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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8.11

Abstract

특집 art기자, 비엔날레 가다 5色5感 비엔날레 리포트 지난 9월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역사상 가장 분주한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광주 부산을 시작으로 상하이 광저우 타이페이 싱가포르 요코하마 등 아시아 주요 도시들에서 릴레이로 비엔날레, 트리엔날레가 개막됐다. 각 전시는 '주제 없음' '연례보고' '도시' '시간' '경이' 등 저마다의 주제를 내세웠다. 기존의 비엔날레 효용에 문제를 제기하는가 하면, 새로운 대안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국가와 지역 혹은 도시 정체성을 담보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미술시장의 영향력 확대에 힘 입어 아트페어와 비엔날레가 동시에 개막한 곳도 있다. 그래서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갤러리스트, 저널리스트들이 아시아 방방곳곳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art 기자들도 광주, 부산비엔날레 오픈에 이어 해외 나들이를 다녀왔다. 기자 5명이 각자 한 도시를 맡아 비엔날레와 현지의 아트씬을 생생하게 취재했다.

Contents

표지  이기봉 <Vertical Depth> 플렉시글라스, 아크릴릭 혼합재료 192×129cm 2008

에디토리얼  ‘동방의 요괴들’을 찾습니다!_김복기

프리즘
    제7라운드, 미술품 세금의 딜레마_최병식
    외유 떠나는 경매회사들에 바란다_정준모

아티스트 아틀리에 아카이브  
    이재효_이선화

포커스
    윤석남|언니가 돌아왔다_전영백
    김영원|전준_김이순
    B-Side_임근준  
    델픽게임|Emotional Factor+y_김백균

특집
    art기자, 비엔날레 가다
    5色5感 비엔날레 리포트
    (1) 제3회 요코하마트리엔날레_이선화
    (2)제7회 상하이비엔날레_장승연
    (3)제2회 싱가포르비엔날레_이성희
    (4)제6회 타이페이비엔날레_호경윤
    (5)제3회 세비야비엔날레_김새미

인터뷰  제임스 터렐
    자아를 비추는 빛, 그 ‘황홀한 초대’ _이선화

작가 연구  심문섭
    (1) Presentation & Represent_유진상
    (2) 항해의 풍경_김홍기

클릭! 공공미술  
    남산 위에 첨성대, 한강변의 성냥갑_윤태건

이미지 링크 강운구

특별 기획  
    정부수립 60년, 한국미술 60장면
    60년의 파노라마, 1967~1948_최열

해외 리포트  
    Metamorphoses, 파리로 간 한국작가들의 에스프리_김수현

전시리뷰
    20세기 라틴 아메리카의 거장
    김봉태|네트워크 프로젝트-재팬
    안필연|문경원|김세일|신수진
    장우석|이용백|박보순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집-기억
    박진아|박준범|이상한글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김제민|오영은|정혜진|이혜승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파리 에스파스루이비통 展

서도호 <Cause & Effect> 설치 전경 ⓒLouis Vuitton Mazen Saggar

파리로 간 한국작가들의 에스프리

글 | 김수현·파리 한국문화원 전시기획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에 위치한 에스파스 루이 비통(Espace Culturel Louis Vuitton)은 지난 3년 동안 해마다 3회씩 한 나라를 선정하여 그곳의 현대미술 작가들과 그 작품을 소개해 왔다. 올해에는 러시아, 인도에 이어 한국을 선정, 아홉 번째 전시로 현재 한국과 뉴욕 등지에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10명의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10월 2일부터 12월 31일까지 <변형 (Metamorphose)>이라는 주제 하에 전시하고 있다. 이는 유럽 하이패션 리더로서의 루이 비통 기업 이미지와 아시아 현대 작가들이 결합된 멀티 컬처로서, 오늘날 하이브리드한 세계화의 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뮬라크르로서의 이미지가 현실을 지배하는 현대 포스트모던 소비 사회에서 예술과 비즈니스가 만나서 상호 교환을 이루는 모습은 예술이라는 이미지의 기호 가치에로의 전이와 그 상승 효과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는 독립 큐레이터인 에르베 미카엘로프(Herve Mikae loff)의 기획 하에 전시 제목과 동일한 ‘변형’이라는 주제로 작가를 선정했다. 짧은 시기에 놀랄 만한 성장을 일구어 낸 한국의 경제 발전 속에서, 사회 정치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불가피하게 야기되는 많은 변화와 그 현상들을 ‘변형’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관통해 보고자 하는 기획자의 의도가 잘 반영되어 있다. 또한 참여작가들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구성 방식, 즉 파편화(Fragementation)된 미니어처들과 그 집적(Accumu lation)들로 이루어진 작품들에서 현재 세계 유일 분단국가로서의 억압된 역사와 분열, 축적이라는 한국 특유의 아이덴티티가 묻어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의 아트디렉터 역시 이번에 본격적으로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게 된 동기이자 그들 작업의 가장 매력적인 측면 중 하나가 바로 역사적인 측면에서의 ‘억압’이라는 마이너스적 조건을 오히려 폭발적인 에너지와 그 가능성으로서 소화해 낸 자유로운 창작력임을 강조한 것을 보면, 파편성과 그 축적으로서의 작품 구성 방식이 이번 작가들에게 드러나는 공통적이자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오용석 <크로스> 설치 전경

