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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8.03

Abstract

특집 DYNAMIC BUSAN - 부산시립미술관 10년, 내일은 있다_박천남, 이진철 - 부산비엔날레, '낭비'없는 축제로!_호경윤 - 미술시장의 주역과 대안의 공간들_김성연

Contents

표지 헬렌 반 미네 <Untitled #200> C-프린트 39×39cm 2004

에디토리얼 aMart로 다시 태어났습니다_김복기
 
프리즘 
    비자금 수사, 미술품은 희생양?_정준모
    한줌의 재 이야기, 숭례문 영전에 바치다_김주영
 
포커스 
    홍승혜|구동희_임근준
    그림의 대면|서윤희_김형숙
    예술과 자본|함경아_이선영
 
스페셜 아티스트1 
    김아타,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라진다_김복기
 
스페셜 아티스트2 
    무라카미 타카시, Murakami 시작의 끝, 끝의 시작_히로 리카
 
해외 리포트 
    아르코2008-플라맹고 빛깔, 열정의 아르코_이성희
 
특집 
    부산시립미술관 10년, 내일은 있다_박천남 이진철
    부산비엔날레, ‘낭비’없는 축제로!_호경윤
    미술시장의 주역과 대안의 공간들_김성연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사타|이선경|강태훈
 
이미지 링크 헬렌 반 미네
 
전시리뷰 
    한국현대판화 1958-2008|트랜스팝|최진욱|배종헌
    코리아에피소드|권이나|권여현|이배경|양아치|양연화
 
아웃 오브 코리아 
    유근택_미네무라 토시아키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스페셜아티스트-장민승 “믹스 앤 매치는 나의 힘!”

장민승, 1979년 중앙대 조소과 졸업

장민승, “믹스 앤 매치는 나의 힘!”

글| 이성희 기자

가구디자이너, 영화음악프로듀서, 공연기획자로 잘 알려진 장민승. 그가 이번에는 사진과 가구, 그리고 회화를 함께 선보이는 〈INTERMISSION〉전(2. 30~3. 5, 서미앤투스)을 마련했다. 여행을 하면서 단순한 관찰자의 시점에서 담담히 담아낸 사진, 〈Heavy Industry〉 테이블 시리즈, 회화 그리고 오프닝에는 깜짝 공연도 마련됐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은 네트워크 시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인 것 같다. 아마추어도 얼마든지 음악을 작곡, 편곡할 수 있게끔 손쉬운 프로그램이 개발됐고, 사진은 정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매체가 됐다. 기술이 개발될수록 준비 비용도 낮아지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작업이나 감성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게 됐다. 이러한 신세대를 대표할 만한 아티스트가 있다. 가구디자이너로 더 잘 알려진 장민승. 사실 그를 가구디자이너란 명칭으로 국한시키기엔 넘나드는 영역이 너무도 많다. 자신이 디자인한 가구를 모티프로 찍은 연출 사진, 회화뿐만 아니라 베이스기타 연주, 영화음악프로듀서, 공연기획 등 미술과 음악 영화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끼를 발산하고 있다.

2006년 서미앤투스에서 열린 <Can I drinkchampagne?> 전시 광경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일을 진행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의 나이 이제 30살인데 경력이 정말 다양하다. 대학시절 미대생이라면 한번쯤 가지게 되는 음악에 대한 로망. 처음은 그렇게 시작돼서 오히려 작업보다 기타 연주에 열중해 밴드를 만들어 활동했다. 그리고 군 제대 후에는 음악으로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뜻이 맞는 친구들 몇몇이 어울려 영화 음악 코디네이팅을 하게 된 것이다. 영화음악프로듀싱을 했던 인연으로 10회 부산영화제에서는 ‘시네마틱러브’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비주얼뿐만 아니라 오감을 만족시키는 파티로 관객을 열광케 했다. 여담이지만, 올해 ‘시네마틱러브’에는 테크노음악의 원류, 독일의 전설적 뮤지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가 그의 파티를 위해 한국을 내한할 지도 모르겠다. 그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자신의 파티에 초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실 미술의 탈출구로 음악을 찾았고, 사업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그는 다시 작품 활동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조그만 작업실을 하나 마련해 친구들과 함께 조선시대 목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만드는 워크숍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반상’에서 영감을 얻어 테이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여기에 교각의 철골 구조 형식을 따라 테이블의 하부 구조를 만들고 상판은 잘 다듬어진 나무를 이용했다. 특히 재료를 다루는 것을 중시하는 그는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디지털적인 감성이 깃든 그의 작업은 사실 들여다보면 수작업이 주를 이룬다.

그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다고 했다. 처음 시작한 목가구를 재해석하는 작업부터, 테이블, 그리고 테이블을 특정한 장소에 설치해서 찍은 사진, 회화 등 그의 작업의 중심은 재해석과 차용이다. 최근 선보인 회화에 사용한 안료 역시 물감이 아닌 도료, 그것도 있는 도료의 색을 그대로 이용하고 붓대신 스프레이를 사용했다. “결국 내가 하는 작업은 누군가가 고민해서 만든 가구, 그리고 건축물, 색깔을 잘 따다가 맛있게 요리하는 거에요. 그런데 거기에 나의 생각, 철학, 신념을 집어넣는 게 얌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역할은 이 모든 것들을 얼마나 잘 믹스 앤 매치하는 가죠. 그것이 제가 가진 장점이기도 하구요. 연출력이요.”

작품 활동, 밴드, 디자인스튜디오, 공연 연출 기획 등 장민승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협업’. 여기서 그의 역할은 믹스 앤 매치의 디렉팅이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유연한 생각으로 작업에 임하는 그는 사람과 사람, 물질과 물질 등 서로 가장 잘 맞는 것을 엮어내는 데는 귀재다. 이것이 장민승을 네트워크 시대의 ‘신세대 아티스트’로 규정지을 수 있는 이유이다.

<pk 16 for laptop> 나무에 페인트 60X39X29cm

2008 ARCO8

플라맹고 빛깔, 열정의 아르코

스페인 마드리드의 아르코 아르페어(2. 13~18)가 27번째를 맞아 전시장을 새롭게 마련하고 다채로운 기획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2007년보다 규모를 1.5배 확장해 갤러리 부스 전시, 주빈국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미디어 특별전, 퍼포먼스, 솔로 프로젝트, 또 현대미술과 시장과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담론을 논의하는 포럼을 매일 매시간 마련했다. 특히 자국 내 갤러리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아르코가 아트페어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갖추기 위해 자국 갤러리를 대거 탈락시키고 신진 갤러리들을 추가함으로써 풍성한 작품과 작가들을 선보였다. art가 아르코의 생생한 현장을 담아 왔다.

글|이성희 기자

2007년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해 주목을 끌었던 스페인의 아르코 아트페어. 덕분에 한국에선 꽤 익숙한 행사다. 1982년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매해 2월에 개최되는 아르코가 27번째를 맞아 2월 13일부터 18일까지 마드리드의 이페마 전시장에서 펼쳐졌다. 올해는 특히 건축가 후안 헤레로스(Juan Herreros)가 참여해 전시장을 새롭게 마련했다. 이번 아르코는 건축공사 비용이 많이 들어서인지(?) 입장료를 대폭 인상했다. 그러나 32유로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약 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치러졌다.
참여 화랑 수는 34개국 295곳으로 전년보다 약간 늘어났다. 일반 갤러리 부스 외에 브라질 주빈국행사, 큐레이터 프로그램, 미디어 특별전, 퍼포먼스, 학술 포럼 등을 풍성하게 선보였다. 1층에 위치한 12관, 14관에서는 갤러리 부스 전시, 3층에 위치한 14.1관(스페인식 표기)에서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그래서 1층은 주로 작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컬렉터의 발길이, 3층에는 젊은 학생들의 발길이 먼저 닿았다. 이번 아르코에서는 실로 다양한 관객층을 만날 수 있었다. 컬렉터와 미술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대학생, 청소년, 부모님을 따라 온 어린들까지 말이다. 아르코는 단지 1년에 한 번 열리는 거대한 ‘아트 마켓’이 아니라 스페인인들의 문화적 자랑이자 성대한 미술 축제다.

