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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0.02

Abstract

특집 동방의 요괴들 2009년에 출범한 신진작가 발굴 육성 프로젝트 '동방의 요괴들'이 올해 2회째를 맞았다. art in culture가 창간 이래 잡지 이념의 큰 축으로 내세웠던 '젊은 미술'과 '한국 미술의 국제화'를 실천하는 공공 행사다. '동방의 요괴들'은 공모전뿐만 아니라 전시 비평 시장 아트페어 레지던시 교육 출판 등 창작과 미술환경 전 영역을 아우르는 전방위 작가 프로모션 프로그램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동방의 요괴들'은 한국 미술계에 '요란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미술계의 '젊은 피'를 미술 현장에 건강하게 안착시키려는 미술 언론사의 대안적 교육 취지에 많은 미술인들이 지지를 보냈다. 1년 동안 숨가쁘게 진행해 온 이 프로그램의 성과와 홍보에 힘입어, 2010 '동방의 요괴들'에는 지원자가 전년의 241명에서 461명으로 두 배 가량 늘어나는 큰 호응을 얻었다. 전국 67개 대학에서 461명의 요괴들이 몰려왔다. 졸업 예정자로 응모 자격을 두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젊은 작가'로 참여의 폭을 넓혔다. 그만큼 작품 경향이나 요괴들의 개성이 다양해졌다. 2010 한층 강력해진 요괴들에게 미술계가 큰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이다. '동방의 요괴들'에 한국 미술의 꿈을 실어 보자.

Contents

표지  김수자 〈땅의 공기〉 싱글 채널 비디오 6분 25초 2009

에디토리얼_김복기

프리즘
    참사 속의 아이티, 그 땅에 희망이 싹트길_김선두
    ‘구립’미술관 운영, 어정쩡해선 안된다_하계훈

아티스트 인 코리아  비앙카 레글_김현

포커스
    김창열_치바 시게오
    박하사탕|2009작가-중심 네트워크: Decentered_양은희
    이연미|김미형_이선영
    마틴 크리드|노재운|김월식_정현
    
특집  동방의 요괴들
    ① 화보_Selected Artists 21
    ② 글_리포트, 심사평
    ③ 표_Artist List 461

스페셜 인터뷰
    김수자, 지수화풍(地水火風)에서 생명을 보다_류병학

이미지 링크  face, face, face!_정강

나의 얼굴  류장복

아티스트 인사이드
    써니 킴, 교복 입은 소년 소녀가 들려 주는 이야기_호경윤
    강석호, ‘그리기’를 탐구하는 또 다른 방식_장승연

문화 CEO를 찾아서
    꿈의 주방가구 Nefs, 정해상_김복기

프리뷰
    미리 보는 올해의 주요 전시_김수영

전시리뷰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시선의 반격|자연의 신화|Light On!
    권경환|최정윤|공성훈|김영은|황세준|양아치|강은수|권두현|전소정|정채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퇴락한 자연에서 끌어낸 환상과 희망

이연미 <Frogmen in the Garden Inferno>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채, 색연필 72.2×90.9cm 2009

퇴락한 자연에서 끌어낸 환상과 희망

글|이선영

한계 지워진 자연, 즉 정원이라는 소재를 작가가 창안한 피조물로 가득 채운 이연미의 전시와 벌레 먹은 낙엽들을 모아 날개 모양으로 꼴라주한 김미형의 전시는 자연에 투사된 환상과 희망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연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기만 하는 풍요롭고 선한 무엇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위악적인 도상으로 가득한 이연미의 자연에는 낙원에서 쫓겨난 무리들이 꿈꾸는 복락원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또한 김미형의 작품은 대자연의 순환에 의해 지상에 우뚝 선 존재로부터 떨어져 나온 후 미시 생태계로부터 또 한 번의 대대적 수탈을 당한 낙엽들이 날개 형상으로 다시 뭉치면서 비상을 꿈꾼다. 이들의 작품은 관객이 대략 알아볼 수 있는 도상들로부터 출발하지만, 도상의 선택과 수집 및 변형 과정에서 작가들의 강렬한 욕망과 의지의 세례를 받았다. 그것은 단지 눈을 즐겁게 하는 형태를 발명하고 형식적인 완결성을 꾀하는 미학의 문제를 넘어서, 현실의 난관을 견디고 돌파하기 위한 일종의 종교적 열망에 가깝다.         
두 작가의 세대가 다른 만큼 각자 맞닥뜨린 현실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청소년기에 일본 만화에 빠져 살았다는 1981년생의 젊은 세대 이연미의 경우 즉물적으로 다가오는 현실의 권태로움과 싸워야 했을 것이며, 한 세대 정도 앞선 김미형의 경우 결혼과 육아 등 여성이자 작가로서 당면했던 구체적 현실이 문제시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인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 원리에 내재된 권태와 가혹함을 이기기 위한 다양한 시도, 가령 성공적인 도피나 돌파의 방식을 궁리하는 와중에서 문화와 예술이란 것이 생산되고 창조되는 것은 아닐까.
이연미의 작품에서 보호막을 둘러친 정원이라는 공간은 인류의 상상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알려진 에덴을 모형으로 하지만, 그곳은 모든 것들이 다 충족되는 조화로운 천당 같은 면모가 없다. 대립되는 힘간의 투쟁이 벌어지는 정원은 천당을 지배하는 무료함보다는 상이한 욕망으로 들끓는 지옥 같은 역동성이 두드러진다. 김미형 역시 고통과 전락이 지배적인 삶 속에서 발견한 자연의 단편에서 의미있는 형태를 발견한다.

이연미 <The closed garden in the blue blood> 캔버스에 아크릴릭, 색연필 193.9×130cm 2008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자연의 양면성

이연미의 ‘불타는 정원’에 등장하는 기이한 도상과 사건들은 파스텔 톤으로 연하게 흐려져 있지만, 맞부딪히는 생경함의 강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뒤에 햇살이 비치는 폐쇄된 공간은 순수의 결정체들이 감추어져 있는 미지의 대륙으로 보인다. 사나워 보이는 통통한 새가 그 앞을 지키고 있는데, 이 새들은 그들만의 천국인 서식지가 인간에 의해 오염되어 멸종되었다는 전설의 새이다. 여기에서 인간들은 그 자체가 순수를 침해하는 불순한 것으로 다가온다. 공조와 상생보다는 경쟁과 침해가 압도적인 인간의 삶은 온통 원죄로 물들어 있는 것이다. 인간들은 나무에 갇혀 있고 도도새는 불을 뿜는다. 불꽃이 낙엽처럼 흩날리는 정원에 냉랭한 한기를 쏟아내는 것은 거대한 푸른 뱀이다. 악의 화신인 뱀은 사악한 미소를 짓고 판을 들쑤시고 다니며, 갈대밭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이연미의 작품 속 식물들은 아픔과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동물성을 지니고 있다. 그 동물성의 식물들은 다리를 뻗어 여기저기로 이동한다.
반면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나무 열매나 꽃같이 정박되어 있는 식물성을 띤다. 그것들은 하나의 씨앗에서 나온 식물처럼 모두 닮은 꼴이며, 그저  물이나 양분이 통과하는 도관처럼 보인다. 여러 작품에 분산되어 나타나는 도상들이 모두 집결해 상호작용하는 대작 <The garden inferno>는 고통의 장소를 알레고리로 표현한다. 단테의 지옥 편을 떠오르게 하는 이 장면은 ‘불’과 ‘물’이라는 대조되는 상징이 뒤엉켜 있다. 이연미의 정원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반(反)자연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이연미의 정원에서 일어나는 것은 자연으로부터의 도약이거나 전락이다. 중성적이고 수동적인 자연과 현실을 극적인 것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공상과 상상이다. 자연의 법칙과 삶의 규칙으로부터 일탈하는 향연은 매끄럽고 능숙한 표현 방식을 빌어서 이 닫힌 정원을 히스테릭하고 매너리즘적인 인공 낙원으로 변모시킨다.
자연, 특히 정원은 여성으로 간주되었다. 원초적 자연은 문명에 의해 상처 받은 삶을 회귀시키는 천국으로 간주되지만, 그것은 동시에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자연은 여성에게 부과된 양면성과 중첩된다. 자연과 여성에 대해 양면성을 투사했던 최초의 근대적 예술가로 보들레르를 꼽곤 한다. 보들레르 역시 인공 낙원에 심취했던 예술가이다. 온통 원죄로 물들어 있는 자연과 여성은 매혹의 대상이자, 인간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이중적인 본성을 가진다.
전락과 도약을 오고 가는 이연미의 자연 역시 평범한 시민적 또는 대중적 삶에 권태를 느끼며, 자신의 상상력을 매개로 심연과 무한에 심취하게 하는 신비한 수단이다. 근대는 이성에 의해 도구화된 자연을 무기력한 물질 덩어리이면서도 원초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미지의 대륙으로 변화시켰다. 저주받은 물질과 순수의 결정체라는 두 개념의 자연이 모더니즘에 스며든다. 이연미의 작품은 정보 혁명 속에서 양적 질적으로 확산되는 매개체를 통해 모더니즘이 대중화되면서 하위 문화를 형성하였고, 이 하위 문화의 세례를 받은 젊은 상상력들이 다시 예술과 조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미형 <찰나> 콩잎 부분