파편화와 그 집적

이러한 요소는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만나게 되는 이수경의 도자기 파편들을 접합한 설치 작품에서부터 이미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서구에 일찍부터 잘 알려진 중국 도자기와 일본의 다도에 비해, 그 헤아릴 수 없는 높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인식이 부족한 한국의 도자기를 소재로 하여, 전통과 현대를 단숨에 가로지르며 한국 역사를 은유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랜 장인 정신에 의해 생산 과정 중에 무수히 버려지는 도자기 파편들을 마치 오브제 트루베(L’objet trouve)처럼 서로 붙이고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안티 형태’로서의 앵포르멜적 형상은 금박으로 그 경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는 오히려 깨진 부분들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그 실패로 인해 형성되는 또 다른 가능성으로의 잠재적 형상성을 가시화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파편으로서의 ‘기억’이라는 시간성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볼 수 있는 오용석의 비디오 작업은 기억 매체로서의 ‘비디오’라는 도구의 자기 반영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시점에서 촬영한 비디오 이미지 위에 작가의 어린 시절을 콜라주한 이미지가 겹쳐져 공존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혼재를 암시한다. 즉 현재라는 그 어떤 순간도 이렇듯 과거의 기억으로서의 파편 조각들에 알게 모르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즉 결코 현재라는 순수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은 홍상수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보듯 여러 장면들이 한 화면에 병치되면서 만들어지는 데자뷰 느낌처럼 마치 조각보처럼 짜인 혼합된 화면을 구성하는데, 이는 미세한 표면 효과로 인해 여러 공간과 시간대가 함께 혼재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일종의 어떤 내러티브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 즉 기억과 정체성의 관계를 시각화한다. 이러한 역사와 기억으로서의 주체란 특히 한국인으로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또 다른 집단 무의식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할 수 있으며, 이는 전준호 서도호 김혜련의 작품에서 어떤 공통된 현상들로 나타난다. ‘분단국가’라는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유럽이라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마치 ‘낯설게 하기’ 기법처럼 ‘언캐니(Uncanny)’하게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군인 형상과, 여기에 드러난 남북의 경계라는 장소성에 대한 자기 반영은 전준호의 설치와 비디오 작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는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서도호가 보여준 군인 명패로 바닥을 가득 채운 설치 작업을 상기시키기도 하는데, 이번 전시에서 서도호는 천정에서 나선형으로 바닥까지 내려오는 미니어처 군상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덩어리 설치작업 를 출품했다. 이 작품은 익명성으로서의 주체와 군대 조직으로도 은유될 수 있는 사회의 거대한 힘을 은유하는 듯하다. 또한 김혜련의 회화는 30개의 파편화된 작은 캔버스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구성한다. 이는 남과 북의 경계에서 철조망을 통해 바라본 그 너머의 경치들을 마치 영화적 시각처럼 클로즈업된 시각과 흐릿한 이미지와의 공존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클로즈업 기법으로 강조된 철조망이라는 폭력적 마티에르와 공격적인 형상의 느낌은 이를 통해 멀리 보이는 흐릿한 경치에서의 부드러움과 함께 공존하면서 아이러니한 현실을 동시에 드러낸다.

함진의 작품을 감상 중인 인디아 말다비와 루이 비통 CEO 이브 카셀 ⓒLuc Castel

끊임없는 변형의 과정들

전준호와 서도호의 작업에서 보이는 미니어처화된 페르소나는 함진의 설치 작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커다란 미사일 위에는 작품 바로 옆에 비치된 돋보기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미세한 형상으로 이루어진 군상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그로테스크한 인간의 여러 형상성의 상징을 통해, 현대 사회의 괴물성으로서의 인간성을 감추면서(미니어처) 폭로하는(돋보기로 볼 때) 전략을 취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이중적인 형상은 중세 화가인 히에로니우스 보쉬의 작품에서부터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회화의 역사를 한꺼번에 한 화면에 압축, 병치시킨 듯한 정수진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여기 보이는 인간의 변형과 그 기원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이형구의 작품에서 그 극대치를 이루게 될 터인데, 인간의 몸 구조를 빌어 그 정체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캐릭터들의 과장된 욕구는 이렇듯 끊임없이 변형을 반복하는 또 다른 형상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한편, 시각성을 거부하고 컨셉추얼아트 방식을 통해 변형이라는 과정을 안티 비전으로서의 문자로 풀어나간 김범의 작업은 작품이라는 마티에르의 물질성이 비물질성에로 경도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또 다른 ‘공간’을 인식하게 한다. 이 작품은 특히 세노그라피적 설치 공간이 중요한데, 관객은 좁은 통로를 걸어가면서 양쪽의 경구들을 읽어 나가게 되는 사적이고 개인적 공간 속에 위치하게 된다. 더욱이 첫 번째, 파노플리의 <나무가 되는 법>을 시작으로 각기 <문, 풀, 바위, 냇물, 사다리…가 되는 법>이라는 경구 형식의 문장은 작가가 ‘무엇이 되는 중’으로서의 어떤 ‘상태(Etat)’를 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관객과의 인터 텍스추얼리티로 표현하고자 했음을 파악하게 한다. 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와 그 구조 속에서의 다양한 페르소나로서 끊임없이 ‘무언가가 될 것을’ 강요당하는 인간에게 과연 ‘무언가가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 질문 자체를 건드리고 있는 듯하다. 좀 더 나아가 건축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환경적 작품을 출품한 플라잉시티와 유일한 프랑스 참여작가 니콜라 물랭(Nicolas Moulin)의 작업은 건축에 있어서의 유동성, 중립성과 경계의 개념을 표현하고자 한다. 특히 물랭의 작업은 작가가 직접 북한을 방문한 후, 북한 예술가와 함께 제작하고자 했던 본래의 계획이 결국에는 무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만나게 된 북한의 건축과 환경에 대한 작가의 느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는 마치 SF영화에서 나온 듯한 중성적이며 차가운 느낌의 건축물로서 고립된 전시 방식, 즉 다른 10명의 작품들과 동떨어져 1층 로비 현관에 전시됐다. 이는 작품인 줄도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구축물을 통해서, 오늘날 변형하고 있는 한국 사회 속에 내재한 ‘북한’이라는 존재와 그 잠재성에 대한 은유를 시각화한다. 이에 비해 샹젤리제 거리의 쇼윈도에 디스플레이된 플라잉시티의 작업은 지나가는 행인들이 전시장이 아닌 일상 공간에서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유동성의 개념으로 솔리드한 건축물과 도시의 중력에 저항하고자 하는 자유로운 ‘에스프리’는 루이 비통 철학과 상응하는 미래지향적인 도시 개념, 즉 변화와 변형으로서의 의미를 이렇듯 열린 소통 공간을 통해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파리의 중심가 샹젤리제에서 열린 한국 작가들의 전시는 ‘변형’이라는 주제 속에 빠른 속도로 현재 진행 중인 한국 현대미술의 어느 한 단면을 잘라내어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현장을 경험하지 못한 파리지앵들로 하여금 다양하고 매력적인 한국작가들의 창조적 에스프리를 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처럼 <변형>전은 그 자체로 한국미술에 있어 수많은 ‘변형’ 중 또 하나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축적될 수많은 단편들로서의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하나로 녹여 내릴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전준호 <Statues of Brothers> 혼합재료 가변설치 2008

