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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8.02

Abstract

특집   History of art in culture ● 기쁘다. art가 통권 100호의 고지를 훌쩍 뛰어넘어 '100+1'호의 새로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지난 달 통권 100호를 기념하며 한국미술의 세대교체를 이끌어나가는 젊은 파워 100인을 선정한 바 있다. 이번 호에는 1999년 10월, 벅찬 꿈을 안고 출발한 art 창간호부터 100호까지의 역사를 '하이라이트'로 일목요연하게 총정리했다. 100개의 이슈로 압축해 본 100권의 art. 그 안에는 art의 역사뿐 아니라 한국과 세계 당대미술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00호 대장정의 여정을 함께 걸어 왔던 옛 동지 전직 art 에디터들이 애정 깃든 '편지'를 친정에 보내왔다. '어제'의 art에 몸담았던 시간과 경험을 딛고 '오늘'을 사는 그들로부터 art와 한국 미술저널리즘의 '내일'을 듣는 자리다. 또한 현재 art를 만들어 가는 스태프들의 라이프스타일도 덧붙인다. 기획, 취재, 편집 등 제작 전 과정의 메커니즘, 쫓기고 쫓기며 긴박하게 돌아가는 마감전쟁의 '백스테이지'를 공개한다.

Contents

표지 권경엽 <Memory Space_haze> 캔버스에 유채 72.7×100cm 2007

에디토리얼 aMart로 다시 태어납니다_김복기
 
프리즘 
    새 정부, ‘문화의 시대’교육 비전 제시하라_최광진
    문화예술진흥기금의 민주적 분배, 그 딜레마_김준기
    폐교 활용 문화공간의 현황과 과제_김창수
 
포커스
    나의 아름다운 하루|김정주_조은정
    김보현_김이순
    젊은 작가 6인|경성현|반전_강수미
 
특집 History of art in culture 
    HIGHLIGHT 100:1999.10~2008.01_호경윤
    나의 art, 우리의 저널리즘_김경아 윤동희 이대범 임근준
    art를 만드는 사람들_이선화

작가 인터뷰
    박석원 조각 45년, ‘積+意’_이성희

해외미술
    제9회 리용비엔날레, 네트워크가 허물어진 빅게임_김홍기

리포트 인사이드
    블루닷아시아, 아트페어의 새로운 대안_이대형

이미지 링크 안세권

믹스&매치
    이명세 vs. 채호기 vs. 김학제_이선화
 
전시 미리보기
    2008 미리 보는 주요 전시, 올해의 미술계 기상도_장승연
 
전시 리뷰
    불의 노래|추상미술, 그 경계에서의 유희|어제 안에 오늘
    메트로폴리스 인 서브웨이월드|오병욱|이성도|어머니와 딸
    이용백|잉고 마우러|대추리 현장예술 도큐먼트|신미경
    샌디 스코글런드|최승훈+박선민|대화의 방식Ⅱ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박상호|이소정|이재이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믹스앤매치-이명세 채호기 김학제의 25년 우정

“오다가다 만난 사이지, 뭐(웃음).” 이명세 감독은 만남의 시작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다가다’ 만나 어느덧 25년을 함께 한 세 친구의 내막이 궁금해, 기자는 ‘어찌어찌’하여 이들을 한자리에 초대했다. 인터뷰는 세 번의 일정 변경 후, 홍대에서 1차, 2차, 3차로까지 이어졌다. 영화감독 이명세, 시인 채호기, 그리고 조각가 김학제. 영화, 문학, 미술계의 각기 다른 장르에서 달콤한 작업물을 잉태시키고자 쓰디쓴 고통을 감내하는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만난 동지들’. 세 친구는 적잖이 서로를 닮아 있었다.

글 | 이선화 기자

“명세의 <개그맨> 영화를 봤었죠. 보고 굉장히 좋았어요. 한국영화에 이런 작품이 있을 수 있다니 하고 놀랐습니다. 사람을 가라앉히는, 그것도 심각하게 만드는 블랙 코미디였는데, 그 기운이 나를 일주일 동안이나 지배했어요. 그래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개그맨>을 보았느냐고 물었죠. 그리곤 꼭 보라고 권하고 다녔어요.”
《문학과 지성사》 대표이자 시인 채호기에게 이명세는 이처럼 영화를 통해 다가왔다. 그들은 서울예대 동문에 나이도 같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는 그저 소문으로만 알았을 뿐,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다. 자신의 영화를 홍보해 주던 채호기를 이감독이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법. 당연히 그들의 첫 만남은 오래지 않아 이루어졌다. 장소는 신촌. 초저녁에 만나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비단 별이 총총 빛나던 밤하늘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일명 ‘죽’이 맞는 문인과 영화인의 만남은 돈독한 동료애를 발하며 여전히 지속된다.
한편, 김학제 동아대 교수와 이명세 감독은 이보다 조금 빨리 조우했다. 낭인마냥 대전 지역을 예술한다는 사람들과 이리저리 몰려다녔던 당시, 이감독은 조감독 시절이었고 김교수는 학생 신분이었다. 그 많던 무리 중 이감독은 “저 친구, 참 멋있네”라는 말을 튀어나오게 만드는 김교수와 만나 “인간성 자체가 예술가”인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당시가 1980년대 초반. 그리고 곧 이어진 김학제와 채호기의 만남에는 이명세의 친절한 개입이 있었다.

우리만의 진실게임

사진 촬영 전, 김학제 교수는 가방 속에서 공CD를 꺼내 들더니 이감독과 채대표에게 나누어 주었다. 무엇이냐 물었더니, 지난 크리스마스에 울릉도에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이라 했다. 크리스마스라는 예상치 못한 단어에 짐짓 놀랐던 기억. 중년의 나이에 가족도 아닌 친구와 특별한 날 떠나는 여행은 어떤 것일까.
“자주 만나지는 못해요. 만나도 일로 만나는 경우가 많죠. 명세 시나리오 작업하는 걸 내가 도와주기도 하고, 학제 전시에 글을 쓰기도 하면서 보는 거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여행을 함께 하게 됐어요. 시간에 제일 구애받다 보니, 친구들이 내 시간에 맞춰주죠. 그래서 스케줄 관리는 보통 나의 몫입니다.”(채호기)
울릉도는 물론 남해안, 거제도, 부산, 제주도 그리고 외국의 여러 도시들까지, 여행의 목적은 술이나 풍경에 흥건히 취하는 데 있지 않다. 잠을 실컷 자고, 좋은 음식을 먹고 책도 많이 읽으면서 여유롭게 보내는 것. 서로에게 특별한 강요도 하지 않고, 간섭도 지양한다 말한다. 그야말로 ‘쿨’한 관계. 하지만 이러한 관계를 체득하기까지 거쳐 간 경험과 시간, 배려의 힘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나. 또한 그들에겐 재미난 이벤트가 있다는데, 그것은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진실게임이라 했다.
“무조건적으로 친구로서, 동지로서 서로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고 느꼈던 부분을 솔직하게 털어놓죠. 사실, 니 작품 별로 안좋았어라는 식으로.(웃음) 일 년에 한 두 번씩 치르는 우리만의 진실게임이죠.”(김학제)
“대부분은 서로의 창작에 대한 이야기죠. 그리고 가령 삶의 태도에 대한 측면도 이야기의 중요한 축입니다. 푸코가 한 말인데,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스스로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곧 자기를 배려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나에게는 문학적인 야망이란 게 있겠죠. 그것은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거예요. 욕심을 버리자, 이런 부분도 이야기하죠.”(채호기)
“호기의 첫 시집 <지독한 사랑>은 땀과 성실로 탄생된, 어느 한 편도 버릴 것 없이 꼼꼼하게 나왔어. 시인으로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겠어. 시라는 장르는 영화의 역사와 비교조차 할 수 없잖아. 이미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것이 굉장히 많으니까. 그것을 뛰어넘어야 하니깐 더더욱 힘든 거지. 거기서 안주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잖아. 그런 부분이 나에게도 힘을 준다고.”(이명세)
피카소와 시인 엘뤼아르도 그랬고, 자코메티와 샤르트르, 드가와 폴 발레리, 그리고 세잔과 에밀 졸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 장르에서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자극을 받았던 관계들. 말 그대로 건강한 관계다. 분위기는 이렇게 무르익어 갔다. 그리고 기자가 바라마지않았던, 상대를 향한 솔직한 ‘평가 타임’으로 상황은 변화되었다. 최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21세기 에로티시즘> 그룹전에 참여한 김교수의 작업이 첫 도마 위에 올랐다.

영화 <M>의 촬영 현장에서 주연배우 강동원과 이명세 감독

조각가를 바라보는 시선

“학제의 국전 대상 작품 <한(恨)에 대한 보고서>와 첫 개인전 작품을 좋아해. 그런데 요즘 미술계 추세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선재 전시는 물론 요즘 작품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아. 학제가 조각가 로댕을 좋아하잖아. 그 풍부한 덩어리감. 내 친구 학제는 그런 덩어리감을 잘 다룰 수 있는 친구야. 안에서 밀어서 밖으로 형태가 다져지는 그런 덩어리감. 그걸로 승부를 걸었으면 하는데 말야. 시공사에서 나온 로댕에 대한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 ‘내 앞에 펼쳐진 20년의 암흑을 뚫고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었다.’ 이런 식의 말이었지. 너무 멋있지 않아?” (이명세)
채호기 대표가 뒤를 이었다. “예술이라는 것은 그늘이 있어야 하죠. 자기가 아는 것 이상으로 가는 거, 모르는 부분까지 나가는 것을 그늘이라 할 수 있어요. 내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더라도 진정한 예술가라면 그런 모험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제의 초창기 작품은 상당히 강했어요. 아는 것 이상을 보여줬던 것 같아요. 문명, 자연, 미래 서정, 시간이라는 테마를 다루는데, 그런 부분은 아주 좋아요. 그런데 그 테마를 소화시키는 방법이 문제죠. 나는 학제가 지식적인 부분, 아는 것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식은 그만 하고 자기가 잘 모르는 부분, 즉 내면의 그늘을 끄집어 내 주길 바라죠.”
‘그늘’이라. 시인의 멋진 표현에 영화감독이나 기자나 고개를 끄덕였다. 채호기 대표는 소설 역시 너무 완벽하게 완성된 듯 보이는 글은 왠지 기성품 같다고 말한다. 예술이라는 범주에서 마음의 터칭(Touching)이야말로 작품 평가의 일등공신임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두 친구의 조언에 김교수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법. “충고해 줘서 고마운데…”라며 그가 항변한다. “감성적인 표현보다도 매스(Mass)나 재료에 구애받고 싶지 않아. 그러니깐 덩어리든 평면이든 구애받지 않겠다는 거야. 미래 서정.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은 정서야. 과거와 현재를 비벼서 미래를 통찰하자는 거지. 여하튼 나의 목소리를 내라는 질타인데, 곧 잘 용해될 거라 생각해.” 이렇게 ‘오고가다’ 만난 세 친구의 대화는 끊임없이 ‘오고가는’ 대화만큼이나 흥미롭고 진지하고 열기가 넘친다. 그런 대화의 장 속에서, 이명세 감독은 며칠 후에 있을 단편 촬영 때문에 머릿속이 연신 바빠 보였다. 이야기에 집중하다가도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를 남기고자 펜을 빌려 메모를 했다. 인터뷰 사이사이 감독과 기자 사이에서 펜은 여러 번 ‘오고갔고’, 그의 일에 대한 열정과 철저한 시간 관리법에 놀랐다. 그리곤 진실게임의 마이크를 이감독에게 넘겼다.

