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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9.09

Abstract

특별 기획 이미지에서의 서사 연구 해마다 새로운 주제의 공동연구를 기획하는 쿤스트독미술연구소의 2009년 주제는 '이미지에서의 서사 연구'이다. 지난 6월 1일 시작한 기조발제와 현재까지 진행 중인 릴레이 비평 4편 중 3편을 함께 모았다. 본 특별기획은 이미지에 나타난 서사와 이미지에 덧씌워진 서사의 지배적 이데올로기 벗겨내기, 현대미술에서 미술사적인 예술의 종말 혹은 죽음에 대한 고찰, 회화의 서사성과 과학을 통한 작품에 대한 새로운 이해, 미국 사회의 변화에 따라 나타난 다큐멘터리 사진의 서사에서의 변화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와 서사에 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혹은 다른 목소리를 내며 '이미지에서의 서사'라는 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Contents

표지 김동연 〈Free Spectator〉 나무, 세라믹, 청동에 아크릴릭 2009

에디토리얼 잡지를 떠나는 L에게_김복기

프리즘
    국립현대미술 서울관, 지중(地中)미술관으로_최열
    이제, 서울 광화문에 ‘광장’은 없다_안태호

김순응의 줌인 아트마켓 7
    문 닫는 갤러리, 확장하는 갤러리

포커스
    패션의 윤리학|울트라 스킨_조선령
    석철주|김선형_김백균
    또 하나의 일상, 극사실회화의 어제와 오늘_이선영

아티스트 인터뷰
    김동연, 알레고리로 짓는 ‘문명의 풍경들’_김복기

아웃 오브 코리아
    권오봉, 익명의 흔적들_이달승

이미지 링크 황준현

아트 마켓
    KIAF, 미술 시장을 다시 살릴 것인가_김현

작고작가 재조명 하인두_김복영

특별 기고
    전쟁의 땅, 오키나와를 가다_최태만

화가의 앨범 민복진

특별 기획 이미지에서의 서사 연구
    (1) 이미지/텍스트, ‘외면 보기’에서 ‘내포 읽기’로_김성호
    (2) 현대미술에 나타난 죽음의 서사_김수
    (3) 이미지에 나타난 서사의 과학적 이해_박정현
    (4) 미국 사회와 다큐멘터리 사진의 서사 변화_서현주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나형민|백정기|김지희|김소희

전시 리뷰
    경계 없는 세대-라틴아메리카의 현대미술|김성룡|이상준
    미술시네마: 감각의 몽타주|김재환|이영민|알렉 소스|손진아
    이태희|차혜림|차동훈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국내 최초 1만원 경매, 100% 낙찰!

데이비드 윌라드슨 <Seven's Company> (낙찰가 112만원)

국내 최초 1만원 경매, 100% 낙찰! 
K옥션, 8월 온라인 프린트 경매 개최

K옥션은 지난 8월 21일부터 26일까지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초로 ‘만원 경매’를 실시했다. 이례적으로 모든 작품이 만원에 출품되어 관심이 집중됐고, 100%의 낙찰률과 총 낙찰액 2300여 만원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4번째로 열린 이번 온라인 경매에는 한국 근현대 작가 김기창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의 사후 판화 소품들과 해외에서 200~3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는 디즈니 판화 총 100점이 출품되었다.
모든 작품의 시작가가 만원으로 책정된 만큼 마감시간이 임박해서는 대다수의 작품들이 뜨거운 경합을 이끌어 냈다. 이번 경매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작품은 데이비드 윌라드슨의 <Seven’s Company>. 이 작품은 총 123회의 응찰을 거치며 최고가 112만원을 기록했다. 윌라드슨은 전 세계에 몇 명뿐인 디즈니 공인화가로 이번 경매에 출품된 그의 판화 총 22점은 뜨거운 경합을 불러일으키며 그 인기를 자랑했다.
그밖에 톰 에버하트의 <Boring Snoring>이 87명의 경합 끝에 81만원에 낙찰됐다. 에버하트는 원작자 찰스 슐츠로부터 스누피를 그리는 것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허락 받은 작가다. yBa작가 마크 퀸의 사진 작품 <Mutan t>는 79번의 응찰을 거쳐 72만원에 주인을 찾았고, 피터 엘렌쇼의 작품도 총 61번의 응찰 후에 62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국내 작가 중에는 장욱진의 사후 판화 작품 <나무와 까치>가 47만원에, 박수근의 <빨래터>가 26만원에 낙찰되었다.
이번 경매는 유명 작가의 소품들을 낮은 가격으로 출품시켜 애호가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했음은 물론이고, 관심은 갖고 있었지만 입찰에 참여하지 않던 잠재 고객층에게 첫 시도의 문턱을 낮춰주었다. 100%의 낙찰률은 미술품 경매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를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4월 온라인 경매에서 두드러졌던 지방 중소도시 고객층의 참여 또한 더욱 증가해 미술품 경매의 저변 확대를 실감케 했다. 폭넓은 고객층의 관심과 참여가 돋보인 이번 경매에서는 ‘미술품 경매의 대중화’라는 온라인 경매의 취지가 돋보였다.|김민지 기자

왼쪽·장욱진 <나무와 까치> 사후 판화 (낙찰가 47만원)|오른쪽·이중섭 <봄의 어린이> 사후 판화 (낙찰가 23만원)

오사무 제임스 나카가와展-전쟁의 땅, 오키나와를 가다

오사무 제임스 나카가와 <치부(Chibu) 가마> 코튼페이퍼에 잉크젯프린트 101.6×152cm 2008 작가 소장

전쟁의 땅, 오키나와를 가다
비극의 역사를 재생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글|최태만·미술평론가, 국민대 교수

반점 혹은 실재계에 난 구멍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황금비율과 상관 없이 세로로 길쭉한 비례를 지닌 이 사진 속의 풍경은 특정한 ‘장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비관습적인 비례가 사진 속의 풍경이 실재하는 대상을 재현한 단일 사진과 다른 것임을 드러내면서, 장소의 의미는 이미지 전면으로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 표면 아래로 잠복한다.
게다가 이 사진 속에는 시점이 없다. 아니, 없다기보다 시점은 전면에 깔려 있다. 그래서 나의 눈은 사진의 특정한 부위에 멈추지 못하고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말 그대로 정처 없이 표면을 훑어 내려가듯 사진 속의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더듬어야만 한다. 눈으로 더듬는 이 행위는 이 사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절벽처럼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는 오랜 시간에 의해 침식된 암반의 피부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거칠고 날카로우며, 강인하면서 부서지기 쉬운 바위의 거죽에 마치 터럭처럼 듬성듬성 자라난 잡초와 노쇠한 피부처럼 갈라진 틈들, 덩어리 채 떨어져 나간 부위에 난 구멍, 상처에 돋아난 부스럼이나 딱지처럼 응고된 바위 위로 아주 작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푸른 하늘이 옹색하게 펼쳐진다.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이 사진은 그래서 가슴을 짓누르는 ‘공간 공포(Horror Vacuum)’와 같은 상태를 경험하게 만든다. 이 닫힌 공간을 하늘과 연결하는 것은 절벽의 가장자리 끝 지점에 홀로 자라고 있는 열대수 한 그루로서 그것은 넓은 면적을 장악하고 있는 절벽의 표면과 하늘이란 이 두 대상을 연결시키는 피뢰침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기묘한 풍경은 따라서 사진 속의 이미지가 현실이 아니라 그 너머의, 작가의 말대로 ‘극현실의 시각(Hyper-real Vision)’에 대한 기록임을 짐작하게 만든다.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위의 표면이 정밀하게 편집된 나머지, 다시점의 평면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바위의 표면을 세로로 길게 가로지르는 반점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핏자국처럼 선명한, 마치 실재계에 난 구멍처럼 나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이것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한 ‘푼크툼(Punctum)’, 즉 불시에 나를 찌르고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상처이자 그 파편이다. 그러나 이 반점은 침묵과 망각에 의해 가려진 역사의 상처에 대한 증언을 요구하는 하나의 출발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사진이 예사롭지 않은 담론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사무 제임스 나카가와 <반타> 연작 코튼페이퍼에 잉크젯프린트 50.8×167.64cm 2008 작가 소장

태평양전쟁과 오키나와의 비극

오키나와의 기노완(宜野灣)시에 위치한 사키마(佐喜眞)미술관에서 지난 6월 17일부터 7월 20일까지 나카가와 오사무(中川 治) 제임스 나카가와의 사진전이 열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사무 제임스 나카가와는 196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 사진작가이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에 의해 도쿄로 이주한 그는 1977년 다시 미국의 휴스턴으로 갈 때까지 도쿄에서 성장했다. 태어나자마자 도쿄로 갔으므로 그가 아버지를 따라 다시 미국으로 갔을 때는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소년이었으며,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 속에 십대를 보냈다.
성장기에 두 문화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갈등과 혼란은 그의 작품에서 특히 가족사진을 모티프로 과거의 현재를 병치시킨 <사이-과거의 경계에서>란 연작에 잘 나타나고 있다. 휴스턴의 세인트토마스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으로 돌아가 당시 유명한 사진작가였던 숙부 오가와 타케유키(小川隆之, 1936~2008)의 조수로 1년간 일하며 그에게 사진을 배웠다. 다시 휴스턴으로 돌아가 휴스턴대학의 대학원에서 포토몽타주처럼 예기치 않는 맥락 속에 대상들을 병치시키는 디지털 기법을 배운 그는 1995년 제1회 도쿄사진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하여 입상하면서 비교적 순탄하게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휴스턴대학의 강사를 거쳐 인디아나대학 사진과 교수로 임용된 그는 미국의 주요 저널에 리뷰가 실릴 정도로 주목 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주로 가족사를 중심으로 작업하던 그의 작품에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아버지의 죽음과 딸의 출생을 경험하면서부터였다. 아버지의 별세 이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고픈 충동에 사로잡혔던 그는 자신이 자란 도쿄가 아니라 아내의 고향인 오키나와를 선택했다. 아내와 딸과 함께 2006년부터 오키나와에 장기 체류하고 있는 그는 그곳에서 거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할 만한 작업의 변화를 시도했다. 아내와 그녀의 친척들로부터 오키나와 전투에 대해 들은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수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몸을 날려 죽은 절벽을 답사하며 그 풍경들을 사진에 담았다. 사키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나카가와의 개인전 전시명은 <반타 -녹슨 기억>이다. 반타란 오키나와 말로, 60여년 전 오키나와 사람들이 투신했던 그 절벽을 일컫는다.
사키마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봤을 때, 대부분 수직으로 길게 걸린 사진이 미술관 제일 깊숙한 방에 걸려 있는 마루키 부부의 <오키나와 전쟁도>와 조응하며 마치 한 폭의 수묵산수처럼 비쳐졌다. 멀리서 얼핏 봤을 때의 인상은 그랬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작품의 표면을 훑으면서 그 예사롭지 않은 아우라 속에 응축된 비극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산호섬인 오키나와의 해변은 오랜 시간에 해풍과 파도에 의해 침식된 기암괴석이 만들어내는 장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의 흔적이 배어 있는 이 바위 절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더욱이 맑고 투명한 쪽빛 바다와 더없이 푸른 하늘, 그 사이로 피어나는 구름을 보노라면 모두가 동경해 마지않는 파라다이스를 연상하기 좋은 장소가 바로 이 해변이다. 조선시대의 신분 제도의 모순에 저항했던 홍길동이 찾아 떠난 이상향이 바로 이곳 오키나와가 아닐까. 낭만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이곳이야말로 천혜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낙원으로 비쳐질지 모른다. 특히 오키나와의 주요 지역을 미군부대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오키나와 산업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중요도는 그만큼 높다. 그래서 많은 관광 안내책자들은 오키나와의 자연과 문화는 물론 심지어 오키나와 전투까지 관광상품의 하나로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나카가와의 작품은 우리가 가진 이러한 기대를 위반하고 있다. 그도 연안을 가득 메운 미군 함대를 바라보며 몸을 날렸던 오키나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서 있었던 절벽에 올랐을 때, 과거의 비극보다 그 아름다운 자연에 먼저 경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 풍경을 단일 사진으로 기록했더라면 그의 작품에 깊이 파여 있는 상처, 그 실재계에 난 구멍, 그럼으로써 우리를 그의 작품 속으로 빨려들이는 흡인력을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한 장의 사진으로는 그 풍경이 지닌 장엄함과 엄숙함, 거의 ‘숭고’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자연 안에 잠재된 역사적 비극이 불러일으키는 통렬한 공포를 담기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 절벽이야말로 비참했던 전투의 현장을 지켜봤던 목격자이자 증인임을 확인하며 작업실로 되돌아갔다. 오키나와 해변을 답사하며 그 풍경을 사진에 담은 지 6개월 후 작업실에서 그는 오키나와 전투에 대한 은유로서 수천 장에 이르는 사진들을 디지털 기법을 이용해 정밀하게 조합함으로써 <반타> 연작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흥미롭게도 오키나와 사람들이 최후를 맞이하며 서 있었던 바로 그 지점, 절벽의 끝자락에서 파도가 부서지는 아래쪽을 바라보며 촬영한 것도 있다. 평면에 인화된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 앞에 서면 고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품은 투신 직전 오키나와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와 절망감을 되살리게 만든다. 해안에 펼쳐진 반타와 함께 수많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서로를 죽이는 비극이 일어난 또 다른 장소는 오키나와 말로 ‘가마’라고 부르는 천연 동굴이었다. 전투를 피해 모여든 주민들 속에는 일본군도 섞여 있었다. 패망이 임박하자 일본군은 주민들을 동굴에서 쫓아내는가 하면 그들로 하여금 자결을 강요했다.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자포자기 상태에서 아버지가 자식들의 목을 조르고, 간호사가 가족들에게 청산가리를 주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많은 주민들이 일본군과 섞여 있다가 일본군 소탕작전에 나선 미군의 화염 방사기에 불타죽기도 했으니 이 동굴이야말로 안전지대가 아닌 생지옥이었던 것이다.
그 자신이 오키나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도 오키나와 주민들에게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끔찍한 공간이자 성지(聖地)이기도 한 동굴로 성큼 들어간 나카가와는 망설임과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지, 여기서 죽어간 이들을 위해 자신이 표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자문하며 랜턴을 켠 후 약 10분 정도 셔터를 열어놓고 그 공간을 촬영했다. 습기로 가득한 어두운 동굴, 인골, 밥그릇, 수류탄 파편 등 여전히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 동굴사진을 보면서 내가 4.3제주항쟁이나 노근리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에 대해 떠올린 것이 지나친 비약만은 아닐 것이다. 전쟁의 비극은 비단 오키나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펼쳐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애써 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많은 사람들이 가마에서 자신의 가족을 서로 죽이게 만들었고, 높은 절벽에서 몸을 던져 죽도록 강요했는지는 명백하다. 나카가와의 작품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그의 사진 속에서 인간의 모습은 부재이다. 그러나 이 부재는 화면을 꽉 채운, 그래서 실재하는 절벽 이상으로 우리를 공포스럽고 숨 막히게 만드는 장벽을 더욱 선명하게 떠올리도록 유도한다. 그의 작품은 르포르타주나 다큐멘터리 사진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기억의 심연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마루키 이리, 마루키 토시 공동제작 <오키나와 전쟁도> 400×800cm 1984 마루키미술관 소장

