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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8.10

Abstract

특집 비엔날레, 크로스 체크=광주+부산+서울 한국을 대표하는 세 개의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그 밖에 다른 아시아 국가의 주요 비엔날레도 비슷한 시기에 개막하면서, 지난 9월은 그야말로 아시아 현대미술 역사상 가장 뜨겁고 분주했던 시기로 기록됐다. 자, 그렇다면 한국의 비엔날레는 어떤 '카드'로 세계 미술인과 지역 관람객을 맞이했을까? 제7회 광주비엔날레(9. 5~11. 9)는 '연례보고'라는 제목으로 특별한 주제 없이 진행됐다. 첫 외국인 총감독으로 영입된 오쿠이 엔위저를 포함한 큐레이터단은 지난 18개월 동안 전 세계에서 열린 전시를 선택해, 다시 전시했다. 전시 컨셉트 때문에, 그 동안 시행해 왔던 시상제도는 일시적으로 없어졌다. 제5회 부산비엔날레(9. 6~11. 15)는 '낭비'라는 공통 주제 아래 현대미술전, 바다미술제, 조각프로젝트로 열리는 종전의 구성 말고도 『미술은 살아 있다』 등의 다채로운 특별전시가 더해졌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개막한 KIAF와 공동 프로모션을 해서 관객몰이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미디어시티_서울(9. 12~11. 12)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겠다는 각오로 '전환과 확장'이라는 주제를 내세웠다. 30개국 70여명의 미디어 아티스트들은 '빛' '소통' '시간'이라는 소주제로 나뉘어 최첨단 작품을 선보였다. art는 세 개의 비엔날레를 '크로스 체크'해봄으로써 수많은 국제 비엔날레 중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위치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진단했다.

Contents

표지 마유카 야마모토 <두 마리의 반달곰> 2008KIAF 츠바키갤러리에 출품
 

에디토리얼 아시아 미술잡지, 머리를 맞대다_김복기
 
핫피플 
    이영철, 토비아스 버거, 클라우디아 페스타냐_이성희
 
프리즘 
    옛 서울시청사, ‘철거’보다 ‘공존’이 해법_윤우학
    왜 미술에서 서예 교육이 중요한가_김성희
 
포커스 
    김호득|이배_김복영
    임민욱|다츠오 미야지마_정용도
    정소영|디오니시오 곤잘레스_이선영
    김형관|안성규_김형숙
 
특집 
    비엔날레, 크로스 체크=광주+부산+서울
    (1) 비엔날레에서 당대 미술의 문제적 지점을 발견하다_임근준
    (2) 동양은 서양을 필요로 한다_하인츠 페터 슈베르펠
    (3) 제트플라잉 큐레이터가 꿈꾼 '전시의 반역'_심상용

특별 기획 
    정부수립 60년, 한국미술 60장면
    60년의 파노라마 1987~1968_김미경
 
작가 인터뷰 
    공성훈, '불편한' 풍경화의 진실_장승연
 
    리포트 KIAF2008 리뷰
    악재 딛고 일어선 국제아트페어의 저력_이성희
 
아웃 오브 코리아 
    전광영_조나단 굿맨
 
크리티컬 포인트 
    한국 추상회화 50년의 단층들_서성록
 
전시리뷰 
    상상공작소Ⅱ-우리집 이야기|고우영 만화|더 브릿지|임상빈
    크리스티안 스타닉키|이세현|자기만의 방|일상의 수묵
    조씨 연대기|죠르쥬 루쓰|김기라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정희승|이해민선|백기은|박종빈
 
플랫폼 
    사운드 아트, 당신을 둘러싼 소리를 느껴보라!_양지윤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2008 October Special - 비엔날레 크로스체크=광주+부산+서울

요하임 숀펠트 <네 명의 음악가> 혼합재료 및 퍼포먼스 가변크기 2008 *광주비엔날레

비엔날레에서 당대 미술의 문제적 지점을 발견하다

글|임근준·미술, 디자인 평론가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그리고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가 개막했다. 이제 비엔날레를 놓고 열변을 토하는 일은 촌스러운 일이 된 것일까? 다수의 미술 관계자들은 조용히 전시를 관람하고 제각각의 비즈니스를 마친 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차피 세 비엔날레에 초대된 전시 기획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과감히 의제를 던질 생각은 없어 보였고, 미술계도 그에 무반응으로 일관했으니, 피장파장이라고? 다들 젠체하며 전시가 시시하다고들 말했지만, 사실 더 시시한 쪽은 미술계의 무반응이 연출하는 맥없는 풍경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지부진한 상황을 놓고 당대 미술의 문제적 지점들을 함께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그것도 시시한가?

