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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8.12

Abstract

특집 백남준과 친구들 백남준이 생전에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백남준아트센터가 지난 10월 18일 화려한 불꽃을 터뜨리며 개관했다. 지난 2001년 경기도, 용인시, 경기문화재단과 백남준이 멀티미디어 아트센터의 건립을 합의한 지 7년 만에 완공된 것이다. 그 사이 백남준은 고인이 됐다. 그러나 백남준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그의 자유, 창조, 전위 정신은 사후에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 개관기념전으로 마련된 백남준페스티벌『Now Jump』(10. 18~2009. 2. 5)는 백남준의 예술가적 위상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청년 백남준은 유럽으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의 후예를 자처하던 서구 전위 미술가들에게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 사상과 테크놀러지를 결합시키는 작품으로 충격과 감동을 선사했다. 통찰력과 천재성을 지닌 동시에 유머 넘치고 천진난만했던 백남준의 가치는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혹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 아티스트' 같은 세간의 상투적인 평가 이상이다. 여기에 백남준 예술의 올바른 평가와 계승의 과제가 놓여 있다. 페스티벌을 진두지휘한 이영철 관장에게 백남준의 생애를 고증하고 전시로 엮은 과정, 아트센터의 비전을 들어봤다. 또한 국내외 평론가들의『Now Jump』展 리뷰를 덧붙였다.

Contents

표지  김성수 <Melancholy> 캔버스에 유채 130×194cm 2008

에디토리얼  ‘동방의 요괴들’을 찾습니다!_김복기

프리즘
    달라진 문예진흥기금, 무엇이 문제인가_백기영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 개관전을 보며_박래경

아티스트 아틀리에 아카이브  
    김지원_이선화

포커스
    플랫폼 서울 2008 _박만우
    도윤희|정세라|최지영_이선영  
    현실과 허구의 경계읽기|정연두_정용도
    최병소|박기원_김미경

특집  백남준과 친구들
    (1) 인터뷰:백남준아트센터 이영철 관장_호경윤
    (2) 리뷰_김수기, 강수미, 우나 덕워스

인터뷰 욘 복  
    머릿속의 괴상하고 낯선 구멍 두 개_장승연

이미지 링크  Area. Park

아티스트 인사이드  
    (1) 김성수, 도시, 그곳에서 나를 잃다_이선화
    (2) 김도균, 렌즈로 미래 공간을 그리다_이성희

리포트  
    (1) 제3회 난징트리엔날레_강재영
    (2) 대구의 미술축제들_김옥렬

2008 New Vision
    미술평론 공모 당선작 발표
    창업 성공 사례 보고서-장영혜중공업_이슬비

클릭! 공공미술
    2009년이 두렵습니다_윤태건

암흑물질 K씨의 연하장 컬렉션_선산

아웃 오브 코리아 
    이재복_유재길

전시리뷰
    정원방문기|이규민
    세계 속의 한국현대미술2-파리
    박병춘|이상봉|전준자|최병국
    이명호|고명근|문형민
    롱 라이브 드로잉|김춘환
    권기수|이명호|김상길|이중근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하용주|이진주|최원정|한석현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암흑물질-K씨의 연하장 컬렉션

K씨의 연하장 컬렉션

글 | 김선산

추억_호롱불 아래에서 카드 만들기

또 다시 연말이 왔다. 거리에는 캐럴송이 울려 퍼진다. 캐럴송은 지나가는 한해를 위한 이별곡이요, 다가오는 한해를 위한 전주곡이다. 한해를 보내고 한해를 맞이하는 인간사의 표지 중에는 여러 가지 시각 이미지가 있다. 달력이나 다이어리가 있고,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이 있다. 후자는 사람들이 서로의 정을 나누어 가지는 소통의 수단이다. 아날로그 시대를 장식했던 최고의 인터렉티브 시스템이 아니던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수 만들어 본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2, 3학년 때였다. 시골 초가집의 어둑한 호롱불빛 아래에서 카드를 만드느라 긴 겨울밤을 지센 적이 있다. 재료라 해 봤자 색종이뿐이었고, 도구는 가위와 풀이 전부였다. 이 열악한 재료와 도구로 산타할아버지와 루돌프 사슴과 설매, 그리고 눈 내리는 교회당을 만들어 내야 했다. 꿈은 컸지만 예쁜 카드를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졸음에 연신 눈을 부비는 나를 지켜 보시던 어머니께서 보다 못해 두 팔을 걷고 거들어 주셨다.
나는 어머니의 뛰어난 데생 솜씨, 적재적소의 화면 구성, 재료를 요리하는 재빠른 손놀림에 얼마나 놀랐던가. 어머니는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저런 비범한 능력을 배우고 길렀을까. 어머니의 프로급 바느질 솜씨가 결국은 그 빼어난 ‘조형 감각’과 필연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였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때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알게 모르게 미술의 감성과 감각을 쌓아갔던 게 아니었나 싶다.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일, 내 손 안에 들어온 사물과의 무언의 대화, 그 촉감을 나는 한껏 즐겼다. 나의 미술의 길은 바로 저 크리스마스 카드의 피부 질감에서부터 운명의 씨앗이 싹터 온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림을 좋아해 미술대학을 다녔고, 그림을 좋아해 졸업과 함께 미술기자가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을 만드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운좋게도 미술 동네에서 살아 온 덕분에, 여러 화가들로부터 많은 연하장(年賀狀)을 받았다. 그 연하장들은 한 시대를 함께 걸어 온 미술계의 선배, 동료, 후배들이 나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그림과 글이다. 가끔 이 연하장을 읽고 보노라면, 마치 십수년 전의 드라마를 다시 보듯 당시의 나와 화가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연하장은 내가 미술 동네 사람들과 나누었던 인정의 정표(情表)다. 그러니까 찬란하게 빛나는 내 소중한 ‘기억의 보물 창고’요, 나의 30년 미술사의 생생한 흔적인 셈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 보물 창고 속을 헤집으며 화가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글귀의 행간에서 그때그때의 싱그러운 사연들을 새록새록 다시 불러낸다. 그림을 보니 당시의 전시나 작품 경향이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쳐 간다. 연하장 중에는 작가들이 정성 들여 만든 어엿한 작품도 있다. 에디션을 낸 오리지널 판화가 있는가 하면, 드로잉이나 콜라주 작품도 있고, 밀도 있는 탄탄한 소품도 있다. 사람과 작품의 개성이 물씬 풍겨나는 나의 ‘작은 컬렉션’이다.

