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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8.04

Abstract

특집 재료의 연금술, 100人 100態 ○ 화보|가지각색 미술재료 ○ 표|재료의 연금술사들 ○ 글|오브제 회화_박영택 질료와 정신의 탈주_김백균 선의 조각, 중력을 벗어나다_박우찬

Contents

표지 황호섭 <108-1> 청동망, 필름 22×16cm 2007

에디토리얼 봄은 권력 흩날리며_김복기
 
프리즘 
    무료관람 제도, 성급한 진행이 문제다_최병식
    “디자인 코리아”? 문화 인프라부터 갖추자_정준모
 
아티스트 아틀리에 아카이브 
    윤석남_이선화
 
포커스 
    김병종|한진만_김복영
    한강르네상스, 서울|목포 그리기2_조은정
    샌 정|런 샤오린_이선영
    진기종|김순기_강수미
 
특집 재료의 연금술, 100人 100態 
    화보|가지각색 미술재료
    표|재료의 연금술사들
    글|오브제 회화_박영택
         질료와 정신의 탈주_김백균
         선의 조각, 중력을 벗어나다_박우찬
 
작가 인터뷰 
    서용선, 도시의 관찰자 ‘진실 게임’을 벌이다_이선화
 
큐레이터 인터뷰 
    로랑 헤기, 존재와 시간의 메타포_김새미
 
이미지 링크 엘코 블랑
 
전시리뷰 
    심문섭|김봉태|토마스 엘러|부암동 43-2번지|홍성담|D황
    김효숙|양만기|박미나&Sasa[44]|사치요 츠루미|차규선
    뮌|이동주|원성원|기는 풍경
 
믹스앤매치 
    조숙진 vs 이상은_장승연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한슬|LESS|박민규
 
아웃 오브 코리아 
    황용진_윤진섭

에디토리얼

Articles

2008 April Special - 재료의 연금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회화는 그 스스로가 사물이 되고 세계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오브제로, 일루전으로 실재화시켰다. 회화의 확장인가, 아니면 회화의 변질인가? 촉각적이면서 물질적인 회화는 조각과의 경계를 흔들며 망막 외에 촉각과 또 다른 감각기관을 겨냥하면서 진화했다. 작가들은 캔버스 앞에 앉아 고유한 화풍을 연구하는 대신, 청계천이나 을지로 주변 상가로 뛰쳐나가 희한한 재료들을 사 모으며 ‘연금술사’가 된 듯 새로운 물성을 실험한다.

글|박영택

조성묵 <Communication> 식용국수 500X400X100cm 2001

회화의 결정적 재료인 유화물감은 15세기 즈음에 발명되었다. 캔버스와 유화는 눈에 보이는 외부 세계, 그 가시적 세계상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가장 탁월한 매체였음을 그 이후의 회화의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유화가 다른 형식의 회화와 특징적으로 다른 점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듯한 느낌, 유약이 갖는 고유한 결, 그리고 묘사한 대상이 가지는 견고함’(존 버거) 등이다.
유럽 유화는 시각적인 것을 표상하기 위한 독특한 형식을 발전시켜왔으며, 그렇게 형성된 하나의 바라보는 방식(a way of seeing)은 이런 관습의 총체이다. 유화는 그것의 구조에 있어서 세계를 자세히 그려낼 수 있는 ‘상상의 창’과 같다고 여겨져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흔히 전통 유화의 전성기를 1500년에서 1900년까지로 잡고 있다. 그러나 유화의 영향력이 현저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도 유화물감은 회화에 있어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수단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회화가 하나의 창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기 시작하면서 유화의 영향력은 이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그리고 사진의 등장은 이미지 생산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회화의 지위가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동시에 유화물감이라는 결정적 도구 역시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피카소의 파피에 콜레는 유화가 아닌 오브제와 사물이 회화에 부착하고 개입함으로써 회화의 오랜 열망, 즉 회화 스스로가 사물, 세계가 되고자 했던 열망을 일거에 해결함과 동시에 유화물감 이외에 다른 재료들이 회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다양한 재료와 수단이 유화물감을 대체해서 회화를 만들고 확장시켜왔음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포트리에와 부리, 타피에스를 거쳐 키퍼에 이르는 혼합매체적인 회화 등은 그런 한 사례에 머문다.
우리의 경우도 1980년대 중후반을 거쳐 이질적인 재료와 흥미로운 물질을 사용해 극적인 화면 연출과 독특한 질감을 구사하는 회화들이 줄을 이었다. 유화물감이나 전통적인 안료나 재료를 대신해서 산업용품으로 개발되어 나온 흥미로운 재료들이 범람했고(작가들은 화방 대신에 청계천이나 을지로 주변 상가를 배회하면서 희한한 재료들을 사 모으고 이를 실험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새로운 재료를 사용해 독자적인 효과를 구사하고자 하는 욕망들이 가세하면서, 화면은 모든 재료를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장소로 돌변했다.
이제 손/붓으로 물감을 칠하고 그리는 전통적인 행위를 대신해 기이한 재료들을 연금술사처럼 실험하고 그것들을 적극 동원하는 한편, 화면을 특이한 물질들로 장치하는 것이 그리기를 대신하게 되었다. 촉각적이고 물질적인 동시에 그것 자체로 자족적인 회화는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흔드는 동시에 물질과 오브제로만 이루어진, 다분히 행위적인 상황성을 보여주는, 더욱 적극적인 시각장으로 변화되어 갔다. 그것은 즉각적으로 망막에 호소하고 한편으로는 망막 이외에 촉각과 또 다른 감각기관들을 겨냥하면서 진화되어 갔다.
만지고 가공하고 연출하면서 생생하게 사물, 세계를 다루는가 하면 일루전의 극대화와 동시대의 산업적 소재와 물질을 통해 당대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회화의 확장을 초래하는 한편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림이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 저간에는 또 다른 욕망들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다.
캔버스 자체로 이루어진 회화
김범의 <주고 받음>이란 작품은 캔버스 천 그 자체가 스스로 주머니가 되고 있다. 작가는 화폭을 자르고 포개고 꿰매 단추로 닫힌 두 개의 주머니를 만들었다. 실제를 모방했던 캔버스 천이 아예 실제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회화이면서 오브제이고 그림이면서 조각이다. 화폭의 하단에는 ‘편지와 진통제 반병’이라고 씌어 있다. 그 주머니는 가상의 이미지이거나 그려진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이 가능한 주머니다. 그는 또한 대상들을 천으로 가려둠으로써 그것들이 이름 지어진 것이면서 그 실재이기도 한 상태로서 소멸과 복원의 순간들을 배회하도록 한다.
동일한 맥락에서 박정선 역시 주어진 캔버스 화면을 칼로 해체하고 화면을 이루는 직조된 실을 가닥가닥 풀어헤치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그 실을 가지고 뜨개질을 해서 양말을 짜는 식이다. 캔버스 천 자체만으로 회화/조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캔버스의 본체를 이루는 실을 가지고 실물을 만들어내는 기이한 작업이다.
그런가하면 이지희 역시 캔버스 천과 약간의 색을 지닌 천을 이용해 평면의 캔버스 바탕 면에 회화를 그려/만들어 보인다. 그것은 바탕의 천이 스스로 이미지가 되고 또 다른 천들이 개입해서 마치 조각보나 모자이크, 퍼즐처럼 이미지를 형성해 나가는 기이한 회화다.

일루전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물질들

김유선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최상급 야광 자개를 조각조각 세심하게 붙여나갔다. 개인적으로 죽음에 대한 추억에 따른 삶의 허망함, 죽음에 대한 사유와 어둠의 깊이는 오랫동안 작가를 힘들게 했는데 이는 빛의 존재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이어졌고 그것을 자개에서 발견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작은 자개 조각들을 하나씩 붙여나가는 ‘고행’을 통해 이루어진 하늘/바다를 떠올리는 이 이미지는 가상의 풍경이다. 납작한 평면에 자개를 붙여 만든 이미지는 현란한 일루전으로 넘쳐난다. 작가는 별과 하늘, 바다, 운하를 기존의 표현 도구나 어법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일종의 저부조의 회화, ‘오브제 회화’를 만들면서 강력하면서도 매력적인 장면을 선사하고 있다. 회화가 일정한 평면에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라면 이 자개의 집적은 그 회화의 조건을 충족시키면서도 물감이나 붓으로 해낼 수 없는 강한 환영을 보여준다. 손의 수공적 장인적 노고 아래 자개들은 시적 비전을 지닌 빛, 별, 우주, 자연, 태극 등으로 가시화되고 이 형태들은 한결같이 하나의 지향점, 근원, 본질, 이상 등으로 통합되어 간다. 여기서 아름다운 자개는 작가에게 희망처럼 다가와 주었다.
노상균 역시 시퀸이라는 플라스틱(키치적이고 말초적이며 대단히 망막적인 재료)을 화면 바탕이나 실물의 피부 위에 촘촘히 부착해서 엄청난 일루전을 부과한다. 그의 작업은 주어진 평면, 회화의 조건에 따르면서도 그 일루전이라는 것을 가장 극화된 형식으로 연출해 보인다. 이후 입체로까지 확장된 그의 ‘감기’는 조각적 세계로도 방사된다. 황인기는 소위 ‘디지털’ 산수화라는 방식을 통해 한국의 전통 수묵 산수화에 픽셀화된 정수를 추출하였고 형식적으로는 단순화된, 그러나 막대한 노동을 요구하는 이 구조를 거울과 실리콘, 레고 등으로 만들고 있다. 크리스탈이나 거울 등으로 이루어진, 점으로 형성된 산수는 엄청난 광휘와 반짝임을 선사하면서 동양의 전통적 산수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 모방한다.