시인, 아날로지, 낭독

“나는 그림이건 시건 ‘흘깃 보기’란 방식으로 봐. 예를 들면 호기의 시에서 등장하는 수련, 침몰. 내가 생각하는 시는 단어 하나하나가 너무 중요해. 전체적인 맥락을 보지는 않아. 예술의 역사를 알고 시대의 흐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 그런데 요즘은 너무 공부를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어. 원초적으로 돌아갔으면 해. 호기 시의 제목에 이런 게 있잖아. <지독한 사랑><슬픈 게이><밤의 공중전화>. 너무 좋은 거 같아. 특히 단어를 뽑아내는 거 말야. 아까 호기가 말한 그늘이란 말도 멋져. 참, 그거 생각나? 한남동 어느 선술집이었는데, 영화 <첫사랑> 끝났을 때였지. 나한테 술 먹다가 갑자기 그랬잖아. 나 지금 방황하고 있어.” 세 친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촉각적이고 시각적이다. 채호기의 시는 그렇다. 기자의 학생 시절, 교과 수업을 위해 외웠던 윤동주의 <서시><별 헤는 밤>, 한용운의 <님의 침묵>,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육사의 <광야><소년에게> 등, 그 정도뿐이었던 같다. 아니, 전국적으로 한 차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빼놓을 수는 없다. 영화, 전시 스케줄은 항시 주시하며 발품을 팔아 시간을 투자하지만, 시는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쉽게 다가가질 못했다. 그러나 편견은 허물수록 좋은 게 아니던가. 시인은 영상을 다루는 영화감독이나 대상을 빚는 조각가와 무척이나 닮았다는 걸 깨달으면서부터다. 당연 편견 허물기의 제공처는 이번 만남에 있었다.
“학제가 인간이나 풀벌레나 똑같다고 말했어요. 그것은 우주 전체를 하나의 덩어리로 본 거죠. 바로 아날로지(analogy)의 세계인데, 시의 궁극적인 꿈이 바로 아날로지예요. 하나로 다 통합된다는 뜻입니다. 내 시에 나오는 ‘나’라는 주체는 어떤 측면에서 남성이라고 지칭할 수 없어요. 화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른다는 이야기죠. 그렇게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 밑바탕엔 아날로지란 개념이 있습니다.”(채호기)
중학교 시절, 바이런(Baron Byron)의 시집을 선물 받은 채호기는 언어 그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에 놀랐다. 결국 소년에게 근사한 충격을 제공한 시집 한 편은 그를 시인이 되도록 이끌었다. 시를 이해하는 것, 감정이입의 어려움을 겪어 본 자는 안다. 도대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말이다. 채대표는 시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언어와 이미지로 보라고 조언한다. “이해하기 편한 시들이 있어요. 그런 시들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이미지를 다루는 시는 더 깊은 곳을 건들이죠. 그것은 명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깊은 거예요. 이해가 불가능하죠. 예술 작품 역시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잖아요.” 그늘, 자신의 내면을 향하는 그늘의 존재를 파헤치는 시인의 최근 작품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채대표는 며칠 전 쓴 시가 있다고 말했고, 가방 속에서 타이핑한 종이를 꺼내 들었다. 친구들은 누구 먼저랄 것 없이 “읽어줘”라며 분위기를 만들었다. 시인의 ‘낭독’은 이미 익숙한 풍경처럼 자연스러웠다. 제목은 <밤길>. 우리는 경청했다. 이명세 감독이 제일 먼저 감상평을 건넸다.
“느낌이 아주 좋아. 음…. 그런데 내가 가끔씩 편집하는 버릇이 있어. 그 세 번째 단락은 너무 설명적인 거 같아. 그 단락은 빼도 좋을 거 같은데. 너무 친절한 구석이 있어 보여서 그래.” 김학제 교수는 묵묵히 이감독의 의견을 들었고, 힘든 고민 끝에 탄생했을 <밤길>의 창조자는 이명세 감독에게 자신의 생각을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둘 사이에서 의견들이 여러 차례 오고갔다. 이감독은 ‘문제(?)’의 그 단락을 생략하고 시를 읽겠다면서 종이를 건네받았다. 시인은 평온한 미소로 눈을 감고 이감독의 낭독을 음미했다. “그렇게 해도 말이 되긴 하네”라며 채대표는 웃음을 지었다. 이명세 감독은 “고려해 봐”라는 말과 함께 종이를 건네 주었다.

영화감독의 그늘과 빛

그들은 이처럼 허물없는 사이다. 그렇다면 두 친구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본과 인력, 매커니즘을 등에 업고 사는 이감독의 영화를 바라보는 입장은 어떨까. 호기심이 일었다. 이야기는 최근작 <M>으로 집중됐다.
“<M>을 명확하게, 딱 떨어지게 이해하려고 하면 재미없는 영화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그늘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수 있어요. 자기도 잘 모르지만 한 발 짚어 넣는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 보여주는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예요. 그것은 계몽주의자가 할 일이죠. 예술가는 그것을 뛰어넘어야 해요. 가슴을 쿵 치는, 발밑을 흔들리게 만드는 느낌을 주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그늘에 한 발 짚어 넣으려고 해야 합니다.”(채호기)
“나 역시 자유로와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는 배에 올라탄 사람들 같아. 이미지들이 수없이 출렁거려. 보였다가 사라지고, 보였다가 사라져. 그러니깐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잠도 안오는 거지. 이젠 괜찮을 때도 됐는데, 여전히 그래. 명확하지가 않으니까. 사람들 관계도 마찬가지야. 예술가를 바라보는 시각 말이야. 사람들은 육지에서 매우 편안하게, 배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예술가들을 삐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같거든.” (이명세)
그럴 듯한 개념으로 작품 설명을 논리적으로 하는 그 많은 예술가들. 어디어디서 보고 들었던 무수한 이론적 배경으로 작품을 포장하고 완성해 가는 그들. 기자는 천재적 예술가란 본인 작품의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이해하면서 완성해 간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본인은 그러하다고 설파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로 응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작품을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작품이 작품의 힘으로 굴러가는 때가 있다”는 채호기 대표나 “작품 제작 과정에 아스라한 지점이 있다”는 김학제 교수의 발언은 새삼 남다르게 인식되었다.

김학제 <미래 서정> 디지털 프린트, 패브릭커튼, FRP 87X165X30cm 2007

예술가로서, 동료로서

영화, 시, 미술을 사랑하는 예술가. 세 친구는 각기 다른 그 곳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끄는 중추적 인물이 되길 원한다. 엄청난 속도전 속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짐짓 생각의 깊이보다는 생각의 빠른 전환과 수용을 중시하는 쪽으로 알게 모르게 이동해 가고 있다. 지식의 양과 질을 떠나, 추락을 무릅쓰고라도 모험을 감행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추적인 원동력임을 망각하면서 말이다. 예술가적 태도를 함께 고민하면서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 그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나이 정도가 되면, 특히 남자들은 자신의 상처를 잘 드러내 보이지 않아요. 그 상처를 보여줘 봐야 상대방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냥 이야기하는 그 자체가 정리하는 과정이 되기도 해요. 거기에 치유 효과가 있고 카타르시스가 있거든요.” 인터뷰 마지막 즈음, 채호기 대표는 이렇게 그들의 관계를 정리해 주었다.
“호기가 글씨체가 이쁘지”(이명세), “아니야, 명세랑 학제가 글씨를 잘 써”(채호기), “<첫사랑>이 아주 좋았어, <개그맨>은 당연 최고지”(채호기 김학제), “호기의 <중독된 사랑> 중에서 그 부분 있잖아, <바퀴와 레일이 부딪쳐 피워내는 불꽃같이/내 몸과 그대의 몸이 부딪치며 일으키는 짧은 불꽃>, 그거 예술이지”(김학제), “내 작품 <중독된 사랑>이 호기 시에서 나왔잖아”(이명세), “학제, 너 1회 전시에 나온 작품, 항아리에서 짚이 삐져나온 거 말야, 잘 가지고 있어, 내가 나중에 살 테니까”(이명세)….
앞이 환히 보이지 않는 ‘그늘’을 좇으며 서로간의 강점과 단점을 알고 냉정하게 평가할 줄 아는 지기지우(知己之友). 그럼에도 최종적으론 따스한 동지애를 발하는 이명세, 채호기, 김학제. 그들은 서로에게 더없는 원군과 같다. 영화, 문학 그리고 미술의 만남은 이러했다.

제9회 리용비엔날레

리우 웨이 <시소> 레진 플라스틱과 메탈 500X150X1600cm 2007

리용비엔날레, 네트워크가 허물어진 빅 게임

글·김홍기

현재 세계 전체의 국제 비엔날레는 110여개에 달한다. 추산하자면 대략 1주일에 1개의 비엔날레가 끊임없이 개최되고 있는 셈이다. 비엔날레 과잉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포를 살펴보면 지난 20년간 비엔날레를 주도해 온 대륙은 단연 아시아다. 중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 타이완 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하나 이상의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과열된 비엔날레 경쟁

이렇듯 아시아에서 집중적으로 비엔날레가 생겨난 배경에는 아시아 국가들이 단기간에 급속도로 달성해낸 경제 성장이 있다. 경제 성장에 걸맞은 문화적 위상을 수립하려는 이들 아시아 국가들의 노력은 미술의 영역에서는 잇따른 다수의 비엔날레 설립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아시아의 과열된 비엔날레 경쟁은 미학적 예술적인 관점에서보다는 오히려 지정학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엄청난 비엔날레의 양에 비해 아시아의 평론가나 큐레이터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런 이유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가 아시아 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임명돼 행사의 구상부터 실현까지 전담하는 사례가 무척이나 빈번하다. 더군다나 아시아에는 아직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미술관도 다른 대륙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 이렇듯 아직 충분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종의 이벤트적 성격이 강한 비엔날레를 집중적으로 장려하는 전략은 로컬 컬처의 위상을 신속하게 끌어올리고, 더 나아가 그에 따른 경제적 수익도 확보하려는 지정학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유독 아시아 비엔날레들이 전시의 테마로 아시아적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를 선호하는 것도 자신의 지역적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고 선전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의 비엔날레들은 과열된 비엔날레 경쟁 구도 속에서 스스로 자기 혁신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엔날레가 지구 전체에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른 현재, 비엔날레를 개최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물론 베니스비엔날레나 카셀도큐멘타처럼 상대적으로 긴 역사와 인지도를 갖춘 행사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묵직한 권력과 효과를 생산하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물음은 오히려 토리노, 베를린, 리용, 리버풀 등에서 열리는 서유럽의 소규모 비엔날레들에게 더욱 절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도시들은 개발도상국의 도시처럼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도 아니고, 제3세계의 문화처럼 지역적 정체성이 억압되거나 오해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럽의 소규모 비엔날레들은 다만 해당 도시의 수익을 올리기 위한 일종의 국제적 이벤트에 불과한 것일까?