2008아르코 아트페어 전시장 광경

스페인의 ‘나라 잔치’

아르코는 단순히 미술 작품을 파는 일반 아트페어와는 성격이 다르다. 처음 설립된 배경도 르네상스부터 내려오는 에스파냐 미술의 자긍심을 복귀해 보려는 의도에서였다. 벨라스케즈부터 고야, 피카소, 달리, 미로에 이르기까지 에스파냐 미술은 에스파뇰의 민족성을 대변하는 특유의 천재적 사고, 뜨거운 예술적 감성, 광기의 상징이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전 세계의 미술학도들은 벨라스케즈의 <라스메니나스>를 보기 위해 프라도미술관으로 모여들고, 피카소의 <게르니카> 한 점을 감상하기 위해 소피아미술관으로 찾아든다. 두 작품은 가장 유명하고,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는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그 스케일 면에서도 압도적이다. 이렇게 뜨겁고 유서깊은 에스파냐 미술인데 현대미술에서는 프랑스, 전후 미국, 또 개념미술이 강세인 독일에 밀려 이렇다 할 ‘스타 작가’를 탄생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스페인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기획해 동시대 스페인 미술의 세계화와 아울러 미술시장의 세계화를 모색하기 위해 1982년 아르코 아트페어를 마련했다. 그런데 왜 하필 2월일까. 확인한 바는 없지만 봄, 여름, 가을에야 아르코가 아니더라도 마드리드를 찾는 관광객은 차고 넘치니 비수기인 겨울에 관광 수익을 거두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어쨌든 아르코가 열리는 기간 중엔 마드리드 전체가 축제 분위기다.

공항 주변에 위치한 아르코 행사장에서 20분 거리의 시내 중심의 미술관 등 아트페어 기간 중 마드리드는 곳곳에서 관련 행사가 펼쳐진다. 낮에만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스페인의 발달된 밤문화를 무시하면 안 된다. 아침은 10시, 점심은 3~4시에 천천히 즐기고, 저녁은 8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아르코의 오픈 시간도 특이하게 정오부터 밤 9시까지다. 참여 화랑들은 저녁끼니도 거른 채 밤까지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어쨌든 9시 이후부터 본격적인 ‘스페니쉬 나이트’가 시작된다. 스페인의 상징인 플라맹고를 즐기면서 말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집시들이 정착하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플라맹고는 집시들의 방랑 문화를 구슬프게 읊조리는 노랫가락과 한 맺힌 동작, 박수 소리 등이 어우러져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된다. 집시 문화를 대변하는 플라맹고는 고야, 피카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스페인 화가들이 한번쯤은 다루는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기자도 깊은 밤의 구성진 노랫가락에 빠져 5일간의 여정 중에 이틀 밤을 플라맹고에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이튿날 소피아미술관에서는 우연히도 <Spanish Night>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플라맹고를 스페인만의 고유한 문화로 규정짓는 중요한 기획전이었다.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는 회화, 사진, 의상, 각종 도큐먼트뿐만 아니라 전통 플라맹고를 보여주는 영상과 영화들도 마련되어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감성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강형구 <Vincent van Gogh in Blue> 캔버스에 유채 259.1X387.8cm 2006

2008 아르코의 성과

2007 아르코가 ‘한국 주빈국’ 행사에 편중된 경향을 보였다면, 올해는 좀 더 풍성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국내외 참여 화랑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판매 면에서는 작년보단 조금 떨어진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르코 위원회 측은 아직 정확한 통계를 내진 못했으나 판매량은 작년과 비슷할 것이라고 전했다. 얼마 전 세계적인 서브프라임 쇼크 때문에 투자시장 예측이 어려운 상황과 스페인의 장기적 경기 침체로 미술시장이 불안정한 가운데 이만하면 꽤 성공적인 결과라는 판단이다. 아르코의 안정적 성과에는 스페인 자국내 기관들의 작품 구매가 한몫한다. 레이나 소피아(1백16만4천유로), 아르코재단(25만유로), 코카콜라재단(12만유로), MUSAC(31만2천유로) 등 스페인의 각 지방 단체에서도 다수의 작품을 구입했다. 스페인 정부와 단체가 얼마나 아르코를 격려하고 미술에 관심이 높은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2001년에서 2007년까지 현대미술 분야의 판매량이 233% 성장했고 전반적인 미술시장은 152%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술시장의 성격이 바뀌어가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컬렉터들은 작품 구매를 결정하기 전에 작가와 가격의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딜러나 갤러리스트의 견해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구매자가 작품 구입에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사진과 다른 매체의 발달로 미술시장이 다변화되었고, 컬렉터들은 고가의 작품부터 저가의 작품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 경매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1천유로 미만의 작품들이다. 미술시장 전문가인 리처드 폴스키(Richard Polsky)는 “투자자나 컬렉터가 가장 현명하게 투자하는 방법은 실력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고 알찬 작품들을 사는 것이다. 미술시장이 붐이든 거품이든 간에, 작고 알찬 작품들은 항상 상대적으로 높은 투자가치를 발휘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점은 이번 아르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장 고가의 작품으로 판매 여부가 기대됐던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은 결국 구매자가 나서질 않았고, 대체로 고가의 작품보다 중저가의 작품을 구입하는 분위기였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 미술시장의 분위기가 중저가의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기도 하지만, 유럽에서 고가의 작품은 거의 바젤아트페어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컬렉터들조차 진정한 마스터피스를 사기 위해서는 바젤아트페어를 찾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아르코는 유명 대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머징 아티스트’를 내세운 신선한 갤러리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아트페어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시장의 인기 작가들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 알렉스 카츠, 줄리앙 오피, 데미안 허스트뿐만 아니라 사진의 거장, 토마스 루프, 토마스 스트루스, 칸디다 회퍼 등의 ‘신작’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알렉스 카츠의 작품은 두 세군데 갤러리에서 눈에 띄었다. 뮌헨의 베른트클루저갤러리(Bernd Kl웧er)는 알렉스 카츠뿐만 아니라 로버트 마더웰, 앤디 워홀, 토니 크렉, 요셉 보이스 등 현대미술의 거장들을 내놓았다. 뉴욕의 피터블룸갤러리(Peter Blum Gallery)도 알렉스 카츠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고 쿠사마 야요이, 김수자, 로버트 라이먼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토니타피에스갤러리(Toni T늩ies)도 알렉스 카츠의 작품 몇 점을 판매했다. 또 최근 한국의 TV 광고에서도 걷고 있는 여인의 미디어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 줄리앙 오피의 작품은 국제갤러리를 비롯해 다수의 갤러리에서 선보여 인기를 실감케 했다. 국제갤러리의 오피 작업은 45만유로에 판매됐다.

뉴욕 팀갤러리 부스 광경

이머징 갤러리, 이머징 아티스트

아르코는 스페인 자국 갤러리와 포르투갈, 주빈국으로 참여한 브라질 등 라틴 쪽 갤러리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곳이다. 특이 이번에는 국제적 아트페어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하고자 참가 신청한 자국 갤러리들을 30개 이상 탈락시키면서 질적인 향상을 꾀했다. 또 일반 부스에서도 잘 팔릴 만한 작품을 대량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갤러리의 컨셉트를 드러낼 수 있는 소수의 작가와 작품을 선정해 전시 형식으로 부스를 꾸민 화랑들이 많았다. 스페인의 애드혹갤러리(Adhoc Galeria), T20갤러리, 에스티아르테갤러리(Estiarte Galeria), 페라레스갤러리(Pelaires Galeria), 살바도르디아즈갤러리(Salvador D뭓z Galeria), 스위스의 피터킬크만갤러리(Peter Kilchmann), 메이36갤러리(Mai 36), 밀라노의 갤러리카르디(Galleria Cardi), 뉴욕의 팀갤러리(Team Gallery) 등은‘핫’한 디스플레이와 작품으로 손꼽을 만하다.
이번 아르코에서는 라틴, 아시아 미술에 대한 관심 외에도 러시아 미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모스코바의 아이단갤러리(Aidan Gallery)는 모노톤의 초현실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비인간적인 차가운 소녀 사진으로 최근 인터넷에 자주 등장하는 1983년 생 올레그 도우(Oleg Dou)의 작품은 VIP오프닝 때 솔드 아웃되었고, 주문이 쇄도했다. 또 마치 복제된 듯한 인간 군상들을 괴기스럽게 표현한 필립 돈스토프(Philipp Dontsov)의 미디어 작품, 여성의 속옷, 옷장 등을 미니멀한 선 조각으로 표현한 안나 졸루드(Anna Zholud)의 작품까지, 러시아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준 아이단갤러리의 부스에는 가장 많은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한국 참여 화랑들도 아르코의 특징을 간파한 듯 기존의 아트페어, 또는 경매 인기 작가들보다는 새로운 작가를 검증하려는 시도들이 엿보였다. 한국 화랑은 갤러리아트싸이드, 국제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카이스갤러리, 학고재 총 다섯 갤러리가 참여했다. 갤러리아트싸이드의 이재삼은 특유의 목탄 기법으로 대나무, 매화 등을 그린 작품이 첫날 솔드 아웃되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한국작가로는 강형구 1명만을 내세웠다. 200호 사이즈 작품 4점 모두 유럽 컬렉터들에게 팔렸다. 국제갤러리의 조덕현, 이기봉 작가의 동양적 감성에 주목하는 컬렉터들이 많았고, 김기라 전경 YP 이혜림 등도 인기를 얻었다. 카이스갤러리에선 최근 국내외로 인기를 끌고 있는 최소영의 청바지 작품 판매가 두드러졌다. 신진 작가 이경미의 작품도 3점 판매됐다. 작년에 주빈국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한국 화랑에 대한 인지도는 꽤 높은 편. 참여 화랑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판매는 작년보다 부진했지만, 단순히 한국 작가가 아닌 작품 대 작품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일반인들까지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관객을 사로잡는 ‘괴기스러운’ 작품들