2008 광주비엔날레, 그리고 정치적 미술

2008 광주비엔날레에서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은 ‘주제 없는 전시’를 표방하며 특정 키워드 대신 ‘연례보고’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가 “지난 18개월 동안 열린 전시 가운데 유의미한 문화적 실천의 결과를 다시 모아 본다”는 대안적 형식을 내세운 것은 일견 영리해 보였다. 하지만, 그가 소환한 전시들의 군집이 연출하는 미적 공간은 다소 무기력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큐레이터 김성원은 “각 전시의 특성은 사라지고 작품 몇 점과 도록에 실린 보도 자료만이 전시들을 대변할 때, ‘전시 속의 전시’라는 독특한 개념은 작년 이맘때 어디서 열린 누구의 전시라는 정보의 세련된 진열을 위한 것이 되고 만다”고 기술적 진단을 내렸다. 선택된 전시들을 보다 섬세하게 재전시했더라면, 그의 ‘연례보고’에 활력이 돌았을까? 그랬을지도. 허나, 문제는 역시 ‘정치’다. 엔위저 감독은 자신의 ‘정치색’에 맞춰 작가와 작품들을 섭외했는데, 그 결과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제3세계의 정치학을 내세운 최근 전시들의 집합소’가 됐다. 주제가 없다고 했지만, 실제론 ‘탈식민주의’란 명확한 주제가 작동했다. 정치적 미술을 총점검하는 전시도 주요 작가들을 잘 갈무리했다면 흥미로웠을지 모른다. 허나, ‘연례보고’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떤 이름들의 부재를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에서 정치적 미술의 주요 계보를 형성하고 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과 그의 동료들은 전시에서 찾아볼 수 없다. 노골적으로 말해, 유럽의 정치적 미술을 미국에 유통시키는 거점 노릇을 하는 뉴욕 뉴뮤지엄의 최근 전시를 보면, 정치적 미술의 세계에도 ‘계급’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요 작가들의 리그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메이저 리그’의 목록은 엔위저가 광주를 위해 마련한 목록과 거의 겹치지 않는다. 유감스럽지만, 현재 이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큐레이터의 정치력은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 결과, 지금 광주에서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거물급 작가들은 전시에서 겉도는 모습이다. 한스 하케는 왕년의 작가고, 고든 마타 클락은 요절 작가며, 토마스 데만트는 탈식민주의와 거리가 멀다. 아무리 좋게 해석하고자 노력해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벗어난 선택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전시의 참된 주인공은 누굴까? 거물급은 아니지만 이름 있는 작가인 아이작 줄리앙, 글렌 라이곤, 스티브 맥퀸, 케리 제임스 마샬, 사디 베닝 등은 (엔위저 감독처럼) 아프리카계다. 그들은 전시장에서 비교적 좋은 자리들을 선점했다. 2002년 엔위저가 카셀도큐멘타의 총감독을 맡았을 때, 보통 때 같았으면 백인 작가들이 차지했을 자리를 흑인 작가들에게 제공한 일은 ‘전치된 풍경’으로서 비평적 효과를 발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전라남도의 광주는 독일 헤센의 카셀이 아니다. 자, 우리는 원칙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인종을 둘러싼 정치적 배려는 미적 우수성을 대치할 만한 가치인가? 미술계에서도 소수집단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유효한가? 유효하다면, 누가 더 소수집단인가? 탈식민주의로 전시를 할 때, 다시 인종적 인구비례를 맞출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 왜 2002년의 카셀도큐멘타엔 한국인 작가가 단 한 명도 초대되지 못했을까? (그러고 보니, 역대 카셀도큐멘타에 초대된 한국인[계] 작가는 아직도 백남준, 이우환, 육근병 이렇게 세 명뿐이던가?) 과연 탈식민주의는 여전히 유효한가? 1990년대 초반 미술계의 주요 담론으로 대두된 탈식민주의는 1993년 휘트니비엔날레에서 위세를 떨치기 시작, 1997년 카셀도큐멘타에서 괴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2002년 엔위저가 카셀도큐멘타의 총감독이 됐을 때, 이미 탈식민주의의 비평 방법은 제도화돼 힘을 잃은 상태였다. 엔위저에게 ‘정치적 토큰’으로서의 탈식민주의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어떤 새로운 정치적 도전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흥미롭게도, 지난 11일 개막한 광저우트리엔날레의 주제는 ‘탈식민주의에 작별 인사를(Farewell to Post-Colonialism)’이다. 광주와 광저우가 코믹한 대조를 이뤘다. (비고: 광저우트리엔날레를 이끈 세 명의 기획자 가운데 하나인 사랏 마하라이[Sarat Maharaj]는 2002년의 카셀도큐멘타에서 엔위저가 초빙한 6인의 공동큐레이터 가운데 한 명이다.) “하위 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라는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의 질문으로 대표되는 탈식민주의의 전략은 이미 효력을 잃었다. 그 이후 아직 예술가들은 이렇다 할 대안을 찾아내지 못했는데, 껄끄러운 질문은 하나 남았다. “하위 주체들은 서로 대화할 수 있는가?” ([‘주류 백인’을 통하지 않고도] 서로 대화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광주비엔날레에 초대된 작가들의 얼굴에선 대화의 의지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정치적 미술의 선두에 선 작가들과 큐레이터들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앞서 잠깐 언급했듯, 지난 9월 21일 뉴뮤지엄에서 폐막한 <자연에 따라(After Nature)>는 유럽식 정치적 아방가르드를 망라한 야심작이었다. 롱갤러리(The Wrong Gallery)의 멤버로서 카텔란의 오른팔 역할을 해온 마시밀라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가 기획한 이 전시는 그 미적 성패를 떠나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모두 드러낸 기획이라는 면에서 흥미롭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전시가, 구겐하임에서 낸시 스펙터(Nancy Spector)의 기획으로 10월 23일 개막할 <디애니스페이스왓에버(theanyspacewhatever)>와 사실상 형제 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뉴뮤지엄의 전시와 구겐하임의 전시는 거의 동일한 인맥의 각기 다른 면모를 드러내는 듯하다. (‘한 커넥션의 두 얼굴’이랄까.) 뉴뮤지엄 쪽이 롱갤러리 일당의 갱신된 정치적 비전을 보여줬다면, 구겐하임 쪽은 롱갤러리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 등이 공유하는 미적 비전을 보여줄 예정이다. (토마스 크렌스 관장의 임기 말 권력 누수를 틈타 스펙터가 이런 비미국적 전시를 기획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구겐하임에서 리엄 길릭(Liam Gillick), 도미니크 곤잘레즈-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ester), 더글라스 고든(Douglas Gordon), 카르스텐 횔러(Carsten Holler),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그리고 리르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등이 “1990년대에 전시를 미디엄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작가들의 핵심”으로 선발돼 “장소 특정적 미술의 자기 성찰적 특성”을 보여줄 준비를 하는 동안, 뉴뮤지엄에선 독일의 문인 W. G. 제발트(W. G. Sebald, 1944~2001)의 우울한 작품 <자연에 따라(After Nature)>-18세기의 불운한 북극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를 지지대 삼아 “유럽식의 명상적인 비관론”이 동어반복적으로 이어졌다. <자연에 따라>는 작가 26명의 작품 90점을 전시한 대형전시지만, 어쨌든 비평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조 레오나르드(Zoe Leonard), 로저 볼렌(Roger Ballen), 그리고 카텔란의 작품이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을 위한 무대처럼” 들어선 4층이었고, 티노 세갈(Tino Sehgal)의 퍼포먼스 작업은 “구겐하임 쪽의 전시에 속해야 할 작품이 잘못 전시된 느낌”이라는 평을 받았다. 어쩌면 이 전시는 일군의 정치적 아방가르드가 지닌 한계를 총정리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에 앞서 뉴뮤지엄이 선보였던 기획전 <비기념비적인: 21세기의 오브제(Unmonumental: The Object in the 21st Century)>가, 기념비성을 터부시하는 정치적 미술의 기념비들-“잘난척하느라고 못생겨져버린(pretentiously ugly)”-이 미적 문법의 기술적 한계에 봉착했음을 입증하고 말았듯 말이다. (어쩌면, 유럽의 정치적 아방가르드의 예술가들에겐 지금이 최전성기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현대미술계는 앞으로도 계속 부진할까? 뉴뮤지엄은 당분간 유럽식 정치적 미술의 수입 창구 노릇을 하겠지만, 다른 미술관들도 그에 동조할까? 미국의 현대미술은 당분간 계속 약세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미국인들이 유럽의 정치적 미술에 문호를 활짝 개방할 것 같지는 않다. 미술시장의 거품이 주저앉는 흥미로운 시점인 오늘, 미국 미술계엔 학예 인력의 재배치 바람이 불었다. 관료적 인물들보다는 학예 연구 능력을 갖춘 인물들이 약진했다. 필경 그 효과는 1년쯤 뒤면 가시화되기 시작할 테다.) 자, 그렇다면, 광주비엔날레는 뭘 어떻게 했으면/하면 좋(았)을까? ‘운동권의 정세분석 문건’(‘사상 통일’을 위해 조직원들에게 돌리는 내부 자료. 혁명, 주식, 서민, 정부, 대학가 이야기 따위가 열띤 목소리에 실려 두서없이 쏟아지는 것이 보통이다)처럼 용도가 불분명한 도록 원고인 “스펙터클의 정치학”에서 엔위저는 뉴뮤지엄의 전시 <비기념비적인: 21세기의 오브제>를 언급하며 어설프게 ‘형의 정치학’을 피력했다. 어쩌면 ‘형의 정치학’에 대한 그의 생각이 미처 정리되지 못한 탓에, 이번 비엔날레가 어정쩡한 제3세계 정치학의 되풀이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엔위저가 자신의 글에서 밝혔듯, 탈식민주의를 비롯한 정치적 미술의 세계에선 미적 방법론의 문제를 되돌아보는 일이 화두다. 그러므로, 이번 비엔날레에 “정치적 예술의 미적 방법”쯤 되는 부제를 단 소규모 토론회나 심포지엄, 혹은 개론적인 특별전이 있었다면 좋았을 테다. 엔위저는 광주비엔날레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1995년 이래 출품한 작가들 중 대다수가 남반구 출신으로, 이는 탈식민의 국가이자 동시에 개발된 국가이기도 한 남한의 이중적 정체성을 반영한 것”을 꼽았다. 그렇다면, 그 특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해보면 어떨까? 지역별로 전시 섹션이 구별됐던 적도 있으니, 한번쯤 인종별로 전시 섹션을 나눠 봐도 좋겠다. 안내원이 관람객을 인도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자, 여기는 흑인관입니다, 2층은 황인관이고, 3층은 백인관입니다. 혼성인의 작품은 시립미술관에 전시됐습니다.” ※ 추신 : 사실, 광주비엔날레가 전시의 커미셔너로 세계의 주요 미술관을 지정하면 정말 재밌을 것이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의 위상으론 실현하기 어려운 실험이 되겠다. 베니스비엔날레가 국가관을 임시 폐지하고, 각 건물을 유수의 미술관들에 분양하면, 미술의 역사를 놓고 경쟁하는 모습이 치열하지 않겠는가. “자 여기는 모마관입니다. 다음은 구겐하임관, 뉴뮤지엄관이고… 삼성미술관 리움은 저 너머입니다.”