이창원 <Shadow of Justice> 찻잎 설치 400X300cm 2008

일상의 소품을 이용한 회화

배영환의 작업은 가부장적인 권위와 반공 이데올로기, 지난 역사적 정치적 상흔 그리고 지배적인 문화와 권력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나온다. 그는 그 상처를 알약, 면도날, 약솜, 옥도정기, 좀약 따위를 써서 드러낸다. 가난하고 치명적인 이 재료들을 그는 하나의 기호로 취급한다. 타일 위에 면도날과 빨간약, 약솜, 본드로 ‘몸’이란 문자를 쓰고 있는 작업은 사춘기와 청년기의 방황과 슬픔, 생의 절망 등을 문학적 감수성과 시니컬한 자의식 아래 배출하고 있다. 가난하고 허접한, 누추한 재료들의 문자화는 문학적인 감수성과 함께 지나간 현실을 강력하게 회고시킨다.
함연주는 인장강도를 드러내는 스타킹, 색채와 탄력의 쇠퇴 과정을 보여주는 라텍스, 탄성을 지닌 용수철, 자력에 반응하는 바늘 등으로 그림을 그려 보인다. 그는 스프링 등의 물질적 특성에 주목하고 실제 재료와 부딪치는 과정 속에서 사용된 작가의 신체 에너지, 재료의 반응, 우연성, 변화 등을 주목한다. 그 작업은 일상에서의 사물에 대한 관심과, 존재 공간에 대한 인식 아래 풀려나온다. 그 상호교류 속에서의 관찰과 실험이 작업의 과정이자 결과가 된다. 작가는 재료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느낀다고 한다. 재료를 느끼면서 혹은 상호작용하면서 재료와 작가 사이에서 오는 긴장감을 표현하고 즐기는 것인데 특히 나무 판넬에 스프링을 부착해서 만든, 그린 이미지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김용진은 작은 못 하나하나를 박아서 형상을 그린다. 금속선이 모여 청자와 백자, 토기 모양으로 변신하는 식이다. 작은 못 하나는 기하학적인 선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하나의 단위가 된다. 여기서 캔버스는 일종의 못자리가 되었고 금속선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금속선의 밀도 조절은 먹의 농담과 같이 작용하고 시각적 유희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정승원은 포스트잇을 촘촘히 부착하고 배열해서 마릴린 먼로의 얼굴이나 문자를 형상화한다. 탈부착이 자유로운 포스트잇의 속성이 흡사 현대 문화와 인간 관계를 암시하는, 상징하는 오브제가 되었고 작가는 이를 매력적인 화화의 수단, 하나의 기호로 다루고 있다.
황혜선은 캔버스나 종이 위에 지우개 똥을 가지고 드로잉을 한다. 혹은 벽면에 실리콘으로 자신의 일상적인 기호품을 드로잉했다. 벽면에 요철 효과를 갖고 저부조로 튀어올라온 부위가 자연스레 이미지를 형성하고 이는 매우 촉각적으로 다가온다. 이를 섬세하게 더듬으면서 구체적인 대상을 인지하도록 권유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그렇게 침묵을 가진 그림의 힘을 표현하고자 한다. 구영모는 흰 박스 안에 색연필이나 색종이를 가득 채워 넣어 얼핏 그림처럼 보여준다. 형식적으로는 색면추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물들의 집적이 회화처럼 일루전을 주고 물질이 담긴 용기가 그림이 되게 하는 전략이다.
자연적인 재료의 활용
유진영은 나뭇잎이나 PET비닐의 피부를 칼로 자르고 오려서 사람의 형상 등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선보인다. 특히 조심스레 연약한 식물의 피부(잎)에 구멍을 내고 오려내어 인간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식물이 그대로 하나의 그림/사람이 되고 있다. 식물인간인 셈이다. 나뭇잎에 그림을 그린/만든 것이다.
이동재 역시 다양한 곡식을 핀셋으로 일일이 화면에 부착하는 그림을 그린/만든다. 예를 들어 콩으로 미스터 ‘빈’을, 쌀로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현미로 가수 ‘현미’의 얼굴을 그리고 녹두알로 ‘녹두장군’ 전봉준을 형상화하는 식이다. 그것은 먹는 곡식이 사람이 되고 작은 단위의 점들이 픽셀화되어 이미지를 만들어나간다. 깨알 같은 점(식량)들이 모여 생명을 만든다. 심수구 역시 싸리나무를 촘촘히 집적해서 회화를 만든다. 자신의 고향과 관련된 추억이 싸리나무를 소재로 다루게 되었고, 작가는 이를 작은 단위체로 만들고 화면에 넣어 그것 자체로 자족적인 풍경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촉각적이고 물리적인 실체로서 축소된 독특한 자연 풍경의 새로운 시감이다.

작가 이동재의 쌀 작업 장면

인공적인 물질의 이미지화

홍승혜는 컴퓨터그래픽이라는 기술적 과정을 통과하여 탄생한 기하 형태들을 보여준다. 컴퓨터 작업을 통해 도상을 얻은 후 그 이미지들을 다시 프린트 기법으로 찍어내는 작품 과정은 복제의 이미지를 차용한 현대미술의 담론을 드러낸다. 그리고 카드보드에 세리그래피, 나무에 폴리우레탄으로 그려진, 만들어진 이 회화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유기적이고 여성적인 감수성 아래 거느리고 재배열한다.
천광엽은 최소한의 표현으로 최대한의 느낌을 전달한다. 그는 나무 판넬에 우레탄으로 점을 만들어 부착한다. 규칙적인 이 원/점의 반복을 통해 의식의 확장을 꾀하는데 미니멀적 형태의 끝없는 반복을 통해 긴장과 자유를 동시에 느끼게 하고자 한다. 균질적인 화면 위에 요철의 구조를 지닌 점들이 신체를 드러내고 있는데 이미지와 연상을 차단하면서 회화의 순수한 지각적 체험을 전달하는 한편 오로지 거기에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흡사 점자를 만지는 촉각적 느낌도 주고 있다.
장승택 역시 플라스틱 재료로 투명한 몇 겹의 화면을 형성하면서 빛과 온도, 질감과 은은한 일루전으로 가득한 화면을 연출한다. 기존의 물감으로 재현된 미니멀리즘과의 유사성을 지니면서도 새로운 신소재, 인공적인 물질의 물성을 조율해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미니멀리즘으로 다가온다. 김태균 또한 에폭시의 다양한 형태에 의해 볼륨화되는 작업을 선보인다. 소재의 투명성과 표면에 찍힌 반복적 모티프(점)들의 밝은 색상을 드러나는 젤리 큐브 같은 작품은 어느 한 장르로 규정하기 힘든, ‘~이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한’ 작업이다. 동시에 표면에 요철 효과를 자아내서 촉각적인 피부로 돌변시킨다. 인공의 재료들과 구분 없이 등장하는 이 회화는 또 다른 물성의 감각적인 체험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남춘모는 나무로 ‘ㄷ’자 형태의 틀을 짜 그 속에 단색으로 날염된 천을 깐 다음, 묽게 희석시킨 투명 폴리에스테르를 반복해서 칠하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 노동집약적인 작업에서 화면으로부터 돌출된 띠들은 작품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동시에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은은한 중성의 색 톤과 폴리에스테르의 투명한 재질감이 이루어내는 미적 효과는 띠와 그림자와 겹쳐 평면 회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국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는 행위가 범할 수밖에 없는 ‘모사의 숙명’에서 벗어나 사물을 만드는 행위가 되고 있다. 그가 천에 직접 색을 칠하지 않고 염색기법을 동원한다든가, 준비된 나무틀에 염색된 천을 깔고 폴리에스테르를 반복적으로 칠해 떠내는 기법을 사용하는 것 등은 그것이 무엇보다도 사물로 보이게끔 만드는 장치다.
우혜민은 지퍼를 이용해 친숙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지퍼는 천과 천을 이어주는 결합시키는 기능보다는 다양한 캐릭터를 재현하는 쪽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예를 들어 동화 속 요정, 마술램프, 유리구두, 아기돼지 등의 수많은 캐릭터 이미지들이다. 이른바 지퍼가 픽셀 이미지가 되어 단위가 되어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장영진은 비비탄 알, 스티로폼 알갱이 하나하나를 연결해, 집적해 이미지를 그린다. 플라스틱 알갱이가 주는 시각적 매력과 함께 작은 알갱이/점들이 모여, 집적되어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시켜나가는 것이다.

황란 <Invisiblility is visiblility> 단추, 핀 2004

셍테티엔느 근대미술관장 로랑 헤기

모든 위대한 예술가나 철학자들의 화두는 크레 다르지 않았다.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 문명화의 필요성 등에 대해 역사적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로랑 레기는 이 무제한적인 주제의 풍부함 속에서 예술가가 자신만의 메타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센시티브 시스템>(3. 28~5. 25 학고재)전을 기획해, 독창적인 메타포를 추구하는 네 거장의 화두를 재조명한다.

셍테티엔느 근대미술관장 로랑 헤기(Lorand Hegyi)가 서울 소격동에 현대 미술사의 거장 네 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작년 베니스 비엔날레 이탈리아관을 나무껍질로 가득 채웠던 주제페 페노네(Giuseppe Penone), 현재까지 작업을 통해 약 200톤의 못을 사용한 귄터 위커(Guter Uecker), 1에서 무한에 이르는 숫자를 매일같이 차례로 써나가는 로만 오팔카(Roman Opalka) 그리고 끊임없이 상황 속에서의 ‘관계’를 탐구하는 이우환(Lee Ufan)의 작품을 <센시티브 시스템(Sensitive Systems)>이라는 주제로 묶었다. 학고재 개관 20주년 및 신관 오픈을 기념하는 전시다.
그는 한국미술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1990년 서울을 처음 방문한 이래 1992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헝가리안 컨템포러리 아트>전을 기획했고, 셍테티엔느 근대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한 2003년부터 현재까지 이우환(2005), 박서보(2006), 황영성(2007), 한순자(2007)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에서 열렸던 작년의 <옥토버살롱>전에는 양혜규 이수경 김현수 천성명 같은 젊은 작가들은 물론 노상균 김수자 이강소 박서보 이우환 등의 중견 원로작가들까지 다수의 한국작가들이 참여했다.
<센시티브 시스템>에 참여하는 주제페 페노네, 로만 오팔카, 이우환은 이미 2006년 <예술의 힘-그랑 팔레 파리(La force de l’art-Grand Palais, Paris)>전에 함께 참여한 이력이 있다. 이 전시는 미국의 휘트니비엔날레나 영국의 테이트 트리엔날레와 같은 대규모의 자국 현대미술전을 출범시키고자 프랑스 문부성에서 트리엔날레로 고안한 행사다. 2006년 당시 후한루, 필립페 베르네, 에릭 트롱시 등 15명의 큐레이터가 초빙되어 각자 독립된 공간에서 전시를 진행했는데, 로랑 헤기는 <실향/주거(Heimatlos/Domicile)>라는 전시에서 주제페 페노네, 로만 오팔카, 이우환을 비롯하여 글로리아 프리드만, 장 미셸 알베롤라, 브라초 디미트리예빅 등 타국에서 출생했지만 프랑스에 거주 또는 정착한 열 명의 작가들을 초대했다.
그러나 귄터 위커를 포함한 네 작가가 함께 전시를 여는 것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이번이 처음이다. 아르테 포베라의 대표작가 주제페 페노네, 독일 제로 그룹에서 활동했던 귄터 위커, 어떠한 이즘이나 주의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는 로만 오팔카 그리고 모노하 태동을 주도한 이우환. 현대미술사에서 각기 다른 범주로 이해되고 있는 이들 작품의 궁극에는 사실 동일한 주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는 로랑 헤기를 만났다.
방랑자의 하이퍼 센시티브 시스템
art 서로 다른 양식으로 알려진 네 작가를 선정하게 된 동기는.
LH 네 작가는 매우 다른 형태와 방법을 추구하고 있지만, 하나의 정신성을 공유한다. 그것은 인생과 존재 전체를 반영하는 하나의 큰 메타포로 드러난다. 이들은 세세한 일화의 발설, 내러티브나 스토리텔링 또는 세부적인 아름다움이나 장식적인 형태가 아닌, 존재와 시간, 변화와 그 과정의 관계를 반영하는 하나의 메타포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모두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의 메타포로 만들어낸다. 이 메타포를 제시하는 방식은 스펙터클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괴테는 “예술의 진짜 비밀은 역설”이라 했다. 제한된 ‘언어’, 고안된 ‘언어’를 통해 예술가는 발명되지 않은, 무제한적인 우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동시에 예술가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자신의 논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의사가 환자들에게 처방을 내려주듯이 말이다.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책임’에 관한 이론에서 이들의 미학성과 윤리성의 연결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책임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의 고통은 제외하고 타인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것이 이 시대에서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완전한 관계의 한 측면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타인에 대한 책임이다. … 타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이들의 작업 과정, 즉 작가와 작품의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의 과정으로부터 예술가의 윤리적 책임을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네 작가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들 각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그만의 방법으로 발언하고 있지만, 인간성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대면하면서 시간, 과정, 변화와 같은 기본적인 요소의 메타포를 통해 책임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이러한 의식을 작품에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개인성을 작품에 흡수시키면서 인류애에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art <센시티브 시스템>이라는 전시 제목의 의미는.
LH 모든 시스템은 경직성 완고함 제재 한정 등의 속성을 특징으로 한다. 반면 시스템은 수용자의 지각이나 감지를 유도하고 시스템 외부로부터 현실화 또는 구체화가 가능한 모듯 것을 흡수한다. 시스템 자체는 고정된 것이지만, 그것의 과정은 유동적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시스템을 하이퍼 센시티브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네 작가들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시스템 속에서 작업하고 있다. 자연적 속성, 물질, 변화 등의 요소와 자기 자신을 조정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시스템적이기도 하다. 시스템은 엄격하고 완고하지만 정밀하고 유연한 구조를 갖는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특성을 갖는다.
오팔카는 42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같은 숫자를 쓰고 있다. 그러나 그 각각의 숫자들이 나타나는 방식은 다르다. 페노네는 자연적 요소와 인공적 요소를 결합시키는 방법을 통해 서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변화를 보여준다. 위커는 항상 같은 못을 사용하여 작업하지만 그 못이 구성되는 방식은 매번 다르다. 텅 빈 캔버스에 하나의 점을 찍는 절제된 행위를 펼치는 이우환의 시스템은 그러나 행위자 자신으로부터 결코 독립적일 수 없다. 이들은 우주와 세계에 대한 관점의 시각화, 형태화를 위해 시스템적 방법을 통해서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이 네 작가의 모든 작업이 센시티브 시스템이다.
art 2006년 그랑 팔레 파리전이 이번 전시의 모태가 된 것인가.
LH 그랑 팔레에서 내가 기획한 전시는 세 공간으로 나뉘어졌는데 이우환, 페노네, 오팔카 세 사람이 사각형의 한 공간을 채웠다. 전체적으로 스펙터클한 그랑 팔레의 본래 분위기와는 달리 고요하고 명상적이며 동시에 절제된 아름다움이 느껴졌던 이 공간에 대해서 현지에서는 ‘이 공간에서는 다른 공기가 느껴진다’ ‘이곳은 그랑 팔레라는 대륙이 아닌 독립된 섬과도 같다’고 평을 했다. 이들이 만들어낸 강한 에너지에 나 자신은 물론 작가들도 놀라워했다. 이 ‘섬’을 언젠가 더 큰 공간에서 선보이고 싶었다.
art 본인 또한 그러하지만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나 그랑 팔레 파리 전에 참여했던 작가들 모두가 모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거주 또는 정착한 사람들이다.
LH 당시 내가 기획한 전시의 주제는 <실향/주거(Heimatlos/ Domicile)>였다. Heimatlos는 로마시대로부터 유래된 독일어로서 하이데거나 키에르케고르 등을 거쳐 하나의 철학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기호적으로는 집이 없는 사람들을 의미하지만 기표적으로는 홈리스보다는 낯선 사람(Stranger)으로 이해하는 편이 옳다. 왠지 모르게 모든 곳에서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껴, 자신만의 정신의 집, 정체성의 집을 찾아 헤매는 예술가·시인·철학자 등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방랑자(Wanderer)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예술가들은 본래적 의미로나 은유적 의미 모두에서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는 긴 여행을 계속한다고 생각한다.