덧없는 시간성

1990년대 말 탁구공 같은 균일한 인공물에 숨구멍을 뚫는 작업을 했던 김미형은 ‘자신이 뚫는 구멍보다 간절하고 더 극렬한 구멍을 목격했기 때문에’ 구멍 뚫는 작업을 포기했다고 밝힌다. 2000년 늦가을 무렵 그가 발견한 것은 벌레가 심하게 갉아먹은 낙엽이었다. 이렇게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천연 레이스가 김미형의 작품에 들어왔다. 종이나 캔버스 등 밝은 바탕에 대면 엽맥들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쇠락한 잎새들은 이합 집산하여 형태를 이룬다. 그것들은 자신이 추락한 것과 반대 방향의 비상을 향하여 또 다른 변태를 시도한다. 만지기조차 조심스러운 나뭇잎들은 사람들로 붐비는 공원으로 조성되기 위해 베어지기까지, 매해 작가에게 자기 몸의 일부를 아낌없이 나주어 주었다. 처절하게 형해만 남은 나뭇잎에서 김미형은 ‘부처를 보았고 예수를 보았다’고 고백한다. 김미형의 작품에서 날개를 이루는 구성분자는 지상에 밀착한 존재이다. 그러나 무기력하게 가라앉아 있지만은 않는다. 그것들은 더 높이 날기 위해 얇게 붙은 살마저도 다 발라낸다.
지상의 존재들에게 모든 것을 나누어 주고 자신은 더 없이 가볍다. 자신이 비롯된 저곳으로의 비상을 위한 본질만 남겨둔 그것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복잡한 그물망을 이룬다. 구멍 난 콩잎으로 만든 여성상과 초상은 당장이라도 부스러질 듯 취약하지만, 놀라운 섬세함으로 질긴 생명력을 내포한다. <찰나>라 붙여진 모든 작품 제목들은 순간을 영원으로 고정시킨다는 회화적 지향보다는, 덧없는 시간성에 방점을 찍는다. 시간은 모든 굳건한 존재들을 스러지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낙엽을 주워 작품을 창조하는 작가 자신이나 이를 관람하는 관객들 역시 낙엽과 같은 존재가 될 것임을 예감케 한다. 날개는 저 멀리에 있는 자연적 대상이 아니라 나의 몸 속에 있는 비슷한 존재들, 가령 가늘게 뻗은 혈관계와 신경계의 존재를 일깨운다. 그것들은 최소의 중량에 최대의 표면적을 가능케 하는 기능적 형태적 유사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낙엽처럼 모든 것을 비워낸 채 떠나가는 모든 존재들은 숙명적 비극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김미형의 <찰나>전은 타자로 간주된 것들을 불러 모으는 장이다. 찰나의 순간에 부재와 죽음으로 간주된 타자와의 합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영원성보다는 순간성과 사라짐이, 초월보다는 구체성과 내재성이, 존재보다는 부재와 흔적이 두드러진다. 죽음과 소멸이 없으면 생명과 생성도 없다. 동일자와 타자라는 양 극단은 서로 꼬리를 물며 순환한다. 나무 잎새들 사이의 빈 공간은 헐벗음이나 모자람이라기보다는, 존재의 무게를 덜어 내고 존재에 신선한 공기와 바람을 재충전하게 하는 무한한 수용기로 변화된다. 이러한 반전에 의해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추락이 깊어질수록, 비상을 향한 염원도 더욱 절실하고 강렬해진다. 삶이 준 상처들은 서로 엉겨서 찬란한 무늬가 되고, 삶이 야기한 고통과 공포는 명징한 깨달음의 쾌락을 야기하며, 아래로의 묵직한 중력은 다시 튕겨 나가기 위한 에너지로 반전된다. 이때 예술은 종교와 구별되지 않는다.
이연미와 김미형의 작품은 아름다움을 통한 구원이라는 모더니즘적 이상이 여성적 상상을 통해 또 다른 내용과 형식을 마련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자연에 투사된 근대적 이상은 여성 작가들에 의해 부정과 퇴폐(Decadence)가 아닌, 긍정과 연민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선영 미술평론가.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 정관 김복진 미술이론상(2005년), 한국 미술평론가협회상(2009년) 수상.

김미형 <찰나> 캔버스에 구멍 난 상수리나뭇잎 59.2×99.2cm 2009

Kimsooja

 

Kimsooja
‘지수화풍 地水火風’에서 생명을 보다

인터뷰|류병학·미술평론가

류병학(이하 류) 2010년 새해 벽두, 오랜만에 국내 개인전을 열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이번 개인전은 로댕갤러리 개인전 이후 10년 만에 개최되는 국내 개인전이죠. 당시 전시 제목이 〈김수자: 세상을 엮는 바늘〉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명 〈보따리〉 작업들과 〈보따리 트럭〉 〈바늘 여인〉 〈빨래하는 여인〉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생의 작업들을 총망라한 대대적인 전시였죠. 이번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오셨군요. 〈지수화풍〉은 스페인의 화산섬인 카나리아제도와 과테말라의 파카야 화산 풍경을 담았다고 들었습니다.
김수자(이하 김) 이번 전시에서 〈지수화풍〉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 저는 전시 제목을 한글로 쓰지 않고 〈Earth-Water-Fire-Air〉라고 영문으로 표기했었습니다. ‘풍’(風) 즉, 바람(Wind)과 공기(Air)를 차별화하기 위해서였죠. 자연의 4원소를 동격의 출발점으로 보고자, 자연을 대하는 동양적인 태도로서 순환의 에너지를 포용하는 ‘풍’(Wind)을 배제하고, 원소 그 자체인 ‘공기’(Air)로 출발하기로 했어요. 이 프로젝트는 몇 년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인데, 마침 서울 아뜰리에에르메스에서 신작 제의가 들어왔고, 또 란자로테비엔날레의 프로그램 일환으로 란자로테현대미술관으로부터 개인전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화산으로 이루어진 카나리아제도의 란자로테 섬을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으로 삼고, 자연스럽게 에르메스재단과 란자로테비엔날레가 공동제작을 하게 됐죠. 이어서 일련의 사화산 작업을 마치고 과테말라의 활화산을 방문해 살아 있는 화산의 모습을 함께 담게 됐습니다.
사실 이 영상 작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보따리〉나 〈바늘 여인〉 작업과는 표면적으로 보기에 언뜻 다르다고 느낄 만합니다. 그래서 신작을 설명하기 전에 이전 작업에서 어떠한 발자취를 거쳐 왔는지 차근차근 밟아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 신작을 너무 일반적으로 이해하지 않기 위해서죠.
〈보따리〉 〈바늘 여인〉 같이 ‘인간’을 다룬 작업만을 본 사람들은 이번 신작을 보고 ‘자연’ 만을 주제로 다룬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2000년도부터 ‘보따리’라는 제목 아래 일련의 자연을 감싸는 비디오 작업들을 진행했으나 국내에서 선보일 기회가 없었죠. ‘인간과 자연’이라는 주제는 제 작업에서 처음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바늘과 천의 관계, 말하자면 천이 자연으로 전개가 되고 바늘은 몸으로 전개되었다고 봅니다. 또한 천과 바늘의 관계가 천을 통한 자연에의 성찰, 바늘을 통한 인간에의 성찰, 즉, 내 몸을 통한 인류에의 성찰로 전개되었기에 결국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천안(天眼)에 자연의 요소가 이미 있었고, 몸과 손과 마음의 연장으로서의 바늘에 인간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호흡-거울 여인〉 2006 스페인 마드리드 레띠로 공원에 위치한 크리스탈팔라스 건물 설치 장면. 유리창에 특수 필름을 부착하여 빛이 투과하면서 생기는 무지개 스펙트럼을 외부에서 내부 공간으로 끌어들였고, 실내 바닥에는 거울을 설치했다. 작가의 사운드 퍼포먼스 〈위빙 팩토리〉(2005)가 들려오는 공간은 관람객을 사유의 세계로 이끈다. Photo: Jaeho Chong Courtesy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Madrid and Kimsooja Studio