화가의 연하장_손맛 담은 정표들

가장 먼저 연하장을 보내는 분은 단연 원로 P화백이다. 12월 초순이면 여지없이 〈묘법〉 엽서가 도착한다. 고급 만년필 수집가인 그는 보라색 잉크가 반짝이는 사인을 넣는다. 그 사인의 필력이 참으로 힘차다. 그 기운을 받고 나도 덩달아 새해 새날에 벅찬 희망을 걸어 본다. P화백은 워낙 혈기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탓에 외향적이며 다소 거친 성격의 소유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실상은 자료와 기록을 꼼꼼하게 정리할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보다 지난 일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는 세심한 분이다. 최근의 〈묘법〉 시리즈는 마치 건축 설계 도면처럼 한 치의 빈틈 없는 구성과 빼어난 색채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P화백은 강하고 부드러운 양면을 모두 갖춘 분이다.
광주의 O화백은 저 세상으로 떠났다. O화백은 물고기와 새와 동물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을 그렸다. 바다와 땅과 하늘이 하나가 된 낙원 풍경이다. 광주의 H화백은 마티스의 말년을 장식했던 콜라주 작품처럼 종이를 가위로 듬성듬성 잘라 멋 있는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미술계에서 ‘통 큰 대인(大人)’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에게도 언제나 마음씨 좋은 큰 형님처럼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K화백의 콜라주 작품 또한 압권이다. 골판지 쪼가리를 덕지덕지 붙이고, 그 위에 잡지에서 찢은 외눈을 덩그러니 올려 놓았다. 섬뜩한 ‘전복의 미학’이라고 할까?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긴장으로 내모는 작품이다. 전위미술의 선봉에 서 있었던 K화백의 저 번뜩이는 감각은 영원히 늙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한국화가 K는 해마다 판화 작품을 보내온다. 그해 그해의 간지(干支)에 따라 동물 한 마리씩을 배달하는데, 내가 받은 동물 그림이 지금까지 모두 10마리에 이른다. 올해 어느 자리에서 연하장에 대해 물어 보았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판화 찍어 보낼 거예요?” 그가 대답했다. “이왕에 시작한 것, 그래도 12지는 채워야지.” 나는 벌써부터 K화백의 소(牛) 그림이 잔뜩 기대된다. 목판화로 명성을 얻었던 L화백 역시 작은 판화를 여러 해 보내왔다. 특히 몇 년 동안 멀리 해외에 거주할 때도 연하장이나 편지 보내는 일을 잊지 않았다. 겉으로 봐도 ‘뚱한’ 사람처럼 보이고 실제 사교술도 떨어지지만, 편지 내용은 언제나 진지한 수다로 가득 차 있다. 지금 L화백은 투병 중이다. 전화 음성으로 판단하건대 충분히 병마를 이겨내고 있다고 확신한다. 내년에는 오랜만에 개인전을 연다니 몸도 작품도 힘차게 일어서길 간절히 바란다.
선배 Y화백은 연하장의 스케일과 발상, 기술적 완성도가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새 밀레니엄의 문을 여는 녹색 열쇄고리로 장식한 카드를 보내는가 하면, 철제 숟가락을 스테인리스 스틸에 얹어 한편의 시를 적은 조각을 보내기도 했다. 스틸 판에 어떻게 달필의 글씨를 새겼는지 언제 봐도 신기하다. 그뿐이 아니다. 국보 천상열차분야도의 복제화 속에 디지털 불빛을 장착해 밤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헤아리는 낭만을 선사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Y화백은 미술계의 비범한 엔터테이너임에 틀림없다. 이 정도의 연하장이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솔드아웃이 분명한 특급 아트 상품이다.
그밖에도 여러 화가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시골풍의 고졸한 카드를 보내준 연변의 미술사가 L선생, 한폭의 큼직한 사군자를 곱게 접어 보내오는 한국화가 K, 드리핑 기법으로 변형의 카드를 자주 보내줬던 여성화가 L, 오리지널 판화를 고집하는 H선배와 O후배, 촘촘한 씨줄과 날줄의 펜화로 동물을 그려준 조각가 O, 가느린 소녀적 감성이 젖어 있는 제자이자 후배 H와 K….
혹자는 나의 연하장 컬렉션을 작가와 기자 사이에 정치술이 끼어든 인사치례 쯤으로 치부할지 모른다. 인지상정을 사시(斜視)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이란 일방적일 수가 없다. 정이란 서로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는 게 아닌가.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지금까지 받은 연하장보다 더 많은 연하장을 화가들과 지인들에게 보냈다. 나의 연하장 컬렉션은 나의 정 주기에 대한 화가들의 평안한 답신이라고 해도 좋다. 이렇게 정이란 주고 받는 게 맛이 아닐까.