모티프가 아닌 컨텍스트가 있는 한국미술

art 지금까지 많은 한국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했으며 한국에 자주 방문하고 있고, 방문 때마다 갤러리나 스튜디오 등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미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한국의 현대미술을 어떻게 보고 있나.
LH 한국미술에는 감각적 외형과 유연하고 깊이 있는 내면이 자연스럽게 조화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필요에 의한 전통과의 연속성이 아니라, 문화의 장으로서의 역사와 문명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 그것과 현재 여기 존재하는 것들과의 컨텍스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돋보인다. 기술 지상적인 경향이 강한 일본의 현대미술이나, 일면 진부해 보이는 중국의 뉴리얼리즘 페인팅과는 다르다. 한국에는 공격적 표현적이거나 허위 내러티브에 집중하는 작품이 드물다.
물론 중국에는 쩡판쯔나 얀페이밍과 같은(2006년 얀페이밍, 2007년 쩡판쯔의 개인전이 셍테티엔느미술관에서 열렸다) 훌륭한 작가들도 있다. 그러나 요즘의 중국미술의 급격한 발전에는 위험한 측면이 있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관심은 비판적 분석적 정치적 의미를 상실하고 단순히 정치적 모티프만을 사용하는 표면적이고 모조적인 미술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헝가리 출신으로서 소비에트의 역사적 배경을 경험했고, 미술에서의 레닌·마르크스 등의 이미지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훌륭한 몇몇의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마오 이미지가 넘쳐나는 요즘의 중국미술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작가들이 단기간에 작품을 너무 많이 생산하거나 시장의 기쁨에 현혹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art 올해의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선정되었다 무산되었다. 그 이후 신정아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이를 어떻게 지켜보았으며 어떤 생각을 했었나.
LH 사실 나는 감독 선정에 관련된 전체 과정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3번에 걸쳐 미술관과 재단을 방문했으며, 광주의 한 대학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관계가 끊어졌고 모든 것이 무산되었다. 미술관이나 재단 측 어느 누구로부터도 어떠한 해명이나 공문도 없었다. 나는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지만 그들의 결정을 받아들인다. 지난 18년 동안 나는 한국의 미술인들과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고 앞으로도 이러한 좋은 관계를 지속시키고 싶다. 비엔날레가 잘 되길 바란다.
art 큐레이터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LH 올 9월에 열릴 폴란드 포즈난(Poznan)비엔날레를 기획하고 있다. 그랑 팔레전의 주제였던 Heimatlos나 앞서 말한 Wanderer에 관한 주제가 될 것이다. 나는 매년 하나 또는 두 개의 기획 그룹전을 준비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거대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메타포, 섬과도 같은 예술가에 관한 새로운 기획전을 준비중이다. 작년 옥토버 살롱의 <Micro-Narratives>가 올 9월 셍테티엔느에서 다시 열린다. 현지에서 발굴한 작가들이 포함되어 참여 작가가 88명으로 늘었다. 이 전시가 한국 또는 아시아에서도 선보일 수 있길 바란다. 정기적으로는 4,50대의 중견작가들의 개인전을 준비한다. 동유럽이나 아시아의 훌륭한 작가들이 좋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수 있는 기회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데니스 오펜하임, 리차드 노나스,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등 거장들의 전시도 추진하고 있다. 요즘 가장 흥분되는 일은 올 6월 초에 발간될 <Fragility of Narratives>라는, 지난 10년간의 나의 작업을 총망라한 책이 출판되는 것이다. 한국어로도 꼭 선보이고 싶다.
우리 모두는 사금을 캐는 사람들과도 같다. 비록 너무 작아서 그것을 찾아내는 과정은 힘들지만, 우리들 각자가 발견한 사금들이 모여 하나의 단단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이우환 <관계항> 철판, 돌 2007

신진작가 소개, 공모전들-Sema2008 외

이현주 <A Taste of Paradise> MDF에 아크릴릭 각 55X33(54pcs) 2005

올 봄에도 신진작가 소개전 및 공모전이 진행된다. 올해 처음 개최되는 전시부터 어느덧 여러 차례 개최된 전시까지, 각 미술관 및 갤러리마다 각자의 컨셉트로 신선한 기류를 전달한다. 각 미술관들은 이 시대의 ‘신진작가’ 혹은 ‘젊은 작가’의 의미를 어떤 측면에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글|이정헌 객원기자

코리아나미술관 <낙선전> 전시장면

다색다각

때는 바야흐로 1981년, 인류는 우주왕복선을 만들었고, 보급용 컴퓨터가 등장했으며, 한국에는 제5공화국이 들어섰던 그때, 국립현대미술관은 제1회 〈청년작가〉전을 열었다. 이런 사실들은 27년이 지난 현재, 어떤 측면으로든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음에 틀림없다. 〈청년작가〉전은 1990년 지금의 〈젊은 모색〉전으로 이름을 바꿨고 젊고 참신한 작가를 선발하고 알리는 첫 번째 시발점이 되었다. 그간 〈젊은 모색〉전의 선정 작가들은 구본창 이동기에서부터 권오상 이형구를 지나 안정주 정재호까지 당대의 젊은 감성과 지성을 살필 수 있었다. 그 이후 국공립 미술관 및 사립 미술관이 경쟁을 하듯 젊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데 눈을 돌렸고, 〈젊은 모색〉전 이외에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와 공모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서울시립미술관의 〈SeMA 2008-미술을 바라보는 네 가지 방식〉전이 3월 28일부터 6월 15일까지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들의 공동기획전으로 진행되는 이 전시는 복잡한 현대미술을 쉽게 설명할 방법을 모색하고자 네 가지 섹션, ‘선과 색의 울림’ ‘물로 쓴 슬로건’ ‘상상의 틈, 괴물 되기’ ‘일상의 발견’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역량 있고, 동시에 각 섹션에 걸맞는 작품 컨셉트를 지닌 작가를 찾기 위해 직접 졸업전시 현장을 찾아다녔다.
선과 색의 조형 요소로 정서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강연희 라유슬 우윤정 이경 이현주 하비비에서부터, 민중미술의 실천적이고 투쟁적 성격에서 블랙유머와 키치적 성격으로 변모하여 우회적 풍자를 시도하는 박종호 신기운 아이작신 오재우 이준용 정윤석, 거대 담론은 뒤로하고 개인적인 의미를 확산시키는 성향을 보여주면서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자아를 표현하는 김재옥 서고운 성유진 이서준 이소정 이승현 유지현, 일상적인 것에서 새로운 미술의 소재를 발견하는 강현덕 서지선 이단비 이동주 이상미 장석준까지, 총 25명의 104점을 전시한다.
쌈지스페이스의 〈이머징8〉전은 4월 10일부터 5월 31일까지 열린다. 참여작가는 김시내 로와정(노윤희 정현석) 류현미. 〈이머징〉전은 2000년부터 시작된 연례기획전으로, 기존 쌈지스튜디오 작가들과 큐레이터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2~3명의 작가를 선정해서 개최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미디어아트를 다루면서 기성세대의 관습적 성향을 주제로 내세운다. 이들의 작업은 젊은 작가들의 한가지 주제를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는 다양성을 살필 수 있다. ‘기성세대’와 ‘관습’이라는 주제어는 자칫 진부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그것을 소리와 영상으로, 또 개별적인 주제인 ‘남녀관계’ ‘신앙’ 등으로 풀어낸다는 점이 색다르다. 김시내의 〈사이렌 송〉은 현실과 허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대인을 은유하는 사운드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그룹 로와정은 〈The Door〉 〈2인용 1인실〉 등의 작품으로 남녀가 하나가 되는 방법을 도상화 시키며, 류현미는 현대인들이 희망을 향해 매진하는 모습을 신앙에 비유한 영상설치작품 〈님의 변주곡〉을 선보인다.
4월 11일부터 6월 8일까지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춘계예술대전〉은 지난 2월 말에 개최한 ‘제1회 인터내셔널 영아티스트’ 공모에 참여한 300여명의 작품 1,032점을 전시한다. 그야말로 예술‘대’전이다. 기존 공모전이 당선작 위주의 전시로 위계 질서를 강조했다면, 〈춘계예술대전〉은 예술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각양각색의 응모작 모두가 참여함으로써 기운생동한 봄의 에너지를 발산시키고자 한다.
1천여점의 작품이 주는 신선함과 충격, 그 융화의 과정을 살피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전시는 당선작으로 구성된 〈살롱전〉과 낙선작으로 구성된 〈낙선전〉, 작가들의 전시인 〈설치전〉으로 이루어진다. 공모 대상에는 기성작가, 신진작가의 구분이 없다. 공모에 참여한 작가들의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연령은 4세에서 67세까지 다채롭다. 직업도 요리모형제작사, 철도청 직원, 청자 장인, 학생 등으로 다양하며, 작품 형식 또한 입시미술부터 전위적 비디오아트까지 어떠한 인위적 제한이 없다.
김종영미술관에서 지난 2월 한 달간 개최했던 〈2008 신진조각가〉전은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예비 조각가들의 전시였다. 어떤 이에겐 첫 전시, 어떤 이에겐 마지막 전시가 될 수 있는 이 전시의 참여작가들은 서울과 경기 지역 소재의 대학교 조소과를 이제 갓 졸업한 이들이다. 길민선 김봉관 김정아 김진덕 심하나 박종영 방은정 배기연 배진아 변은지 이종규 임예지 정재희 황인태까지, 지도교수의 추천을 참고하면서 큐레이터가 직접 졸업전시를 관람한 후 우수한 조각가로 성장할 수 있는 인재를 선발했다. 참여작가들은 조각의 전통적인 소재인 돌 나무 금속 뿐만 아니라, 터치스크린, 3D프로그램, 구체관절인형 등의 이색적인 매체를 사용해 일상에서 흥미 있게 보아왔던 것들을 현대적 감성으로 풀어냈다.

