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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9.11

Abstract

스페셜 테마 Art in Nature 자연과 대화하는 녹색 미술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양평환경미술제+에치고츠마리트리엔날레 최근 자연과 환경이라는 주제를 적극적으로 품에 안은 미술제들이 열렸다. 공공미술의 형태를 띄고 있으면서 생태주의와 결합한 모습이다.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는 물질적 팽창과 생태적 호흡에 대한 사유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양평환경미술제』는 친환경 농업특구와 생태학습장이라는 지역성을 이용하여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에치고 츠마리 트리엔날레』는 지역민과 공생하는 환경미술의 모델로 이미 국제적 명성을 지닌 '대지의 미술제'다. 생태주의를 외치는 환경미술은 미술관을 벗어나 삶의 현장 속으로 걸어 나온 미술의 필연적인 모습이다. 몸을 낮추고 사회적 환경 속으로 뛰어들면서 우리 삶을 결정짓는 중대한 요소인 환경과 자연에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자연과 소통하는 미술, 세 개의 환경 미술제를 화보와 함께 소개한다. 이어서 환경미술에 대한 이해와 한국의 실태를 다각도로 조망하는 임재광의 글 「자연과 환경 그리고 미술」을 함께 싣는다.

Contents

  Organ Mix|2009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마커스 웨겐맨|
    IMAGEnation|포스코스틸아트어워드|조환|이용덕|이재훈|우순옥|권부문|
    오혜선|김영석|이영호표지 마커스 웨겐맨 <no.432> 알루미늄에 하이글로스 페인팅 193×143cm 2009

영문초록

에디토리얼

프리즘
    국립현대미술 서울관, 용산에 짓자
    ‘미술은행’ 시행 5년을 평가한다

줌인 아트마켓 9  
    Charles Saatchi의 변신②  김순응

포커스
    미술과 문자
    박미나|김기라
    이강소
    함경아|악동들 지금/여기
    윤종석|이길우

스페셜 테마 Art in Nature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양평환경미술제
    에치고츠마리트리엔날레

창간 10주년 특집  
    art에 바란다! 잡지에 바란다!

해외 작가 이자 겐즈켄  
    열려라 참깨! ‘지각의 문’을 여는 마법 / 김승덕

나의 얼굴  김을

리포트 인사이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또 다른 인공의 가능성을 찾아서 / 김주원


아트 포럼
    사진은 자본주의를 재현할 수 있는가? /쥘리앙 베레그

이미지 링크  양재광

전시 리뷰  

    Organ Mix|2009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마커스 웨겐맨|
    IMAGEnation|포스코스틸아트어워드|조환|이용덕|이재훈|우순옥|권부문|
    오혜선|김영석|이영호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김동원|차영석|홍승희|이베르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또 다른 인공의 가능성을 찾아서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Gregory Maass) 〈The Heart of Enterprise〉 혼합 매체, 오브제 가변 설치 2009

또 다른 인공의 가능성을 찾아서

글 | 김주원·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수석큐레이터

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9. 23~11. 1 청주 예술의전당, 청주시 일대) 예술감독 이인범(상명대 교수)은 “올해 비엔날레 목표를 ‘2009’ ‘청주’ ‘국제’ ‘공예’ ‘비엔날레’ 그 명칭이 의미하는 바대로 구현해 내는 데 두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마디로 비엔날레 상식의 회복이 목표라는 것이다.
서구든 아시아든 동시대 비엔날레들이 ‘문화예술’ 일반을 다루는 것과는 달리,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이하 청주비엔날레)는 ‘공예’를 내걸고 10년의 역사를 지나왔다. 청주비엔날레만의 독특한 성격도, 어느덧 하나의 문화예술 제도로 자리 잡은 것도 다섯 회에 걸쳐 개최된 그 10년의 시간 속에 있다. 그렇다면 올해 비엔날레가 지나치게 소박하게 설정한 목표 ‘비엔날레의 상식 회복’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비엔날레 시대’의 개막이라 부를 만한 1990년대 이후 오늘날 전 세계에서는 100여 개가 넘는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과거 여간해서 알기 어려웠던 지역의 미술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미술의 동시대적 성격을 드러내고, 그것이 반영하는 현실의 역사적 의의를 이슈로서 다루게 되었다. 나아가 예술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게 한다는 공감으로 비엔날레가 추진되어 왔음에는 부정의 여지가 없다. 최근 서구에서조차 이러한 비전이 제대로 성취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지만 예술의 ‘미래에 대한 비전’의 사회적 공유라는 기본적인 상식 설정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의 비엔날레라도 출발선으로 삼는다.

윤보현 〈그림자의 구조(카니발)〉 실리콘, 피아노선, 철, 전구, 센서, 모터 152×228×152cm 2008~2009

비엔날레다운 비엔날레 되기

청주비엔날레는 그간 주제를 아예 운영위원회가 정해서 예술감독에게 하달하는 식이었다. 해마다 운영위원회 구성은 국내의 대학 내에 개설된 공예과 교수들이 대부분이며, 조직위원회는 주제 선정 후 예술감독을 선임해 왔다. 주제를 미리 정하여 하달하고 기획에 앞서 작가를 늘어놓고 줄을 세우고 추천하는 방식 등은 비단 청주비엔날레만의 일은 아니다. 국내 지자체가 진행하는 대부분의 국제 전시 행사들 초기에 왕왕 있는 모습이지만, 문제는 청주비엔날레가 10년을 줄곧 그렇게 살아 왔다는 데 있다. 이러한 표면적인 상황은 10년간 있었던 5번의 ‘비엔날레 해’마다 청주비엔날레를 ‘청주’ ‘국제’ ‘공예’ ‘비엔날레’ 그 명칭이 의미하는 바대로 구현해 냈을까?
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이런 점에서부터 상식을 찾고자 했다. 지난 해 8월 선임된 이인범 감독은 ‘만남을 찾아서(outside the box)’라는 주제를 정했다. 아마추어 조직이었지만 그 해 10월 전시 기획 파트를 꾸리고 기본적인 문제 설정과 해결을 위한 조치들을 속속 해나갔다. 예컨대, 2008년 9월 20일(한국공예문화진흥원 회의실)을 시작으로 ‘젊은공예포럼’을 서울과 청주, 청주와 서울을 오가며 2009년 9월 전시 개막 전까지 7회(청주시 한국공예관 회의실)에 걸쳐 개최하였다. 특히 2008년 11월 1일(한국공예문화진흥원 회의실) ‘동시대의 공예적 가치’라는 주제 아래 개최된 제2회 젊은 공예포럼은 이영철(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임종업(한겨레신문 미술전문기자), 이무아(도예작가) 등의 발제가 있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공예 모델 수립의 필요성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전문저널, 전문미술관이 부재한 공예계의 광장을 연 셈이며, 담론이 무성한 공예의 밖과 담론과 무관한 공예의 내부를 ‘지금 여기’의 ‘젊은’ 그리고 ‘공예’라는 화두로 마주하고자 기획한 것이다.
청주비엔날레 전시, 아니 우리의 모든 비엔날레 전시들은 진정으로 ‘말’이 되어본 적이 있을까? 이영철의 말대로 “그것은 토론이 아니라 늘 간결한 리뷰에 그쳤고, 문제점은 쉽게 무시되고 망각돼 버렸다. 전시는 허공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며, 그 잠시를 만들어내는 큐레이터와 작가들, 그리고 그 잠시를 포착해서 말을 건넬 줄 아는 이론가들, 그리고 그것에 흥미를 느끼며 생각하는 관객들이 없는 한, 그 자리에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불행을 생산하는 노동 속에서 우왕좌왕한다. 남는 것은 관료주의 전시 행정의 딱딱함과 어설픈 수치와 지표들이다. 정신은 빠져 나가 있고, 미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엔날레를 보면서 언제쯤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는 행복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인가?”
교육프로그램은 전시의 ‘말 되기’를 실천하고, 묻혀온 전시의 말을 다시 발견하고 구축하는 수행력이다. 2009비엔날레는 각종 어수선한 행사 대신 ‘패밀리 액티비티 가이드’ 등을 제작해 전시에 기본적인 접속을 시도하였다. 안드레아 데조(미국), 피에트 스톡크 만(벨기에) 등 세계적인 작가들을 초청하여 대상별 워크숍과 가족캠프를 마련하고 마르티나 마겟(영국 RCA 교수, 저널 《CRFTS》 전편집장) 등의 전문가 특강을 진행했다. Aa디자인뮤지엄의 김명한 관장, 가나아트센터 이정룡 기획실장, 크로프트 구병준 실장 등이 콜렉터로서 기꺼이 대중과 만났다. 예술감독, 큐레이터와 관객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주선하는 것 또한  ‘2009’ ‘청주’ ‘국제’ ‘공예’ ‘비엔날레’의 일이었다.
극도로 보수적이게 마련인 대학 학제와 맞물려 있는 장르 구분 방식은 국제공예공모전 등에서 철폐하여 공모전뿐만 아니라 비엔날레 본전시의 진취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기여해냈다. 국제공모전 본심심사위원인 김홍남, 마르티나 마겟, 키타자와 노리아키(일본), 알렉산더 폰 게베작(독일)은 예술감독 이인범, 초대국가관 캐나다전 큐레이터 산드라 알포디(캐나다), 2005년 예술감독 최범 등과 함께 ‘지구촌 공예의 내부와 외부’를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발제하기도 했다. ‘만남을 찾아서’를 주제로 내걸며 출발한 2009비엔날레가 명실공히 새로운 세계 공예 담론의 발신지가 되도록 한 것이다.
결국 공예가 지향하는 인간의 삶, 그 지평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적 고민을 열고 공유하는 일은, ‘공예’를 단순히 ‘순수 예술’과 ‘디자인’과의 경쟁 혹은 차별화를 말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소외와 마이너 장르로서 취급하는 저속한 계급주의 역시 ‘공예’를 정체화 시키는 순간 고착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금(2009), 여기에서(청주) 대면할 삶(국제)을 정직하게 주시하는(비엔날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체성이 아니라 정직성이다.

