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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9.06

Abstract

특집 ASIAN ART MARKET 글로벌 경제 위기로 세계 미술시장의 기상도가 바뀌고 있다. 바로 지금, 아시아 미술시장이 세계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의 시기'다. 중국의 밀리어네어 작가 들의 작품을 보다 많이 거래하기 위해 베이징에 분점을 냈던 서구 유수의 화랑들은 이제 아시아 미술시장을 더 넓게 바라보고 있다. 한중일 작가들과 더불어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작가들도 떠오르고 있으며, 아시아 미술 시장도 다양화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매달 국제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아트파리는 암울한 미술시장의 대안으로 아시아 작가들을 선택했고, 도쿄아트페어는 일본 현대미술을 재점검하며, CIGE와 아트베이징은 보다 성숙한 자세로 행사를 개최했다. 그리고 5월에 열린 홍콩아트페어는 아시아 미술시장의 플랫폼임을 과시하며 예년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행사를 치렀다. art는 국제 아트페어의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2009년 상반기 아시아 미술시장을 결산하는 특집을 꾸몄다.

Contents

표지 김인겸 <Space-less> 스테인리스스틸에 우레탄 아크릴릭 코팅 2009

에디토리얼 창간 10주년 기념행사를 열다_김복기

프리즘
    한국형 레지던시와 ‘대안의 정신’지켜가길_유사쿠 이마무라
    미술의 ‘현실과 발언’여전히 필요하다_김종길

아티스트 아틀리에 아카이브
    김경희_이선화

김순응의 줌인 아트마켓
    불황기 미술시장의 불미스러운 일들

포커스
    김인겸|김청정_김복영
    줄리안 오피|대학로 100번지_정용도
    박원주|최은경_이선영
    안창홍_성완경

특집 ASIAN ART MARKET
    (1) 홍콩_국제 미술시장의 ‘아시아 허브’_이성희
    (2) 베이징_거품론을 이겨내고 ‘가능성의 땅’으로_김현
    (3) 도쿄_일본미술의 자생적 도약을 예고하다_박은정
    (4) 파리_모든 아트페어는 하나다_베아트리체 샤스포트

인터뷰 SILVER POWER
    (1) 국립현대미술관장 배순훈_“탱크주의로 세계적인 미술관 만들겠다”_김복기
    (2)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오광수_ “작가에게 꼭 필요한 새로운 지원사업 만든다”_호경윤
    (3) 예술의전당 사장 신홍순_ “예술과 관객과 기업이 만나는 스위트 스팟으로”_이선화

암흑 물질 앨리스 뮤지엄

특별 기고
    마네와 백남준-1963년, 서양 근(현)대의 사고를 넘다_이영철

이미지 링크 권순관

해외 전시
    하노버 메세, 메이드 인 코리아_박만우

나의 얼굴 이상선

화가의 앨범 김종영과 그의 제자들

전시리뷰
    세라믹스-클라이맥스|어떤 장소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임민욱
    노란 북극곰의 보이지 않는 사랑
    춤추는 무뢰한|임지연
    versus 2|이호인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장파|이정민|김태연|이은실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암흑물질-A.L.I.C.E Museum

A.L.I.C.E. MUSEUM

(1) Artistic Studio 톡톡공작소 -아티스트들과 함께 미디어로 이야기하며 톡톡 튀는 상상의 세계 만들기

예술가들은 사회의 시스템 밖에서 혹은 안에서 기존의 관계와는 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만의 상상력을 통해 다음 시대에는 평범한 일상이 될 것들을 부단히 준비하는 시대적 돌연변이가 그들이다. 예술가들과 아이들이 함께 만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가치를 함께 만들어 볼 수 있는 시간.
매 주말 2시부터 4시까지 이루어진 워크숍에는 최승준, 매거진 킹, 이정화&남춘식, 피플레이 & 리본 팀, 셀린 바케 김 & 서효정, 댄스씨어터 까두, 이준 & 여운승이 참여해 어린이들과 흥미로운 만남을 갖는다.

(2) Lively Station 싱싱충전소 -손가락으로만 하지 말고 몸으로 소통하며 서로에게 자극이 되어주기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우리가 기계에 종속되는 시간은 늘어나고 있다. 딱딱한 키보드, 마우스 조이스틱 등과 같은 인터페이스가 아닌 몸과 닿아 있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는 없을까? 잠재된 ‘몸’의 특성을 되찾고 이를 통한 친밀한 소통이 가능한 ‘웨어러블 인터페이스(wearable interface)’로 게임을 하며 잠시 쉬어 가는 공간인 생기발랄 충전소.
작품 설명 : 코바칸트(미카 사토미 & 한나 퍼너-윌슨) 〈Massage Me〉
‘안마해주세요’는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발생되는 에너지가 특수 자켓을 입은 친구나 부모님에게 등, 허리 안마로 전환되어 친밀감을 높여주는 게임 인터페이스다. 최소 두 명의 사람이-자켓을 입고 안마를 받을 사람과 게임을 하면서 안마를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게임의 다양한 기술로 전환되는 버튼으로 구성된 특수 자켓을 입으면 입은 사람의 등이 순식간에 게임 패드로 바뀌게 된다. 이 게임에 몰입한 사람들의 손가락이 안마를 게임 시나리오로 전환시키면서, 일반인들은 원하는만큼 무료 안마를 받을 수 있다.

(3) Intelligent Platform 똑똑플랫폼 -차원이 다른 세상에 똑똑 문을 두드려 별나게 소통하는 방법을 준비하기

인터넷 및 지능형 아바타 등의 출현은 새로운 네트워크 세상을 열었으며, 이제는 더 이상 안과 밖, 이곳과 저곳의 장소적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오픈 플랫폼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며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공간으로, ‘똑똑 플랫폼’은 가상의 인물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작품 설명 : 스텔락 〈Prosthetic head〉
미디어 아티스트 스텔락의 3차원 형상과 대화를 나누는 작업이다. 컴퓨터로 형상화된 스텔락은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컴퓨터 자판으로 그에게 질문을 하면 영상의 화면은 자신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질문에 적합한 답을 찾아 실시간으로 대답을 한다. 전시되는 스텔락의 형상은 사람들이 질문하고 자극하는 만큼 똑똑해지며, 그 스스로가 시를 암송하거나 음악과 같은 소리를 만들면서 점점 더 창의적이 된다. 단순한 가상의 지성을 이미지화한 작업이 아니라 지각과 정체성 그리고 개연성 등의 구현에 대한 개념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4) Eco-Friendly Wonderland 상상생태계 -디지털 기술과 만난 이상하고 신기한 생태계 속에서 생명과 관계에 대해 질문해보기

인간, 가상 생명체, 자연과의 새로운 소통을 꿈꾸는 공간이다. 생물이 만들어내는 빛과 에너지를 내 몸과 직접 연결해 보고, 로봇과 함께 춤을 춰 볼 수도 있다. 가상 생명체를 직접 탄생시킨 후 소리와 움직임으로 소통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상상 생태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스퀴드숩 〈프렉2〉 화면 앞에서 움직임을 보이면 스크린에 진동이 퍼지며 관람자와 소통한다.
지하루 &그라함 웨이크필드 〈가상생태〉
김기철 〈소리보기〉 소리가 가진 입체적인 성격을 조각이 가진 입체성과 연결시켜 소리조각이라는 새로운 조각 형태를 생산. 관객이 작품 근처에 이르면 빗물 바닷물 계곡물 숲속에서의 자연의 소리처럼 변형이나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순수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5) Creative Engine 통통발전소 -자신만의 생명체를, 소리를, 이야기를 만들며 별나게 서로서로 통하기

수학 물리학 생태학 등을 재미있는 게임을 통해 스스로 탐험하듯 배우고, 감각 및 지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운드, 이미지, 라이브 퍼포먼스, 열린 동화 등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히로시 마토바, 카네기 멜론 대학 엔터테인먼트 & 테크놀로지 센터, 페트리 푸로, 양민하, 최승준, 스퀴드숩, 줄리안 올리버, 에릭 스베단, 자나 린케가 선보이는 작업에 게임을 즐기듯 참여할 수 있다.
위부터 시계방향
자나 린케 〈메디언호퍼3,628,800〉 관람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아날로그 시스템이다. 수학적 규칙, 더하기, 그리고 3,628,000개의 경우의 수 리스트를 담은 설명서가 흰색 큐브 안에 들어 있다.
줄리안 올리버 〈레벨헤드〉 레벨헤드는 총 3개의 큐브로 구성되어 있다. 각 방은 하나의 문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플레이어들은 방 안에 있는 주인공을 방과 방 사이로, 또는 큐브와 큐브 사이로 옮겨가며 3개의 큐브를 탈출할 수 있는 출구를 찾는다. 공간 기억에 대한 도전 게임이다.

