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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2.12

Abstract

아트인컬처는 미술전문가 32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베스트 전시'를 뽑는 앙케트를 실시했다. 미술 문화의 대표 제도이자 창작을 담아내는 그릇인 '전시'의 한 해 기상도를 다양한 층위로 평가하는 이 앙케트는 지난해에 처음 시행됐다. 특히 전시 평가의 잣대를 ①기획 컨셉트와 주제 ②예술성 ③디스플레이 ④학술 교육 도록 ⑤관객 호응도 등 5가지 항목으로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미술계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앙케트의 목표는 (1)한 해 동안 열린 전시를 평가하고, 거시적인 시각으로 전시 문화의 형식과 내용의 '흐름'을 주목하고자 한다. (2)전시 공간에 대한 평가 및 전시 기획자에 대한 평가를 양성화함으로써 전시 생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3)한국 전시문화가 나아가야 할 장기적 비전을 그린다. 매해 연말, 이 앙케트를 시행하여 한국 전시 문화를 기록, 평가하는 주요 데이터로 축적시킬 것이다.

Contents

01    표지  이상남   패널에 아크릴릭 128×170cm 2012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김복기

38    프리즘
       비엔날레의 ‘물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메리 엘렌 캐롤
       국제교류의 허상: 왔다, 만났다, ‘그냥’갔다  호경윤

42    IMAGE & ISSUE [8]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이영준

64    포커스
       리부팅展  황두
       김구림展|홍명섭展  김종길
       육근병展|최재은展  전영백
       한진수展|최우람展|최종운展  이선영

80    특집  The Best Exhibitions of 2012
       전문가 32인이 뽑은 '올해의 전시 100' 

100   WHO WE MET  루이즈 불루인  김재석

103   스페셜 아티스트  이상남
       왜, 기하학적 풍경인가?  우정아

116   뉴비전 2012  신진 평론가 발굴 프로젝트
       당선자 안소연

124   리포트 인사이드  2012마을미술프로젝트
       미술의 향기를 방방곡곡에!  최진영

132   오후의 아틀리에
       유전자 속에 숨겨진 기억  김명희

134   아트 포럼
       [1] KIAF, 세계적인 ‘한류 브랜드’로 키우자  안은영
       [2] 기업 미술상, 메세나의 꽃피우다  김노암

143   브랜드 뉴  구슬모아 당구장  장승연

146   아티스트 스펙트럼  홍순명
       파편화된 풍경, 회화의 알레고리  이수연

152   아티스트 인사이드
       [1] 권경환_‘재난의 풍경화’미술의 역할을 묻다  김수영
       [2] 권대훈_‘찰나’로 고정되는 기억의 숲  장승연

160   암흑물질
       싸이와 성스러운 음란물들: 글로벌 키치와 근대성의 퍼즐  이용우

166   전시 리뷰 
       겨울 겨울 겨울, 봄|하지훈|김이수|감각의 확장
       초상을 둘러싼 추측들|백현진|구국의 영단|이윤호

174   전시 프리뷰
       배형경|윤광조|텍스트가 된 인간|잭슨 홍
       김형관|톰 프라이스|카타스트로폴로지|마리오 쟈코멜리

182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싸이와 성스러운 음란물들: 글로벌 키치와 근대성의 퍼즐

싸이 콘서트 전경

싸이와 성스러운 음란물들: 글로벌 키치와 근대성의 퍼즐

글|이용우_뉴욕 코넬대 아시아 프로그램 연구원  

“성스러운 음란물이자 복귀한 탕아의 신으로서의 마지막 예시는 바로 〈강남스타일〉입니다. 만일 오늘날 순수하게 이데올로기적 현상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건 바로 〈강남스타일〉일 것입니다. 레이브 테크노 트랜스를 차용한 이 반복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기계음으로 점철된 노래의 가사는 사실 매우 비속해요. 하지만 이 노래에는 뭔가 유사-성스러운(quasi-sacred) 면이 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 버몬트대학 강의, 2012. 10. 16

Why So Serious?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허핑턴포스트》와 CNN을 시작으로 한창 미디어의 핫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을 무렵, 코넬대에서 학생들이 대규모 플래시몹을 선보였다. 때마침 한 지인(30대 백인 남성)은 페이스북에 진지한 어투로 이 노래가 지닌 여성 물신화와 미시적 여성혐오증(misogyny)을 조롱하는 듯한 내용의 글을 올렸다. 나는 타문화에 대한 그의 비관용성과 이제 막 뜨려는 K-Pop과 한국문화 콘텐츠에 찬물을 끼얹는 말투에 미묘한 반발심을 가지고 즉각 답글을 달았다. “너는 너무 진지해. 왜 그냥 즐기지 못하니? ” 그러자 재빨리 답글이 달린다. “진정한 문제는 말야. 우리가 이것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야. 미디어 현상은 단지 찰나적 유행일 뿐, 대다수의 청취자가 이런 미디어의 문제적 효과를 검토하는 데 시간을 충분히 들이지 않는다는 거지.”  나는 그의 가다듬어지지 않은 수용자 분석의 첫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싸이의 초국가적 성공은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텍스트’나 ‘미디어 표상’ 때문만은 아니다. 로컬 네티즌과 지식인 그리고 미디어와의 모종의 합의로 결탁한 한류 민족주의 욕망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이 의도치 않은 국제적 센세이션이 문화 산업으로 국가주의적 영도와 아시아 내에 자본주의와 소프트파워의 접합으로 새로운 인종주의를 심어 줄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과대진술’에도 대중문화 텍스트를 해독하기 귀찮아 하고, 현상 분석을 평론가와 저널리즘으로 대리 흡수함으로써 편리한 냉소주의자의 길을 걷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재현된 너무도 익숙한 광경과 슬랩스틱 코드가 만연한 싸이의 내수용 〈강남스타일〉이 어떻게 이문화(異文化) 속에서 유통되고 소비되며 스펙터클화하고 있는지를. 문화생산자로서의 황홀경 뒤에 숨겨진 서자(庶子) 같은 윤리학의 문제가 어떻게 K-Pop이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미디어 담론 뒤로 은폐되는지를. 강남과 글로벌, 즐거움과 미디어 산업이라는 즉자적인 텍스트와 대자적인 성찰의 이음새가 처음부터 살짝 어긋나 있거나 끊어져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키치스타일 혹은 멀티튜드 애티튜드

간단한 철학적 질문을 던져 보자. 이제 인간은 테크놀로지의 변화로 기술에 따른 사고 속도와 개체성(individuation)의 변화 그리고 다중개체로의 진화가 진정 가능해진 것일까? 오늘날 SNS로 대변되는 페이스북 트위터 텀블러 등으로 만들어진 개인과 초개체성의 혼종, 그리고 이러한 기계 속 가상 주체가 어떻게 현실적 실재와 관념적 주체로 상호 연동하며 초국가적 다문화성을 갖게 되는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낯선 문화를 접하게 되는 불특정 다수의 글로벌 청중은 어떻게 국지적 근대성(local modernity)과 교섭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강남스타일〉을 이해하게 되는가?
〈강남스타일〉은 여타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나 일렉트로닉처럼 BPM 120~130으로 0.5초에 한 번씩 날카로운 테크노비트가 반복되고 2개의 비트가 조합되어 1초 간격으로 새로운 리듬이 연속적으로 반복된다. 이 다섯 음절의 리듬은 3분 40초라는 짧은 댄스곡 안에서 100번 이상 연주된다. 알기 쉽게 반복하는 선율의 흐름 속에서 트랜스는 멜로디의 반복과 함께 신시사이저의 시즐링(sizzling)으로 엑스터시를 경험케 하고 의식은 각각의 파트를 고유한 방식으로 습득한다. 똑같은 비트와 선율을 반복해서 들으면 어떻게 될까? 의식은 바로 그 선율에 관한 기억으로 바뀌어 버린다. 일종의 여과를 통해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복 쾌락적 리듬은 뮤직비디오로 더욱 효율적으로 기억되고 중층적 의미망을 가진다.
우리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여 로컬에서 글로벌로의 마술적 경계를 넘었는지 쉬이 짐작할 수 없다. 단순히 모든 미디어가 입을 맞춘 듯 말하는 유튜브와 페이스북의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 때문인지, 놀이터 유원지 고수부지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와 같은 일상적 공간의 재현과 그에 따른 모방가능성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의 촉발을 야기한 것인지, 노래의 국제적 저작권이 없다는 사실이 음원의 국제적 유통을 가속화했던 것인지(《하버드 비지니스 리뷰》, 2012. 9), 그도 아니면 서구 남성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코믹한 동양인 남성성에 대한 서구 문화의 허용 임계점이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이 기묘한 전 지구적 현상을 가능케 한 그 ‘무엇(thingness)’은 2개의 키워드, 즉 키치와 인터넷 기술이라는 문화적 인터페이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왼쪽·싸이 〈강남스타일〉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관광버스 장면
오른쪽·구성수 〈관광버스〉 C-프린트 120×160cm 2004

