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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0.10

Abstract

특집_Local Navigation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비엔날레 열병' 앞에서, 우리는 글로벌리즘의 한계를 직시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고자, 각 지역에서는 '로컬'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프로젝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art는 지난 호에서 한국 3대 비엔날레를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전국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지자체 주도의 대규모 국제전 10개를 소개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지역적 특색을 중심에 두면서, 특정 국가(도시)와의 교류전을 개최하거나 사진 퍼포먼스 세라믹 자연미술 등 특정 장르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등의 '차별화' 전략을 내세웠다.

Contents

표지 
김홍석 <토끼 형태> 레진 135×63×50cm 2009 ⓒGimhongsok

영문초록

에디토리얼  김복기

프리즘
    에디터스 컨퍼런스, ‘아시아의 힘’을 모으다  윤진섭
    광주비엔날레 국제큐레이터코스 참가하다  김혜지

포커스
    미래의 기억들展  임근준
    양혜규展|블라스트 씨어리展  서현석
    춘추展  이주헌
    정수진展|사라 모리스展  정연심
    마르코스 노박展|이불展  이선영

특집  로컬 네비게이션
    대구 | 2010대구사진비엔날레  양승학 
    김해 | 니노 카루소, OFF the WALL: 건축도자, 경계에서  김수영
    강진 | Celadon Art Project 2010  윤정현
    인천 | 아시아 퍼포먼스 아트-CRAZY Wisdom 2010투어  문재선
    마산 |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  김영호
    울산 | TEAF2010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홍순환
    공주 | 2010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전원길
    광주 | 대만현대미술  박만우
    경기 | 트릭스터: 도깨비 방망이  김현정
    경남 | 프락 브레타뉴 소장품  장정렬
    논고 | 왜, 지금, 로컬인가?  이상봉

작가 연구  김지원
    그림의 시작, 예술이 되다만 것들  강수미

나의 얼굴 
    시지프의 초상들  김명숙

특별 기획  비엔날레 리포트
    광주비엔날레_다시 이미지의 기원으로  정현
    부산비엔날레_기획자의 글쓰기  유진상
    미디어시티서울_익명의 스펙터클  정용도

이슈 앤 크리틱  문자와 이미지
    미술의 시각성과 의미의 구현  김백균

전시 리뷰
    강홍구|ISEA 2010|설화의 탄생|카사스, 키퍼, 볼탕스키 3인
    진기종|김도균|임주연|일상의 영도|강술생
    박미진|신선미|이주희

뉴비전  신진 평론가 발굴 프로젝트
    파이널리스트 3인 본선 작가 인터뷰  박경린 김현호 서준호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2010 NEW VISION art in culture - 3

2010 NEW VISION art in culture 신진 평론가 발굴 프로젝트

‘New Vision 미술평론상’의 두 번째 본선 프로그램은 ‘작가 인터뷰’. 박경린은 평일에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홍대 중심의 카페에서 함양아를, 김현호는 카메라 동호회가 가장 많이 ‘출사’ 나오는 북촌길에서 노순택을, 서준호는 남양주의 한적한 산속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에서 박불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 인터뷰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 하지만 프로테우스처럼 언제나 도망가길 좋아하는 작가들은 작가 인터뷰에서도 자신을 다 드러내지 않고 여러 가지 얼굴로 제 모습을 감춘다. 파이널리스트 3인은 어떤 이유로 그들을 만나고 싶었으며, 어떤 마음으로 작가 인터뷰에 임했을까? 과연 그들은 인터뷰에서 해당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얻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미궁에 빠져 길을 잃었을까?… 이제 그들의 글을 통해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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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박경린 1984년 출생. 본선 1차에서 <언어의 그늘>전을 통해 언어를 매개로 한 미술 작품을 인간의 소통과 존재의 문제로 고찰하는 리뷰를 작성했다.
중-김현호 1979년 출생. <퓰리처상 수상 사진>전과 같은 대형 사진전을 통해 사진을 둘러싼 비평적 담론과 사진의 윤리를 되물었다.
우-서준호 1979년 출생. <눈먼 자들의 도시>전을 통해 이미지 홍수 시대에 놓인 현대인의 딜레마를 출품작을 세밀히 분석하면서 성찰했다.

함양아 vs 박경린
세계를 살아가는 형용사적 방법

스마트폰의 등장은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을 현실에서도 가능하게 하는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었다. 신기함도 잠시, 어느새 둘 셋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새로 나온 어플리케이션을 공유하거나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일은 일상의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잠시 잠깐의 놀라움과 신기함이 담긴 감탄사를 연발하고 난 뒤, 더욱더 촘촘하고 정교해지는 네트워크 그물망 위에서 회사가 지급한 스마트폰으로 필요하다면 휴일에 언제든지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지인과 낯선 이들에게 수시 때때로 알려지는 부조리한 상황을 발견한다.
지난 3월, 아트선재센터에서 <형용사적 삶>넌센스 팩토리>라는 제목으로 함양아의 개인전이 열렸다. 그동안 함양아는 삶과 삶 사이의 경계 혹은 삶과 환상의 경계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수집해,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삶의 자리를 재발견할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해 왔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더욱 적극적인 목소리로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마트폰이 주는 놀라운 감탄사 뒤에 느껴지는 부조리, 과학과 기술 발전의 편리함 이면에 깃든 사회 구조와 권력,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작가는 전시에 소개된 <넌센스 팩토리>나 <초콜릿 두상> 같은 작품에서 이러한 개인과 집단 그리고 사회의 구조를 우화적으로 풀어냈다. 함양아라는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과 ‘형용사적 삶’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작가를 인터뷰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 작업에서 보여줬던 ‘과정의 시각화’의 문제와 작품 속에서 변화된 작가 위치의 발견이라는 두 축이 맞물리는 지점에 위치한다. ‘과정의 시각화’는 그녀가 영상 작업을 시작하던 초기부터 천착해 왔던 주제 중 하나였다. 회화를 전공하던 작가가 영상으로 작업을 전환하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에 작가는 “결과적으로는 전통적인 매체인 회화나 조각에서와 같이 작가의 머릿속에 담겨 있는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것은 같지만, 과정을 보여주는 것, 볼 수 없지만 볼 수 없는 과정, 내가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과정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바로 영상을 통해서 가능했다”고 답한다. 회화나 조각이 결과로서 보이는, 완성된 하나의 시간 속에 갇혀 있는 이미지를 구현해 낸다면, 영상을 통해서 시간성이 포함된 메시지는 과정이 드러나는 시간성이 포함된 동적인 이미지다. 작가는 과정을 시각화하는 <fiCtionaRy>나 <공산주의 관광>처럼 다큐멘트 과정을 거쳐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압축해 보여줌으로써,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의 충돌을 경험하게 한다.
<fiCtionaRy>를 들여다보면 관찰자로서의 작가 시점과 영화를 촬영하는 감독의 시점이 교차 편집돼 관람자에게 전달된다. 하나의 사실(독립 영화를 찍는 것)은 감독의 시선으로 관찰되는 영화 속의 장면과 이를 포함해 영화 촬영장 주변을 바라보는 함양아의 시선이 존재한다. 이러한 관찰의 구조는 일견 미셸 푸코가 제시한 벤담의 원형 감옥을 연상케 한다. 감시의 이중 구조 속에 관람자는 두 시선을 교차 편집한 영상을 다시 바라봄으로써 시선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대 권력 시스템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푸코는 벤담의 판옵티콘에 나타난 시각적 규칙을 “인간의 일상생활에 관한 권력 관계를 정의하는 방법”이라 말한다. 함양아의 작품은 푸코가 “이상적인 형태에서 떨어진 권력 장치의 도식”이라고 말한 원형 감옥의 구조와 유사하면서도 마주세운 거울처럼 끝없이 뒤에 가려진 시선을 자각하게 한다.
영상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시선이 관찰자나 감시자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 것은 발터 벤야민이 짚어낸 책 수집가처럼 사물과 일정한 관계 속에 현상을 수집하는 관찰자의 위치에 자기 자신을 놓아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여기서 생기는 거리는 탐욕스럽되 관조적이고, 환상과 실재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으면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관찰하고 수집하는 수동적 태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보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재현한다.
<넌센스 팩토리>는 작품 속 작가의 위치가 변화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fiCtionaRy>의 경우 하나의 세계를 유랑하며 여러 명의 시점으로 동시에 바라보는 형식이 제시되고 있다면, <넌센스 팩토리>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 창조자의 눈으로 파편화된 세계를 하나씩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fiCtiona Ry>가 평면의 원 모양 형태로 둘러싸여 있는 세계라면, <넌센스 팩토리>는 반구형으로 잘린 세계의 꼭짓점에서 아래를 향해 보고 있는 듯한 시점으로 전환되고 있다. 텍스트로 제시되었든, 설치 작업의 일종으로 제시되었든 혹은 영상으로 제시되었든지 간에, 그 오브제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단면이면서 동시에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이다.
“픽션과 다큐멘터리가 합쳐져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허구, 즉 픽션에 관한 픽션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fiCtionRy’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는 작가의 말 속에 이러한 것들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결국 이 모두는 세상을 바라본 작가의 다큐멘트이자 가공된 현실이며, 그에 대한 허구적 재생산이다. 다큐멘트에서 허구로, 만들어진 허구를 다시 재가공해서 전시장에 놓는 것은 작가가 영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과정에 대한 시각화의 또 다른 형태이다. <넌센스 팩토리>에서는 하나의 기둥에 달려 여러 다른 개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오디오처럼, 익명의 누군가가 남기고간 머리카락과 팩토리 속 여러 다른 공간을 바라보는 텍스트 속 사보기자의 형태로 이러한 과정의 시각화가 진행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표현의 과정에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넌센스 팩토리>의 이야기 속 견습공에게 호통을 치고 있던 예술가는 사보기자가 던진 “예술가로서 어떤 태도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며 질문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전시에서 나눠준 유인물에서 발췌). 인터뷰 도중 나는 “동사적 삶도, 명사적 삶도 아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형용사적 삶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에 대해 작가는 “형용사적 삶이란 관찰자로서 타인의 삶을 보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관찰의 대상을 보고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의 층위다. 딱 떨어지고 단정 지어지지 않는 모호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작가는 다시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넓은 하늘 아래 불가해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당신은 무엇을 느끼며 살아가느냐고.
<랜드, 홈, 시티>는 청량한 하늘과 그 하늘을 머금은 회색 물빛 바다를 한없이 가로지르는 배 위의 시선을 따라 이동한다. 낯설고 고독한 육지에 다다라 만나는 한 여성과의 조우는 분명한 현실이지만 꿈속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나른한 봄날의 한바탕 꿈속처럼 배를 타고 누군가를 향해 작가와 함께 떠나간다. 함양아와 그 낯선 여자,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고리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한 척의 배다. 현명하고 똑똑한 스마트폰은 세상과 세상, 개인과 개인을 끊임없이 연결해준다. 그러나 그 끝없는 소통의 욕망에는 <랜드, 홈, 시티>의 장면 같이 또 다른 배, 다른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망연한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 같은 인간의 고독함이 배어 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해본다.
궁극적으로 함양아가 말하는 형용사적 삶은 타인과 타자의 삶을 이해하는 태도이며, 삶에 대한 성찰의 과정에서 나온 그녀만의 답이다. 급변하는 현대적 삶 속에서 끝없이 던져지는 감탄사 뒤에 시스템의 부조리가 교묘히 파고들고 숨어 있다 하더라도, 그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삶에 대한 성찰을 공유할 수 있다. 경계가 없는 경계의 자리에서 함양아는 관찰자이자 수집가로, 나아가 그녀가 꿈꾸는 세상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며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인터뷰를 마치며 내가 내린 결론이자, 함양아의 작업을 끊임없이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함양아 1968년 출생. 1991년 서울대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미술이론 전공 졸업. 미국 뉴욕대 대학원 졸업. <몽유도원도>(아트페이스, 2000), <드림 인 라이프>(인사미술공간, 2004), <트랜짓 라이프>(금호미술관, 2005), <형용사적 삶>넌센스 팩토리>(아트선재센터, 2010) 등 다수의 개인전 및 그룹전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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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함양아 <fiCtionaRy> 비디오 영상 2002~2003
우-함양아 <형용사적 삶-Out of Frame> 퍼포먼스 비디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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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노순택 <그날의 남일당 II-173> 가변크기 2009
우-노순택 <그날의 남일당 II - 177> 가변크기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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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박불똥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 사진콜라주 110×80cm 1990
우-박불똥 <세기말 서울 야경> 사진콜라주 80×110cm 1985

 

노순택 vs 김현호
사진가는 어떻게 노순택이 되었나


아주 단순한 의문에서 이 인터뷰는 시작한다. 2008년 초의 겨울, 나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립미술관에 걸릴 노순택의 사진을 프린트하고 있었다. 미술관은 노순택에게 사백 평의 공간을 제안했고, 나는 적어도 백육십 점 정도의 프린트를 만들어야 했다. 날은 추웠고 바람은 건조했다. 손가락 끝과 발바닥은 하얗게 일어나 갈라졌고, 아무리 가습기를 틀어도 출력기의 노즐은 자주 막혔다. 하루 종일 스튜디오에 앉아서 작업해도 고작 다섯 점이나 열 점의 프린트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버석버석한 겨울이었다. 매일 우리는 토끼처럼 빨간 눈으로 그가 사온 귤을 까먹으면서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기계가 끽끽 토해내는 사진을 보며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내가 의문을 품게 된 것은 바로 그 겨울의 일이었다.
김현호(이하 김) 우리가 할 이야기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노순택(이하 노) 그때 겨울에 사실 거의 다 했죠.
김 그래서 사실 제가 주제를 미리 정해 왔어요. “사진가는 어떻게 노순택이 되었나”라는 건데….
노 와, 재밌다.
김 이거 되게 심각한 얘기에요. 그러니까 한국에 수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사진기자가 있는데 왜 노순택만 노순택이 되고, 다른 이들은 노순택이 되지 못했는가 혹은 않았는가가 사진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전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계보들이 노순택을 직조해 냈는지를 밝히는 게 필요하다, 그런 거죠.
_2008년의 전시에 포함된 그의 ‘유일한’ 초기 사진에는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방석모’를 깔고 앉아 있는 전경의 사진이었는데, 특유의 언어적 아이러니를 제외한다면 솔직히 이 사진에서는 몇 년 후 그의 첫 사진집인 《분단의 향기》에서 성취한 날카로움과 서늘함이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사진은 ‘노순택’의 사진이라기보다는 괜찮은 사진기자의 것이었다. 다른 매체들에 비해 기술적인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인지, 사진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들은 대개 ‘갑자기’,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이 운항할 궤도를 예고하면서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노순택은 그러지 않았거나 혹은 그러지 못했다.
노 계보요? 에이, ‘개족보’죠(웃음).
김 잘 아시겠지만, 브레송은 카메라를 잡는 순간부터 브레송이었고, 만 레이는 맨 처음부터 만 레이였거든요. 모호이-너지도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모호이-너지가 됐어요. 주명덕 선생의 초기 다큐멘터리 사진에서도 특유의 정교한 미적 감각이 있고. 근데 그 전투경찰 사진 보고 제가 여기저기서 초기 사진도 찾아보고 그랬는데, 노순택은 처음엔 노순택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여쭤보려고 왔어요. 이 사진을 찍을 때, 그러니까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신 다음에 매체에 들어가셨을 때는 어떠셨는지.
노 대학을 졸업하고 꽤 학술적이고 진보적인 분위기의 매체에 들어갔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겉과 안은 다르죠. 근데 예전에는 일치해야만 한다고 믿었어요. 지금은 표리일치를 강요하는 게 폭력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그다음에는 《오마이뉴스》 창간 준비팀으로 옮겼어요. 사진과 글을 병행했고요. 당시만 해도 ‘사진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고, ‘순간의 미학’ 같은 걸 믿었어요.
김 일종의 전통적인 좌파 다큐멘터리 사진의 믿음 같은 건가요?
노 그렇죠. 루이스 하인이나 매그넘, FSA 사진들을 좋아했고, 사회적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랬죠. 그런데 《오마이뉴스》에서는 저널리즘의 속성상 데스크가 항상 명쾌한 정보를 현장 기자한테 요청했어요. 물론 힘들죠. 뉴스 매체의 백화점식 취재가 답답하고, 원치 않는 현장에도 가야 하는 것도 그렇고, 볼펜기자의 액세서리가 되는 느낌도 있고요. 그렇다고 내가 가기 싫다고 고고하게 굴면 다른 사람이 가야 하잖아요. 그렇게 고민하다가 2001년 어느 날 출근길에 광화문 교보문고 현판에 “이 가을날 나는 무슨 물이 들었는고” 하는 시를 보고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그게 서정주 시더라고요. 참 아름다운 언어인데….
_노순택에 대한 최악의 오독은, 그의 사진을 ‘독특한 미감을 가진’ 보도 사진이나 좌파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정작 노순택은 태연하게 ‘오해는 확장을 부른다. 확전(擴戰)을 부르기도 하고’ 라며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오해는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연다기보다는 그의 작업을 단순히 ‘탈식민주의 시대의 정치적 예술’이라는 빈곤한 레테르를 달고 소비되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사실 그의 사진을 보도 사진으로 간주하는 것은 일종의 개념적인 몰이해라고밖에 할 수 없으며, 노순택은 사진을 변혁의 무기로 사용한다기보다도 그런 관념을 공격하는 작가다. 그러므로 노순택은 오히려 좌파 다큐멘터리 사진의 가장 강력한 적이기도 하다.
노 저는 의심이 자꾸 들었어요. 예를 들어 사진에 대한 베스트셀러 중에 《나는 사진이다》라는 책이 있잖아요. 그런데 나는 뭘까, 사진은 뭘까를 생각해 보면 결국 ‘나는 사진이 아니다’는 결론이 나오거든요. 사진 자체는 사실이 아니니까.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마라》는 것도 그렇죠. 감동이 왔을 때 셔터를 누르면,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사진에 감동이 들어가나? 저는 오히려 감동이 오기 전이나 지나간 뒤에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오마이뉴스》 일하면서 대학원 다닐 때 수잔 손탁이나 존 버거를 읽고 아, 시각이 훈련된 거구나, 보여준다는 건 곧 감추는 거구나 하고 느끼게 된 것도 있고요.
_이런 대답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김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젊은 사진가, 특히 매체에 소속되어 있는 사진가들은 대부분 그런 고민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 때 선택하는 길은 두 가지밖에 없어요. 전에 쓰신 표현을 빌리면 ‘확신의 괴물’이 되거나, 사진가의 길을 포기하거나. 그러니까 외모에 홀려서 결혼했는데 결혼해 보니 왠지 연쇄살인범 같은 거야.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베개에 고개를 처박고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하거나 이혼하거나 그런 거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유독 노순택만은 그 두 길을 걷지 않고 ‘노순택’이 되었단 말이죠. 회사를 그만두신 2001년에서 《분단의 향기》가 나왔던 2004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노 그러니까 의처증은 드는데 결혼 생활의 의지는 강하게 있었던 거죠. 그래서 현장에서의 방법론이나 형식을 어느 정도 취하면서 저널리즘의 틈을 보려고 했어요. 그때는 참 뜨거웠던 시절이었어요. 미선이 효순이 사건도 있었고, 월드컵도 있었고. 사실 저희 애기엄마가 저한테 5년 동안 작업할 기회를 줬어요. 그래서 작업하는 것밖에 없으니까 열심히 했던 거죠.
김 지금처럼 미술관에서 작업이 유통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노 전혀 아니죠. 저는 저한테 외국인 친구가 생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요. 당시에 《지오GEO》가 폐간됐잖아요. 출판 쪽으로 일해 보려고 했는데 그쪽도 여의치 않고. 답은 안 보이지만 ‘그냥’ 작업을 했던 거죠. 애기엄마한테 허락받았으니까.
김 일종의 작가적 욕망이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노 저는 이건 현실이 아닙니다, 하고 말하고 싶었어요. 사실 저널리즘에는 형식에 대해 말하는 걸 은폐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흔히 “예술 하세요?”하고 조롱하거나, 그냥 “애썼어, 수고했어”라고 말하죠. 하지만 저는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곧 형식이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찍혀진 사진은 나름의 여행을 떠나게 되니까. 예를 들어 ‘김영삼 민주산악회 후원의 밤’을 취재하러 갔는데, 김영삼이랑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한 50미터 정도 줄을 섰어요. 저는 그걸 보면서 사진은 뭐고 어떻게 활용될까 하고 생각하는 거에요. 단순한 기념? 친밀의 증거? 권력의 의지? 저는 사진의 용도가 씁쓸하면서도 재미있어요. 그런 극적인 현실이야말로 가장 초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현장이 주는 마약 같은 매력이 있기도 하죠.
_사실 조금 놀랐다. 우리는 노순택이야말로 그런 ‘마약’을 성찰하는 작가라고 제멋대로 믿어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역시 마약중독자였던 말인가.
김 다들 노순택은 착해서 현장에 간다고 제멋대로 믿고 있는데. 타오르는 정의감을 억누르지 못해서.
노 어휴, 전 속물이에요. 현장은 당연히 작업하러, 내 사진 찍으러 가는 거죠. 물론 찍도록 허락해 준 사람에 대한 도의적인 예의는 있어요. 저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동지애도 있고. 작업으로 쓸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 필요한 사진도 찍어요. 도와달라는 연락 오면 잘 거절 못하기도 하고.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제 마음 편하고 욕 덜 먹으려고’ 찍는 거에요. 저는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서 작업해요. 그걸로 외국 가는 항공료도 받고 숙박비도 받아요. 이기적인 거죠.
김 타인의 고통은 원래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하질 않죠. ‘착한 사진’이라고 하면 사실 미나마타를 찍은 유진 스미스 같은 건데, 그런 사진이야말로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잖아요.
_노순택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다는 건 두 가지 기분이 들어요. 안도감과 무력감.
김 네. 카메라 뒤에 숨어 있다는 안도감과, 그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무력감.
노 사진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아마 없을 거에요. 저는 사진으로 각성을 촉구하는 데 회의가 들어요. 하지만 사진으로 사고의 촉구는 가능할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사회의 순도가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불순물의 역할을 하고 싶어요. “쟤 왜 여기 꼈어?”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_사진의 중요한 역사적 특성 중 하나는, 사진이 ‘수많은 사람을 강하게 매혹시킨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사진사학자인 베르나르 마르보는 다게레오타입이 처음 공표되었을 때의 열광을 달착륙의 그것과 비교하기도 했다. 지금 여기의 한국에서도 사진에 매료된 수많은 젊음이 카메라를 평생의 업으로 선택하고, 그들 중 거의 모든 이들이 사진에게 배신당해 길을 잃는다. 수많은 젊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지망생들 중 아직까지 노순택이 될 수 있었던 이는 한 명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를 제외하고는 ‘확신의 괴물’도 ‘낙오자’도 되지 않은 채 사진과 끈덕지게 싸우면서 전진하는 이를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사진에 반격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노순택에게서 혹은 몇 명의 다른 노순택들에게서 나오게 될 것이다.