알씨아 크롬(Althea Crome) 〈고대 그리스 장갑〉 실크 실, 외과수술용 스테인레스 스틸을 이용한 손바느질 3.8×2.5cm 2007

지금 여기 청주에서 대면한 삶

지난 9월 23일(수) 오픈한 비엔날레는 어느새 40일 일정의 끝을 향하고 있다. 그간 공예계 내외부가 인정해 온 마이너리티로서의 장르적 한계 때문일까. ‘공예’비엔날레에 대한 매체들의 관심은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 다만, 이인범 감독의 상식 회복의 변혁적 시도에 관심을 가진 국내외 주요 일·월간지의 몇몇 기자들의 진지한 주목이 눈에 띄었다.
반면, 지역 신문들에서는 거의 2년 내내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전시 기간 중에는 지역 내 거의 모든 매체가 하루에 1건 이상의 기사를 쏟아 놓는다. 재미난 것은 정작 감독과 큐레이터의 전문성을 대상화하거나 전시의 언설, 전시의 ‘말 되기’를 대상화하기보다는, ‘OOO 작품이 보험 최고가’ ‘오늘이 최다 관람객 O천 명’ ‘디자이너 이상봉씨 공예 애정 과시’ ‘청주비엔날레서 MBC 드라마 <히어로> 촬영’ ‘청주비엔날레 국내외 벤치마킹 바람’ ‘청주공예비엔날레 공예 체험 인기’ ‘이벤트, 행사도 재밌어요’ 등의 상식적인 비엔날레라면 나올 수 없는 기사로 난무한다. 더군다나 작품에 관한 드문 기사 중, ‘저탄소 녹색성장 경향의 작품이 50% 이상’ 이라는 기사는 전시 기획과 관계없는 조직위 관계자가 발언의 출처이며, 그 내용이 전시출품작들의 성격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데서 청주비엔날레를 에워싸고 있는 다양한 층위의 커뮤니티 구성원들, 조직위원회나 이른바 공예계의 비전 능력 태도 관습들을 비춰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작 비엔날레 전시에 대해 시기하고 음해하고 외면하는 지역적 관습주의의 벽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비엔날레, 혹은 비엔날레 전시의 의미 자체를 훼손하고 예술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문제에 대해 어떠한 상상력과 창의력도 증발시켜 버리는 비엔날레의 현실은 비엔날레 상식의 회복이 목표인 자들에게 당혹감을 넘어서 비장감마저 들게 한다.
지난 2007비엔날레 경우에 있었던 본전시, 국제학술심포지엄, 공공미술프로젝트, 공모전, 페어, 초대국가관전, 문화재청에 의한 무형문화재작품전, 어린이비엔날레, 마켓숍 형태의 공예체험장, 취미 공예인들에 의한 생활공예전 등의 행사 중 많은 부분을 조정한 것이 2009비엔날레이다. 본전시, 국제학술심포지엄, 공모전, 페어, 초대국가관전은 남기고 문화재청에 의한 무형문화재작품전, 어린이비엔날레, 마켓숍 형태의 공예체험장, 취미 공예인들에 의한 생활공예전 등은 모두 폐지하거나 축소하였다. 2007년 공공미술프로젝트라 명명하였던 것은 본전시 3 <프로젝트 : 생활 세계 속으로>라는 이름 아래 공예도시 프로젝트의 성격으로 전환했다. 비용과 환경 문제를 야기하며 체육관 속에 완벽할 정도의 화이트 큐브가 건축되었던 그 동안과는 달리, 재활용이 가능한 최소한의 구조로 대체하는 동시에 전시의 맥락 구성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해마다 전시와는 무관하거나 아예 반(反)비엔날레적 성격을 드러내며 시도 때도 없이 시끄럽게 향락적 공연 프로그램들이 펼쳐지는 상황도 축소하였다.

왼쪽·벤자민 리니엘(Benjamin Lignel) 〈행복한 가정을 위한 NHS, 접착식 반지 세트〉 고무, 거즈, 잉크, 스크린인쇄 카드, 플라스틱 포장 13.7×8.4cm 2002|오른쪽·안드레아 데조(Andrea Dezso) 〈어머니의 가르침〉 면으로 된 흰 천에 면실, 금실, 유리구슬 12.7×12.7cm 2006

만남을 찾아 나서다

앞서 밝힌 대로 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만남을 찾아서’라는 주제 아래 이 시대 공예의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인범 감독은 여러 차례, 2009비엔날레의 주제를 재일 한국 작가 이우환(1936~)의 책 제목 《만남을 찾아서(出會いを求めて)》(1973)로부터 빌어 왔음을 밝힌 바 있다. 순수미술이 드리워 놓은 근대적 주체 표상 과잉의 문제를 지적하고 드넓은 세계를 향해 또 다른 인공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이우환의 작업을 고려하면, 오늘날 ‘공예’의 위상을 재고하는 자리에 이우환의 ‘만남을 찾아서’는 문제제기로서 상당히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인범은 전시 서문에서 아래와 같이 밝힌다.
“그러니 <만남을 찾아서>로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시대에 정작 물건을 만든다는 일이 어떤 것인지 질문해 보자는 것이지 삶의 세계로부터도, 인접한 예술 장르들로부터도 벽을 치며 상투적으로 ‘공예’의 본질이나 장르적 순수성을 되뇌며 그 내부를 들여다보자는 것은 아니다. 작게는 대화를 잃었던 공예의 하위 장르들이 만나 정작 그 가운데 자리에 모셔야 할 ‘공예적 가치’는 어떠한 것인지를 말해 보자는 자리이다. 더 나아가 ‘공예’가 자신의 내부를 텅 비우며 바깥을 향해 항해하고 드넓은 세상을 위하여 봉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작 공예가 섬겨야 할 그 드넓은 ‘생활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를 다시 눈 비비고 새롭게 모색하는 일이다. 공예가 ‘공예’를 넘어서 그 바깥의 예술 장르들 그리고 드넓은 삶의 세계와 만나는 자리, 청주시민들이 그 바깥의 세계와 만나는 그 접촉면은 분명 공예 그 자체 혹은 청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가장자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장자리는 금싸라기가 쏟아지는 황금빛 가장자리는 아닐까? 비워진 중심, 그 비워진 자신의 모서리에서 펼쳐질 끝없이 드넓고 풍요로운 접촉면들…. 그 접촉면들에서 일어나는 광채야말로 ‘만남을 찾아서’ 출항하는 이유이다. 만남이란 행위 주체로서의 자아나 주체가 자신을 넘어 자아 아닌 타자, 무관, 분열 등 어떠한 사물이나 사건의 상호 이질적인 혹은 경험 이전의 상태를 향해 여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만남을 찾아서’라는 이슈를 영어로는 ‘looking for the meeting’보다는 적극적으로 자기를 깨부수고 밖을 맞자는 의미로 ‘outside the box’로 했다.”
‘만남을 찾아서’ 라는 주제 아래 본전시는 다음과 같이 크게 셋으로 구성되었다. <인공의 지평(Pressing matter)> <오브제, 그 이후(Dissolving views)> <프로젝트, 생활세계 속으로(The river whitin us, the sea all around us)>가 그것이다. 첫째 전시인 <인공의 지평>에는 21개국 54작가(팀)에 의한 225점의 작품이 초대되었다. 전시는 ‘공예 너머-인공의 새 지평’ ‘만남, 그 다양한 형식들’ ‘현대 크라프트 지형도’ ‘공예를 향한 시선들’ 4개의 영역으로 구획되었다. 견고한 오브제에 근거하되 공예를 단지 ‘잘 만든 물건’으로 받아들이는 종래의 인식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이질적인 공예 주체들이 만나 협업하며 비전을 여는 작업들을 소개했다. 현대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조응하는 오늘날 공예의 다양한 경험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공예와 생활 세계의 연관성을 새롭게 구성해내는 작업들을 제시했다.
특히, ‘공예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이라는 섹션은 청주비엔날레를 둘러싼 다양한 시선들 즉, 2009비엔날레운영위원들이 추천하여 구성된 작가들의 작품과 비엔날레 10년의 역사를 지켜 온 청주시민들의 애장품, 김경래(대상, 한국), 박은정(도자 부문 금상, 한국)의 2007국제공모전 수상작가 작품 등 청주비엔날레의 성격 형성의 주요 동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비엔날레 공동체 구성원들의 시각을 보여 주는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비엔날레의 현재 위상과 권위의 내부를 조명한 것이다.
<오브제, 그 이후>전은 18개국 56명(팀)의 작품 98점으로 구성되었다. 물신숭배 대상으로서의 ‘공예’ ‘오브제’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매개가 되는 작업들을 주목했다. 즉 부정어법을 통해 반(反)공예성 혹은 ‘공예’ 외부에 산재된 삶의 진실과 대면하는 작업들이 중심이다. 전시는 ‘인공과 자연 사이’, ‘새로운 조건, 새로운 상상력,’ ‘반응하는 오브제,’ ‘인공, 그 안과 밖’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새로운 조건, 새로운 상상력’에선 디지털 문명 시대로 정의되는 21세기 현재 공예, 순수 예술, 디자인 등이 만들어내는 오브제들은 그 시대적 조건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작가들이 소개되었다. ‘반응하는 오브제’에선 시간, 공간, 신체 등과 접속하여 반응하는 오브제들을 통해 오브제가 점유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이나 비현실적 신체, 시간이 아니라 오브제가 섬겨야 하는 삶과 인간이라는 사실을 표상하고 있다. 다양한 크래프트 퍼포먼스가 이뤄진 스테이지와 카페도 설치했다. 40일간의 전시를 위해 임시로 세워지긴 했으나 판타지를 주기 위한 가설무대는 아니었다. 작업들이 오브제와 현실, 오브제와 신체, 오브제와 시간, 그리고 공간 사이를 왕복하며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출시키고 싶었다.
공예, 순수 예술, 디자인 같은 조형예술 장르의 정체성을 묻는 일은 이제 정말이지 그만둬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무엇인가 만드는 일은 ‘오브제’가 아니라 ‘오브제, 그 이후’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종 민족 국가 전쟁 환경 젠더 섹스 폭력 이민 계급 취미 … 교육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 종교 등 그 어떤 관심사라도 이제 공예적 접근의 대상이 아닌 것은 없는 듯하다. ‘인공, 그 안과 밖’에선 이런 저런 사적이건 공적이건 삶의 다양한 국면들을 주목하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전시 <프로젝트, 생활세계 속으로>는 종래의 공공미술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아웃도어 전시이다. 이인범 감독은, ‘공예’와 ‘공공미술’의 간극을 주목하면서 삶의 공동체로서 행복한 도시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공예적 이슈로 제기하는 프로젝트들로 전환시켰다. 5개국 16작가(팀)의 작업으로 구성된 이 프로젝트는 시청, 상당산성, 중앙공원, 서문시장 등 청주시 곳곳의 공공장소에서 청주시민들의 문화 역사적 기억을 불러내어 기념하고 향유하는 ‘오브제 프로젝트’ ‘문화관광업소 프로젝트’ ‘서문시장 프로젝트’ 등으로 꾸며졌다. 2009년 4월부터 시작돼 비엔날레 행사 기간 내내 시행되었다.
특히, ‘오브제 프로젝트’는 다양한 공공 장소에서 비엔날레 개최 도시인 청주시청사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해내려는 작업들로 구성되었다. 예컨대, 유르겐 베이(네덜란드)의 <민원실 의자들>, 그동안 지역 공동체의 삶을 새롭게 복원하고 지켜내는 뜨거운 열정의 활동을 해온 서용선 등 할아텍 회원들과 청주에 거주하는 작가 서윤택, 박계훈, 서정두 등이 함께 어우러져 청주라는 지역을 양구, 서울 등의 타 지역과 연계시키는 <트라이앵글 프로젝트> 등이 그것이다. ‘문화관광업소 프로젝트’는 오브제 중심의 근대적 공예관을 뛰어 넘어 청주 시민들이 삶의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고 관광객들이 공예적 가치를 향유케 할 의도로 시도되었으며, 청주시내의 업소인 초콜릿 전문점 ‘본정’과 도예가 김명래, 양현진 등의 협업을 통해 성취되었다.