보따리, 인간과 삶을 싼다

동감합니다. 사실 10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라고는 하지만, 그 10년이라는 국내에서의 공백 기간은 한편으로 해외에서 바쁜 일정 속에 새로운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 온 시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 과정을 조명해 봐야 선생의 작업을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말꼬를 트기 위해서 〈보따리〉 작업의 시작 동기에 대해서 짚어 보죠. 1990년대 중반 쯤 이런 얘기를 하셨죠. “보따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내 주위에도 항상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1992년 P.S.1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던 중, 우연히 고개를 돌린 순간 거기에 보따리가 보였다. 천 작업을 하려고 보따리를 싸놓은 것을 나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 그 보따리는 전혀 새로운 보따리였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조각이었고 회화였다. 그래서 단순히 묶는 행위를 통해서 2차원을 3차원화할 수 있는 가능성, 즉 회화적 방법을 연출할 수 있었고 또한 볼륨있는 조각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내용을 보자면, 이미 보따리가 하나의 조각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선생의 보따리 작업은 일종의 ‘레디메이드’라고 볼 수 있겠군요. 
네. 레디메이드(Ready-made)이자, 레디유즈드(Ready-used), 페인팅이자 조각, 그리고 삶의 궤적의 양면성을 드러내면서 통시적 시간성을 가진 오브제로 보죠. 저에게는 하나의 ‘화두’이지만, 한국인의 일상 속에 함몰되어 있는 오브제이기 때문에 제 작업이 한국에서 이해되기가 더 어려웠을지도 모르죠. 물론,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세계를 최소한의 행위로 제시하면서 새롭게 인식하고 문맥화하는 것이 제 작업이기도 하고요. 사실 초기에 P.S.1에서 발견한 보따리는 보다 더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보따리라고 봅니다. ‘천’이라는 2차원의 평면(Tableau)이 단순히 ‘묶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서 3차원의 오브제이자 조각이 되는 변형(Transformation)의 순간에 주목했던 것이죠. 이후에 뉴욕 뉴뮤지엄이나 이세아트파운데이션에서도 〈보따리〉 설치를 선보였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개인전 준비를 할 즈음에는 제 시각에 변화가 생겼어요. 한국 사회를 재인식하게 됐고, 여성이자 여성작가로서, 그리고 합리적인 세계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우리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이미 달라져 있었어요. 즉 그 보따리는 단지 미학적이고 형식적인(Formalistic) 보따리가 아니라, 우리 삶의 리얼리티(Reality)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그때부터는 색색의 천 조각이 아닌 출처를 모르는 헌 옷들을 넣어서 보따리를 만들었고, 보다 더 ‘인간과 삶을 싼다’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1990년대 말 선생의 작업을 보면서 그 형식적 측면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분명 레디메이드지만, 뒤샹의 레디메이드와는 다른 점이 있죠. 뒤샹은 ‘소변기’(일상품)을 ‘샘’(작품)으로 박제시킨 반면, ‘보따리’ 작품은 일상품과 작품 사이를 왕복합니다. 선생은 ‘일상품’ 보따리를 ‘작품’ 보따리로 전이시키고, 일정 전시 기간이 지나면 작품이 해체되어 다시 일상품으로 돌아가고, 그 ‘일상품’ 보따리는 다시 다른 형태의 ‘작품’으로 나타납니다. 1990년대 내내 선생의 전시 내용은 보따리를 싸서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펼치고, 그러면서 ‘이동성’이 강조되죠. 뒤샹의 레디메이드 후계자들을 예로 들자면, 칼 앙드레의 벽돌 작업 〈Equivalent VIII〉, 댄 플래빈의 형광등 작업 〈Monument〉, 제프 쿤스의 진공청소기 작업 〈New Shelton Wet/Dry Double Decker〉 등을 보자면, 그것들은 고착되어 있어요. 그러나 선생 작업은 가변적이죠. 흥미롭게도 보자기로 벽돌이나 형광등 진공청소기를 다 쌀 수 있는데, 그러면 그 형태는 다 다르게 변하죠. 〈보따리〉가 어떤 요술적인 작품으로 읽혀집니다. 그 점이 선생 작업의 또 다른 형식적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이 가진 자연의 속성인 ‘가변성’ 때문에 제 작업이 확대되고 또 극복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호흡: 보이지 않는 거울/보이지 않는 바늘〉 베니스 라 페니체극장(Teatro La Fenice) 장면. 작가의 사운드 퍼포먼스 〈위빙 팩토리〉(2004)가 화면과 함께 들린다 2006 Photo: Luca Campigotto Courtesy of The Bevilacqua La Masa Foundation and Kimsooja Studio

