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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7.10

Abstract

특별기획 북한미술, 안녕하십네까? 10월의 남북정상회담 개최로 우리의 이목이 북녘 땅으로 쏠리고 있다. 남북 관계의 변화 속에서도 문화예술계는 여전히 제한된 관계 속에 머물러 있다. 단절의 벽은 아직도 높고 두텁다. 무엇보다 분단 60년의 질곡 속에서 벌어진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민족동질성에서 '하나'로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 특별기획에서는 제3국의 전문가가 오늘의 북한미술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편집부에서는 새로운 실증 자료를 제시했다. 남북 미술교류의 내일을 제안하는 글을 덧붙였다.

Contents

표지 노순택 <Red House> C-프린트 2005

에디토리얼 목숨을 걸고 잡지를 만들다_김복기

핫피플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임위원장_호경윤

프리즘
    유클리드의 산책│2007 대전 FAST-모자이크시티_조선령
    플래시큐브_박만우
    김창겸│황혜선│홍성철_이선영
    박소영│임택_심상용

특별기획 북한미술, 안녕하십네까?
    (1) 이미지 링크 Red House_노순택
    (2) 김정일의 북한미술, 무엇이 달라졌는가?_하타야마 야스유키
    (3) 최초 공개, 김정일 미술령도사_편집부
    (4) ‘미술의 통일’로 가는 길_최석태

작가연구 문경원 
    (1)생성의 풍경_강태희
    (2) 리듬을 타고 흐르는 삶의 시간과 공간_이성희

오광수의 현대미술 반세기 (10)
 

해외미술
    칼스루헤 <터모클라인>展_이성희
    밀라노 <열린 눈>展_호경윤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서영배│김산영│이문호

전시리뷰
    이상한 나침반│엄정순│이재효│김남용│박지훈│알렉스 카츠
    윤병락│박홍순│권기범│최민화│샤오제 시에│강유진│임상빈 | 김이수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윈회 신임 위원장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윈회 신임 위원장
“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 우리 문화예술위원회는 사랑받는 국민의 기관이 되겠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모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미술 음악 무용 문학 연극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활동을 지원하는 기구다. 특히 좋은 기획안이 있어도 예산이 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창작인에게는 ‘구세주’역할을 해주는 중요한 기구다. 연간 예산이 1,100억원, 11개 분과 소위원회 위원만 77명, 예술극장 미술관 예술정보관 예술인력개발원 등 직속 기관이 7곳…. 그 어떤 문화예술 기관보다도 규모가 크고, 힘이 막강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총괄하는 위원장으로 김정헌 공주대 교수가 임명됐다. 시각예술분과 소위원장이었던, 아니 그 이전에 화가인 그가 정말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지난 9월 7일 문화관광부(장관 김종민)에서 제2대 위원장 임명식을 가진 이후, 업무 파악 및 각종 회의 일정 속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정헌 위원장을 만났다.

예술은 정치다?
민중미술 1세대 혹은 문화운동 1세대라고 불리는 김정헌 위원장은 민예총 이사, 민미협 공동의장, 문화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및 상임공동대표를 지낸 바 있다. 1997년 학고재에서 열었던 개인전을 통해 작가로서 예술의 소통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재고하게 됐고, “공공성과 대중 소통 없는 예술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술가의 작품 외적인 사회 활동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물었다. “예술가들의 책무를 자기 작품의 창작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예술가들의 사회적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예술가도 공인으로 규정돼야 한다. 작품 또한 사회적 발언의 형태여야 한다.” 민중미술 작가의 말답다. 정치적 예술이라고 해야 하나, 예술은 정치라고 해야 하나? 어찌 보면 삶이 정치다. 특정한 미술 장르를 옹호하는 입장을 떠나 이러한 예술가적 태도야말로 문화예술과 공공을 잇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가져야 마땅한 가치관이다. 또한 대학에서 미술교육과 교수를 맡아왔기에 김 위원장이 ‘예술가를 위한 예술’보다는 ‘감상자를 위한 예술’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언론과 위원회 일부 직원들은 새로운 위원장을 반갑게 맞기보다는 ‘코드 인사’라고 비난하며, “앞으로 정부의 예술 지원이 좌파 단체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넘겨 짚었다. 여기서 김 위원장의 선임 과정과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1대 위원장 선임 때와 달리, 김 위원장은 공모제에 의한 문화관광부의 임명 절차(금년 4월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포함한 300여 곳의 준정부 기구는 ‘공공기관 운영 관련법’이 적용됐다)를 거쳐 선정됐다. 그 역시 노무현 정권 내내 따라 붙는 ‘코드 인사 논란’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지난 2005년 문예진흥원에서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되면서 초대 위원장을 맡았던 김병익 씨가 임기를 1년이나 남긴 채 그만 두고 그 후임을 뽑는 것이어서, 어느 누가 선정된 들 뒷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사실 김병익 전 위원장이 그만 두기까지 이미 위원회 내의 심각한 내분이 벌어진 상태였다. 전 위원장의 퇴임 후에도 원월드뮤직페스티벌 개최와 관련해 위원회 내부에서 책임을 묻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는 지속됐다.위원회 바깥의 원성도 크다. 장르 이기주의, 시대에 뒤처지는 예술 지원 제도, 행정 중심의 업무 방식 등은 문예진흥원에서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한 이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주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문화예술위원회는 합의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분과별 11명의 소위원장의 의사 결정이 순탄치 못하고 위원회와 사무처 간의 소통 또한 원활하지 않다. 게다가 민간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어 기관 자체의 자율성 또한 제한되어 있는 상태다. 예술과 대중의 ‘소통’을 위한 기구인데, 의사 ‘소통’이 잘 안 되는 듯하다.

“상담식 지원 늘리고, 기금 마련에 주력할 것”
김정헌 위원장은 “2년 전 민간자율기구로 출범한 문화예술위원회가 현장성과 효율성을 함께 갖춘 예술정책기구로 자리잡도록 하겠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위원회가 합의제 기구라고는 하나 그동안 자문위원과 다를 바 없던 위원들의 역할을 재배치하고 사무처 조직과 성격도 개선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다”라면서, 3년간의 임기 동안 보다 전략적 혁신과 그에 따른 실천으로 위원장 선임을 둘러싼 논란들을 불식시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2년 간 소위원회에 몸담으면서 누구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미 지난 2월, 본지의 프리즘 코너에서 ‘문화예술위원회 개혁은 맴돌고 있다’는 글로 위원회의 문제점을 자성적인 글로 피력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임명식에 즈음해서 몇 가지 개혁안을 내놓았다. “기획 발굴을 통한 지원이나 컨설팅센터를 통한 상담식 지원제도를 정착시켜나가겠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이야기됐던‘집중과 선택’의 지원 시스템이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공모를 통한 소액다건 식의 지원방식이 지속되면서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 그 이유다. 즉 정기 공모사업보다는 계기성 지원사업이 늘어날 전망이다. 또한 김 위원장은 “상담식 지원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향후 2-3년간 사무처 직원들을 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라는 방안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위원회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출범 초기부터 제기된 재원 조달 문제”라고 했다.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할 수 있는 기금은 약 4천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문예진흥원 시기에 조성해 놓았던 5천억 원에서 지난 2년 동안 1천억 원이나 까먹은 것이다. 문예진흥원 때의 주 수익처가 영화, 공연 티켓으로부터 떼어온 문예진흥기금이었다면, 현재 문화예술위원의 주 수익처는 복권기금이다. 그러나 복권기금의 액수가 초반에 300억 원에서 올해 130억 원으로 급격히 저하된 것을 볼 때 재원 마련은 시급한 문제다. 김 위원장은 “마음 같아서는 나라에서 ‘문화세금’ 같은 것을 만들었으면 좋겠지만, 국민의 반발이 강할 테고 법안 통과 과정부터 순탄치 않을 것”이라면서 “결국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문화예술의 공익성을 강조해 후원금을 발로 뛰어 끌어올 수밖에 없다. 근데 당장 신정아 사건 때문에 큰일이다”라며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2008년 정기 공모사업 지원공고가 떴다. 벌써부터 주변에는 부랴부랴 지원 양식을 쓰는 이들이 많다. 우리 미술인들이 꿈을 펼치고, 예술을 펼치는 데 ‘날개’를 달아주는 곳이 문화예술위원회인 만큼, 사람들의 안테나는 항상 그 곳을 향해 있다. 그래서 위원회의 행보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위원회의 행보를 이끌어 가는 김정헌 위원장의 탁월한 행정력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하다. | 호경윤 수석기자

북촌지역 New 프로젝트-2007 플랫폼 서울

플랫폼 서울
한국의 향기와 정취를 담은 북촌 알리기

하이테크가 범람하는 현대적 질서에서 동떨어져 고유의 색채를 보존하고 있는 서울의 북촌 지역에 동시대의 다양한 미술과 문화를 이입하는 미술 프로젝트 <플랫폼 서울 2007>(10. 6~11. 4). 북촌 지역 20여개의 미술관, 갤러리 등이 참여하는 이 행사는 우리 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성찰할 수 있는 예술 체험 프로그램이다.