키치로서의 〈강남스타일〉

싸이라는 키치(Kitsch)로 연동되는 ‘강남’ 컨텍스트는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국지적으로는 강남 반포 출신인 토착 강남 부르주아 유학생의, 강남에 대해 ‘뭘 좀 아는 놈’으로서의 전지적 프티부르주아 자의식과 그 모순적 표상의 간극이 버무려 놓은 즐거움. 〈강남스타일〉을 언술하는 화자인 싸이와 세련된 ‘강남’이라는 텍스트 간의 차연으로 만들어진 아이러니가 희화화되어 보편적인 공감을 낳는 하나의 텅빈 기호로서 강남이 존재한다.
싸이 혹은 가수 박재상은 1977년 강남 반포에서 태어나 반포초등학교 반포중학교 세화고등학교 그리고 보스턴대와 버클리 음대를 다닌 ‘강남 유학파’이다. 그는 이 노래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대상화한다. 하지만 강남 속에 살아본 ‘뭘 좀 아는’ 박재상이 아니라, 강남이라 상상되는 허상의 공간과 싸이라는 대타자로 계급성과 특권화된 이미지와 패션 등 지배적인 코드로 구성된 ‘강남’이라는 기의의 허구를 폭로하고 그 경계를 허물어뜨려 자신의 삐딱한 이미지를 온전하게 이끌어 낸다. (“이 뮤직비디오는 핫하지 않은 사람이 핫하지 않은 춤을 추면서 계속 그게 핫한 곳의 스타일이라고 우기는 거다. 일종의 비꼬기이다.” -《10asia》 인터뷰. 2012. 8. 13)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이 노래를 부를 때 서구인에게 ‘프롬 파티’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대충 두른 보타이(닐 바렛 ‘페이크 타이’)에 정장식 수트를 입는다는 점이다. 팝 문화에서 패션은 늘 중요한 코드로 작동해 왔다. 이를테면 1960~70년대 록스타의 장발이나 의복, 패션 스타일은 대항문화적 저항과 새로운 스타일의 패션 행동 스타일의 전유를 옹호하면서 사회에의 비순응, 저항이라는 문화적 코드를 재생산했다. 싸이의 패션은 그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얼핏 보기에 깔끔하고 값비싸 보이는 수트와 선글라스, 수더분하고 강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의 외모 간의 아득한 간극은 일련의 모순적 집합물이 되어 강남에 관한 전복의 기제로 작동한다. (“내가 강남에서 계속 살았지만 내 비주얼이 강남 느낌은 아니니까 재미있겠다 싶었다.” -《10asia》 인터뷰)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엘런쇼〉에서 “옷은 세련되게 춤은 저렴하게(Dress Classy, Dance Cheesy)”라는 싸이식 슬로건을 내세워 전통적 댄디즘과 엄숙주의로 표상되는 블랙수트를 입고 저렴한 말춤을 추며 그것을 다시 한 번 해체시킨다. 그는 기성의 경계선을 도발하고 유머와 아이러니로 청중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현대사회에서 패션은 경제적 능력, 성별 코드, 사회적 순응양태 등 사람에게 어떤 옷을 입을 수 있고 없으며, 어떤 옷을 입음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가에 관한 취향과 관행의 코드를 제공한다. 사실 그는 이미 콘서트에서 수많은 여장 패러디를 하며 캠프(Camp) 취향으로 인습적 성적 코드와 물신화된 성적 대상으로서의 댄스 여성가수의 규격화된 미적가치와 코드를 살짝 비틀어 청중의 사랑을 받아 왔다. 이렇게 체화한 싸이의 키치성은 〈강남스타일〉에서 그 아이러니와 유머에 정점을 찍으며 독특한 애티튜드(준비된 마음가짐, 태도, 몸가짐)의 미학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전 지구적 〈강남스타일〉 현상들

키치로 연동되는 다른 한편의 강남은, 전 지구적 주체가 자신의 실재를 부분(품)화하고 마치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브리콜라주(bricolage) 같은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재조립한, 패스티시 혹은 분열된 자아의 집합체로서의 강남이다.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모더니즘의 조건 아래에서 〈강남스타일〉은 어떻게 글로벌 키치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그의 뮤직비디오에 표현된 의도된 키치들, 상식의 전복, 의외의 웃음, 비정상과 금기적인 것의 찬양이 권유하는 일상에의 탈주, 무정부주의적 의미 파열, 불량스럽게 반복되는 가사(“Hey, Sexy Lady~”)는 이제 플래시몹과 유튜브 패러디 등으로 가상 공간의 집단적 문화 실천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글로벌 청중의 맹목적 추종 혹은 착각이나 잘못된 응시가 야기한 의도치 않은 코미디는 싸이와 강남을 소비하고 변형하는 개개인을 통해 초개인적 초개체적으로 변형 증식한다.
이를테면 텍스트와 언어는 늘 분절되고 오독된다. “오빤  강남스타일”이라는 가사는  “Open Condom Store”, “Open Cum Dumpster”, “Open Condom Star” 등으로 변형된다. 의도는 언제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본 의도를 벗어나 버린다. 미국 공중파 방송에서 한국어 발음을 교정해주거나, 글로벌 컨텍스트 안에서 텅빈 기표로서의 강남 혹은 도쿄 런던 뉴욕처럼 전혀 새로운 환락의 장소로서의 강남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것을 바라보며 들끓는 디아스포라 코리안/아시안의 열망은 애국적 민족주의와 상동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런데 이런 주체의 다중 변형이 국가와 언어를 넘어선 어떤 가상의 공적 영역 속에 도달했을 때, 기술에 가시종교적 유물론적 가치를 부여하고 기술적 장소(이를테면 SNS의 공간) 속에서 집단적 구성체로서의 인간이 아닌, ‘자아’를 표현하기 시작했을 때 이런 비생산적 문화 행위가 결국 대중지성 혹은 인간 실천의 공공장소를 낳게 된 것은 아닐까? 유비쿼터스 네트워크와 소셜미디어가 특징인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에 싸이라는 글로벌 콘텐츠는 바로 이런 기술/기계, 개인/집단의 상상력과 정서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쌍방향으로 묶어서 보게 만든 거의 최초의 사건은 아닐까?
〈강남스타일〉은 ‘노는 데 도가 튼 뭘 좀 아는’  30대 남자의 다시 불 붙은 인정 욕망이 그것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상이하고 이질적인 대중의 리비도와 나르시시즘을 그의 궤도로 포섭하는 데 성공하면서 싸이를 글로벌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다. 두 가지 실재 속엔 사실 수많은 전 개체적 실재가 존재한다. 이 둘은 서로 섞이고 혼종되지 않은 채 서로 다른 실재를     만들어 내는 데, 이 틈새를 효율적으로 이어 주는 키워드는 바로 키치다.
예를 들어 구성수의 〈마술적 리얼리티〉 연작에 등장하는 익숙하지만 생경한 풍경은 문화와 감각의 이질성, 서로 다른 근대성의 충돌이 만들어 낸 언캐니의 장이다. 그의 차분한 형광 에나멜빛 관광버스와 싸이의 〈강남스타일〉 속 관광버스의 엑스트라바겐자는 우리에게 조악함과 세련됨, 저질과 고급의 경계 속에 이물질처럼 끼워져 있는 타자성(alterity)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강남스타일〉속의 키치는 싸이라는 마케팅 상품을 생산자가 계속 질리지 않게 유행을 조장하며 청중의 욕구를 재생산하고 다양화하며, 그것이 계층화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 끊임없이 조정자 역할로 관여한다. 그리하여 전 지구적 유행으로 기능하는 윤활유가 되어 줄, 생산자와 소비자 각각이 품고 있는 욕망의 발현인 ‘실존적 에너지’를 이 반복 강박적으로 재생되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말춤으로 공동 유희라는 특정한 감성으로 변형 촉발시킴으로써 더욱 능동적인 청취자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이런 공동 유희의 기저에는 미디어와 애티튜드, 유머와 인유(allusion) 그리고 텍스트와 캠프적 실천을 매쉬업(mash-up)한 키치적 특성이 내재해 있다. 흔히 키치라는 용어는 이미 1860년대 독일 뮌헨의 미술수집상과 화상 사이에 유행하던 용어다. 독일의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Franklin Wedekind)가 이를 ‘폭넓은 역사적 스타일이자 근대적 시대정신의 구체적인 구현’이라 명명한 1917년 이후부터 예술적인 의미에서 나쁜 취미를 지칭하는 포괄적 용어로 통칭되어 왔다.
키치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인간의 원초적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다. 미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고급예술과는 구분되는 천박하고 속물적이며 현실을 비틀어, (“강남 스타일이 전혀 아닌 사람이 강남스타일이라고 우기는 게 웃기니까, 그거 한 번 해보자는 생각” -〈10asia〉인터뷰) 결과적으로 대상을 모조하고 조롱하는 익숙하고도 낯선 세계로서의 강남과,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모방 가능한 행동 양태로서의 글로벌한 〈강남스타일〉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담론이 학계를 잠식하면서 키치와 고급예술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다. 키치는 일련의 팝아트와 캠프 취향처럼 자연이 아닌 인공물(artifice)에 의도적으로 과도한 미학적 가치를 부여한다. 또는 캠프 애티튜드 즉, 여성이 보기에도 과다한 여성스러운 행위(swish)나 여성스러움을 흉내내는 행위(drag) 등 과장스런 태도나 몸가짐으로 더욱 일반적인 미학관으로 변모해 갔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말처럼 “진지한 것을 말하려는 것의 실패”로서의 미학적 가치를 지니게 된 캠프는, 이제〈강남스타일〉의 글로벌 키치, 말춤과 플래시몹으로 더욱 진화한 형태의 캠프적 요소가 녹아 있는 글로벌 〈강남스타일〉로 거듭난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ernard Stiegler)가 자기 의식의 특이성이라고 언급한, 여가에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고유한 시간성, 즉 동일하지만 고유한 ‘혼자’의 의식(儀式)으로서의 〈강남스타일〉을 만들어 낸다. 싸이가 막 유행을 타기 시작할 무렵,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보는 나의 반응(My Reaction to Psy’s Gangnam Style)”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메타텍스트는 이에 관한 유용한 실마리를 제시한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틀어 놓고 그것을 바라 보는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며 스스로의 반응을 유튜브에 올려 놓는 행위는,
마치 무리 속에 있는 군중이 타자의 은밀한 시간과 텍스트에 관한 반응을 목도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심층적 욕망을 해방하는 듯 보인다. 〈강남스타일〉을 소비한다는 것은 어떤 ‘특이성’ 혹은 글로벌 키치를 함께 소비하고 있다는 캠프적 행위이며 그 특이성이 자기 자신을 거울처럼 비춰주며 욕망의 욕망을 끊임없이 대상화하며 자가 증식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왼쪽·자신의 콘서트에서 댄스여성가수 비욘세로 변장한 싸이
오른쪽·11월 13일(현지 기준) 뉴욕에서 열린 마돈나 콘서트에 싸이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싸이라는 미디올로지(Mediology)