왼쪽·시몬 헤이덴스(Simon Heijdens) 〈갈대〉 빛 원소 모듈 100×215×115cm 2006|오른쪽·조르디 카누다스(Jordi Canudas) 〈페인트가 흐르는 조명〉 램프, 금속, 펌프, 페인트 90×200×60cm 2008

에필로그

이렇게 해서 결국 ‘2009’ ‘청주’ ‘국제’ ‘공예’ ‘비엔날레’ 다운 비엔날레에 이르렀을까. 시도 때도 없이 스스로 ‘지역작가’이길 자처하는 지역의 작가들을 앞세우며 작가, 작품만 정하는 커미셔너로서 예술감독과 큐레이터를 대하는 ‘청주공예비엔날레’를 둘러싼 커뮤니티의 태도가 교정되지 않는 한, 창의적인 기획자, 유능한 조정자, 나아가 예술의 미래에 대한 비전 공유의 매개자가 되는 예술감독과 큐레이터, 그 전시는 기대하기 쉽지 않다. 필자를 제외하고, 전문성을 갖춘 2009비엔날레 큐레이터 파트의 대략의 구성은 개막 5개월 전인 지난 4월이었다. 에듀케이터, 캐나다전 큐레이터는 6월에 합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예’의 힘, 그에 대한 진실과 열정, 사랑은 사실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인간)’ 모두와 우리의 ‘삶’에 대한 것이며, 그것이 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통해 보고자 한 것이었고 일정 부분 성취해내었다. 근대주의적 ‘조망체제(Scopic Regime)’에 길들여진 공예, 그 정체성 논의에 자신의 발상을 묶어놓는 입장에 대한 고정된 사고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그것에 균열을 내어 정직한 삶을 들여다 보고자 한 것. “내가 모르는, 평행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parallel universe)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이미 여기에 나와 같이 있음을” 상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피엣 스톡만(Piet Stockmans) 〈만개의 컵〉 자기 가변 설치 1982

이자 겐즈켄, 열려라, 참깨! ‘지각의 문’을 여는 마법

<오락 자동 판매기> 혼합재료 160×65×50cm 1999~2000

열려라, 참깨! ‘지각의 문’을 여는 마법

글|김승덕·디종 르콩소르시움 국제 프로젝트 디렉터

열려라, 참깨!(Open Sesame!)’는 쾰른 루드비히미술관(2009. 8. 15~11. 15)에서 열렸던 이자 겐즈켄 회고전 제목이다. 이 전시는 런던 화이트채플갤러리에서 시작된 순회전으로, 이자 겐즈켄의 작품 세계를 가장 포괄적으로 보여주었다.
작가가 직접 지은 전시 제목인 ‘열려라, 참깨!’는 잘 알려져 있듯이 <천일야화>에 나오는 문구로 알리바바가 40인의 도적들이 진귀한 보석과 귀중품을 숨겨 놓은 동굴의 문을 열 때 외치는 마법의 주문이다. 또한 이 말은 관객이 이자 겐즈켄의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받는, 바로 그 느낌이기도 하다. 작가가 펼치는 그 마법의 힘을 통해 우리의 닫혀 있던 ‘지각의 문’은 활짝 열린다. 그리고 이 문 뒤에는 이자 겐즈켄의 우주로 우리를 안내하는 마법의 길이 이어진다. “열려라 참깨!” 대신에 “열려라 세잔느!”처럼 현대미술에 대한 바람들을 외쳐볼 수 있지 않을까? 역사적 모더니티의 문이여, 활짝 열려라. 규범이여, 서서히 손을 들어라. 옳고 그름에 대한 경직된 태도들이여, 부드럽고도, 극적이게 틀어져 버려라….

<오일> 2007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설치 전경. 니콜라우스 샤프하우젠이 커미셔너를 맡았다. 작가는 천연 연료인 ‘오일’을 둘러싼 전 세계의 정치 사회 경제 문제를 주제로 다루었다. 산유국의 부의 축적, 오일과 세계 경제와의 상관관계, 환경 위기 등을 장소특정적 작품으로 제시했다.

자유로움이 예술을 다스리게 하라

이자 겐즈켄의 작업은 균형감과 비율, 그리고 구도를 제외한 모든 규칙으로부터 작가 스스로가 자유롭고자 하는 끊임없는 시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1970년대의 초기 목조각에서부터 최근의 부서지기 쉬운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30년에 걸친 예술 세계 전반에 나타난다. 이자 겐즈켄은 극도로 민감한 안테나를 세우고 동시대의 이슈를 잡아내 표현한다. 우리 시대의 연약함, 파괴, 아름다움, 그리고 야만성은 그의 작업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입체 작품은 우리 신체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서 있어야 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수직적이며, 동시에 3차원적 양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입체’란 매우 중요하고도 어려운 영역이다. 정확함은 물론, 일련의 조각, 모델링, 조립, 주물 등과 같은 기술의 간헐적인 결정을 통해 완성된 결과물이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주물’(캐스팅)은 쏟아 붓고, 그것을 건조시키는 과정이다. ‘조각’은 전체에서 일부를 떼어내는 과정이다. ‘모델링’은 재료를 모으고 더하는 과정이다. ‘조립’은 비율, 색감, 혹은 형태나 구도에 따라 재료를 결합하기 위해 선택을 하는 과정이다.
이자 겐즈켄은 미니멀리즘 미술이나 개념미술에 근원을 둔 컨셉트를 토대로 근대적 조각의 조건에 도전한다. 그의 최근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주물을 뜨고 조각을 한 후, 조립하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두고, ‘굉장히 독특한 구성에 대한 수업 같다’고 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괜한 말이 아니다.

2007뮌스터조각프로젝트 설치 광경. 교회 뒤뜰에 인형과 우산 등으로 만든 오브제 작품 12점을 설치했다. 연약하지만 벌거벗은 입체 작품이었다. 망가지기 쉬운 오브제들을 일체의 고정 장치 없이 전시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가져가거나 망가뜨리는 관객은 없었다.

불확실한 서사의 작은 풍경들

이자 겐즈켄은 1948년, 세계대전 후 정신적, 지적 상태가 건축물의 파괴보다 심각하게 초토화되었던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의 미술 교육의 중심 도시였던 함부르크, 베를린, 쾰른 그리고 뒤셀도르프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1979년부터 10년간 부부로 지냈던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와 1970년대 연인 사이였던 벤자민 부흘로(Benjamin Buchloh)에게 학교 공부 이상의 것을 배웠다. 삶과 배움이 서로 중첩되면서 성적이고 지적인 교류들이 동시적으로 발생한 점에 대해, 당시는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축복 받은 시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자 겐즈켄의 전력은 예술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기회주의적 행동과는 전혀 무관했다. 오직 사랑의 감정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자 겐즈켄의 작가로서의 경력은 1976년, 뒤셀도르프의 유명한 갤러리콘라드 피셔(Konrad Fisher)에서 시작되었다. 독일 내에서 가장 날카롭게 미니멀리즘 작업과 개념미술 작품을 전시했던 이 갤러리에서 새 작업을 선보인 이자 겐즈켄은 모더니즘의 논쟁을 다소 뜻밖의 전개 방식으로 풀어 나갔지만 그 이슈 자체를 부정하거나 거부한 적은 결코 없다.
이자 겐즈켄의 첫 번째 오브제 작업 <타원체(The Ellipsoids)>는 뾰족한 타원형 나무에 채색한 입체물을 바닥에 놓은 것이었다. 손으로 조각했음에도 마치 이쑤시개처럼 기계로 찍어낸 인상을 주는 이 입체 작품은 후기 미니멀리스트들에 대한 논쟁적 시각을 보여주는 동시에, UFO를 탄 외계인의 무기처럼 미래적인 면모와 인디언 추장의 봉(power stick) 같은 민속적인 면모 또한 지니고 있다. 그것은 여성적 도구(바늘이나, 방직틀)와 신성한 나무 조각에 새겨진 남성의 투창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후기 미니멀리즘과 민속적인 특성을 동시에 시도하면서, 용감무쌍하게 미술계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이자 겐즈켄의 작품 세계에서 끊임없이 계속된다.
입체 작업으로 익히 알려져 있지만 여기서 잠깐 이자 겐즈켄의 색다른 작업을 소개하려 한다. 1995년에서 1996년 사이에 만든, 뉴욕 콜라주 책(이후 2006년 《I Love New York Crazy City》라는 제목으로 JRP출판사에서 재출간)이다. 이 책 안에는 이자 겐즈켄이 직접 찍은 스냅샷들과 그것들을 이어 붙인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무작위로 찍은 도시의 풍경 시리즈, 스스로를 담은 사진에서 절정을 이루는 초상들, 친구들 혹은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작가에게 희미한 후광을 드리우는 성물함, 그리고 소위 개념미술이라 것의 창시자이자 선구자 중의 한 명인 작가 로렌스 뷔너(Lawrence Weiner)의 작은 사진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로렌스 뷔너 한 사람뿐만 아니라, 언어와 의미론적 차원에서 포즈(pose)를 통해 영리한 관점을 이끌어 왔던 ‘개념미술’ 자체에 대한 헌사이다. 이자 겐즈켄은 그렇게 매 순간 매우 자유롭게 전복이 일어나는 인용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의 강점은 바로 이러한 자유로움이라고 다시 한 번 말할 수 있다.
이자 겐즈켄은 그가 쓰던 도구를 그대로 설치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식 방(American Room)>에서는 여러 가지 오브제를 조합하기 위한 좌대로 전에 작업실에서 쓰던 수평 보드를 사용했다. 한편 이 작업에서는 이자 겐즈켄의 다른 특성들도 포착된다. 좌대 뒤로 비닐과 사진이 수직으로 떨어지게 배경을 만든 것이다. 마치 무대 커튼을 연상시키는 이 설치물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상황 자체를 연극으로 받아들이도록 연출한다. 배경에 걸려 있는 은색 플라스틱 시계는 이 작업이 멈춰 있는 오브제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속도감을 자아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또한 전체가 분홍색과 은색으로 도색된 팬더의 머리와, 장난감 병정 등이 한데 뒤섞이면서 내러티브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자 겐즈켄의 입체 작업은 불확실한 서사에 작은 풍경들을 배열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적 패턴과 구성을 띤다.

<I Love New York, Crazy City> 콜라주 1995~1996

작고 연약한 것들의 배치

2007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서 이자 겐즈켄은 교회 건물 뒤뜰에 작은 대화의 시리즈를 설치했다. 이들은 각각 의자와 우산으로 구성되었다. 인형이나 장난감 등의 여러 오브제들,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이야기꾼의 의자, 바람에 다소 휘어진 화려한 색상의 우산들…. 이 오브제들은 이 교회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하지만 아마도 일어나지 않을) 잠재적 장소로서의 작은 무대들을 다양하게 구성해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패러독스는 이자 겐즈켄이 몇 달 간의 전시 기간 동안, 연약하고 부드러운, 망가지기 쉬운 오브제들을 고정시키지 않은 채로 설치했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이 소품들은 어떤 안정적인 고정 장치 없이, 그냥 거기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견고하고 안정적으로 만들어진 입체가 만들어 내는 문맥과는 대조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작가는 관객이 작품을 부수거나, 깨거나, 파괴하지 않을 만큼은 예의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설령 관객들이 오브제들을 망가뜨린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예상 불가능한 위험과 모험이 도사리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처럼, 입체 작품 역시 연약하지만 자유로운 벌거벗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오브제로 만든 작업을 선보이면서, 1980년대 후반 작업 <유리(Fen ster)> 시리즈에서 기둥이나 거울로 된 벽을 이용했던 것처럼 이자 겐즈켄은 건축학적 인용을 시도하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모은 이질적인 물건들이 구현하는 ‘진정한 아수라장’의 미학을 서서히 구축해 간다. 이러한 작가의 시도는 3차원적 입체 구성으로 전시장 전체를 가득 채웠던 2007베니스비엔날레의 독일관에서 정점에 이른다. 엄청나게 성공한 이자 겐즈켄의 독일관 전시는 오늘날의 현대미술, 특히 입체 영역에서의 ‘수업’과도 같았다는 평을 만장일치로 받고 있다.
이자 겐즈켄이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은, 오브제의 배열로 이루어진 유사한 양식이 후배들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작금의 현상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마치 이자 겐즈켄에게 헌사된 듯한 전시들이 최근에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 가장 눈에 거슬렸던 전시는 뉴욕에서 2007년과 2008년에 열렸던 <반기념비적인(Unmonumental)>전이다. 활기 없는 모방 속에서, 불안정하게 서 있는 물체들로 연약하게 구성된 오브제들이, 매우 지루한 방식으로 새로 오픈한 공간을 점령하고 있었다. 명성과 부를 쫓는 시시한 세속적인 야망으로 가득 찬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는 결과를 낳았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반짝거리고 화려할지라도, 설령 그 요인이 경제 위기 상황에 따른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모방에는 매력적이고 대안적인 관점이 결여되어 있었다.
동시에 아시아에서 오늘날의 젊은 작가들이 때때로 시도하는 ‘작은 규모’의 설치 작업들이 이자 겐즈켄의 작업으로부터 과연 얼마만큼의 거리를 가지는지를 주목하는 것은 역시 꽤 흥미로운 일이다. 나라 전체가 대규모 중공업체와 상품 생산자들에 의해 절대적으로 지배되고 있는 상황에서 겸손한 척한다는 것은 그저 닥친 상황을 쉽게 빠져나가려는 요령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말 진지하게 이자 겐즈켄의 작업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일상적 소품들이나 장난감과 같은 오브제들을 균형 잡힌 입체적 구성으로 끌어들여 조합하는 그의 방식이 얼마나 정밀하고 우아한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모든 이는 적어도 하나의 창은 필요하다> 뮌헨 렌바흐하우스 전시 전경 1993