디지털 시대의 인정_사람 냄새가 그립다

나는 편지 쓰기를 좋아한다. 지나간 청춘을 돌이켜 보면, 편지와 일기 쓰기로 보낸 시간이 특히 기억에 또렷이 남는다. 지금도 편지를 쓰고 봉투를 접을 때면, 가슴 속에서 애뜻한 연애 감정 같은 게 불쑥 솟구쳐 오른다. 나는 어눌한 말과 부족한 행동 때문에 종종 세상 사람들과 부딛힐 때가 있다. 그렇게 잃었던 점수를 나는 글로 만회할 때가 많다. 나는 붓맛을 좋아한다. 내가 동양화를 전공했다면 화가의 길을 꾸준히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외국 출장 때, 붓펜으로 취재노트를 적었더니 “아티스트냐?”며 신기한 듯 벽안(碧眼)을 크게 뜨고 지켜 보았다. 글씨 쓰기는 끝 부분의 탄력이 좋은 연필이나 플러스펜이 좋다. 글씨를 쓸 때 사각사각 소리가 나고, 닳아 없어지는 필기구가 좋다. 닳아서 없어지고 마는 것. 그게 인간적이다. 편지는 일기와 함께 내 글쓰기의 출발점이었고, 가장 좋은 글쓰기 훈련 코스였다. 편지 쓰기는 감성의 이랑을 고르는 일이자 사유의 기지를 가꾸는 일이었다. 내가 보냈던 수많은 연하장들은 지금 어디에서 숨 쉬고 있는 걸까?
세상이 많이 변했다. 육필(肉筆)이 사라지고 있다. 편지와 연하장을 주고받는 일이 크게 줄었다. 나부터 연하장 한 장 보내지 않는(못하는) 냉랭한 삶을 살아 온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더구나 작은 그림 하나라도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고 보면, ‘작품 같은 연하장’은 화가들이나 그것을 받는 사람들 모두가 순수한 정표 이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야박한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가 순수한 정 나누기의 미덕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이제 어디에서든 진득한 사람의 손맛을 대하기가 어렵다. 손맛의 효용이 이메일이나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 등 디지털 미디어로 옮겨 갔다. 손맛이 사라져 간다. 손맛은 인간의 마음에서 퍼올린 날것 그대로의 표현 욕망, 저 벌거벗은 육체의 진솔한 몸부림이 아닌가. 그 손맛을 잃고 있다. 결국 우리는 영혼의 거처를 잃은 인간 로봇이 되어 문명의 허깨비를 좇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그래서 사람 냄새가 더욱 그리운 시대다.

퐁피두센터 특별전 |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 | 호안 미로-최후의 열정

앙리 마티스 <폴리네시아, 하늘> 캔버스에 과슈로 색칠한 종이 콜라주 200×314cm 1946

화가들의 낙원에서 행복한 겨울나기

글·이성희 기자

겨울이면 찾아오는 해외 명화전. 웬만한 ‘대가’ 전시는 한 번쯤 개최됐을 만큼 국내의 미술 저변이 확대됐다. 다행이 수준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단순한 걸작전을 넘어서 작가의 한 시기에 집중하거나, 주제로 분류한 심화된 전시들이 주를 이룬다. 이번에 소개하는 전시들 모두 ‘알짜배기’ 명화전이다.
프랑스 현대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는 퐁피두센터의 엄선된 소장품 79점이 11월 22일부터 120일간 한국을 찾는다. <퐁피두센터 특별전-화가들의 천국>은 기획 단계부터 서울시립관이 직접 참여해 작품을 선정, 퐁피두센터 역시 한국 첫 전시를 위해 최고의 소장품들을 선별한 수준 높은 전시다. 이 전시는 기존의 ‘명화전’과는 다른 ‘기획전’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퐁피두센터의 부관장 디디에 오탱제는 한국 전시를 위해 지난 2년간 ‘아르카디아-천국의 이미지’라는 주제로 연구 기획한 것. 디디에 오랭제는 니콜라 푸생의 <아르카디아 목자들>을 출발점으로, 20세기의 대표 작가 피카소 마티스 미로 샤갈 브라크 레제 보나르뿐만 아니라, 현재 주목받고 있는 화가들이 아르카디아를 해석한 방식을 ‘황금시대’ ‘전령사’ ‘낙원’ 등 10개의 소주제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퐁피두센터 소장품 중에서도 상위 5%안에 드는 ‘최고’작품들이다.마티스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붉은 실내>, 샤갈의 <무지개>, 피카소의 <누워 있는 여인>과 레제의 <여가>, 미로의 초대형 작품 <어둠 속의 사람과 새> 등 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주요 작품들로 꽉 짜여 있다. 이 전시를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은 퐁피두센터의 알랭 스방 대표는 “마티스 샤갈 브라크 이브 클랭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며지는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퐁피두센터 현대미술관의 알프레드 파크망 관장은 이번 특별전이 “야수파부터 컨템포러리까지 최고의 작품을 모은 전시”라며 “퐁피두의 해외 전시에서 이런 걸작들이 모이기는 처음일 것”이라고 강조했다.<퐁피두특별전>에서 20세기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느꼈다면, 까미유 피사로, 호안 미로 특별전으로 심화 학습을 해보자.
고양 아람미술관의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은 영국 옥스퍼드대학 애슈몰린미술관 소장품 약 90여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피사로는 유화, 수채화, 동판화, 석판화 등 회화 전 분야에서 작품을 제작하면서 인상주의를 이끌었고 이를 완성시킨 인물이다. 그는 8회에 걸친 인상파전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출품한 유일한 화가로, 그는 전원 풍경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여, ‘대지의 화가’로 불리기도 했다.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은 우리에게 친숙한 ‘풍경’과 ‘자연’이라는 소재로 피사로가 영향을 받은 코로, 밀레의 작품을 비롯하여, 피사로를 중심으로 뤼시앵 페릭스 뤼드빅 등의 피사로가(家)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다.
한편 성남아트센터미술관의 <호안 미로-최후의 열정>은 20세기 추상미술의 대표 작가 미로의 후기 오리지널 판화 103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미로는 작업 후기에 회화 작업은 하지 않았고, 판화와 세라믹, 조각 작업에 치중했다. 특히 프랑스 남부 생폴에 위치한 매그재단 미술의 창설자인 아이메 매그는 미로와 깊은 우정을 친구 관계로, 전속 작가를 넘어서 한 가족처럼 우애를 쌓았다. 따라서 이 전시는 미로 후기 작업의 밝고 정열적인 색채와 예술가와 컬렉터로 사이의 오랜 우정을 과시하는 의미 있는 전시다.
몇 년 사이 ‘블록버스터’ 명화전이 풍성하게 열렸다. 근래에만 루오, 모네, 반 고흐, 샤갈, 클레, 루벤스, 모딜리아니 등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 미술 저변 확대는 물론 고급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예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다양한 해외 명작전은 항상 반가운 소식이다. 추운 겨울, 예술가들의 밝은 상상을 느끼며 장밋빛 미래를 꿈꿔 보자.

