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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8.05

Abstract

특집 2008 ASIAN BIENNALES 세계 미술계에는 과연 몇 개의 비엔날레가 존재하는 걸까? 이제는 셀 수조차 없다. 다가오는 9월,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만 9개다.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5개국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의 주최측은 행사 준비에 분주하다. 광주비엔날레가 이번 '아시아 비엔날레 퍼레이드'의 첫 테이프를 끊는다. 그 다음 날에는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또 그 다음 주에는 미디어시티_서울이 열린다. 국내 비엔날레만 보려 해도 KTX에 몸을 싣고 서에서 동으로, 남에서 북으로 정신없이 달려야 한다. 좀더 욕심을 내서 아시아 비엔날레를 보려면, 말 그대로 '제트족'이 되어야 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비서구 지역의 비엔날레가 급증하면서, 아시아권의 비엔날레가 일대 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양적으로는 도약했지만 질적으로는 지역 행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의 정체성과 주제적 차별성은 오히려 약화됐고, 경쟁만 더욱 치열해졌다는 지적이다. 또한 비엔날레는 최근 세계 미술시장의 호황과 더불어 아트페어로부터 '미술 이벤트'의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아시아 비엔날레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비전은 무엇인가. art는 9개 비엔날레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각 비엔날레의 전략은 무엇인지 미리 알아본다. 또한 아시아 담론에 주목하여 비엔날레의 제도적 변화를 요구하고, 비엔날레 본연의 역할과 가치를 되새기는 두 평론가의 논고를 싣는다.

Contents

표지 정병국 <봄의 미풍> 캔버스에 아크릴릭 250×250cm 2007

에디토리얼 Asia Zoom In 미술과 돈_김복기
 
프리즘 
    이관규천(以管窺天), 돈에 취한 젊은 대가들_정준모
    스탁 신드롬, 필립 스탁이 뭘 포기했다고?_김상규
 
포커스 
    안젤름 키퍼_김승호
    하종현|센시티브 시스템_김복영
    전수천_카렌 쿠르친스키
    왕열|조순호|이규환_김백균    
    국대호|이광호_김정락
 
작가 인터뷰 
    정병국, 역습의 리얼리즘_이달승
 
특집 2008 ASIAN BIENNALES
    (1) 5개국 9개 비엔날레 미리 보기_편집부
    (2) 아시아 비엔날레, 비전은 있다_장석원
    (3) 비엔날레의 시대가 저물었다고?_유진상
 
아웃 오브 코리아 
    이상남_베리 슈왑스키
 
이미지 링크 베로니카 베일리
 
해외 작가 연구 
    아네트 메사제, 저 비밀스런 원초적 감정의 조각들_김성원
 
크리티컬 포인트 
    제주 4.3,‘기억 투쟁’의 미술은 살아 있다!_김종길
 
전시리뷰 
    SeMA2008|봄날은 간다|Japan Now|Revolving Sashimi
    리차드 차오|서정태|우제길|인도현대미술|줄리안 슈나벨
    템포그라피|이동기|정혜경
 
파리 리포트 
    로렌스 포르뱅_장승연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강기훈|정경희|박종호
 
에세이 
    왜,‘재료의 연금술’인가?_김경운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2008 May Special- 2008 Asian Biennales

아시아 비엔날레가 급증하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내의 경우 관 주도의 행사로 전락하면서 예술적 완성도보다는 대중적 흥행을 중시하는, 비엔날레의 선전 효과만을 노리려는 사례도 드물지 않게 목도된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시아의 특수한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서구에서 온 저명한 기획자와 작가를 모시는 데 급급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해 비엔날레를 여는가?

글 | 장석원·미술평론가, 전남대 교수

일카 할소 <키트카 강-자연박물관> 디지털프린트 2006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된 이후 아시아권에서는 많은 비엔날레가 나타났다. 대만의 타이페이비엔날레, 중국의 상하이비엔날레, 베이징비엔날레, 광저우비엔날레, 난징트리엔날레 그리고 일본의 요코하마트리엔날레와 후쿠오카트리엔날레, 동남아의 싱가포르비엔날레, 한국의 부산비엔날레와 미디어시티_서울 등 십여 년 사이에 ‘비엔날레’라는 이름의 국제현대미술전이 창궐하는 분위기이다. 특히 오는 9월에만 오픈하는 아시아권 비엔날레가 9개에 이르러 이렇게 많은 비엔날레의 동시적 개최가 결국 비엔날레의 추락을 몰고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지금 세계적으로 100개를 상회하는 비엔날레가 매년 개최되고 있고, 개최지 역시 인구 500명 정도의 작은 마을부터 1000만을 넘는 도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비엔날레의 이면에는 각기의 지역적 특성과 현대미술이라는 코드의 세계성이 맞물려 여러 가지 현상을 빚고 있다. 많기 때문에 다양성을 수용한다는 개념과 또한 많기 때문에 차별화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는 비엔날레의 존재 의미를 두고 토론할 때마다 빠짐없이 나오는 주제들이다. 비엔날레는 무엇이고 왜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들도 지속되고 있다.
특히 역동적으로 변화해 가는 아시아권에서 비엔날레는 지역성과 세계성을 관통시키는 출구로서 필요성이 증대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비엔날레 버블’에 해당되는 현상과 함께 무용론이 떠오른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비엔날레가 동시적으로 개최된다면 서로의 가치를 상쇄시키고 존재 의미마저 지워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알렉산더 제인 <Verity, Faith and Justice> 2006