북촌(北村)은 서울 중심가에서 전통의 향취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다. 예전엔 전통의 향취를 만끽하고 싶을 때 인사동을 찾았지만, 인사동이 관광 명소로 자리 잡으며 지나친 상업화와 국적 불명의 짬뽕 가게들로 뒤범벅되면서 사람들은 조금 더 한적한 북촌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청계천과 종로의 위쪽에 위치했다고 해서 불리게 된 북촌마을은 북악산 자락 아래 동서로 펼쳐진 가회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계동, 인사동, 사간동 등을 통칭한다. 한옥마을의 옛 향기와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북촌은 골목골목마다 갤러리와 미술관이 위치한 문화중심지역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은 르코르뷔지에가 가장 인간적인 길이라 말했던 ‘당나귀가 다니는 길’을 연상시키고, 몇 평 안 되는 작은 식당이나 가게들은 현대화의 광풍에서 벗어나 아기자기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 동네의 지그재그, 오르락내리락하는 골목길은 매력이라면 매력이지만, 이곳에 익숙한 아트피플들조차 종종 길을 잃고 헤맬 때가 많다.
작년 기자가 베이징 따산즈예술지구를 방문했을 때 수직, 수평의 단선적인 구조와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우리나라에서 예술마을이라곤 허허벌판의 헤이리 아니면 정신 없는 인사동만 구경했던 탓에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만의 예술구역은 어떤 것일까 상상하고, 우리도 자연스런 예술지역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너무 상업적인 것 말고, 이국적인 것 말고 우리의 색깔이 담긴 곳 말이다. 수직 수평의 바둑판 구조가 힘든 우리 지형에선 북촌처럼 구불구불한 지그재그 길이 우리만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북촌 길 구석구석 전통 가옥을 그대로 활용한 갤러리와 가게들이 만들어내는 옛스러움과 새로움의 조화가 참 아름답다.
북촌 일대 미술관, 갤러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플랫폼 서울>은 이렇듯 구석구석 숨어 있는 갤러리들을 쉽게 다가서게 하고 대중과 예술이 호흡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플랫폼 서울>은 ‘사무소’(대표 김선정) 주최로 역사성과 현대성을 간직한 북촌 지역의 20여개의 화랑 및 미술관 등에서 약 한 달 간 펼쳐진다. 이번 행사는 한 전시장에서 다른 전시장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산보’라는 관람 형태를 가지고 진행된다.
<플랫폼 서울>은 금호미술관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Tomorrow>전을 시작으로 지역 내 화랑 및 미술관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연계된다. 21세기 국제 무대에서 주목 받고 있는 32명의 작가가 참가하는 이 전시는 허구적인 제도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Fiction), 성장엔진으로서의 힘(Power)과 무한한 가능성(Possibility)의 미래, 그리고 크고 작은 공동체(Community)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라는 4가지의 주제로 펼쳐진다.
최근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양혜규는 이번 전시를 위해 <내일을 위한 휴일>이란 작품을 선보인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휴일은 일종의 중단, 휴지기 상태 또는 경제적 손실을 의미한다. 작가는 추석이라는 한국의 대표적 명절 동안, 서울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휴지기’ 상태의 도시 공간을 기록하는 작업을 구상했다. 한국 대중문화의 통속적 요소들을 차용해 작업하는 최정화는 이번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서 착안해 아트선재센터 내의 한옥을 은박 호일로 덮어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장영혜중공업의 <MAGISTER DIXIT>는 ‘어제’보다 나아질 것이 없으며, ‘어제’와 유사할 ‘내일’에 대한 체념적이고 비관적인 작가의 의견이 반영된 작품이다.
또 한국, 일본, 중국의 현대미술가들로 결성된 다국적 미술가 그룹 ‘Xijing Men’은 ‘서경에 사는 사람’이란 뜻을 가졌다. 이 그룹은 일본의 오자와 츠요시, 중국의 첸 샤오시옹, 한국의 김홍석으로 이루어져 이번에 첫 협력 작업을 선보인다. 북경과 남경은 중국에, 동경은 일본에 위치하지만 서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중, 일 삼국의 작가들이 모여 가상의 유토피아적 공간을 창조한다는 발상이 유머러스한 공감을 얻어낸다. 장소특수성과 그 장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특수성을 적극 활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시마부쿠의 작업도 흥미롭다. 시마부쿠는 보통 미술 전시의 오프닝 리셉션이 저녁에 행해진다는 점에 착안해, 미술관이 열리지 않는 새벽 시간을 이용하는 행사를 기획한다. 새벽 6시 미술관 옥상에서 시작되어, 해가 떠오르는 이른 아침의 도시 풍경 속에 한국의 전통적인 아침식사 장면이 연출된다.
이밖에도 서도호, 이불, 오인환(한국), 타다수 다카미네(일본), 차오 페이, 롱마치프로젝트, 슈 젠(중국), 수라시 쿠솔롱, 나빈 라완차이쿨, 리크릿 티라바니자(태국), 임자춘(싱가폴), 안토니오 문타다스, 알란 세큘러, 마사 로슬러, 사라 모리스(미국), 리암 길릭, 티노 세갈(영국), 토비아스 레베르거, 데모크라시아(스페인), 세르지오 프레고(독일), 브루노 세랄롱그, 피에르 위그(프랑스), 얀스 해닝(덴마크), 얀 크리스텐슨(노르웨이), 마이 투 페레(스위스) 등이 참여한다.
메인 전시 <Tomorrow>전을 비롯해, 북촌 곳곳에서 펼쳐질 <플랫폼 서울>은 행사 기간 동안 화랑을 연장 개장하고, 심포지엄, 영화상영회, 작가와의 대화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한다. 또 각각의 코스에 맞는 도슨트 투어 및 ‘희망 자전거에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등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돼 있다. 지역 공동체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형식의 축제 <플랫폼 서울>을 통해 북촌의 예술 정취를 만끽해 보자. | 이성희 기자

스페이스-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
새로운 복합예술문화의 시대를 열다

광장시장, 종묘, 가까이에 청계천, 그리고 동대문. ‘종로 5가’하면 생각나는 것들이다. 오래된 건물과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푸근하고 서민적인 냄새가 얼큰히 배어나는 이 동네가 실은 뮤지컬 ‘매니아’들이 줄기차게 드나들던 동네라는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1993년 설립된 이래, 알짜배기 공연들을 줄줄이 소개해 온‘연강홀’이 바로 종로 5가 연지동에 자리하지 않았던가.
연강홀에서의 소소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겐 다소 아쉬울 소식 하나. 더 이상 이전의 연강홀에서는 공연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이제 최첨단 시설을 갖춘 연강홀에서 더욱 근사한 공연들을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연강홀이 6개월간의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공연장, 갤러리, 카페 등을 겸비한 복합문화공간 ‘두산아트센터’로 재개관한 것이다. 세련된 외관부터가 조용하던 동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니, 그 일대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다.
두산아트센터는 2005년 리노베이션 계획이 확정된 후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여 기존 한 개의 공연장을 ‘연강홀’과 ‘스페이스 111’ 각 두 개로 확장했다. 바다, 김선영, 정선아 주연의 뮤지컬 <텔미 온어 선데이>를 개관작으로 선보이는 ‘연강홀’은‘뮤지컬 전문극장’으로 새롭게 탈바꿈하여 그간 쌓아 온 명성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크기도 620석 규모로 확장했다. 또한 두산 창립 111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230석 규모의 ‘스페이스 111’은 연극, 콘서트 등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중무장한 갖가지 공연으로 관람객을 맞을 예정이다. 소극장 규모의 공간에서 관객들은 아티스트들과 직접적인 교감을 누릴 수 있다. 개관공연으로 국내 출신의 세계적인 재즈싱어 나윤선 듀오 콘서트를 무대에 올린다.
여기에 새로운 소식 하나가 더 추가됐다. 두산아트센터 재개관 소식 중에서도 단연 우리 미술계에 반가운, 바로 ‘두산갤러리’ 오픈 소식이다. 공연뿐만 아니라 미술 분야까지 확대하여, 동시대 문화예술계의 흐름을 담아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야심찬 포부가 엿보인다. 두산갤러리는 개관 전시로, 최근 세계 미술시장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중국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중국현대조각전 CHINA BIG BOY>을 선보인다. 대만 아시아아트센터 큐레이터 알란 리와 함께 이 전시를 기획한 두산갤러리 디렉터 윌리엄 리는 “일반인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고자 노력했다. 두산갤러리는 공연을 보러 오는 남녀노소의 다양한 관객들이 쉽게 작품을 접할 수 있는 ‘턱 없는 갤러리’를 지향한다”며 앞으로의 행보를 밝혔다.
이번 전시는 그 행보에 걸맞게 경쾌하고 원색적인 발랄함이 돋보이는 중국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선정됐다. 하지만‘실제 너머의 진실(A Truth Be yond the Real)’이라는 전시의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의 겉 표면에 드러나는 밝은 이미지 내면에는 문화혁명과 적색 오성기 물결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1960년대 출생 젊은 작가들의 삶과 경험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사실 전시 제목처럼 조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난해하고 어려운 추상화보다는, 발랄하고 원색적으로 구상 작품을 제작하는 화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인물을 왜곡시켜 유머러스한 특징을 경쾌하게 부각시키는 천 원링(Chen Wenling)과 리 천(Li Chen), 강렬한 여인의 얼굴을 그려 국내에도 여러 전시에서 소개된 바 있는 펑 정지에(Feng Zhengjie), 그 외에도 유 판(Yu Fan), 리지 카이(Li Jikai), 수이 지안구어(Sui Jianguo), 후아 친(Hua Qing) 등 총 14명의 중국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개관전을 빛낸다.
‘턱 없는 갤러리’를 지향하다보니, 작품들이 아예 갤러리 문턱을 넘어버렸다. 두산갤러리의 개관전시는 1층에 위치한 갤러리 공간뿐만 아니라, 아트센터 곳곳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 천 원링의 작품 <Little Pig>와 <Big Boy>는 만남의 장소에 영구 설치된다고 한다. 이 귀여운 중국 조각들은 두산아트센터의 새로운 마스코트로 거듭나지 않을까.
차후 예정 전시들도 장소의 특성에 맞게 갖가지 새로운 형식들이 시도된다고 하니,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12월에는 작가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 전시한 후 전국의 보육원을 직접 찾아가 트리를 설치해 주는 <크리스마스 트리 프로젝트>, 갤러리에 무대 공간을 설치하여 저녁에는 공연을 하고 낮에는 그 무대를 전시하는 색다른 시도의 ‘갤러리 연극’, <드라마를 전시한다-그녀의 방>전이 계획돼 있다.
전시와 공연, 거기에 곁들이는 따뜻한 커피 한잔까지. 복잡한 도시의 삶 속에서 새로운 공간의 문화와 여유를 찾는 현대인들의 즐거운 비명이 벌써부터 귀에 아른거린다. | 장승연 기자

