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Magazine

Art in Culture

2010.08

Abstract

특집_섬, 예술의 낙원에 가다 일본의 혼슈와 시코쿠 사이의 다도해 세토우치(瀨戶).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이 섬들에 세계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1987년에 시작된 나오시마(直島) 아트프로젝트는 베네세현대미술관과 치추(地中)미술관 개관으로 이어져 '예술의 낙원'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미술로 꾸민 환상의 섬, 지구상에서 단 하나뿐인 땅속의 미술관…. 나오시마는 '생애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꿈의 여행지'로 손꼽히고 있다. 이 나오시마에 이우환미술관이 지난 6월 개관했다. 종래의 미술관 개념을 깨는 새로운 '미술과 건축의 협업' 공간이 국제 미술계의 큰 화제로 떠올랐다. 찬사와 동경의 땅 '나오시마 효과'는 마침내 세토우치국제예술제(7. 19∼10. 31) 출범으로 확대됐다. 이 행사는 '바다의 복권-아트와 바다를 순회하는 100일간의 모험'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나오시마 등 7개 섬과 다카마츠 시에서 동시다발로 열리는 대규모 현대미술제다. 18개국 75개의 다양한 프로젝트가 선보였다. art는 이 여름, 세토우치에서 펼쳐지는 미술 열기의 현장을 취재해 생생한 화보와 글로 전한다.

Contents

표지  
야요이 쿠사마 〈빨간 호박〉 Photo: Osamu Watanabe

영문초록

에디토리얼  김복기

핫피플  노소영  
    “미디어아트의 무한 미학을 펼치겠다”  호경윤

프리즘    
    법인화 추진,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렵다  이인범
    트위터, 그 새로운 예술적 소통의 가능성  신혜영

아티스트 인 코리아  나타샤 파가넬리  김수영

포커스    
    노상준展|에론 영展  정연심
    예술가 프로덕션展|이기일展  정현
    박은하展|이승현展  이선영    
    이동기展  김성원    

뉴비전  신진 평론가 발굴 프로젝트
    예심 18명 지원자 중, 파이널리스트 3인 선정!   

특집  섬, 예술의 낙원에 가다
    나오시마 아트프로젝트 베네세아트사이트-치추미술관-이우환미술관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바다의 복권-7개의 섬을 순회하는 100일간의 모험
    섬의 예술, 예술의 섬  김복기
    
아티스트 인사이드  
    이순주_인간 내면을 비추는 섬뜩한 유머  김수영
    이주요_일상의 심리적 사건을 기록한 오브제  장승연

암흑물질  
    에르메스미술상 11년을 말한다  유진상

테마 스페셜  아시아 리얼리즘
    ‘리얼’한 아시아를 보는 눈  편집부

나의 얼굴  
    얼굴, 기묘한 넌센스의 기호  곽덕준
    
리포트 인사이드    
    모란미술관, 조각과 걸어온 20년  김재석

아웃 오브 코리아  이길래  최태만, 고충환

전시 리뷰
    메가스터프|신양섭|안영나|사이에서|지휘부여 각성하라|유리지
    김진|이태희|정명근|홍범|포스트캐피탈아카이브1989~2001|이제 이솝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박상미|천영미|윤현선|조원석

동방의 요괴들 리포트  요괴들, 대전에 뜨다!  호경윤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에르메스미술상 11년을 말한다

배영환 〈바보들의 배〉 아뜰리에에르메스 설치 전경 2006

에르메스미술상 11년을 말한다

글|유진상·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올해로 11주년을 맞은 에르메스재단미술상은 그동안 많은 화제를 모으며 한국 미술계의 중요한 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상이 제정된 2000년부터 올해까지 이 상에 참여한 수상작가 및 후보작가 수만해도 27명이 넘는다. 필자는 에르메스재단미술상이 한국 동시대미술의 바로미터로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에르메스재단미술상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몇 가지 비평적 물음을 제안한다. 또한 동시대미술에서 ‘상’이라는 제도가 갖는 위상과 의미의 맥락도 함께 살핀다.

에르메스재단미술상(이하 에르메스미술상)은 지난 2000년에 프랑스계 기업인 에르메스가 ‘한국의 역량 있고 창의적인 작가들을 지원하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올해로 11년째를 맞는 에르메스미술상은 한국의 많은 다른 상과 명확히 차별화되는 위상을 구축했다. 영국의 터너프라이즈나 프랑스의 프리마르셀뒤샹, 미국의 휴고보스상처럼 한국의 젊은 작가 상당수가 수상을 꿈꾸는 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들의 작품 경향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작가를 세계적인 전시기획자, 미술관 관계자, 평론가 등의 전문가가 직접 선발하고 평가하도록 함으로써 국제 미술계에서 실제적 프로모션이 이루어지도록 한 점은, 에르메스미술상이 단순히 업적에 대한 포상에 머무는 제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 상이 소개해 온 작가는 한국 동시대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는 창으로 기능해 왔으며, 해외 심사위원들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아뜰리에에르메스의 기획전시 역시 기업의 이미지에 걸맞은 우수한 콘텐츠로 이루어져 왔다. 이 점에서 현재 이 상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필적할 만한 기획은 아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스페이스 루프 디렉터인 서진석이 기획한 AAAF(Asia Art Award Forum)가 열려 아시아 지역의 동시대미술에 대한 시상 및 전시, 포럼을 시작했고 ‘국적상(National Prize)’을 뛰어넘는 아시아의 터너프라이즈와 같은 파급 효과를 지향하고 있지만, 이제 첫 회를 치렀기 때문에 그 위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한진해운이 고(故)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사재를 출연해 1억 원의 상금을 걸고 2008년에 출발한 양현미술상은 ‘세계적인 미술인재 양성을 위해’ 시상하는 국내 최초의 명실상부한 ‘국제적’ 상이자 신진작가가 아닌 중견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이 상은 루트비히미술관의 카스퍼 쾨니히 관장과 뉴욕현대미술관 부관장인 캐시 할브라이시가 계속 심사위원을 맡아 왔으며, 수상 작가로는 2008년 카메론 제이미 2009년 이자 겐즈켄에 이어 금년도에는 처음으로 한국작가 이주요를 선정했다. 이 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위상을 지니게 될지 아직은 속단할 수 없으나 상금 액수에 비해 아직 국내외의 미술계에서 명확한 이미지를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특정한 기획자 및 해외 전문가의 명성과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선정 과정의 배타성과 미술계에의 기여 방식에 대한 홍보 부족 때문이다.

에르메스재단의 미술후원 프로그램

에르메스재단미술상과 같은 민간 재단의 노력이 국공립 기관이나 비엔날레 등과 같은 프로그램들과 비교했을 때 뛰어난 점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높은 수준의 기획을 실현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지속적 재원의 마련, 우수한 인적 구성, 훌륭한 전시 공간의 확보 등이 가능했던 것도 한국 동시대 미술계의 랜드마크로 자리잡는 데에 결정적인 요건이었다.
에르메스미술상은 에르메스 한국지사의 주관으로 2000년 1회부터 2002년 3회까지는 갤러리현대에서 수상작가 전시를 여는 것으로 출발했으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아트선재센터를 파트너로 선정, 공동으로 진행했는데, 이때부터 3명의 후보작가를 선정해 이들 중 다시 수상작가를 뽑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또한 수상작가를 국내 심사위원으로만 선정해 오던 것을 이때부터 국내 3인, 해외 2인 등 총 5인으로 구성하여 국제 미술계의 시각이 반영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2006년부터는 도산공원 인근에 새롭게 신축한 메종에르메스도산파크 3층에 있는 아뜰리에에르메스에서 아트디렉터 김성원의 기획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2008년에는 에르메스재단이 출범하면서 ‘에르메스재단미술상’으로 공식 명칭을 바꾸어 시행하고 있다.
에르메스미술상이 터너프라이즈와 다른 점은 과거의 전시에 대해 평가하는 대신 신작 제작을 지원해 그것을 평가하는 방식에 있다. 또한 프리마르셀뒤샹이 컬렉터 중심의 평가에 기반을 두는 반면, 에르메스미술상은 전시기획자, 평론가, 미술관 디렉터 등과 같은 현장 전문가 중심의 평가로 이루어진다. 다국적 명품 회사 가운데 동시대미술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에르메스 외에도 프라다, 루이뷔통 등이 있다. 프라다와 루이뷔통이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중앙집중식 운영을 하는 반면, 에르메스는 각 지역의 사정에 따라 운영을 달리하는 정책을 편다. 또한 다른 기업들과 달리 컬렉션을 하지 않고 작가 지원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현재 파리 미국 일본 한국의 4개국에 설립된 메종에르메스 가운데 파리 본점은 현대미술을 전시하지 않고 있으며, 뉴욕의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메종의 전시공간에서는 사진전만 1년에 1회 정도 열고 있다. 싱가포르에는 메종이 없지만 ‘3rd 플로어’라는 명칭의 현대미술 공간에서 1년에 2회씩 아시아작가 전시를 열고 있다. 도쿄에는 오래 전부터 비교적 큰 규모의 메종 내에 ‘포럼’이라는 공간을 두어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해 왔다. 2008년에 에르메스재단이 출범하기 전까지는 각 지역의 메종에르메스는 독자적으로 문화 활동을 기획했으며, 한국의 메종은 에르메스코리아 전형선 사장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이들 가운데 동시대미술 관련 전시기획이 가장 활발한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에르메스에게 서울은 동시대미술의 시험대인 셈이다. 세계적인 명품 회사의 동시대미술 후원은 기업 이익을 가장 혁신적이고 극대화된 문화적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려는 노력에 걸맞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왼쪽·서도호 〈계단-Ⅱ〉 아트선재센터 설치 전경 2003
오른쪽·함양아 〈보이지 않는 옷〉 HD비디오 2008

