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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0.05

Abstract

특집_We are the New Galleriest art는 지난 4월호 특집 'Art Market Now?'에서 세계 및 한국 미술시장의 현황을 분석했다. 이번 5월호에도 미술시장 관련 특집을 이어간다. 단, 이번엔 좀 더 구체적으로 시각을 좁혀 봤다. 그 주인공은 바로 '갤러리'다. 언제부터인가 '미술 시장'과 관련하여 미술품 경매나 아트페어가 부각되면서, 갤러리에 대한 관심은 다소 소홀해진 것이 사실이다. 마침 2010년에 접어들면서 한국 갤러리들이 새로운 전기를 쓰고 있다.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 온 주요 갤러리들이 각각 30년 이상의 역사를 맞이하는 가운데, 한 쪽에서는 갤러리스트의 세대교체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이제 한국 갤러리의 역사를 이어갈, 다음 세대의 젊은 갤러리스트들의 현황을 파악할 때가 됐다. 그 동안 미술계는 '젊은 작가'나 '젊은 미술평론가'와 달리, '젊은 갤러리스트'에 초점을 맞춘 적이 거의 없지 않았던가. 바로 지금 art는 한국 미술계를 이끌 차세대 갤러리스트를 소개한다. 먼저 각각 다른 성격의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정재호 홍보라 대표의 테이블 토크로 첫 장을 시작한다. 두 젊은 갤러리스트가 들려 주는 갤러리 운영의 생생한 현실을 전한다. 다음은 한국 대표 21개의 젊은 갤러리를 소개한다. 선정 기준은 1970년 이후 출생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갤러리로 정하고, 서울 부산 뉴욕 베이징 베를린 곳곳의 젊은 갤러리 대표들을 인터뷰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젊은 갤러리의 현황과 특징을 총 분석, 정리한다. 1년 중 가장 푸르른 5월, 이렇게 art는 젊은 갤러리스트들을 통해 지면 속에 5월의 신선한 생기를 이어 간다. 미술계는 여전히 젊고 푸르르다!

Contents

표지  최슬기 〈26/28.1〉 디지털 C-프린트 20.3×15.2cm 2010

에디토리얼

프리즘 
    해외 비장 미술품을 감상하면서…_윤범모
    휘트니 서울전, “네가 처한 곳을 알라?” _박만우

아티스트인코리아
    카즈나 타구치_장승연

포커스
    권혁展|김홍주展_전영백
    김영헌展|정소영, 산드로 세톨라展_정용도
    최슬기展|크리스 콘덱|정금형x이정우x잭슨홍_임근준
    카바레 볼테르, 카바레 볼테르展 |제롬 벨|마레이스 볼로뉴_정현

특집  We are the New Gallerist
    1) TABLE TALK 젊은 갤러리가 살아 남는 법_정재호, 홍보라
    2) INTERVIEW My art, My business 젊은 도전 24_장승연, 김현
    3) REPORT 지금, 한국의 갤러리는 세대교체 중!_장승연

작가연구  임민욱
    “차라리 ~하지 않으렵니다”_정도련
    INTERVIEW 삶과 정치, 생활과 미술 사이에서_지승호

작가인터뷰  김선두 
    ‘느린 풍경’, U턴하다_김복기

이미지링크  구성수

테마스페셜  BODY 다시 몸의 예술을 말한다_배명지

리포트인사이드
    새로운 아시아 미술, 글로벌 네트워크를 향하여_서진석
 
나의 얼굴  이종빈

전시리뷰
    접속지대|신진기예|차우희|황용진|김기철|심성운
    홍지윤|김명곤|이주형|이문호|조일형|이피|심수구

동방의 요괴들  시끌시끌 야단법석, ‘요괴들’의 발대식!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다시 몸의 예술을 말한다 감각에서 사유로

(왼쪽) 마리나 아브라모빅 <발칸 에로틱 에픽> 4채널 비디오 21분 36초 2005
(오른쪽) 마리나 아브라모빅 <Seven Easy Pieces> 7채널 비디오 7시간 2005

다시 몸의 예술을  말한다 감각에서 사유로

나는 전적으로 몸이며,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혼은 몸에 대한 어떤 것을 일컫는 말에 불과하다. -프리드리히 니체

신체의 귀환, 20세기 후반을 장식하다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의 전개에서 ‘예술가의 신체’는 그 중심축에 서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 후반, 예술가의 실존을 주장하기 위해 회화적 매개로 사용되었던 잭슨 폴록 식의 예술가의 신체는 1960년대 들어 일상을 신체를 통해 예술로 제시하면서 현대미술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구 현대미술에서 예술가의 신체의 표상은 반복적 행동으로 삶을 흉내 내며 일상을 예술 현상으로 제시했던 1960년대 플럭서스와 해프닝에서 시작, 1970년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등을 거치면서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신체라는 물적 기반을 인식의 절대적 가교로 상정한 신체 현상학에 대한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의 관심은 예술의 영역에서 신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데 일조했다.
신체 미술의 영웅적인 시기로서 1970년대 전성기를 맞이한 예술가의 신체는 금기의 영역을 넘나들며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소위 ‘피’의 예술을 자초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적이고 은밀한 수음 행위를 공적 공간에서 행하거나 자기 몸을 이로 물어서 흔적을 남긴 비토 아콘치, 총으로 팔을 쏘게 해 자신의 신체에 상처를 입힌 크리스 버든, 온 몸에 케첩을 바르고 고통에 찬 피투성이 신체 퍼포먼스를 벌인 폴 매카시, 거세 퍼포먼스의 폭력성을 표현한 루돌프 슈바르츠코글러, 칼로 손가락 사이를 찌르거나 뺨을 계속 때리는 행위로 고통의 극한을 보여준 마리나 아브라모빅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개인과 집단 주체들의 심리적 고통을 극단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억압에 의한 공격성을 분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예술가의 신체는 이성과 합리, 언어 영역 내에서의 인식론적 주체를 배제하고, 대신 물질적이고 체험적인 육체적 주체를 재인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피학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예술가의 신체 이미지는 1980년대에 이르러 사진을 이용한 자기 퍼포먼스, 자기 재상연의 이미지로 그 열기가 중화된다. 이 시기 신디 셔먼과 제프 쿤스, 모리무라 야스마사 등은 미술사의 텍스트나 대중 영화 등을 참조하여 자기 변형을 시도하는 자기 모조적인 초상 사진 작업들로 주목 받게 된다. 여기서 예술가의 신체는 초월적 주체 개념을 벗어나 원래의 지시 대상체가 부재하는 불안정한 주체를 탐구하게 된다. 1990년대에는 예술가의 신체가 조나단 파인버그가 ‘신체로의 귀환’이라고 명명했듯, 보다 강박적으로 묘사된다. 키키 스미스, 오를랑, 매튜 바니, 로버트 고버 등 1990년대 신체 미술가들은 비디오 영상과 파격적인 설치를 통해 정상성을 벗어난 비천한 신체, 파편화된 신체, 그로테스크 신체, 사이보그 신체 등을 제시하며 신체의 물질성과 육체성을 더욱 강조했다.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예술가의 신체의 부상에는 통합적이고 이성적인 의식 주체로서의 인간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몸 담론이 깊게 밀착되어 있었다. 현대미술이 신체에 몰두한 근본적인 원인은 그것이 데카르트적 주체와 이성 중심주의를 해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탈 모더니즘적 대안이기 때문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데카르트의 인식론은 주체와 대상을 이분화시켜 정신과 몸의 대립이라는 선험적 분리를 야기했다. 예술가의 신체를 중심으로 하는 광범위한 작업들은 정신의 하부구조로서 영혼과 이성을 담는 껍데기로서의 신체, 응시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빈곤한 신체, 세계와의 관계에서 소외되고 박탈당한 몸을 모두 거부한다. 예술가의 신체는 탈신체적이고 자기 독백적이자 반사회적이며, 시각중심적인 이성 주체1)에 대항하는, 세계와 마주하는 육화된 신체-주체(body-subject)를 회복하고자 한다. 메를로 퐁티가 몸 자신(la corps propre)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듯이, 몸은 물리적이거나 생물학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 역사와 문화의 구조를 육화하고 세계 속에 있으면서 세계로 나아가는 ‘세계에의 존재’로서의 몸인 것이다.
탈신체화를 중심으로 하는 인식 지배를 해체하는 일종의 비판 작업으로서,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현대미술의 중심에 자리한 신체 미술은 페미니즘 미술과 후기 식민주의, 정신 분석을 비롯한 후기 구조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미술사 방법론들에 의해 그 영양분을 공급받은 것이 사실이다. 메를로 퐁티의 신체를 중심으로 하는 현상학적 논의들과 지식과 권력 담론의 지반으로서의 몸을 역설한 미셀 푸코의 사회적 신체, 그리고 조르주 바타이유의 ‘비천한 물질주의(base materialism)’ 등은 현대미술에 신체를 철학적으로 논의 가능하게 했다. 특히 ‘머리’의 철학에 대응하는 바타이유의 ‘엄지발가락’ 이론과 그것이 의미하는 ‘수평성’은 수직성을 기조로 하는 모더니즘이 억압한 물질성과 육체성, 외설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을 소환하면서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이르는 과격한 신체미술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빅 <Nude with Skeleton> 흑백 사진 125145cm