황은정 <Creature Feature> 혼합재료 가변설치 2007

그들은 어디로?

이렇듯 매해마다 이곳 저곳에서 배출해내는 ‘젊은 작가’와 ‘신진작가’들은 그 이후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 혹시 반짝이다가 사라져버리는 TV 속의 연예인처럼 되지는 않았을까?
성곡미술관에서 4월 11일부터 5월 25일까지 열리는 〈성곡 내일의 작가들 33 Awardees〉전은, 1998년부터 시작된 〈성곡 내일의 작가〉전에 등장했던 작가들을 한곳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참여작가 33명은 김태헌 강진모 강운 이용백 전준호 신미경 임만혁 이형구 황은정 등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가는 작가들이다. 이들 중에는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작가도 있고, 이른바 시장성을 겸비한 작가도 있으며,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거나, 다른 신진작가전에 선정되어 더욱 명성을 떨치는 등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경우도 있다.
작가 선정전과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젊은 작가들의 작업 환경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따라서 대안공간루프 대안공간풀 쌈지스페이스 등 대안공간이 등장한 1999년, 대학을 졸업한 작가지망생들은 대관료가 없는 대안공간에서 자신의 첫 경력을 쌓던 그때와 지금의 사정은 달라졌다. 대안공간뿐만 아니라, 서울시립미술관의 〈포트폴리오〉전 부산시립미술관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전 대전시립미술관의 〈바람〉전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전 등 다양하다. 이처럼 미술관이 기존 대안공간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공모전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각종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공모전의 인기는 예전 같지 못하다. 갓 대학을 졸업한 예비 작가들에게 작업 공간이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이후의 동향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1999년 쌈지스튜디오가 탄생하고, 영은미술관이 주관하는 경안스튜디오와 국립현대미술관의 창동스튜디오 등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쾌적한 작업환경과 장르의 구분 없이 가능성 있는 작가를 선발하기 때문에 신진작가들에게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올해 에르메스코리아미술상 후보 3인 모두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거쳤다는 점은 레지던시의 기능적 질적 측면을 반증하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졸업전시부터 옥션까지 단번에 이어지는 현재 미술계의 상황에서, 신진작가 선정전과 공모전은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확실히 과거보다 좋은 환경이 갖춰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젊은 작가들을 제대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체계적인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미술관이나 공모전 등 주요 기관일 경우, 작가 선정에 크나큰 책임감을 가지고, 앞을 내다보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스페인 ARCO8

플라맹고 빛깔, 열정의 아르코

스페인 마드리드의 아르코 아르페어(2. 13~18)가 27번째를 맞아 전시장을 새롭게 마련하고 다채로운 기획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2007년보다 규모를 1.5배 확장해 갤러리 부스 전시, 주빈국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미디어 특별전, 퍼포먼스, 솔로 프로젝트, 또 현대미술과 시장과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담론을 논의하는 포럼을 매일 매시간 마련했다. 특히 자국 내 갤러리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아르코가 아트페어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갖추기 위해 자국 갤러리를 대거 탈락시키고 신진 갤러리들을 추가함으로써 풍성한 작품과 작가들을 선보였다. art가 아르코의 생생한 현장을 담아 왔다.

글|이성희 기자

2008아르코 아트페어 전시장 광경

2007년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해 주목을 끌었던 스페인의 아르코 아트페어. 덕분에 한국에선 꽤 익숙한 행사다. 1982년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매해 2월에 개최되는 아르코가 27번째를 맞아 2월 13일부터 18일까지 마드리드의 이페마 전시장에서 펼쳐졌다. 올해는 특히 건축가 후안 헤레로스(Juan Herreros)가 참여해 전시장을 새롭게 마련했다. 이번 아르코는 건축공사 비용이 많이 들어서인지(?) 입장료를 대폭 인상했다. 그러나 32유로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약 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치러졌다.
참여 화랑 수는 34개국 295곳으로 전년보다 약간 늘어났다. 일반 갤러리 부스 외에 브라질 주빈국행사, 큐레이터 프로그램, 미디어 특별전, 퍼포먼스, 학술 포럼 등을 풍성하게 선보였다. 1층에 위치한 12관, 14관에서는 갤러리 부스 전시, 3층에 위치한 14.1관(스페인식 표기)에서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그래서 1층은 주로 작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컬렉터의 발길이, 3층에는 젊은 학생들의 발길이 먼저 닿았다. 이번 아르코에서는 실로 다양한 관객층을 만날 수 있었다. 컬렉터와 미술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대학생, 청소년, 부모님을 따라 온 어린들까지 말이다. 아르코는 단지 1년에 한 번 열리는 거대한 ‘아트 마켓’이 아니라 스페인인들의 문화적 자랑이자 성대한 미술 축제다.

스페인의 ‘나라 잔치’

아르코는 단순히 미술 작품을 파는 일반 아트페어와는 성격이 다르다. 처음 설립된 배경도 르네상스부터 내려오는 에스파냐 미술의 자긍심을 복귀해 보려는 의도에서였다. 벨라스케즈부터 고야, 피카소, 달리, 미로에 이르기까지 에스파냐 미술은 에스파뇰의 민족성을 대변하는 특유의 천재적 사고, 뜨거운 예술적 감성, 광기의 상징이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전 세계의 미술학도들은 벨라스케즈의 <라스메니나스>를 보기 위해 프라도미술관으로 모여들고, 피카소의 <게르니카> 한 점을 감상하기 위해 소피아미술관으로 찾아든다. 두 작품은 가장 유명하고,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는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그 스케일 면에서도 압도적이다. 이렇게 뜨겁고 유서깊은 에스파냐 미술인데 현대미술에서는 프랑스, 전후 미국, 또 개념미술이 강세인 독일에 밀려 이렇다 할 ‘스타 작가’를 탄생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스페인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기획해 동시대 스페인 미술의 세계화와 아울러 미술시장의 세계화를 모색하기 위해 1982년 아르코 아트페어를 마련했다. 그런데 왜 하필 2월일까. 확인한 바는 없지만 봄, 여름, 가을에야 아르코가 아니더라도 마드리드를 찾는 관광객은 차고 넘치니 비수기인 겨울에 관광 수익을 거두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어쨌든 아르코가 열리는 기간 중엔 마드리드 전체가 축제 분위기다.
공항 주변에 위치한 아르코 행사장에서 20분 거리의 시내 중심의 미술관 등 아트페어 기간 중 마드리드는 곳곳에서 관련 행사가 펼쳐진다. 낮에만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스페인의 발달된 밤문화를 무시하면 안 된다. 아침은 10시, 점심은 3~4시에 천천히 즐기고, 저녁은 8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아르코의 오픈 시간도 특이하게 정오부터 밤 9시까지다. 참여 화랑들은 저녁끼니도 거른 채 밤까지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어쨌든 9시 이후부터 본격적인 ‘스페니쉬 나이트’가 시작된다. 스페인의 상징인 플라맹고를 즐기면서 말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집시들이 정착하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플라맹고는 집시들의 방랑 문화를 구슬프게 읊조리는 노랫가락과 한 맺힌 동작, 박수 소리 등이 어우러져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된다. 집시 문화를 대변하는 플라맹고는 고야, 피카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스페인 화가들이 한번쯤은 다루는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기자도 깊은 밤의 구성진 노랫가락에 빠져 5일간의 여정 중에 이틀 밤을 플라맹고에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이튿날 소피아미술관에서는 우연히도 <Spanish Night>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플라맹고를 스페인만의 고유한 문화로 규정짓는 중요한 기획전이었다.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는 회화, 사진, 의상, 각종 도큐먼트뿐만 아니라 전통 플라맹고를 보여주는 영상과 영화들도 마련되어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감성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강형구 <Vincent van Gogh in Blue> 캔버스에 유채 259.1X387.8cm 2006

2008 아르코의 성과

2007 아르코가 ‘한국 주빈국’ 행사에 편중된 경향을 보였다면, 올해는 좀 더 풍성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국내외 참여 화랑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판매 면에서는 작년보단 조금 떨어진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르코 위원회 측은 아직 정확한 통계를 내진 못했으나 판매량은 작년과 비슷할 것이라고 전했다. 얼마 전 세계적인 서브프라임 쇼크 때문에 투자시장 예측이 어려운 상황과 스페인의 장기적 경기 침체로 미술시장이 불안정한 가운데 이만하면 꽤 성공적인 결과라는 판단이다. 아르코의 안정적 성과에는 스페인 자국내 기관들의 작품 구매가 한몫한다. 레이나 소피아(1백16만4천유로), 아르코재단(25만유로), 코카콜라재단(12만유로), MUSAC(31만2천유로) 등 스페인의 각 지방 단체에서도 다수의 작품을 구입했다. 스페인 정부와 단체가 얼마나 아르코를 격려하고 미술에 관심이 높은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2001년에서 2007년까지 현대미술 분야의 판매량이 233% 성장했고 전반적인 미술시장은 152%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술시장의 성격이 바뀌어가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컬렉터들은 작품 구매를 결정하기 전에 작가와 가격의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딜러나 갤러리스트의 견해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구매자가 작품 구입에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사진과 다른 매체의 발달로 미술시장이 다변화되었고, 컬렉터들은 고가의 작품부터 저가의 작품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 경매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1천유로 미만의 작품들이다. 미술시장 전문가인 리처드 폴스키(Richard Polsky)는 “투자자나 컬렉터가 가장 현명하게 투자하는 방법은 실력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고 알찬 작품들을 사는 것이다. 미술시장이 붐이든 거품이든 간에, 작고 알찬 작품들은 항상 상대적으로 높은 투자가치를 발휘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점은 이번 아르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장 고가의 작품으로 판매 여부가 기대됐던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은 결국 구매자가 나서질 않았고, 대체로 고가의 작품보다 중저가의 작품을 구입하는 분위기였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 미술시장의 분위기가 중저가의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기도 하지만, 유럽에서 고가의 작품은 거의 바젤아트페어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컬렉터들조차 진정한 마스터피스를 사기 위해서는 바젤아트페어를 찾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아르코는 유명 대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머징 아티스트’를 내세운 신선한 갤러리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아트페어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시장의 인기 작가들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 알렉스 카츠, 줄리앙 오피, 데미안 허스트뿐만 아니라 사진의 거장, 토마스 루프, 토마스 스트루스, 칸디다 회퍼 등의 ‘신작’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알렉스 카츠의 작품은 두 세군데 갤러리에서 눈에 띄었다. 뮌헨의 베른트클루저갤러리(Bernd Kl웧er)는 알렉스 카츠뿐만 아니라 로버트 마더웰, 앤디 워홀, 토니 크렉, 요셉 보이스 등 현대미술의 거장들을 내놓았다. 뉴욕의 피터블룸갤러리(Peter Blum Gallery)도 알렉스 카츠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고 쿠사마 야요이, 김수자, 로버트 라이먼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토니타피에스갤러리(Toni T늩ies)도 알렉스 카츠의 작품 몇 점을 판매했다. 또 최근 한국의 TV 광고에서도 걷고 있는 여인의 미디어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 줄리앙 오피의 작품은 국제갤러리를 비롯해 다수의 갤러리에서 선보여 인기를 실감케 했다. 국제갤러리의 오피 작업은 45만유로에 판매됐다.