녹슨 기억의 재생, 고통스러운 과거의 소환

나카가와가 이 조립된 풍경사진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히 아름다운 풍경 이면에 새겨진 역사의 상처이다. 태평양 전쟁 중 남양군도에서 패전을 거듭한 일본군은 미군의 일본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지구전을 치루기 위해 1944년 4월 오키나와에 육군과 해군을 중심으로 한 제32군을 편성하고 9월에는 오키나와 수비군의 진용을 갖추었다. 그러나 1944년 10월 10일, 막강한 화력을 지닌 미군은 주로 오키나와 남부를 겨냥하여 대규모 공습을 퍼부었는데 이날 폭격으로 668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했다. 미군은 오키나와 본섬에 상륙하기 시작한 1945년 4월 1일 이전인 3월부터 공중 폭격은 물론 함포 사격을 통해 섬 전체를 초토화 하다시피 했다. 이른바 ‘철의 폭풍’으로 불리는 이 물량 작전은 3개월에 걸쳐 계속되었고, 과거 류큐왕국의 왕궁이 있던 슈리성(首里城)에 사령부를 두고 있던 일본 제32군의 주력은 궤멸될 수밖에 없었다.
사령관 우시지마(牛島滿)는 남은 일본군을 최후의 저지선인 오키나와 남부로 철수시키며, “오키나와 남단의 절벽에 한 치의 땅이라도 남아 있는 한, 모든 병력과 동원 가능한 모든 주민들은 최후의 한 명까지 싸워라”는 명령을 내렸다. 마침내 일본군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는 6월 23일 자결하기 직전, “포로로 사로잡히는 수모를 당하지 말고 최후까지 싸워라, 그대들은 영원한 대의(大義) 속에 살게 될 것이다”라는 최후의 명령을 통해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미군에 대항해 싸울 것을 종용했다. 이 최후의 명령은 오키나와 주민들을 참혹한 비극으로 내모는 것이었다. 지휘부를 잃어버린 일본군은 주민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비무장의 많은 주민들이 가마에서 집단 자결하거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반타에서 투신하도록 방치하거나 오히려 조장했다.
또 많은 주민들은 패퇴하는 일본군에 의해 간첩 행위를 할지 모른다는 어처구니 없는 혐의로 살해당하기도 했다. 일본군에게 그들은 철저하게 ‘타자’일 수밖에 없었으므로 선택의 여지는 거의 차단되다시피 했다. 만약 우시지마가 항복하고 적인 미군에게 비무장 민간인의 보호를 요청했더라면 그가 죽은 6월 23일 이후에 벌어졌던 수많은 민간인들의 집단 자결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일본군, 더 나아가 전쟁을 수행하던 일본은 오키나와 주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이 있다.
원폭 투하와 함께 일본은 항복했지만 오키나와 전투는 종전 후에도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군에 의한 군정시기를 거쳐 1972년 다시 일본에 귀속된 오키나와는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의 현장이자 평화를 실천해야 하는 장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죽은 많은 주민들이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합사되어 있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지켜보면서, 또한 사키마미술관 옥상에서 오키나와에 길게 펼쳐진 미군기지를 보면서 나는 오키나와의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감상적이다. 그것이 설령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현재의 안온함에 젖어 망각하기를 원했던 과거의 고통을 현재의 시점으로 소환할 필요가 있다.
호미 바바(Homi K. Bhabha)는 기억을 ‘과거의 고통스러운 재생’이라고 했다. 기억이란 이처럼 고통을 수반한다. 나카가와의 사진작품은 이러한 고통의 재생을 위한 하나의 제안이다. 그의 작품이 지닌 예술적 가치 못지않게 내가 그의 작품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는 것에는 그의 용기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그의 작품은 오키나와 주민들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나아가 오키나와를 남쪽의 아름다운 산호섬 리조트쯤으로 치부하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도 그의 작품이 얼마나 무서운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는지 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과거의 재생에만 머무르고 있지 않다. 폐부를 찌르는 이 고통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매우 은유적인 것이지만 그의 작품에는 그런 힘이 함축돼 있다.

마루키 이리, 마루키 토시 공동제작 <원폭도-불> 180×720cm 1950

패션의 윤리학 | 울트라 스킨

줄리안 로즈 <Livedolls N°2> 람다프린트 80×120cm 2006

표면의 안과 밖, 그 심층 속으로

글|조 선 령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는 겉모습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주인공 안드레아가 패셔니스타로 변신하게 되는 터닝 포인트가 나온다. 그 계기는 “네가 지금 입고 있는 스웨터의 푸른색에 어떤 역사가 담겨 있는 줄 아니?”라며 패션산업은 문화를 창조하는 일임을 설파한 직장 동료 나이젤의 조언이다. 우리는 예쁜 옷과 화장에 열광하면서도 종종 안드레아처럼 옷은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치부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나이젤의 말에 동의한다면, 옷이나 피부는 단순한 ‘껍데기’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표면은 심층의 반대말이 아니라 심층과 다른 어떤 것이다. “스타일은 사람 자체이다”라는 뷔퐁의 말처럼, 옷 자체가 자아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한편 피부는 우리 자신의 것이면서 또한 타자의 소유일 수도 있다. <울트라 스킨>전에 출품된 니 하이펑의 작업은 문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 역설을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의 벗은 상반신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항해일지와 네덜란드인들의 취향에 맞추어 중국이 수출한 도자기 문양들을 새긴다. 중국인이면서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중국에서 네덜란드로 수출된 도자기의 의미가 겹치면서 사회심리학적 의미가 각인된 장소로서의 피부 문제가 드러난다. 문신은 묘한 역설을 갖는다. 자신의 신체 위에 각인되는 것이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안과 밖, 심층과 표면의 경계선은 생각보다 그렇게 명확하게 구별될 수 없다.