한국 동시대미술의 프로필

그간 에르메스미술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이 상이 한국 동시대미술의 프로필을 어떻게 그려 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1회 수상자인 장영혜를 시작으로 2회 김범, 3회 박이소, 4회 서도호(괄호 안은 수상 후보자: 양혜규 홍승혜), 5회 박찬경(정연두 플라잉시티), 6회 구정아(김소라 니키 리), 7회 임민욱(김상길 배영환), 8회 김성환(Sasa[44] 이주요), 9회 송상희(김신일 함양아), 10회 박윤영(남화연 노재운)에 이르기까지 한국 동시대미술의 가장 핵심적인 작가들이 거의 빠짐없이 열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11회 후보로는 박진아 배종헌 양아치가 선정되었다. 이들 역시 현재 30대 중반의 작가 가운데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작가들로 향후 한국 동시대미술의 주요 이슈 메이커들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부터 한국 동시대미술이 생산해 온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요한 것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1) 후기 식민주의적 이주와 정체성: 동시대미술 내부의 식민성을 내면화하는 것에 대한 박이소의 바틀비적 ‘거절’, 정체성의 분절을 급진적으로 가시화하는 니키 리의 타자-되기, 세계 내에서의 이상과 토대의 불안정한 균형을 ‘매 순간’ 측정하고 기록하는 이주요의 신체.
(2)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소외에 대한 비평: 도시의 재현방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플라잉시티의 잠재적 공동체, 버려진 것들의 역사와 기억을 찾아 헤매는 배영환의 방황.
(3) 도시 산업화와 유형화 안에서의 유목: 도시 안의 공간에서 이동과 조우의 형식을 생산하는 임민욱의 로드무비들, 분류학적 경계를 따라 이동하는 김상길의 장치적 시선, 수사와 재현의 평행성을 극적 연출을 통해 재구성하는 남화연의 퍼포먼스.
(4) 분단 문제와 정치적 기호들: 동시대 작가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분단 문제를 다뤄본, 그것도 일종의 시뮬라크르의 관계항으로 보여 준 박찬경, 기호에 내재하는 정치성을 기표의 재배치를 통해 은폐해 온 노재운의 라캉적 그래피즘.
(5) 일상성의 해석과 문학적-극적 장치들: 사적 서사를 거대한 몽환적 재난으로 해석해 내는 서도호의 스펙터클한 조각, 일상적 담론들로부터 역설적인 재현에 이르는 과정을 사진과 영상의 장치적 구조를 기반으로 재구성하는 정연두의 연출 사진들, 사건과 사건의 물리적 재료를 일상적 경험의 장 안에서 독립적인 인자로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김소라의 시선-설치들, 공간과 그 안에서 흐르는 시간의 파생물로부터 사적 관계를 구축해 내는 구정아의 ‘집’.
(6) 장르적 내러티브의 재발견: 세계와 그것이 제기하는 부조리로부터 지속적으로 새로운 좌표를 추론해 내는 함양아의 가상적 대화들.
(7) 젠더의 사회-역사성에 기반을 둔 다시 읽기: 여성의 이미지가 소비되는 추상적이고 역사적인 경로로부터 소수자의 환경 일반에 대한 관심으로 전개되어 온 송상희의 내러티브, 다양한 시각적 글쓰기 속에서 ‘여성’이라는 공통적 주제의 분열적 요소를 추출하고 조합해 온 박윤영의 ‘동양화’.
(8) 텍스트-이미지의 시(詩)-정치적 전위: 언어와 그것의 시각적 대응물 사이의 거리를 유머와 시적 가공에 의해 연결하는 김범의 장인적 상상, 의미-생산적 장치들을 생산하는 장영혜 중공업의 맥락-제조업, 가장 기초적인 기하학적 시각적 단위들을 통해 시적-조합틀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홍승혜의 픽셀 그림.
이 이슈들은 상호 조응할 뿐 아니라 한 세대가 공유하는 문제로서 작가와 세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교환 유통 차용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에르메스미술상은 바로 이러한 예술적 가치, 이슈들의 생산과 순환, 그리고 가치 부여(Mise-en-valeur)에 적극적으로 기여해 왔다.

왼쪽· 박진아 〈스크리닝을 기다리며(Parreno Installation, Centre Pompidou)〉 캔버스에 유채 260×200cm 2010
오른쪽·배종헌 <터너의 바다> 버려진 오브제에 페인팅 고안된 장치들 140x200x100cm 2010, <프리드리히의 산> 200x140x100cm 2010

‘상’이라는 드라마

가치 부여 과정으로서의 ‘상’이 제대로 작동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이 지닌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은 그것을 주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가치 부여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도 또는 실패할 수도 있다. 상은 그것에 따른 부수적 이익과 무관하게 상을 받는 이에게 명예로운, 실질적 상승 효과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그 상이 의미하는 바가 뚜렷해야 한다. 에르메스미술상은 명품 기업이 주는 상으로서의 권위(Prestige) 외에도 상의 성격을 최대한 정확하게 조정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진보적 동시대성, 시각 언어의 국제성, 비평적 수월성을 우선적 조건으로 내건 에르메스재단의 명확한 입장이 미술계 내의 이 상에 대한 일반적 평가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다.
둘째, 상은 그것이 지닌 전통과 형식을 통해 다른 상들과 경쟁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의 제도로 자리 잡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에르메스미술상은 그 자체로서 장래 한국 동시대미술의 제도가 어떤 것이 될지를 내다보게 하고 있다. 현재적 의의를 지속시키거나 갱신하고 있지 못한 작가나 작품에 대한 시상이 관례화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의 시상제도는 2~3년이나 길게는 5년 이전의 예술적 업적에 대한 보상 혹은 인정으로서 시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시상하려는 분야를 특정함으로써 실제로 작품이나 콘텐츠가 부족한 상태에서 질적으로 충분히 우수하지 않은 대상에게 시상하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도 한국 내의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국제적 수준의 인정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것이 가장 커다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심사 대상작은 한국의 작품 혹은 콘텐츠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면서 국제적 기준을 만족하게 해야 한다. 이 상은 해당 작가의 신작을 제작 지원한 뒤에 그에 대해서만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새로운 도전의 계기임은 물론 스스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할 기회를 제공한다.
셋째, 상은 시상을 통해 당대 미술계와 일반 대중에게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성과 전망에 대해 메시지를 보낸다. 이것이 상이라는 제도를 시행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게다가 동시대미술에 대한 시상은 당대의 현재성에 대한 동시적 평가와 전망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객관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수상 결과를 토대로 어떤 의의를 도출해 내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에르메스미술상은 지난 10년간 한국의 동시대미술이 어떤 지평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알아보게 하는 바로미터로 작동하고 있다. 동시대미술을 뚜렷하고 투명한 지표로 규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의 선정 방법과 선정 이유에 대해 관점과 지향을 설명하는 일은 가능하다.
예술은 그것의 발생 초기부터 재능과 역량에 대한 평가와 선발을 통해 제도로서 존립해 왔다. 짧게 보면 선발은 숱한 모순과 정확성의 결여를 내포하지만 길게 보면 그것은 그 자체로서 예술의 존재 방식으로 기능한다. 상은 일종의 드라마이자 시간의 분절이며 당대 사회가 실행하는 의사 표명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의사 표명에 수반되는 수사와 깊이, 정당화, 그리고 드라마나 시적 요소들이다. 이것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가 상뿐만 아니라 모든 선발 제도의 핵심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당성에 대한 논쟁은 불필요하다. 최대한 당대의 뛰어난 인재를 참여케 하고 그에 못지않은 인물들이 평가하도록 하는 것으로 상은 충분한 수사와 정당성, 그리고 드라마와 시를 생산한다. 좋은 상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논쟁은, 바로 이러한 수사와 사건으로서의 드라마가 성립되었는가에 대한 논쟁이다. 게다가 이 상은 민간에서 주는 상이다.

