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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7.12

Contents

표지 키스 반 동겐 <카바레 가수> 캔버스에 유채 55 44cm 1906  
Keex van Dongen / ADAGP, Paris SACK, Seoul, 2007


에디토리얼 art 사무실 옮깁니다_김복기


프리즘
    고구려 고분벽화 다시 읽기_김태식
    ‘위작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_최석태


포커스
    배준성│다리(daRi)│김용호_진휘연
    경기, 1번국도│李반_정무정
    데이비드 내쉬│원경환_전영백
    박병춘│이진경_김백균


특별기획 이 한 장의 그림: 미술 애호가 22인이 뽑은 ‘최고의 걸작’
    김원 이종덕 김영호 송일곤 이명세 최경원 양성원 임석규
    이건용 김태권 박정자 김현석 김석범 김동화 최시영 박준
    김종근 지승현 최정원 정은영 김주환 신유진 

리포트 뉴욕 ACAF
    아시아 현대미술, 뉴욕 상륙! 리포트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


추모 李圭日(1939~2007) 미술 대기자의 미술사랑
    인품과 발품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저널리스트_정중헌
    그는 두 가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떠났다_김창실


작가 인터뷰
    황재형, 진실을 외치는 이 시대의 리얼리스트_이선화


이미지 링크 마시모 비탈리


리포트 인사이드
    2007대구텍스타일아트도큐멘타_장동광


전시리뷰
    쉬지 않는 손, 머물지 않는 정신│예용칭│우발적커뮤니티│Art Now2007│권정호│강덕성
    최은경│아트인대구-분지의 바람│박용식│이승준│유기적 거리UNMASK│City-net Asia 2007


아웃 오브 코리아
    박헌열_임정희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김승택│신현정│홍범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2007 ACAF NY

아시아 현대미술, 뉴욕 상륙!

글|호경윤 수석기자

뉴욕 한복판에 아시아인들의 미술 장터가 섰다.
첫 번째 아시안컨템포러리아트페어(ACAF)가 지난 11월 8일부터 12일까지 맨해튼 허드슨강의 피어92에서 개최되어 성황을 이뤘다.
우선 시기와 장소가 좋았다. 아모리쇼가 열리는 장소에서,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경매가 열리는 옥션 위크와 맞물려 열린 것이다. 아시아, 유럽, 북미에서 온 76개의 화랑이 참여했고, 5일 간의 행사동안 19,000여명의 방문객이 다녀갔으며, 1200만 달러로 추정되는 판매고를 올렸다.
art는 뉴욕 현지를 직접 취재, 생생한 현장을 전한다.

뉴욕은 현대미술의 ‘상업적’ 메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뉴욕에서 아시아 현대미술만을 위한 아트페어를 개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유에 민쥔, 장 샤오강, 쩡판즈 등 중국 스타작가를 위시하여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서구인들의 인식이 급격히 성장했다. 아시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는 가운데 아시아 미술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아트페어가 새롭게 탄생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일이다. 대단히 전략적이고도 시기적절했던 아시아 전문 아트페어의 설립은 뉴욕 첼시에서 2×13갤러리를 운영하는 크리스탈 킴의 주도로, 하모니 앤 커뮤니케이션과 참존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인이 만든 아트페어인만큼 한국 화랑의 참여가 단연 돋보였다. 가나아트갤러리 국제화랑 진화랑 박영덕화랑 예화랑 박여숙화랑 학고재 노화랑 아트링크 갤러리인 공화랑 카이스갤러리 조선갤러리 김재선갤러리 김영섭사진화랑 이화익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 표화랑 서미앤투스 뉴게이트이스트 터치아트갤러리 이룸갤러리. 총 23곳이다. 또한 아라리오갤러리 HNC 인터아트채널 샘터화랑 등 한국뿐 아니라 중국이나 미국 등 해외 분점을 갖춘 인터내셔널 화랑도 참여했다.

뉴요커에게 어필하는 법?