한스 하케 <넓은 하얀 흐름> 선풍기, 실크 976×1275cm 1967-2006 ⓒHans Haacke Courtesy the artist and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그리고 더 할 말 없음

광주비엔날레가 주제어 없이 주제를 관철시키는 동안, 부산비엔날레는 ‘낭비’라는 헛주제로 자신을 포장한 채, 자기 풍자적인 장면을 연출해냈다. 전시에 출품한 190여명의 다국적 작가들을 소개하는 도록들의 무게는 5kg에 육박했고, ‘현대미술전’과 ‘바다미술제’, 그리고 ‘부산조각프로젝트’는 예전처럼 제각각 따로 놀았다. 어찌 보면, 부산비엔날레의 체제는 일종의 ‘삼권분립’를 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현대미술전’은 국제적 수준을 갖춘 작품을 보여주려 애쓰고, ‘바다미술제’는 대중 여론을 무마하며, ‘부산조각프로젝트’는 소위 ‘이권사업’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현대미술제는 이렇게 중구남방이어도 되나 싶은 정도로 심각한 기획력 부재를 드러냈다. 김원방 감독은 현대미술제의 주요 작가 가운데 누가 내한하는지 파악도 못하고 있었을 정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큐레이터의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 덕분에 개별 작가의 목소리가 변형되지 않고 잘 들렸다. 수영요트경기장의 전시 연출은 정말 수준 이하였기 때문에, 작품마저도 별 볼 일 없었지만, 시립미술관에서는 좀 달랐다. 니시오 야스유키, 야수마사 모리무라, 부르스 라브루스 등이 관객의 눈길을 끌었고, 야마카와 후유키의 작품 <보이스-오버> (2006)는 단연 압권이었다. 반면, 바다미술제를 맡은 전승보 감독은 고향인 부산에서 정치력을 십분 발휘, 은근슬쩍 영역 확장에 나섰다. 광안리 바닷가 등 야외에 설치된 작품들은 늘 그렇듯 “대중의 취향에 아첨하는 눈높이 예술”에 불과했지만, 놀이공원 미월드에 설치된 작품들은 현대미술제와 경쟁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일부 전시작들은 목욕탕, 찜질방, 사무실 등으로 사용됐던 빈 공간과 충돌하며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영상 작품 가운데에선 다나카 코기의 <간단한 몸짓과 임시 조각>(2008), 텔레르보 칼라이넨과 올리버 코차-칼라이넨의 <불만합창단>(2005~)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난 2006년부터 행사 규모가 비대해진 부산비엔날레엔 구조조정이 필요해 뵌다. 자고로 현대미술의 비엔날레는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오늘의 방법’을 점검하는 일을 의의로 삼는다. 그런데 서울올림픽미술제의 옛 악몽을 연상케 하는 부산조각프로젝트나, “아시아 현대미술의 원로 작가 30여명을 초청했다”는 특별전 <미술은 살아있다>, 그리고 지역 작가들의 잔치인 ‘갤러리페스티벌’ 따위는 비엔날레의 기본 취지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 추신 : 이두식 운영위원장이 자랑스러워한 특별전, <미술은 살아있다>의 별칭은 “노인을 위한 전시는 있다/ 없다/ 많다”였다. 다음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로는 ‘노년’도 좋겠다. 더불어, 광주비엔날레엔 ‘젊음’을 추천한다.

