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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0.04

Abstract

특집_Art Market Now? 몇 년 전, 글로벌 미술시장은 사상 유례 없는 대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에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뉴욕발 경제 한파로 미술시장은 급전직하로 곤두박질쳤다. 작품 거래 액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인기 작품 등 시장의 중심도 동시대 작가에서 근대미술로 이동했다. 이러한 지형 변화와 함께 최근의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꽁꽁 얼어붙었던 미술시장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과연 미술시장에 봄이 오는가? 본지는 오늘의 미술시장을 분석하는 특집을 꾸몄다. 첫째, 한국 미술시장의 현황을 보고한다. 화랑, 옥션 등 미술시장 주체들의 위기 극복 전략을 따라잡았다. 미술시장이 다시 '춤' 추려면…, 그 대안을 찾는다. 둘째, 미술시장 분석 전문회사 아트프라이스가 최근 발표한 2009애뉴얼 리포트를 긴급 입수, 작품 가격 랭킹 50위 작가를 공개한다.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유명 작가들의 가격 동향을 실증 자료로 제시한다. 셋째, 작금의 미술계는 '아트페어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지구촌에는 비엔날레보다도 더 많은 수의 아트페어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주요 아트페어 11곳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72개의 아트페어 일정을 실었다.

Contents

표지  박현기  1993년 오사카 고다마화랑에서 선보인 드로잉

영문초록
에디토리얼  기증의 윤리  김복기

프리즘
    법정스님을 추모하며…  최종태
    기부 문화의 패러다임을 업그레이드하자  박영숙

아티스트 인 코리아
    파렌틴 오렌리  김현

포커스
    랜덤 액세스展  양은희
    정주영展|김보민展  이대범
    대만현대미술展  박만우
    김나영, 그레고리마스展|안강현展  정현

특집 
    Art Market Now?  편집부
    1)Market Report 2010
    2)Art Price TOP 50
    3)Art Fair Guide 73

작가 연구  박현기  류병학

크리티컬 포인트
    다시, 행동하는 아방가르드를 위하여!  김종길

이미지 링크  최원준

아웃 오브 코리아 남춘모  김미경

미술 속에 가 있다 
    상품  신지영

아티스트 인사이드
    1)이혜승_모호하지만 여유로운  이성희
    2)천대광_나무로 ‘공간’다루기  장승연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임성수|송봉규|윤상희|조재영

현지 취재 
    게이사이아트페스티벌  호경윤

전시 리뷰
    그림에도 불구하고|옥인아파트 프로젝트|홍순명|최원석, 이재용
    나점수|구명선|송은영|제레미 에이커만|노순택|유창창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순수미술과 서브컬처가 뒤섞인 ‘잔폰 미학’

게이사이 페스티벌 전경

순수미술과 서브컬처가 뒤섞인 ‘잔폰 미학’

‘게이사이’는 미술대학의 예술축제, 즉 ‘예제(藝祭)’의 일본 발음이다. 게이사이아트페스티벌은 일본에서 열리는 정기전의 성과에 힘입어 국제적으로 활동을 넓히고 있다. 2008년 12월에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마이애미아트페어의 특별전으로 초청 받은 바 있으며, 2009년부터는 대만에서 〈게이사이 타이완〉을 개최하기 시작, 두 번째 행사가 올해 11월 28일에 열릴 예정이다.
올해의 〈게이사이아트페스티벌 #14〉는 크고 작은 부스 482개가 참가한 가운데 루이비통과 후본예술재단, 그리고 대만 기업의 후원으로 더욱 화려하게 펼쳐졌다. 특히 신진 평론가 마라카미 유이치, 구로세 요헤이, 하마노 사토시, 이시오카 요시하루, 츠지 노리유키 등이 참여해 게이사이는 물론 동시대 미술에 대해 일종의 ‘토크쇼’처럼 열띤 토론을 진행하는 〈게이사이 크리티컬 미디어〉 부스가 새롭게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그밖에 아트인컬처(동방의 요괴들), 보니콜아트, 터너컬러웍스, 기즈모 등이 특별 부스 초청을 받았다.  
게이사이아트페스티벌은 작가들이 부스비를 내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부스는 크기와 시설(가벽, 조명)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9,000엔(180×120×240cm)에서부터  150,000엔(1080×180×240cm)까지 다양하다. 작가들은 단 시간(하루)에 자신들의 예술적 개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저마다 다채로운 전략을 구사한다. 완성된 작품만 가져 와서 전시하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퍼포먼스 형식의 현장 작업을 펼치기도 한다. 관객에게 친절하게 작업을 소개하는 등 자기 프로모션에 매우 적극적이다.  
개막 행사와 함께 곧바로 심사가 시작되었다. 심사 상황은 풍선을 띄워 멀리서 봐도 심사위원들의 동선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심사 과정을 오픈시켜 공정성과 흥미를 더해 주었다. 심사 결과 올해의 작가로는 금상 야마다 스헤이, 은상 아유무 이와무라, 동상 오오사와 사치에가 선정되었다. 그 밖에 심사위원상의 주인공까지 발표하는 것으로 ‘단 하루’의 축제는 막을 내린다.
그동안 심사에는 나라 요시모토, 쿠사마 야요이, 하세가와 유코, 후미오 난조, 안도 타다오, 데이빗 엘리엇, 프랑스와 피노 등 쟁쟁한 인사들이 참여했다. 올해의 심사위원은 다소 평이한 편이었다. 작가 아이다 히로시 이토, 센 소오쿠, 히로키 나카무라, 신지 미야다이, 카이치로 모리카가 맡았다. 애초 미국 미술의 슈퍼스타 제프 쿤스를 심사위원으로 영입했다가 작가 일정 때문에 무산됐다는 후문이 들린다.  
게이사이아트페스티벌은 뛰어난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공모전이기도 하지만,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거리의 예술가가 한 자리에 모이는, 일종의 프리마켓의 성격이 강하다. 순수미술과 서브컬처가 ‘잔폰’(일본식 짬뽕)처럼 뒤섞여, 작가 관객 평론가 화상 컬렉터 등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만나는 축제 마당이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예술의 속성이 그러하듯 게이사이는 대중성과 상업성, 그리고 예술성이 한데 어우러지는 ‘난장’이다. 그곳에 ‘동방의 요괴들’이 있었다. 올해는 ‘요괴들’ 중에서 지원 및 심사를 거쳐 4명의 참여 작가를 발탁했다. 작가 모두가 직접 도쿄 현지로 날아가 일본 아트피플에게 한국 신진작가의 예술성을 맘껏 뽐냈다.

페스티벌에 참가한 모든 작가들이 개막식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젊은 작가들의 ‘파티’이자 ‘쇼’

권선·고려대 서양화과 졸업, 2009 동방의 요괴들
가까우면서 먼 나라 일본. 지금까지 해외를 많이 돌아다녔지만 일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근 방영된 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두 주인공의 추억을 만들어 주는 매개 역할을 했던 일본, 그리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기획했다는 아트페어. 이 두 가지 사실은 나에게 들뜬 마음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희망에 부풀어 일본 여행 준비를 시작했지만 나는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비행기 티켓 때문이었다. 3월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성수기라 한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을 연결하는 비행기표를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틀간 여기저기 항공사와 여행사를 드나들며 겨우 3월 11일 새로 개항한 이바라키 행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일본. 이바라키 공항은 도쿄 근교라고 하지만 교통편이 좋지 않았다. 기차로 1시간 30분, 지하철로 50분, 그리고 오다이바에서만 탈 수 있었던 유리카모메 모노레일 30분. 갈아 타는 시간까지 합치면 총 3시간이 넘는 거리를 작품을 들고 부지런히 걸어 겨우 ‘도쿄 빅사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에 우연찮게 만났던 친절한 일본인 친구 유스케 씨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 같은 길치는 최소 5시간 이상 길을 찾아 헤매었을 것이다.
이튿날 오전에 시작된 게이사이아트페스티벌은 우리나라의 전시 행사들과 다른 모습을 띠고 있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무라카미 다카시가 기획한다는 명목 아래 미술을 사랑하는 모든 젊은이들이 참여해 즐기는 한바탕 ‘쇼’ 였다. 모든 부스의 작가들은 직접 자신을 홍보한다. 많은 작가들이 독특한 퍼포먼스를 준비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어떤 작가들은 작품을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싼 가격에 판매하기도 하고, 관객들이 직접 참여해 작가와 함께 소통하며 새롭게 탄생하는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많은 관객들과 미술 관계자들은 성심성의껏 젊은 작가들이 준비한 파티에 호응했고, 자신들의 취향에 걸맞은 작가들을 찾는 데 분주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이런 독특한 미술 문화는 ‘전시’에 대한 또다른 소통 가능성을 모색하기에 충분했다.