ZKM 터모클라인-새로운 아시아의 물결展

구보씨, 칼스루헤 가다
ZKM 개관 10주년 기념전 <터모클라인-새로운 아시아의 물결>

아시아의 독특하고 실험적인 현대미술이 유럽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독일 칼스루헤의 ZKM미술관이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터모클라인-새로운 아시아의 물결(Thermocline of Art: New Asian Waves>전(6. 14~11. 4)을 마련했다. 세계적인 미디어 아트의 ‘산실’로 불리는 칼스루헤의 ZKM에서 아시아 미술의 현주소를
알리고 있다.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고속열차 ICE로 1시간 반거리에 위치한 남쪽 마을 칼스루헤. 스위스 바젤과 근접해 있으면서 독일 북부로 가는 길목에 있죠. 그런데 동네는 왜 이리 황량할까요? 유럽이 온통 아트 열기로 달아올랐다는 데 소식도 모르나 봅니다. 기차에서 내렸을 때 구보씨가 느낀 황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었습니다. 보통 기차역 앞에는 선술집이나 레스토랑 몇 개는 눈에 띄게 마련인데, 구보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독일산 ‘맥도날드’ 간판뿐이었죠. 독일의 특산물, 통통한 소시지와 맑고 시원한 맥주를 상상하면서 달려 왔건만…. 그래도 유럽에 발 닿은 첫 날인데 맥도날드는 너무하지 않나요? 쓸쓸히 빅맥을 씹으며 이곳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생각했죠. 그래서 하이테크 미디어가 발전한 것일까요? 그런데 고요한 칼스루헤의 소란은 어느 한 건물 내부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독일을 떠들썩하게 한 ZKM 미술관에서 열리는 <터모클라인>전입니다. 이 전시로 소도시 칼스루헤는 아시아 미디어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ZKM, 세계 최고의 미디어 아트기관
칼스루헤의 자랑, ZKM(Zentrum fur Kunst und Medien technologie)은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 아트 기관이랍니다. 이제 개관 10년에 접어드는 ZKM은 첨단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전시를 선보여 왔고, 전문 교육기관과 미디어미술관, 현대미술관, 극장, 도서관, 연구소 등을 두루 갖춘 종합아트센터입니다. ZKM은 또 ‘미디어 아트의 선두’ 답게 백남준을 비롯해 브루스 나우만, 빌 비올라,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등의 주요 작품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터모클라인>전은 ZKM이 가진 두 개의 전시장 가운데, 새로운 예술을 위한 미술관(Museum fuer Neur Nunst)에서 ZKM 개관 10주년을 맞아 미술관의 성격을 재정의하고자 마련된 전시입니다. 이원일 총감독의 기획으로 ZKM 관장 피터 바이블(Peter Weiebl)과 ZKM 컨템포러리미술관 책임자 그레고리 얀슨(Gregor Jansen)이 공동감독을 맡은 이 전시는 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18개국, 117명의 작가가 참여해 서구 미술의 본거지에서 아시아 미술의 ‘지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아시아 미술 붐을 반영한 것이죠. 유럽과 미국, 그리고 비서구라는 이분법으로 구축된 미술계의 지형도를 깨뜨리고자 한 시도가 돋보입니다. 유럽 시각에서 본 타자적 관점이 아니라 아시아의 문화적 혼성과 혼란을 주체적 시각으로 표현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번 전시는 전시 제목이자 주제를 자연 현상에서 빌려 왔습니다. ‘Thermocline(수온약층, 또는 변온층)’은 따뜻한 조류와 찬 조류가 바다 속에서 만나면서 온도가 급격히 변화하는 층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이원일 감독은 이 용어를 “세계화와 지역주의 사이의 문화 변용과 대립, 전통과 현대 간의 불화와 분쟁, 상위 문화와 하위 문화간의 충돌과 공존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가 채택한 전시의 부주제들은 디지털화된 사회, 경제, 정치적 현상, 글로벌리즘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과 같은 일반적인 이슈부터 넌센스적 시공간, 아시아적 상상과 판타지, 아시아적 은유와 같은 새로운 시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시 오프닝은 정말 떠들썩했습니다. 전시의 규모야 비엔날레에 비교할 바 아니지만 어쨌든 베니스비엔날레, 바젤아트페어, 카셀도큐멘타, 뮌스터조각프로젝트의 개막일과 하루 차이로 이어져 아트피플들의 발길을 끌어들였던 것입니다. ZKM이 있는 칼스루헤는 독일 북부로 향하는 빅 이벤트 코스의 길목에 있으니 말하자면 ‘쉬어가는’ 정거장인 셈이죠. 물론 전시 소문을 듣고 구보씨처럼 칼스루헤로 바로 찾아 온 이들도 많았지만 베니스에서 바젤을 거쳐 카셀로 가는 길에 들른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엘레나 하이스(Alanna Heiss) P.S.1 MoMA 관장, 데이빗 로스(David Ross) 전 SF MoMA 관장, 퐁피두센터 큐레이터는 물론 아시아의 유명 큐레이터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해외에 나간 구보씨도 안면 있는 분들 인사하느라 정신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수많은 아트피플들이 함께 하는 가운데 오프닝 파티에선 폭탄주 시연 퍼포먼스가 있었죠. 왠 폭탄주냐고요? 전시 제목이 터모클라인이잖아요. 전시 도록 표지도 시원한 폭탄주 사진으로 덮었습니다. 이원일 감독이 베이징에서 작가들과 술을 마시다가 서로 다른 성질의 술이 충돌하는 이질적 에너지에서 착안했다죠. 맥주와 양주가 충돌하는 현상이 외래 문화와 우리 문화가 충돌하는 과정을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수백 개의 잔이 2층으로 놓이고 다함께 손가락으로 잔을 톡 건드리니 차례대로 쓰러집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는 외국인들은 ‘원더풀!’을 외치며 탄성을 질러댔죠.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구보씨도 뿌듯했답니다. 그 많던 술잔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사라져버렸어요. 그래서 구보씨는 한잔도 마시지 못했답니다. 이렇게 아쉬울 때가…. 아직 독일산 맥주도 못 마셨는데, 폭탄주도 놓쳐버렸네요. 느림보 구보씨의 부족한 순발력을 탓해야죠 뭐.