뉴욕 팀갤러리 부스 광경

이머징 갤러리, 이머징 아티스트

아르코는 스페인 자국 갤러리와 포르투갈, 주빈국으로 참여한 브라질 등 라틴 쪽 갤러리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곳이다. 특이 이번에는 국제적 아트페어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하고자 참가 신청한 자국 갤러리들을 30개 이상 탈락시키면서 질적인 향상을 꾀했다. 또 일반 부스에서도 잘 팔릴 만한 작품을 대량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갤러리의 컨셉트를 드러낼 수 있는 소수의 작가와 작품을 선정해 전시 형식으로 부스를 꾸민 화랑들이 많았다. 스페인의 애드혹갤러리(Adhoc Galeria), T20갤러리, 에스티아르테갤러리(Estiarte Galeria), 페라레스갤러리(Pelaires Galeria), 살바도르디아즈갤러리(Salvador D뭓z Galeria), 스위스의 피터킬크만갤러리(Peter Kilchmann), 메이36갤러리(Mai 36), 밀라노의 갤러리카르디(Galleria Cardi), 뉴욕의 팀갤러리(Team Gallery) 등은‘핫’한 디스플레이와 작품으로 손꼽을 만하다.
이번 아르코에서는 라틴, 아시아 미술에 대한 관심 외에도 러시아 미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모스코바의 아이단갤러리(Aidan Gallery)는 모노톤의 초현실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비인간적인 차가운 소녀 사진으로 최근 인터넷에 자주 등장하는 1983년 생 올레그 도우(Oleg Dou)의 작품은 VIP오프닝 때 솔드 아웃되었고, 주문이 쇄도했다. 또 마치 복제된 듯한 인간 군상들을 괴기스럽게 표현한 필립 돈스토프(Philipp Dontsov)의 미디어 작품, 여성의 속옷, 옷장 등을 미니멀한 선 조각으로 표현한 안나 졸루드(Anna Zholud)의 작품까지, 러시아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준 아이단갤러리의 부스에는 가장 많은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한국 참여 화랑들도 아르코의 특징을 간파한 듯 기존의 아트페어, 또는 경매 인기 작가들보다는 새로운 작가를 검증하려는 시도들이 엿보였다. 한국 화랑은 갤러리아트싸이드, 국제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카이스갤러리, 학고재 총 다섯 갤러리가 참여했다. 갤러리아트싸이드의 이재삼은 특유의 목탄 기법으로 대나무, 매화 등을 그린 작품이 첫날 솔드 아웃되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한국작가로는 강형구 1명만을 내세웠다. 200호 사이즈 작품 4점 모두 유럽 컬렉터들에게 팔렸다. 국제갤러리의 조덕현, 이기봉 작가의 동양적 감성에 주목하는 컬렉터들이 많았고, 김기라 전경 YP 이혜림 등도 인기를 얻었다. 카이스갤러리에선 최근 국내외로 인기를 끌고 있는 최소영의 청바지 작품 판매가 두드러졌다. 신진 작가 이경미의 작품도 3점 판매됐다. 작년에 주빈국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한국 화랑에 대한 인지도는 꽤 높은 편. 참여 화랑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판매는 작년보다 부진했지만, 단순히 한국 작가가 아닌 작품 대 작품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일반인들까지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다니엘라 에드버그 <Atomic Picnic> 2007

관객을 사로잡는 ‘괴기스러운’ 작품들

아트페어는 미술품 견본시다. 따라서 판매뿐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느냐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입구에 괴기스럽거나 신기한 작품들을 내새워 관람객을 부스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취하는 화랑들이 다수 보였다. 판매 면에서는 의문이지만 일단 홍보 면에서는 성공적인 듯싶다. 관람객들은 그 작품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2007년 아르코에서 갤러리선컨템포러리를 통해 출품한 천성명의 작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미술계의 빅 이슈였다. 상처 입고 찢기고 고개를 숙인 작가를 닮은 천성명의 조각상은 현대인의 아픔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작품성을 높게 평가받는다. 국내에선 다소 ‘심각하게’ 인지되는 그의 작품이 스페인 아르코에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품으로 인식되는 모양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주로 피 흘리고 일그러진 표정을 ‘귀엽다’라고 표현한다는 놀라운 사실. 천성명의 작품은 솔드 아웃으로 그치지 않고 주문이 쇄도했고, 스페인 신문과 방송에 여러 번 소개되며 인기를 과시했다.
천성명의 인기가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올해 아르코에서는 천성명의 작품을 닮은 작품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마드리드 T20갤러리의 위제니오 메리노(Eugenio Merino)의 거지 행색을 한 남자 조각상, 루이스아데란타도발렌시아가갤러리(Luis Adelantado Valencia)의 폴케르트 드 종(Folkert de Jong)의 괴기스러운 여인 두상도 인기다. 캐나다의 트레파니베어갤러리(Tr럓anier Baer)는 부스 외벽에 이반 페니(Evan Penny)의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사실적인 반신상을 걸어놓아 관객들을 발길을 사로잡았다. 밀라노의 갤러리카르디(Galleria Cardi)는 석고 실물 캐스팅 조각을 미디어와 혼합해 설치한 베르나르디 로이그(Bernard?Roig)의 작품으로 관객을 모았다. 이들 작품은 물론 형태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인간 군상이라는 점, 전부 괴로운 표정이나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성명의 작품과 공통된다. 또 베를린의 아른트&파트너갤러리(Arndt & Partner)는 토마스 허쉐른(Thomas Hirschhorn)의 <컨셉트 자동차>로 관객을 모았다. 자동차에 온갖 잡다한 오브제, 씨디, 장난감, 선풍기, 거울, 램프 등을 날고 각종 문구를 써넣어 장식한 작품이다. 관객들은 이 잡동사니 자동차를 들여다보고 신기해 하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실험적인 작품을 맛보다

아르코는 실험적인 전시와 작품으로 주목을 끌었다. 3층에 마련된 14.1에서는 미디어 기획전 <Expended Box>, 가장 최신의 미술을 소개하는 <ARCO 40>, 매 시간 생생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Performing ARCO>, 개인전 형식의 <Solo Project> 등 다양한 기획전이 마련됐다. 솔로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진행해 온 아르코의 자랑. 11명의 큐레이터가 설립한 작가와 갤러리들이 ‘이머징 아트’의 가장 실험적인 측면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한 부스에서 온전히 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는 상업성 아트페어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뉴욕 CRG갤러리의 브라질 작가 토니코 레모스 아우드(Tonico Lemos Auad, 1968)는 빵을 태워 만든 덩어리로 관객들이 직접 드로잉을 할 수 있게 했다. 비엔나 갤러리나쉬트(Gallrie N둩hst)의 크리스토프 웨버(Christoph Weber, 1974)의 벽면에 설치한 스틸 조각이 눈에 띄었다. 69개의 스틸 조각으로 이루어진 <10월의 첫 번째 순간>(2007)은 에이젠슈타인(Sergei M. Eisenstein)의 혁명적 영화 <10월>(1927)의 첫 장면에서 제정을 상징하는 알렉산더 3세의 석상이 붕괴되는 과정을 카메라의 앵글에 따라 재구성한 작품이다.
또 취리히의 프레이몽드구스갤러리(Frey mond -Guth)의 스위스 작가 잉고 지젠다너(Ingo Giezen danner)는 비디오 회화 설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상업적인 영역까지도 넘나든다. 작품의 특징은 야외 사생을 통한 드로잉이라는 점. 전통적 방식과 현대적 기법의 결합이다. 또 앙겔스바르셀로나(`Angels Brcelona)의 제이미 피타르크(Jaime Pitarch, 1963)는 벨라스케즈와 같은 고전 작품의 재구성, 이질적인 오브제들의 혼합과 변형을 통해 중력과 균형의 문제를 다룬다.
이밖에도 5명의 일본 작가 토모코 모네다(Tomo ko Moneda), 싱고 프란시스(Shingo Francis), 나오코 마지타(Naoko Majita), 토시아키 히코사카(Toshiaki Hikosaka), 야수시 에비하라(Yasushi Ebihara) 등은 이미지의 형식과 변형에서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진 산(Jin Shan), 리 송송(Li Songsong), 수 젠(Xu Zhen)과 리우 웨이(Liu Wei) 등의 차세대 중국 작가들은 다이내믹한 중국 미술의 현재를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행사로 이러한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미술 관계자, 컬렉터, 일반 관객들을 한 데 묶는 ‘Art Experts Forum’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6회를 맞는 이 포럼에서는 ‘브라질미술은 결국 무엇인가’ ‘미디어 아트, 전략과 경향들’ ‘비엔날레에서 아트페어까지:큐레이터들과 아트마켓’ ‘카피라잇과 시각예술’ ‘후원과 동시대미술’ 등 미술시장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슈들을 진지하게 논의함으로써 아르코 아트페어의 ‘중심축’역할을 했다.

믹스앤매치-설치미술가 조숙진과 뮤지션 이상은

작가의 작업실을 개조한 홍대 앞 카페 ‘무대륙’. 테이블, 선반 등 솜씨 좋은 핸드메이드 가구들이 마치 조숙진의 나무 작업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이상은의 아지트인 그곳에서 오랜만에 함께 자리한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반갑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서로의 안부부터 지인들의 안부까지 그간 못 다한 이야기들이 사진 촬영 내내 끊임없이 이어졌다. 조숙진이 작년 9월 아르코미술관 개인전으로 잠시 귀국했던 이후 첫 만남이다.
10살 터울의 조숙진과 이상은. 이들이 선생님과 제자이자, 언니 동생하고 부르는 친구가 된 사연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 만남은 머나먼 뉴욕에서 이루어졌다. ‘담다디’ 이후 아이돌스타의 삶에 회의를 느낀 이상은은 91년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고자 여행을 떠났고, 도쿄를 거쳐 친구가 있는 뉴욕에 도착했다. 그때 친구를 따라 간 뉴욕의 한 교회에서 친구의 개인레슨 선생님이던 조숙진을 만난 것. 당시 20살을 갓 넘긴 “순진한 큰 아기 같으면서도 성숙하고 유머감각 넘치던 재능덩어리” 이상은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미술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던 대학원생” 조숙진은 자연스레 친분을 쌓았고, 친구까지 셋이서 자매처럼 함께 살며 잊지 못할 뉴욕에서의 1년을 보냈다.
“선생님이 은근히 보기보다 활동적이시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저 뉴욕에서 선생님 때문에 특이한 공연 많이 봤어요. 이스라엘 전통음악 무용공연 같이 남들은 잘 안 보러 다니는 거요. 브루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 블루맨도 자주 갔죠. 맞다! 선생님이 좋은 영화 상영하는 곳이라고 소개해 주셔서 안젤리카필름센터도 갔었는데.”
“그래.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참 부지런했는 걸. 참 힘들던 시기였는데 재미난 친구가 옆에서 항상 웃음을 주니, 정말 힘이 많이 났지.”
서로가 아직 진정한 프로로 거듭나기 전, 젊음과 패기로 많은 것을 도전하던 그 때 그들의 예술적 조력은 말 그대로 “함께 놀고 즐기면서” 얻어진 것들이다. 뉴욕의 넘쳐나는 문화적 소스를 함께 만끽했고, 그렇게 예술적 영감과 에너지를 충전했다. 단 각자의 작업에 있어서는 서로의 영역을 넘지 않았다. 당시 프랫인스티튜트 대학원생이었던 조숙진은 주로 아무도 없는 늦은 밤 학교 작업실에서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즐겨 들으며 작업을 했고, 이상은 역시 아파트에서 틈틈이 작사, 작곡을 하며 한국에서 지친 마음의 휴식을 취했다.
물론 서로의 작업과 관련된 즐거운 추억도 빼놓을 수 없다. 조숙진은 이상은의 녹음실에 찾아가 성량 좋은 흑인들 틈에서 코러스에 참여하기도 했고, 이상은 역시 조숙진의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으며 서로의 활동을 격려했다.
“그때 선생님 전시에 가보고 너무 좋았어요. 사실 선생님 작품이 재료비는 많이 안 들지 몰라도 너무 우아해 보여요. 직설적으로 돈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도 고상하다고 할까요? 저도 말 그대로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아마 제가 선생님 작업에서 그런 정신성을 배운 것 같아요.”