새로운 10년의 패러다임을 위해

에르메스미술상이 명성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예외적인 방법과 관점을 행사할 역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명한 기업이라 해도 이와 같은 권위를 지니는 상을 만드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상에도 몇 가지 비평적인 물음을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첫째, 에르메스미술상이 일종의 국적상으로 머무는 한계에 대한 것이다. 사실상 대상을 한국 국적을 지닌 작가 혹은 한국 출신 작가로 한정하는 것은 동시대미술의 관점에서 볼 때 역설적인 점이다. 동시대미술은 국적을 따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제로 많은 상이 국적을 제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터너프라이즈, 프리마르셀뒤샹 등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거주하거나 작업 활동을 하는 경우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 상이 보다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차제에 한국에서 작업하거나 거주하는 혹은 한국과의 관계 속에서 작업하는 외국작가까지도 포함하는 등 지역 혹은 국적 행사로서의 경계를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에르메스미술상이 동시대미술을 통해 기여해 온 그리고 앞으로 기여하려는 바에 대한 비평적 정리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한국의 특수한 정치 문화적 환경 속에서 동시대미술이 다루어야 할 테마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검토도 수반되어야 한다. 신냉전으로부터 아시아의 새로운 국제정치적 범주 이동, 새로운 다문화성과 남북한의 인권 문제에 이르는 폭넓은 이슈들이 세계 문화사적 지도 속의 한국 동시대미술 안에 대기하고 있다. 동시대미술이 글로벌 동시대미술 네트워크의 명사그룹(Nomenclature)의 관점을 반영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한국 동시대미술과 동떨어진 서구 중심의 트렌디한 이슈만을 도출하는 것이라면 이 상은 새로운 도전과 변화의 장에서 부수적인 프로그램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예술적 창조성으로 채워질 것인가? 10년(Decade)은 필연적으로 커다란 변화와 순환의 주기로 인식된다. 에르메스미술상이 또다시 새로운 패러다임과 비전의 모험을 체현해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전통과 혁신을 모토로 하는 그 이름에 값하는 무용담(Saga)이 될 것이다.

노상준展 6. 30~7. 28 갤러리팩토리|에론 영展 7. 2~8. 5 국제갤러리

애론 영 개인전 전경

노상준展 6. 30~7. 28 갤러리팩토리|에론 영展 7. 2~8. 5 국제갤러리

상반된 대비 속 세계의 이면들
글|정 연 심

2007년 9월, 뉴욕의 파크 애비뉴 아모리(Seventh Regiment Ar mory)에서는 스펙터클한 구경거리가 펼쳐졌다. 소더비의 경매사인 토비아스 마이어 등 미술 인사들, 그리고 여러 미술가와 뉴요커가 지켜 보는 가운데 에론 영이 <축하카드(Greeting Card)>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연출’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은 당시의 퍼포먼스에서 에론 영은 모터사이클을 타는 12명의 남자를 섭외해 288개의 합판 패널로 구성되어 있는 대형 바닥에서 약 7분 동안 모터사이클로 액션 페인팅을 제작할 것을 요청했다. 엄밀히 따지면 미국의 하위 문화에서 반항적인 스테레오 타입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모터사이클의 상징적 제스처를 시각적 음향적 요소로 전환시킨 것이다. 모터사이클을 탄 사람들은 폭주족이 내는 거친 소리처럼 타이어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를 내면서 빨간색 오렌지색 검정색 톤이 주를 이루는 타이어 흔적으로 액션을 벌였다. 이 작품은 잭슨 폴록이 1944년 제작한 똑같은 제목의 <축하카드>라는 작품에서 착안하여 제작됐고, 영이 제작한 대형 패널은 150개 정도의 회화 사이즈로 변환된 후 갤러리에서 전시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이벤트성 퍼포먼스는 개인 후원자들의 기금으로 구성된 ‘예술제작 펀드(Art Production Fund)’라는 재단에서 에론 영의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2억 이상의 경비를 지원했던 사례로도 유명하다.

‘포장’된 거친 폭력

에론 영은 자신의 작품을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과 크리스 버든의 퍼포먼스에 견주어 설명한다. 예를 들면 버든은 1974년에 제작한 <Trans-fixed>에서 폭스바겐 차 앞부분에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으로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하거나, 친구에게 자신을 향해 직접 총을 쏘게 했던 위험한 행위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서부 출신의 퍼포먼스 미술가다. 버든의 폭력성을 영에게 견주는 것처럼, 흔히 폴록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남성적인 액션을 영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폴록의 흔적은 작가 자신이 만들어 내는 액션 혹은 드리핑의 결과물이고, 에론 영의 작품에 나타난 흔적은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이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이들이 작가를 위해서 만들어 주는 흔적의 결과이기에 다르다.
197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에론 영은 미국 사회에서 주변 문화로 상징되는 모터사이클이 내뿜는 소음, 배기가스와 타이어의 ‘흔적’을 작품으로 제작해, 이를 갤러리라는 ‘문화적’ 공간으로 옮겨 왔다. 그래피티 스프레이를 뿌린 듯한 그의 작품은 반항, 폭력, 저급 문화 등의 상징적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그의 주요작 중 10여 점 정도가 현재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미 뉴욕 휘트니미술관, 뉴욕 가고시안갤러리, 런던 사치갤러리 등 유명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 소개된 바 있는 에론 영의 작업은 한국에서도 기존의 작품과 비슷한 유형의 작업을 선보인다. 영의 작업은 갤러리 바닥을 타이어 자국으로 뒤덮고, 전시장을 어둡고 으스스한 폭력의 현장으로 변화시킨다. 그 현장에는 갱 특유의 거친 폭력성이 느껴지고, 모터사이클을 탔을 법한 마초 남성의 행동이 연상된다. 바닥에는 타이어 자국이 스크래치되어 복잡하면서도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남아 있는데, 모터사이클을 탄 사람들이 제동기와 가속기를 조절하며 빙빙 도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특히 전시장 1층에 들어가는 순간, 문 쪽에서 들려오는 음향 소리를 배경으로 한 채 어지럽게 바닥에 남아 있는 그 자국은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키려는 듯이 바리케이드와 함께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 ‘현장’에서는 폭력보다는 다듬어지고 미화된 인위성을 발견할 수 있다. 24K 금으로 도금된 <바리케이드>를 통해, 이 현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폭력이 난무하는 공간이 아닌 미화된 인위적 공간이라는 이중성을 보여 준다. 사고 현장에서 구겨진 채 발견되는 바리케이드는 도금되어 아름답게 ‘포장’되어 버렸다.
폭력적 제스처에 엿보이는 섬세함
‘타이어 흔적’하면 1953년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오토모빌 타이어 흔적(Automobile Tire Print)>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라우센버그는 우연적인 일시성을 추상적인 선적 요소로 변화시켰지만, 에론 영의 타이어 흔적은 라우센버그의 작품보다 스케일이 훨씬 크면서도 스펙터클한 행위 그 자체와 연결되어 있다. 에론 영은 자신의 작업을 사회와 사회의 가치관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하며, 해롤드 로젠버그가 주장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공간(An area in which to act)’으로서의 추상표현주의 회화에 새로운 해석을 가한다. 그리하여 미국 추상회화의 흐름에서 보였던 마초적인 행위를 이어 받으면서도, 추상표현주의의 엘리트적인 태도에 반격을 가하기 위해 폭력적 제스처와 언어를 주입한다. 이제 에론 영의 작품에서 드리핑은 원형적인 곡선으로 형성되는 ‘드로잉’이 되며 그의 작품은 폭력과 착취, 불안정 등을 둘러싼 사회적 이슈를 이끈다.
국제갤러리 2층의 밀폐된 공간에 설치된 작품을 살펴 보자. 이탈리아 무라노 유리로 만들어진 <무제(파괴용 구)>는 비디오 작품인 <굿 보이(Good Boy)>와 병치되어 있다. 1층 입구에서 들었던 소리가 이 영상에서 나오는 것을 아는 순간, 구가 흔들리는 움직임과 개가 매달려 좌우로 흔들리는 장면이 심리적으로 숨을 조여 온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스테레오타입화된 남성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에론 영의 작품에는 섬세한 요소가 늘 뒤따른다. 무라노 유리를 사용하거나 고무의 흔적이 있는 유리 표면, 회화의 표면에 중첩해서 등장하는 일루전 현상 등은 그의 작품이 무질서한 엔트로피의 세계인 동시에, 그 안에서 질서나 섬세함이 느껴지는 이중성을 보여 주는 회화 및 설치 작품임을 알려 준다.

노상준 개인전 전경

마이크로스코픽의 세계

에론 영의 작품에 나타난 주제나 재료와 물성과 반대로, 일상에서 버려지는 판지나 종이 등 주변에서 쉽게 재활용될 수 있는 연약한 재료를 사용하여 이를 건축적 모델이나 조감도적인 시점으로 재해석하는 작가가 있다. 갤러리팩토리에서 <이동유원지(Giant Fun fair)>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 노상준의 작품은 일종의 ‘만화경적인 소우주’를 구축한다. 에론 영이 ‘스펙터클한 언더그라운드의 세계’를 제시한다면, 노상준의 세계는 기억의 재조합으로 일상적 이미지를 작은 사이즈로 제작하는 ‘마이크로스코픽의 세계’이다. 작품의 재료나 스케일은 대조적이지만 두 작가 모두 주변적 상황이나 사람들을 작품 속에 내세운다는 공통점을 보여 준다. 특히 노상준은 판지라는 재료와 수채화의 기법을 토대로 집이나 인간 동물 자연 등을 모델로 내러티브를 전개한다. 휴가나 불꽃놀이를 즐기는 인간 군상, 나지막한 산세를 따라 펼쳐져 있는 자동차, 인간이 부재하는 호수의 모습은 마치 중국산수화에 등장하는 조감도 구성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미미한 인간의 존재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구성적 전략으로 보인다. 이렇게 벽이나 허공에서 부유하듯 설치된 노상준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적인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이 소우주에서 개인은 마치 특정 시간과 공간에 고착된 느낌을 주어 고립된 채 대화가 부재한 존재로 보이지만, 꼼꼼히 살펴 보면 판지의 마티에르와 그 틈새로 스며든 수채화의 질감 등은 차갑고 소외된 정서보다는 따뜻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Fireworks>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인간 군상은 일정 거리를 두고 모두 서로를 격리, 소외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마치 걸리버 여행기를 체험하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조감도 형식의 설치 작품을 바라보면서 관객은 우리의 세계가 아닌 그들의 세계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동화의 세계인 듯 밝고 은은한 색과 빛이 물든 세계를 보는 순간 이 작품은 환경 조각과 순수미술을 공부한 그의 이력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에론 영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섬세하면서도 꼼꼼한 수공예적 과정을 연상하게 한다.
재료의 물성이나 주제, 제작 기법, 또 심리적 효과 면에서 에론 영의 전시와 노상준의 전시는 흥미로운 대조 혹은 대비점을 보여 준다. 일종의 쇼크 밸류(Shock value)나 위험 요소, 우연성, 행위성, 스펙터클한 구경거리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에론 영의 작품이 사회의 한 단면을 단번에 보여 주는 거시적인 세계라면, 노상준의 섬세한 세계는 소우주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존재론적인 고립감의 절정을 보여 준다.

