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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8.08

Abstract

특별기획 화가, 길을 떠나다

김병종|오치균|김주영|이상원|노순택|김선두|안창홍|전수천 심철웅|김영재|권부문|안강현|박용식|배병우|이호신|홍순명

Contents

표지 김병종 <오래된 카페, 오래된 연인> 캔버스에 혼합재료 56×76cm 2007
 
에디토리얼 New Vision 젊은 이론가를 찾습니다!_김복기
 
핫피플 
    김창일, "아라리오가 신비롭지 않나요?"_이선화
 
프리즘 
    박수근 ‘빨래터’ 감정 시비 관전법_임종업
    공공미술, 폭넓은 스펙트럼이 필요한 때_민병직
 
아티스트 아틀리에 아카이브 
    이수동_이선화
 
포커스 
    장연순|전윤조_전영백
    최인선|Abstract Imagination_이선영
    빌 비올라_강수미
    김희자|양화선_김복영
 
특별 기획 화가, 길을 떠나다
    김병종 오치균 김주영 이상원
    노순택 김선두 안창홍 전수천
    심철웅 김영재 권부문 안강현
    박용식 배병우 이호신 홍순명
 
해외 미술 
    Go! 베이징 미술 올림픽으로!_장승연
 
작가 연구 
    박찬경, 범속한 트임_박만우
 
전시리뷰 
    내 마음의 보물|디 얼라이언스|유근영|변용국|연극되어지다
    생의 매력|양아치|션량|관산월|아리 카키넨|최종운|임만혁
    박수만|최정유|이관우
 
아티스트 인사이드 
    (1) 잭슨홍, 일상품+아트의 기발한 줄다리기_이성희
    (2) 이문주, 도시의 잔해물, 그 디스토피아의 얼굴_이은주
 
긴급 제안 
    실용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에 바란다_박신의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김시내|장리라|양진우|오석근
 
아웃 오브 코리아 
    김강용_로버트 모건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GO! 미술 올림픽으로! 8월 베이징 전시 소개

더글라스 고든과 필리페 파레노 <지단:21세기 초상화> 2채널 비디오 설치 2006

GO! 베이징 미술 올림픽으로!

글 | 장승연 기자

2008년 8월 8일 8시 8분, 세계인의 대축제 제29회 2008 베이징올림픽이 화려한 막을 올린다. 아이 웨이웨이가 디자인한 주경기장의 독특한 외관부터 장이모우 감독이 총지휘한 개막식 행사까지, 약 13억 인구라는 거대한 스케일의 나라답게 강렬한 스펙타클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온 중국인의 염원이 담긴 세계 행사에 앞서, 사실 이번 만큼 올림픽 개최 전까지 많은 사건 사고가 생긴 적도 드문 듯하다. 티벳 사태와 이를 향한 국제 사회의 비난은 성화 봉송 거부와 현장 시위, 그리고 몇 나라 수장들의 개막식 참석 거부, 인권단체의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으로 이어져 국제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갑작스런 쓰촨성 지진 참사까지 벌어져 축제를 향해 있던 중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거기에다 최근에는 개막식을 앞두고 인공강우, 승용차 홀짝제 방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심각한 베이징의 대기오염이 골칫거리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인류 최대 행사를 치르기 위한 과정 속에 생길 수밖에 없는 하나의 성장통으로 보기에는 여파가 상당했고 그에 따른 우려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8월은 이렇게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고, 다시 세계는 자국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스포츠 경쟁에 온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역시 올림픽은 두말이 필요 없는 명실 공히 세계인의 가장 성대한 축제임에 틀림없다.

표갤러리789와 표갤러리베이징에서 열린 조나단 보롭스키 개인전 전경

미술로 치장한 올림픽 도시

어느 나라든지 큰 행사를 치르기에 앞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 중 하나로 도시 정화, 혹은 도시 미화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때마다 ‘미술’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의 경우 베이투청(北土城)역, 올림픽공원역 등 베이징의 4개 올림픽지선 역을 ‘청화 백자’‘물’‘스포츠’를 모티프로 거대한 하나의 작품처럼 꾸민 사실이 한 예이다. 한편 국립 중국미술관장이자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중국관의 커미셔너였던 판 디안의 기획으로 진행된 올림픽공원 기념조각전은 행사 기념과 도시 미화에 미술을 적절히 끌어들인 일반적인 예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조나단 보롭스키 외에 자독 벤 데이빗(이스라엘), 니콜라스 버투스(프랑스), 데니스 오펜하임(미국), 미츠노부 마쓰오(일본), 힐데 반 슈머(벨기에) 등이 참여한 국제적 규모의 이 행사는 88서울올림픽 조각공원의 형성과 자못 흡사한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이 즉각적으로 관람객의 반응을 끌어당기는 외향적인 행사들 만큼이나, 국가의 견고한 문화적 수준을 돋보이게 할 알찬 컨텐츠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미술은 이미 세계 미술시장에서 그 영향력을 인정받았고, 그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 중국작가 전시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더욱이 베이징은 따산츠(大山子)의 ‘798예술구’를 비롯하여, 지우창(酒廠)과 인근의 차오창디(草場地), 환티에(環鐵) 등과 같은 문화예술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지 않은가.

