展  판디안

78 뉴비전 신진 평론가 발굴 프로젝트
    당선자 김현호
   
89 특집 Best of 2010-Curator’s Choice 10×10

112 라운드 테이블 2000-2010 한국 현대미술 심층 분석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강수미 김성원 심상용 임근준

126 해외 작가 
    장후완_‘몸의 언어’에서 중국의 정체성으로  샤오 샤올란
    가브리엘 오로스코_우리 시대의 동키호테  전영백 

148 리포트 유럽 리버풀비엔날레
    도시에 의한, 도시를 위한 축제  장승연

154 크리티컬 포인트
    통째로 노이즈가 돼버린 비엔날레  이영준

158 이미지 링크  윌리엄 이글스턴

165 이슈 앤 크리틱 3 의미와 표정
    이미지의 표정과 의미의 발현  김백균

171 나의 얼굴  김진열

172 아트 마켓  2010대구아트페어
    지역 아트페어의 본보기  김재석

176 전시 리뷰
    육태진|강명희|최정화|조환|민성식|서현석
    안녕하세요, 쿠르베氏|윤주경|다발킴|김윤호|이제|전은숙

186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New Vision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글 | 김현호
 
물론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이겠지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세우는 의례적인 겸손의 말은 늘어 놓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던 내가 지녀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는 다시 만나서 펜을 가다듬게 될 것이므로, 그들에게 가장 따뜻한 인사를 보낸다.
많은 스승과 친구들에게 가르침을 받아 왔으므로, 그들의 이름만을 늘어 놓기에도 주어진 지면이 부족하다. 그러니 차라리 무례함을 무릅쓰고 여섯 개의 이름만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것도 같다. 우연찮게도 그들은 남자 세 명과 여자 세 명이다. 세 명의 남자가 나를 가르쳤고, 세 명의 여자가 나를 만들었다. 말할 것도 없이 남자들은 이영준 서동진 박상우이고, 여자들은 당연히 임대영 이정혜 김이소다. 아직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없었더라면 정말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여섯 명 모두가 내게는 눈동자처럼 소중하다. 하지만 좀 더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려야 할 이들이 있다면, 이영준과 이정혜다. 이영준은 내 스승이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도 나는 사진 이미지의 매트릭스 안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심지어 요리사 모자를 쓰고 스테이크를 굽고 있을 수도 있겠다. 사진의 외부, 실재의 사막을 보는 ‘빨간 알약’을 주신 스승에게 감사한다.(내게는 참으로 묵시록적인 일인데, 그의 외모는 심지어 ‘모피어스’를 닮았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그의 회갑기념논총을 아름다운 책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정혜에 대한 고마움은 도대체 말로 다 할 수도 없다. 고맙다고 매일매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매일매일 생각할 것이다.
기회를 주신 아트인컬처와 칭찬과 채찍질을 아끼지 않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 드린다. 맹자는 북궁유라는 이를 평하여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른 이에게 뽑히면 저잣거리에서 매 맞은 것처럼 생각했고, 싫은 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복수하고 말았다(思以一毫挫於人, 若撻之於市朝. 惡聲至, 必反之)”라고 썼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모름지기 사내란 그 정도의 쫀쫀함과 치사함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주신 말씀 하나하나를 가슴에 품고,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해 언젠가 ‘복수’할 수 있도록 벼르며,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할 것이다. 언젠가 내가 유려하고 아름다운,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오늘의 부끄러움 덕택일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김현호 1979년 서울 출생. 서울대 철학과 및 홍익대 일반대학원 사진학과 졸업. 디자인 회사 베가스튜디오 공동 대표, 계원디자인예술대학 H-CENTER 연구원, 디자인 저널 《양귀비》 편집장을 역임했다. 상하이와 서울에서 두 차례 개인전을 연 사진가이자, 현재 서울대 출판문화원 편집기획팀장을 맡고 있다. 주로 사진 이미지와 네트워크 기반 미디어아트를 대상으로 글을 쓴다.

 

도시에 의한, 도시를 위한 축제

리버풀의 중심가에 위치한 세인트조지홀에 비엔날레를 알리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도시에 의한, 도시를 위한 축제

글|장승연 기자

리버풀 라임스트리트역에 내리자마자, 세인트조지홀 기둥에 걸린 대형 비엔날레 현수막이 웅장한 위용을 드러낸다. 지금, 바로 이곳이 미술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임을 알리는 듯한 거대한 현수막을 마주하니, 마음 한 구석이 서서히 동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잠시 후 숙소를 찾아가는 동안 곁눈으로 살핀 리버풀의 첫 인상은 ‘과연 이 도시 어디에서 축제가 펼쳐지고 있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기에 충분했다. 북부의 찬 공기 때문인지 유독 창백한 표정의 사람들, 회색 콘크리트와 오래된 갈색 벽돌, 뜯다 만 포스터로 가득 찬 벽과 가꾸지 않은 거리 등 풍경이 다소 쓸쓸해 보인다. 18세기 주요 무역항으로 번성하다가 쇠퇴했고, 제1차 세계대전 후 각종 공장이 입지하며 영국 북부 공업지대의 유통기지가 되었다가 다시 내리막길을 걸은 도시, 리버풀다운 외관이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 리버풀비엔날레가 세계 미술계에서 명성을 높이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비엔날레라는 문화 예술 컨텐츠로 ‘지역 재생’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하는 이들이 무언가 시선을 확 끌만한 스펙터클을 마주치길 기대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비슷한 예로, 스페인 북부의 별 볼일 없던 도시 빌바오는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미술관 하나가 들어서면서 어마어마한 경제적 파급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곳에 간 관광객은 평범한 도시 한 가운데서 홀로 번쩍번쩍 광채를 내고 있는 거대한 미술관 건물에 단연 압도되며, ‘문화 컨텐츠=스펙터클=자본’이라는 정답 없는 공식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얼핏 거창한 장관이라곤 없어 보이는 리버풀의 비엔날레 관람객 수는 매년 증가하여, 2008년에는 97만 5천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관람객이 찾아 왔고(리버풀 인구는 약 40만 명) 2천 6백만 파운드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리버풀비엔날레의 무엇이 수많은 세계 관람객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일까?


도시 곳곳이 전시장으로
본격적인 비엔날레 탐방을 시작하며 거리에 나서니 시내 곳곳에서 이색적인 이미지가 자주 눈에 들어 온다. 털이 곤두선 채 공격적으로 이를 드러내고 있는 늑대 이미지가 포스터, 표지판 그리고 장식물의 형태로 이곳저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늑대들의 정체는 바로 리버풀비엔날레의 크리에이티브 캠페인이란다. 작가 카를로스 아모랄레스(Carlos Amorales)는 1281년 영국의 에드워드 1세가 늑대 몰살을 명령했다는 역사 속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야기 속의 대상을 실제의 현상으로 재현하고, 또 이를 통해 사람들이 현재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음을 자각할 수 있는 시각물을 창조한 것이다.
아모랄레스 외에도 세계 각국 6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제6회 리버풀비엔날레는 2000년부터 리버풀비엔날레를 이끌어 온 루이스 빅스(Lewis Biggs)가 다시 총감독을 맡아‘Touched’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헌데 지금 여기서 이 주제를 한글로 번역해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알다시피 ‘Touch’라는 단어는 ‘만지다, 접촉하다, 관여하다, 마음을 움직이다, 감동시키다’ 등의 수많은 의미를 갖는데, 리버풀비엔날레는 이러한 다면적인 측면을 의도적으로 취한 것이다. 개인에서부터 넓게는 사회 정치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예술이라는 장르와의 시각적이고 감각적이며 감정적인 측면에 이르는 상호 영향 및 관계성을 탐구하고자 한 기획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광범위한 시각으로 작품을 논하려는 방식의 전시의 경우, 그 기획력을 정교히 논하기가 어렵다.‘Touch’라는 단어가 지니는 수많은 뜻처럼, 개인에게 각기 다른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이니 말이다. 그런데 기자가 보기에 리버풀비엔날레는 작품과 주제가 연결되는 전시 자체의 기획력보다도, 역으로 이 비엔날레라는 행사가 리버풀이라는 도시에 ‘터치’한 방식, 하나의 행사로 도시 전체를 완결하는 방식이 남달라 보였다. 
리버풀비엔날레는 도시 전체의 유기적인 결합 속에서 진행된다. 비엔날레를 위해 도시가 일정 부분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도시에 맞춰 비엔날레가 진행된 느낌이라고 할까. 이곳은 매년 비엔날레 전용관을 따로 두지 않고, 리버풀의 유서 깊은 예술 공간인 테이트리버풀(Tate Liverpool), A파운데이션(A Foundation), 블루코트(the Bluecoat), 팩트(FACT, Founda-tion for Art Creative Technology), 오픈아이갤러리(Open Eye Gallery)와의 협업을 통해 거대한 전시 지형도를 그려 낸다. 중요한 점은 비엔날레측의 의뢰로 각 장소에 전시할 작가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성격에 맞게 작가를 선정하고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이다. 또한 도시 내 성당, 창고, 빈 상가 건물, 길거리 등 다양한 공공의 장소가 새로운 전시장으로 탈바꿈된다. 물론 혹자는 이러한 방식이 이미 여러 비엔날레의 일반적인 형식이라며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방식이 남달리 적극적이다. 더욱이 리버풀은 지도 한 장만 있으면 주요 관광지를 걸어서 돌아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도시인데다, 기차역에서 2파운드면 살 수 있는 꽤 잘 그려진 3D지도(이름이 거창하다고 기대는 말자. 그저 건물을 3차원 입체로 그린 지도)도 길 찾는 재미를 더해 준다. 이러한 상황이니, 거대한 전용관의 짜여진 동선에 따라 전시에만 몰입하게 하는 여타 비엔날레와는 달리, 이곳은 작품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여정 속에 리버풀 시내 곳곳의 풍광이 자연스레 동반되기 마련이다.