또한 해외 화랑이지만 한국 작가의 작품을 걸고 나온 곳도 많았다. 뉴욕 화랑 중 2×13갤러리는 황란 고상우 김미아 황호섭, AHL파운데이션은 유해리 한경우, 프레드릭테일러갤러리는 임상빈 진신, 수잔엘리파인아트는 이종왕, 텐리컬처럴인스티튜트는 최진기 김진수 강주현 등을 선보였다. 또한 LA의 제프카인콜렉션은 혜숙, 파리 갤러리89는 권인아 이진우 정재규 곽수영, 취리히의 갤러리카시야힐더브란트는 민정연을 내놓았고 런던, 베이징, 뉴욕에 있는 괴드후이스컨템포러리에서는 김일화 홍지연 김명숙 이우림을 출품했다. 도쿄의 갤러리테오는 이배, 갤러리츠바키에서는 아사 고를 소개했다.
이 중에서 괄목한 성과를 거둔 곳은 한국 사진작가 김아타를 단독으로 내세운 베를린의 갤러리카프리스호른이었다. 행사 3일 만에 12점을 팔아 147만 달러라는 높은 판매고를 올린 것이다. 세계 도시를 소재로 삼아 장시간 노출을 해서 찍는 〈온 에어〉 프로젝트 중 뉴욕 타임스스퀘어 작품은 21만 6,000달러에 팔리며 국내 사진작품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이전 기록은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3만 2,000달러에 팔린 배병우의 작품 〈소나무〉) 오프닝날 직접 행사장을 찾은 김아타는 내년 3월 서울 로댕갤러리 개인전을 앞두고 인도에서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시아 미술의 가격을 이끄는 것은 중국 작가들이다. 넓은 아트페어 행사장에서 얼마나 많은 마오 주석을 만났는지 모르겠다. 입구에서부터 차이나스퀘어갤러리에서 내놓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6명의 마오가 관객을 맞이했다. 그 밖에도 그림 조각 할 것 없이 마오를 모티프로 삼거나 그렇지 않으면 인민군 복장, 붉은 색 등 지극히 ‘중국’스러운 작품이 많았다. 런던의 올리바오리엔탈갤러리에서 나온 쩡 비아오의 회화 〈엠파이어〉, 베이징의 레드케이트갤러리에서 나온 쭌 전의 사진작품 〈2008 국립 올림픽 경기장〉, 뉴욕 애단코헨파인아트갤러리에서 나온 판 징레이의 장지 작품 〈가짜 마오〉 등은 중국색이 짙었다.
그렇지만 이번 아트페어에 ‘억’소리 나는 중국 스타작가의 대작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나마 나온 장 샤오강, 쩡판즈 등의 작품도 중국 화랑이 아닌 한국 화랑에서 가지고 나왔다. 갤러리아트싸이드에서는 장 샤오강의 대형 작품 〈소녀 no.4〉를 가지고 나와 문의가 쇄도했다. 아트페어가 끝난 지금까지 고객들과 가격을 협의 중이지만 아트페어가 끝난 다음 날인 소더비 경매에서 장 샤오강의 〈3명의 동지들〉이 5백만 달러에 낙찰되었던 만큼 좋은 가격에 팔릴 듯하다. 뉴욕의 주요 일간지 《뉴욕 타임즈》나 《더 선》에서도 기사화됐듯 이번 아트페어는 거장들의 작품 위주가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등지에서 온 350여 명의 젊은 작가 혹은 미국에 소개가 되지 않은 작품, 좀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렴한 작품이 많았다. 아트페어의 판매 가격은 대개 15,000~80,000달러 사이였고, 950달러에 불과한 작품도 있었다.
그럼에도 작품마다 정교하면서 유희적이고 독창적이며, 특히 노동력이 많이 소요되는 작품이 많다며 아시아의 새로운 시장성을 높이 평가 받았다. 또한 대부분의 작품이 초현실주의와 팝아트를 연결하면서 아시아의 긴장과 불안함을 서구의 것으로 차용한다는 중평을 들었다. 이화익갤러리에서 나온 김동유의 작품은 존 F. 케네디의 얼굴을 하나의 픽셀로 해서, 마릴린 먼로의 초상을 그리고 있어 미국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 거울을 이용해서 고대 학자의 서재를 반추상적으로 표현한 엄정순의 작품처럼 현대와 전통을 이은 작품도 반응이 좋았다. 특히 홍경택의 경우 크리스티 경매의 경력도 있는 데다가, 미국인이 쉽게 이해할 만한 아이콘을 팝적인 느낌과 조화시켜 출품작 대부분이 팔려나갔다.
또한 특이한 소재를 이용한 작품도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카이스갤러리에서 나온 최소영의 청바지 작업이나, 가나아트갤러리에서 나온 지용호의 타이어 조각과 전단지를 붙여 만든 유영운의 군상, 이화익갤러리에서 나온 김덕용의 자개 그림을 보고 관객들은 한 번씩 걸음을 멈췄다.
물론 ‘손재주’가 뛰어난 그림, 사실적인 회화도 역시 인기가 많았다.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나온 강형구의 초상화가 팔렸고, 뉴욕 괴드후이스컨템포러리에서 나온 이우림의 작품은 35,000달러에 팔렸다. 그런가 하면 팬시하면서 모던한 작품도 뉴욕의 트렌드와 잘 맞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원앤제이갤러리 부스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그랬는데 이 중에서 염중호 이세은 박진아 김수영의 작품이 팔렸다. 이 여세를 몰아 원앤제이갤러리는 내년 봄 뉴욕에서 열리는 스코프아트페어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 화랑의 뉴욕 시장 개척기