7월 17일 UCCA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장면. 헤 유챙 <다이빙>

‘중국 미술의 오늘’을 보여주는 시도들

국립중국미술관을 주축으로 한 베이징의 주요 미술공간들은 올림픽에 발맞춰 다양한 전시들을 준비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상한 바와 같이 상당수 올림픽 취지에 맞는 대규모 국제교류 전시나 주요 중국작가 그룹전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국립중국미술관에서는 중국 문학예술연합 및 베이징 지방자치정부와 중국 예술가 연합의 주최로 <색채와 올림피즘-제3회 중국 국제아트 비엔날레(Colors and Olympism-The 3rd International Art Biennale, China 2008)>(7. 8~8. 12)가 열리고 있다. 81개국 작가들의 총 747점의 작품과, 영국, 노르웨이, 몽고, 멕시코 등 국가별로 이루어진 5개의 특별 전시가 함께 마련된 이 대규모 국제비엔날레야말로 베이징올림픽을 기념하는 첫 번째 성대한 미술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참여 작품 면면에서 올림픽 혹은 세계적 이슈와의 관련성을 찾기보다는, 세계 작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교류를 통해 올림픽의 정신을 이어간다는 취지다.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색채’와 인류 증진을 이끄는 조화로운 정신을 의미하는 ‘올림피즘’과 같은 제목의 상징성이 이를 대변한다.
따산츠 ‘798예술구’의 랜드마크인 울렌스현대미술센터(UCCA)에서 열리는 <우리의 미래:기&미리암 울렌스재단 컬렉션(Our Future:The Guy&Miriam Ullens Foundation Collection)>전(7. 19~10. 12)은 ‘중국 현대미술의 오늘’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전시이다. UCCA 설립자이자 오랜 시간 중국 현대미술작품을 수집하고 예술가들을 후원해 온 울렌스 부부가 창립한 ‘기&미리암 울렌스재단 컬렉션’은 전 세계를 통 털어 손꼽히는 중국 현대미술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모처럼 축제의 장이 된 베이징에서 야심차게 그들의 컬렉션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장 샤오강, 쩡 판지, 위에 민준, 구 웬다, 왕 두, 왕 광이, 차오 페이 등 중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 92점이 총망라된다.
중국미술에 대한 좀 더 비평적인 접근이 가미된 전시들로 SZ아트센터(SZ Art Center)의 <미술사 속의 예술가들(Artists in Art History)>(7. 26~8. 31)과 작년 환티에에 생긴 쿠아트센터(KU Art Center)의 <한자비엔날레(Chinese Character Biennale)>(8. 2~9. 6)를 꼽을 수 있다. 먼저 <미술사 속의 예술가들>은 SZ아트센터가 휴먼파인아츠(Human Fine Arts)출판사에서 만든 전시 공간인 만큼, 비평가 뤼 펑의 논문집 《미술사와 미술 비평 속 작가들의 사례 연구(Case Studies of Artist in Art History and Art Criticism)》 발간에 맞춰 진행되는 전시다. 뤼 펑은 논문집에서 대부분의 작가들이 현대 미술경향의 한 부분으로만 구분되고 전시되는 것에 반대하고, 각 작가들의 개인 기록을 토대로 작품들의 모티프와 변화, 그 특징 분석을 시도했다. 논문집에서 소개된 예 용칭, 펑 정지에, 팡 리준, 장 샤오강, 장 유, 탕 쯔강, 쩡 판지와 같은 현 중국 대표작가 23명의 작품을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인이 만든 전시 공간 쿠아트센터의 <한자비엔날레>는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 중 한자를 소재로 한 설치, 영상, 행위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모은다. 한 나라의 문화와 예술은 그 지역의 언어와 긴밀한 관계를 갖으며, 특히 중국의 경우 한자가 문화예술에 끼친 영향은 다각도의 접근을 필요로 할 만큼 무궁무진한 토대를 지닌다. 언어로서 한자가 준 영향에서 더 나아가, 한자 자체의 조형미와 그것이 현대미술에 끼치는 영향까지 짚어보려는 전시 취지를 더욱 돋보이기 위해서는, 단지 ‘한자’를 모티프로 한 작품들의 나열에서 벗어나 비평적 관점의 기획 의도가 잘 살아나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올림픽 개막에 앞서 다사다난한 일들이 벌어졌던 만큼, 축제의 기쁨을 만끽하기보다는 침착하고 냉정하게 중국의 현실을 바라보려는 전시들도 있다. 보어스리갤러리(Boers-Li Gallery)에서 열리는 그룹전 <푸어리즘(Poorism)>(8. 2~9. 14)이 대표적이다. ‘가난(Poverty)’과 ‘여행(Tourism)’의 합성어로 가난한 지역을 탐방 삼아 여행하는 것을 일컫는 ‘푸어리즘’이란 제목에서 엿보이듯, 2008년 현재 중국의 정신적 물질적인 빈부(貧富)에 대한 8명의 중국 작가들의 시각을 비평적으로 담는다. 한편 페킨파인아트(Pekin Fine Arts)에서 열리는 <식량과 피난처(Food And Shelter)>(7. 13~8. 31)는 이미 제목부터 재난을 암시하고 있듯이, 5월 12일 발생한 쓰촨성 지진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은 그룹전으로 12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생존의 필수조건을 직설적으로 암시하는 전시 제목이 인상적이나, 그 내용은 직접적으로 지진 참사를 다루기보다는 이러한 사건들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예술충동과 비교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활기 넘치는 올림픽 시즌에 이런 진지한 시선이 부담스럽다면, 보어스리갤러리에서 준비한 이색적인 또 하나의 올림픽을 소개한다. 김홍석, 오자와 츠요시, 첸 샤오시옹 등 세 명의 작가로 구성된 그룹 ‘서경인(西京人, Xijing Men Collective)’이 준비한 <서경 올림픽>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해 2007플랫폼에서 한국의 영종도, 일본의 오키나와섬, 중국의 하이난섬을 택해 존재하지 않는 ‘서경’을 찾는 비디오 작업을 선보였던 이들 그룹이 베이징에서 다시 뭉친다. 베이징올림픽 기간 동안 차오창디에서 수박으로 축구하기, 지하철에서 마라톤하기 같은 명랑한 패러디올림픽을 벌인다고 한다. 경기는 8월 8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되며, 결과물은 8월 17일부터 29일까지 갤러리 쇼케이스 공간에서 전시된다.

보어스리갤러리에서 <서경올림픽>을 여는 그룹 ‘서경인

전시도 올림픽, 다국적 작가의 개인전들

지금부터는 베이징에 진출한 많은 한국 갤러리들로 시선을 돌려 보자. 세계 각국 작가들의 개인전과 중국작가 그룹전 소식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큰 규모보다는 실속 있는 컨셉트로 미술인들의 시각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그 중에서도 우선, 한국 갤러리는 아니지만 베이징의 주요 전시공간 중 하나인 소카아트센터(Soka Art Center)에서 열리는 가브리엘 바레도의 개인전(7. 26~8. 24)부터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1985하바나비엔날레와 1994상파울로비엔날레 참여작가인 바레도는 발견된 오브제와 같은 일상적인 사물로 정교하면서 그로테스크한 바로크 스타일의 조각과 설치를 만들어낸다. 국내는 물론 중국 역시 필리핀 작가의 소개 기회가 드물었던 만큼, 바레도의 작품을 통해 필리핀 미술의 오늘을 파악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지난 6월 14일 지우창에 이어 따산츠 ‘798 예술구’에 새로 문을 연 표갤러리798 개관전인 조나단 보롭스키의 개인전도 9월 23일까지 두 곳에서 함께 이어진다. 앞서 설명한 올림픽 기념 조각공원 프로젝트에 <망치질하는 사람>을 설치하여 올림픽과도 인연이 깊은 보롭스키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노래하는 사람>과 흥국생명 빌딩 앞의 <망치질하는 사람>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세계적 작가이다. 표갤러리에 설치된 <빛과 함께한 인간 구조>은 작가가 최초 공개하는 작품으로, 빛과 다채로운 색채의 조형물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한편 두아트 베이징에서 열리는 더글라스 고든의 개인전(8. 2~9. 9)이 이목을 끄는 이유는 그가 터너프라이즈 수상 이력의 유명 작가라는 점뿐만 아니라, 베이징올림픽 기간에 맞추어 프랑스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을 주제로 한 대규모 비디오 작품 <지단:21세기 초상>을 공개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전시는 <너+나의 자화상(Self-portrait of You+Me)> <몬스터 메이킹 오브(Monster Making of)> <텍스트 페인팅(Text Painting)> 시리즈가 함께 소개되어 그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어지는 전시 향연