비엔날레와 정치의 결합

한국의 경우만해도 광주비엔날레가 있는데 왜 부산비엔날레가 필요하냐는 반문이 이어져 왔다. 부산은 국제영화제를 살리고 광주는 비엔날레를 살리자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과거 PICAF(부산국제현대미술제) 체제에서 부산비엔날레로 발전시켜 왔고 오히려 차별화 전략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각 지역에서 비엔날레로 표출시키고자 하는 문화적 욕구가 있는 한, 이러한 병발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의 경우는 1995년 지자체가 실시되면서 최초의 세계화 프로젝트로서 광주비엔날레를 떠올려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미지 제고에 있어서 비엔날레의 효력을 알아차린 지방 정부의 수장들은 정치적 장악에 힘을 기울여 의사 결정기구인 이사회는 자율성을 잃은 지 오래다. 비엔날레와 정치가 결합되면서 비엔날레는 예술 행사로서의 의미나 가치보다는 대중적 흥행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변질되었다.
2006년 9월 광주비엔날레가 주최했던 열린토론회에서 성완경은 광주비엔날레가 자부하는 것처럼 아시아의 대표적 비엔날레라거나 세계 5대비엔날레로 꼽힌다는 것과 다르게 2류 비엔날레로 전락했다는 의미의 위기론을 다음과 같이 표명했다. “광주비엔날레에 지금 중요하게 대두되는 문제는 평범성과 망각의 위험인 것으로 보인다. 요즘 광주비엔날레를 예전처럼 열광적으로 언급하는 분위기가 사라진 느낌이 든다. 특히 서울의 많은 미술인들에게서 그런 감을 받는다. 세계적으로도 아마 광주비엔날레는 1류의 평가를 받는 비엔날레가 아닌 듯하고 이러한 현상은 최근 더 고정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광주비엔날레는 세계적이라기보다는 지역적 고려에 의해 움직이는, 그리고 비예술적 맥락에 의해 더 장악된 2류 비엔날레라는 인상을 준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이러한 지적은 관(官)에 의해 장악된 비엔날레가 갖는 비효율성, 비예술적 요소에 의한 전락의 위기를 꼬집는 것이다. 성완경은 더 나아가서 전시 기획의 진품성 문제를 거론하면서 “전시기획의 평범성은 비엔날레 운영의 관료주의적 경향과 짝을 이루는 문제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시 기획에까지 미치는 관 주도의 둔중함이 곧 비엔날레를 평범성과 망각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 주도의 부작용은 7회 총감독을 뽑는 과정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복잡한 선정 과정을 통하여 압축된 최종 후보의 제안 발표를 듣고 특별한 이유 없이 선정 보류를 결정하더니, 그 이후 새로이 구성된 선정위를 통하여 2차 후보 압축 후 비공개로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채 무효화시켰다. 그리고나서 후보 선정 과정을 밟더니 복수 후보에 의해 제안 발표를 검토 후 결정하게 되어 있는 과정을 생략한 채 결국 신정아와 외국인 오쿠이 엔위저로 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리고 신정아의 허위 학력이 폭로되고 정관계의 외압 및 추천 과정 상의 믿을 수 없는 모호성 및 정치성이 드러났다. 비엔날레가 쇼라면 감독 선정 과정부터 암울한 쇼를 펼친 것이다.
신정아 역풍으로 이사회 총사퇴 사태를 맞았지만 시를 위시한 당연직 이사를 중심으로 다시 비슷한 구조의 이사회를 재생시키고 개혁을 명분으로 명예이사장이던 시장을 이사장으로 바꾸었다. 오히려 관 주도를 분명히 고정시켰다. 문화 CEO를 구해서 비엔날레 운영을 한다고 했지만 수 개월 째 표류하고 있다.
비엔날레가 관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 2류 비엔날레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정치는 숫자를 필요로 하기에 관람객 숫자는 비엔날레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며, 대중을 끌기 위하여 비엔날레는 박람회적 요소를 강화시키고 볼거리를 제공한다. 예술의 이슈는 더 이상 중요치 않게 간주되고 그 형식만을 빌려 흥행을 벌리고자 한다. 광주비엔날레 고유의 방향타를 상실하고 브랜드화에만 침잠하여 외국인 유명 감독만을 선호하고 의지하는 결과를 빚어 내었다.
어째서 외국인 감독에게는 제안서조차 요구하지 못하고, 먼저 감독을 위촉하고 사후에 전시 구상을 들으며, 이에 대하여 아무런 반론이나 문제 제기가 없는가? 그토록 중시하던 영어가 되지 않아서 그런가? 외국인 유명 브랜드에 위축되어서 그런가? 이를 추진하고 장악하는 세력이 침묵할 때에 비엔날레 역시 침묵하고 둔화된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결국 비엔날레가 평범성과 망각의 위험에 빠졌다는 지적은 스스로 자초한 구조적 위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는 9월에만 9개에 이르는 비엔날레 개막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르네상스를 뜻하는 것인가 혹은 공감대 없이 표류하는 경합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후죽순처럼 벌여진 이 지역 비엔날레들의 출현은 타지역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지역 이기주의와 경쟁 심리에서 비롯된 점이 많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처럼 비엔날레의 권위와 역사를 인정하는 분위기는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 없다. 아시아권은 일종의 춘추전국시대처럼 횡적으로 벌어지는 복마전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비엔날레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고 있는가?
2007년도 부산비엔날레 학술심포지움에 참여했던 테츠야 오자키(일본 《ART iT》 발행인)은 ‘국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현지 시민의 것’이라는 모범 같은 답을 제시하면서도 지역성의 해석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다. 상하이비엔날레 공동 큐레이터의 한 사람인 토비아스 버거가 ‘비엔날레는 국제적인 제트족 큐레이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전년도 시드니, 베네치아, 이스탄불 등에서 세 차례나 전시된 작품이라도, 예를 들면 광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않은 작품이니까 그대로 전시해도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테츠야 오자키는 지역과의 연관이라는 개념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면서 ‘장소 특정적 국제전을 만들 수 없을까’하는 것이 고민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예를 들기를 2006년 싱가포르비엔날레를 맡은 후미오 난조가 ‘믿음(Belief)’을 테마로 내걸며 싱가포르에서 특징적인 장소를 전시장으로 택했는데, 원래는 법원이었던 시청 건물이라든가 예전의 병영, 번화가인 오차드 거리의 길가나 점포, 가톨릭 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불교 사원 등으로 문화와 관광을 보기 좋게 엮었고 다민족이 문화적으로 공생하는 글로벌 시대의 이상적 라이프 스타일 모델을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과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테츠야 오자키의 의견은 토비아스 버거의 의견보다는 나아 보인다. 토비아스 버거의 의견은 국제전이 현지 시민의 것이라면서 기실 국제적인 작가들을 종합해서 보여준다면 현지 시민들은 볼거리가 있어서 좋고 아무 문제 없는 것 아니냐는 식이지만, 이는 곧 세계 주요 비엔날레의 아류로 만드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문화적 신자유주의 내지는 주변의 중심에 의한 종속화일 따름이다. 테츠야 오자키는 장소 특정적 국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적 특성에 맞는 국제전 성격을 구축해 가자는 의견인데, 해당 지역이 갖는 역사와 전통, 정체성, 환경, 도시 규모, 생산성 등을 고려하자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런 특성은 이미 각 비엔날레가 고려하고 있는 문제랄 수도 있겠는데, 이보다 나아가서 지역적 한계를 가지면서도 세계적일 수 있는 이슈를 제기하고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예술적 성향과 역할의 차별화 및 개별화가 돋보일 때에 비엔날레가 국제전으로서 주목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제적으로 명망있는 작가들을 많이 모았다고 해서 좋은 비엔날레 전시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기획자가 있다면 이는 3류에 해당하는 수준의 것이다. 지역성 및 정체성 만을 중시해서 국제전을 만든다면 그 지역의 특성을 드러내고 다양성에 일조하겠지만, 이 또한 1류급에 드는 비엔날레 전시를 구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2006년 광주비엔날레의 열린 토론회에서 찰스 에셔가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을 주목한다. “나는 오늘날의 비엔날레는 비-서구적 산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날의 비엔날레는 서양이 아닌 광주와 같은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 시작은 19세기의 베니스이지만, 이것은 사실상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비엔날레의 뜻과는 거의 연관이 없다. 후 한루도 관여했었던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의 경우를 보면, 약간 문제적인 발언일 수 있겠지만, 사실상 서양의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생성된 구조와 내용을 재수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진정한 개혁은 서구의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 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비엔날레에 대한 다른 측면을 이야기 하자면,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제안이라는 개념이다. 저에게 보다 흥미롭고 보다 바람직한 비엔날레는 제안적 성격을 갖는 비엔날레다. 이러한 비엔날레는 현재의 경향을 모아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항상 앞을 바라보며 현재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즉, 이것이 현재 상황에 대한 시각이라고 말하기보다 시각적 표현의 영역에서 앞으로 무엇이 가능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비엔날레의 가장 첨예하고 새로운 문제는 사실 상 서구의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비엔날레의 전시는 미래의 가능성을 두고 제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터 칼레센 <꿈의 궁전> 300×200×350cm 헬싱키 바다에 설치장면 2003