타인과 세상과 소통하는 신체

이러한 신체 미술에 대한 일련의 미술사적 철학적 논의들을 배경으로 코리아나미술관은 신체를 미술의 직접적인 매체와 대상으로 삼아 작업하는 국내외 작가 16명이 참여한 〈예술가의 신체〉전을 진행하고 있다(2010. 5. 6~6. 30, 마리아 아브라모빅, 제닌 안토니, 마커스 코츠, 마르쿠스 한센, 줄리 자프레노, 미카일 카리키스, 피피로티 리스트, 스텔락, 고승욱 김미루 니키리 안강현 이윰 이재이 이형구 장지아 참여). 〈예술가의 신체〉전은 신체의 물질성과 육체성에 강박적으로 집착함으로써 논리와 합리적 이성에 의해 ‘억압된 신체’를 해방시키고 탈중심화된 주체를 적극 표방하는 데 몰두했던 1990년대까지의 신체 미술을 마주하면서, 2000년 이후 현재 시점에서 예술가의 신체가 어떠한 방식으로 재사유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감각적 충격과 표피적인 자극으로 넘쳐 흘렀던 이전의 예술가의 신체들에 대응하여 몸과 몸의 친밀한 소통과 인간적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신체, 정신성과 내적 체험을 유도하면서 감각에서 사유로 이행하는 예술가의 신체의 새로운 방향 가능성을 가늠해보고자 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신체가 배제되고 이성과 합리성으로만 도달할 수있다고 믿었던 불구의 인간 휴머니티가 아닌, 신체 속에 육화된 의식으로 도달하는 휴머니티를 예술가의 신체 속에서 찾아보기 위한 시도이다.   
미술사가 아멜리아 존스(Amelia Jones)에 의하면 몸의 담론에서 주체는 언제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된다.2) 이는 주체가 자기 동일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타자, 상징계를 통해 형성됨을 밝힌 라캉을 이론적 지지대로 삼는 대목이다. 여기서 몸은 영혼과 언어와 사회 안에 머물며 서로를 엮어 나가는 모든 것의 중심지이자 축이다.3) 즉 신체는 다른 신체와 어떤 세계와 연결 될 수 있는 탯줄이자 사회적 장소로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친밀한 의사소통의 기본이다. 여기서 신체 주체는 그 세계에 접근하는 다양한 양상에 의해 밝혀지는 ‘세계에로의 존재’인 것이다.4) 여기서 초월적인 주체는 부정되고 자신의 정체성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상호 주체적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되며 친밀한 소통을 가능케 하는 신체 주체의 표상은 〈예술가의 신체〉전의 마르쿠스 한센과 니키리의 작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르쿠스 한센은 나와 타자의 신체가 어떻게 소통하고 전이되는지에 관심을 둔다. 비디오 영상 〈타인의 감정은 나의 것이기도 하다(Other People’s Feelings are also My Own)〉에서 작가는 다양한 성과 인종의 타인들을 선택하고 작가 자신의 신체와 병치시킨다. 외모를 넘어 서는 타인과의 감정적 소통을 통해 신체적 닮음의 중요성을 완전하게 뛰어 넘는 타인의 내적 이미지와 감정들을 재연한다. 이러한 감정 이입의 상황을 통해 그는 타인의 감정적 상태에 더 근접하고 자아와 타자 사이의 깊은 관계를 만들어 낸다.
마르쿠스 한센의 영상 작품이 어떻게 우리의 주체가 타인 속에 거주할 수 있는지, 그들의 흔적을 내 몸속에 남길 수 있는지에 관한 상호 주체적인 상황에 대해 고민한 것이라면, 니키리의 사진에서의 예술가의 신체는 타인과 완전히 동화된 과정의 결과물이다. 니키리의 〈프로젝트〉 사진 시리즈는 이질적인 문화들이 교차하는 다문화 사회 내에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이 재구성되는 과정을 제기한 것이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된 프로젝트 시리즈를 위해 작가는 히피, 힙합 댄서, 노인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 직접 참여하고 그들과 동화되기를 시도한다. 그 집단 구성원들의 복장 피부색 행동 양식 등과 자신을 일치시키기 위해 일정 기간 그 집단과 어울려 신체적으로 동화되는 내면화 과정을 거친다. 니키리의 〈프로젝트〉는 바로 그 집단 속에 완전히 융화된 결과물로, 내가 아닌 타인되기에 성공한, 나의 정체성을 성공적으로 변형시킨 증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아닌 타인이 되어 가는 퍼포먼스 과정에서 작가 주체는 상징적으로 부재하며, 그의 존재는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형성된다.
타인, 세상과 소통하는 몸으로서의 예술가의 신체는 그것의 견고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소멸시키고 내 안에 타자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여기서 예술가의 신체는 하나의 통로(Vehicle)이자 매개자(Mediator)로 기능하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샤먼의 역할에 다름 아니다. 내가 타인이 되는 것, 타인이 내 신체 속에 침투하는 것의 가장 극적인 방식이 바로 샤먼의 접신이다. 샤먼이 자신의 신체에 또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고 다른 세계와 접촉하게 되는 것은 엑스터시(Ecstasy)를 통해서다. 엑스터시라는 단어는 그리스 어원 Ex(out)와 Histanai (to stand, to be in a place)가 지시하듯 자신의 위치를 떠나 ‘자신 외부’로 가는 것을 의미하며, 비이성적 경험, 방향 상실과 이성의 부재를 통한 자기 소멸을 지시한다. 결국 엑스터시를 통해 샤먼은 자기를 결여하고 타자를 내면화함으로써 그 스스로가 통로가 되는 것이다. 〈예술가의 신체〉전에 참여한 마커스 코츠는 자신의 신체에 동물의 몸과 정신을 받아들이는 샤먼적 역할을 차용, 동물과 새의 정령 세계와 소통하며 여러 공공의 문제들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한다. 〈라디오 샤먼(Radio Shaman)〉에서 코츠는 양복을 입고 수사슴 가죽을 뒤집어 쓴 채 노르웨이 방송국에 출연하여 갑자기 늘어난 나이지리아 이민자 문제를 다루며 샤머니즘적인 퍼포먼스를 벌인다. 코츠는 궁극적으로 내가 다른 어떤 것이 됨으로써 사회 내에서 샤먼과도 같은 중개자로서의 힘을 지닌 예술가의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타자와 세상과 소통하는 예술가의 신체는 내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됨을 증거하고 견고함을 부정,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 중의 몸을 지시하면서 순수한 사상을 지닌 초월적인 주체를 벗어난다.

이윰 <깃발의 환상> 싱글채널비디오 7분 2005

이질적인 몸, 상징적 언표를 넘어

‘이질적인 몸’은 상징적 질서 체계를 벗어나는, 그 속에서 수용되지 않은 신체를 의미한다. 특히 이질적인 몸은 페미니스트 이론에서 정의한 객관적이고 규범화된 ‘남성적 시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는 여성 신체가 ‘팔루스’에 의해 표상된 남성 신체와 관련하여 ‘부재하는 것’ ‘이질적인 것’으로 표상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계적 질서 내에 포착되지 않는 여성 신체를 제시한 작가로 〈예술가의 신체〉전에 참여한 피피로티 리스트를 들 수 있다. 비디오 영상, 비디오 설치 등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여성 이미지의 모델로서 다루어 온 피피로티 리스트는 〈나는 그리 만만한 여자가 아니에요(I am not a Girl who Misses Much)〉에서 팝 뮤직 비디오의 형식을 차용, 응시의 대상으로서의 여성 이미지를 해체한다. 단절된 편집으로 인한 파편화되고 흐릿한 여성 신체, 빠르고 강렬하게 반복되는 목소리, 히스테릭하면서도 모호한 여성 신체 이미지 등으로 작가는 남성 응시를 재구성하고 그 시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질적 몸을 표상한다.
상징적 언표 밖의 신체를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는 고통 받는 신체를 제시하는 것이다. 줄리 자프레노는 자신의 신체를 극도의 고통과 결합함으로써 사회적 억압을 내면화하고 욕망과 본능의 육체에 거하는 대상으로서의 신체를 제시한다. 〈살갗〉에서 눈과 가슴과 성기를 절단하고 꿰매는 신체 훼손의 장면이나 〈신부〉에서 철사에 휘감긴 채 떨고 있는 장면은 신체의 물질성과 육체성을 극대화하고, 개인과 집단의 심리적인 고통에 다가서게 한다. 스스로를 훼손하고 타인에 의해 공격당하는 예술가의 신체 이미지에서 형이상학적이고 이성적인 언어의 영역에서의 주체는 소멸된다.
20세기 후반 과학 기술이 가능케 한 신체 이식 수술, 가상현실 등의 발전은 몸과 몸 사이에, 그리고 과학 기술과 몸에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경계를 무너뜨리고 몸의 불확실성을 심화시켰다.5) 예술가들은 신체에 인공물을 직접 부착함으로써 신체를 확장하고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는데,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스텔락이다. 그는 인간 신체의 확장을 염두 한 파격적 퍼포먼스를 실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피부를 낚시 바늘로 꿰어 공중에 매단 뒤 원격조정으로 신체를 움직이게 하고, 팔목에 기계 장치를 장착하거나 팔뚝에 인공 귀를 이식하는 행위 등으로 자신의 신체를 ‘인간-기계’의 혼성 존재로 변이시킨다. 이는 확장된 신체(Extended body)를 추구하고 보다 진화된 인간 혼성물을 창조, 초인과도 같은 포스트 휴먼에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한 실험의 결과들이다.
신체 확장의 기계적 이미지는 이형구의 작업에서도 읽힌다. 〈Altering Fea-ture Faces〉는 렌즈가 부착된 플라스틱 투구를 쓰고 시각적으로 변형되고 왜곡된 신체 이미지를 보여 주는 작가의 대표적인 사진 시리즈 중 하나다. 볼록렌즈와 오목 렌즈에 의해 눈과 입이 드라마틱하게 변형되는 그의 자화상 시리즈는 동양 남성이 서양 남성과의 차이와 다름에서 가지는 사회 문화적 맥락의 몸이 교차되고 있긴 하지만, 육체의 기계적 확장과 개조, 생물학적 기능의 변경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포스트 바디’의 개념을 공유한다.