이상은의 최근 공연 장면

‘나무’라는 재료의 의미

이미 당시부터 ‘버려진 나무’로 작업을 했던 조숙진의 작품을 향한 이상은의 솔직한 평이다. 버려진 사물들을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켜 그 아름다움과 생명을 재발견하는 설치미술가의 작품이 20살을 갓 넘긴 청년에게는 생소하면서도 매우 웅장하게 다가왔다. 그런 조숙진의 작품을 미술비평가 도널드 커스핏(Donald Kuspit)의 말을 빌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자면 “워즈워드가 그의 시 <행상>에서 자연의 형태들 속에서 종교적 의미와 명상적 기쁨을 찾는다고 표현한 것처럼, 조숙진의 작품에서 산문적인 나무들은 표현적인 시(Expressive Poetry)로 변형되듯” 보는 이에게 감정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상은은 당시 조숙진이 바닥 장판지에 그림을 그리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는 장판지 위에 그려진 추상화에서 동양적인 정신성이 표출되는 느낌을 받았다. 장판지라고? 처음 듣는 이야기에, 기자는 조숙진의 다양한 재료 변천 내막이 사뭇 궁금해진다.
“사실 학창시절에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캔버스 살 돈이 없었거든. 그땐 이상하게도 비싼 재료를 앞에 두면 마음이 열리질 않는 거야. 망치면 버려야 되잖아. 그래서 주변에서 값싸면서도 다양한 재료를 찾아본 거지. 80년대 초반에는 캔버스 한 개 살 돈으로 합판 열 장을 사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 그런데 합판이 물성이 있어서 이래저래 연구를 하다 보니 형태도 만들 수 있고 그 다양한 가능성에 매료됐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야.”
뿐만 아니라 조숙진에게 나무는 회화와 조각이라는 형식적 경계를 넘나들기에 적합한 소재이다.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설치도 할 수 있는 나무는 작품에 있어 이분법적인 편견을 깨버리고 싶었던 그의 직관에 따른 결정이기도 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싼 것과 비싼 것’, 심지어 ‘여자는 예쁜 것 좀 그려라’ 아니면 ‘팔리는 작업을 좀 해라’라는 말처럼 작업을 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편견과 이분법들이 너무도 싫던 그였다.
나무뿐만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사물들은 조숙진에게 있어 가능성이 넘치는 재료가 된다. 그는 그간 진행한 장소특정적 작업에서 그 곳의 환경이나 문화, 특성을 담아내는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s)’를 사용해 왔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대나무로 작업했고, 브라질에서는 곳곳에 버려진 깨진 벽돌과 해변의 조개들을 주워서 학생들과 학교 벽에 붙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처럼 무심히 버려진 사물은 그의 손에 의해 예술로 재탄생된다.
“첫 야외 작업을 했던 소크라테스 공원에서는 드럼통을 이용했어. 그건 꿈에서 영감을 받은 거야. 내 작업에서는 장소나 꿈 등 다양한 영감을 통해서 갖가지 소재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고 볼 수 있어. 단지 그 중에서도 나무가 가장 중요한 재료로 이용되고 있는 거지.”
“어렸을 때 선생님 작업을 봤을 땐 마냥 멋있을 뿐 뭐가 뭔지 몰랐죠. 이젠 저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선생님께서 굳건히 자신만의 세계를 지켜 나가는 게 느껴져요. 예전에도 종종 ‘타협 안 한다’고 말씀하시던 게 생각나요. 선생님 작품은 요즘처럼 복잡하고 피곤한 일이 많은 세상 속에서 평온함을 제공하는 가치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 치유의 힘도 있어요.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거침없는 예찬에 살짝 부끄러웠던 듯, 조숙진은 이내 제자이자 친구가 쓴 에세이집으로 슬쩍 이야기를 돌린다. “내가 보기엔 너가 쓴 책 《Art & Play》가 진짜 예술작품이야. 정말 재밌게 읽었어. 어지간한 미술교과서보다 좋은 것 같아. 우리 주변의 모든 게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그 발상이 너무 신선하고 솔직하게 다가오던 걸.”
“그거 돈 벌려고 쓴 책인데, 헤헤헤.” 이상은의 유머감각에 다같이 웃음을 터뜨린다. 조숙진의 칭찬처럼 이 에세이집은 대중에게 많은 인기와 호응을 얻었다. ‘일상에서 예술하기’를 말하며 주변의 갖가지 사물을 재활용하여 가구나 악세사리, 옷을 만드는 등 우리의 일상 속에서 창의력과 영감을 발휘하자던 그의 외침.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발견된 오브제’로 새로운 미를 추구하는 조숙진의 예술관과 분명 교집합을 이룬다.

음악에서 ‘공간’을 느끼다

자신이 마음으로 꼽는 딱 두 명의 ‘진짜 선생님’ 중 한 분이자, 만날 때마다 ‘상승 효과’를 주는 이가 바로 조숙진이라고 말하는 이상은은 그에게서 ‘스타’가 아닌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고 듣고 배웠다. 이상은은 학창 시절, 미술대학 진학을 꿈꾼 적이 있다. 미대를 가기 위해 화실을 다녔던 이상은은 그림보다는 매일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붓을 잡고 ‘답답해~’라고 외치며 노래 부르던 에너지 넘치는 소녀였다. 그랬던 그가 뉴욕에서 활발한 현대미술의 현장을 접한 후 다시금 미술공부를 시도하게 된 것은 당연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상은은 프랫인스티튜트 입학을 준비했고, 조숙진은 새로운 꿈을 키운 이상은의 포트폴리오 준비를 지도했다.
“사실 마지막에 가서 조금 도왔을 뿐, 내가 가르쳐준 게 별로 없지. 너가 미술을 공부해 보겠다고 해서 ‘한번 그려봐라’하고 주제를 던져 줬더니, 너무 잘 그리는 거야. 네 그림을 처음 보자마자 ‘음악적 재능이 그림 재능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구나’하고 느꼈지. 무언가 굉장히 자유롭고 열린 마음으로 작업을 하는 것 같고, 그 속에 힘이 있고 감성과 마음이 담겨 있다고 느껴졌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려는 그런 거 말이야. 근데 이후에 조금 미술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었나?”
“사실 1년 후 지루해져서 좀 쉬게 됐죠. 저한테 미술은 왠지 좀 정적이라는 느낌이에요. 전 1년 미술을 하면 7년 정도 음악을 해야 그게 다 풀려요. 2000년에도 런던 첼시아카데미에서 1년 정도 미술을 공부하고선 ‘으악!’하고 달려 나와버렸죠. 결국 음악이 저의 메인인 거 같아요. 음악이든 미술이든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은 하나라고 본다면 말이죠.”
그런 그에게 음악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어느덧 열세 번째 앨범을 발표하며 한 길을 걷고 있는 이상은은 자신에게 음악이란 하나의 ‘공간’같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음악은 들을 때 ‘우주’가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떤 음악은 크고 작은 공간 안에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그녀가 음악을 만드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종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야기를 듣던 중 잠시 나무로 새로운 공간을 구축하고 설치하는 조숙진의 작업을 연상해 보니, 이들에게 작업이란 단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을 다룬다는 차이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라며 마치 그 공간을 음미하듯 중간 중간 살며시 눈을 감던 이상은은 자신의 작업 방식을 들려주며 기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이상은에게는 혼자만의 ‘골방’이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빠져들게 되는 상상의 공간이다. 혼자 있을 땐 항상 거기에 들어가서 방금 전까지 생각하던 것을 끄집어내고, 다시 일상생활을 하다가 또 그곳에 들어가서 느낌을 채워가고, 매일 그런 순간을 반복하다 보면 골방 안에 작업을 위한 ‘무언가’가 쌓여 있다. 작업이란, ‘이제 시작해 볼까’하고 책상 앞에, 혹은 건반 앞에 앉아서 구상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에겐 일상과 경험 속에서 갈고 닦아 가는 것이 바로 창작의 방식이다. 따라서 이상은은 앞으로 자신이 어떤 음악을 할지 전혀 모른다. 앞으로 무엇을 겪을지 앞을 내다볼 수 없듯이 말이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종종 ‘마음이랑 음악은 재료가 같다’라는 말을 즐겨 하곤 해요. 있어 보이려고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마음이나 음악이나 사실 눈에 안 보이는 건 같잖아요. 그 안에 진심을 담을 때 가장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같다는 말일 거예요. 그리고 내가 겪은 ‘경험’이 가장 진실되게 표현될 수밖에 없잖아요. 선생님도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영감을 주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그런 경험이 나에게 다가와서 내가 자연스럽게 그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도 무언가 굉장히 그런 과정이 자연스러워 보이세요.”
“맞아. 작업도 마찬가지야.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작업을 하다보면, 진심으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담게 돼. 아마 그런 진심이 담겨야 다른 이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을 거야. 어떤 평론가가 작업실에 와서는 이 에너지로 회화를 했다면, 부자가 됐겠다고 한 적이 있어. 하지만 작가가 돈에 따라가서는 안 되지. 내가 진심을 보여주면 오히려 그런 것들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거라고 생각해. 점점 내 작품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고, 판매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니 말이야. 아마 한 길을 의지와 신념대로 걸어간다는 게 아마 우리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거 선생님한테 배운 거예요.” 이처럼 그들은 “경험에서 비롯된 진심이라는 재료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자”라는 결론으로 예술가로서 서로의 공통점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자신의 재능에 대해 스스로 단련하고자 하는 예술적 소명, 즉 그들의 가치관이야말로 분명 비슷한 점이라 말한다. 이는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고 개입하지 않는 것, 오로지 상대방의 예술을 향한 분명한 확신과 믿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지켜봐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술은 진행형