한국에서 나간 화랑 중에서는 박여숙갤러리가 판매 성적이 특히 좋았다. 박여숙갤러리에서는 이왈종 박소연 조현익 이이남 양문기 임만혁을 가지고 나왔는데, 이미 시카고아트페어에서 잘 팔린 전력이 있던 임만혁의 경우 행사 첫날 5점 모두 솔드아웃됐고, 조현익의 작품도 70%가 팔렸다. 특히 박여숙갤러리의 이이남 작품이 보스턴의 고객에게 팔리는 등 대부분 미국 현지 갤러리스트에게 팔려 더 의미가 있다. 박여숙갤러리는 그 동안 시카코, 쾰른 등 해외 아트페어의 경험을 살려 미국과 유럽 시장에 차별성을 두고 작품을 선별해 나간 것이 이번 성공의 이유로 밝혔다.
국제갤러리에서는 이혜림의 대형 작품이 팔렸고, 특히 정연두는 아트페어와 같은 시기에 첼시의 티나킴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어 더욱 좋은 성과를 거뒀다. 그 밖에 코카콜라의 로고를 변형시켜 ‘Coca Killer’라는 말을 대형 사인물로 만든 김기라의 작품도 주목을 받았다. 표화랑은 김창열 이용덕 박성태 등 대표 작가는 물론, 쩡판즈의 대형 작품을 출품했다. 그 밖에 정진룡 등 새롭게 선보이는 작가들의 시장성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갤러리인은 배준성과 홍성철을 함께 걸어둠으로써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도록 부스를 꾸며, 작은 기획전처럼 보일 정도였다. 또한 한국에는 소개가 덜 되었지만 현재 뉴욕에서 급부상하는 젊은 작가 최원정의 설치 작품도 전시했다.
오랜 전통을 가진 화랑의 활약도 대단했다. 진화랑 조선화랑 샘터화랑 등이 그것이다. 베테랑 화랑답게 작품 한 점을 더 파는 것보다 작가를 미국 미술관에 입성시키거나 일정의 가격대를 자존심처럼 지키려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진화랑은 야요이 쿠사마의 귀한 초기 드로잉을 가지고 나와 13,000달러에 팔았고, 이우환의 판화는 6,000달러 정도에 팔았지만 나중엔 가격이 맞지 않아 중간에 판매를 중단시켰다는 후문이다. 샘터화랑에서 나온 이강소의 100호 작품은 60,000달러에 거래됐고, 공갤러리에서 나온 박선기의 숯조각 설치작품 〈관계〉는 36,000달러에 팔렸다.
아시아아트페어인 만큼, 평소에 덜컥 해외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데 조심스러웠던 화랑들의 첫 도전도 빛났다. 사진 전문 화랑으로서 유일하게 참여한 김영섭사진화랑에서는 백남준을 찍은 임영균의 작품에 문의가 많이 들어왔다. 한편 백남준의 데드 마스크가 들어간 입체 작품을 가지고 나간 갤러리아트링크도 주목을 받았다. 파주에 있는 터치아트갤러리는 김준과 홍성도의 작품이 관심을 끌었고, 이룸갤러리에서는 황호섭 작품의 반응이 좋았다. 부산의 김재선갤러리에서는 2005년 한인 작가 최초로 메이저 미술에이전트인 아트뱅크와 전속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됐던 김명식의 작품과 설종보, 장이규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지역에 있는 화랑으로는 유일하게 참여한 김재선갤러리는 곧이어 열리는 상하이아트페어에도 참여해 앞으로 서울의 메이저 화랑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포부가 엿보였다.
그 밖에 다른 나라의 판매 실적을 살펴보자. 도쿄의 갤러리큐는 젊은 작가 아이 시노하라의 작품을 솔드아웃시켰다. 작품 가격은 대개 20,000달러였다. 또한 테츠야 이시다의 그림을 69,000달러에 팔았다. 도쿄갤러리+BTAP도 장사가 잘됐다. 두아트갤러리에서 소개된 바 있는 니시자와 치하루나 마츠라 히로유키 등 세련된 작품들로 승부를 걸었다. 갤러리츠바키에서는 교포3세 아사 고를 소개했는데 솔드아웃됐다. 아사고는 내년 서울 진화랑에서 전시를 열기로 했다.
베이징의 차이나스퀘어갤러리의 시앙 징의 〈Bang!〉은 《뉴욕타임스》에 나온 ACAF 기사의 도판으로 사용되면서, 수십만 달러에 거래됐다. 대만의 핑스갤러리에서 나온 후앙 강의 〈마오는 좋은 사람이다!〉는 마오를 유령처럼 추상적으로 묘사해 15만 달러에 판매됐다. 또한 798아방갤러리는 갤러리 이름 때문인지 관객들이 자주 몰리곤 했다. 한편 취리히의 카샤힐데브란트갤러리는 현재 파리에서 거주하는 중국작가 티안빙 리의 작품을 작품당 20,000달러씩 매겨 솔드아웃시켰다. 뉴욕의 2×13갤러리에서는 한국 작가 고상우의 작품이 잘 팔렸다. 또한 북한 아리랑공연을 찍은 티안 이빈의 사진은 24,000달러에 팔렸다.

성공적인 첫 행사, 그리고 과제들

이번 아트페어의 특별전으로 마련된 〈시뮬라시안:21세기를 위한 아시아의 재구성〉전이 이번 아시아아트페어의 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에릭 C.샤이너와 릴리 웨이가 기획한 이 전시에는 황란, 미와 야나기, 아이 웨이웨이, 테렌스 고 등 26명의 아시아 작가들이 참여, 아시아성을 전달했다. 행사장 중간 쯤 관객들의 쉼터가 마련됐는데, 이 자리의 벽면에 황란의 대형 작업이 설치됐다. 색색깔 단추를 하나하나 핀으로 꼽아 만든 그의 작품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행사 내내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카이킹, 롱마치프로젝트, 키우 지지, 프랭크 푸의 퍼포먼스도 뉴욕 미술 애호가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번 아트페어의 총감독을 맡은 토마스 아놀드는 “최근 5년 간 국제 미술관 사람들과 콜렉터들은 현대 아시아 미술작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수빙 등과 같은 일부 작가들이 충분히 인정을 받았지만, 그들은 아시아 미술가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 폭과 깊이가 다양하고 연령층도 다양한 이번 행사의 출품작들은 뉴욕의 관객들에게 소개된 아시아 현대미술 전시회에 대한 비평가, 큐레이터, 컬렉터들의 평가가 매우 긍정적이었다”며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행사 동안 좋은 심포지엄도 열렸다. 11월 9일에는 아시아 현대미술에 있어서 역사와 대중성을 주제로 미술평론가 이용우, 《아트인아메리카》 기자 리처드 바인, 국제사진센터 큐레이터 크리스토퍼 필립스, 중국 현대미술 경매 스페셜리스트 지아오밍 장이 토론회를 열었다. 10일에는 아시아 현대미술의 주류에 관해 작가 조나단 굿맨, 구겐하임미술관 아시아미술 담당 큐레이터 알렉산드라 먼로, 프랫인스티튜트 교수 로버트 모건, 선다람타고르갤러리 디렉터 선다람 타고르가 토론했고, 뒤 이어 작년 광주비엔날레에 큐레이터를 맡았던 우훙의 강연이 열렸다. 11일에는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았던 로버트 스토어와 작가 수빙의 좌담회가 열려 많은 청중들이 몰렸다. 심포지움에 뉴욕의 저명한 인사들을 섭외한 것은 좋았지만, 아시안 아트페어의 개최에 대한 타당성을 비평적으로 심도있게 논의하지는 못했다.
이번 아트페어에서 많은 한국 화랑들이 큰 기대를 하고 뉴욕행을 떠났다. 그러나 판매 실적이 기대에는 못 미쳐 아쉬워하는 화랑들이 많았다. 모 화랑 관계자의 말처럼 “새로운 고객을 개발하려고 이곳에 왔지만, 기존에 아시아 미술에 관심이 있어 중국 아트페어까지 오던 손님이거나 한국 손님 위주였다”는 지적은 앞으로 이 행사의 주최측이 숙고해야할 과제다. 행사 첫날에는 초대한 수보다 관객이 훨씬 많이 몰려 호조를 이뤘으나 다음 날부터는 한적한 분위기였던 걸 보면 현지 홍보가 덜 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부스 곳곳에서 나왔다. 그 밖에 참가 서류 및 서식이 복잡하거나 세금과 부스 설치비가 비싸다는 불평도 들렸다. 전반적으로 첫 번째 행사였던 만큼, 행사 운영에 있어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게 참여화랑들의 중론이었다.
반면 참여화랑 측의 준비도 좀더 철저해야겠다.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 김종호 씨는 “오기 전에 미국 시장에 대해 분석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작가와 작품을 선별해 가지고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국내에서 유명한 대가들의 작품보다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다시 말하면 현지에서 인지도를 쌓은 작가들의 매매가 훨씬 활발했다. 처음 보는 작가, 처음 듣는 화랑에 거금을 주고 선뜻 작품을 사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몇몇 화랑은 이번 아트페어 용으로 화랑을 소개하는 조그만 리플렛을 제작해 왔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첫 술에 배부르랴’는 말처럼, 첫 행사에서 너무 큰 기대를 하기보다는 아시아 미술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데 큰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말 그대로 뉴욕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려면 더욱 지속적인,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황재형, 진실을 외치는 이 시대의 리얼리스트