프랑스 니스에서 시작된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 Surfaces) 그룹의 창시자 끌로드 비알라의 작품을 소개하는 베이징 금산갤러리(8. 9~31)와 쿠바 작가 까를로스 퀸타나의 개인전(8. 2~9 14)이 열리는 아라리오 베이징은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작가보다도, 미술사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는 작가와 새로운 남미 미술의 차세대 주자를 각각 8월의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캔버스 나무틀을 떼어버린 천 위에 한 가지 형태의 무늬를 나열하여 재료의 섬유성을 강조하는 비알라의 작품, 그리고 재료에 구애 없이 신화를 주제로 자유로운 연상 드로잉과 그림을 그려나가는 퀸타나의 독특한 화면이, 익숙한 작품들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시각에 새로움을 선사할 것이다.
올림픽 기간 동안 베이징에서 한국 미술을 알리는 한국 작가들은 누가 있을까. 한지연 컨템퍼러리스페이스는 실제 대상과 이미지 간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지속하고 있는 김창겸의 개인전(8. 2~31)을 연다. 일본에서 개인전 <그림자>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그는 이번 전시에서 서양 대가의 작품에 자신의 초상화를 덧입히는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한편, 7월 12일부터 8월 19일까지 베이징 아트싸이드에서 개인전을 갖는 이재삼은 목탄으로 생명력 넘치는 대밭이나 동세 있는 말을 표현한 뚝심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순지에 불이 붙은 향을 가까이 대어 태워서 형상을 그리는 기법과 고전과 현대 소재의 패러디 등으로 한국 동양화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 이길우는 갤러리문에서 8월 16일부터 9월 30일까지 개인전을 갖는다.
올림픽 개최국 작가들을 한데 모으는 그룹전도 있다. 베이징 PKM갤러리는 첫 중국작가 그룹전인 <2D & 3D 시각적 언어의 협정>(8. 1~9. 28)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2차원의 평면과 3차원의 입체 공간으로 구분되어 오던 전통적인 매체의 관념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중국 신진, 중견 작가 12명의 작품을 소개한다. 전통적인 회화 재료인 캔버스와 아크릴을 이용하여 회화와 조소의 접목을 시도한 젊은 대만작가 홍 샤오페이, 다빈치의 명화 모나리자를 조소로 재현한 션 샤오민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엠아트갤러리 베이징이 준비한 <청돈-중국 신인작가전>(8. 9~20)은 갤러리 측이 공모를 통해 선정한 11명의 신인작가 그룹전이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른바 ‘소황제’ 또는 ‘80후’ 세대 작가인 이들의 신선한 작품을 통해 현대 중국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고민과 꿈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규모 스포츠 행사가 열릴 때마다, 다른 문화예술관련 행사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덜해진다고 종종 아쉬운 목소리를 내곤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꾸준히 정진하고 있는 베이징의 미술 현장에 그런 우려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올림픽의 열기와 그 축제의 바통을 이어가고 있는 베이징 미술 현장에 동참할 때다.

아시아 젊은작가들의 축제-2008 아시아프

최상진 <파티나몰> 혼합재료 130×160cm 2008

‘아시아프’ 첫 만남, 아시아 젊은 작가들의 축제!

글·장승연 기자

‘신 개념의 미술축제’로 많은 관심을 받아온 ‘아시아프’는 작품 거래가 이루어지는 아트페어이면서도 작품 판매 경비로 쓰일 10%의 상징적인 액수 외 순수 작품 금액이 작가에게 전부 돌아가는 첫 순수공익행사다. 그리고 한국미술평론가협회부터 한국화랑협회, 한국큐레이터협회, 대학미술협의회, 한국판화사진흥협회, 서울옥션 등 여러 미술계의 주축이 함께 후원하는 국내 첫 행사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이 행사는 미술작품 컬렉션이 일부 한정된 이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기존 인식을 깨고, 누구든지 맘에 드는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리적인 수준으로 작품 가격을 조정한다. 한국을 비롯한 일본 대만 싱가포르 인도의 젊은 작가 및 대학, 대학원생으로 이루어진 777명의 참여 작가들은 각 2, 3점의 작품을 출품하며, 이는 한국화랑협회에서 추천한 전문 평가단에 의해 감정된 가격을 바탕으로 작가와의 협의를 통해 가격이 결정된다. 회화부터 조각, 미디어아트에 이르기까지 장르 역시 다양하다. 한편 공정한 작품 거래를 위하여 유래 없이 일인당 한 점의 작품 구매만이 가능한 점도 그렇거니와, 개막 전까지 이들 참여 작가의 명단이 공개되지 않아 더욱 궁금증을 유발한다.
‘아시아프’의 또 다른 특징은 관람객뿐만 아니라 참여 작가들에게도 초점이 맞춰진 행사라는 점이다. 이 행사는 대학을 갓 졸업하거나 아직 작품을 공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실력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그들의 작품을 판매하고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여 미술시장 작동 원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참여 작가들 모두 폐막식까지 긴장의 끈을 놓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작품 판매 여부와 관계없이 미술전문가들의 심사를 통해 우수 작가 7명을 선정, 세계 각국으로 현대미술여행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각 후원회 측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강좌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대중들의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계획이다. 축제 현장을 누빌 대학생 진행요원 ‘샘(SAM. Student Art Manager)’을 뽑아 전문적 미술품 판매 및 실무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점도 아시아프의 첫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대중과의 소통을 꿈꾸는 이 새로운 미술 행사의 두 가지 핵심이 바로 ‘작품 소장’과 ‘교육’이라고 밝힌 유진상 총감독(계원조형예술대 교수)의 설명에 수긍이 간다.
물론 아시아프의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익히 거론되어 온 것처럼 옛 서울역사 주변 노숙자 문제로 인하여 과연 쾌적하고 안전한 미술 축제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눈빛도 더러 있다. 하지만 ‘첫 만남’의 설레임에는 반드시 다양한 시도와 도전이 필요한 법 아니겠는가. 8월 무더위와 올림픽의 뜨거운 열기가 도시를 가득 채울 시기에, 미처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면 아시아프 전시장으로 발길을 돌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입장료는 일반 2000원, 학생 1000원.