아네트 코우웬버그의 설치 전경

옷의 사회정치적, 정신병리학적 조망

<패션의 윤리학 : 착하게 입자>전과 <울트라 스킨>전, 이 두 전시는 가장 직접적인 감각성의 차원에 놓여 있어서 어떤 차이나 의미가 각인되기 어려운 장소처럼 보이는 옷과 피부 위에 사회정치적인 측면에서부터 정신병리학적 측면까지 문화의 다양하고 풍부한 면모들이 담겨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다. 옷과 피부의 관계 또한 미묘하다. 옷 아래에 피부가 있는 것이지만, 옷이 또 하나의 피부일 수도 있고, 피부가 옷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울트라 스킨>전의 출품작 중 이동욱의 작업은 이런 불안정함과 역전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은 인물상들은 옷을 입고 있는데도 녹아내리는 듯 미끌미끌한 날 것의 피부, 아니 피부라기보다는 오히려 피부 아래의 진피를 연상케 하는 재질로 되어 있다. 다른 한편 “표면은 또 다른 심층이다”란 말은, 표면을 다루는 작업은 심층의 문제들을 표면에서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윤리’의 문제를 전시장에서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 <패션의 윤리학>의 기획자가 선택한 것은 정공법인 듯하다.
<패션의 윤리학>의 전시장은 그야말로 ‘패션전’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오히려 이 전시의 장점이다. 기획자는 패션전의 외양을 피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 전시가 패션계의 이슈에 관한 것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크로스 장르’라는 경기도미술관의 연례 주제전의 하나로 개최된 이 전시는, 기획자의 글에 따르면 ‘인접 분야의 아이템을 슬쩍 빌려오는 어설픈 컨버전스가 아니라 해당 분야의 이슈를 전면에 드러내는 태도’를 취하고자 한다. 패션 그 자체를 넓은 의미의 시각문화의 일부로 보고, 패션업계의 첨예한 이슈 자체를 전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전시는 지향점이 뚜렷하며 주제 의식이 일관되어 있다는 큰 장점을 갖고 있었다. 리서치도 성실했고, 전시 전체에 걸쳐 컨셉트의 일관성도 잘 유지되고 있다. 쓰다 남은 나무판이나 재활용된 마네킹을 전시 소품으로 사용하고 전시 협찬사 역시 환경친화적인 기업을 선택했으며, 각계 인사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착한’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걸어 나온 개막식 패션쇼 등이 그러했다.    
반면 패션과 윤리라는 함께 다루기 어려운 주제의 난해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언뜻 시각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 꽤 있었다. 예를 들어 공정무역으로 생산된 친환경 원단을 사용한 홍승완의 옷들은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여느 옷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한 원단손실률을 최소화하여 만든 마크 리우의 옷들 역시 텍스트에 의해 보충되어야 비로소 그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다. 물론 옷을 통해 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반드시 단점인 것은 아니다. ‘윤리적’ 패션이라고 해서 반드시 ‘엄숙한’ 분위기를 풍길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문지로 만든 개리 하비의 오뜨 꾸뛰르 드레스가 그렇다. 풍성한 프릴과 우아한 살구빛이 아름다운 이 옷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신문지로 만든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는데, 역설적으로 이 점이 오히려 이 옷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신문지를 드레스로 변형시킨 작가의 솜씨 자체에 대한 감탄으로 찬사가 옮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윤리’라는 단순히 감각적인 접근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복잡한 사회정치적 맥락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주제를 선택했다는 점, 특히 패션산업이 생산물을 만든 인간의 노동이 망각되기 쉬운 분야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결과물로서의 옷만이 아니라 생산 소비 유통의 과정 전체를 파고드는 작업들이 더 포함되었더라면 더 풍성한 전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에 기획자가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실제로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작업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아나 파울라 프라이타스의 캔 뚜껑으로 만든 드레스가 이 옷을 함께 만든 지역공동체 여성들의 사진과 함께 전시된 작업은 이런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했다. 버려진 사소한 물건을 아름다운 드레스나 소품으로 만든 솜씨에도 감탄하게 되지만, 그것이 지역 여성들의 공동 노동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옷이라는 결과물 그 자체를 넘어 더 넓은 사회문화적인 맥락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꼭 노동의 현장을 더 보여주지 않더라도 주제를 재해석 혹은 확장시키려는 몇몇 작업들을 포함시킨 것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예란지-하시시박의 ‘어머니의 옛날 옷장 열어보기’라는 작업처럼, 윤리적 패션에 대한 한국적 해석을 담은 작업이나, 신체와 옷의 근원적 관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작업은 같은 작품이 기획자의 창조적 해석에 따라 좀더 풍부한 내용을 가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피부, 안과 밖의 경계선
<패션의 윤리학>전이 표면에서 심층을 읽어내려는 전시라면, <울트라 스킨>은 표면이 어떻게 심층의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전시처럼 보였다. (신체가 정신의 반대말이라면, 피부는 그 어떤 것의 반대말도 아니다.) 피부라는 소재는 신체라는 소재와 자칫 변별성을 갖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기획자가 착안한 것은 피부가 자극을 받아들이는 신체의 최전선으로서 ‘안과 밖의 경계선’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기획자는 이 경계선이 뚫렸을 때 오는 심리적 외상, 혹은 경계선에 대항한 방어를 다루는 작업들을 전면에 배치했고, 이 시도는 몇몇 적절한 작업 선택에서 성공적이었다. 예를 들어 젊은 여인의 얼굴에 나이든 여인의 손을 겹쳐놓은 사진과 녹아내리는 자신의 얼굴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안네 올로포슨의 작업, 인형과 사람의 얼굴이 서로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교차되면서 완벽한 아름다움의 추구가 갖는 병적인 성격을 은유하는 줄리안느 로즈의 작업, 인간의 영혼에 침투하여 트라우마를 치유한다는 가상의 몬스터들을 축 늘어진 가죽이나 껍질을 깨고 나오는 생명체로 묘사한 이승애의 작업 등이 그것이다. 홍명섭과 김재홍의 작업은 사회정치적이고 심리적인 지점까지 짚어준다. 김재홍의 작업은 피부의 문제는 심리적이면서 역사적인 ‘상처’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파충류나 식물의 위장 무늬에서 모티프를 따온 홍명섭의 작업은 경계선의 모순이라는 차원에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위를 경계하면서 잔뜩 웅크린 채 숨 쉬고 있는 듯 보이는 이 작품에서 카멜레온의 피부처럼 변화하는 색채의 향연들은 피부가 방어와 과시라는 양가적 기능을 가진 신체-정신 복합체임을 보여준다.   
다소 아쉬운 점은, 몇몇 작업이 소재적인 차원에서의 유사성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고 있는 듯했고 결과적으로 전시 전체에 다소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액체 초콜릿 안에서 뒹구는 두 남녀의 영상을 보여준 마커스 톰린슨의 작업은 소재 상으로 보면 어울리는 듯 보이지만 정작 ‘의사소통의 매개로서의 피부’라는 주제를 포괄하기에는 평면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데니스 밀러와 다니엘 그리브즈의 애니메이션 작업도, 작품 자체는 흥미로운 것들이었지만 감각적인 즐거움의 측면이 더 강한 작품들이었다. 어쩌면 피부의 다양한 측면들을 목록화하는 것보다, 경계선 방어 상처 외상(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등의 코드를 더 파고들었더라면 전시가 더 깊이 있고 집중력도 있는 것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제 자체가 매우 흥미롭고 좋은 작품들을 잘 선택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더 그렇다.

왼쪽·아나 파울라 프라이타스 <그린 드레스> 재활용 캔뚜껑 손잡이 2009|오른쪽·이동욱 <왕자> 혼합재료 3×3×14cm 2008

니콜 트란 바방 <가을 겨울> 사진 2003~2004

김동연, 알레고리로 짓는 ‘문명의 풍경들’

앞·<유령> 세라믹, 천 93×99×59cm 2009|뒤·<Waiting Room> 나무, 세라믹, 천, FRP 450×209×168cm 2009

알레고리로 짓는 ‘문명의 풍경들’

글|김복기·본지 발행인

14년만의 만남, 아름다운 공포

#01.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몬스터가 갤러리를 점령했다. 몬스터는 검정색, 흰색, 담녹색의 도자기로 구운 90cm 남짓한 크기에서부터 점토로 빚어낸 손가락보다 작은 크기로 등장한다. (몬스터라고 했지만, 동양식으로 보면 무덤의 부장품으로 쓰였던 도용이나 토용 혹은 토우에 가깝다.) 큰 몬스터는 마치 눈사람처럼 둥글둥글한 덩어리로 머리, 상체, 하체를 구성하고 있다. 조그만 점토 덩어리 두 개가 눈이 되고, 펭귄처럼 뾰족한 두 팔을 지니고 있다. 몬스터는 얼핏 보면 비호감이지만, 약간 퉁퉁한 형태와 질박한 스타일이 어리숙하고 귀여운 맛이 있다. 이 몬스터가 마치 외계인처럼 전시 공간을 떠돌아 다니거나 조그만 몬스터들을 호기심 어린 자태로 관찰한다. 작은 몬스터들은 점토를 손에 움켜잡아 송편 빚어내듯 눌러 만들었다. 몬스터의 무리는 인간의 삶을 그대로 흉내 낸다. 대형 기념물을 만들고 있거나, 집을 짓고 길을 닦아 도시를 건설한다. 또한 운동경기장의 관객이 되어 앉아 있는가 하면, 무대에서 연기를 펼치기도 한다. 그들은 사람처럼 짓고, 구성하고, 관찰하고, 행동한다.
실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희미한 꿈의 세계…. 김동연은 이 몬스터의 세계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걸까? 김동연은 후기산업사회,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인간이 삶의 외형뿐만 아니라 존재의 조건 자체가 변화하는 상황을 하나의 공포로 은유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류의 미래 풍경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래는 언제나 불투명하지만 희망의 불씨는 결코 꺼지지 않는다. 김동연이 어린이 같은 천진함으로 제작한 이 환상의 몬스터는 무서운 유령을 착한 유령으로,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을 긍정의 힘으로 반전시킨다.
#02. 14년 전의 일이다. 나는 1995년 여름에 작가 김동연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당시에 미술잡지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김동연의 토탈미술관 개인전을 ‘전시 하이라이트’라는 지면에 소개했다. 이때 김동연은 합판으로 만든 터널 모양의 길쭉한 구조물, 한옥의 지붕만 남기고 방과 마루 같은 몸체를 제거한 구조물 등을 선보였다. 특히 전시장 바닥으로부터 공중에 띄운 작품의 경우, 가옥의 지붕 형태가 연한 회백색의 분위기를 타고 미지의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는 채워진 것을 비우고 막힌 것을 뚫는다는 평범한 우리 옛 선인들의 자연관을 이 시대의 감성으로, 오늘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신선한 조형 능력을 보여 주었다.(《월간미술》 1995년 8월호에 실린 김복영의 리뷰 재정리) 이 무렵 김동연 작품의 비평적 키워드는 사물들 간의 호흡과 융합, 한국의 자연과 공간, 전통의 현대적 해석이었다.
한국의 고전 미술, 독일 건축과의 만남
art 1995년 토탈미술관 개인전 이후 14년간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의 김동연 작품과 대면하고 있다. 저 한옥과 몬스터 사이, 여기에는 한국과 독일, 유학과 작가적 성장 과정, 30대와 40대의 삶이 가로놓여 있다. 95년의 개인전은 김동연의 독일 유학 생활을 결산하는 전시였다. 1994년에 일시 귀국해 경희대에서 시간강사를 맡다가 이 개인전 이후 다시 독일로 들어갔다.
김동연 그때 내 나이가 30대 중반이었다. 나는 독일에 다시 들어가 40세까지는 더 공부하고 싶었다. 요셉 보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청년작가들이여! 40세 이전까지는 개인전을 열지 마라!” 결국 40세 이전까지는 치열하고 다양하게 작품 경험을 쌓으라는 경구가 아니겠는가. 나는 무엇보다 유학을 연장하기 위한 기본 생활비가 필요했다. 그런데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삼성출판사(회장 김종규)의 장학금을 받아 독일에서 5년 동안 공부를 더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마흔이 되어도 작품의 앞길이 깜깜했다. 43세 때부터 마침내 독일 미술계가 날 지켜보기 시작했다. 내 작품은 내가 봐도 ‘장난’ 같은데… 아, 이 작품이 팔리는 게 아닌가. 그러고 나서 미술관, 갤러리 전시가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art 김동연은 왜 굳이 독일로 유학을 떠났을까? 이런 질문을 상투적이라 치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가 작가의 작품 세계를 푸는 중요한 열쇠라 생각한다. 한 작가의 조형 체험, 그 첫 단추를 어떻게 끼었는가의 문제가 아닌가.
김동연 ‘준비된’ 독일 유학이었다. 미술 공부할 때 제일 많이 듣던 얘기가 “거, 조형적으로 있잖아…, 작가는 오직 한 길을 걸어야 해!” 그런데 대학 때 바우하우스(Bauhaus)를 공부하면서 눈이 번쩍 띄었다. 바우하우스가 원래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합병했고, 그 주된 이념이 건축을 주축으로 삼아 예술과 기술을 종합하는 것이 아닌가. 바우하우스는 입체와 평면, 예술과 실용을 종합하는 건축과 공예, 디자인 교육을 지향했다. 그래서 바우하우스는 내가 얼마나 좁은 범주에서 예술을 생각하고 있는지 일깨워 주었다. 그래서 나는 관심의 영역을 넓히고자 했다. 그때부터 내 공부방은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갤러리였다. 언젠가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권진규 회고전을 보러 갔다. 권진규의 테라코타 조각상을 보면서 불현듯 전통 불상이 오버랩되었다. 그날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달려갔다. 그 뒤로 회화 조각 건축 공예 디자인 등 우리 고전을 열심히 공부했다. 박물관에 진열된 조형물의 형태와 형식에는 모두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있지만, 시대별 변화가 분명했다. 전통 속에 현대가, 현대 속에 전통이 숨쉬고 있었다. 어떻게든 고전을 작품에 적극 활용해 보려 했다. 그래서 문인화도 배우고, 서예도 배우고, 그 안에서 공간이나 시간 혹은 여백이나 적요(寂寥) 같은 조형과 미감을 체득하려 노력했다. 먹으로 드로잉해 보고, 회분을 바른 바탕 화면에 먹의 번짐 효과를 실험하고…. 그러다 보니 같은 연필 드로잉을 하더라도 여백과 속도, 강약, 농담 같은 요소를 더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다. 나는 대학 다닐 때부터 바우하우스에 빠져 독일 유학을 준비했고, 졸업과 함께 자연스럽게 뒤셀도르프로 떠났다.
art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는 1970년대에 요셉 보이스와 백남준이 교수로 지내면서 플럭서스와 전위예술의 중심지로 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학교다. 또한 개념미술의 전통을 한 축으로 이어가면서도 1980년대부터 A.R. 펭크, 요르크 임멘도르프, 마르쿠스 뤼페르츠 등이 교수로 활동면서 신표현주의 회화의 국제적 돌풍을 주도했던 곳이다. 김동연의 지도 교수는 A.R. 펭크였다. 펭크의 그림은 냉전 시대의 역사적 모순, 혹은 체제 억압이나 존재의 절망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해학과 상징이 돋보이는 필치는 선사시대 동굴 벽화나 석기시대의 조각 문양 또는 현대의 낙서 그림을 떠올린다. 그것은 서예와도 일맥상통하는 세계였다.
김동연 나는 펭크 교수의 지도를 받은 네 번째 한국인이었다. 나는 펭크 교수께 분명히 말했다. “나는 선생님을 아주 존경하지만, 그러나 결코 화가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펭크 교수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학교 밖에 큰 건물을 임대해서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아틀리에를 마련해 줬다. 그리고 6개월이나 1년에 한번씩 그 아틀리에를 찾아와 날 지도해 주셨다. 언제나 별 말씀이 없었다. “음. 좋아…” 그런 말만 3년째 하시니, 나중에는 ‘이 분이 날 놀리시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펭크 교수는 학생들 저마다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해 줬다. 동료 학생들에게도 자극을 받은 게 많았다. 독일의 경우, 정말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만 미술학교에 진학하기 때문에 모두가 예술적 끼와 열정이 대단했다. 학생들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경쟁, 그게 가장 큰 공부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뒤셀도르프에서 회화나 판화보다는 입체에 더 심취했다. 먼저 청강생으로 2년 동안 건축을 열심히 공부했다. 또 입체를 공부하기 위해 관심 있는 유명 작가들의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작업을 도우면서 아르바이트 겸 실전 공부를 한 것이다. 유학 생활 동안 입체, 공간 예술을 배운 건 큰 행운이었다.