아시아 담론을 만들자

아시아권의 비엔날레가 무엇이 되어야 하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의 문제는 자명하다. 지역 비엔날레는 전통적으로 또는 현실적으로, 정치적으로 강요되기 쉬운 제도적 억압과 모순으로부터의 짐을 덜어내어야 한다. 이를 덜어내는 과정이 곧 비엔날레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와 더불어서 지역적으로 갖기 쉬운 농후한 로컬리즘 및 내셔널리즘 또는 민족주의 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로컬리즘은 비엔날레가 지향하는 방향과 대치되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다. 최근의 비엔날레에서 주요 주제로 부각되는 탈식민주의나 정체성, 다문화주의 등이 여전히 아시아권에서 씻어내기 어려운 문제들로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광저우트리엔날레에서 주제로 내건 ‘탈식민주의의 결별’이나 상하이비엔날레의 ‘런민광장’은 근대라는 식민시대의 기억과 이로부터 벗어나 구축해 갔던 해방 이후의 역사 및 오늘의 관점에서 보는 서구 문화 등을 대응해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아시아라는 카테고리를 상투화시키는 단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싱가포르의 경우처럼 ‘믿음’이라는 주제에 이어서 ‘경탄’이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여전히 다문화적인 지역의 상황을 반추하는 경우 역시 서구적 담론의 연장과 연역이라는 범주를 반복하는 모습이다. 정체성이나 다문화주의, 탈식민 등의 적용은 아시아의 아시아다운 저력과 현대성 및 매력을 담기에 부적절하거나 과거적 또는 상투적이 되기 쉽다는 점을 쉽게 지울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찰스 에셔가 말했던 “진정한 개혁은 서구의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대목은 오랫 동안 기억될 문제이다. 진정한 개혁이 서구권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아시아라면 아시아 특유의 개혁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아시아 비엔날레가 취해야 할 요점이 주어질 것이다. 아시아의 개혁에 관한 아시아의 각성이 뒤따를 때에 그것은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다. 찰스 에셔는 ‘개혁’이라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예술에 있어서 혹은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세계적 채널로 밝혀질 수 있어야 하고 이슈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시아권 비엔날레에 주어진 중요한 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싱가포르비엔날레처럼 세련되고 장소 특정적인 성격을 살린 비엔날레가 무난하다고는 보지만 좋은 비엔날레 혹은 인상적인 비엔날레라고 보지는 않는다. 후쿠오카트리엔날레처럼 아시아 현대미술에 집중하는 형태는 그 성격을 간결하게 나타내기 때문에 좋지만 세계적 비전에 도전하는 맛이 덜하다. 중국의 상하이비엔날레는 늘 중국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쩌면 중화사상은 중국의 세계화에 가장 큰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아시아의 저력을 느끼게 하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역동적 변모와 미래적 예시를 감지하게 하는 아시아권 비엔날레가 창출되기를 희망한다.

가족을 위한 전시들-미술관 봄나들이展 외

서울시립미술관 <봄나들이>전에 전시된 윤지영 <성냥팔이 소녀, 손을 꼭 잡아주세요>

전시도 보고, 나들이도 가고!

기상청이 예고하는 5월의 날씨는 예년보다 3~4도 가량 높은 포근한 날씨가 이어질 전망이다. 먼저 5월의 휴일 및 기념일을 따져보자. 5월 1일 근로자의 날, 3일 ‘놀토’, 4일 일요일,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0일 ‘놀토’, 11일 일요일, 12일 석가탄신일, 15일 스승의 날, 19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 등. 전시를 보러 다니기엔 더없이 좋은 기회가 아닌가.
덕수궁 돌담길이나 서울시청사 앞에 갈 기회가 있다면 서울시립미술관도 들려보자. 4월 30일부터 6월 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앞마당 및 정원에서는 〈미술관 봄나들이 : 걸리버, 미술관에 가다〉전이 개최된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이 전시는 봄을 맞아 답답한 전시장 내부에서 야외로 전시공간을 확장하여 인근 직장인, 가족단위 관람객에게 쉽고 편안한 관람을 유도한다. 올해 전시는 《걸리버 여행기》의 내용을 모티프로 하여, 총 30여점의 조각 및 설치작품이 전시된다. 동심의 세계로의 모험담을 연상시키는 출품작들은 야외공간과 적절히 어울리며 사진을 찍기에도 좋다. 참여작가는 이한수 이부록 안지미 안강현 이원주 변대용 박은선 변경수 윤지영 이병호로, 각기 기운 생동한 봄의 기운을 반영하듯 재치있는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관람료는 물론 무료. 큰 부담 없이, 삼삼오오 나들이 하듯 찾을 수 있는 전시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크로스 컬처-만화와 미술전〉이 4월 30일부터 5월 29일까지 개최된다. ‘제9의 예술’로 불리는 만화는 이제 현대미술 장르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만화와 미술전〉에는 만화와 미술이 접목된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 100여점이 전시된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만화 형식인 카툰과 풍자, 캐리커처 등을 전시하여 예술 본유의 품위라는 빗장을 풀고 외부와의 다양한 접촉을 시도한다. 강석현 김두진 김명화 김석 김을 김태중 김태헌 김학민 노준 등 28명의 참여작가들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부조리한 권력에의 저항 등 비판적인 시각을 자유로운 태도로 표현한다. 카툰의 사회비판적 성격이 잘 드러나면서도 재치 있고 무겁지 않은 유머가 겸비된 만화와 미술의 혼성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전시다. 어린이들에게도 만화는 친숙한 매체이므로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다른 관점으로 전시를 접할 수 있다. 전시를 관람한 후 녹음이 푸르른 우면산 산책로를 한번 돌아주는 것도 추천 코스다.
청주시 흥덕구에 위치한 신미술관은 〈미술관은 내 친구〉전을 5월 1일부터 31일까지 개최한다. 〈미술관은 내 친구〉전은 ‘속닥속닥 상상이야기-미술관 속으로’라는 부제 하에, 김쟁래 김진선 김현주 정미라 조영아 이선영 최선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만화 캐릭터를 이용한 작품과 같이 미술에 문외한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전시되어 보다 손쉽게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작품 감상은 물론 체험교육프로그램인 ‘예술체험 그리고 놀이’도 진행된다.
청담동에 위치한 아트랩갤러리에서는 5월 1일부터 15일까지 유니세프가 주최하는 〈물과 세상의 어린이〉전이 열린다. 이 전시에는 사진작가 강제욱의 사진작품 30여점이 전시된다. 강제욱은 지난 12년간 약 40개국을 떠돌며 역사와 문화, 환경 등을 주제로 작업을 해 왔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작가가 촬영한 아프가니스탄 티베트 이디오피아의 나환자촌, 장애인 학교, 빈민촌 등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선보여, 그들의 희망과 존엄성을 관람객에게 전달한다. 강제욱은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1년부터 《지오》 《시사저널》 《사진예술》 등의 매체에 글과 사진을 기고해 왔다. 〈물과 세상의 어린이〉전은 교육프로그램이나 체험위주의 전시는 아니지만,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함께 전시장을 찾아 다른 문화권과 지구촌의 현실에 대한 교육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고양어울림미술관 <흙썰매>전 체험전시 전경