호안 미로 <갈라테아> 에칭 1976

카미유 피사로 <View from My Window> 캔버스에 유채 650×810cm 1888

김성수, 도시 그곳에서 나를 잃다

사루비아다방에서 열린 <에페메르>전 전시광경

도시, 그곳에서 나를 잃다

글|이선화 기자

철저하게 인공적인 색감에 빠져 고독해 뵈는 인물은 누구일까? 만약 그 남녀가 실존한다면 그들을 모델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성수를 직접 만나면 던지고 싶은 질문 리스트의 일순위는 이것이었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는 건 인터뷰의 또 다른 재미이겠지만, 난 앞서 언급한 첫 질문을 먼저 꺼내지 않아도 되었다. 갤러리스케이프에서 계획되었던 인터뷰는 좀더 편안한 자리가 좋겠다는 제안으로 근처 커피숍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캔버스의 주인공과 우연히 조우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환한 미소’의 그녀를 처제라 했다. 〈멜랑콜리〉에 만연한 우울함이 그 ‘미소’와 엇갈리는 상황은 단연 흥미로운 반전이었다.

경계를 두지 않는 타고난 이방인으로서

김성수의 작업은 그 영역의 폭이 넓은 편에 속한다. 무섭다는 감탄어가 나올 정도로 고독함을 머금은 〈멜랑콜리〉는 구상적인 회화에 속하며, 〈메탈리카〉의 철골 모티프는 추상적 경향이 강하다. 또한 2002년 부산비엔날레와 2007년 초반 사루이아다방에서 선보인 설치 형식의 페인팅 작업은 벽화이자 일종의 해프닝으로까지 연결되기에 그렇다. 이에 대해 작가는 “나는 추상작가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구상작가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캔버스를 가지고 설치 작업을 펼칠 수도 있지요. 특별한 경계를 두고 작업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불리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형식(Style)의 경계를 유연히 넘나들면서도 김성수는 솔리스트(Solist), 멜랑콜리, 에페메르(프랑스어로 ‘일시적, 덧없음’이라는 의미)처럼 덧없는 인간의 욕망과 소비문화 양태를 올곧게 화면 속에 구현하기 위해 애쓴다. 이를 향한 작가의 천착, 그렇다면 그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일까?
안과 밖이라는 경계가 있다. 그것은 소속감이라는 정체성과 더불어 특정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지의 유무로 구별되는 일종의 상대적 개념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후 프랑스 디종으로 건너가 10년 간 학생과 작가로 생활한 김성수는 그곳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일상에 끊임없이 스며드는 소외와 고독에 젖었다. 작가는 말한다. “프랑스에서 거리를 혼자 산책하다 보면 한국과 전혀 다른 풍경과 만납니다. 한국의 건축물은 시각적으로 오픈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반해 프랑스의 건물은 창이 있음에도 스틸이나 우드 같은 셔터로 내부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광경과 마주할 때면 절대고독 같은 소외감이 들었습니다.” 김성수가 프랑스 사회에서 철저히 단절되었다는 느낌은 이처럼 창이라는 건축물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부터 시작된다. 창이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시키는 통로의 기능이라는 데 의심 없는 동조를 보낸다 할지라도, 작가의 앞선 일화는 뭉클한 애틋함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디종에 머무는 동안 김성수가 이방인의 상흔만을 얻은 것은 아니다. 도시를 ‘산책’하면서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로부터 직선의 차가움과 속도감을 조형적으로 구축해 그만의 도시 풍경을 만들어냈으니까. 또한 프랑스에서 쉬이 볼 수 없었던 한국의 네온 숲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여, 비대한 도시의 허상을 〈네온 시티(Neon City)〉라는 테마로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온 불빛은 위압적이고 폭력적이죠.”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면서 김성수는 한국의 도시 공간에서 인간을 향해 끊임없이 유혹의 손짓을 보내는 네온의 자극성을 표현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망각한 채 ‘밤의 도시’를 표류하는 도시인의 자화상을 〈네온 시티〉에 도입해 발전시켰다. 사실 도시, 소외, 욕망이라는 소재와 개념은 지난 회화사에서 꾸준히 등장한 ‘고정적이고 상투적’인 주제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작가들이 고민하는 일면은 접근 시각의 참신함에 있을 것이며, 김성수 역시 그간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추상적 간결함과 구상의 사실성을 ‘쎄한’ 색채와 중첩시켜 그만의 디테일을 살렸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에페메르〉전(2007년 사루비아다방에서 열렸다)에서 선보인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에페메르〉전은 전시장에서 두 달간의 페인팅 작업(일종의 벽화)을 한 후 한 달 여간의 전시 기간을 가진 모든 작업물을 해체해버린, 그야말로 과감한 발상의 전시였다. 덧없이 사라지는 욕망의 허상에 주목하면서 인생사의 일면을 극대화시킨 그의 전시는 공들여 그린 작품을 단 30분 만에 ‘파괴’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일회적 회화의 아이디어 역시 밤의 도시 풍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늦은 새벽의 도시는 전날의 열기와 극명하게 대립되는 풍경을 보여주죠. 황량하기 그지없어요.” 전시 기간의 마지막 날에 사람들을 초대해 정적인 회화의 작업 과정과 대비되는 과감한 행위를 선보였던 작가,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주위에서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끝이 나야 했으니까….” 순식간에 건물을 철거하고 세우는 건설 대국 한국의 이미지와 더불어 인간 욕망의 허망함을 풍자하겠다는 그의 작업 컨셉트는 이처럼 확고한 의지의 소산과 함께 공고함을 더했다.