히로시 마토바 〈오버버그〉 벌레들이 모여 음악을 만들어내는 ‘오버버그’는 아이들이 손쉽게 배울 수 있는 음악 퍼포먼스 도구다. 벌레들이 끊임없이 동그라미를 따라 돌면서 음악의 반복재생으로 이루어진 소리의 배열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준다. 파리채나 주사기와 같은 ‘오버버그’의 아기자기한 그래픽 이미지들이 음악을 만들어보는 재미를 더한다.
양민하 〈알고리즘이 만든 시각적 환영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
최승준 〈원더랜드 극장 2.0〉 관람객의 동화적인 상상을 혼합현실의 공간에서 펼쳐나가는 창조적인 스튜디오. 증강현실 기술을 사용하여 고전적인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창작된 캐릭터는 가상과 현실이 연결된 스테이지 위에서 관람객의 상호작용에 의해 새롭게 탄생된다.

2009하노버메세 주빈국 행사 전

고승욱 <HALLO> 혼합재료 2009

한국미술의 ‘사회 비판’, 독일 백화점을 뒤덮다

인터뷰|호경윤 본지 수석기자

art 〈여가, 위장된 노동〉은 독일 하노버에서 폐점한 백화점 건물에서 전시를 꾸린 것이 이색적이다. 전시 기본 구상에서부터 특별한 방법으로 접근했을 텐데.
박만우(이하 박) 우선 이 전시가 하노버 산업박람회의 동반국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한국 현대미술작가들을 소개하는 ‘국제적 이벤트’라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는 맥락을 전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백화점 건물을 전시장으로 선택한 것은 전시기획 의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포석이었다.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2008년 10월, 여전히 영업 중이었던 당시 진레퍼스 백화점을 처음 보고는 세계 최초의 백화점이었던 프랑스 파리의 봉마르쉐 백화점을 떠올렸다. 진레퍼스는 다른 일반 백화점과는 달리 의복, 장신구만을 취급하는 전통적인 백화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람회와 백화점 그리고 미술관 모두 19세기의 동일한 시각문화의 산물이었다는 점은 이 전시 장소가 함축하는 의미를 보다 각별하게 해주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문화적 산물인 백화점은 서구 미술의 모더니즘으로 하여금 여가와 소비의 장소로서 스펙터클 전시에 가장 적합한 미술관을 구축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경쟁적 동반자 관계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전시 장소로서 진레퍼스를 더욱 도전적인 과제로 만들어 준 셈이다.
한편 하노버는 20세기 미술전시의 역사 가운데 획기적 사건 중의 하나였던 엘 리시츠키의 〈추상적 캐비닛〉이 설치되었던 란데스미술관이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추상적 캐비닛〉이 하노버의 스프렝겔미술관에 재구성되어 설치되어 있지만, 당시 이 작품은 전시 역사상 최초로 관람자가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전시 디스플레이를 보여준 사례였다. 1928년에 뉴욕현대미술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던 알프레드 바와 필립 존슨은 하노버를 방문해 이 〈추상적 캐비닛〉을 보았고, 이는 그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MADE IN KOREA>전이 열린 진 레퍼스(Shin Leffers) 백화점 외부 전경(왼쪽), 하노버 시 한복판의 상업지역에 위치하여 더욱 많은 관람객들이 들어올 수 있었다. 주말에는 2천여명이 전시를 관람했다

백화점의 장소성을 역이용한 디스플레이

art 물론 ‘사이트 스페시픽’한 전시가 발산하는 매력은 기획자에게 강렬하게 어필한다. 그러나 전시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은 오히려 작가 입장에서는 불편한 요소이기도 하다.
백화점은 자신만의 고유한 건축 구조를 지니고 있으므로 그 안에 전시되는 작품을 마치 진열 상품 같이 대상화시킬 위험만큼은 경계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 전시 공간으로서 컨테이너가 갖는 중압감을 견뎌내기에 충분한 물리적 외양을 지닌 콘텐츠로서의 작품들이 요청되었다. 그런 이유로 일부 작가들은 이러한 전시 맥락에 부합하는 장소맞춤형 작업이나, 그 맥락을 전유하는 작품을 제안하기도 했다.
art 공간 연출에 있어 강조했던 점은?
백화점은 공항, 기차역, 버스터미널, 병원대합실 또는 고속도로 휴게소 등과 같은 ‘비장소’ 중의 하나다. 즉 그 건물이 위치한 지역의 역사나 문화적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기능성만이 강조된 일종의 중립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진레퍼스 백화점 건물 역시 전적으로 이런 기능을 위해 구조적으로 설계된 건물이다. 그러나 건물의 건축적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최소한의 개입으로 기존의 백화점에서 느낄 수 있던 분위기를 확 바꾸려고 했다. 즉, 무엇을 추가함으로써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거함으로써 평소 백화점이 표준화한 시각의 관습 또는 시각 기술의 중심축을 흔들어보려 했다.
우선적으로 조명에 손을 대기로 했다. 백화점 공간의 특수한 분위기는 매우 높은 조도의 조명장치들이 공간 전체를 균일하게 밝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상 1층은 일부 벽에 걸린 작품들을 위한 조명기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많은 조명장치들을 제거함으로써, 시간에 따른 자연광선의 변화에 의해 구석구석 각기 다른 조명 효과를 주고자 했다. 한편 지하 1층은 아예 모든 조명장치를 완전히 제거하는 대신 빔프로젝터의 빛에 의해 관람객이 이동할 수 있도록 일정한 조도를 유지시켰다. 그리고 특정한 위치에 선 관람객의 시선에서 보면 프로젝션되는 비디오작품들이 여러 겹으로 중첩되어 보이게 연출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백화점에 있던 기존의 소품들과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작품을 설치하면서 매장에서 사용하던 부착물 일부를 일부러 남겨 놓고 나머지는 제거하는 선택의 과정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또한 전시장 내부에서 에스컬레이터나 투명한 박스의 백화점 승강기를 타고 각기 다른 층을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관람객들에게 일반적인 미술관의 관람 동선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art 주변에 유명 백화점과 상가들이 밀집한 탓에 많은 관람객들이 몰렸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들을 미술 향유층 혹은 애호가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관람객에게 낯선 한국의 현대미술을 이해시키는 전략이 필요했을 텐데.
우선 쇼핑을 나왔다가 우연히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을 위해 작품을 설명해 주는 가이드 투어를 진행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출품작들이 한국 사회의 구체적 현실을 소재로 반영하고 있으므로 현대미술에 익숙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호기심이 많은 관람객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경험을 가진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지만 그들 역시 하노버의 시민들과 동시대에 살고 있기에 공통적인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인다.
그렇지만 만약 작가들에게서 여전히 이질적인 감수성이나 도발적 상상력과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다면 백화점에서 돈을 내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 아닐까? 또한 이번 전시의 특징은 많은 작가들이 참여한 그룹 전시로는 보기 드물게 대부분 한 작가가 여러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을 한 장소에 모아서 배치한 경우도 있지만 때때로  지상 1층과 지하 1층에 의도적으로 분산시키기도 했다. 작품들은 여러 차원에서 서로 공명하고 대화한다. 작가 중심이 아니라 작품들 사이의 연속성이나 일관성에 주목하는 것도 전시 관람의 재미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모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다양한 작업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가족유사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작가의 핵심적 성격을 드러내고자 했다.  
art 대부분의 출품작이 설치작업이나 비디오설치 등이고, 평면작업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매체 선택에 제한을 둔 이유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회화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 평면작업을 설치하자면 많은 벽체들을 추가로 세워야 했다. 그러다 보면 벽체의 숲에 가려 원래의 백화점만이 지니는 흥미로운 장소특수성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물론 국내 상업갤러리들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갖는 설치미술이나 영상작업 작가들을 좀 더 프로모션해 보려는 의도를 아주 부인할 수는 없다.
art 이번 전시에는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 사이에 출생한 작가들만 선정되었는데, 이 세대의 작가들을 선호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들은 대개 1990년대에 미술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이다. 군사독재에 저항해 정치참여적 미술을 실천해 왔던 이전 세대의 작가들과 달리 새롭게 전개되는 사회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사회비판적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이 전시의 초점을 맞췄다.
이들은 또한 1995년 창설된 광주비엔날레 등의 대규모 국제현대미술전 등을 통해 서구 중심의 동시대 미술이 어떻게 글로벌한 지평으로 탈중심화되며 다양한 문화적 담론들을 생산해내는가를 오히려 미술대학 울타리 밖에서 현장을 통해 학습하게 되었다. 이들의 작업 방식은 개념주의 미술 또는 포스트-개념주의 미술의 영향 아래 사진, 비디오 그리고 설치작업 등을 통해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표현 매체의 특수성과 그 한계를 넘어서 다변화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념적 차원에서 볼 때 이 세대 작가들이 수행한 비판적 작업의 차별성은 과거 세대가 산업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모순 극복을 위해 노동공동체에 대한 이상화된 신념을 내세웠다면, 이후 세대의 관심사는 노동의 문제를 넘어 역사적 격변기를 체험한 한국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이슈들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했다는 점이 결정적인 이유다. 아카이브 작업, 공동체 기반 미술, 하위문화의 차용, 도시개입, 대안적 미술활동 등으로 전개되는 이들의 작업은 ‘토착적 개념미술’ 혹은 ‘개념 지향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를 만하다.