도쿄에서 펼친 ‘지우개 산 프로젝트’

최유정·숙명여대 공예학과 재학, 2010 동방의 요괴들
개최자: 무라카미 다카시, 의도: 예비작가들의 데뷔전, 기간: 단 하루. 이 세 가지는 게이사이 아트페스티벌을 떠올리는 대표적 키워드다. 무엇보다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은, 다른 아트페어와는 달리 ‘단 하루’만 열린다는 사실이다. ‘짧고 굵게’ 라는 말이 있듯이, 단시간 동안 열정을 ‘불사른다’는 ‘젊은’ 취지가 아닐까.
나는 그 매력에 이끌려 새롭게 기획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지우개 산 프로젝트〉(Mt. Jiwoogae Project). 지우개 가루를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그것을 포장하고 측정해서 관객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기본 컨셉트다. 나누어 주는 행위는 나와 관객들 간에 서로의 꿈과 이상을 서로 공유하자는 것을 의미하며, 지우개 가루는 작가와 관객을 이어 주는 공유물(Herb)의 기능을 띤다.
공유하는 ‘대상(관객)’의 이름과 측정한 ‘공유물(지우개 가루)’의 무게를 기록하는 것은 퍼포먼스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생활 속으로 확장시켜 대상이 공유물을 개인 홈피나 블로그에 포스팅한 링크 주소를 나에게 돌려 주고, 나는 그것을 문서화해 작업은 완결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게이사이에서 일차적으로 선보였지만, 앞으로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나는 서울에서 31kg의 캐리어를 끌고 갔으나, 사실 작업의 성과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동안 지우개 가루를 유난스럽게 몰고 다녔던 지라,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조차 모르시던 외할머니께서 ‘잘 하고 왔느냐’고 물었지만, 딱히 어떤 말을 해드려야 하나 싶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소심한 퍼포먼스였고, 한국이 아닌 외국이었고, 나에겐 새로운 환경이고 조건이었다. 어떻게 보면 더 좋은 조건일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 나에게는 어려웠다.
피곤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잠에 취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본에서 사온 양갱을 냉동실에 넣어 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야금야금 꺼내 먹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게이사이에서의 추억과 그때 느꼈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있다. 게이사이에서 얻어 낸 마음가짐과 태도를 양갱처럼 냉동실에 넣어 두고 가끔 꺼내서 먹으면 좋겠다. 이번 게이사이 참가를 통해 아마추어도, 프로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맴돌던 나의 안일한 태도에 스스로 일침을 가할 수 있었다. 이런 마음이 영원하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이번만큼은 더 오래 간직하고 싶다.

<동방의 요괴들>과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 초청까지  받은 행운

이국현·중앙대 서양화과 졸업, 2010 동방의 요괴들
게이사이아트페스티벌에 가기 전부터 고민이 많았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지만, 글쎄…. 그가 주최하는 페스티벌에 가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게다가 비행기 티켓, 코딱지만한 게 비싸기만 한 숙소, 50호 사이즈 작품 두 점을 들고 다녀야 하는 부담감까지. “헛수고야, 가지마”라며 모두 말렸다. 하지만 작업을 어떻게든 보여 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란 갔다 와서 겪게 될 경제적 신체적 리스크마저도 싹 다 무시한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빅사이트 전시장은 그 스케일과 디자인부터 시선을 압도했다. 그런데 애써 포장해서 운반해 온 그림을 개봉하니, 바니시(마감제)가 녹아 표면에 무늬가 생긴 게 아닌가! 나는 물어물어 모노레일을 타고 몇 정거장 떨어져 있는 화방을 찾아 어렵사리 테라핀을 구했지만 전시장으로 돌아오니 설치 시간은 이미 끝나 버렸다. 다른 두 한국 작가는 전기 시설이 작동되지 않았다. 전시는 당장 내일 아침 10시부터 시작하는데, 그 시간은 밤 11시 30분. 12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전시장을 나와 근처 공원에 앉았다. 분위기는 회의적이었다.
행사 당일 아침 7시부터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전시장으로 출발했다. 9시 반부터 행사 시작을 알리는 부대행사가 시작됐지만, 우리 부스는 아직 설치 중이었다. 간신히 구한 변압기로 다른 작가들까지 드디어 설치 완료! 완벽하진 않았지만, 난고 끝에 전시 준비가 마무리됐다.
그제야 전시장 안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 왔다. 신선했다. 한국과 비슷한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다른, 무언가 일본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다양한 작업들이 펼쳐져 있었다. 개성 있고 시각적으로 강렬한 작업이 많았다. 행사장 이모저모를 살펴보면서도 나는 그저 구경꾼일 뿐, 참여작가로서의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니시 복구도 완벽하지 않았고, 체력이 이미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헌데 점심을 먹고 오니, 그 사이 내 작품 앞에 비치해 놓은 명함이 동이 난 게 아닌가! 기회다 싶어 그때부터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었을 때 즈음, 내 작업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관객 한 분을 만났다. 하지만 나는 작업 설명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동안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한 내 자신을 마음 속으로 자학하고 있는 동안 그 분은 다른 부스로 가버렸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다행히 게이사이 스태프 중 쯔노다 타카미라는 분이 한국어를 할 줄 안다기에 그 분에게 찾아가 내 사정을 말했더니 다행히 그때부터 틈틈이 우리 부스 곁을 지켜 주셨다. 언어가 트이니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그리고 내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가 떠난 분이 다시 우리 부스를 찾아 왔다. 알고 보니 그는 긴자 아트랩(Ginza Art Lab)이라는 갤러리의 디렉터였다. 쯔노다 씨의 통역으로 페스티벌이 끝나자마자 바로 미팅 시간을 잡았다.
오후 6시 페스티벌이 종료되고, 서둘러 그림을 포장해서 미팅 장소로 갔다. 역까지 친절하게 마중 나온 디렉터를 따라 긴자 중심가에 있는 그의 아담한 갤러리를 방문했다. 디렉터는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 가면서 5월에 개최 예정인 그룹전에 참여한다는 계약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혹시 내가 길을 모를까봐 다시 지하철역까지 배웅해 주면서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해 주었다. 긴 하루였다. 저녁밥도 못 먹어, 숙소로 가기 전 컵라면을 하나 사갔다. 알고 보니 카레 맛 라면이었다. 카레를 푼 뜨거운 물에 우동을 말아 먹는 맛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것마저도 왜 그리 맛있던지…. 다음 날 1시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2박 3일의 짧은 일정 안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더 많은 배움을 얻었다. 기회는 손을 내민 자에게 주어진다는 진리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운을 유지하려면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소통과 공유의 장에서

강보은·세종대 회화과 졸업, 2010 동방의 요괴들
완성한 작품에 대한 만족감 뒤에는 늘 소통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감성을 서로 나누는 것에서 오는 희열은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사람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표출하고 배설하려는 욕구가 있고, 그것에 관심을 가져 주길 원할 것이다. 나 또한 졸업전시를 열면서 느꼈던 희열을 다시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게이사이아트페스티벌은 더 많은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그림을 사고 파는 행위를 넘어 다른 작가들의 에너지를 느끼고 공유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현대미술의 오늘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 주듯 페스티벌에 모여 든 참가자의 작업들에서 다양성과 함께 개성 있는 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작업의 결과와 더불어 그 과정과 흔적까지 느낄 수 있는 풍성한 자리였던 것 같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느낀 이미지는 역사를 떠나서 얄밉도록 깔끔하고 정결하고 친절한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예술과 문화에 있어서는 또 다르게 자신을 드러내고 표출하려는 에너지가 대단했고, 이런 행사 또한 그 분위기에 크게 일조하는 느낌이었다. 행사 막바지에는 락 밴드의 공연이 열렸는데 음악이든 미술이든 할 것 없이 하나의 예술로서의 진한 감동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루 일정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준비가 부족했던 내 자신을 한 번 더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짧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랜덤 액세스展 3. 13~5. 9 백남준아트센터

지민희 <숲의 특징> 2010

랜덤 액세스展 3. 13~5. 9 백남준아트센터

브라보! 미스터 파이크!