미카엘 카리키스 <Contact> 스위스 로잔주립미술관에서 펼친 퍼포먼스 2009

몸으로 사유하기

우리가 정신이나 영혼으로 부르는 것은 몸으로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 속에 내재하는 것이다. 스님이 좌선을 통해 정신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듯이 몸은 정신의 근본적인 어떤 것이다. 과장한다면 영혼은 몸의 어떤 면을 말해 주는 단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정화열에 따르면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모든 개념은 결국 신체적일 수밖에 없으며 결코 몸에서 괴리될 수 없는 것이다. 몸이 배제된 정신이란 치명적인 추상성에 다름 아니다. 몸은 더 이상 영혼의 감옥이거나 영혼의 노예가 아니라, 오히려 영혼의 ‘숙명’이라 말할 수 있다.6) 정신과 영혼이 육체를 통해서만 숨 쉴 수 있고 ‘살’이 있는 곳에서 생각이 발생한다면, 몸으로 사유하기는 가능하다. 이때 정신을 몸 속에 내재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초월적인 것으로 상정하여 몸으로부터 정신을 분리시키는 ‘코기토’는 설 자리가 없어져 보인다.
‘몸으로 사유하기’는 마리나 아브라모빅의 최근 영상작품 〈Nude with Skeleton〉에서 가능하다. 1972년부터 자기 신체를 가지고 작업하기 시작, 고통과 육체적 저항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인간의 한계를 탐구해 온 그의 신체 미술이 감각적 충격에서 사유로 전환된 것은 놀랍다. 〈Nude with Skeleton〉은 작가의 신체와 해골을 대면시켜 삶과 죽음, 일시성과 영원함을 동시에 사유하게 하는 작업이다. 해골을 몸 위에 무겁게 얹은 채 바닥에 누워 숨쉬고 있는 아브라모빅의 호흡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커지고 증폭된다. 해골은 1990년대 이후 아브라모빅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우리 모두가 직면할 마지막 거울이자 죽음과 일시성에 대한 은유적 표상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해골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삶과 죽음이 동시에 보이게 한다.
정신이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육체를 통해 발현된다면, 이는 신체를 통한 정신 수련인 명상의 과정과 유사하다. 바다 수평선과 평행되게 줄을 매단 후 줄타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재닌 안토니의 비디오 퍼포먼스 〈Touch〉는 작가에게 있어 하나의 신체 행위라기보다는 명상 행위에 가깝다. 줄타기 퍼포먼스와 수평선이 교묘하게 ‘접촉’하는 순간에 대해 작가는 모든 사고와 에너지가 한데 모이는 명상의 최고 극점이라 설명한다. 작가에게 있어 줄타기의 정수인 균형 잡기는 통제되고 균형을 이루어야만 하는 인생과도 같다. 〈Touch〉의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수평선은 작가에게는 상상과 미래의 장소, 희망의 이미지이자 관객에게는 명상과 관조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예술가의 신체에서 주체는 언제나 결여(loss)와 결핍(lack)으로 존재한다. 그것이 감각적 충격을 던져 주는 신체이든, 사유하는 몸이든, 또는 하나의 통로로서 타자와 세상과 소통하는 몸이든, 신체미술은 인간 주체가 명료하거나 완전하지 않음을,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그 의미를 부여받으며 죽음과 소멸을 안고 사는 불안정한 주체임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킨다. 따라서 신체는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지만 항상 부재한다.7)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중요성을 잃지 않고 집요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 예술가의 신체 작업은 바로 이러한 불완전한 인간상에 대해 계속적인 질문을 던지는 끊임없는 실험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1)정화열, 《몸의 정치와 예술, 그리고 생태학》, 아카넷, 2005, p.299. 2)Amelia Jones, 〈Body Art/ Performing the Subject〉,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8, p.14. 3)정화열, 앞의 책, 2005, p.293. 4)리처드 M. 자너 지음, 최경호 옮김, 《신체의 현상학》, 1993, 인간사랑, p.287. 5)크리스 쉴링 지음, 임인숙 옮김, 《몸의 사회학》, 나남출판, 1999, p.23. 6)정화열, 앞의 책, 2005, p.294. 7)Amelia Jones, 앞의 글, 1998, p.32.

다원예술, 그 경계의 불확실성

포사이즈 컴퍼니 <덧셈에 대한 역원> 퍼포먼스 장면

다원예술, 그 경계의 불확실성

글|정 현

과거와 현대가 섞이고, 남성이 여성을 참조하고, 여성은 남성을 발췌한다. 연극은 미술을 닮았고, 음악이 몸의 움직임으로 연주되고, 무용은 차라리 드로잉에 가깝고, 미술에는 작품 대신 작품에 대한 담론이 등장한다. 오늘날, 예술 전 분야에서 감지되는 매체와 재료, 경계와 정체성의 불확정적 태도는 동시대성을 반영하고 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은 현대예술의 대안으로 일상, 문학의 발췌에 머무르다가, 현재 작가들은 가깝고도 먼 주변 예술의 형식과 매체를 인용하고 발췌하면서 협업을 진행하거나 경계도 영역도 불확실한 예술을 프로그래밍한다.
1990년대 말, 형식주의 예술의 틀로부터 벗어난 혼성주의와 이질적인 문화적 산물이나 언어가 섞이거나 지배당하는 현상을 반영하는 후기 식민주의 시대의 현대 문화를 아우르기 위한 다분히 대안적이고 행정적인 용어로서 ‘다원예술(Interdiscipl inary art)’ 개념이 등장한다. 이 용어는 연극 영화 미술 문학 무용 음악 등의 예술 분야가 혼합된 혼성 장르, 매튜 바니와 같이 매체와 언어를 아우르는 바그너 식의 총체적 오페라, 비제도권과 비전문가의 예술, 젠더를 비롯한 다양한 소수 공동체의 사회적 예술 및 기성 예술과 다른 ‘이름을 갖지 못한 모든 예술’까지 포함한다.
서구의 경우, 다원주의적 경향의 예술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섞이거나 충돌하면서 변종이나 혼성 문화를 생산하는 게 일반적인 사회 현상이지만, 다원주의가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도구가 되어 무분별하고 도식화된 다원예술 정책이 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원예술이란 신조어가 문화적으로 남용되면서 장르 융합에 초점을 맞춘 일대일 방식의 양식화된 퓨전 문화를 지지하거나, 디지털 매체 기술의 무분별한 개입, 내용보다는 기술 중심의 시각적 효과만을 보여 주는 노골적인 문화 혼성주의를 다원주의적 경향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아쉽게도 자주 포착된다.

페스티벌봄: 탈 매체 중심으로의 이동

서구와 같이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이행을 겪지 않은 한국의 시대적 상황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다원예술을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서구의 경우, 역사적 계보를 잇는 변증법적 문화 현상을 기반으로 다원적 예술 실험이 등장한 반면, 한국은 홍대 주변의 대안적인 인디 문화와 비주류적 성향이 다원의 성격을 규정짓는 기준으로 작용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페스티벌 봄은 이와 같은 한국적 상황에서 다원예술에 대한 한계를 규정하지 않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인 창작과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이 퍼포먼스에 참여한 많은 작업들이 데생 뜨개질 글쓰기 목소리 몸짓 공작과 같이 매우 기초적인 재료를 이용한 수공예적 감성을 통해 창작의 과정을 보여 주었다.
페스티벌봄의 공연과 퍼포먼스는 전반적으로 시청각 효과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연극적 구성 자체가 해체된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남아프리카 출신의 현대미술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퍼포먼스는 전석이 매진됐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은 공연이었다. 켄트리지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1970년대에는 요하네스버그의 정션애브니 극장에서 배우, 무대 디자이너 및 연출가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연기 드로잉, 그리고 미디어를 사용한 공간 연출은 다양한 재료에도 불구하고 혼성적이라기보다는 작가 자신을 닮거나 익숙한 재료들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의 드로잉을 ‘석기시대 드로잉’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주로 흑판 위에 분필로 드로잉을 하기 때문이다. 상징적으로 이는 ‘검은 대륙의 흰 빛’이라고 불리는 남아프리카에 대한 상투적인 수식어를 풍자하고 있다.
<나는 내가 아니고, 그 말은 내 말이 아니다>란 퍼포먼스에서 켄트리지는 예술가 변사 연기자 강연자였다. 러시아 작가 고골의 《코》에서 출발한 이 작업은 1930년대 러시아 사회주의의 모순을 풍자하면서 외부의 힘에 의해 통제되어 가는 몸과 정신의 나약함을 보여 주면서 인간의 본성을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토로한다. 켄트리지의 연기와 영상으로 투사되는 그의 분신들은 남아프리카의 백인 지식인의 번뇌를 엿보게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퍼포먼스는 인간의 폭력성과 폭력에 무관심한 남아프리카의 현실을 시적인 드로잉으로 보여 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54세의 작가가 자신의 드로잉과 독서를 충돌시키면서 허구적인 놀이로 발전시키는 과정과 이런 이행이 결과적으로 대중과 만나는 현장으로까지 연장되는 궤적을 연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의 작업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이라는 공간과 그의 퍼포먼스의 규모가 잘 연동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를 통해 창작의 본질을 되묻게 됐다. 언어적 규정과 실제 창작의 현장 사이의 간극이 의외로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캐서린 설리번 <치텐든스> 퍼포먼스 장면

창의적 실험이자 대안적 형태로서의 축제

벨기에에서 온 젊은 작가 마레이스 불로뉴의 <해부학 수업>은 위트가 넘치면서도 삶과 죽음에 대한 윤회 사상이 담겨진 퍼포먼스였다. 해부학 실습실로 꾸며진 무대에는 실 뜨개질 섬유 자수로 만들어진 어린 아기 인형이 놓여 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이 아기 인형을 대상으로 불로뉴는 해부학 수업을 진행한다. 인형극의 새로운 형식처럼 보이는 이 퍼포먼스는 사산아로 태어난 아기의 육체를 통해 탄생과 죽음 사이에 존재했던 찰나의 생명과 그 삶의 순간이 남아 있는 몸의 흔적들을 추적하면서, 물질과 정신의 경계에 관한 존재론적 물음을 던진다. 불로뉴는 의학적 사실과 그 속에 담긴 과학적 정보를 삶의 열정이 담긴 관능적인 언어로 엮어 낸다.
해부 수술대, 캠코더, 내시경과 빔 프로젝터가 전부인 이 공연은 화려하고 재현적인 무대 디자인과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음악과 같은 상업화된 예술로부터 독립적인 창작의 한 예를 보여 준다. 소박한 규모와 날것의 이미지에서 시적 몽상에 빠지게 하고, 인간과 생명에 대한 깊고 따뜻한 울림은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재현적 효과의 화려함이 절대 담아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이 두 작업의 경우처럼, 다원적 형식은 수리적인 논리가 아닌 사회 시스템과 예술계의 제도적 상황 사이에서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창작을 펼치기 위한 아름다운 생존의 형태일 것이며, 매체와 관련된 부분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의 틀에 고정되지 않기 위한 몸짓일 것이다.
페스티벌봄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창작의 고정된 형식과 매체를 쫓지 않고 자생적이고 비경계적인 유연한 형태를 발견하는 실험의 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축제의 기획자 김성희는 다원예술이나 혼성장르와 같은 개념 정의가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다며, 페스티벌봄이 추구하는 것은 문화 자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예술 제도에 대한 사회적 의식의 표명으로서 창의적 실험과 대안적 형태를 제시하면서 예술의 동시대성을 찾아가려는 ‘태도’의 중요함을 보여 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태도로서의 예술