진실을 외치는 이 시대의 리얼리스트

글 | 이선화 기자

민중을 위한 삶, 민중을 위한 예술을 부르짖는 황재형. 민중미술의 중심에 선 그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6년 만에 개인전(12. 4~2007. 1. 6)을 갖는다. <쥘 흙과 뉠 땅>이라는 제목으로 60여 점의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태백의 산천과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작가가 외치는 진실과 희망의 메시지. 태백 작업실에서 작가를 만났다. 행동하는 리얼리스트 황재형은 무엇을 보고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좇아가 본다.

“거 참 잘 그렸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어느 지물포 아저씨가 황재형의 작품을 보고 한 말이다. 유홍준은 글에서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황재형의 태백 화실에 가서 <앰블런스>라는 제목의 작품을 구입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아내가 고른 그 그림이 맘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작품은 저녁 즈음에 앰블런스 한 대가 불빛을 밝히며 산길을 지나고 있는 풍경을 그린 것이다. 앰블런스 옆으로 보이는 숲은 마치 요동치는 듯한 움직임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태백에서 지물포를 운영하는 아저씨는 앰블런스가 울리면 그림에서처럼 자신의 마음이 격렬히 동요한다고 말했다. “당신은 서울사람이지.… 당신은 몰라. 저녁나절에 앰블런스가 울리면 세상이 이렇게 보인다구. 산천초목이 흔들리구, 쥐죽은 듯이 조용하구. 나는 광부생활 20년 하구 이 가겟방 하며 사는데 지금두 이런 때면 소름이 돋아요. 제일 싫다구.” 이 일화를 전하면서 유홍준은 스스로가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자신의 미학적 척도로 황재형의 작품을 평가했던 것을 말이다.

‘진실’을 향한 조용한 저항

“지난 11월 13일 청량리에서 태백 행 첫 기차에 올랐다. 황재형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설레기도 했지만 마음은 또한 무거웠다. 1980년 태백에 정착해 27년 동안 태백인으로 살고 있는 화가. 3년 간 광부로서 탄부 생활을 했던 화가. 제도권 교육 체제를 비판하며 14년 동안 장애인, 어린이, 교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행하고 있는 화가. 우선은 평범치 않은 인생 역정의 황재형을 만나기에 내가 체험한 지식 경험의 폭이 협소했기에 마음이 무거웠던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너무 뚜렷한 작가의 가치관에 일종의 거리감이 알게 모르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덧붙여 그의 그림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흥 역시 한몫했다.
황재형이 화단에서 주목받게 된 시점은 지난 1982년 제5회 중앙미술대전에서 <황지 330>이라는 작품으로 장려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광부의 작업복을 극사실 기법으로 세세하게 묘사한 <황지 330>은 소재가 주는 특이함을 물론 보는 이를 압도할 만한 강렬한 시각적 화면이 충격적이었다. 그가 체험한 탄광촌에서의 삶이 이러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황재형은 1970년대 말 삼척의 탄광촌을 견학한 후, 탄부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서린 탄광촌을 그리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곤 광부가 겪는 처절한 현장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선 스스로가 광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그의 ‘태백에 살어리랏다’가 시작되었다.
황재형은 예술에 대한 이념과 행동의 일치점을 찾는다. 외롭지만 따뜻하게 삶을 살아가는 광부들을 통해 우리가 ‘쥐어야 할 참 흙의 인간애’와 우리가 ‘누워야 할 땅’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변함없이 ‘쥘 흙과 뉠 땅’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개최한다. 합판, 삽, 판자, 용접 마스크, 철망 등 캔버스를 벗어난 다양한 설치, 오브제 작품을 선보였던 지난 80년대와는 달리 이번 개인전에서는 회화 작품만을 전시한다.
감각적인 컨셉트는 물론 눈을 사로잡는 매끈한 세련미가 부재한 작품에서는 어둡고 황량한 분위기가 감돈다. 기실 주위에서 왕왕 볼 수 있는 심미적 풍경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때문에 작품에 대한 감정이입이 쉽지만은 않다. 특정한 지역의 삶의 풍경을 화면에 옮김으로써 작가가 진정 원하고 추구하는 예술관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4시간이 넘어 도착한 그의 화실에 들어서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황재형은 “진실”이라고 말했다.
“그림의 감동이라는 것은 화면의 진실이기도 하고 그림 자체의 내용성이기도 합니다. 진실이 교감이 될 때 예술이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시절, 나는 불편한 잠자리를 자는 이들에게 안락과 안식을 주는 그림을, 너무 편안하고 답답한 일상에 젖은 사람들에게는 경각심을 느끼게 하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짐했어요. 그것이 바로 내가 가지고 가야할 예술이라고요.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곱고 예쁜 것이 아닌, 그림에서 진정성이 제대로 구현될 때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에서 추함이 드러나고, 화면에서 추한 터치와 터치가 교차할 지라도 그것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태백에 들어가 탄광촌의 현실을 체험하고 광부들의 땀냄새를 추억하며 사는 그에게 예술이란 인간이라는 본질 그 자체란다. 풍경화를 통해서 인간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구현되는지 의아하게 여기겠지만, 황재형은 자신이 그린 태백이라는 특정 공간이 현실의 객관적인 풍경만이 아닌, 모두의 주관적인 풍경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탄광촌을 막장이라고만 할 수는 없어요. 서울이 막장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탄광촌이 막장을 상징화하지만, 나는 특정 장소의 특수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가 인간으로 서 있는 각자의 위치에서 느낄 만한 소외와 공허함을 드러내고 싶은 겁니다.”
‘인간이 소비되는 현실’에서 황재형은 ‘인간을 위한 사회’를 부르짖는다. 그리고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우리네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야 함을 피력한다. 이미 세속적 삶에 충분히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나는 사실 그의 말에 크게 공감할 수는 없었다고 고백한다. 어찌됐건 그는 여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이것이 단순하게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눌 수 있는 삶을 추구해야 함을 굽히지 않는다. 때문에 황재형은 태백의 노동자층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밀었다. 또한 아이들 개개별의 특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실시되는 현 교육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프로그램에도 열심이다. 착한 눈빛과 강건해 보이는 풍채를 휘감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묵직하게 퍼져 울렸고 깊은 여운을 남겼다.