노순택 1971년 출생.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홍익대 대학원 사진학과 중퇴. <분단의 향기>(김영섭화랑, 2004), <얄읏한 공>(신한갤러리, 2006), <붉은 틀>(갤러리 로터스, 2007), <비상국가>(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립미술관, 2008), <좋은, 살인>(상상마당, 2010) 등 다수의 개인전 및 그룹전 참여.


박불똥 vs 서준호
난처한 토로 그리고 뜨거운 삶


내가 그를 만나려 했던 건 인터뷰를 통해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것보다,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고백한다. 그를 통해서 내가 나의 선택을 30년 더 지속할 수 있을지, 과연 내가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인, 나 또한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모든 가치가 하나로 수렴되는 시대에 앞날에 대해 주저하며 머뭇거리는 30대 초반의 ‘젊은이’에게 선택에 대한 믿음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확인보다는 앞서 살아온 선배의 맞장구가 필요했었다고 다시 고백해야겠다.
1980년대 한국 미술을 공부할 때면 박불똥이라는 이름이 언제나 등장한다. 저항적이고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 발언하는 전시에도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불똥’이라는 이름은 한 번만 들어도 쉽게 잊히지 않지만 그럼에도 한국 미술사에 그 이름은 계속 등장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통령 각하의 용두질>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부(끄)럽습니다> <많습니다> <불한당> <好治kiss> 등 그의 작업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너무 웃기고 재밌었다. 누구나 느끼고 공감하지만 시대 상황에서 쉬 말할 수 없고 말하지 않는 일을 장난처럼 던져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준다. 80년대 독재 정권에 맞서고, 서구 자본과 신자유주의를 공격하는 작업에 이어 2007년 대선에 대한 언급까지 그의 작업은 한결같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술 자체라기보다 예술로 담아내는 인간의 삶이다.
갤러리 175의 <지천명>전과 <미술과 사회, 현실과 발언 30주년 기념>전에서 보여준 2007년 대선 즈음에 제작된 <好治kiss> 등의 작업은 여전한 그의 재기를 보여준다. 광주에서 전시된 ‘4대강 살리기’ 반대 작업이 국정원으로부터 철수를 종용받았던 사실을 생각하면, 현직 대통령의 얼굴 사진에 스테이플러심을 박은 작업은, 대통령 당선 전 제작된 이미지라 하더라도 촛불을 겪었다면 마음이 조마조마할 것이다. 1985년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을 조직했다는 이유로 종로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경력도 있는 그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용감하고 힘이 넘친다. ‘민중미술’은 1990년 이후 역사가 돼버렸지만, 그는 계속해서 현실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명확하고 유쾌한 작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를 만나고 싶었다.
2010년 아직은 무더운 초가을 오후, 남양주 어느 숲 속 작업실에서 박불똥 작가를 만났다. 작가는 처음부터 이러한 대화/토로가 어렵고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수십 년을 예술로 ‘개겨’ 봤지만, 여전히 현실은 끔찍하고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말한다. “난처한 토로는 속으로 삼켜야 하지 않느냐”고, “이런 대화/토로가 뉴비전 공모 결과에 어떤/좋은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왜 내가 당신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앞서 고백했듯 나 스스로 선택해 길을 가고 있지만 자신도 막막하고 힘들고 눈앞이 깜깜한데(물론 재미는 있지만) 당신은 어떻게 그런 가시밭 길을 수십 년을 걸어왔나 하는 것이 궁금했다고 길게 대답했다. 결혼은 했느냐고 되묻는다. 안 했다고 안 한다고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함께 웃었다. 계속해서 대화가 이어진다.
준비했지만 물어보지 못한 질문이 많았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예술은 ‘어떤’ 것입니까?’ ‘선생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의 진부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말똥말똥 맨정신으로는 나 자신이 힘들었다. 막걸리를 준비했어야 했다. 그러나 진지한 대화 속에서 확인과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박불똥은 “미술의 본연이 당대 사회 현실에 조응하며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따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과 반대로/마찬가지로 형식의 유희에 불과한 것이 아닌 미술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미술의 본질이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단지 이론이나 주장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어떤 작가에게 작업실 정물대 위에 있는 과일 등 상투적인 대상들이 작품의 소재가 되듯 작가가 창문을 열고 바라보는 풍경, 바깥 거리에 나가서 부대끼는 일상과 현실이 작가가 그려야 하는 대상으로 보인다고 그는 말한다. 작품이라는 것이 단순히 상품성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무엇을 느끼고 어떠한 행동을 통해서 나오는 결과물이라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울러 결과물이 조형적으로도 ‘좋고’ 시장에서도 잘 팔리면 금상첨화다. 그렇지만 어떤 것을 포기하거나 그중 하나를 충족시킬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스스로의 질문에 작가는 전자를 먼저 생각한다고 말한다. 결과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뜻 이 말은 초등학교 때 배운 내용처럼 들린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대답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실천하는가?
아도르노는 예술의 자율성이 작품의 상품성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작가가 자율적으로 무엇을 만들고 그것이 상품이 되어 팔려나감으로써 또 다른 자율적 작품의 생산이 가능하다. 그렇게 예술은 주문 생산에서 벗어나 스스로 기성화됨으로써 스스로 비판하며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현실에서는 어떤 작품이 팔리는가? 어떤 작가가 작품을 팔 수 있는 작가인가?’를 생각해 보면 아도르노의 말은 틀린 것이 된다. 작품이 없어서 못 파는 작가들은 줄 서서 기다리는 고객들을 위해 끊임없이 붓질한다. 솜씨 좋은 젊은 작가의 작업은 변하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작업 스타일이 변하지 않는 놀라운 ‘신공’을 보여주는 원로 작가의 작업을 보며 우리는 실소를 머금지만 정작 스스로 어떻게 작업하는지를 돌이켜 봐야 한다.
30여 년 동안 지켜온 작업 방식을 작가는 이제 바꾸려 한다. 20년 전 2년간 조건 없이 후원해 준 어느 화상의 회화를 만들라는 요구/요청에 단지 상품으로서의 작업은 하지 않겠다던 스스로의 믿음 때문에 후원을 포기하기도 했던 작가는 이제 변화를 꾀한다. 작가의 말대로 수십 년 ‘개기’면서 나름대로 평가를 받았지만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것이 다만 작가 스스로의 문제일까? 지천명의 중간에 서 있는 작가는 다만 상품으로서의 회화를 거부하며 사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기존의 작업과 회화를 병행하거나 혹은 일부를 서로 섞거나 ‘곁들여서’ 작업을 할 계획이다. 작가는 “작업 매매에 대한 자가당착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미술이라고 하면 당연히 회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누가 그의 변화를 비판할 수 있을까?
박불똥 작가가 친구와의 일화를 이야기해 줬다. 그 친구는 10여 년 전부터 자신의 취향대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다 큰 이슈를 만들었고 사회로부터 야만적인 공격을 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강남의 컬렉터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한꺼번에 스무 장을 그려야 하는 친구는 이제 미치겠다고, 지겨워서 못 그리겠다고 투덜댄다. 작가는 그 친구에게 수년 동안 경제적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기에 계속 그리라고 이야기했다.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는 그 그림들을 마무리하고, 이후에 다른 작업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작가라는 자각을 하고 작품이 구매자의 구미를 당길 수 있는 작가를 ‘기득권’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평생 ‘기득권’이길 거부했지만, 자신이 규정한 바대로의 기득권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가 말하는 ‘기득권’이 진정한 기득권인가? 또 다른 의문을 가지고 작업실을 나오려 할 때 작업실 한쪽 그의 작업 중 하나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한다. “똑빠루 사럿!”

박불똥 1956년 출생.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 민족미술협의회 회원 및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 <박불똥>(그림마당민, 1987), <한국미술, 20대의 힘>(아랍미술관, 1985), <민중미술 15년>(국립현대미술관, 1994), <괴물시대>(서울시립미술관, 2009) 등 다수의 개인전 및 그룹전 참여.

New Vision 2010 - 2

2010 NEW VISION art in culture 신진 평론가 발굴 프로젝트

예심 18명 지원자 중, 파이널리스트 3인 선정!