급진적이고 도전적인
한때는 항구의 주요 독으로 활약하다가, 지금은 리버풀의 대표 관광지로 잘 알려진 알버트독(Albert Dock). 그곳의 물품 보관 창고였던 건물을 개조한 테이트리버풀 4층에는 행위나 물리적 접촉과 같은 즉각적인 감각의 영역을 탐구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었다.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츠(Magdalena Abaka-nowicz), 니나 카넬(Nina Canell), 제이미 아이젠슈타인(Jamie Isenstein) 등 9명의 참여 작가 중에서, 오토 뮤엘(Otto Muehl)과 반 고에착스(Wannes Goetschalckx)의 작업은 이 전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터치’의 의미를 가장 잘 대변하는 작업이었다고 본다. 헤르만 니치(Hermann Nitsch)와 함께 비엔나 액셔니스트 그룹을 창시하여 잘 알려진, 이제는 노년의 오토 뮤엘이 그린 회화들은 그림을 그리는 주체와 재료의 물성 사이에서 일어난 강렬한 행위의 결과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했다.
한편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반 고에착스는 1978년 생의 젊은 벨기에 작가다. 그의 작품 〈1 WITHOUT〉에서 작가는 직접 나무로 다양한 크기의 오브제나 공간을 만들고, 이 사물들과 자신의 신체가 엮어 갈 수 있는 다양한 행위의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보던 관람객은 이내 실제 전시장 한 귀퉁이에 놓여 있는 커다란 나무 상자 속에서 무언가 분주한 소리가 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작가가 직접 상자 안에 상주하며 자신이 만든 나무 오브제로 블록을 쌓았다 바꾸는 등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장면을 발견하곤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러한 흥미로운 작품들을 위시로, 비엔날레 측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조우하리라곤 생각지 못한 작품들을 소개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역시 단정한 화이트 큐브의 미술관보다는 바깥의 예상치 못한 장소들에서 열린 전시야말로 리버풀비엔날레 특유의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기차역 근처 렌쇼우스트리트(Renshaw Street)를 따라 길게 자리하는 폐점된 철물 가게 건물은 비엔날레 관람객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독창적인 인포메이션 센터가 자리한데다, 가장 많은 22명의 작가가 소개되어 리버풀비엔날레의 메인 전시장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대한 건물 내부의 바짝 말라버린 벽지부터,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칠해진 방, 삭막하고 어두운 지하실과 복도, 먼지 쌓인 창문과 벽난로 등 기존 건물의 잔재를 그대로 남겨두어서인지, 마치 일시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에 침입한 게릴라들의 전시를 보는 듯 급진적이고 도전적인 인상을 준다. 이 건물에는 로사 바바(Rosa Barba), 송 동(Sond Dong), 알프레드 자(Alfred Jarr), NS 하샤(NS Harsha) 등 여러 작가들의 개별 작업이 전시된 것 외에도,‘Re: Thinking Trade’와 ‘The Human Stain’이라는 제목의 소주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방식으로 관람객을 경악하게 한 작품은 바로 다니엘 노어(Daniel Knorr)의 〈The Naked Corner〉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현대 사회의 경제와 관련된 슬로건을 선별, 이를 모델의 몸에 적은 후 나체 상태로 ‘상품 거래’의 상징인 상점 쇼윈도 안에 상주하게 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길을 걷다가 당연히 마네킹인 줄 알았던 형상이 어느 순간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고 만다.
그 외에도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영국 특유의 성격을 잘 보여 주는 A파운데이션, 블루코트 등의 전시장에는 사치코 아베(Sachiko Abe)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또한 이들 건물과는 달리 현대적 외관의 FACT(영화, 영상 및 뉴미디어 관련 실험 공간)에는 한국 작가 임민욱의 영상 작업과 올해 광주비엔날레에도 참여한 중국 작가 데칭셰의 〈One Year Performance〉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좌)사치코 아베 〈Cut Papers〉 2010 A Foundation 설치 전경
우)크리스 마틴 〈Mandi XⅤ〉 브론즈 스테인리스스틸 2007 Courtesy of the artist and Sies + Hok Galerie Dusseldorf


‘리버풀’이 중심인 리버풀비엔날레
기자가 묶던 숙소 바로 뒷길인 듀크스트리트(Duke Street)의 84~86번지 건물 사이에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그러나 현지 사람들에게는 꽤 낯설 법한 ‘한옥’ 한 채가 툭하니 박혀 있었다. 어디선가 날라온 한옥이 건물 사이에 박혀 두 개의 서구식 건물을 연결하고 있는 모양새다. 〈Bridging Home〉이라는 제목의 이 설치 작품은, 그 익숙한 형태만으로도 한국 작가 서도호의 작업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게 한다. 누구든 한 번쯤 걸음을 멈추게 만들 이 흥미로운 장면 앞에서, 기자는 다른 것보다도 비엔날레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매년 이러한 장소 특정적인 작품이 활발히 실현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리버풀비엔날레는 이러한 류의 공공미술 작품을 매해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는데, 건물에 둥그런 단면을 잘라낸 후 그것을 360도로 회전하게 했던 리차드 윌슨의 〈Turning the Place Over〉나, 리버풀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크로스비 해변에 100개의 인체 모형을 설치한 안토니 곰리의 〈Another Place〉도 막대한 예산이 든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루이스 빅스 총감독은 리버풀비엔날레가 다른 비엔날레와 달리 전용관과 같은 자체 건물을 갖고 있지 않는 이유에 대해, 건물의 건축 및 유지에 쓰이는 큰 비용을 예술 활동으로 돌리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때문인지 매 행사마다 리버풀비엔날레는 작가들에게 도시에 걸맞은 신작을 많이 의뢰할 수 있고, 올해 역시 비엔날레를 위한 신작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아마도 다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꾸준히 진행될 수 있는 것도 융통성 있는 예산 관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본다. 한편 자체 건물이 없다는 사실은 지역 학교와 기업과 환경 단체 등 다른 조직과의 파트너십을 요하게 되고, 그 결과 다른 조직과의 협의와 공동 목표 달성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렇기에 리버풀시에서는 비엔날레가 열리는 동안 ‘존무어회화상(John Moores Painting Prize)’‘블룸버그 뉴컨템포러리(Bloomberg New Contemporary)’‘시티 스테이츠(City States)’‘스   리버풀 2010(S.Q.U.A.T. Liver- pool 2010)’ 등 예술 전반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가동하고 있다. 특히 세계 여러 도시의 삶을 주제로 하는 ‘시티 스테이츠’는 올해 런던 한국문화원과 대안공간루프의 공동 기획으로 한국 및 아시아의 미디어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 〈Media Land- scape, Zone East〉를 열어 반가움을 더했다.
세계 어디에서 열리건, 거의 모든 비엔날레가 개최되는 도시의 이름을 딴다. 베니스 리버풀 상파울로 시드니 광주 부산…. 일일이 열거하다 보니 어디서부터 이런 규칙이 생겨난 건지 새삼 흥미로워진다. 하지만 이 모든 비엔날레가 도시명으로 그 이름을 딸 만큼 각자의 도시와 어떻게 연관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그 답은 각기 틀릴 것이다. 반면 리버풀비엔날레는 단연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기자가 본 리버풀비엔날레는 말 그대로 도시 ‘리버풀’이 중심이었다. 지역을 잘 이해하고 반영하면서 관계를 맺어 갔기에 각 비엔날레 컨텐츠들은 거창한 시각적 효과 없이도 도시 곳곳에 적절히 흡수될 수 있었고, 또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출장을 떠난 기자의 중요 임무 중 하나는 이후 진행할 기사를 위한 자료 수집이다. 그렇기에 전시 도록은 무조건 사수해야 한다. 하지만 리버풀비엔날레에는 전시를 둘러보면서 참고할 만한 5파운드짜리 자그마한 가이드북만 판매될 뿐, 묵직한 소장용 도록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전시를 기록물로 잘 남기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한 명이라도 더 잘 감상하는 게 중요하다는 비엔날레의 결정인 것 같다.(그래서 전시 입장료도 모두 무료다) 어쨌든 도록이 없는 덕분에 짧은 일정을 마치고 리버풀을 떠나는 기자의 가방은 너무 가벼웠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든든했다. 꽤 잘 만들어진 비엔날레를 목도했다는 훈훈한 기분과 함께 말이다.

