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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2.10

Abstract

『올해의 작가상 2012』(8. 31~11. 11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를 선정해, 세계적으로 프로모션하는 것이 이 상의 목표다. 『올해의 작가상』은 미술계의 폭넓은 여론을 수렴하는 운영 시스템, 체계적인 행사 준비, 언론사의 협력, 막대한 예산 등으로 개막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art는 4인의 주인공 김홍석 문경원&전준호 이수경 임민욱의 전시 작품을 소개한다. 한국 현대미술의 최전선을 이끄는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비평과 인터뷰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비교 조명하는 자리다. 또한 『올해의 작가상』의 운영(자문) 및 심사위원, 해외 인사 등으로부터 미술상 제도를 둘러싼 다각적인 견해를 들었다. 덧붙여 제도 개선에서부터 전시 개막까지 『올해의 작가상』의 진행 과정을 담은 큐레이터의 리포트를 싣는다.

Contents

01    표지  코헤이 나와 <PixCell-Double_Deer#6>
혼합재료 229.7x190x160cm(부분) 2012(Photo: Seiji Toyonaga) (SANDWICH GRAPHIC)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김복기

38    핫피플  피터 슈라이어  김재석

42    프리즘
    한국미술 중국전 ‘리부팅’, 그 막전막후  김영순
    비엔날레의 비전, ‘결과’에서 ‘과정’으로  장승연

46    IMAGE & ISSUE [6]
    융합학문 시대, 예술의 존재론  이영준

72    포커스
    코헤이 나와展|이불展  전영백
    전경, 강임윤展|풍경展  이선영
    마스커레이드展  정현
    서울에서 살으렵니다展|스티브 맥커리展  김현호

88    특집  올해의 작가상 2012
    [1]Artists_문경원&전준호|이수경|임민욱|김홍석    
    [2]Comment 10_국내외 미술 인사 10인에게 듣는다
       윤명로 김홍희 강수미 크리스 어컴스 브리타 슈미츠 유사쿠 이마무라 윤재갑 서진석 정도련 김복기    
    [3]Curator Report_‘올해의 작가상’은 무엇인가? 
       어떻게 작가를 선정했는가?  기혜경
    
127    해외 작가  얀 파브르
    전투적 아름다움의 귀환  스테판 헤르트만스 

138    해외 미술 
    러시아 미술시장의 현장을 가다  엘레나 호흘러바

146    특별 기획  카셀도쿠멘타 13
    [1]혼돈의 시대정신을 절제된 감흥으로  진휘연
    [2]공감각적 체험, ‘번역’의 격차 넘다  고원석
    [3]제작일지: 양혜규의 ‘죽음에 이르는 병’  김실비    

156    오후의 아틀리에
    다시 한 번, 은하수를 꿈꾸며  최영걸

158    전시 리뷰
    이길래|최병민|집합적 멜랑콜리: 향토적 서정주의
    순간의 꽃|차우희|오경환|이동기|장리라|이세현|강홍구
    Indian Highway|김진희|김실비
    
170    전시 프리뷰
    타카시 스즈키|人-길을 묻다|김구림|신수진 | 신흥우|산수 닷 인

180    이슈 앤 크리틱 [10]
    몸짓의 시각언어, 퍼포먼스 다시 읽기  김백균

186    뉴비전 신진 평론가 발굴 프로젝트
    파이널리스트 3인 본선 [2] 인터뷰  강정호 김용진 안소연

192     동방의 요괴들
    요괴들, 도쿄 게이사이에 가다  송진영 유승환  

194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똘끼’넘치는 젊은 작가의 패기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독특한 의상의 작가, 벼룩 시장에 온듯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누는 관객. 500개 이상의 부스를 가득 메운 개성 강한 젊은이들. 게이사이는 행사 후 참여작가 중 금, 은, 동상과 심사위원 개인상이 수여한다. 올해 심사위원은 스즈키 신, 토미노 요시유키, 니나가와 미카가 맡았다. Photos by GEISAI Photography Team

‘똘끼’넘치는 젊은 작가의 패기

글|송진영 · 2011 동방의 요괴들

게이사이는 우리나라의 여느 아트페어와는 다르게 미술의 열정이 있는 아마추어 작가들도 참여할 수 있는 아트페스티벌이라는 점이 신선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부스도 협소하고 살짝 허접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 작은 공간을 자기 세계로 재탄생 시키려 노력하는 일본 작가들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일본 작가들의 작품들은 속된말로 정말 ‘똘끼’가 넘쳤다. 내 작업 성향도 그렇고 내 정서에는 너무 즐거웠다. 물론 아마추어 같은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 아트페어에 걸린 작품들과 비교하며 무엇이 더 예술성이 있다고 평가하긴 어려울 정도로 그들의 재능과 끼는 넘쳤다. 오히려 순수함과 열정으로 예술의 위계를 넘어선 면들도 보였다.
사실 내가 이 행사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 이유는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나의 롤모델과 같은 무라카미 다카시가 주관하는 행사였기 때문이었다. 행사에 참여하면서 한 번이라도 멀리서나마 그의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였는데!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다른 스텝들과 같은 기모노 유니폼을 입고 있는 무라카미 상이 보였다! 처음엔 비슷한 다른 사람 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 여유로운 포스는 어디가지 않았다. 직접 인터뷰를 하러 돌아다니기도 하고 장난스럽게 방송도 직접하는 모습들이 미술계의 거장의 행동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코스튬 등의 익살스런 모습으로 화제가 되었던 무라카미 상이라 그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기회로 더더욱 무라카미다카시가 대단스럽고 이상적인 인물로 느껴졌다. 또한 행사의 성격이 미술만을 전문적으로 배운 경력자들 위주로 벌이는 딱딱한 분위기가 아닌, 열정과 자유, 그리고 일반인들의 접근성이 좋은 행사라는 점에 놀랐다. 일본의 문화가 너무 부럽게 느껴졌고 이것이 거장의 주최로 열렸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항상 한국미술의 문제점이 접근성과 수요에 있다 생각되었는데, 우리나라도 이런 행사가 개최될 만큼 문화적 다양성이 추구되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이런 행사를 주최할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설익어서 풋풋하고 신선하지만 떫은맛

글|유승환 · 2011 동방의 요괴들

게이사이를 한마디로 정의 한다면 설익어서 풋풋하고 신선하지만 떫은맛이 나는 과일 같았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기획한 난장 전시, 적지 않은 부스 참가비만 내면 비교적 전시 기회가 열려 있기에 작품에 제한이 없는 듯했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다양하고 재기발랄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전시 방식은 아주 작은 부스부터 바닥만 있는 부스, 바닥과 3면이 있는 부스, 바닥과 뒷벽만 있는 부스 등이 있었는데, 우리는 3면에 벽이 있는 부스를 4명의 작가가 나눠 썼다. 사실 내 작품은 컬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여러 작품 속에서 전시할 경우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어찌하랴, 다들 무거운 작품을 들고 일본까지 비싼 비용을 들여 왔으니 하나라도 더 설치하고 싶은 마음이야 모두 같으리라 본다. 맘 같아선 가위 바위 보로 한 명을 정해 그 사람만 전시 하자고 하고 싶었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전시였다.
전시 중에 자신을 인디 ‘아티스트’라고 소개한 다른 부스 참가자가 내 작품에 관심을 보여 긴 대화를 했다. 그와의 대화 중 ‘폭파하는 장면이 있는 작은 그림이 인상적’이라고 한 말을 빼고는 대부분 못 알아들었다.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서 사용하는데, 난 영어도 못하고 일본어도 못한다. ‘작가로 살아남고 싶으면 영어부터 하라’는 교수님 말씀이 떠올랐다. 재미있었던 점은 일본인들은 자신이 관심 있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작가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시킨다는 것이다. 비록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나의 그림에 관심을 가져 준 일본 아티스트와의 대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러시아 미술시장 현장을 가다

푸시 라이엇 〈펑크식 기도〉 2012 _2012년 2월 21일,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에서 성당 측의 허가 없이 블라디미르 푸틴에 반대하는 내용의 공연을 벌여 체포됐다.

러시아 미술시장 현장을 가다

글 | 엘레나 호흘러바·모스크바대 박사 과정

지난 9월 19일부터 23일까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아트 모스크바(Art Moscow)〉가 개최되었다. 16회를 맞은 〈아트 모스크바〉는 러시아에서 현대미술을 다루는 유일한 아트페어다. 13개국 35개의 갤러리 참여한 올해 〈아트 모스크바〉는 역사상 가장 관람하기 편하고 평화로운 페어였다. 페어의 작은 규모와 관람객이 무리지어 다니지 않는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는 작품을 감상하고 신중히 구매를 고려하기에는 좋았지만, 아트페어 특유의 활기는 없었다. 이런 장면은 러시아 현대미술 시장의 암울한 상황을 반영한다. 현재 러시아 현대미술 시장은 침체 상태에 빠져 있어서, 이번 페어에서 누구도 큰 판매량을 기대하지 않았다. 310만 달러에 달한 판매량은 기대치보다 작지 않았지만, 작년보다 150만 달러 줄어든 액수다.
〈아트 모스크바〉는 현대미술을 일반 관객에게 소개하고 새로운 컬렉터를 개발하는 데 주력해 왔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판매보다 교육과 토론을 주요 테마로 삼았다. “미술을 수집하기 위해 부자가 될 필요가 없다(You do not need to be a millionaire to collect art)”라는 슬로건과 ‘아트페어’ 대신 ‘현대미술 전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러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의 의심과 거부감을 극복해 판매를 자극하는 방법과 시장의 개선 가능성에 대해 같이 고민해 보자는 의도로 10개 이상의 공개 토론과 강연이 열렸다. 결국 〈아트 모스크바〉는 러시아 현대미술 시장이 겪는 위기의 징후를 드러내며, 극복 방안을 모색하고 제안하는 장소가 된 셈이다.