아트페어는 미술품 견본시다. 따라서 판매뿐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느냐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입구에 괴기스럽거나 신기한 작품들을 내새워 관람객을 부스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취하는 화랑들이 다수 보였다. 판매 면에서는 의문이지만 일단 홍보 면에서는 성공적인 듯싶다. 관람객들은 그 작품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2007년 아르코에서 갤러리선컨템포러리를 통해 출품한 천성명의 작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미술계의 빅 이슈였다. 상처 입고 찢기고 고개를 숙인 작가를 닮은 천성명의 조각상은 현대인의 아픔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작품성을 높게 평가받는다. 국내에선 다소 ‘심각하게’ 인지되는 그의 작품이 스페인 아르코에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품으로 인식되는 모양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주로 피 흘리고 일그러진 표정을 ‘귀엽다’라고 표현한다는 놀라운 사실. 천성명의 작품은 솔드 아웃으로 그치지 않고 주문이 쇄도했고, 스페인 신문과 방송에 여러 번 소개되며 인기를 과시했다.

천성명의 인기가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올해 아르코에서는 천성명의 작품을 닮은 작품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마드리드 T20갤러리의 위제니오 메리노(Eugenio Merino)의 거지 행색을 한 남자 조각상, 루이스아데란타도발렌시아가갤러리(Luis Adelantado Valencia)의 폴케르트 드 종(Folkert de Jong)의 괴기스러운 여인 두상도 인기다. 캐나다의 트레파니베어갤러리(Tr럓anier Baer)는 부스 외벽에 이반 페니(Evan Penny)의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사실적인 반신상을 걸어놓아 관객들을 발길을 사로잡았다. 밀라노의 갤러리카르디(Galleria Cardi)는 석고 실물 캐스팅 조각을 미디어와 혼합해 설치한 베르나르디 로이그(Bernard?Roig)의 작품으로 관객을 모았다. 이들 작품은 물론 형태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인간 군상이라는 점, 전부 괴로운 표정이나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성명의 작품과 공통된다. 또 베를린의 아른트&파트너갤러리(Arndt & Partner)는 토마스 허쉐른(Thomas Hirschhorn)의 <컨셉트 자동차>로 관객을 모았다. 자동차에 온갖 잡다한 오브제, 씨디, 장난감, 선풍기, 거울, 램프 등을 날고 각종 문구를 써넣어 장식한 작품이다. 관객들은 이 잡동사니 자동차를 들여다보고 신기해 하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다니엘라 에드버그 <Atomic Picnic> 2007

실험적인 작품을 맛보다

아르코는 실험적인 전시와 작품으로 주목을 끌었다. 3층에 마련된 14.1에서는 미디어 기획전 <Expended Box>, 가장 최신의 미술을 소개하는 <ARCO 40>, 매 시간 생생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Performing ARCO>, 개인전 형식의 <Solo Project> 등 다양한 기획전이 마련됐다. 솔로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진행해 온 아르코의 자랑. 11명의 큐레이터가 설립한 작가와 갤러리들이 ‘이머징 아트’의 가장 실험적인 측면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한 부스에서 온전히 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는 상업성 아트페어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뉴욕 CRG갤러리의 브라질 작가 토니코 레모스 아우드(Tonico Lemos Auad, 1968)는 빵을 태워 만든 덩어리로 관객들이 직접 드로잉을 할 수 있게 했다. 비엔나 갤러리나쉬트(Gallrie N둩hst)의 크리스토프 웨버(Christoph Weber, 1974)의 벽면에 설치한 스틸 조각이 눈에 띄었다. 69개의 스틸 조각으로 이루어진 <10월의 첫 번째 순간>(2007)은 에이젠슈타인(Sergei M. Eisenstein)의 혁명적 영화 <10월>(1927)의 첫 장면에서 제정을 상징하는 알렉산더 3세의 석상이 붕괴되는 과정을 카메라의 앵글에 따라 재구성한 작품이다.
또 취리히의 프레이몽드구스갤러리(Frey mond -Guth)의 스위스 작가 잉고 지젠다너(Ingo Giezen danner)는 비디오 회화 설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상업적인 영역까지도 넘나든다. 작품의 특징은 야외 사생을 통한 드로잉이라는 점. 전통적 방식과 현대적 기법의 결합이다. 또 앙겔스바르셀로나(`Angels Brcelona)의 제이미 피타르크(Jaime Pitarch, 1963)는 벨라스케즈와 같은 고전 작품의 재구성, 이질적인 오브제들의 혼합과 변형을 통해 중력과 균형의 문제를 다룬다.
이밖에도 5명의 일본 작가 토모코 모네다(Tomo ko Moneda), 싱고 프란시스(Shingo Francis), 나오코 마지타(Naoko Majita), 토시아키 히코사카(Toshiaki Hikosaka), 야수시 에비하라(Yasushi Ebihara) 등은 이미지의 형식과 변형에서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진 산(Jin Shan), 리 송송(Li Songsong), 수 젠(Xu Zhen)과 리우 웨이(Liu Wei) 등의 차세대 중국 작가들은 다이내믹한 중국 미술의 현재를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행사로 이러한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미술 관계자, 컬렉터, 일반 관객들을 한 데 묶는 ‘Art Experts Forum’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6회를 맞는 이 포럼에서는 ‘브라질미술은 결국 무엇인가’ ‘미디어 아트, 전략과 경향들’ ‘비엔날레에서 아트페어까지:큐레이터들과 아트마켓’ ‘카피라잇과 시각예술’ ‘후원과 동시대미술’ 등 미술시장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슈들을 진지하게 논의함으로써 아르코 아트페어의 ‘중심축’역할을 했다.

추상미술 반세기를 돌아보다-하종현展

<접합 06-014> 마대에 유채 120X180cm 2006

작가 하종현의 추상미술 반세기

작가 하종현의 반세기 화업을 돌아보는 회고전이 2월 29일부터 3월 23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흐름을 조망해 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1970년대의 실험적인 설치작품부터,최근의 〈접합> 연작에 이르기까지 40여점의 대작을 선보인다.

글| 김지연·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팀장

이번 전시는 지난 반세기, 한국 화단의 변화와 성장 과정의 중심에 서 있는 작가 하종현의 반세기 화업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1970년대 당시 가장 전위적인 미술인 집단이었던 A.G. 멤버로 활동한 하종현은 항상 새로움에 대한 열망에 가득 차 있던 작가다. 철사와 용수철, 나사 등을 이용하여 여러 재료의 물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실험하던 평면 작업, 공간을 활용한 설치 작업들을 통해 작가는 당시의 사회 현실과 미술에 대한 도전적 자세를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이후 80년대에 이르러 그는 물질과 물질의 만남이 빚어내는 세계, 그 속에서 작용하는 신체와 감정의 접합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실험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는 색채로서의 물감뿐 아니라 물질로서의 물감에 깊이 관심을 갖고 마대와 물감이 만나고 작가의 신체적 동작을 통해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그들이 만나는 접점을 찾아 나서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지극히 단순한 작업의 반복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의 작업 속에서 작가는 완벽하게 자신의 힘을 조절하면서 화면을 장악하고 세계를 구성한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완전함이 제공하는 온화하고도 고요한 분위기를 내뿜는 한편 좋은 기운이 담긴 풍경과도 같은 화면이 된다. ‘무기교의 기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절묘한 화면은 세련된 감성의 세계를 제공한다.