심문섭, Presentation & Represent

<The Presentation> 나무, 비상램프 310×264×320cm 2008

Presentation & Represent

글|유진상·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심문섭의 … 시선의 놀라움이다. 오랜 시간 동안 사물들과의 대치와 조우를 통해 그것들의 진가를 발견하고 그 관계의 힘을 평가하며 예외적 순간들을 포획해 내는 시선.

밝은 오후의 빛 속에서 오래된 중국 의자에 앉아 탁자 너머의 대나무 화분을 바라보던 순간을 기억해 보라. 이 사물들은 때로는 시선의 쾌적한 늘어짐 속에서 덧없는 소요(騷擾)의 일상에 대한 거리를 만끽하게 해주는 더할 바 없는 소품들로서 항상 거기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사물들에 대해 주목하지 않아도 그것들이 그 공간과 시간의 형태를 이루는, 따라서 이 적요(寂寥)의 허허로움과 충만함을 만들어내는 당사자들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장소의 기억이 이루어진다. 이 기억 속에서 오래된 중국 의자는 탁자와 교감하고, 탁자는 그것을 지탱하는 다리와 교감하며, 시선 너머의 화분에 심겨 있는 대나무들은 나의 시선을 통해 탁자와 교감한다. 사물들은 원래의 공간을 위배하거나 그것의 기풍을 변모시키지 않으면서 이 장소에 모여 있다. 장소로서의 조각이 그로부터 생겨난다. 사물들이 서로 더듬고 뿌리내리며 배어드는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의 특이성이다. 장소의 특이성 역시 바로 그러한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사물들의 공감과 그 관계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장소의 순간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간은 이미지들의 관계와도 또는 단어들의 관계와도 다르다. 그것은 오직 사물들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사물들은 ‘산보’에 의해, 다가섬에 의해, 그리고 시선의 몰입에 의해 ‘순간’의 진정한 국면을 드러낸다.

<The Presentation> 돌, 물, 대나무 205×195×205cm 2008

제시 혹은 현재화

심문섭의 연작은 조각가의 시선이 끊임없이 현재화하는 장소의 기억을 보여준다. 비스듬하게 들어 올린 수평의 나무는 흡사 어떤 목조 구조물의 일부를 이루던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어떤 것이었든 이 나무등걸은 마치 어떤 흐름을 만들기 위해, 뭔가를 흘려보내고 내려놓기 위해서인 것처럼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그 경사를 따라 난 매끈한 면 위에는 작은 대나무 줄기들이 뻗어나와 있다. 이 대나무의 그림자들은 이미 벽에 기대어져 있는 두 개의 캔버스 위에 마치 그림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것은 마치 미상의 목조건물과 바람결에 일렁이던 그 정원의 나무 그림자가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시선의 필연성에 의해 하나의 실체로 묶여버린 것처럼 보인다. ‘Presentation’은 ‘제시’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현재화’로 읽히기도 한다. 다가오는 것과 지나쳐 멀어져 가는 것 사이의 틈, 다시 말해 예감과 기억 사이의 짧고 덧없는 장면들을 현재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의 정확한 형태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Presentation’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재는 우리가 현실로서 확인하는 대상들의 상태와 달리 그 사물들의 동시성을 통해 매번 다르게 생산되는 관계의 특질로 인지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시는 특이성(Singularity)의 제시이자 동시에 그것을 현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심문섭의 조각이 다다르는 곳은 바로 이 특이성과 우리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흔히 심문섭의 조각과의 연관성이 거론되는 아르테포베라(Artepovera)나 미니멀(Minimal)의 어휘들로는 이 특이성을 수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심문섭의 조각에서 대상은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그것의 조건들을 나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소의 특질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으로 예술적 행위의 고유성을 확인시켜 주는 모노하(物派)의 그것과도 다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상황을 규정하는 관계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 대신 그것이 드러났던 순간의 경로를 가시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우환은 이것을 ‘일부러’라는 표현으로 요약하였다. 즉 상황이나 관계의 내재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의 내면적 운동에 물꼬를 트는 작위적 조건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위성(artificiality)은 사건이나 해석을 유도해 내기 위해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상 어떤 경험의 재현에 가깝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즉 대상과 조우한 조각가의 시선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재현인 것이다. 심문섭의 조각은 대상의 본래적 조건을 충족시키거나 그것에 의해서만 충족되는 관계를 벗어난다. 심지어 그의 작품은 언어적 개입의 흔적마저 보이는 경우가 있다. 2007년에 파리 팔레 루아얄 일대에서 열렸던 야외전시 <한 섬을 향해(Vers une 봪e ll)>은 도심의 인위적인 자연 즉 공원, 잔디, 분수, 가로수 등에 일시적인 작품들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로 이루어졌다. 이 예외적인 전시를 통해 그는 자연적 조건들 즉, 바람, 물의 흐름, 새들의 이동, 떨어진 낙엽들과 같은 비-내재적 요소들을 끌어들이면서 도심의 인공적 자연 안에 시적 관계들을 이끌어 내었다. 시적 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팔레 루아얄 광장 안에 무수히 설치된 수직의 비닐 튜브들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바닥으로 솟아오르는 대지의 기(氣)가 식물들을 일으켜 세우듯 이 인위적 공원의 바닥으로부터 자연적 흐름뿐 아니라 역사의 숱한 기억과 힘들이 솟아오르는 것을 가시화했다. 마찬가지로 팔레 루아얄 거리의 가로수마다 설치된 통발 모양의 형태들은 흡사 가로수들 사이로 불어가는 공기의 흐름을 가속하거나 흘려보내는 것처럼 보이는데, 거리를 가로질러 매어놓은 투명한 바람의 가교 위에는 몇 개의 낙엽들이 던져져 있었다. 분수 위에는 조각들이 부유하고 가도(街道)에는 수직의 나무들이 열을 지어 서 있다. 올리비에 캐플랭(Olivier Kaeppelin)의 표현을 빌면 순환과 흐름의 가장 간소한 표현을 통해 도심 안에 하나의 우주가 재현된 것이다. 여기서는 사물들의 존재론이 동사(動詞)들의 활용을 통해 일종의 실천론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물들의 무관심한 ‘있다’와는 다른, ‘하다’의 미학인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심문섭의 작업 속에서 미니멀한 접근 대신 적극적인 시선과 주체적 기억의 개입이 좀 더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그것은 나무에서 철로, 철에서 보다 다양한 재료로 확장되면서 시각의 자연적 요소들에 대한 해석 역시 확대되었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The Presentation-한 섬을 향해> 나무, 돌, 물 1200×81×820cm 2007 파리 팔레루아얄 전시 장면