토마스 사라세노 <공중의 정원/공항 도시/60SW> 혼합재료 2007

68명이 참여하는 빅게임

그렇지만 이들이 지정학적 목적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 달리 말해 이는 글로벌한 관점을 적용해 현대미술의 다양한 측면을 보다 자유롭게 수용하고 구성해 볼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의 소규모 비엔날레들은 아시아의 비엔날레들보다 미학적 예술적 실험적 전시를 실현하기에 더욱 적합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유리한 지점을 잘 포착해 매회 내실 있는 비엔날레를 조직해 온 도시가 바로 리용이다. 올해 아홉 번째를 맞은 리용비엔날레는 어김없이 참신한 기획을 마련해 시내 4곳의 주요 전시 공간(쉬크리에르, 리용현대미술기관, 뷜뤼키앙재단, 리용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됐다.
여기 흥미로운 게임의 규칙이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빅게임의 형태를 취하며, 그 플레이어들은 작금의 10년(this decade)을 정의해야 하는 요구에 직면한다. 그 플레이어들은 두 서클로 구분된다. 첫 번째 서클은 세계 각국의 49명의 전 세계 기획자로 구성되며, 이들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해야 한다. 당신 생각에 작금의 10년을 대표하는 예술가는 누구인가? 두 번째 서클은 14단위의 예술가(또는 팀)로 이루어지며, 이들은 각자의 전시 시퀀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이 이번 리용비엔날레가 내세운 게임의 규칙이다. 스테파니 무아동(Stㅤㄹㅒㄳhanie Moisdon)과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Ulrich Obrist)를 공동 총감독으로 임명한 이번 비엔날레는 ‘00년대-아직 명명되지 않은 10년의 역사’라는 주제로 기획됐다. 전시는 크게 두 서클로 나눠진다. 첫 번째 그의 플레이어들은 49명의 국제적 큐레이터들이다. 이들은 21세기의 첫 10년을 대표할 만한 한 명의 작가 또는 한 팀을 각자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 게임에 참여한다. 두 번째 서클의 플레이어는 시각 예술가뿐만 아니라 작가, 철학자, 안무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로 이뤄진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시 시퀀스를 기획한다. 그리하여 이번 리용비엔날레는 총 68명의 플레이어로 구성된 ‘빅게임’이 된다.
보통 한두 명의 총감독이 참여 작가 리스트를 만들고 전시 테마를 설정해 비엔날레를 구성하는 전형적인 경향에 대립시켜 볼 때, 이는 매우 참신한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기획은 하나의 중심을 바탕으로 요소들이 조직되는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구조가 아니라, 각각의 부분들이 고유한 자율성을 유지한 채 서로 접속되는 횡단적이고 유기적인 구조를 지향한다. 전권을 장악한 총감독이 지휘하는 일반적인 비엔날레의 전시 구조들은 대부분 별다른 차별성 없이 비슷비슷한 양상을 띠기 때문에, 총감독의 취향과 감각이 특별히 탁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소 정체되고 식상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전시 형태를 벗어나려는 모색이야말로 리용비엔날레 같은 유럽의 소규모 비엔날레들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줄거리 없는 역사책

더불어, 이번 리용비엔날레의 표제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비엔날레가 다루는 역사적 시기는 지금도 진행 중인 00년대, 즉 아직도 3년이나 남은 10년 단위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10년을 진단해 보는 이번 비엔날레는, 이런 의미에서 동시대적일 뿐만 아니라 회고적이며 심지어 전망적인 기획을 품고 있다. 스테파니 무아동과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이번 비엔날레를 다수가 집필한 일종의 ‘역사책’으로서 구성했다고 말한다. 이 역사책의 기획은 초월적인 거대 서사에 함몰되지 않은 다성적인 흐름들의 접속을 제시하는 것일 터이다.
이렇듯 혁신적이고 야심 찬 구상으로 무장한 이번 비엔날레는 과연 기대만큼 완성도 높은 전시를 관객에게 선보였을까? 안타깝게도 실제 결과물은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우선은 너무 평범한 작품들이 많았다. 과연 이 작가들이 작금의 10년을 대표하는 작가들인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물론 전시의 시점은 2007년이고 아직 2010년까지는 3년의 시간이 남았다. 첫 번째 서클에 참여한 49명의 큐레이터들이 지난 7년 동안의 작업보다는 앞으로 할 3년 동안의 작업에 기대를 걸고 신중히 참여 작가를 선정할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젊은 참여 작가들의 잠재적 에너지를 감지하는 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참여 작가의 출품작 수가 충분히 많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이번 비엔날레의 게임의 규칙상 한 작가의 작품이 이웃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큰 공명을 일으키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캡션에도 이 작가가 선택된 구체적인 이유가 충분히 제시되지 못했다. 요컨대, 근접 미래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근접 과거의 엄연한 유산을 매장시켜 버린 듯한 형국이다.
전시 공간에 배치된 출품작들의 구성이 너무 산만했던 것도 아쉬운 점이다. 이 전시가 다수에 의해 쓰인 일종의 역사책과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 책의 내용엔 일종의 정합성이 있어야 한다. 서로 무관한 작품들이 무차별적으로 각자 배당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잡다한 모습일 수는 있으나 다양한 모습은 결코 아니다. 전시 카탈로그에서 스테파니 무아동과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장치(dispositivo) 개념을 차용하며 이번 전시의 성격을 규정짓는다. 아감벤은 ‘장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장치는 이질적 요소들의 한 네트워크이며, 이것은 각각의 사물을 잠재적으로 포함한다. 그 각각의 사물은 그것이 담론적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어서, 담론일 수도 있고, 건축이나 미학적 철학적 명제일 수도 있다. 하나의 장치는 언제나 구체적인 전략적 기능을 지니며, 언제나 권력과 지식 사이의 관계 속에 기입된다.” 그러나 이번 비엔날레의 전시 공간에서는 비록 ‘이질적 요소들’은 있었으나 그것들 사이의 ‘네트워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듯 전시 안에 정합성을 갖춘 네트워크가 부재할 때, 한 명의 큐레이터가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하는 게임의 규칙은 마치 한 갤러리가 한 작가의 작품을 진열하는 아트페어의 상업적 규칙처럼 기능하게 된다. 특별한 구상을 바탕으로 기획된 이 ‘역사책’은 다수가 쓰긴 했으나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여러 소논문들의 파편적인 모음집에 더 가까워 보인다. 요컨대, 이번 비엔날레는 전시 자체의 플롯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이런 문제는 책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각각의 플레이어가 자기가 맡은 몫의 책임만을 느끼는 데 만족할 때, 하나의 유기적 총체로서의 전시에 대한 책임은 실종되고 만다. 책임이 사라진 역사책은 결국 역사적 사실의 자의적인 재구성이나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기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끄는 작가들이 몇몇 있다.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가 초대한 어스 피셔(Urs Fisher)는 중력을 거스르는 재치 있는 조각들을 선보였다. 푸자 수드(Pooja Sood)가 초대한 쉴파 굽타(Shilpa Gupta)는 기술적 완성도를 갖춘 재치 있는 인터랙티브 비디오 아트를 보여주었고, 트레버 스미스(Trevor Smith)가 초대한 브라이언 중겐(Brian Jungen)은 골프백을 이용해 현대 자본주의적 토템을 만들어냈다. 후 한루(Hou Hanru)가 초대한 오메르 알리 카즈마(Omer Ali Kazma)는 일상적인 도시 생활에 약간의 변화를 가해 생동감을 자아내는 비디오 작업으로 관객을 맞았다.
어쩌면 오히려 이번 비엔날레의 기발한 구상을 가장 잘 구현한 것은 M/M파리가 디자인한 전시 카탈로그가 아닐까 싶다. 카탈로그에는 플레이어들이 작금의 10년을 구축하기 위해 선별한 이미지들과 코멘트한 키워드들, 이들이 작가를 선별한 이유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더불어 7명의 초청된 필자들이 작금의 10년을 위해 작성한 원고도 실려 있다. 어쩌면 전시 자체보다는 이 카탈로그야말로 아직 명명되지 않은 이 10년을 위한 훌륭한 ‘역사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후앙 페레즈 아기레고이코아 <무제> 천에 아크릴릭 레진 각 330X420cm 2007

새로운 아트페어-블루닷아시아

아트페어 열풍이 몰려온다

세계 아트페어의 지도를 펴보자. 스위스의 아트바젤(Art Basel), 독일의 쾰른아트페어(Art Cologne), 영국의 프리즈(Frieze), 스페인의 아르코(ARCO), 프랑스의 피악(FIAC), 파리포토, 미국의 아모리쇼(The Armory), 아트시카고, 마이에미 바젤, 중국의 국제화랑박람회(CIGE), 아트베이징, SH컨템포러리, 일본의 아트페어도쿄…. 세계 유명 아트페어에 이어 두바이 싱가폴 대만 홍콩 등 세계 각국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신생 아트페어까지 지구촌에서 아트페어 열풍은 거세다. 한국 역시 예외 지대가 아니다. 키아프(KIAF), 화랑미술제, 마니프, 카프,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SIPPA), 서울아트페어, 서울오픈아트페어 등 기존 아트페어에 이어 신생 아트페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 아트페어는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구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화랑이 개별 부스를 책임지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가 직접 조직위원회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작가 스스로 개별 부스를 맡는 방법이다. 전자가 탄탄한 자금력과 홍보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규모의 전시와 유통을 목적으로 한 접근법을 띤다면, 후자는 조금은 소극적인 방식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허멍췐 <Party Queen> C-프린트 80X200cm 2007