이주요

오픈스튜디오 <Night Studio> 전경 2010

이주요

일상의 심리적 사건을 기록한 오브제 글 | 장승연 기자

작가 이주요가 2010년 양현미술상 수상과 함께 오픈스튜디오(7. 23~27)를 열었다. 그 동안 특유의 미감이 깃든 수공 오브제, 설치, 영상을 통해 삶을 둘러싼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 준 그가 이번엔 직접 스튜디오로 관객을 초대한 것. 그 곳에는 일상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소박하고 비밀스러운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글|장승연 기자

이태원 시장길에 위치한 빌라 2층, 부엌과 연결된 거실과 방 3칸으로 이루어진 제법 널직한 스튜디오. 이주요가 거주하며 작업하는 그 공간에서 오픈스튜디오가 열렸다. 첫눈에는 손님을 맞기 위한 거창한 변화 같은 것은 특별히 없어 보인다. 솔직히, 시간을 들여 찬찬히 살피지 않고서야, 무엇이 작품이고 아닌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일상 공간에 있기엔 다소 생경한 ‘사물’들이 이곳저곳에 슬그머니 위치하고 있을 뿐이다. 느리게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 놓여 그 역시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 판자나 스티로폼을 뚝딱 잘라내 만든 듯한 가구(로 보이는 물체), 벽 한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그려진 드로잉, 온갖 철로 된 재료를 엮어 만든 방범창, 빨래걸이로 만든 투박한 타자기…. 그리고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작가의 개인 생활용품들은 한 곳에 모아 커다란 비닐로 덮어 두어 말 그대로 공간에서 ‘편집’해 버렸다. 이전 작업에서도 확인해 왔듯, 완성되지 않은 듯 헛헛한 모습의 ‘이주요 식 오브제’들이 그렇게 스튜디오 곳곳에 각자의 이유를 가진 채 자리하고 있었다.

이주에서 거주로, 심리적 사건의 기록들

이주요는 2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다. 런던, 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작업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일종의 정착을 한 셈이다. 새롭고 낯선 장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크고 작은 개인적 사건, 그리고 그 사건들이 엮이면서 완성되는 일상. 작가는 바로 이 작품들이 그런 일상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심리적 사건을 기록한 오브제라고 설명한다. “오픈스튜디오를 열기 위해서 만든 게 아니라 살면서 만든 것들이에요. 이 공간에 살면서 느꼈던 심리적이거나 신체적인 필요성에 따라 만들었다가 차츰 그 형태를 변해가며 자리를 잡아간 것이죠. 사실 작가에게는 작업실에서만 이루어지게 마련인 진정한 무언가가 분명 있잖아요. 그것을 기록한 오브제를 전시장이라는 낯선 공간으로 옮겨 놓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장소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주요의 심리적인 두려움, 혹은 이곳에 살면서 몸과 피부로 와 닿는 물리적인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오브제들은 실제로 기능을 지니거나, 혹은 은유적인 상징물로서 존재한다. 예를 들어, 그 흔한 방범창 하나 없이 베란다의 절반을 두르고 있는 커다란 창문에 대한 불안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작가는 철망이나 석쇠 같이 철로 된 여러 재료를 얼기설기 엮어 방범창을 만들었다. “단 여기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어요. 재료의 강한 힘이 아니라, 복잡함으로 창문의 위험을 막는다는 것이죠. 물리적으로 막으려는 게 아니라 상태를 보여주는 것, 저의 두려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오브제라고 생각해요. 늘 가볍고 다루기 쉬운 종이나 스티로폼 같은 재료만 쓰다가 처음으로 철을 써봤어요. 이게 아마 제 작품 중에서는 가장 영구적인 작업일 걸요.(웃음)” 
그 중 단연 이색적인 오브제는 2가지 형태로 공간에 놓인 얼음이다. 거실 한가운데에 천천히 돌고 있는 선풍기 앞에 놓인 커다란 얼음 조각과, 역시 선풍기 바람을 등진 채 싱크대 위 투박한 철망 안에 담겨 쌓여 있던 조각 얼음 더미가 그것이다. 실제로 실내의 높은 온도를 1도 정도 내려가도록 세워 놓았다는 그 얼음 설치물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지난 여름을 다시 공간에 불러온 것”이다. ‘더우면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튼다’가 아닌, 지극한 이주요 식의 더위 탈출 방법이자 스튜디오에 비일상적인 시각적 생경함을 연출하는 요소로서 말이다. 실제로 이 얼음 오브제는 인터뷰 중 스튜디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큰 얼음 조각은 결국 엎어져 바닥 위에 산산조각 나버리는 대형사고(약간은 의도된)로 운명하여 새것으로 교체됐다. 또 작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낯선 공간이 슬슬 눈에 익숙해져 긴장이 느슨해지는 순간이면, 싱크대 쪽 조각 얼음 더미가 녹으면서 무너지는 ‘쏴라락’하는 강렬한 소리가 정기적으로 들려 왔다. 마치 생경한 이 공간의 기록들에 다시 집중하라는 듯 말이다.

이주요가 만든 가습기

물리적 세상의 비정함

오픈스튜디오에서 엿보이는 감성은 지금까지의 이주요 작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주변의 흔한 재료로 투박하게 만들어 내는 특유의 ‘미감’이 외적으로 확인되는 그 감성이라면, 작가 삶의 밀접한 곳에서부터 출발하는 작업 내용이나 전시 방식은 그의 작업에 중요한 맥을 형성한다.
“나는 어떤 절박함 같은 것이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 같아요.” 이주요는 늘 생활 속에서 절실한 것들을 작업으로 연장한다. 초기 작업인 <일단 한번 눕기만 하면>은 평균보다 작고 연약한 체구 때문에 런던에서 겪었던 신체적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소소한 대안들을 담고 있고, 고질적인 근육통에서 시작된 작업 <Two>는 두 사람이 서로의 몸을 이용하여 통증을 덜 수 있도록 고안한 동작에 관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상황의 절박함을 풀어가는 방식이자, 생각의 수사학(Rhetoric)을 작업을 통해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처한 외부 환경과 요소에 대해 농담을 했다가 절망도 하고, 혹은 투덜대다가도 동정에 호소하려는 신파극을 벌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여러 가지 상황을 작품으로 기록해 가는 것이다. 
“결국 내 작업은 ‘피지컬리티(Physicality)’에 대한 것이에요. 이 단어는 신체성 물질성 등 다양한 물리적인 의미를 내포하잖아요.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법은 지극히 물리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런 세상은 굉장히 냉정하고 정이 없어요. 유독 연약한 존재라고 절대 봐주는 게 없죠.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들이 흔들림 없는 물리적 세계를 통과하면서 살아야 하는 과정을 다각도로 실험하고 기록해 가는 것이죠. 초기에는 이런 물리적인 세상의 비정함 때문에 겪는 신체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좀 더 거시적으로 삶의 환경이 빚어내는 비정함에 초점을 맞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도 물리적인 세상의 흐름에 철저히 내맡겨지며 스토리를 생성하기도 한다. 3년 전, 그의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들은 사실 긴 사연을 통과하며 그 곳에 당도한 것이었다. 2005년 암스테르담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를 마치면서 그간의 작품을 한데 모은 작가는 자금 사정상 그것을 한국으로 운송할 수가 없어 폐기처분하기 위해 5개의 카트에 나눠 담았다. 마침 그 기간에 암스테르담을 방문한 한국 큐레이터의 제안으로 5개의 카트는 그 내용물과 함께 서울로 운송됐고, 화이트큐브가 아닌 진짜 ‘사무실’에서 전시됐다. 이후 KIAF 특별전에 참여해 ‘버려질 운명의 작품들이 아트페어에 소개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 뒤, 더 이상 보관할 곳이 없다는 고민을 떠 안은 각각의 작품들은 <십 년만 부탁합니다>전을 통해 작가의 지인들에게 10년간 위탁되었다. 그렇게 그의 작품은 그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우연성을 따르며 전시되기도 하고, 생명을 연장해 가며 새로운 스토리를 입게 된 것이다.