환시를 기억해 내는 조각

심문섭의 재현에 대해 말할 때 아마도 가장 급진적인 비유는 보르헤스를 예로 드는 것과 같은 경우일 것이다. 전혀 맞지 않는 비유라 하더라도 여기서는 언급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환시(幻視)’에 대한 것이다. 보르헤스의 환시는 언어로부터 비롯된다. 즉 ‘형용할 수 없는’ 대상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예컨대, 《모래의 책》에 수록되어 있는 나 《알레프》에 등장하는 <죽지 않는 자들의 도시>는 비인간적 조건에 의해 성립된 도시나 가구들에 대한 기술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시선이 언어적 한계에 의해 기억을 제한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환시가 시작된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서 화자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심문섭의 조각들은 때때로 관객들로 하여금 일상의 사물들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기억은 어느 순간 정지하고 그 다음부터 대상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다. 이것을 환시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무엇이라고 부르건 간에 그것이 우리의 조건을 넘어서는 것임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대상의 기억이란 대상이 특정한 순간에 조각가의 정신 속에 새겨놓은 독자적이면서도 특이한 기억이다. 그것이 기억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재현’인 것이다. 그것은 불타버린 건물의 구조에서, 홀로 덩그러니 놓인 의자에서, 수많은 서랍들을 지닌 가구를 바라보던 일상적 시선으로부터 마치 대낮의 어둠처럼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것이다. 조각가는 그 사건에 이르는 가장 함축적인 경로를 따라간다. 언어적 기억의 제한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과 사물과의 관계를 수정하고 그것의 구조를 전위시키며 그것이 지니고 있는 언어에의 의존을 덜어낸다. 심문섭의 조각이 보르헤스의 환시와 다른 양상을 띠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접근이 대상의 주체화를 덜어내는 대신 시선과 그것 사이에 일종의 평형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환시를 통해 대상은 압도적인 주체가 된다. 반대로 심문섭의 재현 속에서 대상은 스스로 자의식을 드러내는 대신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 속에서 주체도 타자도 아닌 대상으로 머문다. 이것은 일종의 곡예라고도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심문섭에 대해 쓴 많은 비평들이 피해갈 수 없었던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주체와 타자의 중간 지점, 서구와 한국 나아가 동양과의 중간 지점, 시선의 주체화와 객체로서의 사물의 중간 지점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그의 작품들이 비평가들에게 분류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비춰졌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심문섭이 자신의 작품을 가리켜 ‘재현’이라고 일컫는 것은 대상의 완벽한 객체화, 사물에 대한 지배를 선언하는 ‘재현’도 아니고 반대로 사물이 스스로의 양태를, 마치 모든 주체가 그러하듯, 무관심하게 현전하고 있을 뿐이라는 의미의 ‘Re-present’도 아니다. 여기서 대상은 눈앞에 있는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은 가시화의 경로이며 눈앞의 사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어떤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눈앞의 단단하고 육중한 사물로부터 그것을 분리해 내기 위해 시선의 관계가 복원되고 기억이 다시 재생되며 어떤 것들은 덜어지고 어떤 것들은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이것을 재현이라고 한다면 심문섭의 조각들이 재현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사실상 이것은 현대미술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가 보려고 하는 것은 어디에나 놓여있는 돌덩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이 생산해 내려고 하는 것은 바로 경험이다. 그것도 아무런 경험이 아니라 우리가 회복시키기 어려운, 그것의 존재를 탐지하고 예감하고 있지만 아직 알려져 있지는 않은 어떤 것의 경험이다. 마치 양자역학의 검증불가능성처럼, 어떤 탐침이나 시약으로도 그것은 그 본래의 상태를 두 번 다시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만 드러낼 수는 없다. 예술가의 시선은 이 불가능한 경험을 복원하는 유일한 도구인 것이다. 심문섭의 조각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 시선의 놀라움이다. 오랜 시간 동안 사물들과의 대치와 조우를 통해 그것들의 진가를 발견하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힘을 평가하며 예외적 순간들을 포획해 내는 시선. 이것이 심문섭이 새롭게 확장시킨 조각의 영역인 것이다.