글|양 은 희

파란색 천이 전시장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백남준의 작품 몇 점과 그와 관련된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이 보이고, ‘Info High way’라고 써 있는 《타임》지의 표지 영상이 보이는 전시장 한 쪽 벽에는 ‘Yellow Peril! C'est moi’라는 문구가 크게 써 있다. 또 다른 벽에는 징기스칸이 통치를 위해 사용했던 규율을 정리한 텍스트가 촘촘히 인쇄된 파란색 배너가 걸려 있다. 파란색만큼이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스피커를 든 흰 머리의 이영철 관장이다. 그는 공간을 가득 메운 인파를 향해 열정적으로 “파란 색 천은 하늘을 가리킨다”며, 세상을 한 하늘 하에 두고자 했던 징기스칸과 백남준을 생각해 보고, 몽골리아에 애착을 가졌던 백남준의 예술을 성찰하는 방이라고 설명한다. ‘황색 공포! 그건 나야’라는 뜻의 ‘Yellow Peril! C'est moi’라는 전시장의 문구는 백남준이 1962년 종이에 쓴 메모인데, 아마도 이것은 서구 세계로 용감하게 나아가 그들의 뇌리에 박힐 만큼 강렬한 족적과 인상을 남긴 두 인물의 공통점을 압축한 표현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랜덤 액세스>전이 개막했다. 앞서 설명한 전시 전경은 1층 상설전 전시장의 첫 번째 방의 모습이다. 이외에도 이 전시에는 <비디오 샹들리에> <달에 사는 토끼> <안데르쉬 컬렉션> 같이 새로이 들어 온 소장품을 선보이며, 백남준에 대한 해석과 맥락 만들기를 통해 그의 정보 사회에 대한 성찰, 역사 문화에 대한 설명 텍스트 기록 이미지를 중심으로 전시장을 꾸몄다. 6개의 주제로 나뉜 2층 전시 공간에는 동명의 기획전이 열렸으며, 백남준의 작업과 그의 예술을 확장하는 작가들, 타미 킴, 김민정, 박찬경, 임민욱, 최태윤, 양아치, 브루스 나우만, 토마스 허쉬혼, 볼프 포스텔, 클레이톤 캠벨, 마사 콜번, 스즈키 유리 등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오프닝 날이었던 3월 13일 정치인, 문화계 인사, 일반인이 고루 어우러진 관람객은 전시장의 복잡한 동선과, 뛰어다니거나 준비된 팻말을 들고 동시다발적으로 퍼포먼스를 벌인 작가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그렇게 그들은 벽에 붙은 수많은 대형 텍스트들과 사진을 보면서, 미디어를 매개로 한 예술의 혼란스러운 현재를 그대로 경험했다.‘이젠. 우린. 충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신세계인이다’(Now. We are. Despite all these. The confide nt people living on the New World)라는 양아치의 문구를 보면서, 이날 참석한 이들은 이곳이 새로움과 충격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 ‘낯선 집’일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집이 되어 가는 것을 느꼈을 것 같다.

토마스 허쉬혼 <비교 불가능한 배너> 2007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전시

<랜덤 엑세스>전은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 백남준아트센터가 최근 내놓은 주목할 만한 성과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2008년 10월 경기도 용인에 문을 연 이후 아트센터는 2년도 채 되지 않아 이미 몇 차례 백남준의 예술에 대한 굵직한 세미나를 열었고, 《NJP Reader》라는 저널을 2개의 언어로 발행하고 있으며, 《백남준의 선물》이라는 규모 있는 연구 시리즈가 책으로 발간되고 있다. 최근에는 《백남준 총서》 1권이 나왔는데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백남준의 글과 편지 등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예술상을 제정하여 백남준의 정신을 잇는 다양한 장르의 작가를 후원하고 있으며, 국내 최초로 외국인 학예실장을 두고 학예 업무의 국제화라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런 여러 활동은 ‘세계인’이었던 백남준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백남준의 모국을 거점으로 그의 정신 세계와 유산을 전 세계에 제대로 알리려는 분명한 목표와 꿈을 드러내고 있다.
<랜덤 액세스>는 백남준이 상호작용과 참여, 그리고 자유로운 정보 사용을 꿈꾸며 시도했던 개념 ‘Random access informa tion’에서 전시 개념을 구하고, 그동안 이룬 백남준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학예사들이 임의로 고른 <아헨 포스터>(1964), <랜덤 액세스>(1967~68), <사이버네틱 마니페스토>(1966), <Suite 212>(1975), <총체 피아노>(1963), <핸드 앤 페이스>(1961)를 토대로 만든 주제를 탐구한다. 전시의 대부분은 백남준이 만든 텍스트와 원효대사, 도나 해러웨이 등 동서양 역사 속의 지성인의 목소리를 담은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전시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징기스칸과 몽골을 언급하던 목소리는 음악과 침묵, 영웅적 제스처와 냉소, 가학적 행위와 순진한 시선으로 옮겨 가며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새로운 의미, 20세기 지성인의 탄생

그동안 백남준아트센터가 그곳의 탄생 과정, 그리고 시작을 둘러싼 우려와 걱정, 불평에도 불구하고 작가 연구에 몰두하면서 아트센터의 방향을 잡아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미학과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국제 전시를 기획해 온 이영철 관장의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한 방향 설정과 야심찬 목표, 그리고 그 뒤에서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묵묵히 쫓아 가는 학예실의 고생과 노력, 세금을 먹는 ‘하마’라는 반대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을 지원하고 있는 경기도의 의사결정권자들의 확신의 결과인 듯 싶다. 이러한 지원이 지속되는 현재 백남준아트센터는 단일한 이미지에서부터 수많은 이미지가 무작위로 교차되며 흐르는 작품까지 다양한 비디오아트를 개척한 백남준의 예술을 소개하면서 일반인을 위한 눈높이 맞추기보다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백남준 연구에 더 힘 쓰고 있는 것 같다.
개관 이후 세미나와 패널에 참여했던 연구자들 중에는 미술사학자 큐레이터뿐만 아니라, 물리학자 문화인류학자 사회학과 정치학을 연구하는 이들처럼 소위 ‘비미술’ 분야의 인물들도 있다. 백남준을 해석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실마리와 도구를 활용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관장은 “저널리즘의 과도한 신화화, 혹은 국내 전문가들의 냉소주의, 그리고 국가주의 인종주의의 선입견이라는 장벽 속에서 백남준에 대한 연구는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백남준아트센터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최근 나온 《NJP Reader》에서 앞으로 진행할 연구의 얼개를 그리고 있다. 그는 ‘예술인류학’(Artistic anthropolog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백남준을 “문화적인 것과 테크놀로지적인 것, 인간과 비인간을 동시적으로 절합하면서 도구적 사유를 극복한 탁월한 사상가”로 조명하겠다고 한다.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 예술 인류를 위해 사고하고 고민하는 예술을 통한 담론 만들기를 구축하여, 인간에 대한 이해와 예술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토대로 삼겠다는 태도를 보여 준다.
<랜덤 엑세스>전은 이러한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백남준의 퍼포먼스 사진 아래 적힌 원효대사의 말, 즉 움직임과 고요함의 동일함, 생사와 열반의 일치에 대한 설명은 불교적 사고를 가진 백남준을 드러내는 작업이며, 최근 유통되고 있는 ‘융합’ 그리고 ‘통섭’이라는 확장된 접근법을 보여 준다. 여러 학문의 연구를 연결하여 통합된 접근을 시도하는 방법은 전시장에 놓인 ‘우리는 개방 회로 속에 존재한다’라는 백남준의 메모와도 상통한다. 거침없이 정치와 예술, 과학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백남준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도 계속되어 더 많은 지성이 참여할 것 같다. 곧 백남준아트센터 내에 ‘백남준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마도 10여 년 후에는 이곳이 낳은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 백남준 담론을 주도할 것이며, 종국에는 백남준이 존경하면서도 극복하고자 했던 마르셀 뒤샹, 존 케이지처럼 그 역시 20세기의 지성인으로 자리매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신화화’ 작업이다. 결국에는 그의 탈경계적 면모가 드러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고, 제2의 백남준과 같은 인물을 탄생시킬 토양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을 위해 모국의 땅과 자본, 그리고 인력이 아낌없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될까?    
뉴욕의 작가들은 백남준이 살아 있을 때 종종 그를 ‘남준 파이크’라고 부르곤 했다. 뾰족한 창을 가리키는 ‘Pike’와 유사하게 발음하곤 한 것이다. 그는 창처럼 콕콕 찌르는 존재였다. 그런 백남준은 이번 전시의 여기저기에 나타난다. 코끼리 위에 부처가 아디다스 우산을 들고 탄 입체물에서,‘예술에 사보타지가 있어야 사회는 더 안전합니다’라고 예술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문구에서, 불교의 윤회사상 속에서 미디어아트의 본질을 찾던 그가 보인다. 2층 전시장 안에 어떤 참여 작가가 “The Incommensurable!”이라고 크게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말 그대로 백남준은 비교 불가능한 존재이지도 모른다.