지하1층 전시 전경

여가 혹은 노동으로서의 개념미술

art 〈여가, 위장된 노동?〉이라는 전시 제목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전시 제목은 후기인상주의 작가인 폴 시냑의 글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는 1891년 무정부주의 잡지 《저항(La Revolte)》에 〈인상주의자와 혁명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는 거기서 쇠라를 위시한 신인상주의 화가들이 위장된 노동에 다름 아닌 갖가지 프롤레타리아의 오락을 묘사함으로써 계급간의 갈등에 주목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어떻게 보면 베블렌이 〈유한계급론〉에서 주장한 내용을 예견했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 부르주아들이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그들만의 오락과 소비의 공간을 필요로 했고 이는 프롤레타리아들에 의해 모방되어 저급한 취미로 발전되어 대중적 확산이 이루어졌다. 카바레, 서커스, 공원에서의 산책, 일요일 강이나 호수에서의 보트놀이 같은 것들이 그러한 예다.
art 그러한 유럽 근대 자본주의 문화가 한국 현대미술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가?
박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를 백화점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만들면서 ‘노동, 공동체 그리고 쾌락’이라는 핵심적인 키워드를 추출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산업사회가 발전시킨 노동 형태와 생산 양식이 전통적인 공동체 사회를 해체시켰고, 그 결과 사회구성원들이 공동체적 삶에서 누리던 쾌락은 도시 노동자들의 키치적인 대중문화로 대체되었다”고 19세기 말 유럽 사회는 스스로를 인식한 바 있지 않던가.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진보적 문화운동가 및 예술가들은 이를 여전히 유효한 명제로 받아들였다. 이상적인 노동 공동체를 꿈꾸었던 그들에게 상업광고나 대중매체의 문화는 상품문화를 통해 소비라는 물신주의만을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노동의 해방을 통한 공동체 문화의 회복이 절대적 명제였지만 결국 그들이 파악한 노동의 개념 역시 산업주의의 개념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art 일하지 않고 여가를 즐기는 시간이 늘어난 것은 결과적으로 문화, 예술계에는 이로운 일 아닌가? 여가 형태의 어떤 점을 문제 삼아, ‘위장된 노동’이라고 표현한 것인가? 일견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느껴진다.
여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건가? 마음 놓고 핸드폰을 꺼놓고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비노동 시간)은 고도의 생산성을 발휘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통해 자아실현까지를 성취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닌가? 고용의 기회를 잃어버린 많은 노동 인력은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노동의 형태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간병인 혹은 가사도우미와 같이 산업 노동 시장 주변부에서에서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여가는 이렇게 양극화된 사회의 노동구조로 인하여 여가 자체를 즐길 수 없는 자들의 서비스가 존재하기에 그 실현이 가능한 특정한 삶의 양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워킹 홀리데이’라는 새로운 고용 형태의 사례가 그렇듯이 노동과 여가는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상호침투하고 접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도래한 새로운 국면을 여가의 문제를 통해 조명해 보자는 동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른 한편 작가들의 작업은 이런 여가, 노동의 문제의식에서 보자면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이런 질문까지를 염두에 두었다고 할 수 있다.

4월 17일 열린 개막식 장면. 왼쪽부터 디자인전시 큐레이터 김상규, 현대미술전시 큐레이터 박만우, 김정화 총감독, 사진전시 큐레이터 박수진

줄리안 오피 | 대학로 100번지

윤사비&성기완 <학림:왓칭미토킹> 2009

미술은 진화하는가

글|정용도

거대담론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시대에도 이미지의 원상(Prototype)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이는 그런 행위의 지향성이 인간의 정신에 내재된 창조적 사유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원형 탐구의 외연적인 확장에 대한 욕망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욕망이 만들어내는 시각예술 활동의 수평적 확산으로 인해 오히려 나타나는 예술담론 생산성의 빈약함은 예술의 종말로 이야기되기도 하고 표면성의 재생산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컨텍스트에 대한 회고, 한국예술 현장의 회고