활발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제자가 선생님의 작품에 대한 감상평과 느낌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차분하고 꼼꼼한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정성껏 경청할 뿐 제자의 음악에 대한 평을 아끼는 신중한 모습이다. 먼저 말해주길 기다리던 기자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먼저 조숙진에게 가장 좋아하는 이상은의 음악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아무래도 상은이가 뉴욕에서 작사, 작곡하던 모습을 지켜봐서 그런지 3집 앨범, <더딘 하루>에 가장 마음이 가더라구요. 그때 상은이 너가 쓴 가사를 보고 내가 너무 좋아했는데 기억나? 이후로도 작업할 때 그 앨범을 자주 듣곤 했어.” 조금은 예상했던 대답이기라도 한 듯 기자는 이내 그 앨범의 표지를 떠올렸다. 작사, 작곡부터 연주, 녹음까지 모든 과정을 셀프 프로듀싱한 것으로 알려진 앨범이자, 누군가의 말처럼 “무슨 말로 형용하느니 차라리 그대로 봉인하고 싶은 노래들”이 들어 있는 <더딘 하루>의 표지에는 바로 조숙진의 89년 작 <저 너머(Over There)>가 담겨 있다.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여겨오던 터다.
“싱어송라이터는 자기가 살아온 삶을 음악으로 남겨 놓거든요. 겪은 이야기를 쓰게 되죠. 어떤 전통이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뉴욕의 풍경과 심상, 그 기억을 영원히 남겨 놓을 수 있는 걸 고르다 보니 선생님 작품을 자연스레 선택했나 봐요.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지금은 뉴욕의 스튜디오들이 거의 디지털레코딩하는 곳 밖에 없지만, 그때 거의 마지막으로 테이블레코딩이라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을 했었어요. 아날로그가 살아 있던 시절의 추억과 감성을 이 작품이 담아내는 거 같아요.”
당시 뉴욕에서 함께 지낸 시간 속에서 서로가 각각의 깊은 곳에 단단히 밀착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나’라는 존재가, 그리고 내가 만든 ‘창작물’이, 누군가에게 어떤 한 시절을 대변할 만큼의 소중한 가치로 다가간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 이를 확인시켜 주는 두 사람의 관계를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런 상대방에 대한 애착과 존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에 너와 이렇게 대화할 기회를 제안 받은 후에 반짝하고 생각난 게 있어. 내가 몇 작품에서 뮤지션과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거든. 언젠가 상은이 너랑 같이 그런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때, 멋지지 않아? 왜 여태까지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오! 너무 좋아요. 저도 같은 생각을 했었어요. 선생님께서 언젠가 제 공연의 무대미술을 맡아 주세요. 와우. 너무 멋질 거 같은데요. 요즘엔 조명, 영상, 빛 같은 것들이 무대에 있어 중요한 요소잖아요. 그것이 어떻게 자연스러운 나무라는 재료와 혼합될 수 있는지 보여주시면 어떨까요. 제가 꼭 기회를 만들어 볼 테니, 그때가서 ‘난 너 몰라’ 하시면 안돼요.”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작업 구상에 빠진 두 예술가와, 이번 자리가 새로운 예술적 성과를 위한 자그마한 발판이라도 된 듯 괜스레 뿌듯해진 기자까지 덩달아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이제 작가로서 뮤지션으로서, 어느덧 스스로의 위치를 자리매김한 프로들이기에 좀 더 전문적으로 서로의 예술적 능력을 교류할 기회를 모색하는 그들의 모습이 기자에게도 활력을 준다. 아마도 이는 함께 느끼고 즐기고 이야기 나누던 지난 뉴욕 시절 이루어진 “좋은 에너지의 교류”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인터뷰 말미에 조숙진은 뉴욕 시절, 이상은이 서로가 함께 손잡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음을 기억해냈다. 꿈이란 것이 쉽게 잊어버리기 십상인데, 이상은도 이내 잊고 있었던 기억을 회복했다.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이라…. 재미난 꿈이라고 가벼이 여겼던 그 이야기가 불현듯 떠오른 것은 얼마 후 이상은의 3집 앨범 가사들을 뒤적이던 때였다.
‘부서지는 햇빛 눈부신 얼굴로 어린아이처럼 그대와 웃고 싶네 / 따스한 날개 밑에 가만히 안기어 끝없는 구름의 바다를 날아가리라 / 그대가 없으면 노래할 수 없어 / 엄마와 같은 사랑 그대여 변하지 마오’ (3집 <더딘 하루> 수록곡 ‘영원히’ 中)
꿈 이야기를 교묘히 연상시키는 이 가사를 보면서, 그들이 말했듯 창작이란 ‘경험’을 담는 것임을 재차 확인했다. 비록 이 가사가 그 꿈 이야기를 담은 것이 아닐지라도,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공감대가 기자에게도 형성된게 틀림없다. 이는 바로 그들과의 만남이라는 또 다른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글/ 장승연 기자

조숙진 <크로스 로드> 나무에 채색 2007~2008 사카타파운데이션 후원, 이타파리카, 브라질

서용선, 도시의 관찰자 '진실게임'을 벌이다

서용선은 늘 새로운 길을 떠난다. 서울 베를린 베이징 뉴욕
등의 도시로는 물론 조선의 역사적 사건으로까지 그의 행로는 시공간의 제한을 넘어선다. 5월, 서울과 부산에서 열리는 개인전(갤러리에이스토리, 5. 1~27)을 앞두고
양평 작업실에서 작가를 만났다. 열정적 작업의 흔적이
아틀리에 곳곳에 팽배했다. 무한한 사고의 확장을 꾀하는
그의 특별한 작업 태도를 들어본다.

인터뷰 이선화 기자

<숙대입구> 캔버스에 아크릴릭 180X230cm 1991

힘없이 늘어뜨린 팔에 생기 없는 얼굴로 거리를 오고가는 사람들. 역사 속 인물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편린들. 서용선이 천착하는 소재들의 열거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작품의 소재가 주는 특이성이나 다양성과는 거리가 있다. 소위 ‘역사화’라는 장르의 현대적 개척이나 도시인의 초상 내지는 인간의 실존이라는 내러티브를 끌어낸다는 점의 주목이 아니라는 것이다.(이러한 측면에서는 이미 충분한 논의가 있기도 하다.) 격자무늬의 패턴과 화면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선이 만들어내는 공간감, 평정을 잃은 듯 서로서로에게 부딪히는 원색의 조화, 이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형 요소를 화면에 담아내는 작가 특유의 조형적 태도를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내가 주목하는 측면이다. 인터뷰 내내 발하는 뛰어난 화술, 무뚝뚝하고 보수적인 외모에 감춰진 자유로운 사고, 그리고 작품 이미지와 수번 교차되었던 그의 미소를 지면을 통해 전한다.

art 5년 전에 작업실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주변 풍경이 많이 달라졌네요. 작업실도 하나 더 생겼는데요. 개인전 준비는 다 끝나셨나요.
서용선(이하 서) 2점 정도만 마무리하면 되요. 30여 점 전시할 예정인데, 전시 주제는 <도시의 인물> 입니다. 도시화를 통해서 겪는 도시의 문제죠. 자화상이 일부 있긴 한데, 결국은 이 시대 인간의 모습입니다. 2006년부터 약 2년 남짓 작업한 것이 대부분이고, 5년 전부터 작업한 것도 몇 점 있어요.
art 자화상 이외의 몇몇 작품에서 이색적인 풍경이 눈에 띕니다. 특정 도시의 풍경인가요.
서 네 곳의 장소가 합쳐진 거죠. 뉴욕 베를린 베이징 서울을 직접 다니면서 그렸어요. 작업의 마무리는 이곳 작업실에서 했고요. 3년 전에 베를린에 다녀왔는데, 전쟁과 관련된 작품도 8점 됩니다.
art 베를린 체류 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나요.
서 베를린은 한국의 분단 상황을 생각나게 했어요. 분단의 흔적이 아직 여기저기에 남아 있으니까요. 동독과 서독의 분위기도 많이 다르죠. 나는 한국전쟁 중에 태어났어요. 간접적으로 들었던 당시 도시의 모습이 오히려 베를린에서 확인됐던 것 같아요. 전쟁과 관련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것과 관련해 작업을 했어요. 또한 도시의 중압감 같은 것을 표현하기도 했고요.
2006년에는 헬게 라이베르그의 베를린 스튜디오에서 3개월 간 체류했습니다. 마이클슐츠갤러리가 소개해 줬죠. 시설이나 여러 면에서 참 좋았어요. 특히 베를린 문화의 여러 면을 경험했다는 측면에서 좋은 기회였지요. 헬게가 정치적으로 쫓겨서 드레스덴에서 망명한 동독 출신 작가잖아요. 한국에는 페인팅 작업 위주로 소개가 된 것 같은데, 그 작업실에 머물면서 재미 있는 것도 많이 봤죠. 헬게 친구 무용가가 옆방에 살았는데, 매일 드럼치고 춤추고 그랬어요. 스카치테이프 하나 가지고 2시간 동안 실험 음악을 하는 모습도 봤는데, 그 진지함이 대단했습니다. 큰 도시에 가면 그런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가장 큰 재미죠.

색에 대한 감정을 뒤흔들다

art 본격적으로 작품 이야기를 해보죠. 특히 색에 대한 측면입니다. 작품에서 색이 차지하는 비중은 내용적인 부분은 물론 여타 조형적 측면과 비교해도 거의 절대적입니다. 강렬한 색감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서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를 관통해서 학교를 다니던 때였어요. 어느 날 본 코카콜라 간판이 너무나 선명하고 예쁘다는 생각을 했죠.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으니까. 당시는 한국 미술계 전반에 백색 미니멀리즘의 고상하고 절제된 색채가 지배적인 분위기였으니 과감히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1980년대 신표현주의에서 자극을 받은 점도 있고요. 그래서 내가 평소에 기피하던 색을 적극적으로 화면 속으로 집어넣었어요. 색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뒤흔들어야 해결된다고 생각을 한 거죠. 투명하고 맑은 원색을 쓰기 시작한 때는 80년대 초였고, 원색을 내가 할 수 있는 극한에까지 밀어붙여봤던 시기가 1990년대 초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바뀌고 있어요. 전에 비해서 무채색도 쓰기 시작하고, 다소 중화된 것 같거든요.
art 색의 변화가 이번 신작에서도 나타납니다. 블루나 레드가 주는 원색적인 화려함도 있지만 몇몇 작품에서는 회색조가 두드러지는데요. 베를린, 베이징의 도시 풍경이나 일부 자화상에서 그러한 변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서 사실 색에 대해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선생이 나에게 색을 잘 쓴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깜짝 놀랐죠. 나는 색이 안 되서 반항하듯 던져놓듯이 그림을 그렸는데 말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극복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의 작업실에 95년도에 왔는데, 어느 봄날 건강한 땅의 색이 눈에 들어왔어요. 내가 잘 쓰지 않던 색이었죠. 그것을 보고선 다시 생각이 바뀐 거 같아요. 내가 쓰던 원색이 너무 의지가 강했던 것은 아닌지 하고. 그런데 금방 바꾸는 것은 쉽진 않아요. 느끼긴 하지만 작품으로 실천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문제니까요. 지금은 왔다 갔다 하는 거 같아요. 순수 원색조와 무채색조 색감의 경계 사이에서요.
art 작품이 평면적인 것 같지만 동시에 평면적이지 않습니다. 넓은 면에 채워진 원색(후퇴색과 진출색의 사용)과 화면을 사선으로 구획하는 선이나 격자무늬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앞과 뒤, 양 옆을 향하는 인물의 위치 역시 이에 일조합니다. 여기서 색다른 공간감이 나타나는데요.
서 원색을 통해서 공간감을 나타내는 쪽인 거 같아요. 색의 채도를 통해서 깊이를 생각한다는 거죠. 무채색이 섞이지 않은 맑은 원색에서 시원한 느낌을 받아요. 뻥 뚫렸다는 느낌이죠. 그래서 평면적인 듯하지만 캔버스를 넘어서는 공간감이 더해지는 겁니다. 사실 색면이라는 것은 화면이나 평면에나 있는 거예요. 현실에서도 부분적으로 그런 요소가 있긴 하지만 현실은 다르잖아요. 굉장히 다이나믹하니까. 현실이라는 일상 세계의 구체성을 유지하면서 색면으로 환원하는 것의 중간 즈음, 창틀 같은 게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고요. 내용적으로는 그런 일상을 떠날 수는 없어요. 대학시절, 이우환 식의 동양적 미니멀리즘에서 현상학을 알게 되면서부터죠. 관념적으로 추론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일상을 표현하는 쪽으로 기울었어요. 현실이 아닌 예술에서 추상적 이론을 살리면서 일상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을 접목하는 고민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어요.
art 색상의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색을 통한 면의 분할, 혹은 형태가 결국은 공간 창출과 무관하지는 않을 텐데요.
서 구성적인 면을 없애는 것이 낫겠다하는 게 요즘 생각이예요. 화면에 그 구조를 나누게 되면 단순화돼요. 그림이 그것 자체로 현실을 넘어선 독립적인 존재처럼 보이긴 하죠.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래도 현실의 리얼한 느낌을 결국 잃게 되는 것 같아요. 길을 잘못 오지 않았나 싶어요. 요즘은 고치려고 하죠. 페인팅과 다르게 나는 드로잉과 스케치를 많이 해요. 현실과의 간격을 너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요.
art 2미터가 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붓의 거친 필체와 눈을 자극하는 색채가 더욱 역동적으로 비춰지는데요. 대작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서 한국의 건축 상황에 불만이 있죠. 서울의 도시 공간이라는 것은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림도 건축과 연관되니까요. 일례로, 15세기 로마에서는 훌륭한 건축물의 큰 공간 속에서 인간이 꿈을 키웠던 것에 반해, 우리의 경우엔 그렇지 못했잖아요. 우리는 너무 꿈이 작고 공간에 대한 체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내 작품이 커 보일지 몰라도 나는 크다고 생각지 않아요. 원시 미술의 벽화를 생각해 봐요. 루브르박물관의 수많은 작품은요. 우리가 회화라는 것을 캔버스에 그려서 가정집에 그리는 관념 속에서 생각하니깐 그렇죠. 그림이 환경 전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큰 것이 주는 표현의 자유 같은 게 있어요. 그것을 즐기는 거죠. 내 몸이 운동하듯이, 감각이 확산되는 것을 좋아하는 면도 있고요. 결국은 이런 큰 그림들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길 바랍니다.