현장의 그림, 리얼리티의 획득

십년 하고도 6년 만의 개인전이다. 그 세월 때문일까 황재형이 어떻게 지냈는지, 그의 그림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할 이들이 많다. 그는 차분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작품에 대한 자신이 없어 개인전을 고사해 왔다고 했다. 그리고 진달래색 치마를 곱게 입은 부인은 이번 개인전을 여는 데 자신의 역할이 컸다며 활짝 웃었다.
전라도 광주, 부부는 백제미술연구소라는 곳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절 만났다. 서로를 “여보”라고 부르며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고 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들이야말로 최고의 인생 동반자이자 예술적 동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서울에서의 안락했을 삶을 버렸을까. 그러나 현재 부부의 삶은 분명 20여 년 전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태백은 제2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기에 나는 그들에게서 어느 정도의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인지 그의 최근 작품은 이전과 다른 조형적인 유연함이 묻어난다.
“관객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볼지 염려되지는 않습니다. 전시는 나의 과정, 내 삶의 궤적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삶을 보길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실존을 보일 뿐이죠.” 전시를 앞둔 작가들에게서 으레 발견되는 초조함이나 묘한 두려움을 끄집어내고 싶었는데, 황재형은 대답은 이처럼 단호했다.
그럴 듯함. 작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나는 이 단어에 내재된 위험성을 여러 번 느꼈다. 그것이 몰고 오는 편견, 선입견을 말이다. 황재형이 태백에 들어가자마자 많은 매체는 그를 ‘광부 화가’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연신 광부, 태백, 황지, 막장이라는 특정 단어를 되풀이하며 그를 평가하고 주목했다. 이것이 이슈가 될 수는 있지만, 본업이 화가인 그에게 광부라는 감투 아닌 감투는 결코 득만이 아니다.
작가 역시 “내가 화가인데, 내가 광부가 된다고 진정으로 광부가 될 수 있을까요. 내가 그들과 함께할 뿐이지 나는 광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광부, 태백의 산천과 같은 소재주의적 논의에서 벗어나 작품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고 절감한다. 그리고 태백에서의 황재형의 삶은 그럴 듯함(seeing)이 아닌 그러함(being)이라는 것 역시. 그는 행동하는 리얼리스트이고 노동자의 삶을 가까이서 관망하는 이가 아닌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체험자라는 사실도 말이다.
예술에서 진실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황재형을 보고 있노라니,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미학적인 허세로 꾸미거나 관습적으로 대하지 않고 표현하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라고 했던 샹플뢰리(Champfleury)의 이론은 물론 진실되고 정직한 표현법만이 살아 있는 그림을 완성한다던 쿠르베의 신념, 그리고 “미술은 허망한 기분풀이가 아닌 사회의 오점을 드러냄으로써 사회 개선에 봉사하고 빈곤, 위선 등의 사회적 부도덕을 노출시킴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이상에 기여한다”고 단언했던 사회학자 프루동(Proudhon)의 철학이 떠올랐다.
한편, 미술사학자 정영목은 왜곡의 형식적/표현적 상징성을 기대하는 여타 민중미술 작가들과 달리 황재형은 정통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연의 민중미술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또한 사회주의적 사고가 가미됐으되 그의 시선은 사회비판적인 태도를 넘어 치유의 시각을 가지고 현실을 직시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예술의 진실함을 이야기하는 화가가 내 앞에 있었다.
어린이, 그 희망을 위한 교육
태백 신(新)주택 단지에 위치한 작가의 화실은 그리 특별나지 않은 평범한 주택의 외형을 띠고 있다. 낮은 높이의 하얀 색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는 황재형의 작업실이 오른쪽으로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사들이 연수할 수 있는 ‘태백미술연구소’라는 공간이 나온다. 사진 촬영을 진행하면서 나는 이곳을 오고가는 해맑은 미소의 어린이들을 여럿 만났다. 고사리 손들은 하나같이 미술도구들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공부하는 모습과 환경이 궁금해 한창 수업 중인 미술연구소의 문을 조심히 열었다. 선생님의 지도 아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채화를 그리는 중이었다. 석고상이며 아이들이 완성한 그림들이 벽을 가득 메운 교실 안 풍경은 여타 화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과연 이 공간에서 황재형은 어떤 수업 지도안으로 아이들을 육성하고, 교사들은 어떠한 교육 방침을 토대로 지도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신문에 난 광고며 입소문으로 이곳을 찾은 선생님은 전국 단위로 포진되어 있다. 10년이 넘은 이 교사 연수 프로그램은 여름/겨울 방학 중심이며 참여 선생님 수는 약 40여 명에 이른다. 그리 큰 인원은 아니지만, 기존의 연수 체제에 익숙했던 교사들은 황재형식 프로그램을 한마디로 “충격적”이라며 입을 모았다. 또한 아예 태백 초등학교로 전근을 와 낮에는 초등학교에서 수업하고 저녁에는 이 곳 연구소로 모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선생님들까지 있었다. 늦은 저녁 시간, 나는 그들을 만나 간접적으로나마 내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태백 하면 내가 가장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어요. 그저 잠깐 지나가는 곳이기를 바랬죠. 많은 것들을 보았지만 나는 보지 않으려고 했어요. 너무 싫었으니까요. 아버지는 광부이셨어요. 사택에 살면서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황재형 선생님 그림은 내가 눈을 감아버렸던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어요. 내가 무시하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던 태백의 모습 말이죠. 그리고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내 속에 이 풍경들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는 것을요.”
태백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여상에 갔고, 그리도 그리던 서울 생활도 경험해 봤던 여교사. 그녀는 스스로가 그토록 부정했던 현실이 결국은 자기 긍정으로 변모하는 데에 황재형의 그림이 있었다고 했다. 생활고에 시달려 대학에 갈 수 없었던 지난 일이 생각났는지 선생님의 눈가는 연신 촉촉했다. 그리고 서울 생활을 접고 태백으로 돌아와 오래지 않아 황재형을 무작정 찾아가 그림을 가르쳐 달라고 했던 이야기며, 3개월 만에 전형적인 입시 교육 없이 황재형의 지도만을 믿고 대학 입시를 치렀던 일화를 전했다. 그녀에게는 당시 황재형이 단 하나뿐인 희망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희망은 결국 현실이 되었고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선생과 제자 사이의 굳건한 믿음만이 아닌, 여기에는 기존의 정형적인 미술 교육을 넘어선 특별난 가르침이 자리하고 있었다.
“교육에 대한 상식화된 틀을 깰 수 있었어요.” “아이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었죠.” “그동안 내가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육이 그들의 영혼을 짓밟았던 것에 다름 아니었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옆에서 선생님들은 저마다 피부로 느꼈던 감회를 풀어냈다. 애당초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수식어들이 오고갔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대답이 대다수였기에 나는 묻고 또 물었다. 구체적인 학습법은 물론 그것이 낳는 성공적인 피드백을 말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선생님도 미술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때문에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경험하지 못한 교사들은 유형화된 지도안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저 반듯하고 깨끗하게 점,선,면을 그리면 그만이고, 샘플과 똑같이 예쁘게 결과물이 나오면 칭찬하기 십상이다. 자리에 함께 한 선생님들은 하나둘 앞 다투어 말했다. 아이들이 긋는 선이 그리고 만들어낸 면이 그들의 상상력과 감정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사실을 이전에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털어 놓았다. 때문에 바른 교육의 키워드란 바로 아이들의 감성을 자연스럽게 끄집어내어 주는 것이라고. 여기에는 선생님의 대학 전공도 그림 실력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간단한 해법인 듯하지만 기존 교육 시스템으로는 아이들의 변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그들은 주저 없이 말했다. 무엇보다 교사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 역시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설령 마음 속 풍경일지라도