이은선 <Deformed Intimacy> 싱글채널 비디오 3분 11초 2006

노세환 <조금 긴 찰나> 디지털프린트 100×200cm 2008

박찬경, 범속한 트임

작가 박찬경

범속한 트임

글 | 박만우·조선대 겸임교수

박찬경의 개인전 <신도안>을 본 후 나의 생각은 ‘박찬경은 쉽게 변하지 않는 작가’라는 것이었다. 그간 그의 작업량이 과작이었던 만큼 개인전을 연다니 내심 반가울 수밖에 없었고, 미술동네만이 아니라 국내외 여러 상황도 만만치 않은데 그가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게다가 평소 사진과 영화를 다루는 그의 솜씨를 익히 알던 터라 그가 자신의 영화를 찍었다니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멀티플렉스 상영관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미술전시에선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DLP프로젝터의 고화질 영상과 묵중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는 제법 극장 분위기를 잡기에 충분했다. 다만 영화 중간 중간에 요즘 사람들이 이런 흘러간 계룡산의 옛 이야기에 어떻게 반응할까 약간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사전 정보 덕분에 대강 어떠하리라 짐작은 했지만 박찬경이 처음 손수 만든 ‘웰메이드’ 영화인지라 낯설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가곡 <보리수>를 배경음악으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내가 알던 작가 박찬경은 그 화면과 더불어 거기 그대로 있었다.
나는 2000년 <미디어시티 서울>에서 그의 출품작 <세트>를 통해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중에 그의 이름은 그보다 몇 해 전 앨런 세큘라의 사진집 《피쉬 스토리》의 작가 후기에서 발견한 적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나로선 큐레이터나 평론가로 활동하려고 귀국해서 맨 먼저 조우한 작가이어서 각별했다. 그의 슬라이드 프로젝션의 설치 형식은 퍽 신선해 보였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킨 것은 슬라이드 사진들 각각의 질적 수준과, 동시에 영화 문화를 재활용하고 있던 작업 전체의 기본 골격이었다. 나는 곧이어 작가와 어떤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려고 만났다.
당시 나는 기획 의도를 설명하기 위해 미술잡지 《아트포럼》의 최근호를 꺼냈고 거기서 스탠 더글라스의 영화 세트를 활용한 비디오 작품 관련 기사를 펼쳐 보였다. 그는 대신 나에게 자신의 첫 번째 개인전 <블랙박스; 냉전 이미지의 기억>(1997) 도록을 건넸다. 그 뒤로 나는 그가 디렉터로 활동하던 대안공간풀과 그가 주축이 되었던 포럼에이의 지면 등을 통해 점점 그의 비평가적 안목과 글쓰기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내가 부재했던 한국의 1980년대 후반을 포함해 1990년대 전체를 관통하는 미술의 지형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 고마운 ‘선배’였다. 특히 ‘민중미술과 그 이후’와 관련된 미학적 전망은 누구보다, 다른 평론가 백지숙과 더불어 박찬경이 명시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접근 방식에 따라 재구성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이번 <신도안>을 통해 한결같은 느낌의 박찬경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비로소 그가 어떻게 자신의 작가적 태도를 민중미술의 유산에 접목하고 있는지 확연히 깨달을 수 있어서였다.

<신도안> 스틸 사진 2008(photo by 최원준)