2003년 이탈리아 무디마 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 이후 5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70년대의 실험적인 설치 작품부터, 오늘날 집중하고 있는 〈접합> 연작에 이르기까지 40여점의 대작을 선보인다. 그가 걸어온 화가로서의 길은 바로 한국미술사의 50년 세월 그대로다. 이우환 박서보 김창렬 등과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 작가로 꾸준히 활동해 온 작가이기에, 그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한국 추상미술의 반세기 흐름을 조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평론가 이경성은 “회화의 역사는 평면 위에 이루어 놓는 온갖 체험적인 실험의 결과이다. 때로는 평면을 찢거나 뚫어서 투시 공간을 만든다든가 하는 조형의 모험도 이룩했다. 그런 의미에서 화가 하종현은 미술사의 변혁에 있어서 중요한 한 부분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하종현이 창안한 독특한 회화 기법의 가치를 평가한다.

그의 회화는 작가만의 특별한 캔버스인 마대 뒷면에서 표면 쪽으로 물감을 밀어내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회화는 표면에 그림을 그린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이 기법에 대해서 국내외 많은 평론가들은 수평 수직 방향으로 잘 묶여진 대나무나 수수깡 틈새로 황토를 밀어 넣어 흙을 다지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한옥의 벽공사와 유사하다고 이야기한다. 일본 평론가 토시아키 미네무라는 그의 독특한 작업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앞면에 스민 감촉은 마치 서리가 내려진 토양이 전부터 머금고 있던 수분들에 의해서 울퉁불퉁 위로 치솟아 오른 부분을 가볍게 혹은 무겁게 두드린 것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하여 캔버스의 질감과 물감의 압력간의 평균 수위에 일반적인 회화의 표면도 뒷면도 아닌 제3의 표면을 불쑥 눌러 세우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방식일 뿐 아니라 새로운 미감을 전달하는 것이다.

작가는 항상 ‘머리를 현대화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미지의 곳을 향한 도전을 거부하지 않는 작가는 여전히 넘치는 활력으로 넓은 세계를 향해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 이후 작가는 프랑스 생폴드방스미술관과 루앙시립미술관, 그리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윈터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 계획이다. 칠순을 넘어선 지금까지도, 넓은 세계 미술계를 향해 끊임없이 항해하는 작가의 자세는 지금 여기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많은 작가들에게 커다란 자극이자 귀감이 될 것이다. 02)720-1020

<접합 07-28> 마대에 유채 120X180cm 2007

김아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온에어 프로젝트:마오의 초상 116-2: 아이스 모놀로그> 시리즈 크로모제닉 프린트 233X188cm 2006

김아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최근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김아타가 국내에서 개인전 (3. 21~5. 25 로댕갤러리)을 연다. 이번 전시에는 2002년 이후 지속해 온 <온에어(ON-AIR) 프로젝트>가 소개된다. 김아타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철학적 명제 아래 장노출과 다중인화 기법을 동원, 사진 예술의 방법과 정신을 심화시키고 있다. 개인전에 앞서 김아타를 만났다.

인터뷰 | 김복기·본지 발행인

《art in culture》는 지난 2002년 3월호에서 김아타를 〈Emerging Artist〉라는 비중 있는 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그때 〈뮤지엄 프로젝트 #125-열반〉을 표지로 실었다. 유난히 임팩트가 강했던 그 표지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김아타가 직접 파라핀으로 만든 1,000개의 부처상이 해변 위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있고, 그 가운데에 벌거벗은 동자승이 지평선을 배경으로 좌대 위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사진이다. 이 작품은 〈열반〉 시리즈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art in culture》 김아타 특집은 1980년대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출발해 1990년대의 〈세계-내-존재〉와 〈해체〉 시리즈를 거쳐 〈뮤지엄〉 시리즈에 이르기까지의 작품을 총결산하는 자리였다. 특히 김아타는 그 해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상파울로비엔날레에 한국대표(커미셔너 윤진섭)로 선정되어 순수미술 영역으로 본격 진입했다. 돌이켜 보면, 《art in culture》가 김아타를 특집 작가로 ‘띄운’ 것은 120% 옳은 선택이었고, 그 이후 오늘까지 김아타는 미술계에 확실히 ‘떠올라(emerging)’이젠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특히 이 시기에 김아타의 작품은 〈온에어(ON-AIR) 프로젝트〉로 새롭게 변신하여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욱 심화해 갔다.
김아타는 한국보다 바다 밖에서 더 큰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작가다. 최근 국제 무대에서 김아타의 활약이 눈부시다. 김아타의 예술적 성가(聲價)는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더 크게 빛났다. 2004년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사진 전문 출판사 애퍼처(Aperture)가 김아타의 사진집 《뮤지엄 프로젝트》를 발행했는가 하면, 2006년 세계 굴지의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뉴욕 국제사진센터(ICP: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는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김아타 개인전을 열었다.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언론의 호평이 잇따랐다. 작품값도 수직상승했다. 작년 11월 뉴욕에서 열린 ACAF에서는 10억원의 작품 판매고를 올렸고, 뉴욕 시가지를 찍은 〈온에어〉 사진 한 점이 2억5천만원에 팔렸다. 한국 사진 작품으로는 역대 최고 가격이다.

<온에어 프로젝트 110-1 타임스퀘어, 뉴욕> 크로모제닉 프린트 188X248cm 2005

온에어 프로젝트, 존재와 부재 사이

art 오랜만에 국내 개인전을 연다. 〈온에어 프로젝트〉를 국내에서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온에어 프로젝트〉에 오면 작품 주제는 물론이거니와 사진의 매체적 특성 또한 한층 발전된다.
Atta 이번 전시는 2002년부터 최근까지 제작한 〈온에어 프로젝트〉 중 35점을 전시한다. 〈온에어 프로젝트〉는 디지털 편집 기술을 이용하는 다중인화(Superimposed Images) 방식과 장노출 촬영 기법을 병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중인화 방식으로 〈만다라〉 〈사천왕상〉 〈키스〉 〈세계인〉 〈최후의 만찬〉 등의 시리즈를 제작했다. 수십 장 혹은 수백 장의 이미지를 포개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 사진이다. 장노출 기법의 사진은 8시간, 25시간, 72시간 노출을 주면 고정되어 있는 물체는 기록되지만 움직임이 빠른 물체일수록 그 이미지는 사라지고 최소한의 흔적만 남는다. 예를 들어 2시간 동안 축구경기 장면을 찍었는데, 사진의 결과를 보면 그라운드를 끊임없이 분주하게 뛰어다녔던 선수들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그라운드는 아예 텅 비어 있는 모습이다. 이밖에 장노출 기법으로 1시간 동안 커플의 섹스, 모터쇼 전시장, 법원, 국회의사당, 콘서트홀, 교회, 농구장, 비무장지대(DMZ)를 찍었다.
art‘온에어’는 ‘방송 중’이란 의미로 쓰이는데, 김아타의 사진 작품에서는 어떤 의미인가? 기실 사진 예술의 속성이 모든 이미지를 재현하고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인데, 김아타의 사진은 재현의 대상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만다. 말하자면 사진의 주연은 유령처럼 휙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조연이나 엑스트라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이다.
Atta 내 작품에서 ‘온에어’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온에어’는 내가 1년 동안이나 고심해서 지은 제목이다. 〈온에어 프로젝트〉의 기본 개념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미지를 재현하고 기록하는 사진의 속성과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라지는’ 자연의 법칙을 대비시켜 사실성이 사라지고 난 후의 추상에서 존재의 실체를 탐구해 가는 것이다. ‘사라짐’의 작업 프로세스가 바로 장노출 기법과 여러 이미지를 포개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 두 가지다. 첫째, 장노출로 촬영하면, 사물은 움직이는 속도만큼 사라져 간다. 날아가는 새는 빨리 사라지고, 천천히 움직이는 물체는 천천히 사라진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우주의 섭리와 세상살이를 생각한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물들은 과연 영원한 것인가? 이런 역설적인 질문도 가능하다. 두번째는 여러 이미지를 포개어 사물들 각각의 이미지와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각각의 이미지는 고유의 DNA를 가지고 있지만, 포갠 결과의 이미지에는 원래의 형체가 남지 않는다.
art 장노출로 작업한 사진 중에 얼음이 녹아가는 과정을 촬영한 〈얼음의 독백〉 시리즈가 있다. 이 시리즈는 얼음으로 〈마오쩌뚱〉 〈마릴린 먼로〉 〈아타〉의 초상 조각을 만들어 얼음이 녹아가는 과정을 찍고, 다시 녹아내린 물을 설치, 퍼포먼스 작업으로 연결시킨다. 작업 과정에 여러 복선이 깔려 있어 아주 흥미롭다.
Atta 〈얼음의 독백〉 시리즈 역시 ‘존재하는 것의 사라짐’에 대한 주목이다. 이 세상의 여러 사라지는 현상들 중에서 나는 고체가 기체가 되는 모습 즉, 기화 현상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얼음을 선택한 것이다. 얼음이 녹아가는 과정을 25시간의 노출로, 어떤 것은 4일간의 노출로 촬영했다.
art 중국의 최고 권력자 마오쩌뚱의 얼음 조각이 녹은 물을 다시 108개의 유리잔에 담는다든지 또 유리 상자 안의 물에 돌을 집어 넣는다든지, 그리고 그 물이 썩어가는 상태로 둔다든지… 작품은 끝없이 순환하고 있다. 또한 마오쩌뚱과 대중문화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 그리고 아타 자신의 초상이 녹은 물을 한 곳에 모아 다시 1000개의 그릇에 담아 새로운 풀꽃을 피우는데 이용한다. 마오쩌뚱의 얼굴이 녹아내려 자코메티 조각처럼 깡마른 왜소한 형상으로 변한 상태를 사진으로 포착했는데, 권력무상과 인생무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마오쩌뚱 조각은 결국 녹아내려 사라졌지만 다시 풀꽃의 생명수로 순환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쯤이면 사진 작업의 범주를 뛰어넘어 퍼포먼스나 설치미술 수준이 아닌가?
Atta 나의 모든 작업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art 〈자화상〉 시리즈에서는 각각 다른 인종과 민족 100명의 얼굴을 겹친 작품을 만들었다. 어떤 기준으로 사람들의 초상을 조합했는가?
Atta 내 작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인간, 국가, 지구, 우주 등 모든 사물의 정체성이다. 이 모든 정체성은 나로부터 즉 인간에서부터 시작한다. 〈자화상〉 시리즈 중에서 〈세계인〉은 100개 국가에서 남자 1명씩 100명을 촬영하여 고화질로 스캔하여 이미지를 포개어 새로운 이미지를 완성했다. 세계인 100명의 개체는 서로 적대국도 있고, 종교 또한 다르며, 외교관에서부터 노동자, 성직자 등 다양한 계층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이 100명의 모든 정체성을 한 이미지에 녹여내고 싶었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고 해서 그 속에 포함돼 있는 개개인의 유전자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이 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여러 개의 초상을 조합하다보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가 최종 이미지로 드러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나’는 과연 누구인가? 둘째, 그러한 공통 분모를 가진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길섶에 떨어진 하루살이와의 대화