서구 사회는 오랫동안 객관적이고 개성 없는 기계성과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인간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기술의 속도와 그에 대한 인간의 정서적 소통의 부조화를 경계해 왔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은 기술적 존재양태와 다중에 대한 논리를 제시하며 기존의 객관적이고 무미건조한 방식으로 기술을 바라보는 태도에 반기를 들며, 인간과 기계는 서로 접속하고 상호 변환(transduction)되며 서로 맞물려 진화를 거듭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후 23년 뒤,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전지구적 성공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으로 대변되는 미디어 산업, 유비쿼터스 테크놀로지와 소셜네트워크 기술이 인간과 세계를 통섭(統攝)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2012년 12월 현재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4개월만에 유뷰트 조회수 8억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 조회수를 상회했다. 또한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후보에 선정되었으며, 30개가 넘는 나라의 음악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수만명의 사람이 이탈리아 포폴로와 프랑스의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사상 최대의 플래시몹을 선보였고, 버락 오바마와 반기문 등 정치인부터 《뉴욕타임즈》, CNN, 《워싱턴포스트》 등의 미디어를 걸쳐 톰 크루즈, 마돈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헐리우드 유명 인사의 입에 고루 오르내리며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지금 이 시간에도 〈강남스타일〉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학계에서는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이 〈강남스타일〉을 “자본주의의 순수한 이데올로기적 현상”이라 일컬었다. 뉴욕대는 내년 봄학기에 ‘〈강남스타일〉의 문화정치학’이라는 과목을 신설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싸이라는 텍스트는 개체 실천의 특이성이나 집단의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 더욱 변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예외로서의 미디어가 되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예외의 영역을 스티글레르나 지젝이 말한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神, divine)의 영역으로 귀속시킬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가장 ‘성스러운 음란물(divine obscenity)’이자 온전한 의미로서의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강남스타일〉의 특이성은 바로 내/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거울처럼 비춰 주고, 미쳐 깨닫지 못한 나/우리의 특이성이 원래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재미가 없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만들어 낸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소비하고 실천하는 대중은 이제 더는 즐거움 뒤에 무엇이 남는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바로 이 순수한 즐김의 미학이 〈강남스타일〉이다.

비디오아트

육근병 〈메신저의 메시지>, 빔 프로젝터, DVD, 레어 스크린 AMP, 스피커 6분 1200×270cm 2002~2012

 비디오아트의 시적 추상성

글 | 전영백_홍익대 교수

비디오아트로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두 중견 작가의 굵직한 전시가 열렸다. 최재은의 개인전 〈오래된 시(詩)〉와 육근병의 〈비디오크라시(Videocracy)〉전이다. 해외에서 이름이 알려진 두 작가의 이번 전시는 공교롭게도 국내에서 아주 오랜만에 가진 대규모 개인전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재은은 12년만이고 육근병은 14년만이다. 50대 중후반의 소위 ‘선수’들이 선보인 최근의 비디오 작업은 요즈음 해외에서 많이 보았던 스토리텔링 중심의 작업들과 상당히 차이를 가진다는 점에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느리고 단순하다. 시적인 추상회화를 보는 듯, 그 느낌이 헐그럽고 느슨하고 함축적이다. 자신을 내려놓고 관조하는 태도라고 할까.
최재은의 전시는 단순한 디자인의 세련된 무명 옷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말 없고 화장기 없는, 그러나 연륜이 풍부해서 그 조용한 힘이 압도적인 중년을 마주한 느낌이다. 육근병은 열정과 포부를 불태운 오랜 방랑 끝에, 다사다난한 경험과 사연을 부리부리한 눈으로 되돌아보는 무뚝뚝한 은둔자의 말투로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두 작업 모두 공통적으로 묵직하고 말 수가 적다. 그리고 표현 방식이 서구적이지 않고 우리의 심리에 편안하게 다가온다.

육근병 〈묵시록〉 파티션 벽, 빔프로젝터, DVD 12분 가변크기 2012

비디오아트로 만나는 무한성과 유한성의 세계

1976년 이후 일본을 거점으로 활동해 온 작가 최재은의 〈오래된 시〉는 그 제목 그대로, 단순하고 함축적인 시가 고스란히 시각적으로 재연되었다. 미디어아트가 갖는 가장 근본적 속성인 시간성이 가감없이 전달되었다. 예컨대, 전시장 1층의 넓은 공간에 설치한 〈유한성(Finitude)〉은 3개의 대형 스크린에 밤하늘을 포착하고 있다. 최근 독일을 근거지를 삼은 그는 이 작업을 위해 스토르코프(Storkow)의 밤하늘을 8시간 동안 다른 각도에서 촬영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유럽의 도시를 걷는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녹음한 음향을 첨가하였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찍은 밤하늘이건만 누구에게나 동일한 보편적인 밤하늘이라는 점에서 추상적이다. 칠흑같이 껌껌한 전시장으로 들어온 관람자가 마주한 3면의 밤하늘은 그야말로 ‘내추럴’하다. 그런데 그 지극히 단순하고 투명하게 직접적인 표현 방식이 충격적이다.  
만약 이렇게 어두운 밤을 회화나 사진으로 나타낸다고 해보자.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도 정지된 평면이 가진 한계는 시간성을 포착할 수는 없다. 바로 그러한 매체의 한계에 비디오의 시간언어가 작용하는 것이다. 밤하늘이 품은 고요한 정적의 공간적 깊이를, 그 미세한 별빛의 변화는 최재은의 비디오아트가 보여 주는 가장 뛰어난 리얼리즘이다. 영상 화면에서 느끼는 그 조용하고 섬세한 동요가 관람자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한다. ‘진짜’ 하늘이기 때문이다. 밤의 시간은 멈춘 듯 흘러가고 공간의 깊이는 오로지 빛의 흔들림으로써만 감지된다. 동시에 전시장의 스피커에서 산발적으로 들리는 도시의 발자국 소리, 유한한 인간이 사는 소리, 무한한 밤하늘로 빠져드는 주체의 몰입을 방해하는 도시인의 발자국 소리에서 무한성은 유한성과 교차되며, 새벽이 오며 사라져 가는 스크린의 별빛처럼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다. 비디오아트의 속성으로 우리는 칠흑같은 밤을 시각만이 아닌 공감각으로 느낀다.
시간성을 그 매체적 특성으로 하는 비디오로 대자연의 소재를 이처럼 함축적이고 철학적으로 전달하는 작업을 제작하기란 쉽지 않다. 최재은의 시적 언어에서 미디어아트의 테크놀로지는 우리가 평소 다루기 힘든 자연의 무한성, 삶과 죽음의 순환을 드러내 표현하는 데에 적절하게 ‘이용’된다. 자연과 인간의 철학적 관계를 위해 기술의 발달이 쓰이는 것이다. 최재은 작업의 휴머니티는 테크놀로지의 기계적 언어로 더없이 효과적이고 경제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서구의 발전된 테크놀로지를 대변하는 비디오 설치가 동양의 관조와 사색을 보여 주는데, 한 마디로 그는 비디오아트의 추상을 제시한다고 하겠다.