삶과 예술의 형식과 내용의 양면성을 결정하는 경계

1994년 이후 작업에서 특히 ‘이불보’를 많이 사용하셨죠.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이불보는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아우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 상징적인 내용이 바로 ‘장소성’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보따리〉 작업을 할 때 보통 많은 사람들이 보자기로 보따리를 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저는 이불보, 그 중에서도 한국의 전통적인 신혼부부 이불보 중 버려진 것들로 보따리를 싼 것입니다. 즉, 기능과 특정 의미가 공존하는 오브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불보란 우리가 태어나서 사랑하고 꿈꾸고 고뇌하다가 죽어 가는 ‘장소’라는 점에서 말이죠. 즉 우리 삶의 프레임(Frame)입니다. 그 프레임에 대해 또 하나 형식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사랑 장수 수복 다산 등 평생 동안의 우리 삶의 기원들이 이불에 자수로 새겨져 있는데, 어쩌면 그 화려한 이불보의 기원과 축제적인 요소들이 우리 삶의 리얼리티와는 모순된다고도 볼 수 있죠. 그래서 이불보가 펼쳐졌을 때 그것이 하나의 타블로(Tableau)이자, 부부 성(Sex), 그리고 정착 가정 휴식 등의 의미를 내포하며 2차원적인 평면으로서의 장소성을 갖는다면, 보따리로 묶이는 순간에는 그 정반대의 컨텍스트를 가지게 되죠, 즉, 이동 이별 이주 분리 등 말입니다. 즉 보따리를 싼 이불보(Tableau)는 삶과 예술의 형식과 내용의 양면성을 결정하는 하나의 경계(Boundary)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2002년 휘트니비엔날레에서 센트럴파크에 있는 카페에 설치한 작업 말입니다. 당시 이불보를 테이블보로 사용했잖아요. 현지인들은 그게 이불보라는 것을 알았나요?
제가 작업에 대한 설명을 달지 않았더라면 몰랐겠죠. 사실 그 작업은 에딘버러의 프룻마켓갤러리에서 1995년에 처음 선보인 다음, 1996년 마니페스타1, 1998년 일본, 그리고 휘트니비엔날레에서 네 번째로 선보인 겁니다. 물론 각각의 컨텍스트는 달랐지만요. 당시 ‘보따리를 펼친다’는 것의 의미는 일련의 보따리 작업 이후에 그것이 다시 캔버스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불보를 다시 캔버스로 되돌려,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비물질적인 방법(마음)으로 감싼다는 개념입니다. 보따리를 펼쳐서 하나의 타블로로 만듦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들을 타블로 안에 끌어들이는 거죠. 이를테면 카페에서의 사람들의 만남, 대화, 음식을 나누고 음악을 듣는 이 모든 소통 행위들을 ‘보이지 않게 감싼다’(Iinvisible Wrapping)는 개념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그 작업에서 나타난 비물질적인 요소들이 일련의 비디오 작업과 2006년 스페인 크리스탈팔라스에서 선보인 〈호흡: 거울 여인〉과도 연계된다고 할 수 있어요. 크리스탈팔라스 작업에서 건물 바닥 전체에 거울을 깔아 펼쳐진 바늘로서의 거울의 허상과 실상의 바느질을 시도했고, 특수 필름을 건물 유리창 표면 전체에 부착하여 빛이 투과할 때 생기는 무지개 스펙트럼을 외부 공간에서 내부 공간으로 끌어들였어요. 또 삶과 죽음의 매 순간을 의미하는 저의 호흡 퍼포먼스 사운드를 설치하여 모든 요소를 일체화했습니다. 건축의 ‘허(Void)’의 공간을 건물의 피부까지 밀어내어 그 건축물 자체의 구조와 거울의 양면성, 호흡의 양면성, 그리고 안과 밖의 양면성을 빛과 소리의 보따리로 제시함으로써 보따리의 비물질성을 극대화한 작업입니다.
그렇군요. 저는 선생이 카페 테이블에 이불보를 깐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고, 어느 도록에 실린 것을 봤거든요. 그때 보고 참 쇼킹했어요.
도발적이라고 생각하셨나요?(웃음)
류 왜냐하면 특히 작업에서 신혼부부 이불보를 썼다고 하셨는데, 이불보라는게 특성상 신혼부부의 ‘잠자리’가 바로 연상되는데, 사람의 자연적 욕구로 보자면 식욕과 성욕이 있잖아요. 그 두 가지가 여기서 딱 맞아 떨어지는 거예요. 과연 외국에서도 이게 이불보라는 것을 알았을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했어요.
김 처음에 에딘버러에서 전시했을 때 갤러리의 스텝이 와서 보고는 “You are Brave”라고 하더군요.(웃음) 이 작업은 어떻게 보면 도발적인 행위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수동적인 형태로 제시된 것으로 볼 수 있죠. 한국의 이불보 자체가 자수도 섬세하면서 굉장히 화려하고, 오래되어 아름답게 낡은 것들도 많아서 눈길을 끌기도 했어요. 물론 제가 주목하는 진정한 작업의 의미는 그 이불보의 문화적 미학적 가치에만 있는 것은 아니죠.  
이렇게 2000년 로댕갤러리 개인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보따리〉 작업들을 다양한 형태로 작업을 진행해 왔죠.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보따리 안의 내용물들, 헌옷들을 산에 풀어 놓았구요. 인천 용유도에서 설치 작업을 한 후 사진 으로 남긴 것도 있고요.
보따리 작업과 이불보를 펼치는 작업은 대개가 재활용된 것이에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작업들이 컬렉션이 안됐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제 작업에 있어 ‘결정성’이라고 할까요, ‘Finish'의 개념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보따리를 싸는 행위는 항상 형태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늘 하나의 과정으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뭄바이: 빨래터〉 4채널 비디오 10분 25초 2007~2008 Courtesy of Kimsooja Studio