이진경 <부산갈매기가 그냥 갈매긴 줄 아나?> 혼합재료 가변설치 2008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 그리고 뉴미디어아트의 보수화

전시 오프닝 당일 거의 모든 작품들이 작동하는 신기원(?)을 이룩한 제5회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 (물론 며칠 뒤 몇몇 작품은 바로 작동을 멈췄다.) 그 성실함과 달리 전시 기획에선 어떤 현실도피적 냄새가 났다. 뉴미디어아트계 전반이 봉착한 위기를 도외시 한 것이다. 흥미로운 작품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파블로 발부에나, 앤 베로니카 얀센즈, 마이클 벨-스미스, 마르쿠스 한센의 작업은 눈여겨 볼 만하다. 그러나, ‘얼치기 인터랙티브 장난’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물론 여고 앞에 소위 ‘바바리 아저씨’가 나타나면 늘 같은 소동이 일 듯, 여전히 일반 관객들은 그런 작업 앞에 모여 행복한 얼굴로 웅성거린다.) 우려스러운 점은, 아트 스쿨의 학생으로 뵈는 젊은 관객조차 종종 그런 작품에 진심 어린 관심을 표한다는 것이다. 거듭 마주치게 되는 유사한 장면에서, 뉴미디어아트 업계는 앞으로도 한동안 망하지 않고 ‘마이너리그’로서 잘 유지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마치 1980년대에 판화계가 겪었던 어떤 퇴행적 변화의 전철을 다른 양태로 되풀이하는 느낌이다. 지금은 ‘포스트-미디엄의 상황’에서 뉴미디어아트가 계속 미적 유효성을 간직하려면, 어떤 방법론이 필요한지 숙고해야 할 때다. 인터넷과 디지털 하이테크놀로지 이후의 포스트-미디엄의 상황과 그에 대응하는 ‘미디어-믹스’는 뉴미디어의 미적 권능을 강화하기보다는 올드미디어의 미적 권능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예컨대, 미술 관계자들의 기억과 일부 예술 애호가들의 입소문에 기반을 두는 티노 세갈의 스타덤이 인터넷 이전의 시대에도 가능했으리라고 보기는 무리다.) 하지만, 여전히 열린 질문은 남아 있다. 뉴미디어아트 가운데 동영상 작품들로 논의를 국한해보자. 포스트-미디엄(미디어)으로서 동영상을 다루는 작업은 크게 5종류로 나눠 볼 수 있다. 1. 영화 문법의 컨벤션을 해체해 메타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작업. 2. (개념미술적인) 행위의 다큐멘테이션으로서 동영상을 이용하는 작업. 3. 관람 인터페이스를 재정의하는 작업. 4. 영상 데이터베이스를 상징 형식으로 제시·활용하는 작업. 5. 영상물 제작 과정의 제도적 전개 방식을 이용해 과정을 축적하는 동영상을 만드는 작업. 안타깝지만, 1, 2, 3의 실험은 종결된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4와 5의 실험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번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에선 4와 5에 해당하는 작업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 추신 : 2006년 큐레이터 페터 바이벨(Peter Weibel)은 2006년 아르코(ARCO)의 특별전 <포스트미디어의 조건>에서 동명의 논고 “포스트미디어의 조건”를 발표하며 뉴미디어아트의 파산을 자인한 바 있다. 그가 이번에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를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2008년의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바이벨이 “디지털 혁명의 변화를 등에 업고 특권적인 영역으로 기능해온 뉴미디어 아트의 영역이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선언했던 일을 무효로 돌리려 애쓰는 것처럼 뵈기도 한다. ‘매체의 전환’을 근거로 ‘미적 경험의 확장’에만 주목한 전시 기획은, 전례 없이 보수적이고 예술지상주의적이다.