줄리안 오피의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주제의 선택과 색채 사용의 예와 선적인 간결성 등은 대중적인 이미지에 천착하는 팝아트적인 속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만, 작가가 추구하는 이미지들의 가변적 속성과 생략적인 이미지 생산은 뉴미디어 시대의 이미지 문화에 대한 반성적 접근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표면성의 강조와 매끈한 표면의 질감, 신체 라인과 그림의 라인을 일치시켜 만들어지는 곡선의 기능성, 이목구비가 생략된 얼굴 형상의 이미지들은 얼굴의 어느 부분을 과장해 특징적으로 표현하는 캐리커쳐적인 접근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이 같은 시각적 묘사로 인해 작가가 예술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칸트의 의미에서 예술에 대한 비경제적 관심을 지닌 관심과 접근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작가가 과감하게 생략하는 형상적 부분들이 대상에 대한 인상주의적인(인상주의가 아니다) 묘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초상 작품들은 1960~70년대 광고의 그래픽 이미지들과 닮아 있다. 게다가 홀로그램 같은 매체의 사용은 작가 작품의 맥락이 직접적으로 팝의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미술사 자체의 컨텍스트에 대한 회고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아르코미술관의 〈대학로100번지〉전 역시 회고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 전시의 성격은 한국예술의 현장을 정리하는 차원의 회고적인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런 면에서 모더니즘적이다). 두 개 층으로 구성된 전시장의 모습은 특별한 지향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전시 텍스트가 말하듯이 대학로에 위치한 미술관이 지난 30년간 만들어 온 내러티브의 기억과 경험에 대한 회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경험적 차원에 대한 탐구의 문제는 구조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내는 경험과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전시가 전달해 주는 정서, 전시에 의해 촉발되고 예측되는 한국미술의 전망과 같은 것들이 전시의 한 중요한 축을 형성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좀 더 직접적인 면에서 전시 구성의 의미론적 맥락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상정할 수 있을 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평면, 설치, 미디어 같은 매체의 다양성에 대한 수용과 퍼포먼스, 관객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위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예술적 장르를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한국미술의 역사적 성격을 규정하고 승화시키는 차원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예술에 대한 제도적 접근은 예술적 상상력의 하위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예술에 대한 비전이 제도를 포괄하고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줄리안 오피의 개인의 예술적 접근이라는 의미에서의 미시적인 내러티브는 오히려 문화라는 상황에 대한 언급으로 확대되고 또한 관객과 예술에 대한 대중적 코드의 공유라는 차원을 자극하고 있다. 아르코미술관의 접근은 회고적인 상황을 하나의 진실로 받아들이라는 마니페스토적인 접근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전시의 성격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장르적인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현재 한국 미술현장의 의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회고적인 성격의 전시가 가질 수 있는 위험성의 첫 번째는 단토의 말처럼 예술은 영원하다는 전제 하에서 보게 되면 예술에 관련된 활동들은 ‘이야기들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되어버릴 위험성이다. 이는 삶을 실천하지 않고 단지 삶에 대한 이야기만을 거듭하는 사람들의 태도 같은 것으로 말만을 확대 재생산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의미가 소통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상황이 만들어지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많은 면에서 그리고 현대미술의 현장에서 예술작품이 되기 위한 특별한 조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삶이 실천과 행위와 깊이 관여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볼 때 작가의 상상력은 의미를 창조한다기보다는 그 자체의 독립적인 내러티브를 통해 대중을 삶의 실천의 장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존재에 대한 반성을 환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오피의 접근이 미술사의 내러티브와 개인의 내러티브를 시각적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삶과 작가 개인의 주변 환경에 존재하는 삶의 단서들로 환원시킬 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이미지적 양태들로 보편화시켜 제시하고 있다면, 그리하여 개인 초상화의 성격을 대중의 문화 속으로 보편화시키는 방식으로 익명의 현대적 개인을 보여주고 있다면(물론 제목은 구체적이다), 그것은 예술이 가지고 있는 기능에 대한 성찰, 예술적 의미의 미학적 해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미술의 진화, 현실의 논의

미술관의 기획전이 미술사의 재현적 모방(미술작품의 모방적 성격의 거시적인 양상)이라고 보여진다면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 질문은 왜 전시의 역사적 배열이 필요한 것인가. 들뢰즈와 가타리의 말처럼 제도의 차원을 완전히 벗어나 외부의 자극 없이 스스로 진화하고 생식하는 어떤 상황이 배치를 통해 또 다른 차원의 존재론적 특성들을 각인시켜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가?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 같은 인식은 상황에 대한 전제가 존재하지 않을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예술작품의 재현의 역사가 전시의 역사성 고찰을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 된다면 그것은 예술에 대한 과잉, 예술의 무용론으로 빠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보드리야르의 세상의 모든 것이 너무 예술화되기 때문에 더 이상 예술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언급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한데, 삶을 예술화시키고 삶의 상황을 예술화시킨다는 것은 진리성에 관한 문제로 깊이 들어가는 현대미술의 경향과 맞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은 의식의 과잉을 초래하고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대학로100번지〉전과 〈줄리안 오피〉전을 하나의 공통된 시각 속에 묶어 비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미술 현장의 역사적 의미를 개인의 이미지적인 진화 과정에 비교한다는 것은 부분을 전체에 혹은 전체를 부분에 함몰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미술의 자의식이 가지고 있는 모더니즘적인 발현 과정과 팝아트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작가의 사회적 반응 방식을 미술(미술사가 아니라)의 진화적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는 현대미술과 삶의 밀접한 관계로 인해 미술의 본질에 관한 논의가 리얼리티에 관한 새로운 차원의 담론으로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포스트모던적인 특성에 관한 논의가 가능한 것은 1990년대 이후 미술의 특성이다. 서양의 상황보다 많이 늦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 미술의 진화가 일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20세기 초 한국의 왜곡된 역사적 상황에서 볼 때 시각예술에서 모더니즘적인 반성적 회고가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과, 모더니즘의 자기 반성적 경향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에 전이되어 투사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미술의 본질과 현실에 대한 관련성의 철학적 사유에 대한 성급함은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에 많은 문제점들을 던져주고 있다. 오피의 미술이 소비시대의 이미지에 관한 자의식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아르코미술관의 기획전은 한국미술의 모더니즘적인 그림들의 조립을 통해 현대미술의 시발점에서 의식의 차원을 회고하는 형식적 접근이었다. 이것은 예술적 양식의 차원을 떠나 미술사의 의식이 전유되는 가운데서 드러나는 미술의 진화에 관한 문제이고(오피), 현실의 차원을 예술로 전유하는 행위들이 얼마만큼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가(아르코미술관)의 문제인 것이다.

줄리안 오피 <레이스 블라우스를 입은 클레어> 혼합재료 125.5×75×12.5cm 2008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 “탱크주의로 세계적인 미술관 만들겠다” 

인터뷰 | 김복기 발행인

배순훈 관장은 2월 23일 취임 이후 유독 언론 인터뷰를 많이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스스로 “관장 얼굴을 알리는 일이 곧 바로 미술관을 알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광고 효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배순훈은 1990년대 초 대우전사 사장 시절에 탱크주의 광고에 출연했던 CF스타다. 탱크주의 광고는 전자업계 3위의 대우전자를 1위로 끌어올렸다. DJ정부 때는 정보통신부장관을 맡아 광대역망을 확산했다. 그때의 공로로 지금 우리 나라가 이 분야의 세계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통신기술 전문가가 아님에도 국가 경영 목표를 기대 이상으로 달성했다. 이번에 그는 엉뚱하게(?) 미술관 경영을 맡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문경영인 관장 시대를 열었다. MIT 공학박사, 기업 CEO, 장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총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거물인사가 생애 후반기를 미술로 행보를 돌렸다. 배순훈의 변신과 도전. 그는 미술에서도 탱크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그 탱크주의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서울관 건립, 아직 부지 문제 해결되지 않았다