공간의 축이자 시간의 축, 바늘 여인

아까 나온 레디메이드에 대한 이야기로 다음 질문을 연결하고 싶습니다. 아까 예로 든 작가들도 그렇듯, 레디메이드 작품이 알고 보면 다 공산품이에요. 공산품이 아닌 레디메이드가 나온 게 2000년도에요. 기욤 바일이라는 작가가 슈퍼마켓을 전시장에 옮겨 놓아 농산품을 처음 사용했고, 이후에 주목 받은 데미안 허스트의 경우 상어처럼 수산품을 레디메이드로 쓴 거죠. 허스트가 그 다음엔 해부학 모형을 크게 확대시켜 만들더니, 최근에는 다이아몬드로 해골을 만드는 것을 보고 ‘인간’을 레디메이드로 삼고 싶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사실 ‘인간’도 레디메이드잖아요. 선생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더군요. “아티스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게 아티스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어떤 물건을 사용했을 때는 그 물건을 사용한 사람의 삶을 사용하기 위해서다”라고 말이죠. 제가 느낀 점은 이제 선생 자신이 레디메이드로 자리매김되면서 〈바늘 여인〉과 같은 영상 작품이 나오게 된 게 아닌가 하고 연관지어 봤어요. 들뢰즈의 ‘~되기’ 라는 말이 있듯, 선생의 작업이 ‘바늘 여인되기’ ‘빨래하는 여인되기’ 그런 식으로 보이더군요. 〈바늘 여인〉 작업은 1999년 일본 도쿄에서 시작한 작업으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요?
1999년 CCA기타큐슈에서 제작 의뢰를 받았을 때, 무언가 퍼포머티브한 작업을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는 제가 뉴욕에 가서 살던 첫 해로, 나 자신이 삶의 벼랑 끝에 위치한 상태였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첨예한 상태를 유지하던 때였습니다. 그렇기에 제 몸에 대해 더욱 예민하게 인식하고 주목하면서 ‘외로움’(Isolation) ‘자아’(Self) ‘타자’(Others)와 같은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죠. 원래는 ‘워킹(walking) 퍼포먼스’를 생각해서 무언가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가 나오길 기다리며 수 시간 동안 도쿄 시내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부야에 도착한 순간 수 십 만 명의 인파가 밀려 오고 밀려 나가는 그 길 위에서 저는 더 이상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순간을 경험했어요. 선불교에서 ‘악!’ 소리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야말로 정말 가슴 속에서 ‘악!’ 소리를 지르며 꼼짝없이 서서 발을 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그 자리에 부동의 자세로 서게 되면서 비로소 걷는 행위의 의미, 말하자면 걷는 행위의 시간성을 통해 나 자신의 몸이라는 보따리에 싸여 누적된 모든 인파와 내 몸의 관계성을 이해하게 된 것이었죠. 그 장소가 바로 첫 〈바늘 여인〉 작업으로 설정된 것입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퍼포먼스를 시작했고, 카메라맨에게 제 뒷모습을 기록해 달라고 한 후 그 자리에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서 있겠다고 했어요. 그 때가 저에게는 가장 특별한 퍼포먼스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마음의 평정과 중심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어요. 수많은 인파의 에너지를 한 몸으로 받고 감싸며 대항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몰입의 상태에 다다르면서 내가 싸고 엮으며 관계지으려 했던 의도와는 정 반대의 현상이 벌어지더군요. 그들로부터 아득히 멀어지면서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거기서 완전한 해방을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엔 끝없는 평화의 미소가 절로 스며 나오고, 내 가슴은 인류에의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죠. 그 수많은 인파의 물결 너머, 인파의 수평선 너머로 후광처럼 떠오르는 흰 빛을 봤어요. 그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면서 ‘세상의 모든 인류를 한 사람 한 사람 만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각 대륙의 8개 대도시를 방문하면서 〈바늘 여인〉 프로젝트를 이어갔습니다. 
그 8개 도시가 도쿄 상하이 델리 뉴욕 카이로 라고스 런던이었죠. 그 후에도 다른 도시들, 네팔의 파탄, 쿠바의 하바나,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차드의 은자메나, 예멘의 사나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이어진 것으로 기억합니다. 
〈바늘 여인〉의 두 번째 시리즈입니다. 사실 첫 번째 〈바늘 여인〉 시리즈에서는 내 몸이 어떤 ‘공간의 축’으로 위치했다면, 2005년 두 번째 작업은 앞서 8개의 대도시를 돌아다니고 세계를 경험한 이후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과 문제에 봉착해 있는 도시들을 찾아 내 몸을 ‘시간의 축’으로 제시하며 인류의 보편적 휴머니티를 찾고자 했습니다. 특히 네팔의 파탄은 방문 당시 내전 중이어서 수많은 총성을 들으며 작업을 진행했어요. 이 작업들은 첫 번째와 달리 리얼타임이 아닌 슬로우 모션으로 제작했어요. 그래서 첫 번째 버전에서 내 몸의 퍼포먼스적인 측면이 부각된다면 두 번째 버전은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성이 더 드러나지요. 시간과 시간의 교차, 몸과 몸의 부딪힘, 정신의 교감의 통로가 더 드러나고 내 몸이 공간보다는 시간의 축으로서 더 작용을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내 몸은 부동성(Stillness)이라는 제로(Zero)의 시간의 영역(Zone)에 있고, 그 제로를 슬로우 모션으로 확장했을 때 그것은 과연 어떤 시간인지를 탐구하게 된 것이니까요. 연장된 제로의 포인트인 내 몸(Zone of Zero)에서, 화면 속에서 걷는 이들의 시간(Slow Mode), 그리고 이것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간(Real Time), 이렇게 3자의 서로 다른 시간성이 공존하며 관계 맺어가는 것을 볼 수 있죠.
〈바늘 여인〉의 뒷 모습은 흥미롭게도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낀 바다를 건너는 방랑자〉(1818)의 뒷모습 풍경화를 연상시키는데요. 그렇게 수많은 인파가 눈 앞에서 밀려오는 것을 마주하는 순간에서는 과연 무슨 생각이 들까 너무 궁금해요. 저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 것 같은데 말이죠. 말씀 중에 앞에 빛이 보였다고 했는데 그것은 완전히 평정심을 얻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바늘 여인〉이나 〈빨래하는 여인〉을 프리드리히의 작품과 연관시켜서 해석하는 이론가들이 서구에 꽤 있었죠. 프리드리히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어느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과 제 작업을 나란히 놓겠다고 제 작품을 컬렉션한 적도 있어요. 흥미로운 관점이지만 정신 세계나 작업 의도는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인도 델리의 야무나강 옆의 화장터를 방문한 후 강가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던 중 문득 어떤 에너지가 느껴져서 잠깐 차에서 내려 강둑으로 내려간 적이 있어요. 그 강물이 흐르는 장면을 본 순간 ‘여기다’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퍼포먼스를 한 것이 바로 영상 〈빨래하는 여인〉이 되었죠. ‘장소성’에 있어 계속되는 이야기지만, 저는 그 장소에서 어떤 특별한 에너지를 느껴야만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에너지를 느끼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되지만 말이죠. 그러다가 어떤 에너지가 느껴졌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서슴없이 작업을 하게 됩니다. 〈빨래하는 여인〉 퍼포먼스를 할 때는 내 몸을 비껴가며 흘러 떠내려가는 야무나강 화장터의 부유물들, 삶과 죽음, 생명의 무상함과 그에 대한 연민, 그리고 내적으로는 나 자신과 주검의 정화 예식을 하던 중 굉장한 혼란에 빠지기도 했어요. 강을 바라보면서 과연 흐르는 것은 강인가 나인가 하는 혼란 말이죠.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깨닫게 됐습니다. 강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흐르고 있는 것은 사실 가장 부동의 자세로 확고히 서 있는 나 자신임을 말입니다. 내 몸이야말로 정말 흘러가고 사라질 것이라는 자각 말이죠.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떻게 내가 그렇게까지 혼란을 느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제가 생각한 답은 내가 너무나도 집중했기 때문에 그 집중이 마치 바늘 끝과 같았다는 거죠. 그 집중의 중심에는 경계가 없어요. 바늘은 위치만 있을 뿐 어떤 대상화될 수 있는 물질적 흔적이 없는 거예요. 바늘 중심으로부터 세계는 끝없이 확장되어 있고 동시에 축소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떤 경계도 기준도 없습니다. 안과 밖이 공존하는 시점에서 제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보통 ‘집중’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몰입’이거든요. 그만큼 거기에 빠지는 건가요?
빠지기보다는 어떤 ‘상태’라고 보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가장 중립적인 상태라고 할까요. 사실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집중하지 않은 상태죠. 집중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평정을 향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아뜰리에에르메스 〈지수화풍: Earth-Water-Fire-Air〉전 전경