헬가 그리피스 <미시 기후> 멀티미디어 인터랙티브 설치 2008 *미디어시티_서울

백남준아트센터 이영철 관장, 토비아스 버거, 클라우디아 페스타냐

왼쪽부터 클라우디아 페스타냐, 이영철, 토비아스 버거

백남준아트센터를 이끌어갈 세 주인공

이영철, 토비아스 버거, 클라우디아 페스타냐 백남준아트센터가 마침내 10월 8일 백남준페스티벌, ‘Now Jump’로 문을 연다. 2001년 백남준과 경기도 간 양해각서를 토대로 건립 기본 계획을 만든 뒤 백남준 사후 3년 만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2003년 국제현상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된 건축가 크리스텐 쉐멜과 마리나 스탁코빅의 설계로 지어졌다. 약 1,700여평 면적의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다. 산자락과 나란히 펼쳐지는 가로로 긴 건물이 그랜드피아노의 유려한 선을 닮았다. 뒷면에서 보면 건물은 타원형의 구조로 산의 품에 다소곳이 안겨 있는 형태다. 한국 최초 외국인 큐레이터 영입 이영철 관장은 3월 취임 후 국제 전시와 기획 전시만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 하에 학예실장으로 토비아스 버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클라우디아 페스타냐를 선임했다. 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토리얼팀은 국내 유일의 ‘국제적’ 전시 기획팀이다. 이관장은 “18세에 한국을 떠난 백남준은 현재 한국에 명성만 돌아온 상황이다. 국내에서 백남준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시 기획 및 연구를 수행해 나갈 수 있는 큐레이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미술관 내부에서도 외부 큐레이터를 영입하자는 의견이 강해, 토비아스와 클라우디아를 선임하게 되었다”고 이들의 채용 배경을 설명했다. 이관장은 “토비아스와 만나 얘기하면서 그의 집안이 독일 플럭서스를 후원했을 뿐만 아니라 백남준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백남준이 보내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들의 초청이 우연이 아닌 ‘필연’임을 강조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외국인 큐레이터 선임이 이슈로 떠오리는 것은 미술계에서 정규직 외국인 채용으로는 ‘최초’이기 때문이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에서 외국인 감독, 큐레이터를 선임하긴 하지만, 그것은 한시적인 기간 동안 협업하는 경우다. ‘관’이 주도하는 미술관의 외국인 정규직 채용은 행정직과의 소통 문제,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마찰 등 여러 가지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추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백남준아트센터의 외국인 큐레이터 선임은 한국 미술계의 발전, 더 나아가 외국 유수 미술관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위한 신호탄이다. 지난 9월 1일 학예실장으로 부임한 토비아스는 홍콩의 파라/사이트의 디렉터를 3년간 역임했고, 2005년 광저우 트리엔날레, 200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 기획에 참여하는 등 아시아 미술에 조예가 깊은 국제적인 큐레이터. 토비아스는 “독일에서 어렸을 때부터 플럭서스를 몸소 체험하고, 백남준의 예술을 가까이 했던 경험이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일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심지어 대학 시절에는 르네 블록이 기획한 <독일에서의 플럭서스(Fluxus in Germany)>전의 순회전을 맡아 5년간 전 세계를 누비고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토비아스는 향후 계획에 대해 국제성, 참여성, 복합예술 실현, 담론 생산의 의지를 강조했다. 외국 미술관과의 활발한 전시 교류를 통해 진정한 국제인이었던 백남준의 정신을 잇는 동시에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 작품 전시, 미술과 음악, 과학, 철학의 경계를 허무는 ‘총체적 예술’을 선보일 계획이다. 한편, 7월부터 먼저 자리를 잡은 포르투갈 출신의 큐레이터 클라우디아는 포르투갈의 굴벤키안 재단근대미술센터와 2007 카셀도큐멘타 교육팀에서 재직하는 등 미술관 교육 경험이 풍부하다. 클라우디아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전시기획 및 국제 홍보, 교육 등 다양한 큐레이토리얼 프로그램을 담당한다. 어린 시절 아프리카 리비아에서 12년간 살았던 특이한 경험이 있는 클라우디아는 자유로운 사고와 열린 태도로, 이관장의 말에 따르면 ‘노마드적’ 삶을 실천하고 있다.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다양한 경험들이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현상’ 이면의 ‘컨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클라우디아에게 백남준아트센터 교육 프로그램의 비전에 대해 물었다. 클라우디아는 “교육은 현실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타 기관에서의 경험들이 여기서 자동적으로 정착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트센터에 어떤 관객이 오느냐, 즉 관객의 연령대, 지적 수준, 관심사 등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 다음 그들과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계획을 짜고, 또 관객을 교육시키기보다는 그들에게서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면서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단계별로 차근차근 접근하는 ‘롱텀’ 비전을 강조했다. 어떤 그럴싸한 계획보다 믿음직스러운 답변이다. 토비아스와 클라우디아, 두 명의 큐레이터에게서 백남준 예술의 기저에 흐르는 유목민 의식, ‘플럭서스’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자 이제 뛰어라 ‘국제적’ 큐레이토리얼팀을 갖춘 백남준아트센터는 개관전으로 ‘백남준페스티벌’을 준비했다. 10월 8일부터 내년 2월 5일까지 넉 달간 아트센터와 근처의 신갈고등학교 체육관, 지앤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행사의 제목은 ‘나우 점프(Now Jump)’. 이솝 우화의 한 구절인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지금 뛰어라”에서 따왔다. 관념이 아니라 실행과 혁신을 강조하는 말이다. 페스티벌은 전시, 퍼포먼스, 담론 생산의 플랫폼, 백남준 예술상의 다섯 ‘스테이션’으로 이뤄진다. 전시는 스테이션 1과 3 두 부분으로 구성, 스테이션 1은 백남준 및 그의 친구들과 동료 예술가들에 관한 기록과 작품으로 구성된다. 특히 여기에는 이관장이 일본에서 만난 10여명의 백남준 주변 인물의 구술 녹취 자료도 만나 볼 수 있다. 이관장은 백남준이 이미 일본 고교, 대학 시절에 선불교에 깊이 심취했었고, 이 시기에 그의 예술 철학이 형성됐다고 했다. 스테이션 3은 생태도시 건축가 파올로 솔레리의 스케치와 조형물, 건축가 조민석의 프로젝트, 빅 판 더르 폴과 헤르빅 바이저 등 해외 작가들과 잭슨 홍, Sasa[44], 문경원 등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진다. 스테이션 2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위적 퍼포먼스를 펼쳤던 백남준의 행위예술 이후 40여년이 지난 오늘날의 퍼포먼스를 조망하는 자리다. 로메오 카스텔루치와 아트센터가 공동 제작한 ‘천국’을 비롯한 20여개의 공연이 12월 말까지 이어진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한국에 공식 상륙한 이래 백남준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한국이 낳은 20세기의 대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서 그는 서구 미술사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백남준의 작품 세계의 핵심은 ‘복합성’이다. 그는 비디오 아트로 예술과 대중매체, 예술과 기술을 통합했고, 듣는 음악을 보는 음악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행위 음악을 고안하였고, 인터미디어 감수성으로 행위 음악을 해프닝에 접목시켰다. 따라서 백남준아트센터는 미디어 기관이지만 단순한 매체, 테크놀로지 중심의 미술관을 넘어서 매개 공간을 지향한다. 예술, 테크놀로지, 인문학의 실험적 융합 및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 백남준아트센터의 출발을 기대해 보자. |이성희 기자