<멜랑콜리> 캔버스에 유채 130×194cm 2008

초현실적 공간에서 만나는 인공의 빛

타자로서 김성수가 느꼈던 단절의 스토리가 중첩된 〈멜랑콜리〉나 〈메탈리카〉, 그리고 자본 논리의 오브제로 선택한 〈나쁜 꽃〉(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작가는 특별한 연관성이 없다고 했다) 시리즈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형광 빛 색채다. 쾡한 눈빛의 인물 표정과 조악한 플라스틱 꽃의 묘사 능력보다, 다양한 조형 요소 중 작가의 심리 상태를 환원케 하는 무게 중심에 그 특유의 색상이 있다. 지극히 절망적이었던 파리 초기에 피카소가 주변 환경을 온통 청색으로 물들였을 때나 눈을 자극시킬 만큼 강한 색채들의 반발을 화면에 옮겨놓은 표현주의 성향의 작품에서처럼, 김성수는 그만의 색채를 탄생시키고 있는 듯 보인다. 프랑스 유학과 관련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이러한 색을 쓰게 된 계기는 프랑스 문화의 영향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문화 때문이었다고 했다. “네온의 일렉트릭(electric)한 색에서 출발한 것이죠. 인물이 가진 실루엣을 표현하는 데도 네온이 가진 성향을 따랐습니다. 인물의 라인은 진하게 표현하는 반면 내부는 형광 불빛이 점차 옅어지는 것처럼, 네온 본연의 성격에서 착안한 것이죠.”
작가는 서정적인 분위기보다 사이버틱한 감성에 어울릴 만한 대상을 주변의 인물과 조화(造花)에서 찾았다. 그리고 네온 불빛에 간접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넘어 결핍과 부재를 최대화시키기 위해 네온에 흥건히 빠진 인간과 꽃을 도시를 상징하는 양, 혹은 그 반대인 양 이야기한다. 물감의 끈끈한 물성이 네온 불빛을 더욱 강렬하게 연상시키는 그의 화면,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유혹의 빛’처럼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다.
벤야민은 “도시보다 초현실주의적인 얼굴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비록 그 특유의 네거티브 접근법으로 현대 도시문명에 배태된 소외와 물질문명의 허(虛)를 표현할지언정, 김성수에게도 도시는 신비로운 꿈의 풍경과 매한가지다. 브레히트가 “살기도 힘들지만 떠나기도 힘든 곳”이라고 베를린을 표현한 것처럼, 김성수에게 도시 역시 예술적 토양으로서 쉽사리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비단 순간순간의 기억이 치명적일만큼 강렬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도시의 산책자’는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두기를 전제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쁜 꽃> 캔버스에 유채 120×100cm 2005

독일작가 욘 복

11월 21일 아르코미술관 오프닝 강연 장면

그의 머릿속 괴상하고 낯선 구멍 두개

글 | 장승연 기자

‘욘 복’이라는 작가를 정확하게 지칭할 수 있는 수식어가 과연 있을까? 비디오 작가? 오브제 작가? 아니면 퍼포먼스 작가? 기자와 비슷한 고민을 한 누군가가 그의 작업을 ‘콤비네이션 아트’라는 다소 안전한 명칭으로 구분해 놓긴 했지만, 어쩌면 그의 작업을 이미 우리에게 통용되고 있는 여타 장르에 구속시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작가 스스로도 “사회의 논리적인 지식 체제에 사이드 킥을 가하는 하나의 얼터너티브한 모델이 되고 싶다!”고 밝혔던 점을 상기하면 말이다. 일상적인 사물들을 기묘하게 결합시켜 엉뚱한 오브제를 제작하고 이를 도구로 삼아 스스로 ‘강연(Vortag, Lecture)’이라고 명명한 퍼포먼스 벌이기,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찍은 영상물들을 모태로 다양한 필름을 제작하기 시작한 욘 복은 연극적인 요소에 슬랩스틱 코미디와 싸이코 스릴러, 철학, 심리학, 문학, 음악 등 온갖 장르가 혼합되는 자유분방한 감수성을 표출하고 있다. 이제 그는 ‘요셉 보이스 이후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라는 영광스런 타이틀의 주인공이 됐지만, 반면 국내에는 그의 작품이 좀처럼 소개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유명세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작업에 대한 호기심 덕분일까. 11월 20일 전시 오프닝에 맞춘 작가 욘 복의 라이브 ‘강연’이 열리던 날,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아르코미술관을 찾아 전시장 안을 빙 둘러선 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작가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펼친 ‘강연’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평행 - 이면체, 서로 뒤엉켜 으르렁대는 PARA - SCHIZO, ensnarled> 2008, 2중 채널, Video(PAL), 40분, 사진: 얀 빈트츄스
제작, 소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인사미술공간
ⓒ 2008 John Bock.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Anton Kern New York; Klosterfelde, Berlin

“나는 미술관을 액션의 장으로 바꾸려 한다”