박현기의 차이와 반복

<TV 시소> 모니터, 돌, 금속 40×270×72cm 1984

박현기의 차이와 반복

글 | 류병학·미술평론가

“그(박현기)는 비디오를 통해 전통과 우리 것을 고수하고자 애썼거니와 이들은 엄밀히 ‘한국적’ 비디오이기보다는 ‘박현기적 비디오’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박현기는 한국 비디오아트의 외로운 선구자로 남아 있지만 그가 척박한 땅에 쌓아 올린 비디오 탑은 그래서 오늘 더욱 굳건하고 드높아 보인다.”
-강태희, 〈박현기의 비디오와 오브제〉, 2010년 갤러리현대 개인전 중에서)

현대판 산수화, 박현기의 유작 〈현현(顯現)〉 앞에서

아트센터나비가 소재하는 서린동 SK 사옥 로비에는 백남준의 〈TV 첼로〉(1980)와 박현기의 〈현현〉(1999)이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그 두 작품은 1999년 아트센터나비 노소영 관장이 직접 선정하여 SK 사옥 ‘환경 조형물’로 서울시 심의를 통과해 소장된 작품들이다. 만약 당신이 아직도 신축 건물들 앞에 여전히 식상한 환경 조형물이 설치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면, 10년 전 급진적인 미디어 아트 작품들을 환경 조형물로 선정하고 심의를 통과했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것이다.
백남준과 박현기의 작품은 아트센터나비가 공식적으로 개관한 2000년 1월 1일 〈멀티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라는 타이틀로 첫 선을 보였다. 그러나 외람되게도 백남준과 박현기는 모두 아트센터나비의 개관전 오프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백남준은 당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릴 〈백남준의 세계〉 전시 준비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고, 박현기는 암 투병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 관장의 회고에 의하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당시 박현기 선생은 몇 개월 전부터 암 투병 중이신대도 전혀 말씀하시지 않고 작품 구상에서부터 설치까지 일일이 직접 책임감 있게 관여하셨다. 고요함 속의 움직임을 통해 감동을 주는 선생의 〈현현(顯現)〉처럼 선생은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이면서 자신의 진술은 명확하게 전달하셨던 멋있는 분으로 기억한다.”
박현기는 2000년 1월 13일 결국 세상을 하직했다. 따라서 SK 사옥 로비에 설치된 〈현현〉은 박현기의 유작이 되는 셈이다. 박현기의 〈현현〉은 선돌과 사각의 돌판(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사각의 돌판 표면은 천장에 설치된 모니터(LCD Player)에서 투사된 연못의 영상을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선돌은 양(陽)으로 그리고 돌판의 연못(영상)은 음(陰)으로 비유된다는 점에서, 박현기의 〈현현〉은 일종의 ‘현대판 산수화’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멀티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아트센터나비 최두은 실장은 박현기의 〈현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란한 동영상이나 화면의 재빠른 변전과는 거리가 멀지만 동양화의 화폭과도 같은 느낌을 이어가면서도 잔잔한 가운데서 동적인 힘을 함께 구현한다. 주변의 만상을 다 제거해 버리고, 순수한 반영의 몸짓만을 유토피아의 산물인 도심 한복판 건축물 속에 새로운 예술 언어로 표현했다. 따라서 〈현현〉은 테크놀로지와 동양 정신이 접목된 명상이 흐르는 박현기의 예술 세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척박한 땅에 쌓아 올린 비디오 탑”

우리는 흔히 ‘비디오아트’하면 백남준(1932~2006)을 쉽게 떠올린다. 두말할 것도 없이 백남준은 비디오아트의 아버지, 즉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이다. 하지만 그가 대한민국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는 아니다. ‘대한민국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는 박현기다. 왜냐하면 백남준이 대한민국에 알려지지 않았던 1970년대 중반 대구에서 처음으로 비디오아트를 작업한 작가가 바로 박현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현기는 백남준에 가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박현기 사후 첫 회고전은 지난 2008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박현기 유작전-현현〉이다. 지난 3월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박현기의 작고 10주기를 맞아 〈한국 비디오아트 선구자 박현기, 10주기 기념 회고전〉이 개최됐다. 박현기 10주년 회고전이 미술관이 아닌 상업갤러리에서 개최됐다는 점에서 아쉽지만 재조명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현기는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홍익대 미대 회화과를 수료하고 건축과로 전과해 졸업했다. 박현기는 1970년대 초 서울에서 고향 대구로 내려가 건축사무소 큐빅을 운영하면서 이강소 최병소 황현욱(1947~2001) 등과 만나 대구에서 시작한 현대미술 운동에 동참하며 행위예술과 비디오아트 등 급진적인 작업을 했다.
박현기는 4.19세대의 작가다. 물론 그는 4.19 당시 20세가 채 되지 못한 18세였다. 그러나 김현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박현기는 한글세대로 4.19식으로 세상을 읽는 분단 세대다. 그에게 분단은 해석이나 분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었다. 때문에 분단은 박현기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나타난다. 물론 그것은 자연과 문화, 실상과 가상 등의 은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그 분단은 무의식적 발로라고 볼 수도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분단은 하나에서 둘로 갈라진, 그리고 또 다시 갈라진 그 둘이 하나로 통일될 수 있는 분단(分斷)이 아닌 ‘차이와 반복’의 분단윤회(分段輪回)라고 할 수 있겠다.
4.19세대는 TV를 보면서 자라난 세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중학교를 다닐 즈음 TV가 보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작가들이 TV의 보급으로 인해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못했다. 박현기는 대부분의 4.19세대가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새로운 미디어 세계에 주목했다. 박현기는 1974년 대구 미국문화원 자료실에서 우연히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Global Groove〉(1973)를 보고 단번에 비디오아트에 매료되었다.
1970년대 중반 박현기는 밀수품으로 국내에 들여온 소니(Sony) 비디오를 구입하면서 새로운 매체에 대한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1977년 〈대구현대미술제〉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비디오 작품을 선보였다. 그것은 사진관 암실의 현상용 트레이에 담긴 물을 휘저어 물결을 만든 후 원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을 촬영한 비디오 작품이다. 그런데 물 표면에는 전기스탠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물을 휘저어 물결을 만들면 그 그림자가 해체되었다가, 물결이 잔잔해 지면 그림자가 원 상태로 돌아가는 일종의 ‘윤회’를 느끼게 한다.
그 후 박현기는 돌을 쌓아 만든 돌탑 사이에 TV 모니터를 삽입시킨 일명 〈비디오 돌탑〉(1978)을 제작했다. 박현기의 〈비디오 돌탑〉은 TV 화면 속 가상의 돌이 실재 돌탑에 삽입되어 ‘가상과 실재’ 사이에서 놀이한다. 단순하면서도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는 〈비디오 돌탑〉은 박현기가 1979년 상파울루비엔날레와 1980년 파리비엔날레에 참가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박현기는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물이 찬 영상을 담은 TV 모니터를 들고 기울이는 각도에 따라 물의 기울기가 달라 보이는 ‘깜찍한’ 상황을 연출한 〈물 기울기〉 비디오 퍼포먼스를 진행해 호평을 받았다. 같은 해 박현기는 〈대구현대미술제〉에 TV 속 물고기가 어항 속에서 유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TV 어항〉을 출품한다. 박현기의 〈TV 어항〉은 TV 모니터의 프레임이 마치 어항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여 ‘비디오로 그리는 동양화’라는 찬사도 받았다.  
박현기 비디오아트는 흔히 비디오 조각(Video Sculpture) 혹은 설치 비디오(Installation Video)로 불린다. 물론 1979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박현기가 보여주었던 〈물 기울기〉는 비디오 퍼포먼스이다. 박현기의 비디오 퍼포먼스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화랑의 안과 밖을 연결한 〈도심을 지나며〉(1981), 그리고 1985년 일본 가마쿠라 화랑에서 행한 TV 모니터를 애무하는 비디오 퍼포먼스를 들 수 있다.
물론 뉴미디어아트가 대세인 오늘날 박현기의 비디오아트는 새롭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박현기의 비디오 작품이 국내에 컬러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도 전인 1970년대 말경 제작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비디오 작품이 “척박한 땅에 쌓아 올린 비디오 탑”이라는 강태희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물 기울기> 비디오 퍼포먼스 가변설치 1979