art in culture가 주최하는 신진 평론가 발굴 프로젝트 ‘New Vision 미술평론상’이 그 5번째 포문을 열었다. 2002년 제정된 New Vision은 시각예술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새 미술평론가’를 발굴하고자 격년제로 개최된다. 그 동안 반이정 이안(2002), 박둥근 곽준영(2004), 김정복(2006), 이슬비(2008)를 당선자로 배출하며 명실공히 한국 신인 평론가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번 제5회 New Vision은 현실적이고 현장감 있는 공모 시스템이 절실해진 미술계의 변화와 흐름에 대응하고자, 공모 요강과 진행 방식을 대폭 보완했다. 먼저 각 지원자가 1편의 원고를 출품했던 지난 방식과 달리, ‘원고 포트폴리오’를 출품하는 것으로 공모 방식을 변경했다. 따라서 각 공모 지원자들은 학술 논문부터 전시 서문, 전시 리뷰, 작가 인터뷰 등 그 동안 작성한 여러 편의 원고를 모아 제출하여, 심사위원들이 각 지원자의 다양한 역량을 평가할 수 있게끔 했다. 또한 심사 방식도 변했다. 지난 4회까지는 출품 원고 1편으로 예심과 본심을 거쳐 1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먼저 파이널리스트 3인을 선정한 후 art in culture와 선배 평론가이자 심사위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평론가 육성 프로그램’을 3개월간 운영한 뒤 최종 당선자를 결정한다.
지난 7월 20일 마감된 제5회 New Vision 공모에는 총 18명이 지원했다.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강수미 반이정 임근준이 18명 중 각 3위까지 우수 지원자를 심사하고, 각 심사위원이 1위로 선정한 지원자를 우선적으로 합격시키되, 중목될 경우 1~3위마다 배점을 차등적으로 적용해 총점순으로 1차 파이널리스트 3인을 결정하기로 했다. 심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강수미는 1.김현호 2.서준호 3.백곤, 반이정은 1.김현호 2.박경린 3.백곤, 임근준은 1.박경린 2.서준호를 추천하였고, 최종 김현호 박경린 서준호가 파이널리스트 3인으로 결정됐다. 이들이 참여할 프로그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유 주제 비평문 외 공동 주제 비평, 작가 아틀리에 탐방 리포트, 인터뷰 등의 원고 작성을 거쳐 결과물을 토대로 본심을 진행하여 최종 1인의 신진 평론가를 당선할 계획이다. 그리고 최종 당선자는 art in culture 12월호에 발표하며 상금 500만원과 부상을 수여한다. art는 새로운 평론가가 배출되는 현장을 생생히 중계하며, 새로운 평론가 양성에 앞장 설 것이다. 그 첫 번째로 파이널리스트 3인의 New Vision 참여 소감과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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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경계에서 바라본 소통
<언어의 그늘,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소장품>展
7. 13~10. 3 국립현대미술관
글|박 경 린
강렬한 눈동자의 압도적인 응시가 화면 가득 메우며 미술관 빈 공간을 바라본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정신없이 어디론가 향하는 다소 불안해 보이는 사내 ‘O’가 있다. 카메라는 그를 향해 다급하게 쫓아간다. 아일랜드 출신의 소설가 사무엘 베케트의 20여 분짜리 짧은 영화 <필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로 우리에게 익숙한 베케트의 이 오래된 흑백영화는, 한국과 스페인의 수교 60주년 기념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언어의 그늘,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소장품>전(이하 언어의 그늘)의 특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베케트는 <필름>에서 관찰자와 대상간의 끊임없는 상호 인식을 통해 발생하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하면서, 버클리 주교의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여기서 존재를 지각한다는 것은 시선을 두는 것이고, 시선을 두는 것은 소통의 시작점이다.
타자를 바라보는 것은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타자를 ‘타자’로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눈을 통해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상대방 내면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노력한다. 이 때 내면의 모습은 감정적 소통과 언어적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이전부터 언어는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축의 하나였다. 언어는 모든 인간의 존재를 지탱하는 도구이자 존재의 핵심이며,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매개물이었다. <언어의 그늘>전에서 드러나는 소통에 대한 관심은 타자에 대한 이해의 과정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타자에 대한 관심, 소통하려는 욕구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태동한 ‘현대미술’이라는 장르에서 가장 깊은 곳에 내재하는 것이다.
소통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는 <언어의 그늘>전은 크게 ‘시, 출발의 선’ ‘쓰기를 향하여’ ‘또 다른 기하학’ ‘행동 그리고 언어’ ‘정치와 표현의 장’ ‘미디어의 힘’ ‘연극과 극장’ ‘시네마, 내일을 위한’이라는 8가지 주제 아래 63명의 작가와 13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이 전시는 그 자체로 미술을 넘어 문학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현대미술의 괴물 같은 식성을 드러내면서, 가장 중요한 화두의 지점을 한자리에 압축해서 보여 준다. 스페인현대미술관은 작품을 수집하는 과정도 여타 미술관과 차별성을 지닌다. 대부분 미술관이 시대적 구분에 따르거나 혹은 장르나 작가 및 양식에 따른 수집 방법을 고수해 온 것과는 달리 스페인현대미술관은 ‘언어’를 매개로, 미술이라는 장르의 특정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 속에서 나타나는 동시대적 문화의 일면을 수집했다. 이로써 미술관은 미술이 더 이상 미술일 수 없는 형식적 특성에 열린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시인이자 정치 활동에도 깊이 관여했던 마르셀 브로타스의 작품이다. 브로타스는 미술관과 문화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시도한 작가이다. 생전에 미술관이라는 개념과 상징의 공허함에 대해 거듭 말해왔던 브로타스의 작품을 전시장 초입에 꽉 채워 넣음으로써 시간이 갖는 아이러니, 다시 말해 제도 비판이 시간을 지나며 다시 제도화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 전시에서는 브로타스처럼 시와 같은 텍스트에서 출발해, 이를 조형언어로 재해석한 일군의 작가들이 문학과 상호소통하며 창출해 낸 현대미술의 일면도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호안 브로사의 <눈으로 보는 시>, 마린 위고니에의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우연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와 같은 작품은 스테판 말라르메서부터 시작한 구체시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를 조형적 결과물로 재해석한 것으로,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 다시 말해 미술과 문학이라는 장르의 경계 사이에서 언어의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의미화의 과정에 관계한다. 이러한 과정은 펩 아굿의 <증상은 단어이며, 본문에 붙잡혀 있다>에서 가장 극명하게 포착된다. 조형어로서의 언어 형식 실험에 그치지 않고, 시각화된 언어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미디어의 발달로 야기된 이미지의 범람, 그리고 이에 파생된 권력화된 소통, 소통의 부재로 인한 언어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시각화의 과정은 마사 로즐러의 <마사 로즐러는 보그를 읽는다>와 안토니오 문타다스의 <송신/수신>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 읽어 낼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은 언어를 매개로 광범위한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미디어의 순기능과, 이것이 권력을 통해 제도화될 때 드러나는 역기능적인 측면을 모두 나타낸다.
전시장을 모두 돌아보고 나와, 리타 맥브라이드의 <아레나> 위에 앉아 미술관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의식의 한 편에, 원형 극장 위에서 상연되는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한 편의 연극을 떠올려 본다. 그 연극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도’를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들이 황량한 언덕 위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서로 질문하고, 장난을 치고, 때로는 비난하는 과정에 녹아 있는 것은 고도의 실존이며, 존재의 실존이자, 소통하며 소통하고자 하는 그들의 실존이다. 삶의 여정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과정이라면, 그 안에서 ‘예술’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장난을 치고, 때로는 비난하는 자기 존재를 인식하는 과정의 다른 이름이다. 미술은 분명 텍스트화된 언어나 발화되는 언어와는 다르다. 그러나 미술은 세상과 소통하는 시각적 방식이며, 보다 확장된 의미의 언어다. 문자 언어와 조형 언어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소통에의 의지는 분명 하나다. <아레나>에 앉아 우리는 그 차이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시도를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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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사진전과 눈물의 정치학
<퓰리처상 수상 사진>展 6. 22~8. 29 한가람미술관
글|김 현 호
또 하나의 대형 사진전이 마치 축복처럼 한국에 등장했다. 태풍이나 장마처럼 거의 매년 한국을 강타하고 가는 이런 전시가 만들어 내는 현상을 비평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대체 우리는 왜 이리도 매그넘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세바스티앙 살가도와 스티브 맥커리를 좋아하는가. 왜 한참 줄을 서서 표를 끊고, 먼 나라를 찍은 사진을 그렁그렁한 눈으로 보고, 집에 와서는 싸이월드나 블로그에 자발적인 전시 감상문을 올리는가. 한국에 들어와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진전 사이에는 어떤 역사가 있었고, 어떤 관계망이 구축되었는가.
지금 열리고 있는 <퓰리처상 수상 사진>전 역시 한국에서 열린 대형 사진전의 계보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물론 내용상의 맥락뿐 아니라, 일반적인 전시와는 차원이 다른 상업적인 성공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전시를 주최한 중앙일보사는 8월 25일 현재 약 18만 명의 관객이 사진전을 다녀간 것으로 추산했으며, 내년까지의 지방 순회 전시 계획을 밝혔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시마 루빈은 “이런 열정적 호응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벽에 걸린 사진 속에서 벌레처럼 대동강 철교를 기어오르던 우리가 이제는 사진을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선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대형 사진전에 대한 우리의 이런 열광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갑자기 생겨난 일은 아니다. 한국에 최초로 수입되었던 ‘대형 국제 사진전’으로는 1957년에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렸던 <인간 가족>전을 들 수 있는데, 25일간 무려 30여만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대한민국 서울의 1957년은, 미처 변변한 인구 통계조차 내지 못한 해였다(1955년은 156만 명, 1960년은 240만 명이었다). 원로 사진가 정범태는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은 1957년의 한국을 ‘시체가 먹다 남긴 밥이라도 있으면 거리낌 없이 먹던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 시대에 ‘인류는 하나이며 가족은 소중하다’고 주장하는 사진전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는 것은, 조금쯤 납득이 가면서도 어딘가 초현실적인 일이기도 하다.
세계를 찍은 사진에 숨어 있는 부조리함은 반세기가 지나 열리고 있는 <퓰리처상 수상 사진>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 중 대부분은 고통 받는 이들을 찍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진을 생산하는 단계에서 이미 권력 관계가 발생한다. 어떤 이는 카메라를 들고 고통의 이미지를 수집하기 위해 돌아다니며, 다른 이는 확실하지 않은 구원의 실마리를 위해 스스로의 비참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심지어 세계 곳곳에서 날아와 매체에 실린 이미지는, 원했든 원치 않았든 서로의 비참함을 경쟁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카메라를 들고 사회의 부조리와 싸우며 진실을 찾아 헤매는 사진가의 영웅적인 모습은 사실 시각적 권력을 쥔 ‘근대화된 국가의 비장애인 남성’의 초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사진이 표방하는 ‘진실’이나 ‘역사’와 같은 화려한 수식어는 모두 비평적인 검토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존 탁은 권력에 의해 은폐된 진실을 카메라로 발견한다는 좌파 다큐멘터리의 ‘변혁적 실천’을 비판하며, 사실 사진적 ‘진실’ 역시 ‘진리의 체제(Regime of truth)’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진리는 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같은 시대가 역사와 사진을 발명했다”고 쓰고 있는 롤랑 바르트의 말은 어떤가. 이 말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역사는 사진을 증거로 삼아 진실이라는 권력을 획득하며, 사진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코드를 부여받아 비로소 증거로서의 확실성을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특정 집단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서 역사 기술의 태도와 사진의 쓰임새가 좌지우지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역사’가 생각보다 굉장히 취약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역사가 과거를 온전히 담지 못하듯, 사진 역시 그러하다.
우리 시대 사진의 윤리란, ‘진실’이나 ‘역사’와 같은 공허한 말에 의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착한 사진을 찍자든가, 사진으로 세상을 구하자든가, 사진으로 사람을 치유하자는 식의 단순한 차원의 문제 역시 아니다. 끊임없이 지속된 세계의 비참을 찍은 사진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그것에 대한 죄책감을 발휘해 눈물을 흘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윤리란, ‘착한’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으로 세상을 구하자고 하는 말은 어떤 담론 구성체(Discursive Formation)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되는가, 타인의 고통을 찍은 이미지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답 없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는 일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 사진전에 걸려 있는 아름다운 사진은 정당한 윤리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눈물만큼 우리를 쉽게 속이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전시장의 사진으로 돌아가자. 사진이 아직 우리를 놓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사진 앞에 서서 그들을 응시해야만 한다. 지금도 독수리 앞에 엎드려 있는 수단 소녀가 있다. 케빈 카터의 카메라 렌즈와 독수리의 눈이 동시에 한 소녀를 향했고, 아마 그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사진을 찍은 후에야 독수리를 쫓아버린 카터는 울기 시작했다. 다가온 동료 후앙 실버에게 그는 “찍었어, 대단한 걸 찍었어, 내가 해냈어”라고 말하며 어린아이처럼 울먹였다. 그가 자동차 배기가스를 차 안으로 연결한 것은, 퓰리처상을 받은 지 고작 석 달 후였다. 서른네 살이었다. 아홉 살짜리 딸이 있었다. 카메라를 통해 그가 보았던 끔찍한 장면은 앞으로도 오랜 세월을 떠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죽은 케빈 카터는 보도사진의 신화에 영원한 순교자처럼 내걸리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모두 사진에 의해 만들어진 근대적 주체이며, 보도사진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보도사진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갖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과 관념은 지금보다 형편 없이 초라했을 것이다. 물론 카터와 같은 보도 사진가의 진정성이야말로 가장 쉽게 포획당하는 것이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의 눈물만큼 우리를 쉽게 속이는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케빈 카터가 무언가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평생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퓰리처상 수상 사진>전에 얽혀 있는 지독한 상업주의와 보도사진의 신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사진들을 쉽게 경멸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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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이라는 틀 속의 맹목
<눈먼 자들의 도시>展 8. 19~9. 11 통의동 보안여관
글|서 준 호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잠들어 눈감기 전까지 신문 텔레비전 인터넷 등 여러 영상 매체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다. 우리는 수많은 영상에 노출되어 있고 그것을 볼 수밖에 없다. 더해서, 보았기 때문에 안다고 믿는다. 하루는 이미 시작됐지만, 시각에 대한 진부한 질문을 조금 다르게 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겠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지 못하는가?’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부친을 살해했고 어머니와 근친상간했다는 사실을 알고, 속죄의 의미로 스스로 두 눈을 멀게 한 후 방랑의 길을 떠난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볼 수는 있지만 모든 걸 알 수 없는 인간 지각과 앎의 한계를 은유적으로 보여 준다. 스스로 눈멀게 하여 물리적 맹목(盲目) 상태에 놓인 그는 인간 지각과 인식의 불일치를 인정하고, 자신의 맹목에 대한 무지를 자각한다. 보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믿음은 깨져야 한다. 넘쳐나는 영상 속에서 물질이 모든 가치의 척도라고 믿는 현대인은 단순히 보고 보여 주는 것에만 몰두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제목을 빌려 온 전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소설을 바탕으로 맹목과 함께 현대 도시인의 시각에 대해 다시금 질문한다. 전시는 ‘보는 행위’에 대한 물리적 현상에서부터 인식의 포괄적 의미를 넘나드는 11명 작가의 작업으로 구성된다. 작품을 살펴보자.
누군가 사용했었을 대퇴의족을 바닥에 세우고 허벅지 결합 부위에 어항처럼 금붕어를 풀어 놓은 최수앙의 <일상적 실험>은 왠지 섬뜩하다. 보는 이의 편견 혹은 공포를 넘어 작업에 다가서면 지느러미를 흔들며 헤엄치는 금붕어를 위에서 내려다보게 된다. 그러면 어느새 의족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금붕어가 헤엄치는 어항만이 남는다. 의족을 보고 있지만 의족은 인식되지 않는다. 최승훈과 이선민의 <시위자들과 시각장애인>은 제목에서 보듯 시각장애인과 얼굴을 가린 시위자들의 이미지를 마주보게 해 관점과 시각의 일방성을 보여 준다. 흰색 돌조각이 바닥에 즐비한 정만영의 <무거운 도시>는 천장과 와이어로 연결된 무거운 추가 바닥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떠있다. 파편으로 보이는 돌조각들은 원래 일정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지만 육중한 추에 의해 파괴된 듯하다. 인과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작업이 보여 주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과거를 유추하게 만든다. 정만영의 작업이 파괴되었거나 파괴하는 대상의 재현이라면, 안세권은 변화하는 도시의 과거를 기록하여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계속해서 보여 준다. 사람들 기억 속에 존재하는 복원 전 청계천의 모습과 현재 사이에 놓여 있는 그의 작업은 파편의 색을 지워버린 정만영의 작업과 달리 확연한 색감과 명암 대비, 상세한 세부를 통해 실제보다 더 생생히 제시된다.
안세권과 정만영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우리가 기억하고 환기하게 만든다면, 김주리의 <휘경>은 현재 도시 풍경이 처한 운명의 철저한 재현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그의 작업은 소위 ‘집장사’에 의해 1970~80년대에 지어져 남아 있는 전형적인 서민 주택의 형태를 흙으로 빚어 재현하고 물을 이용해 작업 스스로 녹아 부스러지게 한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 파괴된다. 30년 남짓,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자본의 논리로 사라지는 주택은 곳곳에서 건축되는 아파트의 미래 또한 다르지 않음을 예견하게 한다. 일반적인 시력검사표를 변형한 서평주의 <시력검사표>에는 신문과 뉴스 등 미디어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단어들이 다른 크기로 쓰여 있다. 시력이 약한 이도 알아볼 수 있을 커다란 ‘녹쌕성장’이라는 단어는 현 정부가 끊임없이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반면 4대강 스폰서검사 PD수첩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시력이 좋더라도 가까이 다가서야만 볼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단어의 의미는 분명 현실에서는 개개인 각자의 관점에 따라 무게를 달리할 것이다. 이 외의 나머지 작가 작업 또한 나름의 방식으로 인식과 지각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쉼표와 마침표를 제외한 여타의 문장 부호 없이 화자의 말과 극중 인물의 대화를 열거하듯 서술한다. 이 전시 또한 비슷한 형식을 지니는데, 각 방의 작업들은 쉼표로 연결된 듯 관람객이 방을 오가게 하며 의미를 곱씹게 한다. 이는 문학과 미술의 만남을 시도한 기획 의도와 부합하며 원작 소설의 강한 인상과 전시된 작업이 맞물려 효과를 거두는 지점이다.
예술가는 언제나 현실의 고통을 마주하며, 아픔을 잊기 위해 혹은 이겨내기 위해 작업한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은 고통 받기도 전, 공포에 마취되듯 눈감는다. 반면 맹목 자체에 대한 무지의 깨달음은 대상에 대한 통찰을 가져올 수도 있다. 보이는 것 너머에 무엇인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은 말 그대로 보이는 것 너머를 인식하거나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의 실마리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맹목 자체를 인식한다면 우리는 머뭇거릴지언정 최초의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 그것은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고, 욕망일 수도 있고, 세상과 나 사이에 애초부터 존재하는 부조리일 수도 있다. 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알려고 하지 않고 달콤한 현실의 환상에 젖어, 실체 없는 공포에 스스로 마취시킨다면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가 말하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New Vision 2010 - 1

2010 NEW VISION art in culture 신진 평론가 발굴 프로젝트

예심 18명 지원자 중, 파이널리스트 3인 선정!

art in culture가 주최하는 신진 평론가 발굴 프로젝트 ‘New Vision 미술평론상’이 그 5번째 포문을 열었다. 2002년 제정된 New Vision은 시각예술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새 미술평론가’를 발굴하고자 격년제로 개최된다. 그 동안 반이정 이안(2002), 박둥근 곽준영(2004), 김정복(2006), 이슬비(2008)를 당선자로 배출하며 명실공히 한국 신인 평론가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번 제5회 New Vision은 현실적이고 현장감 있는 공모 시스템이 절실해진 미술계의 변화와 흐름에 대응하고자, 공모 요강과 진행 방식을 대폭 보완했다. 먼저 각 지원자가 1편의 원고를 출품했던 지난 방식과 달리, ‘원고 포트폴리오’를 출품하는 것으로 공모 방식을 변경했다. 따라서 각 공모 지원자들은 학술 논문부터 전시 서문, 전시 리뷰, 작가 인터뷰 등 그 동안 작성한 여러 편의 원고를 모아 제출하여, 심사위원들이 각 지원자의 다양한 역량을 평가할 수 있게끔 했다. 또한 심사 방식도 변했다. 지난 4회까지는 출품 원고 1편으로 예심과 본심을 거쳐 1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먼저 파이널리스트 3인을 선정한 후 art in culture와 선배 평론가이자 심사위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평론가 육성 프로그램’을 3개월간 운영한 뒤 최종 당선자를 결정한다.
지난 7월 20일 마감된 제5회 New Vision 공모에는 총 18명이 지원했다.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강수미 반이정 임근준이 18명 중 각 3위까지 우수 지원자를 심사하고, 각 심사위원이 1위로 선정한 지원자를 우선적으로 합격시키되, 중목될 경우 1~3위마다 배점을 차등적으로 적용해 총점순으로 1차 파이널리스트 3인을 결정하기로 했다. 심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강수미는 1.김현호 2.서준호 3.백곤, 반이정은 1.김현호 2.박경린 3.백곤, 임근준은 1.박경린 2.서준호를 추천하였고, 최종 김현호 박경린 서준호가 파이널리스트 3인으로 결정됐다. 이들이 참여할 프로그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유 주제 비평문 외 공동 주제 비평, 작가 아틀리에 탐방 리포트, 인터뷰 등의 원고 작성을 거쳐 결과물을 토대로 본심을 진행하여 최종 1인의 신진 평론가를 당선할 계획이다. 그리고 최종 당선자는 art in culture 12월호에 발표하며 상금 500만원과 부상을 수여한다. art는 새로운 평론가가 배출되는 현장을 생생히 중계하며, 새로운 평론가 양성에 앞장 설 것이다. 그 첫 번째로 파이널리스트 3인의 New Vision 참여 소감과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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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라도 괜찮다면윤리에 대해 쓰고 싶다
글|김 현 호

아마 아주 훌륭한 평론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글만 읽는 멍청이(書癡)로 살면서 충분한 독서량을 축적한 적도 없고, 길고 고통스러운 습작기를 지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연소득과 재산, 부양 가족의 숫자, 스스로에 대한 애정의 양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했을 때, 앞으로도 나는 그럴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내게는 일종의 아집이 있다. 나는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어떤 것을 지불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바닥에서부터 몸으로 박박 기면서 올라간 사람이야말로 명예와 영광을 차지해야 하고, 설령 현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당위적으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웃기게 들리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 그러므로 나는 ‘글쓰기는 내 천형’이라든가, ‘유려한 문장으로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독창적인 구조물을 만드는 글쓰기를 하겠다’는 식의 말을 내뱉을 수도, 감당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쓴다. 나는 보편적인 통찰력을 지니고 동시대에 유통되는 모든 작품의 의미와 당대성을 논할 수 있는 평론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평론가 지망생치고 나는 좀 멍청한 편이어서, 10개의 작업을 보면 그 중 두어 개의 의미만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원래 못난 인간은 잘난 인간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마련이라, 나는 ‘예술 일반’이라든가, ‘전지구적 예술’에 대해 말하는 비평가를 좀처럼 신뢰하지 못한다. 내가 글을 쓰는 대상은 주로 사진 이미지, 부수적으로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미디어아트 정도이며, 주된 관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현재를 비롯하여 특정한 몇몇 시기의 역사적 상황이다. 나는 그 특정한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사진 이미지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었는가, 우리의 보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가, 이미지는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하는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 나는 편협하고 구부러진 잣대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동시대의 ‘예술 사진’과 그로부터 파생하고 착종된 다양한 형태의 예술과 지식, 기술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므로 나는 예술의 일부분으로 사진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사(史)의 흐름 중 하나로 예술 사진의 역사를 이해한다. 사진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의 외연이 엄청나게 방대할 뿐 아니라 각 영역마다 서로 다른 지식의 체계와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이 아닌 다른 영역의 학문이나 기술도 이런 식으로 넓은 외연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사진은 다른 학문이나 기술과는 달리 스스로 ‘예술’이 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이 뻔뻔스러운 욕망이 사진을 뒤틀리게 만들고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뒤틀린 부분에 대해 쓰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글을 쓰는 목적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사진 이미지가 으르렁거리면서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갑자기 덤벼 들어 사람을 쉽게 다치게 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시대 사진 이론과 비평의 역할은 사진에 대해 재갈을 물리거나 최소한 경고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우리가 그토록 지겨워하는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나 같은 인간이라도 괜찮다면, 나는 그런 종류의 무망한 글들을 쓰고 싶다. 최소한 사람들이 지겨워하는 이야기를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늘어 놓는 비평가가 되고 싶다고, 나는 항상 조용히 다짐하고 있다.

김현호 1979년 서울 출생. 서울대 철학과 및 홍익대 일반대학원 사진학과 졸업. 상업사진가이자 편집자. 계원디자인예술대학 H-CENTER 연구원과 디자인 저널 《양귀비》 편집장 역임. 현재 서울대 출판문화원 편집기획팀장.

출품 원고 리스트
기억의 전쟁터에서 사진이 싸우는 방식-노무현의 사진이 우리를 불러낸다/포토넷/2010
사진의 일상생활-연재를 시작하며/정글콜론/ 2010 
이 아름다움이 거하는 곳은 어디인가-이명호 개인전 리뷰/포토넷/ 2010 
질주하는 흑백 사진/〈흑백을 묻다〉전 서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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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미래를 꿈꾸는
오늘의 달콤함 
글|박 경 린

기대 반, 도전 반으로 지원한 New Vision의 파이널리스트 3인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으니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던 나는, 대학에 진학한 뒤 ‘미술사’라는 거대한 바다와 같은 학문을 만나게 되면서 그 동안 어딘가 가시지 않았던 갈증에 대한 해갈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었다. 인연에 의해, 혹은 나의 의지로 호기심을 호기심으로 남기는 것에만 그치지 않도록 노력하고자 한 것이 New Vision에 응시하게 된 이유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제 막 석사 과정을 마치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앞으로 내가 미술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가늠해 보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때마침 2010 New Vision 공모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미흡하나마 본인의 실력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점쳐 보기 위하여 지원하게 되었다.
이미 미술만으로 미술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된 시대에서, 미술을 사랑하는 1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우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미술이라는 장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미술이 가진 본연의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융합하고 있는 다양한 장르와의 관계성을 연관지어 볼 수 있는 눈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가 필요한 이유는 시각성을 토대로 한 미술이라는 장르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시각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또한  일종의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동시대 미술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의 첫 단추로 본인의 석사 논문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 작가 소피 칼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사진-텍스트’를 통해 매체간의 경계, 특히 미술과 문학의 이론적 배경을 가져와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동시대 미술의 지평이 끊임없이 확장되어 가고 있음을 연구했다. 그리고 미술 현장에서 크고 작은 전시에 참여하고 기획하면서 작가와 대중 사이에서 문화의 매개자로서 성장해 나가고자 노력해 왔다. 이러한 나의 노력의 이면에는 어린 시절부터 가져 왔던 호기심,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본질적인 욕구가 함께함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아직은 어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열정과 성실함으로 미술 평론을 향해 한 발짝 내딛고자 한다. 앞으로 미술이라는 장르를 통해, 혹은 그 장르의 범위를 넘어서서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하는 1인이 되고자 한다. 또한 문학 영화 그리고 디지털 문화로 뻗어 나가는 미술의 무한한 경계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평론가이자 미술계의 일원이 되고 싶다. 그 시작점으로 2010 New Vision을 통해 객관적이고 성실한 문화의 창조자이자 관람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입신출세하려는 청년들의 꿈을 일컫는 ‘청운의 꿈’이라는 말은 거창한 미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오늘의 성실함에 녹아 있음을 안다. 푸른 미래를 꿈꾸는 오늘의 달콤함을 잊지 않고 5년, 10년 후에도 꼭 필요한 미술계의 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이번 New Vision 참여를 부족한 나에게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알고 앞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다.