그곳의 주인은 누구인가?

최원준 <방어선#4 의정부> 디지털 라이트젯 프린트 120×169cm 2007

그곳의 주인은 누구인가?

글|신 수 진

인간이 만든 거대한 구조물, 그에 질세라 참으로 거대하게 제작된 사진들. <토마스 스트루스>전과 <xyZ City>전에서 소재로 등장하는 대상은 도시나 공장 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 조형물이지만, 사진에 담긴 모습은 유난히 압도적으로 보인다. 늘 지나다니는 아파트 숲을 찍은 작품 앞에서 ‘저곳이 내가 알던 바로 그 서울의 모습인가’하는 당혹감이 드는 건, 그러한 작품들이 단순히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기계의 시각을 벗어나서 작가의 강한 정치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냉정하고 무덤덤하게 중립을 지키고 있는 듯하지만, 카메라의 저편에선 인간이 만들어 낸 웅장함에 대한 촘촘한 의심의 눈초리와 묵직한 비판의 목소리가 뻗어 나온다. 그들이 선택한 사진이라는 도구는 현실을 가두는 틀이 아니라 현실을 다시 보게 만들고 새로운 현실을 믿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우리가 현실에서 미처 직면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수면 위로 떠올린다. 두 전시에 소개된 사진은 급격한 경제 성장이 만들어낸 역동성과 변덕스러움의 이면, 모든 기회와 자본이 집중되는 도시의 영광과 허욕,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인간이 자연 또는 인공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끼는 방식 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토마스 스트루스>전과 <xyZ City>전은 한국의 공간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는 만큼 한국적 경제 성장과 도시의 형성, 삶의 기반에 대한 고찰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분명하게 밝히기 어려운 현재 진행형의 도시 환경 구성 방식에 대해 찬찬히 들여다 보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두 전시는 사진이 스펙터클을 구성하는 전략, 즉 현실의 한 측면을 강력하게 부각시키는 구체적인 방법과 그러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국내 감상자들의 반응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의 기회를 제공한다.

명백함과 모호함의 사이

토마스 스트루스, 그 이름에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오늘날 한국의 젊은 사진가들이 가장 닮고 싶은 모델이기도 한 그의 이번 전시는 2007년부터 3년간 세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 부산 울산 등 대도시, 그리고 종교적이거나 문화적 특성이 강한 지역들을 탐방하면서 촬영한 자연과 인공의 풍경으로 구성되었다. 살아 있는 거장으로 추앙받는 그가 본 우리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 사진 속 어딘가에 우리가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토마스 스트루스의 작업이 지닌 근본적인 질문은 사회적 현상(혹은 구조)이 개별적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1960년대 베허 부부의 새로운 다큐멘터리로서의 사진이 사회 현상에 대한 객관적 기록자의 관점을 엄격하게 유지하던 것에 비해, 그의 작품은 규칙적인 배열과 형식의 반복을 과감하게 벗어남으로써 작가와 감상자의 주관적 개입의 여지를 열어 뒀다. 자연 풍경과 기계, 건축적 구조물을 자유롭게 넘나 드는 이번 전시작들은 그가 받은 유산과 스스로 개척한 영역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질주하는 기술 산업이 만들어 낸 인공의 풍경 속에 그것을 만들어 낸 주인공은 사라지고 없다. 언어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함과 웅장함을 즉각적으로 받아 들이게 만드는 그의 사진의 시각적 힘은 시점과 프레이밍으로부터 비롯된다. 눈높이를 벗어난 가상의 시점은 카메라 무브먼트가 가능한 대형 포맷의 특성인데, 아무리 높은 건축물을 촬영하더라도 아래에서 바짝 올려다본 시선이 아닌 마치 공중에 떠서 보는 듯한 시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사진이 주는 교시적 인상은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그의 사진에는 근경과 원경, 중앙과 주변이 모두 담겨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만의 사진틀 안에 들어간 대상이 유기적으로 잘 짜인 구성체로 보이는 이유이다. 이러한 프레이밍은 거제도의 조선소와 동해안의 철책선, 서울의 삼성아파트와 설악산 봉우리 등 복잡한 구조물과 자연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장면은 단순하게 정돈된 듯하지만 멈출 수 없는 시선의 흐름을 유도한다. 근경은 원경으로, 주변은 중앙으로 연결되어 우리의 시선을 끊임없이 배회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토마스 스트루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의 내용보다 더 명백한 것은 질문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좌)토마스 스트루스 <삼성아파트, 서울> C-프린트 178.5×222.8cm 2007
우)토마스 스트루스 <북서동, 평양> C-프린트 158×207.6cm 2007
포커스03: 토마스 스트루스 <건선거, DSME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거제도> C-프린트 218.8×272.5cm 2007

‘공간 속의 공간 속의’ 공간

<xyZ City>전은 14명의 한국 작가들이 찍은 작품들을 엮어서 탁월한 이야기꾼인 이영준의 음색으로 갈무리된 전시이다. 그 자신이 기획자의 글에서 밝힌 바대로 ‘사진으로 담아 내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도시’를 기록한 작품들을 통해서 그는 도시를 만들어 가는 가장 강력한 동인인 상승에 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대면토록 한다. 지표면으로부터 멀리, 더 높이 오르려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위압적인 Z축을 1970년대부터 현재를 관통하는 연속체로 파악하고, 그것을 다루는 다양한 작가들의 시각을 망라한 것이다. 인간의 시각은 경이롭다. 지표면에 가까운 눈높이에서 시작해서 헬기를 타고 올라가고, 그것도 부족해서 인공위성을 띄워 우리의 눈을 끌어 올린 후 높아진 거대 도시를 가두는 일에까지 성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수만 갈래이다. 우리는 이 도시를 만든 장본인이고, 이 도시에 대한 애증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동시에 처참한 혹평을 퍼붓는 매정한 비평가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매력적이면서도 끔찍한 도시’를 사유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 전시가 열리고 있는 장소는 대규모 쇼핑몰과 생활문화시설이 밀집해 있는 복합건물인데, 지금은 35m높이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하고 국내 최고이자 최대 시설임을 광고하고 있다. 전시장의 규모만 해도 상상을 뛰어 넘는 어마어마한 면적과 층고로 조성되어 있어서 문화 혹은 예술이 어떻게 소비와 손을 맞잡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작품은 대부분 가까이서 들여다 보기가 불가능한 크기로 제작되어 있기도 하지만, 애초에 이런 공간에서 여유롭게 산책하는 보폭을 유지하며 평정심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거대한 공간 속의 거대한 사진은 거대한 공간을 가두고 있다. 원 투 스트레이트에 연이어 날아오는 어퍼컷처럼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현란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전시는 과잉의 도시를 과잉 상태로 체험시킨다.

발언과 청취의 무게 중심

<토마스 스투르스>전과 <xyZ City>전은 분명 흥미로운 대비를 지니고 있다. ‘스타 작가의 개인전과 경력이 다양한 작가들의 단체전’이라는 외형은 ‘독일 작가가 찍은 한국과 한국인이 찍은 한국’이라는 차이만큼이나 진부한 것이어서 오히려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는 카메라를 든 사람이 보려고 한 바와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한 바가 어떻게 일치 혹은 배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토마스 스트루스는 자신이 취해 온 방법에 있어 일관성을 취하고 대상을 바꿈으로써 일정한 발언의 톤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구의 시장 경제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시아의 변화하는 사회적 풍경을 담아 온 그의 최근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전시를 바라 보면, 그가 추출해 낸 한국의 대표적 풍경 속에 과연 한국인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다소 덧없이 느껴진다. 이에 비해 <xyZ City>전에서 관객의 체험은 밀도 높은 자극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게 맞춤 제작된 듯 강하고 다채롭다. 전시 자체가 청취의 경험을 극대화하는 정교한 장치인 것이다. 이 두 전시를 보고 나서, 거기에 왜 내가 없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다. 발언과 청취의 무게중심은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지점에 있으니까.