포사이스 컴퍼니의 <덧셈에 대한 역원>처럼 무용의 형식을 벗어나 벽 위에 실을 엮어 만든 일종의 ‘공간 드로잉’은 몸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동시에, 감성의 표현이 아닌 상대적인 논리에 의한 몸짓을 생성시킨다. 무용이 전시 공간으로 넘어오는 것은 새로운 실험이라 할 수 없으나, 기하학적 드로잉을 통해 춤이 아닌 몸과 움직임의 관계를 역으로 묻는 이 작업은 상징적으로 장르적 융합이 아닌 질문의 공유지를 통한 만남을 시사했다.
남산예술극장에서 선보인 제롬 벨의 <루츠 푀르스터>는 무용이 아닌 무용 공연의 주변부로 시선을 옮긴다. 피나 바우쉬의 무용수였던 그의 자서전적인 일화를 얘기하면서 가끔 춤으로 보여주는 이 공연은 현대 예술이 ‘예술 작품’에 대한 미학적 질문에서 벗어나, 예술의 과정, 그 창작의 원천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기획자 연출가 안무가 배우 미술가 연주자 무용수 무대미술가 음악가와 같이 예술을 지탱하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역할 사이의 경계는 조금씩 희미해지고, 창작을 위한 기술과 매체의 고정관념 또한 변화하고 있다. 57세의 무용수의 가능성은 도약에 있지 않다. 나이와 신체, 매체와 양식, 기술과 표현 사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행위, 그런 태도를 다원예술의 철학으로 담아낼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차라리 ~하지 않으렵니다”

<Portable Keeper> 싱글채널비디오 12분 2009

“차라리  ~하지 않으렵니다”

글|정도련·뉴욕현대미술관(MoMA) 부 큐레이터

임민욱을 알게 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와 제대로 작업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큐레이터로서 약간의 ‘직무유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와의 일상적 대화는 항상 진지하다. ‘삶’에 대해서라고 말하면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늘 두 사람 간의 대화는 삶의 조건과 주변 그리고 괴리 쪽으로 길이 빠진다. 2009년 언젠가 임민욱을 서울에서 만났을 때였다. 서울 도심 한복판 경복궁 주변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서울은 왜 이렇게 깨끗해졌나요? 기분이 쾌청하기는 한데 정말로 좋아진 건지…” 라고 지나가는 말을 했다. 임민욱은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목소리를 살짝 ‘크레센도’하며 “맞아요, 하지만 사라진 것들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즐길 수가 없는 거죠. 과거의 기억들, 지각적인 경험들, 소리, 냄새들…. 아래로부터의 참여는 없고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 온 공권력에 의한 개선은 문제죠”라고 답했다.
그 발언의 저변에는 은근한 분노가 깔려 있었고, 필자처럼 사회적 정치적 인식에 ‘발작성 수면(narcolepsis)’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발언이었다. 이 일화를 예로 든 것은 무작정 ‘예스’ 혹은 수동적 인정의 ‘응, 그런가…’식의 안이한 답변을 부정하며, ‘맞습니다. 하지만’ 혹은 ‘차라리 ~하지 않으렵니다’라는 답변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위치성을 확보하는 태도야말로 임민욱의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적 주체성’이 아닐까하는 가설을 제시해 보기 위해서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주체적 위치를 획득하는 과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곧 그의 작업이라는 가설이다.

‘거부’로 획득한 작가적 주체성

한국 미술계와 간헐적 관계를 맺고 있는 필자로서는 임민욱의 작품을 처음 대한 것이 언제였는지 확실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2006년 서울 로댕갤러리에서 열렸던 그룹전 〈사춘기 징후〉에 출품되었던 그의 비디오 작업 〈뉴타운 고스트〉는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같은 해 200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처음 작가를 만났지만 전시된 작품은 여성만이 관람할 수 있다는 규칙 때문에 볼 수가 없었는데, 되돌아보면 당시에는 그 ‘거부’의 제스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2007년 후 한루가 예술감독을 맡았던 이스탄불비엔날레에서 〈뉴타운 고스트〉로 초청을 받은 임민욱을 다시 마주치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곳곳에서 열린 전시를 계기로 작가와의 마주침은 계속되었다. 마치 하나의 혹성과 위성의 정기적인 조우처럼…. 다행히 2008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 〈점프컷〉을 볼 수 있었고, 지난해에는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LACMA)에서 열렸던 〈당신의 밝은 미래〉전, 멕시코시티의 타마요미술관에서 열린 또 하나의 한국 현대미술 그룹전 〈Unconquerable: Critical Visions from South Korea〉, 그리고 다시 로스앤젤레스의 레드캣(REDCAT)에서 열린 〈Everyday Miracles (Extended)〉 등의 전시를 통해, 근작들을 연달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1)
이렇게 작가와 필자 사이 ‘조우의 역사’를 늘어놓는 이유는 임민욱의 활동 페이스가 지난 몇 년 사이에 액셀을 밟은 듯 급격히 가속화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 위함은 물론, 필자와 작가 사이의 대화가 길지 않아 이 작가론을 지난 몇 년간의 작업에 집중시키려는 것에 대한 핑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접근법으로 ‘작가적 주체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제시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그동안 임민욱의 작가론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것을 짚어 두고 싶다. 바로 임민욱의 작업은 보기보다 좀처럼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흔히 ‘사회 비평적’이고 개인사적인 요소도 가끔씩 적용된다는 식으로 분류된다. 그의 작업을 모르는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 본다면 나 역시 그렇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작업에서 형식적 방법론적 요소들을 총괄적으로 고려해 보면 미술 비평의 일반적 용어가 잘 적용되지 않는다. 임민욱의 작업은 ‘거부’라는 지속적인 태도가 기반으로 존재하고, 거기에 따르는 방법론 역시 양식화를 또 한 번 ‘거부’하며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뉴타운 고스트〉(2005)는 나에게 임민욱의 작업에서 진정한 의미를 열어 준 첫 장이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여러 번 전시가 되면서 작가를 널리 소개해 주었던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젊은 래퍼가 트럭 뒤에 서서 확성기를 들고 시가지를 활주하며 벌이는 퍼포먼스 기록 영상 작업이다. 영상은 두 가지 방식으로 편집되어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전시된다. 첫 번째 방식은 작가가 직접 편집한 영상을 프로젝터로 벽면에 크게 상영하고 관람객은 선 채로 혹은 벤치에 앉아서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전문가에 의해 편집된 버전을 텔레비전에서 재생시키고 관람객이 그 앞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서 마치 자기 응접실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작품이 작가의 사적인 역사와 깊이 연관된 영등포 지역의 재개발에 관한 것이라는 것은 여러 번 밝혀진 바 있다. 작가는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것을 “과거의 흔적은 볼 수 없을 뿐더러 현재의 모습은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동시에 지워 나가고 있는… 데쟈 뷰(Dㅤㄹㅑㅌㅤㄴㅢㄶu, 기시감) 현상이 아니라 데쟈 디스파뤼(Dㅤㄹㅑㅌ?disparu, 이미 사라진 어떤 것에 대한 전혀 새롭고 독특한 느낌) 현상”이라고 설명했다.2) 특히 내가 이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른 퍼포머와 협업을 통한 ‘수행적(performative)’ 접근과 다큐멘터리 방법론의 ‘접합’이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는 형태 그 자체가 된다는 것이었다.