끝없는 스토리텔링의 과정

작업 내용 형식부터 전시 방식까지, 이렇게 이주요는 미술계의 익숙하고 정형화된 방식을 비껴가며 특유의 미감을 극대화시킨다. “완벽하지 않으면서, 어딘가 더 왈가왈부할 수 있을 만한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 바로 미술이 아닐까요?” 이주요는 물리적 세계 속에서 자신을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환호받는 행운의 것 주변에 무수히 존재하는 그렇지 못한 약한 존재와의 조우를 꿈꾼다. 예전에 어느 네덜란드 작가가 이주요의 한 작품을 보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마도 그 작가가 한 말은 이주요의 작업이 보는 이에게 완결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질문을 던진다는 말과도 상통한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렇게 ‘열려 있는’ 특징 때문에 이주요의 작업에 대해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는 관객도 많다. 작가 역시 그런 반응에 익숙해져서인지, 예전에는 전시를 통해 관객과 직접 대면하는 대신 아트북을 출간하여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낼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저는 직접적인 걸 싫어해요. 무언가 완벽한 답을 제시한 상태, 질문이나 갈등이 전혀 없을 때야말로 제일 재미없죠. 그렇기에 제 작업은 꾸준한 스토리텔링의 과정 속에 있어요. 작가에게는 각자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미술의 대중화와 소통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 부분에 정진하면 되는 것처럼, 저는 제 방식에 정진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미술 속에 많은 언어가 생겨나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여름의 중간에 짤막히 열렸던 그의 오픈스튜디오는 가을(10. 7~15)에 다시 관람객을 위해 문을 열 예정이다. 작가는 아마 그땐 스튜디오의 장면이 많이 바뀌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심리적 사건의 기록을 더욱 충실히 한 스튜디오를 보여주고 싶은 그의 노력이 한껏 묻어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이주요의 작업은 꾸준히 ‘과정’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미디어아트의 무한 미학을 펼치겠다” 노소영2010 indaf 총감독

2007년 남산드라마센터에서 개최된 <p.Art.y>행사 장면. 사람과 예술 그리고 테크놀로지가 만나는 3일간의 네트워크 퍼포먼스

“미디어아트의 무한 미학을 펼치겠다” 노소영2010 indaf 총감독

글 | 호경윤 수석기자

9월 1일부터 인천 송도 투모로우시티에서 개최될 2010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이하 IN DAF)의 진두지휘를 맡은 노소영 총감독.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한 아트센터나비의 관장이기도 한 그는 “첨단 문화도시로 발돋움하려는 인천시의 강력한 의지를 담아 공간 속에 갇혀 있던 예술 작품을 광장으로 확대해 관람객과 시민에게 멀게 만 느껴지던 미디어아트를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추진할 것”이라면서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른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2010 INDAF, 모바일 비전

이번 INDAF는 <모바일 비전: 무한 미학>이라는 주제로 국내외 미디어 아티스트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하는 무한 미학’을 통해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넘어, ‘미래의 예술’을 제안하고자 한다. 관객의 참여로 완성될 수 있는 작품이 주를 이루며, 예술과 산업기술의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노 감독이 그리고 있는 INDAF의 ‘큰 그림’이다. 세부 프로그램은 <모바일 아트> <웨이브> <블러> <공공미술 9경> <센스 센시즈>로 구성되어 강필웅 류병학 허서정 최두은, 유키고 시키타, 짱가가 큐레이터를 맡았다.
사실 INDAF는 인천 경제자유구역의 1단계 사업이 완료되었던 2009년, 시책 사업으로 개최된 인천세계도시축전의 일환으로 열렸던 미술 행사였다. 그러나 올해 송영길 인천시장이 새롭게 부임하며 2009인천세계도시축전을 둘러싸고 불거진 예산 낭비 시비에 대해 재정 감사를 청구하면서 올해의 모든 시 행사가 전면적으로 제동이 걸린 상태. 다행히 기자가 인터뷰하기 바로 전날, 노 감독은 송 시장을 직접 만나 INDAF만은 예정대로 개최하기로 확답을 받아 냈다. 그래서였을까. 노 감독의 표정은 밝고 의욕이 넘쳐 보였다. 물론 인천세계도시축전이 열리지 않아 행사 전체의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유일하게 살아남은 문화 행사이기에 미술계 입장에서 보면 상대적인 집중도는 높아진 셈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개방을 통해 내부와 외부가 서로 교류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잖아요. 자기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술과 기술을 융합시켜 화학반응을 일으켜야 하는데 송도가 그런 장소로 적절한 것 같아요. 공항과 항만, 그리고 국제자유무역신도시까지 갖춘 인천에서 새로운 예술 교육과 문화 교류의 발판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 6월 12일 서울W호텔 내 레스토랑 ‘키친’에서 아트센터나비와 프랑스의 어갱래뱅아트센터가 각각 2010 INDAF와 <뱅뉴메리크>를 앞두고 프리 이벤트로 <Banquet Interactif>를 진행했다. 증강현실 3D기술을 동원해 양국의 거리와 시간차를 뛰어넘어 유명 세프의 요리, 무용, 라이브 퍼포먼스가 어우러졌다. 장맛비가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오세훈 배순훈 백지연 등 각계 인사들이 모여 INDAF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던 그가 미술관을 운영하고 심지어 세계적 규모의 국제 행사를 맡을 정도로 미술과 밀접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시어머니였던 고 박계희 여사의 영향이 컸다. 고 최종현 SK회장의 부인이었던 박 여사는 미술을 전공한 손꼽히는 컬렉터였을 뿐 아니라, 1984년 워커힐미술관을 개관해 국내 최초로 앤디 워홀의 전시회를 열고 젊은 작가 발굴에도 앞장섰을 만큼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박 여사가 타계하면서 그를 대신해 워커힐미술관을 꾸려 나가기 시작한 노 관장은 박 여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워커힐미술관 15년사》를 펴냈다. 또한 고인의 10주기였던 2007년, 노 관장은 소마미술관에서 <Trace & Grace-한 소장가의 꿈, 길>전을 마련해 박 여사의 컬렉션 중 선별해 뒤샹, 보이스, 칼더 등 주요 작품 80여 점을 전시한 바 있다.
사실 노 관장이 워커힐미술관을 맡기 이전에 미술과 인연을 맺은 계기가 한 번 더 있었다. 미국에서 경영학 경제학을 전공하며 대학원을 다니던 중 서울에 잠깐 들어와 있으면서 대전 엑스포에 통번역 자원 봉사를 했는데 당시 엑스포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오명 전 부총리가 아트&테크놀로지 전시팀장을 맡긴 것. “의욕만 넘쳐 시행착오를 겪었던 행사였지요. 그래도 그 경험을 토대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당시 예술을 전공한 사람은 전혀 없었고, 경제학이나 전자공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재미있는 조직이었어요. 전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바깥에서 보는 입장이 더 익숙하죠.” 사회 구조 안에서 예술을 이해하려는 노 관장의 마인드는 21세기 디지털 혁명 이후 예술과 문화의 문맥과 잘 상응한다.

왼쪽·<Come Join us Mr.Owell> 관객참여형 텔레마틱 라이브 퍼포먼스 2009
오른쪽 송명진·<Daydream-2010 Tri-bowl> INDAF 전시 <공공미술 9경> 섹션 출품작

미디어아트의 발신지, 아트센터나비

‘대통령의 딸’ ‘재벌가의 안방마님’이라는 수식어가 늘 노 관장을 따라다니지만, 그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실험해 보고자 하는 능동적인 도전 의식이 강하다. 2000년 SK사옥 내 개관한 아트센터나비도 마찬가지다. “아트센터나비는 기존 아날로그 미술관이 아닌 디지털 미술관을 표방했습니다. 개관부터 추구했던 것이 기존 미술계의 전략과 약간 달랐어요. 더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고 그냥 다른 것이지요. 20세기의 예술이 걸어 왔던 길과 조금 다른 것을 개척해 보자 해서 시작했는데, 그 개척이 쉽지 않잖아요?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고 ‘왜 저러지’ 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그런 대안적인 방향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아트센터나비는 ‘미래의 미술관’이라는 비전 아래 매개자의 역할을 지향한다. 과거의 미술이 보고 읽는 것이었다면, 미래의 미술은 자기 스스로 갖고 보고 느끼고 재창조하는 것이라는 것이 노 관장의 지론이다. 그래서 아트센터나비는 매개자의 역할을 지향하며, 기술이 인간의 문화적 삶에 스며들어 열리는 새로운 창작의 차원에서 ‘기술의 인간화’를 실현하기 위한 과학기술과 인문학, 그리고 예술 사이의 상호 협력을 중개하고자 한다.
아트센터나비에서는 그간 SK이동통신사 매장에서 진행했던 <스펙트럼@TTL>, 싸이월드와 함께 했던 <러브 바이러스>, SK텔레콤 본사 1층 로비에 설치된 전광판 ‘코모’에서 세계적인 디지털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등 기업과 미술의 만남을 끊임없이 주선해 왔다. 또한 2006ISEA에서 <컬처 컨테이너>, 스페인 ARCO에서 <민박 프로젝트>를 개최하는 등 해외에 국내 미디어아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탈북자 청소년과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함께 꾸린 <프로젝트 I>, 카이스트 재학생 등 IT 전문가와 예술가 간 산학협동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07년 남산드라마센터에서 진행했던 <p.Art.y>는 그 동안 아트센터나비에서 연구했던 예술적 실험을 페스티벌 형식을 빌어 총체적으로 보여 줬던 행사였다. 전시와 라이브 공연, 워크숍, 영화 상영, 도시 게임, DJ파티 등이 섞여 말 그대로 ‘컬처 리믹스’를 구현한 실험의 난장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아트센터나비에서는 전시는 물론, 교육적 아카데미와 실험적 프로젝트를 활성화시키고 국내외 미디어아트에 대한 방대한 아카이브를 꾸린 국내 유일의 미디어아트의 발신지가 되었다. 올 연말에는 아트센터나비 10년의 역사를 모은 책을 발간, 다가올 10년을 준비할 계획이다. “앞으로 미디어아트의 향방은 크리에이티브 산업 영역으로 보다 깊이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산업의 융합 속에서 우리의 미래, 즉 새로운 예술의 역할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어요. 그 융합의 성과는 직접적으로 드러나거나 물리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보이지 않는 변화’야말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 아닐까요?”