블루닷 아시아의 차별화된 접근

블루닷 아시아는 기존의 아트페어와는 확실히 다른 접근법을 시도하고 있다. 신진작가를 발굴한다는 측면에서는 일본 무라카미 다카시의 게이사이아트페어(GEISAI)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게이사이아트페어 역시 개별 작가의 부스전 양상을 띠고 있기에 블루닷과는 사뭇 다르다.
“오늘날 미술관은 놀이공원의 즐거움을, 아트페어는 비엔날레의 실험성을, 비엔날레는 아트페어 같은 상품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제 관객들은 하나의 전시장에서 즐거움과 실험성 그리고 상품 쇼핑을 한 번에 즐기려 할 것이다.” 뉴욕 모마(MoMA)의 디렉터 글렌 로리(Glenn D. Lowry)가 한 이 말에 블루닷 아시아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모두 담겨 있다.
블루닷 아시아의 형식은 미술관 전시와 흡사하다. 그러나 실제는 아트페어다. 작품성과 상품성을 모두 겸비한 전혀 새로운 아트페어를 선보이는 것이다. 아트페어의 이름인 ‘파란색 딱지’는 말 그대로 ‘예약 딱지’를 뜻한다. ‘상품성을 예약받은 작품’, ‘장래를 예약받은 작가’, ‘블루칩을 위한 페어’등 다양한 상징을 담고 있는 블루닷 아시아. 말 그대로 신진작가 발굴과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중견작가의 재발견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이는 현재의 인기에 만족하기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찾아나서는 그런 아트페어를 자향한다는 점을 뜻한다.
한편, 블루닷 아시아의 홍보와 마케팅 방식은 전문 화랑 중심의 아트페어 수준을 뛰어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화랑이 아닌 개별 작가가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블루닷 아시아는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기자, 아트딜러, 컬렉터가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를 지향한다. 페어의 국제적인 인지도와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서 작가 선정은 전시 주제별로 각국 현지 딜러, 큐레이터, 컬렉터 등에게 추천받은 작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블루닷 아시아는 작품이 각각의 상품이 아닌 전시의 커다란 문맥 속에서 읽힐 수 있도록 주제별로 섹션을 나눠 커다란 기획전 형식을 취했다.
구체적으로 소개하자면 매드 피겨레이션(Mad Figuration), 판타시아(FantASIA), 아시아의 색(Colors of ASIA), 대만 영상 사진 설치 작가들의 한국 데뷔전시인 일루전 극장(Illusion Theater),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데뷔무대인 산소 존(O2 Zone) 등 5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이를 위해 대만 8명, 중국 10명, 일본 10명, 한국 29명 등 4개국 총 57명의 작가가 300여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우선, 2008 블루닷 아시아에서 눈여겨 볼 만한 해외 작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81년생인 중국의 짱펑은 쾰른아트페어에서 주목을 받은 후, 현재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작가다. 그는 날개가 부러진 팅거벨 혹은 엄지공주를 연상케 하는 소녀를 통해 잔혹하고 섬뜩한 동화 이미지를 화면에 구현한다.
한편, 대만 출신의 허멍췐의 사진 작업 역시 눈길을 끈다. 허멍췐은 백설공주나 비즈니스 우먼 등 작가 자신이 일인 다역을 소화한다. 이렇게 합성된 사진은 현대인의 외로움과 딜레마를 표출한다. 이밖에 2005년 가장 어린 나이로 베니스비엔날레 대만관을 대표했던 궈이천의 싱글채널 비디오와 사진작업은 인간과 환경 사이의 관계가 전복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작가는 안락과 안식을 안겨주는 문명의 이기가 점차 인간을 질식시킬 듯 포위하고 있는 점을 주목했다.
이밖에 고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사치구사 야수다의 사진은 하나의 작품에 3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정교하게 작업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야수다의 사진 역시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작품으로 벌써부터 관심을 얻고 있다. 이렇듯 일본, 대만, 중국 출신 작가들의 작품 하나하나는 제각각 신선함을 발산하며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줄 것이라 확신한다.

사치구사 야수다 <Flying #20> 디지털 사진 124X193.3cm 2006

아시아 현대미술을 선점하라!

새로운 작업으로 주목받는 국내의 신진작가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한 중견작가 역시 눈여겨 볼 만하다. 성인 전단지 광고 속 여성의 이미지를 순백의 저부조로 표현하고 있는 조훈은 성과 색, 입체와 평면의 사이를 오가며 타자로서의 여성의 몸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동서고금, 전통과 현대 사이의 소통의 문제를 지극히 평면적인 커팅 작업으로 재구성한 한기창의 신작은 직선 구조를 벗어난 순환 구조의 역사와 현대 문명의 아이콘이 그려내는 탈위계의 시공간을 탄생시킨다.
또한 오랜 기간 영상과 손톱을 이용한 설치 작업을 선보였던 박정혁은 이번 전시를 통해 회화작가로 거듭났다. 영화와 잡지 광고, 인터넷에 유통되고 있는 몸 이미지들을 하나의 화면에 재구성한 그의 작품은 텍스트화된 몸이 뒤섞여 생산해낸 혼성 내러티브를 담고 있다. 붕대에 감긴 소녀의 모습을 처연할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권경엽은 신체를 이성적 지각과 감정이 균형을 잡아야 하는 중간 지대로 해석한다. 이밖에 주사기로 물감을 짜서 그리는 윤종석의 신작 역시 기대해 볼 만하다. 그는 옷을 접어 총, 별, 독도 등의 형상을 만듦으로써 포장된 이미지의 허울을 폭로한다.
새로운 작업을 가지고 미술시장에 진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블루닷 아시아는 신진 작가와 더불어 새로운 작업을 통해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들의 용기와 노력이 빛을 볼 수 있는 공간이길 기대한다.
세계미술사에 있어서 아시아는 아직도 블루 오션이다. 그 역동성만큼이나 새로운 작가, 새로운 작품의 탄생 속도가 빠르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아시아 현대미술 컬렉션을 시작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알렉산드라 먼로 아시아 미술 담당 수석 큐레이터는 아시아 현대미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 있다.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학계의 연구를 멀찌감치 앞서고 있는 시장의 역동성이 놀랍다. 21세기를 준비하는 미술관이 아시아 현대미술을 놓치고 간다면 아주 큰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이 말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미술시장과 아카데미즘 사이의 간극이 점차 좁혀지고 있다는 이야기로 요약된다. 이제 누가 먼저 선점하는가의 문제를 넘어 누구를 먼저 선점해야 하는가가 아시아 현대미술에 접근하는 새로운 해법이다. 블루닷 아시아는 이런 시각에서 탄생했다.

박석원 조각의 45년, 적+의

’자르고 쌓기’의 지속과 변혁

인터뷰 · 이성희 기자

art 조각가 박석원이 개인전을 열었다. 〈박석원 조각의 45년, 적(積)+(意)〉전(가나아트갤러리, 1. 10~27). 박석원의 조각 인생 45년을 압축하고 결산하는 전시다. 전시 작품 내용도 회고전의 의미를 띠었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작품 중에서 시대별 대표작 45점을 선별하여 작품 양식의 생명줄 같은 유기적인 전시 동선을 만들었다. 박석원은 앵포르멜 양식의 철용접 조각 〈초토(焦土)>로 1968년 국전에서 국회의장상을 받아 화단의 주목을 끌기 시작해 1972년에 국전 최연소 추천작가에 올랐다. 이후 <핸들 시리즈>로 양식적 정착을 시작해 돌, 철, 나무 등을 자르고 쌓는 70~80년대의 <적(積) 시리즈>를 거쳐 90년대부터는 쌓는 작업에 인간의 의식을 담은 <적의(積意) 시리즈>를 꾸준히 발표했다.
박석원은 최근 작가로서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맞고 있다. 2007년 1학기를 마감하면서 모교 홍익대 미대를 정년퇴임했다. 작년의 퇴임과 올해 연초의 개인전 행사에 맞춰 박석원은 지난 일 년 동안 자신의 작품을 총정리하여 전작도록 성격의 화집을 출간했다. 600페이지가 넘는 박석원 화집은 앵포르멜로부터 이어지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전개 속에 한 조각가가 걸어온 조형 세계의 궤적을 한자리에 담은 귀한 자료다.
조각가들 중에는 우직한 성품의 소유자가 많은 것 같다. 조각이 다른 예술 장르보다 유독 재료의 구속이 강해서일까? 조각 행위는 관념적 사변적 ‘지성 놀음’이기 이전에 실제 물질과의 치열한 ‘대결’이다. 돌이나 나무, 브론즈 등 정통 조각을 다루는 경우, 특히 조각가에게는 엄청난 노동력이 요구된다. 당연히 말보다는 신체 행위가 우선시되어야만 한다. 박석원은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물량의 작품을 제작해 왔다. 우직한 성품이 조각가의 길과 잘 맞아떨어진 걸까? 아니면 조각가의 길이 우직한 성품의 사람을 만들어낸 걸까? 박석원은 말이 적다. 지금까지 나온 여러 자료를 뒤져봐도 박석원은 작품 외적인 정보(홍보)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아주 간략한 작업 노트 같은 것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해, 박석원의 작품 이야기를 작가의 육성으로 듣고자 이 인터뷰를 마련했다.

용접기의 불꽃처럼 뜨거운 추상의 열기

Park 경남 진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목탄 드로잉이 너무 재밌어, 자연스럽게 미대 진학을 결심했다. 원래는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는데, 신체검사에서 키가 작아 떨어졌다. 당시엔 사관학교 진학이 최고였는데, 시험도 치르지 못하고 떨어져 아쉬웠다. 그렇지만 그 덕에 예술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홍익대에 제1지망으로 회화과를, 제2지망으로 조각과를 지원했는데, 조각과에 턱걸이로 붙었다. 1년을 다니면 과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회화과로 옮겨야겠다고 마음먹고 별 걱정 없이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당시 조각과에 재직했던 김경승(金景承) 선생을 만나 조각을 전공하게 되었다. 김경승 선생은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분이다. 그분이 수업 시간에 흙에 대한 향기, 흙이 양괴 형성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득력 있게 알려주셨다. 아주 감동적이었다. 흙의 매력을 느끼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확고히 다졌다. 또 김정숙 선생으로부터 1학년 말부터 철 조각을 배우기 시작했다. 4학년 실기실에서 용접 조각을 하고 있으면, 창문 틈으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고, 선배들이 실기실을 비울 때면 용접기를 사용해 보기도 했다. 그때는 철조실 벽에 붙어 있던 곤잘레스의 작품 사진 하나가 유일한 외국 조각 자료였다.
art 한국 미술계에서 철 조각, 이른바 용접 조각이 도입된 것은 1950년대 후반이다. 이 무렵 송영수 박종배 전상범 오종욱 같은 조각가들이 국전을 중심으로 철 조각을 발표했으며, 홍익대에서는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김정숙이 철 조각을 가르쳤다. 1960년대에는 박종배 박석원 같은 조각가들이 철 조각 작품으로 각광을 받았다.
Park 당시 작가들에게 철은 젊음의 상징이자, 정신적 억압의 탈출구였다. 5.16군사혁명을 겪은 우리 세대에게는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표출하기에 철보다 더 적절한 재료는 없었다. 불과 우연성을 이용한 철 조각은 작품 구상의 결과가 곧바로 드러나는 장점이 있다. 불 속에서 철을 꺾고 뒤집는 과정을 실험하면서, 젊은 조각가들은 자유로운 해방감을 만끽했다. 그땐 그것이 진정한 조각이라고 믿었다. 1964년에 제작한 <무제 6429>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미완성인 작품으로 두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저절로 완성된 작품처럼 되었다. 철 조각의 가장 큰 장점은 유연한 조형성이다. 그러한 본질적 특성 때문에 마치 3차원 공간에 드로잉하는 것 같은 느낌을 한껏 살려낼 수 있다. 철 조각에 쉽게 빠졌던 이유 중 하나는 재료를 구하기 용이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학등록금 외에는 집에서 학비 원조가 없었기 때문에 항상 아르바이트로 생활고를 해결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조각 재료를 구입할 여력이 전혀 없었다. 전후세대의 젊은 미술학도들이 겼었던 공통의 어려움이었다. 그런데, 철조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특히 신촌로터리에 있던 하동환자동차 공장이 유명했다. 시발택시 등 조립자동차를 만들던 그곳에 가면 항상 자동차 부품용 철을 얻을 수 있었다. 홍익대 학생이라고 하면 만사 오케이였다. 때로는 얻어온 고물을 그대로 이용해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art 김이순이 〈1950~60년대 한국의 용접조각〉이라는 논고에서 밝히고 있듯이, 한국 용접 조각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철의 물질감을 강조한 독특한 조형적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전후세대들은 50년대에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검과 폐허와 분단 현실을 목도했으며, 60년대에 들어서는 정치적 부정부패와 사회 혼란의 시대를 살아갔다. 이러한 시기에 불규칙한 형태와 거친 물질감을 강조하는 철 조각의 표현 방식은 젊은 미술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박석원은 철 조각 〈초토〉로 1968년 국전에서 국회의장상을 수상했다.( ‘초토’란 황폐화된 흔적이나 불에 탄 흙이라는 의미이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알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알의 형상을 깨는 비정형의 뜨거운 추상이다. 알의 형태 속을 파고들어간 후, 거친 철의 재질감으로 형상이 뜯겨나간 흔적을 남겨 폐허와 상흔의 분위기를 강열하게 전달하고 있다. 알 형태의 윤곽선으로 남아 있는 부분에 날카로운 철 파편들을 용접하여 붙임으로써 조형적으로 역동성을 부여하면서도 예리한 끝마무리로 심리적인 고통을 조형화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Park <초토>는 하나의 형상이 소멸되는 과정에 주목한 작품이다. <초토>는 전쟁에서 얻어진 처절함과 비참한 것이 지나간 뒤의 허무감을 표현한 것이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던 당시 젊은이들의 본질적인 모습이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마땅한 작업 공간이 없어 학교에 찾아가 후배들 틈에서 작품을 제작했다. 정말 순수한 열정으로 1년간 작업해 완성한 작품이다. 그때는 젊은 작가들의 미술계 등용문이란 게 국전밖에 없었다. 그때 국전에서 상을 탄 일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 나는 세탁소 2층에 작은 방 하나를 얻어 최명영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새벽에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국전 국회의장상 수상 취재차 날 찾아온 것이었다. 그때는 일간지 기자들이 꽤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다. 2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고 그저 예술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작업하던 때였으니, 국전 수상은 정말 큰 꿈을 이룬 것 같은 성취감을 주었다. 수상 작품 〈초토〉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었고, 부상으로 해외여행권이 주어졌다. 상금 500만원도 받았다. 그래서 몇 년 후에 반년 동안 유럽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이우환 화백의 도움을 받았고, 파리에선 김창열 선생 댁에서 한 달간 머물며 미술관의 여러 작품을 많이 봤다. 지금도 그때 찍은 사진자료들을 다시 보곤 한다. 그때 해외여행 중에 미술작품을 보고 느낀 충격과 감동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초토> 철 130X130X50cm 1967