박경린 1984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섬유예술학과 및 부전공 미술사학과 졸업. 현재 홍익대 예술학과 석사 졸업 예정.  

출품 원고 리스트
소피 칼의 ‘사진-텍스트’에 관한 연구/석사 논문/2010
대안과 확장: 16번지와 바틀비 비클 & 뫼르소/웹진 EYEBALL/2010
art@dibrary 전시 리뷰/웹진 EYEBALL/2010
내일을 여는 도전, 내일을 여는 희망, 내일을 위한 비상/마포아트센터 기획 공모전 서문/2010
미술과 패션의 변증법/2009
여자, 그 끝나지 않는 이야기/2009
Welcome to My Wonderland/마포아트센터 기획전 서문/2009
38, 다츠오 미야지마 전시 리뷰/2009
그녀들의 방/갤러리 눈 〈그녀들의 방〉전 서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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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컬처에
처음으로 쓰는 글
글|서 준 호

먼저 파이널리스트 3인에 포함시켜 준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언제나 비전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맘에 들지 않는 갑갑한 현실 속에서 신세타령만 하는 나 같은 ‘인재(?)’에게 이런 공모는 아주 반가운 기회다. 게다가 ‘New Vision’, 즉 ‘새로운(!) 비전’이라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1등만 살아남는다는 세상에서 3등에게까지 기회를 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1명만 뽑았다면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거다. 더욱이 본인보다 훌륭한 사람도 많을 거라는 것 당연히 알고 있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그 전에는 공대를 다녔는데 역학 점수 0점을 받고 잠시 고민한 후 접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그때 친구들은 현재 수 천 만원의 연봉과 새로운 가족이 생겼지만 나는 여전히 비전만 찾아 헤맨다. 몇 안되는 글쓰기 공모전을 훑으면서 “되면 좋고 안되면 조상 탓이니 일단 한 번 내보자”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번 New Vision 공모는 숙제 마냥 기한에 맞춰 원고지 몇 매를 따로 작성하여 내는 것도 아닌지라, 알바로 근근이 입에 풀칠하고 사는 나 같은 예술 노동자에게는 안성맞춤인 기회였다. 그래서 응모했다. 아직 1등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응모해서 다행이다.
지금은 비록 ‘알바’ 인생이지만 그래도 나는 비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에 대한 비전과 삶의 비전을 보여 주는 예술에 대한 비전을 아직도 찾고 있다. ‘빽’이라고는 등 밖에 없고 목구멍이 포도청이지만, 내 삶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해 줄 예술의 힘을 믿는다. 예술은 일상 속에서 보지 못하는 것을 드러내 보이고, 감춰진 것을 끄집어 낸다. 그리고 긍정적인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 보여 준다. 예술이라고 해서 다 그런 것도 아니고 모두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좋고 나쁨을 가르는 평가와 판단 또한 개인의 주관에 달렸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모든 걸 인정하고자 노력하지만 재수 없는 것은 재수 없다. 어쩔 수 없다. 날 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고들 말하지만 재수 없는 사람은 재수 없다. 그런 ‘재수 없음’, 혹은 ‘나쁜 점’‘좋은 점’에 대한 이유를 합리적으로 밝혀, 독자 혹은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평론가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평론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비평은 글, 행동, 전시나 작업 등 모든 활동으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짧은 시간이나마 인터넷 잡지기자로 전시 리뷰도 썼었고, 지금까지 글쓰기와 함께 전시를 어떻게 만들지도 많이 고민했다. 작업도 했다. 전시나 작업 또한 어떤 대상에 대한 내 나름의 비평이었다. 결국 좋은 비평을 위해선 인간이 살아가고 예술이 존재하는 지금 사회와 시대를 면밀히 고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평의 방법 또한 더욱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공부가 필요하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이 떠오른다. 역시나 훌륭한 사람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한다면 또 다른 비평의 시각과 방법이 가능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떠오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무언가 깨닫는다. 그렇다.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석 달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되어 기쁘다. 터무니없는 ‘글빨’과 모자란 ‘깜냥’이 선생님들의 내공으로 말미암아 업그레이드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서준호 1979년 부산 출생.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에 입학.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예술사 과정 및 예술전문사 과정 졸업. 웹진 ABCPaper 기자 겸 에디터 역임. 

출품 원고 리스트
1993년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전 재고-충격과 그 의의, 한계 되짚어 보기/예술사 논문/2009
Project 〈City, Culture, Hybridity - Itaewon〉/〈異胎院 Different Wombs Lodging Station〉전 서문/2009 
젊은 작가들에게 미술 시장의 활황은 어떤 의미인가?/상상마당 매거진/2008 
〈Tommorow in Platform〉 리뷰/웹진 ABCPaper/2007
외 21편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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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이 부지들을 공유함!
강수미|미학,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어쩌면 이렇게 한결 같이 글을 잘 쓸까? 어쩌면 이렇게 대부분의 글들이 정돈된 목소리로, 읽는 이가 대체로 공감할 논점을 균형 잡힌 서술 구조를 통해 전달하고 있을까?
2010 New Vision 공모에 18명 지원자들이 제출한 여러 다양한 형태의 글을 읽어 가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언제나 ‘신인’이라고 생각해 왔던 한국 미술계, 비평 영역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꽤 안정됐다는 사실, 그것은 이번 공모에 임한 다수 필자들처럼 촘촘히 작은 지점에서 말하고 글 쓰고 있는 이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결 같이 잘 쓴 18명 논자들의 글은, 동어반복이지만 한결 같이 잘 썼다. 그 ‘한결 같음’이 문제다. 비평 대상 또는 논제는 대체로 현재 한국 미술계가 생산하는 각종 담론 속에 있고, 평자의 시각은 무리 없이 수긍할 만한 입장을 보여 줬으며, 말들의 무게는 신뢰감 있게 적당히 무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지원자의 글이 성실성으로 넘쳐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실성이 취업 전쟁터에 나온 구직자들의 기능주의적 합리성 냄새를 짙게 풍긴다면, 그 비평 대상 또는 논제의 선택과 서술이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갈무리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다면, 그 말의 무게가 이상하게도 신진 평론가들의 손가락 끝뿐만 아니라 사고의 향방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내게 18명 논자들의 글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렇게 읽혔다. 이유를 찾자면 지원자 중 상당수가 현재 어떤 포지션으로든 여러 매체에 공식적인 글을 쓰는 ‘기성 신인’이라는 점, 대학에 미술평론과는 없지만 예술학과 미술이론과 미학과 사진학과 등에서 공부한 이들이 ‘미술평론가’라는 직업의 한 가능성으로 2010 New Vision에 지원했다는 점, 인터넷을 통해 정보적 지식의 평준화가 완벽할 정도로 실현됐다는 점을 들겠다. 이 점은 역으로 주머니 속을 비집고 나오는 송곳 같은 신인 필자가 귀한 여기 미술계, 분과 학문의 이론을 써먹기보다는 그것을 자신의 주관적 경험과 사유의 지렛대로 삼는 비평 서술이 힘겨워진 현실을 비춘다. 또한 소위 영향력있는 대중매체의 지면에서부터 개인의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이르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장들이 지금 여기의 논자들을 도토리 키 재는 정도의 감수성 사고 상상력 문채(文彩)로 다듬질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게 한다.
이런 와중에 돋보인 논자는 단연 김현호다. 그의 글에서는 꾸준히 사진을 중심으로 자신의 비평을 단련해 온 이의 선명한 주제 의식, 입체적인 관점, 그리고 설득력있는 논리로 가독성 있게 문장을 전개해 가는 힘이 읽힌다. 이전에 다른 비평 공모에서 그의 글을 접했을 때보다, 최근 김현호의 글은 세련된 언어를 통해 논자 고유의 논쟁적 사진 담론을 무리 없이 펼쳐내는 것으로 읽었다. 해서 나는 시간을 들여, 그의 글쓰기가 더 풍성해지길, 더 자신감 있게 쏟아지길 바란다.     
온갖 영역에서 ‘소셜 네트워크’ 형식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그 형식 속에서 나와 당신이 ‘관계’를 맺느라 분주히 말을 뱉어 내는 시대에, 사라지는 것은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개인성’이다. 이때 개인성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사적 주체성이나 센티멘털하게 고립의 방에 침잠한 내면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박하게 말해서, 내가 당신이 아니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당신의 눈빛과 목소리에 깊이 눈 맞추고 귀 기울이게 되는 무엇이다. 또한 반대로 당신이 내가 아니어서 그렇게 되는 어떤 존재 상태이다. 나는 미술비평이 이런 방식으로, 즉 개인성의 보존 속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창발시키는 몇 안되는 영역이라 보는데, 그런 의미에서 신인 논자, 필자들이 좀 더 주관적 경험 세계와 개인성을 언어로 밀어 붙였으면 한다. 시간과 자신 안에서.
연구조사 방법론과
이론적 지평이 관건
임근준|미술·디자인 평론가

미술평론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다케우치 토시오는 《미학사전》에서 미술비평을 다음의 3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재단 비평과 둘째, 인상 비평, 그리고 셋째, 과학적  비평. 긴 이야기를 짧게 줄이자면, 절대주의적 재단 비평과 주관주의적 인상 비평은 이미 20세기 초에 극복의 대상으로 지목됐고 당시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했던 것이 과학적 비평이다. 과학적 비평은 다시 3가지로 나뉜다. 첫째, 예술사회학에 근거한 사회학적 비평, 둘째, 정신분석학에 근거한 심리학적 비평, 셋째, 미술사학에 근거한 역사적 비평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2010년의 시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은, 사회학적 비평과 역사적 비평이다. 20세기를 풍미했던 심리학적 비평은 E. H. 곰브리치 이후 서서히 세가 기울었지만, 사회학적 비평은 문화 연구의 발흥에 힘입어 명맥을 잘 유지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 주류는 역사적 비평이다. 197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발전이 미술사학을 비롯한 아카데미의 제도와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됨에 따라, 비평 활동은 점차 학술적 성격을 띠게 됐다. 게다가 1980년대 후반 이후 탈식민주의 연구 등이 대학의 정규 과정으로 흡수됨에 따라, 사회학적 비평은 역사적 비평의 일부가 됐다고도 볼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변화된 미술평론계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경우가 비평지 《옥토버》와 그 필진이다. 인물을 예로 들자면, 오랫동안 《옥토버》의 편집을 맡았으며 학술 논문, 현장 비평, 전시 기획, 사회 운동을 병행해 현대미술의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미국 로체스터대 미술·미술사학과 교수 더글라스 크림프가 적절하겠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규준에 부합하지 않는 훌륭한 미술평론가를 찾을 수 있다. 평론 관련 정규 교육을 받은 바 없이, 1998년 미국의 무가지 《빌리지 보이스》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 제리 살츠는 수차례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살츠와 가장 큰 대비를 이루는 또 다른 예외적 인물이 문학의 본령에 충실한 평문으로 유명한 데이브 히키다.
하지만, 노력을 통해 누구나 살츠나 히키와 같은 예외적 존재가 될 수는 없는 일. 평론가가 되려면 평론의 이론적 기반이 될 학술 논문을 몇 편 완성하고, 연구 조사에 바탕을 둔 평문을 다작하는 일이 필수다. 따라서 타인의 평론을 평가할 때 나는, 평문 연작을 관통하는 연구조사 방법론과 학술 논문에 드러난 이론적 지평을 함께 본다. 안타깝게도 제5회 New Vision에 응모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위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 몇몇 응모자의 글은 아직도 재단 비평의 시대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론으로 언술되지 않은 개인의 윤리적 가치관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18세기적 사고를 보여준 이도 있었다.(지금은 2010년 7월이다!)
대개의 응모 원고는 인상 비평의 수준에 그쳤는데, 그나마도 짧은 수필에 불과해 평가의 대상으로 삼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응모자들이 드러낸 공통의 문제는, 논의의 대상이 되는 미술 작품을 분석적 언어로 기술하는 훈련이 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편 주술 호응도 못 맞추는 멍청이의 글을 읽을 때는 꽤나 황당했다. 한국어의 기본도 모르면서 평론가가 되겠다고? 탄탄한 필드 리서치를 거친 평문이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문헌 조사를 성실히 수행한 경우는 있었지만, 소위 ‘발로 뛰어 지은 글’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응모자 18인 가운데 가장 단정하게 글을 쓴 이는 박경린이므로, 나는 그를 1등으로 꼽는다. 그의 석사 학위 논문 〈소피 칼의 ‘사진-텍스트’에 관한 연구〉는 제출된 글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다. 칼의 작업을 ‘사진-텍스트’로 분석해 미술사적 위상을 정리한 뒤 1950년대의 ‘누보 로망’ 소설과 비교해 가며 그 전략의 기저를 추적한 논문은, 유희적 작업이 메타 차원에서 드러내는 주제 의식을 논리적으로 잘 포착했다. 그러나 소피 칼의 작업이 언어의 범주를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는 점이나, 이중수동태를 비롯한 학위 논문 특유의 비문이 반복되는 점은 다소 아쉽다. 함께 제출한 여타 평문 가운데에선 〈미술과 패션의 변증법〉이 가장 눈에 띄었다. 구체적 사례, 루이뷔통과 올라퍼 엘리아슨의 〈당신이 보는 눈〉 〈샤넬 모바일 아트〉 〈프라다 트랜스포머〉를 적시하고 그 위선적 전략을 조목조목 비판한 시의적절한 원고다. 그러나 공동 기획한 전시 〈웰컴 투 마이 원더랜드〉의 서문으로 쓴 글은 기대 이하였다. 역사적으로 빼어난 ‘기획자의 글’은 어땠는지 공부가 필요해 뵌다.
2등으론 직관력과 기획력이 돋보인 서준호를 꼽는다. 서준호의 석사 학위 논문 〈1993년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전 재고-충격과 그 의의, 한계 되짚어 보기〉는 꽤 흥미롭기는 하나, 당시 한국 현대미술의 상황을 포스트모더니즘 논쟁과 여성주의 미술의 대두로만 정리한 점이 다소 작위적이고,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실과 전시과를 방문해 파일과 문서들을 직접 조사하지 않은 점 등이 아쉬웠다. 그 대신, 여타 전시 기획과 서문에서 보여준 진취성을 높이 샀다.
3등으론 백곤을 꼽는다. 그는 이미 한국 현대미술계의 기획자, 평론가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를 잡은 인물이라고 봐야 옳다. 자연, 점수를 좀 박하게 줬다.(이런 점에 관해선 백곤뿐만 아니라 김현호도 손해를 봤고, 그 점 미안하게 생각한다.) 백곤의 석사학위 논문 〈디지털 테크놀로지 환경에서의 신체성 연구-사이보그와 디지털 가상신체를 중심으로〉는 꼼꼼히 작성된 가작이다. 하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예술 작품의 선택에 다소 일관성이 부족하고, 주로 미술 작품을 들어 논지를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핵심은 ‘디지털 테크놀로지 환경에서 인간의 신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할 것인가’에 있다고 강변한 점이 논리적 모순으로 느껴졌다. 또한 유사 연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꼽히는 캐서린 해일즈의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됐나》가 참고문헌에 등장하지 않는 점도 의아했다. 허나 〈미디어아트, 전기가 나갔을 때 대처 방안〉 등에서 보여 준 기획력은 보통의 범주를 벗어났기에,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당분간 ‘주례사’ 같은 전시 서문 쓰기는 자제하고 의뢰인 없는 평문 연작을 기획해, 도저(到底)한 행문(行文)에 매진하면 어떨까. 미술평론에 뜻을 품은 모두의 건승을 빌며, 총총(悤悤). 

공모 요강이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반이정|미술평론가

New Vision은 나에게 미술 평론으로의 ‘등단의 길’을 열어 주었던 공모전이라서 애착이 간다. 주최측의 공모 방식 개편에 상응하듯 예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New Vision에 관심을 보인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많은 응모자가 각각 다량의 원고를 보냈으나 대부분은 천편일률적이었고, 변별력이 떨어졌다. 응모자 중에서 몇몇은 대학 과제로나 냈을 법한 글을 내서 오히려 감점을 당했다. 그 중 김현호는 우선 문장력이 훌륭했고 현재적 사건에 대한 기민함이 단연 눈에 띄었다. 특히 노무현의 생전과 사후의 사진을 대비해 분석했던 점은 나의 개인적 관심사하고도 잘 맞아 떨어져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또한 최근 동시대 미술에서 디지털, 합성 등으로 영역을 넓힌 ‘사진’이라는 분야에 대해 흑백 사진이라는 본질적 접근과 아울러 사진이라는 매체와 사회가 맺고 있는 복잡다단한 관계를 부각시켰던 점도 높이 평가한다. 한편 프랑스 작가 소피 칼에 대해 쓴 박경린의 논문은 비단 New Vision 공모전에 나온 글뿐만 아니라 여타의 석사 학위 논문에 비해 성실한 자료 조사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필자의 주관이나 견해, 또한 표현력이 다소 부족한 점은 아쉬웠다. 자기 지식을 열거할 뿐 독창성이 부재하는 아쉬움은 다른 응모작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났다. 그래도 여전히 미술평론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모두들 잘 알다시피 ‘독창성’과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주최측에게 당부하고픈 것은 공모 요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작가와 달리 필자에게 ‘포트폴리오’를 만든다는 것은 난감할 수 있다. 원고의 분량이나 편수 등 양적 제한은 다음 New Vision에서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영국 미술잡지 《프리즈》에서 비슷한 취지로 진행한 신진 평론가 공모 방식처럼, 최근 열린 전시에 대한 리뷰를 써서 제출하는 것도 효과적일 듯하다.


ㅤㅉㅖㅂ반이정의 심사평은 현재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필자의 구술을 토대로 편집부에서 작성했음을 밝힌다.