신나는 체험 위주의 전시

0교시 부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초등학교부터 0교시 제도를 도입하면서, 어린이들은 학교와 학원, 과외로 나날이 고단할 수밖에 없다. ‘가정의 달’ 조차 나가서 뛰어놀 시간도 없다면 불행한 일이다. 5월엔 교육체험프로그램을 위주로 한 전시들도 속속 오픈한다. 단지 ‘보는’ 전시가 아니라, 직접 만져보고, 서로 어울려 놀면서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전시들이다. 아이와 학부모 모두 해묵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제격이다.
고양어울림누리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높빛어린이세상〉의 2008년 테마인 ‘자연을 소개합니다’와 함께, 환경, 예술, 가족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고양어울림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영란의 어린이를 위한 흙놀이-흙썰매〉전이 5월 3일부터 6월 22일까지 개최된다. 이영란은 인형극과 조각, 퍼포먼스를 조화시키는 형식인 ‘오브제극’이라는 독자적인 장르를 개척한 작가. 이번 전시는 흙을 소재로 한 체험형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흙이라는 물성을 극대화하여 만지고, 보고, 듣고, 밟는 등의 행위를 통해 시각뿐만 아니라 오감을 사용하는 독특한 기획을 선보인다. 특히 ‘흙썰매’ 프로그램은 300㎡의 전시장 내에 대규모 흙썰매장을 마련하여 흙과 물을 통해 이색적이고 신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 중에 흙을 제대로 접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흙썰매〉전은 물, 빛과 함께 원시적인 오브제를 동시에 체험하고 다루면서 자연과의 소통을 통한 예술적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시안미술관의 〈미피와 함께 만나는 현대미술, 미술관에 가요!〉전은 5월 3일부터 7월 13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는 2005년 일본 삿뽀로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2007년 일본 뷔페미술관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을 ‘미피(토끼 캐릭터)’라는 캐릭터를 통해 관객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여 연속적으로 성황을 이룬 전시다. 시안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당시 컨셉을 그대로 옮겨 왔다. 인기 캐릭터인 미피가 등장하는 그림책 《미피의 즐거운 미술관》 속의 세계를 전시장에 재현하여, 현대미술 작품을 모양 색상 선 소재 재료 내용 등으로 구분하면서 차근차근 알기 쉽게 풀이한다. 미피 캐릭터의 원작자인 딕 브루너의 원화 작품 전시와 참여작가인 이목을 유영운 노준 한젬마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그밖에도 딕 부르너의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과 ‘블록놀이존’ ‘미피꾸미기존’ ‘미로존’ ‘토끼의 집’ 등 다양한 코너가 준비되어 어른까지 자연스럽게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또 부대행사로 ‘냠냠! 맛있는 미피 쿠키 만들기’ ‘알록달록 미피 도자기 만들기’가 진행된다. | 이정헌 기자

강제욱 <비를 반기는 소녀> 잉크젯프린트 71×107cm 2001

정병국, 역습의 리얼리즘

역습의 리얼리즘

글 | 이달승 · 미술평론가

이달승(이하 이) 안녕하십니까. 작업실로 오면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화가에게 작업실의 정체는 무엇일까’하고 말입니다. 화가의 작업실 혹은 아틀리에를 말하면서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재능, 영감, 창조 등과 같은 무언가 신비스런 분위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창조의 산실, 이 표현은 오늘날 다분히 어떤 이데올로기의 찌꺼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아틀리에는 분명 훌륭한 재능이 발휘되는 창조의 산실이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워홀 같은 작가는 아예 자신의 작업실을 냉소적으로 팩토리, 즉 공장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몬드리안의 작업실은 위생적인 건축, 설계, 사무실 정도를 짐작해 볼 수도 있겠죠. 작업의 성향을 염두에 두면 말입니다. 그런데 세잔, 특히 고흐의 경우는 솔직히 말해서 도대체 작업실을 연상할 수가 없습니다. 재능이란 단어를 발음하기가 민망스럽게, 그냥 온몸으로 뒹구는 투쟁의 몸짓만 떠오르니 말입니다. 화가 정병국에게 작업실은 어떤 장소입니까?
정병국(이하 정) 내 작업실은 영화관 같은 곳이지요. 흰색의 대형 화면, 대사와 침묵, 그 곳은 많은 동작들이 오가고 많은 시간들이 엉기었다 사라지고, 피었다가 지는 영화관이죠. 관객이 없는 영화관. 그리고 내가 그 영화관의 감독이 됩니다.
어둠의 침묵 속에 빛이 그림을 그리는 영화관. 그런데 정숙을 어기고 말을 해야 하니, 혹 나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아닐까요? 잠자코 있을 수도 없고, 곤란하네요. 아니나 다를까 화가들은 그림을 두고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나 자신 또한 그림의 완강한 부분들을 말로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자신에 대해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 자신을 숨기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니체의 충고를 따른다면 이런 종류의 대화라는 것 자체가 작가에게는 썩 좋은 일이 못되지요. 가급적 작업과 관련하여 리얼한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만…. 그래서 리얼리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본인은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하시나요?

<바로 가까이에 온 봄>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181cm 2007

리얼리즘을 회화 자체의 문제로

진정한 리얼리스트, 뭐 이런 이야기를 많이들 하고 또 듣게 되죠. 하지만 정작 가까이서 본 것은 드뭅니다. 어쩌면 요즘 현실에서는 그 의미 자체가 무의미해진 것도 같습니다. 나는 보이는 것과 진실의 간격에서 리얼리티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은 그 간격을 최소화시켜 보려는 안타까운 노력이라 할 수 있죠. 그렇지만 그 간격은 내 작업이 움직이고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 간격은 지도상에도 없고,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역설적으로 그 곳에 섰을 때 나는 가장 신선한 기운을 맛봅니다.
전혀 사실적이지도 않은 것을 두고 리얼리즘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지요. 신선하지 못한 리얼리즘 말이죠. 리얼리즘은 사실을 다루어야 하는데 리얼리즘을 관습적인 문제나 아카데미즘의 문제로 이해하는 게 대부분이죠. 우리 미술 교육의 현실도 그러하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리얼리즘을 자꾸만 솜씨나 재주 정도로 이해하거나, 자기 작품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하고, 그러다보니 구체성이 없는 장식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요.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그림을 통해 진정한 리얼리스트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잘 그리는 사람은 많아도 말이죠.
쉽게 말해서 보이는 외부 세계를 그대로 묘사한 그림 정도로 생각하게 되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 그린 그림을 선호한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리얼리즘, 누보 리얼리즘, 하이퍼 리얼리즘 그리고 포토 리얼리즘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보를 보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연 중에 리얼리즘을 자꾸만 결과의 측면에서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상을 잘 그렸다, 현실을 잘 묘사했다는 식으로 말이죠. 따라서 사회주의 리얼리즘도 마찬가지입니다. 80년대 민중미술은 재주나 구호는 똑같이 리얼리즘을 오해하게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견해는 대상 혹은 현실이라는 원인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 전제하고 들어가는 셈이죠. 미술은 주어진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나 현실에 다가가 새로이 보려는 힘겨운 싸움이지요.
사실 사람들은 잘 그린 그림, 흔히 리얼하다고 불리는 작품들 앞에 서서 잘 그렸다 하면서도 정작 오래 머물게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약간의 기술적인 호기심으로 인한 관심은 보이겠지만요. 그림은 결국 보이는 것과 진실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데 그 몫이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예술은 우리 가슴의 박동수에 비해 수세기 늦거나 아니면 거꾸로 우리를 앞지름으로써 언제나 객관성의 야릇한 부족을 야기합니다.
객관성의 야릇한 부족. 그렇죠. 무엇을 잘 그렸다는 점에 비중을 두다 보면 작가가 어떻게 그렸는가에 대한 관심은 소홀해지기 마련입니다. 리얼리즘을 잘 그린다는 기량이나 관습이 아닌 화가가 어떻게 그리는가 하는 회화 자체의 리얼리즘 문제로 다룬 화가가 바로 세잔이죠.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린다는 것, 즉 대상에 대한 감각을 화폭에 실현하는 일이었죠. 그에게 리얼리티(Reality)는 곧 실현(Realisation)이었습니다. 물론 이 실현은 언제나 야릇한 부족을 담고 있고. 그런데 이 야릇한 부족이 주관을 넘어선 객관에 대한 의지라고도 볼 수 있죠. 이러한 의미에서 세잔의 작업은 차라리 과학에 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잔과 마찬가지로 리얼리즘 문제를 회화 자체의 문제로 제기한 화가는 한국의 경우 겸재 정선이 거의 유일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나름대로 겸재의 그림을 볼 때 현대적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감각은 우리 뒤에 있으면서도 우리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진짜 현대적 리얼리스트라 할 수 있죠. 현대는 언제나 현대입니다. 브뤼겔을 한번 보세요. 그리고 겸재는 흔히 말하는 리얼리즘과는 관계 없는 작가이지요. 우리가 애매하게 사용하는 리얼리즘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진 사람이 겸재의 그림 앞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림 앞에 선 화가의 초상