사악함과 따스함의 공존, 그리고 유머

물질과 색감, 부드럽고 딱딱한 요소들,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에 대한 인용, 아주 작거나 반대로 아주 큰 스케일, 흡수와 반사적 효과의 자유로운 배열…. 이자 겐즈켄은 늘 주변을 관찰했으며 역사에 대한 지식을 넓혀 나갔다. 또한 게르하르트 리히터, 댄 그라함, 로렌스 뷔너 등의 선배 작가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다져진 그의 재능은 ‘사물’에 진정한 감각을 입혔다. 이쯤에서 그의 동료 작가 댄 그라함(Dan Graham)이 2008년이자 겐즈켄의 전시 카탈로그에 쓴 글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이자 겐즈켄의 작업은 어둡지만 유머를 갖고 있다. 그는 훌륭한 작가이자, 좋은 친구이고, 매우 인간적 사람이다. 나는 그의 친절한 호의를 잊지 않고 있다. 그가 뒤셀도르프아카데미에서 리히터의 학생이었을 때, 그는 다른 학생들과 리히터에게 새롭고 진보적인 아이디어와 함께 나의 작업을 소개해 주었다. 글렌 브랑카(Glenn Branca)의 음악을 언급하기도 했다. 나에게 훌륭한 작가의 기준은 훌륭한 무정부주의자적인 유머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이자 겐즈켄은 개인적 문제를 떠나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 매우 대단한 작가이다.”
이자 겐즈켄은 거대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필요에 따라 약간의 독설을 가미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다룬다. 이 대조적 접근은 작가의 일부 작업에서 종종 상응하며 융화된다. 확실히 이자 겐즈켄의 작업은 강렬한 시각적 언어를 통해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학적 지점을 가로 지르는 우리 시대의 초상이자 반영이다. 따라하고 베끼는 것이 지배적인 추세 속에서 인용이 그저 위선적인 제스처로만 쓰이는 요즘, 이자 겐즈켄의 위치가 아시아에서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다. 큰 기업에서 새로 만든 시상식에서, 이자 겐즈켄에게 많은 상금과 함께 상을 수여했다고 해도, 그것이 이러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들에게 그들의 작업을 좋은 조건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여기서 좋은 조건이란 좋은 공간과 좋은 조명, 그리고 좋은 환경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급적 많은 미술 학도들이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취리히미술관 전시 전경 2003

자연과 환경 그리고 미술

정재철 <바람그물> 붉은 실 가변설치 2009
수직으로 뻗은 대나무에 붉은 실을 감아 수평적 형태의 그물을 만들었다. 푸른 숲 속의 붉은 실타래는 마치 자연 속에서 이는 바람을 형상화한 것 처럼 보인다. 자연과 환경 문제를 시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자연과 환경 그리고 미술

글|임재광·미술평론, 공주대 교수

‘자연’이나 ‘환경’ 또는 ‘생태’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연상될까? 자연보호운동이나 환경운동 또는 지구 온난화, 환경 파괴, 생태계의 교란 등과 같이 오늘날 익숙한 상황들이 떠오를 것이다. “오늘날 가장 근본적인 사회운동은 생태환경운동”이라는 주장에 반박할 여지가 없을 만큼 자연과 환경의 중요성은 확고하게 인식되고 있다.
르네상스 이후에 형성된 인본주의 정신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정복의 대상이 되어버린 자연은 이제 심각한 수준의 파괴로 인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무차별적인 자연 파괴로 인한 생태계의 교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재앙이 점차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과학이나 철학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듯 높아지는 관심에 따라 환경이라는 말 또한 과거에 비해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언어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미술의 영역에까지 확장되어, 이제는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환경미술’이나 ‘자연미술’이라는 말은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라 미술가들이 단어를 조합하여 사용한 신조어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신조어가 넘쳐나고, 아직 이는 낮선 말에 불과하지만 대중들에게 쉽게 읽히고 친숙해질 여지가 충분한 용어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죽음의 징후를 체감한 인류의 살아남고자하는 거의 본능적인 행동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술은 당대의 거울로서 시대적 요청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응해 왔다. 날카로운 직관으로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비전을 누구보다도 앞서 예시한 것은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경이라는 문맥에서 미술을 본다는 것은 곧 인류의 생존 문제를 성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동시대적인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다.

얼스케이프 <메디컬 허브맨 카페 프로젝트> 25×20m 2009
건강에 좋은 약초로 대지에 누워있는 인간 형상을 만들었다. 우리 몸 각 부분에 좋은 약초들이 허브맨의 신체 부위마다 자라고 있다. 퍼포먼스와 워크숍 등을 함께 펼친 프로젝트.

환경미술(environmental art)이란?

환경미술의 의미는 넓게 보면 상당히 광범위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더욱 그러한데, 20세기 미술의 전개와 확장 과정에서 여러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예로 뒤샹을 비롯한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공간 인식, 팝아티스트들의 현실 인식, 그리고 해프닝과 이벤트, 총체적 환경 인식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환경미술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 말이었다. 삶과 유리된 모더니즘에 대한 회의가 등장함에 따라 자연적 사회적 환경의 일부로서 미술에 대한 의식이 표면화된 것이다. 도시의 시각적 환경을 형성하는 공공조각이나 벽화와 같은 것은 사회적 환경의 일부로서 삶과 밀착한 형태의 미술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하드웨어적 환경미술뿐만 아니라 백남준의 비디오 위성중계와 같은 소프트웨어적 환경미술이 나오기까지, 패러다임의 변화가 진행된 것이다.
환경미술 중 가장 주목 받는 것은 대지미술(earth art, land art)이다. 그러나 대지미술은 환경 보호보다는 예술 자체를 우선시하는 태도로 인해 생태계와 관계된 여러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대지미술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모더니즘적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이들에게 예술이란 자연을 부리는 영웅적 행위이며 행위의 대상이 캔버스에서 자연으로 확장된 것에 다름아니다.
이와 달리 자연에 대한 외경심과 환경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에서 출발한 작가들도 있다. 예술가의 개입은 최소화하면서 자연과 융화된 풍경을 연출하는 리차드 롱이나 앤디 골드워시가 그 예이다. 이들의 예술은 생태학적 세계관에서 출발한다. 동양의 무위자연적 노장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이러한 경향은 한국에서 특화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금강 유역을 근거로 사계절 연구를 통해 개념적 작업을 진행해 온 ‘야투’ 그룹은 자신들의 작업을 ‘자연미술’이라 칭한다. 환경미술이라는 용어에서 진일보한 자연 친화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더 나아가 ‘생태주의미술’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는데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와 접근을 통해 환경 보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용과 모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국의 현실에서는, 특히 용어의 정의가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오늘날 환경미술 또는 자연미술 생태주의미술로 불리는 미술의 형태는 엄밀히 분석하자면 실상 그 내용이 대체로 비슷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런 용어들이 별 구분 없이 혼용되어 사용된다. 심지어는 야외설치미술 자연현장미술 공공미술 등의 용어도 뒤섞여 사용되고 있다.
여러 면에서 비슷하지만 사용하는 명칭에 따라 지향점이 달라진다.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의 경우 중공업의 메카인 울산의 도심 중심부를 관통해 흐르는 태화강 둔치 일원에서 열리는 행사로 ‘설치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과도한 물질적 팽창에 대응하는 미술의 형이상학적 탐구 방식을 제안”한다는 기획자의 표현에서 짐작되듯이 도시의 하천이라는 환경적 요인을 중심에 두면서도 작업의 방향은 좀 더 작가주의적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환경미술의 요체는 내용에 있다. 환경이라는 말이 내포한 의미가 가장 중요한 관점이다. 인터넷 사전 브리태니커에 의하면 환경(環境, environ-ment)이란 “생물체와 생태 군집에 작용하여 궁극적으로는 이들의 형성과 생존을 결정하는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요인들의 복합체”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생물학적 해석이며 좀 더 확장된 의미를 적용한 사전에 의하면 “생물을 둘러싸고 밀접한 영향을 맺고 있는, 자연적 사회적인 조건과 상황” 즉 생물에게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을 말한다. 보통 자연환경을 가리키지만 사람에게는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교육적인 환경 또한 중요하다. 따라서 환경은 인간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반대로 인간이 환경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렇듯 환경은 우리 인간의 생활과 너무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미술도 예외일 수 없다.
환경미술은 내용적으로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인식과 이에 따른 언급 또는 발언이 뒤따르므로 교훈이나 계몽적인 내용 또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거나 경고의 메시지를 담는 작품이 많다. 이렇듯 환경미술은 ‘미술을 통한 일종의 사회운동’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다.

권남희 <조용한 세계, 양평> 혼합재료 가변크기 2009
강변 곳곳에 표지판을 제작했다. 간략한 형상과 함축적인 텍스트로 공공적인 작품 내용을 자연 속으로까지 끌고 갔다. 소음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침묵과 고요의 가치를 일깨우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공공성, 공공의 영역으로 나오기

환경미술은 그 내용에 있어서, 환경이라는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기반에 대한 것을 다룬다. 설치되는 장소 또한 대중이 공유하는 공간이므로 무엇보다도 공공성이 요구되기도 한다. 따라서 환경미술은 공공미술의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현대미술은 고급화, 개념화의 길을 걸으면서 대중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점차 소비와 수요로부터 소외되었다. 따라서 생존에 대한 문제 인식과 문화적 비평적 반성이 필요하였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순수 예술은 대중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소통과 공공성을 다시 강조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생존을 위해 ‘아방가르드’를 ‘공공성’이란 전략으로 수정한 것이다.
최근 우리 미술계에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용어는 ‘공공미술’이다. 그동안 환경미술이라는 테두리에서 행해지던 미술의 형태들이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말만 바꾼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라는 새롭게 유행하는 전시 형식은 빠른 시간 안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환경을 개선하고 경관을 꾸미는 미술 행위가 일반화되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미술의 위치를 삶의 현장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대중적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공헌하였다. 이는 정치 사회적인 관점의 변화에도 한몫하고 있다. 언론의 경우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대중매체의 관심을 끌면서 미술전문지와 같은 미술계 주류 매체를 당황하게 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의 정치인이나 행정책임자에게도 매력적인 이벤트로 부상함에 따라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는 향후 미술 활동의 새로운 지평을 예고하는 것으로, 주민과 함께하는 미술이라는 모토 하에 지역 사회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그 존재 의미가 더욱 확고해질 것이며 영향력 또한 높아질 것이다.
한편 환경미술이 환경예술품, 환경조각품, 건축물 부설 장식품으로 치부되는 것은 공공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개인적인 작업을 단지 외부로 이동하여 건축물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공공의 이해와 소통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건축비의 일부를 예술장식품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현행 제도가 공공예술의 지원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상업적 작품을 장소적 맥락 없이 억지스럽게 갖다 놓거나 일부 업체들의 사업적 전유물로 유지되어 오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미술의 공공성에 대한 의미를 찾는 것은 더욱 절실한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할지라도 대안적 방법으로 공공미술프로젝트가 탄생한 것은 바로 그동안 존재해 왔던 환경미술운동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미술의 공공성은 생태주의적 거대 담론, 구체적이고 분명한 수혜자가 있다는 점, 무엇보다 실천적인 내용과 함께 발전해 온 것이다.