고금을 오가는 우리 미술의 특질 찾기

좌-작자 미상 <명부시왕오도전륜대왕도> 견본채색 149×92cm 18세기
우-신학철 <유월 항쟁과 7, 8월 노동자 대투쟁도> 캔버스에 유채 286×130.3cm 1991

고금을 오가는 우리 미술의 특질 찾기

글|이 주 헌

전략적 삶이 요구되는 시대다. 전략이란 한마디로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행 계획이다. 과거에 우리는 그리 복잡하게 계산하며 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실천하며 산다. 그러지 않으면 금세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런 까닭에 예술가들도 시대와 트렌드, 시장을 읽으며 창작을 한다. 과거처럼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추구하지만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때로 예술의 본질, 예술의 순수성이 왜곡되거나 사그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 때가 있다.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체성이란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제는 전략적 필요에 따라 정체성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시대다. 이른바 아이돌 스타를 보면 그들의 개성이나 정체성도 시스템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미술가의 정체성 역시 전략적 필요에 따라 재구성되곤 한다. 일례로 얼마나 많은 한국미술가들이 한국적 정체성이라는, 만들어진 정체성으로 세계 미술계의 문을 두드려 왔던가.
솔직히 예술가라고 해서 전략을 무시하고 살라고 할 수는 없다. 전략을 무시하는 것 자체가 전략이 되는 시대에 전략과 담쌓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전략의 목표만큼은 본질적인 가치를 뚜렷이 지녀야 한다. 가만히 관찰해 보면 예술가들이 전략을 동원해서가 아니라, 전략 목표가 그릇되거나 전략 목표의 수준이 낮아서 전략이 순수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실 전략은 가치중립적인 것이어서 그 자체를 나무랄 이유는 없다. 본질과 순수성, 진정성의 상실은 전략이 아니라 전략 목표의 잘못된 설정에서 비롯된다.
경영 컨설턴트 마위젠 베르흐는 구글의 전략 목표를 칭찬하며 이런 말을 했다. “기업들이 설정한 미션의 상당수가 무의미한 것들이다. ‘우리의 목표는 업계 최고가 되는 것’ 등이 그런 예다. 이에 비해 구글은 ‘전 세계의 정보를 체계화해서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유용한 목표를 설정해 놓았다.” 구글의 목표는 이기적이지 않고 호혜적이다. 무엇보다 불특정 다수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처럼 전략을 실행하는 자가 도덕적 당위와 자부심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전략은 매우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수행될 수 있다. 성공의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고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행위 주체의 자부심과 확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섬세한 자각이 필요한 한국적 정체성

그동안 한국성이니 한국적 정체성이니 하는 말이 우리 미술계에서 빈번히 회자되어 왔다. 많은 미술가들이 한국적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애써 왔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그런 시도를 한 작가치고 큰 성공을 거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는 한국적인 가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태도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 미술을 주도하는 서양인들에게 (‘타자’로서라도) 인정을 받겠다”는 비주체적이고 사대적인 전략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잘못된 목표다. 누구나 알듯 예술의 힘은 감동을 공유하는 데서 나온다. 예술가는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재능과 열정을 쏟아 붓는다. 이때 한국 예술가의 작품에서 한국적 가치와 빛깔이 드러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한국적인 것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 예술가가 가져야 할 전략 목표는 이미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한국성, 한국적 정체성을 굳이 스스로를 타자화하면서까지 인위적으로 재구성할 일이 아니라, 우리 문화권 밖의 사람들도 우리가 느끼는 것과 같은 감동을 보편적인 감동으로 느끼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그들의 기준에 나를 맞춰 억지 이해를 구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 내가 서로 동등하게 이해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너와 나, 누구도 타자가 되지 않고 ‘서로 주체’가 될 수 있는 올바른 전략 목표다. 문제는 한국인 작가 홀로 ‘나의 나 됨’을 아무리 외쳐도 다른 문화권에 속한 상대는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시스템이 할 일이다. 시스템이 할 일을 개인이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시스템이 따라와 주지 못하니 개인으로서 작가가 스스로 발언하고 설명하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서양의 기준에 따라 나를 이해시키려 애씀으로써 나를 타자화하는 우를 범하곤 했다.
학고재에서 열린 <춘추>전은 이런 문제와 관련해 시스템이 돌아봐야 할 것, 시스템이 발언해야 할 것, 시스템이 감당해야 할 것에 대한 시스템의 자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크게 의미 있는 전시다. 어쩌면 우리 미술계는 그동안 작가들의 역량과 수준에 비해 평단과 갤러리, 미술관 등의 시스템이 제 기능을 충분히 해오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시스템이 충분히 효율적이고 수준 높은 기능을 해 왔다면, 한국적 정체성의 문제처럼 역사적이고 사회문화적인 이슈는 개인 작가 차원이 아니라 시스템 차원에서 광범위하고도 밀도 있게 논의가 되어 왔을 터이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문제도 시스템의 과제로 인식되어 그만큼 체계적으로 국제 미술계에 소개되어 왔을 것이다. 학고재의 <춘추>전은 그런 점에서 시의적절하고 전향적인 전시일 뿐 아니라 올바른 전략 목표를 갖고 있는 전시라 하겠다.

이세현 <Between Red-84> 캔버스에 유채 200×600cm 2009

우리 미학의 전개, 그 방향성을 보여 주다

<춘추>전은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석파 이하응, 몽인 정학교, 백하 윤순, 황산 김유근 등의 옛 예인들과 신학철 이용백 한계륜 정현 윤석남 이세현 정주영 김홍주 송현숙 이영빈 리경 등 현대 미술가를 모두 11쌍으로 묶어 어제와 오늘의 정서적 미적 조형적 연관성을 돌아보는 전시다. 소위 백색이니 자연미니 하는 상투적인 주제 하나를 구호처럼 내걸고 그 테두리 안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작가와 작품을 나열하는 전시가 아니어서 그만큼 생동감이 있다. 사실 우리 미술에 나타난 정서적 미적 조형적 특질은 매우 다채롭다. 특정한 색채나 형태, 관념 하나를 대표주자로 내세워 우리 미술을 정의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하고 편의적이다.
<춘추>전은 그런 다양한 우리 미술의 특질을 두루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사실 하나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보다 이처럼 있는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특히 다른 문화권 관객의 입장에서는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익숙하지 않은 가치에 대한 주장을 듣기 전에 사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음으로써 스스로 보편적인 공감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대는 누가 찾아주는 게 아니라 감상자 자신이 찾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미술보다 서구미술에 더 익숙해진 오늘의 우리 관객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주입된 것은 늘 편견과 선입견을 낳는다. <춘추>전은 관객들 스스로 한국 미술의 다양한 특질을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맛보게 함으로써 그런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설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한다.
특정한 하나의 주제 아래 묶지 않고 이처럼 고금을 오가는 우리 미술의 특질을 주어진 공간 안에 최대한 집약해 풀어 놓음으로써 이 전시는 또 담론적 가치와 지적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입맛에 따라 다양한 시각에서 감상할 수 있고 그만큼 다양한 가치와 관점의 토대 위에서 토론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처럼 고금을 오가는 감상과 담론의 풍부한 토대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우리의 미학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소화되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잘 보여 주는 전시라 하겠다.
짝지어진 작품들이 나타내는 우리 미술의 특질들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이렇다. 삶에 대한 대관(大觀)적 성찰(신학철의 <유월항쟁과 7, 8월 노동자 대투쟁도>와 작자 미상의 <명부시왕오도전륜대왕도(冥府十王五道轉輪大王圖)>), ‘색즉시공 공즉시색’ 류의 초월적 사유(이용백의 <플라스틱 피시>와 고려 불화 <암굴수월관음보살도(暗窟水月觀音菩薩圖)>), 무위자연과 은일의 정서에 대한 사랑(한계륜의 <From Right To Left>)와 김유근의 <소림단학도(林短壑圖)>), 모든 생명을 동등하게 보는 시선(윤석남의 <개들도 꿈을 꾼다>와 작자 미상의 <방목도(放牧圖)>), 자연의 기와 세에 대한 예찬(정현의 <무제>와 정학교의 <죽석도(竹石圖)>), 사실을 넘어 진실을 보고자 하는 의지(이세현의 <Between Red>와 정선의 <박연폭포>), 주체적 시선에 대한 집요한 추구(정주영의 <인왕산>과 정선의 <인왕산도>), 단순함과 간결함에 대한 동경(김홍주의 <무제>와 이하응의 <묵란첩십면(墨蘭帖十面)>), 필획에서 우주를 보는 태도(송현숙의 <5획>과 윤순의 <초서>), 외양보다는 내면을 그리고자 하는 열정(이영빈의 <탕>과 작자 미상의 <여인 초상>), 강인한 지사적 혹은 인간적 의지(리경의 <당연한 전제, 불온한 확신>과 김정희의 <행서>) 등.
전시 제목을 ‘춘추’로 단 것은 역사의 시각과 같은 거시적 관점, 춘추필법 같은 정확성과 객관성을 중시하는 관점, 계절의 연계처럼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자연스러운 연관성을 찾아 보려는 관점이 반영된 결과다. 거기에 온고지신(溫故知新) 혹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가치를 재발견해 보려는 의지도 담겨 있다고 하겠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학고재라 가능한 전시이기에, 앞으로도 이처럼 시공을 초월해 우리의 본질을 찾는 전시를 계속 보여 주기를 충심으로 기대한다.

그림의 시작, 예술이 되다 만 것들

좌-<그림의 시작_구석에서> 50×60cm 1994
우-<그림의 시작_구석에서> 50×60cm 1996

그림의 시작, 예술이 되다 만 것들

글 | 강수미·미학,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화면 위에 보이는 것은 실재하는 공간과 사물처럼 보일 뿐이지, 화면 위에 실재하는 것은 물감뿐이다. (…) 그러나 천천히 측면으로 이동해 보자. 완전 측면에서 그림이란 수직선 하나뿐이지 않은가? 이 지점이 회화의 불행이기도 하고, 행복이기도 하다.”
2003년 경 김지원은 자신의 작업노트에 이런 글귀를 썼다. 그즈음 그는 별 것 아닌 작은 물건들을 극단적인 시선의 클로즈업을 통해, 엄청난 규모와 초현실적인 양태로 탈바꿈시키는 <정물화. 화> 연작을 그렸다. 예컨대 먹고 버린 복숭아씨가, 240개 조각으로 나뉘어 촬영됐다는 아인슈타인의 뇌 사진만큼이나 가공할 만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식의 비상식적이고, 반(反)양식사적인 정물화다. 그런데 앞선 작가노트의 ‘물감’과 ‘수직선 하나’는, 이렇게 옮겨 놓으니 로트레아몽의 시에 나오는 ‘우산과 재봉틀’ 만큼이나 그 조합이 이질적이고, 그 시기 작가가 그린 정물화만큼이나 현실적 균형 관계를 유추하기 힘든 화두들로 읽힌다. 하지만 여기 화면 위 물감과 하나의 수직선은, 푸코가 ‘니켈 도금된 수술대’라 이름붙인 인식의 체계, 즉 세계의 잡다하고 서로 다른 존재와 사물들이 이성의 단일한 질서로 분류 배열되는 서구 합리성의 체계 위에서 의도적으로 엉뚱하게 조우한 사물들-표상들1)이 아니다. 이를테면 그 체계에 대한 위반 혹은 난센스를 실험한 로트레아몽이나 랭보 같은 초현실주의 시인들의 상징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작가 김지원이 생각하는 ‘그림의 실재’이다. 즉 화면 위에 칠해진 물감, 그리고 그림이 얇은 평면이라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확인할 수 있는 종이나 캔버스의 옆면 혹은 그 수직선이야말로 회화의 환영과 가상, 신화와 이데올로기, 가장과 신비한 비밀을 벗겨 내버리고도 남아 있는 ‘그림 그 자체’라는 것이다.
물론 김지원이 그림을, 단지 화가의 붓질에 따라 표면에 물감이 발린 현실의 납작한 사물에 불과하다거나, 3차원이나 4차원 같은 공간의 다양한 차원들이 ‘눈속임’만으로도 어느 정도 탁월하게 실현되는 2차원 수직 평면일 뿐임을 ‘강조’ 혹은 ‘폭로’하는 입장에서 그 같은 회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입장은 실제로는, 20세기 초중반 형식주의 모더니즘 회화가 추구했던 방향이거나, 20세기 중후반, 앞서의 모더니즘 미학을 공박하면서 회화의 객관적 -미술 내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적 현실- 차원을 누설하고자 했던 포스트모더니즘 회화의 그것이다. 전자가 추상의 ‘텅 빈 캔버스’로 귀착했다는 사실, 후자가 ‘창조적 이미지 불모(不毛)’의 지적 게임들과 혼성모방 이미지만 난무하는 ‘기생적 화면’으로 마감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그 경우, 김지원의 그림들이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가 그림에 대해 주장하는 바들이, 지금 격렬한 공감각적 파생 실재 효과를 만들어 내는 이 고도 디지털 영상 시대에 회화를 무조건 보수하려는 자기 지시적 정의(Self-Refe rential Definition)도 아니며, 그림의 필요충분조건을 창조 없는 창조나 패러디 인용, 전유 해체적 합성에 때려 맞추는 이완된 태도도 아님을 눈치채게 된다.
그럼 김지원 그림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가 그림의 실재로 꼽은 ‘물감-그림의 물질성’과 ‘하나의 수직선-그림의 평면성’은 작가의 개별 그림들에서 어떤 상태가 되는가? 혹은 이제까지 어떤 다른 이미지와 개념, 소재, 작가 의도 등을 거치며 출현해 왔는가? 우리가 이하에서 논하려는 것은 이런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아니다. 하지만 가능한 질문이자 가능한 답이기는 하다.

<무제> 천에 유채, 실크스크린 118×228cm 2009

불명료한 마음, 예민한 바디

김지원의 작가론을 쓰기 위해 작가의 포천 작업실을 방문한 그날 밤에 확인한 메일 박스에는 ‘북쪽에서’라는 제목을 달고 작가로부터 한 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거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었다.
“아까 이야기 중에 강샘의 이론적인 머릿속이 무언가 명쾌해지는 것 같다 하셨는데 꼭 명쾌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작업실에서 그림들을 보다가, 언뜻 뇌리에 떠오르는 김지원 미술의 구도 같은 것이 있어 그리 말했던 것인데, 작가는 그 ‘이론적 머리’라든가 ‘명쾌함’이라는 것이 못내 불편했던 모양이다. 메일을 보며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읽을 당시에는 나 또한, 아주 정직하게 말해서, 이 작가의 작가론이든 작품론이든 ‘어떤 것도 쓸 수 없다는 말인가?’라는 불편한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김지원 자신이 미술이론이나 비평 언어의 명료한 단언으로부터 지켜내고자 하는 그 미술의 본질, 달리 말해서 논리를 초과/탈주해 있거나 말을 넘어/이탈해 있는 이미지들의 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것은 아주 많거나 반대로 거의 없어 보였다.
2010년 《월간미술》 6월호에 이영욱 전주대 교수는 <김지원 그림 그냥 읽기>라는 글을 썼다. <아티스트 리뷰>란에 쓴 글이니만큼, 분명 그 글은 비평의 성격과 기능을 띠고 있을 텐데, 제목에는 ‘그냥’이 바로 그냥 직설적으로 들어가 있고, 본문에는 작가노트에서 인용한 문장과 그림들의 여러 제목, 필자의 단상이 성글게 짜여 있다.2) 거의 시(詩)에 가까운 글로 읽힌다. 그 글을 읽으며 나는 약 2달 전 있었던 예의 작업실 방문과 메일을 상기했고, 이렇게 말하면 묘하게 들리겠지만, 김지원의 그림과 그것을 ‘그냥 읽기’한 이영욱의 글이 꽤 조화를 이룬다고 스스로에게 설명했다. 말하자면 명쾌한 논리로 작품을 개념 틀 내에 질서 짓는 비평의 독주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경계하는 작가의 작품론으로, 이영욱 식의 접근법은 김지원의 회화와 자신의 글 양자에 비평의 점잖은 거리감은 물론, 시적 의미의 풍요까지 얹어가며 성공했다고 본 것이다.
내가 이 글에서 갑자기, 아마 독자들에게는 사적으로 들릴 만한 작가와의 에피소드, 그리고 다른 필자의 글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 -그러니까 메타 비평이라 할 수 없는- 를 밝히는 이유는, 주관적 감상도 내면의 어떤 심정을 고백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내게는 김지원의 그림이 가시적으로 내비치는 그 표면의 다양하고 이질적인 모티프들, 그리기의 방법과 효과, 감각적 질과 미적 경험 요소들이 작가가 원하는 만큼, 또한 필자 이영욱이 그렇게 조응했던 만큼 분석적 읽기를 무화시키거나 거추장스럽게 만드는 지점이 있음을 인정할 의도밖에 없다. 저기 앞에서 내가 김지원 그림이 무엇인가를 묻고,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이 아니라 가능한 답을 찾아보자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요소들에 기인했다.
김지원의 최근작을 보면 맨드라미, 초대형 함선, 공항 활주로의 비행기 트랩이 모티프로 잡힌다. 작가는 이것들을 어떤 의미의 구성물로서가 아니라, 또한 어떤 풍경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화면의 전체이자 주인공으로 가시화한다. 200호 크기의 캔버스 전면을 장악하고 있는 녹색과 붉은색, 흰색 물감의 맨드라미 밭, 수직으로 서있는 캔버스의 평면만큼이나 막막하게 감상자의 정면 시선을 향해 갑판을 펼치고 있는 회색과 청색 물감의 함선, 마치 기하추상의 그것처럼 단색조 배경 위로 그 화면을 절개하는 각종 선들이 겹치면서 겨우 그것이 무엇인지만을 암시하는 비행기 트랩. 이렇게 김지원의 모티프들은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맥락을 구성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소재 또는 시각적 요소의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 시각성(Visuality)이자 감각의 현존성(Presentness)을 구현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한여름 태양 아래서, 웃자란 잡초와 야생 꽃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 풀밭을 어질어질 걸을 때 겪는 눈을 찌르고, 종아리를 까칠하게 긁어대는 빛과 촉각이 맨드라미 그림(<맨드라미>, 2005~2010)에는 진동한다. 또 우리가 약속된 범위나 한계, 종결을 모르고 어쨌든 무엇인가를 해야만 할 때, 가령 사하라 사막에서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야 하거나, 수용소의 가드펜스가 어디까지 처져 있는지 모르면서 무조건 탈주를 위해 뛰어야 할 때 느낄 수밖에 없을 폭력적인 무한의 공간이 김지원의 함선 그림(<무제>, 2009)에 현상돼 있다. 무기력하고 권태로운 기분과, 습도가 꽉 찬 실내에서 느끼는 답답한 존재감이 지배하는 비행기 트랩 그림(<무제> 2009)을 거기에 덧붙여야 하고 말이다.
미학적으로 가치가 크지도 않고, 사회적 의식과 직결되는 내용 또한 희박해 보이며, 낭만적 감수성 면에서도 그리 탁월해 보이지 않는 소재들을 가지고, 이토록 우리 지각 기억에 저장돼 있는 어떤 경험들을 감각적이고 구체적으로 상기시키는 시각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김지원 회화의 힘이다. 아니, 비단 이 작가만이 아니라 뛰어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구사했던 그리기의 규정 불가능한 저력이다. 그 힘을 보다 실증적인 언어로 설명하면, 화가의 머릿속에서 불명료한 상태로 있던 주제나 모티프가 물감과 평면으로 이루어진 회화라는 예민한 육체와 뒤얽혀 구현될 때, 선긋기와 붓질 같은 수행(Performative) 과정을 통해 행사되는 파워이다. 김지원의 물감 묻은 붓은 단지 시각적으로만 유사한 것을 그려내지 않는다. 예컨대 맨드라미가 흐드러지게 핀 것 ‘처럼’ 보이거나, 배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와는 달리 그의 붓질은, 실제 우리와 외부 세계의 관계를 주도하는 오감(五感), 그리고 현재의 지각 경험과 과거의 기억소, 이 양자를 동시적으로 자극하는 이미지 세계를 단조로운 평면 공간에 구현해 낸다. 때로 그 과정은 물감을 덩어리지게 쌓아올리며 형상의 다채로운 질감을 거칠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도 하고,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해 신경질적으로 물감 피막을 찢어 내며 예리한 묘사 선을 그어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순간의 감각적 퍼포먼스’를 그림이 완성된 사후에, 그것도 작가 아닌 타인이 언어로 설명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비록 명쾌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김지원 작업에 대한 이런 식의 해석은 그의 회화를 정의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요컨대 작가가 제시한 그림의 실재로서 물감과 평면, 그 단순한 물질적 조건이 내가 제시한 그림의 규정 불가능한 저력으로서 수행성(Performative Power), 즉 당사자인 작가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해명하기 힘든 복잡한 ‘즉흥의 메커니즘’ 속에서 상호 연동하면서 출현하는 것이 김지원의 그림이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그것은 비단 그 작가만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라고 반박할 것이다.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바넷 뉴먼이나 애드 라인하르트 같이 물감의 질료적 속성과 2차원 평면이라는 회화의 주어진 조건을 그림의 자체 주제로 탐구했던 다수의 형식주의 추상 화가들은 거기서 제외해야 한다. 또 워홀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처럼 기계적 이미지 복제 과정을 회화에 도입하거나 모방했던 팝 아트 작가들도 거기에 들지 않는다. 물론 결정적으로, 죠쉬 스미스나 로라 오웬스 등 “만약 회화가 죽었다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그 죽은 시체 주변을 뒤지는”3) 포스트 모더니스트들, 혹은 개념적으로 기성 회화의 패턴이나 그리기 조건을 분석한 그림을 그리는 동시대 젊은 작가들을 모두 열외 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회화의 수행성은 관념보다 미천한 육체의 흔적이거나, 비과학적인 관습이거나, 탈신화화시켜야 할 전통이거나, 해체의 참고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지원 같은 작가들, 달리 말해서 여전히 그리기의 우연성 불확정성 모호함에서 답답함이 아니라 쾌락을 느끼는 이들에게, 그 물감 평면 행위 시간이 카오스처럼 몰려드는 그리기의 역장(Force-Field)은 ‘그림의 시작’이다. <맨드라미> 연작은 유독 김지원의 그림에서 그런 종류의 쾌락을 감상자가 대리 경험하기 좋은 작품들이다.