백남준아트센터 전경

여성작가들의 전시향연-언니가 돌아왔다展 외

김인순 <뿌리> 캔버스에 아크릴릭 245×234cm 1999

‘21세기의 언니’들이 돌아왔다!
여성 미술가들의 다채로운 전시 향연

글·황예지 객원기자

돌아온 언니들의 이야기 보따리

경기도미술관에서는 2008경기미술프로젝트의 두 번째 전시로 <언니가 돌아왔다> 라는 제목의 전시를 선보인다.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두 달에 걸쳐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나혜석과 윤석남을 두 축으로 경기도 현대 여성미술가를 집중 조명하고, 변화된 여성상과 새로운 시대의 여성미술에 대한 시대 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언니’는 세대와 연령을 초월해 부르는 호칭으로 ‘여성성’과 ‘여성상’의 의미를 넓게 인식할 수 있는 단어라 할 수 있다. 21세기적 여성상으로서 <언니가 돌아왔다> 가 내세우는 ‘언니’의 개념은 ‘우마드(Womad)’ ‘허스토리(Herstory)’ ‘시스터 액트(Sister Act)’ ‘팜프파탈(Femme Fatale)’로 요약된다. 이러한 네 가지 키워드를 갖고서 전시는 네 섹션으로 나뉜다. 첫 섹션인 ‘우마드’란 여성(Woman)과 유목민(Nomad)을 합성한 말로 평화롭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이 시대의 여성, 즉 ‘우마드’가 미래의 세상을 이끌어갈 대안적 힘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과거 초원의 유목민이 아닌 디지털시대의 유목민은 21세기 '신모계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며, 자기 존재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일종의 ‘자아의 신화’를 표현하고 추구하는 작가들인 안진우 원성원 이민 정은영 하차연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두 번째 섹션의 키워드는 ‘허스토리’이다. 허스토리는 남성적 사관(History)에 맞서서 ‘그녀들의 역사’를 당당히 주장하고 기술해 나가는 것을 지칭한다. 그런 의미에서 허스토리는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려 있던 그간의 ‘히스토리’의 정치성을 직시하면서 그것에 가린 여성의 역사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 개인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다양한 타자의 ‘허스토리’ 개념을 가진 작가들 김인순 김진숙 류준화 봉인옥 윤석남 이수영 정정엽 태이의 작품이 출품된다. 세 번째는 ‘시스터 액트’다. 일명 ‘행동하는 언니’로 부를 수 있는 이 말은 우피 골드버그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 영화에서 우피는 여러 공간과 장소를 넘나들며 제도와 관습이 만든 사회적 시스템의 허점을 코믹하게 흔들어 버린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김주연 방정아 이순종 장지아 홍현숙은 공간과 장소를 비롯해 자신의 삶조차도 그런 ‘공공성’의 맥락에서 개입하고 실천하는 작가들이다. 마지막 섹션은 ‘팜므파탈’로 장식한다. 19세기까지 팜므파탈이란 말은 관습과 도덕에 억눌리지 않고 원초적이고 야성적인 욕망을 거리낌 없이 펼치는 위험한 여성을 말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파멸과 죽음을 불러오는 부정적 인식은 20세기 이후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활달한 여성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변화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정 시대의 캐릭터라기보다는 작품 안에서 녹아 흐르는 내면화 된 방식의 팜므파탈을 살펴볼 수 있게 했으며, 시대를 초월해 드러나는 여성 특유의 ‘욕망과 환상’까지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강은수 김희정 박영숙 손정은 손국연 이순주 이은실이 참여한다.

윤석남 <허난설헌> 나무에 아크릴릭, 자개 115×170cm 2005

여성 미술가들의 열정적 작업 세계 속으로

고양 아람미술관에서는 이숙자의 전시(11. 1~12. 21)가 열린다. 40여년 이상을 우리 채색화 발전에 일조한 한국 채색회화의 상징적인 작가인 이숙자를 통해 한국화에 대한 관심과 전통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기획된 전시다. ‘보리밭’과 ‘이브’라는 양대 주제를 토대로 끊임없는 변화와 연구를 거듭해 온 그의 작품 세계를 통해 한 예술가의 삶 전체를 만나볼 수 있다. 이숙자는 한국화 영역에서도 채색화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대표적인 작가로 그간 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우리 전통 채색화를 현대인의 감성에 맞도록 재창조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 노력의 산물인 100여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작가는 특히 석채(石彩)라는 채색안료의 특성을 잘 사용하여 사실적인 묘사와 조형적인 구성을 통해 그림의 소재 하나하나를 선명하고 빛나는 색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시는 다섯 개의 소주제 ‘꽃과 일상’ ‘보리밭’ ‘이브’ ‘작가의 방’ ‘드로잉’으로 나뉘어 선보인다. 올해로 작업인생 30년을 맞는 정경연의 전시도 열린다. 세오갤러리에서 10월 2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정경연의 작업 30년 기념-장갑: 생의 기록> 전은 장갑이란 하나의 소재로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탐구하며 섬유 회화 조각 판화 비디오설치 등의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들을 총망라하여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신작인 <블랙홀> 시리즈를 선보이게 된다. 작가는 인간의식에 의한 무한한 가능성의 열림을 안과 밖의 블랙홀로 정착시켰다. 색채는 검은 색으로 귀환되고, 장갑들은 둥글게 겹쳐져 생성의 수레바퀴를 만들어 낸다. 사회적 집합체로서 인간이 만나고 어우러지며 헤어지는 과정을 ‘축제’에 비유하며 작업하고 있는 전준자의 개인전(10. 29~11. 4)이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그의 작품 속 자유분방한 드로잉과 원생으로 묘사된 인간 군상은 사회적 집합체로서의 인간이 누리는 가장 가치있는 의례가 축제임을 깨닫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전준자는 서로의 만남과 속삭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서정적 추상세계를 표현하는 회화 작품 15점을 선보인다. 재독작가 송현숙도 개인전을 갖는다. 학고재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는 9월 30일부터 10월 26일까지. 송현숙은 달걀과 안료를 섞은 템페라 물감을 사용하여 말뚝, 우물, 집, 옹기항아리 등의 형상을 그려왔다. 이러한 형상을 한껏 추상화시켜 간략하게 표현하고, 그 그림의 제목으로 몇 획 혹은 몇 획 위에 몇 획 하는 붓질 획수를 사용한다. 그의 섬세한 붓질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2006년 개인전 이후 꾸준히 작업해 온 신작 4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여성 미술가들의 작업이라 하면 으레 꽃과 집 안 풍경, 혹은 가족과 같은 소재에 국한되는 것이라고 여겨져 오던 시대가 있었다. 물론, 그러한 소재들이 여성의 삶을 둘러싸고 있으며, 여성의 섬세한 감수성에 부합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여전히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에서는 그 소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 인권신장으로 인해 여성이 ‘밖’으로 나와 남성과 동등한 교육과 직업을 갖게 되는 요즘, 여성 미술의 소재가 꼭 여성적인 것만으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는 ‘돌아온 언니’들의 작업의 특징은 따뜻하고 포근하면서도 동시에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21세기의 새로운 감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영숙 <내 안의 마녀 프로젝트> C-프린트 160×120cm 2005