잊혀진 자들의 기억과 역사의 반성

박찬경은 <신도안>을 통해 기존 작업의 핵심 주제인 ‘분단과 냉전’으로부터 커다란 선회를 시도한다. 이는 2005년 그의 개인전 <비행>에서부터 예견되었다. <블랙박스-냉전 이미지의 기억>(1997)에서 시작하여 <세트>(2000), 그리고 <파워통로>(2004)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분단 상황을 냉전의 맥락에서 다루어 오던 그의 작업이 2005년 개인전의 표제가 된 작품 <비행>을 계기로 한 사이클의 매듭을 짓게 된다. 이 작품의 소재가 된 2000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작가로 하여금 햇볕정책에 따른 통일의 불안과 희망에 눈을 돌리게 하였다. 남한의 통일에 대한 염원의 무의식 저편에 북한의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암시한 이 작품에서 작곡가 윤이상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어떤 의미에서 박찬경은 누구보다 통일을 염원했으나 남북모순의 비극을 송두리째 껴안고 세상을 떠난 윤이상의 삶과 예술을 위해 이 작품을 헌정한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함축하는 전환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기 위해서는 그의 이전 작업으로의 플래쉬백이 필요하다.
작가는 2002년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으로 미완의 프로젝트인 <김연자의 ‘우리의 소원’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에서 활동하며 수차례 평양에서의 공연을 위해 남북을 오가던 가수 김연자 씨와 긴밀한 협업 속에 진행되었다. 프로젝트 컨셉트에 따르면 김연자 씨가 노래 ‘우리의 소원’을 부르고, 이를 녹화하여 남한과 북한의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남북 동시에 방영하는 것이었다.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포스트 냉전시대에 햇볕정책이 가세한 새로운 역사적 분단 상황에 대응한 최초의 미술 접근이었다. 박찬경은 그때까지 존중해 왔던 <권력-미디어-기억>이란 문제의식을 여전히 유지한 채 6.15 공동선언 이후 과거 남북 모순의 구조 틀 속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상황 전개에 주목했다. 남북한 경제 협력과 이에 따른 각종 정치 의제 등이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확산되며, 억압된 기억으로서의 분단이 문화상품이 되는 현실을 박찬경 특유의 회의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회고적 관점에서 지나칠 수 없는 또 다른 요소는 그가 2003년에 출간한 사진책 《독일로 간 사람들: 파독 광부와 간호사에 대한 기록》이다. 이는 작가의 미국 유학시절 스승으로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앨런 세큘라의 작업 스타일이 강하게 느껴지는 프로젝트였다. 과거 <블랙박스; 냉전 이미지의 기억> (1997)의 텍스트들이 논문적 성격에 가까운 에세이였다면 《독일로 간 사람들》의 텍스트는 오히려 르포 기사 형식의 에세이였다. 박찬경의 사진과 텍스트를 통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역경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괴감이 들다 못해 허망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우리 정부는, 역사적 기록은, 아니 작가들은 지금껏 이런 현실을 두고 어떤 상징적 제스처조차 없었단 말인가? 이렇게 억울하게 희생되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이 있었을까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들 중에서도 반체제인사로 남은 이들의 삶과 초상은 글과 사진으로 담아내기에도 힘겨워 보인다. 그것은 식민지 경험에서 비롯된 한민족의 오랜 디아스포라 역사의 일부분이기도 하지만 냉전과 분단의 구도 속에 겪은 근대화와 민주화의 기억과 결부되어 비전향 장기수들의 초상들이 그렇듯 파편화된 실재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작가는 그간 <블랙박스>에서 <세트>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적 망각(Amnesia)의 기제로서 미디어와 같은 이데올로기 장치들을 비판적 관점에서 조명해 왔다면 이 역사의 맹점들을 다시 불러내기(Anamnesis)는 <독일로 간 사람들>에서 처음 등장한다.
다시 2005년 쌈지스페이스의 <비행> 전으로 돌아가 보자. 전시장 안에는 <파워통로>(2004) 비디오 설치 이외에 독일에서 한두 차례 사진 전시로도 소개된 <독일로 간 사람들>의 주요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다. 다른 층에서는 전통 산수화 이미지의 슬라이드 프로젝션과 인조 소나무들이 함께 설치작품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게 네 작업으로 구성된 전시 가운데 당연 전시 제목을 제공한 <비행>은 이 전시의 전체 의도를 가늠하게 해준다. 윤이상이 작곡한 <더블콘체르토>의 음향이 평양거리에 환영 나온 군중들의 몽환적 이미지들과 함께 형식적 긴장감을 조성하며 의미의 모호함을 더한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윤이상의 곡은 견우와 직녀의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견우와 직녀의 만남은 남북통일을 상징한다. 또한 윤이상은 곡을 쓰면서 견우와 직녀를 위해 하늘에 다리를 놓은 그 무수한 새들을 생각했을 것이라고 한다. 박찬경은 <독일로 간 사람들>에서 우리 안의 타자를 드러낸다.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다 사라져 간 그 많은 영혼들을 기리는 윤이상을 통해서 상생과 해원의 민중 공동체를 꿈꾸는 자의 모습을 반추한다.
자신들이 옳다고 믿었던 신념 때문에 억압당한 자들, 억울하게 희생당한 자들 그리고 기억에서 지워진 자들은 그들만의 온당한 삶을 꿈꾸었기 마련이다. 박찬경은 ‘분단과 냉전’ 삼부작을 뒤로하고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그들의 저항의 역사 속에서 구원의 계기를 찾는다. <비행>전은 작품들의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역사철학 마니페스토 같이 보였다. 개인전 당시 산수화 이미지의 슬라이드 프로젝션과 설치물들은 일종의 보유와 같은 성격으로 제시되었을 뿐 그 독자적이고 자기완결적인 의미를 헤아릴 수 없었다. 2008년 <신도안> 전시를 보았을 때 비로소 그때 그 설치작업이 <신도안>의 ‘예고편’임을 알게 되었다.

<신도안> 전시 광경(photo by 남기용)

로컬 유토피아 판타지

“실제로 나는, 우연한 기회에 마주친 계룡산을 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충격에 휘말린 적이 있다.” 작가는 <신도안>의 작업 동기와 관련하여 계룡산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왔던 체험을 진술한다. 그는 우리가 흔히 산의 정기 또는 신령스러움이라고 하는 것을 이같이 체험한 후 신도안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신도안을 망각의 우물에서 퍼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작가는 신도안이 자연의 풍경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피난 또는 희생의 땅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의 작업의 궤적은 애당초 자연미 혹은 숭고미와 유사한 작가의 주관적 경험에서 출발해서 실패한 유토피아로서의 신도안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역사적 각성으로 진화한다. 결국 한 장소에 대한 바라봄이 이야기를 낳았다. 그러나 거기에 신도안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신도안의 기록 사진들만이 작가가 영화를 만들기 위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작가가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이 사진들은 그것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부터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다큐멘트 기록을 위해 인터뷰하는 많은 참고인들의 증언은 그 사진들의 사실적 캡션일 뿐이다. 이 내러티브는 스크립트부터 촬영을 거쳐 최종적으로 편집에 이르기까지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작가의 ‘텍스트’이다. 그것은 종종 그 사진들에 근거해서 공간에 대한 작가 자신의 지형 인식(Mapping) 또는 ‘망령’들을 만났던 상상적 기록이다. 단지 죽고 없어진 자들의 사건을 기록하자니 픽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현되지 않은 비전,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언 그리고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력을 재현하기 위해 허구적 재현의 장치가 도입된 것이다.
신도안은 여섯 개의 작은 텍스트 또는 트랙으로 구성된다. 각개의 텍스트들은 모두 신도안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지만 별개의 이야기들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하나의 영화 안에서 볼 수 있는 시퀀스 상의 연결은 매우 느슨하다. 더욱이 여섯 챕터는 매번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이자 화자도 변하므로 일반적인 영화의 일체성 혹은 연속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등장인물들 간의 다이얼로그도 없어 내러티브 구조는 비교적 단조로운 카메라 워크, 화자들의 구술 그리고 캡션 텍스트에 의존한다. 사진을 기반으로 했던 그의 전작들 <세트>나 <파워통로> 등과 달리 박찬경식 몽타주는 여기서 음악, 사운드, 편집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하며 그 영역을 확장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형이상학(儒)과 종교(佛) 그리고 신화(仙)가 뒤섞이고 또한 이런 정신세계에 대한 경험이 현실의 관점에서 진술될 때 실험영화의 다양한 속성을 도입하는 점이다. 예컨대 보이스오버 해설과 자막의 활용, 롱테이크와 급진적인 장면 전환 그리고 분절되고 파편화된 내러티브 등의 특성이 절제된 형태로 적용되고 있다.
영화의 첫 번째 챕터 <삼신당>의 경우 삼신당 당주 김정심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삼신당에 오르는 장면 속의 행위와 다른 시간성에 위치하는 오프 사운드 효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사운드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고려는 때로는 텍스트까지 합세하여 뉴스영화 내레이션을 모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 번째 챕터 <기념촬영>의 경우 일제 강점기의 사진자료들이 보여질 때 자막해설이 동시에 일본어 내레이션으로도 들리게 함으로써 역사적 과거의 현실이 현재에 환기되는 생생함을 극대화시킨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섯 번째 챕터 <쿠베라>의 경우 다소 과도하게 느껴질 정도로 설명적 텍스트가 제시된 나머지 신령한 기운이 혜성처럼 계룡산 바위 위에 날아와 박히는 장면의 압축적 긴장감이 반감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형식적 측면에 대해 언급하자면 허구적 재현을 위한 장치들이 지적될 수 있다. <기념촬영>의 경우 극영화 계룡산의 일부분(footage)을 교차 편집해서 삽입해 지배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한 프로파간다 영화에 의한 현실 왜곡을 보여준다. 반면 <시천주> 마지막 부분에서 팔괘부적이 원을 그리며 맴도는 영상 처리는 우주적 질서에 대한 최면 상태의 경험을 암시함으로써 종교의 무의식을 불러낸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주술적 리얼리즘’을 연상시키는 <연천봉>의 제천의식 장면은 <영가무도>와 같은 다큐멘터리 챕터와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역사적 민중공동체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영가무도의 구음과 춤을 통한 정신의 훈련이 마치 상생과 해원의 세상을 도래하게 해주듯 말이다. 작가는 이러한 기층 민중의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집단적 상상력을 ‘유토피아 판타지’라고 부른다.
<연천봉>의 마지막 장면은 바위산 위의 원피스 아가씨와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쓴 교련복 청년이 포옹하는 것으로 시작해 지배 권력과 제도에 의해 희생된 모든 이들의 영혼을 위한 윤무를 펼치는 것으로 끝난다. 작가가 ‘키치의 정치학’이라 부르는 민정기의 회화작품 ‘포옹’을 인용한 이 장면은 민정기의 ‘민중공동체에 대한 솔직하고도 대담한 경애’를 재연한다. 그럼으로써 파국을 맞은 신도안의 현실은 현대 과학기술과 제도화된 종교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가늠하기 불가능했던 민중적인 원천으로의 복귀를 통해 피안의 환영으로 전치된다.
박찬경은 선가(仙家) 전통의 호랑이가 그려진 민화나 정선 또는 김홍도의 산수화 등에서 동북아 민중공동체문화의 정신적 원형을 찾는 것 같다. 김지하의 ‘풍류’ 사상이나 이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문화의 역사적 정체성에 관한 이론 제시를 시도하는 심광현의 생태미학 등이 그의 이론적 전거이기도 하다. 이들에 의하면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식민지 시대와 냉전적 종속의 근대적 관행은 흥과 같은 우리 고유의 정서적 에너지를 억압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민중 공동체는 현대사의 민주화 투쟁의 경험 가운데에서 소중한 미학적 각성의 계기를 획득할 수 있었다.