art 여기서 저 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김아타는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마산에서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한 작가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고향의 빛과 공기, 바람, 그리고 스카이라인 등 생물학적인 배경과 아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고 믿는다. 저 오래 전 기억의 원점으로 돌아가 유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또 어떤 가정에서 성장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타(我他)’는 본명이 아닌 것으로 안다. 나는 아타가 ‘아미타(阿彌陀)’, 그러니까 대승불교 보살의 이상상(理想像)이자 구원불로 존숭하는 아미타불에서 따온 줄 알았다.
Atta 원래 이름은 ‘석중(碩重)’이었다. 일찍부터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자기정체성이 확립되는 그 날을 기다렸다. 〈뮤지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타(我他)’로 바꾸었다. 나와 타자, 나와 세계와의 직접적인 만남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주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한다는 내 신념이 깔려 있다. 물론 ‘아미타(阿彌陀)’를 염두에 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거제 섬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어릴 때 내 별명이 ‘중늙은이’였다. 생각이 많은 아이였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완고한 교육자셨는데, 한학에 관심이 많으셨고, 시간 나면 먹으로 난초를 치기도 하셨다. 난을 치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좋아 하루 종일 아버지 곁에서 먹을 갈았다. 학교와 집을 오갈 때 아버지와 나는 길바닥의 작은 돌맹이와 들길에 핀 코스모스, 길섶에 떨어진 하루살이 등 여러 사물들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여러 자식 중에 내가 아버지와 코드가 잘 맞았다.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 주셨다. 내 영감의 원천은 아름다운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순수함과 아버지의 정신적인 영향이다.
art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어떻게 전공을 선택했는가?
Atta 기계공학과로 진학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어릴 때부터 글짓기 재주가 뛰어나 중고등학교 때도 줄곧 소설과 시를 썼다. 내가 만약 사진을 하지 않았다면 소설가나 시인이 됐을 것이다. 일찍 정신적인 방황기을 겪던 중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내 친구가 대신 기계공학과에 원서를 내줬다. 대학 진학 후,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어려움이 컸다. 전공보다는 오히려 철학을 깊이 공부했다. 내가 사진을 전공했다면, 전형적인 틀에 얽매여 내 사상을 자유롭게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기계공학은 사진 작업에 필요한 물리적인 치밀함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학 시절 사진 동아리를 직접 만들었다. 방학이 되면 2개월씩 카메라를 매고 전국으로 배낭 여행을 떠났고, 책을 통해 카메라와 사진을 독학했다. 다른 학교 사진과 수업을 열심히 청강했고, 많은 세미나와 학회에 참가하면서 사진 메커니즘과 사진 이론을 공부했다.
art 문학과 철학에 관심을 두었다면, 영향을 받았던 작가나 사상가가 있는가?
Atta 나의 위대한 인생의 스승은 아버지다. 대학 시절 내 젊은 날의 초상은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함께 있었다. 그후 구르디에프(Guredjieff 1872~1949)를 만났다. 그의 사상은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다. 현재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건이고 스승들이다.

해체 시리즈, 관념을 버리고 자유를 얻다

art 1980년대의 최초의 시리즈 〈정신병자〉에서부터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에 이르는 초기 작품은 어떤 맥락에서 시작했는가?
Atta 대학 때는 하루 저녁에 형광등 하나만 36컷, 20롤을 찍을 정도로, 스쳐가는 영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방대한 분량의 작업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는 스스로 해석해내지 못하는 추상적인 이미지들이었다. 만족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다른 세계를 만나 다른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내 정체성을 찾는데 더 소중할 것이라 생각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나는 나와 다른 세계로 다가갔다. 10년 동안 세상을 직접 만나 체험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에 서커스, 탄광의 광부들, 백혈병 아동, 원폭 피해자의 후손, 산부인과 출산 과정, 스님 등 수많은 세상살이를 접했다. 정신병동에 머물면서 작업한 〈정신병자〉 시리즈, 전국의 유형문화재 150명을 찾아다녔던 〈인간문화재〉 시리즈도 이 무렵의 작품이다. 정신병동에 들어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프로이트 때문이었다. 대학 때 철학에 깊이 심취해 있을 당시 도대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분석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다. 내 눈으로 인간의 정신을 확인해 보고자 무모하게 정신병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art 초기 사진이 흑백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했다면,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해체(Deconstruction)〉 시리즈에 오면 연출 사진에 가까운 작업으로 바뀐다. 이 시기 김아타의 사진은 처참한 폭력 사건이라도 벌어진 듯 충격적인 이미지들로 구성된다. 이 시리즈에서는 작가가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여러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등 영화 감독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내가 관심을 가지는 건 ‘해체’다. 무엇을 해체한다는 것인가? 이 무렵 국내에서 해체주의 미학을 활발하게 수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Atta <해체> 시리즈는 1년 동안의 명상 훈련 이후에 시작되었다. 서양 철학과는 무관하다. 나는 명상 훈련을 통해 내 정신과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통념으로부터 해체되었다. 〈해체〉 시리즈는 관념 덩어리인 인간을 알몸으로 벗겨 자연이란 밭에 볍씨처럼 뿌려 놓은 형상이다.
art 명상 훈련? 좌선 같은 걸 말하는가?
Atta 사진 작업을 하면서 선 사상을 중심으로 한 동양사상을 오랫동안 수련하던 중 러시아의 위대한 명상가 구르디에프의 영향을 받았다. 이후 구르디에프의 사상과 동양의 선 사상을 접목한 나만의 명상 훈련, 요컨대 이미지트레이닝을 하게 되었다. 이미지트레이닝은 자신의 몸과 정신에 잠재해 있는 에너지를 찾아 확대시켜 가는 수행의 한 방법이다. 관념을 비워내는 수행법이다. 이미지 트레이닝의 핵심은 세계와의 대화이며 이는 관조, 몰입, 해체의 세 단계를 거친다. 나는 이미지트레이닝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해 심도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나는 전형적인 사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사진의 속성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예를 들어 〈해체〉 시리즈가 완전히 해체된 이후에 나온 것이 〈뮤지엄 프로젝트〉고, 〈뮤지엄 프로젝트〉가 해체된 이후에 나온 것이 〈온에어 프로젝트〉다. 나의 모든 작업은 프로젝트를 설정,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동양 사상에 입각해서 내가 세계를 직접 체험하고 수용하고 인식하는 과정을 이미지로 표현해 나간 것이다. 주제를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6개월에서 1년 정도 작업을 진행한 후 가장 이상적인 제목을 붙인 것이다.