art 연초에 정부가 옛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터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2010년 말에 착공해 2012년에 개관 예정인 서울관 문제가 관장의 당면 업무일 것이다. 관장 취임 때부터 서울관을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관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는데, 우선 미술관 건축의 기본 방향은 세워져 있는가?
배순훈(이하 배) 아직 불분명하다. 대통령 지시 이후 관계 부처 책임자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나는 이미 다 결정된 줄 알고 미술관장을 맡았는데, 부지 확보와 미술관 규모 문제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 아닌지 모르겠다. 첫째, 부지 문제는 국군서울지구병원 이전과 맞물려 있다. 만약 이 병원이 이전하지 않으면 8200평 중에 4300평 정도만 미술관 부지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럴 경우 서울관은 아주 작은 규모의 미술관이 될 것이다. 둘째, 기무사 본관 건물이 근대문화재(제375호)로 지정돼 있어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거나 일부만 보수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한다면, 면적이나 구조의 제한이 너무 크서 도저히 현대적인 미술관을 지을 수 없다. 답답하다. 하루 빨리 문제가 결정되도록 행정적으로 건의를 올렸다.
art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현대미술관 중에는 런던의 테이트모던이나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혹은 도쿄 록폰기의 모리미술관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미술관은 서울관의 입지 조건과는 다르다. 굳이 비슷한 여건을 찾자면 2007년에 개관한 도쿄의 국립신미술관 같은 곳인데, 관장께서는 서울관이 개인적으로 어떤 건축물이길 바라는가?
부지 문제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아무튼 서울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다. 기무사 부지가 총 8200평인데, 도쿄의 국립신미술관이 1만평 정도다. 원래 일본군 병영 막사였던 건물을 헐고 지었다. 막사를 뜯어 기념으로 남겨 두고, 막사의 모형을 미술관에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국립신미술관은 대여 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현재 일본에 존재하는 650여개의 각종 미술단체들에게 활동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따라서 미술관 내부 공간의 미학적 기능적 성격이 아주 약하다. 외관도 일본 건축의 대표적인 특징을 띠고 있다. 우리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 서울관은 보다 창의적인 건축이었으면 한다.
art 역시 중요한 것은 서울관의 정체성 문제다. 일단 현대미술 중심의 복합문화센터 같은 기능으로 운영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심이라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렇다. 미술을 중심으로 해서 미디어, 영화, 공연 등의 문화 장르를 폭넓게 수용하는 공간으로 운영할 것이다. 근자에 국제적으로 미술 관객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미술 감상이 시간 제약을 받지 않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관은 거창한 계획 없이도 수시로, 가족들과 식사하며 주말을 보낼 수 있는 공간, 서울을 찾는 외국 관광객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최근 우리 나라 작가들이 국제 미술계에서 강세를 보이는데, 그걸 한국의 미술관에서 적극 끌어안아야 한다. 서울관이 이렇게 살아있는, 움직이는 현대미술을 순발력 있게 전시나 행사로 소개해야 한다. 반면에 과천은 아카데믹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미술사적 조사와 연구, 각종 아카이브 정리, 그리고 무게 있는 정규적인 전시를 여는 공간으로 운영할 것이다.
art 서울관이 착공하기도 전에 기무사 건물에서 첫 행사로 아시아프(ASYAAF)가 열릴 예정이어서 미술계의 반론이 거셌다. 논란의 핵심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일방통행식 행정, 대학생 아트페어의 위상, 특정 언론사 행사 등등이 얽혀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이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결정한 것이어서 국립현대미술관 업무와는 별개의 문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0월에 기무사 터에서 전시를 열 계획이다. 전시 예산으로 이미 국회에서 추경예산 20억 원을 확보해 뒀다. 현재 전시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있는데, 변이(Transformation)의 상징 같은 것이면 좋겠다. 미술 전시란 게 과거에는 연대기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요즘은 주제 중심, 키워드 중심이지 않는가. ‘변이’라는 주제를 놓고 회화 조각 등 전통 장르뿐만 아니라 설치, 사진, 뉴미디어 등 시각예술의 모든 장르를 폭넓게 수용하는 전시가 열렸으면 한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전경

관객 500만 돌파 계획과 소장품 정책

art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오랫동안 공석이다. 내부 승진과 외부 영입, 두 가능성을 모두 열어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특정 외부 인사의 하마평이 무성하다.
인사 문제를 진행하고 있다. 곧 뽑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기회에 한국미술에서 미술관 관장이나 학예연구실장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미술관장이 사업가 역할을 맡고 있다. 잘 아다시피 관장이 베를린이나 베이징 등 세계 도처에 미술관 분관을 건립하러 뛰어다닌다. MoMA의 미술관장은 성격이 좀 다르다. 이 미술관은 컬렉션 행정 중심이어서 미술관장이 유명 화상들과 아주 가깝게 지낸다. MoMA는 화상들에게 작품을 기증 받아서 세계적인 미술관이 되었다. 미국의 경우 관장은 내부 승진보다는 외부 영입이 많다. 반면 유럽의 미술관은 수석큐레이터가 관장이 돠는 예가 많다. 그러나 유럽도 미술관이 정부 예산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관장이 행정가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우리 나라의 경우 수석큐레이터가 미술관장을 맡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의 관행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의 경우 큐레이터 제도가 정착된 역사가 짧기 때문에 관장을 외부에서 영입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외국 미술관의 수석큐레이터 정도면 국제적 인지도가 아주 높다는 점이다. 주요 비엔날레나 국제전 등의 감독을 맡기도 하고, 국제 미술의 흐름을 이끄는 중요한 경력을 갖추고 있다. 이 경력이 바로 미술관의 위상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국공립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국제적인 맨파워가 약하다. 분명히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가 학예실 모두의 기획으로 되어 있다. 그걸 바로 잡아야 한다. 책임 큐레이터 제도, 전시기획 실명제, 사후 평가 시스템 등의 전시 행정을 적극 도입하고 정착시켜야 한다.
art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예산이 239억이다. 관장께서 500백만 관객 돌파 계획을 내놨는데,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관객이 82만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어떤 전시를 꾸려야 하는가? 예산은 어느 정도 늘어야 하는가? 관객 동원은 결국 전시 컨텐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근자에 서울미술관이나 예술의전당에서 자주 열리고 있는 소위 ‘블록버스터 전시’의 유치 구조, 요컨대 언론사나 기획사의 대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당연히 예산이 부족하다. 최소한 지금의 3배는 필요하다. 5~600억원은 돼야 한다. 문화 강국이 되려면 예산 쪽의 관심과 해결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국가 규모로 봐서 우리는 절대 미국이나 프랑스의 미술관 예산을 따라갈 수 없다. 파리 루브르의 연간 관람객이 1300만명인데, 이 숫자가 프랑스를 세계 최고의 예술 강국으로 만든다. 서울관에서 블록버스터 전시를 못할 것도 없다. 과천관은 미술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좀 ‘심각한’ 전시가 필요하다. 전문적인 전시의 경우 관객 수만 따져서는 안된다. 관객 수치로만 미술관 행정을 평가하는 누를 범해서는 안된다.
art 국립현대미술관의 특성화 방안과 더불어 어린이미술관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진전이 있는지?
우선 현재의 어린이미술관의 공간을 확대해 제7전시실로 이전한다. 곧바로 만화전을 상설 전시할 것이다.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전시 파트가 필요한데, 아이디어를 모집하고 있다. 흔히 미술관에서는 어린이들이 미술품을 만지지 못하게 하고 멀리서 감상하도록 한다. 물론 어느 부분 이런 원칙은 적용해야겠지만, 좀더 자유로운 감상을 위해 만지고 느끼도록 하는 작품을 전시할 것이다. 억압적인 전시 감상 분위기에서 벗어나 떠들썩하고 자유스런 분위기를 만들겠다. 더불어 현재 서울대공원이 보수에 들어갔는데, 미술관 입구로 연결되는 코끼리 열차를 새로운 전기차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KIAST에서 전기차 가동 문제를 시험 중에 있다. 노약자를 위한 전기차,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전기차를 우리 기술로 만들 수 있다. 일단 미술관의 접근성이 좋아지면, 그 다음은 미술관을 생활 공간,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레스토랑을 만들어 유기농 음식을 제공할 계획이다. 미래 세대에게 녹색 성장 교육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미술관이 녹색 성장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과천 미술관은 자연 입지 조건이 좋기 때문에 문화 생활의 실습장으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art 소장품 구입 절차와 체계 문제에서 외부 제안권의 확대와 선정심의 강화 문제를 내걸었는데, 이전까지 소장품 정책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보는가?
미술관의 소장품 정책은 ①작품의 독자적 특징 ②예산 조달 ③효과적인 소장 목표의 달성 ④효율적인 작품 구입 등의 문제가 관건이다. 소장품 구입 절차가 공명정대한 것도 중요한데, 놓쳐서는 안될 더 중요한 문제는 세계 각국의 관람객이 과연 우리 미술관에 무엇을 보러 오는가를 짚어야 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제도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고시령과 미술관장장령에 묶여 있다. 이젠 미술관 자율로 바꿔야 한다. 공정성과 공감대 문제는 관장한테 전적으로 맡기면 된다. 작품 소장에 감시 장치가 너무 많으면 결국 컬렉션의 성격이 없어진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있다. MoMA의 컬렉션은 사회적 문화적 책임을 가지고 기증을 한 작품이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가 우리 나라 미술관 컬렉션에 크게 확대돼야 한다. 작품을 구입해서 미술관이나 공공기관에 기증하는 풍토 말이다. 어찌 보면 미술 작품이라는 지적 재산권을 좌파적으로 프로모션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미술 작품의 공유, 기탁, 기부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미술관이 기부자들을 위한 ‘배려 공간’을 반드시 마련해 줘야 한다. 이젠 기증자에게 감사패 한 장 건내주는 것으로는 안된다. 기증자에게 무형의 감사 표시 외에 세금 공제 등 유형의 법적 혜택을 줘야 한다.
art  ‘포텐셜(위치 에너지)-모멘텀(운동 에너지)-프릭션(마찰)’ 개념으로 경제나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이 개념을 국립현대미술관 경영에 대입한다면?
포텐셜은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환경은 어느 정도 조성돼 있다. 모멘텀은 좋은 전시를 열어 미술에 관심을 가진 관객이 미술관에 몰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프릭션은 일종의 세몰이다. 좋은 전시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멘텀이 억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초치는 사람이 있으면 안된다. 좋은 전시하면 오프닝에 찾아올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해야 하고, 더 나아가 국민적인 컨센서스를 형성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발전될 수 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평론의 반응이 미약하다. 지금까지는 언론 쪽 기자의 소개 글이 대부분이다. 평론가들은 왜 말이 적은지 모르겠다. 좋은 전시해도 평론계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학예사들은 ‘억울한 피해자’가 아닌가.