비노그라도프&두보사르스키 〈무제〉 캔버스에 유채 195×295cm 2010

러시아 미술시장의 성장

올해 러시아 미술시장은 아트페어를 개최하기에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2012년 전반기에 러시아 현대미술을 다루는 주요 갤러리 3곳이 폐업을 선언했다. 역사가 가장 긴 갤러리 XL, 에이단(Aidan), 마랏&율리아 겔만(Marat&Yulia Guelman)은 러시아 현대미술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상업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다며 폐업 이유를 설명했다. 갤러리들이 상업적인 활동을 중지한다는 소식은 러시아 미술시장의 위기와 몰락을 여실히 드러내는 증거처럼 보였다. 러시아 현대미술 시장은 4% 성장률을 보인 이후, 줄곧 정체 상태에 있는 것과 거의 다름이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산가이자 미술 수집가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등 부자가 많은 나라에서 현대미술이 팔리지 않는다는 말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러시아 부자들의 예술 취향은 글로벌 취향만을 쫓는다. 그들은 프란시스 베이컨, 루시안 프로이트, 마크 로스코 등 물질적 가치가 대단한 작품의 판매 기록을 새로 세우는 데에만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러시아 현대미술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 컬렉터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러시아 현대미술은 해외 컬렉터의 관심도 못 받는다. 그래서 세계 아트마켓 리스트에는 러시아 현대 작가의 이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트프라이스 400’의 현대미술 목록에는 러시아 현대 작가로 세몽 파이비소비치(Semion Faibiso-vich)와 비노그라도프&두보사르스키(Vinogra- dov&Dubossar sky), 단 두 작가(팀)의 이름만이 포함되어 있었다. 컬렉터들이 투자하지 않는 이상, 러시아 현대미술 역시 번성할 리가 없다.
러시아에서 미술시장이 형성된 과정을 살펴보면, 경기와 정치적인 상황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국가가 러시아 미술의 유일한 주문자이자 컬렉터였고, 198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 예술가들은 국가의 지배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현대미술의 낮은 가격과 작품의 독특함은 서구 컬렉터들을 유혹하였고, 그들은 소비에트 공식 아트와 비공식적인 반체제적인 미술을 상관없이 대량으로 사들였다. 러시아 현대미술에 관한 수요가 굉장히 높았던 이 때를 ‘소비에트 아트 붐(Soviet Art Boom)’이라고 한다. 당시 러시아 미술시장은 굉장히 혼란스러웠고 유럽 미술시장과 매우 달랐다. 화가들은 직접 구매자를 찾아 거래하였다. 그러나 소비에트 미술에 관한 관심은 시장의 혼란스러움과 가격정책의 부재라는 이유로 급감했다. 1989년 ‘최초 갤러리(The First Gallery)’라는 현대미술 갤러리가 문을 열면서, 러시아에 현대미술 시장을 자체적으로 형성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최초 갤러리’의 오픈은 러시아 현대미술 시장의 탄생이라고 여겨진다.
1990년대 현대미술을 다루는 갤러리들이 잇따라 생겼고, 문명적인 현대미술 시장을 형성하려는 적극적인 시도가 이루어졌다. 모스크바에 있는 10개의 개인 갤러리들이 가장 진보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실험적인 현대미술 자체를 선전하고 지원하였다. 이때부터 컬렉터그룹이 형성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기업과 은행은 기꺼이 현대미술에 투자했고, 러시아 현대미술 발전과 미술 시장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93년에 열린 ‘아트-신화(Art-Mif)’라는 현대미술 아트페어와 아트페어 기간 동안 열린 소더비 경매는 러시아 현대미술 시장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에 현대미술 작품 판매량은 1년에 20%로 늘어났고, 1998년 경제 위기까지 미술 시장은 꾸준히 발전하였다. 그러나 곧 불어닥친 경제 불황은 시장을 다시 위기로 빠뜨렸다.

‘가라지’와 함께 러시아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센터 ‘빈자보드'

소수의 컬렉터, 골동품 시장에 집중

2000년대는 경제 상황이 점차 좋아지면서, 1998년 이후 침체돼있던 미술시장은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경제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러시아 현대미술 번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러시아 정부는 현대미술이 탈공업화 사회의 필수 요소라는 것을 깨닫고 현대미술을 적극 지원하였다. 유럽 큐레이터와 아티스트가 참여한 〈모스크바비엔날레〉가 국가의 후원을 받아 2005년에 처음 개최되었다. 모스크바비엔날레는 러시아 현대미술의 역사에 새로운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왜냐하면 이는 예전에 개인 추진력으로만 존재한 현대미술이 국가에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국가는 비엔날레뿐만 아니라 국립현대미술센터의 신관을 구축하는데 후원하였고, 2005년 현대미술을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이노베이션’이라는 현대미술 시상제도를 설정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미술 지원은 여러 기업에게 대외적 이미지를 개선할 괜찮은 기회로 보였을 터. 2000년대 후반에 새로운 갤러리뿐만 아니라 개인 지원으로 현대미술 센터인 ‘빈자보드(Winzavod, 2007년 개관)’, 현대문화센터인 ‘가라지(Garage, 2008년 개관)’, 디자인센터 ‘아트 플레이(Art Play)’ 등 현대미술을 전파하는 기관들이 문을 열었다. 현대미술 센터들에서 기획한 전시들을 통해서 러시아 사회는 국내외 현대미술을 경험하고, 미술이 단순히 ‘캔버스에 유채’뿐만 아니라 다양성을 견지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현대미술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현대미술은 덜 의심스럽게 보이기 시작하였고, 덩달아 현대미술 시장은 번성하는 시기를 맞았다. 부유한 컬렉터들은 현대미술 시장의 성장을 촉진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그 결과 2005~7년 사이에 현대 미술작품 판매량은 1년 동안에 60~70%로 늘어났다. 올레그 쿨리크(Oleg Kulik), AES+F, 비노그라도프&두보사르스키의 작품 가격은 2년 만에 10배로 올라갔다.
러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국제적으로 확산됐다. 필립 드 퓨리는 2007년에 에릭 불라토프(Eric Bulatov)의 〈소련공산당 만세〉(1975)를 108만 파운드, 2008년에 일리아 카바코프(Ilya Kabakov)의 〈딱정벌레〉(1982)를 290만 파운드, 2010년에 코마르&멜라미드(Komar& Melamid)의 〈로스트로포비치의 다챠에 솔제니친 벨의 만남〉(1972)을 65만 7천 파운드에 팔았다.
2008년 또 다른 경제 위기는 러시아 현대미술 시장의 번성 시기를 종결시켰다. 러시아 미술시장은 몇 명의 컬렉터에 의지하였고, 그 몇 명이 시장을 떠나면서 시장은 무너지게 되었다. 세계 아트마켓이 2008년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면, 러시아 미술 시장은 여태까지도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한 갤러리의 대표에 따르면, 현대미술 컬렉터들이 별로 없어서 갤러리들은 2008년 이전에 4만 달러에 판매한 작품을 2만 달러에도 팔지 못하고 있고, 판매량은 2000년대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러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컬렉터들의 투자 저조 때문에 현대미술 시장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미술 구매력이 있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안정된 골동품 시장이 이를 확인해준다. 러시아에서 모든 미술(중세 미술, 근대 회화, 공예 등)은 골동품 시장에서 다루어진다. 골동품 시장의 2010년 공식적인 판매량은 5억 2천 6백만 달러이고 2011년 4억 4천 2백만 달러였다. 골동품 아트페어는 1년에 두 번 개최되고 거의 매주 옥션이 열린다. 국내에 약 30개의 이른바 ‘살롱 갤러리’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한 갤러리의 1년 판매량은 평균 150만 달러이고, 매년 전시되는 15만 점의 미술품 중 반 이상이 팔린다. 미술을 꾸준히 수집하는 컬렉터의 수는 3천 명 정도이고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만 20개 이상의 개인 옥션이 영업 중이며 새로운 옥션이 계속 생기고 있다. 2011년에만 10개의 새로운 옥션이 생겼다. 경매에 출품된 작품 중 50% 이상이 낙찰된다. 출품되는 작품들 중에서 19세기 아카데믹한 성격이 강한 러시아 회화와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이 가장 인기가 많다. 경매된 미술 중 콘스탄틴 마코브스키(Konstantin Makovsky), 마르크 샤갈, 다비드 부를류크(David Burluk), 콘스탄틴 코로빈(Kons-tantin Korovin)의 작품은 기록적 가격에 팔렸다. 이고리 그라바리(Igor Grabar)의 〈밝은 식탁보 위에 배〉(1921)는 지난 6월에 모스크바 옥션에서 3천 6백만 루블(약 120만 달러)에 낙찰되어 2012년 경매 최고가를 기록하였다. 서구에서도 러시아 회화에 대한 관심은 꾸준하고 2011년, 2012년 경매마다 새로운 판매 기록이 세워졌다. 2011년 소더비가 주최한 러시아 미술 옥션에 출품된 작품들은 100% 낙찰되었고, 러시아 근대미술 가격은 22% 더 올라갔다.