공선훈, 불편한 풍경화의 진실

‘불편한’ 풍경화의 진실

글|장승연·본지 기자

지난 2000년부터 최근작까지, 공성훈의 회화 작품을 돌이켜 보면 어떤 일관된 흐름이 엿보인다. <벽제의 밤> 시리즈에서 인간의 삶을 교묘히 빗대었던 개라는 소재, 그리고 지난해 개인전 <교외·여가>에서 보여준 운동장, 모텔, 공원 등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공간들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철저히 작가의 생활공간 반경 몇 킬로미터 이내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요소들이다. 또한 이를 묘사한 사실적인 방식에도 불구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미묘하게 불어넣는 특유의 감성은 늘 그의 작품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 이번 신작은 다른 구체적인 모티프보다 ‘풍경’ 자체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풍경’이라. 그러나 색상과 구도의 교묘한 왜곡을 통해 일상을 이질적으로 탈바꿈시키던 그의 화면을 떠올린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연을 그의 그림에서 만날 수 없다는 점 또한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을 따스히 보듬어 주는 대지모(母)로서의 자연말이다. 그의 화면 속 풍경은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이 여전히 압도적이고 불안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리적이고 암시적인 분위기가 한층 강화되었다. 이제 그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거창하고 개념적인 단어들에 유독 민감한 작가이지만, 굳이 이렇게 묻고 싶다. 그가 그리는 ‘불편한’ 회화의 진실은 과연 무엇이냐고.
art 작년 이후 1년만의 개인전이네요. 따끈따끈한 2008년 신작들이 소개되는군요. 이번에는 유난히 ‘풍경’ 자체의 암시적인 분위기가 부각되는 느낌인데요. 공성훈(이하 Kong) 전시 제목도 ‘근린자연(近隣自然)’이에요. 최근엔 점점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예쁜 자연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그리고 보니 인공 자연을 그리고 있더군요.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이요. 인공절벽, 연못, 꽃으로 만든 조형물 같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은 사실 묘하고 기괴한 풍경이잖아요. 여기에 내가 삶에서 불편하게 느끼는 감정들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하나의 ‘장면’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사건’으로서의 풍경이 어떻게 가능할까 생각한 거죠.
art 그 ‘사건’이라는 게 그림에서 생성되는 ‘내러티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Kong 좀 다르죠. 내러티브보다는 정말 한순간에 ‘짠! 하고 일어나는 사건’을 뜻해요. 즉 전통적인 의미에서 단순히 펼쳐진 ‘장면’이 아니라, 그 안에서 등장하는 요소들 자체가 무언가 임박한 것 같은 묘한 기운을 연출하는 풍경, 그 안에 들어가는 대상들 간에 어떤 관계가 있고 그 관계 속에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 그런 것이 ‘사건’으로서의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인지 자연을 그리되, 자연에 대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포근함 같은 건 내 그림에 없나 봐요. 오히려 좀 더 심리적이고 무언가를 비유하는 자연에 더 가깝죠.
art 신작에서는 낮 풍경도 많이 등장하지만, 여전히 밤의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느껴져요. 사실 밤이야말로 조명 때문에 인공자연의 인위적인 면모가 더욱 드러나겠지요. 요즘도 카메라를 들고 밤의 이미지를 채집하러 다니시나요? 재미난 일도 종종 벌어지겠는데요.
Kong 그럼요. 새벽 2, 3시에 벽제 화장터 같은 곳에서 혼자 사진 찍고 돌아다니다가 가끔씩 경비원하고 마주치기도 했어요. 보통 밤에 혼자 그러고 돌아다니면 남들이 이상하게 보는 게 당연하죠. 사실 밤을 그리는 건 내가 밤에 잠을 잘 안자서 그런 것 같아요. 주변을 서성대고…. 그리고 밤 장면은 낮 장면보다 많이 안 그려도 되잖아요. 밀어버리면 되니까.(웃음)

공성훈 <사진 찍는 사람>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3×193.9cm 2008