핸들 시리즈, 차가운 기하학적 추상

art 전후의 서구 미술이 앵포르멜의 뜨거운 추상에서 기하학인 차가운 추상으로 이행해 갔듯이,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도 같은 양상으로 이어졌다. 1960년 말부터 1970년대 초반은 앵포르멜 경향의 작업들이 다음 단계의 양식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었다. 전반적으로 새로운 실험과 모색의 방향이 실존의 문제에서 비표현적인 개념 작업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박석원의 작업도 철 조각의 뜨거운 비정형 추상에서 차가운 기하학적 추상으로 이행했다.
Park 어느 날 집에서 방문 문고리를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이 문고리가 아주 대단한 조형미를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앞에서 보아도 옆에서 보아도 완벽한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고, 반짝반짝 광(光)이 나는 구릿빛까지…. 거기서 아주 냉정한 매스를 느꼈다. 이때부터 내 작품은 정형의 차가운 추상이 시작된다. 볼륨, 매스, 대칭 등 정형의 완벽함에서 냉정한 조형 형식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핸들 시리즈>으로 나타났다. 1968년 <핸들 106-A>는 손잡이의 모양을 대칭 구조로 만들었고, 가운데는 철 조각에서 보여주었던 소멸의 흔적을 남겨 두었다. 차가운 알루미늄 소재, 대칭 형태, 거기에 마치 흘러내리고 파괴된 듯 보이는 형상이 조화를 이루었다. 이때만 해도 정형이면서도 비정형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일종의 양식적 과도기였던 셈이다. 그 뒤 석고로 만든 <핸들 7126>(1971)이 나온다. 제작 방식에서 인위적인 요소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아주 자연발생적인 작품이다. 철 조각이나 그 밖의 작업들이 큰 덩어리를 비워내고 소멸시켜가는 과정이라면, 이 작품은 반대로 형태를 확산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석고를 물레에 돌려 얇은 층을 겹겹이 쌓아 매스를 만들었다. 먼지가 가라앉는 것까지도 볼륨으로 활용했다. 작품에 나타난 작은 틈이나 미세한 흔적은 모두 자연발생적으로 우연히 생긴 것들이다. 석고를 덧바르고 돌리고 하는 과정, 여기에서 시간과 공간의 생성을 노린 것이다.
art 박석원의 <핸들 시리즈>는 초기에 작품을 바닥에 깔아두는 수평적 구성에서 점차 수직적인 탑(塔) 형상으로 변화한다. 핸들의 원형을 탑처럼 구축적으로 쌓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링(Ring) 형상과 사각 판 형상을 서로 교차해서 쌓기도 한다. 수직적인 탑 형태의 작업은 근자에까지 이어진다. 이 무렵 <핸들 시리즈>는 다양한 조형적 변주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박석원은 파리비엔날레(1966), 상파울로비엔날레(1969), 시드니비엔날레(1973) 등의 국제전에 참여하는가 하면, 한국아방가르드협회(약칭 A.G)에 가담하여 다양한 작품을 시도했다. 1974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Park 1968년부터 1974년까지 A.G 그룹에서 활동하면서 ‘환원과 확산’의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A.G는 잘 알려져 있는 대로 막막한 당대 사회 흐름 속에서 현대미술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결성된 것이다. 국전에서도(조각 분야는 덜했지만) 회화 쪽은 보수적 성향도 짙고 갈등도 많았다. 그래서 우리 그룹은 학교도, 장르도 배제하고 같은 이념을 바라보며 뭉쳤다. 심문섭 서승원 이강소 곽훈 최명영 등과 함께 활동했다. 나중엔 이일 오광수 김인환 등 평론가들도 합류해 우리들의 조형 이념을 비평적으로 뒷받침했다. 참 열정적으로 모여 토론하고 작업했던 시절이다.
첫 개인전은 명동화랑에서 열었다. 그때 개인전 개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각의 경우는 더 심했다. 명동화랑은 당시 꽤 규모 있는 화랑이었다. 명동화랑의 김문호 사장이 현대미술에 대해 뚜렷한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실험적인 전시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등 선배 작가도 명동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나는 이 전시에서 나무 조각을 주로 선보였다. 물방울이 녹아내린 형태를 음과 양, 요철(凹凸)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게 <적-변이, 관계> 시리즈다. 70년대 초반 핸들 작업 이후 나는 나무의 물리적 속성에 빠져들어 한참 동안 나무을 다루었다. 숨이 끊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를 조각칼로 긁고 깎을 때의 사각사각한 소리와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었던 것 같다. 그땐 나무의 물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숙성된 마른 나무를 사용하면 조각하기가 어려워 마르지 않은 나무를 사용한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작품이 다 갈라지고 썩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작업했던 작품들은 지금 거의 남아 있지 않다.
art 박석원은 1980년대 도쿄 무라마츠(松村) 화랑에서 첫 해외 개인전을 열었다. 20대부터 각종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는 등 국제무대 진출이 활발했던 그로서는 매우 의미있는 전시로 보여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도쿄 개인전 이후 박석원은 지금까지 외국에서 개인전을 한 번도 연 적이 없다. 박석원은 중년 이후 특히 국제화 열기가 고조되었던 90년대 이후에도 그 흔한 해외나들이 실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 조각을 대표하는 작가의 이력으로는 아쉬움이 많다.
Park 무라마츠화랑에서 개인전을 할 때, 어렵사리 작품을 운반해서 일본까지 갔는데 전시 공간이 비좁아 작품의 절반도 전시하지 못했다. 다시 작품을 한국으로 운송하는 과정도 너무 복잡했다. 해외 전시를 한 번 해보니 작품 외적인 일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해외 개인전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었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라 해외 전시 같은 일에 익숙하지 않았고, 결국 국제 진출 문제도 차일피일 미루다 해외 전시는 아예 생각도 않게 되었다.
art 박석원은 꽤 늦은 나이에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학교를 세 곳이나 옮겼다. 박석원의 또 하나의 이력 중에 한국미협 이사장을 꼽을 수 있다.
Park 사실 작업하는 데 경제적 어려움만 없었다면 교직에 몸담지 않았을 게다. 작업에만 매달리고 있던 중 전북대에서 초빙돼서 몇 년간 일했다. 그러던 중 중앙대에 있는 심문섭 선생이 자리가 났다며 서울로 불러들였다. 심 선생이 중앙대 전임이 될 때 장난처럼 언젠가 함께 일하자고 약속했었다. 결국 그렇게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중앙대에서는 심문섭 선생과 여러 동료들과 함께 꽤나 열정적으로 활기 있는 학풍을 만들어갔다. 그때 참 즐거웠는데, 또 홍익대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모교로 옮기게 됐다.
미협이사장 출마는 주위 선후배들의 지지가 컸다. 그때는 어떤 권력욕보다는 부패해 가는 미술계와 미술협회를 새로 일으켜 보겠다는 의지에 불탔다. 잠시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후회되는 일이다. 이사장 일로 작업이 거의 중단되었다. 내 작업을 항상 지켜보던 평론가나 큐레이터는 한창 작업이 흥미 있게 진행되던 시기에 3년 동안 미협이사장직을 맡아 참 안타까웠다고 번번이 지적한다. 당시 미협이사장의 일은 주로 테이프 커팅이었고, 말주변 없는 나는 행사장에서 몇 마디 하는 게 전부였다. 이제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교직에서도 물러났으니 아무 제약 없이 작업에 열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은 중국, 미국 등을 여행하며 작업 재료를 찾고, 여러 가지 불편함 때문에 미뤄왔던 해외 전시도 더 적극적으로 준비할 계획이다.