일리야 레핀 〈파리의 카페〉_2011년 크리스티의 러시아 미술 섹션에 출품, 낙찰가 7,383,201달러와 낙찰률 200%를 기록했다.

현대미술이 팔리지 않은 이유?

근대미술은 매년 새로운 낙찰가 기록이 세워지는데 현대미술은 왜 팔리지 않는가? 이유는 많지만 그 중 몇 개에 주목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적인 상황이다. 러시아 현대미술 시장은 경기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의지한다. 현재 러시아 정치적인 상황(즉, 푸틴의 정책)은 미술이 정치색을 띠게 한다. 러시아 현대미술은 예전부터 정치성을 강하게 띠는 경향이 있었지만, 요즘 많은 작가는 푸틴의 정치에 항의를 표현하기 위해 반정부적인 행위를 선택한다. 이런 반정부 행위들은 현대미술 시장에 큰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보이나(Voina) 그룹이나 푸시 라이엇(Pussy Riot) 그룹의 반정부 행위는 현대미술 자체에 대한 국가 관리자들의 혐오감과 적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보이나 그룹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다리에 그린 〈FSB가 사로잡은 남근〉(2010) 행위에 ‘이노베이션’을 수상하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정부의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다. 푸시 라이엇은 모스크바 대성당에서 푸틴을 반대하는 노래를 부르는 퍼포먼스로 감옥에 가고 말았다. 푸시 라이엇이 받은 평결은 현대미술에 관한 정부의 태도를 보여 주는 것으로, 이는 반정부적인 미술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자체에 대한 정부의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에서 미술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정부 관료들이다. 그들 사이에 현대미술품 구입이 ‘빅 브라더’를 화나게 하고 반정부적인 행위로 여겨질 수 있다는 의식이 나타나자, 현대미술 시장은 손해를 입었다.
둘째, 가격정의 부재이다. 현대미술 시장의 가장 큰 약점은 가격 조절 체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나 갤러리는 작품의 가격을 책정한다. 그러나 현대미술 옥션이 없어서 갤러리에서 정해진 가격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누구도 작품의 실제 가치를 확실히 말할 수 없고, 구매자는 구매하고자 하는 작품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많은 구매자는 러시아 미술과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유럽 국가의 현대미술을 선호한다. 참고로 러시아 미술만 다루는 갤러리들과 달리, 러시아의 유럽 현대미술을 함께 다루는 러시아 갤러리(Regina, Triumph, Frolov)는 상업적인 활동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러시아 현대미술 시장 정책은(정확히 말하자면, 정책이 없는 것) 미술 작품에 대한 꾸준한 수요를 촉진하지 못하였다.
셋째, 대중적인 관심의 부재이다. 러시아에서 현대미술은 지금도 소수의 관심사로 남아 있다. 러시아 사람들이 현대미술이 무엇인지 알게 된 지는 약 20년이 되었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알게 됐지만, 이를 인정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아직은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열린 러시아 현대미술 섹션은 늘 비어 있다. 관람객의 대다수는 젊은 사람이고, 그들 중 대부분은 현대미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러시아의 대중 매체는 현대미술을 거의 소개하지 않는다.
현대미술에 대한 흥미를 유도하는 가라즈, 빈자보드의 국립현대미술센터로서의 노력은 중요하지만 여전히 러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현대미술을 알리기 위해서는 이를 다양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전시를 준비하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한 재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대중적 미술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다. 러시아 국내 기업은 미술 프로젝트를 지원하지만 소수의 관심인 현대미술을 후원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250만 명이 관람한 콘스탄틴 코로빈의 회고전과 관람객이 거의 찾아가지 않는 아르세니 질랴예프(Arseniy Zhilyaev)의 전시 중 당연히 전자를 후원한다.
넷째, 러시아 현대미술의 비상품성이다. 현대미술이 팔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미술 자체에 있다. 미술 작품은 미술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이다. 바로 ‘상품성’은 러시아 현대미술의 문제점이고 현대미술에 대한 꾸준한 수요가 없는 주된 이유이다. 러시아에는 현대미술 작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없다. 또한 작가들 사이에 개념이 형식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상품성 즉 퀼리티가 떨어지는 작품을 제작한다. 러시아 현대미술은 개념적으로 서구 미술보다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서구 미술보다 완성도가 굉장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 실내 장식으로 사용하는 5천~1만 달러의 작품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지만, 러시아 현대미술은 이를 공급하지 못한다.

보이나 〈Fuck for the heir Puppy Bear!〉 퍼포먼스 2008_러시아 예술집단인 보이나(Voina, 전쟁이라는 뜻)는 모스크바의 생물학 박물관에서 집단 성행위 퍼포먼스를 벌였다.

결국, 공급의 문제

약 20년 전에 탄생한 러시아 현대미술 시장은 지금도 형성 중이라고 봐야 한다. 성공과 실패를 속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시장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고 할 수도, 발전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판매량은 1년에 4%로 늘어나며 꾸준한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에서 현대미술의 공식적인 판매량은 1천만~1천 5백만 달러 사이에서 변동한다. (현재 아트마켓에서 판매되는 현대미술 중 러시아 현대미술이 몇 %인지 알 수 없다). 현대미술 시장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새로운 컬렉터들이 생긴다는 낙관적인 전제하에, 판매량의 10~ 15%가 늘어날 것이라 예상한다.
과연 앞으로 새로운 컬렉터들이 생길 가능성 있을까? 필자는 있다고 본다. 다행스럽게도 러시아 젊은 사람 중에 현대미술을 알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화되고 있고, 현대미술은 점차 유행의 흐름을 타고 있다. 부모들의 재산을 물려받을 그들은 현대미술을 구매할 것이고 현대미술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러시아 현대미술을 선택할지, 선배격인 당대의 컬렉터들처럼 맹목적으로 서구 현대미술을 선택할지 예측할 수 없다. 이는 결국 공급의 문제이다.

환상의 물질화, 그 감각적 유토피아

이불 〈벙커 (M. 바흐친)〉 스테인리스 스틸 프레임에 파이버글라스, 합판 외 혼합재료 인터랙티브 사운드 작업 300×400×280cm 2007/2012(왼쪽), 〈수트레인〉 나무 프레임에 합판, 아크릴 거울, 알키드 페인트 274×360×480cm 2012(가운데), 〈비아 네가티바〉 혼합재료 290×600×600cm 2012(오른쪽)

환상의 물질화, 그 감각적 유토피아

글 | 전 영 백

최근 굵직한 두 작가의 전시가 동시에 열려 미술인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불과 코헤이 나와이다. 다양한 매체로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들고,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며 환상적 유토피아의 세계를 물질화시키는, 그리고 예술의 근본적 화두인 지각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 본다.

이불 〈스튜디오 섹션〉 아트선재센터 전시 전경 2012 Courtesy of the artist and Bartleby Bickle & Meursault. (사진: 전병철)