작업을 보면서 나는 자꾸 화폭 너머로 인간 정병국을 보려고 합니다. 불쾌하지 않으십니까?
불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합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농사도 그렇지만, 일 따로 사람 따로일 수가 없죠. 그것은 자루 없는 삽을 말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일을 하려면 당연히 사람의 손으로 자루를 잡아야겠죠.
인물을 많이 그려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림을 작가의 초상으로 보고 싶다는 뜻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그림은 작가의 초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여기서 초상이란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의 초상은 아닙니다. 작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것은 실제로 불가능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많은 화가들이 초상화에 몰두했는지도 모르죠.
영화관에 가면 많은 관객이 영화를 객석에서 보는 것 같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화면 속에 들어가 있는 자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관객은 그 영화의 내용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대한 사실보다 자기가 그 내용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화가가 자기 그림 앞에 섰을 때 거울 앞에 선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것도 벗고서 말이죠. 작품 속의 많은 인물들이 그런 것처럼요. 선생님과 가까이서 오랜 기간 알고 지냈지만 저는 선생님을 잘 모릅니다. 추측만 할 뿐이죠. 살아 있을 때는 누가 진정으로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그러나 그가 죽었을 때 온갖 추측과 판단이 멈추면서 우리는 그를 다시 만난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진짜 그를 닮은 모습 말입니다. 물건도 그렇지 않나요? 망가지거나 부서지면서 물건이 문득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지 않나요? 그 때의 모습이 사용할 때는 몰랐던 사물의 숨겨진 본모습은 아닐까요? 제가 말씀드린 초상이란 이러한 의미입니다. 닮아 보인다는 뜻이죠. 보이지 않다가 비로소 닮아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본 모습 혹은 리얼리티라는 게 사실은 이처럼 닮아 보이는 모습이 아닐까요? 또한 화가의 눈이란 결국 이렇게 닮아 보이는 순간을 쫓는 눈이 아닐까요? 제가 선생님 그림에서 화가 정병국을 보려고 한다는 의미는 다름 아니라 닮아 보이는 순간을 쫓는 화가의 눈을 보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물은 기능이 소멸했을 때 떠오르는 애잔한 그 모습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진정한 리얼리티는 떠난 후에 남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간격, 그 간격 사이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요. 진정한 리얼리티를 접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 짧은 순간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화가는 그 순간을 증폭시키고 지속시킬 수 있는 감각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지경을 스치는 자리에서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의 그 순간이 리얼리티를 엿보는 시간이 아닐까요? 그리고 바깥 모양이 실제와 매우 동떨어진 나머지, 마침내는 지속되지 않는 한 순간의 희열만 느끼고 말긴 하지만요.

<정오> 캔버스에 아크릴릭 245×350cm 1993

균열과 갈등이 주는 화면의 긴장

객관성의 야릇한 부족이랄까요. 무엇을 찾는 듯 헤매는, 그러면서도 무표정한 모습, 그리고 등을 돌리고 있는 많은 인물들….
무표정한 모습이 가장 리얼리티에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리고 등을 돌리고 있는 인물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가끔 예술은 인간이 겪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 겪을 줄 모르는 것만을 예고하는 것 같습니다.
인물뿐만 아니라 그려진 나무나 바위에서도 우리에게 등 돌리며 불쑥 드러나는 그러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회화의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다소 이론적이긴 했지만 르네 마그리트의 눈이 그러했고, 그리고 몇몇 그림들은 마그리트와 유사한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요?
나무와 바위, 구름, 날아가는 새나 땅 위의 동물 그리고 부서진 가구, 버려진 그 무엇들 모두는 나에게 동등합니다.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고, 어느 공간, 어느 시간이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범신론자이지요. 르네 마그리트는 종교적 시각으로 본다면 무신론자가 아닐까요? 어떤 부분에 있어서 나와 유사점이 있다면 그의 눈엔 모든 사물의 가치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난 초현실주의자는 아닙니다.
모든 사물을 공평하게 바라보고 또 정겨우면서도 어렵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모든 화가는 범신론자여야 하겠죠. 그런데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항상 긴장이 느껴지는데, 그 긴장은 어디서 온다고 보십니까? 부동의 정적 속의 긴장, 뭐 이런 표현도 가능하겠습니다만, 너무 심심하고 추상적이죠.
먼저 타고난 성격이 그렇지요. 그러한 성격은 이미 DNA 안에서 예고되었던 것 같고, 니체의 피안의 세계, 차라투스트라의 목소리를 통해 울리는 인간의 존엄과 고양된 영혼의 모습들이 나에게는 강력한 긴장의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니체의 생각, 니체의 글은 앞뒤가 없는 순간적 전복의 긴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나 역시 구체적 설명이나 전주가 없는 대상의 느닷없음에 주목하게 되고, 그 때의 긴장을 화폭에 실현시켜 보려고 애쓰죠. 그것은 결국 긴장된 조형 상태를 요구하게 되는데, 나로서는 절제된 화면 구성과 색채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느닷없이 다가오는 대상의 단순한 조형 상태로의 이전이 나에게는 리얼리티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어떤 효과음이나 음악을 배제한, 이미지 그 자체의 리얼리티를 두둔하고 싶습니다. 가장 순수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누벨바그의 영상 미학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쫓고 있는 생각과 드러나는 그림 사이의 균열, 갈등 같은 것은 없습니까? 어떤 예감에서, 혹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기도 하시는지요.
화폭에 기운을 주는 것이 바로 이러한 균열과 갈등으로 인한 긴장입니다. 악기의 현이 떨며 음색을 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팽팽히 당겨져 있어야 하겠죠. 쫓고 있는 생각이 단순한 관념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형태나 색이기도 하답니다. 존재의 뒤안길과 같은 색의 배경이 펼쳐지면 그 위로 이미지들이, 행복처럼 슬픔처럼 망각 속에 잠겨 있던 간결한 존재의 형태가 어른거리기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만질 수 없는 기억의 저장소에 갇혀 있다 상당한 세월이 흘러, 때로는 다른 엉뚱한 대상과 만나면서, 묻혀 있던 기억은 예기치 않은 새로운 빛깔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균열과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그것이 온전히 드러났을 때 이루어지는 엄격하고 아름다운 불일치인 이 지점이 오히려 내가 머물고 있는, 아니 머물고 싶은 곳이지요.
펼쳐진 배경은 푸른색이 주된 톤을 이루고 있습니다. 고흐의 푸른색, 마티스의 푸른색, 이브 클라인의 푸른색 등이 있는데, 본인에게는 푸른색의 배음이 어떤 표정, 어떤 울림으로 다가오는지요?
내가 원하는 푸른색이 캔버스에 칠해졌을 때 나는 그림의 반을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노란색 대비를 통한 반 고흐의 강렬한 블루, 마티스의 청명한 푸른 패턴, 이브 클라인의 색과 빛의 관념적 혼합에 비해서 내 그림 속의 푸른색은 오랫동안 어두움 속에서 또는 은폐되어 있던 장소에서 그 뚜껑을 열었을 때, 만져지듯 다가오는, 어쩌면 색이라기보다는 수많은 기억의 시간들이 새로이 벌이는 밀회의 장소인 듯합니다.
인물들의 포즈는 어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자면 멈칫 하는 그런 포즈 말입니다. 그래서 다소 인위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연출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카메라의 앵글에 문득 잡힌 정지 이미지 같기도 하고요. 고전적 포즈와 현대적 영상 이미지의 기묘한 결합 같기도 합니다.
내 그림에는 여러 이질적 요소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고전주의적 엄격함과 낭만주의적 감흥, 미니멀의 단순함, 포스트모던의 불일치 등등…. 어떻게 보면 상반되는 요소들이 공생하는 것 같습니다.
화면은 단순해 보이는데, 상당히 잡다하네요?
그렇습니다. 짬뽕이지요. 미안합니다.(웃음)
사실 그게 매력이기도 하지요. 음악으로 말하면 클래식과 뽕짝, 미술로 말하자면 고전과 간판장이 그림, 정서로 말하자면 낭만의 감흥과 신파조의 감상의 결합이랄까요.
교미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위험하시네요. 씩씩하고 쨍쨍한 교미면 괜찮죠. 그럼 좀 더 위험해지세요.
하하, 자신이 없네요. 그 다음은 성스러움과 음란의 결혼입니까?
다시 니체로 돌아왔네요. 보들레르의 악의 꽃도 그렇고, 그는 예술은 성스러운 매춘이라고 했습니다.