<In the Theater> 나무, 브론즈, 아크릴릭 2009

한옥을 짓고, 터널을 뚫다

art 건축이라는 테마는 김동연의 예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김동연의 독일 활동을 결산해 놓은 화집을 보면, 그의 작품 진화 과정을 일별할 수 있다. 1995년의 한국 개인전은 그의 작품이 건축 소재로 양식화를 이룩한 첫 단계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무렵의 작품은 건축 소재들로 만든 조각이 주류였다. 그 형상은 한국의 전통 건축에서 따온 것이다. 이를테면 전골기와의 암키와와 숫키와, 오목과 볼록을 결합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기와 형태를 무중력 상태로 바닥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설치한 작품도 있다. 입체와 바닥 면 사이에 생겨나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공간도 작품의 조형 요소로 끌어들이고 있다. 서양의 한 비평가는 이 긴장의 공간을 “극동 아시아의 미학에서 보면, 조형물에 내재한 보이지 않는 구성 요소이다”라고 쓰고 있다.  
김동연 1994년 무렵부터 한옥의 형태를 작품에 끌어들였다. 기와집, 절, 사당 같은 구조물을 형상화했다. 구멍 난 MDF 합판으로 한국 사찰의 3층 탑 몸체를 빼고 지붕만으로 오브제를 만들었다. 그 지붕을 바닥에 거꾸로 놓았다. 완전히 본래의 전망을 뒤집은 것이다. 한옥 구조도 ㄴ자, ㄱ자, ㄷ자, 一자 구조로 다양하게 만들어 보았다. 그 구조물을 바닥에서 15cm 정도 띄워 전시했다. 독일 사람들은 이 작품을 두고 UFO 같다고 했다.
art 한옥의 형태가 점차 절제되어 이 다음에는 터널 형태가 탄생한다. 〈성스러운 도시(The holy City)〉라는 제목으로 다각형의 알루미늄 조각품을 발표한다. 그것은 터널 형태이기도 하고, 달리 보면 미니멀한 집의 형태이기도 하다. 이 터널 형상이 처음에는 단일체로 길게 늘어서 있다가 점차 여러 터널이 서로 교차하면서 마침내 전체가 미로 같은 모양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터널은 집의 형상이 되고, 집이 모여 마을이 되고, 마을이 모여 도시가 형성되는 것이다. 한국의 집이 〈성스러운 도시〉로 변모한 것은 유학 생활과 함께 유럽 혹은 독일로의 동화(同化) 혹은 양쪽 문화와 정서의 하이브리드(Hybrid)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한국 전통과 동시대 보편 언어와의 필연적 충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힘든 유학 생활의 터널을 작품으로 돌파해 나가고픈 작가 자신의 심경이 배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김동연 언젠가 철학가들을 많이 배출한 중세도시 튀빙엔을 여행했는데, 도중에 터널 속을 지나가게 되었다. 산 속으로 뚫려 있어 온전히 다 볼 수 없는 터널, 그러나 길과 길을 잇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이 열린 공간의 구조를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고심했다. 이 무렵 나는 한국과 유럽 간의 문화적 충돌에 자연스럽게 정신을 쏟고 있었다. 한국에서부터 오랜 시간 아주 쓸모 있다고 고이 간직하고 있던 한국성이랄까, 전통 유산에의 심취가 이곳 독일에서는 오히려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었다. 생각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런 심리 상황이 터널 작품에 반영된 건지 모르겠다. 나는 베니어 합판으로 절제된 미니멀 형태의 터널을 만들었다. 터널이 발전되어 도시를 이루었다. 도시는 모형끼리의 각도, 폭과 깊이, 넓이, 반경 등 건축적 공간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유럽 도시는 어느 한 집이 망가지면 주위 환경과 어떻게 잘 어울리도록 재생하는가 그것이 아주 중요한 건축 프로젝트다. 말하자면 유럽의 도시는 주변 환경과의 건축적 ‘관계성’을 특별히 고려하는데, 이런 측면을 내 작품에 도입했다.
art 터널 작품을 거친 이후 김동연의 집은 아예 유럽 식으로 바뀐다. 버려진 박스 종이를 찢어 아기 주먹만한 헤진 집껍데기를 만들어 천정이나 벽에 매달아 놓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리고 집에 더하여 길 같은 구조의 띠가 작품에 부가된다. 마을과 도시가 생기면 그 다음에는 교통 수단인 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김동연은 얇은 나무 띠로 길을 만들어 집에서부터 길게 뻗게 하여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 공중을 이리저리 누비게 만들었다. 이런 작품은 외부와 단절된 현대의 삶의 현장 같기도 하고 고립된 인간 세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동연 길이나 도로를 단순히 물리적 현상을 넘어 사회의 끈, 인연의 끈으로 해석해 보았다. 또 길이란 철학적 진리와도 통한다.

앞·<Idea & Reality> 브론즈에 우레탄페인트 88×135×110cm 2009|뒤·<Flat Building 003> 알레미늄에 우레탄페인트 96×116cm 2009

“나만의 집을 짓고 싶다”

art 2004년부터는 〈성스러운 도시〉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합판을 대고 마대를 너들너들하게 붙이는 방법으로 도시 건축물을 만들어 설치했다. 마치 철거하고 있는 건물인 듯 보이다가도 달리 보면 짓고 있는 중인 건물인 듯 보인다.  아주 어정쩡한 건물들이다. 폐허와 건설의 분위기를 동시에 띠고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사상(事象)의 양면 모두로 동시에 진입해 들어갈 수 있는 풍경이다. 이우환은 이 작품을 두고 이런 글을 남겼다. “김동연은 내부가 없는 미니추어 아파트를 만들어 놓았다. 이것은 그러나 바로 아파트를 축소시킨 것이 아니라 그런 것에서 따온 또 하나의 메타포이다. 그래선지 도시 산업사회에 사는 인간의 내면 풍경 같기도 하고 오늘이 폐허가 된 상황 같기도 하다.”
김동연 이때부터 바야흐로 ‘내 집’을 지었다. 이우환 선생을 만나면서 그 분의 작품 충고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조언의 본질은 “예술가란 남이 하지 않는 짓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예술이란 막연한 환상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때부터 작품의 메시지에 더 분명한 초점을 두었다. 당시 걸프 전쟁을 보면서 예술의 사회 역사적 발언, 예술가의 책무 등에 깊이 고심하게 되었다. 또한 이 무렵 나는 도시 굴뚝 같은 구조물에도 눈길을 돌렸다. 도시에는 과거의 수공업 공장이 점차 사라졌다. 수공업은 바우하우스의 건축가들이 적극 지원하고 진가를 인정해 왔던 인간적인 노동 시스템이다. 연기를 내뿜지 않는 굴뚝을 통해 인간 사회에 퍼져 있는 필요와 필요악의 상관 관계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굴뚝 연기를 구름처럼 만들어 보았다. 하늘에 있는 천사의 얼굴이나 비너스의 여체를 연상시키는 연기 구름이 뭉글뭉글 솟아오르는 작품이다. 또 송전탑을 표현한 조각품도 발표했다. 송전탑은 인간의 생활 기반을 보장해 주는 강력한 에너지 흐름을 상징하는 한편, 엔지니어 기술과 한국 탑의 형태를 하나로 결합해 ‘이중의 상징’을 만들어 냈다.
art 귀국 후 〈성스러운 도시〉는 또 다시 변화를 보인다. 얇은 판으로 도시의 건축물, 빌딩을 표현했는데, 자세히 보면 형태가 아주 모호하다. 이 판은 벽에서 5cm 정도 떨어져 있어 그림자가 생기도록 했다. 그래서 2차원과 3차원 사이의 어정쩡한 구조물이 탄생했다. 이번 개인전에서 몬스터들은 전시의 주인공으로 주요 공간을 차지해 활개를 치고 있는 반면, 인간이 살고 있는 빌딩은 엑스트라처럼 초라하게 벽면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몬스터와 인간의 존재 방식이 역전되어 있는 것이다. 그 ‘괴이한’ 빌딩 속에 살고 있을 인간 존재를 생각하면 참으로 깊은 공포에 휩싸인다. 비평가들도 이 작품을 고든 마타 클락(Gordon Matta-Clark)의 과격한 아나키텍처(Anarchitecture)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김동연 이 작품들은 제작 과정을 몇 단계 거친 것이다. 먼저 3차원의 건물 모형을 만들어 여러 방향에서 촬영한다. 그 중에 형태나 원근, 건축 구조가 ‘애매하게’ 찍힌 사진을 골라 크게 인화한다. 그 인화지 위에 트레싱 종이를 놓고 설계도를 그린다. 그 설계도에 따라 철판을 레이저로 절단한다. 철판 빌딩은 2차원이지만 사람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3차원 공간으로 인식한다. 이 빌딩들은 전시 공간에서 마치 그림자처럼 회색 혹은 검은색으로 벽에 매달려 있다. 유령 도시의 빌딩 같은 분위기 혹은 판옵티콘 같은 구조를 노렸다고 해도 좋다. 나는 관념의 감옥에 갇혀 사는 인간 존재의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art 한국에 와서 무엇이 변했는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계획하는가.
김동연 독일에서 17년 동안 지내면서 얻은 것은 ‘외로움을 씹는 방법’이었다.  외로움은 결코 달콤하지는 않았지만, 호밀빵처럼 구수한 맛이 났다. 외로움을 변화시킬 힘을 얻었다. 이제는 더 이상 독일 것을 붙들고 싶지는 않다. 이제 내 속에 독일은 없다. 내 안에 무엇이 차면 나는 그걸 깨버리고 만다. 나는 마르셀 뒤샹을 좋아한다. 나는 늘 뒤샹 같은 예술적 카멜레온을 꿈꾼다.