<The Presentation-한 섬을 향해> 폴리우레탄, 금속, 비닐, 전기 설치 2800×125×600cm 2006 파리 팔레루아얄 전시 장면

2008년 가을- 대구사진비엔날레 외

이장욱 <북한, 평양, 2008> 디지털 잉크젯프린트 67.7×101.6cm

컬러풀 대구, 미술에 빠지다

글|이선화 기자

지역 미술의 선두에 선 대구

대구는 일제강점기의 신미술 도입기부터 이인성을 위시한 걸출한 미술인들을 배출했으며, 서울 다음으로 활발한 미술 문화가 뿌리내렸던 미술의 거점도시다. 현재도 대구는 서울 못지않게 높은 수준의 화랑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구의 화랑 수준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작가와 작품이 많다는 뜻이고, 미술을 사랑하는 소비자인 컬렉터도 많다는 뜻일 수 있다. 작년에는 대구MBC와 K옥션이 손을 잡고 옥션M을 설립했고, 옥션M은 전반적인 경기침체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순조로운 진행을 보이고 있다. 대구 엑스코에서 열리는 대구아트페어(10. 29~11. 2)에는 국내외 50여개 화랑이 참여한다. 330여명 작가의 작품 전시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이벤트를 함께 열어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전시는 본전시와 특별전으로 나뉜다. 본전시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유명 작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지역 작가의 작품을 발굴, 전시토록 하여 ‘미술시장의 질적 향상’과 ‘지역 미술의 발전’이라는 취지를 이루고자 하였다. 특별전인 프랑스 미술그룹 사진전 〈그룹 노벰버(Groupe Novembre)〉와 국내외 회화작가의 사진전 〈카메라 캐주얼(Camera Casual)〉은 근래 조형 예술에서 하나의 표현매체로 사용되는 사진을 모아 또 다른 흥미를 유발한다. 이밖에 불우이웃돕기 애장품 자선경매행사, 미술 전문가와 함께하는 아트페어 관람, 세미나 등의 부대행사가 마련된다.

장연순 <늘어난 시간 152570> 아바카에 쪽 염색, 바느질 57×45×29cm 2007

아시아 현대 사진계를 조망하다

대구 아트페어 기간 중 엑스코 전시장에서는 대구사진비엔날레(10. 31~ 11. 16)가 동시에 개최된다. 주요 전시인 주제전은 ‘Then & Now-Memories of the Future(내일의 기억)’을 주제로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과거와 현재를 사진작품을 통하여 집중 조명한다. 40여명의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대만 작가들의 작품 300여점이 나라별로 각각 전시된다. 주제전과 함께 엑스코에서 열릴 역사 사진전 〈동북아시아 100년전〉은 동북아시아의 세 나라 한국 중국 일본의 100년전의 과거를 조망하는 사진전이다. 사진이 도입된 시기의 우리나라의 모습과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시대상, 서양인이 보고자 했던 동북아시아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별전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외국 사진작가들에게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지리적 장소인 ‘북한’을 담은 〈변해가는 북한 풍경: 1950~ 2008〉은 미국 라이프지의 전속 사진가인 마가렛 버그 화이트, 프랑스의 저명한 영상 감독이자 사진가인 크리스 마커,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김희중 등을 비롯한 8개국 12명의 사진가들이 참여한다. 그들은 해방 이후부터 2008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북한을 보여준다. 이 전시를 기획한 임영균 큐레이터(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는 “12명의 사진가들이 10년의 간격을 두고 북한의 사회 모습과 서민들의 모습을 기록에 남겼다. 북한 사회는 조금씩 변화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 변하지 않은 듯 보인다. 이들 사진을 통해 사진가들은 우리에게 의문을 제시한다.”며 기획의 취지를 밝혔다.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진가들이 그들 각자의 특수성과 상대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기록한 사진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이곳에서 우리와 그들은 어떤 의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을까. 이들 사진가들이 제시하는 의문을 곰곰이 되새기며 전시를 감상하는 것도 좋을 법하다. 신세대 작가들이 디지털 마인드에 기초하여 만들어 내는 기발하고 강렬한 작품들을 통해 오늘날의 한국사진을 조망하는 〈공간유영〉과 동북아시아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원로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로 중국의 쟝주벤, 대만의 장죠당, 한국의 한영수, 2000년에 작고한 일본 사진작가 쇼지 우에다의 특별전인 〈숨겨진 4인전〉도 개최된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계 큐레이터와 사진 출판 담당자들이 참석하는 〈포트폴리오 리뷰〉 행사가 마련된다. 한국의 유망한 사진가들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야니스 콘토스 <북한, 평양, 2006> 디지털잉크젯프린트 98.2×147.3cm