서로 다른 형질의 충돌과 혼합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전시를 들여다 볼까요. 미술관 입구 중정 카페테리아로 진입하면 천장에서 큰 축을 그리며 왔다 갔다 하는 빨간 샹들리에가 보입니다. 샹들리에가 움직이니 불안할 따름입니다. 수잔 빅터(Suzann Victor)의 작품입니다. 전시장 안의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한 혼란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전시장 입구에선 첸 웬링(Chen Wenling)의 중국 풍경을 담은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이 주변의 이미지를 반사시키고 이것을 왜곡시켜 잘게 부수어 일종의 긴장과 충돌의 혼재를 또 한 번 경험하게 합니다. 전시장 안에는 1층부터 3층을 관통하는 두 개의 열린 공간이 존재하는데, 그러한 특이한 건축 구조 때문에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품이 관객을 감싸고 다가서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또 열린 공간을 둘러싸는 독립된 개별 전시 공간들도 함께 구성되어 있어 집중과 분산, 통일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비주얼 시나리오를 그려내기 참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전시장 입구에서 전시장을 휙 둘러보면 전시장 2층 벽을 가로지르는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인물을 담은 영상에 시선이 머물게 됩니다. 매튜 엔구이(Matthew Ngui)의 <수영 장면>이라는 작품이죠.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정적이면서도 유동적인 비주얼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리네요. 바로 엔구이의 영상의 대각선에 자리 잡은 이기봉의 <Extra-Ordinary-Late-Summer>입니다. 책상에 놓인 책 한권 위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물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철학적 명상에 빠져들게 됩니다. 미디어와 수공의 간극을 메우는 설치 작품으로, 공간 활용이 돋보였습니다. 여기서 잔잔한 감동이 물결칠 때면 어디선가 불규칙하게 들려오는 굉음에 이어 비행기 그림자가 천정을 뒤덮습니다. 대만의 신진작가 쿠오 아이첸(Kuo I-chen)의 <ZKM 침입하기>였군요.
중앙 전시 공간에는 일본작가 아이다 마코토(Aida Makoto)의 전라의 소녀가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모습이 벽면을 가득 채우는가하면, 유지노 무네테루(Ujino Muneteru)의 온갖 가재도구와 책, 인형들이 걸려 있는 대포차, 자본주의의 번식력을 상징하는 왕 마이(Wang Mai)의 나무 로봇, 왕 칭송의 사진작품 <이민자의 꿈> 등이 설치돼 있죠. 중국작가들의 재치와 시니컬한 유희, 일본의 오타쿠 문화 등이 충돌하면서 서로 상충하는 강한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1층부터 3층을 가로지르는 시오타 치하루(Shiota Chiharu)의 건축구조물과 쿠리바야시 타카시 (Kuri bayashi Takashi)의 유머러스한 물개 형상의 소프트 조각 <새>는 정정주의 <Shau haus-ZKM>, 노라셋 바이사야쿨(Noraset Vaisayakul)>의 작품과 어울려 건축적인 비전을 제시하면서, 아시아 도시화의 재구성화라는 맥락을 드러냅니다.
또 2층 열린 공간에는 부처의 머리에서 전 세계 잡지들이 솟아 나와 천정을 가득 채운 대만작가 첸 롱빈(Chen Longbin)의 작품과 식물의 돌연변이의 변이를 모색하는 한종근의 <진화하는 신화>, 힌두교 성전에 나온 에피소드를 형상화한 인도작가 리나 사이니 칼라(Reena Saini Kallat)의 작품, 여성 신체에 천을 감싸 공중에 설치한 티타루비(Titarubi)의 <바디스케이프> 등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서구 중심의 시각 재정립
이밖에도 여러 작가가 애니메이션과 스틸사진, 비디오 등의 매체를 가로지르며 리얼리티를 다루는 다양한 실험을 선보여 감옥에 갇힌 듯한 서구미술에 비해 신선해 보이더군요.이원일 감독은 이국적인 것과 인종학적인 것에 집중하는 유럽인의 관점을 교정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이번 전시의 의의는 외부 관찰자가 아니라 내부 관찰자의 시각으로 아시아 미술을 선보였다는 점입니다.
<터모클라인>전에서는 특히 한국작가들의 선전이 돋보였습니다. 한국 참여작가는 오용석 김연진 박홍순 윤정미 김동욱 이이남 이길우 이상현 김준 리경 최선명 정정주 뮌 신기운 정연두 진기종 이기봉 한종근 이경호 진시연 박준범 이지송 이윤진 이승호 김성환까지 총 25명입니다. 요즘 세계에서 한국미술 알리기에 힘쓰고 있지만, 이렇게 대규모 전시가 열린 적은 없었을 껄요? 외국 큐레이터들도 우리 작가들의 역량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특히나 신기운은 전시 오픈 후 바로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거머쥐었으니 더욱 의미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용석의 작품은 전시 포스터에 적용됐고, 20대 후반의 신예 작가 진기종의 글로벌 관점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독일 북부로 가는 ‘정거장’을 들르는 기분으로 전시를 관람했던 미술인들이 카셀도큐멘타와 뮌스터조각프로젝트를 본 후에 전시를 재평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 정거장에서 아시아 미술을 맛본 사람들을 다음 카셀, 뮌스터, 심지어는 뒤셀도르프에서까지 쭉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5년, 10년에 한 번 열리는 전시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실망스럽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카셀도큐멘타는 제3세계 작가들을 대거 투입했지만 백인 우월주의적 시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과거에 비해 돋보이는 ‘대작’이 없다는 평입니다.
카셀도큐멘타는 기획자의 방향대로 따라가게 만드는 전시였죠. 전시를 볼 때야 빨리 다 봐야 한다는 부담감에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관람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관람객에게 계속 텍스트를 읽을 것을 강요하니 자율 감상의 권리를 박탈당한 느낌이랄까요. 온전히 작품으로 빠져들 수 없게 하는 전시였습니다.
또 뮌스터조각프로젝트야 프로젝트의 30년 역사를 이어가는 공공적 성격이 강한 전시였구요. 뮌스터에선 사실 숨은그림찾기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진정한 뚜벅이 ‘구보씨’는 자전거를 탈줄 몰라 정말 열심히 걸어 다녔거든요. 해가 저물어가는 줄도 모르고 작품 찾겠다고 먼 동네까지 갔다가 길 잃어버려 새벽까지 헤매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현대미술의 최첨단을 걷는 뒤셀도르프까지 방문하니 구보씨, 일주일이 일 년 같이 느껴졌답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칠 무렵 다시 처음에 봤던 ZKM 전시를 되돌아봤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분리된 유럽의 단선적 개념과 달리 ‘천년이 하루와 같은’ 동양적 사고와 미디어의 결합은 시공간을 초월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문경원, 생성의 풍경

생성의 풍경
글|강태희·한예종 미술이론과 교수

문경원은 ‘미디어도 할 수 있는 작가’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지난 개인전은 (성곡미술관 3. 30~4. 29) 드로잉과 회화 작업이 주축이 된 ‘풍경’ 전시로 미디어 아트 전시라면 단골로 등장하는 인터랙티브 작업도, 테크놀로지의 신기하고 현란한 볼거리도 없었다. 당대의 미디어 환경이 고도의 하이테크를 수반한 이미지와 텍스트의 정보 공간이라면 문경원은 이를 살짝 빗겨 선다. 전통적인 미술과 새로운 미디어 아트 사이에서 일찌감치 ‘디지털 유물론’의 폐해나 기술 위주 작업의 형식적 공허함을 고민해 온 그는 미디어를 다루더라도 그것의 안팎을 뒤집거나 뒤틀어 보기에 주력한다. <사물화된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세계를 풍경으로 접근해 본 이번 전시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이 전시에서 ‘사물화’한 미디어 아트의 풍경까지도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미디어, 풍경, 사물화
풍경은 우리 시각장의 가장 일차적인 대상이지만 우리 역시 타인의 풍경의 일부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사물과 풍경에게도 시시각각 변하는 나름대로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사고와 관념으로 대상화시키고 ‘사물화’한다. ‘사물화’는 원래 마르크스의 소외 개념을 기초로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상황을 진단한 루카치의 용어로, 간단하게는 사회적 관계가 사물의 관계로 현상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물들이 수식(數式)으로 환 원되고 있는 데 대한 위기감에서 현상학이 탄생했다고 전해지거니와 현상적 신체와 세계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한 것은 메를로-퐁티였다. 그는 풍경의 인식은 공간에 대한 체험적 인식을 전제하고 이런 ‘공간의 향유’는 몸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우리의 육화(肉化)된 시선이 주체와 대상의 이원적 대립구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보았다.
문경원이 풍경의 대표로 선발한 도시와 나무와 사람들은 메를로-퐁티가 존재 일반을 물리적 차원, 생명적 차원, 그리고 인간적 차원 세 가지로 구분한 것과 상응한다. 후자가 이들을 각기 다른 내재적 질서를 지니지만 서로 미끄러지며 세계에 내속하는 존재로 규명했듯이 문경원 역시 이들을 한 공간에 풀어놓고 미디어의 경로를 거치면서 그들이 어떤 식으로 변모하면서 우리의 일상적인 풍경과 세계의 의미를 교란하고 또 재구성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런 문맥에서 그가 키워드로 택한 사물화는 풍경에 덧씌워진 주지주의적, 환원주의적 각질을 벗겨내고 육화된 주체와 상호감각적인 통일체로서 그 대상성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일종의 ‘현상학적 물활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자 결과적인 유동성과 개방성의 모호함까지를 포함하는 시선으로 모든 관습적 시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열린 작업관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때 우리의 고착된 시각장을 헤집고 전혀 새로운 시공간의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미디어 아트는 이런 현상학적인 체험에 가장 적합한 분야이기도 하다.

템플 앤드 템포
문경원은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로 미디어 아트에 관심을 가지고 혼자 공부를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부터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칼아츠(Cal Arts)에서 개념적이고 융합적인 학제간 연구와 더불어 영화, 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는데 미디어 프로세싱을 하면서도 드로잉과 회화를 멀리하지 않았다. 당초 만들기와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기계적인 꼼꼼한 수공작업이 감성에 맞아서 엄청난 시간과 끈기가 소요되는 미디어 프로세싱의 실험과 실천 과정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귀국 후에는 <젊은 모색> <아트 스펙트럼>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후쿠오카미술관 레지던스> <부산비엔날레> 등 국내외 주요 전시에 참여하고 개인전을 갖는 한편 다양한 인문학과의 연계를 고찰하며 미디어 이론 공부를 병행해 왔다.
이렇듯 문경원의 관심사는 광범위한 인문학의 이슈들이지만 그 주된 주제는 늘 인간과 그들이 구성하는 시공의 모습 즉 풍경으로 모아졌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한 인물 드로잉과 그것을 기본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나 미디어 설치작업들은 대부분 추상적인 익명의 공간에서 걷고 놀이하고 움직이는 군상으로 이루어졌다. 이때 작가는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혹은 미디어 설치작업 사이의 경계를 부인하고 또 그 해체를 의도하는 의미에서 드로잉과 미디어 작업을 병행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군상은 처음에는 다소 복잡하게 연결되고 중첩되었다가 점차 개별 단위로 분화하고 급기야는 규칙적인 그리드의 요소로까지 변모했다. 인물들은 개성과 정서의 주체이기보다는 인물 풍경의 구성요소 또는 단위로 작동하며 그 개별화한 제스처들은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동작과 움직임으로 시공에 소속되고 또 구성하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당초 인물들과 함께 등장했던 미니어처 건물이나 사물들은 도시풍경으로 발전하여 군상을 보다 구체적인 공간 속에 설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칼아츠 졸업전 <템플 앤드 템포(Temple and Tempo)>에서 문경원은 정지와 운동의 시공간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전시의 제목을 빌려온 종교현상학자 엘리아데는 시공상의 지평운동의 공간적인 면은 템플(templus, temple), 시간적인 면은 템포(tempus, tempo)로 표시되지만 둘은 서로 교차되는 개념임을 설명한 바 있는데 이 공간과 시간의 문제는 최근의 전시를 포함, 문경원의 작업 전반을 포괄하는 메인 테마라 해도 과함이 없다. 이 전시에는 격자무늬로 나비를 촘촘히 그려 넣은 빛바랜 기념사진들, 연속적인 날갯짓을 하는 박제된 나비, 회전축을 중심으로 교차, 순환하는 아버지와 어린 딸의 영상, 그리고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손때 묻은 중고 인형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모두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시공의 좌표나 그 생멸의 반복적 주기들을 표상하는 것이었다. 특히 정적이면서 동시에 동적인 모니터 상의 완벽한 좌우대칭의 나비 이미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재현되고 코드화된 시공에 대한 완벽한 메타포이다. 지면관계상 상술할 수 없지만 이 전시 이후 등장한 인물 군상들은 그 자신이 시공의 축을 형성하고 또 그 안에서의 자발적 움직임으로 개인과 사회 또는 우주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무수한 점이자 픽셀들이 되었다. <Follow me>(2002), <Look at me>(2004), <Stop it>(2004) 등의 후속 작업에서의 군상의 움직임은 때로는 빠르고 재미있게, 또 때로는 규칙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설정에 따라 움직이고 또 랜덤한 이합집산을 일삼으며 개인과 집단의 시공을 규명해 준다. 이때 문경원의 궁극적인 관심은 개개인의 삶의 모습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시공의 풍경과 그 의미에 대한 통찰이 된다.