4원소의 순환과 연계성

앞서 언급한 네팔의 파탄, 쿠바의 하바나 등 대부분 역사의 장소성을 내포한 곳들이 등장합니다. 〈등대 여인〉의 경우, 찰스턴의 모리스섬 등대를 다양한 색상의 빛으로 감쌌죠. 알고 보니 찰스턴은 미국 남북전쟁의 발발지인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수도입니다. 그 외의 작업도 그 장소성이 보따리나 이불보의 장소성처럼 묘하게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지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 신작의 장소성 역시 어떤 의미심장한 내용이 느껴집니다. 왜 스페인의 화산섬인 카나리제도의 란자로테 섬과 과테말라의 화산을 선택한 건지요? 
물론 제가 란자로테비엔날레에 초대되어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몇 년간 자연의 4원소에 관한 작업을 꿈꾸고 있었기에 그 특별한 땅을 주저 없이 탐색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하니 화산의 생명줄인 ‘불’이 완전히 소멸한 장소를 선택한 것이 더욱 의미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화산이 바로 자연의 ‘니르바나’(Nirvana)였다는 자각 때문이죠. 
이번 〈자수화풍〉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선생 작품의 형식과 조금 다르다는 점에서, 감상하는 데 있어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전 비디오 작업의 경우는 ‘인파와 작가’라는 관계성이 형성되기 때문에 보는 이가 어떤 드라마를 형성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관객 스스로가 드라마를 형성해야 하는 상황이니 조금 난감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이번 작품을 보면서 거기에 선생의 뒷모습만 없을 뿐이지 여전히 지난 작업과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의 뒷모습이 나, 바로 관객으로 바뀐 것이라고 말이죠.
사실 제가 등장하지 않고 〈바늘 여인〉과 똑같은 형식으로 지나가는 인파를 촬영한 〈Sewing into Walking- Istanbul〉(1998)이라는 비디오 작업이 있었어요. 카메라가 제 몸을 대신하고, 카메라 렌즈가 제 눈을 대신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고정된 프레임으로 인파가 오가는 장면을 20, 30분간 담고 하나는 거리의 소리를, 또 하나는 티벳 승려들의 독경을 담아 두 개의 채널로 제작한 작업입니다. 이번 작업에서 사람이 부재하는 것은 〈Sewing into walking- Istanbul〉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 작업에서의 시점이 카메라의 눈이 바라보는 시점이라면 〈바늘 여인〉에서의 시점은 나 자신이 내 등을 바라보는 시점입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의 나의 시점은 나와 관객의 몸 너머에 존재하는, 단순한 풍경 이상을 바라보는 시점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즉 ‘제 3의 눈’의 응시라고 할까요. 궁극적으로 관객과 작가의 몸이 한 곳에 위치하게 되는, 즉 〈바늘 여인〉에서 관객이 내 몸에 주목하지 않는 순간 나의 몸을 입고 바로 내가 선 자리에 서서 내가 보는 거리와 풍경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까 작품을 바라보다가 재미있는 체험을 했는데, 보통 영상 작업을 볼 때 프로젝터의 렌즈 부분을 가리면 관객의 그림자가 화면에 생기잖아요. 작품 쪽으로 가까이 가다보니 제 그림자가 바다의 물결 한 가운데에 생기더군요.
사실 제가 〈바늘 여인〉이나 〈빨래하는 여인〉을 상영하면, 관객들이 자주 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오버랩해 보곤 합니다. 제 뒷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제 모습이 걷히면서 제 등을 바라보는 자리가 아닌, 내 몸에 관객의 몸을 대입해 나의 시점으로 한걸음 다가가게 되죠. 마치 축지법을 쓰듯이 말이죠. 저로서는 〈바늘 여인〉의 다층적 시점이 시사하는 바가 의미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관객이 기존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점이 〈바늘 여인〉 이전의 태도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이지요.
〈지수화풍〉의 총 7점의 작품 제목이 전부 은유적이에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짓는 제목과는 다르죠. 이를테면 물결이 치는 바다를 촬영한 영상의 제목은 〈바다의 파도〉가 아닌 〈물의 대지〉입니다. 그래서 유심히 바라보다 보니, 만일 바다 장면에서 물을 땅으로 본다면 파도의 물결이 마치 땅 위의 산이라는 풍경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의도한 건가요.
그렇게 바라봤죠. 물은 불의 요소를 가지고 있고 땅이 불과 물 공기의 요소를 가지고 있듯이, 각 원소들은 서로 순환하고 연계되는 관계입니다. 그것을 4가지 원소로 각기 보는 과정에서 각 원소들의 ‘홀로 설 수 없음, 기대어 있음’을 드러내 보고자 했습니다. 그것들의 연계성, 내적인 역동성에 제 나름대로 주목하려는 방식, 이를 테면 물에서 땅의 요소를 주목한다는 의미에서 타이틀을 〈물의 땅〉로 명명했죠. 대지를 해질녘에 촬영한 것은 땅을 하나의 물의 속성으로 바라보고 (〈땅의 물〉), 또 불과 공기의 관계를 치환해서도 바라봤어요. (〈불의 공기〉). 이 4가지 요소는 사실 순열 조합하면 16개의 관계성이 나오는데 각기 두 가지의 요소가 엇물려 있으므로 32개의 각기 다른 조합이 가능하다고 봐야겠죠. 말하자면 그 4원소에 대한 사색을 시도하는 하나의 출발점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결국 그 각각의 요소가 ‘하나’이고 결국 우리 ‘몸’과 일치한다는 것, 또 자연의 힘과 그 연약함을 늘 느끼면서 작업을 했죠. 불 속에 있는 인간성, 즉 물 속, 땅 속, 그리고 공기 속에 있는 인간성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결국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일체성을 근간으로 한 질문들을 담고 있어요. 특히 화산 용암이 돌이 되어 떨어지는 모습을 실제로 마주한 채로, 펄펄 끓는 용암이 땅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온 다음 흘러 화석이 되고 먼지가 되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3000m 고지에서 그 뜨거운 땅을 밟고 열기를 느끼며 작업을 하면서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자체가 너무나도 뜨거운 숨 쉬는 생명체라는 것을 몸소 느꼈죠. 그 열기의 스러짐이 자연이 그리는 극적인 장면(Tableau Vivant)을 연출하는 동시에 작은 화산석 하나에서 먼지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자연 요소들을 각기 하나 하나의 생명체로 재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작품은 온통 칠흙처럼 캄캄한 곳을 달리는 자동차에서 손전등을 비추어 빛이 비추는 부분만 보였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곤 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곧 그 풍경이 화산을 중심으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빛을 비추는 곳을 촬영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것은 바로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용암(욕망의 불덩어리)이 식어서 만들어진 것이었구요. 그 영상에서 ‘모든 인간은 재로 돌아간다’는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art in culture 독자를 위해서 이번 신작을 어떻게 봐주면 좋겠다고 한 말씀 부탁합니다.

글쎄요. 어떻게 봐달라고 주문하기보다 저는 ‘이것을 같이 보고, 질문하고, 나누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끝없는 회화적 여정으로의 질문과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 질문인 ‘생명’의 문제에 대해서도 재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Nefs 정해상

김석 〈생각하는 태권브이〉 나무 2009

Nefs 정해상
“예술적 감성과 상상력이 경영 철학이지요”

인터뷰|김복기 본지 발행인

‘꿈의 주방 가구’를 실현하는 (주)넵스는 작년 12월 말에 《Soul of Nefs》라는 멋진 책을 펴내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 책은 (주)넵스가 2009년에 주관한 2개의 전시 프로젝트 참여 작가 30명의 작품 이미지와 텍스트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전시 결과물을 담은 도록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한 기업과 미술의 필연적인 만남의 과정과 결과를 소상히 따라잡아 소개했다. 요컨대 한 기업의 ‘문화 활동 보고서’이자 동시에 오늘의 한국 미술을 읽는 ‘작품 길라잡이’요 ‘작가 화보집’의 성격을 띠었다. 특히 《Soul of Nefs》는 오늘의 변화하는 문화 지형 속에서 기업과 미술의 바람직한 만남, 미술과 대중의 즐거운 소통, 미술의 건강한 사회적 역할 등에 출판 기획의 초점을 맞추었다.
《Soul of Nefs》는 (사)한국메세나협의회가 주관하는 ‘중소기업 예술지원 매칭펀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2009년 한 해 동안 (주)넵스가 펼쳐온 문화 마케팅 중에서 미술 사업의 면모를 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체가 크게 반겨야 할 획기적인 출판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한국의 메세나 활동이 미술 출판 프로젝트에 눈을 돌린 사례가 처음이어서 이 진귀한 책의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소림

Soul of Nefs, 메세나 출판 프로젝트

(주)넵스는 그동안 메세나 활동을 꾸준히 지속해 왔다. 베를린필하모니 서울 공연, 윤이상평화재단 설립전, 서울예술기획 공연 활동 등 굵직한 행사를 후원해 왔다. 또한 2003년 자연과 감성을 담은 주방문화를 표방하며 계간 잡지 《Nefstyle》를 창간해 미술, 건축, 거리 문화를 주요 내용으로 담아내고 있다. 통권 26호를 펴냈다. 또한 주방 가구 기증 사업 등 사회 공헌 활동을 펼쳐 왔다. (주)넵스의 정해상 사장은 언제나 예술과 산업의 아름다운 통섭을 꿈꾼다.
“솔직히 말하면, 넵스의 문화예술 후원은 기업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여러  활동 중 하나입니다. 넵스는 주방가구 전문 기업이어서 디자인이 경영의 중심입니다. 따라서 예술과 소통하는 문화예술 후원 사업은 그 자체가 창조적인 기업 활동이 될 수밖에 없지요. 예술적 감성과 상상력을 경영 철학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넵스의 주방가구가 지금처럼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 또한 문화 예술과 통섭을 꾀하지 않았다면, 넵스만의 창조적인 디자인이 탄생하기 어려웠을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넵스의 메세나 활동은 ‘선택’이 아니라 기업 경영의 ‘필수’ 영역인 셈이지요.”
그동안 공연 예술 쪽의 후원에 치중했던 (주)넵스가 미술 분야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린 것은 작년부터다. 창업주가 워낙 유명한 미술품 컬렉터인데다가 2009년 삼성동으로 사옥을 옮기면서 복합문화공간 Nefspace를 개관한 것. 정해상 사장은 “Nefspace는 넵스의 꿈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새로운 문화공간이자 디자인과 감성에 뿌리를 둔 넵스 아이덴티티의 확장입니다. 예술과 가구가 만나는 새로운 시도로 색다른 시각 문화 경험을 고객들에게 드리고 싶어요.”