나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3시간 만에 선생님들과의 대화는 끝이 났다. 어린 시절의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이 아이들의 의사 표현 및 사고 확장, 문장력 향상 등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것, 즉 그림 교육이 특정 과목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총체적 교육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또한 느낄 수 있었다. 황재형이 사랑하는 태백, 그리고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예술혼과 희망이 얼마나 강렬하고 진실한 것인지를.
화실을 떠나기 전 나는 그의 작품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좀더 차분한 마음으로 다가갔다. 처음과는 달랐다. 깊게 패인 주름살과 빨갛게 충혈된 눈의 <광부 초상>은 더 이상 이름 모를 광부의 모습만으로 비춰지지 않았다. <광부 초상>을 보고 자신의 아버지가 떠올라 눈물이 났다던 막내 여선생님이 생각나서 나 역시 기분이 이상해졌고, 눈보라가 일어나는 황량한 거리를 담은 작품들은 전혀 익숙치 않은 낯선 공간만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애써 만든 편견과 미학적 잣대가 황재형의 작품을 읽는 데 그리 보탬이 되지 않았음을 절감했다고 할까. 우리의 마음 속 풍경이 황재형의 그림 안에 있었다. 비록 작가는 현실을 직시한 직접적인 소통을 꾀했겠지만, 이는 이 시대의 리얼리스트가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다.

명화를 읽은 새로운 눈-유럽 현대미술의 위대한 유산展

명화를 읽은 새로운 눈
<유럽 현대미술의 위대한 유산> 성남아트센터 12. 30~2008. 2. 24

2007년의 마지막 전시는 유럽 현대미술이 남긴 ‘새로움’을 살펴 볼 차례다. 피카소에서부터 마티스, 샤갈, 미로 등 현대미술 거장들이 표현한 형태와 색채의 새로운 방식을 느껴보자. 성남아트센터는 프랑스의 평론가 필립 다장을 커미셔너로 선임, 일반 명화전에서 만나기 힘든 프랑스 유명 개인소장가들의 작품을 엄선해 유럽 현대미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전시를 마련했다.