Gabriel Orozco

퐁피두센터 전시 전경 ⓒCentre Pompidou, P. Migeat

Gabriel Orozco
우리 시대의 동키호테

글|전영백·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나는 시장(Market)에 반대하지 않았다. 나는 시장을 이해하기를 원했다. 나는 오브제에 대해서도 반(反)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왜 우리가 오브제를 만드는가를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그림그리기를 멈췄을 때도 그림 자체에 대해 반(反)한 것이 아니다. 내가 반대한 것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는데 나는 그게 무척 지루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명성과 기대, 그리고 엇갈림

파리의 퐁피두센터 정면에는 벌써 2달 넘도록 옅은 푸른색의 구식 자동차 포스터가 붙어 있다. 세계적인 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1962~ )의 회고전을 알리는 포스터이다. 그의 대표작인 〈La DS〉(1993)의 사진인데, 반짝이는 은색의 이 유명한 씨트로엔 자동차는 그가 파리 근교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변형시킨 것이다. 그는 이 프랑스 차를 길게 3등분한 다음, 중간 부분을 없애고 재조합하였다.      
멕시코 작가인 오로즈코는 현재 뉴욕, 멕시코, 그리고 파리에서 체류하며 작업하고 있다. 그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 세대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개념미술가이자 설치미술가라고 불린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1996년 뉴욕 휘트니비엔날레, 1997년 카셀도큐멘타, 2000년대 베니스비엔날레 등 국제 무대에서 주목 받았다. 그의 작가 이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는 역시 1993년 뉴욕MoMa에서의 개인전이었는데, 이 전시로 그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작년에 MoMA에서 ‘Gabriel Orozco’라는 제목으로 다시 전시를 가졌으니 개인적 감회가 컸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는 이제 겨우 48세이다. 요즘 시대에 그처럼 일찍부터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런데, 이런 그의 명성을 모르고 간 관객은, 혹은 알고 갔다손 치더라도, 파리 퐁피두센터 전시에 대해 실망하기가 일쑤이다. 아니면 ‘도대체 모르겠다’는 표정이거나. 다른 오로즈코의 전시가 보통 그렇듯이 그는 대체로 관객에게 ‘실망감’ 혹은 ‘배신감’을 안겨 준다. 명성을 모르고 간 경우라면, 이 작가가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작가들 중 하나라고 그에게 말해 보라. 그러면, 그는 분명 두 번 놀랄 것이다. 그런데 오로즈코가 우리에게 안겨 주는 실망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체로 그것은 우리가 보통 전시와 미술관, 그리고 예술 작품에 대해 기대하는 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퐁피두 전시가 파격적인 것은 특히 그 전시 방식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전시의 방식에 대한 일반적 기대와 이를 져버린 오로즈코의 기획이다. 요컨대 우리가 완성된 미술 전시장을 기대하고 전시를 보러 간다면, 작가는 과정 중의 작업실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우선, 전시를 보는 우리의 기대를 점검해 보자.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관객은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 여러 방이나 분리된 공간에 작품이 나누어 전시돼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 전시 공간을 따라 가면서 기획의 의도를 확인하고 연대기적 순서 또한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행 퐁피두 전시는 그러한 공간의 분리가 없이, 하나의 커다란 전시 공간이 있을 뿐이다. 요컨대 분리벽이 없는 전시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한 통으로 된 전시장은 외부에서 그대로 들여다 보게 돼 있다. 외부와 전시 공간이 쇼윈도처럼 유리로만 분리되어 있으니, 사람들이 이러저리 들여다 볼 수 밖에. 그래서 전시를 보고 있으면, 길 쪽으로 난 문으로(입장료도 안 내고!)그대로 들어 오려는 사람들을 하루에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은 문이 잠긴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 돌아 정문으로 들어오거나 그냥 돌아간다.
또한 전시장에는 작품에 대한 설명표(레이블)도 없다. 이것은 작품의 시기와 이름, 제목을 확인해야 지적 만족감을 느끼는 관객에게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전시장에 진열된 작품의 디테일을 종이 안내표로 확인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작품의 진열 방식도 시장 바닥에 물건을 펼쳐놓은 것처럼 그냥 늘어 놓은 식이다. 바닥에 놓인 작품 중에는 베니스비엔날레(1993년)에서 논란이 됐던 빈 신발상자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천정에 매단 작업 중엔 화장실 환풍기가 있는데, 화장지가 길게 늘어진 채 그 천정의 팬에서 계속 돌고 있다.
그리고 나면, 전시장 한 가운데 작가의 작업 테이블을 볼 수 있다. 그 테이블에는 그의 10년 동안의 입체 실험을 보여 주는 우연히 발견된 오브제와 작은 조각들, 재료들이 널려 있다. 이번 전시에는 멕시코 사막에서 작가가 모은 식물을 근거로 만든 최근의 작은 조각들을 볼 수 있다. 사실 그리 특별한 작품들이라 말할 수는 없고, 서로 연관성도 찾기 힘들다. 미술 작품이라기보다, 인류학자의 연구 대상물이나 고고학자의 발굴품과 같다는 인상이 짙다. 그런데 그 테이블 위에 놓인 조각이나 오브제가 작은 것이 많으므로 그 디테일을 확인하기 위해 관객들은 자연히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그 때 또 하나의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2명의 멕시코 경잘관이 요란하게 호각을 불어대며 “가까이 가지 마세요”라고 큰 소리를 지른다. 그리곤 그것도 부족한지 깜짝 놀란 관객에게 다가가서는 바닥에 그어진 선을 지적하며 그것을 넘으면 안된다고 설명한다. 상당히 불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뭐 볼 게 있다고 이렇게 유난을 떠나?” 그리곤 도대체 이 권위적인 미술 체제에 대해 울컥하는 반감을 갖게 될 수 밖에. 그리고는 계속 그 선을 의식하며 그다지 멋지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물건’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니! 이런 관객의 불편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마련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감정이 반전된다. 말하자면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는데, 멕시코 경찰 복장의 배우가 작가의 지시대로 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관객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데, 당한 그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작가 권위를 세우려는 게 아니고 권위를 조롱하고 도전한 것이기에 말이다. 사실인 즉, 미술관 측에서 보안상의 이유로 검은 선을 고집해서 작가는 하는 수 없이 수락할 수 밖에 없었고, 대신 가짜 멕시코 경찰로 하여금 작업을 ‘돌보게’했던 것이다.    
오로즈코의 이 회고전은 지난해 뉴욕 MoMA를 시작으로 올해 여름 스위스 바젤쿤스트뮤지엄을 거쳐 현재 퐁피두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순회 회고전은 내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에서의 전시로 마무리된다. 자신의 회고전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건 마치 과학자가 그의 실험을 살펴 보면서 무엇이 제대로 작용했고 무엇이 아닌가를 보는 것처럼. 그리고 나서는 물론, 잊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그 망각에 아주 능숙하다.” 그다운 말이다.

〈Working table(Desert Samples)〉 혼합재료 400×400cm 2010 부분 ⓒGabriel Orozco

오로즈코의 지정학적 위치

오로즈코는 1962년 멕시코 베라크루즈주의 할라파에서 태어났다. 좌파 성향의 벽화 작가이며 교육자였던 부친을 둔 그는 멕시코시티 국립미술대를 졸업한 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공부했다. 이후 브라질, 뉴욕에서 살았고 여러 도시를 경험하며 국제 문화를 흡수해 왔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얼마나 다양한 미술 경향을 활용하여 자신의 작업을 만들어 내는지 알 수 있다. 일상의 오브제를 그대로 활용하는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신체를 직접 개입시키는 행위 예술, 장소 특정적 미술, 대지미술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980년대 미술시장을 부풀게 했던 크고 값비싼 회화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는 케이지(John Cage), 보이스(Joseph Beuys), 만죠니(Piero Manzoni), 그리고 브라질의 개념주의자인 마이렐레스(Cildo Meireles)와 클락(Lygia Clark) 등과 같이 개념에 치중하거나 다다적 경향을 지닌 선배 작가들의 작업에 매료되었다.
오로즈코는 매체와 양식에 국한되지 않고 기본적으로 즉흥적 작업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는 개인의 기벽을 미적인 자산으로 만들었다. 작업실(스튜디오)이 그를 조급하게 만들기에 그는 그것을 없앤 채 작업을 한다. 대신 그는 방황하며, 임시로 체류하고, 자신이 있는 곳에서 찾은 것들로부터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가들은 보통 작업실에 매이고 그 공간에 의해 작업을 제약당하는데, 그는 그 규제를 스스로 벗어나 버린 셈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렇게 자유로운 것을! 오늘날 미술계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 바로 이런 대담한 행동력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 자체가 아니고 이러한 자유분방한 작업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로즈코를 소위 ‘포스트스튜디오(Post Studio)’ 작업의 선구자로서 간주한다. 아틀리에의 부담과 제약을 피해 장소 특정적이고 손에 든 재료에 의존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오로즈코의 작업에서 관객은 우연과 부조리를 대면하는데, 그는 제약 없는 상상력과 함께 이러한 상황을  수용하는 관객의 반응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그의 경우 관객과의 소통은 기대에 대한 실망과 개념적 도전 등 부정적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위해 서울에 간 작가는 “인간은 여러 이유로 실재로부터 소외된 채 살고 있다”면서 “작가가 실재를 드러내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재와 닿을 수 없다면 인생은 덧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다. 그러나 한 가지 귀뜸해 드릴 말씀, 그의 작업에서 그렇게 심각한 것을 바라지는 말지어다. 분명히 당할 테니. 작가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감명 받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기대를 져버리기를 원한다”라고.