<18송이의 장미> 캔버스에 아크릴릭 291×435cm 2006

대상의 매혹에 눈이 멀다

사실 우리 미술이 전체적으로 너무 감상적이다 보니 기백이 없죠. 시도 그렇고, 너무 감미롭고 여성적이죠. 대중가요도 힘은 없고, 애수의 눈물만 잔뜩 있죠. 또 너무 예쁜 것만 찾고, 꽃그림 좋아하고, 그러다보니 리얼리즘은 잘 그린 그림으로 치부되고요. 나도 앙탈만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애수가 호락호락한 감정은 아닌데 말이죠. 술집 작부의 고독도 싸구려는 아니지 않습니까?
애수. 그런데 어떻게 보면 애수의 감정이 예술의 출발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애수, 향수 각각에는 예술의 근원적 움직임에 관련된 울림과 지향이 있죠. 굳이 나눠본다면 서구는 노스탤지어, 한국은 애수 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좌우간 애수가 힘이 되지 못하고 눈물로만 그치고 있다는 게 우리 예술의 서글픈 현주소 같습니다. 박수근에게서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한데요. 아니 보다 엄격히 말해서 문제는 그와는 상관 없이 우리가 그에게서 한국적 애수의 조형적 리얼리티를 향한 치열한 싸움이 있었는가를 질문하기보다는 한국적 정서를 대표하는 국민 작가라는 타이틀로 칭송하거나 서둘러 그 감미로운 설움에 안겨버리고 마는 우리 정서의 나약함이 문제입니다. 매너리즘이지요. 바로 이러한 감미로운 애수의 매너리즘 위에서 ‘접시꽃 당신’ 류의 멜로물이 번성하는 거겠죠. 현실의 어려움은 눈물과는 다르지요. 세잔의 초상화를 보면 그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눈에서 분명 노스탤지어를, 눈을 부릅뜨고 그가 지켜보고 있는 노스탤지어를 느낄 수 있죠. 그런데, 애수가 예술의 근원적 향수로 자라기 위해서는 결국 힘의 문제, 기백의 문제이겠죠. 패기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리얼리즘이 처하고 있는 문제와 동일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작품 중에 대작이 많은데요, 단순히 스펙터클한 효과를 노린 것은 아닐테고, 인물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감각과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나와 그림의 첫 육감적인 만남은 극장의 영화 간판을 통해서입니다. 또 어렵게(?) 극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하얗고 커다란 스크린, 영화가 시작되기 전의 긴장감과 설레임, 어린 소년의 꿈의 크기만큼 그 스크린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아! 흰색과 어두움의 커다란 출렁임, 다시 영화관으로 돌아왔네요. 작품 제목 중에 ‘밤의 입술’이 있죠. 영화 제목 같네요. 밤의 입술은 작품 전체가 궁극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리얼리티와의 관계에 대한 은유로도 들립니다. 밤의 입술은 추상적이면서도 상당히 구체적인데요. 리얼리티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밤은 공간과 깊이로, 입술은 시간과 속도로 다가오면서 말입니다. 역습의 키스와도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리얼리티는 내가 챙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하는 것입니다. 여인의 입술에 입맞춤하는 것, 밤의 입술에 입맞춤하는 것은 훔치고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겁니다. 리얼리즘은 대상을 다루고 제어하는 기술이 아니라 대상의 매혹에 눈이 머는 것입니다. 밤의 입술은 나를 눈멀게 하고 달아나지요. 인생의 리얼리스트, 예술의 리얼리스트 한용운의 노래처럼 말입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밤의 입술, 당신은 악의 꽃이네요. 여하튼 참 좋은 계절입니다. 여기 팔공산 풍경이 그대로 자연 영화관입니다. 세잔이 말하기를 화가는 루브르에 들어가지 말라 했죠. 빛은 밖에 있으니까요. 그래도 밤이 되면 다시 영화관으로 들어가실 거죠? 오늘밤 영화도 ‘밤의 입술’인가요?

국립현대미술관 아네트메사제展

<부푼-가라앉은> 채색된 낙하산 직물, 컴퓨터모터 가변설치 2006

저 비밀스런 원초적 감정의 조각들

글 / 김성원 · 아틀리에에르메스 디렉터

2007년 여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시작된 <아네트 메사제 : 사자(使者)들>이 핀란드의 에스푸 현대미술관에 이어 드디어 한국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상륙했다. 앞으로 일본의 모리 미술관과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여정을 남겨놓고 있는 아네트 메사제의 <사자(使者)들>은, 그의 초기부터 최근까지의 주요 작품들을 함께 선보인다. 이는 한국 관람객들에게 인간의 유년기, 사랑, 욕망, 공포, 잔인성, 신체, 성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달한다.

지난 여름 퐁피두 센터에서 아네트 메사제 전시를 보았을 때가 기억난다. 메사제의 전시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정말 오래간만에 전시를 통해 맛볼 수 있었던 기쁨이기도 했다. 이 전시는 메사제의 70년대부터 지금까지 근 40여년 동안의 작품을 보여주는 일종의 회고전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회고전 형식을 취하기보다는 40년 동안의 작품들 가운데 명작들로 구성된 일종의 ‘걸작선’에 더 가깝다.
퐁피두센터 전시는 관람객들이 기존 회고전에서처럼 작품들을 연대기별로 감상하지 않아도, 전시 연출의 극적 에너지로 인해 단번에 작가의 작업 세계로 빠져들 수가 있었다. 또한 초기 작품부터 최근 작업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메사제의 작품들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사랑 욕망 성 신체 공포 등의 인간 보편적 감정의 강박증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더 강렬했고 생생한 체험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들과 우리, 우리와 그들> 혼합재료 가변설치 2000