<맨드라미> 천에 유채 228×228cm 2008

그림의 시작-구석에서

오랜 전 쓴 글에서 작가 안규철은 동료이자 후배 작가인 김지원의 독일 유학 시절 그림과 그 이전 한국에서 그렸던 그림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오랫동안 그를 놓아주지 않는 대(對)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진술에 대한 무거운 의무감,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의 갈등과 같은 난제들을 유보 (…) 어느 날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한 사물을 옮겨 그리는 행위가 이 세계 속에 자신의 존재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새롭게 흥미로운 기회가 될 것인가 아닌가 하는 스스로의 판단 (…) 다시 말해서, 머릿속에 있는 어떤 메시지를 남에게 전달하기 위한 1차원적 서술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리는 과정이 자신에게 가져다 주는 메시지를 받기 위해서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4)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흥미로운 점을 추출할 필요가 있다. 첫째, 김지원의 회화가 앞서 내가 주목했던 그리기 자체의 수행적 과정과 파워에 강조점이 주어지기 이전에는,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메시지를 서술하는 경향을 띠었다는 점이다. 둘째로 안규철의 전언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전시를 통해 쉽게 마주치는 김지원의 구체적 지각경험 가득한 그림들, 예컨대 <맨드라미> 같은 그림이 독일에서의 작업에 맹아 상태로 있었다는 점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그림에서, 그리는 과정 자체가 그림의 주체인 화가를 반대로 주도하는 그림으로 김지원의 작업 방향이 이행했다는 안규철의 판단은 아마 당시에도 예리한 분석이었을 것이며, 현재 이 작가 그림의 특수성을 오롯이 포괄하는 해석이다. 그리고 이미 나는 그러한 시각에서 김지원의 2000년대 최근작을 비평했다. 그러니 이제 들여다 볼 부분은 과거 사회적이거나 도덕적인 진술 혹은 메시지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김지원의 그림이다.
아마 이런 분류에 가장 가시적으로 들어맞는 작품은 김지원이 대학 4학년 때 그린 <출근길이 상쾌하십니까>(1987)일 것이다. 5공화국 군사정권 하에서, 대학생들이 주도하는 민주화 운동이 극점에 달했던 그 시기, 김지원은 예의 그림에 흰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방독면을 쓴 채 푸른 아침 출근길에 나선 남자 셋을 그렸다. 방독면의 직접적인 기괴한 형상만큼이나, 그 그림은 시각적으로 자극적이고, 소재가 되는 작가의 메시지 또한 자극적으로 읽힌다. 이를테면 한쪽에서는 대의민주주의 투쟁이,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산 입에 거미줄 칠 수 없는’ 생활 투쟁이 팽팽한 가운데, 작가는 그림(과 그 비아냥거리는 듯한 제목)을 통해 후자에게 냉소적 말을 건넸던 것이다. 당시 성완경은 이에 대해 “김지원의 회화는 이처럼 1980년대라는 한 시대의 얼굴을, 그 ‘세월의 표정’을 그려 보여주고 있다.”5)고 상찬했다. 하지만 김지원의 이런 시사성 강하고 서술적인 그림은 심광현의 시각에서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면서 “육체와 화면이 부딪힐 때 나타나는 공간적인 방전, 두께나 밀도와 같은 면이 여전히 희박하다. (…) 그의 그림들은 회화적인 특성보다는 일러스트적인 측면이 강하며, 일종의 경구(警句)적 성격을 지닌 우화와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6) 하는 한계로 비춰졌다. 두 평자의 비평적 시각이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김지원의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그림들이 현실적 논평을 포함했고, 삽화적으로 기능했으며, 상대적으로 회화 내재적인 감각 질을 성취하는 데는 취약했다는 점을 유추한다.
그런데 나는 이들의 비평과 논쟁하기보다는 제3의 해석을 내놓고 싶다. 물론 <출근길이 상쾌하십니까> 같은 1980년대 말 그림들, 그리고 대한민국 도시의 인공적이면서 부조리한 일상 풍경을 그린 <무거운 그림, 무거운 풍경> 연작이나 <34×24> 연작, <비슷한 벽, 똑같은 벽> 연작 등 1990년대 다수 그림들은 다분히 대 사회적 논평으로 읽히고, 이미지를 사용한 비판적 메시지로 다가온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지목해서 1990년대 중반 그린 <그림의 시작-구석에서>는 김지원이 ‘그림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림이라는 실재’를 형식이자 내용으로, 또는 그 둘이 내재적으로 겹쳐진 구조로 만들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분명 심광현의 보기로 따지면 일러스트 같고 우화적인 이 그림에서 형상은 그림 속 그림, 요컨대 메타 회화적 내용을 구축하기 위해서 동원된다. 그리기는 수직 모서리를 가진 평면 위에 물감 칠을 하는 행위이며, 원근법에 따라 깊이 들어간 듯 보이는 3차원 그림의 공간은 평평한 2차원 화면일 뿐이라는 진술 말이다. 그것이 김지원이 서술적 형상 회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소위 ‘회화 그 자체’를 매 순간 그림 위에서 실현하는 지각 경험의 수행성 회화를 만들어낸 ‘그림의 시작’이다.
모든 형상이 삽화적인 것은 아니고, 회화적인 특성이라는 것이 반드시 그린버그식 물질성과 추상 형식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런 이분법적 판가름을 넘어서, 김지원의   <그림의 시작-구석에서>가 시작했고, <맨드라미>가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보이는 제3의 회화적 사건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이미 1960년대 리히터의 회화에서 만개한 풍요로운 지각경험의 사건이고, 키퍼의 회화에서 고도의 복합적 구조로 중층화된 ‘이미지-텍스트’ 사건이기도 하다. 이 작가들은 현상, 관찰, 사태 자체, 그리기, 말하기, 느낌, 경험을 그리기 과정 속에서 치밀하게, 그러나 일거에 확보한다. 그 과정의 치밀함과 일거의 단호함이 김지원의 최근 그림들에도 있다. 물론 그와 같은 태도와 힘은 우리가 이렇게 긴 글 속에서 가능한 답을 찾아보려고 했을 때, 처음 들여다봤던 그 최근 그림들이 아니라 역순으로 이제야 논했던 <그림의 시작-구석에서>에서부터 비축됐을 것이다.
작가는 어딘가에서 “예술이 되다가 만 것들을 다시 그린 그림”이 자기 그림의 내용이라 했는데, 이야말로 ‘예술이 되는 구석(Corner, Minority)의 시작점’이라고 나는 쓰겠다.

미술의 시각성과 의미의 구현

좌- 김온 〈열리지도 닫혀 있지도 않는 육면체의 책〉 2002. 다다이즘은 시에서 기존 문법을 급진적으로 파괴, 의성어나 말장난으로 이루어진 작품 등을 보여 준다. 한 장에 종이에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텍스트를 타이핑했다.
우-마르셀 뒤샹 〈샘〉 혼합재료 63×48cm 1964.

미술의 시각성과 의미의 구현

글|김백균·중앙대 예술대학 교수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대학에서 미학과 예술론을 가르친다. 동양미학을 공부했고 학부에서는 그림을 그렸다. 학부를 다니는 동안 예술에 대한 질문을 무수히 던졌지만, 당시 소통 부재의 미술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숨 막히는 자폐적 공간을 피해 고전의 세계로 숨어들어갔다. 지금 현재의 많은 혼란스러운 모습들이 걸러진 고전의 세계는 이상이 집약된 세계이니 얼마나 명징하고 우아한 세계이겠는가. 그러나 고전의 세계가 매혹적이기는 해도 그것은 가상의 세계이다. 고전의 세계는 고전 그 자체로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되는 세계이므로 여전히 현재의 문제 안에 있다. 고전은 오늘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혼란스러운 세계를 피해 고전의 세계로 숨었지만, 그것이 현재의 문제임을 자각하는 순간 나는 다시 현재의 세계로 도로 튕겨 나왔다. 나는 지금 여전히 혼란한 현재의 세계 속에 있고 미술을 중심으로 세계를 본다.
작년에 잠시 뉴욕에 다녀왔다. 미국의 경제가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문화 속에는 여전히 사람을 끄는 향취가 있었다. 그들의 문화에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의 이야기, 그들 자신만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생동하고 향취가 난다. 이 점을 통해 우리 현대미술의 상황을 반추해 보면 오늘날 우리 현대미술이 지닌 문제점이란 바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의 형식을 창출하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개개인의 삶을 살고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니 우리가 표출하는 모든 표현이 나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 그 ‘나’가 진정 나임을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혹 내가 내 팔을 흔든다고 착각하며 다른 사람의 팔만 열심히 흔들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술의 이름으로 유행만을 쫓아가는 패션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다양화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여전히 근대도 극복하지 못한 의식 속에 살고 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을 멈출 수 없었다.
모든 질문은 나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지만, 그 답은 내 안에서만 찾아지질 않는다. 자신을 보기 위해서라도 거울이 필요하다. 그러나 거울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앞뒤 좌우가 뒤바뀐 이미지이다. 우리의 현대미술도 그 전도된 자아 인식을 제자리로 탈바꿈해 형식을 구성할 수 있는 지점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아가 드러날 것으로 생각된다. 비평의 역할이란 바로 그 전도된 세계를 공모의 관계에서 반추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거리를 둔 지점에서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연재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나의 비평의 기준에 관한 것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많은 평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비평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을 많이 보지 못했다. 많은 글들이 작품의 가치를 근거 없이 무단으로 재단하거나 어떤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미술작품을 해석한다고 여겨졌다. 그것은 작품의 가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작품을 빌미로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드러내는 것이다. 비평은 학문이 아니다. 따라서 주관적 가치판단이 드러나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지니고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어차피 나의 삶 또한 고고한 고전의 이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갯벌과도 같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이러한 비평의 역할이 나의 현실 참여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현대미술의 ‘언어 놀이’

성곡미술관에서 〈언어놀이〉전이 막을 내린 지 이미 석 달이 지난 시점에서 이제야 그 전시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게으름 탓이다. 전시 시작순간부터 무언가 이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여름 내내 이런저런 일에 치여 결국 이제야 쓰게 되었다.
대중의 열화와 같은 호응도 미디어의 열광적인 환호도 없었던 〈언어놀이〉전은 전시가 끝난 후 연이은 수많은 다른 전시들 속에 파묻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빠르게 잊혀져갔다. 물론 형식적 리뷰를 제외하곤 그 사후 평가를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전시의 좋고 나쁨을 떠나 전시가 끝난 후 그 반향 없음이 오히려 사람을 더 맥 빠지게 만드는 법이다. 전시의 평가는 그 전시에 진정한 생명력을 불어 넣어 사회 안에서 계속 살아 숨 쉬게 한다. 적어도 내 관점에서 〈언어놀이〉전은 한국 현대미술 담론의 성감대 혹은 상처를 건드리는 주제를 내건 전시였다. 그렇기 때문에 반향 없는 관객 또는 미술계를 향한 전시의 일방적 구애가 한국 미술의 변태적 양상처럼 비쳐졌다.
전시의 예술적 성취의 문제를 떠나 예술에 있어서 이미지와 텍스트라는 오래된 문제를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로 다시 불러 온 〈언어놀이〉전은 그 주제만으로 상당한 이슈를 안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지표들, 예를 들면 ‘예술’과 작품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 그리고 동시대성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과 반성 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그 주제 안에 내포되어 있고, 이것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전시를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으므로 〈언어놀이〉전이 몰고 올 반향을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 터였다. 이 전시를 지금 다시 살펴보고자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현대 예술이 전위의 기치를 내거는 순간부터 매순간 양식의 전복과 의미의 전도는 이미 예상되었으므로 순간마다 변화하는 양식 그 자체에서 예술평가의 기준을 찾을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술의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
이 글의 의도는 양식 너머 양식 사이의 내밀한 의식 사이로 흐르는 예술적 가치의 기준 같은 것을 찾고자 하는 것에 있다. 이것은 움직이는 세계를 바라보는 움직이지 않는 시선의 발견과 같은 것이다. 어찌 보면 그래서 허망한 시도일 수 있다. 세계 자체가 움직이는데 시선이 움직이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다. 그러나 변역(變易)의 세계를 불역(不易)의 원리로 설명하는 것처럼, 그것을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원리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비평의 목적이 평가에 있다면 비평문이 지향하는 지점 역시 작품을 둘러싼 공모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논자만의 관점이 드러나야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언어놀이〉전은 문자와 언어의 문제가 현대미술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드러나는지 그 과정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전시의 기획이 동아시아문화학회(회장 송미숙)의 학술적 담론에서부터 출발한 만큼 미술에 있어서 ‘세계 언어로서의 추상(Ab-strakte Kunst als Weltsprache)’과 그 추상화 과정 속의 ‘문자’의 문제를 한국의 현실 속에서 탐색해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전시에서 제기한 문제 자체가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이식된 문제였기 때문에 새로운 실험을 감행하는 전시가 아니라, 이 문제가 어떻게 우리에게 수용되어 다른 문화적 조건 속에서 어떠한 새로운 이해를 얻고 실천으로 연결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전시는 전체적으로 어떤 정신적 새로운 충격을 주는 시도보다 그에 대한 주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며, 대체로 형식적 차용에 그친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그 중 두 작가의 작품이 나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겼다.
김온의 〈매미울; 음Ⅰ,Ⅱ〉 같은 작업은 음성과 의미에 대한 관습적 의식을 뒤집어 언어와 문자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환기 시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작업에서 문자는 읽어지기를 기다리는 혹은 들려지기를 기다리는 오브제로 쓰인다. 이것은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를 쓰는 주체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객체의 입장으로 감정이입하여 그 객체의 입장에서 바라보게끔 함으로써 주체와 객체를 전도시키는 방법이다. 이때 주체가 발성하는 음성이 주체의 능동적 행위에 의해 나왔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도리어 객체의 입장을 받아들여 수동적으로 음성을 발성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럴 때 주체의 입장에서 특정한 음성(현상)을 주관적으로 의미화하는 과정이 차단되고, 종이 위에 쓰인 텍스트의 원리에 의하여 주체는 녹음기를 재생하는 것처럼 기계적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이게 위장하는 것이다. 이는 무한히 반복되는 의미 없는 매미울음 소리가 의식의 통제를 받지 않고 무의식의 근저에서 자동기술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장치를 마련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 작업은 나로 하여금 두 가지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선행 작업을 연상시켰다. 하나는 아방가르드 음성-철자시 형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뒤샹의 〈샘〉이다.
현대예술에서 무의미(무의식)의 의미화라는 발상이 양식으로 드나난 최초의 양태는 1916년 7월 14일 취리히 다다 행사장 ‘카바레 볼테르’에서 이 그룹의 창시자였던 후고 발(Hugo Ball, 1886~ 1927)의 퍼포먼스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마법사 모자를 쓰고 마분지로 몸을 감싸고 천천히 무대 위에 올라 아무 의미 없는 단어로 이루어진 시를 낭독했고, 관객들은 부동의 자세로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이 자리에서 후고 발은 자동기술적 시(Poㅤㄹㅙㅌe Automatique), 동시적 시(Poㅤㄹㅙㅌe Simultan?를 낭송했다. 의미 없는 소리나 철자만으로 이루어진 작품, 의미의 제거가 또 다른 의미가 되는, 혹은 의도가 의미가 되는 작품, 기존의 시에 관한 문법이 파괴되고 의성어나 말장난으로 의미의 장이 전도되는 그 급진성이 끊임없이 부각되는 작품들은 무엇보다 ‘재현(representation)’의 이상, 즉 플라톤주의의 이분법적 시각과 그 주술로부터 벗어나려는 자각이 전제되어야만 그 반동의 의미가 드러난다. 언어의 개념이 지시하는 사물에 대한 재현의 의미가 무너져 내리는 그 지점에서 의미 없는 음성과 소리가 의미화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재현론이나 모방론은 실재(real)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한 것이다. 서구의 문학 전통에서 그 실재에 대한 표현 방식은 문자에 대해 음성을 우위에 놓은 의식으로 나타났다. 문자의 개념적 가시성보다 음성으로 표현된 말이 ‘살아있는 정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전제가 우선하는 것이다. 문자로 쓰인 단어는 영혼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살아있는 말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은 말로부터 ‘숨’이나 ‘영혼’을 제거하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철자는 목소리가 없고, 생명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에게서 문자는 참된 지식이 아닌 지식에 대한 가상만을 가져다주거나 혹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상기시키는 작용을 할 뿐이다. 말의 청각성은 근원적이며 문자의 가시성은 2차적이라고 여기는 이러한 사고는 쟈크 데리다가 지적한 것처럼 “말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듣는” 경험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체의 구술적 감각 체험에 기반하고 있다. 이때 말의 기호로서 문자는 언어의 소리를 충실하게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며, 소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도구로 쓰이면서도 스스로는 어떤 본성도 가지지 않아야 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매미울;음Ⅰ,Ⅱ〉의 의식의 전도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개성 없는 성격이나 수동적 특성으로 이해된 문자에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즉 말하는 주체와 객체의 전도를 말과 문자의 그 주종 관계의 해체에 적용하여, 주체의 무거운 의식의 짐을 내려 놓는 쾌감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매미울;음Ⅰ,Ⅱ〉의 동어반복적 무의미의 후렴구는 유희적 쾌감을 증폭시켜 나가는 장치로 이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면서 드는 강한 의구심은 이처럼 재현적 사유와 의식적 사고에 반발해야 하는 어떤 필연적 이유가 작품의 형식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고 있냐는 것이다.