섬유예술의 중심, 대구

대구텍스타일아트도큐멘타(11. 18~23)가 대구사진비엔날레의 뒤를 이어 열린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본전시에 섬유예술가 구방희 김경아 김영은, 특별코너 김민정 이성순, 현대미술·패션·공예가 강형구 구본창 민정아, 특별전에 권혁 권순미 김지은 등 총 57명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제목은 〈삼각주_합류된 서로 다른 시선들〉이다. ‘삼각주’를 주제로 잡아 기획된 이번 행사는 기존의 기획방식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다. 첫째로, 모든 예술 작품들이 주변의 공간적 상황과 늘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에 착안했다. 회화작품도 벽지나 벽면의 색채, 액자의 프레임, 조명 등에 의해 직간접적 영향을 받게 되고, 조각도 좌대나 그 옆에 놓이는 가구와 뒷배경에 의한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한 충돌 혹은 대립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항상 꿈꾸는 예술적 입장은 바로 ‘조화’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섬유예술을 중심에 두되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비디오 금속공예 유리공예 목공예 등을 망라하여 종합적 예술 공간을 만든다. 둘째는 예술과 생활이 상호교차적인 지평에서 확장되는 문제를 조명해 본다. 회화가 패션과 만나고, 조각이 가구가 되고, 기성품이 예술품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예술적 정황들을 전시로 구성한다. 이 전시의 주제인 ‘삼각주’는 예술 창작자의 개별성 혹은 특별성이 작품에 담겨 대중을 향해 흘러가는 중에 생기는 비옥한 문화의 토양을, 하류에 생기는 퇴적층과 같은 지형에 비유한 것이다. 서로 다른 시선들이 합류된 지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예술적 상황들은 상호적임에 분명하다. 이 전시를 기획한 장동광 큐레이터(독립큐레이터, 서울대 강사)는 “섬유예술, 텍스타일디자인도 다른 예술장르와의 상호연관성, 교섭 관계 속에서 우리의 삶의 공간을 더욱 심미적으로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유가 이번 〈삼각주〉전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기획적 지표이다”라고 밝혔다. 대구광역시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 주최, 후원하는 이 세 개의 행사는 모두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큐레이터들이 기획한 행사들이다. 대부분의 체계적인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지역미술의 발전에 앞장서며 다양한 미술 행사들을 꾸준히 이끌어가는 대구의 가을로 발길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2008 November Special - art기자 5색5감 비엔날레 리포트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17개에서 하나 부족한> 17개의 유리 액자 2008

시간의 심연,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다

제3회 요코하마트리엔날레가 2달여 간의 항해에 들어섰다. 한꺼번에 쏟아진 비엔날레 트리엔 날레 열기 속에서 요코하마트리엔 날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특히 주목된다. 제1회 메가 웨이브(Mega-Wave), 제2회 ‘아트서커스:일상으로부터의 도약’에 이어 이번 트리엔 날레는 시간에 기반을 둔 다양한 퍼포먼스와 영상작품 등을 앞세운 ‘시간의 틈새(Time Crevasse)’를 전시 타이틀로 삼았다. 일본 특유의 신체와 감각을 토대로 한 미술사적 맥락을 끌어들여 국제적인 최신 트렌드와 일본다운 것을 전략적으로 조화시킨, 2008요코하마트리엔날레의 그 특별했던 현장 을 기록한다.

글|이선화 기자

미즈사와 츠토무(Mizusawa Tsu tomu) 총감독과 다니엘 번바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미야케 아키코(Miyake Akiko), 후 황(Hu Fang), 그리고 베아트릭스 루프(Beatrix Ruf) 5인의 큐레이터들. 스타 큐레이터 라인업과 더불어 창설 초기부터 플러스 요인으로 회자된 요코하마라는 지형학적 특수성까지, 3년 만에 돌아온 요코하마트리엔날레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도쿄 시내에서 메트로를 타고 요코하마의 사쿠라기초 역에 내려 메인 베뉴인 신코피어관으로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해외에서는 물론 자국 내 취재진들이 행사장에 속속 도착하는, 프레스 프리뷰의 시작을 알리는 9월 12일 오전 10시였다.