최재은 〈Finitude〉 비디오 설치 사운드 8시간 2012

시적 언어로 다루는 시간성

2층 전시장에 설치한 작업 역시 시간이란 주제에선 동일하다. 어두운 밤에서 새벽에 이르는 시간 동안의 일출 장면을 일정한 시간(1분) 간격으로 촬영한 50점의 사진 작업이다. 인간의 유한한 시각으로 포착되는 자연의 순환과 반복, 회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시간성과 자연의 순환은 이 작가가 일관성있게 또 오래도록 주목하는 주제다. 최재은은 주로 흙이나 나무 같은 대지의 요소를 끌어들여 생명의 순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왔다. 예컨대 1986년부터는 여러 겹의 종이를 세계 각지의 땅속에 수년 간 묻어 두고 3년에서 15년 정도 후에 그 종이를 꺼내어 미생물이 만든 자연의 흔적과 화학 변화를 고찰, 시간의 지층을 보여 주는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보인 하늘 연작들도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시간성에 관한 섬세한 시적 추상은 육근병의 전시에서도 볼 수 있다. 그의 〈無(Nothing)〉는 이번 전시의 백미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흰 무명천을 담아 낸 영상 작업인데, 모더니즘의 절제된 순수한 시각성이 영상으로 그대로 전이된 셈이다. 마크 로스코나 모리스 루이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듯, 육근병은 색면회화를 리얼리즘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돋보이는 핵심요소는 시간이다. 살며시 흔들리는 예민한 무명천은 우리의 눈을 그 얇은 막 배후의 먼 풍경으로 잇닿는 시각적 몰입에서 일깨워 유한한 현실로 되돌린다. 여기에 스크린 아래 바쁘게 돌아가는 초시계는 정확하고 명백하게 시간의 흐름을 상기시킨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일정하게 돌아가는 시간의 숫자는 우리의 자연에 관한 갈망, 무한성을 향한 욕망을 여지없이 방해하고, 그 닿을 수 없는 세계로의 영원한 그리움은 새하얀 멜랑콜리로 남는다.
물과 사람들이 짝을 이루는 2채널 영상 〈묵시록(Apocalypse)〉 역시 시간을 다루기는 마찬가지이나, 어김없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시냇물의 순방향에, 도심 한 중간을 분주히 걷는 사람의 발걸음을 거꾸로 돌리는 역방향이 대비되어 있다. 시간성이 방향의 대비로 다뤄져, 각각 자연의 순리와 인간 욕망의 차원에서 개념적으로 표현되었다. 의연하게 떨어지는 물줄기와 대조적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거꾸로 걸어가는 대중의 발걸음처럼 허망할 뿐이다. 흐르는 물과 걷는 인간은 그만큼의 차이를 갖는다.

우주적 역동과 스케일 그리고 물리적 덩어리

그리고 불이 나왔다. 〈메신저의 메시지(Messenger’s Message)〉는 대형 스크린이 ‘ㄷ’자형 공간을 이뤄 관람자는 그 강렬한 불의 역동에 휩쓸리듯 빨려든다. 동영상은 우주를 상징하는 듯한 원환이 인간을 에워싸며 회전하고 점화되어 그 불길이 3면의 스크린 전체로 번지는 플롯이다. 자연과 우주의 원초적 힘을 상징하는 단순하면서 강렬한 이미지에 인공위성에서 채취한 소음의 이질적 웅장함이 관람자의 존재를 미미하게 만든다. 테크놀로지는 인간을 너머선 원초적인 우주상의 영역에 관한 접근에 이와 같이 활용되는 것이다.      
1992년 카셀도쿠멘타 역사상 백남준(1977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작가로 초청받았던 육근병은 당시 메인 전시장인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앞에 거대한 봉분을 세우고 그 안에 빔프로젝터로 깜빡이는 눈 영상 〈무덤 속의 눈〉을 전시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그러한 비디오의 ‘얼굴’과 육중한 철근의 ‘몸체’는 1995년 리옹비엔날레 출품작인 〈생존은 곧 역사〉와 더불어, 최근의 〈운송(Trans port)〉 시리즈에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섬세한 시적 감상과 미련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물리적 덩어리는 조화로운 연계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이질적인 괴리감을 과장시켜 보여 준다. 비디오의 얇은 화면과 대비되는 고철덩어리와 나무상자는 인간의 구조를 닮아 있다. 철없이 상상하고 변함없이 자유로운 정신이 늙어 가는 몸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듯, 고철과 나무는 단호하게 그 물적 존재감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눈은 쉴 새 없이 세상을 응시하고, 손상되기 쉬운 순수한 기억은 의연하게 작동한다. 낡은 철과 투박한 나무의 물리적 구조는 그렇듯 흩어져 버릴 순간의 기억과 아름다움의 편린을 더욱 허무하게 만든다. 육근병의 섬세한 시각적 감성은 무뚝뚝한 덩어리와 함께 삶의 부조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하다.

Sang Nam Lee

〈풍경의 알고리듬(Two Telescopes)〉 스틸 패널에 우레탄 아크릴릭 550×4600cm 2009_경기도미술관 설치 전경

왜, 기하학적 풍경인가?

글 | 우정아_포스텍 교수, 미술사학자 

미학자이자 미술사학자였던 블라디슬로프 타타르키비츠는 저서 《미학의 기본 개념사》에서 ‘아트’라는 말이 라틴어 ‘아르스’에서 왔고, ‘아르스’는 그리스어 ‘테크네’의 번역어라고 설명했다. ‘테크네’란 기본적으로 ‘기술’을 의미한다. 온갖 사물과 옷가지를 만드는 일부터 건물을 짓고 배를 건조하는 기술까지, 더 나아가 군대를 통솔하거나 땅을 측량하거나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웅변술을 포괄한 모든 기술이 ‘아트’였다. 장인과 건축가는 물론, 전략가와 기하학자, 연설가의 기술까지도 ‘아트’였던 데 대해, 타타르키비츠는 과거의 ‘아트’가 오늘날의 ‘아트’와 전혀 달랐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오늘날의 아트’란 아마도 전통적인 회화에 한정되어 있었던가 보다. 그가 처음 폴란드에서 이 책을 출간한 것이 1975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타타르키비츠가 그 즈음의 ‘아트’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

〈풍경의 알고리듬(from Sacheon W.B.I)〉 스틸 패널에 우레탄 아크릴릭 240×3,600cm 2008~2010_사천 LIG 손해보험 연수원 브릿지 갤러리 설치 전경(사진: 김재현)