<너무 늦은 혹은 너무 이른, 아틀리에> 싱글채널비디오, 오브제 2007 에르메스코리아 미술상 수상작

‘우리’라는 공동체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

그 이후에 발표한 2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 〈잘못된 질문〉(20 06)은 처음에는 이전의 작업과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는 듯 보인다. 비디오 영상에는 어느 날 밤, 택시의 뒷좌석에서 녹취한 운전사의 독백과 작가 자신의 가족(그의 딸과 아버지)의 일상적 대화가 병치되어 담겨 있다. 카메라 포커스와 촬영 속도를 의도적으로 조절해 이미지들을 흐릿하게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목소리에 담긴 각각의 이데올로기는 더욱 극명하게 노출된다. ‘진보’라는 이데아에 대해 냉전과 독재의 구시대적 논리를 펼치는 가운데 강하게 드러나는 운전사의 노스탤지어,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손녀딸이 국적과 국가 정체성에 대해 주고받는 대화가 대비되어 겹쳐진다. 결국 이 작업 역시 등장인물 모두가 사회와 이데올로기의 구조 안에서 각각의 이행을 통하여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는 ‘수행성(performativity)’의 확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이 영상 작업은 어둡고 경사진 통로를 통해 들어가 발코니에서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설치함으로써 관객과 작품의 공간을 분리시킨다. 그 결과, 예외적 공간에 의한 이미지의 불확정성에 신체적 소외감이 더해진다.
오래 전부터 작가에게 ‘한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에서 비롯된 억압과 비합리성이 지적 관심사이자 작품의 동기가 되어 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의 경제적 발전이 야기한 정신적 소외와 개인사로부터 경험하게 된 정치적 혼란은, 비극과 희극의 항시적 평행을 이루어 낸다. ‘성공적인 실패’라는 역설과 자각 속에 있는 한국의 의미, 그리고 작업과의 관계는 계속 이어가야 할 작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3)  20세기 말, 21세기 초라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타자성’에 대해 첨예하게 모색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사회는 여전히 ‘우리나라’라는 1인칭 복수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자연 상태의 국수주의적 사상을 토대로 한 단일한 공동체를 의무화시키고 있는 듯하다. 임민욱의 작업을 꿰뚫고 있는 특성 중 하나는 이러한 ‘단일성’에 대한 의심이다. 이주 노동자, 비전향자, 경제적 소수민, 그리고 자신이 속한 다문화가정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꾸준하게 관심을 보여 온 대상들은 다름 아닌 ‘공동체’에 대해 근본적인 질의를 함으로써 그것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소수의 집단들이다. 사실 임민욱의 작품은 여러 가지 공동체들에 관한 것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공동체 속에서 개인으로서 형성되는 주체성으로 인해 쉽게 범주화할 수 없는 과정을 다룬다. ‘공동체’라는 것은 공감 혹은 동일화(identification)의 심리적 사회적 메커니즘을 통해서 가능하고, 거기에는 언제나 수많은 위기(crisis)가 내재해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위기 자체가 동일화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임민욱이 선택한 작가라는 정체성에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다른 미술가와 또 미술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형성하는 ‘공동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비평가 강수미가 “이 작가의 ‘범속한 아트’가 모순되게도 매우 고도로 ‘비(非)범속한 관객을 위한 아트’가 아닌가 하는 의심”4)을 언급했던 것은 임민욱 류의 작업이 엘리트주의자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아트’의 정의가 애초에 어느 한 쪽으로 결정된 상태(존재하지 않는 순수 공간에 유배된 상태) 였다는 것은 물론, 그것을 다시 도구화시켰던 지배 체계에 대한 거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
이 ‘비범속함’은 임민욱의 작업에 항상 느껴지는 ‘거리감’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이는 막연한 불친절함이나 난해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임민욱은 기꺼이 관객을 작품 안으로 불러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지와 서사성을 은폐시켜 항상 일정한 거리를 남겨 둔다. 다시 말해 작품 속에 분명히 내재되어 있지만 안이한 감상으로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내용(content)’을 숨겨 둠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 속으로 진지하게 접근하도록 이끄는 ‘과정’을 작업의 형태로 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여정을 경험하기로 동의한 관객의 심리 속에서 공명과 공감이 비로소 작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큐레이터 김장언이 “완결된 장치의 고안에 몰두하지 않으며, 개념과 실천을 강조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사학의 작동 원리에서 최소공배를 설정하고자 하며, 그 설정 자체에 집중한다”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런 방법론을 말하는 것이다.5)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작업 속에서 ‘인지’의 순간들은 찾을 수 있지만 동시에 ‘논리적 이해’는 계속 좌절되고 만다. 이런 좌절과 거부를 통한 창조, 그리고 그것에 대한 예술적 욕망은 작가가 쉽게 특정 지워지지 않는 매체와 다양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안이함을 거부하는 부재의 논리, 또한 거기서 발생하는 괴리감은 능동적 해석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작용에 있어서 전혀 공명을 느끼지 못하거나 일상의 논리로 단순히 회복될 가능성은 이런 접근 방식이 안고 있는 운명의 일부이다.

<뉴타운 고스트>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 10분 2005

생산적 긴장 관계

2008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점프 컷〉을 준비하던 당시, 임민욱은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털어 놓았다. “개인전이라는 ‘프레임’에 맞춰 자기독백적이거나 상징의 집합체가 아닌, 예술보다 더 재미난 삶으로서의 예술이 될 수 있을까를 반문하고 있다.(중략) 정치의 피난처가 아니면서 생산적 긴장 관계가 공간과의 접합을 이루어 내는 지점”6)이기를 원한다고. 이 발언에서 제시되듯이 그 개인전은 한 작가의 작업, 다시 말해 ‘내 스타일은 이런 것’이라고 확정하고자 하는 작가 개인의 흔한 욕망을 거부하는 전시였다.
그 전시에 선보였던 2채널 비디오 작업 〈스무고개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2008)에는 예전에 작가가 천막 디자인을 맡았던 다문화 축제 ‘세계시장-바자르’가 촬영 장소로 쓰였다. 또 남에게서 물려 받은 구식 그랜저 자동차는 퍼포먼스를 위해 안료를 올려 놓은 채 비오는 날 도로를 달리기도 했다가 전시장 안으로 들어와서는 분수로도 변신했다. 당시 사용되었던 안료는 웅덩이에 고인 물과 합쳐져 마블링의 재료가 되어 그 결과물이 전시장에서 다시 합류하고, 또 대리석과 강화유리로 만든 긴 테이블 위에 작은 산맥처럼 쌓여서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장편영화 〈희생〉(1986)이 8분짜리 압축 버전으로 상영되고, 그 바로 옆의 좁은 통로를 통해 발코니로 나오면 바닥에 산산조각 난 강화유리 파편들이 북극의 바다처럼 펼쳐지는 경관을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아주 다른 방식의 두 작품들은 ‘점프 컷’이란 용어를 제목의 일부로 공유한다.
매체로만 보더라도 이 전시는 비디오 설치 사진 오브제 등을 망라했는데 이는 임민욱이 다매체를 ‘구사’하는 작가라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설명했듯이 ‘생산적 긴장 관계’를 가시화하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 전체를 통틀어서 보았을 때 드러난 것은 이미지, 오브제, 공간, 혹은 내러티브를 만드는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이며 절대적 객관성에 대한 ‘반대’이다. 동시에 비확정적 비연속적 파편적 출제와 독해 방식의 ‘선호’이다. 이는 오늘날 작가의 역할에 대한 임민욱의 또 다른 언급을 생각나게 한다. “수용된 자유라는 것이 있나?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일 뿐이다.”7)
이렇게 〈점프 컷〉전에서 보여 준 유연하고도 비확정적인 작업과 전시 방법론은 야심찬 후속작 〈S.O.S-채택된 불화〉(2009)에서 다시 한 번 진화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뉴타운 고스트〉와 〈잘못된 질문〉에서 드러나는 ‘수행성’ 혹은 ‘연기성’은 한 단계 더 발전하여 관람객을 포함하는 형태를 취한다. 한강유람선 안에서 시공간 특정적으로 전개되고 경험되는 이 작품은 거의 오페라 같은 ‘총체예술(Gesamtkunstwerk, total work of art)’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배는 빛과 속도의 차이를 수용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의 입장에서 공유한 기억을 되살려내는 일시적 공동체의 일원이, 더 나아가 어느덧 퍼포먼스의 주체가 되는 주객체 전도의, 뫼비우스의 띠를 경험하게 할 것이다.”8) 유람선 선장의 서술적 내러티브와 조명을 이용한 실내외의 라이트쇼가 퍼포먼스의 뼈대라면, 그 살을 이루는 것은 한강변의 세 지점에서 벌어지는 연극적 장면들이다. 반사경을 들고 벌이는 시위대의 군무와 합창, 정처 없는 남녀 한 쌍의 듀엣, 그리고 절두산 성지 밑 강변에 주차된 차가 헤드라이트로 보내는 S.O.S. 모르스 신호와 선내에서 무전기로 전송되는 전 비전향 장기수의 독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때 기록된 영상은 이후에 싱글채널 혹은 3채널의 비디오 작품으로 편집되어 전시된다.

<Portable Keeper> 싱글채널비디오 12분 2009

여기, 내 안의 바틀비

〈S.O.S〉를 준비하는 과정에 작가는 〈내 안의 바틀비〉라는 글을 썼다.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의 1853년작 단편소설 《서기 바틀비》에 대한 짧은 수기는 작가가 파리에서 생활하던 시절에 발견한 이 책의 영향에 대해 말한다. 멜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바틀비는 한 변호사의 사무실에 서기로 고용된 후 그에게 요구되는 임무마다 “I would prefer not to(차라리 ~하지 않으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사무실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후에도 텅빈 건물을 떠나기를 거부하며, 심지어 먹기마저 거부하여 결국에는 죽고 마는 인물이다.
이 ‘거부’의 상징인 바틀비와 〈S.O.S〉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작가는 멜빌의 바틀비와 자신의 〈S.O.S〉의 연관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순과 억압이 전방위적으로 일상 속을 파고드는 현대 사회에서의 저항엔, 그 강도가 다를 뿐 바틀비 식의 거부는 일시적 떨림, 망설임, 헛소리, 중얼거림 속에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거부의 소통’ 과정은 작품 내에서 레치타티보(서창) 독백 아리아 합창 등의 형태로 표현된다. 〈S.O.S〉는 발전과 미화의 기치 아래 끊임없이 엎어지고 뒤처지는 한강변의 시각적 환경과 제도로부터 좌절된 소통의 파편들을 재통합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표현한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거부와 무능의 수행을 통해 순수한 주체성을 획득한 바틀비의 상징적 이미지와 연결된다.
멜빌이 《서기 바틀비》는 그 책이 나오기 2년 전에 출판된 야심작 《모비딕》 (1851)의 부진한 판매에 대한 대응으로 썼다고 밝힌 바 있듯이, 바틀비는 저자의 자전적 형상이라고 가끔씩 해석된다. 즉 서기인 바틀비는 곧 작가 자신이며, 그에게 요구되는 직무를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행위 역시 멜빌이 경험한 좌절이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작가 내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존재의 문제에 관한 집착은 관례적 표현 방법을 저버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스페인의 소설가 엔리케 빌라-마타스(Enrique Vila-Matas)가 2001년 출간한 실험적 소설 《바틀비와 동료들(Bartleby y compania)》에서는 바틀비처럼 “차라리 ~하지 않으렵니다”는 식으로 글쓰기를 포기한 작가들, 즉 등장인물 베켓 랭보 호손 샐린저, 그리고 멜빌을 ‘아니오의 저자들(Writers of the No)’라고 부른다. 임민욱의 〈내 안의 바틀비〉를 읽으며 그도 ‘아니오의 작가(an artist of the No)’라고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니오의 저자들’처럼 자기 거부, 자기 소멸을 향해 가는 것은 임민욱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우쳤다. 모더니즘 문학의 거성들이 포기와 거부를 통해 주체성과 사회 내부의 위치를 의도적으로 격리했다면 임민욱에게 있어서 존재의 조건이란, 사회와 개인 간의 구분에서 오는 ‘혼란’이야말로 확정적 정의를 거부하는 근원이며 형태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틀비는 또 다른 연상을 일으킨다.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마틴 키펜베르거의 1992년작 〈마틴, 저 코너에 가, 네가 부끄러운 줄 알아(Martin, Into the Corner, You Should Be Ashamed of Yourself)〉라는 작품이다. 미술과 실생활에서 ‘배드 보이’의 명성을 구축한 키펜베르거는 나쁜 짓을 한 아이들에게 내려지는 벌, 즉 방의 코너를 향해 선 채 자신이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반성하라는 지시를 자신 스스로에게 내린다. 작가의 머리와 손을 알루미늄으로 주조를 떠서 마네킹을 만들고 그 위에 옷을 입힌 이 조각은 한 독일 비평가의 유난히 공격적인 비판에 대한 조크이면서 미술가를 천재이며 미치광이고 일탈자로 규정하는 낭만주의적 신화의 신체이기도하다.
이런 방식의 대비라고 할 수 있을까. 임민욱의 〈Portable Keeper〉 (2009)는 필기도구 묶음, 인조 모피(이전 작업에서도 쓰인 물질)와 새 깃털, 선풍기팬을 하나로 모아서 긴 형태의 무기이자 장식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오브제와, 그것을 들고 폐허가 된 공간을 걸어 가는 퍼포머의 모습을 영상과 사진의 기록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뉴타운 고스트〉와 〈S.O.S〉에서 보여 줬던 끊임없는 ‘개발주의’에 대한 사유의 연속이며 “잘 알려지지 않은 폴란드 태생의 작가이면서 루마니아에서 자라고 파리에서 활동했으며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앙드레 카데레(Andre Cadere)의 작업 〈Round Wooden Bars, 1970~78〉에 경의를 표하며”라고 작가는 덧붙인다. 수공으로 깎고 칠한 둥근 목재 링들을 꿰어 만든 막대기를 들고 파리의 거리를 ‘플라뇌르(flaneur)’처럼 활보하며, 자신의 작품을 타작가의 전시에 삽입하는 퍼포먼스를 했던 카데레의 작업과 존재 방식은 위트가 담겨 있으면서도 조용하고 전복적인 것이었다. 키펜베르거의 와일드하고 ‘삶 그 자체보다도 더 큰(larger than life)’ 존재 방식에 근본적으로 대조되는 것이었다.9) 키펜베르거의 작업을 “냉소적이고 희비극적인 미술에서의 구원에 대한” 가능성으로 인정하고 감탄하는 임민욱에게는 카데레의 접근법이 ‘불화를 껴안는 방식’의 가능성으로 다른 종류의 공명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10)
이를 가리켜 작가는 ‘전복적인 무위’라는 표현을 쓴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 필자는 임민욱 작업의 기반에는 ‘거부’라는 지속적인 자세가 위치하고 있다고 했다. 글을 맺으면서 약간 전환해 보고자 한다. 거부의 이면이 타협이라면, 주체는 항상 타협으로 짜맞춰진다. 즉 ‘지속적 거부’는 ‘지속적 타협’으로 치환되어버리고 그 과정에서 변화를 갈구하는 욕망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작가는 이 상황에서 절대적인 거부란 불가능하고, 그렇기에 각인되는 ‘무능’을 부단히 변화하는 방식으로 도입하면서 일시적 장치들로 제안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No”라는 절대적 부정이 아니라, 상호주체성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는 “I would prefer not to”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키펜베르거의 등 돌린 자세와 떠도는 삶의 카데레 사이에 위치하는 진동의 방식이며 임민욱의 수행이라고 상상해 본다.