우주의 축인 ‘나무’와 역사적 시간의 상징 ‘도시’
나무는 생명의 기념비이자 그 주기적 갱신의 능력으로 우주의 축으로 불린다. 그것은 자연풍경 가운데 인간과 가장 가까운 교감의 파트너이자 재현의 대상이기도 하다. 문경원은 수적이고 선적인 작업을 하다 그 대척점에 있는 자연으로서의 나무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전시에 등장한 나무들은 연작 회화 <나무>들로부터 나뭇가지들의 다양한 삶의 순간들을 기록한 <계보학적 나무>, 생장과 소멸의 순환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일기>, 그리고 생중계된 전시장 앞뜰의 살아 있는 나무까지 다양하다. 나무 연작의 모태인 <나무 1>은 모노톤 배경에 뿌리 부분이 생략된 채 화면을 좌우대칭으로 배분하고 있어서 전작인 나비처럼 모니터에 떠 있는 느낌을 주며 밑동이 사람의 몸과 합쳐진 다른 나무들 역시 구체적인 배경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의 공간은 단일시점의 원근법이 적용되지 않는 동양화나 산수화의 그것에 더 가까우며 결과적으로 나무의 리얼리티와 관념화된 나무 사이에서 떠있는 모호한 존재가 된다.
작가는 <계보학적 나무>의 구부러진 나뭇가지들의 모습을 컴퓨터에 실행시키기 위해 그 선들의 경로를 x, y의 좌표 값으로 환원시키는 과정이 몬드리안의 나무 변환의 과정처럼 진행되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이들은 좌표상의 나무로서 자연이자 미디어이며 생명이자 비생명, 이미지이자 기호로 양자 사이를 넘나들며 자연과 인간, 구상과 추상, 캔버스와 모니터의 대비를 보여주며, 변모하는 애니메이션과 부동의 실제의 나무 이미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적 시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나무는 이런 모든 변수를 포괄하는 근원적인 시공의 교차로이자 축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도심에 있는 인공적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숭례문을 주제로 도시와 사물을 다룬 작업이 <경로: 도시풍경-숭례문>이다. 숭례문은 서울에 있는 유일하게 사방이 트인 유적으로 우리는 매번 다른 각도에서 이를 바라보지만 결코 그 ‘완전한’ 모습을 보지 못한다. 작가는 숭례문이 개방된 계기를 모티프로 삼아 그 사물화된 풍경을 그린다. 사방에서 바라본 숭례문의 드로잉이 순차적으로 보이는 스크린에는 문이 주체가 되어 바라본 주변 풍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들은 스틸 컷들로 이어지는 배경 이미지들과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있다. 그런데 문과 풍경 간의 이런 시각적 상호작용의 핵심은 배경 이미지와 싱크를 맞춘 열린 문을 통해 드러나는 풍경이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닫힌 채 고정되었던 시공간을 진행형과 경로의 그것으로 바꿔 놓아 숭례문의 ‘진정한’ 모습을 시간적 지속과 변화의 대상으로 재정립한다.
또 하나의 도시 풍경인 <경로: 서울과 평양>은 남북한 두 도시 이야기로 이들은 서울과 평양의 광장을 찍은 사진을 모태로 그 색값을 디지털 색으로 변환하여 랜덤한 그리드를 그리도록 만든 작업이다. 이 작품은 속도감 있는 변화와 지속적인 모노톤의 기계음 때문에 가장 통상적인 ‘미디어 아트’에 근접했는데, 다양한 너비와 색채 그리드로 가려진 두 도시를 쏜살같이 가로지르는 자동차들의 움직임과 일정한 시간의 경과 뒤에 도시의 이미지가 서로 뒤바뀌는 것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남북 간의 대화에 대한 반어적인 은유이기도 하다. 그리드들이 스크린을 가릴 때는 두 도시는 동질적인 흐름으로 추상되지만 그 바탕에는 견고한 이질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둘 사이의 교류는 아직은 가상현실에 속할 뿐이다. 드로잉, 사진, 구상, 추상, 시간, 사운드 등의 요소가 버무려진 이 작업은 간결하고 선명한 내용과 형식의 일체감을 보여준다. 문경원의 도시는 전통과 현대를 가로지르는 시사적인 이슈들이 아날로그와 디지털 풍경으로 변화하고 또 교차하는 공간이 되며 그것은 역사적인 시간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다시 인물로-수행적인 시공의 단편들
나무가 그 뿌리에서 사람과 결합했듯이 사람들은 도시 풍경의 일부이며 당연히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풍경이 된다. 이미 말했듯이 인물은 주체이자 대상이며 타자의 풍경이다. 그런데 드로잉 <사람풍경(Peoplescape)>의 인물과 공간의 관계는 과거에 비해 훨씬 느슨하고 자유롭게 설정되었고 무리들은 서로의 배경으로 존재할 뿐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들은 개인으로 또는 개개 그룹의 중심 또는 주변이 되어 전체 풍경을 구성하면서 순간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내지만 그 총화가 스토리로 결집되거나 문맥화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매순간 저절로 만들어지고 변해가는 이를테면 수행적인 시공의 단편들로 고정된 실체도, 불변의 지평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하다.
같은 제목의 미디어 설치작업은 군상의 움직임들로 드로잉의 단편적인 풍경을 시간 속에 풀어놓은 작업이다. 대략 6분 정도 진행되는 과정은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한 인물군의 변신을 다루는데 커졌다 작아지고 모였다 흩어지고 또 그림자에서 선묘로 회귀하는 인물들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개인이나 무리 또는 군중으로 풍경을 만든다. 이때 그림자의 색과 사진풍경의 선택, 그리고 중간 중간의 정지 광경은 랜덤으로 진행되어 일관된 내러티브의 성립을 방해한다.
샤르트르는 타자의 존재와 그 시선을 지옥이나 위협으로 규정했지만 메를로-퐁티는 세계 내 존재의 이런 복수적 양식이 상호배타적이기 보다는 연관이며 내가 사회로부터 등을 돌릴 수는 있어도 상대적으로 위치됨을 그만 둘 수는 없다고 관찰했다. 문경원이 의도하는 것은 물론 이런 관계의 양자택일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시간 속에 규명되는 이들의 ‘상대적 위치됨’이자 주체와 타자 또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교차의 텍스트의 풍경 자체를 펼쳐 보이는 것일 터이다. 이 작업의 기초가 되는 <라이프 피싱(Life Fishing)>의 개체들은 복잡한 기하학적인 선으로 연결되어 마치 그물 속에 포획된 듯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뜨기 같은 움직임의 경로를 시간적인 경과 속에 재현하는 이 작업은 인물들의 상호관계를 연결과 꼬임으로, 더 나아가서는 사냥과 포획으로 파악하고 있어서 인간관계의 양면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메를로-퐁티가 지적한대로 ‘사물화’를 해소하는 방안은 객체의 참된 잠재성과 대상성을 드러내는 실천으로 현실을 존재 아닌 생성으로, 사물 아닌 과정으로 파악하는 일일 것이다. 그는 세계는 공간에 대한 사물의 총체가 아니며 이런 전통적인 대상성의 개념 거부는 그것이 왜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의문을 가지는 일이라고 했다. 이런 언급들은 문경원의 전반적인 작업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는 오래 전에 자신은 작품의 내용을 미리 설정하지 않은 채 모든 이미지를 한 영역 안에 쓸어 넣고 그들이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자발적인 속도로 지속하기를 바랄뿐이라고 말한바 있는데 이 방식은 현해 작업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인간의 제스처나 프레임 안에서의 동적 움직임의 경로를 거미줄처럼 계속 시각화하니 그 선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의 경로가 결국은 인간의 역사나 주변의 풍경을 구축하는 과정을 은유하는 듯 보였다”는 작가의 말이 이를 입증한다.
그의 인물들은, 또 나무와 도시까지도 존재이기보다는 생성이며 무언가로 되어가는 중에 있는 가변적인 대상들이다. 또한 이들이 처한 공간은 말랑말랑한 유동적인 것이며 시간, 특히 디지털적 시간은 전통적인 시간-거리의 관계가 소거된 예측불허의 경로로 존재한다. 이런 열려있고 예측불가한 시공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의 풍경의 참모습이며 그 단편을 제시하는 것이 미디어를 다루는 작가의 문화적 중재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전통적 미술의 연장으로서의 미디어 아트
이번 전시는 <템플 앤드 템포>부터 시작된 인간과 시공간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인 상황으로 펼쳐 보인 것으로 군더더기 없고 정갈한 디스플레이와 프레젠테이션 과정의 기술적 세련미는 그가 축적해 온 미디어 언어의 수준이 녹녹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현상학의 이론을 참조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업을 이해시키는 보조수단이지 작품을 진행시키는 원리 같은 것은 아니었으며 인문학에 대한 관심 역시 작품의 재미를 감소시키지는 않았다. 그의 작업에서 테크놀로지의 모습이 후방에 머무는 점은 중요한 사실로 그는 결코 기술의 과시를 하지 않으며 물성을 잃은 코드의 세계에 살을 입히고 인간과 기계의 유기적인 ‘인터페이스’적 상황을 실현하고자 한다. 인터페이스는 미디어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의미하는 말로 그 사이와 경계에서 운동하며 인간과 기계 사이의 정신적 개념적 통로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미디어 아트를 하는 작가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이 가운데 문경원이 점하고 있는 위치는 독특해 보인다. 이미 살펴본 대로 그는 미디어 아트를 전통적인 미술로부터 분리된 특별한 분야로 생각하지 않으며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다루면서도 개개인의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따라서 개인 간의 소통을 다루는 웹이나 넷 아트와도 일정한 선을 그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의 문제의식은 보다 근원적이고 ‘거시적’이라 판단되지만 이에 이르는 방식은 철저히 ‘미시적인’ 관찰과 분석에 바탕하고, 그를 작업에서 실천하는 과정에서는 일체의 양보나 타협을 사양한다. 이런 선명한 작업관은 아직 젊은 그에게 커다란 자산이 아닐 수 없다.