<독일로 간 사람들> 2003

‘영화’로 미학적 기획 실현

민중미술이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정치 또는 노동의 시위 현장에서 경험한 축제와 같은 흥분과 광장의 에너지를 통해 재현한 세계와 현실은 서구 중심의 단일 체제에 통합될 수 없는 서로 다르고 이질적인 지역 미술의 총화라는 인식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민중미술의 현재적 의미를 전망하는 논의에서 백지숙은 이러한 미학적 각성을 통해 하위 주체로서의 민중미술작가들은 서구 중심의 모더니즘 헤게모니로부터 반성적 거리를 취할 수 있었다고 진단한다. 박찬경 역시 이러한 인식적 지평 하에 지역성과 글로벌리즘의 이분법적 구속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동북아의 새로운 주체 형성을 위해 보다 구체적인 미감적 공동체 또는 정서적 원형을 복구하는 과제를 우선시한다. 예컨대 그가 200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공동프로젝트로 소개한 <JNP 프로덕션>은 테크놀로지 신화와 경제 성장의 신화의 그늘 아래 표피화되고 있는 동북아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암시하는 작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도안>은 이 야심찬 미학적 기획을 실현하기 위한 첫 신호탄이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영화라는 매체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작가 자신의 말대로 ‘장르 선택은 주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는 백퍼센트 순순히 믿기는 어렵다. 은연중 지금, 여기의 미술제도 현실에 대한 궁극적인 회의가 짙게 깔려 있는 선택이 아닐까 묻게 된다. 미술시장이나 미술관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전략적 입장이 그로 하여금 영화를 우선적으로 택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화이트큐브의 제도적 비판을 선도했던 개념주의 미술의 매체인 사진을 위주로 작업했던 그가 이제 화이트큐브의 블랙박스 안에서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 그 자신도 지금, 이곳의 왜곡된 구조의 미술관을 한시적으로만 괄호 안에 집어넣고 있을 것이다. 제도 비판의 정교함이 이제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운 현실 상황 아래 그가 제시할 ‘제3의 영화’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본다.
박찬경은 다른 작가들에게 글로 보시를 많이 한다. 정말 복 짓는 일이다. 물론 그런 과정 가운데 자신의 작업 방향을 탐색하고 문화적 개념에 의한 진영을 구축해 나가기도 한다. 반면 그의 작업에 대한 비평계의 반응은 인색했다. 그의 과작을 탓할 수도 있겠고 우리 비평계의 부실함을 이유로 댈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작가 자신의 미술실천 양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론가 및 문장가로서 작가의 출중한 능력이 다소 부담스럽게도 만들지만 그의 작업을 분석하고 거기서 획득한 미적 체험을 공유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그의 작업이 보여주는 ‘담론적’ 혹은 ‘개념적’ 성격 때문이다.
때로는 작품이 하나의 블록으로 이루어진 담론적 주장으로 보이기도 해서 개별적인 작품으로 만나는 일이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다. 때로는 작업에 수반되는 텍스트의 진정성에 숙연해져 할 말을 잃게 되기도 한다. 조금은 그의 작업에 낭만주의적 색채가 가미되었으면 한다. 그가 좋아하는 민정기나 배영환의 ‘프롤레타리아 낭만주의’까지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신도안>을 보고 나서 앞으로 우리도 가끔은, 그의 작품 앞에서 그런 행복한 순간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아라리오갤러리 김창일 회장

김창일 회장

“아라리오가 신비롭지 않나요?”