죽었다 깨어나길 반복하는 회화

1970년대 중반의 ‘아트’는 사실 그 어원으로부터 크게 동떨어지지 않았다. 미니멀리즘 작가는 이미 결코 심미적이지 않은 ‘사물’을 제작했고, 설치미술가는 온갖 물건을 활용하여 새로운 환경을 제공했으며, 대지미술가는 실제로 땅을 측량하며 미술과 건축의 경계를 허문 거대한 작품을 만들었다. 퍼포먼스 미술가는 온몸으로 대중 앞에 나서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처럼 사적인 창작의 산실이었던 스튜디오를 벗어나 대형 프로젝트에 연루된 미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작품’을 만들어 내는 손재주가 아니라, ‘군대를 통솔하듯’ 대규모의 인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행정의 기술이었다. 결국, 1839년 다게레오타입 사진이 상용화되었을 때 화가 폴 들라로슈가 “오늘 이후, 회화는 죽었다”고 한탄한 이래, 회화는 미니멀리즘 설치미술 대지미술 개념미술 등이 등장할 때마다 죽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1981년 타타르키비츠의 책이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서 출판된 그 다음 해에, 비평가 더글러스 크림프는 또 한 번 ‘회화의 종말’을 선언했다. 동시에 런던의 로열아카데미에서는 대형 전시 <회화의 새로운 정신>의 막이 올랐다. 개념미술이 미술계를 휩쓸던 1970년대의 유럽에서 국제적인 현대회화 전시가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대부분 생존 작가의 구상회화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전통적 회화의 극적인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화가’ 이상남이 뉴욕에 도착한 게 바로 그때, 1981년이었다. 한쪽에서 ‘종말’을 선언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활’을 축하할 때, 즉 다시 한 번 회화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시절에 이상남은 돌연 화가의 길로 되돌아갔다. 그는 이미 홍익대 재학 시절에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물감과 붓을 아예 창고에 넣어 버렸다. 회화를 포기한 이후, 그는 사진과 퍼포먼스로 이름을 얻었고, 수차례의 개인전 및 그룹전으로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전위적인 젊은 한국작가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결국 ‘회화의 죽음’에 일조 혹은 방조했던 그가 뉴욕에서 회화로 되돌아간 상황은 돌이켜 생각해 볼 일이다.
그가 재학하던 1970년대 한국 미술계는 모노크롬 회화가 ‘한국적 모더니즘’으로서 미술계를 견고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백색과 반복적인 서체는 한국성과 동양적 정신, 선적인 명상의 경지를 대변하는 ‘한국성의 집단 양식’으로 고착되어 그 외 어느 것도 용납하지 않는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권력이 되어 있었다. 이처럼 텅 비어 있는 중성적 화면이 도리어 정치적 의미로 가득 차 있던 회화의 세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위세에 눌려 더는 나아갈 곳이 없었기도 했기 때문이거니와, 회화라는 보수적인 성채에 반항하는 것만으로도 그 작업의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가 미술의 최전선인 뉴욕에 도착한 직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가진 지식의 99%가 산산이 깨져버렸다고 할 정도로 기존에 현대미술에 대해 그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얼마나 지엽적이었던가를 깨닫고, 처음부터 미술의 모든 것을 새롭게 공부하고자 했다. 학습과 숙고 끝에 처음으로 점 하나를 찍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회화의 종말’을 논의한 크림프는 이미 1977년, 사진을 작품에 차용하는 잭 골드스타인, 셰리 레빈, 로버트 롱고, 필립 스미스 등의 화가를 전면에 내세운 전시 <픽쳐스(Pictures)>를 기획했다. ‘픽쳐’란 미술가 개인의 창조물로서 그의 내면을 표출하는 ‘회화’가 아니라, 과거 어디선가 본 듯한 상투적인 이미지, 즉 결코 독창적이거나 유일무이하지 않은 이미지를 의미했다. 크림프는 ‘픽쳐’가 난무하는 새로운 미술을 통해, 모더니즘의 마지막 보루였던 추상표현주의가 수호하던 ‘오리지널리티’의 권위가 사라지고, 전통과 권위에 도전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신표현주의 화가가 급부상하기 시작한 것도 역시 1980년대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재선이 극명하게 보여 주듯, 1980년대 미국사회는 신보수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가족 종교 국가 등 전통적인 가치로 되돌아가기를 외치는 구호 속에서 데이빗 살르, 줄리앙 슈나벨, 안젤름 키퍼 등 표현주의적인 화가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평단과 시장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들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미술사적 거장의 작품을 차용하면서도, 전통적인 회화가 갖고 있던 모든 요소들, 즉 구상적인 재현, 개인적 도상, 영웅적인 작가의 아우라, 표현적인 제스처 등을 되살렸다.
앞서 <픽쳐스>전의 경향이 오리지널리티와 전통의 권위를 의심하는 ‘후기구조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단면이라면, 신표현주의는 예술적 개인주의, 영웅적 작가주의를 옹호하는 ‘신보수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다. 이 양자를 무엇보다 극명하게 갈라놓았던 건 재현의 문제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개인의 내면을 이미지로 진실하게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신보수주의(혹은 신표현주의)는 이미지로의 복귀를 옹호했고, 후기구조주의(혹은 픽쳐스 그룹)는 그 진실성을 의심했다.

<Arcus+Spheroid XS 021> 패널에 아트릴릭, 옻 36.5×26.5cm 2007 | <Arcus+Spheroid XS D> 패널에 아트릴릭, 옻 55×40cm 2008

건축 도면에서 만다라까지

결국 짧은 시간 동안, 이처럼 넘쳐 나는 이론의 홍수 한가운데서 상반된 많은 것을 빨아들였던 이상남은 아무것도 그릴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구상을 피해 추상으로 나아가자니, ‘한국적 모더니즘’의 굴레가 있었고, 추상을 피해 구상으로 나아가자니 ‘신보수주의’와 ‘후기구조주의’의 대립이 있었다. 고심 끝에 점을 찍었다. 곧이어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되 ‘회화’는 아닌 것, 이미지이되 의미가 없는 것, 재현이되 대상이 없는 것, 감정적이되 반드시 ‘쿨’할 것. 이렇게 대립하고 상충하는 것들 사이에서 그가 찾은 답은 기하학이었다.
이상남은 건축 도면과 수학적 도식으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무엇보다도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출퇴근하듯 상주하며 보곤 했던 이슬람 회화와 도자기, 티벳과 네팔의 만다라 등 동양의 종교미술에 존재하는 상징적인 도형과 서예적인 선, 기하학적 형태에 매료되었다. 건축 도면이란 정밀한 선과 추상적 도형, 객관적 숫자로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위에 노동과 물질이 더해지면 구체적인 공간과 견고한 질료를 가진 건물이 탄생한다. 한편, 만다라는 원과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다이어그램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방대한 불교의 우주관과 깨달음의 경지가 들어 있고, 정해진 규범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수행의 일부가 된다.
일견 상반된 예처럼 보이는 건축 도면과 만다라는 최소한의 조형 요소로 최대한의 의미를 내포하고, 주관적인 자아를 억제함으로써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자아를 실현하는 ‘그림’이라는 면에서 공통적이다. 이상남이 그의 그림을 위해 자와 오구 등 설계사의 제도 용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건축 도면이나 만다라처럼 개인의 감정과 개성적 표현 혹은 인간적 실수를 최대한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20세기 미술사에서 작가 영감의 원천을 찾자면 마르셀 뒤샹을 들 수 있다.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해서 미술이라기보다는 과학자의 발명품처럼 보이는 뒤샹의 <큰 유리>도 사실 대단히 육체적이고 관능적인 인간 본연의 욕망을 담고 있다. 물론 ‘레디메이드’의 창시자 뒤샹이야말로 ‘회화의 죽음’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이다. 일찍이 1912년의 <항공 동력 살롱전>에서 프로펠러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던 뒤샹은 동료 미술가인 페르낭 레제와 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 “회화는 끝났다. 누가 프로펠러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매끈한 표면과 유려한 곡선이 조화를 이루는 프로펠러는 대량 생산과 기계적 미학이 도래하는 시대에 미술의 권위에 대한 위협, 개인적인 저자의 죽음, 그리고 회화의 종말을 암시했다. 이상남은 이렇게 회화가 끝난 바로 그 지점에서, 기계적인 미학을 차용하여 극도로 매끈한 표면과 유려한 곡선을 가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의 그림은 프로펠러보다 더 매혹적이고, 프로펠러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풍경의 알고리듬(2012 Poznan)> 스틸 패널에 우레탄 아크릴릭 7,375×300cm 2012_ 2012미디에이션비엔날레 출품작 포즈난 공항 설치 전경 (사진: 마치에이 쿠스젤라)

순수하고 매혹적인 ‘색덩어리’

강남역 사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빼곡한 고층건물과 늘 막히는 도로 한가운데서 이상남의 산뜻한 작품이 시선을 확 잡아끈다. LIG생명 본사 사옥의 로비에 걸린 <풍경의 알고리듬>이다. 경기도미술관 로비를 뒤덮은 가로 길이 46m의 작품은 시선이 아니라 온몸을 사로잡는다. 미술관의 건축 도면을 손에 들고 구상하기 시작한 그의 회화는 단순히 건물벽을 장식하는 부속품이 아니라 그 공간 내부를 흘러가는 공기처럼 구조의 일부가 되어 방문객의 주의를 한시도 놓치지 않는다. 올해 그는 폴란드의 유서 깊은 도시 포즈난에 들어선 신공항에 가로 길이 70m가 넘는 초대형 벽화를 설치했다. 익명의 대중과 ‘예기치 않은 만남’을 기대하는 화가에게 공항보다 더 적당한 곳이 있을까 싶다.
그의 회화는 누가 보더라도 매혹적이다. 눈이 시리게 선명한 색채, 예리한 칼로 그어낸 듯 날카로운 형태, 그리고 놀랍도록 매끄럽고 균일한 표면은 일단 그 위에 그려진 온갖 기호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피기 전에 그 순수한 물질적 매력으로 보는 이의 넋을 빼놓는다. 패널 위에 물감을 올리고 갈아내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 그의 작품은, 작가의 표현대로 그림이라기보다는 ‘색덩어리’에 가깝다. 마치 본래 그러한 색과 패턴을 가진 광물을 지하 깊은 곳에서 캐내어 보석을 가공하듯 갈아낸 것처럼 견고한 밀도와 무결점 표면을 가진 그의 작품은 한없이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다 주위 사람의 눈을 피해 꼭 한번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그 촉각성은 어떤 사진으로도 전달되지 않는다.  
한번쯤 만져 보고 싶고, 잠시라도 더 바라보고 싶은 매혹적이고 우아한 작품. 그것이 바로 급조된 이미지가 온갖 매체로 우리의 시야에 무차별로 쏟아져 들어와 단 한시라도 눈이 편안할 틈이 없는 현대인에게 주는 그의 선물이다. 그 짧은 순간의 치유란 작가가 참아 내야 했을 오랜 시간 고된 노동의 대가치고는 무척 소박한 바람이 아닌가. 그러나 화가 이상남에게는 노동이 매력이고, 매혹이 메시지다. 그렇게 그는 원래의 ‘아트’로 되돌아갔다. 그의 그림은 순수한 ‘사물’에 가깝고, ‘건물’을 능가하며, ‘기하학’을 포괄하여,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상남 1953년 서울 출생.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 1981년부터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PKM트리니티갤러리(2012 서울), 경기도미술관(2010 안산) LIG타워(2006 서울) 등 총 18회의 개인전 개최. <2012미디에이션비엔날레>(2012 포즈난 공항), <추상하라!>(2011 덕수궁미술관)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

루이즈 블루인

루이즈 블루인 1958년 캐나다 출생. 현재 루이즈블루인미디어 및 루이즈블루인재단 회장. 필립스 드 퓨리 앤 룩셈부르크, 트레이더 클래시파이드 미디어(Trader Classified Media) CEO 역임

"한국 에술 현장 연결하는 글로벌 통로 만들겠다!"