<성스러운 도시> 자작나무, 천, 아크릴릭 120××120×120cm 2003

알레고리적 화법 그리고 사유의 변증법

김동연이 꿈에도 동경해마지 않았던 바우하우스(Bauhaus)는 독일어로 ‘집을 짓는다’는 뜻의 하우스바우(Hausbau)의 철자를 도치시킨 단어이다. 그는 20여년 동안 미술로 집을 지었고, 아직도 집을 짓고 있다. 한국의 고졸한 전통을 지었고, 유럽의 화려한 현대 문명을 지었고, 죽어가는 폐허의 도시를 지었다. 집과 도시란 바로 인류 문명사의 표상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가 심취했던 터널과 길은 이 문명의 소통을 위한 이기(利器)가 아니던가. 그 모두는 게슈탈트(Gestalt)의 미학으로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김동연은 인간 문명을 말한다. 그의 눈은 문명의 위기로 쏠려 있다. 환경 문제나 생태계 붕괴, 전쟁, 테러 등 지구의 재앙에 폭넓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또한 그는 한국과 독일을 떠돌며 지극히 작은 일상의 대상에서부터 아시아의 문화 전통과 바우하우스와의 교집합을 시도하면서 양 대극의 조화를 새로운 영감의 에너지로 퍼올리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지역과 세계의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사상(事象)에 대한 사유를 변증법으로 풀어내려는 김동연의 독특한 시선을 찾을 수 있다.
이번 개인전에는 산 봉우리처럼 생긴 구조물 위에 고대 철학의 두 거장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서 있는 작품이 소개되었다. 이 구조물은 산 봉우리가 아니라 토기 모양의 호수 담수면을 거꾸로 엎어 놓은 형상이다. (김동연은 유년기를 호수와 큰 우물이 있는 동네에서 살았다. 이 자연친화적인 시골 정서가 그의 예술의 원천으로 흐르고 있다.) 두 철학자의 포즈는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에서 따온 것이다. 김동연은 육체와 더불어 순수 관념의 이데아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이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육체와 정신, 현실과 이상이라는 두 영역을 변증법적으로 조응함으로써 진리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김동연의 작품 화법은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이다. 요컨대 김동연의 작품에는 알레고리의 전술이 숨어 있다. 알레고리의 표현은 개념의 이중성, 표면적 의미와 숨은 의미의 표리부동, 의미들의 역전, 의인화(몬스터처럼 대역을 내세운 대리 화법), 이중 상징, 물성 감추기(두꺼운 알루미늄 판을 팔랑거리는 종이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재료의 연금술) 등을 조형 어법으로 동원한다. 그리고 마치 세포가 증식하듯이 알레고리는 또 다른 알레고리를 낳는다. 김동연은 이 알레고리의 문법으로 동양/서양, 전통/현대, 개인/사회, 일상/역사, 인간/자연, 이성/감성, 지역/세계를 서로 잇는 길(혹은 터널)을 뚫는 작업을 펼친다. 그리고 그 길을 또 다시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이번 개인전에는 대도시 인터체인지의 설계도를 철판으로 잘라 건어물처럼 매달아 놓은 작품을 내놓았다. 
독일의 비평가들은 김동연 예술의 가장 큰 장점을 “다른 경험치를 가진 사람들의 관점을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다의성”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우환이 적절하게 표현했듯이, 김동연의 조각 앞에 서서 한참 서성거리다 보면 쓴 웃음이 나오는가 하면 은연 중에 아픔이 느껴지고 그러다 문득 내일이 불안해 온다. 상상의 시각에 날개를 돋고 일상성에서 감각이 소스라히 깨어나는…. 김동연이 던지는 작품의 알레고리는 마치 천천히 속삭이는 귓속말 같은 매력을 갖추고 있다. 작은 목소리이지만 큰 울림을 내는….

김동연
1960년 서울 출생. 경희대 미술교육과 졸업 및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 마이스터 슐러 취득. 현재 경희대 회화과 교수. 1995년 장픙 토탈미술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 후 독일 겔센키리헨시립미술관(2000), 뒤셀도르프 가비크라우스갤러리(2004), 독일 고흐미술관(2005) 등을 비롯, 최근 학고재갤러리에서 13번째 개인전을 개최했다. 2008부산비엔날레, <Project 8>전(서울 토탈미술관, 1996), 제27회 국제아트페스티벌(교토)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KIAF, 미술시장을 다시 살릴 것인가

2008년 행사장 전경

KIAF, 미술시장을 다시 살릴 것인가
출품 화랑과 작품 분석, 특별전 등 행사 미리보기

글|김현 기자

더욱 강해졌다! KIAF2009

작년 KIAF는 5월에서 9월로 개최 시기를 바꾸고, 경기 침체로 인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6만여 관객을 끌어들이며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대표 아트페어’로 자리 잡았다. 주최측은 올해 KIAF를 찾을 관람객 수가 65,000명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예상 거래액은 약 160억원.
올해는 심사를 거쳐 엄선된 122개의 국내 화랑과 46개의 해외 화랑이 참여하며 총 4,600여점의 작품이 쏟아진다. 미술시장 활황이었던 2007년보다 참가 화랑이 증가해 KIAF 출범 이래로 가장 높은 참여도를 보여준다. 현대 국제 아라리오 선 학고재 카이스 가나아트 아트싸이드 표 진 더컬럼스 동산방 리안 이화익 백해영 박여숙 김진혜 등 국내 유수의 화랑이 총출동한다. 외국 화랑은 일본의 츠바키(Gallery Tsubaki)와 도미오 코야마(Tomio Koyama Gallery), 스페인의 페르난도 프라딜라(Galeria Fernando Pradilla), 독일의 디갤러리(DIE GALERIE)와 갤러리 폰 브라운베렌스(Galleries Von Braunbehrens), 영국의 퍼디힉스(Purdy Hicks Gallery), 미국의 사비나 리(Sabina Lee Gallery), 인도의 수무카(Gallery Sumukha)와 더길드(The Guild) 등이 참여한다.
출품작들의 경향을 살펴 보면, 경기 침체 이후 달라진 화랑들의 대처 방식을 알 수 있다. 출품작가의 수가 현저하게 늘어난 것. 가나아트갤러리는 고영훈 배병우 사석원 마크퀸 등 13명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갤러리현대는 김종학 김창열 박준범 배준성 변웅필 오용석 오치균 등 18명, 국제갤러리는 구본창 김기라 김홍석 샌정 양혜규 오형근 이기봉 함경아 아니쉬카푸어 빌비올라 줄리앙오피 등 28명 작가의 작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다른 참여 화랑들의 출품 작가까지 살펴 봐도 평균 10명이 넘는다.
지난 몇 년간 소위 ‘잘 나가는’ 작가들 서너 명의 작품으로 부스를 가득 메우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솔드 아웃(Sold Out) 행진을 이어가던 몇몇 인기 작가들의 독무대는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빈 캔버스에 미리 예약을 받고 그림을 그렸던 호황기에는 너도나도 잘 팔리는 블루칩 작가 모시기에 급급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한 작가에게 올인해 한 몫 챙기려 했던 미술 투기꾼들은 이미 고배를 마셨다. 경제 위기는 잔뜩 부풀어 있던 미술의 거품을 걷어내 투기꾼들을 몰아내고 진정한 ‘아트 러버’를 남김으로써 미술의 대중화를 앞당겼다.
올해 초, 한 미술경제 포럼에서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조성룡 박사는 2008년 하반기 미술품 구매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술품을 처음 구매한 ‘초보 컬렉터’의 수가 전체의 85%에 달했고, 연령대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젊은 컬렉터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서 이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을 다양한 작품이 요구된다. 작품 가격도 2백~3백만원대의 부담 없는 저가 작품의 거래가 가장 활발하다. 서울옥션은 천만원 이하의 작품은 카드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침을 추진 중이다. 이쯤 되면 미술품 소장은 더 이상 어느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양한 컬렉터층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폭넓은 층위의 작품이 골고루 발전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문화예술이 발전한 선진국일수록 상황은 더욱 그러하다. 국내 아트페어 중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KIAF에 화랑들이 가능한 많은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품을 판매하는 딜러와 구매하려는 컬렉터 외에도 많은 미술인들이 매년 KIAF를 찾는다. 꼼꼼한 기획으로 마련되는 특별전은 아트페어의 밀도를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KIAF특별전은 퍼포먼스, 비디오영상, 설치, 개념 작업 등 물리적인 판매가 쉽지 않은 작가들을 지원하고, 더 좋은 작가로 성장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발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백남준이 역사에 길이 남을 비디오, 퍼포먼스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비디오 조각이 많은 컬렉터들에 의해 ‘구매’되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미술인들의 발길이 닿는 아트페어야말로 유망한 작가들을 소개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올해는 인도특별전 〈실패한 계획〉과 한국특별전 〈모단보이, 모단걸-한국 현대미술과 모더니즘, 모더니티〉를 선보인다. 작년까지는 주빈국 화랑들의 부스가 한자리에 집결해 있었지만 올해는 주빈국의 특별전을 마련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최근 아니쉬 카푸어, 지티쉬 칼라트, 수보드 굽타 등 인도작가들의 거침없는 행보가 최근 국제 미술계의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터라 더욱 기대를 모은다. 인도의 저명한 미술평론가이자 독립 큐레이터인 가야트리 신하가 기획한 인도특별전 〈실패한 계획(Failed Plot)〉은 지지 스카리아, 테잘 샤, 치트라 가네쉬, TV 산토시, 탈루 L.N 등 이미 국내 전시를 통해 낯익은  작가들부터 국내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까지 총 12명의 인도작가를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했던 미술행정, 미술평론가 정준모가 기획한 국내특별전 〈모단보이, 모단걸-한국 현대미술과 모더니즘, 모더니티〉는 김환기 유영국 박서보 하인두 등 한국 모더니즘미술을 선도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1920년대 이후 한국미술의 정체성과 의미를 되짚어본다. 한국미술의 현대화 과정에서 서양미술의 외형적 유사성을 배제하고 한국 정체성이 깃든 현대성을 모색해 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KIAF는 2007년과 2008년에 각각 한국 신진작가, 한국 중견작가 특별전을 개최한 바 있다.

랄프 플렉 <Stilleben 2-V> 캔버스에 유채 220x200cm 2009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3 for VIP’는 KIAF의 대외 홍보와 해외 컬렉터를 국내로 유치하기 위해 작년부터 새롭게 진행된 프로그램이다. 대만의 아트 타이페이(Art Taipei), 중국의 상하이 아트페어(Shanghai Art Fair)와 함께 각국의 VIP 100명(총 300명)을 선정하여 세 아트페어의 입장은 물론, 도록 제공, VIP 라운지 이용, VIP 파티, VIP 투어, 참여국의 미술관 관람 혜택이 모두 무료로 주어진다. 또한 행사장에서 서울 어느 곳이든 전문기사가 운행하는 폭스바겐(Volks-wagen) VIP 카서비스도 여전히 진행된다.
실질적 구매력이 있는 컬렉터를 유치하기 위해 특별VIP서비스가 있다면, 미술시장의 대중화와 시장 활성화를 위해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된다. 아트페어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작품을 구매하기 전 동시대 미술의 경향을 파악하고 현명한 컬렉팅을 위한 꼭 필요한 행사이다. 옷 한 벌을 살 때도 시장 조사와 가격 비교는 필수인데 하물며 몇 백, 몇 천만원대의 작품을 구매하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수 있겠는가.
한편 학술행사로 특별전을 기획한 가야트리 신하와 정준모 큐레이터가 참여하는 ‘큐레이터 토크’가 열린다. 또한 《art in Culture》의 자매지인 《art in ASIA》가 주관하는 ‘아시안 에디터스 컨퍼런스(Asian Editor's Conference)’에는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대만의 신문, 미술잡지 에디터들이 ‘컬렉션과 컬렉터’를 주제로 발표 및 토론을 펼친다. 아시아의 개인, 기업, 국가 컬렉션의 양상을 살펴보고, 미술 정책과 교육 및 시장과의 연관성을 조망하는 자리다.
아동을 대상으로 올해 처음 마련된 ‘KIDS 프로그램’은 5개의 메인 프로젝트 수업과 상설 체험 존을 마련하여 KIAF를 방문하는 어린이들에게 미술체험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공간 디자인, 미디어 아트, 환경 디자인, 사진, 미술 심리치료 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을 접할 수 있다.

이명호 <Tree#3> 종이 위에 잉크 100x80cm 2006

시장 의욕 저해하는 미술품 양도세

2009년 상반기 미술시장 결산 수치를 보면 서울옥션과 K옥션 등 옥션사의 총낙찰액이 작년 상반기에 비해 감소했다. 그러나 낙찰률과 참여율을 살펴보면, 서울옥션의 경우 작년 하반기와 비교할 때 낙찰률이 79%로, 작년 하반기에 비해 17%나 상승했다. 이는 미술시장이 활황이었던 2007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트페어, 경매 참여율도 크게 증가했다. 상반기 전체 아트페어 전체 관람객 수가 7만 6,000명에서 9만 5,500여명으로 25% 이상 늘었다.
관람객수와 낙찰률이 증가한 데 반해 총낙찰액이 감소한 이유는 따로 있다. 2008년 9월 KIAF 오픈을 며칠 앞두고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안’ 때문이다. 2011년부터 6,000만원 이상의 미술품에 부과하는 ‘특별 과세’ 때문에 고가 작품 구매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세 방안 발표 이후 고가 작품 낙찰건수는 절반 가량 떨어졌지만 과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중저가 작품의 낙찰 건수는 오히려 더 늘었다. 작품의 가치와 가격이 반드시 정비례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도 고가의 작품을 사려하지 않는다면 시장 원리에서 벗어나 ‘진정성’에 기반한 작업을 누가 하려고 들겠는가.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안은 일부 고가 작품의 밀매를 차단하기 위해 승승장구하려던 미술시장의 의욕을 저해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한국화랑협회 표미선 회장은 미술품 양도세 법안 철회를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신재민 문화관광체육부 차관 역시 미술품 양도세 법안 문제는 미술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시기를 조정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희망적인 뜻을 내비쳤다.
경제 위기는 미술을 투기의 대상으로 여겼던 투기자와 미술애호가를 분리시켰다. 이제 ‘진정한’ 컬렉터의 시대이다. 돈의 원리가 아닌 작품의 가치로 미술을 말하고, 투명한 거래의 장을 형성할 때 성공적인 아트페어라고 할 수 있다. KIAF가 미술애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미술과 대중을 연결하는 중요한 문화 산업의 하나로 모범해답을 제시해 주길 기대해 본다.