글 | 이선화 기자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앞 조각공원을 가로질러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교복을 입고 해맑게 수다를 떠는 학생들,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어린 손주와 할머니, 그리고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행인 등을 지나치며 걸었다. 그러자 순간 궁금해졌다. 데미안 허스트의 <채러티(Charity)>와 <찬가(Hymn)>, 로버트 인디애나의 <아트(Art)>를 비롯 수십억을 호가하는 작품들이 ‘푸른조각광장’이라는 이름의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수준 높은 예술품과 영유하고 있는지 자각하느냐가 의문스러워서다. 대한민국 내 손에 꼽을 만한 미술관과 갤러리는 서울과 근교 경기도 이내에 들어서 있다. 몇몇 눈에 띄는 공간도 있지만 여전히 지방에서 훌륭한 시설의 갤러리와 전시 기획을 향유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라리오갤러리의 설립취지 및 발전전략은 주목된다.
1989년 문을 연 천안 아라리오갤러리는 2002년 재오픈 후 본격적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미술시장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씨킴(Ci Kim)이라 불리는 김창일 회장이 미술계 최고 이슈로 떠올라 수번 회자되었다. 최근에는 독일 《모노폴(Monopol)》은 물론 《아트 리뷰(Art Review)》에 연속 영향력 있는 미술계 파워 인사 100인에 선정되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그리고 지금, 최고 연간 250억원의 작품을 컬렉션하며 세계적인 컬렉터로 주목받는 김창일 회장이 개관 후 첫 소장품전(7. 12~8. 20)을 열어 또 다시 관심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작품 수는 총 45점. 지난 2002년 재개관전으로 낙점된 키스 해링을 필두로 길버트와 조지, 데미안 허스트, 왕광이, 토마스 루프, 신디 셔먼, 바네사 비크로프트, 샘 테일러-우드 등 작가로는 13인이 참여한다. 그러나 실상 <The Moments of Arario>라는 제목의 소장품전에는 얀페이밍을 제외하고 지난 아라리오 전시에서 선보였던 작가의 작품들이 모두 등장한 것에 다름 아니다. 3천점 이상의 소장품 중 ‘특별 간택된’ 작품들이지만 전무후무한 새로움을 기대한 이들은 다소 의외다 싶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소장품전’이라는 의미를 상기시켜야 할 터다.
“아직 보여주지 않은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다수가 규모가 큰 작품들이어서 설치상의 문제로 보여줄 수가 없었습니다. 지그마 폴케, 안젤름 키퍼 등 공개 시 놀랄 만한 작품이 제법 됩니다. 다음 기회에 더 넓은 공간에서 해야죠.” 김창일 회장은 이번 전시에 대한 세간의 관심에 대한 응수보다 추후 미술관 건립 등의 건설적인 계획에 더욱 주목하는 입장이었다. 2005년 개관한 아라리오베이징, 뒤이은 아라리오서울과 지난 해 문을 연 아라리오뉴욕을 합하면 그가 운영하는 갤러리는 총 4곳에 달한다. 그러나 (주)아라리오의 총수가 관장하는 사업체는 한 해 수백억 가량의 자본을 투자하는 갤러리에서부터 백화점, 고속/시외버스터미널, 멀티플렉스까지로 일견 방대한 규모다. 천안의 인구가 18만명이었던 당시, 30대의 젊은 사업가 김창일은 터미널 사업으로 아라리오의 첫 삽을 떴다. 대다수는 그의 공격적인 도전을 무모하다며 의혹을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김회장은 100만명 이상의 잠재, 유동 인구를 고려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아카시아 나무를 심어서 그것이 꽃을 피우고 향기가 뻗어나가 결국 벌이 올 수 있는 거리”가 사업의 실체적 영역이라는 데 있어서 그의 소신은 확고했다. 그렇다면 갤러리 운영 역시 마찬가지다. 아라리오가 방점을 찍은 전속 작가 제도 또한 앞서 언급한 정책에 준하는 ‘긴 호흡’으로 시작/지속되고 있는 것. 인지도가 전무한 신인을 파격적으로 선정하기도 했던 아라리오갤러리 측은 현재 인도 출신의 수보드 굽타, 중국의 팡리준을 포함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출신의 30여명의 전속작가를 후원하고 있다.
“폭탄(Bomb)과 같다”. 김창일 회장은 작가의 역량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그들의 무한한 잠재성에 불을 붙여줘야 하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고 단언하며, ‘세계적 작가 탄생’의 모체가 아라리오이기를 공공연히 꿈꾼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 플랜을 안고 갤러리를 시작하기 이전 그는 미술에 문외한이었다. 대학에서 미술사나 실기를 전공하지 않았고 미술 관계자가 주변에서 조력자 역할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림과는 관계없는 사람이었습니다”라고 스스럼없이 밝히듯이 그가 작품 컬렉션에서 나아가 갤러리 운영에 뛰어든 것은 의외였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1970년대 후반이었다. 증권에서 확보한 여유자본과 당시 천안 터미널에서 직영한 매점 사업은 그를 수완 좋은 사업가의 성공 궤도에 진입시켰다. 그렇게 미술과 관계없는 경영인이 컬렉션을 시작한 때가 1978년. 인사동 거리의 퇴약볕 아래에서 맛보았던 느티나무 그늘의 시원함이 단초가 되었다며 그는 ‘운명적’이었음을 강조한다. 특별난 인연의 장광설을 기대했다면 추측은 크게 빗나간 셈이다. 70년대 후반 화랑이 모여들면서 예술거리의 성격이 강화된 인사동의 유유한 분위기와 그 생경함에서 그는 적잖은 감화를 받은 듯 여겨진다. 이때부터 그는 손에 꼽히는 이름 있는 화랑을 찾아다니며 작품 구입을 시작했고, 이렇게 미술과의 끈은 공고해졌다.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외관

제2의 업, 화가로서

미술 서적을 읽고 세계 유수의 전시 공간을 찾아다니고 컬렉션을 지속한 세월이 30여년이다. 갤러리 경영인으로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위치에 있는 듯 보였지만 그는 또 다시 도전을 감행하여 주위를 당혹케 했다. “내가 자만해져서 추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 같습니다.” 타고난 사업가인 그에게 작가의 길은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정점에 이르면 내리막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업이라며, 자신을 멈출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그림이었기 때문에 작가를 선택했다는 것. 작가 김창일이 주위의 냉혹한 평가를 인식하면서도 이 길을 걷는 데는 이처럼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원초적 생존 이유가 전제한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그가 예술이라는 신성한 터에 들어왔다고 여기는 권위적인 입장과 돈 많은 사업가가 휘두르는 진정성 없는 예술 유희라고 바라보는 시각, 그를 둘러싼 평가는 극단적으로 양분된다. 하지만 “나는 그림이 좋습니다”라고 당당히 어필하는 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 역시 적지는 않다. 김창일 회장은 말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1999년에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나를 멸시했어요.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죠. 멋을 낸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측면이 있었는데, 나는 내 인생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 설치물을 만들면서 본드가 손에 묻는 느낌이나 파스텔로 작업할 때의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나는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물어보죠. 주위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나’이기 때문에 좋은 이야기를 제법 해 주는 것 같기도 해요. 여하튼 계속 들어야 해요. 나를 터뜨리고 싶어서 하는 작업이지만, 다음 그림을 할 때 중요하니까요.”
천안아라리오갤러리 5층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대형 페인팅과 설치물, 상당한 양의 아크릴, 파스텔 더미 등을 만났다. 그는 영감을 받은 일화 등을 풀어내며 작업과의 연관성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멋스레 차려진 그곳이 과시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천 억대를 움직이는 사업가이자 세계미술계에서 주목하는 컬렉터, 그리고 갤러리 경영인 김창일은 고집스러움과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지금의 아라리오를 ‘지켜왔다’. 스스로를 강한 성격이라고 지적했던 김창일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지금에 와서 미술은 나에게는 꿈(Dream)인 것 같습니다”라고 수줍게 고백하듯 말했다. 그를 향해 편견의 벽을 쌓았던 이들 중 내가 포함되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나는 되돌아 볼 수밖에 없었다.