모리(Mori)의 정상을 너머

이불은 지난 봄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가졌던 전시를 분수령 삼아 이번 아트선재센터에서 커다란 미적 전환을 보여 줬다. 뱀이 허물을 벗듯 그의 작업이 또 다른 맥락으로 환골탈퇴하고 있다. 모리미술관 회고전의 ‘재탕’ 혹은 축소반복일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이불은 새로운 전시를 보여 주었다. 이번 그의 새로운 도전은 공간에 대한 건축적 실험이다. 그리고 여기에 핵심적 특징으로 지각에 대한 탐구가 엿보인다. 대규모 설치작품 4점과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드로잉과 모형 등을 선보인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2층과 3층의 전시 공간이 작품과 한 ‘세트’라는 점이다. 작가가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전시장 바닥이다. 2층 바닥에 깔린 합성 거울과 3층의 나무 건축물 바닥은 그 층에 전시된 작업들과 종합되면서 시각적 일관성을 완성한다.
전시가 시작되는 3층부터 살펴보자면, 우리는 지난 모리미술관 전시를 눈으로 요약하면서 이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해석마저 덤으로 보게 된다. 지난 전시와는 다르게 구성된 스튜디오 섹션은 열린 공간에서 재현되어, 드로잉과 모형 220여 점을 공개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이불이 홀로 작업하며 구상했던 생각의 발상을 보며, 그 원초적 컨셉트가 복잡한 완성작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확인하게 한다. 관객은 작가가 고심한 사고의 궤적을 따라, 〈사이보그〉(1997~2011), 〈아나그램〉(1999~2005), 〈나의 거대서사〉(2005~현재) 시리즈와 최신작인 〈비밀 공유자(The Secret Sharer)〉 시리즈의 드로잉과 모형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2011년 봄에 발생한 후쿠오카 지진을 연상시키듯, 바닥을 이루는 나무 구조물들은 바로 파헤쳐진 땅이요, 어긋나고 뒤섞인 지면의 대혼란과 같다. 그 카오스 위를 걸어 다니는 관객은 벽에 전시된 작업을 보다 입체적으로, 정확히는 ‘입체주의식’으로 지각할 수밖에 없다. 바로 작가의 의도이다.
전시장에서 접하는 일군의 개들은 모리미술관 전시의 정점으로 주목받았던 대형 설치작 〈비밀 공유자〉의 모형이다. 이 원조 견공(犬公)은 모리타워 53층에서 도쿄 시내를 늠름하게 내려다 보며, 그 구토하는 모습을 화려하게 과시했었다. 몸체도 내뱉는 내용물도 모두 유리조각과 구슬로 만들어졌고, 또한 이것이 빌딩의 통유리 앞에 놓였기에 조명을 받은 유리와 구슬의 섬광이 전시 공간을 온통 환상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렸던 작업이다. 그리고 통유리로 들어오는 도시 야경의 현란한 불빛. 전시의 압권이었다. 원조의 기억을 갖고 아트선재센터로 돌아와 그 모형들을 보면 작가의 다재다능한 시각적 표현력에 미소가 절로 난다. 축 처져 있는 노견(老犬)의 모양새에서 작가가 가졌던 측은한 연민과 애상(愛想)이, 그 감성적 동일시가 관객에게 바로 전달된다. 단순하게 핵심만 포착한 멋진 크로키를 보듯 늙은 개의 늘어진 몸은 작가의 애완견도 아니요, 더 나아가 동물도 아니다. 그건 작가이자 관객의 몸이요,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 대한 회한을 나타 내는 생물체인 셈이다.
2층 전시장은 작가의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제시한다. 어찌 이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바닥 전면과 더불어 그 안의 건축 설치작을 감탄 없이 체험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수많은 거울방과 파편으로 이뤄진 입체를 봐 왔고, 공간 속 관객 체험을 지겹도록 겪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보는 이불의 작업처럼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작품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전시장 전체를 반영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제시한 3점의 설치작은 함축적이고 강렬하다. 전시장 입구이자 구조물인 〈수트레인(Souterrain)〉, 거울로 미로를 만든 대규모 설치 작품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왕손 이구의 불행한 삶을 표현한 설치작 〈벙커(M.바흐친)〉이 한 공간에 놓여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 첫 선을 보이는 신작 〈수트레인〉와 〈비아 네가티바〉를 높이 사고 싶다. 우선 후자에서 보는 거울 공간의 구성은 고도의 미적 조형감과 유기적 구성력을 지니면서 시각적 환영, 그 유토피아적 비전을 구현한다. 작가는 무한히 중첩된 이미지가 가져 오는 환상의 일루전을 ‘고수’답게 완벽히 조성하였다. 구조물의 외벽을 도배한 책의 낱장들은 환영적 공간을 언어로 무장하듯 나만의 유토피아를 단단히 지키고 있는데, ‘부정(不定)을 통해 신을 규정한다’는 신학적인 제목과 통하는 느낌이다. 신을 피하고자 자아의 심연으로 파고들어 만든 고립된 유토피아에서 대면하게 되는 것이 결국 신이란 말인가. 기나긴 미로의 끝에서 마주한 나의 공허가 신을 향한 전격적 귀속을 욕망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비아 네가티바〉에 현혹되어 〈수트레인〉을 간과하지 말기를. 그 회화적 공간 구성은 마치 ‘건축의 추상화’를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불의 기반이 회화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코헤이 나와 개인전 전경 2012.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표면에 고정시킨 모호하고 불확실한 환상

일본작가 코헤이 나와는 이불보다 10년 아래인데다 전혀 다른 형식의 작업을 보여 줌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유사점을 제시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국제적 수준에 오른 그의 전시를 아라리오갤러리 청담, 천안에서 볼 수 있다. 그의 〈픽셀〉 시리즈와 최신작 〈트랜스〉 시리즈의 대표작 40여 점을 선보이는 국내 첫 전시이다. 나와의 작업은 비즈 프리즘 폴리우레탄 등을 사용해 현실과 환상, 대상과 주체 사이의 지각적 체험을 다각적으로 실험함으로써,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환영 사이의 경계에 의문을 던진다. 이러한 그의 질문은 디지털 시대와 정보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의 감각과 생각을 되짚게 하고, 시각적이면서 동시에 철학적인 의식을 불러 온다.
나와는 이번 전시에서 인터넷에서 수집한 모티프를 조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 〈프리즘(Prism)〉, 사람 또는 어떤 대상의 3D 스캔 데이터를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이용해서 재작업하는 최신작 〈트랜스(Trans)〉 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은 역시 〈픽셀(Pixcell)〉이라는 조각 연작인데, 이는 대상에 대한 주체의 지각에 대한 탐구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 용어는 디지털 영상에서 화상의 정밀도를 나타내는 ‘픽셀(Pixel)’이라는 단어와 생물학적 세포를 일컫는 ‘셀(Cell)’의 합성어이다. 작품의 오브제들은 제작 과정에서 유리, 크리스탈, 우레탄 등으로 표면이 덮이면서 관객에게 색다른 비전을 체험하게 한다. 예컨대, 〈픽셀〉 연작 중 대표적인 〈사슴〉 시리즈는 박제된 사슴의 표면에 투명 크리스탈 구슬을 뒤덮어 만든 비즈 작품이다. 이런 방식으로 기존의 동물은 ‘Pix-Cells’로 전환, 전혀 새로운 하이브리드 오브제가 된다. 이때 표면을 덮는 외양의 이미지는 컴퓨터로 만들어진 것으로, 때문에 스크린의 픽셀과 그 의미가 직결된다. 말하자면, 컴퓨터 모니터의 픽셀 프로세스의 이미지를 복사하고 붙이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이를 실제의 물리적 조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표면에서 교차하는 현실과 가상,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그 사이(in-between) 공간에 이도저도 아닌 제3의 환상을 자아내는데, 그 시각적 환영은 구상과 추상의 구분을 너머서는 언캐니한 아름다움을 발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와의 작업은 이렇듯 오늘날 최첨단의 정보 사회를 반영하는 ‘다른(alternative)’ 언어로 작업한다는 점에서 그 미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여기서 나와가 구현하는 그  모호하고 불확실한 감각이 ‘표면(피부)’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는데, 그가 이전부터 조각의 방법론으로 피부에 집중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2003년 그의 박사 논문 제목이 〈미학과 피부 표면- 현대조각에서의 방법론〉이었음을 참고할 수 있다.) 이렇듯 코헤이 나와는 디지털의 최첨단 언어를 통하여 미술의 고전적 화두인 2차원과 3차원의 관계를 재해석하고 있다.

코헤이 나와 개인전 전경 2012.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전투적 아름다움의 귀환

〈Pride Comes Before a Fall of the Lash〉 나무에 보석벌레 날개 껍질 227.5×173×8.1cm(부분) 2012_ ‘콩고의 히에로니무스 보쉬에게 찬사’ 연작(2011~2012)
(Photo: Pat Verbruggen)

전투적 아름다움의 귀환

글|스테판 헤르트만스·전 크롤러뮐러미술관 관장

얀 파브르는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자신은 ‘미(beauty)’를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에게 아름다움이란 냉소적인 세계에서 위험에 처한 개념이다. 혹자는 파브르가 미를 위한 보수적 개혁운동을 착수한다고 조금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다. 얀 파브르의 초기 작품은 신 바그너풍의 몽상처럼 보였다. 그는 아방가르드 정신에 충격을 주기 위해 퍼포먼스와 아방가르드 요소를 결합했다. 1980년대 극장 공연을 위한 무대 설치와 실크에 파란색의 빅(Bic) 볼펜으로 그린 거대한 드로잉에 이러한 미의 개념이 잘 드러난다. 그는 초기부터 아름다움에 관한 서구 미학이론의 전통적 요소를 모더니스트의 반 미학적 유산과 결합함으로써 작품에 분열적 효과를 가져 왔다. 그의 작품이 지닌 ‘미’는 무엇인가? 우리를 동요시키고 충격을 주며 저속하고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아름다움 말이다.