2007 October Special -북한미술, 안녕하십네까?

김정일시대의 북한미술과 새흐름

글 | 하타야마 야스유키·조선문화평론가

북한의 미술은 국가 이념의 메시지를 상징화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미술을 향한 김정일의 관심 범주는 방대하다. 필자는 주체사상의 혼이 살아 숨쉬는 북한미술의 이론적 배경은 물론 최근 급속하게 변화하는 북한미술의 최근 동향을 집중 파헤친다. 북한미술의 현실상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총비서 (국방위원장) 사이의 남북 정상회담이 10 월에 평양에서 진행되고 남북관계는 새로운 단계로 들어갔다.
2000년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남북 관계에는 여러 국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북한 미술가의 작품전이 열려 왔다. 또 북한 미술의 작품집이나 연구서, 평론집이 몇가지 간행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해서 직접, 북한의 미술 작품에 접하는 기회도 확실히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여전히"u선군정치"v,"u강성대국"v건설을 내걸고 있고 김정일의 절대적권력은 지금도 유지되여 있다. 한국의 대북 융화 정책 (태양정책, 포용 정책) 에도 불구하고 , 북한이 스스로의 정치경제체제를 변혁하려는 의지는 안 보인다. 경제면에서의 변화도, 그것이"u실리"v의 추궁이며, 중국의"u개혁개방"v이나 구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에서 한국의 현대 미술전이 열렸던 일은 없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남북 관계가 변화하는 가운데, 북한 미술이 현재 어떠한 상황에 있는가를 이하에 보고한다.
 
김정일 총비서의 미술 창작 사업의 지도
8월 23일, 조선중앙통신이나 중앙방송(「로동신문」은 8월 24 일자)은 김정일총비서가 미술창작사업을 지도했다고 전했다. 북한의 미디어는 이 지도날짜를 보도하지 않았지만, 후에 중앙 TV는 이것이 8월 22일일 것을 밝혔다보도에 의하면, 이 지도에는 김기남당중앙위원회비서, 강능수문화상, 이재일당중앙위원회 제1 부부장이 같이 가면서, 만수대창작사와 평양미술대학의 책임일군이 맞이했다. 김정일은 만수대창작사와 평양 미술대학으로부터 출품된 조선화, 유화, 보석화, 공예, 수예, 서예등의 미술 작품을 돌아보았다고 한다.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 TV로 전해진 사진으로부터 판단하고, 이러한 미술작품은 풍경화, 정물화, 도자기등 이며, 김일성이나 김정일, 모친 김정숙을 그린 작품은 전시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만수대창작사와 평양미술대학의 창작가, 교직원, 학생들이 사상 예술성이 높은 우수한 작품을 많이 창작했던 것에 대해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였다, 고 북한 미디어는 전하고 있다.
또 총비서는, 만수대창작사와 미술대학이 당의 문예방침을 높이받들고, 지난 시기에 로동당 시대의 기상을 반영한 훌륭한 미술 작품들을 많이 창작해서, 재능있는 후비들을 육성함으로써 미술의 대전성기를 마련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김정일은 지금까지도 만수대창작사나 평양미술대학등의 미술부문을 시찰, 지도했던 적이 있지만, 북한을 덮친 홍수피해의 복구도 끝나지 않는 중의 지도인 만큼, 거기에는 무엇인가 큰 목적이 감춰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금년 9월이 평양미술대학창입60주년에 해당할 때문에 그것과 관계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북한의 미디어가 전하는 이 보도 내용을 주의깊게 읽으면, 김정일의 북한미술에 대한 생각이나 정책을 알 수 있는 것과 동시에, 오늘의 북한 미술에 무엇이 요구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일은 이 지도로, 미술 작품은 당원과 근로자등의 정치사상 교육과 정서교육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해, 주체미술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제기되는 여러 과제를 제시했다, 고 한다.
우선 김정일은 미술이「사람들을 혁명과 건설에로 힘있게 추동하는 위력 있는 수단의 하나」라고 말했다. 즉 미술작품은「미」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혁명과 건설」을 고무하는 수단인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그 리고, 미술을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우리 식 미술이론을 창작에 철저히 구현하는것」이며, 미술가가「우리 당의 미술사상과 미술이론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그것들을 지침으로 하여 작품 창작에서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북한에 있어서 미술가가「당의 미술사상과 미술 이론」, 즉 김정일의 미술사상, 미술이론에 따르는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 밖에, 김정일은 미술가가「기술·실무적으로 튼튼히 준비하고 창작에서 혁명적열정을 발휘하여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또「조선화의 독특한 기법들을 잘 살려 나가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또 유화를 비롯한 미술작품도 많이 창작해야 한다고 말하여,「형상수준을 부단히 높여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이와 같이 8월 22일에 진행된 김정일의 미술 창작 사업에 대한 지도는, 당면하는 북한 미술계의 과제와 방향성을 보여준 것으로서 중요하다. 북한은 지금까지도 영화, 문학, 음악, 연극(가극)등과 함께 미술을 중시해 왔다. 그것은 미술작품을 통하고, 소위「백두산3대장군」인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고매인 덕성을 가진 장군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서 김정일절대체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통제와 선전은 북한의 체제 유지의 중요한 핵심이다. 이번의 미술 지도는 그것을 재차 인상 붙이는 것이였다.

김정일과 북한미술
북한의 출판물은, 김정일이 1960년대부터 영화, 미술, 음악, 연극등의 문화예술분야에서 활동을 해 온 것을 전하고 있다. (「20 세기 문예부흥과 김정일」)김정일이 왜 문화 예술 분야의 사업에 중점을 두었는지라고 하면, 사상교육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분야가「반당반혁명분자들의 사상적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고 있었」(「김정일지도자」) 기 때문이다.
즉 당시의 문화예술분야는, 후에 추방된 김도만등의 영향하에 있어, 김일성의 지시가 미치기 어려운 곳이였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권력을 배경으로 하고, 항일투쟁이나 김일성을 예찬하는 영화 제작등을 진행시켜 이 부문에서의 권력을 확립한 것이다.  김정일은 미술계에도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온사회의 김일성 주의화」를 위하여 김일성의 업적을 주제로 한 많은 미술작품을 창작시켜,「주체사상탑」「삼지연대기념비」등,「기념비적건조물」의 건설에까지 미쳤다.
김정일은 1991년 10월 16일에「미술론」을 발표했다. 김정일은 이「미술론」을 발표한 전후에도「영화 예술론」, 「무용 예술론」, 「건축 예술론」, 「음악 예술론」, 「주체문학론」등을 발표해, 북한의 문화예술이 발전할 방향을 체계화하였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체계화를「20 세기 문예부흥」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김정일의「미술론」은, 「인간과 미술」, 「조형과 형상」, 「종류와 형태」, 「미술가와 창작」 등 4장으로부터 구성되어 있다.
이「미술론」에는「주제를 다양하게 확대하여야 한다」「인물형상에는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야한다」「미술가는 높은 기량을 가져야한다」 등 당연한 지적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술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미술의 역할, 특히「주체미술」의 역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는 곳이다.
「수령님을 형상화하는 것은 사회주의미술의 내용에 있어서 핵을 이루고 있다」
북한에 있어서, 「수령」이라고 하면 통상 김일성을 가리키지만, 김정일은 여기에서는 김일성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적으로「수령」이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하면서「수령」을 형상화 하는 것에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김일성이 수령일 때에는 김일성을, 김정일이 수령일 때에는 김정일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초부터 김정일을 주제로 그린 회화를 외부에도 공개해 왔다.필자가 1990년대초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 조선미술박물관에서 본 작품으로서는「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 김정일원수」(조선화), 「예술 영화《조선의 별》촬영현장을 찾으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유화), 「조국 통일의 념원을 안으시고」(조선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원수 만세」(출판화)등이 전시되어있었다.  김정일을 형상화 한 작품은 김일성을 그린 작품과 같이, 김정일 비서를 인민의 지도자, 위대한 령도자의 지위에 이른 것을 나타내 보이고 있었다김정일의「미술론」은 현재에도, 북한에 있어서의 미술의 방향성을 가리킨 최고지시이며, 그때 그때에 공표되는 발언, 지시도 이 큰 범위를 넘지 않고 있다. 김정일은 지금도 북한 미술의 최고의 이론가로서 군림하고 있다.