글 | 김재석_본지 기자

루이즈블루인미디어의 회장 루이즈 블루인이 내한했다. 내년 1월 국내 공식 런칭을 앞둔 블루인아트인포코리아(kr.blouinARTINFO.com)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블루인아트인포는 전 세계 시각 및 공연예술 정보를 전하는 포털 사이트로, 현재 영국 중국 일본 프랑스 브라질 등 11개국에서 발행된다. 블루인아트인포코리아는 국내외 문화 예술 정보를 한국어로 소개할 예정이다. 그는 블루인아트인포코리아를 “한국의 역동적인 예술 현장을 전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로 만들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현재 한국 사이트 운영을 위해 팀을 꾸리고 있으며, 기존의 영문 정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중이다.
2003년 설립한 루이즈블루인미디어는 문화 예술 및 라이프 스타일 분야에 초점을 맞춘 글로벌 기업이다. 디지털 매체를 비롯, 《아트앤옥션(Art+Auction)》《모던페인터스》《갤리리 가이드》 등 성격이 다른 미술전문지도 발행한다. 또한 예술 카탈로그 전문 출판사인 소모지(Somogy)와 미술시장을 분석하는 블루인아트세일즈인덱스(Blouin Art Sales Index), 글로벌 컨설팅 서비스를 운영한다. 2005년부터는 재단을 설립, UN과 파트너십을 맺고 매년 ‘크리에이티브 리더십 서밋’을 개최하고 있다. 예술가, 노벨상 수상자, 세계 각국 정상, 글로벌 CEO 등이 한자리에 모이는 ‘문화 정상회의’이다. 런던에 루이즈블루인재단미술관도 건립했다. 하나의 그룹이 시장 출판 컨설팅 등 미술계 영역 전반을 섭렵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루이즈블루인미디어 활동의 목표가 ‘문화의 공유와 보전’이라 설명한다. “블루인아트인포의 역할이 증대하고 있다. 디지털 매체의 발빠른 정보는 미술계를 점차 투명하게 만들 것이다. 누구나 쉽게 전 세계의 생생한 예술 정보를 한 자리에서 살필 수 있는 교육적 플랫폼 기능도 하고 있다. ‘문화 위키피디아’와 같다. 이러한 정보 공유는 각 문화의 독특함을 보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양한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공유함으로써 문화의 다양성이 더욱 풍부해지길 기대해본다.” 루이즈블루인미디어는 향후 1년 안에 한국 이외에도 멕시코 베네수엘라 이탈리아 등으로 지역을 확장, 총 25개의 사이트를 오픈할 계획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런던 루이즈블루인재단미술관 전경. 건물 전면을 제임스 터렐의 작품으로 장식했다.
《아트앤옥션》 표지
블루인아트인포 웹사이트 페이지(www.blouinartinfo.com)
《모던페인터스》표지

전문가 32인이 뽑은 올해의 전시 100

 

The Best Exhibitions of 2012 

앙케트를 시작하며

아트인컬처는 미술전문가 32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베스트 전시’를 뽑는 앙케트를 실시했다. 미술 문화의 대표적인 제도이자 창작을 담아 내는 그릇인 ‘전시’의 한 해 기상도를 다양한 층위로 평가하는 이 앙케트는 지난해에 처음 시행됐다. 특히 전시 평가의 잣대로 ① 기획 컨셉트와 주제 ② 예술성 ③ 디스플레이 ④ 학술 교육 도록 ⑤ 관객 호응도 등 5가지 항목을 적용하고,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미술계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앙케트의 목표는 ① 한 해 동안 열린 전시를 평가하고, 거시적인 시각으로 전시 문화의 형식과 내용의 ‘흐름’에 주목한다. ② 전시 공간에 대한 평가 및 전시 기획자에 대한 평가를 양성화함으로써 전시 생산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③ 한국 전시 문화가 나아가야 할 장기적 비전을 그린다. 매해 연말, 이 앙케트를 시행하여 한국 전시 문화를 기록, 평가하는 주요 데이터로 축적시킬 것이다.
(1) 앙케트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추천자 32명에게 1차 추천 전시리스트를 제공했다. 1차 리스트는 아트인컬처가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1월에 열린 전시 중 언론 보도, 본지 리뷰, 전시 장소 및 장르 등을 고려해 작성했다.
(2) 앙케트 참여자들은 각 항목에 부합하는 전시를 5건 이내로 추천했다. 또한 전시를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5개의 각 항목마다 A, B, C로 점수를 매겼다.
(3) 앙케트 참여자는 1차 리스트에 누락된 전시도 추천할 수 있다. 단, 앙케트 참여자가 재직하고 있거나 직접 기획에 참여한 전시 및 비엔날레, 아트페어는 추천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4) 앙케트를 집계한 결과, 총 71개 전시와 아트인컬처에서 선정한 전시를 수합한 올해의 전시‘BEST 100’이 결정됐다. 그 중에서 2회 이상의 중복 추천을 받은 전시를 집계해 ‘BEST OF BEST 32’를 선정했다. 항목별 통계 결과는 A: 3점, B: 2점, C: 1점으로 점수를 매겨 합산해 집계했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무제”〉
중앙일보 사옥에 설치된 빌보드 프로젝트 1991(사진: 김상태)

앙케트 결과 분석 Issue 8

(1) 기관 유형별 결과
① BEST 100 미술관 46건, 갤러리 32건, 비영리 공간 18건, 기타 4건
② BEST OF BEST 32 미술관 전시 29건, 갤러리 1건, 대안공간 1건, 기업운영 비영리 전시장 1건.
③ 미술관급 전시에 높은 추천율
국립현대미술관과 삼성미술관의 전시에 가장 많은 추천이 몰렸다. 자본 및 규모, 인력, 인지도 면에서 두 기관이 워낙 월등한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④ 사립미술관 전시 〉 국공립미술관 전시
BEST OF BEST  32 미술관 29건 중 국공립미술관보다 사립미술관이 2건 더 많았다. 국공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과천 및 덕수궁),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아르코미술관 6곳. 사립미술관은 삼성미술관 리움, 아트선재센터, 성곡미술관, 토탈미술관, 코리아나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일민미술관, 대림미술관을 비롯한 8곳.  
⑤ 주요 국공립미술관의 전시 기획력 성장 호평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등 주요 기관들의 전시 기획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이다. 한동안 전문성보다는 대중성에만 집중하거나, 긴장감 없는 상설전으로 미술인들의 외면을 받았던 기관들이 집중도가 높은 전시를 선보였다.  
⑥ 갤러리 전시는 상대적으로 위축
경기 침체, 비엔날레 등의 여파로 갤러리의 전시 활동이 약화되었다. BEST OF BEST 32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갤러리 전시는 학고재의 〈노순택〉.