배순훈 관장은 유독 언론 인터뷰를 많이 가진다. 그는 “관장 얼굴을 알리는 일이 곧 바로 미술관을 알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Director보다는 President의 역할

art 관장 취임 이후 미술계 사람들과 접촉이 많았을 것이다. 관장께서 바라본 한국 미술계는 어떤지? 그리고 미술계에서는 어떤 관장상(像)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한국 미술계가 전반적으로 폐쇄적인 것 같다. 30년 전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의 역할을 무역 수출 정도로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일하다 온 사람이니까 기업에 세계 진출 프로젝트를 내놨다. 그래서 대우에서 일했다. 또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을 맡았을 때도 우리가 IT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믿고, 그래서 광대역망 세계 1위로 가는 큰 경험을 했다. 한국 미술계도 이젠 세계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유망한 젊은 작가들은 있는데, 미술계 전반적으로 너무 내부에만 신경을 쓰지 세계적인 트렌드에는 관심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은 세계적인 역량을 보이는데, 정작 국내 미술계는 활동의 틀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창작 환경이랄 수 있는 미술관, 큐레이터, 컬렉터 등의 안목이 부족한 것 같다. 지난 20여년간 유럽의 미술관 관객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근현대미술뿐만 아니라 특히 현대미술 관객이 대폭 늘었다. 관객의 관심이 인상파 중심에서 새로운 미술의 트렌드로 이동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여행객의 급격한 팽창이 미술인구로 유입되고 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이 미술을 문화사업으로 개발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다. 미술관이 아카데믹한 기관 성격보다는 작품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 미술의 매력, 그런 문화의 중요성 때문에 나는 기꺼이 미술관장을 지원했다. 관장의 역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배순훈 관장 선임에 미술계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 보면, 미술관 경영 측면에서 관장의 역할은 미술문화를 담아낼 그릇을 만들어내고, 전시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다. 배순훈 관장의 역할은 ‘Director’보다는 ‘President’에 더 가깝다. 그런 일은 오히려 미술 전문인보다 배순훈 관장 같은 경영인 출신이 더 잘 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는 기본 공식이 확실히 서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다양한 방면에서의 이력에 어울리게 박식하면서도 개념이 분명했다. 추진력이 강할 뿐 아니라 순발력 또한 빨랐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비권위적인 태도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부드러운 흡인력이었다. 그걸 막연히 ‘문화인의 자질’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배순훈 관장이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국립현대미술관의 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지금 한국 미술계는 그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배순훈의 관장 선택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어라!

2009 June Special - 국제 미술시장의 ‘아시아 허브’

홍콩아트페어 부스 광경

국제 미술시장의 ‘아시아 허브’

홍콩은 서구나 아시아 어디에서도 접근성이 용이한 지형학적 특성과 도시 자체의 글로벌한 분위기, 그리고 홍콩이 내세우는 무역의 이점, ‘비관세’ 혜택 등이 맞물려 홍콩은 현재 그 어떤 아시아 도시보다 유리한 지점에 놓여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출발해 올해로 2회를 맞는 홍콩아트페어는 아시아 중심 아트페어로 발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올해 홍콩아트페어는 좀 더 체계적인 기획력과 홍보로 무장해 지난해의 영광을 이어 갔다.

글|이성희 기자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홍콩아트페어(ARTHK09)의 반응과 성과에 전 세계 미술인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홍콩아트페어는 전문적인 기획력, 아시아 금융시장의 중심, 글로벌 아트마켓의 선두주자라는 이점에 힘입어 2008년 첫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다. 첫 해에 리만브러더스의 후원으로 힘차게 출발한 홍콩아트페어가 올해는 독립적인 구조로 운영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기에 행사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러나 24개국 110개의 갤러리가 참여한 이번 홍콩아트페어는 예상 외로 선전했다. 전년 대비 30%이상 증가한 총 2만7856명의 관람객과 안정적 판매 실적이 홍콩아트페어의 성과를 입증한다. 이제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홍콩이 진정한 ‘아시아 미술의 허브’임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서구나 아시아 어디에서도 접근성이 용이한 지형학적 특성과 도시 자체의 글로벌한 분위기, 그리고 홍콩이 내세우는 무역의 이점, ‘비관세’ 혜택 등이 맞물려 홍콩은 현재 그 어떤 아시아 도시보다 유리한 지점에 놓여 있다. 서울이나 도쿄, 그리고 뉴욕이나 런던 미술계는 최근 홍콩에서 미술시장의 불황을 극복하는 ‘해답’을 찾고자 한다. 아시아 화랑들은 아시아 작가들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실험 무대로, 뉴욕이나 런던 화랑들은 아시아 미술시장이 새로운 대안이라는 판단에서 홍콩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홍콩은 경매 판매 규모만으로도 뉴욕과 런던의 뒤를 이어 세계 3위의 거래량을 자랑하고 있다.

아시아의 글로벌 마켓 홍콩

첫해 행사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아트페어 외의 ‘즐길 거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해 왔다. 아트페어 측은 이러한 단점을 적극 보완하여 올해 행사는 미술시장의 견본시 역할뿐만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 VIP 투어, 홍콩 화랑들이 준비한 전시와 파티, 그리고 홍콩에서 가장 핫한 바, 클럽 등을 VIP 라운지로 활용한 점 등 ‘명품’ 관광지다운 기획력을 과시해 알짜 행사로 꾸렸다. 행사 약 1달 여전에 VIP 프레스 카드와 함께 받은 단 한 장의 프로그램 리스트에는 매일 매일 다양한 토크와 볼거리, 즐길 거리 등 필요한 정보만 빼곡히 적혀 있어 아트페어 기간 동안 항상 지니고 다니곤 했다.
잘 알다시피 홍콩은 아시아 유일의 비관세 구역이다. 홍콩이 전 세계 하이 브랜드를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쇼핑의 중심지, 일찍이 유럽 메이저 경매회사들의 아시아 허브, 금융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비관세’ 혜택으로 글로벌 시장에 문호를 개방한 덕분이다. 미술시장의 경우 중국 본토가 미술품에 34%의 어마어마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달리 홍콩은 수출입 관세가 없기 때문에 아시아 미술의 허브가 될 수 있었던 것. 베이징이 넓은 공간, 저렴한 임대료라는 장점으로 세계 유수 화랑들의 아시아 전진기지가 되었다면, 홍콩은 비관세지만 엄청난 임대료 때문에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화랑보다는 이미 ‘마켓’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을 경매에서 ‘거래’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 크리스티, 소더비 같은 유럽 경매회사뿐만 아니라 최근에 서울옥션, K옥션, 라라사티 등도 홍콩 진출을 가속화했던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이러한 ‘마켓’의 가능성으로 볼 때 홍콩아트페어가 단 2회째라는 것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홍콩은 ‘아트마켓’으로는 뛰어난 경쟁력, 구매력을 자랑하지만 오히려 아트씬으로는 특기할 만한 공간, 작가를 갖지 못한 불균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비싼 임대료와 공간 부족이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홍콩 정부는 지난 해 3조 5000억 원을 투자하여 서구룡문화지구(West Kow loon Cultural District: WKCD)를 개발하겠다고 밝혀 많은 미술인들이 환호하고, 부동산 시장도 들썩였다. 서구룡문화지구는 현대미술 인스티튜션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요구에서 시작되었지만(홍콩에는 현재 정부가 운영하는 미술관이 두 곳이 있다), 홍콩 정부는 문화지구 형성에 있어 큐레이토리얼, 컬렉션 등의 중요한 이슈보다는 단지 건물의 ‘외형’에만 신경을 쓰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홍콩은 애초부터 문화를 비즈니스의 모델로 삼았기에 사고방식의 전환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어쨌든 홍콩 미술계는 서구룡문화지구가 형성되면, 홍콩이 미술시장뿐 아니라 현대미술에서도 허브로 자리잡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 딩 <위대한 시기> 사진 102×153cm Courtesy: ShanghART Gallery