윤동천 〈그림, 문자, 공공〉 (부분) 1998

심미적 쾌감, 감각적 쾌감

이로 인해 나의 연상은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것은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 관한 것인데, 보이는 현상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각적 의미의 환기를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내 의식의 한편에 환유로 떠오르는 것이 뒤샹의 〈샘〉이다. 오늘날 뒤샹의 〈샘〉에 대한 가치 평가는 대부분 그 ‘레디메이드’의 작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샘〉의 예술적 가치가 바로 ‘레디메이드’를 전시장으로 옮겨 놓은 그 배짱과 ‘충격’에 국한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가치 평가는 사회학적인 것이지 예술적인 것이 아니다. 의식의 전도를 가져오는 충격은 단지 예술 분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곳곳에서 순간순간 드러난다. 그러한 모든 의식의 전도가 가져오는 충격이 예술의 범주에서 논의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예술이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서양의 예술론에서 예술에 대한 전통적인 질의에 대한 대답은 주로 둘로 귀결된다. 하나는 예술이 진리와 관계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즐거움과 관계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말하면 ‘유레카’의 경우처럼 진리의 인식의 순간에 심리적 쾌감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진리와 즐거움이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것만도 아닐 것이다. 예술이 인식의 문제 즉 진리와 관계한다는 말은 실재와 환상 그리고 그 드러남의 방식인 ‘재현’에 관한 좀 더 많은 논증이 필요한 말이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고, 그리스시대 시가 뮤즈여신의 홀림에 의해 다다르는 황홀한 상태, 즉 인간과 신의 교감 방법이라고 여겨질 때 운율과 리듬에 의해 환기되는 즐거움을 예술적 효과라는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자.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예술적 영감이란 라틴어 ‘Inspirato’이며 그리스어는 ‘Enthousiasmos’이다. 예술적 영감의 상태가 즉 신비로운 힘과의 교감 상태라고 여긴다면 그 흥분 상태에서 예술적 효과가 발휘될 것이다. 흥분이란 이성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반응이다. 몸의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쾌감은 보다 심리적인 것이고 이것에 대한 추구에서 나온 가치를 심미적(審美的)이라고 부른다.
예술적 효과는 감각적 쾌감을 따라 온다. 따라서 뒤샹의 〈샘〉이 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예술적 가치의 입장에서 설명될 수 있다면 그것은 감각적 쾌감이 만들어 내는 의미의 지점일 것이다. 〈샘〉이 그 예술적 가치를 부여 받는 순간은 남성 소변기 일 수밖에 없는 시각적 필연성과 정상적 위치에서 90°로 눕힐 수밖에 없는 공간적 필연성, 그리고 ‘샘’이라는 이름이 부여될 수밖에 없는 개념적 필연성이 만나 또 다른 우리의 감각을 생성시키는 그 지점일 수밖에 없다. 90°로 눕혀지며 드러나는 눈부시게 하얀 소변기의 표면이 만들어내는 우아한 여성적 곡선, 그 여성성에 뿜어내는 배설의 쾌감이 소변기의 수동적 입장에서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면 〈샘〉은 예술작품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설은 주체의 입장에서 나가는 것이므로 배설의 대상이 주어져야 한다. 〈샘〉은 그 배설의 쾌감을 단순히 주체를 설정하고 그것을 구상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설을 받아주는 하나의 수동적 오브제로 모든 것을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배설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나가는 것에서 그 쾌감이 증폭된다.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이 명명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여기에 있다. 분수처럼 폭발적으로 튀어 오르는 분출이 전제되어야 배설의 쾌감이 설명될 수 있다. 이처럼 어떤 작가의 의도 즉 주제와 의식이 작품에 형식으로 이식되어 들어감으로써 〈샘〉은 독립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한 발 더 상상의 나래를 펴면 생리적 배설뿐만 아니라 정신적 배설 또한 같은 원리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모든 인식과 표현이 즐거움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단순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감각적 코드로 접근하여 삶의 보편적 의미에 가 닿는 무수히 중첩된 의미의 영역에서 우리는 예술적 가치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매미울;음Ⅰ,Ⅱ〉로 돌아가 보자. 이 작품 또한 〈샘〉과 마찬가지로 주객 전도 형식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샘〉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부터 생성되어 또 다른 의미를 파생하는 몸의 감각으로부터 구성된 장치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작가가 비록 그러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예술 작품으로 드러나기까지는 보편의 원리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형식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생각과 의도가 가슴 속에 있다 할지라도 형식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다. 결국 〈매미울;음Ⅰ,Ⅱ〉는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이 아니라 이성적 계산에서 나온 개념의 병치가 되어버렸다. 후고 발과 뒤샹의 작업에 대한 오마주가 개념과 개념이 만나 감각을 환기시키는 쪽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개념과 개념이 만나 또 다른 개념을 만들어 버리는 개념의 생성 쪽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작품은 대개 독백에서 멈추게 된다. 독백이 의미의 영역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작품 안에서 작품의 표면적 양식을 떠나 다른 감각 세계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언어놀이〉전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처럼 자기고백의 지점에 멈추어 있다는 것이다.
문자가 이미지가 되는 지점에서
이에 비해 윤동천의 〈도대체 우리나라〉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언어로 혹은 문자로 작업을 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 문자가 지닌 이미지를 통해 우리의 육체적 감각을 환기시키는 어떠한 지점에 가 닿는다. 그의 작업은 문자의 가독성과 가시성에 의하여 운용된다. 만일 그의 작업에서 말 그대로 그가 문자로 제시하는 이야기의 표층을 따라 그의 작품 세계에 들어간다면, 예를 들면 화면에 병치된 짝지어진 단어들 그 중에서도 잘못된 짝짓기를 구별하는, 문자 그대로 제시된 길을 따라간다면, 그래서 그 조크에서 느껴지는 유머나 위트를 즐기고 그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에서 통렬한 기분을 느끼는 곳에 머문다면 작품이 진정 던지고자 하는 그 어떤 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냉소와 비판, 그리고 조크는 일간지의 시사만평에서도 매일 접할 수 있는 것이고, 일간지의 시사만평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져야 그의 작업이 예술의 영역에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문자 그대로의 개념미술가는 아니다. 아니 작업의 시작부터 언어를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펼쳐 나옴으로써 생겨나는 어떠한 이미지를 자신의 작업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텍스트와 이미지의 차이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작업 태도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차이에 대한 의식을 선명히 드러냄과 동시에 문자의 가독성과 가시성을 어떻게 운용할지 그 방법론의 제시로 이어진다. 문자란 그 자체로 가시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동시에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언제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지칭한다. 우리는 문자의 가시성을 초월함으로써만 의미의 표층에 도달한다. 문자를 읽는다는 것 역시 문자의 시각적 형상을 읽어낸다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의미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문자를 읽는 것은 언제나 그 문자 너머의 의미 혹은 그 문자를 기록한 사람의 의도로 향할 수밖에 없다. 행간을 읽거나 자간을 읽는 것 또한 같은 이치가 된다. 문자의 가시성은 문자가 읽히는 조건임과 동시에 의미화의 과정에서 사라져야 하는 어떤 것이다.
그는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생각 자체를 언어로 한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 그리고 생각이 바뀌면 언어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기 십상이다.”라고 말한다. 언어와 생각, 생각과 언어, 생각과 세상, 세상과 생각, 생각과 언어, 언어와 생각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에서 그가 말하는 앞의 언어와 뒤의 언어는 다만 개념이 달라진 언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구조가 바뀌어 버린 전혀 다른 의미 체계를 가진 언어를 의미한다. 즉 뒤의 언어는 이미지와 텍스트, 텍스트와 이미지가 전도 지점에서 살아 있는 의미의 권위를 흩어버리는 탈구축적 성격의 언어를 의미한다. 또 이것이 한 바퀴 더 순환하게 되면 권위를 흩어버린 탈구축적 성격의 언어는 또 다시 구축적 언어가 되어 변증법적 순환의 과정 속에서 앞뒤가 다시 바뀌어 버리고 만다.
곰브리치의 말처럼 언어적 기호와 회화적 기호의 차이는 인습과 자연의 대립에 근거하고, 이미지와 텍스트의 구별이 자연적 의미 작용과 인습적 의미 작용에 있다면 이미지는 모든 표시와 구획, 질감이나 색이 지닌 의미론적 잠재적 형태로 작용하며, 텍스트는 유일한 암시적인 부호로서 고립된 순응적 지시대상을 부여하는 명료한 형태로 작동한다. 따라서 텍스트는 구분을 강조하고 차이를 드러낸다. 텍스트가 지닌 상징화된 체계는 연속적이지 않고 틈새와 비연속성에 의해 기능한다. 결국 텍스트는 언제나 텍스트 안에 갇히게 되어 있다.
윤동천의 텍스트가 텍스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뒤바뀐 언어 즉 이미지로 보이기 위해서는 〈도대체 우리나라〉가 통째로 시각화되는 지점에서 읽혀야 한다. 그것은 외적 형식으로써 종이의 변경(邊境)이 하나의 틀로 작용하여 텍스트를 제한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 그 물질성 자체가 바로 하나의 이미지로 그의 작업을 이룬다. 결국 의미를 의미 구조 안에서 바라볼 때 그 의미는 죽은 의미가 되고 마는 그 삶의 이치가 드러나는 지점에서 윤동천의 예술이 자리한다. 의미(형식)가 의미(형식)화 되기 위해서는 그 의미(형식)가 타자화되는 지점을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그 의미의 밖에서 그 의미를 볼 수 있는 지점을 설정할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하는 곳에서 〈도대체 우리나라〉의 온전한 예술적 의미가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러한 장치에서 여전히 아쉬운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가 자신의 감각을 극으로 밀고나가 증폭된 감정이 폭발하는 어떤 지점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대한 채무의식 같은 것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의 작업이 온전히 이미지라는 작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에 먼저 눈길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에서 행복한 결혼이란 없다. 오직 성공적인 강간이 있을 뿐이다”라는 랑어의 언급이 어떠한 시사점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동시대를 산다는 것은 시대정신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형식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대정신으로부터 거리감을 유지할 때 삶과 예술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생긴다. 현대미술 이해의 중요한 틀인 이미지와 텍스트에 관한 담론을 가지고 기획된 〈언어놀이〉전은 이미지가 주로 유사성에 의해 대상을 표상하는 기호이고 텍스트로서의 기호의 대척점에 위치한다는 자각에서 기획된 전시였지만, 선정된 작품들이 텍스트와 이미지가 지닌 의식의 극점을 보여주기에는 그 역량이 부족했고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 전시였다. 이식된 문화에서 출발한 기획이라면 먼저 본래 문제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문자’와 ‘언어’가 미술의 영역에 들어온 계기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제점, 그리고 그 문제로부터 출발한 동시대성의 고민이 한국이라는 특수 공간에서 펼쳐질 때 서구에서 제기되었던 재현과 추상 논의가 극복되는 그 어떤 지점에 대한 방향성의 제시가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이 전시가 또 다른 담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October 2010 - 왜, 지금, 로컬인가?

리 쥔양 <교묘한 공예품> 벽면에 아크릴릭 20×2.2m 2009

왜, 지금, 로컬인가?

글|이 상 봉

탈근대(포스트모던) 또는 글로벌화라는 용어가 학계는 물론 일반 사회에서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1960~70년대 국가 주도의 급속한 근대화를 거쳐 이제 막 근대적 사회의 모습을 형성한 한국 사회의 입장에서는 근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졌는가의 논의가 정리되기도 전에 근대 이후의 대안에 관한 논의에 뛰어든 형국이다. 한국의 상황이야 어찌됐던, 세계적 차원에서 탈근대 담론의 성행과 거침없는 글로벌화의 진행은 이제 더 이상 근대성의 논리나 국민국가의 틀만으로는 복잡다양해진 사회적 양상을 품을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근대성의 논리를 대신하는 새로운 탈근대의 논리는 무엇이며, 국민국가의 틀을 대신하거나 보완할 새로운 공간 질서는 어떠한가? 라는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상호의존성의 가속화’(오마에), ‘원거리 행위’(기든스), ‘시공 압착’(하비) 등 글로벌화 현상에 주목하는 논의들은 정리하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많지만, 정작 글로벌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제시하는 문헌은 찾기 힘들 정도로 여전히 논쟁점이 남아 있다. 탈근대라는 용어 또한 마찬가지로 다의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전반기 모더니즘의 문화적 양식을 대체하는 새로운 미학적 문화적 지적 형태와 실천을 나타내기 위해 1980년대 이후에 등장한 포괄적인 용어로 볼 수 있지만,1) 사회 경제 정치적 과정과 관계를 맺고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은 3백여 년의 시간 동안 펼쳐졌던 근대 역사에 대해 근원적인 성찰을 동반한 일종의 논리적 귀결로 볼 수 있다. 탈근대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이를 근대성에 대한 성찰로 파악하는 기든스의 입장2)을 취하면, 탈근대란 근대성의 부정적인 산물에 대한 도전이다. 또한 근대성의 구조 속에서 보면 주변적인 것으로 배제되었을 다양성, 소수성의 가치를 포함하면서 이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구성을 찾고자 하는 시도, 즉 근대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근대성을 다시 쓰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근대성의 (국가)중심적 구조 아래 소외되고 주변적인 것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던 로컬3)의 시각에 입각하여 탈근대 및 글로벌화라는 변화의 의미를 새롭게 파악하고, 나아가 로컬이 지닌 장소성과 인문적 가치의 발현이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근대, 근대화 그리고 로컬

근대성의 구체적인 양상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보편적인 의미의 근대성은 주로 계몽주의적 근대성을 말한다. 이는 이성에 대한 신뢰 합리주의 인간주의 진보와 해방 등의 핵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가치들은 자본주의, 국민국가, 계급, 관료 체제, 합리적 인간 관계 등과 같은 다양한 경로의 제도화를 통해 근대 사회를 움직이는 추동력으로 작동해 왔으며,4) 17세기 이후의 유럽 사회를 전형으로 삼아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하지만 진보적 가치의 실현으로 여겨지던 근대성의 제도화는 다른 한편으로 인간 관계나 사회 조직의 비인격화 탈인간화 법칙화 화폐화 도구화 권력화 등의 부정적인 경향을 가져 왔다. 근대성의 이분법적 구도에 입각한 중심주의는 이성/감성 국가/로컬 남성/여성 주체/타자 다수자/소수자 자본/노동 중심의 제도화를 이끌었다. 여기서 감성 로컬 여성 타자 소수자 노동 등 중심주의에서 배제된 가치나 이를 내포한 대상들은 진보와 해방의 과실을 누리기는커녕, 근대 이전에 비해 나을 것 없는 질곡과 억압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근대성의 중심주의 및 효율성 추구가 잉태한 이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로 인해 이성 합리주의 인간주의와 같은 근대성의 핵심 가치들을 오히려 총체적으로 부식시켜 가는, 이른바 ‘근대성의 역설’이 현실화되었다. 결과적으로 근대성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 가정들을 포함한 근대성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이 여기저기서 제기되었다. 이것이 탈근대 논의가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근대성은 국민(민족)국가라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을 통해 구조화되었다. 따라서 국민국가는 근대성의 핵심을 차지하며, 특히 공간 단위는 근대성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5) 근대성이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에는 강력한 중심화, 동일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즉,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발전 과정을 통해 일반(동일)화된 국민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소수성의 가치들은 포섭되거나 배제된다. 국민국가를 단위로 한 공통의 역사, 전통, 문화, 언어, 정치적 이데올로기 등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국민 문화 형성에 기여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로컬적 가치들은 지워지고, 여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가치가 덧칠되었다.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국민국가의 가치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로컬의 구체적이고 고유한 가치들은 배제되거나 이용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일상을 지배하는 시간과 공간의 측면에서 근대성에 접근해 보자면, 근대의 시간과 공간, 그 중에서도 시간의 기제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기계적 시간(Clock Time)이다, 추상화되고 탈맥락화된 합리적인 시간인 기계적 시간이 일상을 지배하면서, 공간은 균질화된 채 시간 축에 따라 어딘가에 위치 지워지는 이른바 ‘공간의 시간화’가 진행되었다. 여기에 과학주의에 입각한 진보사관이 더해지게 되면, 근대화되지 못한 공간은 시간적으로 뒤쳐진 공간, 즉 따라잡기식 근대화를 통해 진보를 달성해야 할 공간으로 인식되는, 이른바 ‘근대화=발전’의 단선적 진보사관이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즉 근대성의 관점에서 낙후된 것으로 여겨졌던 비서구 국가들의 경우 더욱 급속하게 근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곧 발전이자 진보라는 인식 아래 국가 주도의 강력한 따라잡기식 근대화를 추구했으며, 그만큼 포섭과 배제의 메커니즘 또한 더욱 적나라하게 작동했다. 국가 주도의 따라잡기식 근대화의 이면에는 경제적 효율과 승자 독식의 경쟁 원리라는 또 다른 근대성의 원리가 작동한다. 근대화를 위한 자원과 토대가 부족한 상태에서 급속하게 이루어진 근대화는 상대적으로 성장에 유리한 중앙(수도)에 인적 물적 인프라를 집중시키는 불균형 발전, 즉 종주도시형6)의 성장을 이끌었고, 근대적 정신으로 포장된 약육강식, 승자 독식의 경쟁 원리는 사람, 문화의 수도권 집중과 함께 지방을 피폐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이처럼, 근대 국민국가의 틀 내에서 로컬은 철저하게 국가에 종속되었다. 국가는 ‘다수와 같음’의 논리를 앞세워 ‘소수나 다름’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무시했으며, 성장에 따른 양극화의 심화는 로컬을 더욱더 차별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근대화(성장)의 과정에서 소외되어 그 과실을 누리지 못했던 로컬은, 이제 근대성이 그 역설로 다가오게 되자 오히려 근대성의 병폐는 전가 및 심화되는 공간으로 드러나게 된다.

제1회 문신조각심포지엄 초대 작가들

탈근대 공간의 재영역화

근대성에 대한 성찰로서의 탈근대 담론은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는 논의를 좁혀서 국가-로컬 관계, 즉 공간 단위의 측면에 주목하여 탈근대의 의미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공간 단위의 측면에서 보면, 근대는 국민국가를 그 제도적 단위로 삼아 형성되었다. 즉, 세계는 주권을 가진 국가 단위로 경계 지워지고, 그 국가는 형식적으로는 내부적 통합성과 대외적 배타성의 구분으로 존재해 왔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국가의 주권 또는 경계의 변화를 초래하는 글로벌화 현상은 공간 단위의 측면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탈근대적 변환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글로벌’이라는 말이 나타내는 공간적 변별성에 주목하면, 글로벌화는 로컬-국가-지역-글로벌로 이어지는 공간층위 연장선의 끝에 위치한다.
즉, 중층적 층위의 맨 아래층에는 로컬적, 그리고 맨 위층에는 글로벌적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사회 관계와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따라서 글로벌화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활동이 국경을 가로질러 확장되어, 세계 어느 한 지역의 사건이 먼 지역의 개인과 공동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글로벌화는 초지역적 상호연결성과, 사회적 활동 및 권력의 네트워크 확장, 그리고 원거리 행위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7) 이와 같이 정리하면, 글로벌화는 공간적으로 그보다 제한된 과정, 즉 지방화 국가화 지역화는 구분되면서도 연결될 수 있게 된다. 간단히 말해, 지방화는 특정 장소 내에서의 흐름과 네트워크가 강화되는 것을 의미하며, 국가화는 고착된 영토의 경계 내에서 사회적 관계와 거래가 발전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지역화는 국가를 넘어선 범위에서 국가 또는 사회 집단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밀집하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또는 로컬이라는 용어는 대체로 국가적이라는 개념과 상대화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글로벌화와 로컬화가 각각 국민국가 외부와 내부에서 탈영역성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 영향력의 정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국민국가 체제가 한편으로는 초국가적인 조직에 의해 권력과 기능을 박탈당할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국경 안의 지역적인 사태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독점적 권력을 위협받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것은 영토적 국민국가의 기능적 위기와도 관련되어 있다. 즉, 개별국가 단위의 민주주의와 법치의 전통이 다층적 협치에 의해 도전받고 있고, 그동안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명확한 구분에 의해 누려 온 국가의 독점적 영역이 모호해지면서 시민사회 영역과의 권력의 수평적 분산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배타적 주권 또는 개별 국가 단위의 정치 원리가 초국가나 국가 하위 단위(로컬)의 새로운 주체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8) 여전히 근본적인 정치 단위는 국민국가에 기초하면서 초국가 및 로컬의 정치 세력에 의해 권한의 분산을 요구받는 상태가 공간에서 재영역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은 탈근대 공간 단위의 재영역화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으로, 국민국가라는 통일된 (공공)공간을 글로벌적 공간과 로컬 공간을 좌우 축으로 하는 복수의 경합하는 (공공)공간으로 바꾸어 간다.
여기서 글로벌화와 로컬화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수 있는가? 흔히 글로벌화가 로컬화를 포섭하거나 양자가 서로 대극을 이루는 것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글로벌 자본주의나 문화 제국주의가 국가 단위의 보호막이 허물어진 로컬을 유린할 것이라는 우려와 로컬이 이에 대한 저항이나 반대의 의미로 자리매김되는 사회 운동의 현실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로벌화와 로컬화의 관계를 이처럼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탈근대 공간의 재영역화는 글로벌-국가-로컬 단위의 새로운 관계 맺기, 즉 글로벌 공간, 국가 공간, 로컬 공간이라는 층위의 중층적인 관계가 새롭게 형성됨을 의미한다.
각 층위들은 각기 경제(글로벌적), 정치(국가적), 문화(로컬적)의 영역에서 나름의 존재 의미를 지닌다. 스케일의 측면에서는, 테일러(Taylor, P. J.)가 언급한 것처럼, 글로벌적인 것은 실재적(Real), 국민국가는 이념적(Ideological), 로컬은 경험적(Experienced) 스케일로 구분될 수 있다.9) 로컬의 관점에서 보면, 공간의 재영역화는 그동안 국민국가 틀 내에서 옥죄어져 왔던 로컬의 다양성이 글로벌한 틀에서 새롭게 끼워 맞춰지는 것과 같다. 이는 국가 속의 로컬이 글로벌한 맥락 속의 로컬로 다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국민국가의 틀 내에서 주변적인 것으로만 인식되던 로컬이 이제,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보편적 관점에서 새롭게 자리매김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처럼, 글로벌화와 이보다 공간적으로 제한적인 국가화, 로컬화는 상호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를 이룬다. 국가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지닌 로컬화의 진행은, 한편으로 글로벌화를 촉진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하부구조를 창출할 수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로컬 공간이나 국가적 공간의 강화가 글로벌화를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글로벌화와 어떤 국가화 및 로컬화가 만나는가에 따라 그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탈근대에서 국가와 로컬의 관계