쉴파 굽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가 전시된 신코피어관 전시 광경

시간에 기반을 둔 퍼포먼스의 향연

신코피어관에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허리 높이의 나무 단상이 눈에 띄었다. 조나단 메세의 작품이라는 라벨링을 확인하고 스케줄 리스트를 살펴보니 메세의 퍼포먼스는 다음 날로 명시되어 있었다. 텅 빈 공간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지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요코하마트리엔날레에 대한 첫 인상에는 결코 득이 되지 못한 전시 디스플레이였다고 기억한다. 확 트인 공간 여기저기에 설치된 작품들과 더불어 전체적 분위기가 미완결성이란 인상을 강하게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쪽에 설치된 아라카와 에이(Arakawa Ei)의 작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높은 기대치에 대한 반작용인 걸까. 약간의 아쉬움이 밀려온 게 사실이다. 그리곤 대략 4구획으로 나누어진 신코 피어관의 첫 번째 방을 지나 이동을 지속했다. 피터 피슬리와 데이빗 웨이스(Peter Fischli & David Weiss)의 영상물 <쥐와 곰>, 쉴파 굽타(Shilpa Gupta)의 대형사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 런던의 공공 조각물을 스틸 컷으로 연속 상영한 마크 렉케이(Mark Lechey)의 <빅 화이트 바바리안의 행진>, 그리고 관람객의 발길을 유독 오래 붙잡아 둔 페드로 레이예스(Pedro Reyes)의 <베이비 마르크스> 등의 눈에 띄는 작품들을 체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좌우로 펼쳐진 다소 복잡한 전시 동선을 차근차근 따라가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시관의 중심부를 향해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횟수는 생각보다 적었다. 산케이엔 가든과 붉은벽돌창고관(Red Brick Warehouse No.1) 등을 포함해 6곳의 또 다른 베뉴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첫 발길을 옮긴 곳에 대한 생각은 이러했다. 그러던 차 신코피어관의 마지막 방을 앞에 두고 귀를 찌르는 굉음을 들었다. 아르테 포베라의 대표 작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방. 전시 공간의 삼면을 둘러싼 대형 거울 작업과 그 속으로 바쁘게 셔터를 움직이는 프레스의 모습이 온전히 비춰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퍼포머는 작가와 오랜 친분 관계에 있는 컨티뉴어갤러리의 디렉터 로렌조 피아쉬(Lorenzo Fiaschi). 그는 해머를 들고 거울을 향해 여러 액션을 취하며 현장 특유의 긴장감을 이끌어 갔다. 그러자 거울 각각 위로 이에 상응하는 다양한 표정의 잔재, 유리 파편들이 섬세하고도 추상적인 터치들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작품 제목은 <17개에서 하나 부족한(Seventeen less one)>. 16개의 유리를 연이어 깨뜨린 로렌조 피아쉬는 마지막으로 남은 중앙의 거울 앞에 서서 깰 듯 말 듯한 포즈를 여러 번 취하더니 결국은 해머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으로 퍼포먼스를 마무리 지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것은 2008요코하마트리엔날레에 대한 전반적 인상이 반전되는 신호였다고 말할 수 있다. 기실 이번 요코하마에서 가장 주목을 끌었던 시각 이미지는 이처럼 여러 베뉴에서 벌인 퍼포먼스에 있었다. 오프닝 당일 붉은벽돌창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총감독은 테렌스 고의 <화이트 사일런트 퍼레이드>에 참여해 보라는 권고와 함께 여러 퍼포먼스와 이번 전시 주제와의 연관성을 강조한 바 있다. “퍼포먼스란 시간의 개념을 인지할 수 있는 훌륭한 감각기관인 신체를 통해서 ‘시간의 틈새’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중요성이 주워진 것”이라고 설명했듯 말이다. 실제로 요안 요나스의 <단테 읽기>, 테시가와라 사부로(Teshigawara Saburo)의 <시간의 파편>, 티노 세갈(Tino Sehgal)의 <키스> 등의 퍼포먼스는 올해 트리엔날레가 던지는 다소 난해한 주제를 표현하는 데 있어 효율적이라 할 소통 체계였다.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교묘하게 얽히며 상호간의 긴밀한 감정 교류가 우선시되는 그것은 시공간의 ‘찰나적 현재성’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일 터다. 프레스 오픈 첫 날은 중국계 캐나다 작가 테렌스 고의 퍼포먼스로 마무리되었다. 늦은 저녁 캐널 공원에서 열린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많은 취재진과 관람객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일정보다 40분이나 지연된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는 인내심까지 보여주었다. 하얀 토끼 마스크를 착용한 여성과 붉은 벽돌창고관에 전시되었던 화이트 조각상과 함께 상반신을 노출한 젊은 남성들이 테렌스 고의 출현에 앞서 등장했다. 퍼포먼스 제목을 다시 상기시켜 보자니 <화이트 사일런트 퍼레이드>. 드디어 얼굴은 물론 온몸을 하얗게 칠한 테렌스 고가 조각상 앞으로 걸어오더니 취재진 사이를 가로질러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그의 선동에 뒤이어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외 큐레이터들, 어디선가 하얀 옷을 입고 모여든 관객들, 그리고 앞서 퍼포먼스의 서두를 연 이들이 자연스레 퍼레이드 행렬에 동참하며 퍼포먼스를 완성지었다. 요즈음 스타 작가로 주목받는 테렌스 고가 이처럼 인상적인 무성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면 일본의 타나카 민도 소리 없는 무대를 또 다른 베뉴인 NYK 워터프론트 창고에서 선보였다. 무용평론가인 노리코시 타카오는 타나카를 일컬어 “부토의 기본 구조에 의존하지 않고 인체 내부의 신비스러움에 천착한 최초의 일본인 댄서”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전시관 외부의 구석진 공간에서 그는 온몸을 비틀며 그 특유의 정적인 퍼포밍을 지속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아쉽게도 같은 시간대, 같은 베뉴에서는 테시가와라 사부로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서 나의 발길은 곧 사부로에게로 향했다. 테시가와라 사부로는 《아트잇(ART iT)》의 여름 가을호 커버 모델로 등장해 트리엔날레 시작 전부터 주목을 끌었던 무용가다. 그의 무대에는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무용이라는 장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리 조각이 가득 쌓여 있었다. 사부로와 파트너 사토 리호코는 수없이 깨진 유리 위를 걷거나 누우며 ‘신체와 유리라는 생경한 조우’를 보여주었는데, 작품의 컨셉트는 사부로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빛이 거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지면, 관람자의 눈은 어느덧 이에 적응한다. 그리고 다시 조명이 밝아지면 그들은 이러한 변화를 줄곧 좇아가며 다소 복잡한 측면에서 빛과 어두움의 사이클을 줄이거나 좁히며 그들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어두워졌다가 환해지는 조명에 따라 바닥에 뿌려진 3톤 이상의 유리 조각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은 이에 어울리는 음악과 퍼포밍 속에서 장관을 연출했다. 그렇다면, 기억을 거슬러 보니 사부로의 공연을 본 직후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의 직접적인 표현법에서가 아닌, 시간이라는 현전성을 인식하려는 태도의 변화에 의해 전시 주제가 점차 명징하게 다가왔다는 것을 말이다. 더불어 총감독이 개입시킨 전략이 점차 두각을 드러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3회째를 맞는 일본의 국제미술제로서의 위상뿐만 아니라 일본의 문화예술을 알리기 위한 장치들은 생각보다 이곳 요코하마에 가득했다.