‘합일과 사이’를 ‘반복과 차이’로

“박현기의 비디오 입문 과정에서 백남준의 영향은 한정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비록 그의 작업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박현기의 비디오나 테크놀로지에 대한 접근 방식은 차라리 1970년대의 우리 현대미술이 추구했던 오브제나 물성에 대한 관심과 동양사상, 그리고 서구식 근대주의의 초극과 부정(不定)의 미학을 내세운 모노하와 이우환의 철학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강태희, 〈박현기의 비디오와 오브제〉
특히 박현기의 〈TV 시소〉(1984)는 돌과 철판으로 이루어진 이우환의 〈관계항〉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 박현기의 〈TV 시소〉는 돌과 철판으로 시소를 만들어 한쪽에 돌을 다른 한쪽에 돌의 영상을 담은 TV 모니터를 놓아 시소처럼 균형을 이룬다. 따라서 박현기의 〈TV 시소〉는 마치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This is Not a Pipe)〉(1928)와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의 〈하나 그리고 세 개의 의자(One and Three Chairs)〉(1965)처럼 이우환의 〈관계항〉에 돌의 영상을 담은 TV 모니터를 첨가한 것이다.
강태희는 “작품은 합일과 사이를 동시에 지닌 모순율의 구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우환의 진술을 인용하면서 박현기의 〈TV 시소〉를 “이우환의 ‘모순율의 구조’를 극대화” 한 것으로 해석한다. 필자는 이우환의 ‘합일과 사이’를 ‘반복과 차이’로 전이시키고 싶다. 왜냐하면 박현기의 작품은 ‘반복과 차이’를 동시에 지닌 모순율의 구조라고 필자는 해석하기 때문이다. 박현기의 ‘차이’와 ‘반복’은 거대한 서사시의 상대적 개념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겪고 다시 돌아오면 ‘차이’의 자신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 차이는 반복될 것이다.
1990년 중반 특히 1997년은 박현기에게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왜냐하면 박현기의 후기 작품들 중 주목받아 마땅한 작품들이 모두 1997년도에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울한 식탁〉과 〈만다라〉 그리고 〈폭포〉가 그것이다.
〈우울한 식탁〉은 식탁 위에 놓인 둥근 대형 접시에 자신의 몸을 떠낸 파손된 석고 조각들을 올려 놓고 그 위에 4.19 혁명의 다큐멘터리 영상과 광주민주화운동, 일본 지진과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의 도시가스 폭발 사건 등을 편집한 영상을 담은 작품이다. 〈만다라〉 시리즈는 미국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붉은 옻칠이 된 원형 통 제가 같은 용기 안에 정적인 만다라 이미지와 포르노 동영상을 편집해 담은 작품이다. 〈폭포〉는 스크린 보드 위에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의 이미지를 비추고 전시장 바닥에는 폭포수의 떨어진 물거품 이미지를 비추는 작품이다.
요란한 폭포수 앞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박현기의 〈폭포〉는 장엄한 폭포수를 ‘은하수’로 찬미했던 이백과 두보의 시를 연상케 한다. 박현기는 말한다. “완전한 대상이 그물에 걸렸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잡았다고 생각하는 그 대상은 추상의 결집이지 대상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폭포〉를 제작하고 난 2년 후 박현기는 하얀 대리석 위에 잔잔한 물결 영상을 비추는 〈현현〉을 제작한다. 요란한 폭포수처럼 화려한 도심의 중심에 설치된 박현기의 〈현현〉은 고요 속의 떨림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거대한 서사처럼 먼 거리를 돌아온 박현기는 평온을 되찾은 것일까? 그는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한 심경을 ‘물심(物心)’으로 표현했다. “物-心, 물질에 걸려 있는 내 마음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내 마음처럼 변하지 않는 물질도 없구나. 결국 자신 외에 아무도 변한 것 없네.”

작가 박현기와 딜러 황현욱, 애증의 관계

박현기가 작고하기 전인 1990년대 말 주목할 만한 두 개의 개인전이 있다. 1997년 경주 선재미술관에서 개최된 개인전 〈비디오-인스톨레이션〉 그리고 1998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린 박현기의 대대적인 개인전이 그것이다. 박현기 ‘개인전’을 언급하면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인공화랑’의 개인전이다. 그런데 그 인공화랑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4년까지 ‘대구’ 인공화랑과 1994년 ‘서울’ 인공화랑이다. 대구 인공화랑은 다름 아닌 박현기의 건축사무소 큐빅(2층) 건물 1층에 위치했었다. 당시 대구 인공화랑 관장은 박현기의 미술계 벗인 황현욱이었다. 당시 척박한 미술 환경 때문에 화랑 운영이 어려워 박현기가 대구 인공화랑 월세를 지원해 주었다. 필자가 이곳에서 인공화랑 황현욱을 언급하는 이유는 박현기와의 영향 관계 때문이다.
황현욱은 대구 인공화랑에서 독특한 전시회들을 기획했는데, 대구 인공화랑의 훌륭한 기획력에 주목한 윤형근(1928~2007)이 황현욱에게 서울로 자리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1988년 윤형근의 지원으로 황현욱은 서울 대학로에 인공화랑을 건축했다. 서울 인공화랑은 90년대 중반까지 도널드 저드(Donald Judd)와 리차드 롱(Richard Long) 전시에서부터 김창열 박서보 이우환 윤형근 등 국내 유명 작가들 외에도 당시 중견 작가였던 김용익 문범 박현기, 그리고 우순옥 제여란 최선명 등의 당시 젊은 작가들도 전시회를 개최했던 곳이다. 따라서 대학로의 인공화랑은 일종의 ‘미술인의 아지트’인 셈이었다. 그 미술인의 아지트는 국내외 미술계의 뜨거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곳인데 박현기 역시 그곳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서울 인공화랑은 1988년 개관했지만, 박현기는 1994년에 단 한 번의 개인전만 초대되었다. 왜일까? 대구 인공화랑에서 1986년부터 1994년까지 거의 매년마다 박현기 개인전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서울 인공화랑에서는 1994년 단 한 번만 박현기 개인전을 개최한 것일까? 작가 박현기와 딜러 황현욱의 관계는 애정과 더불어 이에 못지않은 미움을 가지고 있는 애증(愛憎)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바로 그 애증의 관계 때문에 서로에게 질적 향상을 위한 자극제가 되지 않았을까?