토니 아우슬러 <Blob> 섬유조각, DVD 비디오 프로젝션 124.5x96.5x66cm 2008

올리비에 바빈 <LIFE I> 캔버스에 리퀴텍스 26x21cm 2008

2009 September Special - Studies of Contemporary Art - Narrative in Image

왼쪽·에피소드 I : 쫓기고 쫓는 등장인물이 보이는 이 사진 속에서 그 ‘이미지의 서사’를 즉각적으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지 자체가 ‘중의성과 다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복잡다기한 양태로 거시적 서사와 미시적 서사가 맞물려 있다.|오른쪽·에피소드Ⅱ: 이 남자는 자신이 촬영한 사진 이미지를 통해서 추격자의 위상을 조깅하는 사람으로 곡해한다. 뒤늦게 사건에 참여해서 얻게 된 이미지만으로 ‘이미지의 서사’에 대한 독해를 시도한다는 것은 실패를 자초한다.

Studies of Contemporary Art - Narrative in Image

이미지/텍스트,‘외면 보기’에서‘내포 읽기’로

김성호   쿤스트독미술연구소장, 중앙대 겸임교수

1.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이미지와 서사

‘꽈다당’ 하는 소리에 흠칫 놀라 돌아보니 한 ‘어린 것’이 거리가 온통 자기 것인 양 팔을 휘저으며 휘청휘청 길을 걷고 있다. 분명코 술을 먹었으리라. 저 어린 것이, 채 어둡지도 않은 이 초저녁에 겁도 없이…… 놈은 아직도 머리에 피가 덜 마른 고딩 같아 보인다. 녀석은 다 타들어간 담배를 꼬나물고 휘청거리다가 이윽고 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겨내어 차도 위로 날려버린다.
‘휘이잉……’ 바람을 가르며 하늘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꽁초가 날아간다.
“무슨 짓이야?”
근처에서 녀석을 지켜보던 내가 고함을 친다. 거리의 사람들이 그 소리에 흠칫 놀라 모두들 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다. 녀석은 소리를 못 들었는지 계속 휘청거릴 따름이다. 쓸데없이 간섭하고 있나 싶기도 했지만 보는 눈들이 있어 나는 하던 말을 정리한다.
“무슨 짓이냐고? 엉!”
그제야 녀석은 고개만 삐딱하게 돌려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며 한마디 내뱉는다.
“그래서?”
“잉…… 뭐라고?”
아! 대략난감. ‘어린 것의 대꾸가 기가 막히지도 않네. 날 여자라고 이것마저 깔보네.’ 황망한 심정으로 말을 이어가려는 그 순간, 길 건너편 보도에 깜빡이를 켜놓은 차에서 누군가 후다닥 뛰쳐나오며 소리친다.
“너 거기 서! 거기 안 서!”
갑자기 녀석은 전속력을 내며 냅다 줄행랑을 치고 차에서 뛰쳐나온 사내는 녀석을 뒤쫓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린 나도 덩달아 녀석을 잡기 위해 뛰기 시작한다.
‘저런 싸가지 없는 놈, 잡히기만 해봐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위의 이야기는 필자가 만들어낸 허구지만, 우리 일상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의 여러 버전 중 하나이다. 독자들은 텍스트로 만들어진 위의 장면을 통해서 이미지를 연상하고 나름대로 저마다 이야기로 통칭되는 ‘서사(敍事, narrative)’를 구성해 보았을 것이다.
질문이다. 그 서사란 과연 무엇일까? 혹자는 ‘청소년의 음주, 흡연’을 혹자는 ‘버릇없는 고딩’을 필자가 의도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혹자는 그 말미에서 등장한 ‘사내’와 등장인물 ‘나’ 사이의 변별성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등장인물 ‘나’에게는 반항하다가 그 ‘사내’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줄행랑을 쳤는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혹자는 ‘녀석’과 ‘사내’가 주도하는 서사(거시적 서사)에 ‘나’라는 인물이 상황 파악 못한 채 개입하기 시작하는 또 다른 서사(미시적 서사)의 시작일 것이라 추측하기도 할 것이다.      
답이다. 그 서사는 필자도 (확실히) 모른다. 텍스트의 나열을 통해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서사를 구성해 내가는 가운데 만들어진 것일 뿐, 앞으로의 서사는 전적으로 이미지를 연속시켜 나가는 필자의 상상에 달려 있다. ‘텍스트 쓰기’란 읽기의 과정을 통해서 참여하는 주체(자아일 수도 타자일 수도 있는)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장치로 고려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에 따라 변하는 글쓰기 주체의 변덕스러움이나 일관성이 함께 작동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텍스트들의 연속은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통합체로서의 서사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
‘이미지 만들기’ 역시 시간에 따른 이미지 생산 주체의 변덕스러움과 일관성이 함께 작동하면서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늘 유동적이다.
문제는 텍스트의 생산이든 이미지의 생산이든 동일하게 서사를 귀결시킨다는 점이고 그 과정 속에 상호 역할이 부가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텍스트가 귀결시키는 서사에는 ‘이미지의 연상체’가 작동하고 이미지가 귀결시키는 서사에는 ‘텍스트의 연속체’가 작동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알려진 전형적 서사에는 이러한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호 부가적 역할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해석’과 ‘비평’의 장이 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텍스트와 이미지의 쌍방 역할이 애초부터 타자와의 적극적 커뮤니케이션을 의도하지 않는 텍스트(이를테면 일기)나 이미지(이를테면 일상 이미지)에도 깊이 잠입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 모두가 서사를 구성한다는 것은 이 글에서 주요한 관건이다.

왼쪽·명제표의 내용을 부지런히 베끼고 있는 학생 관람객. 전시장에서 다수의 관객은 텍스트의 힘을 빌려서 이미지를 파악하려고 한다. 이것은 이미지/텍스트의 상보 관계가 소통시키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오른쪽·영화 〈왕의 남자〉 포스터 : 대중매체가 생성시킨 감각적 이미지들과 흡입력 있는 서사는 쾌락을 기치로 관객을 보기의 순간부터 쉽사리 놔주지 않는다. 비판적 수용자가 당면한 과제는 이미지에 대한 읽기(reading)의 방식을 취하면서 서사에 담긴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밝혀 내는 일이며 이에 대한 새로운 담론의 이데올로기를 쉼 없이 창출해 내는 일이다.

2. 서사: ‘이미지/텍스트’의 상보와 통합

일견 서사 구성에서 이미지는 텍스트보다 나약해 보인다. 서사라고 하는 것이 텍스트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만큼 텍스트와는 혈족이지만 이미지와는 상보적 관계나 대비적 관계를 형성하는 이웃이다. 텍스트는 진술(statement) 분석(analyse) 해석(interpretation)을 시도하면서 서사를 효과적으로 구성해 내지만 이미지는 매체의 특성상 태생적으로 서사를 은유적이거나 추상적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앞 장에 나온 서사의 단편 같은 서사는 전체 서사(거시적 서사)를 풀어내기 위한 서사의 단편(미시적 서사)이기도 하지만, 텍스트의 조합을 통해서 단지 묘사(description)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연속시키고 있기 때문에 텍스트에 숨겨진 서사를 파악하는 데 장애가 있다. 즉 텍스트의 장점인 진술이나 분석, 해석을 내세우지 않은 채 이미지화된 상태로 텍스트를 도구화하는 탓에 마치 이미지로 서사를 구성한 것처럼 서사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해 내기 힘들다.
앞의 예문을 진술 분석 해석의 차원으로 텍스트화해 보자.

온 나라가 노무현 전대통령의 장례와 북한의 핵실험으로 비탄과 한숨 그리고 긴장으로 뒤숭숭한 가운데서 수구꼴통인 내 남친과 벌였던 엇갈린 대화가 아직도 가슴에 앙금처럼 남아 있다. 모처럼의 데이트를 저녁 식사도 없이 한바탕 싸움으로 헤어지고 귀가하는 길, 남친이 했던 말이 자꾸 떠오른다.
“야! 너, 남자가 이 세상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나이 삼십 줄에 이 척박한 현실에서 직장 포기하고 어떻게 사니? 내가 넥타이 매고 회사 다니는 줄 알아? 내가 남들하고 똑같아?”
남친은 군대에 말뚝 박고 현재 중사를 달고 있는 직업 군인. 엄마가 말릴 때 진즉에 헤어질 것을 그 놈의 연정이 뭐라고 지금까지 같이 주말 애인으로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남정네 일반이 미워진 것은 여직원들한테 죄다 치근덕거리는 회사의 김 과장 탓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치 분야가 관심인 내 말에는 언제나 무시부터 하고 드는 저 독선적인 남친 탓이다.  
그런데 이건 뭐야. 내 앞에서 어디 고삐리 같은 남자애 한 명이 담배를 피며 거들먹거리고 걸어가고 있네. 어쭈. 술기운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놈이 피다 만 꽁초를 보란 듯이 차도로 버려대는 꼴이라니…….
“무슨 짓이야?”
가뜩이나 남친 때문에 남정네가 다 미워 보이는데 잘 만났다. 내 이 꼬마 녀석을 혼내 주리라. 근데 내 말을 완전 무시하네. 이놈이.
“무슨 짓이냐고? 엉!”
그제야 녀석은 고개만 삐딱하게 돌려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며 한마디 내뱉는다.
“그래서?”
“잉…… 뭐라고?”
아! 대략난감. ‘어린 것의 대꾸가 기가 막히지도 않네. 날 여자라고 이것마저 깔보네.’ 황망한 심정으로 말을 이어가려는 그 순간, 길 건너편 보도에 깜빡이를 켜놓은 차에서 누군가 후다닥 뛰쳐나오며 소리친다.
“너 거기 서! 거기 안 서!”
갑자기 녀석은 전속력을 내며 냅다 줄행랑을 치고 차에서 뛰쳐나온 사내는 녀석을 뒤쫓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린 나도 덩달아 녀석을 잡기 위해 뛰기 시작한다.
‘저런 싸가지 없는 놈, 잡히기만 해봐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뛰는 녀석의 뒷모습에서 남친의 뒤통수가 오버랩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녀석의 뒤를 쫓는 사내가 갑자기 고마워진다. 이쯤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뜀박질을 멈춰도 될 것 같다. 사내가 녀석을 쫓는 이유가 담배를 버린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뭔가 이상한 구석도 있고 괜한 일에 휘말리다가는 낭패하기 십상이니까. 
 