왼쪽 ·〈Skull with Rabbit〉 보석벌레 날개 껍질, 첨가제     박제 동물 24×23×25cm 2001 (Photo: Pat Verbruggen)|오른쪽·〈Skull with Parakeet〉 30×32×22cm 2004(Photo: Pat Verbruggen)

모호한 아름다움의 도발

아비뇽에 있는 명예의 뜰(Cour d’honneur)에서 공연한 〈나는 피이다〉(2001)에서 여성 무용수들은 속바지에 묻은 꽃모양의 피 흔적을 관객에게 보여 주기 위해 드레스를 걷어 올렸다. 《르 피가로》로 대표되는 보수적 언론은 이러한 장면이 저속하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이 장면은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는 포스트모던적 봄의 제전(Sacre du Printemps)을 선보이듯 이교도의 방식을 사용하여 극단적으로 세심하게 짠 안무 안에서 피의 풍요로움을 보여 주었다. 〈달콤한 유혹〉(1978), 〈관용의 난장〉(2009)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배우, 〈눈물의 역사〉(2005)에서 소변을 보는 댄서처럼, 그는 공연의 모든 미학적 요소를 무대에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이면서도 관습적인 미학에 도발했다. 모호한 태도는 그의 작품에 나타난 아름다움의 중심을 이룬다.
얀 파브르가 작가로서 취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중산층이나 대중매체의 전통적 관습과 반복해서 충돌해 왔다. 그는 여전히 많은 작품을 공연하고 명성에 둘러싸여 있지만, 아웃사이더의 위치도 유지하고 있다. 마치 후기 아방가르드 예술가가 중앙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태도를 취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작가와 반 미학적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 그의 미에 관한 모호한 자세는 시대의 징후로써, 그를 아웃사이더이자 시대의 해석가로 만든다.
파브르의 작품에서 몸은 작업의 모든 결정을 위한 측정기준이다. 공간 안무 작품과 미술관 공간 간의 관계. 이들은 모두 미를 위한 척도로 이해되는 인간의 신체에 근거한다. 파브르 작업에 등장하는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도 결국 인간성(그리고 그 한계)에 대한 생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
파브르의 초기 연극 작품은 중세 야외극을 연상시키는 반 심리적인 연극 형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익명의 이미지는, 도덕 형식에 지배되는 전(pre) 파우스트적 세계를 대표한다. 시각 예술로서의 초기 무대 작업에서 인간의 신체는 비개별적 몸으로, 인류 그 자체를 상징하는 몸이자 종(種)의 유형으로 무대의 중앙을 차지한다. 그는 숭고미를 겨냥한 〈상승하는 천사의 벽〉(1993)과 브뤼셀의 왕궁 천장에 설치한 〈기쁨의 천국〉(2002)에서, 마치 인간 영원의 눈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은 신비로운 광경을 상정한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1990년대 거의 모든 무대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기 팝(Iggy Pop)의 〈Lust for Life〉이 실처럼 뻗어나가는 〈달콤한 유혹〉과 더욱 영적인 〈시간의 다른 얼굴에서〉 〈나는 피이다〉와 〈죽음의 천사〉(1996), 〈관용의 난장〉 같은 지난 10년의 근작까지도 포함된다. 시각예술과 무대연출이 무대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동안, 퍼포먼스는 나비의 몸이 되어, 혹자가 그의 예술 세계의 ‘하드 바디(hard body)’라 부르는 것이 되어 등장한다. 2001년 리옹에서 선보인 〈그리스도의 피/사마귀〉 같은 잊기 어려운 퍼포먼스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함께 펼쳤던 유명한 퍼포먼스 〈처녀/전사〉(2004)까지, 파브르는 작품에 개별 감정에 관심을 가진 인물로서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반면 파브르는 그의 증조부인 장-앙리 파브르처럼 인간을 곤충학자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체 모양의 텅 비어 있는 드레스를 비단벌레 날개 껍질로 장식한 〈상승하는 천사의 벽〉(1993)이 그 예이다. 그의 초기작에서 인간성이 숭고하고 초(超) 인간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면, 최근에는 취약함과 유한성의 징후가 되었다. 파브르는 이 두 관점을 오가며 시대의 증후, 우리의 현 시대의 상징을 작품에 담았다. 그는 마르셀 뒤샹과 마르셀 브로타스에 영감을 받은 새로운 아방가르드에서, 작가의 개별적 나약함을 위한 수호자로 점차 역할을 바꾸었다. 미의 개념은 더욱 복잡해졌다. 숭고의 초인간적 관점은 감정이입이 된 양가적 아름다움으로 점점 변했다.
도대체 파브르적 전사는 어떠한 아름다움을 위해 싸우는가? 모순의 미를 위해, 바글거리는 사회의 한가운데 있는 고독의 미를 위해, 사회적 고립 중에 있는 연대를 위해, 어두운 아름다움, 더러운 아름다움, 쉽게 변하고 복잡한 아름다움, 역행의 아름다움, 피 흘리고, 고통받고, 갈망하고, 섹스하고, 파티하고, 피곤하고, 지치고, 그러나 그날 이후 다시 나타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포스트모던적인 숭고한 신체의 아름다움. 개인적이고 고문당한 몸으로 인류의 모든 것을 묘사하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몸(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의 아름다움. 이러한 관점에서, 파브르의 작업 속 숭고한 몸은 직접적으로 사드 후작 같은 작가의 작품에서 신체가 나타나는 방법과 연결되어 있다. 얀 파브르는 마치 이러한 아름다움의 하인이 된 것처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로운 주인, 그것은 새로운 규칙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 그것은 그 이상의 것을 의미했다. 나는 세계를 가지고 있다. 예술 행위로 번역된 미래를 위한 나의 선택을 얻기 위해, 현실을 위한 열정을 얻기 위해.”

〈Heaven of Delight〉 천장에 보석벌레 날개 껍질  벨기에 왕궁 미러홀 설치 2002(Photo: Dirk Pauwels)

비단벌레로 만든 조각, 브뤼헐식의 상상력을 보여주다!