매체에 대한 탁월한 분석력

“당초 비디오를 테크놀로지와는 다른 무관한 쪽으로 몰고 간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사물을 관조하는 명상적이고 초월적인 시선이 드러나는 개성 넘치는 작업들을 낳았는데 이는 비디오 매체의 서사성이나 연극성을 거부한 대신 오브제나 사물의 본성이나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투철한 탐구와 각성의 경지를 담보하는 성과로 보상되었다. 후기의 프로젝션 비디오들 역시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이는 비디오의 기본적인 속성을 제한적으로만 받아들인 고집의 결과이다.”-강태희, 〈박현기의 비디오와 오브제〉
필자는 앞서 박현기의 비디오아트를 단순하면서도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는 작품이라 했다. 강태희는 박현기의 비디오아트를 “사물을 관조하는 명상적이고 초월적인 시선”을 드러낸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사물을 관조하는 명상적이고 초월적인 시선”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케 된 것일까? 박현기가 단지 “비디오의 기본적인 속성을 제한적으로만 받아들인 고집의 결과”일까? 혹 박현기가 매체(비디오)에 대한 ‘탁월한 분석력’을 관통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박현기의 비디오아트는 매체에 대한 현실 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강태희는 박현기의 “생애가 짧게 마감되지 않았다면 그의 비디오 작업의 어휘는 더욱 세련되고 다양해졌을 것이 틀림없다”고 단언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필자 역시 강태희의 단언에 동의한다. 박현기는 말한다. “좌절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만 기적을 바랄 자격이 주어지는 것 아닐까요.”
선생의 ‘최선’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티스트 인 코리아 Fahrettin Orenli

아티스트 인 코리아 Fahrettin Orenli

글 | 김현 기자

전시장을 들어서자 거울을 벽에 오려 붙여 쓴 시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서자 작품 앞에 바짝 다가선 나의 모습이 비친다. 뿐만 아니라 맞은 편 벽에 걸린 건조한 표정을 한, 개의 모습도 함께 비친다. 그리고 그 옆에 한글로 서툴게 적혀 있는 한 문장. “오늘 날의 선진국이란 국민들이 수돗물을 먹을 수 있는 나라.” 대학로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열린 파렌틴 오렌리(Farettin Orenli)의 전시 모습이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는 다소 야박한 가사의 ‘빈대떡 신사’가 전시장에 흐르는데, 그것이 묘하게도 잘 들어맞는다. 곡 선택은 어떻게 했느냐고 묻자, 그는 한국에 와서 ‘돈’에 관련된 곡을 주변인들에게 추천 받았다고 설명했다. 교양 있는 왈츠나 분위기 잡는 재즈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선택이었다. 작가는 현대인들이 늘어놓는 수많은 변명 중에 하나인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예요. 많은 도시를 가보았지만 어딜 가도 비슷비슷한 작품이 걸려 있죠. 나는 도시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작품에 반영하고 싶어요.” 전시 제목이기도 <오늘의 변명>은 이스탄불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곰의 훈련 장면을 드로잉한 작품이다. 작가의 눈에 비친 곰의 모습은 돈과 권력의 장단에 휘둘리는 ‘민중’의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곰을 춤추게 하기 위해서 조련사는 곰을 뜨거운 접시 위에 올려놓고 뜨거워서 펄쩍 뛸 때마다 북을 칩니다. 북소리에 익숙하게 된 곰은 결국 접시가 없어도 북소리만 나면 저절로 춤을 추게 되죠.” 거울로 쓴 영시 <아나티스트> 역시 ‘현대화’로 포장된 사회의 이면을 꼬집는다. 그는 모든 정치적인 조직과 권력을 부정하는 아나키스트와 아티스트, 두 단어를 합쳐 ‘아나티스트(anartist)’로 부른다. 그것은 스스로를 지칭하는 예술가(an artist)를 뜻하지만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그의 해석을 담고 있기도 하다. <아나티스트>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매 세기마다 한 사람이 벽면에 문을 그린다. 그리고 그 바보는 닫는 것을 잊어버렸을까.” 시각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로서 시대가 가진 문제를 아름답게 가려줄 수도, 적나라하게 폭로할 수도 있다. 그 선택의 문제는 모든 작가들에게 맡겨진 숙제가 아닐까.

2010 April Special - market report 2010

2009년 아트바젤 <Untitle>전시장 외관

2010 April Special - market report 2010

글|호경윤 수석기자

200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는 글로벌 미술시장을 급속하게 불황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시장이란 근본적으로 돈(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인만큼 미술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그동안 ‘미술=돈’의 시대를 구가하며 옥션, 아트페어, 아트펀드는 물론이고 미술 관련 사업(심지어 미술잡지까지)까지 이 화려한 잔치에 함께 춤을 추었다. 그러나 이젠 그 모두가 또 한 차례 지나간 영화(榮華)가 되고 말았다. 아름다운 미술작품 뒤에는 냉혹한 생존의 법칙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몇 가지 악재를 딛고 회복세로

중국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거센 돌풍을 일으켰던 ‘아시아 바람’도 급속히 식어 들었다. 중국 미술의 ‘이상 열기’ 뒤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거품 붕괴가 찾아왔다. 그런데 정작 중국은 느긋해 보인다. 세계 경제 성장율 1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인지,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곧 반등세로 돌아선다는 낙관론이 더 우세하다. 그러나 중국미술의 부침은 한국, 일본은 물론이고 아시아 미술시장 전체에 파장을 던진다.(중국에 진출했던 20여개의 한국 화랑 대부분이 철수하거나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미술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워낙 엄살이 심한 나라이긴 하지만, 경기 자체가 나쁜 데다 체감 경기는 더 심각하다. 타이완, 홍콩, 동남아 등지에서 일본 작가들의 인기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싱가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일었던 미술 붐도 결국은 화교권의 경제적 파워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변수’에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먹구름이 낀 가운데 오일 달러가 든든한 중동권의 꾸준한 성장, 국제 금융도시 홍콩의 약진, 타이완의 새로운 부상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밝은 빛이다.
한국 미술시장은 어떠한가.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최근 몇 년간 한국 경제는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큼 상당히 선전했다. 그만큼 체감 경기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미술시장은 일반 경기보다 훨씬 추웠다. 바꿔 말하면, 2007년을 전후로 미술이 일반 경기보다 더 큰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게 짚어야 할 문제는 한국 미술시장 자체가 안고 있는 악재다.
첫째, 미술시장 주체가 스스로 노출한 문제다. 비상식적인 단기 투자 등 일부의 부도덕한 거래가 미술의 순수성을 실추시켰다. 박수근의 〈빨래터〉와 같은 위작 논란이 끊임없이 지속되어 미술품이 사회적 ‘불신’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둘째, 삼성 특검이 지루하게 이어지면서 재벌(혹은 ‘큰손’이라 부를 수 있는 컬렉터)의 문화 투자를 위축시킨 점이다. 사실 삼성 리움미술관의 ‘휴면(?) 경영’은 한국미술 전반에 끼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 전시 기획, 컬렉션, 작가 지원, 국제 교류 등 미술 전반에 걸친 인프라 생산의 중단은 시장은 물론 창작의 활기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셋째, 2011년부터 발효할 예정인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다. 이 세제의 골자는 개인이 6000만 원 이상의 미술품을 판매해 남기는 차액에 대해 20%의 소득세를 부과한다는 것. 양도차익 과세는 실상 작품 거래의 실명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개인 컬렉터들의 거래가 급감할 수밖에 없다. 고가 작품의 거래가 활기를 잃는다면, 연쇄적으로 중저가 거래까지 위축되는 건 불 보듯 빤한 일이다.(‘문화의 시대’를 역행하는 이 세법은 미술계의 정당한 ‘문화 논리’로 저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 미술시장이 곤두박질만 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더 이상 추락해서도 안된다. 한국은 그동안 국제 경쟁력을 꾸준히 키워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 또한 크게 강화되었다. 한국국제화랑미술제(KIAF)만 하더라도 현재 아시아권에서 홍콩아트페어와 선두 다툼을 펼칠 정도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호황을 경험하면서 미술의 저변이 크게 넓어졌고, 그 중에 건전한 ‘신(新) 컬렉터’를 확보한 것도 큰 성과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술시장 주체들이 스스로 호재를 생산해 내는 일이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아트프라이스>가 집계한 2009년 아시아권 작품 판매 4위의 쩡 판즈