비영리 공간들과의 적극적 협업

이번 홍콩아트페어는 이러한 홍콩의 글로벌 아트마켓의 중심지라는 장점과 특기할 만한 아트씬이 없었다는 단점을 고려해서 ‘올 크로스 오버’로 기획되었다. 상업 아트페어에 홍콩의 대표적 비영리 기관 AAA와 파라사이트가 중심적 역할로 참여한 것이 특징이다. 아트페어 주최측이 시장적 성공 이외에도 아시아 아트페어의 리더로서의 성장 가능성, 또 지역적 행사로서의 책무에 골고루 힘을 주었음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이번 행사에서 아시아아트아카이브(Asia Art Archive, 이하 AAA)는 아트페어의 교육 프로그램 전체를 총괄했다. 아시아 미술 아카이빙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 개인이 조직한 AAA는 아시아 각국에 리서처를 두어 가장 생생한 각국 미술의 흐름을 기록하고 매달 짜임새 있는 교육 프로그램과 아티스트 토크 등을 활발히 열어 수많은 텍스트를 생산해 왔다. 홍콩이 아시아 미술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AAA의 공헌이 크다.
AAA의 <백룸 컨버세이션>은  ‘중국미술의 투자가치’, 그리고 문화지구 형성을 의식해 ‘미술관’에 포커스를 맞춘 패널 토크와 중국미술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구성되었다. 5일 간 열린 토크의 마지막 섹션은 ‘헤리티지 사이트: 홍콩미술의 요구에 대한 해답인가?’였다. AAA의 홍콩 리서처인 퓌비 웡(Phoebe Wong)의 진행으로 이뤄진 이 토론에는 홍콩아트워크 행사를 진행해 온 존 배튼(John Batten), 전 홍콩아트센터 전시 디렉터 오스카 호힝케이(Oscar Ho Hing-kay), 포탄 스튜디오 입주 작가 콴 승치(Kwan Sheung-chi) 등 홍콩미술의 리더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미술교육 환경부터 미술관 시스템, 정부의 협조, 그리고 아티스트 레지던스 등 홍콩미술 전반을 개괄하며, 이제 홍콩은 ‘하드웨어’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토크 프로그램은 지역적 이슈를 세계적인 문맥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홍보 효과도 있다. 한편 AAA는 아트페어 내 전시 공간에서 <당신의 꿈의 미술관을 세워라(Build Your Dream Museum)>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홍콩의 문화적 현실을 은유하는 것이다. 참여 관객들에게 자신이 바라는 미술관을 그려보거나 문구를 쓰게 하는 이 프로젝트는 4일 동안 2000여명의 관객과 1200여명의 참여자를 이끌어내어 그 어떤 서명보다도 호소력 있는 사회적 프로젝트가 되었다.
AAA와 함께 홍콩의 대표적인 비영리 공간인 파라사이트도 이번 아트페어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파라사이트는 부스에 작가를 소개하는 것뿐 아니라 아트페어의 전시 및 작품 설명을 맡았다. AAA에서 아시아 미술의 도큐멘트를 정리하고 텍스트화한다면, 파라사이트에서는 홍콩미술, 더 나아가 아시아미술의 특수성을 맥락화하는 작업을 한다. 홍콩아트페어 기간 중 파라사이트는 수라시 쿠솔롱(Surasi Kusolwong)의 개인전 <금의 행운(좋은 뉴스가 찾아올 것이다)>전을 열고 있었다. 전시장 가득 5톤 가량의 실뭉치가 쌓여 있고, 그 안에 ‘행운’이라는 글자가 세겨진 금목걸이를 숨겨 두어 관람객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기획이었다.(국내에도 2008년 <플랫폼>에서 비슷한 작품이 전시된 바 있다.) 작가는 세계적 경제 위기를 모티프로 삼고, 중국문화에서 금이 갖는 전통적 가치를 거대한 설치 개념으로 표현했다.