(2) 장르 유형별 결과  
① 개인전 vs. 그룹전
BEST 100: 개인전 58건, 그룹전 38건
BEST OF BEST 32:  개인전 16건, 그룹전 16건
BEST 100에서 개인전의 비율이 높다. 연간 국내에서 개최되는 전시 중 개인전이 그룹전에 비해 많은 결과다. 하지만 상위권 BEST 32에 오른 전시들은 개인전과 그룹전이 동일한 비율을 차지, 고른 분포를 보였다.  
② 소장품 전시 방법론 연구 필요
BEST 100에 이름을 올린 소장품 전시는 〈맵핑 더 리얼리티〉 〈아트×혁명: 바츠게임〉 2건이며, BEST OF BEST 32에는 〈맵핑 더 리얼리티〉 단 1건이 올랐다. 이 두 전시는 ‘소장품 상설전=단조로움’이라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도록 기획력을 더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앙케트 결과에 소장품 전시 비율이 극히 낮은 점은 미술관의 소장품 운용 문제에 시사점을 던진다. 그 밖에 기획전에 소장품을 일부 활용한 사례로는 〈한국의 단색화〉 등이 있다.  
③ 주제 기획전 BEST 10 : 1위 〈덕수궁 프로젝트〉
2위~10위: 〈한국의 단색화〉 〈X-사운드〉 〈마스커레이드〉 〈고백: 광고와 미술, 대중〉 〈카타스트로폴로지〉 〈인생사용법〉 〈맵핑 더 리얼리티〉 〈SeMA중간허리 2012: 히든트랙〉 〈오래된 미래〉 〈안녕 없는 생활들, 모험들〉
10위 내가 모두 미술관 전시다. 사운드아트, 시각 자료 이미지, 디자인 등 타 장르 관련 기획전부터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을 담은 기획전이 두루 꼽혔다. 갤러리의 경우 개인전 위주로 한 해 전시가 꾸려진 데다, 대안공간 등 기타 공간의 전시는 규모 및 홍보, 부대행사 등 여러 실질적 여건상 주목받지 못했다.   
④ 국내작가 개인전 BEST 10 : 1위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
2위~10위: 〈서도호〉 〈노순택〉 〈배영환〉 〈이승택〉 〈김한용〉 〈이불〉 〈홍승혜〉 〈이기봉〉 〈리경〉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 〈이승택〉은 ‘작가 재조명’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개인전은 대부분 신작 위주인 데 반해 〈노순택〉은 기존 작업을 재맥락화해 선보인 전시임에도 높은 순위에 올랐다. 한편 다른 작가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리경〉은 공간을 압도하는 대규모 설치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⑤ 국제전 BEST 10: 1위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2위~10위: 〈아니쉬 카푸어〉 〈원더러스트〉 〈더 버티컬 빌리지〉 〈무브〉 〈핀 율〉 〈타다시 카와마타〉 〈피필로티 리스트〉 〈스위스 젊은 작가〉 〈한-이스라엘 수교 50주년 기념 특별전〉.
유명 해외작가의 개인전, ‘국가’별 그룹전, 장르 관련 기획전 등 다양한 유형의 해외 전시가 상위권에 올랐다. 기획전 중 〈원더러스트〉 〈무브〉는 해외 큐레이터 및 기관의 기획전이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전시 개최 전부터 큰 이슈가 될 만큼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작가로서, 첫 번째 한국 개인전에 많은 추천이 몰렸다.

(3) 작가 유형별 결과
① 국내작가 전시 vs. 해외작가 전시 vs. 국내외 작가 혼합 전시
BEST 100: 국내작가 전시 71건, 해외작가 전시 20건, 국내외 혼합 전시 9건
BEST OF BEST 32: 국내작가 전시 17건, 해외작가 전시 15건
전체 통계 상 국내작가의 전시가 많이 개최됐지만, 상위권 결과에서는 그 비율차가 크지 않았다. 그 결과는 아래 ②번 내용과도 관련된다.    
② 해외 유명작가의 대규모 개인전 열기
〈아니쉬 카푸어〉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동아시아 지역 미술관에서 최초로 열린 개인전으로, 이들의 작품을 기다리던 전문가, 대중 모두의 호응을 얻었다.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유명 건축그룹 개인전 〈MVRDV: 더 버티컬 빌리지〉, 가구디자이너의 개인전 〈핀 율〉 등 타 장르 예술가의 전시들도 많은 추천을 받았다.   
③ 작고작가의 탄생 주기를 기념하는 특별전 다수
〈이인성 탄생 100주년〉 〈핀 율 탄생 100주년〉 〈백남준 80주기 특별전: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 등이 있다.  
④ 중견, 원로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들 주목
〈김한용〉 〈이기봉〉 〈이승택〉 〈SeMA 중간허리 2012: 히든트랙〉 등이 그 예다. 경기 침체로 이른바 미술시장의 블루칩 작가들 전시는 저조한 가운데, 작가 재조명 전시가 많이 열렸다. 특히 김한용의 경우는 상업 사진으로 출발한 원로 사진가의 재평가 측면에서 가장 이색적인 결과다.

(4) 지역별 비율
① 지역 불균형 심각
BEST 100: 서울 및 경기 지역 84건, 그 외 지역 16건
BEST OF BEST 32: 지역 2건
② 지역 공공미술관의 선전
BEST 100에 이름을 올린 지역 공공미술관은 7곳(경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김해문화의전당(윤슬미술관) 대구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그 외 사립미술관은 1곳(우민아트센터), 갤러리는 6곳(대구 누오보갤러리, 대구 리안갤러리, 우손갤러리, 부산 갤러리 604, 아리랑갤러리,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BEST 100의 지역별 비율을 보면 전시의 중앙 편중 현상의 심각성이 나아지지 않았다. 전시 기획의 질적 수준도 문제지만 추천자의 서울 편중, 관객 수준, 전시장 수, 홍보에 있어 서울권보다 불리한 여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③ 지역 갤러리 중 영남권 강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갤러리 6곳 중 영남권 소재가 4건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아라리오갤러리를 제외하면, 현재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보여 주는 갤러리가 부산과 대구에 몰려 있고 그 외 지역이 전무한 지역 간 전시 공간 불균형 현상을 증명하는 결과다.

(5) 2012년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전시: 〈올해의 작가상 2012〉
압도적인 표차로 ‘BEST 100’뿐만 아니라 5개 항목 모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전시로 꼽혔다. 경쟁 구도 및 시상 제도 도입, 방송사 협업, 해외 전문가들의 심사위원 영입 등 새로운 방식을 선보인 점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6) 가장 많은 전시 추천을 받은 기관: 삼성미술관 리움, 플라토
올해 열린 4건의 전시가 모두 리스트 상위권에 올랐으며, 플라토의 전시 2건을 합하면 총 6건의 전시가 BEST OF BEST 32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미술관은 지난해 앙케트에서 기획전 〈코리안 랩소디〉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올해는 〈아니쉬 카푸어〉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등 해외 거장들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높은 득표 수를 얻었다. 10만 명의 관객 돌파로 상반기 국내 최고 흥행 전시로 자리매김한 〈서도호〉 또한 미술전문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얻었다. 그 다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천, 덕수궁)이 총 5건의 전시를 리스트에 올렸다. 〈이인성〉을 제외하면, 전부 그룹전이라는 점에서 삼성미술관 리움과 다른 결과를 보였다.

(7) 올해 BEST 100 중 최다 관람객 전시: 〈이인성 100주년 기념전〉
11만 5,756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한국 근대작가들에 대한 대중적인 인지도가 여전히 높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은 〈서도호〉전. 리움의 역대 최다 기록을 보유한 2007년 〈앤디 워홀 팩토리〉의 관람객 10만 명을 넘어서는 10만 1,200명을 달성했다. 1986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이중섭 30주기 특별기획전〉이 첫 ‘10만 관객’ 돌파 기록을 세운 전시다.

(8) 전문가들이 진단한 2012년 전시 지형
① 주요 국공립, 사립미술관이 수준 높은 기획 전시를 많이 소개하며 한 해 전시 흐름을 이끌었다. 미술관이 제 기능을 충실히 한 해였다.
② 전시의 다양성이 높아졌지만 양적 팽창에만 집중, 질적 빈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각 기관들이 전시를 통해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는 볼 수 없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전시는 여전히 부족했다.    
③ 소외된 연령대(중견, 중진, 원로) 작가와 시장에서 소외된 장르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부활해 작가 재조명 전시들이 여느 해보다 활발했다.
④ 신진작가와 신진기획자의 등장이 수적으로는 미약했지만, 세대교체의 가능성은 분명 엿보였다.
⑤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과거에 비해 높아진 분위기였다.
⑥ 전시의 중앙 집중 현상이 여전히 심각했다.   
⑦ 상투화, 권력화되어 가는 기존 비엔날레에 정체성이 불분명한 신생 비엔날레까지 연이어 개최되어 ‘비엔날레 피로’가 누적된 한 해였다.

이승택 〈Anti  Art〉 프린트 2000년대
이승택 〈지구 행위〉 퍼포먼스 1990년대

항목별 분석

(1) 〈올해의 작가상 2012〉 5개 항목 모두 1위 휩쓸어
앙케트에서 가장 높은 추천수를 받은 〈올해의 작가상 2012〉이 5개 항목 평가에서도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추천자들은 이 전시의 ① 전시 컨셉트, 주제: 서바이벌 형식으로 전면 개편된 형식 ② 작품성: 4명 작가(팀)의 완성도 높은 신작 ③ 디스플레이: 개인전 형식으로 집중도를 높인 전시 공간 ④ 학술 교육 도록: 각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충실히 담아 낸 아카이브, 최근 경향을 잘 살린 아이패드용 도록 ⑤ 홍보 관객 호응: 퍼포먼스와 아티스트 토크 등 대중 상대의 부대행사 개최, 방송매체와의 협업을 통한 현대미술 대중화 등을 호평했다.  

(2) BEST 5 안에 가장 많이 등장한 전시들
〈이인성〉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서도호〉 〈아니쉬 카푸어〉 〈노순택〉 항목별 앙케트의 상위권 리스트는 BEST OF BEST 32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3) 가장 많은 추천이 몰린 항목
가장 많은 추천 점수가 몰린 항목은 ① 전시 컨셉트와 주제. 이후 항목 번호순대로 추천자들의 점수 배점이 적었다. 특히 ④ 학술 교육 도록과 ⑤ 홍보 관객 호응은 전시 공간의 규모와 자본력에 비례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른 항목에 비해 점수를 준 추천자가 적었다.  