2010 August Special - 섬의 예술, 예술의 섬

베네세하우스의 숙박 전용 호텔 오발(Oval). 1995년 섬 정상에 건립됐다. 글자 그대로 타원형 건물이다. Photo: Osamu Watanabe

섬의 예술, 예술의 섬

글 | 김복기·본지 발행인

벼르고 별렀던 나오시마(直島)를 마침내 다녀왔다. 내가 ‘예술의 낙원’ 나오시마의 명성을 듣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부터다. 여러 번 이 섬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일정이 자꾸만 어긋났다. 그러나 올해 여름은 결코 놓칠 수 없는 대형 이벤트가 겹쳐 있다. 6월의 이우환미술관 개관, 7월의 세토우치(瀨內)국제예술제 개막이 이어졌다.

나오시마, 죽기 전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

나오시마 취재에 앞서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수집해 봤다. 깜짝 놀랐다. 나오시마는 미술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미술과 여행의 명소로 떠올랐다. 아주 오래 전에 한 미술관장이 쓴 나오시마 탐방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나오시마는 선택받은 소수 VIP들의 여행지였다. 이제는 확실히 달랐다. 작가나 갤러리스트뿐만 아니라 사설미술관 아카데미 회원의 여행까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의 몇몇 여행사는 아예 나오시마 패키지 상품을 가동하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나오시마 3인3색》이라는 여행 에세이집도 나와 있다. 방송에서도 텔레비전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한 바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오시마가 정책 입안자나 기업인들에게까지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다. 지난 7월 5일부터 2박3일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 8명과 문화체육관광부 정책 담당자가 나오시마를 돌아보고 왔다고 한다. 또 전경련 부설 국제경영원은 ‘창조 경영의 섬 나오시마 연수단’을 모집했다.
나오시마 아트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1987년. 1992년에는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베네세현대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2004년에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지은 치추(地中)미술관을 개관해 모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전시했다. 이 무렵부터 나오시마는 세계적인 ‘예술의 낙원’으로 이름을 떨쳤다. 버려진 섬의 부활, 섬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 미술로 꾸민 환상의 섬,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땅 속의 미술관…. ‘나오시마의 기적’은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오늘날 나오시마는 ‘생애 꼭 한번은 가봐야 할 여행지’로 손꼽히고 있다. 세계적인 여행 전문지 《콩데 나스트 트레블러(Conde Nast Traveler)》는 나오시마를 ‘세계 7대 명소’ 중의 하나로 꼽았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나오시마 열기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터졌다. 지난 6월, 나오시마에 이우환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이우환이 일본 현대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으로 보면,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벌써 한둘 쯤 생길 법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오시마 아트프로젝트의 국제적인 수준이나 이 섬을 향한 세계인의 이목을 감안하면, 이우환미술관의 개관은 작가 개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한국미술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나오시마는 한국미술과 더 가까운 인연을 맺었다.
나는 지난 7월 19일 나오시마로 떠났다. 이 날은 세토우치국제예술제가 개막하는 날이다. 이 행사는 카가와와 오카야마 양 현에 걸쳐 있는 세토우치 바다의 7개 섬과 다카마츠 시에서 일제히 열리는 대규모 현대미술제다. 지난 7월 19일 ‘바다의 날’에 행사를 시작해 10월 31일까지 계속된다. ‘바다의 복권-아트와 바다를 순회하는 100일간의 모험’이라는 부제를 내걸고, 18개국 75개의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발터 드 마리아 <Time/Timeless/No time>_일본에 있는 발터 드 마리아 작품은 불과 두 점. 그 두 점 모두 나오시마에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직경 2m의 구체 1개와 금박을 입힌 목제 기하학 형태의 입체 27개를 배치한 것이다. 전시 공간에는 천정에 창이 있어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작품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한다.