순회전, 전시 공간에 따른 색다른 연출

퐁피두센터의 전시는 회고전 치고는 비교적 좁다고 느낄 수 있는 ‘메자닌’ 공간에서 열렸다. 전시 공간은 마치 동굴 속과도 같았다.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방향감각을 잃은 관람객들은 눈 앞에 보이는 장관에 혼이 빠져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즐거움과 공포감을 동시에 충족하고 있었다. 전시라기보다는 오히려 공연을 관람하는 느낌이었다. 비좁은 공간의 단점을 잘 활용한 덕분에 아마도 이러한 극적인 분위기와 느낌이 훨씬 더했던 것 같다.
관람객들은 좁다란 복도를 거닐며 틈틈이 보이는 작은 구멍을 통해서 그 속에 뭐가 있는지 엿보기도 하고, 잘 보이지 않는 글씨를 읽으려 고개를 쭉 빼고 서있기도 했다. 또 컴컴한 공간에서 형태불명의 움직이는 물체들의 향연을 기다리기도 하며, 천정에 매달린 잘 보이지 않는 사진들과 글씨들을 어떻게 해서든 읽어보려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관람객들은 모두 뭔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엿본 듯 킥킥거리기도 하고, 비밀스런 의식에 초대받아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조바심 내며 기다렸다. 그리고 이 모든 작품과의 만남은 매우 진지하고 강렬하게 이루어졌다.
반면 이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퐁피두센터 전시와는 대조적으로 공간을 아주 넓게 사용했다. 작년 여름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인지 그때와 동일한 감정과 강렬함은 없었다. 비교적 작품 연대기를 존중한 전시 구성이기도 했다. 마치 지하실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정지된 그림자들과 함께 장엄한 의식의 순례를 치르고 있는 듯했으며, 넒은 공간에 자유롭게 펼쳐진 아네트 메사제의 영혼이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순회전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동일한 전시지만 관람객들은 매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전시란 공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상대적 위험 부담이 따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한 작가의 작업세계가 전시공간과 컨텍스트 그리고 관람객들에 따라서 어떻게 색다른 연출과 그 수용이 가능한가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순회전의 매력이다. 특히 아네트 메사제의 작업처럼 공간에 따라 매번 새롭게 연출할 수 있는 작업들은 순회전의 묘미를 더욱 극대화시킨다. 아네트 메사제의 작품들을 익히 다 알고 있고 이미 한번 본 전시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욱 핀란드 전시가 어땠을까 하고 궁금해지기도 하고 앞으로 있을 일본과 런던 전시에 호기심을 갖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카지노> 붉은 실크명주, 고무, 형광램프, 분출식 엔진과 컴퓨터시스템 가변설치 2004

소녀적 감성을 통한 여성 정체성의 터부 깨기

“나는 ‘사랑에 관한 페인팅’을 할 권리를 주장했다. ‘사랑 영화’, ‘연애 소설’은 있는데 ‘사랑 회화(Peinture d’Amour)’라는 말은 없다….” 그렇다. ‘사랑’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 감정 중 하나다. 물론 ‘사랑’에 대한 정의는 무척이나 광범위하지만 가볍든 심각하든, 영원하든 일시적이든, 강렬하든 미미하든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인간의 삶을 작동시키는 원초적 요소다. 아네트 메사제의 모든 작업은 사랑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희비극적 감정들을 근간으로 전개된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은 애정 영화에 열광하고 연애 소설을 읽느라 밤을 샌 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설이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사랑을 하고 때론 이별도 하며 사춘기소녀의 감성을 만끽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감정은 ‘나’와 가상의 대상 사이에서 매우 은밀하게 진행된다. 다분히 유치하지만 지극히 인간적 감성이 아닌가.
메사제의 초기 작업은 바로 우리의 ‘소녀적 감성’을 노출시킨다. 70년대 초 ‘사랑 회화’라는 용어와 함께 메사제는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다양한 이름들을 부여하며 한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리는 <앨범들-컬렉션>을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왜 메사제의 소녀적 취향의 가벼운 이야기들이 이 시기에 미술계에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수 있었는가? 70년대 미술계는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누구든지 알고 있다. 물론 남성들이 주도한 미술이니만큼 그 당시 여성작가의 자리는 매우 미미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감수성 따위는 근엄하고 심각한 70년대 미술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작가가 속해 있었던 차갑고 건조하며 지적이고 개념적인, 또 남성 지배적인 이 당시 미술 현장의 분위기 속에서 메사제는 “여성의 감수성 아니 소녀적 연애 감정을 미술계에서 꺼내 놓는다는 것은 바보나 한심하고 생각없는 멍청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이러한 컨텍스트에서 메사제는 당당하게 여성의 개인적 ‘감성’, 그것도 유치한 ‘소녀적 감수성’을 노출시키며,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터부와 클리셰를 깨면서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수집가 아네트 메사제

물론 소녀적 감수성을 어떻게 표현하고 변모시키며 ‘작품’으로 승화시키는가가 중요하다. 첫 번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숙생들>은 유리 진열장 속에 박제된 새들을 설치해 놓은 작품이다. 희미한 불빛 아래 가지런히 진열된 새들 중 일부는 진짜 새의 시체이고, 일부는 작가가 헝겊과 실을 이용해 만든 인조 새다. 이 작품은 70년대 그의 작업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기숙생들>은 <앨범들-컬렉션> 작업들과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이 시기 메사제의 작업들은 공책, 박제동물, 드로잉 등 다양한 자료와 텍스트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기숙생들>은 작가의 ‘아틀리에’라는 공식적이고 전문적인 장소와 ‘침실’이라는 지극히 사적이며 비밀스런 장소를 넘나들며 만들어진 작업이다. 예술과 삶의 통로에서 탄생한 <기숙생들>은 작가가 쓴 새에 관한 여러 편의 이야기들을 동반하게 된다. 어린 아이가 뭔가를 수집하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아네트 메사제의 70년대 작업은 오브제와 텍스트가 병행하며 긴밀하고 사적인 대화를 즐겼다.
그런가 하면 사춘기 소녀들의 익지 않은 사랑 감정을 여과 없이 노출하기도 했다. 남자들의 사진을 수집하며 소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욕망과 사랑의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메사제는 무려 60여개의 앨범들을 만들었다. 소녀의 일기장 형식을 빌려 온 이 앨범들은 텍스트와 포토앨범으로 구성되었다. 이 <앨범들-컬렉션> 시리즈는 아네트 메사제의 직간접적 사랑 이야기들, 즉 연애 이별 화해 결혼 아이 일상 등이 수집된 작업이다. 소녀들이 뭇 남성들에게 느끼는 풋풋한 사랑에서부터 결혼, 모성애, 그리고 여성의 지극히 평범하고 사적인 일상들을 수집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 <내가 싫어하는 남자들> <마드모아젤 아네트 메사제의 결혼>은 주로 신문이나 잡지에 나온 유명인들의 사진을 수집한 것이다. 우리는 한 소녀의 비밀스런 일기장을 남몰래 열어보며 나도 한 때 이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슬며시 미소 짓기도 한다.

<매달린 자들의 발라드> 인형, 모터 외 혼합재료 2002

포스트페미니즘의 전조

<지워진 아이들>은 어린 아이들의 얼굴의 일부를 지워버린 사진들로 구성되었다. 아이의 얼굴을 연필로 잔인하게 지우고 그것을 하나하나 수집한 이 앨범은 <기숙생들>에서 볼 수 있었던 부재하는 모성애 그리고 두려움과 슬픔 등이 만연한 작업이다. 작가의 요리법을 수집한 <요리책>, 쇼핑 영수증을 수집한 <가계부>, 뜨개질 하는 법을 그린 <뜨개질> 등, <앨범들-컬렉션>에 수록된 수많은 추억들은 지극히 평범한 한 여성의 일상 이야기들로 이루어졌다. 이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적 일상들은 사진, 노트, 드로잉, 텍스트 등의 70년대 개념 미술 형식을 통해서 하나의 완벽한 ‘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
남성 중심의 미술계와 미술 언어 그리고 거기서 탄생한 건조하고 차가운 미술 형식 안에 여성의 일상을 담으며 여성성과 여성의 감수성도 예술의 이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작품으로서 증명했다. 70년대 메사제의 작업에 사용된 뜨개질, 자수, 브리콜라주, 패브릭, 감성적 글쓰기 등은 어느덧 20세기 후반 미술사의 조형 언어로 자리매김하며 미술계 내 여성의 위치를 만들어 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물론 아네트 메사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 운동가’는 절대 아니다. 작업에서 그 어떠한 액티비즘의 요소도 찾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아네트 메사제의 70년대 작업은 여성성을 강조함으로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게 하며 극단적 출혈 없이 인간으로서의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 모두 가질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 감성과 사유를 매우 지혜로운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즉 격렬한 ‘페미니즘’의 맹점을 일찍이 간과하고 ‘포스트페미니즘’의 전조를 울렸던 것이다.
<앨범들-컬렉션> 시리즈를 통해서 아네트 메사제는 ‘아네트 메사제 수집가’에 이어 ‘아네트 메사제 사기꾼‘, ‘아네트 메사제 목공수’, ‘아네트 메사제 실용적 여성’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여 나갔다. 이 시기에는 주로 드로잉과 자수를 사용했으며, 특히 여성 비하적 속담을 찾아서 천에다 수를 놓기도 했다. 이 속담들은 불어와 프랑스 혹은 유럽 가톨릭 문화를 이해해야 더욱 그 묘미를 느낄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세계 어디에서도 통용되는 명언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아네트 메사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빤다’라는 말로 바꾸어 정성스럽게 수를 놓았다. 물론 ‘빤다 혹은 핥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감상자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내가 남자들처럼 목공일을 할 때>라는 드로잉 시리즈는 집에서 못을 박거나 혹은 페인트칠을 하는 등 사소한 집안일에 대한 드로잉과 설명들이다. 빼곡하게 써내려 간 이 설명들을 다 읽으려면 눈이 다 침침해질 정도다. 마치 우리가 남자들 대신 집안일을 할 때 이 설명들을 참조하라는 듯 자세히 번호를 달아가며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단어’로부터 시작한 작업들