바닥 치고 올라 온 경매시장

한국 경매시장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3배에 가까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2차 시장인 경매가 미술시장을 주도했다. 이 무렵 크고 작은 미술 경매 회사들이 연이어 생겨났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매 규모가 거의 절반에 가깝게 축소되었다. 경매 회사 역시 경제 한파 앞에 대부분 고배를 들어야 했다. 현재는 서울옥션과 K옥션의 양대 구도 속에서, 꼬모옥션 아이옥션 포털아트 등 중저가 시장을 겨냥한 경매 회사나 고미술 전문 경매사, 혹은 온라인 옥션사만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2009년에 서울옥션은 390억 원, K옥션은 214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작년 하반기에 경기가 바닥을 치고, 다시 서서히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고 분석한다.
K옥션은 지난 3월 10일 올해 첫 메이저 경매를 개최했다. 총 219점의 출품작 중 160점이 낙찰, 73%의 낙찰률과 48억 3천만 원의 낙찰금을 기록했다. 작년 3월에 열렸던 경매에 비해 2배 이상의 낙찰 성사 금액으로, 미술시장의 회복 여론을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이번 경매에서는 박수근의 <여인들>이 8억 5천만 원으로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고, 해외 작가 중에서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Jeune Femme au Chapeau Rouge>가 6억  원에 낙찰됐다.
김환기의 <이른 봄의 소리>가 6억 3천만 원에 낙찰된 것 외에도, 이른바 ‘블루칩 작가’로 꼽을 수 있는 이우환(5점), 김종학(4점), 이대원(3점), 김창열(2점) 등이 여전히 강세를 이어갔다. 특히 오치균의 <봄 산타페>는 추정가보다 훨씬 높은 1억 1천만 원에 낙찰되었고, 내년 2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앞두고 있는 이우환은 <선으로부터 No.790152>가 9500만 원에 낙찰되는 호조를 보였다.
그 밖에 고미술 및 동양화 분야에서는 표암 강세황, 추사 김정희, 청전 이상범, 운보 김기창이 낙찰되었다. 순종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 경매 전부터 관심을 끌었던 회중시계와 명성황후의 한글 친필서간문이 각각 1억 2500만 원과 5천만 원에 낙찰되었다. 또한 작년 12월 경매에 이어 시계와 보석도 모두 낙찰되어 여전한 인기를 자랑했다. K옥션 측은  “한국 경제의 회복 속도와 최근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 상황과 더불어 지난 몇 년 간 어려웠던 한국 미술시장이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튿날 서울옥션의 116회 메이저 경매가 열렸다. 총 237점 중 174점이 낙찰되어 74.4% 낙찰률, 56억 1820만 원의 낙찰총액을 기록하며 역시 좋은 성과를 올렸다. 김환기는 점화 시리즈 <11-II-70 #146>(낙찰가 9억 원) 등 5점 모두가 낙찰되었다. 천경자의 <그라나다의 창 고지기하는 여인>(3억 500만 원), 김창열의 <물방울>(2억 4천만 원), 장욱진의 <풍경>(1억 7천만 원) 등 작고 원로 작가들의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같은 날 진행된 기획 경매 <My First Collection>는 100만 원대부터 시작,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을 선보였다. 강연균의 <정물>과 오승윤의 <수련> 이 비교적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서울옥션의 이학준 대표이사는 “미니멀리즘의 대표작가 도널드 저드의 작품이 국내 1/4분기 최고가인 11억 6천만 원에 낙찰되었고, 고미술의 경우에는 경합이 치열해 추정가로부터 31배에 낙찰되는 등 미술시장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경매시장에 좋은 작품만 출품되면, 미술애호가들의 수요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고 말한다.
최근 해외에서도 미술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설 전망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그림 가격 지수인 메이-모제스(Mei-Moses)가 작년 3분기부터 상승선을 보이고 있다. 또한 지난 2월 3일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는 세계 미술인들을 열광시킨 ‘사건’이 터졌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이 1197억 원에 낙찰되어, 종전에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2004년 뉴욕 소더비, 약 1196억 원)이 기록했던 미술품 최고 경매가를 경신했다.
서울옥션과 K옥션는 해외 미술시장의 상승 무드를 한국에서도 이어가기 위해 시장의 다각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K옥션은 5월 서울과 홍콩에서 열릴 제4회 아시안옥션위크(신화 킹슬리 라라사티 에스트퀘스트 연합), 그 밖에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는 판화 온라인 경매 등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옥션 역시 다음 경매를 4월 4일에 홍콩에서 개최한다.
특히 서울옥션은 지난 1월 22일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의 복귀와 새로운 경영 방향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서울옥션은 2008년 7월 문화예술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바 있으나, 상장 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미술시장의 현실이 주식 곡선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 회장은 “다양한 아이템을 개발해 재미있는 경매시장을 만들겠다. 주식 시장은 물론 아트마켓의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 회장의 새로운 방침에 따라 서울옥션은 순수 미술품 외에 다양한 기획 경매를 계속 늘릴 계획이다. 4월 17일 올해 처음으로 디자인 경매를 열어 론 아라드 등 유명 디자이너의 가구, 조명, 디자인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2009년 도쿄아트페어 전시 전경

아트페어, 화랑의 연대 작전

불황에 대처하는 화랑가의 전략 역시 경매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아트페어는 동업자들이 ‘힘을 뭉쳐’ 작금의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돌파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구다. 아트페어의 전략이라면 안으로는 사진 판화 영상 혹은 신진작가 발굴 등의 새 상품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컬렉터 층을 개발해 미술시장의 저변을 꾸준히 확대하는 노력이다. 또한 밖으로는 해외 미술계와의 적극적인 교류와 협력을 모색하는 일이다. 환율이 안정세를 찾은 것이 다행이다.
올해 시즌을 알리는 실질적인 행사는 해외에서 시작했다. 한국화랑협회와 KIAF가 주최한 <코리안아트쇼>가 지난 3월 3일부터 5일간 뉴욕 첼시 La.Venue에서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작년 연말 국회에서 특별 예산을 배정받아 이 행사가 성사됐다. <코리안아트쇼>는 세계 미술시장의 심장부인 뉴욕에 한국미술의 현주소를 알리는 ‘문화 홍보’가 애초의 취지였다. 특히 아모리쇼 함께 11개의 위성 아트페어가 열리는 아모리아트위크에 개최 시기를 맞추고 SCOPE, 펄스와 VIP카드를 공유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워 더욱 효과적으로 진행했다.
3월 2일 개최된 개막식은 김경근 뉴욕총영사, 국립현대미술관 배순훈 관장, 뉴욕한국문화원 송수근 원장 등의 인사와 1500여 명의 국내외 갤러리스트 평론가 저널리스트 컬렉터가 모여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박영덕 미 더컬럼스 표 현대 노 쥴리아나 조현 예 금산 등 한국의 대표 갤러리 24곳이 참가했다. 김창열 이우환 전광영 노상균 등의 중견 원로 작가와 지용호 김동유 변순철 최소영 등의 신진작가까지 총 104명의 작가가 출품했다. <코리안아트쇼>는 해외 화랑주나 컬렉터를 상대로 9월에 열릴 KIAF2010의 홍보 창구로도 적극 활용했다. 뉴욕 한국문화원에서는 참여 갤러리의 대표작을 선보이는 특별전도 열렸다.
참여 화랑들은 판매 못지않게 장기적인 작가 홍보로 해외에 한국미술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큰 목적을 두었다. 모두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고 평가했다. 표미선 화랑협회장은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처음 알았다고 감탄하는 미국 관객들을 만나 큰 힘을 얻었다. 한국 미술시장이 세계로 본격 진출하는 첫 걸음이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KIAF in N.Y>를 여는 것이다”면서 이번 행사의 의미를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화랑미술제가 3월 25일부터 5일간 부산 BEXCO 제3전시장에서 열렸다. 협회 소속 84개 회원 화랑이 참가, 3천여 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송수남 홍경택 이이남 등의 국내 작가와 줄리안 오피,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등의 해외 작가가 인기를 끌었다. 특별전 ‘Art in Busan’은 부산 지역 25개 비회원 화랑과 부산화랑협회가 추천한 부산작가 62명의 작품 148점이 한자리에 소개되어 이 중에서 20여점이 판매되었다.
올해 화랑미술제의 성과는 저조한 편이었다. 관람객은 20,152명으로 작년보다 4천여 명 줄었고, 판매 금액은 15억 2천만 원으로 작년의 절반 수치에 머물렀다. 1976년에 출범한 한국화랑협회전을 모태로, 1987년부터 이름을 바꾼 화랑미술제는 KIAF와의 차별화, 지역 미술 활성화 등의 명분으로 2008년부터 부산에서 열고 있다. 그러나 지역 고객에 초점을 맞춘 작품 수준 저하, 대다수 서울 화랑들의 판매 실적 부진 때문에, 화랑주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화랑미술제를 다시 수도권으로 옮겨 열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2009년 아모리쇼 전시 전경