현실 ‘관찰자’의 투덜거림

art 이전보다 더 세밀하고 완벽하게 그리신 거죠? 완성도가 한층 높아진 것 같고 화면이 더욱 압도적으로 느껴져요.
Kong 기괴함을 압도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일종의 농담처럼 되어 버리니까요. 사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몇 년 세밀하게 그리지 않으면 평생 그렇게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노안이 오는지 이젠 눈이 쉽게 피곤해지거든요.
art 반면 구도나 구성의 왜곡은 전보다 은근해진 것 같아요. 카메라로 담은 장면을 그림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카메라 앵글로 편집한 ‘선택한 구도’가 기묘하게 드러나기 때문인지, 관찰자의 시선이 엿보이기도 하고요.
Kong 내 작업이 사진 이미지에 기반을 두긴 하지만, 그대로 그린 것은 하나도 없어요. 애초에 한 장의 사진을 그대로 옮기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요. 그리는 과정에서 편집하고 짜깁기하고, 여러 가지 대상들을 합성해 버리기도 합니다. <모닥불, 나무, 낙하산> 같은 작품도 제목에 나오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이질적으로 한 화면에 등장하고 있죠.
art 그런 요소들이 작품의 ‘불편한’ 분위기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 같아요. 사실 여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연관성 없는 대상들을 한 화면에 등장시킴으로써 화면이 낯설어지는 효과에 집중한 것은 아닌가요.
Kong 다 나름 의미는 있는 건데…. 그런 의도들을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죠. 오히려 그림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더 드러내는 것 같아서 말이에요. 사실 촛불시위 때문에 그린 건데요. 촛불을 연상시키는 모닥불, 황폐함과 낙하산, 혹은 연꽃과 청와대, 국회의사당이 한 화면에 있는 것은 최근 불거진 종교 편향 문제와도 관련이 있죠. 피지 않은 연꽃은 촛불 같기도 하고, 또 ‘연꽃’하면 불교라는 특정 종교가 떠오르잖아요. 이렇게 제가 그리는 자연에 정치적인 뉘앙스를 집어넣고 싶기도 했어요. 아주 넓은 의미에서 말이죠. 그렇다고 예전 민중미술 같은 걸 떠올리진 말아요. 자연이 뿜어내는 어떤 심리적인 분위기에서 단지 그런 뉘앙스를 느낄 수 있게끔만 하는 상징주의적인 의미가 담겼다고 할까요. 음, 사실 이런 분석은 평론가들이 할 일인데.
art “몇 만 년 전에 반짝인 빛이 던져주는 계시보다 발바닥이 전해 주는 대지의 감촉이 훨씬 더 실제적으로 느껴진다”는 작가의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추상화,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당연시되는 수많은 개념적인 언어, 그런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들을 싫어한다는 의미를 담은 내용이었죠. 지금까지의 작품들이 전부 주변에서 비롯된 어떤 복잡미묘한 감정에 기반하고 있잖아요. 반면 작품에서 이런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는 관조자 이상의 어떤 적극적인 개입은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촛불집회’ 같은 구체적인 사회적 이슈를 언급하니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요.
Kong 내가 일종의 ‘관찰자’라는 말이죠? 맞아요. 난 그냥 그런 의미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데는 관심이 없어요. 작가로서 내가 느끼는 현실에 대해서 증언, 아니 이건 너무 무거운 말이구나, 그냥 투덜대는 정도일 뿐이에요. 지금 시대가 ‘예술이 현실을 바꾼다’라는 말을 믿을 만큼 순진하진 않잖아요.

공성훈 <인공절벽>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3×181.8cm 2008

‘미디어’로서의 페인팅

art 회화를 선보이기 전까지는 다양한 매체로 주로 설치 작업을 하셨죠. 더군다나 미대를 졸업한 후 전자공학과를 다시 졸업한 이력 때문인지 ‘테크놀로지 작가’로 당연하게 인식해 온 시각이 있었어요.
Kong 1990년대에 작업하면서 참 불편하게 느꼈던 부분은 나를 자꾸 테크놀로지 작가로 분류하는 점이었죠.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사실 예전에 매체 작업을 했어도 나는 ‘하이테크’를 써 본 적이 없어요. ‘수작업’에 완전히 ‘로우테크’였죠. 오로지 공대 안 나와도 할 수 있는 것뿐이었어요. 예를 들어 내 신체 부분 사진으로 큰 벌레 같은 형상을 만들었던 <다지류>의 경우, 당시 슬라이드 79대를 손수 만들었어요. 하지만 그건 움직이는 그림을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을 사용했을 뿐이에요. 오히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개념적인 작업’을 한다고 생각해요. 곰팡이와 먼지로 회화를 그리고 그 작품을 아트페어에 건다든지, 결국 내가 생각하는 개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일 뿐이거든요. ‘개념’이라는 말도 너무 거창한가요? 최근의 페인팅 자체도 사실 하나의 미디어로서 다룰 뿐입니다.
art 이전부터 지금까지 작업 내용의 일관성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다면 예전에 “스스로도 내면에 자아라고 하는 고정되고 단단한 핵 같은 것이 있을까’ 의심이 든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자아’라는 게, 아마 작업의 고정된 형식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워낙 다양한 매체 작업을 보여주었고, 작가도 그런 다양성 자체가 자신의 형식이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다면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회화 작품을 보여주는 있는 이 시점에서, 작가로서의 형식적 정체성을 찾았다고 생각하시나요.
Kong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단지 회화를 비교적 오래하고 있는 이유는 회화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에요. 내가 할 만큼 했다, 끝을 봤다는 느낌이 오긴 올까요. 슬라이드 작업의 경우는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오더라구요. 그건 작업의 프로세스와도 관련되는 것 같아요. 페인팅은 작업의 프로세스에서 충분한 쾌락이 있어요. 좌절도 하고 기쁨도 느끼고, 어떻게 될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런데 설치 작업은 달라요. 작업의 프로세스를 즐기는 게 없었어요. 처음 작업을 구상한 이후의 과정이란 정말 ‘일’이에요. 그리고 매체 작업을 하면서 자꾸만 작품에 대한 내 생각이 손에 잡히지 않는 ‘판타지’ 쪽으로 가는 것 같았어요. 그건 정말 싫어요. 최근 내가 그림에 묘사하는 장면도 판타지는 결코 아니에요. 날것으로서의 ‘리얼’과 판타지 중간에 있는 ‘버추얼(Virtual)한 정도’랄까. 내가 그림에서 표현하고 싶은 ‘사건’이란 것도 분명 현실에서 있을 법한 것들이죠. 물론 회화라는 장르를 두고 볼 때, 나는 항상 ‘리얼리티’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지만, 그것이 그림이 추구해야 하는 지향점일 수는 있어도 본질은 아니라고 봐요. 그림의 본질은 결국 허구, 환영, 가짜니까요. ‘사건으로서의 풍경’으로부터 시작하여 회화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 작가의 대답은 거창한 설명이 체질적으로 싫은 듯, 진지함과 가벼움을 교묘히 넘나들면서 진행됐다. 물론 짧은 지면이 아쉬울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았다. 이렇듯 작가는 인간이 만든 ‘가짜’ 자연을 환영이라는 ‘허구’ 속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짜’가 ‘가짜’에 담기는 순간을 인식할 때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삐걱거림, 나아가 ‘현실’의 이야기를 가짜인 ‘그림 그리기’로 담아낸다는 근본적인 아이러니가 바로 ‘불편한’ 풍경화의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은 짓궂은 의도로 들먹인 ‘진실’이라는 단어에 대한 대답을 굳이 찾자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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