히사코와 토모야 수기우라, 쇼와 여대 수기우라 실험실 <눈 속의 눈> 폴리프로필렌 시트, 줄 10×20m 2009
스티로폼으로 2000개의 눈송이를 만들었다. 마치 하늘에서 거대한 함박눈이 쏟아 내리는 풍경을 떠올린다. 한여름에 눈과의 만남과 그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에치고는 세계 유수의 호설지역이다. 평균 적설량은 3m.

지역성, 지역으로 돌아가기

환경미술은 특정 지역의 환경적 요인을 기본으로 삼는 장소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야외 자연 현장에서 작업해 온 ‘바깥미술회’의 초기 명칭은 활동 장소의 지명인 ‘대성리’였다. 야투의 활동 근거지인 공주의 연미산에는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이곳은 자연미술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로서 공주시에서 자연미술공원으로 지정했다. 따라서 비엔날레에 설치되는 작품들은 이곳의 장소적 특성을 벗어날 수가 없다. 물론 이는 작가에게는 표현상의 한계가 되기도 한다.  
장소특정적 미술은 갤러리나 미술관 같은 화이트큐브에서 벗어나 자연과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기존의 미술과 분명 차이를 갖는다. 특히 자연을 중요시하는 작가들에게는 자연 현장에서의 작업이 핵심 요소가 된다. ‘야투’의 ‘사계절 연구’는 계절마다 열리는 자체 워크숍을 개최하여, 관객이나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연과 대면하여 자연 현상에 주목하는 작업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경우, 장소는 작업의 향방을 결정짓는 절대적 요소가 된다.   
자연 현장뿐만 아니라 도시의 환경 또한 환경미술의 주요 무대로서 특정적 장소가 된다. 환경미술은 도시민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면서 지역의 문화와 역사적 특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지역성을 부각시키는 좋은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경기도 안양시의 〈공공미술프로젝트〉나 서울의 〈도시갤러리〉 같은 예를 도시 지역의 환경미술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구도심이나 도시 변두리의 재개발과 관련해서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대전의 〈무지개 프로젝트〉 또한 마찬가지다.
지역성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곳은 일본의 에치고 츠마리 지역의 예술행사이다. 안양의 공공미술 추진단에서 벤치마킹했고, 최근 양평에서 있었던 양평환경미술제의 경우 정치인이나 행정담당자들까지 이 행사를 현장조사하면서 참고했다고 한다. ‘대지의 예술제’라는 명칭의 〈에치고츠마리트리엔날레(Echigo Tsumari Art Triennial)〉는 인구 고령화로 인해 문제화되고 있는 농촌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지역적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2000년부터 3년에 1번씩 개최되는 미술 축제다. 숨겨진 지역 특유의 다양한 가치를 미술 작품 안에 담아내고 보여줌으로써 지역 재생을 도모하는 것이 이 행사의 목적이다. 이렇게 기력을 잃어가던 시골 마을이 예술 축제로 인해 활력을 되찾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관심을 끌고 있다.

미치오 호리카와 <하늘 포획기 09> 거울, 철, 페인트, 유리, 돌 2009
하늘을 반사하는 거울을 만들었다. 프레임 속의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는 ‘움직이는 회화’다.

소통, 주민과 소통하기

환경미술은 ‘소통의 미술’이다. 그동안 미술은 정치적 비판부터 민중 계몽까지 은유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대중과 소통해 왔다. 더구나 작가가 개인 작업실에서 나와 공공의 장소로 이동했다면 대중과의 소통은 불가피하다. 공공장소에서의 미술을 추진하는 행위 주체로 예술가 문화기획자 지역주민 지방자치단체들이 참여하게 된다. 그러니 미술가가 독자성이나 창의성만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여기서 쌍방향의 소통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예술 행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진정한 소통을 문제시하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미술가들이 완전한 자유 의지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불과 두 세기 내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르네상스 이전의 미술가들은 주문자 즉 수요자와 대화해야 했다. 독자적인 작업에 익숙한 오늘날의 미술가들에게는 낮선 상황이지만 공공장소에서의 작업에서 일방통행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미술장식제도에 의한 환경미술도 주민 의사를 무시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파트단지와 같은 주거 환경에 일방적으로 설치되던 조형물이 주민들에 의해 철거되기도 하는 등 세태가 달라지고 있다. 주지하듯이 미국에서 미술장식제도는 작가보다는 공공장소, 도시, 그리고 주민을 위한 제도로 진화하였다. 즉 건축 속의 미술에서 공공장소 속의 미술로, 그리고 도시계획 속의 미술에서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로 발전하였다. 여기서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은 작품 설치가 목적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 교육, 과정 중심의 작업, 미술 행동 등 비물질적인 미술 활동을 중심에 둔다. 또한 미술이 직접적으로 도시 경관에 기여하기보다는 심리적 문제, 소외 상처의 치유와 배려, 민주주의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요구된다. 즉 도시를 이해하고 소통하고 참여할 뿐만 아니라 주민이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끄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오늘날과 같은 ‘거버넌스 시대’에 시민들의 참여가 강조되고 있다.
환경미술은 정치적인 미술이다. 과거 민중미술이 독재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다면, 환경미술은 현대의 가장 큰 이슈인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와 아울러 환경 보호운동을 주창하는 정치적인 경향의 작업이다. 현재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대규모 행사들은 지역 사회와 정치권의 동의와 협력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지역의 정치인들은 환경미술의 가시적 효과를 활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으며 미술인들 또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환경미술이 시작된 초기부터 작가들은 미술을 사회 개혁의 수단으로 보았다. 대표적인 예로 해리슨 부부는 대규모 농업이 사막에 미치는 영향이나 콜로라도 댐에 의한 생태계 변화, 공해로 인한 산성비 등 여러 환경문제에 대한 의사과학적 조사와 실험 결과를 그림 사진 모형 등 다양한 시각 자료와 텍스트로 보여주었다. 그들은 미술을 사회 개혁의 수단으로 본다는 점에서 요셉 보이스와 입장을 같이 한다. 그들의 작업은 사회적 사실주의인 동시에 자체로 환경보호운동이 된다. 이러한 예를 보더라도, 환경미술은 정치적인 예술이자 소통의 가장 적극적인 수단임에 틀림없다.

최정화 <"Congratulation!"> 혼합재료 20×9m 2009
현대 중공업의 중장비와 임시로 세운 건설공사용 중장비 사이를 오방색 천으로 뒤덮었다. 마치 공연 무대에 기계가 주인공처럼 버티고 서 있어 산업도시 울산의 이미지를 압축했다.

창조성, 예술의 본질로 돌아가기

미술이 작업실을 나와 산과 들, 거리로 나섰다고는 하나 근본적인 속성을 버린 것은 아니다. 예술의 독자성이나 창의성과 같은 작가 정신은 아직도 유효하다. 반면 환경미술이나 자연미술 또는 야외설치미술이 집단적으로 자기 복제의 늪에 빠지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어딜 가나 비슷한 형태의 작품들이 다른 작가에 의해 반복 제작되고 있다. 여기서 본 작품을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고 작년에 본 것을 올해 또 본다. 이것이 같은 작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몇몇 작가들이 그들도 모르는 사이 동어 반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진정한 환경미술이란 단순히 환경에 대한 동어반복이 되어서는 안된다. 작업실 속의 개인 작업을 밖으로 옮겨 놓는 정도의 단순한 개념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심도있는 탐구 속에 우러나오는 전문적이고 집중력있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09 November Special - 10th Anniversary!

1999년 9월 창간 준비호

10th Anniversary!

누가 예술을 정의하는가?
미술제도와 저널리즘
이준·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

오늘날의 모든 예술적 실천이나 문화적 활동은 그것이 속한 사회 제도 속에서 정의되고 평가된다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음반을 내면 가수가 되고 전시를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하겠지만, 모든 행위와 작품들이 쉽게 예술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외에서 수많은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일부만이 명성을 얻고 미술사적인 평가를 받는다. 어떤 작가의 작품이 평가를 받고 명성을 얻는가 하는 것은 복잡 미묘한 예술사회(Art Cir cle) 의 이해 관계 혹은 역학 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작가들의 창작 역량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큐레이터나 비평가, 저널리스트, 화상이나 미술관장, 미술 자본과 수집가 등이 시스템으로 만들어내는 미술 제도의 영향력이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실험미술이나 난해한 현대미술이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예술적 가치로서 의미있게 평가해주는 전문가 그룹 혹은 대안공간이나 화랑 미술관 비엔날레 저널리즘 등 영향력있는 사회 제도적 장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즘은 미술 제도 속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모든 매체와 저널리즘이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미술 저널리즘은 메카트렌드의 특징을 분석하는 전문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작가의 재조명이나 새로운 작가의 발굴에 있어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윤리 의식까지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 사항들을 잘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미술 저널리즘은 창작과 수용, 소통과 평가를 원활하게 하는 일종의 사회 공공적 장치이면서도 제도 속에서의 생존을 위한 자본 시장이나 광고주 등 상업주의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우도 많다.
아트인컬처는 지난 10년간 한국미술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새로운 작가 발굴과 문화적 담론을 만들어내는 오피니언 리더이자, 문화적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미술 현장은 전체적으로 활발하지만, 비평이 위축되고 사회적 평가 시스템이 부실한 현재의 상황에서 저널리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예술 비예술 반예술 모든 것이 허용되고 다양성이 용인되는 문화적 다원주의 사회라고는 하지만 아트인컬처가 그 중심에 서서 문화적 파수꾼의 역할을 잘 해 주길 기대한다.