파브르의 미술 작업은 언제나 아방가르드와 전통의 뛰어난 혼합을 보여 준다. 제임스 앙소르의 표현주의적 작업과 마르셀 브로타스의 메타 비평적 작업은 물론, 카라바조에서 시작하여 루벤스로 이어지는 가려진 숭고한 전통이 함께 한다. 〈꿀을 얻기 위해 벌을 기르는 사람〉(1998~99)과 같은 비단벌레로 만든 조각 시리즈는 브뤼헐식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조각들은 현대의 자기 비판적 개념의 틀 안에서 구성되었다. 근엄한 미술관의 경계선 밖으로 뛰어나가 정지된 퍼포먼스가 된다. 비단벌레는 이집트인의 환영 같은 움직임에 관한 믿음, 플랑드르 바니타스 회화에서도 나타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가교, 작가 스스로를 일시적인 미술관의 작품으로 지시하는 역학 관계, 적절한 관점에 놓인 아이러니한 자기노출을 표현한다.
파브르는 해를 거듭할수록 인간 뼈 요소들에 집착해 왔다. 인간의 뼈 요소가 사용된 작품들은 언어의 상징성만큼이나 바로크적이다. 또한 자신을 스스로 작가로서 위치 짓도록 허용한다. 해골의 표면에 비단벌레 날개 껍질을 붙이는 것처럼, 파브르는 퍼포먼스에서 갑옷을 입는다. 그것은 신체의 외부와 내부의 변증법의 갑옷이다. 또한 자신을 지키는 것과 인간이란 존재의 유약함과 작가로서의 나약함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의 상호작용이다. 열린 무덤, 해골, 인간의 뼈, 고딕 형상의 도구들. 이 모든 것은 정자와 소변의 드로잉, 피와 눈물의 드로잉처럼 작업과 함께 체액을 따라 몸 전체를 순환할 때 도발적 효과를 지닌다. 파브르는 자신의 신체에서 나온 액체와 고체를 예술 재료로 사용해 드로잉과 회화 같은 2차원의 작품을 제작한다. 이 작품은 스튜디오나 워크숍의 고독 속에서 발생하는 퍼포먼스의 나머지 부분인 것처럼 보인다. 그의 드로잉은 인간 활동의 흔적이자, 신체의 증거물이다. 〈나의 몸, 나의 피, 나의 풍경〉(1978)과 같은 제목이 연상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통로 역할을 하는 드로잉으로 가득 찬 넓은 전시 공간은 예술가의 행위와 생각을 오롯이 보여 주는 작업실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많은 자기 모순적 요소가 있다. 파브르에게 모순은 작가적 책임감을 회피하는 쉬운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노출과 시의 옹호(Defence of Poetry)이며, 설명하고 방어하는 앙소르식의 바로크적 이중 붓질이다.
파브르의 작업에서 섹슈얼리티는 디오니소스적 영향을 지닌 활력과 힘의 풍부함, 활력론자적 환영과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미래의 자비로운 질〉과 〈미래의 자비로운 남근〉(2011)이 대표적이다. 신체는 유한하고 일시적이다. 하지만 끝없는 성적 행위와 세대를 거듭하면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새로운 몸들 때문에, 개별 신체의 부흥과 쇠퇴는 모든 동시대 미학의 모순을 형성한다. 유한한 몸은 모든 신체의 끊임없는 등장의 흔적을 내포하고 있다. 즉 유한성은 ‘무덤 모순(grave irony)’의 핵심인 무한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문맥에서 그가 작품에 비단벌레와 날개 껍질을 사용하는 것은 많은 의미를 지닌다. 날개 껍질로 만들어 낸 물질적 형태는 덮여 있고 동시에 열려 있다. 여기서 몸은 물리적 쇠락을 겪는 보석과 같다. 바로크적인 화풍 안에서 실존적 진실을 상상하긴 힘들다.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대량생산된 이미지와 물질성에 촘촘하게 들어맞는 바로크이다. 파브르는 대량생산된 이미지와 물질성에 응답하기 위해, 반복해서 생기발랄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의 메시지를 보낸다.
얀 파브르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의 뼈로 새겨진 피를 흘리지 않는 심장은 유한성의 무한함, 영겁회귀(Ewige Wiederkehr,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에서 내세운 사상. 영원한 시간은 원형(圓形)으로, 그 안에서 사물과 인식이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내용)을 상징한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는 ‘물질’로서 인간의 부드러운 갑옷 안에 언제나 존재한다. ‘물질’은 항상 후기 가톨릭적 상상력과 친밀하다. 피를 흘리지 못하는 무능한 신체는 무아지경의 상태에 놓인 성 세바스찬의 형상을 연상시킨다. 시작은 순수하면서도 신비롭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환기한다. 이 이미지는 기독교적 성흔(聖痕)과 그에 따른 모든 감정들로부터 충분히 역설적인 거리를 두고 있다. 이때 이 이미지는 출혈을 막는 성적인 무아지경이라 할 수 있다.
파브르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집착은 ‘가장 섹시한 신체 기관’인 뇌에 대한 매혹으로 연결된다. 베니스의 아르세날레 노비시모와 브레겐즈의 쿤스트하우스에서 전시된 거대한 설치미술이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의 뇌를 파헤치거나 이국적인 보석으로 여기며, 사고(思考)의 유한하고 무한한 정신없는 움직임의 상징으로 뇌를 드러낸다. 파브르는 사고를 물질적 과정이라고 선언하는 일종의 정신적 드라마를 보여 준다. 이 드라마는 본질적으로 성적 충동과 다를 게 없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곤충이 된다. 이는 영상작업 〈일리야 카바코프를 만나다〉(1997)에서 대단히 표현적으로 등장한 메타포이다.
최근 들어 작가의 자기노출은 청동과 밀랍으로 만든 숭고한 자화상 시리즈 〈Chapter Ⅰ-ⅩⅤⅢ〉(2010)에서 극에 달했다. 그의 두상엔 다양한 사슴뿔이 달려 있고 찡그린 표정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는 바로크 화가인 프란츠 사버 메서슈미트의 모순적인 반복과 같으면서도 변증법적 모순을 지닌 노골적인 디오니소스이다. 청동으로 만든 불멸의 초상화는 사실상 성적 매력이 부여된 자신의 몸이 얼마나 일시적인지 강조한다. 이처럼 파브르의 모든 작품은 시간과 지속기간, 이미지와 쇠락, 승리와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동시에 이것은 단순히 자화상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젊은 파브르와 미래의 나이 든 파브르, 주의 깊은 관람자라면 그의 자화상이 인생의 생리적 풍경을 인식하게 되는 모순적 성격 묘사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가끔 광대 팝가수 독재자 갱스터와 같은 전형적인 머리에 대한 음흉한 언급이 있다는 사실은 이것이 결코 나르시시즘적 모험이 아니다. 그의 흉상은 대중매체가 그럴 것이라고 계속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을 다시금 분명히 보여 준다.
파브르의 흉상은 스스로를 타인으로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는 스스로를 소외시키기 위해 자화상의 자기 비하적인 전통의 맥락에서 자신의 머리를 소개하였다. 다시금 모순적 관점에 작가의 시대적 역할을 집어넣는 것이다. 누, 사슴, 숫염소, 심지어는 유니콘의 거대한 뿔을 달고 있는 여러 개의 머리가 모여, 방어와 개방(안테나) 모두가 작가의 남성적 왕관임을 나타낸다.

왼쪽 ·〈I Drive My Own Brain II〉 실리콘에 페인트, 왁스, 옷감 가죽 철 29×24×43cm 2008(Photo: Dirk Pauwels)|오른쪽 ·〈I Let Myself Drain〉 철, 폴리스터, 머리카락, 유리 옷감 등 혼합재료 165×56×50cm 2006(Photo: Attilio Maranzano)

숭고와 인간미의 긴장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얀 파브르의 조각 작품 중 하나는 〈구름을 측정하는 사람〉(1998)이다. 건물 옥상에서 두 팔을 벌리고 구름을 측정하는 자신만만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이 위대한 몽상가는 직접적으로 〈나, 꿈꾸다〉(1978)라는 작품과 관계되어 있다. 이 작업은 작은 탁자를 향해 몸을 숙이고 있는 사람 형상으로, 드로잉 핀으로 만들어졌다. 구름을 재보고 싶은 누구라도 기하학과 꿈을 결합해 보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숭고와 지나치게 인간적인 아름다움 간의 긴장감. 이러한 긴장은 얀 파브르의 전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웅장한 제스처는 언제나 작은, 아주 작은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후기 가톨릭적 제스처는 변증법적으로 프로테스탄트의 명료함과 대단히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파브르 작업에서 인간의 이미지는 어떻게든 소명의식의 개념으로 채색되어 있다. 즉 작가는 퍼포먼스의 과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소명은 숭고한 전사의 작업이다. 두 번째 소명은 마틴 하이데거가 공존재(Mitsein, 타인과 함께 있다는 뜻. 하이데거가 사용한 용어로 공동존재라고도 한다)라고 부른 것으로 주고받는 행위 안에서 타인을 통해, 그리고 타인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빛을 준 사람〉 (2002)은 작가가 그 자신을 위해 하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빛과 따스함을 주고 싶은 프로메테우스이다. 다만 10분이라도, 무대와 미술관에서 파브르와 함께 일해 본 모든 사람이 느끼는 것처럼, 그가 얼마나 너그러운 작가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강조되지 않았다. 그의 작품에는 에너지, 삶으로의 열망, 인간적인 따뜻함이 지닌 전염성과 엄중하면서도 쉽게 만족하지 못하지만 늘 연대에 기반을 두고 있는 태도가 드러난다. 얀 파브르는 지금도 도덕적 선택에 기반을 두는 미학이론의 아름다움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글은 2011년 크롤러뮐러미술관에서 열린 얀 파브르의 회고전 도록 《Jan Fabre, Hortus/Corpus》 (NAi Publishers, 2011)에 실린 필자의 글을 발췌·번역했다.

왼쪽 ·〈I Had to Demolish a Part of the Ceiling of the Royal Palace Because There was Something Growing Out of It〉 혼합재료 560×960×1,040cm 2008(Photo: Markus Tretter)|오른쪽 · (좌)〈House of Flames III〉 나무에 빅 볼펜 239×272×352cm 1988, (우)〈The Hour Blue〉 실크에 빅 볼펜 1,400×900cm 1988(Photo: Dirk Pauwels)

〈Fountain of the World(As a Young Artist) (II)〉 101×545×715cm 혼합재료 2008
(Photo: Pat Verbruggen)

Issue and People

피터 슈라이어 1953년 독일 바트라이헨할 출생. 독일 뮌헨 응용과학대 산업 디자인학과 및 영국 왕립예술학교 자동차디자인과 수학. 아우디(1980~1992), 폭스바겐(1993~2002) 디자인 총괄 책임자 역임. 독일연방디자인대상, 시카고 굿디자인상, 독일 산업포럼 디자인상, 미국 오토카 어워드 등 다수의 디자인상 수상. 현재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기아자동차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 및 부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피터 슈라이어, “나는 순수예술에서 느끼는 해방감이 좋다”

글|김재석 기자

“제프 쿤스 내한 이후 이렇게 많은 취재진은 처음이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취재진 사이에 터져 나온 말이다. 열띤 취재 현장의 주인공은 피터 슈라이어. 그가 생애 첫 개인전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9. 22~11. 2 갤러리현대)을 개최했다. 20년 넘게 자동차 디자이너로 활약한 스타 디자이너의 ‘외도’를 취재하기 위해 많은 언론사의 기자가 간담회에 참여했다. 그는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 취재진을 향해 “오늘만큼은 자동차 디자인에 관한 질문을 정중히 사양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아티스트’로서 취재에 응하겠다는 것. 평생을 공들여 틈틈이 제작한 작품들 사이에서, 그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들떠 있어 보였다. “한국에서 생각지도 못한 첫 전시를 열어 기쁘다. 전시를 준비하며 힘든 줄 모르고 굉장히 신이 났다. 사실 이렇게 내 작품을 한 공간에 전부 전시해 놓고 보는 것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순간이다.” 