이러한 공간의 재영역화는 기존의 국가-로컬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근대의 국가-로컬 관계는 중심-주변의 위계적 관계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글로벌화의 진전에 따른 국가의 약화는 로컬에 새로운 위기와 가능성의 두 가지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이른바 ‘공간론적 전환(Spacial Turn)’으로 표현되는 공간의 재영역화는 공간의 규정력 자체에 대한 인식 변화와 새로운 다원적 공간 단위들의 존재 형식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공간의 재영역화에 따른 공간 단위의 다원화는 각 단위들 간의 단순한 분산이나 병존에 그치지 않고 중층적인 새로운 상호 관계를 형성한다. 즉, 글로벌 공간은 국가 혹은 로컬 공간의 통합을 강제하기도 하고, 그것을 내부에서 무너뜨리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 공간은 하위의 다양한 로컬 공간을 더 이상 하나로 묶어둘 수 없게 되고, 때로는 글로벌화에 대한 대항의 거점이 되기도 한다. 로컬 공간은 국가적 공간을 넘어 직접 글로벌적 공간에 연결되어 갈 것이며, 초국가적 영역에서 다른 국가들의 로컬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것이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글로벌, 국가, 로컬적인 다양한 층위의 공간이 충돌하는 장이 될 것이다.
변화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고정적인 정체성의 공간 안에 가두어 버리는 국민국가 체제와는 달리, 탈근대의 새로운 중층적 공간은 문화적 차이를 용인하여 공존을 모색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를 무력화시키고 관리하기도 하는, 서로 다른 경향이 병존하는 혼종성과 개방성을 나타낸다. ‘경제의 효율성’과 인권의 ‘보편적 가치’ 등이 글로벌적 공간을 점차 만들어 간다면, ‘정당성의 창출’과 일원적 ‘법적 통치’와 ‘안보의 필요성’ 등 정치적 영역에서는 여전히 국가적 공간이 유효하다. 이에 비해 다양한 ‘문화적 충돌과 혼종 현상’ 및 ‘문화적 확산’은 개방적인 로컬 공간 또는 글로벌 공간의 결합의 영역을 만들어 가며, 다양한 일상의 경험을 통한 문화 예술적 창조 활동은 로컬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글로벌화 시대의 공간 영역은 각각 고유의 존재 의미를 지닌 글로벌, 국가 그리고 로컬의 단위가 서로 넘나들면서, 지리적 근접성보다는 연결성과 상대적 위상이 중요한 네트워크 공간으로서의 특징을 나타내게 된다.
로컬의 입장에서 이러한 공간의 재영역화를 바라보면, 이는 특정 로컬 내에서의 흐름과 네트워크가 강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가의 역할 축소와 함께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서의 로컬의 역할이 강화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제까지 국가 공간의 관점에서 주변이나 특수로 파악되었던, 로컬 공간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것이 공간 재영역화의 중요한 의미 가운데 하나이다. 글로벌화의 강력한 흐름에 의해 국가의 규정력이 약화되면서, 로컬은 국가 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글로벌 자본의 직접적 침투가 로컬을 더욱 유린할 가능성 또한 매우 크다. 이러한 글로벌화의 폭력에도 대항하기 위해서는, 로컬이 세계적 네트워크 체제의 기본 단위(Node)가 되는 개방적인 네트워크 체제, 즉 ‘트랜스 로컬리티’의 가능성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로컬이 중심이 되어 경계를 넘는 교류의 중층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 분권화를 국가가 뒷받침하는 동시에 국가 주권을 상호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좌-김기라 <아트셔틀> 2007_포천아시아비엔날레 출품작
우-리 휘 <문> 혼합재료 가변설치 2007_부산시립미술관 <아트인부산2009 인터시티>전 출품작

분권과 참여의 공간

국민국가를 단위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주권자인 국민의 참여 부재와 대표의 불균등성으로 인해 정당성의 위기 등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이를 보완 또는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적 민주주의가 제시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참여(풀뿌리) 민주주의이며, 이는 말 그대로 대의제 민주주의가 노정한 결함, 즉 참여의 부재라는 현상에서 그 대안의 단초를 찾으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국가 단위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드러낸 결함을 기능적으로 보완하기 위한 것이든,10)아니면 행위 주체 또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의 본질에 근거한 존재론적 추론의 결과이든, 참여 민주주의는 규모 또는 단위의 측면에서 로컬 공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선 로컬에서 참여를 통해 대의제의 결함을 보완하려는 논자들은, 참여에 필요한 덕성 있는 시민은 로컬 단위에서 양성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역사회에서 당면한 문제에 있어서 참여는 교육적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국가 단위 정치에의 참여를 최종 목표로 삼는 논의에서도, 참여에 필요한 자질들은 그 수준에서 먼저 계발될 필요가 있으며, 로컬에서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상의 문제들의 해결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가지게 되면 그 학습효과가 좀 더 큰 단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11)
이 같이 로컬 공간을 참여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보는 논의에서 더 나아가, 참여와 분권을 기존의 대의제 국민국가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정치 원리로 인식하려는 경향도 존재한다. 그 구체적인 형태 가운데 하나가 풀뿌리 민주주의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역시 분권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그 실현을 위한 전제일 뿐 궁극적으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극복을 과제로 삼는다. 지금 당장 현실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적어도 또 하나의 대안적인 질서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풀뿌리 민주주의에서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어 온 서벌턴(Subaltern)이나 생활인이 자기 목소리를 주장하며 정치의 주체로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발언권을 상실케 했던 기존의 제도적 정치 공간과는 다른 생활 공간을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만들어 나간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생활 정치, 즉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모순과 갈등을 생활인으로서의 시민 스스로가 해결해 나가면서, 이를 통해 그 존재성을 회복하려는 포괄적인 삶의 정치인 것이다. 여기서 생활자 시민이라는 말에는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생활과 분리된 외부의 장치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일상생활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을 통해 해결하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12) 이처럼 풀뿌리 민주주의는 정치와 경제, 사회라는 영역을 따로따로 구분하지 않고 총체적인 삶의 변화를 지향하며, 제도화된 틀만이 아니라 그 틀로 제한되지 않는 운동의 정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주민 발안이나 투표와 같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기반한(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참여 민주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참여 민주주의의 장으로서의 로컬 공간의 적극적인 의미는 새로운 공공 영역, 즉 민주적 공론장의 창출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정치가 이루어지는 공공 영역을 이성과 제도에 의해 작동되는 의사결정 과정으로 제약해 온 대의제 민주주의와는 달리, 로컬은 일상생활에서 드러난 모순과 갈등을 주민 스스로 해결하려는 ‘실질적 참여’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로컬 단위의 공간 시스템은 국가 단위의 관리 시스템이 지닌 한계, 즉 시스템의 거대화와 불투명화, 지나친 전문화와 규제, 주민의 관여를 억제하려는 경향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최적의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신변의 문제를 적은 노력으로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로컬은 그 공간에 함께 거주함으로써 발생하는 다양한 공통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시스템을 중요한 구성 요소로  성립한다. 예를 들어, 로컬 공간을 사람들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현장으로 본다면 육아나 교육, 돌봄(Care) 등은 매우 중요한 공공의 문제이다.13)
체제 또는 제도에 대비되는 의미에서의 일상에 주목하려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경향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과 상통한다. 혁명적 정치에서 생활의 정치로, 노동과 생산의 담론에서 여가와 소비의 담론으로, 정치 담론에서 문화 담론으로의 전환을 지향하는 포스트모던적 질서는 체계의 메커니즘에 의해 식민화된 생활의 복권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와 관련하여 제임슨(F. Jameson)은, 포스트모던적 현상 가운데 가장 의미심장한 것 중에 하나가 다양한 소집단적 비계급적 정치적 실천 행위와 같은 ‘미시 정치의 등장’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미시 정치’는 이른바 ‘문화 정치’에 주목한다. 문화는 예술적 시적 표현과 같이 일상생활의 모든 실천들에 내면화되어 있으므로 거시 정치에서의 국가, 계급, 이익집단과 같은 개념적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균형적인 관계를 만들어 내는 관계망, 즉 ‘차이와 동일성’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시민사회와 국가’ 등의 이항적 대립 관계를 넘어서 작동하는 다차원적 관계망에 주목한다.14)

자치와 거버넌스의 공간

참여를 기반으로 한 생활 정치가 대안적 정치의 장을 여는 가능성을 가진다면, 이러한 생활 정치가 이루어지는 일차적인 토대는 로컬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자치에서 찾을 수 있다. 로컬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는 국가 공간과는 달리 생활의 영역과 정치적 대표 사이의 직접적인 연계가 존재한다. 선출된 관리들은 누가 누군지 알려져 있으며 인격적 기반에 근거하여 통제될 수 있다. 또한 생활 세계는 관리보다는 자치가 중요한 문제가 되며, 따라서 집권이 아니라 결정권을 분산시키는 분권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분권은 참가의 기회를 확대시키며, 이는 자치 능력을 키우기 때문이다.
주체와 쟁점에 있어서의 대안을 추구하려는 의지는 새로운 공동체 운영 원리의 모색으로 이어진다. 즉, 전통적인 지방 정치에서 정부와 주민간의 정치적 합의를 기초로 한 거시적 통치 구조가 중요했다면, 이른바 ‘로컬 거버넌스’의 지방 정치에서는 분야별로 인력, 노우하우 자본 기술 서비스 등을 동원하고 조정하는 미시적 통치 구조가 중요해진다.15) 앞서 살펴본 공공 공간의 재영역화와 관련해 보자면, 글로벌화는 로컬이라는 공공 공간의 상대적 위상뿐만 아니라 그 통치 방식과 계급적 성향에도 심대한 변화를 초래하며, 그 변화는 거버넌스라는 새로운 운영원리를 매개로 나타나는 것이다.
거버넌스에서는 기존의 국가 또는 시장 주도적 통치 체제와 대비되는 의미에서, 시민사회 영역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특히  푸트남(R. D. Putnam) 등에 의해 ‘사회적 자본’이라는 용어로 개념화된 지역사회의 사회제도적 인프라가 강조된다. 사회적 자본이란 신뢰와 호의적 연대의 창출 네트워크와 같은 제도적 하부 구조를 의미하며, 인적 물리적 하부 구조에 대한 투자를 보완하고 전통적인 지역사회에 기반 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한다. 새로운 ‘지역 르네상스’를 불러오고 있는 사회적 자본은 지역에 기초한 행동 관습과 규칙, 나아가 일련의 제도들을 포괄하는 지역 특정의 자산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적 자본은 “지역 수준에서 가장 잘 발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규칙적인 신뢰 형성이 시간 경과에 따라서도 지속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16)
국가-시장-시민사회 간의 통합적 조절 체계로서의 거버넌스는 글로벌화와 로컬화의 동시적 전개 속에서 로컬 공간의 단위에서부터 국가적, 초국가적 단위 모두에 걸쳐 작동한다는 데 또 다른 특징이 있다.17) 여기서, 시민사회가 일상의 활동이 전개되는 로컬 공간을 주된 배경으로 한다면 시장은 자본 활동의 글로벌화에 의해 마련된 초국가적 공간을 주된 배경으로 한다. 이점에서 시민사회 영역과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버넌스는 로컬 공간에 친화적이다. 또한 글로벌화의 진전에 의해 국가의 역할이 위축되게 되면 일차적으로 로컬의 시민사회가 그 대안적인 정치의 공간으로 떠오르게 된다.

좌-전가영 <회파람 부는 바다> 가변설치 2009_제주도립미술관 개관전 <환태평양의 눈> 출품작
우-잉고 마우러 <평화의 빛>_2007광주디자인비엔날레 상징 조형물

장소성과 정체성의 공간

공공공간의 중층화와 다원화가 진행되고 있는 탈근대적 공간의 변화를 카스텔(M. Castells)은 ‘유동 공간(Space of Flows)’과 ‘장소공간(Space of Places)’의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18)여기서 자본과 기술, 인적자원 등의 국가 간 이동과 교류의 확대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유동 공간이 탈영역적인 특징을 가지는 데 비해, 공간은 특정 장소가 가지는 고유성 영역성 정체성을 나타낸다. 탈근대적 공간 변화의 특징은 유동 공간을 중심으로 동질성이 확산되면서도, 특정 장소의 고유성이 작용하여 동질성 속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공간적 논리의 분리는 사회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오늘날 권력, 부, 정보를 집중시키는 가장 지배적인 과정들은 유동 공간을 중심으로 조직되지만, 가장 인간적인 경험과 의미는 여전히 장소 공간, 즉 사회적 의미가 구성될 수 있고 정치적 참여와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는 로컬 공간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화의 발전과 함께 유동 공간의 확산, 즉 공간의 유동성이 가속화될수록 사람들이 느끼는 공간적 정체성은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로컬의 장소를 중심으로 복귀하는 경향 또한 두드러지고 있다. 유동 공간이 장소가 지닌 특성들을 포섭하고 등질화시켜 나가는 반대편에서 로컬 공간은 새로운 정체성의 기반으로 새롭게 자리매김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정체성의 공간으로서의 로컬은 국민국가 체제의 하부에 위치하는 단순한 행정적 단위나 공공서비스 공급을 위한 기능적 단위가 아니며, 자율적인 주체들의 삶이 이루어지는 상대적으로 독립된 자기완결적인 단위(사회구성체)로 인식된다.
국가나 글로벌적 유동 공간과 같은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공간에서는 체계나 구조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이에 비해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인 로컬에서는 개체의 존재가 확인되고 또한 상호 간에 호명이 허용된다. 물론 글로벌한 자본과 권력의 강력한 힘에 의해 로컬 공간은 또 다시 수동적으로 포섭, 배제되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다만, 여기서 그 긍정적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글로벌화의 힘이 강력하고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만큼 그 대안을 찾는 노력 또한 절실하게 요구되어진다는 의미에서이다.
국가적 혹은 국민적 정체성이 포섭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통한 대내적 동일성과 대외적 배타성을 중요한 특징으로 하는, 이른바 ‘상상의 정체성’이라고 한다면, 로컬의 정체성은 구체적인 장소를 기반으로 한 장소성을 잘 드러내며, 국가 공간의 폐쇄성과 동일성에 대비되는 개방성과 혼종성의 가능성을 지닌다.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의 성원권을 배타적으로 간주함에 비해 로컬 공간의 성원권인 주민권은 유동적이고 개방적이다. 시민권의 취득에 매우 엄격한 나라들에 있어서도, 같은 지역에 거주함으로써 주어지는 주민권은 대부분 개방되어 있다. 이러한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로컬이 그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국민성에 결여되어 있는 장소성과 현장성(정주 의식)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소성을 바탕으로, 로컬에 기반한 사회운동은 신자유주의적 글로벌화의 일방적인 전개에 대한 대항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다. 오늘날 글로벌한 자본의 논리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로컬 현장에까지 바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비해, 그동안 울타리가 되어 왔던 국민국가는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아 인식과 자율적 조직의 원천인 로컬리티(Locality)의 기초 위에서 이에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즉, 글로벌적 범위로 세계가 새롭게 구조화되는 와중에서 사람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체성의 단위는 더욱더 로컬화되어 자신이 처한 환경과 경험에 바탕을 둔 실지(實地) 또는 장소의 정체성이 강조되게 되는 것이다.19) 대항 공동체로서의 로컬 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적 글로벌화가 만들어 내는 유동 공간의 탈장소적 논리에 대항하여 자신의 장소와 정체성을 방어한다. 사람들은 시공을 압착하고 초월하는 초시간적 기억이 역사적 기억을 해체하고, 가상현실이 장소성의 가치를 위협하는 글로벌화의 흐름에 저항하면서, 경험에 근거한 역사적 기억과 자신들의 장소가 지닌 가치의 진실성을 주장한다. 이처럼 로컬은 한편으로는 분권화된 국가 권력의 발현으로 자본의 논리가 그대로 관철되는 현장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 즉 국민국가 전체의 정체성과는 차별화되는 로컬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곳이기도 하다.
장소의 개념은 정체성 상실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도 재구성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장소에 관한 연구는 포스트모던 철학 및 사회 이론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추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소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는 장소가 만들어 내는 차이 또는 특수성에 기초하여, ‘차이’와 ‘타자’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장소에 근거한 차이는 한편으로 지배적 권력에 의해 생산되거나 재생산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 또한 제공한다. 또한 새로운 대안적 정치로서의 장소의 정치는 로컬과 같은 국지적인 위치에서의 실천을 강조한다. 여기서 대안적 정치 공간으로서의 로컬이란 글로벌화와 탈근대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그것이 로컬 공간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자율적인 실천 방식을 찾아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로컬 공간 단위의 실천은 글로벌화라는 거대하고 위협적인 흐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단위의 거시적인 대응보다는 ‘지금, 여기’라는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한,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글로컬리제이션의 유행?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이라는 용어의 유행이 나타내듯, 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글로벌화와 함께 로컬에 대한 관심도 증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로컬화’라고 표현되는 이러한 관심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그 하나는 국가 권력의 분산으로서의 로컬에 대한 관심으로, 근대적 국가 중심성의 원리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제기되기 시작한 분권화 논의가 그것이다. 이러한 분권화의 논의는 최근의 탈근대 담론과 연결되면서, 단순히 국가 중심성이나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정치 원리나 대안적 정치 체제에 대한 모색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근대의 국가 중심성이 야기한 문제를 근대적인 제도나 틀 속에서 해결한다는 것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로컬 공간이 대안적 공공 공간으로서 가능성을 지닌다는 의미는 새로운 시각과 제도적 틀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탈근대 신자유주의적 글로벌화의 흐름과 관련된 로컬화이다. 여기서 로컬은 위기와 가능성의 두 가지 측면에 직면한다. 국가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직접 글로벌화의 파고를 맞이하게 된 로컬은, 한편에서는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더욱 강력한 논리에 새롭게 포섭되어 자본의 구미에 맞게 재역영화될 가능성이 다분한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로컬 공간이 글로벌화가 지향하는 유동성과 동질화라는 가치에 대치되는 장소 정체성과 자율성, 고유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대항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글로벌화를 추동하는 힘이 자본이고 이것이 시장의 기능을 더욱 강화시켜 나간다면, 로컬화는 시민사회 영역에 의해 지지되면서 민주주의에 기반한 시민사회 영역을 더욱 강화시켜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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