시작 시간을 30분가량 넘기고서야 천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커튼 사이로 그로테스크하게 얼굴을 분장한 욘 복이 등장했다. 욘 복의 자작시가 낭송되면서, 그가 커튼을 조금씩 젖히자 낯선 오브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회용 종이컵, 양말, 철사, 책상, 의자, 셀로판 종이, 낡은 스웨터 등 주변 일상 사물들로 만들어진 오브제들은 온갖 사물들로 어설픈 놀이도구를 만들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예술가의 작품이라기엔 다소 서투르며 엉뚱하고(물론 지극히 의도된), 언뜻 보면 사이비 과학자의 엉터리 발명품 같기도 한 오브제들에 그는 애초부터 논리적인 용도 따위를 부여하지 않은 것 같다. 욘 복은 커튼을 열 때마다 등장하는 각 오브제들을 신체 어딘가에 착용하기도 하고, 바닥에 던지거나 더 망가뜨리고, 관객에게도 건네거나 착용시키면서 알 수 없는 주술 같은 언어들을 내뱉었다. 그가 심각하게 고함을 지르며 눈을 크게 뜨면 관객들의 표정 또한 진지해졌고, 이내 노래를 부르거나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듯 우스꽝스런 제스처를 취하면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1시간 여 진행된 ‘강연’의 끝에서 면도크림을 잔뜩 뒤집어 쓴 욘 복은 관람객 사이를 뛰어다니며 그들의 뺨에 키스를 날리는 것으로 조용한 미술관에서 벌어진 한바탕 소동을 마무리했다.
“나는 ‘강연’에서 슬픈 이야기, 표현적인 이야기, 농담과 슬랩스틱, 이런 것들을 모두 콜라주하고 혼합해서 보여줘요. 오브제를 통해 관객에게 접촉하고 연결하고, 때론 내가 오브제를 뒤집어쓰는 과정에서의 모든 소통을 추구하구요. 관객들은 내 행동에서 거부감을 느끼다가 이내 친밀해지기도 하고, 또 좋아하다가 싫어지기도 하고 그런 감정의 접촉을 이루게 되죠. 사랑하다가 미워하다가, 그런 감정의 반복인 내 ‘강연’은 일종의 어떤 ‘구애작전’이에요.”
‘소통’이라고? 애초에 예술작품이란 그것을 보는 감상자와의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창조물 아니던가. 하지만 여기서 그가 말하는 ‘소통’이란 한없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의미가 아닌, 바로 지극히 일상적이고 시시콜콜한 온갖 상황에서의 경험에서 시작되는 것을 일컫는다. 욘 복은 말했다. “작은 것들을 잊지 마라. 담배꽁초 같은 것들! 세계가 그 안에 있다”라고 말이다. 예를 들어 구멍 난 양말이 눈에 보이면 그것을 손에 껴보기도 하고 뒤집어도 보고, 그러다 주변에 떨어진 철사나 일회용 종이컵, 스카치테이프 등을 이용해서 마음 가는데로 하나의 오브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즉물적인 경험,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에너지야말로 그의 작업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단편 비디오 〈흥미진진 동그란 케이크(Lust Torte)〉를 보자. 욘 복은 동그란 작은 공간 속에 특유의 기발한 오브제들을 차례로 설치한 후, 오브제들을 작동, 변형시키는 행위를 무려 50여분 동안이나 반복한다. 마치 비밀요원이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듯 우스꽝스러울만치 진지한 그의 모습은 “오브제와 작가의 사이 공간”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이란 ‘사이(Inbetween)’에서 발전하는 것”이라는 그의 덧붙임처럼 그와 오브제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체험적으로 형성되는 소통은 그렇게 ‘강연’의 순간을 통해 관객에까지 이어진다.

아르코미술관 제2전시장 설치 전경

“단지 예술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그런 소통을 이루는 장(場)을 단순히 퍼포먼스가 아닌, ‘강연’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혹시 교육, 지식 습득을 연상시키는 단어의 딱딱한 어감을 통해, 예술이 취할 수 있는 권위적인 모든 행위에 대한 조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난 단지 퍼포먼스라는 용어 자체를 쓰고 싶지 않았어요. 1970년대 초반 이후 크리스 버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같은 작가들이 보여준 고통이나 피, 그리고 나체 같은 자극적이고 힘준 퍼포먼스가 싫었거든요. 내가 사용하는 ‘강연’의 원어는 독일어 ‘Vortrag(talk, to give a talk, lecture)’인데, 이 단어는 언어를 통해 무언가를 행하는, 평범한 일상의 수준에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해요. 내가 강연에서 원하는 것은 긴장을 풀고 ‘이리 와 봐! 우리 함께 하자’하는 분위기죠. 내 작업은 모든 시시콜콜한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동들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이쯤이면 그의 ‘강연’이 독일 퍼포먼스아트 계보에 있어 요셉 보이스를 잇는 것으로 해석하는 일부의 시각도 큰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분명 그의 행위와 보이스의 행위에는 다른 점이 있다. 그 지점에 대한 욘 복의 명쾌한 답변을 곁들이자면, 그가 생각하기에 보이스가 추구하는 예술이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예술적 모듈을 짜는 행위”이다. 욘 복은 사회적으로 통하는 언어로 예술이라는 과제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누구나 지니고 있는 심리 안에 존재하는 언어, 사회가 만들어낸 작위적인 구성들에 일종의 조크를 던지고 충격을 줄 수 있는 언어를 찾고 싶다고 전한다. 새로운 언어를 찾으려는 그에게 ‘예술’의 범위란 당연히 한정된 울타리에 귀속되지 않는다. 초현실주의자 살바도르 달리, 다다이스트 휴고 볼과 프랑스 소설가인 레이몽 후셀의 저서 《로커스 솔루스(Locus Solus)》의 아이디어, 그리고 그가 ‘강연’할 때 즐겨하는 하얀 얼굴에 검은 눈두덩이 분장의 모티프가 된 미국 쇼크록의 대부 격인 가수 앨리스 쿠퍼를 영감을 준 예술가로 꼽는 것은 차라리 친근하다. 여기에 에베레스트에서 수 십년 만에 발견된 전설적인 탐험가 조지 말로리의 꽁꽁 얼어붙은 시체는 그에게 있어 아름다운 하나의 조각이며, 1945년 월드컵의 독일과 네덜란드 경기에서 헐리우드 액션으로 프리킥을 얻어내 독일을 승리로 이끈 한 축구선수의 반칙이야말로 그가 꼽는 최고의 퍼포먼스라니,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가 쏟아져 나오는 남다른 구멍들이 은밀히 뚫려있는 게 틀림없다.