이제, 미술로 세상 좀 바꾸셨습니까?
김준기·미술평론가, 전 《가나아트》 기자

‘아트인컬처’가 문화 속의 예술을 표방하면서 새로운 미술 언론으로 출범한 지 어느 새 10년이 지났다(고 한다). 창간 당시에 《가나아트》 기자로서 김복기 당시 주간을 인터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화 속 예술을 표방한 것은 차별화 분위기가 역력해 보였고, 처음부터 파격적인 표지 모델을 등장시키며 바람을 몰고 왔다. ‘가나’는 강북 잡지, ‘월미’는 강남 잡지, ‘미세’는 지역 잡지라는 공식을 살포하며 쏙닥쏙닥하던 최 모 선배 방식의 미술 언론 지형 분석에 심각한 변화가 생겼다. 《가나아트》가 발행을 멈춘 후, 폐간 멤버의 쓰린 속을 달래준 공간이 아트인컬처였다. 사석에서 발행인에게 ‘성공한 미술 언론인’으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후배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매달 덮쳐 오는 마감의 무게를 견디며, 열악한 미술 언론 환경 속에서도 폐간되지 않고 꾸준히 10년을 이어온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깝다.
프리즘과 포커스, 라운드테이블, 리뷰 등의 많은 꼭지에 참가하면서 가끔 아트인컬처만의 색깔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곤 했다. ‘아트지’는 따끔한 비판과 시니컬한 대화가 가능한 곳이었다. 작가 소개, 전시 소개에 치중한 미술 전문지의 구성이 지나치게 평면적이어서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아트지가 그나마 덜 받았던 것도 비판과 냉소가 가능한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문화 속에서 미술을 발견하겠다는 창간 정신이 어느덧 미술의 덫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아트지를 포함한 모든 미술 언론이 미술로 세상을 바꾸려는 움직임보다는 미술로 세상에 동화하려는 움직임을 훨씬 더 많이 다루고 있다. ‘아트인컬처’로 부르지 않고 ‘아트지’로만 부르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컬처’는 대충 걸치고 ‘아트’로 쭉 밀고 나가야만 하는 미술 언론의 숙명 같은 게 배어 있다.
미술의 장이 허락하는 미술 정보와 담론뿐만이 아니라, 미술 제도 공간으로부터 이탈하려는 부단한 노력들, 미술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비들을 주목할 때, 시대 정신이 살아있는 미술 언론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미술로 세상을 바꾼다’는 창간 이념은 미술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미술 흐름과 동행할 때 가능하다. 때로는 주류 미술계와 불화하는 일까지도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으로 통하는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진지하고 묵직한 대화를 끌어내는 역발상을 기대한다. 기성의 미술이 허락하지 않는 미술을 찾아 나서는 길에 아트인컬처가 상대적으로 많은 부분을 할애해 온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앞으로 새로운 10년이 흐른 후에 환갑줄 발행인에게 다시 여쭐 것이다. 세상 좀 바꾸셨습니까?

동아시아 잡지의 역할은?
유진상·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세 가지의 과제가 동시대의 한국미술 저널리즘에 요구된다. 첫째는, 동아시아에서 미술 저널리즘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둘째는, 그것을 위해 저널이 지향해야 하는 환경이 어떤 것인지 따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그러한 방향과 환경을 구축하는데 함께 일할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것이다. 
(1)우리가 곧 당면하게 될 시대의 근본적인 변화들 가운데 하나는 비(非)서구적 주체가 스스로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사유하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술적 생산 양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즉 한국의 시민들, 나아가 아시아의 대중들이 스스로 생산하고 향유, 소비할 수 있는 예술적 선순환의 구조를 독립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대 미술 저널리즘은 이러한 변화를 선도적으로 예측하고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트인컬처가 영문잡지 art in ASIA를 함께 출판하면서 한국이 아시아 동시대 미술에 기여할 발판을 마련한 것은 시의적절한 것이다. 
(2)아시아의 동시대미술이 전 세계의 대중들에게 공헌하도록 하기 위해서 미술 저널리즘은 두 가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는 아시아인들의 생활과 사상이 가장 탁월하게 예술적 생산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정책 제도 담론 교육 교류와 같은 비평적 기획을 발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술 시장, 공공 지원, 정보 제공, 자료 아카이브와 같은 물리적 환경을 자극하고 촉진시키는 것이다. 사실상 후자가 없이는 동아시아 미술이 독자적으로 동시대성을 획득하는 일은 어렵다. 마찬가지로 후자에 의해서만 전자, 즉 동시대적 가치의 제고 역시 실현될 수 있다.  아트인컬처는 창작/비평과 시장, 이 두 가지 패러다임에서 그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요청이 너무나 커서 당분간 이러한 노력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3)이것이 아마도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한국의 동시대 미술 저널은 사람을 확보해야 한다. 단지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양성하고 함께 커나가야 한다. 문제는 그러한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인적 자원의 확보 노력에 비해 너무나 빠르게 상승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적 자원을 통해 충족시키기 어려울 정도의 문화적 기대 수준을 갖게 됐다. 이것은 시대의 환경적 변화가 우리 스스로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하는 만큼 불가피한 변화이기도 하다. 따라 미술 저널이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기대치도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이 기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예시하는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를 충족시켜야 하며, 아시아는 서구가 주체로 군림해 온 세계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러한 요구의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미술 저널은 현재를 창조하고 미래를 앞당겨야만 한다. 아트인컬처가 세계와 아시아에 눈을 돌린 이래 한국과 아시아, 세계의 간극은 더욱 좁혀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시작의 시작에 불과하다. 목표는 꾸준히 환기되고 더욱 원대해져야 하며, 기여할 수 있기 위한 역량 역시 계속해서 점검되고 탁마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더 넓은 무대로 나와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우리가 십대에 예술을 꿈꿨던 그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동시대 미술 저널은 그 중심에 있다.

1999 신교동 art 창간 멤버

대안적 비평을 기대하며
안규철·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끝내고 귀국했던 1995년에 나는 고인이 된 박이소(당시 박모)와 함께 한동안 도모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술 잡지를 하나 새로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각각 독일과 미국에서 《월간미술》에 정기적으로 원고를 써 보냈던 인연으로 서로를 알고 있었는데, 서울에 갓 돌아온 내게 그가 이 일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 왔던 것이다. 그 당시 작가로서 제자리를 찾는 일이 시급했던 나였지만, 한국에서 ‘제대로 된’ 미술 전문지를 만드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미술시장과 제도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취하면서 소모적인 정보나 관례적이고 동어반복적인 비평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꿰뚫는 논쟁적인 비평을 실음으로써, 미술담론의 새 지평을 열자는 그의 제안에 나는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그것은 MIT출판부에서 나오는 《October》 같은 책을 모델로 한 대안적 미술비평 전문지였다. 아트지 컬러인쇄 대신 모조지에 단색인쇄로 제작비를 최대한 절약하고, 사전 기획에 의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작성된 원고를 엄선해서 싣는다는 것, 그리고 매 호마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편집자를 맡겨서 다양한 관점들이 경쟁하게 한다는 등의 기본적인 원칙이 정해졌고, 창간호 편집기획안과 필진까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이 일에는 김수기 이영철 박찬경 김선정 씨 등이 참여해서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했고, 몇몇 출판사들과의 구체적인 협의도 진행되었다. 그러나 출판사들에게 이것은 간단히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 이 잡지가 언제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의 이상주의적인 계획의 발목을 잡았다.
그 후 14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그때와는 분명 달라 보인다. 몇 안 되는 잡지가 미술계의 정보 전달과 비평의 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잡지의 수도 늘었고 특히 다양한 온라인 정보 채널과 국제 교류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해서 미술 잡지들의 영향력이나 발언권이 약화되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시장의 힘이 비평을 압도한 지도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술 잡지들의 근본적 변화 또는 대안적 비평 공간의 출현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트인컬처는 기존 미술지들에 대한 그 나름의 대안으로 출발하여 이제 10주년을 맞았다. 척박한 환경에서 이루어낸 그간의 성과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면서, 동시에 10여 년 전 우리가 그렸던 불가능한 꿈의 일부가 혹시 이곳에서 되살아날 수는 없을까 조심스런 기대를 해본다.

예술 혹은 매체의 모더니즘 탈출하기?
이영철·백남준아트센터 관장

한국에서 유일하게 권위가 있던 미술 전문지 《계간미술》이 월간지로 전환한 1990년 이후, 여러 경쟁지들이 만들어졌고 한국 미술계는 놀라운 속도로 팽창했다. 우리 코리언들은 속도전, 공간 확장에서 기묘한 수완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야금야금 자신의 권력 공간을 늘려가는 키네틱(운동적) 차원의 좀비적 습성은 본디 성질에 맞지 않는데, 나 역시 살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헛된 동작만 있고 속도에 무감해진 것을 불감증이라 한다. 운동이 상대적이라면 속도는 절대적이다. 운동은 아무리 빨라도 그것만으로 속도가 될 수 없는 반면에 속도는 제아무리 늦어도, 예컨대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경우에조차 여전히 속도이다.
창작자 기획자 편집자들이 하얗게 밤샘을 하며 의자에 앉아 졸 때조차 그들의 몸은 전쟁 중에 말 위에서 잠을 자는 기사(騎士)와 같다. 속도에 대한 몽골리언 후예들이 글로벌 예술계의 현장을 누비기 시작하는 2000년 아트인컬처가 월간미술이라는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초원을 달리는 준마가 혹독한 환경에서 홀로 커 이제 열 살이 되었으니, 사방으로 터진 넓은 평원이 이제 모두 그의 것이 되길 바란다.
몽골 유목민은 시력이 5.0이라는 말이 있다. 먼 곳에 있는 것을 가장 빨리 보는 ‘tele-vision’의 능력을 신석기 시대부터 연마해 왔으니 그 DNA로 인해 백남준이 나왔다. 그는 국가 장치의 부품으로서의 예술 개념을 공격했을 뿐 제도 비판에 자신의 몸을 동여매지 않았다. 샤먼 제국의 칸처럼 빈 공간을 찾아내 질주하고 창조하는 예술, 이는 국가 장치에 묶여 야합하거나, 때로 저항하는 전사들을 만들어온 모더니즘의 제도 미학을 아주 더 잘게 분쇄하여 적분하는 신디사이저 변형 기계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 현대인은 이미 사이보그의 초기 단계에 있다. “여신이 되기보다는 사이보그를 원한다”고 여성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말했다. 국가 장치에 저항하거나 내파시키는 바이러스로서의 비상업적인 아바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백남준의 초기 로봇 작업이었고, 샬롯 무어맨의 행위 예술이었다. 여기서 사백년 간 서양인 남성의 페니스-두뇌에서 가공된 이론을 심어온 한국의 남성, 여성 전문가들의 ‘백인 남성 되기’라는 블랙홀에서 벗어나는 회로를 발견하고, 또 그것을 지속시킬 장치를 만드는 것, 그것이 미래 시대의 한국 예술가들이 실천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쓰여진 역사는 대부분 거짓과 편견으로 뒤범벅이다. 예술 교육에 있어 야생의 정신을 제거하고, 국가 장치의 부품들을 집어 넣어 좀비들을 양산하는 구조에 대해 어떤 방안을 준비하고 있을 것일까. 세상에서 진실은 모두가 허위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을 감추지 않으면 보호받지 못한다. 따라서 진실은 자신의 기억 세포 안에 있고, 지워진 역사 속에 매장되어 있다. 자신의 삶이 사기냐 연출이냐 하는 판단은 훗날까지 지속되어야 할 장기 지속과 긴 승부의 문제다.
아트인컬처가 창간되면서, 재주 없는 글쟁이인 본인은 많은 신세를 졌다. 미술 전문지의 제작에 있어 한국에서 유일하게 탁월한 장인인 김복기 씨와 당시 젊은 수석편집자였던 김경아 씨의 적극적인 배려로 그나마 ‘하고 싶은’ 말을 여기 저기 흩어져 남길 수 있었다. 10살이 된 아트인컬처의 노고에 진정 감사드리며, 바라건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있어 초원을 지배할 야망과, 기술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글로-컬 아트라는 불평등 지형의 공간 안에서 유리벽을 없애는 노력, 이는 탑을 쌓고 진지를 구축하는 자들을 ‘거세’하는 노력을 요구하며, 스텝이나 사막의 이동 기술을 익히고 그에 적합한 규율을 만드는 야만인 예술가들의 연맹체를 요구한다. 그 안에는 공통의 덕목이 필요하다. 한국의 처절한 비극적 상황 속에서 어떤 열등감도 드러내지 않았던 청년 백남준. 그를 작동시킨 심리 기제는 무엇이었나? 세 가지 명제, “당신은 신사인가요?” “내가 곧 황색 공포다” 그리고 “푸른 하늘”.