시대적 요구에 맞물린 오로즈코의 명성

1993년 MoMA에서 열렸던 오로즈코의 국제 무대 데뷔전 또한 여러 관객들이 ‘당한’ 경우였다. 그 전시는 매우 ‘MoMA 답지 않은’ 전시였다. 미술관 체제의 주류에 있는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오로즈코의 작업은 무척 반체제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해에 마리안굿맨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는데 이는 더 충격적이었다. 그는 벽에 다농 요거트 뚜껑을(그것의 가장자리를 파랗게 칠해서) 벽에 못박아 두었다. 그게 전부였다. 1993년 MoMA 전시에 소개했던 작품 중에는 부드러운 점토 공을 맨해튼 거리에 돌려 먼지와 때로 검게 만들어 버린 사진이 있다. 그는 또한 MoMA의 조각 정원에 그물로 짠 그네를 걸어 놓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는 미술관 밖 거리의 아파트 창문들에 오렌지를 매달아 놓도록 하여, 미술관 안에서 눈을 돌려 밖을 보면 그 오렌지들이 밝은 점으로 보이게 했다. 이런 파격적인 설정으로 관객은 삶과 예술이 연계되는 시각적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듯 오로즈코의 ‘별난’ 전시가 열리고 또 성공을 거둔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시기적으로 이 때는 주식 시장이 바닥을 치고 더불어 미술시장도 함께 추락한지 몇 년 후였다. 1980년대 미술 시장의 붐이 추락한 후의 시점에서 미술계에서는 물질주의에 대한 혐오, 말하자면 비싸고 기념비적으로 보이는 미술에 대한 반발심이 팽배해 있었다. 다수의 젊은 작가들이 그와는 반대 방향을 추구했고, 이것이 ‘외국에서 온 젊은 반항자’ 오로즈코가 부상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더불어, 10년 전 끓어 올랐던 ‘정체성 정책(Identity Policy)’이 다시 부상되던 차에, MoMA에서 젊은 멕시코 작가 오로즈코가 전시를 연다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사건으로 받아 들여졌다. 자신이 ‘1980년대 데카당스’라고 부른 것에 대항하여 행동했던 이 젊은 반항자는 스스로의 작업을 ‘절제’를 기치로 삼아 대담하고 실험적인 작업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작업의 절제에 대해, 시각적 빈약함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오로즈코의 회고전을 기획한 MoMA 수석큐레이터 탬킨(Ann Temkin)은 오로즈코가 작품에 노력을 들이지 않는 방식이 그 당시 상당한 마력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이 공을 들이지 않고 그저 던져 놓는 식이라는 점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체스 탁구 당구 등 게임에 대한 ‘광택 나는 다다적 작품’뿐 아니라 쓰레기통에서 영감 받은 작업도 제작했는데, 당시에 이런 류의 작업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미술과 사회의 밀접한 관계를 오로즈코의 경우에도 확인할 수 있다.
키멀만(Michael Kimmelman)은 1998년에 쓰기를, 자신도 처음에는 오로즈코의 작업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관객에게 근본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로즈코의 〈La DS〉는 자동차의 잘려나간 공간에 집중하게 하고, 요거트 뚜껑의 설치 작업은 갤러리의 공허함을 불편하게 깨닫게 하는 효과를 내도록 계산된 것이라 해석하였다. 그는 “그 설치작품은 우리가 보기를 기대하거나 희망한 것과 우리가 실제로 본 것 사이의 심리적 간극에 대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좌)〈La DS〉 개조한 시트로엔DS 140.1×482.5×115.1cm 1993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 Ministe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Paris Courtesy Galerie Chantal Crousel 퐁피두센터 전시작
 우)〈Four Bicycles(There is always one direction)〉 자전거 198.1×223.5×223.5cm 1994 ⓒGabriel Orozco 퐁피두센터 전시작

오로즈코의 ‘반-미학적 미학’

오로즈코의 작업은 도시 풍경과 인간 신체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채워져 있다. 또한 친숙한 일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 그의 작업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 우연과 역설의 시학이 개입된다. 예술 오브제와 일상의 환경 사이의 경계는 의도적으로 흐려지고, 예술과 리얼리티는 종합된다. 운동 확장 순환 그리고 유기적인 것과 기하학적 요소의 연계가 지난 20여 년 간 그가 지속해 온 주제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우연성’과 ‘비움’을 꼽는다. 우리의 삶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언제나 발생하고 모든 것은 계속 변화하므로, 그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지식 구조와 이런 구조를 스치는 우연적인 일들을 결합하는 시도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정 스타일을 따라가면 나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며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지 않는 나에게 스타일을 말하라면 우연성이라고 답하겠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종종 거리에서 발견한 오브제나 재료로 작업한다. 그리고 1990년대 초에 찍은 사진 작업 또한 우연의 요소를 잘 보여 준다. 이는 작가가 도시 공간을 걸어 다니며 마주친 것을 단순히 스냅샷으로 찍은 것이거나, 우연히 발견한 오브제를 시적 형태나 유머러스한 조합으로 만든 것을 기록한 사진들이다.
오로즈코의 작업 중에는 서두에서 언급한 시트로엔 자동차 〈La DS〉와 같이, 관습적인 일상의 공간을 축소하여 그 변형된 기능에 의해 대상이 제약받도록 하는 작업이 돋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오브제의 본래 기능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 기능을 변용하면서 재해석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언제나 한 방향이다〉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4대의 자전거를 조합하여 하나의 구조물로 만든 것이다. 이는 그 부동성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야기하는 작업으로, 이러한 작품들은 작가가 종종 활용하는 ‘추출과 재구성’의 미적 전략을 확인하게 해 준다.  
이 작가의 또 다른 전형적 작업은 기하학적 추상 회화라 할 수 있다. 그의 회화는 본래 그의 다른 매체들을 좋아하던 관객에게는 걸림돌이었다. 왜냐하면 작가 초기 작업에서 추구한 ‘형태에 대한 배제’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객의 반응에 상관없이 그의 회화는 템페라와 금도금으로 기하학적 구성을 보인다. 때로 사진 이미지에 도형을 그려 넣어 공간과 운동의 관계에 새로운 해석을 하기도 한다. 초기 모더니즘의 몬드리안이나 바우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작업들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를 조각가, 사진가, 혹은 화가 등 딱히 하나로 규명할 수 없다. 이것은 요즈음에 가장 보편적인 작가의 조건일지도 모르겠다. 오로즈코 스스로 그 자신이 범주화되거나 명확히 규명되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은  예상했던 바이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단정적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조각과 사진은 리얼리티에 대한 관습적 개념을 방해하고 그것을 깬다.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게임, 감춰진 기하학에 우리의 관심을 끌어 들이면서 일상적 삶의 놀라운 측면들을 들춰 낸다. 그가 사용하는 검소한 재료와 방식은 그 단순함과 친밀성을 통해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많은 비평가들은 입을 모아 오로즈코의 지적, 개념적 창의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일상에서 우주를 찾아 내고, 지혜와 위트로 추하고 혐오스런 것을 사탕발림하기도 한다. 이 작가는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시적인 거부’를 계속한다. 그의 작업에서 예술은 비 예술이고, 디자인은 비기능적이며, 일상은 초현실로 만들어진다. 오로즈코의 작업은 한마디로 뻔뻔스런 농담이다. 그 이상도 아닌 것. 그러나 무척이나 영리한 제스처이다.
시트론 자동차 포스터를 뒤로하고 퐁피두를 떠나올 때, 어쩌면 저 독특한 구조물이 오로즈코를 대변해 준다고 느꼈다. 광택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설프고 엉뚱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이 시대의 ‘동키호테’, 바로 가브리엘 오로즈코이다.

이미지의 표정과 의미의 발현

김소라 <don’t ask me why> 나무, 페인트, 오디오 사운드 2010

이미지의 표정과 의미의 발현

글|김백균·중앙대 교수

올 가을 국내의 몇몇 작가들의 작업을 보면서 예술과 철학의 해묵은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이상하게도 작가들의 관심과 표현이 내가 이해하는 예술과 조금씩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다. 만나는 작가마다 매우 논리적 언어를 구사했고, 자신의 철학에 대해 말했으며, 작업 역시 분명한 개념으로 정리되어 설명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철학으로 작품에 대해 분명히 설명할수록 내 머리는 혼란으로 가득 찼고 작품은 알 수 없는 기괴한 것으로 변해 갔다. 예술이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예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비평은 가치를 판단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평가의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의 비평 척도 자체가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술 비평에서 그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결국 예술이 무엇인지 물을 수밖에 없다. 학문과 마찬가지로 예술 역시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소통 방식의 일종이라면 그 가치는 소통하려는 내용에 있을 것이며, 그 내용 즉 예술의 근원적 가치의 발생은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이해와 반성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술이 삶에 대한 이해와 반성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예술 역시 사유의 한 방식이다. 다만 그 사유의 방식과 운용의 방법이 학문과 다를 뿐이다.
예술은 이미지로 사유하고 철학은 텍스트로 사유한다. 예술은 이미지의 유사성과 감각의 환기를 통해 의미의 영역에 가 닿으며, 철학은 개념의 분석을 통해 구분과 질서의 세계를 재구성한다. 예술과 철학은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시선이며 서로 다른 표현 방법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는 ‘철학하는 예술(Philosophizing Art)’이라는 용어는 매우 낯설게 들린다. 아서 단토에 의해 처음 사용된 이 말은 미술이 모방이나 재현이 아닌 개념을 다루기 시작함으로써 사유하기 시작했고, 그 사유는 철학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는 “당신이 예술이 무엇인지 알려고 한다면 감각 경험으로부터 사고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철학으로 향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단토의 말은 예술의 가치가 형식이 아닌 삶에 대한 사유에서 나온다는 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술의 영역이 철학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아니며 혼용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예술 역시 그 탄생의 순간에서부터 삶의 근원에 대한 반성을 다루어 왔고 사유해 왔다. 사유하기 때문에 예술이 철학의 영역으로 들어온다면 이는 예술과 철학 모두에 대한 오해에 기인하며, 오랜 역사를 거쳐 분리된 두 영역에 대한 의의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행위이다. 철학과 예술은 서로 닮아 갈 것이 아니라, 예술이 더욱 예술다움을 발휘하고 철학이 더욱 철학다운 성격을 지닐 때 우리는 예술과 철학을 통하여 삶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단토가 보지 못한 것은 감각 경험 자체가 사유라는 사실이다. 하워드 가드너가 다중지능이론을 제기하는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다.