<들여다보는 개> 캔버스에 유채 259X194cm 2008

사실적 재현의 한계와 새로운 선택

art 80년대 초반에는 <소나무>처럼 형상의 사실적 재현에 관심이 있으셨죠.
서 공모전에 출품할 때 그런 류의 그림을 그렸죠. 젊었을 때, 이미지에 몰두해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유리와 같은 맑은 이미지가 딱 잡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미지 속에 확 빠지는 느낌이죠. 일례로 <소나무>를 촘촘히 그리다보면 몸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올 때가 있어요. 그때 마치 소나무 숲에 들어가 있는 듯한 환각이 들어요. 내가 그림 속에 용해되어 마치 그림과 일치된다는 착각에 빠지는 거죠. 하지만 결국은 객관적인 이미지일 뿐이잖아요. 때문에 나는 색으로 한 면을 칠하고 선을 긋거나 형태를 잡을 때도 선의 밀도 있는 그라이데이션이 아닌 하나의 색가로 대치시켜서 드로잉을 하죠. 난 그것이 더 사실적이라고 믿으니까요.
art 형상의 섬세한 묘사보다 색으로 표현한 화면이 더욱 사실적이라니, 흥미로운 시각입니다.
서 화가는 언어의 부족함을 느끼니까 그림을 그리는 거죠. 고전미술의 사실적인 작품을 보면 우선은 답답하다는 느낌을 항상 받아요. 내 시각 자체가 그렇게 인식하는 겁니다. 그런 류의 사실적인 그림에서 표현한 섬세한 선묘나 완벽한 비례가 오히려 관습적인 테크닉으로 보이니까요. 그래서 사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죠. 때문에 나는 색의 직접성 투명성으로 사실적인 묘사를 대치시키는 겁니다. 꼬로의 풍경화와 겸재의 진경 산수화를 비교해 보아도 마찬가지죠. 내가 동양의 수목에 익숙하고 동양 산수화의 맛을 느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산수는 서양이 동양의 것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산수화가 나에게는 훨씬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게 그런 이유이기도 하고요. 거기에는 내 나름의 기준이 있어요. 사실적 형상에 대한 표현의 가능성을 믿지 않으니까.
art 그러한 사고가 원색을 사용하는 이유이자 작가 특유의 형태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군요. 완벽한 마감이 이루어지지 않은 듯 보이는 작품의 ‘불완전한 완결성’을 말이죠.
서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문젯거리예요. 어떤 사람들은 나답다고도 하는데, 그 점을 많이 생각해요. 이러한 작품 경향이 자라온 환경, 개인의 기질, 부모의 영향과 관련된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50년대 초에는 주변의 모든 것이 파괴됐었죠. 반듯한 집 한 채를 못 봤으니까요. 집이라고 해도 무허가나 임시로 지은 게 태반이었잖아요. 나 역시 한 번도 완성이 된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문짝이 있지도 않았고. 그런 무질서 속에서 내 조형감각이 완성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기질하고도 연관이 많은 것 같고요. 어떤 사람들은 옷 입는 거 자체가 다르거든요. 단추 다 채우고 반듯하게 사진 찍는 이들이 있는데 나는 다르잖아요.

인생 스토리, 희극과 비극의 희비

art 어린 시절은 어떠셨나요. 직접적 표현법 때문인지 형상의 솔직하고도 귀여운 측면이 가려지는 것 같습니다. <춤추는 남자-링컨센터>나 <생각>에서는 그런 느낌을 확실히 받을 수 있지만요. 작품의 등장인물이나 사건에 아이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투영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서 사람들은 내 작품을 무섭다고 하는데, 극단적으로 말하면 귀엽게 보인단 말이죠. 장난 같은 느낌이 있어요. 비극적인 영화를 보다가도 한 인간이 쓸쓸히 죽음 앞에 맞닥뜨리는 순간이 있잖아요. 어떤 상황에서는 너무 재미있을 때가 있어요. 운명 앞에서 인간은 그저 인간일 뿐이니까요. 아무리 가꾸어도 하나의 동물로서 한계 지어진 인생, 그 속에서 희극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고 보는 거죠. 어린 시절에는 항상 밖으로 쏘다녔어요. 외아들이라 여자 형제밖에 없으니까 집에서는 놀 상대가 없었죠. 지금도 그런 면이 있어요. 친구들도 많고, 사람 좋아하는 거요.
art 대학을 다소 늦은 나이에 들어가셨죠.
서 군대 다녀와서 24살에 입학했어요. 고백하건데 그때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것보다 대학을 간다는 것이 중요했던 거 같아요. 집이 어렵고 하니깐 부모님이 서울대에 못 가면 등록금을 못 대준다고 해서 전공과 상관없이 여기저기에 원서를 냈어요. 미술은 공부 안 해도 되는 줄 알았죠.(웃음) 어느 날 신문을 봤는데 화가 이야기가 나왔어요. 남자들이 미술을 하는 줄도 몰랐을 때였죠. 고등학교 동기 중에서 미술대학 간 사람이 나 혼자예요. 아슬아슬하게 들어간 것 같아요.
대학 때는 학교에 거의 나가질 않았죠.(웃음) 그래서 평점이 너무 낮았고 대학원 시험도 처음에는 떨어졌어요. 정물이 나왔는데, 그때는 추상이 대세인 시기여서, 나는 정물을 추상으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런데 시험을 보고 상황을 보니 전혀 분위기가 아니더라고. 아, 이거 완전히 잘못 생각했구나 했죠.(웃음) 그리고 대학교 2, 3학년에는 모든 것이 안 풀렸던 시기였어요. 당시에 약간 정신질환 증세 같은 게 나타났어요. 세상을 다 알 수 있다는 과잉 의지가 넘치는 건데, 제정신이 아니었죠. 몇 개월 고생을 했어요. 길거리 다니면서 모르는 사람한테 이야기도 하고 그랬으니까. 평소 말씀이 없으시던 아버님이 “너 정신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라고까지 하셨어요. 그런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 섭섭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버지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죠.
도시와 역사를 바라보다가
art 80년대 중반 가장 큰 변화는 소재에 있습니다. ‘도시 바라보기’의 실제 주체는 작가 자신인가요.
서 난 호기심이 많아요. 20년 세월을 서울의 북쪽에서 남쪽까지 횡단하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정거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굉장한 호기심을 가지고 그들을 관찰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성격, 과거 등에 대해 직관적으로 느끼죠. 그러면서 공감을 많이 합니다. 끊임없이 새록새록 일어나는 그 느낌을 즐기는 것 같아요.
art 정류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다수 생기 없는 무표정의 얼굴입니다. 혹자는 인간 소외나 익명성을 비평의 근간으로 보고 있는데요.
서 <숙대입구>는 내가 보기에도 어둡고 우울한 도시의 일상처럼 보여요. 그러나 그것이 내가 표현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 잠재된 풍부한 생각이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을 뿐이죠. 나는 인물의 표정이 무표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일상적인 보통의 얼굴 모습이니까요. 그림의 형식이 그런 쪽으로 보이기 쉽다는 것까지는 인정은 하죠. 하지만 선과 색을 더 길게 보면 그 그림의 생각들이 경직된 형태만 가지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겁니다. 겉으로 보이는 경직된 부분이 대표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언젠가 그런 부분을 사람들이 읽을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art 역사화 작업의 본격적 출발이 1986년도입니다. 소위 ‘역사화’라는 장르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리는 것보다 의식화해서 그리는 소재들이 있는 거 같아요. 역사화라는 게 그렇죠. 난 사실 역사화라는 것을 모르고 시작했는데, 정영목 선생이 역사화라고 해서 알게 되었어요.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미술을 보면 인간 신화 역사 등 고전미술의 화려한 이야기가 끝이 없죠. 주눅 들게 만드는 거창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잖아요. 서양에는 있지만 우리에게는 잊혀지고 무시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것을 찾는 과정에서 단종의 역사, 사육신과 관련된 것을 주목한 것이고요. 이 소재를 계속 다루다보니 정말 그 사건이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환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음모 권력 다툼 증오 같은 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데 그림과 색으로 가면 엉뚱해지잖아요. 처음에는 한 10년 정도만 해도 충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본질을 못 건드린 것 같아요. 서너 번의 개인전을 하면서 정리를 하고는 있는데, 잘 안 되고 있으니 계속해야죠.
art 역사적 사건의 일순간을 화면에 집약하는 재현의 어려움이나 사실적 접근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을 거 같은데요. 그러나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재해석과 상상력의 결합이라는 장치이겠죠.
서 그렇습니다. 역사는 고정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역사는 고정될 수 없는 ‘해석의 역사’의 지속이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역사화라는 것도 역사만큼 고정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임금의 모자를 씌워 놓고 빨간 색 옷을 입혀놓은 것이지, 누가 그 사람을 왕으로 알겠어요. 역사적 고증을 치밀하게 받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그 사건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죠. 때문에 기존의 역사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르네상스식 원근법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형상들에서 이미 떠나있는 거니까. 역사를 보는 나의 감정의 덩어리 자체를 화면에 덩어리로 옮겨놓는 거예요.
art <자화상> 연작 역시 마찬가지 이유입니까.
서 자신을 그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측면에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형식상의 변화에 주목할 수도 있고요. 문제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예전과 달리 선을 색면과 조화시키려는 고민을 합니다.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누드나 자화상이 그런 경우죠. 몇 작품은 선에 대한 실험성이 짙어요. 독립적으로 선을 그리면서 면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의 문제에 집중하는 거죠. 조형적 형식에서는 그렇게 이해할 수 있어요. 표현적인 측면도 있지요.
성기가 드러나는 누드는 성적이죠. 중반의 나이가 되면서부터 그런 표현적 부분이 자유로워졌어요. 성에 대한 관념을 벗어나면서부터니까. 우리는 문화적 관습 속에서 이성을 보잖아요. 결혼 역시 문화적 관습과 연관이 깊죠. 사람들에게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싶어요. 어떤 이는 내 그림을 보고 눈을 돌리고 싶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점 역시 생각을 해요. 극복하고 싶은 거예요. 그것이 사회적 관습을 깨는 시각문화에 관여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의무이니까요.

“인생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있다. 도시를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역사의 안타까운 순간을 특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작가를 통해 비극과 희극의 상징적 의미를 되집어본다. 현실 그 너머로 만 가지 표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에 관습의 족쇄에 갇히지 않은 어린 아이 같은 꾸밈 없고 적나라한 시선이 자리한다. 호기심 가득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이의 자유로운 행동에 달콤한 상상력이 상응하고 있다. 감상하기 편안한 고상한 미적 완결성에 대해 서용선은 말한다. 그것이 얼마나 고약한 취향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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