그 다음 단계는 <단어들-드로잉들>과 <단어들의 드로잉들>로 연결된다. “나는 작업을 할 때 그 어떤 형태나 색채에서 출발한 적이 없다. 언제나 단어에서 출발했다. 단어는 나에게 일종의 시동 장치였다.” 아네트 메사제는 언제나 단어 리스트를 만들어 놓는다. 보호 부끄러움 망각 질투 약속 유혹 등 리스트 속 단어들은 대부분 감정과 느낌에서 온 것이며, 80년대 작가의 작업에 지속적으로 등장한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드로잉들>은 초기에는 알파벳에서 출발하여 연상 작용을 통해 하나의 단어를 형성하게 된다. 주로 남성들의 ‘비어’ ‘욕지거리’ 등의 단어가 종이에 다양한 색채들로 그려지기도 했다. 이 <단어들의 드로잉들>은 80년대로 넘어가면서 신체의 일부분을 찍은 사진과 단어 혹은 텍스트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나의 작품들>은 종이에 입, 손, 귀 등의 신체를 조각 낸 사진들을 붙이고 단어를 그려나가는 작업과, 벽에 신체 일부의 사진들을 걸고 그 주변에 단어들을 그려나가는 방식을 병행했다. 이 <단어들의 드로잉>은 물론 단어라는 읽어야 하는 요소가 있음에도, 또 신체들이 조각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과 텍스트 이미지가 합해져 하나의 신체 이미지를 암시하게 된다. 80년대 작업은 거의 모든 작업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신체’를 말하고 있으며 작가가 느낀 다양한 감정들에서 나온 단어들이 이 ‘신체’를 형성하게 된다. 물론 70년대 소녀적 풋풋한 사랑은 아니지만, 80년대는 보다 성숙한 인간의 사랑 감정들을 신체 이미지를 빌어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작품 <나의 조그만 우상들>에서 처음으로 봉제 인형들이 등장한다. 곰 토끼 코끼리 강아지 등 다양한 동물 봉제 인형들은 저마다 인간 신체의 일부 사진이 달려 있으며 거의 읽을 수 없는 단어들의 드로잉이 그려져 있다. <나의 소망>은 신체 부분사진 액자들과 그 위에 조금 작은 텍스트 액자들이 겹쳐서 걸린 작업들이다. 노끈으로 묶여진 조그만 액자들은 마치 봉헌물처럼 벽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다양한 감정의 인생을 표면화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네트 메사제는 머리카락으로 ‘계략’‘비밀’‘약속’ 등의 단어를 만들어 텍스트 위에 콜라주를 제작했다. 메사제에게 있어 “글씨는 우선적으로 시각적 요소”다. 그래서 단어들로 드로잉을 하기도 하고, 천으로 단어들을 만들기도 한다. ‘의존-자립’ ‘기쁨-불쾌’ ‘소문’ ‘보호’ ‘바니타스’와 같은 단어들은 작가가 천으로 알파벳을 오려서 그 속에 솜을 넣고 꿰맨 일종의 봉제 인형과도 같은 단어이다. 작가는 이 봉제 단어들을 벽에 기대 놓거나 부착시기도 하고, 천정에 매달기도 하며, 바닥에 펼쳐 놓기도 한다.
‘소문’은 사람을 밟을 수도 있고 마비시키기도 한다. 메사제의 <소문>은 이러한 공포감과 잔인함을 어린 아이들의 장난감과도 같은 컬러풀한 봉제 단어로 표현했다. 그의 작업은 이렇듯 우리에게 친근하고 귀여운 봉제 인형들이 형태불명의 형상으로 변신해서 천장에 매달려 돌아가기도 하고, 형형색색의 색연필들이 매서운 칼날처럼 우리를 겨냥하기도 한다. 또한 정성들여 만든 봉제 단어가 바닥에 펼쳐지며 마치 고문으로 뒤틀린 듯한 신체들의 꿈틀거림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네트 메사제는 사회 속의 여성의 조건부터 인간의 조건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 분야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봉제 단어들은 어느새 우리가 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기괴한 오브제들로 변신한다.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기형아들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 같다. 이 형체들은 다양한 첨단 기계 시스템들을 동반하면서 점점 더 비극적 연극을 연출하게 된다. 이 시기 메사제의 공간 활용 방식과 스케일이 점차 확장되기 시작한다. 벽에 주렁주렁 매달린 봉제 단어들은 그 의미를 파악하기 전에 일종의 으스스한 유령들로 다가온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의 유령인지 그 형태를 파악할 수가 없다.
<매달린 자들의 발라드>는 천으로 만든 모종의 형상들이다. 어둠 속에서 레일에 매달린 이 형상들의 실루엣은 서서히 군무를 하고 있다. 마치 ‘죽음의 무도’처럼 말이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 관 출품작이기도 했던 <카지노>는 일종의 거대한 규모의 ‘공연’과도 같다. 이 작업은 공간 전체를 뒤덮는 12×12m 크기의 붉은 색 반투명 실크 덮개와 동일한 천으로 만든 상어 떼들 그리고 컴퓨터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10분마다 한 번씩 공간 뒤쪽에서 붉은 천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등장하면서 풍선들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꺼져버리면서 다시 퇴장한다. 아네트 메사제 작업 가운데 가장 고도의 테크닉과 공간 구성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피노키오>는 수 십 개의 서양식 베개들과 목조로 만들어진 피노키오 그리고 비정형의 형태들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베개에는 검은 색 가죽으로 만든 비정형의 비극적 형상들이 실로 묶여 있고, 그 가운데 한 베개에만 목조 피노키오가 부착되어 있다. 공간에 따라 연출 방식이 달라지며, 기계 시스템으로 베개들의 움직임을 작동시킨다. 이 수많은 베개에는 위협적인 동물들의 형상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베개에 꽁꽁 묶인 피노키오는 그 어떤 저항도 못하며 기계의 거대한 힘에 이끌려 끊임없는 수직 수평 운동을 하고 있다.
고도의 복잡한 테크닉으로 만들어졌든 극도의 단순한 요소들로 만들어졌던 간에 메사제의 작품은 그것의 상징성을 가시화하고, 인생을 때로는 희화하고 때로는 비극적으로 그리기도 한다. 그리고 메사제의 <사자(使者)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또 시간에 순응하기도 하면서 인간의 가장 근본적 감정들을 표면화한다. 이로써 작품의 시대적 컨텍스트를 초월하여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을 기쁨과 두려움으로 전율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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