<휴식 상자> 2009, 쇠파이프, 인조 대리석 200×200×200cm

첫 개인전, “모든 작품은 나의 자화상이다”

피터 슈라이어는 재규어의 이안 칼럼, BMW 7시리즈의 크리스 뱅글과 함께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손꼽힌다. 그는 1953년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 뮌헨대학, 영국 왕립예술대학(RCA) 등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는 아우디, 폭스바겐 등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의 디자인을 총괄, 잇따른 ‘히트작’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발돋움했다. 지난 2006년, 슈라이어는 한국의 기아자동차에 영입돼 현재까지 디자인 총괄을 맡고 있다. 초반에는 그의 선택을 두고 잡음이 많았다. 그동안 국내 기업의 해외 스타 디자이너 스카우트 사례를 살펴봤을 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그는 기아자동차의 모든 차종을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로 탄생시켰다. ‘K시리즈’로 일컬어지는 ‘패밀리룩(같은 회사의 모델을 비슷한 모습으로 제작)’을 제작해 시장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피터 슈라이어의 자동차 디자인은 기하학적 곡선을 살린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자동차 디자이너로만 알려진 그가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피터 슈라이어가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적극적인 권유가 발단이 됐다. 그는 마음에 품고 있었던 예술가로서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다. 전시 제목 ‘인사이드 아웃’은 ‘인간’ 피터 슈라이어의 진솔한 내면의 모습을 대중에게 과감히 꺼내 보여 주자는 의도에서 선택했다. “이번 전시 출품작은 내 자화상이자, 일기장이며, 디자인 활동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명성 있는 자동차 디자이너로서의 내 모습만을 기억한다. 이번 전시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고 싶다.” 레드닷 회장인 피터 제크는 개인적 이야기가 여과 없이 노출된 그의 회화 드로잉 조각 작품을 ‘자기 분석’의 일종이라 평했다. 전시 구성은 ‘모션’과 ‘이모션’으로 나뉘었다. 자동차는 물론 경비행기, 패러글라이딩, 봅슬레이를 즐기는 열정적인 도전정신이 담긴 작품은 모션에, 누군가의 아들과 손자이며 남편과 아버지인 개인의 내밀한 기억과 감정이 담긴 작품을 이모션으로 분류했다.
피터 슈라이어의 ‘외도’는 일찍이 시작됐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는 유년시절부터 줄곧 예술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희망의 출발은 부모님과 외할아버지. “어머니나 외할아버지로부터 예술적인 면모를 많이 물려받았다. 그들은 내 인생의 출발이자, 최초의 예술 선생님이다.” 그는 휴대폰에 저장된 옛 사진을 직접 보여 주었다. 그가 예술가의 꿈을 키우며 뛰놀던 동네 풍경과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한 모습, 외할아버지의 작업실 외부가 담겨 있었다. 목재 지붕 구조물과 가구를 제작하는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외할아버지는 그의 미술 선생님이자 좋은 말동무였다. 어린 피터 슈라이어에게 그림 그리는 방법을 알려 주었고, 그가 그린 그림을 보며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외할아버지는 작업실에서 나를 위해 손수 장난감을 만들어 주셨다. 직접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에 매료되었다. 내가 예술가를 꿈꾸게 된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지하 전시장 정중앙에는 그와 외할아버지의 애틋한 추억이 담긴 오래된 장난감 동물원이 놓여 있다. <나의 동물원>이란 제목의 이 오브제는 그의 외할아버지가 당시 4살이던 어린 피터 슈라이어에게 만들어 준 장난감이다. 어릴 적 그가 이 장난감을 보고 그린 드로잉을 모티프로 한 <동물원 밖의 동물들>이란 회화 작품이 장난감을 마주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이 동물원 장난감을 나만의 비밀을 간직한 작품으로 여겼다.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의 드로잉으로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이렇게 작품으로 선보이기까지 45년이 걸린 셈이다.(웃음)” 한편 그의 캔버스에는 경비행기, 비행기 조정사가 주로 등장한다. 어릴 적 그의 아버지가 소유한 초목지 근처 비행장은 드넓은 놀이터였다. “새로운 비행기가 오면 비행장으로 뛰어가 구경하고 직접 앉아보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직접 비행기를 몰게 됐다.”
반항심 충만하던 학창시절, 그는 다다이스트나 초현실주의 예술가를 흠모했다. “사춘기 시절 나의 유일한 소망은 다다이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기존에 친숙했던 사물에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그들의 도발적인 아이디어에 매혹됐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그의 작품에는 현대미술의 여러 사조와 작가에게 받은 영향 관계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캔버스를 여러 겹으로 덧댄 표면, 신문기사에서 실루엣만 따온 것 같은 인물 형상, 암호처럼 크게 확대된 숫자 프린트, 붉은 색과 파란 색의 모노크롬 추상화, 사이 톰블리(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았다) 풍의 즉흥적인 드로잉 등. 또한 이번 개인전에는 2006년 이후 그가 한국과 맺은 인연을 계기로 탄생한 작품 <휴식 상자>도 선보였다.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소쇄원으로부터의 영감’전에 출품된 바 있다. 그는 전남 담양의 소쇄원에 있는 문양을 보고 유럽에서 12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 유행한 나인 멘스 모리스(Nine Men’s Morris)라는 보드게임 도판을 떠올렸다. 마치 동양과 유럽 문화 사이의 놀라운 연결 고리를 발견한 것 같았다고. 그는 대나무 숲 속의 휴식 공간을 만들 듯 사각형의 인조 대리석 판에 쇠 파이프를 자연스럽게 꽂아 두었다.

<도구 상자>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165cm 2012

디자인과 순수예술, 두 세계의 공존을 꿈꾸다

어렸을 적부터 예술가를 꿈꾸다, 디자이너로 세계적 반열에 올라선 피터 슈라이어. 과연 그는 디자인과 순수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까? 먼저 그는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게 된 비결이 ‘예술’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나는 예술과 기술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자동차를 꿈꿔 왔다. 자동차 디자인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껴서 많이 구매하도록 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작업이다. 순수예술은 디자인 과정에 새로운 시도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훈련이자 내 영감의 원천이다.” 덧붙여 그는 순수예술과 디자인의 세계가 두 개의 분리된 세상이자,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유연한 경계선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나는 두 개의 다른 세상에서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 그런 식으로 작업해 왔다. 나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미술 작업을 할 때는 자동차 디자인을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다다이즘적인 자동차를 만들 수는 없다.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팔리지는 않기 때문이다.(웃음)” 상업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이지만 분신과 같은 작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해맑게 웃으며 작품을 설명하는 그에게 미술은 삶의 즐거움이자, 끝없는 자유의 공간이며, 영원한 청년으로서 꿈꾸는 영역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들이 전시장에 와서 내 작품을 좋아해 주면 감사할 일이지만, 반응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좋아하든 아니든 작품이 팔리든 안 팔리든 그것은 내 관심 분야가 아니다. 나는 순수예술에서 느끼는 해방감이 좋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내면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NO GUTS NO GLORY> 캔버스에 아크릴릭, 콜라주 100×100cm 1993

올해의 작가상, 큐레이터 코멘트

문경원&전준호〈공동의 진술 Vol. 2010-2012〉  잉크젯프린터에 유리 액자, 전기 조명장치, 벽면에 페인트 도장, 시트 가변크기 2012

<올해의 작가상> 큐레이터 코멘트

글|기혜경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올해의 작가상〉은 국내 미술인들의 오랜 바람이었던 서울 도심 속 국립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새롭게 마련된 제도이다. 뉴밀레니엄 이후 ‘문화의 세기’를 맞이한 오늘날, 국립현대미술관은 스스로를 반성하고 대내외적으로 돌아보면서  ‘서울관 시대’를 향한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난 15년간 연례전으로 치루어 오던 〈올해의 작가〉전을 대폭 개편해, 미술인의 실질적 요구에 부합하고, 미술계에 영향력 있는 제도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SBS문화재단과 손잡고 〈올해의 작가상(Korea Artist Prize)〉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 상은 우리나라 작가들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교두보’로서 마련되었다. 한국 현대미술의 잠재성과 비전을 제시할 역량 있는 작가를 후원하기 위해 제정된  이 상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존에 개최해 온 〈올해의 작가(Artist of the Year)〉전의 정신을 계승한다. 작가 발굴과 지원을 근본적 목표로 삼되, 동시대 미술계의 기대에 부응하는 지극히 현장 중심적인 미술수상 및 후원 제도라 할 수 있다. 이 상은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고 세부적인 운영 시스템을 정립하기까지 1년 반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미술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개편된 〈올해의 작가상〉 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수경〈천(Thousand)〉 강진 관요 해강요 청자 파편, 에폭시, 24K 금박 가변크기 2012