<온에어 프로젝트:마오의 초상 043-1: 수월관음상, 여자 15명> 크로모제닉 프린트 233X188cm 2005

뮤지엄 프로젝트, 모든 사물은 존재의 가치를 가진다

art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된 〈뮤지엄 프로젝트〉는 홀로코스트, 섹스, 전쟁기념관, 열반 등 8가지 시리즈로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마치 박물관의 진열대처럼 투명 아트릴 상자 안에 사람들을 집어 넣었다. 박스 안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성과 폭력, 정치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표상들이 마치 유물처럼 설치돼 있다. 이 시리즈는 당시 ‘몸(Body)의 담론’과 함께 비평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Atta 〈뮤지엄 프로젝트〉는 사적인 나의 박물관이다. 살아 있는 것을 영원히 살게 하는 사유의 공간이다. 아용아법(我用我法)이랄까? 아크릴 상자 속의 모든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홀로코스트〉와 〈전쟁기념관〉 시리즈는 인간의 원초적인 폭력성을 다루었다. 〈전쟁기념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베트남전 상이군인들이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에 다름 아니듯이 인간의 원초적인 폭력성은 문명과 관계없이 진보되어 갔다. 전쟁은 집단이 저지른 살인행위가 아닌가? 그런데 전쟁을 기념한다는 지독한 아이러니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이 시리즈에 참여한 상이군인들과 약 3개월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하여 그들을 설득시켜 갔다. 그들이 내 작업 참여한 것은 그들이 예술을 이해해서만은 아니었다.
art 〈뮤지엄 프로젝트〉 중 가장 가장 비중 있는 시리즈는 〈열반〉이다. 벌거벗은 남녀와 불교와의 만남은 가이 충격 그 자체였다.
Atta 〈뮤지엄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작업이 〈열반〉 시리즈였다.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실존의 공간으로 배치한 작품이다. 법당에서 옷을 완전히 벗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큰스님들과 다양한 대화를 해 왔기에, 다행히 큰 스님이 나의 사상을 수용했기에 가능한 작업들이었다. 모델들이 삭발하기 전에 큰스님이 내 머리를 삭발했다. 정말 시원했다. 그게 현재까지 내 헤어스타일이 되었다. 그 날 법당에 벌거벗은 모델이 세팅된 장면을 보고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불(生佛)은 처음 본다.” 〈열반〉 작업에 참여한 모델 중에는 일반인과 스님 그리고 기독교인도 있었다. 〈열반〉 시리즈 제작 초기에는 절에서 작업했지만 차차 절을 벗어나 숲이나 도로 등 야외공간으로 확대했다. 〈열반〉 시리즈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실제 부다를 만들어 작업했다. 6개월에 걸쳐 내가 직접 만든 1,000개의 파라핀 부다는 양초처럼 태울 수 있다. 〈열반〉 작업이 끝난 후 나는 파라핀으로 만든 부다를 24시간에 걸쳐 태우면서 완전한 열반의 형상을 보았다. 이데올로기의 형상은 지붕 위에도 도로 위에도 길가의 가로등과 현실공간 어디든지 존재하고 있다.
사진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
art 김아타의 예술세계에서 사진 매체는 어떤 의미를 띠는가? 김아타는 사진의 영역을 훌쩍 뛰어 넘어서면서도 또한 사진의 방법론을 존중하고 고수한다. 무엇 때문에 김아타 예술에서 사진이 유용한가?
Atta 사진은 내 사상을 표현하는데 가장 강력한 매체다. 사진은 회화나 비디오 등 다른 매체가 표현하지 못하는 물리적이면서 복잡한 담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진은 오랫동안 사진의 기본 역할인 기록, 기억, 재현에만 머물러 있었다. 나는 이제야 진정 ‘사진 표현의 1세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21세기 디지털의 시대에 사진 표현의 다양성은 실로 대혁명을 맞고 있다. 사진 표현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두가지다. 하나는 사건과 사물들의 배후에는 우리가 보는 것 이상의 무한한 에너지와 담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우리는 눈에 보이는 표면만 담았을 뿐이다. 또 하나는 사진 표현의 프로세스가 무한하다는 점이다. 사진의 표현력과 영역이 크게 확장되었다. 디지털 프로세스의 엄청난 진화와 발달로 사진의 표현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사진이 다른 장르와 비교해서 가장 사실에 가까운 매체임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진이 사실 그 자체는 분명 아니다. 사진 표현은 아직도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온에어 프로젝트〉처럼 장시간 노출 작업과 이미지를 포개어 쌓아가는 작업은 영화나 다른 매체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표현이다. 사진만이 긴 시간의 흐름을 한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 사진에는 사실뿐 아니라 사진 자체의 가치와 담론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순수미술로서의 사진의 역활이다. 나는 예술을 새로움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움, 기존의 역사와 철학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는 것이 사진의 마땅한 역할이다. 만약 내 사상을 전달하는 매체로 사진을 능가하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한다면, 나는 그것을 차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야 사진이 진정으로 발견되었다.” 로잘린 크라우스가 사진을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강력한 매채로 천명한 것도 오래 전의 일이다. 포스트 모던 담론의 한 축을 이루는 ‘복제된 텍스트’의 전형적인 매체가 사진일진대, ‘복제를 통한 의미화’를 김아타처럼 극적인 지점으로까지 끌고가는 작가는 세계미술에서도 흔치 않다. 나는 극사실적인 표현 매체인 사진을 이용하여 물리적 존재감을 갖고 있지 않은 지점까지를 보여주는 김아타 작업의 역설적 측면을 특별히 주목한다. 최근 김아타의 <인도> 시리즈 중에는 그가 24시간 동안 촬영한 인도의 여러 풍물을 포개고 포개어 만들어낸 작품이 있다. 그 인도의 이미지는 놀랍게도 황토빛의 미니멀한 추상공간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형상과 질료는 완전히 사라지고 비물질의 세계, 사유의 세계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김아타의 작품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김순응·K옥션 대표이사 - 미술시장, 거품이 아니라 안목을 걱정해야 할 때

장 샤오강 <Forget and remember No.1> 캔버스에 유채 200X260cm 2003~2004

거품이 아니라 안목을 걱정해야 할 때

글| 김순응·K옥션 대표이사

요즘 미술시장에 대한 전망은 ‘거품론’이 주류를 이룬다. 그간 비이성적으로 많이 올랐기 때문에 빠질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품 가격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것처럼 지나치게 올랐다는 주장도 납득할 만한 근거는 없다. 즉, 합리적인 가치가 얼마인데 얼마이므로 얼마만큼이 거품이다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거품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1990년을 상기하라고 말한다. 80년대 후반 이후 고속성장을 보이던 미술시장이 90년 후반기부터 단기간에 절반 이하로 폭락하면서 패닉에 빠졌던 경험을 말한다. 당시 우리 미술시장도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 그러나 당시와 지금은 그림값이 많이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배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지금을 거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반론이 있다.
80년대 후반 미술시장 붐을 이끈 것은 일본이었다. 당시 일본은 막강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인상파 작품을 중심으로 서양의 작품을 긁어모았다. 서양화에 대한 이해가 얕고 컬렉션 역사가 짧은 일본은 안목 없이 이름만으로 작품을 모았다. 90년 일본 경제의 쇠락과 함께 엔화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세계 미술시장은 붕괴했다. 그러나 작금의 미술시장은 특정 국가가 이끄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 중국 중동 인도 러시아 한국 등 미술품을 왕성하게 구매하는 세력이 광범위하다. 거래되는 작가의 국적도 미국, 유럽에서 전 세계로 다극화되고 있다.