표정 없는 화면에서 단서 찾기

정수진의 <현시(現視)>전(9. 2~29 두산갤러리)을 보면서 생각이 지배하는 미술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 전시를 보면서 내내 곤혹스러웠던 것은 작품에 표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작품에는 연관성을 찾기 힘든 사물들이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허공에 떠 있었다. 모든 이미지는 모두 부분적이며 단절되어 있었다. 무작위로 혹은 자의적으로 펼쳐져 있는 사물들은 그 사물들 간의 유사성을 유추할 수 있는 어떠한 표정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인물이든 사물이든 작품 안의 모든 이미지가 무표정하게 보였다. 심지어 표정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화면의 <배우>조차도 표정이 없었다.
무표정 역시 하나의 표정이라고 한다면 작품이 무표정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작품에서 꼭 표정을 제거해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드러난다고 한다면, ‘표정 없음’이 하나의 표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단서가 될 만한 표정을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무언가 의미를 발견하고자 끊임없이 전시장을 배회하며 시선을 떼지 못한 까닭은 작가가 그 무표정한 작품을 너무나 열심히 그렸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무언가에 열중할 수 있다면 어떠한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평소 나의 소신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그의 생각의 단서를 설명해 준 평문을 읽고 나서야 작가가 왜 그렇게 열심히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현시(現視)>라는 제목부터 한자를 새롭게 조어하여 난해한 것이었지만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사물을 선입견이나 관념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보기를 원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작가는 작품에 어떠한 의도도 넣지 않는다. 작품에는 작가가 의식적으로 의도하는 지점도 없고, 따라서 관객도 어떠한 의미를 작품에서 읽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관습적으로 알고 있던 어떠한 사물에 대한 생각이 무너지고,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이미지들은 단순히 색과 형태라는 조형적 요소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즉 A라는 대상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작품에 그려진 A라는 대상은 A라는 대상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가 작품을 통해 보고 있는 대상은 A를 그린 그림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A라는 대상을 그린 이미지를 보면서 A를 연상하는데, 그 연상의 고리를 끊고 A라는 대상을 구성하는 색과 형상만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작가는 대상 A와 대상 A를 그린 형상 A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기호와 상징으로 이해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이는 원래의 세계로 되돌리자고 말한다. 예를 들면 캔버스에 그려진 어떤 배우를 실제 배우와 동일시하는 선입견을 배제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마치 개념과 대상 사이에는 차이가 있으므로 백마는 말이 아니라는 전국시대 조나라의 그 유명한 공손룡의 궤변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또는 불가의 선문답처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세계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러한 점을 십분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뿐이라면 왜 그림으로 그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직시나 생각의 발상 전환을 다루는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철학적 명제들을 통하여 많이 들어 왔다. 그 이야기가 왜 또 다시 그림을 통하여 말해져야 하는가? 또 다른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을 논리적 구조로 말한다면 매우 명쾌해질 수 있는데, 그림으로 보여 줄 때 작가가 말하는 문제 의식이 그림으로 어느 정도까지 전달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그런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면 작품 안에서 다른 의미가 연상되지 않도록 하는 어떠한 차단 장치가 제시되어야 함부로 날뛰는 우리의 상상을 제어하고 작가가 유도한 생각을 따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각도인서: 조각가 김종영의 서예>전(2009. 8. 21~10. 8, 김종영미술관) 전시 장면

이미지의 감각을 일깨우는 표정

예술이 대상으로 삼는 것이 개념일 수도 있고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한 작업을 우리는 개념미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개념미술이 다루는 개념이 개념을 생성하고 개념을 통해 세계의 질서를 재구성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철학이 될 것이다. 비록 그 표현수단이 일상 언어가 아닌 도상일지라도 그 도상 역시 언어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이미지를 다룬다는 것은 감각을 환기시킨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떠한 도상이 언어가 아니라 이미지가 된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몸이 지닌 감각을 일깨운다는 것이다. 개념미술이 예술의 영역에서 이해될 수 있는 까닭은 개념을 통해 몸이 지닌 감각을 일깨우는 이미지의 작용에 있다. 개념미술은 개념을 통해 감각을 일깨우고 삶의 어떤 의미를 반성하는 영역에서만 예술이 된다.
서예를 예로 들어 이미지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 서예가 다루는 대상은 글씨다. 글씨는 개념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나 서예를 철학이 아닌 예술의 영역에서 다루는 까닭은 글자의 개념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육화된 글씨가 드러내는 감각의 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글자가 지닌 표정을 통해 드러난다. ‘애(愛)’라는 글자를 단지 텍스트(기호)로만 보면 그 사랑의 종류와 정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서예는 선의 강약과 장단, 건습을 통하여 글자에 표정을 더하는 작업이다. 또 ‘사랑해’라는 말이 텍스트로 쓰여 있고, 그 말이 나온 전후좌우의 사정을 모른다면 우리는 그 사랑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그 사랑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심지어는 반어문인지 긍정문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말로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이 음성을 통해 발출되어 나온다면 우리는 음색과 톤, 그리고 음의 고저장단을 통해 그리고 분위기를 통해 연인 간의 사랑의 밀어인지,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의 표출인지, 반어문인지 긍정문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을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해 보자. 앞뒤 정황이 특정 인물의 표정으로 제시된다면 번잡한 설명이 없어도 ‘사랑해’라는 말 한 마디가 담고 있는 수 없이 많은 의미가 전달될 것이다. 이 때 ‘사랑해’라는 말은 시어처럼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사랑해’라는 말은 마치 서예의 시각화된 선의 강약과 장단, 건습이 어떠한 느낌을 전달해 주듯이 음색과 톤, 그리고 고저 장단으로 청각을 자극하며 어떠한 느낌을 생성한다. 이것이 표정이다. 이미지는 언제나 표정을 통해 드러나며, 감각을 환기시킨다. 이미지에 표정이 없다는 것은 나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나의 감각을 통해 드러나는 인식은 언제나 경험에 의한 표정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정이 없는 상징은 개념으로만 처리된다. 의미에서 내가 빠지고 순수한 논리 공간만 남게 되는 것이다.
예술 창조가 어려운 것은 예술이 단지 감각을 환기시키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술이란 이렇게 감각으로 환기된 감성이 어떤 삶의 의미에 가 닿아야 한다. 삶의 의미가 인간의 보편적 감각과 그 감각을 통해 표출된 형식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감각만 드러나고, 삶이란 이런 것이라는 삶의 궁극적 의미가 창출되지 않으면 디자인과 구분되지 않는다.
정수진의 작업을 보면서 느끼는 답답함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작가가 찾아 가려는 순수한 색과 형상만의 질서가 있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모든 존재가 물리적 법칙을 벗어날 수 없으니 색에도 질서가 있을 수도 있다. 또 아프리카 초원에 뛰노는 얼룩말의 그 정교한 줄무늬조차 어떠한 질서 체계에 의해 만들어진다니 형상에도 어떤 질서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세계를 찾은들, 그것이 예술과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만일 그 세계를 찾는다하더라도 그것은 과학의 세계이지 예술과는 무관하다. 정수진의 작업이 그 스스로 말한 것처럼 어떠한 색과 형상의 법칙을 찾아가는 연습장 같은 것이라면, 그것을 보며 수 없는 의미를 부여했던 평론가들의 비평이 마치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고 노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로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미없는 몸짓에 그친 메시지