윗글은, 이미지의 연속성을 강화시키는 묘사를 시도했던 첫 예문에 비해, 사건의 전후 서사를 이해할 수 있는 진술과 해석이 비교적 폭넓게 텍스트 위에 올라서 있다. 묘사에 국한되어 이미지화되는 텍스트 조합보다 진술과 해석의 방식으로 사건에 따른 원인과 결과가 얽혀 있는 텍스트 조합이 서사 구성에 적합해 보인다. 그렇게 구성된 서사는 이해하기도 수월하다. 즉 서사의 혈족인 텍스트는 서사 구성이나 해독에서 이미지보다 강력하다.
하물며 출발부터 텍스트 조합을 통하지 않고 이미지 자체로 구성된 서사는 어떠한가? 앞 예문의 뒤에 조금만 더 추가해 보자.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뒤에서 번쩍 하고 섬광이 터진다. 숨을 헐떡이고 되돌아 보니 어떤 젊은 남자가 내 뒷모습에 대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 것이다.
“뭐예요?”
씩씩거리며 따지는 내게 그 젊은 남자가 머리를 부비며 말한다.
“죄송해요. 사진과 학생인데요. 오늘 과제 때문에…… 카메라 앵글이 잘 나온 것 같아서…… 죄송해요. 함부로 찍어서…… 그냥 드릴게요.”
젊은 남자가 폴라로이드 사진을 빼내어 몇 차례 흔들더니 망설이다가 볼펜으로 사진 위에 무언가 긁적거리더니 그냥 그것을 내게 주고서는 도망치듯이 가면서 몇 마디 한다.
“방해해서 미안해요…… 조깅하시는데…… 서두르세요. 동료들한테 늦겠어요.”
“잉?”
아니나 다를까? 젊은 남자의 사인으로 보이는 휘갈겨 쓴 글씨 위의 회색 화면이 서서히 색을 찾아가며 떠오르는 이미지는 영락없이 저녁 무렵 조깅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앞의 예처럼 이미지 자체는 서사를 이루는 메시지의 자격을 부여받기에는 부족한 지점이 없지 않다. 도망자와 추적자가 뒤섞여 조깅하는 동료로 변질되는 것도 이미지에 대한 관자의 해석 때문이다. 같은 이미지라도 관자에 따라 달라 보인다. 게다가 더 근본적으로 심각한 것은 이미지 자체가 퍼스(Peirce)의 견해처럼 ‘중의성과 다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서사에서 모호함을 그 특성으로 하는 이미지가 지닌 본질을 밝히기는 여간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미지 자체로 서사를 구성하는 데 실패하고 이것을 텍스트로 번안해서 이해하려고 애쓴다. 고딩의 뜀박질과 사내의 뜀박질에는 조깅이 아닌 도망자와 추격자라는 상황을 야기한 서사가 있었다는 지점을 쓰기의 방식이든 말하기의 방식이든 텍스트로 번안해서 설명해 주어야만 사진을 찍었던 그 ‘젊은 남자’는 비로소 이해할 것이다. 그 젊은 남자가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뒤늦게 뛰어들어서 보았던 이미지나 그가 포착해서 찍은 사진 이미지는 서사를 온전히 담기에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전혀 엉뚱한 서사를 연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미지는 서사의 구성과 해독 체계에서도, 커뮤니케이션에서도 피상적이다. 그래서 텍스트의 번안을 통해서 그 이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말로 일일이 감정 상태를 표현하기보다는 희로애락이 드러나는 우리들의 얼굴 표정이 감정을 표현하는 데 더 수월할 수 있지만, 그 이미지를 대면하는 애인은 화난 표정으로 토라져 있는 상대에게 그런 표정에 잠긴 이유를 직접 말로 들어야지만 그(그녀)와의 소통에 이를 수 있지 않았던가? 때로는 모르는 길을 묻는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약도를 보여주는 것이 더 수월할 수 있지만, 약도에서 지금 이곳이 어딘지를 짚어주고 말로 풀어주어야만 온전하게 길을 가르쳐줄 수 있지 않았던가? 미아를 찾는 부모가 아이의 모양새를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아이의 사진 한 장을 보여주는 것이 더 수월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사건이 발생했는지를 텍스트로 진술해 주어야만 비로소 소통의 시발점을 열지 않았던가? 
소통에서 일견 텍스트보다 이미지가 보다 더 수월해 보이는 까닭은, 텍스트라는 것이 실재를 풀어서 이야기로 변환시켜야 하는 과정으로 인해 실재의 경험으로부터 소외되는 반면에, 이미지는 실재를 즉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이미지는 강력한 지시성을 지니고 있어 즉발적으로 메시지를 파악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미지를 공유하지 못하는 상황일 경우에는 대부분 다의적이고 중의적일 수밖에 없어 설명과 해석을 요구한다.
하물며 이미지를 소통의 근간으로 하는 미술작품에서는 더욱 텍스트적 번안 행위가 긴요해진다. 도대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어 작가에게 물어보거나 작품 제목을 또는 작품 해설문을 읽고 이해하려 애쓴다. 또는 전시장에서 도슨트에게 작품 해설을 요청해 듣기도 한다. 중의적이고 다의적인 이미지를 고정하거나 중계해 내는 텍스트를 통해 이미지의 정체를 확인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지를 설명하는 텍스트의 힘은 또한 부실하다. 경우에 따라서 이미지 자체(화장실 픽토그램)로 혹은 텍스트 자체(편지)로 소통이 가능하지만, 우리 일상사에서 ‘이미지에 따르는 텍스트’ 혹은 ‘텍스트에 따르는 이미지’ 자체가 별리되는 순간 우리는 혼란스럽다. 그래서 이미지/텍스트가 늘 함께 있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사건을 기록하는 사진기자가 보도사진을 찍은 후 안심하는 까닭은 이미지의 즉각성을 객관화하기 위해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운전대를 잡고 모르는 길을 경유해 가면서도 마음이 든든한 이유는 내비게이션(이미지/텍스트)이 가리켜 주는 가이드에 의지하는 까닭이며, 아이 잃은 부모가 희망을 거는 까닭은 인터넷 상에 올린 아이 사진과 상황 설명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미아 찾기 포스터(이미지/텍스트)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새로 설치한 포토샵을 배우기 위해 매뉴얼(이미지/텍스트)을 보거나 미술 전시회에 갈 때 전시 카탈로그(이미지/텍스트)를 보려는 까닭도 이미지/텍스트의 상보관계가 소통시키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뤼네발트 〈그리스도의 책형〉 목판에 유채 1510~1515
십자가상의 예수의 좌측에는 슬픔에 빠진 마리아, 그녀를 부축하는 제자 요한과 오열하는 막달라 마리아가 있고 우측에는 예수가 ‘구세주’임을 증언하고 있는 세례요한이 있다. 이와 같이 도상에 기반하고 있는 성화는 다수가 문맹자이던 신도들에게 이미지를 통해서 서사 체계를 이해시키기 위한 이코노텍스트이자 가시적-언표가 된다.

3. ‘가시(적) 언표’와 이코노텍스트

이미지보다는 텍스트가, 나아가 텍스트보다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함께 있는 상태가 서사의 구성과 해석에 용이하다. 이미지란 가시성(visibilit?에 근간한 시각적 대상이며, 그것의 반대 지점은 비가시성(non-visibilit?에 근간한 비시각적 대상이라기보다는 들뢰즈나 푸코 식으로 말하면 ‘언표’(럑onc?가 된다. 언표란 언어가 명제 상징 담화 등으로 규정되기 전 질료 상태의 기호들의 집합이다.
앞의 첫 예문에서 지칭된 ‘꽈다당’과 같은 의성어나 ‘야!’, ‘잉!’과 같은 감탄사는 물론이고 ‘녀석, 놈’과 같은 인칭 대명사,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거기 서! 거기 안서!”, “뭐예요?”와 같은 모든 질료적 텍스트가 언표가 된다. 그것은 주어 술어 목적어가 갖추어진 문장(phrase)이 아니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담보한다. 문장이 아닌 것뿐만 아니라 문장 역시 언표가 된다. 따라서 “인생은 예술이다”와 같이 지시 대상과 관계를 맺는 논리학의 ‘명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언표는 마치 텍스트를 통해 상황을 만들며 행하는 글쓰기보다는 실제의 무수한 상황 속에서 말하기가 주도하는 방식의 것이다. 즉 랑그(langue)의 체계이기보다는 파롤(parole)의 체계에 가깝다. 언표란 언어 기호들이 항상 타자 혹은 사물과 관계를 맺을 때 형성되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논의 식으로 하자면 가장 기초적인 질료의 상태로서, 서사의 구성적 조건인 기초적 텍스트가 된다.
이 언표가 이미지가 함께 있을 때 서사의 구성 및 해독이 용이해진다. 그런 차원에서 ‘서사를 이루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을 텍스트가 주도하되 둘이 결합된 상태인 ‘이미지+텍스트’ 혹은 ‘이미지/텍스트’를 우리는 여기서 ‘가시(적) 언표’로 부를 만하다. 그것은 파롤(parole)의 체계를 기표(signifiant)로, 의미의 체계를 기의(signifi?로 살펴보는 기호학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이미지(기표)와 텍스트(기의)로 살펴보면서 ‘이미지/텍스트’를 ‘가시(적) 언표’로 규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시(적) 언표’는 문장이 되든지, 문장이 안 되든지 간에 의미의 체계를 지닌 텍스트가 이미지와 결합한 것으로서 서사의 필요충분조건을 형성한다. 
물론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에 관한 다른 차원의 정의도 있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겸 이론가인 미셀 네를리쉬(Michael Nerlich)가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 상태를 아이콘과 텍스트의 합성어인 ‘이코노텍스트(iconotextes)’라는 용어로 규정한 것이 그것이다. 즉 ‘이미지와 텍스트가 분할될 수 없는 총체적 상태’를 의미하는 이 말은 오늘날에 이르러 글과 그림이 한 덩어리로 섞여 있는 문자도(文字圖)는 물론이고 서예와 회화의 접목을 시도하는 캘리그램(calligramme)이나 영상과 사운드까지 뒤섞여드는 일명 ‘시청각적 시(詩)’라는 오늘날의 멀티포엠(multipoem)에 이르기까지 두루 아우른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이코노텍스트를 오늘날 미디어 광고에서 일상처럼 만나기도 한다. 특히 동영상과 하이퍼텍스트 유형으로 이미지와 텍스트가 납작하게 붙어있는 인터넷 웹은 지금까지 테크놀로지가 도달시킨 것 중에서 가장 첨예한 ‘이코노텍스트’ 혹은 ‘이미지/텍스트’의 전형이 된다.
이러한 현실에 비춰볼 때, 음악 무용 등 비미술의 예술 장르와 뒤섞이는 것은 물론이고 철학 언어학 심리학 등 비예술의 경계까지 넘나들며 영역 확장과 이종생성의 혼성을 도모하는 현대미술의 장에서 이코노텍스트 혹은 이미지/텍스트의 유형은 존재한 지 이미 오래이다. 만화를 확대 재생산한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알파벳을 작품에 이미지로 치환시킨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실재와 이미지의 간극을 이미지와 텍스트로 병치하는 개념미술작가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텍스트 자체로 회화를 만드는 여성주의 작가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등의 작품은 우리가 단지 시각예술 혹은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뿐, 우리가 적용해 보는 용어 ‘이코노텍스트’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글에서, 미술의 고유 언어인 이미지가 문학 혹은 언어학의 고유 언어인 텍스트와 뒤섞여 만들어 내는 이코노텍스트를 서사라는 주제 아래 문학이 아닌 이미지의 차원에서 살피고 있다는 데 논의를 집중하고자 한다.
최초의 이미지들이 유희적 충동이든, 제사적 의례이든 간에 서사(narrative)라는 텍스트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미지 안에는 이미 텍스트가 숨어 있었던 셈이다. 더 나아가 문맹자에게 성서의 내러티브를 이해시키려는 의도에서 생성되었던 중세시대의 성화(聖畵)들은 텍스트를 드러내기 위해 도구적으로 존재했던 이미지였다. 이미지 자체가 텍스트를 대신해 존재하는 소통 체계였던 것이다. 그런데 점차 이미지의 상징 조작이 비대해지면서 텍스트는 그 이면으로 숨게 되고 그 숨겨진 텍스트를 드러내는 일에 집중한 것이 16~19세기의 도상학(圖像學, iconography)이었다. 그것은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미지로부터 텍스트를 찾아내는 연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화가들에게 텍스트를 이미지 속에 숨기는 상징과 표상이라는 회화술을 가르치는 실기 이론이기도 했다.
이미지로부터 숨겨진 서사라는 텍스트를 드러내기 위해(혹은 숨기기 위해) 존재했던 상징과 표상은 오늘날 더 이상 주요하지 않다. 실재와 가상의 경계까지 모호하게 하는 오늘날 컨템퍼러리의 세계에 이르러서는 텍스트는 이미지 뒤에 더 이상 숨지 않고 그 전면 위로 나서거나 이미지와 한 덩어리로 납작하게 달라붙는 하이퍼텍스트의 장을 열어젖히고 있다. 구조주의 모던 시대까지만 해도 이미지를 단단히 고정하거나 중계하는 것으로 굳게 믿어졌던 텍스트의 역할론은 포스트구조주의 컨템퍼러리 시대인 오늘날에 이르러 힘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주 정보와 잉여 정보의 역할 관계가 뒤죽박죽 섞여드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이제 이미지와 텍스트는 기표/기의의 현대적인 분석에 포획되지 않고 단지 의미 없는 기표 자체로 부유하기조차 한다. 오늘날의 이코노텍스트는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적 기의를 상실한 기표적 이미지로 지칭되기도 한다.