2007년의 마지막 전시는 <유럽 현대미술의 위대한 유산-피카소에서 미로, 샤갈, 현대 회화의 거장들>이 장식한다. 12월 30일부터 2008년 2월 24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전관에서 펼쳐지는 이 전시는 피카소, 피에르 보나르, 장 뒤뷔페, 페르낭 레제, 호앙 미로, 라울 뒤퓌, 조르주 루오, 키스 반 동겐,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등 22점의 원화와 판화 100여 점 등 총 1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유럽 현대미술의 위대한 유산>전은 서양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대표 작가들의 ‘원화’ 작품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이 전시는 요즘 유행하는 블록버스터 ‘대관’ 전시와는 성격부터 다르다. 전시를 주최하는 성남아트센터는 프랑스 미술평론가 필립 다장(Philippe Dagen)을 커미셔너로 선임, 작품 선정 등 전시 기획의 큰 틀을 맡겼다. 또한 전시 구성과 교육, 연구 프로그램 진행 및 홍보는 본지 《아트인컬처》와 공동으로 진행한다. 미술전시의 전문성을 살린 기획전이다. 커미셔너인 필립 다장은 일반 명화전에서 만나기 힘든 프랑스의 유명 개인소장가들(매그 재단, 다니엘 말렝그, 다니엘 템플론, 패트릭 봉거)의 작품을 일련의 주제를 가지고 선별했다.
필립 다장은 1990년부터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의 현대미술사 교수로 재직 중이며, 《르몽드》지에 고정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의 주요 저서인 《불가능한 예술》은 프랑스에서 호평을 받은 베스트셀러다. 그 외 다수의 저서를 통해 그는 ‘미술사의 살아있는 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에선 1994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프랑스 오늘의 현대 작가전>을 기획한 바 있다.
필립 다장은 이번 전시에서 명화전의 새로운 지점을 설정하고 있다. 1905년 파리 <가을 살롱전>에서 마티스, 드랭, 블라맹크 등의 미술가들의 발칙한 ‘야수적’ 작품들이 파문을 일으켰던 것을 현대미술의 출발점으로 보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관찰되지 않은 색, 녹색이나 보라색으로 인체와 그림자를 표현하고, 진홍빛으로 태양을 그린 이들의 표현은 진정 ‘새로움’인 것.
필립 다장은 이러한 야수파에 곧 브라크, 반 동겐 등 젊은 화가들이 합세한 것, 피카소, 브라크, 마티스의 우정과 경쟁, 같은 스승에게서 사사받은 루오와 마티스의 관계 등을 연결고리로 전시의 흐름을 만들어간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전 모방적 전통과 단절해 대상을 새롭게 봤다는 것이다. 이들은 신체나 얼굴을 자연 고유의 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그리고, 선, 형태, 공간, 원근법을 다르게 사용했다. 사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시각에선 이들의 일종의 ‘혁명’과 같은 움직임이 왜 새로운지 느끼기 어렵다.
이 전시는 바로 이런 체험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20세기 초 이후 회화의 전반적 역사를 꼼꼼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직접 작품들의 강렬함과 그 속에 담긴 신체적 감각(즐거움, 두려움, 사랑, 꿈)을 체험하면 된다. 각각의 작품들이 지닌 풍부한 감정들이 관객을 맞이할 것이다.
우선 반 동겐의 야수파 전성기 작품 <카바레 가수>의 강렬한 시선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거칠고 간결하게 표현된 여인과 불타는 듯한 배경이 한데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품는다. 여인의 얼굴에는 배경에 쓰인 붉은 색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그녀가 가지는 감정과 고뇌를 표현한다. 그런가 하면 보나르의 <점심식사>에서 인물들은 기억과 향수에 갇힌 애잔한 표정을 하고 있다. 보나르의 작품 대다수에는 부인인 마르트가 나타나는데, 이 작품을 그린 시기는 이미 마르트가 죽은 지 35년 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트는 여전히 젊고 여신과 같이 아름답다.
앞서 본 두 작품들은 작가의 개성이 담긴 색채로 간결하게 인물을 표현했지만 형상의 해체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반면 피카소의 <어머니와 아기>는 대상을 왜곡하고 해체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감각을 잃지 않는다. “어린 아이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난 평생을 다 바쳐야 했다”던 피카소의 인간적인 모습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또 뒤뷔페의 완전히 해체된, 마치 인물이 완전히 구겨진 듯한 작품에서 작가의 고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예수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루오의 작품에서는 작가의 신성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드가, 마티스, 앙드레 마송, 미로뿐만 아니라 르요와 디 로사 같은 화가들의 최근작에서 인물을 얼마나 다르고 재밌게 표현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031)783-8142 |이성희 기자

한국의 모더니스트 김구림

한국의 모더니스트 김구림
아방가르드의 정신은 늙지 않는다

제7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 김구림 화백 수상기념전 개최

제7회 이인성미술상의 수상자 김구림 화백의 수상기념 초대전이 10월 30일부터 11월 11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됐다. 이인성미술상은 대구시와 대구미술협회(회장 이장우)에서 대구 출신의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재정한 상이다.
제7회 선정심사위원회(위원장 엄기홍)는 작년 10월, 공모된 15명의 후보자 중에서 김구림 화백을 선정했다. 선정위는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초기인 1960년대 이후 AG그룹 활동과 개인적 작품 활동을 통해 미술사적으로 공적을 남겼으며, 서구 미학 및 예술론을 한국적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작품에 원용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의 한축을 일구었다”며 김구림 화백의 수상을 결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상식은 작년 11월 1일 이미 치렀고, 전시는 작품 제작할 시간으로 1년을 주어 이번에 열린 것이다.
이번에 열린 초대전을 위해 김 화백은 노령에도 불구, 디지털 기법을 새롭게 이용한 근작을 선보였다. 디지털로 출력한 사진 이미지 위에 추상표현적인 붓질을 하되, 그의 주특기인 일상의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은 도록 서문에서 “김구림은 특정한 스타일이나 관습적인 그림의 틀로 저당 잡히지 않는 작가, 모더니스트로서의 아방가르드 정신에 충실한 작가, 장르를 넘나들면서 부단히 기존 미술의 진부한 관념과 획일적 사고를 이탈하고 유출시키는 작가다”라면서, 이번 근작에 대해 “아이디어나 건조한 개념, 관습적이고 형식화된, 그래서 이미 죽은 회화 언어로 말하기보다 끊임없이 자기 생을 이루는 현재의 사물, 이미지를 통해 동시대 문화와 삶에 대해, 잃어버린 감수성과 상상력에 대해, 진정한 인간의 생의 욕망에 대해 기술”이라고 평했다. 김구림 화백은 1936년 태어나 뉴욕 스튜던트 리그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1971년 파리비엔날레를 비롯한 해외 주요 전시에 참가했다.
전시와 동시에 제8회 수상자의 시상식이 11월 1일 오후 5시 대구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제8회 이인성미술상의 주인공은 이건용 국립 군산대 교수가 선정됐다. 이번 선정심사위원장은 윤우학 충북대 교수였다.