‘예술의 낙원’을 일구기까지

나오시마는 카가와현 북쪽 해안에 자리 잡은 둘레 16㎞의 작은 섬이다. 불과 3500여 명이 거주하는 이 외딴 섬이 연간 50만 명이 찾는 ‘예술의 낙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일궈낸 인물은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郞). 그는 일본의 대표적인 교육 그룹 베네세의 회장이다. 베네세는 유아부터 고교생에 이르기까지 교육 어학 사업에서부터 요양 등 실버 사업, 그리고 서점, 보험, 인재 파견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후쿠다케 회장은 나오시마후쿠다케미술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나오시마와의 만남을 이렇게 쓰고 있다.
“도쿄에서 오카야마(岡山)로…. 1986년 당시 후쿠다케서점 사장이었던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 나는 오카야마 본사에 돌아오게 됐습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손을 댄 프로젝트 하나가 나오시마입니다. 선대(先代) 사장께서는 세토우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나오시마에 어린이들을 위한 캠프장을 짓고 싶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 유지를 제가 이어 받았습니다.”
후쿠다케 데츠히코는 1985년 나오시마 시장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지상낙원을 만들어 보자”며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사람의 손으로 파괴된 섬을 사람의 손으로 다시 아름답게 가꾸자는 비전으로 이어졌다. 원래  나오시마는 구리 등을 제련하던 곳으로, 폐기물이 쌓이면서 사람들이 점차 섬을 떠나고 있었다. 죽어가는 ‘섬의 복원’. 여기에서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출발했다.
후쿠다케 회장은 부친의 뜻을 받들어 나오시마 아트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파트너로 삼았다. 안도는 비상한 상상력과 탁월한 감각으로 나오시마 아트프로젝트의 큰 그림을 그려 나갔다. 나오시마 아트프로젝트는 크게 베네세하우스의 현대미술관과 야외 작품, 집(家)프로젝트, 치추미술관, 이우환미술관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베네세하우스는 1992년에 오픈했다. 현대미술관과 호텔 기능을 하나로 묶은 나오시마의 핵심 시설이다. 미술관에 레스토랑이 붙어 있는 예는 흔하고 흔하지만, 미술관에 스위트룸 호텔을 완비한 경우는 베네세가 처음이었다. 베네세하우스는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세워져 있다. 이 건물은 대부분의 공간이 산 속에 묻혀 있어 외관이 아주 적게 드러나 있다. 경사면의 자연 지형을 최대한 살려 마치 산을 조각해 들어간 것 같이 만들어졌다. 지형이 지니고 있는 오묘한 맛을 건축 내부로까지 이끌어 가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미술관과 3개의 숙박 전용 건물은 모두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 1995년 섬 정상에 호텔 오발(Oval)을 건립했으며, 2006년에는 해안에 목조건물로 파크(Park)와 비치(Beach)라는 호텔을 완공했다.
베네세현대미술관의 소장 작품은 단순히 작품을 구입해서 전시한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나오시마에서 발품을 팔아 제작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 섬에 초빙된 작가들은 건축 공간 내부에 작품을 설치하기도 하고, 건물을 벗어나 해안이나 숲 속에 작품을 영구 전시했다. ‘나오시마에만 존재하는 작품’, 요컨대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미술관 안에는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던 브루스 나우만의 작품이 중정에 자리를 잡고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 잭슨 폴록, 사이 톰블리, 리차드 롱, 야니스 쿠넬리스, 조나단 보롭스키, 안토니 곰리, 스기모토 히로시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야외 작품이 좋은 볼거리다. 배가 정박하는 항구에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 관객을 맞는다. 관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호박〉은 나오시마의 랜드마크처럼 널리 소개된 작품이다. 깎아지른 해변 절벽에는 스기모토 히로시의 해안선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는가 하면, 댄 그래험의 설치작품 〈실린더〉, 월터 드 마리아의 거대한 구형 조각 등이 섬 곳곳의 수려한 자연 풍정과 만나고 있다. 이밖에 니키 드 생팔, 조지 리키, 차이 궈창, 오다케 신로 등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나오시마는 섬 전체가 미술 작품으로 뒤덮인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다.
1997년 나오시마에서는 ‘집(家)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혼무라(本村) 지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상설 프로젝트다. 혼무라는 예로부터 절, 신사 등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그러나 근년에는 빈집이 늘고 있다. 집프로젝트는 이 빈집을 공간 그 자체로뿐만 아니라 공간에 고여 있는 시간이나 기억을 불러내 보존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집프로젝트는 1998년 미야지마 다츠오가 설치한 ‘카도야(角屋)’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일곱 군데가 완성되었다. 제임스 터렐, 스기모토 히로시 등이 참여했다. 주민들의 비근한 생활공간에 예술가가 침투해 들어가는 컨셉트는 점차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주민들은 집프로젝트를 지역 환경의 일부로 인식하면서 관광 안내 및 작품 관리에까지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주민들의 삶과 미술이 유기적인 관계와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치추(地中)미술관, ‘빛의 세계’로의 여행
2004년에는 섬 남쪽의 나지막한 언덕에 치추미술관이 오픈했다. 이 미술관이야말로 안도가 꿈꿔 왔던 건축 철학이 집약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미술관은 건물을 땅 속에 가라 앉혔다. 전시 공간에서부터 카페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물을 땅 속에 묻은 것이다. 말하자면 외관이 보이지 않는 미술관이다. 바깥에서 보면 건축적 볼륨이 아예 없다. 안도는 주변 섬의 능선이나 스카이라인, 그리고 지평선을 해치지 않는다는 자신의 건축 컨셉트를 이렇게 극한으로까지 실현시켰다. 결과적으로 자연과 미술작품, 건축물이 완전한 하나의 예술품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치추미술관은 건립 이전부터 클로드 모네, 빌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 세 작가의 작품을 영구 설치하기로 하고, 작가와 건축가가 긴밀한 협업으로 구상한 미술관이다. 치추미술관 역시 하나의 거대한 장소특정적 작품이라고 해도 좋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어둠’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조금씩 밝아지는 전시장은 빛의 세계로 향하는 적요한 여정과도 같다. 월터 드 마리아의 2. 2m 높이의 원구 〈타임/타임리스/노타임〉이 전시된 방을 거쳐,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의 〈오픈 스카이〉를 거치면, 마지막으로 모네의 방에 다다른다. 모네의 〈수련〉 5점이 전시된 이곳에선 그림과 바닥과 천장의 경계가 모두 사라진다. 이탈리아 카라라 대리석 70만 개를 가로 세로 2cm로 깎아 바닥을 다진 이곳은 모네의 그림만이 오롯이 떠오르는 순백의 공간이다.
후쿠다케 회장은 모네와의 만남을 이렇게 쓰고 있다.
“1999년 보스턴에서 열렸던 모네 전람회에서였지요. 거기에서 2×6m의 〈수련의 연못〉이라는 작품을 만났어요. 이 그림이 나를 불러 말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구입해서 가까이 두시길…’(웃음). 운 좋게도 이 작품을 내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어, 새로운 미술관 구상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세계에는 여러 가지 종교가 있습니다만, 〈수련〉을 종교를 초월하는 만다라의 개념으로 전시하고 싶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모네는 말년에 지베르니에서 수련 연못을 갖춘 일본식 정원을 꾸미고 〈수련〉 시리즈를 제작했다. 세월이 흘러 모네의 이국취미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일본인들은 지극한 ‘모네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오시마의 모네를 두고 일본의 모국주의(Vernacularism)적 발상이 아닐까, 색안경을 끼고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술사적으로 모네는 19세기 인상파 화가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만년의 작품 활동은 20세기 미술사에 풍성한 젓줄을 대는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자연의 빛이 빚어내는 표정을 풍요로운 색채로 표현한 ‘빛의 화가’ 모네는 죽을 때까지 26년간 거의 모든 시간을 연못의 조경과 수련을 그리는 데 보냈다. 〈수련〉 시리즈를 보면, 처음에는 연못의 가장자리와 근경의 나무와 숲 등 풍경을 표현했지만, 점차 수면한 가득한 화폭, 색채로만 가득 찬 추상회화처럼 되어 갔다. 모네의 예술적 유산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힌트를 줬다. 자유로운 붓 터치와 색면에 영향을 받은 추상표현주의나 컬러필드페인팅, 색채와 빛의 표현에 서정성을 드러냈던 추상 그룹, 작품 연작에 있어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 냈던 화가들….
치추미술관도 바로 모네 작품의 현대성에 주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치추미술관을 구성하는 다른 현대작가들의 작품 조합에서 확실히 증명된다. 특히 모네와 제임스 터렐과의 연결이 그러하다. 터렐은 빛 그 자체를 물질처럼 다루는, 빛 그 자체를 표현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삼고 있는 작가다. 모네도 흔히 ‘빛의 화가’라 불리지만, 터렐은 모네가 의식하고 있던 조형적인 문제를 현대적으로 더 넓혀간 작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네와 터렐은 미술사적인 계보가 이어져 있다. 모네와 현대작가를 조합한 전시는 이미 상식처럼 돼버렸다. 2003년 모리미술관의 개관기념전 〈행복〉에서 모네의 〈수련〉은 ‘열반(Nirvana)’이라는 섹션에서 부처의 미소, 시원의 풍경, 추상회화와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런던 데이트모던의 상설전에서는 〈수련〉이 마크 로스코의 작품과 한 식구처럼 나란히 걸려 있었다. 또한 모네의 작품은 이우환의 작품과도 만난 적이 있다.

다카마츠 항구는 이번 예술제에서 ‘종합 스테이션’역할을 맡았다.
츠바키 노보루 <다카마츠에서 어망표시등> 2009_작가가 지도하는 지역의 중고등학교에서 팀을 결성해 세토우치 바다에 사는 생물 모양으로 크고 작은 어망표시등을 제작했다. 상가의 빈 공간이나 역 항구 등 시가지 곳곳에 전시한다. 페스티벌 전야제 때는 어망표시등 오브제를 항구에 집결시켰다.