토탈미술관에서 1933년에 열린 제10회 개인전 전시 광경

자르고 분절하기, 그리고 접합

art 1970년대 말부터 박석원의 작품은 ‘분절의 시대’를 맞는다. 나무의 오목과 볼록, 홀과 흘러내림의 표정, 이음새 등 다양한 실험을 거친 이후 대리석, 나무를 ‘분절’, 절단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작업들이 물질의 외형에 대한 탐구였다면 1970년대 말부터는 물질 내면으로의 탐구가 시작된다. 물질의 내면을 절단하고 그 절단된 형태를 다시 집적(혹은 퍼즐게임처럼 조립)하는 것이 이 시기 작품의 방법론이다. 자유로운 절단에서 일어나는 구조적 변용을 통해 일상적이고 본능적인 관심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면서 ‘자연’ 본래의 구조에 접근했다. ‘분절의 시대’는 80년대 말까지 이어진다.
Park 나는 사물의 본성과 내면이 지닌 구조를 나의 눈과 마음의 법칙으로 포착하고자 했다. 절단은 사물의 됨됨이를 가장 완벽하고도 순수하게 다루기 위한 것이었다. 돌처럼 완벽한 것은 없다. 돌은 거짓을 말하지 않고 가장 강하다는 의미에서 매력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 무덤덤하며 무표정한 돌 작업이 좋다. 내 성격과 아주 비슷한 것 같다. 작업의 방식은 큰 돌 하나를 분절해서 다시 쌓아놓거나, 큰 판을 지그재그로 자르고 조합해 하나로 만드는가 하면, 내부로 흠집을 내고, 일종의 문이나 탑 형태로 세우기도 했다. 절단과 쌓음이라는 재구성 과정을 통해 원래 형태를 회복하고 싶었다.
<적 8228>(1982)은 나무를 접합해 쌓아놓은 형태를 무쇠로 캐스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캐스팅 과정에서 발생한 우연한 흔적 자체를 형태로 받아들인 작품이다. 반면 <적 8558>(1985)은 철을 접합해 가스를 분사, 강한 열로 직접 상처를 냈다. 형상 자체는 미니멀적이지만 잔상은 이전의 우연적 요소를 받아들여 제작했다. 1983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파이프 형태의 작업들도 빼놓을 수 없다. 용접에서 생긴 흘러내림, 자국, 빈 공간 등을 그대로 살렸다. 회화로 친다면 추상표현주의의 속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1984년에 주로 제작한 나무 작업의 형식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하나로 된 나무를 분절하여 다시 접합하는 형식이다. 접합 과정에서 틈이 생기고 서로 엇갈린다. 특히 통나무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여 만든 <적 8567>(1984)은 나무의 위, 아래를 자르고 그것을 직사각형의 단위로 분절하고 원래의 형태로 재조립하는 과정이었다. 사람들은 “왜 쓸데없이 나무를 잘라 다시 같은 자리에 찾아 조합하는 무모한 짓을 하냐?”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조형을 이해하는 방식이고 성찰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경향은 화강석 작업으로 그대로 옮겨가 돌이 가진 물성을 극대화해 물리적 시간까지 함축하고자 했다.
art 박석원의 작품을 두고 흔히들 미니멀 조각이라는 평가를 붙인다. 형식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박석원의 작품은 미니멀 조각으로 볼 수만은 없다. 서구에서 말하는 미니멀리즘은 단위의 최소화와 물성의 표현에 치중한 반면, 박석원의 작업은 한국 전통의 형태와 미감의 표현이 녹아 있다. 말하자면 박석원의 작업에는 인간적 체취, 토착 문화의 흔적 등 내용미가 함께 가미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니멀적인 형태는 박석원 작품에 수반하는 방법적 요소가 될지언정 절대적 가치는 아니다.
Park 글쎄, 나도 내 작품을 두고 미니멀이라는 표현을 적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처음에 돌의 물질적 속성을 파악하기 위해 절단과 조합을 하다가, 이후에는 자연의 돌을 그대로 살려 문이나 탑 같은 형태를 만들었다. 한국적인 미감과 정서가 반영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서 최근까지는 다시 기하학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적의 9909>(1998)는 돌을 구부려서 그 안쪽과 바깥의 살을 동시에 보여준다. 안을 비워내 틈새가 보이도록 했다. <적의>(2002)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앞에서 보면 사각형이지만 옆에서 보면 U자형이다. 마천석을 두드려 생긴 표면의 흔적은 1960년대의 철 용접 과정에서 흘러내리고 녹아 생긴 흔적과 비슷한 뉘앙스다.

작가 박석원

다른 물질의 결합, 확산

art 9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적의 시리즈>는 나누고 쌓고 조합하는 재구성 과정에 인간적 체취를 부가한 작업들이다. 자르고 쌓는 방법론에다 인간의 문화, 역사와 관련된 요인들을 불러들여 구조를 연성화하려는 ‘결합’의 논리를 덧대었다.
Park 1990대 초반부터는 형태들 간의 틈새를 메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고목과 석고와 철을 이용한 <적의 9315>(1992)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예전에는 공간의 틈새를 보여줬다면 이제는 그 틈새 공간을 다시 메우는 작업이다. 철, 나무, 석고 등 서로 다른 성격의 세 가지 재료가 만나 반응을 하면서 응집한다. 나는 이런 작품들에서 물질간의 밀고 당김을 실험하는 일에 큰 흥미를 느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한옥 처마의 석가레나 담장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마치 평상과도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적의 9407>(1994)도 같은 개념이 깔려 있다. 재료만 다를 뿐이다. 네모난 마천석을 네 등분해서 공간을 확장시키고 그 사이에 시멘트를 채워서 결합했다.
art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존 엘더필드는 20세기 미술의 혁신가 피카소와 마티스를 작가 유형의 대표적인 이항대립항으로 설정하고, 마티스를 양식적 ‘지속형’의 작가로, 피카소를 양식적 ‘변혁형’의 작가로 구분한 바 있다. 미술작품의 양식을 지속과 변혁으로 무자르듯이 재단할 수는 없지만, 박석원의 경우는 어떤 유형일까? 박석원의 조각 45년의 길은 일견 양식적 변화가 극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 저변을 관통하는 조형 정신은 일관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 양식적 일관성을 천착하는 과정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그 과정은 초기 작품에서 최근작까지 씨줄과 날줄의 촘촘한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속과 변혁의 변증. 바로 이 지점이 박석원 예술의 매력이요, 또한 그가 한국 조각계에서 평가 받는(받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Park 나는 한 가지 컨셉트, 한 가지 재료보다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같이 진행하며, 내 작품끼리 서로 엇물려 영향을 주는 과정을 즐긴다. 소재에 따라 이미지의 역할이 각각 다르다. 그런 차이에서 오는 감각을 느끼고, 전혀 색다른 맛을 느끼길 즐긴다. 그래서 내 작업을 보면 시대를 초월해 거의 다 중복되고 엇갈려 있다. 그러나 또 다시 종합해 보면 작품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전시장에 놓여 있는 작품들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씩 다르다. 이게 내 작품이 시대를 넘나드는 방식인 것이다. 통시적 공시적 맥락에서 내 작품을 봐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미술 이론을 잘 모른다. 작가란 논리적인 당위성보다는 내 눈 앞에 놓인 물질과 조형 그것만 생각하게 된다. 작품 자체 그리고 작품 내면으로 시선을 고정하면, 정반합의 원리에서 도출되는 끊임없는 조형적 가능성이 도출된다. 실험 속에서 늘 새로운 것이 창조된다. 이 평범한 진리를 나는 오늘도 쫓고 있다.

2008 미리보는 주요전시, 올해의 미술계 기상도

비엔날레와 아트페어, 다양한 미술행사 ‘홍수’

올해는 광주, 부산 양대 비엔날레가 열리는 ‘짝수의 해’다. 서울에서는 2008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가 열린다. 덕분에 올해 9월은 풍성하다. 특정 주제가 없는 파격적인 형식으로 이슈가 된 광주비엔날레(전시총감독:오쿠이 엔위저)(9. 5~11. 9)의 이번 제목은 <연례보고(Anual Report)>. 2007~8년 사이 열린 전시를 소개하는 ‘길 위에서’, 젊은 큐레이터들의 실험적인 전시기획안을 위한 무대인 ‘제안’, 개별 작가 및 프로젝트그룹이 참여하는 ‘끼워넣기’ 이상 세 개의 섹션으로 진행된다. 부산비엔날레(운영위원장:이두식)(9. 6~11. 15)는 ‘낭비’라는 이색적 주제를 발표했다. 이는 ‘무’ 주제인 광주와 상반되어 흥미롭다. 본전시인 현대미술전은 <낭비 예술 문화>, 바다미술제는 <비시간성의 항해>, 부산조각프로젝트는 <전위적 정원>이라는 제목으로 각기 부산시립미술관을 비롯한 광안리 해수욕장 일원, APEC나루공원 등에서 개최된다.
2000년에 시작되어 올해 5회 째를 맞는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2008미디어시티_서울, 전시총감독:박일호)(9. 12~11. 5)는 <전환과 확장>이라는 주제 하에, 빛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는 ‘빛의 장’, 미술작품 소통 방식의 변화를 제기하는 ‘소통의 장’, 시간성을 추구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시간의 장’ 3개의 구성으로 진행된다. 지난 2006년 시작된 격년제 행사 대구사진비엔날레도 올해 제2회 행사를 개최한다. 10월 28일부터 3주간, 대구 EXCO를 중심으로 대구문화예술회관, 봉산문화회관 등 대구 전역에서 열릴 이번 행사는 전시감독으로 사진가 구본창을 선임하고 준비에 한창이다.
한편, 이제 명실공히 한국의 주요 미술행사로 자리 잡은 아트페어들도 펼쳐진다. 올해는 부산으로 장소를 옮긴 2008화랑미술제(3. 6~10 부산 BEXCO), 아시아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HZone 기획의 블루닷아시아(3. 5~11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등이 봄철 미술시장의 핫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어 가을에는 스위스를 올해의 주빈국으로 선정한 2008KIAF(9. 19~23 코엑스)와 2008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10. 1~13) 등이 연이어 개최한다. 실험적인 다원예술 축제 헤이리판페스티벌(9. 20~10. 12)은 올해 특별히 기획 아이디어 공모로 미술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사간동의 국제 미술축제로 신고식을 알린 <플랫폼 서울> 역시 올해 10월 ‘예술과 연극(Art&Theatre)’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행사를 개최한다.

멈추지 않는 블록버스터급 전시 ‘태풍’

마르셀 뒤샹의 서거 4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는 11월 <마르셀 뒤샹>전이 열린다는 소식과 함께, 소장품인 뒤샹의 <여행가방>의 진품 여부가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 전 3월에 열릴,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아네트 메사저>의 대규모 회고전 역시 국립현대미술관이 준비하는 올해의 야심작. 뒤샹과 메사저 모두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만큼 이에 거는 기대도 만만치 않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건축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전시도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프랭크 게리 뮤지엄건축 드로잉>(9. 30~11. 17)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블록버스터급 전시, 특히 유독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19세기 유럽미술의 거장들이 연례행사처럼 매년 관객을 찾아온다. 3월 16일까지 <반 고흐>전을 선보이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은 여름방학까지 서양 근대미술 전시로 스케줄이 꽉 차 있다. 로댕, 마이욜과 더불어 서양 근대조각가 3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밀 앙투완 부르델의 <활 쏘는 헤라클레스, 거장 부르델>전(2. 29~6. 8), 그리고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우아한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전(5. 7~8. 24)을 연다. 해외 유수 소장품을 소개하는 전시로는 덕수궁미술관의 <카르티에 소장품>전(4. 22~7. 13),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전인 <프랑스 국립 조르주퐁피두센터 한국전>(11. 22~2009. 3. 22)이 열려 한국 관람객들의 시각적 안목을 넓혀 줄 전망이다.