북한 미술의 최근의 동향 1.「백두산3 대장군」의 형상
북한에서는 금년에만「새해공동사설에서 제시된 전투적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기위한 선전화전람회」(1월 22 일 평양국제문화회관), 「2.16 경축 국가미술전람회」(2월 7일 평양미술박물관), 「태양절기념 국가 미술전람회」(4월 3 일 평양미술박물관), 「평양미술대학창립 60주년기념 미술전람회」(9월 7 일 평양국제문화회관)등이 열리고 있다. 이 중 두 국가 미술전람회에 대해 검토해 보고 싶다.
「2.16 경축 국가미술전람회」은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을 축하하여 가지게된 것이다. 「로동신문」(2월 8 일자)은 개막식 다음날의 지면에서 이 전람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민족최대의 경사스런운 명절을 맞으며 2.16 경축 국가미술전람회가 개막했다.
전람회장에는 백두산 3 대장군(주: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의 영원 불멸할 혁명업적과 절세의 위인상, 백전백승의 선군령장 김정일장군님을 자애로운 어버이, 위대한 스승으로 높이 모신 우리 군대와 인민의 끝없는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 등을 사상예술적으로 훌륭히 형상한 500여점의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였다」
이 기사가 보여주는 듯이,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생일을「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이라고 부르고있다. 또 전시회장에는, 「백두산 3 대장군」의「혁명업적」과「위인상」을 형상한 작품등이 중점적으로 전시되었다.
「로동신문」에 의하면, 김일성을 그린 조선화「전선의 밤」, 유화「3천만이 무장해야 한다」이 전시되었다. 또 조선화「선군시대의 자랑스러운 풍경이라 하시며」「나의 병사들이 보고싶었소」「행복의 만리」, 유화「삼수땅을 찾으신 우리 장군님」은「김정일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과 고매한 인민적풍모를 감명 깊게 형상하였다」작품이었다고 하고 있다.
또 김정숙의 생애를 보여준 조선화「2월의 아침」유화「도천리의 가난한 농가에서」도 전시되었다.개막식에서 인사를 한 강능수문화상은「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조국수호전과 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에서 새로운 기적과 위훈을 창조하여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이 미술전람회의 목적은, 순순한 미술전람회가 아니고, 김정일의 두리에 단결해「조국수호전과 사회주의 경제강국건설」에로 분기를 부르는 것이였다. (한국의「민족 21」2007년 4호는 이 전람회를「대한민국 미술전람회와 같다」고 소개하고있다. 그러나, 이 전람회는 2.16 즉 김정일생일을 경축한 것인 점, 「조국 수호전과 사회주의 경제 강국 건설」에로 사람을 동원을 목적으로 한점, 북쪽에서는 창작이 김정일의「미술론」에 따라서 되는 것등으로 판단하여, 이러한 견해는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사에는 조선화「전선의 밤」이 게재되고 있다.)한편, 4월 3일부터는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태양절)을 기념한「태양절 기념 국가미술전람회」이 열렸다.
여기에 전시된 300점의 작품은「김일성동지의 빛나는 혁명생애와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어버이 수령님의 유산인 사회주의조국을 불패의 강국에 전변시키신 김정일장군님의 불멸의 업적, 대를 이어 수령복, 장군복을 누리는 우리 인민의 끝없는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등을 감명 깊게 보여주는 것」이라고「로동신문」(4월 4 일자)은 전하고 있다. 우선 김일성을 주제로 한 것으로서는 조선화「그립던 고향」, 「몸소 폐허속을 헤치시며」, 유화「12월 24일의 환호」이 전시된 것 외, 김정일을 형상 한 것으로서는 조선화「선군은 나의 의지이다」「《일당백》의 고향에서」, 유화 장군임의 기쁨」등이 전시되었다.김정숙을 그린 것으로서는 조선화 「미림벌의 새봄」유화「용해공들의 친어버이가 되시여」 등이 있다.
이「태양절기념 국가미술전람회」에서도「2.16경축 국가미술전람회」와같이, 「백두산 3 대장군」을 그린 작품이 그 중심을 차지했다.수문화상은「백전백승의 선군령장(주:김정일)을 모시여 주체혁명 위업은 세기를 이어 줄기차게 전진헤 올수있었다」라고 말한 데다가, 「천만 군민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였다즉, 이 전람회도「백두산3 대장군」의「위대성」을 강조하면서,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을 요구한 것이였다. 북한의 미술계는「백두산 3 대장군」칭찬 캠페인의 진행과 함께, 「백두산 3 대장군」을 어떻게 형상하는가가 중심적인 과제가 되고 있다.

북한미술의 최근의 동향 2. 「전국소묘축전」와 김정일
「국가미술전람회」와별도로, 지난해부터 시작된「전국소묘축전」은 특이한 전람회로서 주목받았다. 「2.16 경축 제 1차 전국소묘축전」은 2006년 2월 2일부터 3월 10일까지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이 모양을 전한 북한잡지 기사에 실린 평양미술대학강좌장 김인봉은「소묘를 우리 인민의 문화정서생활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전환시켜 선군문화의 새로운 장을 펼친 특색있고 의의깊은 축전이였다」(김인봉「선군문화의 새로운 장을 펼치치게한 특색 있고는 의의 깊은 축전」「조선예술」2006년 5월호)고 썼다. 한국의 잡지「민족 21」2006년 4호도 이 축전의 모양을 전하고 있다.
이「소묘축전」이 주목되는 점이 몇개 있지만, 그 첫째는 이「축전」이 김정일의 지시로 열렸다는 것이다. 개최 경위에 대해「조선예술」지는 요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김정일이 군의 시찰로 갔을 때, 어느 인민군병사가 그린 소묘 작품을 보고 그것을 높이 평가했다. 총비서는 소묘가 가지는 인식교육적 의의와 문화 정서적기능을 내다보시고, 전국에 소묘 바람을 일키고, 소묘축전을 마련한 것이다.소묘는 원래 미술의 기초로서 묘사 기량을 높이기 위해서 실시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거기에 교육과 정서기능을 찾아내, 소묘축전의 개최까지 지시했던 것이다. 「조선예술」지에 실린 김인봉의 기사는「소묘예술의 화원은 정녕 새 세기 선군문화가 낳은 빛나는 결실」이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소묘 축전」이 주목되는 두째 점은 그 대중성이다. 이것은 소묘가 종이에 연필 혹은 목탄, 콘테, 펜등으로 그리기 위해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지 않고 간편하기 때문에이다. 이 때문에「소묘축전」에서는 미술 전문가 부문 외에 미술애호가, 대학부문, 중학교부문, 소학교·유치원부문에 나누어 심사되어 회장에는 830점이 전시되었다.또「소묘 축전」의 세째 특징은 주제 영역이 넓고, 다양한 작품이 출품되어 개성적인 작품도 적지 않았던 점이다. 특히, 조선화, 유화로 그려져도, 이제까지 소묘로서는 그려지는 것이 없었던 수령형상작품이, 이 축전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이「소묘축전」에도 일반 주제의 작품과 함께「백두산 3 대장군」을 그린「래일에 대한 신심과 락관을 안겨주시며」(만수대창작사 김성민)「풍년든 포전을 찾으시여」(평양미술대학 정철)「문학예술혁명의 포성이 울리던 나날에」(축전상 만수대창작사리철)「백발백중의 사격 솜씨도 보여주시며」(박광림)이 출품되었다.