<김소라>전(10. 10~12. 5, 아뜰리에에르메스)은 <이겸삼 씨의 여름휴가> <캐피털플러스 신용금고> 같이 특정한 상황을 연출하던 이전과는 다른 작업을 선보였다. 베니스비엔날레, 요코하마트리엔날레 등 국제 현대미술 현장에서 주목을 받아 왔던 김소라의 이번 전시는 제목조차 없다. 전시장 안에는 나무 합판으로 만든, 제각기 서거나 누워 있는 거대한 숫자 조각들이 랜덤으로 서 있고 숫자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잡음처럼 들려 왔으며, 그 사이에는 전선들이 어지럽게 배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don’t ask me why>라고 말한다. 왜냐고 묻지 마세요, 작품의 제목이다. 일반적으로 제목이 없거나 왜냐고 묻지 말라는 말 속에는 이중의 트릭이 숨어 있다. (제목이 없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제목이 되는 경우와 아예 제목이 없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고 묻지 말라고 말하는 경우도 어떠한 의도는 있지만 왜 그런지 그 까닭을 논리적인 언설로 설명할 수 없으니 묻지 말라는 의미가 있을 수 있고 또는 정말로 어떠한 의도도 전혀 없는 경우의 수가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의도된 없음으로 그 없음 자체가 하나의 의미 체계를 형성한다. 같은 의미로 왜냐고 묻지 말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장치로 작용하여 작품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는 것이다.
김소라의 이번 전시의 경우 의도된 ‘없음’과 의도된 ‘묻지마’를 제시하는 혐의가 짙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품 안에서 그와 연관된 어떠한 의미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음에 당혹스러웠다. 물론 나의 당혹은 작가가 안배한 당혹은 아니다. 관객이 작품 이해를 위해 최소한의 단서를 찾아 보고자 리플릿 조각을 꺼내 들고 작품의 번호를 대조해 가며 제목을 확인하고자 하였을 때, 작가가 의도적으로 노렸을 ‘묻지마’라는 불친절함이 주는 당혹을 관객에게 새로운 심미적 경험을 던져 주는 것이라고 여겼다면 이러한 허무 개그식의 의식 전환은 이미 너무 많은 예술가가 써 먹은 닳고 닳은 수법이어서 새로울 것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당혹은 작가가 숫자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본을 본다는 마치 도통한 도사 같은 제스처의 그 뻔뻔함과 존재란 모든 데이터들의 집합이며, 이 데이터들은 숫자로 환원된다는 그 단순한 생각에 대한 당혹이었다. “숫자는 물질을 형성하는 최소한의 기본 단위이자 본질이며, 동시에 모든 서술적 요소, 복합적 해석, 다양한 의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질의는 피타고라스학파의 믿음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작가는 오늘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왜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가. 동문서답의 형식이 우문현답이 되려면 그러한 형식으로 나와야 하는 어떤 장치가 작품 안에 구성되어야 한다.
김소라의 숫자들을 보면서 나는 작품이 구성되는 어떠한 단서들을 찾지 못하고, 왜 이러한 작업을 해야 하는지 주체와 객체 간의 연결고리 즉 어떠한 이유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를 무병신음이라고 하지 않을까. 숫자가 물질을 형성하는 최소한의 기본 단위이자 본질이라는 것은 머리로 이해된 생활의 발견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체험되지 않음으로써 감각을 통해 이미지로 구성되지 않았다. 결국 김소라의 숫자들은 개념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인데 그 개념 역시 논리적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결여됨으로써 소통의 구조를 구축하는데 실패했다. 숫자와 숫자 사이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전선들만이 작가의 힘든 심적 상황과 고통, 혼란을 말해 주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 역시 그 의미를 뒷받침해 줄 또 다른 ‘미러 이미지’가 상정되지 않음으로 해서 넋두리에 그치고만 느낌이다. 앞뒤 정황을 잘라버리고 혼잣말을 듣는 느낌이다.
이러한 넋두리는 <Turtle Walk> 비디오 작업에서도 계속된다. 영상 속의 두 인물이 하얀 원판을 메고 언덕진 골목길을 정처 없이 배회하며 이동하는 장면을 찍은 이 영상 작업은 아마도 정신적으로 힘든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얀 원판은 관객이 자신의 심정을 투영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로 보이고, 언덕 진 골목길은 우리네 인생에 대한 비유로 읽힌다. 우리의 삶에 굴곡이 있듯이 우리는 많은 사연을 가지고 험한 인생의 길을 간다. 하얀 원판을 지고 가는 거북이 걸음 같은 배우들의 힘에 겨운 발걸음에서 삶의 무게를 느낀다. 삶은 힘들고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는 작가 자신의 고백을 듣는 듯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삶은 누구에게나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삶은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는 누구나 다 알고 체험하는 이야기를 빼고 나면 작가의 메시지는 무엇이 남을까?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절규는 노래가 아니다. 아픔에 관한 이야기가 의미의 영역에서 이야기되려면 아픔 속에서 말해지면 안 된다. 삶을 삶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삶의 또 다른 측면이 보이듯이 아픔에서 빠져나와서 아픔을 봐야 한다. 그리고 삶의 아픔뿐만이 아니라 아픔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삶의 의지와 당위가 드러나야 삶의 근원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 김소라의 작업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아픔 다음의 세계이다.
<Talking to your bones>에서도 가없는 삶의 무게를 이야기하려 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가는 뼈대로 무거운 선반을 받치고 있는 철골조. 선반 위에 종이 구두상자, 그 구두상자 위에 올려진 벽돌. 약한 종이 구조물 위에 놓인 벽돌의 무게감, 그리고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시각의 불편함. 이 모든 것들이 어떤 부조리와 심적 아픔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렇게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의 되풀이에 삶의 본질을 꿰뚫는 어떤 심미적 쾌감이 있단 말인가. 여기에 어떤 “언어가 닿지 않는 그 이상의 영역, 그러나 그 곳으로 다가가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작가의 솔직한 제스처가 반영”되는가? 까맣게 타서 쓰러져 있는 나무들과 부표 모양의 조형물, 성게 모양의 시멘트 라디오 <Lonesome George>, 3명의 배우가 번갈아 선문답 읊조리는 <2nd move ment> 모두 의미 없는 몸짓으로 보였다.

이창원 <Aphrodite_Goddess of Love> 카카오가루로 그린 망점 이미지의 반사 170×100×8.5cm (부분) 2008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조건들

바로 이러한 의미 없는 몸짓이 이 전시가 노린 개념과 이미지의 대비였다면, 아니면 개념으로 개념의 틀조차 해체하여 기존 우리의 관념이 불완전한 인식 위에 서 있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해체해야 하는 문맥상의 필연이 형식으로 제시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혹은 모든 단서들을 제거해서 서사적 의미를 차단하고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을 관객의 몫으로 남기겠다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것을 관객의 몫으로 돌려야 하는 의미가 형식으로 드러나야만 한다. 어두컴컴한 새벽 바닷가에서 다투는 장면을 담은 <Daybreak>는 낭만적 영상이 “거친 파도소리와 함께 동트는 바다의 풍경이 아주 천천히 변화하여 우주적인 시간성”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이런 비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러한 김소라의 작업은 마치 이창원의 <Reflec tion>과 같은 작업을 연상시킨다. 블라인드처럼 겹쳐 놓은 나무 패널 위에 찻잎이나 커피를 얹혀서 설치 작업으로 어떤 형상들을 만들고, 그 찻잎이나 커피가 거대 기업의 자본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식민’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강변한다면 우리는 어떤 맥락에서 찻잎과 커피에 담긴 식민 논리를 그 작품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작가의 의식 속에는 개인의 경험에 의한 어떠한 의미의 맥락이 형성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개인적 이야기가 개인의 경험을 벗어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도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다른 상황 속에서 작동하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한 잔의 차와 한 잔의 커피에서 일상의 휴식을 연상할 수도 있고 연인과의 다정한 한 때를 떠올릴 수도 있다.
만약 그의 작업에서 찻잎과 커피가 식민이라는 논리로 해석되려면 좀 더 많은 식민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장치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는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내포할 수 있지만, 몇 개의 이미지가 겹치게 된다면 그 안에서 우리는 이미지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의미의 교집합을 유추할 수 있고, 그 이미지들이 지향하는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김소라의 작업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바로 이점이다. 즉 개인적 경험이 만들어 내는 아픔과 고통의 이야기가 어떠한 새로운 의미를 지향하는 형식으로 제시되지 못하는 점이다. 그 부족한 점을 어떠한 철학에 기대어 설명하려고 할 때 예술은 공허해진다.
현장 비평에 대한 부담은 아무래도 지금 활동하는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예술의 소통 부재를 말하는 것은 평론가 제리 살츠의 말처럼 예술에 대한 사랑과 작가에 대한 존중 때문이다.