천안 푸른조각광장에 설치된 수젠 구어의 <쥐라기 시대> 앞에서 작가(왼쪽에서 두 번째), 쩡하오(맨 오른쪽), 김창일 회장

2008 August Special - 화가, 길을 떠나다

 

창작의 플랫폼으로서의 ‘낯설음’

이선화 기자

우리가 관객으로서 어떤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특징을 그 화가가 골라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가가 어떤 장소를 규정할 만한 특징을 매우 예리하게 선별해 냈다면, 우리는 그 풍경을 여행할 때 그 위대한 화가가 그곳에서 본 것을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중에서

박용식 <개와 와인병(스트라스부르그)> 디지털 프린트

소설가 김훈은 스스로가 소설가보다 자전거레이서로 불리기를 원한다고 한다. 차갑게 내려치는 섬세하고도 찰진 문체의 글쟁이는 《자전거 여행》이라는 여행 산문집을 펴낸 바 있다. ‘풍륜’이라는 이름의 자전거로 우리나라 곳곳의 풍정을 흐르듯이 살피면서 담아낸 이 글은 리얼리즘적 체득을 넘어선 산문 미학의 정수로 손꼽힌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정끝별은 “산하 굽이굽이에 들어앉은 만물을 몸 안쪽으로 끌어당겨 설(說)과 학(學)으로 세우곤 하는 그의 사유와 언어는 생태학과 지리학과 역사학과 인류학과 종교학을 종(縱)하고 횡(橫)한다”라며 그의 글을 이야기한다. 만경강 저녁 갯벌과 도요새들의 이야기를 쓰던 새벽의 여관방이었다고 기억한다. 김훈은 ‘한 자루의 연필과 함께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의 절벽 앞에서 몸을 떨었다’라고 적었고, 이 문장은 적잖은 감동을 밀려오게 했다.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 속, 무수한 자연과 삶의 풍경을 그냥 지나쳐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가 그렇고 시인이 그렇고 화가가 그렇다. 아니, 영감을 받아 밥벌이를 하는 모두가 전생에 타고난 업으로 눈과 귀, 그리고 가슴을 열어놓으며 살아가는 듯하다. 원시적인 삶을 지지했던 에밀 놀데는 베를린을 떠나 시베리아를 횡단해 남태평양을 찾았다. 여정의 시작은 이국적 삶을 향한 낯설음과 낭만적 풍정을 향한 기대에 기인한다. 한편, 당대 파리 중심의 주류화단에서 벗어나 반문명의 태도를 고수한 고갱은 타히티에서 10여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미술 역사상 전례 없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19세기의 화가들이 특정 지역을 향해 길을 떠나며 ‘반문명적 유토피아’를 꿈꾸었다고 한다면, 20세기에 들어서자 이국적인 매력이 주는 낯설음에 더 큰 기대를 거는 화가들이 많아졌던 거 같다. ‘사막의 꽃’ 산타페를 예술사에 알리는 데 공헌한 조지아 오키프는 당연 후자에 속한다. 1917년 뉴멕시코 지역을 여행하면서 우연히 산타페의 하늘과 금빛의 사막 풍경에 사로잡힌 그녀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세상을 떠나자 홀로 산타페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토착민에게는 익숙한 주위의 만물이 이방인에게는 일종의 불안감을 안겨줄 법도 한데, 이 대척점에서 그들은 아연한 자유의 기쁨을 맛보며 창작의 불꽃을 태운다. 그리고 새로운 풍경을 소유하고 싶은 미적 욕구를 충족시켜 간다. 미술사에서 여행과 관련지을 수 있는 화가들은 많다. 누구나 여행을 떠나고 기록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실험성을 모색하기 위한 일시적인 환기의 시각에서 그것을 끌어들이는 것은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 특정 지역에 단기간 혹은 장기간 체류하면서 화가의 일생을 대표할 만한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했을 때, 그들의 여정은 비로소 참다운 예술이 된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보들레르는 여행의 길에서 만나는 대형 선박을 “활기가 넘쳐나는 동물, 인류의 모든 한숨과 야망에 괴로워하며 숨을 몰아쉬는 동물”이라고 표현했고, 알랭 드 보통은 생각의 산파로서 여행을 정의하며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떠오르는 비행기에서 예술혼의 상승을 꾀하고, 달리는 열차에서 자유의 에너지를 얻으며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중심에서의 이탈, 그리고 시간이 정지된 듯한 환각의 상태를 맛볼 수 있는 길 떠남. 그것은 육체와 영혼의 변화(Change)이며 이동(Movement)이다. 낯설고도 낭만적인 환경에서 체득한 결과를 물리적 표현의 억압을 넘어 문화적인 다각도에서 접근하려는 시도, 그 속에서 화가의 ‘길(路)에의 의지’는 진정성을 얻는다. 이번 호 특별 기획은 ‘예술의 세계지도’를 펼쳐 보는 것이다. 각기 나름의 취향과 방식으로 세계 곳곳의 사이트(Site)를 찾아 떠난 16인의 화가가 만들어낸 16가지 빛깔의 작업 이야기이다. ‘여행(旅行)이 예술’이 되는 그 아스라한 경계 위를 걸어가 보자.

김병종 오치균 김주영 이상원 노순택 김선두 안창홍 전수천
심철웅 김영재 권부문 안강현 박용식 배병우 이호신 홍순명

홍순명 <Sidescape-080526> 캔버스에 유채 27×43.5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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