북한 미술계에 있어서의 세대교대
평양미술대학은 금년 9월 창립 60주년을 맞이했다. 이것을 기념하여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는 9월 7일부터 미술대학창립 60주년기념 미술전람회가 열렸다. 보도에 의하면 개막식에는 관계 부문의 간부, 미술대학의 교직원과 학생, 시내의 미술전문가와 근로자가 참가했다. 전람회장에는, 평양미술대학의 교원과 학생이 출품한 약 400점의 교재, 실습, 창작 작품과 조선화, 유화, 조각, 공예, 그래픽아트, 산업미술등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미술작품이 전시되었다. 북한의「로동신문」은 9월 8일에, 중앙 TV는 10일에 이 모양을 보도했다.또한 조선중앙 TV는 9월 10일에「주체미술교육의 자랑찬 60년」이라는 평양미술대학창립 60주년에 관련되는 20분남짓의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였다.
프로그램에서는 평양미술대학의 전신인 평양미술전문학교가 개교하는 것을 전한 당시의「로동신문」등을 소개하면서, 해방 직후의 북한은, 일본의 지배에 의해서 민족미술유산이 파괴되고 외국에서 배운 얼마안되는 미술가가 있을 뿐이며, 미술의 전문교육기관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고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미술대학 학장인 부교수, 학사 리광영은, 8월 22일에 김정일 총서기가 만수대창작사와 평양미술대학이 창작한 작품을 보며, 강령적인 지침을 주었다고 인터뷰에 대답하였다. 김정일의 현지 지도날짜는「로동신문」등 공식 미디어에서는 보도하지 않지만, 이것은 관계자가 그 날자를 분명히 한 드문 예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김일성이 1954년 8월에 평양미술대학을 방문해 조선화, 수채화등을 보고, 조선화「금강산」, 유화「고지의 이야기」「새로운 교실」등을 높이 평가하여, 미술대학이 나아가야할 길을 가리킨 것을 소개하였다.또 학부장 정철은, 조선화 부문은 일찌기 사대주의, 교조주의, 허무주의가 횡행해, 독자적인 학부조차 없고, 학생의 지망도 대부분이 유화로 조선화의 출품수도 극히 적었던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1970년대에 들어가, 조선화를 기본으로 할 방향이 내세워지고 나서 조선화를 토대로 해 미술이 급속히 발전한 것을 이 프로그램은 강조하고 있다.
또 이 대학의《김일성상》계관인, 교수, 인민 예술가인 강영훈은, 1967년 6 월초에 혁명력사도록 창작사업을 했을 때에 미술대학으로부터도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것을 말하고 있다. 이 혁명력사도록 창작사업이란, 1967년 5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 4기 15회전원회의에서 당의 유일 사상체계확립의 방침이 나와 그것을 위한 하나로서 3개월간에 80여점의 수령형상작품을 그린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 제4기 15회 전원회의에서는 이른바 반당반혁명분자를 추방해, 김일성의 절대권력을 확립한 회의로서 알려져 있다. 강영훈교수는 평양미술대학의 관계자가 이 사업에 참가하였기 때문에 혁명의 수령관을 형성하는데 공헌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전체적으로, 평양미술대학이「백두산3 대장군」을 주제로 한 작품 등 수령 형상작품을 많이 창작한 것 외에, 김일성, 김정일이 유능한 미술가를 양성한 것을 강조한 내용이였다.  어쨌든 조선중앙 TV가 이러한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한 것은 미술 대학이 북한의 체제유지에 노는 역할과 함께, 미술계에 있어서의 차세대의 양성, 그것도 기량만이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당에 충실하고 김정일에 충성을 다하는 인물의 양성에 힘을 쓰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였다.
북한 미술계는 지금, 세대 교대의 시기에 들어가고 있다. 해방 전부터 평양을 거점으로 활동해 온 미술가나 조선전쟁을 전후 했던 시기에 월북(입북) 한 미술가는 그 대부분이 고령에 이르는지, 벌써 죽는다. 지금, 북쪽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해방후 세대, 그것도 평양미술대학에서 배우고, 만수대창작사, 중앙미술창작사등에서 활동하는 미술가들이다.
만수대창작사 부사장으로 인민 예술가인 김성민은 1949 년생의 대표적인 조선화가이다. 김성민은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그 초상화「만민의 태양」을 그리고 김정일이 높이 평가하었다.김성민은 최근에 도착한 그래프잡지「조선」에서 특집이 짜여져「그는 조선화의 고유한 몰골기법을 인물주제화에 담아 민족적색채가 짙은전통 회화의 현대성 구현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조선의 재능있는 미술가이다」(「조선」2007년 6월호)라고 평가되고 있다.
또 선우영도 인민예술가로서 조선화에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하고 있다. 선우영도 1946년의 태생으로, 원래는 대학에서 산업미술을 배워, 그 후 유 화를 그려, 후에 조선화가가 된 경력을 갖고 있다. 국제 콩쿨에서 입상하는 등 역시 대표적인 조선화가 이다. 해방전부터의 서양화가 선우담의 자식이다.
이와 같이, 북쪽 화단은 해방후 세대가 그 중심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세대의 특징은, 해방전이나 유일사상체계가 확립하기 이전의 분위기를 모르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북한의 정치체제에 짜넣어져 그 교육을 받아 온 세대인 만큼, 정치사상성, 즉 김정일이나 당에의 충성심이 요구되는 것을 당연이라고 생각하는 세대일지도 모른다.
평양미술대학은 앞으로도, 미술작품의 제작기량교육과 함께, 김정일에게의 충성을 핵으로 하는 정치사상교육의 강화를 지속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세대의 바꾸어도, 북한미술에 있어서의 정치우선의 자세에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미술의 대외진출
조선중앙 TV는, 9월 7일과 8일에 걸쳐, 이탈리아에서열린 북한 미술전에 관한「세계에 빛을 뿌리는 주체미술」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였다. 이 프로그램에는, 이탈리아에서의 미술전에 참가한 조선화가 김성민과 만수대창작사단장인 공훈예술가 박효성이 출연하고, 전람회에 대해 보고했다.
이 전람회에는, 북한의 선군정치를 주제로 한 작품이나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 또 민족적 전통이나, 풍경화등의 작품, 또 반제반미주의를 테마로 한 작품이 출품되었다. 출연자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로켓로 인공지구위성을 올린 광경을 그린 작품이나, 조선전쟁시기에 전투가 벌어진 월미도에서의 인민군용사의 모습을 그린 작품에 주목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덧붙여서 말하면 로켓 발사는 서방제국에서는 미사일의 발사 실험이라고 보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는 이탈리아의 사람들이「일심단결의 조선을 보았다」라고 칭찬한 것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미술이 추상미술을 배제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철저하고 있는 것, 독특한 미를 갖고 있는 것, 인민적인 내용인 것등을 높이 평가했다, 고 현지의 신문보도등을 소개하면서 자아자찬 하였다.  이 이탈리아에서의 전람회는 이탈리아측의 요청으로 열렸다고 하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얼마나의 평가를 받은 것인가는 모른다. 이 프로그램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미술작품이, 미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관심을 모아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북한의 미술작품가 여러나라에서 전람되거나 외국의 미술전람회에서 입상했다등의 보도가 자주 눈에 띈다.
「조선예술」지(2006년 1월호)에는, 2005년 10월 2일부터 6일까지 열린「 제8회 북경국제예술박람회」에서 북한의 조선화 작품에 최고상인 금상이 수여되었던 것이 소개되고 있다. 이 예술박람회에는, 중국, 프랑스, 미국등 20남짓의 나라와 지역으로부터 300명남짓의 미술가가 창작한 작품 1만점남짓이 전시되었다고 한다.이 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은, 선우영의「백두산천지」과 인민예술가 정창모의「남강의 겨울」이다. 이러한 작품은「원숙한 기교와 뛰여남 붓다룸새, 힘있고 재치있는 필치로 조선화의 고유한 특성과 현대적 미감을 훌륭하게 결합시킨 것으로 하여 박람회조직위원회의 성원들과 관람자들 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고「조선예술」지는 전하고 있다. 같은 잡지는 이 기사의 표제로「선군시대 주체미술의 위력을 과시」라고 이 성과가 미술가 개인의 것이 아니고「주체미술의 위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그래프잡지「조선」2007년 6호는 러시아, 몽골, 체코등에서도 북한 미술전이 열렸다고 전하고 있다.
북한의 미술이 이러한 국제사회에 진출하려는 배경에는, 미술작품을 외국에서 전시해「주체미술」의 성과를 선전하는 것과 동시에, 이것들을 판매함고 외화를 획득하려는「실리」을 겨냥한 것인 것처럼 생각된다.
적극적으로 미술작품을 해외 판매해, 외화를 획득하려고 하고 있는 기관의 하나가 조선민예연합상사이다. 이 상사에서는 조선화, 유화, 조각, 자수등을 취급하면서, 주로 외국을 대상으로 주문판매를 실시하고 있다.
조총련 산하의 기관지「조선신보」일본어판 2006년 8월 28 일자 기사는, 상사내에 대외미술창작단이 있고, 중국, 러시아, 몽골, 싱가폴, 일본, 한국으로부터의 주문이 많다고 보도하고 있다. 회화, 조각을 담당하는 대외미술창작단의 공훈예술가 리근태단장은, 창작단에는 24~40세의 화가나 도예가 등 미술가가 약 250명 소속해 있고,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제작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유화의 가격은 작가나 호수에 따라서 다르지만 100호로 500~1000 달러, 조선화는 200 달러이다고 하고 있다. 조선민예연합상사는 1988년에 창업하여, 국제문화회관1층에 전시실을 마련하고 북한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판매를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민예연합상사는 소속작가에게는 봄과 가을의 2회 지방에 출장해 제작을 하는 것을 의무화 하고 있는 것 외에, 월 1회의 품평회도 개최해, 기술 향상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또 민예연합상사에는 송화미술원이 있고, 조선화, 유화, 조각등을 전문젇으로 제작하고 있다. 미술원 성원의 평균연령은 70세, 일찌기 북한 미술계의 제일선에서 활동해 온 미술가도 있어「조선신보」기사는「여러 나라로부터의 주문이 쇄도하고있다」라고 전하는 한편, 송화미술원의김상직 원장(72세)은「우리의 작품이 해외에서 호평을 얻어, 나라의 재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한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신보」기사는, 이와 같이 미술작품을 판매해 외화를 획득하려고 하고 있는 상황을 전하고 있지만, 이 외 복수의 상사도 외국에의 미술품의 판매를 시도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심양이나 연변에 미술품 판매점을 마련하고 있었지만, 연변의 판매점은 최근 폐쇄했다고 한다. 또, 도쿄에 있는 총련산하의 서점에서도 유화나 조선화를 서적과 함께 전시 판매하고 있었지만, 최근 이러한 회화를 모두 철수해, 판매를 중지했다.
더하여 문제인 것은, 이러한 미술품 판매를 둘러싸고, 가짜작품이 횡행하고 있는 의심이 있는 것이다. 북한화가의 작품의 서명(싸인)이 가짜이였다는 한국으로부터의 보도에 접했던 적이 있지만, 일본에서도 북한의 한 저명한 화가의 조선화가 실은 육필이 아니고, 판화에 채색한 것인 것이 판명되어 있다.
북한 회화는, 기량적으로 그만한 수준이여도, 북한이 가지는 정치성이 이러한 판매의 장해가 되어 있듯이 생각된다. 또 미술작품이 나는듯이 팔리는 것도 생각하기 어렵고, 북한의 이러한 외화벌이작전은 반드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지 않게 생각된다.

모자이크벽화와「백두산해발」
현재, 북한의 미술계는 국가미술전람회 출품작에 볼 수 있듯이「3 대장군 위인상」을 그리는 것이 지상의 과제로 되어 있다. 특히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의 초상화, 업적을 그리는 것은 김정일 체제 유지의 근간이다. 이와 같이 본다면, 북한 미술계는 수령형상미술을 최대의 임무로 하고 있었던 시대와 큰 범위에 있어서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그 한편, 미술을 체제선전,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하면서도, 「실리」를 구해 외국에의 진출을 도모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평양의 김종태기관차 공장에 거대한 모자이크벽화가 만들어졌다. (중앙 TV 9월 10일 보도)이 모자이크벽화는, 김일성, 김정일이 공장을 찾아와 공장의 운영을 지도한 모습이 테마이다. 이러한 모자이크벽화를 비롯하여, 「백두산 3 대장군」을 테마로 한 모자이크벽화가 근년, 전국 각지에 세워지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백두산3 대장군」을 주제로 한 회화의 출현, 혹은 모자이크벽화의 건설을 지도하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금년 2월 20 일자의「로동신문」은「백두산의 불야성」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송미란 기자의 정론을 게재하여, 그 안에서「백두산 장군별」,「백두산 광명별」,「백두산해발」에 언급했다. 「백두산 장군별」=김일성, 「백두산 광명성」=김정일이지만, 「백두산해발」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일부에는 이것은 후계자를 암시한 것이다라는 견해도 있다. 모자이크벽화의 건설은「백두산해발」의 지시로 행해지고 있는 것일까.
북한미술계는 순수한 미술이 아니고, 큰 정치의 움지김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면서 추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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