나의 길동무, 나의 조언자
신세미·문화일보 문화부장대우 미술담당

보다 본격적으로 미술을, 그것도 ‘좀 아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낯설뿐더러 황당한 느낌까지 들게 하는’ 현대미술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가의 조언 중 하나가 ‘좋은 미술 전문지를 정기적으로 찾아 읽기’다. 문화부 기자로서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미술을 처음 담당하기 시작한 2001년, 초보 미술기자로서 미술 전문지는 전시 정보 및 국내외 미술 뉴스를 제공하는 종합적인 공급원이면서 충실한 자문역이었다.
기자로서 좀처럼 미술 장르와 연이 없다가 드디어 미술기자로서 미술 분야를 마주하게 됐을 때, 그 설렘과 흥분은 잠깐, 시각예술인 미술을 글로 옮겨 전하는 일은 특집 기획기사라도 쓰듯 어려웠다.(30년 기자 생활의 대부분을 문화부에서 일해 왔건만, 영롱한 물방울 그림, 뜻모를 기호 같은 추상화, 철판 위에 돌을 얹은 조각, 플라스틱 소쿠리를 쌓은 설치 작품이나 얼굴 클로즈업 사진과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비디오 작품을 기사화하기란 요즘도 매번 긴장을 요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매일 수북이 날라드는 전시 도록과 이메일 중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와 전시를 가려내고, 작품 의미와 비중을 따져 취재하고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미술 전문지가 제공하는 정보들은 효율적인 길동무이자 조언자의 역할을 해왔다. 게다가 아트인컬처는 내가 1980년대 기자 초년병 시절부터 미술전문기자로 익숙한 이름인 이규일 선배의 열정이 깃든 미술 잡지라는 점에서 그냥 반갑고 애정이 갔다.
‘아트인컬처 10주년’이라니, 새삼 작고한 이규일 선배를 떠올리게 된다. 우연히라도 인사동 미술가에서 마주치면 생전의 김기창 화백과의 해외 여행 일화니 1990년대 초반 가짜그림 논란 끝에 미국행 비행기를 타던 천경자 화백의 내밀한 심사 등 미술가의 일화와 야사를 ‘전설 따라 3천리’마냥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내시던 대선배…. 스스로가 미대 출신으로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미술 잡지의 규모와 역할을 확장시키고 있는 김복기 대표를 비롯해 아트인컬처 관계자들에게 이 기회에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2008 서초동 편집회의 광경

돈이 문제다
박성태·《공간》 편집장

돈이 문제다. 명예를 지키고, 의미를 찾고,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그러니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한다. 돈이 있어야 좋은 일도 할 수 있다며, 돈이 없으면 모두 헛일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이러다보니 전통 전문지에서조차 상업화가 대세라며 물불가리지 말고 “지면을 팔라”라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회자된다.
이런 세상에서 전문지 편집자들의 위세는 날로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대다수 전문지의 매출 규모라는 것이 글로벌 기업을 광고주로 갖고 있는 여성지의 반의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니 전문지의 편집자들은 부족한 원고료와 진행 경비로 좋은 필자와 사진가를 섭외하려는 필살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죄송합니다”와 “고맙습니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경쟁력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힘겹다. 정보의 경계가 없어진 시대에 전문지의 촉수는 넓은 세상을 상대해야 하지만, 국내 전문지 가운데 기획과 배포가 글로벌하게 이루어지는 매체는 거의 없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경기의 퇴조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전문지들의 장래에 대한 보다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실 차별성과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는 전문지들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이런 말은 예전보다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그럼 상업성도 부족하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전문지들은 이대로 소멸할까?
답은 ‘그렇다’이다. 가장 먼저 의미도 없고 발간 이유도 불명확한 전문지들은 점차 서점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보다 양질의 정보를 보다 쉽고 값싸게 구할 수 있는데 누가 별 특징도 없는 잡지를 구매하겠는가. 다음으로 변화하지 못하면 빠르게 쇠퇴할 것이다. 종이 매체는 영원하겠지만, 지금 같은 영향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대다수 종이 매체들의 발생 부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문지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콘텐츠를 전달하는 매체를 다각화해야 한다. 그것은 종이 매체, 인터넷은 물론 컨퍼런스나 세미나 등 보다 직접적인 소통 경로도 확보해야 한다. 전문적인 콘텐츠를 요구하는 신문이나 방송과도 협업해 전문적인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해지는 사회 변화에 맞춰 실질적으로 그 정보가 필요한 곳을 찾아가 서비스할 체계도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소도시가 예술을 통한 지역 개발을 원한다면 관련 전문가 집단과 협업을 통해 직접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여력을 갖추어야 한다. 지역 미술관 건립 프로젝트에 기획자로 참여하거나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작고 큰 포럼을 통해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세계화에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 우리가 직면한 세계화는 무한한 다양성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더 자유롭게 보고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전문적인 정보들이 경계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기반으로 다져지고 있다. 특히 우리의 예술 디자인 건축 분야는 가능성이 높다. 남들과는 다른 우리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전문지들은 또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징징대고만 있을 수는 없다. 경계에 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문지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트랜스포머가 되어야 한다. 아트인컬처가 창간 10주년이다. 그들이 만들어 낸 문화적 사회적 가치는 엄청나다. 그래도 어려운 10년이었을 것이다. 앞으로의 10년은 더 지독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더 오랫동안 살아남아야 한다. 질기게 그래서 결국은 품위있게.

‘잃어버린 비평’을 찾아서
박찬경·작가

‘잃어버린 10년’ 동안 아트인컬처는 120권의 책을 쌓아 왔다. 정치가들이 이런 ‘잃어버린 10년’ 따위의 말을 대놓고 하는 것은, 우리 윤리 감각(이 아직 남아 있다면)에 소름을 돋게 만든다. 모든 국민이 병원에서 퇴원할 날만 기다렸다는 말인가? 내게는 전두환 정권의 집권 기간도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었다. 누가 감히 당신의 인생이 허송세월이었다고 말할 수 있나? 은유적 메시지를 너무 말 그대로 해석해서 혼자 화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은유보다 ‘언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은유보다 언어가 중요하다는 말은, 롤랑 바르트 식으로 말하자면 신화보다 언어가, 이데올로기보다 실재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과도 통한다. 민화와 광고를, 판소리와 현대 대중가요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소녀시대’는 확실히 잃어버린 강강술래이다. 물론 그동안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수없이 많다. 10년이 아니라 50년, 50년이 아니라 100년 동안 잃어버렸거나 망가진 것이겠지만, 특히 근래에 격렬하게 망가진 것이 있다. 그것은 말과 글이 아닐까 한다. 불행하게도 미술과 관련된 글은, 아마도 광고 카피와 패션잡지 다음으로 이 특이한 상실에 앞장서 왔다.
이것은 수 십 년 전에 문학평론가 김현이 ‘미술평문을 보면 작문교사의 위치에 서게 된다’는 말을 다시 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작문 실력이나 문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포기하고 글을 읽는 쪽을 택한다. 작문 문제도 있지만, 글이 너무 많아져서 글이 망가진 것은 아닐까? 유식한 블로거들은 미술에 관한 폴더에 자신의 지적 편력을 펼쳐 놓길 좋아한다.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는 보통의 일이 되었다. ‘네이버’는 미술 대중화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미술평론가 중에는 벌써 몇 권의 단행본을 낸 사람도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진정으로 냉소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고, 좋거나 싫거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러한 변화에 의해, 소위 ‘본격’ 미술비평이 놓인 자리도 애매해졌고, 비평의 특권도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미술에 대한 지식과 감상이 ‘수도꼭지만 틀면 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교양’처럼 된 시대에, 미술 저널리즘도 미술 관련 정보와 지식을 독점할 수 있는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된다. 문제는 클릭만 하면 쏟아져 나오는 미술 교양 정보 지식이, 결국 끝없는 상호참조의 늪에, 아리송한 메타포로 가득한 거울의 방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수없이 쪼개진 정보 파편을 관통하는, 또는 눈먼 은유의 나른함을 단절시키는 단 하나의 이야기, ‘실재의 언어’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보와 지식의 파편을 연결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글 쓰는 이의 비평적 입장이다. 그의 가치관과 세계 해석의 힘일 것이다. 그동안 망가졌거나 잃어버린 것은 어떤 투사로서의 비평가, ‘언어를 회복하는 비평가’이다. 저널은 비록 처지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람들을 찾아내고, 기회를 주고 기운을 북돋아 줘야 한다.

저널과 비평의 불편한 진실
반이정·미술평론가

‘비평의 자기 고립’이나 ‘미술 저널의 위기’ 따위의 상투적 진단과 사뭇 진중한 화두를 누군가 던진다면 나는 그 진정성부터 의심한다. 고질적인 사안을 매뉴얼은 고스란히 둔 채 대면하겠다는 태도부터 식상하다. 더욱 진흙탕에서 십 수 년 이상 뒹굴며 생존한 이의 제안이라면 문제의 원인에 처음부터 무감각하거나 ‘위기들’을 초래한 가담자로서, 짐짓 책임을 면하려는 술책 같기도 하다. 비평과 미술저널의 ‘비가시적’ 위기는 10년 주기로 미술저널이 다루는 특집이기도 하다. 이 둘의 공통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항목을 나열하면 이렇더라. 재미없다. 엄숙하다. 주례비평이다. 주류에 줄 서고 비주류에 인색하다. 아젠다가 낡았다. 뉴 미디어에 서툴다 등. 하지만 이런 지적은 원인보다 결과를 단순 열거한 것에 가깝다. 또 이런 비난은 정작 문제의 두 대상인 비평가가 저널의 지면 위에 털어놓은 좌담 내용이기도 하다. 뭔가 절차가 불공정한 거 같지 않나?
지난 10년 혹은 20년간 발행된 미술 잡지의 변모를 살피면 비평과 저널의 고질적 문제 중 일부는 족히 살필 수 있다. 두 시차 사이에서 발견되는 차이점이란 주류 작가군이 대폭 교체되었다는 점이다. 너무 지당한 사실이라고? 그 다음이 문제다. 반면 지면을 채우는 주류 필진의 면면에는 유의미한 편차가 없다. 물론 그 사이 교원으로 임용되고 기획자로 전향해 투고 횟수가 준 경우는 있어도,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저널이 언제건 지면을 내주는 엄연한 현역으로 간주된다. 2선 퇴진도 아니요, 평단의 세대 교체와도 거리가 있다. 연륜과 함께 언어 연금술과 학식이 쌓이며 자기 입지를 탄탄히 점했노라 논박할 수 있겠다.(나도 이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일 턱이 있나. 세월 따라 숙련된다는 이치라면 작가라고 예외일 턱이 없을진대! 10년 혹은 20년간 작가군과 작품의 양상은 몰라보게 탈바꿈했지만, 비평은 자신을 가둔 진입 장벽 내부에 안주해 왔다. 왜일까? 평문이 기거하는 매체와 등단 체제를 살필 필요가 있다.
일부 매체는 후대 필진 등용문으로 공모제를 실시한다. 그렇지만 유의미한 세대 교체의 기미는 거의 감지되지 않는 형편이다. 왜일까? 현행 공모 방식으론 새 얼굴 발굴에 한계가 보인다. 미술평론 공모는 예외 없이 논문 형식의 완고한 틀을 고수한다. 무려 원고지 100매 분량에 별 시답잖은 각주가 매달린 원고 형식 말이다. 고작 십 편 이내의 응모작이 답지하는 현실이 당연하다. 사정이 이러니 학술 논문 형식과 장문 집필에 미숙하거나 위화감을 느낄 만한 숨은 인재는 지원 자체를 꺼릴 공산이 크다. 학술적 심도를 요구하는 기성 공모제의 입장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엄격한 스펙의 신인들로 평단을 살찌우겠다는 염원(?)이 담겼으리라. 그렇지만 첫 술에 ‘기성품 논문’ 한편으로 승부를 가르자는 현행 공모제는 마치 미술대전의 아카데미즘과 다를 바가 없고, 선정자조차 현장에 던져졌을 때 능숙한 기량을 발휘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 이렇게 걸러진 신인들은 여지없이 선배 평론가들이 걸어온 길, 혹은 줄곧 문제로 지목된 노선-‘주제넘게 엄숙한’ ‘학술을 빙자한’ ‘참을 수 없이 지루한’-을 고수하며 제도권 평단에 유입된다. 또 다시 악순환. 십 년이 지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평론의 위기를 좌담할지도 모른다.
이 같은 후진 양성의 관행은 학회 중심, 나이 순, 또는 출신교 중심으로 종속되어 보수적 비평 카르텔을 형성할 위험이 매우 높다. 자연히 평론 공모제의 일면은 유능하지만 독자적 안목을 고집해 온 신진의 진입을 불필요하게 가로막고, 기성 평단의 지위를 보장하는 장벽으로 오용될 수 있다. 이를 타계할 대안으로 2~30매 내외의 단문 네댓 편을 받아, 응모자의 다채로운 자질-진정성, 비평 윤리, 분석의 순발력, 학술적 깊이 등-을 입체적으로 평가하도록 기준점을 유연하게 이동시킬 것을 제안한다. (당위적으로는)논리 싸움에 사활을 거는 평론가라면 등단부터 몸 사리고 선배 대하는 예절 익히느라 진 빼느니, 차라리 기고만장 까불다가 깨지면서 배우고, 만신창이가 될지언정 느리게 성장하는 편이 평론가 본인과 미술계 전체를 위한 길일 게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비평가에겐 차라리 선배가 없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수 십 년간 개선의 기미가 없는 평단의 자질 문제와 비평가의 자기 고립은, 신인 발굴의 폐쇄성과 예의 바른 후배로 성장하길 바라는 평단 내부의 보수성으로부터 진작 예고된 것이다.
평론가와 미술 저널 사이의 또 다른 불편한 진실은 미술 저널이 자기 논조의 차별화 없이 그저 판매 부수를 기준으로 주류와 비주류로 서열화된 현실을 들 수 있다. 주류 저널은 경영적자 위험에 덜 노출된 매체를 의미할 뿐 주류건 비주류건 미술 공동체의 안정성을 공격하는 논조에는 똑같이 주저한다. 비평가를 둘러싸고 있는 매체의 형편이 이렇다. 이 뜨거운 감자는 훨씬 많은 지면을 요구하기에 이 정도로 줄인다. 나 역시 매체 환경의 근본 한계에 뾰족한 해법을 현재 알지 못한다. 다만 수년 전부터 정실에 사로잡힐 필요 없이 ‘제대로 비뚤어진’ 언동을 일삼아도 무방한 비미술지(일간지/주간지)로 투고 방향을 전환한 까닭이며, 아직은 내 주제를 넘어서지만 향후 1인 미디어를 대안으로 고민 중인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볼로냐대학교 미술사학과는 37살이고, 아뜨인컬처는 10살이다
노순택·작가