<Lust Torte 흥미진진 동그란 케ㅤㅇㅣㅋ> 2008, Video(PAL) DVD, 50:48분 사진: 얀 빈트츄스
ⓒ 2008 John Bock.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Anton Kern New York; Klosterfelde, Berlin

경험과 공감! “알고 싶으면 체험해라”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4편의 필름과 8편의 단편 비디오 영상물, 그리고 그가 한국에서 제작한 신작 필름 〈평행-이면체, 서로 뒤엉켜 으르렁대는(PARA-SCHIZO, ensnarled)〉(이하 〈평행-이면체〉)이 공개된다. 이미 욘 복은 파리에서 제작한 〈댄디〉, 아이슬란드의 〈스키폴트〉, 이탈리아의 〈원천의 발열〉, 그리고 미국에서 제작한 〈야자수〉처럼 각 나라에서 접한 경험과 느낌들을 특유의 영화적 서사로 표현한 바 있다.
그가 설명한 ‘소통’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그의 필름은 제작 과정에서의 공감과 경험, 직관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하는 또 하나의 ‘변이체(Mutant)’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삽입하는 게 내 방식이죠. 처음부터 한국 전시에서 어떠한 형식의 작품을 소개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어요.”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욘 복은 신작이 필름 형식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구상만을 가지고 서울의 낙원동 창신동 제기동 신사동 동두천 탑동 등 로케 장소를 선정했다. 정열적이고 파워풀한 조력을 보여준 ‘생 태양’과 같은 나라 한국의 스텝진과 독일 스텝진의 협업으로 7일간의 강행군을 거쳐 완성된 필름은, 제작 과정의 각 순간에 따른 즉흥적인 변천을 거듭했다.
“욘 복의 필름에서 주인공은 전문배우로 연기하는 인물이 되기보다 욘 복의 오브제들이 조성한 환경에 반응하는 적극적 참여자에 가깝다. 이 점에서 그의 필름은 애초 ‘강연’부터 시작된 그의 기본적 관심-오브제와 관객 간의 상호작용-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미술관 측의 설명처럼, 한국의 사물들로 제작된 오브제들에 더욱 친밀한 공감을 보일 수 있는 한국측 스텝들이 즉석에서 배우로 캐스팅되거나, 촬영 도중 발견한 어떤 물체가 곧바로 오브제로 재탄생되는 과정은 그의 작업에 있어 당연한 부분이었다. 이렇듯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욘 복의 예술적 감성을 이해할 수 있는 조력자가 필요했기에 영화 제작 협업팀은 국내 작가들로 특별히 구성됐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신작 〈평행-이면체〉는 욘 복이 최초로 시도한 2중 채널 필름이자,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남녀의 끊임없는 여정을 담고 있다.
각각 화면 속에서 나란히 등장하는 남녀는 엉뚱하고 기이한 오브제들과의 다양한 관계를 형성해 가고, 난해한 시와 같은 대사를 읊으며, 나아가 영화 속 공간과 인물들과의 접촉을 보여 준다. “두 화면이 평행을 달리는 모습이지만, 사실 각 화면은 두 화면 나아가 모든 쌍을 이루는 두 개체간의 끊임없는 유기적 연관성을 포착하고 보여주고 있어요.” 이처럼 그의 새로운 필름은 화면간의 연관성을 추구한 다양한 표현적 기교와 더불어, 데칼코마니적 구성, 때때로 호흡이 빨라지는 교차 편집, 낯설고 신비로운 느낌의 음악까지 더해지며 관람객을 한층 강렬한 시각적 만남, 그 충돌로 이끈다.
“나에게 예술이란 영화관에서 미키 루크의 영화를 본 후, 마치 그를 따라하듯 고급 승용차를 타고 멋진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이 아니에요. 내 기억 속에 남은 미키 루크의 얼굴이 바로 예술 자체입니다.”“나는 나만의 서클이자 어떤 사이공간인 ‘파라월드’ 속에 있어요. 나는 거대한 슈트케이스 속에 있는 작은 면봉 하나일 뿐이에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작업만큼이나 자유롭고 독특한 비유를 사용하던 욘 복만의 대화법을 떠올리던 중, 기자는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우리는 오직 언어와 논리에만 의존한 채 예술을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라고 말이다. 창작 과정에 있어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기 위한 방편으로 감성보다는 이성이 강요되고, 즐거움보다는 의무감의 노예가 되며 꿈보다는 현실을 택해야만 하는 예술가들과, 또한 그런 감상법에 길들여진 관객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욘 복의 작업 속 ‘낯선 독특함’이 가질 수 있는 차이란, 작가 스스로 미술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의 순간과 거기서 파생되는 에너지 자체에 몰입하고, 또 그것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이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일 테다.
‘다장르가 범벅된 혼합체’라는 새롭고 자유로운 조형 언어를 추구하는 그의 작품을 기성 언어로 정리하려는 시도는 여기서 그만 접을까 한다. 단, 여전히 욘 복의 작업이 너무 난해하거나 어렵다고 느끼는 이에게 권한다. 지금부터는 욘 복의 작업을 ‘이해’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의 말처럼 ‘같이 경험하고 공감해’보면 어떨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그가 거침없이 가하는 교묘한 사이드킥을 열린 마음으로 즐길 차례다.

2008 December Special - 백남준과 친구들

백남준 유치원 시절 사진(오른쪽)과 왕싱웨이 <늙고 불쌍한 해밀턴> 캔버스에 유채 220×280cm Courtesy Galerie Urs Meile, Beijing-Lucerne(왼쪽)

뛰어라! 여기가 백남준 예술의 현재다

글|강수미·미학

그림의 한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아주 조그마한 체구의 아시아계 까까머리 아이다. 이 아이는 조금 전, 현대 미술사를 다시 쓴 거장 마르셀 뒤샹의 <커다란 유리(Large Glass)>를 박살내고 어른에게 한창 야단을 맞는 중이다. 그러나 그림 오른쪽 끄트머리를 보면, 이 야단맞는 아이보다 더 불쌍하게 쭈그러든 한 노인이 간신히 화폭 속에 들어와 있다. 팝아트의 개시를 알린 선언적 작품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의 작가 리처드 해밀턴이다. 이런 이미지의 조합을 두고 볼 때, 그림은 말하자면 이제 고전이 된 서구 아방가르드 미술의 권위를 깨는 아시아 ‘앙팡 테리블’의 선언으로 읽힌다.