4. 서사의 구성: ‘이미지/텍스트’ 보이기 혹은 쓰기

‘이코노텍스트’가 이미지/텍스트의 합성체에 대해서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저 떼어놓기 힘든 새로운 괴물!”이라고 혀를 내두르는 입장에서 확장되어온 용어라고 한다면, ‘가시(적) 언표’라는 새로운 조합어는 이미지/텍스트의 합성체를 “그놈 참! 이놈, 저놈으로 떼놓기 힘들지만 괜찮아. 오늘날 그런 노력 자체에서는 별 의미를 찾을 수 없으니까…… 근데, 이미지에서의 서사 연구에는 꽤 괜찮은 모델 같아. 고놈의 언표라는 것이 마치 이미지 같이 쓰이거든!”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적어도 이 글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이미지에서의 서사’ 연구의 포괄적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미지를 텍스트가 이미 결합한 이미지/텍스트 유형으로 정초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이코노텍스트의 정체성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푸코(Foucault)로부터 ‘언표’라는 용어를 빌려온 우리의 조합어 ‘가시(적) 언표’의 정체성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언표가 구조화된 언어적 정체성을 지니기 이전의 질료 차원의 텍스트라는 점에서 그것은 이미지의 특성과 일정 부분을 공유한다. 맥락에 따른 관계 구조를 형성할 때 비로소 언어로 등극하는 ‘언표’와 하나의 의미로 구조화할 수 없는 다의(多意)적 체계인 ‘이미지’는 닮아 있다. 적어도 오늘날 이미지는 부단히 개입하는 텍스트의 역할로 인해 이미지/텍스트의 위상으로 정초될 뿐만 아니라 현대의 이미지는 이미 사회의 규약 속에서 그 자체에 텍스트를 지니고 있다. 즉 이미지에서 외연적 영역은 이미지 단독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내포적 영역은 언표와 같은 질료적 텍스트를 지닌다.
생각해보자. 먼저 텍스트. 
언어는 소쉬르(Saussure)가 주창했듯이 사회적 관습과 규약이 합의의 체계로 만들어낸 ‘자의적 기호(arbitrary sign)’이다. 자의성이란 결국 ‘고딩’이나 ‘고삐리’ 처럼 모든 주체를 제어하는 사회적 규범에서 잉태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 용어를 사용하는 다수의 주체들의 합의 체계 아래서 소통되는 특성에 귀속된다. 텍스트는 필수적으로 이러한 자의성에 의해서 운위된다. 텍스트란 내재적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관계적인 것이다. 그런 탓에 소통을 빌미로 텍스트는 사회 안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고딩이나 고삐리보다는 고등학생이라는 용어로의 순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텍스트를 통해 서사를 만드는 주체들은 사회적 규범 안에서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면서도 특정 계급을 공유하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딩이나 고삐리를 선호하기도 한다. 수익의 극대화를 창출하려는 시장은 상품 마케팅이나 광고 마케팅을 위해 사회적 규범 안에서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이탈하려는 서사 만들기에 집중한다. 때로는 기업 윤리, 광고 윤리를 통제하는 법적 제도로부터 경고를 받아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기도 하지만 텍스트를 통해 서사를 만드는 주체들은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면 이미지를 통한 서사 만들기란 어떠한가?
이미지 자체의 특성은 감각의 영역에 속해 있는 만큼, 소통을 위한 협의 체계인 텍스트와 달라서 자의적 규칙으로부터 미끄러진다. 이미지는 자유로움 모호함 다의성으로 인해 사회적 의미 규칙보다는 자연적 의미 규칙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실의 재현적인 이미지가 아닌 추상화와 같은 예술 영역의 이미지는 자의적 규칙으로부터 멀찌감치 벗어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이미지이든지 그 안에는 텍스트가 존재한다. 그 텍스트란 인간이 이미지를 대면하면서 혹은 창출하면서 가능해진 텍스트이다. 추상 회화의 창작에서도 텍스트의 개입은 언제나 이루어지고 있다. “회화의 순수 본질을 드러내어야지” 혹은 “내 막막한 심정을 표현해 내고 말거야” 등 이미지를 통한 서사 만들기는 어떠한 장에서도 가능하다. 따라서 오늘날 이미지는 텍스트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 이미지 자체의 특성을 견지하기가 쉽지 않다. 외연(혹은 지시, denotation)의 형식인 이미지가 개입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내포(혹은 함의, connotation)의 의미인 텍스트가 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의 이미지는 외연 형식에서부터 텍스트가 잠입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이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광고 홍보 방송 영화 인터넷과 같은 영역에서 오늘날 이미지는 이미지/텍스트가 대다수이다. 텍스트의 고유 영역인 자의적 규칙에 이미지 자체가 자연스럽게 포섭되어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즉 이미지 자체의 특성과는 다르게 오늘날 이미지는 텍스트의 내포적 외연적 개입으로 인해서 자의적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오늘날 이미지는 텍스트의 잠입으로 인해서 지배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새로운 담론의 서사 만들기가 용이해진 것이다. 텍스트가 주도하는 서사 만들기이든지, 이미지(텍스트/이미지)가 주도하는 서사 만들기이든지 서사의 주체(발화자, 이미지 생산자, 예술 창작자)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며 코드매기(encoding)에 집중한다. 물론 이미지가 주도할 경우는 보이기(showing)의 방식으로, 텍스트가 주도할 경우는 쓰기(writing)의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한다.
오늘날 “예술(미술)이 무가치하다”는 보드리야르(Baudrillard) 식의 진술을 빌어 이미지의 무가치성을 폭로하고 그것을 저버린다고 할지라도 오늘날 이미지 생산자들은 이미지/텍스트의 힘을 신뢰한다. 일상과 평범함에 이르는 모든 것이 미(美)적인 것이 되어서 오늘날 미술이 초미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실재 같은 가짜’인 시뮬라크르(simulacre)가 충만해 초실재(hyper-reality)의 세계가 되어버린 오늘날에도 이미지 생산자들은 이미지의 매력을 저버리지 않는다. 이미지/텍스트가 우리의 미디어적 일상 속에서 의미를 잃고 기표처럼 부유한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이미지 생산자들은 이미지/텍스트 생산에, 저마다의 의미 부여에 힘을 쏟으며 보이기 혹은 쓰기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이미지 외연의 기술을 창안하기 위해 분주하다. 이미지는 그들이 세상을 보고 읽는 눈이자 그것을 해석하는 의미체이기 때문이다.

5. 서사의 독해: ‘이미지/텍스트’ 보기 혹은 읽기

일상 속에서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채 ‘생성된 이미지’나 예술이나 미디어 속에서 주체가 의도적으로 ‘생산시킨 이미지’ 모두 우리에게는 보기의 대상이다.
지금 일상의 자리에서 둘러보는 내 책상 주위에 놓인 필통 화장품 사전 시계와 같은 오브제의 결합들로 인해 생성된 이미지나, 거리에서 맞닥뜨리는 풍경 이미지들은 비교적 몰입의 차원으로부터 관자를 자유롭게 한다.
반면 이미지 속에 푹 잠입해서 이미지(이미지/텍스트)가 만든 서사에 흠뻑 젖고 마는 경험을 우리는 일상에서 여러 차례 목도한다. 주로 매스미디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이며, 경우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텔레비전의 드라마, 쇼프로, 스포츠 실황 중계나 영화와 같은 대중매체가 생산한 이미지들도 그러하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관자의 보기 과정을 몰입의 경지에 이르게까지 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특히 텔레비전이 전화나 문자 메시지 전송 또는 방청을 허용하면서 시청자와 상호작용을 시도하는 노력을 하지만 여전히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까닭은 관람자들을 동물적 감성 혹은 자연적 감각의 육적 심리적 영역에 의탁한 ‘쾌락’에 깊이 잠입시키는 까닭이다.
보라! 한일 월드컵의 저 붉은 악마들의 응원과 그것에 힘입은 한국 전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활약을…… 보라! 마약의 유혹처럼 관객들을 티브이 앞에 불러 모으는 일일드라마에 매일 나오는 절정의 장면들을…….
대중매체가 생성시킨 감각적 이미지들과 흡입력 있는 서사는 관객을 보기의 순간부터 쉽사리 놔주지 않는다. 이것은 적극적 의도의 이미지 생산자가 만들어낸 서사가 쾌락을 기치로 관객을 붙잡는 기술이다. 멀비(Mulvey)에 따르면 ‘쾌락이란 관음증적인 엿보기를 통한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순응의 결과’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미지에 대한 보기의 행위를 하는 이들을 흡입력 있는 서사를 통해 구속시키는 것은 거꾸로 관자가 이미지가 제공하는 이데올로기에 지배되고 순응하는 패배를 의미한다.
이미지에서의 서사가 제공하는 이데올로기를 벗고 그것으로부터 패배하지 않는 길은 이미지에 덧칠된 서사를 온전히 독해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보기(seeing)의 방식을 버리고 읽기(reading)의 방식을 취하는 길이다. 그것은 이미지의 껍질인 외연이라는 형식에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탈피해서 이미지 안의 내포라는 내용을 독해함으로써 가능하다. 바르트(Barthes)의 언급처럼 수용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결국 ‘텍스트의 다의성을 내포적 형식에서 해체, 해석하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사회적 서사구조인 맥락(context), 즉 문화적 사회적 코드를 이해하고 풀어내는 과정 속에서 성취된다.
생각해 보라. 이 글의 세 번째 예문에서 ‘사진을 찍었던 젊은 남자’는 이미지가 형성하는 서사의 맥락에 뒤늦게 참여함으로써 ‘나와 그들이 만든’ 이미지의 외연만 보고서 ‘도망자와 추격자’의 위상을 간파하지 못하고 ‘조깅하는 사람들’로 착각한다.
일상의 이미지에서든, 추상회화의 영역에서든 이미지를 잉태케 한 문화적 사회적 코드가 이루는 맥락에 따른 분석이 시도된다면 이미지 읽기를 통한 서사의 독해는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서사의 독해에서 주요한 것은 맥락에 근거하여 이미지 안의 ‘읽기’를 꾀하는 내포의 영역에서 수용자의 적극적인 위상이 주요해진다는 지점이다. 홀(Hall)은 텔레비전 코드 해석의 3유형을 제시하면서 수용자의 위상을 검토하고 있다. 하나는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고 마는 헤게모니적 코드(hegemonic code)를 풀어가는 해석이고, 또 하나는 순응과 저항 사이에 존재하는 타협적 코드(negotiated code)를 풀어가는 해석이며, 마지막 하나는 저항적 코드(oppositional code)로 풀어가는 해석이다. 보기를 시도하든, 읽기를 시도하든 순응과 저항 사이의 타협적 코드를 통한 해석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사회 구조 상층부에 있는 지배이데올로기가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 일정 부분의 범주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논의는 기존 질서의 재생산에 힘쓰는 지배이데올로기를 ‘저항적 코드’를 통해서 벗겨내고 그것의 서사를 해석하는 데 있다.
그것은 우리의 논의식으로 언급하면, 이미지/텍스트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면서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발견해 내고 생산된 이미지 안에 내포된 메시지를 거부하며 전혀 새로운 방향에서 ‘이미지의 서사’를 읽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수용자가 이미지 안으로 전면적으로 들어오는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열린 해석의 차원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또한 매어진 코드를 사회적 맥락에서 다시 풀어내는 가운데 수용자가 지배적 이데올로기 구조를 밝혀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담론을 형성케 해서 새로운 층위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소수자 담론도 그렇게 태어나고 수용자 담론도 그렇게 태어났다. 
자. 이제 글을 정리하자.
이미지(이미지/텍스트)의 생산자들은 쓰기(writing)의 방식이든지 이미지를 앞세우는 방식이든지 간에 관객에게 보이기(showing)를 위한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검토한다. 한편 이미지의 서사 독해를 위해 수용자들은 이제 이미지의 외연 보기(seeing)로부터 이미지 내포 읽기(reading)라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검토해야만 한다.
해독 혹은 해석이란 원래 원전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석이란 수용자의 현재적 관점에 따라 유동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이미지가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를 맥락에 따라 온전히 이해하면서도 그것에 담긴 지배이데올로기를 벗겨내고 저항하는 일이 수용자에게 남겨진 관건이 된다. 그것은 거시적 서사를 폐기하고 미시적 서사 속으로 깊이 잠입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미지에서의 서사를 독해하기 위해서는 미시적 서사에 대한 깊은 잠입을 통해서 새로이 연쇄되는 담론을 활성화시키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층위의 이데올로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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