2010 December Special

김범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 사진: 박명래

Curator's Choice 10X10

비엔날레 열기가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2010년, 한국 미술계는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전시가 열렸다. art는 2010년 미술계를 장식했던 복잡다단한 전시의 난맥을 앞에 두고, 그 지형을 분석 평가하는 특집을 꾸몄다. 전시 기획자 10인에게 ‘2010년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 10개’의 추천과 코멘트를 의뢰했다. 추천자 10인은 저마다의 비평적 시각으로 올해의 전시를 뽑아 주었다. 결과는 총 73개의 전시가 선정됐다. art는 추천 전시를 통해 올 한해의 전시 기상도를 읽어낸다. 그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개인전으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작가는 김범이다. 아트선재센터에서 3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일상의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뒤집는 작품을 내놓아 ‘역시 김범’이란 평을 받았다. (2)김소라 박윤영 양혜규 함양아 등 여성 작가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이들은 매체를 전방위적으로 구사하며 당대미술의 문제적 지점을 파고드는 작품을 선보였다. (3)작고 작가의 회고전으로는 한국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인 박현기와 육태진이 뽑혔다. 두 작가는 ‘한국적’ 미디어 아트의 역사에 굵은 족적을 남겼다. (4)해외작가로는 국내에 소개가 미미했던 쉬린 네샤트, 페트리샤 피치니니, 수보드 굽타, 마르코스 노박의 전시가 화제를 모았다. 스페인의 다니엘 가르시아 앙두하르의 <포스트캐피탈 아카이브 1989-2001>전은 이미지 과잉 시대에 일차적 이미지 소비자인 작가의 ‘아카이브적 충동’을 많은 자료로 보여줬다.
(5)대형 기획전으로는 미술사적 무게를 둔 학구적인 전시가 큰 주목을 받았다.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아시아 리얼리즘>전은 싱가포르국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3여 년의 준비를 거쳐 아시아 10개국의 근현대미술 대표작 103여 점을 선보였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바로셀로나현대미술관 소장품전 <언어의 그늘>은 언어를 키워드로 삼아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명한 전시였다. 미술관 수집 정책의 중요성을 상기시킨 모범적인 전시로 꼽혔다. (6)테마전으로는 전통을 재해석해 동시대미술과 믹스앤매치한 <춘추>와 <랜덤 액세스>, 작가들의 사회 문제에 대한 반응과 새로운 작품 창작 방법론을 접목한 <우회 전략> <미래의 기억들> <지휘부여 각성하라> <행복> 등이 눈길을 끌었다. <기념비적 여행>은 ‘성장’이란 집단적 욕망 뒤로 개발과 보존의 대립이 지속하는 아시아의 민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였다. (7)추천 전시를 통해 ‘서울 편중’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전, 광주, 경기 등 지역 미술관이 탄탄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알찬 전시를 꾸며 ‘지역 미술 시대’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로컬의 특성을 한껏 살리면서도 동시대적 보편성을 담보하는 주제와 작가를 선보였으며, 해외 미술관과의 다양한 교류전도 박수를 받았다. (8)작가가 정치 사회적  문제에 적극 동참하며 관객과의 소통을 모색한 프로젝트 성격의 기획전이 전국에 걸쳐 열린 점도 올해 주요 전시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박미나 <HS900> 접착비닐 가변크기 2010(왼쪽) 김민애 <Well-ordered Mop> 나무 술장식 우레탄 비디오 설치 80×120×150cm 2010(오른쪽)_<우회 전략>전 출품작

고 | 원 | 석
공간화랑 큐레이터


김범  언어와 관념 사이의 기묘한 간극을 예리하게 감지하고 생물과 사물의 정체성을 치환시킨다. 관념이 체화되는 기묘한 순간을 활용한 작품들은 이번 전시에서도 가벼운 웃음과 함께 우리의 고정관념과 오래된 지각의 체계를 교란시켰다. 5. 15~8. 1 아트선재센터

김성수_Labyrinth  재현의 대상을 철저하게 제거해 버린 그의 그림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 주고 있다. 예술은 드러나지 않은 신비의 세계에서 길을 찾아 주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길을 잃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전시 제목인 ‘미로’처럼 말이다. 5. 20~6. 9 갤러리현대 16번지

니암 오말리_Echo  정제된 형식과 명료한 구성으로 ‘밤의 정원’과 같은 보이지 않은 공간의 모습을 표현한 전시. 미디어아트의 본원적인 가능성에 자연과 풍경을 관조하는 작가의 정서를 결합한 결과물을 적절하게 보여 줬다. 2. 23~3. 27 가인갤러리

레이나우드 아우츠혼_Poetic Reality in Space  아우츠혼은 비율과 비례를 측정하는 수학적 계산과 꼼꼼한 드로잉, 면밀한 수공적 과정을 거쳐 완성한 아름다운 곡선의 작품을 통해 공간에 대한 사색과 침묵의 과정을 펼쳐 놓았다. 9. 9~10. 10 갤러리스케이프

2010 올해의 작가 박기원 ; 누가 미술관을 두려워하랴  내밀하고 모호한 감수성으로 공간의 구조에 기묘하게 틈입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던 박기원을 ‘올해의 작가’로 초대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선택은, 엄숙하고 무거운 미술관의 건물 중앙홀을 완벽하게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시킨 전시를 통해서 좋은 결정이었음이 입증되었다. 4. 6~5. 30 국립현대미술관

육태진  차가운 무엇이거나 낯설기만 한 것으로 여겨졌던 미디어아트에 우주를 관조하는 깊은 성찰의 결과를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형식으로 담아냈던 육태진. 그의 첫 회고전은 퇴보하는 한국 미디어아트가 나아가야 할 중요한 지점 하나를 짚어 내고 있다. 11. 10~12. 10 대전시립미술관

정기용_감응(感應)  건축은 건축가 개인의 예술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엔 그에 맞물린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과의 관계의 결과물로 종결된다. 건축가가 가진 철학과 인식의 문제가 어떻게 생성, 변화하고 그것이 사회와 제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지를 많은 양의 컨텐츠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2010. 11. 12~2011. 1. 30 일민미술관

천대광_풍경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각인되는 빙산의 풍경을 재현한 천대광의 작품에는 실재하는 자연과의 접촉 기억이 내재하고 있다. 음습한 전시장 공간에 재현된 가상의 풍경은 감각적 인식이 상상의 영역에 개입하는 과정을 재현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내면의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게 했다. 3. 10~4. 4 사루비아다방

페트리샤 피치니니  지극히 혁신적인 창의성으로 환상의 생물체들을 탄생시키는 작가의 놀라운 재능은 동시대를 둘러싼 사회적 이슈나 개인의 삶에 관여하는 제도적 폭력에 직면하는 예술가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3. 17~4. 17 리안갤러리

닫혀진 회로 
이 전시는 참여작가 간의 소통 과정에 특수한 환경의 전시장이라는 요소가 개입되면서 창출된 새로운 회로도를 재현했다. 개별 작품의 창의성이 전시의 개념과 묘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존재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10. 22~11. 12 보안여관



김 | 윤 | 경
몽인아트센터 디렉터


정주영_하나이면서 둘인  오랜 시간 흔들림 없이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지속해 온 ‘오늘날 풍경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태도인가’라는 고민이 ‘변화무쌍하게 끊임없이 생동하는 살아 있는 원형(原型)’으로서의 풍경으로 귀결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준 전시. 현대미술에 회화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생산적인 질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3. 11~5. 9 몽인아트센터

쉬린 네샤트_욕망의 유희  국제적인 명성에 비해 국내 소개가 미비했던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 이슬람 사회에서 억압 받는 여성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표현해 온 작가의 시각적 어휘가 보다 보편적이고 초문화적인 영역으로 확장된 원숙한 작가의 세계관을 보여 줬다. 6. 1~7. 25 몽인아트센터

양혜규_셋을 위한 목소리  깊고 내밀한 개인의 목소리로 공동체와 사회에 대해 발언을 시도한 전시. 평면 입체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며, 문학과 영화, 연극과 음악, 그리고 무용 등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관람객의 감각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장시키는 차별화된 접근방식을 보여 준 시도였다. 8. 21~10. 24 아트선재센터

박윤영_붉은 물고기가 강 위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가득한 박윤영의 긴긴 여정이 기대고 있는 가늠할 수 없이 깊고 넓은 텍스트는 전시를 통해 작가의 작업과 마주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보다 복합적인 의미의 층을 생성했다. 8. 31~10. 31 몽인아트센터

김윤호_사진전  한국 풍경 사진의 관례와 어법을 차용해 ‘과연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을 찍는 행위는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 김윤호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에 대한 통찰을 지속해 왔다. 작가의 지적이고 비판적인 접근이 인상적인 전시. 10. 14~11. 14 원앤제이갤러리

현실과 발언 30년: 사회적 현실과 미술적 현실  전시 주체의 제언(提言)과 그에 대한 작가들의 고민이 일관된 목소리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을 오늘의 시점에서 여전히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전시였다. 7. 29~8. 9 인사아트센터

지휘부여 각성하라  어느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으로 촉발된 전시. 세대와 매체를 달리하는 작가들이 직면한 현실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했던 결과물과 질문을 전시와 단행본을 통해 다양하고 심도있는 논의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7. 9~23 공간해밀톤

기념비적인 여행  김상돈, 리슨투더시티, 린 지아 안, 아툴 발라, 안현숙, 야스민 카비르, 윌 콴, 젠첸류, 조민호, 최원준 등이 참여한 이 전시는 사회적으로 타자화된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7. 15~8. 21 스페이스C

우회 전략  오늘날 작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하고 세련된 방식을 조망한 전시로, 작가와 작업을 현실과 연결된 또 다른 맥락에 위치시킴으로써 다양한 층위의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적극적인 전시의 기능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8. 31~10. 24, 국제갤러리

행복(My Dears... Happiness consists of being able to tell the truth without hurting anyone.)  강석호 김윤호 서동욱 안정주 최기창 등의 작가가 참여한 이 기획전은 시대적 현실에 직면한 작가들의 ‘미적인 동시에 도덕적인’ 접근법을 보여 줬다. 2010. 11. 18 ~2011. 1. 16 몽인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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