Left 이우환 <선에서> 캔버스에 유채 184X259cm 1974 - Right 박서보 <묘법 No.050613> 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 130X162cm 2005

국경 없는 미술계, 활발한 교류전 여전히 ‘맑음’

산업, 경제 교류란 옛말! 21세기 ‘문화와 예술’ 교류는 세계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일등공신이다. 지난 해 국제교류 전시를 활발히 진행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에도 꾸준히 해외에 한국미술을 소개한다. 10월 시작해 일본 5개 미술관을 순회하는 <민중의 고동:한국미술의 리얼리즘 1945-2005>전은 60여명 한국 작가의 리얼리즘 작품 110여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로, 2월 미야코노죠 시립미술관, 5월 니시노미야시 오오타니기념미술관, 7월 후츄시미술관으로 이어진다. 또한 올해 말 스페인 현대미술의 메카 레이나소피아국립미술관과의 교류전을 추진 중이라고 하니, 각국의 우수한 문화적 자원을 소개하는 기회가 계속될 전망이다.
국제교류 전시가 꼭 국공립 미술관에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토탈미술관은 2007년 덴마크 비디오아트 페스티벌 <Subtle Whispering>에 이어, 본격적인 덴마크 현대미술 소개전 <Love Letters>를 개최한다. 이는 덴마크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한 후, 2009년에는 반대로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을 덴마크에 소개하는 교류 프로그램이다. 대안공간루프 역시 오는 4월, 한국 젊은 작가 10여명의 회화 작품을 엄선한 <Into it! Neo Painting>전(4. 18~5. 2)을 한국과 싱가폴에서 각각 선보인다. 지난 1월 영국 런던에 새롭게 문을 연 한국문화원은 개관전 <굿모닝 Mr. 백남준>(2. 1~3. 7)을 개최한 데 이어, 6월에는 한국의 풍경을 회화, 영상, 사진, 설치 등 다양한 장르로 풀어나가는 16명의 작가들로 구성된 <풍경의 재건>(6. 24~7. 25)을 연다.
국립현대미술관 주최로 지난 해 칠레 산티아고미술관에서 개최된 <한국 현대미술 중남미 순회_박하사탕>전이 오는 5월에는 아르헨티나 국립미술관에서 소개된다. 이 전시는 2005년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칠레 현대미술 : 다른 세계로부터>전에 이어 개최된 것으로, 그동안 한국과 중남미 간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던 점을 보완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러한 교류전을 여파로 각 나라의 문이 활짝 열린 듯, 올해는 중남미 미술 소식이 여기저기 들린다. 오는 7월 덕수궁미술관은 <20세기 라틴 미술>전을 준비한다. 20세기 전반기의 중남미 미술을 5개의 소주제로 분류, 전시하여 중남미 미술의 역사와 흐름을 파악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라틴’하면 바로 떠오르는 정열적인 음악들! 로댕갤러리에서는 6월 <남미 사운드아트>전(6. 20~8. 31)이 열린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복합적인 음악 전통을 잇는 남미의 대표작가 4인의 사운드아트 작품이 소개된다. 최근 국내에서도 인도 작가 개인전이 곳곳에서 마련되는 가운데,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도미술을 만나 볼 기회도 있다. 인도의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인도 현대미술:일상에서 상상까지>전(2. 14~4. 25)이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린다.

다양한 테마의 기획전 ‘순풍’

블록버스터, 굵직한 해외미술 전시가 아니어도 알찬 테마로 중무장한 기획전들이 관람객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우선 각 시립미술관의 ‘지역 살펴보기’ 기획전이 눈에 띈다. 2008하이서울페스티벌 시기에 맞춰, 한강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서울의 지역성에 초점을 맞춘 예술가들의 작품과 자료들을 전시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배를 타고 가다가’ 한강르네상스 서울>(3. 1~5. 13), 부산시립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바깥미술 프로젝트로 시립미술관역 안팎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공미술프로젝트 <미술관 옆 미술관역>(3. 14~)이 열린다. 부산시립미술관은 같은 기념전의 일환으로 부산지역 대표 작가들을 각 장르별로 엄선하여 소개하는 <Artist in Busan>(3. 14~5. 12), 부산의 지역성 및 장소성, 역사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선보일 <Art in Busan>(5. 23~7. 23)이 진행된다.
미술과 타 문화 장르간의 혼성과 접목을 제시하는 시도들, 그 중에서도 미술과 만화의 관계를 살펴보는 전시는 어떨까. <2008크로스컬처_만화와 미술>(4. 30~5. 29,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이어 7월에는 <미술과 애니메이션, 그 경계에서>(7. 9~8. 17, 서울시립미술관)과 <고우영:숨은 그림 찾기>전(아르코미술관)이 열려, 어린이 관객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만화 전시가 될 전망이다. 언제부터인가 열풍이 불고 있는 젊은 작가 소개 연례기획전들도 올해의 전시를 준비 중이다. 연례 형식의 국내 대표적인 젊은 작가전인 <젊은 모색2008>(국립현대미술관)과 <SeMA2008>(서울시립미술관)이 올해도 열리며, 경남도립미술관은 <21세기 미술비전>을 준비한다. 4월에는 2~3인의 신진 작가를 발굴, 소개하는 쌈지스페이스의 연례기획전 <이머징>전이 열리며, 8월에는 한·중·일 젊은 작가들로 꾸려지는 <헤이리 아시아 젊은 작가 프로젝트>가 개최된다.
아쉽게도 <2008아트스펙트럼> <Mirage-Image>전과 국제적 규모의 현대미술기획전을 준비했던 삼성미술관 리움은 현재 전시 일정을 미룬 상태다. 대신 로댕갤러리가 마련한 올해 기획전은 <심리적 트라우마>(12. 19~2009. 2월 중순). 사회, 정치, 문화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심리 상태를 조망하고자 기획되었다. 그 밖에 토탈미술관은 7월 ‘장애’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건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국제전 <thisAbility vs. Disability>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세계 속의 한국현대미술>전(10. 31~11. 30)은 그 두 번째 기획으로 작년 ‘뉴욕’에 이어 올해는 ‘파리’의 작가들을 선보인다.

해외로 한국으로, 오고 가는 ‘작가 기류’

오랜만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여는 김아타(3. 21~5. 25 로댕갤러리)를 비롯하여, 국제갤러리의 <조덕현 개인전>(5월)과 <이기봉 개인전>(8월), 박여숙화랑의 <권부문 개인전>(5월), 그리고 아뜰리에에르메스의 <박찬경 개인전>(6. 6~8. 5) 등 인기 작가들의 개인전 소식이 올해 미술계에 힘을 실어주는 가운데,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리며 ‘문화 대사’ 역할을 톡톡히 맡고 있는 한국 작가들도 있다.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원로 작가들부터 젊은 작가들까지, 다양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1월 25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미술관에서 서세옥 화백의 개인전 <구름이 흩어지는 곳:서세옥의 수묵화>(1. 25~4. 20)이 개막했다. 휴스턴미술관은 지난 해 12월 한국관을 새로 개관하고, 연이어 이번 단독 전시를 여는 것으로 한국미술 알리기에 일조하고 있다. 최근 뉴욕 페이스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된 이우환 화백은 9월 페이스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그 전 4월에는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1887년 건립된 벨기에 최대 미술관인 왕립미술관은 유럽 고전 및 근대 작품 컬렉션으로 유명한 만큼 그 곳에서 열리는 동양의 작가 개인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박서보 화백은 4월 뉴욕과 베이징에서 각각 대규모 전시를 연다. 작년 개관한 뉴욕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전시를 통하여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에도 한국미술의 중추인 그의 작품이 소개될 예정이다. 또한 같은 달 베이징 국무전람대청에서 열리는 박화백의 개인전 또한 주목할 만하다. 작년 4월 파리 팔레 루아얄에서 설치 작품을 선보인 조각가 심문섭은 오는 6월 니스 아시아박물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중견작가 이기봉은 3월 독일 베를린 세계문화관 그룹전에 참여하며, 이 전시는 2008년 말에 영국 월솔의 뉴아트갤러리로 순회할 예정이다.
젊은 작가들의 행군도 두드러진다. 2월 김홍석의 런던 헤이워드갤러리 그룹전, 독일에서 활동하는 설치작가 양혜규의 2월 런던 큐빗갤러리, 6월 LA 레드캣갤러리 개인전 소식도 있다. <핑크, 블루 프로젝트>로 유명한 작가 윤정미는 2월, 스페인 라 까자 블랑카 전시와 3월의 뉴욕 젠킨스존슨갤러리 개인전을 앞두고 있으며, 비디오작가 박준범은 독일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을 헤르만&바그너갤러리(2. 7~3. 22)에서 연다. 2007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인 정연두는 3월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Modern Mondays’라는 특별 프로그램에서 비디오 작품을 상영하고, 9월에는 모스크바아트센터 그룹전 <만화경 속 세상>에 참가한다. 전준호와 노순택은 오는 3월 각각 독일 비스바덴쿤스트페어라인과 슈투트가르트페어라인에서의 개인전을 열고, 2007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인 이형구는 3월 아라리오뉴욕(3. 6~4. 5)의 개인전에 이어 5월에는 바젤 자연사박물관(5. 29~)에서 전시를 열 계획이다. 그 밖에 이동욱 개인전(6. 1~8. 20)이 취리히 아반타이컨템포러리에서 열리며, 전경의 개인전이 9월 뉴욕 티나킴갤러리에서 열린다.
그렇다면 반대로 한국에는 어떤 해외 작가들이 올까? 11월 아르코미술관과 인사미술공간이 기획한 <욘 복 개인전>부터 주목해 보자. 90년대 중반 이후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 필름 등 다양한 장르로 전 세계 주요 비엔날레를 섭렵한 독일 출신 스타작가 욘 복을 소개하는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이다. 3월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줄리앙 슈나벨>전(3. 20~4. 13)은 슈나벨의 아시아 회고전의 일환으로, 대표작 30여점이 소개된다. 박여숙화랑은 4월 <크리스토&잔느 클로드>(4. 2~22)를 시작으로, 2007뮌스터조각프로젝트 참여 작가인 한스 피터펠드만(8월), 짐 다인(9월), 앨런 멕컬럼(10월), 마지막으로 11월에 토니 아우슬러의 개인전을 마련하여 해외 작가를 소개한다. 가나아트센터는 <조엘 샤피로>전(2. 1~24)으로 올해 첫 번째 해외 작가 전시를 선보이며, 이후 5월에는 <로베르 꽁바스>전을 개최한다.

탕쯔강 <중국동화:담결석> 캔버스에 유채 200X220cm 2007

베이징올림픽의 해, 중국! 중국!

중국 작가들의 러쉬에 익숙해진 지 오래, 특히 올해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 맞추어 베이징 주재 한국 갤러리들도 선별된 전시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세계의 대축제를 맞이하여, 이들 갤러리의 전시 소식도 간략히 전한다. 아라리오베이징은 러시아 그룹 AES+F의 전시(3. 8~4. 20)를 연다. 9월에 열릴 수보드 굽타(9. 6~11. 2)의 개인전도 아라리오베이징의 기대작. 수보드 굽타는 지난 《아트리뷰》의 ‘세계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100인’ 중 85위에 오른 인도 작가다. 표베이징은 <박성태 개인전>(4. 5~5. 4)과 <프란체스카 마티>전(9. 27~11. 11)을 차례로 연다. 아트싸이드베이징은 2월 <윤종석 개인전>, 4월 <한효석 개인전> 그리고 5월에는 <히로시 고바야시 개인전>으로 한 해 전시를 준비한다.
반대로 한국에 오는 중국작가들은 누가 있을까. 갤러리현대는 뉴욕 미술시장에서 사랑받는 작가 <탕쯔강의 개인전>(2. 20~3. 16)으로 중국작가 전시의 서막을 연다. 표갤러리는 왕커쥐(3. 14~4. 6), 리우런지에(9. 3~25)의 전시를 개최한다. 갤러리아트싸이드의 중국작가 전시로는 3월 런 샤오린, 9월 마오 슈휘, 11월 차오 넝츠전이 있다. 한·중·일 미술 전문 갤러리인 A스토리는 3월 리슈리에의 전시와 10월 후샹동의 전시를 선보이는 등, 올 한해도 국내에 중국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소개될 전망이다.