2007 December Special - 이 한장의 그림, 미술 애호가 22인이 뽑은 '최고의 걸작'

건축가 김원

조지 시걸 <여인> | 무표정의 미스터리

조지 시걸의 <버스 정류장> 등에서 드러나는 도시성과 인간 실존의 문제. 사람들은 이에 주목한다. 그렇지만 나는 조지 시걸이 탄생시킨 무표정한 사람의 얼굴과 하얀 색에서 뿜어져 나오는 절제된 표현에 더욱 끌린다. 하얀 컬러를 휘감은 그의 부조 작품은 마치 아무 이야기도 안하는 듯하지만 분명히 무엇인가를 강하게 표현한다. 대다수의 작가들이 그들만의 이야기를 피력하며 주의를 집중시키는 데 반해, 조지 시걸의 작품은 특유의 무표정 속에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 미스터리. 바로 이것이 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다.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담백한 맛을 풍기며 풍부한 컨텐츠를 담을 준비가 되어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나는 좋다. 기실 모든 건축 공간은 무엇을 담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때문에 비어 있다. 채워 넣어야 할 공간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 건축과 우리 건축이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침실에는 침대가 거실에는 쇼파가 부엌에는 식탁이 들어차 있는 것이 서양식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비어 있다. 요를 깔면 침실이 되고, 밥상이 들어오면 부엌이 되는 매우 유연한 기능성을 띤다. 또한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컨텐츠가 중요하다. 특정 활동만을 위한 공간보다는 각각의 공간이 때때로 공부를 하기 위한, 명상을 하거나 다과상을 차려 손님을 맞을 수 있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될 수 있다.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식의 비어 있는 공간을 예찬한다. 조지 시걸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우리의 건축 미학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오고 갈 수 있는 여유가 묻어나는 작품. 무한한 컨텐츠를 담을 수 있는 미스터리함을 말이다.

연극인 박정자

권이나 <여자 배우> | 꽃에서 얼굴이 만들어졌네

<여자 배우>. 내 거실에 걸린 작품의 제목이다. 화가는 권이나로, 그녀는 권옥연 선생의 딸이다. 지난 1966년, 이병복 대표가 극단 자유를 창단했을 때, 나는 햇병아리 배우로 그곳에 소속해 있었다. 사회 초년생에서 지금에 이르는 약 4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나는 이병복 대표, 그분의 남편인 권옥연 선생, 그리고 딸 이나와 너무나도 따뜻한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어느 날, 한밤중이었다.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던 이나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아줌마. 저 파리예요. 내가 아줌마를 그렸어요.” 나는 너무 반갑고 또한 너무 기뻤다. 이나는 꽃을 그리려고 캔버스 앞에 앉았다는 지난 이야기부터 들려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이 그려지지가 않아서 밖을 나가 무작정 걷다가 들어왔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작업을 시작하려고 하자, 갑자기 내 얼굴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여자 배우>다. 꽃이 나의 얼굴로 변한 셈이다.
이나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색채가 어둡다. 주로 사람을 많이 그리는 그 아이의 작품에는 화사함이나 경쾌함이 아닌 아픔이 서려 있다. 평소 나 역시 막연한 추상 그림보다 인물 그림을 좋아한다. 이나는 그녀가 주로 그리는 인물이 아닌 설령 나무 한 그루를 그리더라도, 그녀만의 터치로 그녀만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나는 이러한 이나의 그림이 좋다.
가난한 연극배우이기에 나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이나의 작품을 구입했다. 윤곽이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호하지만도 않은 그림은 진정 나의 모습을 담고 있다. 먼 타향에 머물면서 나를 기억하고 그림을 그려준 이나가 고맙다. 나는 언젠가 이 그림을 내 아들, 딸에게 물려줄 것이다. 내가 나의 초상화와 함께 하면서 느꼈던 소중한 지난 추억을 내 아이들 역시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나운서 지승현

윤병운 <침묵의 대화> | 편안한 시간의 풍경

늘 바쁜 일과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남편. 그가 그저 잠깐이라도 편안하게 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윤병운의 <침묵의 대화>를 남편에게 선물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싱싱하리만치 푸른 들판, 푸르른 하늘에 흰 구름, 내 아들 딸 지홍이와 지민이를 꼭 닮은 천사, 그리고 앙증맞은 빨간 자동차의 엉뚱한 출현까지. 나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나와 좋은 인연이 될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지금 남편이 가장 많이 머무는 장소에 이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가 걸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레스토랑은 정신없이 바쁜 공간이지만 그림으로 시선을 옮기면 이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꿈꾸는 듯한 평온한 시간과 침묵의 시간을 동시에 선사하는 <침묵의 대화>. 많은 이들은 이 그림을 사진으로 착각한다. 마치 실제 풍경처럼 담은 듯 보이는 작품은 정말 매끈하게 잘 그려져 있다. 작가는 여러 해 공을 들여 완성했다고 한다. 이처럼 작가의 열정이 만들어 낸 작품이기에 나는 더욱 애착이 간다. 그리고 바란다. 아무리 사는 게 팍팍할지라도 남편이 늘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기를. 또한 우리가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부부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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