서세동점에서 동세서점으로

미술시장은 돈을 따라 흐른다. 유럽이 금융이나 실물경제를 지배할 때는 유럽이 미술시장의 중심이었고, 2차세계대전 후에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면서 미국 작가, 미국 시장이 세계의 미술을 지배했다. 지금까지는 유럽이든 미국이든 서양의 그림(Western standard)이 세계의 표준(Global standard)으로 군림해 왔다. 경제를 지배하는 나라의 언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고 그 나라의 화폐가 세계의 화폐가 되듯이 경제를 지배하는 나라의 문화가 세계의 표준으로 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중심 이동은 경제(물질)로부터 시작되어 문화(정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은 미국의 경제에 위기를 몰고 오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금융기관들인 메릴린치, 시티그룹, UBS, 몰건 스탠리, HSBC 같은 곳들이 많게는 21조원에서 적게는 7조원의 대규모 손실을 내고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긴급자금을 수혈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국투자공사(KIC)도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불과 10여년 전 아시아금융위기(소위 IMF사태) 때, 우리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서양에 긴급자금을 구걸하던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투자 귀재들은 “지난 60년 간 지속돼 온 미국의 슈퍼 호황은 끝났다. 달러의 시대도 끝났다”고 단언한다. 2000년 이후 달러 가치는 절반으로 떨어진 반면 중국의 위엔화는 세계기축통화로서의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
미국의 상품투자 귀재인 짐 로저스는 최근 미국 주식과 채권을 몽땅 팔아치웠다. 그는 미국 기업의 주식은 다시 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주식을 매입할 중국 기업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그는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 있다면 자식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라는 것이다. 과거에 프랑스어와 영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돈 있는 나라의 언어가 국제어가 되는 법이다”라고 했다. 로저스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투자 귀재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투자처로 중국, 인도, 중동 산유국 등 신흥 시장을 추천한다. 경제력의 이동은 문화력의 이동을 동반한다. 서세동점(西勢東漸)에서 동세서점이 시작되는 것이다. 미술시장의 중심도 더 이상 뉴욕, 런던, 파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아트뉴스페이퍼》의 기자 린지 폴락은 “과거에는 파리와 뉴욕이 예술의 중심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각 지역으로 중심이 분산되고 있다. 앞으로 독창적 예술은 지역에서 꽃피울 것이다”라고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미국의 경기와 상관없이 중국 인도 러시아 중동 등 경제적 잠재력을 가진 지역 미술시장의 성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브리짓 라일리 <Entice 2> 캔버스에 아크릴릭 154.3X137.5 1974

금융시장과 미술시장은 반대 방향?

일부 비관론자 가운데는 최근 미술시장이 금융시장과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아진 관계로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시장 위기가 미술시장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미술시장이 붐을 이루게 된 것은 미술품이 투자 자산으로 인식되면서부터였으며, 미술품을 대체 투자 상품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미술품의 높은 수익률과 더불어 여타 금융 상품과의 상관관계가 적거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즉, 분산투자의 수단이나 위험회피(헤지)의 수단으로 유용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헤지펀드들이 미술품을 많이 구입했고, 아트펀드가 생겼으며,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미술투자에 나서면서 미술시장이 금융시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론을 펴는 측은 비관론자들이 금융시장의 미술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과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서브프라임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작년 8월 이후 연말까지 미술시장은 최고의 호황을 구가했으며, 금년 들어서도 지난 2월까지의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가 모두 예상보다 잘 되고 있는 것은 낙관론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금융과 관련된 매수 세력이 미술시장에서 발을 뺀다고 미술시장이 크게 흔들리기에는 미술 시장은 매우 깊고 넓어졌다.
예전처럼 미술시장의 구매 세력이 특정 국가나 특정 세력에 국한되지 않으며 특정 지역의 특정 구매층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울 세력이 줄을 서 있다. 새로운 수요는 주로 아시아와 러시아, 중동 등 신흥부국 쪽에서 일고 있다. 금융시장과 관련해서도 금융시장의 불행은 미술시장의 행운이라는 전통적인 가설이 아직도 유효하다. 부자들은 금융시장이 혼란스러워질수록 투자 위험에 대한 피난처로서 미술품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는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프란시스 베이컨 <Study of Nude with figure in a mirror> 캔버스에 유채 198X147.5 1969

미술시장 조정 국면

이러한 구조적인 변화와 더불어 미술시장은 조정(Correction)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조정은 흥분과 기대로 비이성적인 축제 분위기에서 휩싸였던 시장의 관계자들이 이성을 회복하면서 찾아오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금년 들어 치러진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에서 보여준 조짐은 컨템포러리의 위세에 눌려 위축되었던 인상파, 근대 미술의 실지회복이다. 최근 2년 정도 컨템퍼러리가 가격과 거래량 면에서 그 이전의 미술을 압도했다. 컬렉터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인상파, 근대미술의 걸작들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면서 컨템퍼러리 작품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컨템포러리 작가에 대한 시장의 냉혹한 검증이 뒤따를 것이다.
우리나라도 같은 상황이다. 지난 1년여 시장이나 미술사적 기반이 확고한 작고, 원로 작가들의 좋은 작품이 희소해지면서 젊은 작가 쪽으로 돈이 몰리고 가격이 뛰었다. 문제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아니라 비싸게 팔리는 젊은 작가들이 모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시장은 치열하게 검증하게 될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작년 말부터 시작되었다. 전반적으로 국내외 미술시장에 폭락(Hard landing)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품 컬렉션을 투자로 생각한다면 쉽게 수익을 내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까지는 대개의 미술품이 무차별적으로 올랐기 때문에 손해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좋은 작가,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 없이는 수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컬렉터들이 눈이 밝아지고 미술품 구입에 점점 더 조심스럽고(Cautious), 선택적(Selective)인 방향으로 진화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거품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자신의 안목을 걱정해야 할 때이다.

2008 March Special - Dynamic Busan

부산시립미술관 10년 내일은 있다

부산미술인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부산시립미술관이 개관한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국제적 미술행사인 부산비엔날레를 치루는 중추적 전시 고간임은 말할 것도 없고, 부산 지역미술인의 사랑방이자 <도큐멘타 부산>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전 등 부산미술을 알리는 보고(寶庫)로서의 부산시립미술관. 미술관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내일의 새로운 방향성을 주목하며 학예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글|박천남 ·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부산시립미술관 전경

미술과 예술의 개념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술관의 기능과 미술관 문화 또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한 연구 결과(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정책과제 2007-17)에 따르면 “21세기 미술관의 패러다임은 유물에서 체험으로, 보존 중심에서 교육 중심으로, 계몽에서 학습과 놀이를 병행하는 에듀테인먼트(교육의 edu와 오락의 entertainment의 합성어)로, 공급자 중심에서 이용자 중심으로, 국가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표준화에서 특성화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결합으로, 관료주의에서 경영합리화로, 학예원 중심에서 전문인력 중심으로, 기억의 축적에서 미래의 창조로 전환”을 이루어가고 있다.

국공립미술관의 새로운 역할론

최근 들어 이런 저런 미술관들이 국내 도처에 생겨나고 있다. 특히 지자체가 설립하는 공립미술관도 여럿 건립 중이거나 계획 중에 있다. 우리나라에 현대적 의미의 공립미술관이 설립된 지도 어언 3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지난 1969년에 세워진 국립현대미술관은 당초 국전(國展)을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미술관의 고유 기능이라 할 수 있는 미술작품과 자료의 수집, 작가나 작품, 미술현상에 대한 조사·연구, 교육프로그램의 개발 등과 같은 본연의 복합 기능은 수행하지 못했다. 관급 전시행사용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립미술관을 포함한 국내 국·공립미술관의 기능은 아직 미술품들을 전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를테면 미술관의 주된 기능은 전시이고, 미술관은 곧 전시장인 셈이다.
서구의 미술관들도 초기에는 수집을 포함한 전시 기능 위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200년이 넘는 근대화라고 하는 긴 터널을 지나면서 그들의 미술관은 이제 공급자 중심에서 이용자, 즉 관객 중심으로 그 기능과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이제 미술관은 전시장을 넘어 평생교육, 사회교육의 장, 즉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주문받고 있다.
국내 국·공립미술관의 설립과 성장 역시 근대화 과정과 맞물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술관의 역사가 짧기도 하거니와 그런 과정 자체를 진지하게 수용하고 고민하지 못했다. 한국 사회는 이미 탈근대사회로 진입했으나, 미술관을 둘러싼 시선과 의식은 여전히 근대 이전 수준이다. 미술관이 탈산업화, 국제화, 세계화, 정보화와 같은 현실적 변화 요구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미술관은 사회교육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며 근대적인 지식을 갈무리하고 분류하고 전달하는 일종의 계몽기관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근대적인 지식 개념은 송두리째 달라졌다. 미술관 운영에도 이른바 경영 논리가 개입되고 미술관은 바야흐로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장소로 전환되었다. 21세기 미술관은 기억 축적의 장으로부터 미래 창조의 장으로 매력적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을 비롯한 국·공립미술관의 역할은 그런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우리나라 국립박물관은 정부가 큰 틀을 가지고 지역의 박물관을 특화하며 건립한 반면, 지자체 미술관은 나름의 질서로 생겨나고 있다. 지역별로 특화되기보다는 비슷비슷한 종합미술관 식의 미술관들로 건립, 운영되고 있다. 지역 공립미술관 별로 특화된 운영 프로그램과 다양한 표정의 미술관 문화가 필요한 때다. 최근 지자체를 중심으로 미술관 건립이 활발하지만, 지자체가 설립한 미술관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본격적인 미술관의 복합 기능을 수행하는 미술관을 생각해 볼 때, 우리나라 지자체 미술관은 10여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도큐멘타 부산: 일상의 역사> 전시 광경