요코하마 국제여객터미널에 설치된 오마키 신지 <기념의 갱생>

일본을 동시에 보여주다

이번 트리엔날레에 초대된 작가는 대략 70여명에 이른다. 큐레이터 성명서에 따르면, 참여 작가의 경향은 “퍼포먼스적이거나 시간에 기반을 둔 작업뿐만 아니라 흔적을 남기는 작업을 포함하며, 그것은 단순히 신체라는 존재에 특권을 주는 전형적인 의미의 퍼포먼스와는 다르다”라고 공언되었다. 이번 주제는 총감독의 제안으로부터 실체화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알려진 바대로 이 테마는 2006테이트트리엔날레(큐레이터 베아트릭스 루프)와 2007맨체스터국제페스티벌에 선보인 그룹전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같은 맥락 하에 놓인다. 매튜 바니, 티노 세갈, 더글러스 고든, 트리샤 도넬리, 필립 파레노, 마크 렉케이, 세리스 윈 에반스, 올리버 페인& 닉 렐프와 같은 작가들이 요코하마트리엔날레에 모습을 드러낸 점 역시 앞선 행사를 총괄한 큐레이터들이 이곳에 다시 모인 까닭과 흡사할 것이다. 올해 넘쳐나는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열풍으로 많은 작가들의 겹치기 출현이나 유사한 컨셉트의 순환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비단 요코하마에서 적잖은 관심을 주목시킨 것은 국제적인 높은 인지도의 작가들만큼이나 퍼포먼스라는 장르에 오랜 전통을 가진 일본의 역사나 그와 연관된 문화예술이었기 때문일 터다. 또한 이와 연관지어 빼놓을 수 없었던 볼거리로 붉은벽돌창고관의 필름 아카이브 상영관(Film Archive Screening)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유행했던 해프닝이나 퍼포먼스처럼 신체에 기반을 둔 행위를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상영한다. 물론 여기에는 구타이 그룹의 작업도 포함된다. 트리엔날레 측은 전후 일본미술에 등장한 신체적 표현의 기원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를 노출시키기 위해 여타 작업들보다 용이한 전시 관람 동선 위에 상영관을 위치시켰고, 이것은 앞서 언급한 일종의 장치적 기능과 같다. 그리고 전시 장소 중 가장 인상적이라고 평가받는 산케이엔 가든의 자연 풍경과 작품과의 연결 구조 역시 이번 트리엔날레의 정수이자 ‘일본다운 것’의 방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코피어관, NYK워터프론트창고관, 붉은벽돌창고관의 전시가 각각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산케이엔 가든은 버스로 약 30분이 소요되는 외곽에 위치한다. 항구도시에서 응당 풍기는 분주한 역동성과는 달리 한적한 분위기의 요코하마에서 일본다운 분위기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산케이엔 가든이다. 1906년에 지어진 이 일본식 전통 정원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건축물과 연못, 그리고 푸르른 수목으로 둘러싸여 관람자에게 색다른 공간과 시간을 체험 가능하게 했다. 특히 새로운 전시 장소를 완공하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건축물과 환경 안에 작가들의 작품을 접목시키는 친화력이 인상적이었다. 6점의 작품을 찾아 관람객은 이 오래된 정원 곳곳을 살피게 되는데, 그만큼 발품을 파는 시간과 노력이 수반된다. 어느덧 기자에게도 지친 체력과 허기가 밀려 왔지만, 이것을 한번에 가시게 해 줄 작품을 만나게 되었으니 나카야 후지코의 <안개폭포(Fogfalls#47670)-우게쯔 이야기> 때문이었다. <안개폭포>는 낙수에서 이뤄지는 인공 안개 작업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주위가 순식간에 안개로 휩싸였다가 이내 스르르 사라지도록 연출한 <안개폭포>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이번 트리엔날레에서 가장 주목을 끈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더불어 산케이엔 가든에서는 티노 세갈과 요르즈 마치&에드가르도 루드니츠키의 퍼포먼스가 열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요코하마에 대한 단상

출장에 앞서 요코하마에 대한 인상을 주변 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다수가 야경의 아름다움을 꼽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하루하루 퍼포먼스 시간을 체크하고 여러 전시 장소를 찾는 일정은 생각보다 체력 소비가 크다. 그러나 그 유명하다고 소문난 요코하마 야경은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히 메인 베뉴가 밀집해 있는 미나토미라이21지역과 요코하마국제여객터미널(특별 전시 가 열렸다)에서 그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요코하마의 랜드마크로 손꼽히는 대관람차의 불빛이 인터내셔널그랜드요코하마 호텔, 미나토미라이홀, 랜드마크 타워의 스카이라인과 어우러져 요코하마 특유의 서정적인 야경을 자아냈는데, 이것은 모리타워에서 바라본 도쿄 시내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여기에 한국 건축가 조민석이 미국의 조셉 그리마, 스토러프론트팀과 협력해 제작한 <링 돔>을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았다. 직경 10미터 높이의 임시 파빌리온인 <링 돔>은 밤에는 튜브링에서 자체 조명이 발광해 관광 명소로서도 사랑을 받았다. 이밖에 헨리 무어, 에토레 소사스, 나라 요시모토, 그리고 지난 1회 요코하마트리엔날레에서 선보인 최정화의 <과일나무> 등 요코하마 곳곳에 세워진 야외 조형물과 트리엔날레 기간과 맞물려 자임(ZAIM)에서 열리고 있는 오픈 스튜디오와 전시도 눈에 띄는 ‘발견’이었다. 특히 젊은 일본 작가들의 열정은 물론 문화 공간 지원을 향한 요코하마 시의 예술 정책에 대한 관심을 느낄 수 있었던 측면이 흥미로웠다. 올해 광주비엔날레를 ‘잘 차려진 밥상’이라 표현한다면 2008요코하마트리엔날레는 ‘신선한 재료가 가득한 곳간(庫間)’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서 완료와 진행형의 차이는 관객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의 범주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 트리엔날레의 성과에 비해 올해 요코하마트리에날레의 출발은 여러 측면에서 경쾌했고 시간의 틈새라는 주제 역시 다양한 의미층으로 주목을 끌었다. 정지된 시간의 단편을 읽어 본다는 일종의 과거 지향적 해석이 아닌, 순간순간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다는 취지의 현재진행형 개념을 읽어 본다. 2008요코하마트리엔날레는 남을 위해 한껏 멋을 낸 잔칫상이 아닌, 자국의 예술적 토양을 충분히 드러낸 노련한 전략이 무엇보다 의미 있게 다가왔다.

조나단 메세의 퍼포먼스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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