art 창간 10주년에 관한 글을 쓰다 말고, 어쩌다 나는 광주비엔날레 재단의 공식 홈페이지를 비공식적으로 방문했다. 제8회 예술총감독에 선임된 마시밀리아노의 세련된 사진 아래 그를 소개하는 짧은 글이 달려 있었다. 원고지 3.2매 분량이었다.
“2010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으로 선정된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는 올해 나이 37살의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미술사학과는 올해 나이 37살이다.
“2004년에는 <마니페스타5>(스페인)와 <현재의 기념비>(아테네)로 2006년에는 베를린비엔날레 공동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이런 문장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마니페스타5’, ‘현재의 기념비’로 활동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마니페스타5’, ‘현재의 기념비’, ‘베를린비엔날레’의 공동큐레이터로 활동했다는 의미일까? 이 문장은 그야말로 열린 구조다. 아무렇게나 해석해도 말이 될 듯한 동시에, 어떻게 해석해도 말이 안 된다.
“미국 편집장을 시작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에서는 차라리 웃었다. “미국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두각을 드러냈다”고 간결하게 말하면 안 되는 걸까? “시작하며~, 시작했으며”를 반복해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었던 걸까? 아트라서?
모름지기 예술이란 ‘우리말 맞춤법’의 엄격한 잣대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이건 맞춤법 위반의 차원을 넘어서는 코미디다. 비록 예술이 ‘위반의 언어’라 해도, 그건 예술의 문제지, 예술총감독 소개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조금 슬펐다. 원고지 3.2매, 여섯 문장으로 짜인 그 짧은 글의 곳곳에서 지뢰를 밟아 부끄러웠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내 지적을 트집으로 생각할까, 아닐까.
아트는 경계를 묻는 일이지만, 그래서 때론 위반을 촉구하지만, “이것도 아트니까 이해해 달라”는 식의 구걸은 아니다. 난해함은 사고를 촉구하는 즐거움이어야지, 어설픈 언어 구사 능력을 변명하는 ‘찌질리즘’이어선 곤란하다.
그런 합의와 바탕 위에서, 문자 그대로 art in culture, 즉 ‘문화 속 예술’은 날개를 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아트라도 기본은 중요하다. 아니 아트이기에 기본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아뜨는 아!뜨겁고, 아뜨인컬처는 아!뜨거운 곳에 걸쳐 있기를. 오늘 그 당위를 구현하고 있는지는 ‘아뜨인컬처’ 스스로 점검하시길.

2007 한남동 컬러 교정에 필요한 컬러프린트

시대가 변하고 있건만…
서진석·대안공간루프 디렉터

필자는 10년 전의 한국 현대 미술계를 다시금 바라보며 아트인컬처 창간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1999년 IMF 이후 급속히 변화되는 글로벌 세계 경제로의 적응은 우리나라 경제계에게는 생존과도 같은 절박한 문제였다. 예술계 내에도 비엔날레 시스템과 다양한 국제 교류의 시작, 대안공간 운동 등 세계 미술계와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새롭고 다양한 대안적 시도들이 이뤄졌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나라 미술 언론계에도 요구된 새로운 필요성이었다. 아마도 아트인컬처는 그러한 새로운 흐름에 맞추어 한국의 예술 저널리즘에 새로운 대안성을 제시하려 창간되었다고 생각되며, 지금까지 그 나름의 성과도 이루어냈다고 본다.
2009년 현재 우리 사회는 또 다른 변화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냉전시대 이후 30년 간의 우리 사회를 이끌던 신자유주의경제 체제의 몰락이 선언되었고 세계 각국은 지난 사회 경제의 흐름에 대한 재평가와 또 다른 대안적 방향성의 모색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동시대 미술계도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추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시점이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물결 아래 에서 미술계는 자유경제시장에 조건 없이 편승하였고, 그와 함께 시작되었던 동시대 미술계의 대중적 황금기는 그 정점을 지나치고 있다. 가속의 변화 속에서 팽창하던 현대미술의 흐름에 쉼표를 찍으며 우리는 그간 지나쳐버렸거나 놓쳤던 부분들, 찾아 끊어진 고리를 연결하고 다시 확인하는 재정립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서구 사회 경제는 국가 중심의 사회적 공공성을 중시하는 대안적 케인스학파의 논리가 다음의 사회 경제를 주도해 나갈 체제로 제시되고 있다. 과거 우리의 저널리즘도 예술적 가치나 사회 공공적 가치가 아닌 경제적 논리로 현대미술을 바라보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물론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서 미술이 가진 경제성이나 사적 소유의 가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이고 더욱 더 확장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대미술은 다양성과 균형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자본주의 시장 논리만이 아닌 예술의 사회, 공공적 가치가 21세기 새로운 예술의 주요 흐름으로 부상되고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현대미술을 선도해 왔던 영국과 미국은 경제 위기와 함께 많은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다. 그와 반면에 예술의 공공적 사회 가치와 균형을 이루며 다양한 예술 정책을 지원했던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은 현대미술의 또 다른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음을 우리는 느끼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의 시작과 동시에 나타난 경제 위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대안적 예술 언론지의 존재는 선택이 아닌 필요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양성과 실험성, 국제성을 추구하는 아트인컬처는 21세기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글로벌 예술잡지로의 거듭나고 있음을 인식하며, 대중들에게 더욱 더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잡지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우리’의 잡지를 위한 ‘우리’의 질문
최빛나·유트레히트 CASCO 디렉터

현대미술 담론은, 특히 한국 미술계 내의 담론의 장은 발언의 시대 그리고 비평의 시대를 거쳐 소위 ‘1인 미디어 시대’로 종종 언급되는 그런 정보 네트워크의 시대를 맞이했고, 그리고는 내내 어떤 혼란에 빠져있는 듯하다. 단지 모두가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으니 기타 조직된 담론의 장은 맥을 못추고 있노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 시대의 행동과 소통의 벡터가 20년 전과 달리 무척이나 복잡 다발 변덕 유연 우발적으로 작동하면서 그 장이라는 게 결코 하나의 시점에서 정의될 수 있는 어질어질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그 풍경을 그려내는 주체들의 발화의 범위나 방식이 결코 한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미술 담론을 형성하는 매체에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 것만은 분명한데, 아직 그 해답은 미궁미진한 상황을 직시할 뿐이다.
해외잡지가 더 이상 귀하지 않은 세상, 지난 도큐멘타 매거진 프로젝트가 보여주었듯이 국제적인 소통의 장에 참여하려 하면서도 동시에 국지적인 시력 또한 잃지 않으려는 전 세계에 걸친 크고 작은 미술 잡지들의 ‘출판에의 의지’, 나아가 출판의 정의와 범위마저 확정해 버리고 있는 그 의지가 어느 때보다 열렬한 세상이다. 그리고 수많은 미술 정보-비평 관련 웹사이트가 범람함에도 불구하고 《프리즈》나 《아트포럼》과 같은 잡지들의 헤게모니는 여전한 세상이다. 이러할진대 잡지라는 게 어디에 위치하며 어떻게 의미를 생산하며 변화해야 하는지. 아트인컬처를 향해 다소 막막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누가 질문을 던지는가. 여기서 질문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게 여명이다. 아직 실체로서의 ‘우리’는 없으나 그것의 몇몇 성질은 분명하다. ‘우리’ 아트를 매개로 해서, 또한 현대미술을 매개로 해서 아직 존재하지 않은 결코 완성되지도 않을 공동체의 감각을 깨우려 한다. ‘우리’는 반드시 달필도 아니고, 그렇다고 글에 두고두고 공을 들일만큼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언제나 소통하기를, 교감하기를, 두려움 없이 비판하고 비판 당해보기를, 따라서 어찌됐건 보고 듣고 절실했던 것을 써보고 나눠보기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글의 틀이 필요한 만큼 틀의 파격도 필요하다. 글을 통해서 생각을 해방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규격화된 글이라면 곤란하다. 또한 ‘우리’는 서울 혹은 한국에만 있지 않고 자카르타 방콕 유트레히트 런던 바르샤바 브뤼셀 상하이 이스탄불 등 세계 방방 곳곳에 있다. 그러니 글의 영문 번역은 필요조건이다. 안된다면 ‘그림’이라도 좋아야 한다. 양질의 이미지들이 존엄하게 레이아웃되어야 한다. ‘다른 우리’의 잡지들과 협업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거주할 공간이 좀 더 살만했으면 한다. 좀 더 가벼워지고, 보드라워지고, 작아도 여유로운, 또한 저만의 취향과 양식을 담은 그런 잡지 공간을 욕망한다. 기타 등등. 이런 ‘우리’가 묻고 있는데 막막한 질문이라도 답이 없지 아니한 것은 않은가라는 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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