2008 February Special - History of art in culture

기쁘다. art가 통권 100호의 고지를 훌쩍 뛰어넘어 ‘100+1’호의 새로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지난 달 통권 100호를 기념하며 한국미술의 세대 교체를 이끌어나가는 젊은 파워 100인을 선정한 바 있다. 이번 호에는 1999년 10월, 벅찬 꿈을 안고 출발한 art 창간호부터 100호까지의 역사를 ‘하이라이트’로 일목요연하게 총정리했다. 100개의 이슈로 압축해 본 100권의 art. 그 안에는 art의 역사뿐 아니라 한국과 세계 당대미술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00호 대장정의 여정을 함께 걸어 왔던 옛 동지 전직 art 에디터들이 애정 깃든 ‘편지’를 친정에 보내왔다. ‘어제’의 art에 몸담았던 시간과 경험을 딛고 ‘오늘’을 사는 그들로부터 art와 한국 미술저널리즘의 ‘내일’을 듣는 자리다. 또한 현재 art를 만들어 가는 스태프들의 라이프스타일도 덧붙인다. 기획, 취재, 편집 등 제작 전 과정의 메커니즘, 쫓기고 쫓기며 긴박하게 돌아가는 마감전쟁의 ‘백스테이지’를 공개한다.

창간준비호 표지

창간 전야, 새 잡지의 꿈을 싣고
art 창간의 주역들은 중앙일보사 발행 《월간미술》의 스태프들이었다. 이규일 발행인, 김복기 편집인, 김경아 수석기자, 박성규 디자인 이사, 엄기홍 디자인 부장, 진인식 영업부장, 김덕수 관리국장 등 오랜 관록의 출판전문가들이 미술잡지의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해 결집했다. 분해 출력, 인쇄 제본 등 협력 업무 시스템 또한 《중앙일보》 시절의 업체를 그대로 이어갔다. 1999년 5월 1일부터 창간 준비에 들어갔다. 제작과 마케팅을 일원화하는 체계적인 전략 전술로 창간 작업은 속속 진행되었다. 편지, 엽서, 리플렛, 미술인 인명카드, 정기구독 카드, 포스터, 플래카드, 아트상품 등 총 10여종의 홍보물을 제작, 미술인들과 독자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창간 캐치프레이즈는 ‘새 시대의 눈, 살아있는 미술저널 art’. art는 엄숙하고 패기 있게 선언했다. '이대론 안됩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이제부터 art입니다.' art는 한국 미술잡지 역사상 처음으로 창간준비호를 발간했다. 50페이지 분량의 호화 준비호에는 art의 잡지 이념은 물론이고 특종 기사를 게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준비호가 ‘리허설’의 효과를 뛰어넘어 ‘대박’을 쳤다. 준비호의 하이라이트는 소정 변관식의 <금강산 옥류천> 진위를 묻는 기사. 도하 신문에서 이 기사를 앞다투어 인용 보도함으로써 미술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소장학자 최광진이 이태호, 유홍준 교수의 미술사적 관점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용기 있는 논고를 집필, 학계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큰 박수를 받았다. 창간 준비 중에 편집 기획의 기본 뼈대가 잡혔다. 이슈와 담론을 만들어내는 심도 있는 특집 기획, 엄선된 작가 조명 EMERGING ARTIST와 YOUNG ARTIST, 냉엄한 비평의 잣대를 들이대는 책임 전시비평 FOCUS와 토론비평 ROUND TABLE, 별책부록 PREVIEW. 창간 전야, 이미 art가 한국 미술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독자에게 다가서는 art

art는 지면을 통한 독자와의 만남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그동안 캠페인, 여행, 아트상품 제작, 심포지엄 개최 등 다양한 루트로 독자와의 긴밀한 만남을 시도해 왔다. art는 2007년 〈Art Donation Project〉 캠페인을 벌여 한 해 동안 인도대사관, 이탈리아대사관, MBC드라마국, 아름다운 가게 등에 우리 책을 기증했다. 앞으로 좀더 적극적인 기부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art를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책보내기 운동, 공공기관에 작가들의 작품 기증하기 등 돈이 아닌 각자의 ‘보물’을 사회에 환원하는 모범 사례를 만들어낼 것이다. 또한 art의 여행 사업 ‘가자아트투어’도 있다. 2006년 8월 대전시립미술관과 아주미술관 투어를 시작으로 서울, 경기, 광주, 부산, 유럽, 일본, 중국 등지로 총 13회의 투어를 진행했다. 창간 즈음에는 art의 홍보 활동과 더불어 독자를 상대로 한 다양한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중국 작가 왕두, 연재 작가 이석조, 가수이자 화가 조영남 등 작가와의 만남은 물론, 각종 슬라이드쇼와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또한 미술잡지 업계 최초로 멤버십 제도를 운영했다. 정기구독에게는 멤버십 카드가 발행됐다. 특전으로는 특별 선물 증정, art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우선 초대, 아트선재센터와 환기미술관 무료 입장 등. 또한 매달 표지 작가가 art와 관련된 이미지 작품을 제작해, 아트 상품으로 보급했다. 노상균의 시퀀스 드로잉 〈The end of art〉를 시작으로, 장영혜의 CD 〈통일〉, 서도호와 도윤희의 판화 〈나/우리는 누구인가〉와 〈Being Floating〉등이 있었다.

“새로운 얼굴과 비전을 찾습니다” art 주최 공모전 New Face, New Vision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지명 공모전 New Face와 젊은 평론가를 등단시키는 논문 공모 New Vision은 이제 art의 대표 행사로, 또한 한국 미술계의 주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요즘은 신진 작가 공모전이 흔해졌지만, 처음 시작하던 2000년만 하더라도 작가를 발굴해 작품 발표 및 평가의 마당을 제공하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2000년 New Face 작가는 임정규 강소영 함진 김현수 강은수 윤석만 김영훈 심정은 박상호 김수진 윤인정 황정희 김수진 박성환, 2002년에는 구성연 권오상 권정준 김남훈 김연용 김인숙 천성명 조지은 임자혁 최기창 최우람 함연주, 2004년에는 김상우 노순택 옥정호 노재운 박주연 박진아 정연희 박주욱 이중근 이동욱 박형진 정정주. 2002년과 2004년에는 각각 장흥 토탈미술관과 덕원갤러리에서 선정작가 전시를 열기도 했다. 2006년에는 수를 확 줄여 원동화 박보나 김보민 김지은을 선정했다. 2008년 New Face의 주인공 누구일까? 아마 해외작가가 끼어 있지 않을까 싶다. art는 변화하는 아트씬에서 New Face의 새로운 모습을 모색 중이다. 공모 대상을 아시아로 넓혀 Asian New Face를 찾아내고자 한다. 또한 신문사의 ‘신춘문예’말고는 미술평론가의 경우 딱히 등단 제도가 없는 가운데, art는 글을 기고할 지면을 찾고 있는 신진 평론가들을 미술저널리즘의 한 복판으로 끌어내 새로운 필자로 육성했다. 2002년 New Vision에는 반이정과 이안, 2004년에는 박둥근과 곽준영, 2006년에는 김정복의 논문을 선정했다. 4회의 New Face, 3회의 New Vision의 개최로 art는 앞으로 펼쳐질 한국미술의 흐름을 미리 예견할 수 있었고, 선정된 작가와 이론가는 미술 현장 ‘데뷔’의 초석을 다지며, 현재 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필화 사건의 전말

언론 매체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크고 작은 필화(筆禍) 사건들이 일어난다. 필화란 ‘글이 말썽이 되어 화를 입는 일’. 필화 사건은 편집자, 필자, 독자, 취재원, 공공기관이나 단체 등이 서로 엇맞물리며 때로는 소모적인 감정 싸움으로, 때로는 건전한 논쟁으로, 때로는 살벌한 법적 투쟁으로까지 번진다. art의 역사에서는 필화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싸움 뒤에 더 친해지듯’ 쌍방간에 상처없는 전쟁으로 끝난 사건이 많다. 류병학은 art 편집 전반에 걸쳐 독설을 퍼붓는 매서운 독자이자 art에겐 딴지를 거는 귀찮은 ‘악동’이었다. 급기야 김경아 편집장이 에디토리얼 <류병학 선생, 초점부터 맞추시죠> (2000년 9월호)로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논쟁은 미술잡지 3사의 색깔 논쟁으로 번졌다. art와 미술세계, 월간미술 홈페이지에는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동종타사의 매체를 비교 논의하는 글이 활발하게 올라 매체 비평의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류병학은 이후 온라인을 통해 매월 art의 내용을 꼼꼼히 비평하는 최고의 옴부즈맨 역할을 해주는 넓은 아량을 보여주었다. 한편 2003년 3월호에 실린 강수미의 전시 리뷰에 대한 편집 담당자의 원고 수정이 네티즌의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강수미는 온라인 토론마당 포럼에이에 art의 원고 수정의 부당성을 고발(?)했다. 급기야 art가 원고 청탁에서 발간까지의 경위, 사전 동의 없는 원고 수정에 대한 사과, 편집의 고충 등을 당당하게 밝힌 공식 해명의 글을 발표해 논란은 종결됐다. 평론가의 전문성에 대한 자존심과 편집자의 고유 권한이 충돌한 사건이다. 2003년 3월호는 김복기 주간의 에디토리얼 <새 시대 미협의 참 얼굴을 제시한다>로 한국미술협회(당시 이사장 박석원)와 대립각을 세웠다. 미협의 내분과 파행을 질타하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미협 측은 art 불매운동 운운하며 정정 보도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서를 보내왔다. art는 언론의 정당한 논평 기능을 주장하며 미협 측의 위협을 묵살했다.

art in ASIA, art와 창간

지난 해 하반기 art의 가장 큰 뉴스는 글로벌 잡지 《art in ASIA》의 창간. 격월간지 art in ASIA는 2007년 5, 6월 두 차례의 창간준비호를 발행하여 KIAF2007을 시작으로 베니스와 바젤 그리고 카셀과 뮌스터로 잡지 홍보에 나섰다. 6개월여의 준비 끝에 2007년 9월, 마침내 창간호가 발행됐다. 특집은 중국작가 쩡판즈. 곧바로 창간호를 들고 이번에는 중국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미술잡지가 유통되고 있었지만, 지난 10년간의 art의 노하우와 감각을 이어나가는 미술정론지 art in ASIA의 창간이 더욱 빛났다. 11월에는 활황세를 타고 있는 아시아 미술시장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2호를 발간해 뉴욕 ACAF와 상하이 아트페어에 선보였다. 올 1월에는 아시아 팝아트의 새로운 지평을 연 다카시 무라카미를 특집으로 다룬 3호를 발간했다. 또한 재작년에는 미술정보지 《art와》를 창간했다. 미술전문지를 표방하는 《art in culture》와 차별화된 문화예술정보 컨텐츠로 무장, 보다 친근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이로써 ‘art’는 《art in culture》뿐 아니라, 《art와》 《art in ASIA》를 아우르는 잡지 언론사의 ‘고유명사’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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