‘부산’에 방점을 찍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지자체 미술관으로서는 최초로 ‘독립된’ 부지에 ‘독립된’ 건물로 건립되었다. 지역 미술인들과 시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1998년 완공되었으니 올해로 10년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의 매력은 당시로선 제대로 지어진 미술관이라는 점이다. 미술관이 수행하여야 할 복합 기능이 건물에 비교적 꼼꼼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기능들을 문화적 역할로 이끌어낼 전문 인력은 태부족한 실정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직원은 분관격인 용두산미술전시관을 포함해 모두 50여명이다. 학예연구사(큐레이터)는 8명이고 나머지는 관리직원이다. 공립미술관으로서 정원 대비 미술 전문직 비율이 15%밖에 안 된다는 것은 심각한 결함이다. 공립미술관으로서 부산시립미술관이 균형 있는 미술관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에 대한 지속적인 보강이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보다는 상대적으로 부산 ‘미술’에 방점을 찍어 왔다. 앞으로 부산시립미술관 프로그램은 ‘부산’에 방점을 찍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성과를 바탕으로 부산이 지닌, 부산만의 특징들을 미술로 풀어내는 지성적 노력을 할 것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올해부터 <아트 인 부산(Art in Busan)>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작가들도 여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 작가의 작품을 계획된 예산으로 적기에 구입하는 것도 매력 있지만, 외국 작가와 국내, 특히 부산 작가들이 함께 어울리는 전시를 기획하는데 예산을 좀더 투여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은 미술관을 대내외적으로 알림은 물론, 미술관 소속 큐레이터들의 국제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직접적이고도 주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관련 미술관과 작가들과의 네트워킹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참여한 외국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할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남권의 지역미술을 집중적으로 갈무리해 왔다. 특히 다른 어느 지역 미술관보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전시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해 왔다고 자부한다. 물론 상대적으로 강조된 부분도 있고 소외된 부분도 있었지만, 여러 기획전을 통해 지역미술을 밀도 있게 소개해 왔다. 이러한 성과를 디딤돌로 삼아 앞으로의 10년은 지역의 미술을 국제화할 수 있는 단계적 전략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할 것이다. 우선 부산이라는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국제 자매도시 소재의 공립미술관과 인적·물적 교류를 적극적으로 강화할 것이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광풍을 이러한 교류를 통해 적극 돌파해 나갈 것이다. 미술관 큐레이터들의 기획에 의한 이른바 대중적이면서도 전문성이 결합된 의미 있는 국제전을 선보일 것이다. 전시 비용 절감은 물론, 관람객들이 미술관의 기본 입장료로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두는 시민들은 물론 미술관이 속해 있는 부산시의 시책과 시정에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김종식 <부산항 겨울> 캔버스에 유채 1949

새로운 10년을 향하여

최근 국공립미술관이 상업전시를 위한 대관의 장으로 전락해 가는 것을 두고 논의가 분분하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상업적 목적에서의 전시가 모두 잘못되었거나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조직되고 작동되는가에 대한, 그 기획 과정에 대한 꼼꼼한 반성적 점검이 필요한 때다. 종종 시민들의 블록버스터 전시 유치에 관한 민원이 제기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공립미술관이 블록버스터 전시를 주최할 때, 그 전시의 기획이 미술관 내부의 전문 인력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입장에서는 미술관 관람객 수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를 택하기보다는, 큐레이터들의 전문성 강화, 미술관의 자생력 증진 등을 통한 건강한 미술관 문화를 구축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겠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앞서 소개한 자매도시와의 교류전을 통해 학습과 해석 그리고 전략적 안목이 녹아 있는 국제전, 이른바 특별전을 조직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별전에는 이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건강한 미술관 문화가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만 있을 뿐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미술관의 전문인력 중 핵심 인력인 큐레이터가 중요하고 필요한 것 아닌가? 이들에 의해서 미술관의 블록버스터 전시가 조직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이 큐레이팅을 하고 미술관 고유의 기능들이 함께 드러날 수 있는 특별전의 개최도 신중하게 고려하겠다.
물론 국내 국·공립미술관과의 교류도 더욱 활성화할 것이다. 지난 달에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하정웅컬렉션 특선전, <재일(在日)의 꽃>이 개막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하정웅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은 재일교포 화가인 손아유의 작품 100점을 2월 26일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하였다. 아시아, 특히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일본과 미술관 차원의 프로그램 교류도 강화하고자 한다. 내년부터 선보일 <Mapping the Asia>는 이와 관련한 격년제 아시아 네트워킹 프로젝트다. 국내외 교류전의 예산 및 시기, 관련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장기적인 차원에서 꼼꼼하고도 충분한 사전 상호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연말에 있었던 개관 10주년 기념 프로젝트 국제 세미나는 그 필요성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또한 부산의 중견·중진작가들의 다소 파격적인 실험적 작업을 유도하는 <부산의 발견>전을 올해 신설하여, 떠오르는 신예작가들을 소개하는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전과 함께 격년제로 교대 운영한다. 이 전시는 그동안 묵묵히 부산미술을 지탱해 온 허리 세대의 작가들을 집중 분석, 재조명하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으로, 부산미술을 다시 곧추 세우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부산시립미술관 개관기념일인 오는 3월 20일에 개관하는 ‘부산미술정보센터’는 부산미술 80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소개하는 살아 있는 부산미술자료의 보고가 될 것이다. 판화가이자, 지역의 미술자료 수집가인 이용길 선생이 기증한 수 만점의 귀중한 자료들로 구성된 부산미술정보센터를 중심으로 국내외, 특히 아시아 여러 미술관과 함께 미술정보의 교류도 활성화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부산작가들의 인명 자료를 꾸준히 수집하여 전국 최고, 최대의 부산미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등 미술관 정보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킬 것이다.
지난 부산시립미술관 10년은 전시 프로그램 위주의 미술관이었다. 전문 인력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미술관만이 할 수 있는 현장감 있는 미술관 교육프로그램 개발이 절실하다. 미술관의 복합 기능이 드러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나가겠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물론 시 정책 사항이지만, 분관과 창작스튜디오의 설치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경기도가 상당한 규모의 스튜디오 조성 계획안을 발표했다. 미술관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지자체가 창작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있다. 부산에도 창작스튜디오가 마련된다면, 부산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장려함은 물론, 그들을 교류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해외 미술계에 직접 소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설치를 위한 미술관 차원의 노력을 꾸준히 전개해 나갈 것이다.
지역 연고권을 강조하는 소장품과 기획전 중심의 지역 미술관 운영 정책은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유기적으로 다루는 데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새로운 미적 소통이나 담론을 만들어내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새로운 미술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미술관 운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미술관은 고정불변한 곳이 아니다. 시대별로 역동적으로 변해야 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새로운 10년, 밖으로부터 안을 뒤집어서 바라보는 반성적 노력이 필요하다. 관람객과의 단순 커뮤니케이션만을 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정말 색다른 경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할 때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지난 10년의 성과를 디딤돌로 삼아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며 또 다른 10년을 위해 힘 있게 준비해 나갈 것이다. 미술인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

안창홍 <49인의 명상> 사진에 아크릴릭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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