미술인 모두가 함께하는 미술상

국립현대미술관은 작년부터 국내외의 다양한 미술시상 제도의 특징들을 조사, 연구하는 동시에 실현 가능성을 타진하고 구체적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그리하여 <올해의 작가>에서 <올해의 작가상>으로 명칭을 바꾸고 새로운 상을 제정했다. 이 상은 작가의 연령과 작품의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상을 그리면서 새로운 담론을 불러일으키는 실험적 작품을 제작했거나, 창작 활동을 통해 한국미술의 발전 및 진흥에 기여한 작가라면 누구든지 적극 후원할 것을 그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올해의 작가상>은 한국 미술문화의 발전을 도모하고 한국예술의 세계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작가 선정보다 ‘후원’에 더 큰 무게를 둔 〈올해의 작가상〉은 진행 과정에서도 미술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개방적 형식을 갖추었다. 제도 개선의 초기 과정부터 역대 ‘올해의 작가’들은 물론, 그밖에 다양한 원로 중진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미술계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자문위원(이건수 강수미 윤재갑 서진석 등)을 위촉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적극 받아들이고자 했다.  
제도 개선 과정뿐 아니라 작가 추천 과정도 개방하였다. 미술관 내 학예사가 직접 작가를 추천하던 기존  〈올해의 작가〉의 방식과는 달리 추천의 문호를 바깥으로 활짝 열었다. 큐레이터, 미술기자, 비평가 등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10인의 전문가를 초청해 추천위원단(백지숙 김성원 유진상 김영순 김장언 등)을 조직했다. 뿐만 아니라 작가를 선정하는 심사 과정 또한 국내외 미술계에 개방함으로써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결과적으로 〈올해의 작가상〉전에 관한 작가 추천 및 선정, 전시 준비 등 전 과정을 미술계가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또한  〈올해의 작가상〉 제도의 취지와 정신을 지속하기 위하여 실질적인 운영기구로서 미술계 인사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강태희 김홍희 박만우 오광수 윤명로)를 두어 이 상의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임민욱〈절반의 가능성_미디어 폐허〉 강화유리 파편, 영상 프로젝션 포터블 키퍼(부표, 깃털, 선풍기 팬 글루) 2012

다양한 프로모션 채널 개발

무엇보다 ‘작가 후원’에 역점을 두고 있는 〈올해의 작가상〉은 참여 작가들이 거쳐야 하는 모든 단계와 절차 역시 그 자체로 또 다른  프로모션의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하였다. 일차적으로 10인의 추천단으로부터 추천받은 작가들은 150~200페이지 분량의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게 했다. 미술관 측은 이 자료들을 세계 미술계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국내외 심사위원(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일마즈 지비오르, 정도련, 김복기 등)에게 송부했다. 이 과정을 통해 심사위원들은 작가들의 작품을 사전에 깊이 숙지할 수 있었으며, 이후 실제 작업실을 방문하고 작가와의 면담을 이끌어 냄으로써 심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역량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하였다.
1차 심사를 거쳐 선정된 4팀의 작가들은 사전 준비 혹은 전시 기간 중 작가가 지목한 해외 미술관의 큐레이터 및 저명 비평가들과의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작품 세계에 관한 비평문을 받거나 심포지움 등은 향후 작가의 작품 활동에 직간접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시대 변화에 걸맞게 좀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을 위해 디지털 도록을 발간하기로 하였다. 디지털 도록은 기존의 종이 재질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도록과는 달리, 오늘날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시간성을 담지하는 작품의 특징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 더 나아가 타블렛 PC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도록의 편리성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미술관 어플리케이션(앱스토어에서 ‘NMoCA’ 혹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검색)을 다운받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작가 프로모션을 좀더 용이하게 하고, 더 나아가 작가들로 하여금 향후 디지털 매체를 통한 소통 체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올해의 작가상>은 SBS와의 협력사업이다. 미술관은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재창출하는 데 노력해 온 SBS와 협력하여 작가들을 위한 실질적인 후원을 증대하고, 현대미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제고하고자 하였다. 문화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활동해 온 SBS문화재단은 미술관의 새로운 수상 제도에 전격 협력했다. SBS는 다변화하는 미술계의 변화에 발맞추어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다각적이면서도 생생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영상 컨텐츠를 제공하였다. SBS는 현대미술을 좀더 쉽게 대중과 교감할 수 있도록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다큐멘터리로 제작, 지상파 방송으로 널리 알림으로써 일반인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올해의 작가상 2012〉를 위하여 총 9팀이 추천되었다. 추천인이 10인이었음에도 9팀이 추천되었던 이유는 한 팀을 2명의 추천인이 중복 지목했기 때문이다. 또한 추천된 9팀 중, 실제 참가한 팀은 8팀이었다. 미리 잡혀진 중요 전시 일정 때문에 한 팀이 참여를 고사했기때문이다. 결국, 총 8팀이 1차 심사를 거치게 되었다. 이들을 심사하고 난 심사위원들의 총평은 “대한민국 40대 작가들의 시대정신을 살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1차 심사를 거쳐 SBS문화재단 후원작가로 선정되어 올해의 작가상 2012전에 참여하게 된 4팀의 작가는 김홍석, 문경원&전준호, 이수경, 임민욱이다.
 4팀에게는 SBS문화재단에서 지급하는 3천만 원의 SBS문화재단 후원금이 지급되었다. 〈올해의 작가상 2012〉전은 그 특성상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특별한 주제는 없다. 작가들의 평소 관심이 반영된 ‘4개의 개인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전시에  참여한 4팀의 작가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각기 다른 촉수를 이용해 감지하여 작품으로 제시하고 있다. 때로 그것은 개인사의 문제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예술의 가치나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오기도 하며, 또 어떤 경우 그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공통된 시대정신을 발판으로 우리 시대의 단층을 들추어 내는 4팀 작가들의 작품은 그대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대로 우리 현대미술의 단층이라 할 수 있다.

김홍석〈사람 객관적-나쁜 해석〉 중 〈노동의 방〉 설치 전경 2012

대한민국 현대미술의 단면

〈올해의 작가상〉 전을 준비하면서 미술관 측은 작가들에게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으나 그동안 현실적인 이유로 구현하지 못한 작품을 출품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 결과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업 방식의 특징과 개성이 충분히 드러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다. 각 작가의 작품이 드러내는 특성들을 공통된 공간에 담는 것은 무리였다. 따라서 전시장의 구성은 출품하는 4팀의 공간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서로 섞이지 않도록 함으로써 서로의 작품 감상이 방해 받지 않도록 하였다.
김홍석은 이번 전시를 위해 <사람 객관적-나쁜 해석>이라는 제목으로 세 개의 방에 대해 노동, 은유, 태도라는 3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작품과 관련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문경원&전준호는 <공동의 진술-두 개의 시선>에서  “예술은 인간 인식의 변화를 위한 기획”이라는 생각을 작품을 통해 제시한다. 이수경의 <쌍둥이 성좌>는 작가의 대표 작업인 <번역된 도자기>를 발전시킨 작품이다. 임민욱은 이번 전시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한의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해 오열하는 주민들 모습에서 영감 받아 제작한 <절반의 가능성>을 출품하였다.
한편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커다란 하나의 프로젝트여서 그 자체만으로는 관람객들이 이해하기에 다소 무리가 따랐다. 이 점을 감안하여 미술관에서는 전시장 한 구석을 아카이브 공간으로 꾸몄다. 통상 15~20년 이상의 작업 경력을 가진 작가들이 그간 제작해 오던 작품의 총화로 제작한 프로젝트를 이해하기는 미술전문가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아카이브 공간에는 그간 작가가 제작해 온 작품 중 이번 전시에 출품한 프로젝트와 주제 및 방법상의 연관성이 있는 작품들을 모아 아카이브 공간을 마련하였다. 아카이브 공간은 기본 취지에 부합하도록 많은 설명문과 함께 이전 작업을 보여 줌으로써 작품의 이해를 도왔다. 특히 아카이브 공간은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시 프로젝트 공간과 구분이 되도록 했다. 마치 작가의 머릿속을 엿보는 느낌이 들도록 ‘창고’ 형태로 꾸몄다.

1차 심사를 거쳐 선정된 4팀에게는 SBS문화재단에서 지급하는 3000만원의 SBS문화재단 후원금이 지급되었다. 전시장의 구성은 출품하는 4팀의 공간을 철저하게 구분하여 서로 섞이지 않도록 함으로서 각 작가의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지속적 작가 지원 제도로 발돋움

2012년 11월 11일까지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2012〉전은 10월 말경 2차 심사가 진행되어 최종 1인(팀)의 작가를 선정하고 전시 종료 직전 발표하게 된다. 최종 선정된 1인(팀)의 작가에게는 개인 도록 발간, 공동주최 측의 작품 매입 및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와의 1대1 매칭 프로그램을 통한 전담 큐레이터 제도를 둔다. 선정 작가를 지속적으로 후원할 예정이다.
비록 제도의 이름으로 최종 작가를 선정하긴 하지만, 앞서 기술하였듯이 〈올해의 작가상〉은 한 작가에게 혜택이 집중되기보다는 가능한 한 참여 작가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체제를 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과 SBS가 공동으로 진행한 〈올해의 작가상 2012〉전이 모쪼록 작가들에게는 더 나은 작업 환경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한국 문화예술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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