1)LACMA의 전시는 텍사스주 휴스턴미술관과 공동조직되어 린 젤레바스키, 크리스틴 스타그만과 김선정이 공동 큐레이터였다. 임민욱 외에 구정아 김범 김수자 김홍석 박이소 박주연 서도호 양혜규 장영혜중공업 전준호 최정화가 작가로 참여했다. 큐레이터 김희진이 기획한 뮤제오타마요의 전시는 김범 김상돈 박찬경 배영환 등이 참가했다. 레드캣의 전시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의 후 한루가 기획해 이주요, 칸 쉬안, 쉴파 굽타, 함라 아바스를 포함한 7명의 아시아 여성 작가들로 구성된 전시였다. 2)김선정 과의 인터뷰, 〈당신의 밝은 미래: 한국에서 온 12 현대 미술가〉 전시 도록, 144쪽. 3)같은 책, 145쪽. 4)강수미, 〈네 이웃의 미술, 명작에 反하여〉, 《월간미술》 2007년 4월호 5)김장언, 〈예술가의 변이: 임민욱 & 프레데릭 미숑〉 6)〈당신의 밝은 미래〉 전시 도록, 144쪽 7)같은 책, 146쪽 8)임민욱, 〈내 안의 바틀비, S.O.S. - 채택된 불화〉 9)정도련, 〈마틴 키펜베르거, 요절 작가의 신화적 삶과 예술(Fast And Furious)〉,《아트인컬처》 2009년 8월호 10)작가와의 대화, 2010년 4월

새로운 아시아 미술, 글로벌 네트워크를 향하여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프리미티브 프로젝트> 프로덕션 스틸 2009

새로운 아시아 미술, 글로벌 네트워크를 향하여

글 | 서진석·A3 디렉터

뉴욕 발 금융 위기 이후 세계는 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 그리고 동남아시아는 금융 위기의 여파를 재빨리 극복하고, 현재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아시아의 부상은 예고된 수순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글로벌 캐피털리즘의 팽창 등 사회 경제적 환경의 변화는 서구 주도의 불평등, 기형적인 세계화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아시아의 부상이라는 사회 경제적 환경 변화 속에서 아시아 현대미술 또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아시아 현대미술은 ‘아시아성’이라는 새로운 예술적 담론 형성과 함께 21세기 세계 미술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주류’로 발돋움하고 있다. CJ문화재단, 대안공간루프,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공동 주최하는 〈A3 아시아 아트 어워드 포럼〉은 이와 같은 흐름을 공론화한 시발점이다. 실험성 다양성 통합성을 전제로 한 〈A3 아시아 아트 어워드 포럼〉은 아시아 미술상과 세계 현대미술 포럼 두 가지의 유기적 행사로 이루어졌다.

차별화된 미술상을 시도하며

〈A3 아시아 미술상〉은 현대미술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고 아시아 현대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아시아를 중심으로 가장 실험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약 50여명의 기획자와 평론가들이 네트워크에 참여했다. 다른 미술상과의 차별성이 있다면 선발, 선정이라는 단순한 가치 평가보다는 창작자와 대중 간, 아시아 각국 간, 아시아와 세계 미술계 간에 새롭고 보다 영향력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동북아시아를 형성하는 한중일 3국은 20세기 초반 근대화에 뒤처지며 전쟁과 공산화 등 역사의 굴곡을 겪은 바 있다. 3국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에 따라 미술사적 흐름 또한 공백이 존재하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중국의 전위회화 운동이나 한국의 역동적이며 다양한 이미지, 일본의 ‘재팬 애니팝’은 이미지에서 상호연관성을 발견하기 힘들다. 20세기 이전, 유불선이라는 동양적 사상을 뿌리로 각기 특징적인 문화를 이루면서도 서로를 해석할 수 있는 공감대를 지녔던 3국의 문화는 한순간 단절되었으며, 지금의 아시아 미술에서도 이러한 단절을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관통하는 ‘다양성’이라는 현대미술의 코드에서 ‘아시아성’이라는 특징의 추출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20세기 아시아 미술사의 질곡에서 우리가 놓쳐버렸거나 잃어버린 것들을 재조명하고 현재와 연결지음으로써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역량 또한 구축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견해이다. 이번에 선정된 40세 미만의 젊은 아시아 작가들은 서구 중심의 미술계로부터 독립적인,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이전 세대에 비해 많이 가진 세대이다. 따라서 이들의 전시를 통해 아시아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2010 아시아 미술상〉에는 아시아 6개국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쿨(태국), 양아치(한국), 침↑폼(일본), 아쇽 수쿠마란(인도), 좀펫 쿠스비다난토(인도네시아), 쉬진송(중국)이 선정되었으며 이들의 작품은 소마미술관에서 4월 8일부터 6월 6일까지 두 달간 전시된다. 이 아시아 작가들은 김홍희(경기도미술관장), 아피난 포쉬야난다(태국문화부 현대미술부 디렉터), 후미오 난조(모리미술관 디렉터), 조나단 왓킨스(아이콘갤러리 디렉터), 우홍(시카고대 교수), 캐롤라인 크리스토브-바칼기에브(카셀도큐멘타13 총감독), 알렉산드라 먼로(구겐하임미술관 수석큐레이터)로 이루어진 7명의 최종 심사위원단과 아시아 전역에서 참가한 42명의 기획자 평론가들의 민주적이고 유기적인 토론과 객관적인 기준을 통해 선정됐다.