유재흥

예술과 가구, 예술과 골프의 만남

Nefspace는 개관전으로 〈Mad for Furniture〉전을 열었다. ‘아티스트, 가구에 미치다’라는 컨셉트로 16명의 작가들이 새로운 개념의 가구를 소개했다. 이 전시는 미술과 가구의 만남을 통해 예술이 전시장 벽을 탈출해 일상으로 돌아와 리얼 라이프로 진입하는 즐거운 풍경을 보여 주었다. 스푼이 의자가 되고, 포장용 고무줄이 가구를 감싸고, 의자는 조명 기구로 탈바꿈한다. 원래의 형태나 기능은 변형되고 일상에 필요한 가구는 예술의 옷을 갈아입고 다시 태어난다. 가구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애정이 기존 가구에 대한 인식을 뒤집었다. 그리하여 아티스트의 가구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오브제로 거듭난 것이다. 
(주)넵스는 작년 여름에 Nefs Masterpiece 2009(8.21~23 제주도 더 클래식 골프&리조트)를 열었다. 이 대회 기간 중에 〈Eighteen Masterpieces〉전이 골프장 곳곳에서 열렸다. 갤러리(골프 관중)와 갤러리(미술 전시장)의 만남 자체가 흥미로운 테마다. 이 전시에는 18명의 작가들이 골프장의 아웃도어(Outdoor) 공간에 입체 작품을 선보였다. 원래 축구 선수 출신인 정해상 사장은 이 행사에서 문화 마케팅의 의의와 성과를 강조한다.
 “골프와 아트를 접목시킨 세계 최초의 행사였지요. 골프 대회 자체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든다는 취지였답니다. 골프 대회의 새 지평을 열었지요. 골프대회가 TV로 생중계되었는데, 카메라가 아트와 골프를 동시에 담아내 시청율 1위를 기록했습니다. 우승 프로피와 마킹볼은 아트워크였고, 여러 작가들의 드로잉이 담긴 골프공도 다양하게 출품되었어요.” 
삼성동 사옥은 Nefspace뿐만 아니라 대형 가구 전시장이 들어 서 있다. 사옥 전체가 하나의 멋진 문화 공간이다. (주)넵스는 기존의 가구, 골프와 같은 기획전 이외에 가구 전시장을 활용해 생활 도자전을 준비하고 있다. 미술과 디자인, 패션, 공예의 하이브리드를 지향하며 유망한 젊은 작가들에게 Nefspace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주)넵스는 문화 예술 후원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지속적인 파급 효과를 얻길 바란다.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가 새로운 문화 가치를 창조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술과 자주 만나니,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점차 변하고 있어요. 아주 부드러워졌지요. 예술적 감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하나의 물건을 보더라도 ‘그 속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을까?’ ‘나는 어떤 마음을 담을 수 있을까?’좀 더 깊게 생각하죠. 아트에 점점 빠져 들고 있어요.”

김무준 〈TEXT PROJECT〉 혼합 재료 2009

2010 February Special - 또 ‘요괴들의 잔치’를 시작하며

2010 동방의 요괴들 'Best 21' 선정작가

또 ‘요괴들의 잔치’를 시작하며
2010 동방의 요괴들, 공모에서 베스트 21 선정까지

글 | 편집부

#01 작년 ‘동방의 요괴들’ 중 한 ‘요괴(작가)’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개인전이 있으니 오프닝에 꼭 참석해 주세요.” 동료 기자가 취재차 나갔다 돌아왔다. “○○씨, 작년 요괴죠? 오늘 인사동에 갔더니 개인전 하던데…” 계속해서 들리는 요괴들 전시, 수상 소식에 마치 선후배, 동기의 길보처럼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02 (동방의 요괴들 클럽[club.cyworld.com/ dongbangyogoi]에 올라온 김새벽님의 게시물) “2010 동방의 요괴를 접수하는 것을 보니까 ‘벌써 1년이 지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글을 올립니다. 저는 2009 동방의 요괴들 선정 작가 22인 중에 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비단 선정 작가가 아니더라도 작가를 꿈꾸는 여러 새내기들에게 기회가 열려 있어요. 물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었지요. 세 번의 지역 전시(경기 대전 대구)와 한번의 PT-DAY. 지난 1년 동방의 요괴 프로그램이 제게 준 이력이에요. ‘선정 작가가 되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은 별로 없어요.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을 만난 것이었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채로웠어요.”
#03 연초에 사간동 어느 갤러리카페에서 E대학 W교수를 만났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한 현장 교육을 ‘동방의 요괴들’이 대신해 줘서 고마워요. 작년에 최종 작가로 선정된 ○○는 내 제자인데, 요괴 활동이 큰 힘이 된 것 같더라고요. ‘동방의 요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공동체와의 끈이 풀린 젊은 작가들이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커뮤니티로 정착되었으면 좋겠어요.”
2009년 신진작가 발굴육성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한 ‘동방의 요괴들.’ 불과 일 년 동안의 활동이 미술계에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줄은 우리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돌이켜 보면 실로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였다. 따져 보니, 한 달에 한 번 꼴로 ‘동방의 요괴들’ 행사를 진행했다. 소소했지만 설렘이 있었던 발대식을 시작으로 경인 지역(계원디자인예술대학), 중부 지역(대전프랑스문화원), 영남 지역(대구렉서스갤러리) 그리고 선정 작가전(두산갤러리) 등 네 차례의 전시와 작품 프레젠테이션 실습인 PT-day, 백해영갤러리 레지던스, 그리고 도쿄 게이사이 아트페어와 유럽 아트투어, 연감 발간까지….