새 지역, 새 장르로 전략 다각화

지역 미술시장의 전망은 어떠한가. 우선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개최되는 아트페어가 늘어나고 있다. 부산에서는 2007년부터 자체적으로 아트페어를 개최하고 있다. 부산국제아트페어는 다른 아트페어에 비해 판매 수수료를 20% 밖에 받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이점이 있다.
또한 같은 해에 대구에서 창설된 <아트대구>는 오는 6월 2일부터 5일간 대구 엑스코에서 네 번째 행사를 연다. 이번 아트페어에는 대구 경북 지역 20곳, 서울 지역 20곳, 기타 지역 10곳의 화랑, 해외 화랑 20곳이 참가한다. 올해는 한국 전위미술을 이끌어 온 이건용 특별전과 국내 레지던스 스튜디오 입주 작가들을 선별해 소개하는 ‘레지던스 아트 프로젝트’가 열린다. 그 밖에 해외 젊은 작가들의 그룹전과 미국 조각가 브래드 하우, 스페인 작가 에바 아르미센의 특별전도 마련된다. 또한 컬렉터들의 소장품을 현장에서 위탁 판매하는 ‘체인징 컬렉션’이라는 부대행사가 주목을 끈다.
한편 대구에서 하반기에 열리는 대구아트페어는 2008년부터 대구화랑협회가 주최해 더 큰 규모로 치러지고 있다. 특히 작년에는 대구아트스퀘어의 본행사로 전년보다 2배의 규모로 열린 바 있다. 또한 최근 (재)광주비엔날레는 비엔날레 개막에 맞춰 9월 1일부터 5일간 광주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아트페어>를 연다고 발표했다. 현대미술의 각축장인 광주비엔날레의 국내외적인 지명도에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면서, 조만간 30명 내외로 아트페어 조직위원회를 꾸려 세부적인 행사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아트페어가 늘어남에 따라 서울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들은 보다 더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정 장르와 작가의 연령대를 기준으로 가격대와 타깃 층을 좀더 명확히 설정함으로써 아트페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올해로 3회를 맞이한 <서울포토>는 4월 29일부터 5일간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22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본전시 ‘더 갤러리’와 국내 사진작가 40여명을 소개하는 ‘포토넷 리뷰’, 한국-스페인 수교 60주년기념전 ‘Guest of Honor’,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대표,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의 소장품을 모은 CEO 특별 사진전이 열린다. 일본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모리무라 야수마사의 특별전과 함께 일본 셀프 사진 강연을 연다. 모리무라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특별 세미나도 개최될 예정이다.
유럽의 <파리포토>, 미국의 <마이애미포토> 등 세계적으로 사진 전문 아트페어의 입지가 굳어진 가운데, 2008년부터 사진전문지 《포토넷》이 주최하는 <서울포토>는 아시아 최초의 사진 전문 아트페어로 손꼽힌다. 최근 <도쿄포토> <포토페이징 > <포토타이페이> 등이 연이어 생겨나 아시아에서도 사진 시장이 중요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판화와 사진 작품 중심으로 다뤘던 <SIPA(Seoul International Print Photo Art Fair)>는 올해부터 이름을 <아트에디션>으로 바꿔 개최할 예정이다. 말 그대로 ‘에디션이 있는 미술작품’을 모두 망라한다면, 기존의 판화나 사진뿐만 아니라 조각 같은 입체, 기타 디지털 복제시대에 부응하는 다양한 예술작품을 수용할 수 있어 더 한층 업그레이드된 아트페어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열린’ 아트페어를 지향하는 <서울오픈아트페어(SOAF)>)는 4월 22일 5일간 코엑스에서 열린다.

미술시장이 진정한 봄날을 맞이하려면

과연 미술시장이 다시 상승곡선을 탈 수 있을까? 그 시기는 아무래도 하반기에 개최될 KIAF에서 분명히 드러날 듯하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로 불리는 KIAF는 9월 9일부터 5일간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작년 행사는 국내 122개, 해외 46개의 갤러리가 참가, 46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올해의 주빈국은 영국이다. yBa의 등장과 함께 현대미술의 새로운 메카로 부상한 영국의 작품과 화랑과의 만남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작년의 경우 경기 침체가 가장 심각했던 시기였던 데다가, 인도양홀과 태평양홀의 내부 수리 때문에 행사장을 3층으로 옮겼고, 신종플루까지 겹치는 등 여러 악재 속에서 고전면치 못했다. 그 결과 관람객 5만 6천여 명, 작품 거래 실적 140억 원으로 2008년 대비 하향세를 보였지만, 비슷한 시기 해외에서 개최됐던 다른 국제아트페어의 약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선전한 편이다. KIAF가 한국은 물론 아시아의 메이저 아트페어로 성장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한편 2006~2007년에 등장했던 아트펀드가 3년 만기를 앞둔 지금, 미술경기 침체로 대부분 기대 수익률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2006년 12월 화랑 5곳과 은행 3곳이 투자해 100억 원 규모로 출범한 <골든브릿지 스타아트 사모펀드>의 3년 간 수익률은 1.5%, 2007년 7월 출범한 119억 원 규모의 <명품아트 사모특별자산1>도 누적 수익률 4%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2008년 7월 설정된 230억 원  규모의 <한국사모 명품아트 특별자산 1(C)>는 14.62%, 2009년 4월 159억 원 규모로 설정된 <한국투자사모 컨템포러리 명품아트 특별자산투자신탁>이 11.27%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미국과 달리 기준 데이터나 가격 지수가 성립되지 않은 국내 미술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아트펀드에 맡기기보다는 “안목을 키워 직접 그림을 사는 게 묘미이자, 안전한 방법”이라는 여론이 돌고 있다.
최근 서점가에는 미술 투자는 물론 미술 기초 지식에 대한 교양서적이 급격히 늘었다. 인터넷상에서는 미술애호가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커뮤니티의 열기가 아주 뜨겁다. 미술시장의 거품이 빠져 나간 지금,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좋은 작품을 찾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진정한 애호가나 잠재적 애호가가 많다는 증거다. 이들이야말로  ‘개미군단’이라 부를 수 있는, 컬렉션 문화의 풀뿌리 층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 저변이 더 크고 더 깊어질 때 미술시장뿐만 아니라 미술계 생태계 전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 지점이 바로 한국 미술시장의 진정한 봄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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