서양과 동양 작품의 만남

무엇보다 홍콩아트페어의 강점은 화이트큐브, 가고시안, 리손 등의 세계 유수 화랑들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화랑들의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중국미술의 ‘마오’ 이미지의 퇴거는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 나름의 미술에 눈을 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따라서 이번 홍콩아트페어에서는 홍콩화랑들이 힘주어 소개하는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 작가들이 유난히 부각되었다.
아트페어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과연 어떤 작품이 언제 얼마에 팔렸냐는 것이다. 그래서 30분, 1시간 안에 팔린 작품을 선전하기도 하고,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에 이목이 집중된다. 이번 홍콩아트페어에서 고가에 팔린 작품을 꼽자면 화이트큐브갤러리는 길버트&조지의 <발>을 356만 홍콩달러, 트레이시 예민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너를 더 사랑해>를 65만 3000 홍콩달러에 첫 날 판매했고, 리손갤러리도 첫날 줄리안 오피의 <외진 709 도로로부터 후지산 아래 모토수호수의 배들의 풍경>을 65만 홍콩달러에 판매했다. 마이클슐츠갤러리는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가 협업한 작품을 홍콩 컬렉터에게 1680만 홍콩달러에 판매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강형구의 인물화 두 점을 각각 62만 홍콩달러에 팔았다. 페어장 입구에 설치된 무 보양(Mu Boyan)의 조각 <Nude No.2>은 베이징의 아예갤러리(Aye Galley)가 출품한 것으로 홍콩 컬렉터에게 팔려나갔다. 이 작품은 아트페어 기간 내내 관람객들의 포토 세례를 받으며 인기를 과시했다. 가나아트갤러리가 선보인 이환권의 조각도 관람객의 발길을 잡아끄는 작품 중 하나였다. 화이트큐브갤러리가 스페셜 아티스트 프로젝트로 기획한 안소니 곰리의 <변질>전도 페어장 입구에서 주목을 끌었다. 흰 공간의 앙 편에는 한쪽은 인물 조각 한쪽은 무수한 선으로 얽힌 조각이 놓여 있는데, 관객들은 이 사이로 난 길을 통과하며 공간과 물체 사이의 이질적 관계를 경험했다.
홍콩아트페어는 몇 개의 ‘고가’ 작품을 중점적으로 파는 화랑이 있는가 하면, 중저가의 작품들을 다수 판매한 화랑들도 많은 것이 특징. 베이징의 레드게이트갤러리는 20여점의 작품을, 한국 금산갤러리도 20여점 이상을 판매했고, 일본 미즈마갤러리는 출품작 80% 이상을 판매, 총 15점을 거래했다. 학고재 표갤러리 갤러리인 원앤제이갤러리 카이스갤러리 등 10여개의 참여 한국 화랑들도 대체로 좋은 성과를 얻었다.
또 아트페어에서는 판매를 넘어서 하나의 지붕 아래 세계 탑클래스 화랑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페어는 컬렉터, 기관, 큐레이터, 아트딜러, 미술관 등을 한 번에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스카이더배스하우스가 선보인 코헤이 나와는 아시안미술관에 팔렸는데, 이는 아트페어가 지역 문화를 위한 플랫폼으로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된다.
싱가포르의 타일러인스티튜트(STPI)가 선보인 아시아 작가들의 프린트 작품도 흥미롭다. STPI는 정부의 50% 지원을 받는 비영리 기관으로 프린트 장인들과 한 명의 아티스트와의 협업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아트페어에서 선보인 작가 중 홍콩작가 윌슨 시에(Wilson Shieh)는 음악가와 악기 사이의 친밀한 메타포를 육체적이면서도 명상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묘한 동양성과 에로티시즘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홍콩화랑들은 부스에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한편, 자신의 화랑에서 열고 있는 전시 홍보에도 신경을 썼다. 아트페어 기간이야말로 작가 프로모션을 위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베이징에 지점을 두고 있는 오사지갤러리는 대규모 기획전과 함께 프라이빗 디너를 준비했고 10첸서리랜갤러리(10 Chancery Lane Gallery) 또한 소호에 작은 화랑과 차이완 산업지구에 큰 공간을 갖고 있는데(소호의 임대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이런 경향은 홍콩에서 일반적이다), 소호갤러리에는 베트남 작가 딘 퀴 레(Dinh Q. Le.)의 개인전을 열고, 차이완의 10첸서리갤러리아트프로젝트에서는 DJ 파티를 마련했다. 홍콩 오사지갤러리는 소호에 작은 화랑과 콴통 산업지구에 빌딩 5층 전체를 화랑 공간으로 쓰고 있는데, 규모가 미술관 버금가는 수준이다. 오사지갤러리의 <어떤 방들(Some Rooms)>전은 차세대 동남아 작가들을 선보이는 전시로 작가를 먼저 정하고 작가들에게 만나보고 싶은 큐레이터를 선정하는 형식의 기획전. 도리스 웡(Doris Wong), 실라스 펑(Silas Fong), 도나 웡(Donna Ong), 호 추넨(Ho Tzu Nyen) 등 싱가포르, 홍콩, 필리핀 등 동남아 작가들이 주가 되었는데,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과 학교를 갓 졸업한 신진 작가들이 경계 없이 소개된 신선한 전시였다.
이 전시에서 만난 한 젊은 작가 실라스 펑을 따라 시내에 위치한 작가 스튜디오도 방문할 수 있었다. 홍콩의 작가 레지던스는 포탄스튜디오처럼 외각 지역에 위치하는 게 대부분인데, 최근 한 미술애호가 건물주가 젊은 작가들을 위해 완차이 시내 한 복판의 건물에 작가들 2~30명에게 싼 값으로 임대를 했다고 한다. 물론 공간은 넓지 않았지만, 홍콩의 복잡함과 속도, 소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공간이 좁기 때문에 페인팅 작가보다는 미디어를 다루는 작가들이 주로 머물렀고, 역시 홍콩의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 미디어 작가인 실라스 펑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작업실이었다.

2009년 홍콩아트페어 광경(왼쪽), 페어장 입구에 설치된 무 보양의 조각 작품

아트페어와 동시에 아시안 경매회사들의 경합

뉴욕에나 바젤에서 아트페어 기간 중 중심 아트페어와 더불어 위성 아트페어들이 활발히 열린다면, 홍콩은 홍콩아트페어의 후광을 기대하는 경매들이 활발히 열렸다. 기쁜 것은 이때 국내의 경매회사들이 경매를 개최했다는 것. 2008년 홍콩에 지사를 마련한 서울옥션은 5월 15일 아트페어가 열리는 컨벤션센터 옆 하얏트호텔에서 단독 경매를 개최했고, 데미안 허스트의 <고요>는 1200만 홍콩달러에 낙찰, 76%의 낙찰률을 기록했다. 서울옥션이 데미안 허스트, 쿠사마 야요이 등의 고가 작품을 타깃으로 삼았다면, 콘라드호텔에서 케이옥션과 싱가포르의 라라사티, 대만의 킹슬리, 일본의 신와아트옥션과 협업으로 기획한 행사 ‘아시안 옥션 위크’는 다른 전략으로 출발한 행사다. 이 행사는 기존의 경매 인기 작가보다는 엄선한 차세대 작가들 작품을 선보여 ‘아시아의 미래 블루칩’을 모은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라라사티의 코말라 대표는 “우리는 이미 높은 가격으로 형성된 기존 작품보다 미래를 위한 가능성을 가진 작품들을 선보이는 데 치중했다”며, “불경기에 경매 경비를 같이 부담하는 것은 큰 장점이다. 우리는 경비 절감으로 동일한 작품을 크리스티, 소더비보다 10~15% 낮은 가격으로 출품할 수 있다”고 협력 체계의 강점을 피력했다. 이러한 ‘아시안 옥션 위크’의 진취적인 전략과 경매사들 간의 적극적인 협력에 대해 현지 언론들 다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는 “아시안 경매회사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라는 제목으로 ‘아시안 옥션 위크’의 취지와 결과에 대해 호평했다.
경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전체 146점 중 77%의 낙찰률을 기록했고, 총 1848만 2930 홍콩달러의 낙찰금액을 성사시켰다. 특히 K옥션의 경매사가 신와아트옥션의 경매를 진행하는 모습, 서로의 고객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광경은 ‘아시안 옥션 위크’가 내건 취지에 부합하는 모습이었다. 경매의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기존에 인기 있던 극사실주의 작품이 한풀 꺾이고, 이머징 아티스트의 경우에도 ‘작품성’을 가장 염두에 두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홍콩에서 선전한 한국작가들

K옥션이 소개한 한국작가의 경우 이동기 권기수 등의 한국적 팝 작가들과 손동현 이소정 신선미 등 동양화를 기반으로 현대적 접근을 시도한 작품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작년 마카오 경매에서 열띤 경합을 벌였던 이환권은 이번에도 인기였고, 조정화의 인물 조각도 경합 끝에 대만 컬렉터에게 팔렸다.
일본 작품은 히로토 키타가와의 <미루코 하야가와>는 열띤 경합 끝에, 낮은 추정가의 세 배에 달하는 11만 8000 홍콩달러로 낙찰됐다. 또 코헤이 나와의 <PixCell-Zebra>도 인기 작품 중 하나로 추정가의 두 배인 41만 3000 홍콩달러에 낙찰됐다. 이 작가의 비슷한 작품은 홍콩아트페어에 참가한 스카이더배스하우스에서도 출품되었다. ‘아시안 옥션 위크’는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각국을 대표하는 경매회사들이 소개하는 다양한 아시아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흥미로운 행사였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장이 경제 위기 시대의 대안 시장’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홍콩에서 5일 간의 일정은 정말 분주했다. 홍콩아트페어, 경매 취재와 함께 현장에서 인사를 건낸 작가들의 전시를 찾아가 보고, 소개 받은 화랑에도 방문하면서 ‘마켓’과 ‘전시’ 양쪽을 함께 비교해 보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실 미술계의 규모나 정부의 지원으로 볼 때 우리는 아시아의 선두에 서 있다. 규모도 크고 행사도 다양한데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그 ‘속’보다는 ‘겉’을 중요시 생각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홍콩아트페어는 100여개의 화랑이 참여하는 중소 페어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기관, 화랑, 작가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똘똘 뭉쳐 ‘지역화’와 ‘세계화’를 동시에 일궈나가고 있다. 한 마디로 ‘내실’ 있는 아트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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