양아치 <미들코리아 에피소드 3-황금 폭포> 혼합매체(부분) 2010 소마미술관 전시 장면

선정작가, 아시아의 현재를 반영하다

〈2010 아시아 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동남아시아에서 인정받는 영화감독이자 비주얼 아티스트다. 위라세타쿨의 작품은 사회정치적 이슈와 개인적 정치를 모두 아우르는 기억에 바탕을 둔다. 그는 모국의 기반 시설을 교묘히 비판하며 영화 및 비디오 아트를 통해 자기 자신과 자신의 관심사를 표출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재창조했다. 그는 작업의 배경인 태국의 지역 사회적인 특수성을 영상 이미지 내면에 교묘히 감추며 지역의 차별적 독창성을 모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공통의 언어와 감수성으로 표현한다. 그의 영상 작품은 관점이 다른 유럽 미주 아시아권 심사위원들 모두에게 강력한, 하지만 매우 은유적인 에너지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다만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작가인가 아니면 아직도 ‘이머징 아티스트’인가 라는 논란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폐기된 전자 장비를 재활용하여 설치와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들고 있는 좀펫 쿠스비다난토은 근대화 이후 아시아 대륙을 휩쓴 급속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각 사회가 처한 사회적 문화적 개념과 관련된 각종 정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는 포스트 식민 시대의 비판적 태도가 작업에 많이 드러나므로 지역적 특수성을 비교로 하는 잔상이 남아 있어 아시아권과 서구권 심사위원들 사이에 상반된 평가가 엇갈렸다.
아쇽 수쿠마란은 일상의 관계를 형성하는 정치의 구조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노출시키는 작가다. 그는 작품의 완성이 아닌, 일시적이고 산만한 네트워크의 형성, 다양한 협업 속 예술적 ‘노동력’ 제공을 통해 작품을 확장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끊임없는 혁신적 시도를 통해 수쿠마란은 점진적으로 새로운 지식 기반을 확립하고 전략적 대응의 시스템을 구축하여 작가 작품 관객의 개념을 해체하고 생산적으로 재구성하는 작품을 생산한다.
침↑폼은 개인 활동을 하던 아티스트 6인이 모여 2005년 도쿄에서 결성한 아티스트 유닛이다. 이들의 활동은 2000년 고이즈미 정권이 표방했던 신자유주의의 실패로 생겨난 ‘노동 빈민층’에 대한 개념을 상기시킨다. 침↑폼의 작품은 이에 대한 저항보다는 쾌락에 기반을 둔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매개로 현실 속 빈곤을 자본주의의 복제품으로 탈바꿈시키며 쾌락을 생산한다. 침↑폼의 작업은 고도 자본주의의 현실과 현실로부터 인공적으로 차단된 욕망의 체계인 예술 세계 사이를 영화 사진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즐거운 장면’들로 선사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의 작업은 다른 일본의 젊은 작가들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내면의 자아에 머물거나 소통의 대상인 사회조차도 지극히 주관적으로 개인화시키는 1990년대 이후 ‘마이크로 팝’ 세대의 작가들에 비해 다분히 행동주의적이며 사회 비판적이다.
쉬진송 또한 다른 중국 작가들과 달리 결과적 분명함보다 과정적 이미지를 포함하는 모호한 상상력을 추구한다. 차갑고 매끄러우면서 날카로운 스테인리스 스틸을 이용하여 미국의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완성시킨 ‘폭력적인 미학’을 표현하는 동시에, 직접 만든 트랙터를 통해 문명의 자기 만족과 모순점을 비판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욕망으로 점철된 우스꽝스럽고 히스테리컬한 체제의 구성원으로 묘사하며 우리의 시대상을 재치있게 비웃는다.
양아치는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풍자한 2002년 첫 개인전 〈양아치 조합〉을 시작으로 한국사회가 가진 사회적 이슈를 ‘웹’을 통해 지속적으로 다루는 작가다. 그는 최근 남한과 북한 사이의 가상 국가를 상정한 3부작 에피소드 〈미들 코리아〉의 완성을 통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새로운 형태로 표출하고 있다.
아시아미술상에 선정된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을 비롯하여 추천된 5명의 작가들의 작업은 탈물질적이며 비소유적인 장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또한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사회 비판적인 성격을 가진 작업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는 21세기를 주도할 것처럼 팽창하던 신자유주의의 기류가 금융 위기를 겪으며 비판을 받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기류에 편승하며 무한 확장을 꿈꾸던 현대미술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무의식적인 비판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좀펫 쿠스비다난토 <유령들의 전쟁> 설치 2009

서울로 집결, 머리를 맞댄 전문가들

〈아시아 아트 포럼〉은 기획자 평론가 저널리스트 갤러리스트 인문학자 등 현대미술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자간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이룬 포럼이다. 세계 예술계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80명의 문화 리더들이 서울에 모여 21세기 현대미술의 새로운 인프라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대 미술계는 21세기 사회를 관통할 새로운 패러다임과의 연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미학적 담론 제시가 절실하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2010 아시아 아트 포럼은 4개의 주제별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예술과 자본이다. 후기자본주의는 우리 사회 전반과 예술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으며, 현대미술은 경제적 가치 평가라는 새로운 관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금융 산업은 현대미술을 중요한 투자 상품으로 변화시켰으며, 이에 따라 예술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변환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극대화되고 그 순환 주기 또한 가속화되고 있다. 문화에 대한 가치 합의 시스템에서 컬렉터의 영향력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글로벌 캐피털리즘 사회에서 예술과 자본 양자가 건전하고 올바르게 공존할 수 있는 발전적 관계 형성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예술에 있어 자본의 긍정적 영향을 보다 확장시키고 부정적 영향은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과 이에 따른 대안적 시스템 구축은 현대 미술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둘은 동양적 은유이다. 지역적 균형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세계화라는 21세기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아래 아시아의 문화가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근대화 이후 서양 미술이 세계적으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아시아의 동양적 이미지와 감수성은 체계적인 담론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수동적이며 국지적인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하지만 21세기 문화 헤게모니의 이동에 따라 아시아 사회 경제 문화를 바탕으로 한 새롭고 독자적인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 이 섹션은 현대미술의 흐름이 서구의 주도로 이뤄지면서 간과된 동양성, 즉 동양적 이미지와 은유에 대해 재조명한다. 동서양이 균형을 이룬 시각에서 현대미술의 아시아성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로 마련된 것이다.
셋은 예술과 디지털 기술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예술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21세기 디지털시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들며 우리에게 보다 다중적이고 확장된 사회적 페르소나를 요구하고 있다. 단선적인 소통의 해체와 함께 자정성 자율성 다양성이 보장되는 여론의 공론장의 출현은 우리를 접속(소통)의 평등 시대로 이끌고 있다. 현대미술에서 창작 장르는 해체와 통합을 이루고 있고 그것의 유통에 있어서도 동시성과 다원성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향유자들의 감각은 과거 어느때 보다 다감각 공감각 통감각화되고 감각의 확장을 이루며 우리의 사유와 감응 체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주제에서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른 사회의 변화와 미술 영역의 새로운 영향과 현상에 대한 다양하고 심층적인 담론이 논의되었다.
넷은 미디어 아카이브 네트워크다. 1980년대 이후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미디어아트와 함께 과거 아날로그시대 작품들의 수명 만기도래로 인한 디지털 아카이빙의 중요성은 21세기 초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 아카이빙에 있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과 대안, 그리고 발전 방향에 관하여 현재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디지털 아카이빙의 보존 및 복원에 대한 문제, 그리고 각기 다른 지역 간의 아카이브 공유를 위한 기술적, 사회 행정적 체계의 세계적인 기준설립 등 다양하고 심층적인 담론들을 생산해 내는 섹션이었다.

첫걸음을 떼며 바라보는 미래

이 프로젝트는 약 50여 명의 아시아 큐레이터, 평론가들을 네트워킹 하는 과정과 예산 확보 등으로 인해 5년이라는 준비 기간을 거쳤다. 한국 일본 중국에 사무국을 설치하고 기획위원회를 조직하는 등의 과정에서 많은 아시아 미술인들의 협력과 도움이 바탕이 되었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 흐름에 편승하여 발전한 현대 미술계는 생산 과잉과 함께 많은 국제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를 양산했다. 다양한 국제 전시, 국내외 미술상 등 생산 유통 소비의 여러 기능들은 글로벌 경제 흐름과 함께 미술 경제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동화되어 미술시장의 거품을 끊임없이 부추겨 왔다. 현재 아시아 미술계는 새로운 방향성과 함께 대안적 미술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A3 프로젝트는 21세기 현대미술의 비전을 제시하는 새로운 대안적 행사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2010 May Special - 지금, 한국의 갤러리는 세대교체 중!

왼쪽부터 김남균(그문화 대표) 김혜지, 수니 마코소브(벡터스페이스 대표) 바이홍(갤러리킹 대표) 우흥제(그림집 대표) 박원재(원앤제이갤러리 대표) 홍진규(갤러리플랜트 대표) 신윤선(갤러리플랜트 부디렉터) 류상우(류화랑 과장) 류상엽(류화랑 실장) 이윤상(류화랑 과장) 홍보라(갤러리팩토리 대표) 손성옥(갤러리em 대표) 김유미(GYMproject 대표) 정재호(갤러리2 대표) 김민용(텔레비전12 대표) 김율희(워터게이트갤러리 이사) 신은영(아리랑갤러리 대표) 이진구(아트스페이스스푼 대표) (장소 협조: 갤러리2)

지금, 한국의 갤러리는 세대교체 중!

수 개월 전, 미국에서 전해 온 한 가지 뉴스가 미술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바로 뉴욕 갤러리스트 출신의 제프리 다이치가 LA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선임됐다는 소식이었다. 주로 큐레이터나 미술사학자 혹은 몇몇 MBA 출신 경영인이 미술관 관장을 맡는 기존 관례와 달리, 일명 ‘그림 거래’를 하는 갤러리스트가 미술관 관장이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에 미술계가 술렁인 것이다. 어쨌거나 ‘다이치 일화’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이 사례가 역으로 ‘갤러리스트’라는 직업의 원래 역활을 정확히 인식시켜 주기 때문이다.
‘아트 딜러’라고도 불리는 갤러리스트들의 역할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갤러리를 단순히 그림을 팔기 위해 전시를 여는 공간 정도로 알고 있다면, 그것은 갤러리스트들이 갖춰야 하는 다방면의 능력을 모른다는 반증에 불과하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여 전시를 열고 그들이 국내외 다른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프로모션하는 것, 그리고 작가의 커리어는 물론이고 작품 가치를 철저히 관리하며 작품 거래를 이끄는 것이 바로 갤러리스트의 역할이다. 거기에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좋은 작품을 걸러내는 안목, 시선을 끄는 전시를 열 수 있는 기획력에 타고난 사업 수완까지 갖춰야 하니, 갤러리스트로 성공하는 길은 결코 녹록치 않다. 세잔, 르누아르 등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리는데 일조한 볼라르, 입체파를 지원한 칸바일러 등 미술사 속에 등장하는 유명 화상들부터 현재 세계 미술계를 쥐락펴락하는 해외 유명 갤러리스트들까지, 그들의 이름이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바로 그 능력의 결과인 것이다.