아니 비지에 <X-이벤트 2> 퍼포먼스 2008

‘백남준=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의 등식을 버려

하지만 이런 읽기는 백남준아트센터의 페스티벌 전시로 따지면, 아직 시작도 안한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아시아의 앙팡 테리블은 서구 미술을 자기 그림 속에서 패러디하며 재생산한 위 그림의 작가가 아니라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한 백남준이기 때문이다. 또 이 후자의 문제적 작가는 뒤샹 이후 서구 현대미술의 큰 구조와 세부 내용을 그야말로 중앙에서 개정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백남준아트센터가 중국 현대화가 왕싱웨이의 그림 <늙고 불쌍한 해밀턴(old poor Hamilton)>을 전시 초입에 내건 이유이며, 그 그림 옆에 진지한 표정으로 웃는 멜빵바지 소년 백남준의 사진을 세워놓고, 관객의 해석을 독려한 전시 문맥의 전모이다. 위 경우에서 보듯이, 백남준아트센터의 페스티벌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치 탐정소설의 독자가 그런 것처럼, 기획 측이 전시장 곳곳에 가설한 단서를 찾아내야 한다. 그 단서는 많은 부분 전시된 백남준 작품 자체이다. 하지만 또 다른 경우 그 단서는 조선의 모더니스트 이상(李箱)의 시에서, 이태리 현대음악가 부소티(S. Bussotti)의 전위음악을 거쳐,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 Deleuze)의 ‘6.8혁명에 대한 코멘트’를 담은 인터뷰 영상까지, 분과 영역과 물리적 지역을 횡단한다. 그러면서도 선(禪)에 심취한 백남준이 1986년 일본 에이헤이지 사찰을 방문했을 때 방송국 카메라가 우연히 잡은 영상과 박이소가 1984년 단식하며 등에 밥솥을 끌고 뉴욕 거리를 걷는 뒷모습 사진이 전시장의 근접한 곳에 걸린 것에서 보듯, 비슷한 시간대의 예술가적 정신을 짚는다. 그러니 우리는 기꺼이 이 단서들로부터 20세기 중후반에서 현재까지, 현대미술의 역사에 넘쳐난 도전과 파괴, 위반과 성찰의 생산적인 의미를 읽어내는 창의적 감상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를테면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같은 습관화된 수식어에 묻혀있는 백남준과 그의 예술을 현재 우리의 정신과 감각으로 생동감 있게 수용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 그 단서풀이가 당대 문화예술의 최전선에서 ‘창조’를 무기로 싸웠고,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백화난만의 예술을 있게 한 ‘경계 없는 전위 예술가’로서의 백남준과 동시대(문화예술, 예술가, 철학 등)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아티스트’ 운운하며 패권 경쟁하듯 세계 현대미술 지형으로부터 따로 떼어내 신화화시킨 ‘과거’의 거장 백남준은 없다. 그와는 달리, 는 글자 그대로 ‘현재 시간(now)의 예술가 백남준’을 제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또 그런 의미에서, 제목의 ‘점프(jump)’는 이미 고인이 된 예술가의 비선형적 삶을 향한 정신적 ‘도약’이거나 그 도약을 구체적으로 현상하기 위해 기획 측이 감행한 ‘비약’이 아닐지?

백남준 <TV 물고기> 1975(1997)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동시대 예술의 지도를 그리는 5개의 성좌

페스티벌은 백남준이 서구 미술의 누적된 문법과 미의 격률에 좌우되지 않았듯이, 미술사의 객관적 실증과 연대기적 나열에 구애받지 않고, 기존 미술 이론의 규준과 서술적 맥락을 탈피하면서, 백남준과 당대 예술의 성좌를 그려냈다. 기획자들은 이 개관 행사를 ‘스테이션 1~5’로 명명했는데, 아마도 논리의 인위적 연계보다는 유연하고 가변적인 예술의 시간 관계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스테이션은 1. 백남준과 당대 예술, 2. 행위예술 또는 퍼포먼스, 3. 과거-현재-미래를 묶는 여러 장르의 예술 4. 국제 심포지엄 등의 담론 장(場), 5.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예술상 계획’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한 눈에 봐도 백남준아트센터가 내건 이 다섯 스테이션은, 동일한 지평에 있기 힘든 것(작품, 행사, 지식, 수상제도)이 혼재한 양상이다. 그런 점에서 이 페스티벌에 ‘정거장’보다는 ‘성좌(cons tellation)’라는 개념이 더 적절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별의 배치인 성좌가 인간의 감각을 넘어서는 우주적 차원의 시공간적 구성이라 할 때, 위 스테이션 다섯이 지향하는 ‘혼재’는 바로 그런 성격을 원천 삼아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페스티벌 내용을 구성하는 개념의 이름이야 어떻든지 간에,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이 대규모 개관 행사가 센터의 관장 이하 학예원들의 리서치를 통해, 백남준의 예술과 동시대의 지적, 문화 예술적 지형을 역동적으로 관계 짓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예술가의 뜻을 기리는 길은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예술의 동력학을, 보다 잘 짜인 삶과 예술의 관계망을 펼치는 데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아마도 기성의 권위를 해체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그로부터 자유로운 비약을 감행하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백남준은 1963년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갤러리 개인전에, 잘린 소머리와 13대의 텔레비전을 작품으로 내놓았다. <Now Jump>를 기획한 이영철 관장은 여기서 ‘소머리’를 서구미술이라는 아버지의 목을 벤 백남준식 제의의 상징으로 읽었다. 하지만 정작 작가가 남긴 노트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즉 백남준은 관객들이 선정적인 관심으로 소머리에 흥분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13대 텔레비전에 만들어놓은 ‘미묘한 왜곡’을 관객이 ‘인식’하지 못한 사실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미묘한 차이’가 TV를 일상생활에서 예술 영역으로 확장시키고, 뒤샹의 온갖 실험적 미술 이후 거의 창조의 출구가 안 보이는 현대미술에 ‘시간 예술’ 또는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융합’이라는 커다란 해방구를 연 뇌관이었다. 이 뇌관은 페스티벌의 각종 전시물들에서 보듯, 1960년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현대 문화 예술이라는 하늘에 터지며 ‘미의 불꽃놀이’를 제공했다. 따라서 이제 백남준의 후예인 당신이 할 일은 또 다른 미묘한 차이를 찾고, 그로부터의 커다란 도약이 아닐지?

백남준아트센터 외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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