이우환미술관, 삶과 죽음이 만나는…

지난 6월 15일 이우환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역시 안도 타다오가 설계를 맡았다. 미술관 입구에는 자연석과 철판을 설치한 이우환의 작품 〈관계항〉이 바다를 향해 놓여 있다. 미술관 앞마당에는 높이 18m의 육각형 콘크리트 봉이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다. 이 봉을 설치한 것은 차갑고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에 공간의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이우환의 발상이었다. 입구까지는 좁고 긴 통로를 거쳐야 했다. 내부는 한마디로 동굴 같은 느낌이었다. 미술관은 ‘만남의 방’ ‘침묵의 방’ ‘그림자의 방’ ‘명상의 방’으로 나뉘어, 이우환의 예술 세계를 압축하는 회화와 조각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만남의 방’은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등 평면 작품 중심으로 꾸몄고, ‘침묵의 방’과 ‘그림자의 방’은 자연석과 철판으로 이뤄진 설치작품 중심이다. 마지막 ‘명상의 방’은 회화 〈조응〉이 벽면에 그려져 있다. 이 방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후쿠다케 회장은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으로 열린 이우환의 개인전 〈울림〉을 관람했다. 이 전시장을 둘러본 후쿠다케 회장이 나오시마에 이우환미술관 건립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우환은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 개인 미술관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오시마에서 내 이름을 내건 미술관을 짓는다고 해서 망설이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했지요. 미술관 소장품은 후쿠다케미술관재단에서 구입한 작품도 있고, 내가 기탁한 작품도 있습니다.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에 전시됐던 것처럼 잘 알려진 작품이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온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이 미술관의 건립은 건축과 작품이 상호연관성을 펼치는 협업인데, 안도와는 잘 아는 사이여서 미술관을 지으면서도 다툼 없이 순조롭게 진행했어요. 그러나 사실 보이지 않은 부분에서는 불꽃 튀기는 치열한 경쟁(?)이 있었지요.”
이우환미술관을 둘러 본 이후의 소감은 한마디로 기대 이상이었다. 애초 나는 이우환미술관이 베네세현대미술관의 한 부속공간에 들어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실상은 완벽한 개인미술관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전시 내용이 압권이었다.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이우환의 전시가 열렸지만, 그 중에서 독일의 본미술관은 공간과 개별 작품의 조화가 뛰어났고, 베니스 특별전은 공간 전체의 조화가 가장 잘 맞아떨어진 예로 들고 싶다. 나오시마의 이우환미술관은 작가의 예술적 진수를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아주 적절하게 요약해 놓은 공간이었다. 이우환은 이 미술관의 컨셉트를 설명했다.
“과연 어떤 미술관을 만들 것인가. 나는 애초부터 종래의 미술관 개념과는 다른 발상에서 출발했습니다. 컴컴한 동굴 안에 그림을 그린 알타미라 동굴을 떠올렸습니다. 본다는 것을 넘어서 알타미라 동굴은 삶(生)과 죽음(死)이 결부된 우주적 공간인데, 그런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동굴, 그러니까 일종의 피난처나 감춰진 곳 같은 구조와 분위기를 염두에 뒀어요. 화려하진 않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생각하는 장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장소….”
나의 이우환미술관 체험을 밝히자면 마치 고분 같은 무덤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었다. 아니면 종교적 성소(聖所)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이우환이 그 말을 받았다. 어느 서양 여성은 ‘어머니의 뱃속 같은 공간’이라 했다고 전한다. 모태(母胎)와 무덤. 이게 바로 삶과 죽음의 표상이 아닌가. 취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이우환미술관의 안내 리플릿을 읽어 봤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만드는 것을 최소화함으로써 무한을 느끼게 하는 이우환의 작품. 콘크리트 벽을 세워 안과 밖을 분리시키면서도 자연으로 확장하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 본 미술관은 작품, 건축, 주변의 자연을 통해서 천천히 조용하게 세상사를 생각하는 것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세토우치국제예술제, 죽어가는 ‘섬의 복원’
세토우치국제예술제는 나오시마 이누지마 메기지마 오기지마 쇼도시마 오시마 테시마 7개 섬과 다카마츠 시에서 열리는 대형 국제전이다. 작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독일의 토비아스 레이버그, 프랑스의 크리스찬 볼탄스키, 일본의 요코오 타다노리, 건축가 안도 타다오, 조각가 아오키 노에, 그리고 한국의 서도호 전준호 등등 국제전에서 눈에 익은 작가들이 참가했다. 주최 측은 이번 예술제의 개최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예로부터 교통의 대동맥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온 세토우치. 오가는 배가 섬에 들러 항상 새로운 문화와 양식을 전해 왔습니다. 그것은 각 섬들 고유의 문화와 더불어 성장해 아름다운 경관과 전통 풍습이 되었습니다. 지금 세계의 글로벌화 효율화 균질화의 흐름 속에 섬의 인구는 감소하고 고령화가 진행되어, 지역 활력이 저하되고 섬은 고유성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이 서로 어우러지고 모든 세토우치 섬들의 활력을 되찾아 세토우치가 지구상 모든 지역의 ‘희망의 바다’가 되기를 목표로….”
이번 예술제의 종합 프로듀서는 나오시마의 기적을 이룩한 주역 후쿠다케 소이치로가 맡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당장 눈치를 챌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예술제는 나오시마의 성공 사례를 인근 해협의 섬 전체로 확장시키려는 또 하나의 도전인 것이다. 일종의 ‘나오시마 효과’다. 종합 디렉터는 기타가와 후람(北川)이 맡았다. 그는 니가타현에서 열리는 〈대지의 예술제-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의 종합 디렉터로 지역 현대미술 축제를 국제적인 위상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에치고츠마리는 2000년에 출범해 올해로 4회째를 맞는데, 이번에는 40만 관객을 예상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한 행사다. 기타가와는 일찍이 출판에서부터 음악, 기획전 프로듀서, 도시 건축, 거리 부흥 아트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세토우치국제예술제는 외형적인 전시 방식이 농촌 지역의 폐교나 계단식 밭에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에치고츠마리와 유사하다. 나는 이번 행사를 에치고츠마리의 ‘섬 버전’으로 보았다.
그러나 세토우치국제예술제가 지니고 있는 지역 정체성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세토우치의 아름다운 바다와 섬에는 근대화 과정에서 겪어 온 어두운 역사가 배어 있다. 세토우치는 1934년에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지만, 고속 교통망 체제 정비 때 이 지역이 제외된 이후 해운업 쇠퇴의 불운, 제련소의 배연과 산업 폐기물 투기로 빚어진 환경 파괴 논란, 잘못된 정책에 의한 한센병 격리의 비극 등등 근대화 과정의 부채가 숱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세토우치는 앞서 행사의 취지에서 드러나듯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섬의 활력 저하와 지역 정체성 상실 등 현실적 고민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토우치국제예술제는 바다의 복권, 섬의 복원에 대한 희망을 행사의 목표로 내세운 것이다. 그리하여 각 섬의 장소성을 고려해 작품을 제작하고 설치했다.
(1)쇼도시마는 올리브 소면 간장 등의 산업이 활성화된 섬이다. 이번 예술제는 전통 마츠리 축제와 농촌 가부키 같은 주민 활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2)오기지마는 평지가 거의 없어서 산자락에 민가가 밀집해 있다. 전통 어촌 생활을 접하고, 그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작품을 전시했다. 주로 경사면의 돌담길에 작품을 전시하고, 민가 내부에도 작품을 전시했다. (3)메기지마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섬 정상의 ‘도깨비 동굴’, ‘쾌적한 해수욕장 100선’으로 뽑힌 해변 수질 등 아름다운 섬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작품, 그리고 바다 파도 바람 나무 빛 등을 테마로 오감을 통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휴교 중인 초등학교와 빈집 등을 이용했다.
(4)테시마는 지난 천여년 간 석재 산업이 번성했다. 2차대전 후 아동보호시설이 개설되는 등 ‘복지의 섬’으로 유명하다. 음식과 미술을 연결해 ‘자급자족’, ‘신토불이’라는 메시지를 내걸고 지역 사회의 미래를 제시한다. 계단식 논의 재생, 빈집을 이용한 신토불이 레스토랑을 열었다. (5)오시마는 1909년에 설립된 한센병 국립요양소가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는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교류하는 ‘쉬운 미술프로젝트’를 펼친다. (6)이누지마는 2007년 경제산업성이 ‘근대화 산업유산’으로 지정한 제련소를 보존하고 재건하는 ‘이누지마 아트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이누지마 전체를 ‘건축, 현대미술, 환경’이라는 새로운 순환형 사회 모델로 삼고 제1차 프로젝트가 2008년에 준공되었다. 제2차 공사가 예술제와 함께 정비되고 있다. (7)다카마츠는 인구 42만의 도시이다. 메이지 시대 이후 시코쿠의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예술제에서 다카마츠 항은 ‘종합 스테이션’ 역할을 맡고 있다. 세토우치의 사람, 일, 물건 등의 교류 거점이다. 항구 주변 지역에 전시, 미니콘서트 등 이벤트뿐만 아니라 오픈 카페, 해산물시장, 예술제 관련 상품 가게를 열었다.

나오시마_이우환미술관 ‘만남의 방’ 전시 전경. Photo: Shigeo Anzai <선으로부터>와 <점으로부터> 등 평면작품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예술 경영, 지역 부흥, 국제전, 그리고 아트의 미래

세토우치국제예술제는 개막일로부터 일주일간 약 3만 명에 이르는 관객을 맞았다. 관람객 수가 나오시마에 쏠렸지만(1만 2261명), 다른 섬에도 평균 3000여 명의 관객이 몰렸다. 주최 측은 50만 명의 관객 달성 목표가 순조로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예술제는 향후 3년마다 개최할 계획이다. 세토우치국제예술제는 현대미술의 예술적 미학적 효용과 더불어 관광 진흥, 지역 이미지 향상 등의 여러 목적과 만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미술 내외적으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첫째, 앞으로 우리나라는 기업 경영이나 지자체의 문화 정책 차원에서 나오시마 아트프로젝트에 대한 벤치마킹이 활발하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이 지자체 문화 마케팅의 롤 모델이 되었던 것처럼 이제 너도나도 나오시마를 동경할 것이다. 나오시마의 성공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것은 기업 메세나 활동, 문화 예술에 대한 사회 공헌 활동이 낳은 기적이다. 베네세 그룹과 후쿠다케 회장은 기업 예술 후원이나 기부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우리는 예술 경영의 성공 앞에서 너무 ‘과실’에만 탐내지 말고 먼저 밭을 일구는 ‘투자’에도 마땅히 눈을 돌려야 한다.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투자액은 460억엔. 베네세 그룹의 작년 매출이 4066억엔이다.
둘째, 아오시마의 집프로젝트나 세토우치국제예술제는 일종의 공공미술 성격이 강하다. 공공미술의 정체성과 작품의 성패는 무엇보다 지역 커뮤니티와의 컨센서스가 중요하다. 나오시마 노인들도 처음엔 아트프로젝트에 투덜거리기만 했지만, 방문객 수가 50만 명을 넘어서자 인식과 태도가 점차 달라졌다. 작년 통계에 따르면 나오시마에서 활동 중인 노인 자원봉사자 수가 2147명에 이른다. 셔틀버스를 직접 몰거나 집프로젝트에서 입장권을 받거나 신발을 정리하는 사람도 모두 섬에 살고 있는 노인들이다.
셋째, 세토우치국제예술제는 ‘지역 부흥’을 목표로 삼는 국제전이다. 개최 지역의 문화적 경제적 활성화를 행사의 중요한 설립 동기로 삼은 경우다. 따라서 가이드북을 한 손에 들고 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미술작품을 찾아가는 이른바 ‘유람 관람’ 형식이 적격이다. 이 점에서 독일의 뮌스터조각프로젝트와 아주 유사하다. 그러나 뮌스터에 비해 세토우치의 섬들은 전시 사이트가 더 넓고 관람 환경이 더 열악하다. 그만큼 세토우치국제예술제는 종래의 예술 개념이나 전시 개념에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금, 나오시마를 중심으로 한 세토우치 섬에서는 미술을 지역 커뮤니티의 변혁에 큰 힘으로 활용하고 있다. 죽음의 땅으로 변해 가는 섬을 미술의 에너지로 재생시키려는 것이다. 그 미술의 힘이 설혹 우리가 흔히 규정하고 있는 예술 내적인 규범이나 기능에서 벗어나 미술 외적으로 살짝 기운다 하더라도, 그 현상을 굳이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시대와 미술 개념의 변화, 그리고 미술의 효용의 폭에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일이 더 중요할 터이다. 미술이 사람을 바꾸고, 미술이 지역 사회를 바꾸고, 미술이 세상을 바꾸고, 그리하여 미술이 낙원을 만들 수 있다면…. 미술은 살아 있다!

Arch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