전시 컨셉트와 주제
① 1~10위: 〈올해의 작가상〉 〈이인성〉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노순택〉 〈아니쉬 카푸어〉 〈서도호〉 〈배영환〉 〈덕수궁 프로젝트〉 〈이승택〉 〈한국의 단색화〉  
②‘전시 컨셉트와 주제’는 전시 주제의 가치(학술성 시기성 개념성), 주제 표현에 적합한 작가 선정, 전시 성격을 명확히 하는 컨셉트 등이 평가 대상이다. 따라서 주제에 대한 의도와 개념이 명확하고 기획자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항목이다.
③ 1위를 제외하고 5위권 전시 전부 개인전이 차지했다. 기획/그룹전 사례가 더 많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결과다. 개인전을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에 있어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전시로 소화하는 기획력과 주제, 컨셉트에 대한 중요도와 인식이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작품성
① 1~10위: 〈올해의 작가상〉 〈아니쉬 카푸어〉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서도호〉 〈배영환, 노순택〉 〈이인성〉 〈한국의 단색화〉 〈이승택〉 〈홍승혜〉 〈이불〉
②‘작품성’은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평가다. 한 편의 전시는 기획자의 역량과 더불어 각 작품의 저력과 역량에 의해 완성도를 갖추게 된다.
③ 〈아니쉬 카푸어〉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피필로티 리스트〉 〈타다시 카와마타〉 등 이미 해외 평단에서 인정을 받았으나 국내에서 첫 대규모 전시를 연 작가들에 많은 추천이 몰렸다.
④ 비엔날레 시즌을 겨냥하여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작가들의 국내 전시도 연이어 개최했다. 하지만 〈이불〉을 제외하고는, 국내를 중심으로 꾸준한 활동을 보여 준 작가들의 전시가 앙케트에 다수 등장했다.  

 디스플레이
① 1~10위: 〈올해의 작가상〉 〈이인성〉 〈서도호〉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아니쉬 카푸어〉 〈한국의 단색화〉 〈배영환〉 〈홍승혜〉 〈이승택〉 〈김한용〉 〈히든트랙〉 〈덕수궁 프로젝트〉  
② ‘사이트와 디스플레이’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작품의 ‘설치 방식’ 평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시의 컨셉트와 개념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했는가, 평범한 공간을 어떻게 새로운 장면으로 전환했는가, 전시 공간의 특징과 성격을 어떻게 반영하고 되살렸는가, 전시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 어떤 새로운 장소와 영역을 작품을 보여 주는 발판으로 삼았는가 등 다양한 시각에서 이 항목을 이해할 수 있다.
③ 1~5위까지는 기존 공간에 대한 대규모 설치 혹은 아카이브 공간 구성을 잘 완성시킨 전시들이 이름을 올렸다. 전시 공간의 특수한 장소성이 부각된 〈덕수궁 프로젝트〉 〈인생사용법〉도 많은 점수를 얻었다.
④ 시각 이미지 자료의 아카이브 구성을 역동적으로 꾸린 〈이인성〉 〈고백: 광고와 미술, 대중〉전이나 건축 및 디자인 전시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한 〈더 버티컬 빌리지〉 〈핀 율〉이 보여 준 참신한 디스플레이를 꼽은 추천자가 많았다.

학술 교육 도록
① 1~10위: 〈올해의 작가상〉 〈이인성〉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한국의 단색화〉 〈덕수궁 프로젝트〉 〈노순택〉 〈서도호〉 〈고백: 광고와 미술, 대중〉 〈원더러스트〉 〈핀율〉  
② 학술 교육 도록은 전문가를 위한 학술성 교육성 및 대중 상대의 공익성을 평가하는 항목이다. 즉 전시가 전문가에게 비평적 담론을 생성하게끔 피드백을 유도하는 내용적 깊이를 갖추었는지, 나아가 심도 깊은 학술심포지엄 개최와 자료 연구집 출간을 통해 학술적 담론을 연장했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 한편 대중을 향한 미술의 저변화에 기여했는지도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고 전시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교육 및 행사 프로그램을 적극 개설하고 진행했는지가 추천 사유가 된다.
③ 〈이인성〉 〈한국의 단색화〉 〈덕수궁 프로젝트〉 등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비롯해 소재의 역사성을 강조한 전시들이 다른 항목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④ 국립현대미술관을 필두로 전시에 아카이브 섹션을 별도 구성하는 경향이 올해 들어 한층 두드러졌고, 아카이브 섹션의 교육성을 꼽는 추천자들이 많았다. 〈이인성〉 〈한국의 단색화〉 〈고백: 광고와 미술, 대중〉 등이 그 예다.
⑤ 현대미술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담론 생성에 기여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같이 작품 자체가 지닌 학술적 측면이 높이 평가된 경우도 있었다.  

홍보 관객 호응
① 1~10위: 〈올해의 작가상〉 〈이인성〉 〈서도호〉 〈아니쉬 카푸어〉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덕수궁 프로젝트〉 〈노순택〉 〈핀 율〉 〈홍승혜〉 〈피필로티 리스트〉 〈오래된 미래〉 〈배영환〉 〈이승택〉
② 홍보, 관객 호응은 원칙적으로 감상자의 몫이며, 관객수 등에 대한 명확한 데이터 통계 수치 없이는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하기 곤란한 항목이다. 따라서 5개 항목 중 추천 비율이 제일 낮았다. 또한 기관에 따라 기획팀 외 별도의 홍보팀을 따로 운영하는가, 운영한다면 홍보팀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홍보 방식의 적절성과 참신성 등의 여건이 평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③ 〈덕수궁 프로젝트〉 〈오래된 미래〉 〈핀 율〉 같은 전시가 다른 항목에 대비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이 전시들이 지닌 소재(가구디자인) 혹은 공간의 친숙함(덕수궁, 옛 서울역사)이 대중적 호응을 불러일으키기에 적절했다는 평이다.
④ 전시 관련 학술행사 및 이벤트, 연주회, 미디어 및 영화 상영회 등 다양한 부대 행사를 통하여 전시에 대한 호응도를 높인 전시들이 많이 꼽혔다.

〈올해의 작가상〉 최종 수상자 문경원 전준호의 전시장 설치 과정

2013년 전시 문화에 바란다!

아트인컬처는 앙케트 마지막 질문으로 ‘한국 전시 문화가 당면한 과제와 앞으로의 비전’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물었다. 이에 대한 추천자들의 답변을 요약한다. 한국의 미술계를 위한 소중한 제언이 되길 바란다.
(1) 깊이 있는 ‘기획 학예연구 과정’이 필요하다. “조사 연구 분석을 밑 작업으로 하지 않는 대중적 테마 기획전이 지나치게 많고, 큐레이터 정체성과 미학자/이론가/철학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젊은 큐레이터들의 지식 기획도 문제”(김종길)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고 담론을 개진하는 학예연구 과정이 필요하다.”(고원석)
(2) 전시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재고가 동반되어야 한다. “한국미술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며 현재의 전시가 미래의 한국미술 지도에서 어떤 위치를 점유할 것인지 세심한 성찰”(윤진섭)이 담긴 전시가 등장해야 한다. 이를 꼭 주제 기획전의 측면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한 작가를 조명하는 개인전은 미술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깊이 있는 연구가 동반된 개인전 개최를 통하여 작가를 대중에게 이해시키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우혜수)
(3) 미술시장의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 건강하고 자립적인 전시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 미술시장의 위축이 고스란히 전시의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미술계의 다양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건강한 미술 생태계를 만드는 지름길이다.”(김재환)
(4)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전시 문화 발전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2012년에는 지방자치단체의 문화 예산이 대폭 삭감된 관계로 공립미술관들이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많았다. 특히 2013년은 새 정부가 들어서는 해로서, 변화 모색이 시급한 시점이다. “대선을 앞두고 타 문화예술계에서는 후보들의 캠프와 문화예술 관련 공약을 공동 기획하고 직접 참여하는 반면, 미술계는 이런 활동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내년 이후의 상황이 우려된다.”(안경화)
(5) 전시의 중앙 집중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움직임을 꾸준히 모색해야 한다. “서울 중심으로 몇몇 제도 공간을 훑고는 마치 한국 미술계의 전체 경향을 판단하는 현상부터 극복되어야 한다.”(김준기)      
(6) 과거에 비해 신진작가의 등용문은 넓어졌으나, 신인 큐레이터 양성을 위한 제도가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중견 큐레이터를 위한 지원 제도 역시 필요하다. “국공립미술관은 중견 큐레이터들의 초청 연구/기획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테이트미술관이 (걸벤키언 재단의 후원금으로) 테이트트리엔날레 총감독으로 선정된 큐레이터를 2년 간 연구 지원하는 것은 좋은 예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들에게 희생과 자구를 요구하던 시대는 끝났다.”(임근준)

하지훈 〈자리〉 덕수궁 덕홍전 설치 2012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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