(왼쪽) 다발킴 <수탉과 여자> 종이에 잉크 (오른쪽) 이현진 <Everyone merrily sings> 디지털 프린트 

지원자 두 배 증가, 경쟁률 23:1

2010 ‘동방의 요괴들’을 시작한다. 그 첫 행사는 요괴들의 공개 모집과 Best 21 작가 선정이다. 먼저 올해부터 지원 자격을 졸업 예정자에서 ‘젊은 작가’로 확대했다. 보다 다양한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을 위해서는 대상 작가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미술계의 여론을 수용했다. 결과는 2009년 지원자 수 241명에서 461명으로 그 수가 곱절 가까이 증가했다. 그 중 졸업 예정자(4학년)가 194명(42%), 대학원생은 151명(33%), 총 345명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대학원생에게도 졸업 예정자에게도 ‘세상에 내던져진’ 새내기 작가가 느끼는 막막함은 마찬가지인 듯했다. 또한, 재학생 휴학생 졸업생 등의 참여율도 116명(25%)으로 상당수를 차지했다. 아직 졸업 전시도 열지 않은 ‘예비 작가’들도 많았고, 이미 몇 차례 개인전 개최 경험이 있는 ‘작가 선생님’들도 눈에 띄었다. (심사 자료에 작품 이미지를 출품하지 않고 전시 도록을 보낸 작가들도 있었다.)
Best 21 작가 선정 심사는 예심과 본심 두 차례에 거쳐 진행되었다. 예심은 동방의 요괴들 운영위원장 김용식(성신여대 교수), 운영위원 윤진섭(호남대 교수), 유진상(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이수홍(홍익대 교수), 곽남신(한예종 교수), 김섭(울산대 교수)이 심사를 맡았다. 약 사흘에 걸쳐 진행된 예심에서 응모 작가 461명 중 146명을 1차 선발했다. 예심을 맡은 윤진섭은 “올해는 학교 파괴 현상이 크게 두드러졌다. 이는 곧 심사의 공정성을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여,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제 젊은 작가들의 학벌 지형에서 소위 ‘홍대-서울대 라인’의 전열이 해체되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심사 소감을 밝혔다.
본심은 지난 1월 20일 신사동 이마주갤러리에서 진행됐다. 이추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김노암(상상마당, 아트스페이스휴 디렉터), 이대범(미술평론가), 호경윤(본지 수석기자)이 심사를 맡았다. 1차 선발자를 대상으로 심사위원들의 냉정한 채점과 치열한 토론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마침내 전원 합의를 통해, 2010 ‘동방의 요괴들’ 최종 선발자 21명이 결정되었다. 23대 1의 쟁쟁한 접전 끝의 결과였다.
지역 지원자의 참여 여전히 저조
올해 ‘동방의 요괴들’은 지원자의 수가 늘어난 만큼 작품 경향도 매우 다양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회화가 여전히 강세였지만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영상 설치 퍼포먼스가 156명(34%), 사진이 40명(12%) 등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팝과 키치적 소재들이 등장하는 구상 회화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작년과 달라진 점이다. 미술시장이 호황일 때는 회화 작품이 많이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반면, 시장이 주춤할 때는 기존에 유행하는 트렌드에서 벗어나는 실험적이고 과감한 작품들이 두각을 나타낸다. 작년보다 훨씬 과격해지고 요사스러워진 ‘요괴들’의 작품은 현재 미술계의 동향을 가장 민감하고 정확하게 드러냈다. 또한, 여성이 298명(64%), 남성이 165명(36%)으로 여전히 미술계의 건재한 ‘우먼파워’를 보여줬다.
작품 장르의 다양화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지역별 분포는 여전히 편중 현상이 두드러졌다. 서울 지역이 237명(51%), 경인 지역 124명(27%)으로 전체 지원자의 78%를 차지했다. 영남 지역은 60명(13%)로 작년과 비슷한 분포를 나타냈고, 중부와 호남은 각각 19명(4%), 12명(3%)으로 참여율이 저조했다.
작년에 ‘동방의 요괴들’의 지역 전시를 개최한 이유는 서울 중심의 미술 문화의 힘을 분산시켜, 상대적으로 지역 작가들에게 활동 기회를 부여하고자 함이었다. 지역 작가들의 경우, 작업을 해도 전시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며 매번 서울에서 전시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불만을 토로한다. 특히 중부와 호남 지역은 참여율이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1년에는 강원 제주 등 보다 다양한 지역의 숨은 요괴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함께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왼쪽) 신기철 <Restless hear syndrome #008> 피그먼트 프린트 (오른쪽) 이국현 <Package 0725> 캔버스에 유채

요괴들, 너의 끼를 보여줘!

최종 선발자 21명에게는 기꺼이 축하의 박수를 보내줘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동방의 요괴들’은 그들만을 위한 잔치는 아니다. ‘동방의 요괴들’에 노크한 모든 지원자에게 활짝 열려 있는 무대이다. 2010 ‘동방의 요괴들’은 461명이다. 이제, 이 요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art in culture는 선정 작가 전시, 지역 전시, 작품 프레젠테이션 실습 훈련인 PT-Day, 레지던스, 해외 아트페어, 아트투어 등 다양한 육성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올해 ‘동방의 요괴들’은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지원사업 수혜자로 선정되었다. 지원금의 규모가 연간 사업을 운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공공기관과 미술 관련 단체와 연계해 더 알찬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갈 것이다. ‘동방의 요괴들’ 연간 프로그램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

곽상원 <우리는 승리하리라!-진압> 캔버스에 아크릴릭

 

(1) 전시
① 지역 순회 전시: 2010 ‘동방의 요괴들’ 지원자가 참여하는 서울 경인 중부 영남 지역 전시를 개최한다.
② 선정 작가 전시: 두산아트센터(2010. 12. 23~ 2011. 1. 20)에서 선정 작가 그룹전을 개최한다. 매입상 및 갤러리와 개인전 매칭을 시행한다.
③ 큐레이터 매칭: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가 작품과 전시에 대한 충분한 사전 대화와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2) 교육
① PT-Day: 작품을 프로모션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마련, 동시대 젊은 미술인들의 건강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프레젠테이션 실습뿐 만 아니라, 시각예술과 퍼포먼스 영상 설치 미디어 사운드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결합하는 확장된 개념으로 아트-크로스오버를 새로운 예술 창출의 목적으로 한다.
② 강연: 미술계 인사들의 초청 강연. 국제 미술동향, 미술시장의 변화, 작품 프로모션 등 미술대학에서는 쉽게 배울 수 없는 미술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실전 교육’을 통해 동시대 미술 흐름을 감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한다.
③ 레지던스: 레지던스 프로그램 희망자를 모집, 기획안 심사 후 각종 기관의 단기 입주를 지원한다.
(3) 출판
① 응모작 작품집: 2010년 공모전 응모작가 전원의 작품을 수록한 단행본을 발간한다.
② 연감: 1년 동안 진행한 ‘동방의 요괴들’ 활동을 총 수록한 ‘애뉴얼 리포트’를 발간한다.
(4) 행사
① 해외 아트페어 참가: 응모작 중 심사를 거쳐 도쿄 <게이사이 아트페스티벌>(3월 14일)에 작품을 출품, 국제 경쟁력을 기른다. 또한, 베이징 홍콩 타이페이 상하이 아트페어 등 art in culture와 자매지 art in ASIA가 참가하는 국제 아트페어 부스에 ‘동방의 요괴들’의 포트폴리오와 CD, 출판물을 전시 홍보한다.
② 서울 아트투어: 서울의 미술관 갤러리 대안공간 창작센터 레지던시 등 다양한 형태의 미술 공간을 둘러보고 디렉터 및 큐레이터와의 면담 시간을 마련한다.
③ 해외 아트투어: 현대미술의 메카 뉴욕의 주요 미술관, 첼시 소호 등 주요 화랑가를 탐방한다.
art in culture는 2009년 1년간 ‘동방의 요괴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처음엔 어딘가 어수룩하고 앳된 요괴들이 ‘작가’로 한걸음 성장해 가는 과정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더욱 강력해진 요괴들이 2010년 프로그램을 장식할 차례이다. ‘동방의 요괴들’은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젊은 요괴들의 감성과 성장 속도에 프로그램의 형식과 내용을 맞춰갈 것이다. 요괴들의 다양한 성향에 맞춰 유연한 사고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행해 나갈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기존의 ‘고여 있는’ 공모전과는 다른 차이다. ‘동방의 요괴들’은 늘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안과 밖으로 열려 있다.
또한, art in culture는 이미 짜인 프로그램 안에서 요괴들을 이끌어 ‘키워 내는’ 일뿐만 아니라, 요괴들 스스로가 ‘자라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 혹은 조력자의 역할을 기꺼이 맡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요괴들 간의 네트워크이다. 세상에 내던져진 새내기 미술인들끼리의 수평적 교류와 연대 형성은 한국미술의 소중한 자양분이 될 수 있다. 2009년(241)명, 2010년(461명) 두 해만 합치더라도 700명이 넘는 요괴들이 탄생했으며, 앞으로 계속해서 증식, 진화해 나갈 것이다. 한국미술의 미래를 짊어질 요괴들에 미술계의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 동방(東邦)을 밝힐 ‘요사스러운 귀신(妖怪)’들의 앞날에 한국미술의 꿈을 실어 보자!

(왼쪽) 강보은 <있는 거 다 꺼내봐> 한지에 드로잉 (오른쪽) 양문모 <The crowd-untitled 1> 캔버스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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