갤러리킹 <인물 징후전> 2009

서서히 진행되는 한국 갤러리들의 세대 교체

2010년에 접어 들면서 한국의 주요 갤러리들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작가 김환기가 종로 1가에 만들었던 ‘종로화랑’을 우리나라 최초의 갤러리로 보는 시각을 따르자면, 한국 갤러리의 역사는 1930년대부터 시작됐다. 이후 1950년에 한국전쟁을 겪은 탓인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갤러리들은 1970년 이후에 개관한 곳이 대부분이다. 올해 들어 갤러리현대가 40주년(1970년 개관), 동산방화랑 34주년(1976년 개관), 선화랑 33주년(1977년 개관), 국제갤러리(1978년 개관)가 32주년을 맞이하며 화랑가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시간의 흐름 속에는 자연스레 세대교체가 뒤따른다. 기성 갤러리 중에서 갤러리 설립 대표의 2세들이 경영 바통을 이어 받거나, 혹은 가업을 이어가며 새로운 갤러리를 별도로 운영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동산방화랑의 장남 박우홍 대표로 시작된 2세대 갤러리스트들의 경영 참여는 2006년부터 현저히 두드러지기 시작했는데, 갤러리현대 박명자 사장의 차남 도형태 대표에 이어 어느덧 많은 갤러리에서 2세들이 실무를 전담하고 있다(표 참조). 한편 갤러리스트들의 세대교체는 가족 관계를 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기성세대 갤러리들이 일궈 놓은 단단한 텃밭 한 켠에서 새로운 농작을 일구려는 젊은 갤러리스트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우리의 궁금증도 배가된다. 다음 미술계를 이끌기 위해 종횡무진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갤러리스트들은 과연 누구일까’라고 말이다.  
art는 이번 특집을 위해 총 21곳의 젊은 갤러리를 취재했다. 1970년 이후 출생한 한국인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국내외 갤러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조사 과정에서 1세대가 설립한 갤러리를 이어 운영하는 곳, 최근 일정 기간 이상 전시를 열지 않은 곳, 기획 전시보다 대관 전시의 비중이 높은 곳은 제외했다. 물론 현재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음에도, 안타깝게 art가 조사 중에 놓친 젊은 갤러리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니, 먼저 그들에게 양해를 구해야겠다. 취재 대상이 된 젊은 갤러리의 개관 년도는 대략 2002년부터 올해 2010년까지, 아직 10년을 넘기지 않은 채 고루 분포한 편이다. 2002년 개관한 뉴욕 티나킴갤러리와 갤러리팩토리가 가장 오래 운영된 곳으로, 그 외에는 2005년을 기준으로 생겨나기 시작해 5년 이내에서 짧게는 1년 내의 기간을 운영한 곳이 대부분이다. 특히 2007~8년 개관한 갤러리의 경우는 한국 미술계의 최대 호황 시기와 바로 이어진 세계 경제 불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매도 빨리 맞는 편이 낫다더니, 이들 갤러리의 대표들은 오히려 초창기에 어려운 시기를 거친 경험이 앞으로 갤러리를 더 단단히 운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러니 한국의 젊은 갤러리스트들, 씩씩하고 당찰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젊은 갤러리들은 국내는 물론, 가까운 베이징부터 뉴욕 베를린에 이르는 꽤 먼 곳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의 경우는 역시 서울 소재 갤러리의 비중이 현저히 높았다. 1970년대 기성세대 갤러리들이 활발히 생겨나던 시절, 역시 서울 내 갤러리들의 메카는 인사동이었다. 이와 달리 최근 젊은 갤러리의 분포도는 생각보다 고른 편이다. 물론 오랜 시간에 걸쳐 갤러리 밀집 지역으로 발전해 온 북촌지역 일대(5곳)와 청담동 일대(5곳)에 소재한 젊은 갤러리가 가장 많고, ‘젊음’의 해방구 홍대 지역(3곳)에도 많이 들어서 있다.
최근 서울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핫사이트 역시 젊은 갤러리의 텃밭이 되고 있다. 공간해밀톤, 꿀, 테이크아웃드로잉 등이 차례로 개관하면서 미술계의 뉴타운으로 부상 중인 한남동과 이태원 일대. 그 중 한남동 대사관길 근방에 문을 연 류화랑은 앞으로 변화될 이 동네의 가능성을 미리 점치고 자리를 잡았다. 한편 원래 이태원의 젊은 공간으로 잘 알려졌던 그림집은 최근 흥미롭게도 ‘집’이라는 이름처럼 아예 아파트로 공간을 옮겼는데, 서울의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회현시범아파트에 새 갤러리를 꾸민 것이다. 또한 철공소 밀집 지역이었으나 미술 무용 디자인 등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이주하며 탄생한 일명 ‘자생 예술마을’인 문래동에는, 이곳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던 작가 2명이 의기투합하여 아티스트런스페이스 벡터스페이스를 열기도 했다.

안도파인아트 <이그나스 크룬글레비치우스 개인전> 전경 2010

젊은 감각과 다양한 개성

보통 ‘젊다’는 단어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아마도 기존에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생기와 개성이야말로 ‘젊음’에서 기대하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물론 젊음의 개성과 다양성이란 기성의 연륜과 안정감을 본받고 이어가려는 노력과 병행될 때 더욱 설득력을 지니기 마련이다. art가 이번 특집 기사에서 담고 싶었던 부분도, 현재 젊은 갤러리들이 어떻게 한국 갤러리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노력하는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만의 어떤 새로운 성격과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지, 그 다양성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사실 현재 상황에서 한국의 젊은 갤러리들을 정확하게 유형별로 구분하고 그 특징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각 갤러리마다 운영 기간이나 방식, 경제력에서부터 편차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성격을 드러내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단지 이들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큰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본다면, 전형적인 갤러리의 성격을 유지하는 갤러리 혹은 대안적인 성격이 강하며 좀 더 자유로운 방식을 보여주는 갤러리로 크게 골격을 나눌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완결된 전시 중심의 운영을 비롯하여 아트페어 참여, 작가 관리 등에서 좀 더 체계성을 보인다. 물론 각기 방식에도 차이는 있다. 예를 들어 전속 작가제도의 경우, 이들 모두가 도입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갤러리2, 원앤제이갤러리, 공근혜갤러리, 갤러리플랜트, 갤러리em이 전속 작가를 공개적으로 프로모션하는 대표적인 경우이고, 그 외 다른 젊은 갤러리들은 천천히 전속 작가 도입을 준비 중이거나 아직 계획이 없는 곳도 있다.
무엇보다도 ‘갤러리’라는 공간의 역할은 ‘영리 추구’, 바로 작품 판매에 있다. 그럼에도 젊은 갤러리가 토로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작품 판매’에 관련된 것이다. 이 역시 모든 젊은 갤러리에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젊은 갤러리들은 컬렉터 층이 아직 탄탄하게 자리 잡히지 못했거나, 아트페어는 아직 참가 자격에 해당이 안되기도 하고 참여 비용 자체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젊은 갤러리가 선호하는 아트페어 중 하나가 바로 호텔아트페어라고 한다. 어느 갤러리스트의 설명에 따르면, 호텔아트페어는 해외에서 열리더라도 다른 아트페어에 비해 경제적인 부담이 훨씬 덜하기 때문이다. 호텔 객실이 곧 전시 부스여서 대형 작품을 전시하기가 곤란하므로, 소품 위주의 작품을 직접 들고 가기 때문에 작품 운송비를 절약할 수 있다. 또 부스로 이용하는 방에서 숙박이 해결되므로 별도의 숙박료가 들지 않기에 비용적으로 부담이 줄어든다.   
한편, 갤러리와 대안공간의 성격을 두루 갖추는 갤러리들의 경우는 다양한 장르의 실험적인 전시는 물론, 각양각색의 프로젝트와 이벤트 등 전시 외의 프로그램에 ‘오픈 마인드’다. 특히 서로 간 연합을 통하여 젊음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새로운 이벤트를 개최하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홍대 지역에 위치한 젊은 갤러리들은 지역 네트워크가 가장 활발하게 결속되어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갤러리킹, 그문화, 텔레비전12갤러리는 아트스페이스휴, 상상마당 등 다른 서교동 지역 갤러리와 결합하여 2008년부터 매년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아트페어 ‘서교난장’을 열고 있다. 특히 지난 2009년 행사 때는 서울옥션에서 진행하는 ‘아트 옥션쇼 인 서울’에 초대되어 쇼케이스를 열기도 했다. 또 홍대 근방의 젊은 공간들이 함께 벌이는 공간축제형 프로젝트 ‘홍벨트 페스티벌’도 빼놓을 수 없는 젊은 갤러리들의 축제다.

MK2 1층 카페 전경. 지난 3월 열린 개인전에 맞춰 홍승혜 작가가 디자인했다

젊은 갤러리들이 보여주는 힘

뭉치면 곧 힘이다. 젊은 갤러리들은 서로 간 연합의 범위를 점점 더 확대하고 여러 영역에 조금씩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하고 있다. 오는 10월 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아트페어 ‘아트에디션’은 사단법인 한국판화사진진흥협회 주최로 열리는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가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새로운 이름도 그렇고, 올해는 15년 간 열린 예술의전당이 아닌 부산에서 열린다는 사실에서 뭔가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용 면에서도 판화와 사진 외에 에디션이 있는 작품으로 폭을 확대하여 변화된 미술계의 환경을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사실 젊은 갤러리스트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갤러리2 정재호 대표가 협회 총무이사 겸 아트에디션 사무처장을 맡고 있으며, 갤러리em, GYMproject 그리고 조현갤러리의 2세대 경영자인 최재우 실장이 협회 이사를 맡고 준비 중인 것이다. 이렇게 변화의 흐름을 타고 아트페어도 젊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미술계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미술계’라는 범위는 국경을 초월하고, 각양각층의 관람객과 컬렉터가 생겨나며, 미술’의 정의조차 한정짓기 어려울 정도로 넓어져 버렸다. 이렇게 미술계의 지형도가 점점 더 변해가는 과정에서 당연히 젊은 갤러리스트들은 앞으로 기성세대 갤러리스트들보다 좀 더 다양한 부분에서 소양과 자질을 보여야 할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도 젊은 갤러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역할은 분명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새로운 작가를 꾸준히 발굴, 소개하며 미술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실 기성세대 갤러리들은 더 이상 말 그대로 진짜 ‘신인’을 배출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것이 갤러리가 점점 대형화될수록 수반되는 현실일지라도, 어느 덧 기성세대 갤러리들은 규모 있는 전시를 통해 ‘검증된’ 작가들을 그보다 한 단계 더 좋은 작가의 반열에 올림으로써 갤러리의 안정성과 무게감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젊은 갤러리의 역할을 존중하고 그들을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컬렉터에게 유명 작가의 작품만 좋은 작품으로 여기게 하는 고정관념을 암암리에 강요하거나 작품을 단순히 투자 가치로 여기도록 유도하는 게 아니라, 천차만별 개인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작품을 진정 즐길 수 있는 ‘취향이 살아있는 컬렉터’를 배양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젊은 갤러리의 역할이 아닐까?

벡터스페이스의 2번째 기획전 <주하영 개인전> 전경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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